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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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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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50년

히브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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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
2.1. 실제
2.1.1. 1월2.1.2. 2월2.1.3. 3월2.1.4. 4월2.1.5. 5월2.1.6. 6월2.1.7. 7월2.1.8. 8월2.1.9. 9월2.1.10. 10월2.1.11. 11월2.1.12. 12월
2.2. 가상
3. 탄생
3.1. 실존인물3.2. 가상인물
4. 사망
4.1. 실존인물4.2. 가상인물
5. 데뷔
5.1. 가수5.2. 스포츠5.3. 예능인5.4. 만화계

1. 개요[편집]

동아일보 선정 1975년 국내외 10대 뉴스
경향신문 선정 1975년 국내외 10대 뉴스

박정희 유신정권이 긴급조치의 최종보스격인 긴급조치 9호를 발효하고 사회안전법까지 만들면서 민주화 세력은 움츠러들기 시작하였고, 여의도국회의사당이 준공되었다. 한편 동남아에선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남베트남은 패망되어 10년 가까이 계속되었던 베트남 전쟁이 끝났고, 라오스 왕정의 폐지로 라오스 내전이 끝날 뿐더러 캄보디아에선 폴 포트가 집권하여 4년 동안의 학살극의 시대가 개막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쇄살인마김대두경찰에 체포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제2차 인혁당 사건 관련자인 도예종 등 여덟 명이 전격 사형당하여 국제법학자협회에선 사형이 집행된 4월 8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기록하고 있다. 또 대중음악계에서는 잇따른 금지곡 판정 사태와 '대마초 파동'이 불거져 이 땅의 대중음악계가 거의 멸망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또 석가탄신일어린이날공휴일로 제정되었다.

여담으로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인 성나정을 비롯한 극을 이끌어 가는 등장인물들이 태어난 해이다.[1][2]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했다.

2. 사건[편집]

2.1. 실제[편집]

2.1.1. 1월[편집]

  • 1월 6일: 북한측은 남북조절위원회 평양측 위원장을 류장식에서 조명일로 바꾸도록 통고하였다.

  • 1월 7일

    • 동아일보 광고탄압을 계기로 동아일보 본지에 독자들에 의한 격려 광고가 실리기 시작하였다. 같은 날 동아방송에도 광고주들의 무더기 광고해약 사태가 벌어졌다.

    • OPEC 회원국들이 석유 가격을 10%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올리지 마!

  • 1월 10일: 인도네시아의 모르타 섬에서 일본군 병사 나카무라 테루오(中村輝夫, 1919~1979)가 항복했다. 그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일본군인 중 가장 마지막으로 항복한 사람이다. 근성이다?

  • 1월 15일: 앙골라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다.

  • 1월 20일: 북베트남이 파리평화조약을 파기하고, 남베트남에 대한 최종적인 공세를 펼치기로 결정했다.

  • 1월 22일: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안이 공고되었다.

2.1.2. 2월[편집]

  • 2월 4일: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 성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일어났다. 약 2,00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서울에서도 심한 흔들림이 느껴졌다고 기록되어있다. #1

  • 2월 12일: 유신헌법의 지속성과 이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이후 74.4%의 찬성률(79.8% 투표율)로 국민투표가 가결되었다.

  • 2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은 유인태 등 일부 인물을 제외한 긴급조치 1, 4호 위반자들을 대거 석방시켰다.

  • 2월 21일: '민주회복구속자협의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2월 22일: 이날 발표된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보고서에서 주한 유엔군사령부와 주한 미군사령부, 미8군 사령부 3개가 1974년 9월부로 통합되었음이 밝혀졌다.

  • 2월 25일: 국무회의는 서울대 종합화 계획을 확정하였다.

  • 2월 28일: 민주회복국민회의는 <민주국민헌장>을 발표하였다.

2.1.3. 3월[편집]

  • 3월 6일: 이날 조선일보 기자들이 편집국 내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고 자유언론에 도전하는 외부 세력과의 투쟁을 결의하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3월 7일: 전날 조선일보 기자들의 농성에 대해 사측은 정태기 분회장 등 5명을 강제 해고시켰다. 이에 기자들이 대항하여 5인 임시 분회 집행부를 선출하고 부당해고 철회와 정론지로의 복귀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결의하였다.

  • 3월 8일: 광고 탄압 중이던 동아일보도 경비 절감을 명분으로 심의실, 기획부, 과학부, 출판부를 없애고 직원 18명을 전격적으로 해임하였다. 이에 대해 기자협회 동아일보 분회는 해임 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 3월 10일

    • 조선일보는 류건호 편집국장 명의로 농성 주모자인 김명규(사회부) 기자 등 5명에 대해 해고 처분을 내리는 한편, 농성을 해제하지 않으면 인사 조치한다고 경고하였다.

    • 동아일보 역시 자유언론투쟁위원회 장윤환 기자(문화부)와 박지동 기자(외신부) 등 2명을 편집방침 비판을 이유로 해고 조치를 내렸다. 또 <기자협회보> 역시 등록이 취소되었다.

    • 북베트남군이 중부고원의 반메투옷을 함락시켜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으로 가는 주요 통로를 확보했다. 남베트남의 운명은 이제 풍전등화였다.

    • 일본에서 오사카후쿠오카를 연결하는 산요 신칸센이 개통되었다.

  • 3월 11일

    • 조선일보는 해임된 기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기자 70여 명을 강제 축출하고 기자 4명을 추가 해고하는 한편, 37명을 무기 정직시켰다. 같은 날 동아일보 해직기자 20명도 항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포르투갈에서 카네이션 혁명에 반대하고 군사 독재를 부활시키려는 우익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 3월 12일: 동아일보 기자 150여 명이 편집국에서 집회 개최하고 회사가 “자유언론 압살하는 정부 음모에 가담했다”고 항의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며 해고 철회와 이동욱 주필 퇴진 등을 요구하였으나, 오히려 사측은 제작 거부를 주동한 17명을 해고하기로 결정하였다.

  • 3월 13일

    • 김지하 시인이 동아일보에 게재한 옥중수기 <고행-1974>로 인해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재구속되었다.

    • 한국기자협회 측도 동아/조선일보 해직 사태에 대해 분회장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협의하는 한편, 언론자유투쟁위원회를 설치하여 철야 농성을 벌였다.

    • 중앙일보·동양방송 기자 150여 명도 총회를 개최하고 '언론자유수호선언'을 채택한 뒤, 조선·동아일보 기자 해고 및 <기자협회보> 폐간 조치 철회 등을 요구하였다.

    • 조선일보는 <주간조선>을 폐간시켰다.

    • 북베트남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한 남베트남 대통령 응우옌반티에우가 중부고원지방의 군과 정부기관에 퇴각 명령을 하달했다. 퇴각은 곧 붕괴되어 무질서한 패주로 변했고, 이로써 남베트남의 전면적인 패주가 시작된다.

  • 3월 14일: 서울대학교는 새로 옮긴 관악캠퍼스에서 첫 개강을 하였다.

  • 3월 15일: 송건호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사측의 기자 대량해직에 항의하며 건의서를 내고 사표를 냈다.

  • 3월 17일: 동아일보는 보급소 직원과 가판원 등을 동원하여 농성 중이던 기자 130여 명 전원을 폭력으로 축출하였다.

  • 3월 18일: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이 중심이 된 '동아 자유언론수호 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가 결성되었다.

  • 3월 21일: 조선일보 해직 기자들이 중심이 된 '조선 자유언론수호 투쟁위원회(이하 조선투위)'가 결성되었다.

  • 3월 22일: 국회 외무위원회는 핵무기 비확산 조약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 3월 25일: 개혁 정책을 펴던 사우디 아라비아의 파이잘 국왕이 조카에게 암살되고, 동생 칼리드가 왕위를 승계했다.

  • 3월 27일: 동아일보는 편집·방송·출판부 차장급 7인을 포함하여 12명의 기자를 해고하고 7명은 무기정직 처분을 내리는 한편, 송건호 편집국장의 사표도 수리한 뒤 3월 31일까지 미복귀 기자 전원을 해고한다고 경고하였다.

  • 3월 28일: 연세대·서울대 등 서울시내 4개 대학의 학생들은 정부의 언론 탄압 중지와 학원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교내 시위를 벌였다.

2.1.4. 4월[편집]

  • 4월 3일: 경찰은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가 독일 교회 원조기구(서독의 세계개발원)로부터 받은 빈민아동구호자금 2,700만 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지출 관계 서류를 압수·수색하였다(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SAMO) 선교자금 사건).

  • 4월 4일: 미국에서 빌 게이츠듣보잡 중소기업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했다.그리고 그들은 세계를 정복했다.

  • 4월 5일: 일본에서 이시노모리 쇼타로 원작의 초대 슈퍼전대인 비밀전대 고렌쟈 방영이 시작되어 커다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 4월 8일

    • 박정희 대통령은 긴급조치 7호를 발동하여 고려대학교를 휴교시킨 뒤 교내에 군 병력을 투입했다. 이에 총장인 김상협은 4개 처장과 함께 사표를 냈다.

    • 대법원은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도예종 등 8명에 사형을 선고했다.

  • 4월 9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된 도예종 등 8명은 선고 18시간만에 서울구치소에서 처형당했다.

  • 4월 10일: 연세대 박대선 총장은 교수 복직 문제로 사임하였다.

  • 4월 11일

    • 서울대학교에서 농과생 김상진이 자유성토대회에서 양심선언문을 낭독한 뒤 할복하였다.(김상진 할복 사건) 김상진은 이튿날 아침 끝내 사망한다.

    • 동아일보는 75명에 대해 무기정직을 통보하였다. 이로써 해직자 수는 49명, 무기정직 82명이 되었다.

  • 4월 17일: 캄보디아수도 프놈펜공산당 분파 세력인 크메르 루주에게 함락되었다. 크메르 루쥬의 지도자 폴 포트는 왕정을 폐지하고 국명을 '캄푸치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바꾼 후 스스로 총리에 취임했다. 그리고 캄보디아에 지옥도가 펼쳐진다.

  • 4월 21일: 남베트남 대통령 응우옌반티에우가 자국을 버린 미국을 맹비난하며 동시에 부통령 트란 반 후엉을 후계자로 임명하고 해외로 망명했다.

  • 4월 25일: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을 포위했다. 절망에 빠진 남베트남 군대와 민간인들은 필사적으로 해외로 탈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 4월 30일

    • <주간조선>이 복간되었다.

    • 북베트남군이 사이공을 함락시키고, 트란 반 후엉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즈엉반민이 항복함으로써 베트남 전쟁이 끝났다. 엄청난 보트피플이 발생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큰 충격을 입었다.

2.1.5. 5월[편집]

  • 5월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총력안보 시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 5월 12일: 미국 상선 마야그에이스가 폴 포트의 캄보디아군에게 나포되었다. 미군은 구출 작전을 단행했으나 교전 과정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선원들은 전원 석방되었으나, 이는 캄보디아에서 앞으로 펼쳐질 일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 5월 13일: 박정희 대통령은 긴급조치 7호를 해제한 뒤 최종보스급인 대통령 긴급조치 9호를 발표했다. 이 조치는 유신헌법을 반대하거나 왜곡하고 이를 보도할 경우 영장 없이 체포한다는 것이었다.

  • 5월 16일: 네팔부탄 사이에 있는 히말라야 산맥의 소왕국 시킴중화인민공화국티베트 병합과 중국-인도 공화국 국경분쟁으로 중국의 위협을 받자, 자청하여 인도 공화국에 병합되었다.

  • 5월 20일: 전국의 고등학교 및 대학교 학생회가 폐지되면서 학도호국단이 15년 만에 부활했다.

  • 5월 21일

    • 박정희 대통령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 요담을 하였다.

    • 라오스 파테트라오 대원들이 사반나켄트에 입성하면서 내전이 종식되었다.

  • 5월 22일: 서울대생 4천여 명이 김상진 열사 추도식을 거행한 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 5월 24일: '전국섬유노동조합연맹 YH무역 지부(이하 YH노조)'가 결성되었다.

  • 5월 28일: 서아프리카의 15개 국가가 라고스 조약을 맺고 서아프리카 국가 경제공동체를 결성했다.

2.1.6. 6월[편집]

2.1.7. 7월[편집]

  • 7월 2일: 국립경주박물관이 개관되었다.

  • 7월 4일: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는 <연락선은 떠난다> 등 월북작가 작곡가요 87곡을 금지곡으로 결정했다.

  • 7월 5일

  • 7월 6일: 코모로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 7월 8일: 유신정권은 국민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4대 전시입법(사회안전법, 민방위기본법, 방위세법, 교육기본법)'을 발표했다. 이 법안들은 다음날 국회를 통과하였다.

  • 7월 9일: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는 제2차 가요특별심의위원회를 열어 이장희의 <그건 너>, <한잔의 추억>, 신중현의 <미인> 등 45곡에 금지곡 처분을 내렸다

  • 7월 12일: 상투메프린시페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다.

  • 7월 16일: 국회는 사회안전법 등 4대 전시입법을 날치기 통과했다.

  • 7월 17일: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과 소련소유즈 우주선이 우주공간에서 도킹했다. 냉전의 산물이던 우주개발에서도 미소의 화해가 이루어진 상징적 사건이었다.

2.1.8. 8월[편집]

2.1.9. 9월[편집]

2.1.10. 10월[편집]

  • 10월 2일: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는 1968년부터 1973년까지 발표된 18,726곡을 대상으로 심의하여 김부자의 <버림받은 여자>, 이미자의 <당신만을 사랑해> 등 대중가요 48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 10월 8일

    • 김옥선 신민당 의원이 관제 안보 등 강권 통치에 대해 정부를 강경하게 비판하다 정일권 국회의장 직권으로 사법위에 회부되었다. 결국 그는 닷새 뒤에 사퇴하였다.

    • 연쇄살인마 김대두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 10월 10일: ‘이화여대 <새벽>지 배포 사건’ 및 ‘부산대 반정부 유인물 배포 사건’이 발생하였다.

  • 10월 14일: 영동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 10월 30일: 영국의 락밴드 퀸의 대표곡이자 영국 차트에서 9주 연속 1위를 한 Bohemian Rhapsody가 싱글로 발표되었다.

2.1.11. 11월[편집]

2.1.12. 12월[편집]

  • 12월 중: 1970년대 4대 아동잡지로 꼽히는 <소년생활>이 창간되었다.

  • 12월 2일: 라오스에서 파테트라오 세력이 왕정 폐지를 선언하며 권력을 잡았다. 이로서 미국이 두려워하던 동남아시아의 공산화 도미노가 현실화되었다.

  • 12월 3일: 가수 윤형주, 이장희, 이종용 등 3명이 대마초 흡연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대마초 파동'이 시작되었다.

  • 12월 19일

  • 12월 23일: 조계종 총무원 난동사건이 발생하였다.

2.2. 가상[편집]

3. 탄생[편집]

3.1. 실존인물[편집]

3.2. 가상인물[편집]

4. 사망[편집]

4.1. 실존인물[편집]

4.2. 가상인물[편집]

5. 데뷔[편집]

5.1. 가수[편집]

5.2. 스포츠[편집]

  • 거스 윌리엄스

  • 대릴 도킨스

  • 데이빗 톰슨

  • 라이오넬 홀린스

  • 마빈 웹스터

  • 밥 그로스

  • 월드 B. 프리

  • 조 브라이언트[5]

5.3. 예능인[편집]

5.4. 만화계[편집]

[1] 수능 1세대, 94학번, 한총련 2기, X세대로 대표되는 세대다. 2016년 현재 한국 나이 42세. X세대도 오래됐다. 그리고 대전 엑스포 당시 고3 크리[2] 게다가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수능을 1년에 2번 봤다. 대학 시절에는 운동권 경력자 한정으로 1996년 연세대 사태와 1997년 한총련 출범식 사태,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으로 인해 수배 대상에 올라 인생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1979년 1~2월생까지 해당된다.[3] 실제 생일은 1974년생이라고 한다.[4] 일단 5월생이라고 한다.[5] 코비 브라이언트의 부친.[6] 본명은 이홍기. 하고명 선생 동생분과 이름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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