소련

최근 수정 시각:

파일:나무위키프로젝트.png
이 문서는 나무위키 각주 개선 프로젝트에서 다루는 문서입니다.
해당 프로젝트 문서를 방문하여 도움이 필요한 문서에 기여하여 주세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파일:소련 국기.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Emblem_USSR_1.svg.png

국기

국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Union_of_Soviet_Socialist_Republics_%28orthographic_projection%29.svg.png

1922~1991

표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Пролетарии всех стран, соединяйтесь!)

국가

인터내셔널가 (1922년~1944년)
소련 찬가 (1944년~1991년)

위치

동유럽, 중앙아시아, 북아시아

수도

모스크바(1922년~1991년)[1]

국토 면적

22,402,200 km² (1991년)

인구

293,047,571 명 (1991년)

정치체제

민주집중제, 연방제

국가원수

인민대표회의 주석[2]서기장[3]
대통령[4]

언어

러시아어[5]

종교[6]

무종교 60%
러시아 정교회 20%
이슬람 10% 등 (1991)

민족

러시아인 51%
우크라이나인 15%
우즈베크인 6% 등 (1991)

주요사건

(1917년 러시아 혁명, 제정 붕괴, 소비에트 러시아 수립)
1922년 12월 30일 성립
1928년 제1차 5개년 계획 수립(공업화의 시작)
1936년 헌법 개정(스탈린 헌법)
1935년 ~ 1938년 대숙청
1941년 ~ 1945년 대조국전쟁
1956년 ~ 1961년 스탈린의 격하
1961년 쿠바 미사일 위기
1969년 소련-중국 국경분쟁
1977년 헌법 개정(브레즈네프 헌법)
1979년 ~ 198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1985년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
1991년 8월 쿠데타, 해체

통화

소련 루블 (₽)

성립 이전

소비에트 러시아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벨로루시
자카프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해체 이후

러시아 연방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몰도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1. 개요2. 명칭3. 역사4. 상징5. 국토와 자원6. 정치7. 행정구역 (구성국)8. 경제
8.1. 과학기술 및 산업
9. 군사10. 외교 및 안보
10.1. 남·북한과의 관계
10.1.1. 북한과의 관계10.1.2. 남한과의 관계
11. 사회
11.1. 민족
12. 문화13. 소련 해체14. 대중매체에서의 취급
14.1. 영화14.2. 게임&애니메이션14.3. 기타
1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제1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국내의 모든 국가와 민족의 노동자, 농민, 인텔리겐치아의 의지와 이익을 표현하는 사회주의적 전인민 국가다.

제2조. 소비에트 연방에서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속한다. 인민은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적 기초를 이루는 인민대표 소비에트[7]를 통해 국가권력을 실현한다. 다른 모든 국가기관은 인민대표 소비에트의 감독 아래 있으며 그에게 보고할 의무를 지닌다.

소련 헌법(3차 개정) 제1장


1922년에 수립된 이래 공산주의를 추구하던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이며[8], 제2세계의 종주국이었다. 해체 시점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와 세 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였으며 미국과 양극 체제를 주도한 초강대국이었다. 1991년에 해체되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스푸트니크)을 쏘아올린 나라이자 세계 최초로 우주에 생명체(개 라이카)를 보낸 나라이자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유리 가가린)와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발렌티나 테레시코바)를 배출한 나라이자 세계 최초로 우주 유영(알렉세이 레오노프)을 한 나라이자 세계 최초로 우주 정거장(살류트 1호)을 만든 나라이기도 하다.

국민총생산(GNP)도 멸망 직전인 1987년까지 세계 2위[9]를 지켰을 정도로 절대 서방 세계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1990년에 1인당 국민 소득이 약 9,300달러(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반론은 있다. 국민 소득은 소련 당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교환가격으로 계산했는데, 이는 루블을 지나치게 평가절상한 것이다. 하단의 '경제' 부분 참고) 정도였으며,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그 절반 정도인 약 5,800달러 정도였다. 거기다가 사회주의 국가여서 명목상으로는 부의 분배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기에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본적인 부분[10]이 보장되었다. 또한 무상의료가 실질적인 형태로 구현된 인류 역사상 유일한 국가였다. 실제로 소련 붕괴 이후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의료를 유료서비스로 바꾸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러시아인이 속출하였다. 나중에 상황이 좀 안정되면서 오늘날의 러시아도 무상의료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별도의 세금을 추가로 납입하며 약제비는 개인 부담이다. 소련 시절의 무상의료 제도는 별도의 세금 없이 의료 및 약제비까지 모두 무료였다.

취지는 좋았으나 실패로 끝나 버린 소련에 대한 기억은 아직까지도 러시아인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65%의 러시아인이 "소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불행이다."라는 질문에 긍정하고 있고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같은 소련 구성국들, 심지어 반러감정이 있는 우크라이나에서조차도 러시아는 몰라도 소련에는 상당한 향수를 가진 인구가 많다는 걸 보면 러시아와 옛 소련 구성국들 사이에서 소련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11] 정치적 자유도 생각보다는 어느 정도 있어서 이오시프 스탈린의 집권기를 제외하고는 당과 정부에 대한 비판도 어느 정도는 허용되었다. 칼 마르크스나 여타 초창기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노동가치에 대해서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지 못하는 인민, 노동자들이 그나마 제대로 살 수 있는 국가와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공산주의 이론을 주장했던 것이지, 북한처럼 한 마리 돼지만을 하늘같이 떠받드느라 정작 나머지 인민들은 죄다 죽어나가는 체제를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2. 명칭[편집]

언어별 명칭

러시아어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CCCP)[12]

그리스어

Ένωση Σοβιετικών Σοσιαλιστικών Δημοκρατιών (Ε.Σ.Σ.Δ.)

네덜란드어

Unie van Socialistische Sovjetrepublieken (Sovjet-Unie)

독일어

Union der Sozialistischen Sowjetrepubliken (SU, Sowjetunion)

라트비아어

Padomju Sociālistisko Republiku Savienība (PSRS, Padomju Savienība)

리투아니아어

Tarybų Socialistinių Respublikų Sąjunga (TSRS)[13]

몰도바어

Униуня Републичилор советиче Сочиалисте (УРСС, Униуня Совиетикэ)[14]

몽골어

Зөвлөлт Социалист Бүгд Найрамдах Холбоот Улс (Зөвлөлт Холбоот Улс)

문화어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련맹 (쏘련)

베트남어

Liên bang 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Xô viết (Liên Xô)[15]

벨라루스어

Саюз Савецкіх Сацыялістычных Рэспублік(СССР, Савецкі Саюз)

스웨덴어

Socialistiska rådsrepublikernas Union (Sovjet, Sovjetunionen)

스페인어

Unión de Repúblicas Socialistas Soviéticas (URSS, Unión Soviética)

아랍어

(الاتحاد السوفييتى) اتحاد الجمهوريات الاشتراكية السوڤيتيه

아르메니아어

Խորհրդային Սոցիալիստական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ների Միություն (ԽՍՀՄ, Խորհրդային Միություն(Սովետական Միություն).)

아제르바이잔어

Sovet Sosialist Respublikaları İttifaqı (SSRİ, Sovet İttifaqı)[16]

에스토니아어

Nõukogude Sotsialistlike Vabariikide Liit (NSVL, Nõukogude Liit)

영어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USSR)[17]

우즈베크어

Sovet Sotsialistik Respublikalari Ittifoqi (SSRI, Sovet Ittifoqi)[18]

우크라이나어

Союз Радянських Соціалістичних Республік (CPCP, Радянський Союз)

이탈리아어

Unione delle Repubbliche Socialiste Sovietiche (URSS, Unione Sovietica)

일본어

ソビエト社会主義共和国連邦 (ソ連)

조지아어

საბჭოთა სოციალისტური რესპუბლიკების კავშირი (სსრკ, საბჭოთა კავშირი)

중국어

苏维埃社会主义共和国联盟 (苏联)[19]

카자흐어

Кеңестік Социалистік Республикалар Одағы (КСРО, Кеңес Одағы(Советтер Одағы).)

키르기즈어

Советтик Социалисттик Республикалар Союзу (ССРС, Советтер Союзу)

타지크어

Иттиҳоди Ҷумҳуриҳои Шӯравии Сосиалистӣ (ИҶШС, Иттиҳоди Шӯравӣ)

터키어

Sovyet Sosyalist Cumhuriyetler Birliği (SSCB, Sovyetler Birliği)

투르크멘어

Sowet Sotsialistik Respublikalary Soýuzy (SSRS, Sowet Soýuzy)[20]

포르투갈어

União das Repúblicas Socialistas Soviéticas (URSS,União Soviética)

폴란드어

Związek Socjalistycznych Republik Radzieckich (ZSRR, Związek Radziecki)

프랑스어

L'Union des Républiques Socialistes Soviétiques (URSS)

핀란드어

Sosialististen neuvostotasavaltojen liitto (SNTL/NL, Neuvostoliitto)

한국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소련)[21]

힌두어

सोवियत समाजवादी गणतंत्रों का संघ (सोवियत संघ)

에스페란토

Unio de Sovetaj Socialismaj Respublikoj (USSR, Sovetio(소비에트국), Sovetunio(소비에트 연방))


소련은 그 나라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고유명사'(이를테면 주요 민족 또는 땅 이름)가 국가명에 포함되지 않은 얼마 안 되는 나라였다. 러시아어로 쓰면 'Советский Союз (싸볘츠키 싸유스)'가 되고 영어로 쓰면 'Soviet Union'이 된다. 가끔 무의식중에 '소련 연방'이라고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럼 소비에트 연방 연방이 된다. 다만, 종종 이 나라를 '소연방'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소(비에트)연방의 줄임말이므로 맞는 표현이다.[22]

한자 표기의 '소련(蘇聯)'에서, 蘇는 '소비에트'를 음차한 '소유애(蘇維埃)'의 약칭이다. 옛 신문 등을 볼 때 정치면 등에 그냥 '蘇' 만 써있어도 그냥 소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 蘇, 美國에 大獅子吼! 등. 지금은 '구(舊) 소련'이라고 하기도 한다. 舊에는 관형사로 '지금은 없는 것' 이라는 뜻도 있다. 故 소련 다만 서구권에서는 경우에 따라 소련을 그냥 'Russia'로 통칭하기도 했는데, 심지어 소련 스스로도 군가 가사에서 간혹 자국을 '러시아'라고 일컫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관련 사례로 소련 군가인 전설적인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수병들의 긍지이다!', 수병은 우리의 가족이다의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고향 러시아다.', 슬라브 여인의 작별(1984년 라자레프 작사 버전)의 '러시아가 우리를 부르고 행군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등이 있다.

서적이나 언론 등을 가리지 않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라고, 연방과 공화국의 단어 순서를 바꿔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명칭이니 쓰지 않도록 주의하자. 헷갈리지 않으려면 이렇게 이해하면 쉽다. 소련은 '(무슨무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들이 뭉친 나라이므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들의) 연방'인 것이다. 즉, 연방제란 자치권을 가진 각 단위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국가인데, 소련의 경우 이 각각의 단위들이 주(州)나 도(道)가 아니라 '공화국'이었다는 것. 따라서, 공화국의 연방체이므로 공화국 연방이다. 무엇보다도 소련의 구성국 중 하나였던 러시아의 정식 명칭이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었음을 기억하면 착각할 일은 없을 것이다.

3. 역사[편집]

테트리스로 보는 러시아의 역사.[23] 가사

슈퍼 마리오 게임에 비유하여 간략화한 소련의 역사.[24]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이후, 10월 혁명을 계기로 블라디미르 레닌을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사회주의 세력이 급속도로 팽창할 것을 우려한 열강들이 잔존한 황제파, 즉 백군을 지원하며 적백내전이 발발한다. 초반에는 일부 중심도시를 제외한 영토 전역을 상실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결국 볼셰비키가 승리를 거두면서 1922년 12월에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Р.С.Ф.С.Р)이 탄생한다.

자본주의가 사회 체제이지 이념은 아닌 것과 달리, 러시아 혁명 당시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는 이념일 뿐 사회 체제로 구체화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세계 최초로 등장한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의 등장과 그 운영을 두고 말이 많았다. 독일사회민주주의자 카를 카우츠키(Karl Kautsky)는 '이건 카를 마르크스 선생이 생각한 혁명이 아니다.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한 채 진행한 혁명(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빠진 반쪽짜리 혁명)은 결국 비극적인 결말(전체주의독재정권)을 낳을 것이다'라며 강하게 디스를 했고, 이에 소련의 통치자 블라디미르 레닌과 그의 부하이자 이론가였던 레프 트로츠키는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이 샌님아!'라며 카우츠키의 지적을 강하게 쏘아부쳤다. 마르크스는 사적 유물론[25]의 입장에 서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혁명은 단계적인 절차(민주적 절차)를 통해 점차 나아가는 것이 핵심이었지만, 소련의 권력자들은 빠른 사회 변혁과 권력 획득을 위해서는 민주적 절차를 어느정도 무시하고 테러까지도 병행해 나갈 수 있다고 해석했다. 소련의 권력자들이 남긴 선례는 이후 사회주의 국가의 집권층들(마오쩌둥, 김일성, 발터 울브리히트 등)이 중앙집중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적인 '민주집중제'를 주장하는 핵심 근거가 되었고, 결국 사회주의권의 비극이 되었다.

처음부터 소련이 강력한 공업 국가였던 것은 아니었다. 1928년까지만 해도 소련의 공업 생산량은 미국의 8분의 1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고 제정 러시아의 산업 혁명도 19세기 말~20세기에 들어서야 시작될 정도로 늦었고 소련도 서구에서 봤을 땐 가난한 농업 국가에 불과했다. 처음으로 소련의 서기장이 되었던 레닌은 소련을 공업국가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오랜 내전으로 인해 소련은 철강 생산량이 내전 이전에 5분의 1로 크게 축소된 상태였다. 레닌은 경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신경제정책을 펼쳐 소규모의 사기업, 상업을 인정하는 등 시장 경제에 일부를 도입하였다.

레닌의 뒤를 이어 최고 지도자가 된 이오시프 스탈린은 공업 생산 목표를 제시하며 이제 막 발전하고 있는 농업국가인 소련을 공업국가으로 바꾸기를 원하였다. 스탈린은 "우리는 서방에 비해 50년 뒤쳐져 있습니다. 이제 그 격차를 10년 내로 따라잡아야 합니다."라고 주장했으며 소련의 모든 산업과 경제 활동을 국가에서 통제하고 관리하도록 하였는데, 결과적으로 단기간에 서구권을 위협할 만큼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내긴 했다. 대공황으로 서방이 무너져갈때 소련은 대공황을 무시하고 성장하였으며 1930년대 중반~후반에는 유럽 제 1의 공업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으나 그 이면에는 혹독한 인권 탄압과 눈물어린 희생이 감추어져 있었다. 나라 자체는 부강해졌지만 스탈린 시대 소련 인민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스탈린은 초고속 공업화를 위하여 농업을 모조리 집단농장화하고 농민들을 쥐어짰으며 중공업과 달리 경공업은 발달이 미미하여 생필품도 모자란 편이었고, 스탈린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시베리아나 서부 러시아에 있는 굴라그에 강제로 끌고 갔다. 공업화와 함께 정치적으로는 대숙청을 감행하여 반대세력과 죄없는 인민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그야말로 철권독재를 했다. 이 대숙청을 계기로 일국사회주의를 주장하던 스탈린에게는 강력한 정적이었던 트로츠키(세계혁명주의 주장자)는 실권하여 멕시코로 도망을 갔으나, 라몬 메르카데르라는 자객에 의해 암살당했다. 물론 스탈린은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죽었고, 후임자인 흐루쇼프가 트로츠키 암살자인 라몬에게 소비에트연방영웅 훈장을 수여했다. 흥흥 무슨 냄새가 나네. 이 냄새?

어쨋든 서구권의 열강들이 세계 대공황으로 휘청거리는 사이 소련과 나치 독일은 나란히 약진했고, 스탈린은 초기에는 반공을 외치는 독일에 맞서 서유럽 국가들과의 안보동맹을 추구했으나 일이 잘 안 풀리자[26] 되려 히틀러와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한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초반에는 나치 독일과 폴란드를 양분하고 핀란드를 침공하여 영토의 일부를 할양받는 등 잘 나가다가 1941년 독일에 의하여 크게 뒤통수를 맞는다. 소련군은 대숙청으로 잉여가 된 군 지휘 체계로 인해 초반에 크게 밀렸으나, 북부의 레닌그라드, 중부의 모스크바, 남부의 스탈린그라드 등 주요 도시들을 사수하는 데 성공하면서 전황은 반전되고, 결국 베를린을 함락시키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2700만에 달하는 인민들이 희생되었긴 하지만. 이 전쟁을 러시아에서는 대조국전쟁이라고 하는데, 약 5년간 전쟁하느라 공업과 농업의 기반이 전부 날아가버려서 재건하는 데 또 인민이 갈려야 했다(...). 무슨 믹서기도 아니고

하지만 승리의 열매는 달았다. 소련의 영토는 러시아 제국의 그 시절에서 엄청나게 축소되어 있었고 2차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공산국가는 전세계에 소련과 몽골 인민 공화국, 그리고 얼마 후에 소련에 편입될 투바 인민 공화국이 끝이었으나, 2차 대전의 승리로 그 잃었던 영토를 모조리 되찾음은 물론 동독을 포함한 동유럽을 전부 집어삼켜 그 세력과 영향력은 크게 확장되었으며, 아시아에서도 북한과 중국, 베트남 등에서 잭팟이 터져 세력을 크게 넓혔다. 한편으로 미국의 턱 밑인 쿠바에도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켜 공산권으로 갈아타고 두고두고 미국의 골치를 아프게 하며, 쿠바뿐만 아니라 먼로 독트린 이후 쭈욱 미국의 앞마당 취급 받았던 중남미에서 대규모 좌익 운동, 좌파 정치 세력을 지원하여 자본진영의 총본산 턱 밑에 공산주의의 칼을 들이대는 성과를 거둔다. 그 어마어마한 공업 생산력과 군사력에 힘입어 소련은 마침내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초강대국이 되었고, 공산진영의 대표국가로서 약 50년 동안 오대양 육대주 모든 곳에서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력과 보이지 않는 대결을 반복하였다. 통칭 냉전이라 불리는 시기 동안 한반도베트남, 앙골라,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온갖 지역 국가들이 이념 대립의 대리전장이 되었고, 미국이 주도하는 NATO와 소련을 위시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서로 확실하게 개발살을 내버리려고 양 진영의 주요 도시에 항상 ICBM을 겨누고 있었다.

자본주의 진영에 속했던 국가들에게 강대한 군사력과 매혹적인 이념으로 무장한 소련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계획경제에 내재된 효율성 부진으로 인해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였으며 전면적 대립보다는 데탕트, 공존 경쟁이 추구되었다.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 서기장이 된 사람은 게오르기 말렌코프였으나 그는 권력투쟁에서 패배하여 6개월만에 사임하였고 니키타 흐루쇼프가 소련의 서기장이 되었다. 그는 스탈린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신격화를 중단하고 잔인한 독재자로 까내렸으며 또 스탈린 당시의 억압적인 사회의 숨통을 트게 하고 권력투쟁에서 지면 처형이나 다름없던 스탈린 체제의 정치를 크게 순화시켰다. 수용소의 인구도 스탈린 때 1300만명에서 1956년에는 500만명까지 줄어들었다. 이러한 스탈린 격하 운동은 서방과 소련 내부는 물론이고 공산권에도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었다. 이에 마오쩌둥은 흐루쇼프를 수정주의자라 비난하였고 결국 이 두 국가는 국경분쟁까지 벌어지는 등 사이가 급격하게 멀어졌다. 동유럽에서도 이에 영향을 받아 폴란드와 헝가리 등에서 반소시위가 일어났고 소련은 이를 진압하였다. 스탈린 때까지 소련은 초강대국으로 등극했음에도 정작 인민의 삶의 질은 낮은 수준이었지만 흐루쇼프 시대에 들어서 삶의 질도 상당히 나아졌다. 생활 수준도 올랐고 미국의 잡지를 비롯해 일부 영화, 책, 음악, 예술의 자유 (그러나 종교만큼은 엄청나게 탄압하였다.) 등이 허용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계속 발전하고 있었다. 심지어 당에 대한 비판도 어느정도 허용되었고 서방과의 교류도 늘어났다. 다만 미국과의 경쟁 자체는 이 시대에도 계속 되었다. 특히 우주 분야에 있어서 흐루쇼프 때 소련은 스푸트니크를 날려 미국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흐루쇼프는 결국 농업정책에서 큰 실패를 해야했고 재래식 전력을 감축하려다가 군부의 반발에 부딪혔으며 끝내 권력 기반이 약해져 실각되어버렸다. 흐루쇼프의 뒤를 이어 서기장이 된 양반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참고로 그가 통치했을 때에 소련은 서방에서 회색의 시대, 또는 침체의 시대(Эпоха Застоя, Era of Stagnation)로 불렸다. 이는 공산주의의 한계와 관료주의의 체제로 인해 천천히 무너져가고 경제 성장이 둔화된 모습과 떨어져가는 노동생산성, 그리고 별다른 개혁도 없었고, 개혁을 몇 번 하더라도 별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인민들의 생활수준은 상당히 높아져 사람들의 삶은 편안해졌고 특별히 피를 부르는 사건이나 숙청도 거의 없었다. 또 미국과의 무리한 군비 경쟁으로 인해 국방비가 GNP 대비 12%나 될 정도로 늘어나고 비대칭 전력의 규모에서 미국을 능가하게 되었다. 다만 침체의 시대라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때까지 소련은 공산권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었고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선언 후 동유럽에 개입하여 프라하의 봄이라던가 폴란드의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해버렸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이란 팔라비 왕조가 붕괴하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인도-아라비아해의 주도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미국은 본격적으로 대소 봉쇄를 시작하였다.

최초로 시도된 것은 식량 봉쇄였다. 소련의 농업은 스탈린의 집단 농장화로 박살난 이래로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의 대대적인 농지 개간과 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식량자급을 하지 못 할 정도로 생산성이 떨어졌으며, 이는 소련의 농·축산업 체계의 문제점을 나타내는 징표였다. 러시아 제국 시대까지만 해도 중유럽을 먹여살렸던 과거[27]와는 정반대로 소련은 미국에서만 매해 2500만 톤이 넘는 곡물을 수입해야만 했으며, 이 막대한 수입량을 다른 곳에서 대체할 수 없으리라 판단한 카터 행정부는 소련에 대한 곡물 수출을 중단했다. 그러나 수출 중단으로 인해 소련으로 흘러가던 막대한 곡물들이 시장에 풀리자 식량 가격이 대폭락하여 미국의 농가는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었으며, 일시적인 식량 위기를 벗어난 소련은 폭락한 국제 곡물 가격을 이용해 다른 나라를 통해서 예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28]

또다른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반군에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 등의 각종 무기를 지원했다. 교외를 장악한 반군이 소련 손아귀의 도시들과 거점들을 포위한 상황에서 소련군이 교통하기 위해서는 항공편을 사용하여야 했는데, 미국의 물밑지원으로 상당한 무장력을 갖춘 반군이 게릴라전으로 헬기 전력에 대항하자 소련은 빠져나갈 방법도 찾지 못하고 그저 돈만 쏟아부을 수 밖에 없는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전면적인 경제 봉쇄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막대한 재정 출혈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성공함으로서 원자재 수출로 간신히 명줄을 연장하던 미약하디 미약한 소련 경제를 붕괴시키는 단초를 만들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석유값이 일정 수준은 되었기 때문에 버틸 수는 있었다.

브레즈네프의 초장기 집권은 그의 사후 권력을 이어받을만한 실력자들이 함께 폭삭 늙어버렸으므로 이후 유리 안드로포프콘스탄틴 체르넨코가 1년씩 해먹고 바로 죽는 혼란기가 찾아와서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그후 젊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등극하여 여러 문제를 보고 1985년부터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을 시행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해 하반기에 사우디와 미국-영국의 치킨게임으로 1986년 석유값이 폭락하여 세수가 크게 줄어버린데다가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가 터지면서 결국 소련의 경제는 회생 불가능한 수준까지 가버렸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글라스노스트는 소련 체제 하의 온갖 비리와 범죄를 드러내어 소련 공산당과 소련 체제의 정당성에 흠집을 냈다. 한번 시장의 고삐가 풀리자 인플레이션을 막아낼 방법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고르바초프의 혁신 정책은 원래의 의도는 거의 이루지 못한 채 소련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붕괴를 초래했고, 억눌려 있던 민족주의가 발흥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발트 3국 등지에서 처음으로 "독립 만세!!" 를 외치며 소비에트 연방에서의 탈퇴와 민족국가로써의 자주독립,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의 환원 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고르바초프는 1991년 소련 국민투표를 통해 연방 체제만은 유지하려 하였고, 실제로 투표에 참여한 9개 공화국에서 77.8%의 지지를 얻었지만, 몇 달 뒤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보리스 옐친이 이를 진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입지가 더욱 커지자 소련의 붕괴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쿠데타는 민중의 저지로 인해 실패로 끝났으나, 1991년에 이미 고르바초프는 권력을 상실한 상태였고 쿠데타 진압으로 정치적 스타가 된 보리스 옐친은 이미 진작에 소련을 탈퇴한 공화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조지아, 몰도바, 아르메니아)을 제외하고 자신을 포함한 소련 소속 9개 공화국 지도자들과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하기로 밀약해 모두 소련을 탈퇴하는 바람에 소련은 가입국 하나도 없는 빈사 직전 상태였다. 고르바초프가 결국 소련 대통령직을 사임함으로써 소련은 공중분해되었다.

소련이 가진 모든 권리와 의무는 러시아 연방이 계승하였으며, 소련의 공화국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모조리 독립국가가 되어버렸다. 이후의 상황은 러시아 참조. 하지만 소련은 심슨에선 다시 부활했다. 베를린 장벽, 레닌과 함께

소련은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큰 국가였다. 소련이 성립할 때 기존 러시아 제국의 영토에서 폴란드와 핀란드가 뚝 떨어져 나갔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서쪽 지역도 폴란드에게로 넘어가버렸으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전하면서 영토의 상당수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소련이 보유한 영토는 몽골 제국이 보유했던 영토와 맞먹을 정도의 크고 아름다운 광대한 크기였다. 지금도 독립국가연합 소속 국가들은 경제적 가치가 꽤 높은 편.

그러나 소련 붕괴 전후로 불거진 민족 갈등과 소련 시절의 행정구역 변경과 민족이주의 영향으로 인해 소속되었던 공화국들 간 영토 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이와 관련된 전쟁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소련에서는 원래 러시아 주민들이 살던 곳을 행정 문제 등으로 인하여 다른 공화국의 영토로 만들거나 각 공화국의 경계 설정에 대해 민족적 구분 같은 건 개의치 않고 인구에 맞추어서 설정하거나 (스탈린 시절에는)여러 민족들을 타 지역으로 강제이주시켰으며[29] 이후로도 1960년대까지 러시아 주민들을 지역개발 등의 이유로 민족갈등을 고려하지 않고 타 공화국으로 이주시키기도 했기 때문이다.[30] 물론 소련 입장에서는 설마 우리가 망하겠어?라는 생각을 했고 그건 서방 세계도 마찬가지였다지만 결국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당시 소련은 초강대국이라 외부의 위협은 미국 밖에 없고 자원도 많으며 내부 통제도 잘 이뤄지고 있는데다가 경제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같은 서방진영 선진국들과 비교해서이고, 경제가 안 좋았다던 1980년대 중후반 기준으로 봐도 중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 자이르, 이집트 등 수많은 개도국들보다 1인당 GDP든 생활수준이든 복지수준이든간에 훨씬 나았던것이 사실이었는데 누가 망한다고 생각했을까?

4. 상징[편집]

소련/상징 문서를 참고할 것.

5. 국토와 자원[편집]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국가였다. 현재의 러시아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국가지만, 소련은 그 러시아와 가장 큰 내륙국인 카자흐스탄을 포함해 총 15개국이 합쳐진 어마어마한 영토를 자랑했다. 지구 육지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하고 그 크기는 북아메리카에 비교될 정도였다. 물론 그런 거대한 영토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 쪽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매우 적었으며 모스크바를 비롯한 우랄 산맥의 서쪽이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물론, 우랄 산맥 동쪽에도 경제가 발달하거나 공업지대의 도시(이르쿠츠크, 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등)도 있다. 그 거대한 국토 중에서 경작지는 11%에 불과했으며[31] 41%는 타이가 지대였고 16%는 목장등, 나머지는 툰드라와 동토, 산악 지대도 있었고 건조한 지역도 존재했었다.

거대한 영토 덕분에 자원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준에 속했다. 식량을 제외하면 자원은 자급자족이 가능할 수준이었고, 전략무기를 위한 자원도 엄청나게 생산되었다. 시베리아 지역은 비록 춥고 개발이 안 되어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역에 속했으나 석유, 철, 망간, 천연가스, 금, 아연, 니켈 등 다양한 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었다. 사실 소련의 경제 역시 현재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자원에 상당히 의존한 편이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석유 덕을 엄청나게 많이 본 편이었고 이후 저유가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소련의 최고봉은 현 타지키스탄파미르 고원에 위치한 공산주의 봉(소련 해체 이후 타지키스탄에서 이스모일 소모니 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으로 높이는 무려 7,495m로 세계에서 50번째로 높은 높이를 자랑한다. (50번째로 높다고 해서 크게 안 높아 보인다면 큰 오산이다. 7495m란 높이는 세계의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높이이며, 전 세계에 있는 산 중 50번째로 높다고 생각해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이 산은 소련 내외의 훌륭한 산악인에게 수여되는 눈표범 상의 수상 조건 중 하나인 산이다.

6. 정치[편집]

소련/정치 문서를 참고할 것.

7. 행정구역 (구성국)[편집]


파일:attachment/소련/soviet_union_admin_1989.jpg
소련 붕괴 직전인 1989년 당시 행정구역일람. 굵은 선 안쪽이 소련 당시의 영역이며, 분홍색 지역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그 이외의 색의 지역은 현재 독립된 국가들로 귀속되었다. 한반도가 없는 것 같은 건 착각인가? 함경도 해안지역만 나타나있다. 범례 뒤에 공간 있어요

소련을 이루는 구성체 중에는 '공화국' 이라는 개념도 포함되어 있었다.[32] 각 공화국들은 별도의 헌법, 의결기구, 그리고 각 공화국의 공산당이 있었으며, 이들의 의원들이 상위 기구인 소련 최고회의 혹은 소련 공산당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소련의 권력기구를 구성하는 대부분은 러시아인이었고, 헌법상으로 보장되는 소수민족의 권리는 소련 초기에는 안습일 정도로 유명무실한 수준이었다.

소련은 다음과 같은 구성체로 구성되어 있었다.

  •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에 속하는 지역

    • АССР(ASSR) -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약칭 자치공화국)

      소속 공화국

      자치공화국

      러시아

      고르노-알타이[38], 다게스탄, 마리, 모르도비아, 바시키르,
      부랴트, 북오세티아, 아디게야[39], 야쿠트, 우드무르트,
      추바시, 카라차이-체르케스[40], 카렐리야[41], 카바르디노-발카르, 코미,
      타타르, 투바, 하카스[42]

      그루지야

      아자르, 압하스

      아제르바이잔

      나히체반[43]

      우즈베크

      카라칼파크

      (소련 붕괴 당시 기준)
      헌법에 따라 (명목상의) 자치 권한을 부여받은 공화국들로, 러시아 연방 공화국같이 땅덩이가 워낙 크거나 캅카스 지역처럼 복잡한 민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화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소련 자체도 나라(독립국가)이고, 소련을 구성하는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들도 나라(속국)로 볼 수 있으며, 소련을 구성하는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에 속한 공화국들도 나라(속국의 속국)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소련이라는 국가는 '나라 안의 나라 안의 나라'(...)라는 기이한 형태로 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개념은 소련 붕괴 후에 SFSR과 SSR이 독립국으로 찢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소멸했는데, ASSR 개념은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 안에서 '자치공화국'이나 '자치구' 등의 개념으로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나라 안의 나라 안의 나라가 그냥 나라 안의 나라가 되었다 물론 공산당 1당 독재 시절에 마구잡이로 그어놓은 경계선 때문에 체첸이나 남오세티야, 나고르노-카라바흐 같이 결국 전쟁 등의 유혈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 АО(AO) - 자치주

      소속 공화국

      자치주

      러시아

      유대인 자치주

      그루지야

      남오세티야

      아제르바이잔

      나고르노-카라바흐

      타지크

      고르노-바다흐샨

      소련 붕괴 당시 기준이다. 소련 붕괴 직전에 러시아의 3개 자치주가 자치 공화국으로 승격되어 러시아에는 유대인 자치주 하나만 남았다.

8. 경제[편집]

소련의 경제적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순수계획경제 (초·중기) → 시장경제의 부분적 도입 (후기)
2) 중화학공업, 군수산업, 우주산업 우선 투자 원칙


소련의 경제는 197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보다 성장속도가 빨랐지만[44], 코시긴 개혁 실패 이후 서서히 공산주의 국가의 한계를 보이면서 1970년대 중반부터는 정체되기 시작했고 개혁 개방으로 혼란스러웠던 1988년부터는 초고속성장 중이던 일본에 명목 GDP 2위를 넘겨주었다.

내전 직후 소련의 산업시설은 거의 전무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블라디미르 레닌이 신경제 정책을 도입했고 농업과 상업은 활성화 되었지만 공업이 발전하지 않는이상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스탈린은 집권 이후에 테러,폭력에 기반한 무자비한 산업화를 추진했으며 많은 희생을 치루었지만 1차,2차 5개년 경제개발은 매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소련은 2위 경제/공업대국이 되었다. 비록 나치 독일의 침공 이후로 다시 초토화되었지만 1950년대 중반에 전후복구를 끝냈다.

스탈린 이후, 특히 흐루쇼프~체르넨코 시기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중진국~ 선진국 수준으로 꽤 살만한 국가에는 속했다. 특히 1950~60년대의 경제성장률은 당시 기준으로 못해도 미국의 2배 이상 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미국인들이 진지하게 소련 위협론을 논했다. 흐루쇼프의 평화 공존이 제시된 것도 체제경쟁에서 적어도 밀리지는 않겠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비해 이러저러한 문제점은 많이 제시되었지만 전반적인 체급은 튼튼했다. 비록 경공업이 빈약해 생필품 부족이 빈번했고 식량 역시 미국, 아르헨티나[45] 등지로부터 막대한 양을 수입했지만[46] 중공업/화학공업이 튼실하여 공업 생산량은 세계 5분의 1이나 되었다. 의료와 교육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서비스는 국가가 무상으로 지원했으며 명목상으로는 부의 분배도 이루어져 생활수준도 전체적으로 높은 편에 속했다. 실업률은 약 1%~2%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며 주요 수입 및 산업은 자원수출, 철강, 항공우주, 화학, 중공업, 전자 등이었다고 한다.

CIA자료를 포함해 몇몇 사료에서는 1인당 GNP를 1990년 기준으로 9,300달러로 당시 기준에서 중진국과 선진국의 사이 정도의 소득은 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3억에 세계 3위에 달하는 인구 덕에 국민총생산(GNP)은 87년까지 세계 2위(1985년 당시 국민총생산 2조 2천억 달러), 1988년에 일본이 추월해(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1991년까지 3위였다고 보기도 한다. 주요 수입 및 산업은 자원수출, 철강, 항공우주, 화학, 중공업, 전자 등이었다고 한다.

다만 이 통계에는 함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련의 공식 환율이나 가격 등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특히 CIA의 방법론은 냉전에 따른 정보 제약 등으로 말미암아 GDP 조사 등과 관해 소련의 공식 가격이나 환율에 기초하였는데 공산권은 정치적 목적에서 통계 조작이 심각했다. 이는 GDP를 포함해 실업률, 지니계수를 위시한 소득분배지표에도 적용된다. 관련문서 1980년대만 하더라도 당시 소련은 공식적으로 루블 환율을 0.6 대 1 수준에서 유지했었고 이는 당시의 암시장 환율에 비하면 비정상적으로 고평가된 수치였다. 1980년대 후반 루블/달러의 암시장 환율은 4~5 대 1 수준이었고 이는 10배가 좀 안 되는 수준이었다. 관련문서 이 외에도 상품가격의 경우 공식가격에 비해 2~3배는 비쌌다. 물론 교육이나 의료는 무료로 서비스되었기 때문에 돈이 안들었고, 기본적인 생필품의 경우에는 공식환율대로 수입해놓았던데다가 주택임대료같은 부동산 비용이나 공공요금은 왕창 쌌기 때문에 암시장 환율만으로 구매력을 평가하기는 무리가 크지만, 어쨌든 그와 별개로 지하경제 규모가 엄청나게 컸던것은 사실이었다.

암시장이나 농민시장에서 가볍게는 다차(별장)에서 생산한 작물들을 교환하거나 판매하는건 물론이고, 물론 직원들이 몰래 몇개씩 빼돌린 제품도 거래가 이루어졌으며 공산당 당원이거나 국영기업에서 주요직책을 맡을 정도가 되면 인맥이나 뇌물 등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서방에서 비디오테이프나 음반같은걸 수입한 다음에 웃돈에 팔아서 짭잘하게 용돈벌이도 하고 그랬다고 한다. 물론 암시장에서 파는 수입품의 가격이 암시장 환율에다가 추가적인 이윤이 붙기때문에 물건값은 왕창 비쌌다. 여하튼 그래서 암시장 환율만으로 볼때 구매력은 낮아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이나 서구권에 비해서는 낮기는 했지만 그래도 국가에서 보조하는 금액이 결코 적지는 않았고, 저축률도 나름대로 높은축에 든것을 보았을때 암시장 환율의 그것보다 컸다고 할수있다. 공식환율보다는 낮다는것은 여전하지만(...) 여하튼 그 구매력을 충족시킬만큼의 고품질의 소비재가 제대로 공급안되었기 때문에 그 구매력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문제점이 너무도 컸다. 공산주의 국가라는 특성을 활용하여 2억을 넘는 거대한 중산계층을 만들어내기는 했어도[47] 경공업의 발달이 제대로 이루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거대한 중산계층의 구매력을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UN의 통계에 따르면 1인당 gdp는 83년에 3650달러로 가장 높았고(당시 시장가격을 반영한 수치다.) 관련자료 그 이후로는 대체로 감소 추세였다. 이에 기초해 GDP를 따지면 1978년부터 일본보다 그 수치가 낮아졌다. 1980년에는 서독에도 일시적으로 역전당했고, 1986년에 다시 역전당했다. 미국에 비교하자면 1970년 기준으로 약 절반 수준인 GDP, GNP를 자랑했으나 80년대에는 1/3으로 쪼그라들었다.

경제성장률의 경우 스탈린, 흐루쇼프 시절에는 미국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계획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경제가 침체되었다. 다만 1960년~1989년까지 소련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전 세계에서 평균 이상이었고 1980년대에도 미미하게나마 성장했을 것으로 추측되나, 1986년 이후에는 자료마다 다르지만 저유가로 말미암아 -2~2% 수준의 저성장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미국의 경제성장률도 낮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훨씬 높았다. 사실 소련 해체 이후의 경제상태가 워낙 개막장이라 묻히는 것이지 소련 말기의 경제 상황도 결코 좋은 것은 아니었다.

8.1. 과학기술 및 산업[편집]

소련은 국가가 계획경제에 의거해서 과학기술을 중점적으로 육성했기 때문에[48] 기초과학, 우주과학기술, 군사공학기술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항공우주 분야는 넘사벽이었다.[49] 세계 최초의 무인우주선, 유인우주선 모두 소련이 날린 것이었고 당장 화성, 금성, 수성에도 탐사선을 보내고 소련 붕괴 직전까지 우주왕복선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정도였다. 러시아도 소련의 과학기술 기반을 많이 이어받았지만 소련에 비하면 안습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의학, 에너지 물리학, 수학, 화학, 조선업, 군사 기술에 있어서 소련은 고급 인력이 다수 있었으며 중공업은 우랄 콤비나트등 막대한 군수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발전시켰다.[50] 특히 핵 물리학이나 화학, 천문학에 있어서 소련의 과학자들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니콜라이 세묘노프는 소련 성립 이후 러시아에서 최초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받기에 이른다. 소련 시절 노벨물리학상을 수상받은 경우가 총 네 번 있었으며 노벨 화학상은 전술한 경우 한 번이 있으며 소련 붕괴 이후에도 소련 시절 때 쌓은 실적을 바탕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두 차례 더 받은 바가 있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3만 명에 달하는 소련의 과학자들이 외부로 유출되어 현재 러시아의 기초과학 수준은 매우 침체된 상태다.

9. 군사[편집]

노동자 농민의 붉은 군대 (1918~1946)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군 (1946~1991)

자세한 내용은 소련군 문서를 참조.

10. 외교 및 안보[편집]

외교·안보적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제2세계(사회주의권 국가) 간 포괄적 협력관계 설정
2)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통해 서방에 맞서는 안보질서 확립


제2차 세계 대전 전후부터 소련 해체까지 미국과 양극체제를 구축하여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였으나, 미국을 압도할 능력을 갖춘 적은 없었고 단지 위협 정도에 그쳤을 뿐이다. 국제연합(UN)에서도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했으나, 타 상임이사국들(미국·프랑스·영국·중화민국)이 모두 서방세력이어서 반대권(Veto)을 행사하는 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했고 대부분의 시기를 서방세력과 신경전을 벌였다. 1971년중화인민공화국이 상임이사국이 된 이후로는 좀 나아졌다. 두산백과 , 네이버 지식백과

10.1. 남·북한과의 관계[편집]

대한(對韓) 수교관계는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연방이 승계하였다. 소련 존속 당시 수교관계 형성연도는 다음과 같다.

10.1.1. 북한과의 관계[편집]

북한은 1945년 당시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하고 소련의 공산화 계승과 나라를 세울 시조(始祖)의 우상숭배화를 위해 소련을 우호국으로 지정하였다. 북한 정부 수립 이후 김일성모스크바로 날아와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남한의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상국의 무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며 남침을 위한 재정과 무기 지원을 요청했는데, 이오시프 스탈린은 처음에는 미국과 충돌해서 좋을 게 없다고 보류하였지만 결국 김일성의 간곡한(...) 부탁(스탈린에게 48번이나 승인을 요청했다고 한다.)에 남침을 승인하여 북한6.25 전쟁에 대한 재정 및 무기 지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남한의 풍부한 농수산물과 북한의 풍부한 광산물을 소련 앞에 바치겠다며 남침의 의지를 굳건히 드러내었다. 니키타 흐루쇼프의 회고록에서도 이와 같은 대목이 나왔다. 전쟁 자체는 결국 휴전에 그쳤지만 여전히 북한과 소련과의 우호관계는 지속되었다.

국제사회에 있어서도 북한은 소련의 입장을 지지하였으며 미국에 적대하는 입장에서 있어서도 맞장구를 치는 입장을 보이는 등 소련을 우호적으로 지지하였으나 1956년 스탈린 격하 운동과 8월 종파사건으로 관계가 한동안 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동맹관계였고 문화대혁명과 북중 국경분쟁으로 1960년대 이후 중국과의 관계가 멀어져서 다시 소련과 우호관계가 된다. 특히 소련은 북한을 배려해 대한민국의 유엔가입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종종 엿을 먹여왔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 중국은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았으나 북한은 참가했으며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소련을 따라 기권했다. 북한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나간 자체가 북소 관계가 우호적이었단 증거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소련이 1988 서울 올림픽에 공식 참가하여 선수단을 서울특별시에 파견하겠다는 의사를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 통보하고, 소련 정부도 1988 서울 올림픽 기간 동안 대한민국 국적 항공기의 소련 영공 통과를 승인함에 따라 양국간의 관계는 적대지간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반면 북소관계는 본격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북한은 소련에 대한민국에서 열리고 미국이 참가하는 올림픽에 참가하지 말라고 간곡히 요청했지만 소련은 결국 서울에 선수단을 파견하여 1988 서울 올림픽에 미국과 한 자리에서 참가하게 되었다. 이 때는 한소, 한중 상호 간 수교를 위한 교섭이 열렸고 비공식적으로 프랑스일본을 통해 삼각무역도 했다.[51] 2연속 반쪽 대회를 극복한 건 덤.

그 결과 마침내 1990년 소련은 대한민국을 승인함과 동시에 양국 간의 국교가 수립되었고[52], 1년 후 소련의 해체로 러시아 연방이 출범하게 되면서 계속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90년 대한민국과 소련이 외교 관계를 맺게 되자 북한은 강력히 반발했는데, 당시 한소 수교에 대한 문건과 증언을 살펴보면 북한이 얼마나 소련에 배신감을 느꼈는지 잘 나와있다. 북한이 "이제 와서 두 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소련이야말로 조국 통일을 방해하는 배신자"라는 말까지 하고 소련은 이에 맞서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 세습 국가"라고 응수했을 정도로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 이 때문에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소련 시절에 비해 관계가 상당히 소원해졌다. 김정은 집권 이후로는 친중파 숙청 등으로 중국과 멀어지고 다시금 러시아와 관계가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일본, 서유럽 등 서방의 견제를 받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북한과의 협력을 나쁘지 않게 보는 눈치다. 하지만 일단 현재 러시아는 아시아보다는 유럽에서의 세력 확대에 좀 더 집중하고 있고, 북한이 파탄국가인 지금 소련 시절처럼 혈맹관계로 발전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중국처럼 소련 민간에서도 북한은 조소 대상일 뿐이었다. 일찍이 1960-80년대 소련인들은 북한의 선전물이나 번역서적들(김부자 찬양서적)을 유머모음집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으며 이와 관련해서 대표적인 러시아계 인물인 박노자안드레이 란코프[53]가 자신의 저서에서도 직접 증언한 바가 있을 정도였다. 또한 소련은 일본이나 스웨덴, 영국처럼 오랜 숙적도 아닌 남한에 대해서는 친미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나쁘게 인식된 적은 드물어서 남한과의 수교를 나쁘지 않게들 생각했던 눈치였다.[54]

10.1.2. 남한과의 관계[편집]

반대로 대한민국은 건국 직후부터 소련과 대립했고 6.25 전쟁으로 사실상 적대 관계로 돌아섰다. 소련은 북한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보아 대한민국을 국가승인하지 않았으며 대한민국이 1955년 UN에 처음 가입하려 했을 때도 소련은 UN 상임이사국 자격으로 이를 반대했다.

남한-소련 관계는 1970년대에 들어 조금씩 누그러졌는데 닉슨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국의 세계정책이 바뀌고, 구 소련과 중국을 포함한 강대국관계도 바뀌게 된다. 이에 따라 한국도 구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구 소련도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한국과 제한된 범위 내에서나마 관계를 개선하려는 징후를 보였다. 1971년 8월 김용식 외무장관은 국외에서 구 소련이 한국에 대하여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구 소련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도 1972년 5월 16일 비슷한 취지를 밝혔다. 무역법도 고쳐 구 소련을 포함한 비적성 공산국가와의 교역도 허용하였다.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외교선언을 통하여 구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에 대하여 문호를 개방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그들도 호혜적인 조처를 취하여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편 소련도 한국이 아시아집단안전기구의 회원이 될 수 있으며, 남북한의 국제회의 및 유엔동시가입 실현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하였다. 1973년부터는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한 사람들에게 소련 입국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1980년 소련에서 개최하였던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도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서 소련 규탄시위가 벌어지게 되면서 양국간의 적대관계는 계속되었다.

11. 사회[편집]

소련 해체 당시 면적 및 인구 (1991년)

면적

22,402,200km²

인구

293,047,571명

11.1. 민족[편집]


1991년 7월의 소련 인구는 2억 9,304만 7,571명으로, 당시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였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의 인구가 폭풍성장하여 3억을 넘어버렸기 때문에 2016년 현재는 옛 소련 구성국들의 인구를 모두 합해도 미국에 3위를 추월당해 4위권이다.

소련은 다민족국가로, 민족 수가 150개 이상에 달했었다. 1989년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이 소련 인구의 51.4%인 1억 4516만명이었으며, 그 다음이 우크라이나인(4419만명), 우즈베크인(1670만명), 벨라루스인(1004만명), 카자흐인(814만명) 순이었다. 별도의 자치지역조차 없었던 독일인과 유대인[55]도 각각 204만명, 138만명이나 되었다. 참고로 고려인은 약 50만명.

대략적으로 보면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을 포함한 동슬라브 민족이 70%를 차지했다. 12%는 튀르크계 민족, 기타 10%였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구소련에 해당하던 15개국 인구 총합은 2억 8,767만 4,254명 가량으로 오히려 줄었다. 소련 해체 이후 구소련 구성국이 모두 경제 파탄을 겪었던 탓이다.

12. 문화[편집]

소련/문화 문서를 참고할 것.

13. 소련 해체[편집]

소련 해체 항목 참고.

14. 대중매체에서의 취급[편집]

14.1. 영화[편집]

제2차 세계 대전, 그 중에서도 동부 전선을 다룬다면 반드시 등장한다. 안나오는게 이상하지 않나

개봉연도

제목

시대적 배경

1948년

베를린 함락 2부작

1940~45년 (독소전쟁 발발 전부터 나치 독일의 패망까지)

1965년

닥터 지바고

1912~17년 (러시아 혁명)

1970~72년

유럽의 해방 5부작

1940~46년 (독소전쟁 발발 전부터 종전 이후까지)

1990년

붉은 10월

1984년 (브래즈네프 치하)

1993년(2014년 재개봉)

스탈린그라드 : 최후의 전투

1941년 (독소전쟁 초기)

2001년

에너미 앳 더 게이트

1942년 (독소전쟁)

2002년

K-19

1961년 (냉전)

2008년

제독의 연인

1914~20년 (적백내전)

2010년

브레스트 요새

1941년 독소전쟁 초기

2013년

스탈린그라드

1942~45년 (독소전쟁)

2015년

차일드 44

1953년 (스탈린 치하)

2015년

세바스토폴 : 1941

1941~42년 (독소전쟁 초기)

2016년

판필로프의 28인

1941년 모스크바 공방전


-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할리우드 영화이면서도 소련군 측을 주인공삼아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다루었다. 그런데 실제 구 소련 출신 참전용사들이 해당 영화를 보고 "우리가 저런 꼴로 싸우지는 않았다!"고 역정을 냈다는 말이 있다(...).

14.2. 게임&애니메이션[편집]

FPS 역시 동부전선이 배경이라면 반드시 등장하며, 대표적인 등장하는 게임으로 레드 오케스트라콜 오브 듀티 시리즈가 있다.

  •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사의 게임 HOI시리즈에서는 배경이 배경인만큼 1936년부터 1944년까지 빠지지 않고 플레이어블 국가로 등장한다. 아무래도 국력이 국력이다보니 게임에서의 성능은 미국과 투탑급. 물 처럼 쏫아나는 인력으로 독일을 상대로 인해전술을 선사하는데 가히 충격과 공포 수준이다.

  • 심슨 가족 시즌 9의 영화 크림슨 타이드를 패러디한 에피소드에선 러시아 연방이 위장이었고 소련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성 바실리 성당에 낫과 망치 소련깃발이 걸리고 퍼레이드는 장갑차들로 가득차고 소련 보병들이 길을 행진한다.코트까지 다 입었는데 작중 계절이 여름인거 같은건 무시하자 또한 블라디미르 레닌이 좀비가 되어 관을 깨고 뛰쳐나온다(...). 나오자마자 하는 말이 "자본주의를 처부수자."(...)

  • 애니메이션 걸즈 & 판처에 등장하는 학교 중 하나이자, 현립 오아라이 여학원의 제 63회 전국 전차도 대회 준결승전 상대였던 프라우다 고교의 모티브가 되었다. 학교 이름 자체 부터 러시아의 일간지 프라우다에서 따온 명칭이고 학교의 엠블렘도 소련 국장의 패러디. 별이 가위로, 낫과 망치가 제도용 자로 바뀐게 포인트. 학원함도 키예프급 항공모함이고 보유/사용 전차들도 모두 소련제 전차들로 구성되어 있다.

  •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 AKIRA 에서 원작 만화 후반부에 네오도쿄에 개입하는 모습이 보여진 미국과 함께 세계의 질서를 양분하는 국가로 나온다. 설정상 일본 간토 지구 폭격 이후로 제3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과 전쟁을 벌인 것으로 보이고, 후반부에 네오도쿄의 통제권을 잃은 일본 정부가 교토로 이전함에 따라 홋카이도를 재빠르게 점거하며, 일본 국방군과 해상대치 중이라는 언급만 된다.

  •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시리즈에서는 아인슈타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히틀러를 지워버렸기 때문에 소련이 나치 독일의 포지션이 되고 미국, 유럽 등 자유 진영이 연합군이 되어 소련군에 대항을 한다.

  • 에로게 ToHeart2에서 언급이 드문드문 되는데, 작중 세계는 암만 봐도 근미래다.... 오버 테크놀로지의 옛날이면 말이 되겠지만.

  • 폴아웃 시리즈에서는 대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존재하여 있었다라는 것 외에는 언급된 게 없다.


당연하지만 반공정서가 팽배하던 시절 진영 , 그리고 라이벌이었던 중국의 대중매체에서는 쿠바, 북한과 함께 악역을 도맡다가, 냉전 체제의 종식 이후로는 그 자리를 나치 독일일본 제국, 북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역으로 이 시기 이후 독소전쟁에서의 활약이 재평가받아 나쁜 나치놈들과 일제놈들을 무찌르는 안티 히어로의 이미지도 생겼다.

14.3. 기타[편집]

오늘날 러시아를 소련이라고 부른다면 언제적 얘기냐며 아재라던지 시대에 뒤쳐졌다는 등 옛날 사람 취급을 받으며 웃음거리가 된다. 예시로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러시아 선수들을 언급할 때 쏘련 선수들이라고 하는 바람에 나머지 멤버들한테 마구 까인 바 있다.

다만 소련은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물씬 나기에 러시아를 적대적으로 묘사할 때는 의도적으로 소련놈들이란 식으로 쓰기도 한다. 실제 신냉전시대라며 한미일vs북중러 구도가 심화되고 있는 2017년 기사에 보면 다분히 의도적으로 '소련'으로 부르는 댓글들이 있는데, 러시아를 비하적이거나 적대적인 이미지로 묘사하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소련하면 그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빨갱이 이미지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제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보니 소련의 어감이 나쁘다.

15. 둘러보기[편집]


바르샤바 조약 (WP)

소련

폴란드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 알바니아는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프라하의 봄을 유혈 진압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의미로 1968년 9월 13일에 탈퇴.


[1] 연방을 구성하는 15개 공화국은 각각 자체 수도를 가졌지만, 구성국 중 유일하게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만이 소련과 같이 모스크바를 수도로 하고 있었다.[2] 레닌 시절[3] 스탈린~고르바초프[4] 고르바초프[5] 원래 소련의 국부인 블라디미르 레닌은 국가 주도의 공용어라는 개념을 반대했다. "강제적인 국어는 필요한가?" 라는 논문까지 썼을 정도. 그래서 소련에는 연방 차원에서 법으로 정한 국어가 없었고 법률적으로 따지면 러시아어는 각 민족간의 소통을 위한 언어의 지위 - 공용어 내지 교통어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현실은 그런 거 없고 닥치고 러시아어 그러다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에 연방 공용어로 지정했다.[6] 당연히 국가 특성상 국교는 없었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무신론을 장려하였다.[7] 소비에트(Совет)는 '회의'라는 뜻을 가진 러시아어 어휘다. 정확히는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의원들이 구성하는 회의를 말하는 것. 대표적인 용례로는 '국제연합 안보회의(Совет Безопасности ООН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학생회의(Совет студентов : 대학교학생회) 등이 있다. 위원회(комитет, 혹은 комиссия)와는 엄밀히 다르므로, 번역할 때 주의해야 한다.[8]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는 프랑스파리 코뮌이다. 짧은 기간이고 기존 정부를 대체한 것도 아니지만 소련 성립에 영향을 주었다.[9] 이후 일본에 밀려 3위로 떨어지긴 했었다, 1위는 그때나 지금이나 물론 미국. 다만 이때의 일본은 버블경제 시절이라 경제 규모가 크게 부풀러져 있었음을 감안해야 한다.[10] 의식주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생활, 여가 생활(장기 근로자의 경우에는 여름 별장도 주어졌다)과 같은 정신건강적 측면.[11] 다만 그와는 별개로 러시아에서 공산당이나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정당들은 득표율이 낮고 재집권에 성공하지도 못했다. 반소, 반러감정이 심한 폴란드에서도 옛 공산당이 사민주의 정당으로 전향한 뒤에 재집권에 성공한적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묘한 일.(부패스캔들로 2005년 이후로는 일개 중소정당으로 몰락했다) 푸틴이 1999년 러시아 총리에 재임할 때부터 체첸 반군을 쓸어내면서 강력한 이미지를 구축한데다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로는 미국에 맞서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옛 소련에 향수를 느끼는 유권자들의 표를 휩쓸어서 그렇다.[12] '싸유스 싸볘츠키흐 싸치알리스찌체스키흐 리스뿌블리크'라고 읽는다. 약자는 'СССР'인데 키릴 문자이기 때문에 '씨씨씨피'가 아니라 '에스에스에스에르'라고 읽는다. 보통 '에쎄쎄쎄르 줄여서 에테르'라고 발음한다. 일부 영어권 사람 중에서 드물게 씨씨씨피라고 읽는 사람도 있으며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로마자로 "CCCP"라 적어도 소련 항목으로 리다이렉트된다. 한편 러시아어 명칭을 로마자 그대로 옮긴 Svaz Sovětských Socialistických Republik의 약자인 SSSR도 가끔 쓰인다.[13] Tarybų Sąjunga(Sovietų Sąjunga) [14] 로마자로는 Uniunea Republicilor sovietice Socialiste, Uniunea Sovietică, URSS[15] 한자로 옮겨보면 聯邦共和社會主義소비에트(聯소), 즉 '연방공화사회주의소비에트(련소)'가 된다. 베트남어는 수식어가 피수식어 뒤에 오기 때문에 한국어 표현과는 어순이 다르다.[16] 키릴 문자로는 Совет Сосиалист Республикалары Иттифагы, Совет Иттифагы, ССРИ[17] 냉전시대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서방인들은 이걸 United States of Soviet Russia(소비에트 러시아 합중국)로 생각하기도 했다는 유머가 있다. 의외로 그럴듯한 단어 조합이라 오늘날에도 착각하는 사람이 가끔 나온다.[18] 키릴 문자로는 Совет Социалистик Республикалари Иттифоқи, Совет Иттифоқи, ССРИ[19] 간체자 기준. 정체자로는 蘇維埃社會主義共和國聯盟 (蘇聯)이 된다.[20] 키릴 문자로는 Совет Социалистик Республикалары Союзы, Совет Союзы, ССРС[21] 줄여서 소비에트 연방이라 부르며 이걸 한층 더 줄여서 소련이라 부른다. 두음법칙에 의해 바뀐 소리는 준말이 되어 맨 앞글자만 중간이나 뒤로 들어가면 원래 소리가 되살아난다. 그래서 '연방'이라는 단어가 '련(聯)'으로 줄게 되는 것이다. '연합'도 마찬가지. 자민련, 한총련 등의 약어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22]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2에서 유리에게 마인드 컨트롤 당한 연합군 일원이 "내 머리 속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 '소련 연방' 만세!"라고 하는데 아마도 제정신을 찾지 못해 무심코 외친 걸로 보인다.[23] 영국의 코미디그룹이 부른만큼 서방세계 시각으로 쓰였다. 고증이 잘못된 것이 있는데, 소련의 전차가 T-34가 아닌 나치 독일의 4호 전차다. 4호가 티거를 쳐바른다. [24] 등장인물은 순서대로 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 쳐맞는 아돌프 히틀러, 니키타 흐루쇼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미하일 고르바초프, 보리스 옐친이다. 마지막에 성 위에서 나오는 사람은 블라디미르 푸틴 바지사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25] 사적 유물론은 유물사관이라고 불리며, 사회의 발전단계가 '원시공동사회 → 고대노예사회 → 중세봉건사회 → 근대자본주의사회 → 공산주의사회' 순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 중간 단계를 어떻게 거치느냐?'가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중요한 논의점이 되었다. 카우츠키와 같은 온건파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나아가자는 입장인 반면에 레닌과 트로츠키 같은 급진파는 절차 따위는 적당히 무시하고 다음 단계로 가자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극심히 견해 대립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26] 동맹 대상이였던 영국과 프랑스가 소련을 못 믿는데다 폴란드의 눈치도 봐야 해서 협상에 미적지근했다.[27]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식량 수출국이었던 이유는 생산량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가 수입하기 위해 식량을 팔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막대한 식량을 수출할 때도 여전히 러시아의 평민들은 굶주렸다. 식량 수입국이었던 2000년대 초반의 중국이 한국에 쌀을 판매하려 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 가격 차이에 의한 교역이었지 미국처럼 잉여 생산력이 넘쳐나 할 수 있었던 교역이 아니었다.[28] 유가 하락을 대소 봉쇄의 일환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카터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유가 안정화 대책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29] 고려인의 경우가 대표적이고, 이외에도 체첸인이나 크림 타타르, 불가 독일인도 타 지역으로 강제이주 당했다.[30] 물론 이것도 인구가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1960년대 후반에 러시아 출산율이 1.9-2.0명 대 수준으로 떨어져서(물론 소련 전체의 출산율은 중앙아시아와 캅카스 일대 공화국의 출산율이 높은 덕택에 2명대 중반정도의 수준을 유지했다.) 시베리아 개발도 하기 힘든 수준이 되자 이주를 권유하는 정책을 중단했다. 그렇지만 타 공화국으로 이주한 이들이 곧바로 러시아로 돌아온건 아니라서 여전히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카자흐스탄,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의 러시아인 비율은 상당한 편이고. 소련 붕괴 이후에 상당수 러시아계 주민들이 러시아로 복귀했음에도 여전히 남은 러시아인들이 많은 편이다.[31] 그 11%밖에 안된다는 경작지 넓이도 환산해보면 콩고 민주 공화국알제리 넓이에 필적한다. 흠좀무.[32] 동유럽 국가 중 최상위 행정구역을 '공화국'으로 지칭한 나라로는 소련,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가 있다. 지금은 그 공화국이 다 독립 국가가 됐다. 저런 최상위 행정구역 자체가 사실상 국가였던 단위를 더 큰 연방 국가를 만들어서 묶어놓은 것들이라 구심력이 없어지자 그냥 국가가 된 것이다(...). 소련이나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구성하는 각 공화국들은 미국과는 달리 이전부터 나름의 체제와 정부, 사회구조를 갖추고 있던 것을 연방이라는 형태로 묶어서 더 큰 국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원래부터 그냥 갈라서면 남남인 상황이었다.[33] 'Российская Советская Федеративн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약칭 РСФСР/RSFSR[34] 'Закавказская Советская Федеративн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약칭 ЗСФСР/TSFSR[35] 소련이 존재했던 당시 한국 언론에서는 '벨라루스'가 아니라 '백러시아'로 불렀다. 소련 붕괴 이후 '벨로루시'를 거쳐 벨라루스라는 이름이 정착되었다. 하지만 백러시아라는 표현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 벨라루스를 러시아어로 표기하면 Белоруссия인데 앞에 붙는Бело는 Белая에서 따온 것으로 '하얀', 즉 '백'의 뜻이다. 뒤에 붙는 руссия는 Россия에서 따온 것으로 러시아를 뜻한다. 즉 이 두 단어를 합쳐 벨라루스(키릴자로는 벨라루씨야)라 하는데 뜻이 서술되었듯 백러시아로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말에 있어서는 오히려 백러시아가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36] 중앙아시아 5국에는 공화국 이름에 '~스탄'을 붙이지 않고 '민족명 + 공화국'으로 불렀다.[37] 카라칼파크 자치공화국이 우즈베크 소비에트 공화국 소속이 된 것은 1936년이었다. 그 전에는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소속.[38] 1990년 10월 성립. 이전에는 자치주[39] 1991년 7월 성립. 이전에는 자치주.[40] 1990년 11월 성립. 이전에는 자치주.[41] 1956년 7월 성립. 상술한 카렐리야-핀란드 SSR이 러시아에 병합되면서 탄생했다.[42] 1991년 7월 성립. 이전에는 자치주.[43] 나히체반 주민들은 본국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주민들과 동족인데도 자치공화국이 된 점에서 특이한 사례.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어서인 듯. 정작 이민족인 아르메니아인이 거주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는 한 등급 낮은 자치주였다.[44] 그럼에도 미국이 항상 소련보다 경제력을 앞섰고, 두 국가가 경제격차에 가장 적었던 시기 소련의 GDP는 미국의 50%(명목)~70%(NMP) 수준이었다.[45] 당시 아르헨티나는 극우 군부 정권이 집권했음에도 이러한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정치적 스펙트럼에 비해 의외로 사이는 괜찮았다.[46] 그래도 북한같은 동네보다는 훨씬 개념이 있어서 식량 등은 철저히 제값을 주고 치렀으며 식량을 포함해 명색이 공산권 큰 형님이라 이것저것 제2세계 국가들에게 퍼다준 것이 적지 않았다. 또한 단순히 타국으로부터 수입을 많이 했다는 것이 그 분야의 생산량이나 공급량이 떨어진다는걸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순수입으로만 보면 유럽이나 미국이 소련보다 더 많은 식량을 수입했던 적이 더 길다.[47] 물론 미국이나 서방국가들 기준으로는 대체로 중하층정도에 속하기는 했다. 집을 보유하기는 했다만 소득수준이 서방의 그것에 크게 뒤졌던것은 엄연히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당대 개도국들 기준으로는 충분히 중산층에 속하고도 남기는 하지만[48] 애초에 공산주의의 옛날 이름이 과학적 사회주의였고 유물론철학을 중시한 자연변증법이라는 책까지 나올 정도로 과학성을 중요시했다.[49] 이들이 어떻게 그런 기술력을 획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음모론적 설명도 있다. 숱한 우주인들을 보내놓고는 입 싹 씻고 모른 체하면서 그런 거 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해 왔다는 것. 자세한 내용은 사라진 소련 우주비행사 문서 참고.[50] 다만 미국유럽에서는 매우 발전되어 있던 분야인 전기, 전자공학과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는 그닥 성과가 좋지 못했다.[51] 알바니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련 위성 국가들도 참가하였다.[52] 당시 아시아에서 소련과 외교관계가 없었던 나라는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이 전부였다.[53] (칼럼)북한을 불쌍하게 보던 소련사람들[54] 나선정벌에 참여한 조선군이나 6.25에 참전한 소련 조종사가 있지만 민간에까지 '적'이란 인식이 퍼지기엔 너무나 미미한 경우였다.[55] 독일인들은 소련 초기에 볼가강 유역에 자치구역을 가지고 있었으나 스탈린 시기에 인구의 대다수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되면서 사라졌고, 유대인들은 명목상의 자치구역을 가지고 있었기는 했지만 땅이 위낙 척박하고 추워서 정작 유대인들은 얼마 살지않았다. 그래도 유대인 자치주는 현재까지도 남아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