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버지에서 넘어옴
분류
- 박지성
- 1981년 출생
- 관악구 출신 인물
- 밀양 박씨 규정공파
- 세류초등학교 출신
- 안용중학교 출신
- 수원공업고등학교 출신
- 명지대학교 출신
- 명지대학교 대학원 출신
- 남자 축구 유틸리티 플레이어
- 공격형 미드필더
- 중앙 미드필더
- 윙어
- 세컨드 스트라이커
- 2000년 데뷔
- 2014년 은퇴
- 교토 상가 FC/은퇴, 이적
- PSV 에인트호번/은퇴, 이적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은퇴, 이적
- 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득점자
- 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참가 선수
-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참가 선수
-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
- 2002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선수
-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2000 시드니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병역특례자/축구
- 인터넷 밈/축구 선수/대한민국
- 체육훈장 맹호장
- 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
- 대한민국의 축구 행정가
- 전북 현대 모터스/역대 테크니컬 디렉터
- 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코치
대한민국 K-축구 혁신위원회 초대 공동위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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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박지성 朴智星 | Park Ji-sung | |||||||||||||||||||||||
출생 | ||||||||||||||||||||||||
본관 | 밀양 박씨 (密陽 朴氏) | |||||||||||||||||||||||
국적 | ||||||||||||||||||||||||
신체 | ||||||||||||||||||||||||
직업 | ||||||||||||||||||||||||
소속 | 선수 | 교토 퍼플 상가 (2000~2003) PSV 에인트호번 (2003~20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2012)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2~2014) → PSV 에인트호번 (2013~2014 / 임대) | ||||||||||||||||||||||
코치 |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U-16 (2021)[8] | |||||||||||||||||||||||
행정 | ||||||||||||||||||||||||
해설 | ||||||||||||||||||||||||
기타 | ||||||||||||||||||||||||
국가대표 | ||||||||||||||||||||||||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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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27]이자 프리미어 리그 주장을 역임한 최초의 아시아인[28]이며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이자 최다 프리미어 리그 우승[29]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선발 출전[30], 아시아 선수 최초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31]과 FIFA 인터컨티넨탈컵[32] 우승을 한 선수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33]와 UEFA 올해의 팀 후보[34]로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후보 50인에도 선정된 축구 선수다.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관악구 신림동에 정착한 부모와 살았으나 태어난 지 몇 년 안 돼 아버지의 사정으로 부친의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신안리 775번지에서 자랐다. 그러다 초등학교[35] 3학년에 수원시 산남초등학교로 전학을 가 축구를 시작했으나# 축구부 해체로 이후 세류초등학교로 전학 갔다. 이후 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를 거쳐 1999년 명지대학교에 입학했고 명지대 2학년 재학 중이던 2000년 일본의 교토 퍼플 상가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입단 후 프로에 데뷔하게 된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후 한동안 주전과 비주전을 오갔지만 히딩크호의 황금 세대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면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 후반 70분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켜 1:0 승리를 견인하는 등 2002년 대한민국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고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준우승팀 프랑스를 상대로 후반 81분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대한민국을 패배 직전에서 구하고 프랑스에 무승부 승점 1점을 획득하고 토고전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하면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원정 첫 승리라는 기록을 새로 썼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본선이 열리기 직전 한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평생 꿈[36]은 "대한민국의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이라며 당찬 포부를 천명했고 이후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출전하면서 대회 32강 조별리그 본선 첫 경기 그리스전에서 쐐기골을 기록하는 등 자신의 평생 꿈이라고 밝혔던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이루었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만해도 월드컵 역사상 조별리그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축구 불모지의 변방의 작은 아시아 국가[37]가 월드컵 4강, 원정 첫 승, 원정 16강이라는 상상만 했던, 아니 어쩌면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기적을 내리 써내려 갔고 이러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라 불린 이 시기, 그 역사의 중심에는 단연 "영원한 캡틴" 박지성이 있었다. 박지성이 현역 은퇴를 결정한 2014년 여름 기준으로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거둔 5번의 승전에 모두 출장한 선수가 박지성이었다.
3개의 FIFA 월드컵 본선에서 모두 1골씩 득점하여 3연속 골을 기록한 아시아 최초의 선수이며 FIFA 월드컵 Man of the Match 총 4회로써 월드컵 역대 공동 7위이자 아시아 대륙 역대 최다 수상[38]의 기록을 갖고 있고, 대한민국 역대 FIFA 월드컵 본선 최다 승리[39]와 본선 최다 득점[40]기록 등의 커리어를 보유한 전설적인 축구 선수다. 이러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박지성을 두고 차범근은 "대한민국 축구사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라고 평가했다.[41] 2008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대표팀 주장을 역임했으나 A매치 100번째 경기에 출장한 직후 만 29세의 나이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또한 히딩크호 23인 엔트리에선 차두리와 더불어 2002 월드컵 당시까지 K리그에 소속된 적이 없는 단 두 명뿐인 멤버다. 다만 차두리는 10년 넘게 지난 뒤 FC 서울에 입단하여 2골을 넣었다. 따라서 히딩크호 선수 중 유일하게 K리그 출장 경력이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클럽 경력은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한 이후 일본 1, 2부 리그에서 활약했다. 이후 월드컵을 거치며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발탁되어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다. 네덜란드 시절 초기에는 부진과 리그 부적응이 겹쳐 부상 재활보다도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로[42]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곧 리그에 적응하고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구단의 리그 우승과 챔스 4강 달성에 기여한 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끌던 PL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게 된다. Three Lungs Park(세 개의 폐), 빅게임 플레이어, 두 개의 심장, 아스날 킬러 등으로 불리며 자신의 축구 인생 전성기의 대부분을 맨유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전성기 중 한 시기에 보태며 구단의 수많은 우승에 일조했고 이후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 PSV 에인트호번을 거치며 2014년 5월 14일 공식 은퇴를 선언하였다.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관악구 신림동에 정착한 부모와 살았으나 태어난 지 몇 년 안 돼 아버지의 사정으로 부친의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신안리 775번지에서 자랐다. 그러다 초등학교[35] 3학년에 수원시 산남초등학교로 전학을 가 축구를 시작했으나# 축구부 해체로 이후 세류초등학교로 전학 갔다. 이후 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를 거쳐 1999년 명지대학교에 입학했고 명지대 2학년 재학 중이던 2000년 일본의 교토 퍼플 상가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입단 후 프로에 데뷔하게 된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후 한동안 주전과 비주전을 오갔지만 히딩크호의 황금 세대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면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 후반 70분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켜 1:0 승리를 견인하는 등 2002년 대한민국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고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준우승팀 프랑스를 상대로 후반 81분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대한민국을 패배 직전에서 구하고 프랑스에 무승부 승점 1점을 획득하고 토고전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하면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원정 첫 승리라는 기록을 새로 썼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본선이 열리기 직전 한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평생 꿈[36]은 "대한민국의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이라며 당찬 포부를 천명했고 이후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출전하면서 대회 32강 조별리그 본선 첫 경기 그리스전에서 쐐기골을 기록하는 등 자신의 평생 꿈이라고 밝혔던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이루었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만해도 월드컵 역사상 조별리그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축구 불모지의 변방의 작은 아시아 국가[37]가 월드컵 4강, 원정 첫 승, 원정 16강이라는 상상만 했던, 아니 어쩌면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기적을 내리 써내려 갔고 이러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라 불린 이 시기, 그 역사의 중심에는 단연 "영원한 캡틴" 박지성이 있었다. 박지성이 현역 은퇴를 결정한 2014년 여름 기준으로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거둔 5번의 승전에 모두 출장한 선수가 박지성이었다.
3개의 FIFA 월드컵 본선에서 모두 1골씩 득점하여 3연속 골을 기록한 아시아 최초의 선수이며 FIFA 월드컵 Man of the Match 총 4회로써 월드컵 역대 공동 7위이자 아시아 대륙 역대 최다 수상[38]의 기록을 갖고 있고, 대한민국 역대 FIFA 월드컵 본선 최다 승리[39]와 본선 최다 득점[40]기록 등의 커리어를 보유한 전설적인 축구 선수다. 이러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박지성을 두고 차범근은 "대한민국 축구사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라고 평가했다.[41] 2008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대표팀 주장을 역임했으나 A매치 100번째 경기에 출장한 직후 만 29세의 나이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또한 히딩크호 23인 엔트리에선 차두리와 더불어 2002 월드컵 당시까지 K리그에 소속된 적이 없는 단 두 명뿐인 멤버다. 다만 차두리는 10년 넘게 지난 뒤 FC 서울에 입단하여 2골을 넣었다. 따라서 히딩크호 선수 중 유일하게 K리그 출장 경력이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클럽 경력은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한 이후 일본 1, 2부 리그에서 활약했다. 이후 월드컵을 거치며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발탁되어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다. 네덜란드 시절 초기에는 부진과 리그 부적응이 겹쳐 부상 재활보다도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로[42]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곧 리그에 적응하고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구단의 리그 우승과 챔스 4강 달성에 기여한 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끌던 PL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게 된다. Three Lungs Park(세 개의 폐), 빅게임 플레이어, 두 개의 심장, 아스날 킬러 등으로 불리며 자신의 축구 인생 전성기의 대부분을 맨유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전성기 중 한 시기에 보태며 구단의 수많은 우승에 일조했고 이후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 PSV 에인트호번을 거치며 2014년 5월 14일 공식 은퇴를 선언하였다.
- PSV 에인트호번 (2003~2005, 2013~2014)
- 에레디비시: 2002-03, 2004-05
- KNVB 베이커: 2004-05
- 요한 크루이프 스할: 2003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2012)
- 프리미어 리그: 2006-07, 2007-08, 2008-09, 2010-11
- 풋볼 리그컵: 2005-06, 2008-09, 2009-10
- FA 커뮤니티 실드: 2010, 2011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7-08
- FIFA 클럽 월드컵: 2008
-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2
시즌 | 구단 | 리그 | FA컵 | - | - | - | 총합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2000 | 13 | 1 | 0 | 1 | 0 | 0 | 2 | 0 | 0 | - | - | - | - | - | - | 16 | 1 | 0 | |
2001 | 38 | 3 | 0 | 1 | 0 | 0 | 1 | 0 | 0 | - | - | - | - | - | - | 40 | 3 | 0 | |
2002 | 25 | 7 | 0 | 4 | 1 | 0 | - | - | - | - | - | - | - | - | - | 29 | 8 | 0 | |
3시즌 | 합계 | 76 | 11 | 0 | 6 | 1 | 0 | 3 | 0 | 0 | - | - | - | - | - | - | 85 | 12 | 0 |
시즌 | 구단 | 리그 | FA컵 | - | 대륙 대항전[59] | 기타[60] | 총합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02-03 | 8 | 0 | 0 | - | - | - | - | - | - | - | - | - | - | - | - | 8 | 0 | 0 | |
03-04 | 28 | 6 | 2 | 1 | 0 | 0 | - | - | - | 10 | 0 | 2 | 1 | 0 | 0 | 40 | 6 | 4 | |
04-05 | 28 | 7 | 5 | 3 | 2 | 0 | - | - | - | 13 | 2 | 2 | - | - | - | 44 | 11 | 7 | |
3시즌 | 합계 | 64 | 13 | 7 | 4 | 2 | 0 | - | - | - | 23 | 2 | 4 | 1 | 0 | 0 | 92 | 17 | 11 |
리그 | 구단 | 리그 | FA컵 | 리그컵 | 대륙 대항전[61] | 기타[62] | 총합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05-06 | 34 | 1 | 8 | 2 | 0 | 0 | 3 | 1 | 0 | 6 | 0 | 0 | - | - | - | 45 | 2 | 8 | |
06-07 | 14 | 5 | 2 | 5 | 0 | 0 | - | - | - | 1 | 0 | 0 | - | - | - | 20 | 5 | 2 | |
07-08 | 12 | 1 | 1 | 2 | 0 | 0 | - | - | - | 4 | 0 | 1 | - | - | - | 18 | 1 | 2 | |
08-09 | 25 | 2 | 2 | 3 | 1 | 0 | 1 | 0 | 0 | 9 | 1 | 0 | 2 | 0 | 0 | 40 | 4 | 2 | |
09-10 | 17 | 3 | 1 | - | - | - | 2 | 0 | 0 | 6 | 1 | 0 | 1 | 0 | 0 | 26 | 4 | 1 | |
10-11 | 15 | 5 | 3 | 1 | 0 | 0 | 2 | 2 | 2 | 9 | 1 | 1 | 1 | 0 | 0 | 28 | 8 | 6 | |
11-12 | 17 | 2 | 1 | 1 | 1 | 0 | 3 | 0 | 3 | 7 | 0 | 0 | - | - | - | 28 | 3 | 4 | |
7시즌 | 합계 | 134 | 19 | 18 | 14 | 2 | 0 | 11 | 3 | 5 | 42 | 3 | 2 | 4 | 0 | 0 | 205 | 27 | 25 |
시즌 | 구단 | 리그 | FA컵 | 리그컵 | - | - | 총합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2-13 | 20 | 0 | 3 | 2 | 0 | 1 | 3 | 0 | 0 | - | - | - | - | - | - | 25 | 0 | 4 | |
시즌 | 구단 | 리그 | FA컵 | - | 대륙 대항전[63] | - | 총합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3-14 | PSV (임대) | 23 | 2 | 5 | - | - | - | - | - | - | 4 | 0 | 0 | - | - | - | 27 | 2 | 5 |
통산 | 317 | 45 | 32 | 26 | 5 | 1 | 17 | 3 | 5 | 69 | 5 | 6 | 5 | 0 | 0 | 434 | 58 | 45 | |
- 출전 기록소속 대표팀연도경기득점20001512001100200215320031020048020058120068120072020087320091022010122201140통산10013
- 연령별 출전 기록소속 대표팀연령연도경기득점U-1700U-20200020U-231999112200080200230200420
- 득점 기록일자장소상대결과대회명2000.6.72:0 승친선경기2002.5.211:1 무친선경기2002.5.262:3 패친선경기2002.6.141:0 승2005.6.84:0 승2006.6.181:1 무2008.2.64:0 승2008.5.312:2 무2008.10.154:1 승2009.2.111:1 무2009.6.171:1 무2010.5.242:0 승친선경기2010.6.122:0 승
-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최다 득점[66]
- 아시아 선수 최초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67]
- 아시아 선수 최초 UEFA 올해의 팀 후보[68]
- 아시아 선수 최초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선발 출전[69]
- 아시아 선수 최다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선발 출전[70]
- 아시아 선수 최초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풀타임 출전[71]
- 아시아 선수 최초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72]
- 아시아 선수 최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연속 시즌 출전[73]
- 아시아 선수 최다 UEFA 챔피언스 리그 통산 시즌 출전[74]
- 아시아 선수 최초 FIFA 클럽 월드컵 우승[75]
- 아시아 선수 최초 프리미어 리그 통산 100경기 출장
- 아시아 선수 최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통산 200경기 출장
- 아시아 선수 최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주장[80]
- 아시아 선수 최초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주장[81]
- 아시아 선수 최초 프리미어 리그 앰버서더 선정
- 아시아 선수 최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앰버서더 선정
- 대한민국 선수 최초 유럽 리그 더블 달성[88]
- 대한민국 선수 최초 프리미어 리그 데뷔
- 대한민국 선수 최초 프리미어 리그 득점
- 대한민국 선수 최다 FIFA 월드컵 본선 득점[90]
- 대한민국 선수 최초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91]
Ji Sung Park 원곡: Pigbag - Papa's Got A Brand New Pigbag | |
Dames en heren Rechtstreeks uit Korea Aan de rechterkant van het veld De Koreaanse doelputmachine Ji! Sung! Park! Tu, tu, tu, tu Ji Sung Park (반복) |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에서 온 오른쪽 미드필더 한국의 골 머신 지! 성! 박! 투, 투, 투, 투 지성박 (반복) |
Park, Park, Wherever You May Be 원곡: The Dubliners - Lord of the Dance | |
Park, Park, wherever you may be You eat dogs in your country It could be worse You could be scouse Eating rats in your council house! | |
Don't Sell My Park 원곡: Billy Ray Cyrus - Achy Breaky Heart | |
Don't sell my Park My Jisung Park I just don't think he'd understand But if you sell my Park My Jisung Park You're gonna have a riot on your hands | 내 박을 팔지 마 (나의 박지성) 그가 이해할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내 박을 판다면 (나의 박지성) 네 손에서 폭동을 겪게 될 거야 |
쓰러질지언정, 무릎은 꿇지 않는다.(19살 시기의 인터뷰)
불가능이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축구를 잘했던 사람’, ‘우리나라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이런 걸 다 떠나서 많은 팬들이 내가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믿음을 느꼈다면 “저 선수는 믿음이 가는 선수였어.”하고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저는 그걸로 제가 원했던 행복한 축구 선수 생활을 했다고 생각해요.박지성 마이 스토리 中
오늘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축구 수준, 지금의 축구 현실이 (지금) 여기까지인 걸로 저는 판단을 내리는 거고요.우리가 더 잘하기 위해서는, 대표팀에 대한, 선수들에 대해서, 선수들의 능력을 더 키우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한국 축구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 보이는 것만 바꿔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어두운 것들[93]을 얼마나 털어내고, 그것을 그 벽을 깨부수고 우리가 (과연)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축구인들이 서로가 힘을 합쳐서 희생을 감내해서라도 뭔가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4년마다 매번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게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과연 독일이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려고 나온 건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네, 이 정도면 우리나라도 비벼 볼 만하겠는데요.
후배들에게 진정한 선배가 되고 싶다면 실력으로 승부하길 바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선배들에게는 저절로 존경심이 생기는 법이다.2009년 4월 19일 MBC 스페셜에서#
박지성이 고교 졸업을 하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고 싶어했으나 안 받아줬고, 대학교들도 외면해서 겨우 명지대에 갔으며, K리그에서도 외면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대학생 박지성을 영입해 좋은 결과를 낸 J리그보다 안목이 없다며 대차게 까였다. 박지성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지만 탈락했으며 당시 수원의 스카우트이던 정규풍은[94] 당시 박지성의 신체 조건이 타 선수들에 비해 약해 보여서 크게 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서 영입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박지성의 신체 조건이 같은 세대의 한국 선수들에 비해 밀렸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나중에 K리그보다 몸싸움, 압박, 미친 일정 탓에 지구력 소모가 더욱 심한 프리미어 리그 + 유럽 대항전에서도 잘 적응 해낸 것을 보면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 당시에는 고교 졸업하고 바로 프로팀에 입단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지금은 고졸 선수가 흔하지만 당시에는 대학 졸업 후 K리그로 가는 것이 보통인 시절이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유소년과 프로의 격차가 그만큼 커서 그렇다. 지금도 대학 리그가 옛날에 월드컵에까지 대학 선수를 내보내던 시절에 비해 U23은커녕 U20 대표조차 몇 명 못보낼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음에도 현역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보면 대학에서 1,2년 정도 뛰고 프로 리그로 올라온 경우도 많다. 특급 유망주를 쓸어담아 국대급 스쿼드를 구축 가능한 정도는 아닐지라도 프로 리그로 가는 최종 관문 정도의 역할은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후 고교축구를 평정했던 윤화평이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 구단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직행한 적이 있는데 성장도 못하고 기회를 잡지 못해서 기대 이하의 선수 생활을 이어간 것을 보면 보수적으로 구단들이 접근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물론 정말 심하게 쩔어주면 이조차도 프리패스다. 게다가 이때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고종수, 서정원, 데니스, 샤샤, 박건하, 김진우 등이 포진해 슈퍼컵, 대한화재컵, 아디다스컵에 이어 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던 K리그 역대 최강급 스쿼드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당시 박지성의 입지로는 발붙일래야 발붙일 수가 없었다.# MBC 스페셜에도 나왔지만 박지성 또한 원래 프로 입단보다 대학 진학을 우선에 뒀고 고려대학교 축구부가 목표였다고 했다.
선수 경력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초등학생부터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전도유망한 선수였는데 고교 경력은 늦은 신체 성장으로 인해 중학교 때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선수답지 않게 미싱링크 수준으로 기록이 없다. 실제로 신체 발달이 늦어져서 유망주 때 기대받았으나 성인무대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전락한 이승우의 사례를 봐도 웃어넘기기 힘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박지성이 빛을 낸 건 신체조건이 좋아지고서부터다.
선수 경력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초등학생부터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전도유망한 선수였는데 고교 경력은 늦은 신체 성장으로 인해 중학교 때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선수답지 않게 미싱링크 수준으로 기록이 없다. 실제로 신체 발달이 늦어져서 유망주 때 기대받았으나 성인무대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전락한 이승우의 사례를 봐도 웃어넘기기 힘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박지성이 빛을 낸 건 신체조건이 좋아지고서부터다.
- 대학 진학이 어려울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학 진학을 알아봐야 할 시기에 프로팀 입단테스트를 보느라 대학들이 이미 선수들을 다 선발한 뒤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대학 진학을 노리던 선수들과 상황이 달랐던 것. 박지성이 뛰던 수원공고가 우승한 적도 없었고 대학에서 서로 데려갈 만큼의 초고교급 선수도 아니었다.[95] 비슷한 예시로 김영권을 들 수 있다. 김영권도 박지성과 비슷한 상황에서 대학교를 진학하기 힘들었는데 당시 전주대 감독이 받아주다시피 해서 결국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라디오스타에서 밝힌 바 있다. 김영권은 현재 국가대표팀의 주전 수비수인데도 말이다. 정말 외면받은 것일까?
당시 박지성의 프로 데뷔 연봉이 무려 5천만 엔(한화 5억 원)이다. 올대에서의 활약을 보고 교토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한 듯 보이며 당시 J리그에서도 꽤나 높은 연봉이었을 것이다. 2004년 J리그 연봉 통계 자료 김정우가 2012년 전북과 맺었던 15억의 연봉 계약이 리그 역대 최고액이었고 전설적인 외인 공격수로 평가되는 데얀이 FC 서울에게 받았던 연봉도 10억이 약간 되지 않았다. 이들도 리그 최고의 기량에 리그 최고의 부자 구단에서 뛰었으니까 이 정도다.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 K리그에서도 5억이면 시민 구단은 줄 수도 없고 기업 구단이라도 핵심 멤버들이나 받는 금액이다. 당시 신인들한테 줄 수 있는 최고 연봉이 5천만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돈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올대 이후에는 영입을 하고 싶어도 못 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박지성이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뽑혔을 때 인맥으로 뽑았냐고 비아냥거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프로 무대는 어림도 없었던 소리다.
당시 박지성의 프로 데뷔 연봉이 무려 5천만 엔(한화 5억 원)이다. 올대에서의 활약을 보고 교토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한 듯 보이며 당시 J리그에서도 꽤나 높은 연봉이었을 것이다. 2004년 J리그 연봉 통계 자료 김정우가 2012년 전북과 맺었던 15억의 연봉 계약이 리그 역대 최고액이었고 전설적인 외인 공격수로 평가되는 데얀이 FC 서울에게 받았던 연봉도 10억이 약간 되지 않았다. 이들도 리그 최고의 기량에 리그 최고의 부자 구단에서 뛰었으니까 이 정도다.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 K리그에서도 5억이면 시민 구단은 줄 수도 없고 기업 구단이라도 핵심 멤버들이나 받는 금액이다. 당시 신인들한테 줄 수 있는 최고 연봉이 5천만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돈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올대 이후에는 영입을 하고 싶어도 못 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박지성이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뽑혔을 때 인맥으로 뽑았냐고 비아냥거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프로 무대는 어림도 없었던 소리다.
- 박지성을 만개시킨 것은 히딩크호지만, 그 이전부터 박지성은 중용받았다.
항간에 퍼진 잘못 알려진 사실 중 하나가 "박지성은 대한축구협회에서 천대와 무시를 받다가 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공정한 명장 거스 히딩크가 발굴하여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라는 주장인데, 조금만 사실관계를 고려해 봐도 터무니없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히딩크는 2002년 박지성을 중용해 4강에 진출하고, 이후에도 본인 소속팀 PSV에 그를 데려가 챔스 4강에 올리는 등 그가 유럽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게 도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지성은 이미 히딩크 재임기가 시작하는 2000년 12월 이전부터 국가대표팀에서 중용받았다.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 라오스전에서 A매치 데뷔하여 2000년 아시안컵, AFC U-19 챔피언십, 시드니 올림픽 등 무려 3개의 국제대회에 선발되었다. 심지어 저 대회 중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오히려 박지성을 깜짝발탁한 허정무가 뇌물이니 인맥 축구니 욕을 먹었다.[96] 박지성이 허정무에게 발탁된 계기는 명지대 축구부와 국가대표 친선전이었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과 허정무 감독은 명지대 축구부와 같은 곳에서 훈련하며 친선경기를 치렀고, 허정무는 박지성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비난까지 받아가며 이례적으로 발탁했다. 박지성의 발굴 자체는 허정무의 공이 크다. 여담으로 시드니 올림픽 때 적극 중용한 유망주로 박지성 말고 송종국도 있는데 이쪽은 초등학교때 반짝하고 잊혀져 가던 박지성과 달리 착실히 엘리트 코스 밟은 전국구 유망주라서 아무도 뭐라고 안 했다.
극성 FC코리아 등에게 박지성 홀대 논란으로 근거 없는 비난을 받는 허정무 및 협회 관계자들만 환장할 노릇. 눈 씻고 찾아봐도 이 선수를 국가대표팀에서 천대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할 때 워크퍼밋 발급 조건에 걸려서 입단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워크퍼밋 발급 조건이 2년간 열린 국가대표 경기 중 75% 이상을 뛰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때 축협에서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박지성을 안 부른 경기도 있어 64%밖에 못 채웠던지라 3명의 보증인이 필요했고 거스 히딩크, 알렉스 퍼거슨, 요한 크루이프가 보증을 서준 덕분에[97] 워크퍼밋을 발급받고 입단하게 되었다. 축협에서는 박지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대우해 주고 있었다. 상술했듯 히딩크 아래에서 만개했음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을 회고하는 과정에 거짓이 들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기존 인사들이 외면한 재능 레퍼토리에 어울리는 선수는 최진철과 김남일이다. 최진철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상무에 입대(94~96)했고 전역 후 뒤늦게 전북에 입단한 후에는 김도훈의 이적으로 공격수 전향(98~99)한 탓에 커리어가 애매해져서 대표팀에서 중용되지 못하다 히딩크를 만나 대표팀 핵심 수비수로 자리잡았고 김남일은 소속팀 전남 서포터들조차 거칠고 투박하기만한 선수 왜 뽑냐고 항의하는 걸 중용해 대표팀 핵심 미드필더로 키웠다.
극성 FC코리아 등에게 박지성 홀대 논란으로 근거 없는 비난을 받는 허정무 및 협회 관계자들만 환장할 노릇. 눈 씻고 찾아봐도 이 선수를 국가대표팀에서 천대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할 때 워크퍼밋 발급 조건에 걸려서 입단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워크퍼밋 발급 조건이 2년간 열린 국가대표 경기 중 75% 이상을 뛰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때 축협에서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박지성을 안 부른 경기도 있어 64%밖에 못 채웠던지라 3명의 보증인이 필요했고 거스 히딩크, 알렉스 퍼거슨, 요한 크루이프가 보증을 서준 덕분에[97] 워크퍼밋을 발급받고 입단하게 되었다. 축협에서는 박지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대우해 주고 있었다. 상술했듯 히딩크 아래에서 만개했음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을 회고하는 과정에 거짓이 들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기존 인사들이 외면한 재능 레퍼토리에 어울리는 선수는 최진철과 김남일이다. 최진철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상무에 입대(94~96)했고 전역 후 뒤늦게 전북에 입단한 후에는 김도훈의 이적으로 공격수 전향(98~99)한 탓에 커리어가 애매해져서 대표팀에서 중용되지 못하다 히딩크를 만나 대표팀 핵심 수비수로 자리잡았고 김남일은 소속팀 전남 서포터들조차 거칠고 투박하기만한 선수 왜 뽑냐고 항의하는 걸 중용해 대표팀 핵심 미드필더로 키웠다.
2021년 전북 현대에서 박지성의 지원 아래 이루어지던 백승호 영입이, 선수 등록기간이 하루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다름슈타트 측과 국제이적동의서(ITC) 절차까지 밟은 상태로 알려졌다. 박지성이 영입 과정 전체를 주도했다는 증거는 없으나[98]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보니 백승호 영입에 대한 책임성 비판이 어느 정도 나오는 중.
하지만 애초에 박지성의 역할은 어드바이저로 전북 구단에 조언하는 역할이며 박지성이 영입 과정에서 한 역할은 백승호와 수원 간의 합의서가 존재하는 것을 몰랐을 시기에 백승호에 대해 조언해 주고 연락한 것이 전부라고 볼 수 있다.
전북 관계자는 당시 인터뷰에서 박지성의 조언, 연락 역할이 전북의 백승호 영입에 큰 역할일 것이라고 인터뷰하였는데 이때는 백승호-수원 간의 합의서 문제가 불거지기 전이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박지성을 띄우면서 전북을 홍보하기 위해서 한 인터뷰에서조차도 박지성이 연락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기사
하지만 애초에 박지성의 역할은 어드바이저로 전북 구단에 조언하는 역할이며 박지성이 영입 과정에서 한 역할은 백승호와 수원 간의 합의서가 존재하는 것을 몰랐을 시기에 백승호에 대해 조언해 주고 연락한 것이 전부라고 볼 수 있다.
전북 관계자는 당시 인터뷰에서 박지성의 조언, 연락 역할이 전북의 백승호 영입에 큰 역할일 것이라고 인터뷰하였는데 이때는 백승호-수원 간의 합의서 문제가 불거지기 전이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박지성을 띄우면서 전북을 홍보하기 위해서 한 인터뷰에서조차도 박지성이 연락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기사
전북 관계자는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K리그의 분위기를 빠르게 파악하려는 열정을 보이고 있고 동시에 유럽에서 습득한 경험을 공유해주고 있다"고 만족감을 내비쳤다.
박지성 위원은 전북의 영입전에서도 큰 역할을 도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백승호 협상 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는 "박지성 위원이 백승호 측과 직접 연락을 취하는 등 도와주고 있다. 만약 영입이 성사된다면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이후에 백승호-수원 간의 합의서 문제가 불거지면서 논란이 되고 그럼에도 전북 감독과 단장이 백승호 영입을 결정하면서 논란이 되자 축구 팬들은 '저번에 박지성이 영입에 큰 역할이라고 하지 않았냐'면서 마치 어드바이저인 박지성이 후에 문제된 합의서 내용을 인지하고도 백승호 영입을 주도한 것인 양 집중적으로 비난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후 김상식 감독과 전북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해명하는 인터뷰를 하였다. 박지성은 합의서의 내용을 몰랐을 때 조언하고 연락한 것이 전부이며 박지성은 구단의 유소년 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상황이고 선수 영입 결정에 전면적으로 나서고 있지는 않으며 영입 결정은 전적으로 감독이 한다는 인터뷰 내용이다. 기사 기사
이에 대해 전북 고위 관계자는 "박지성 어드바이저는 백승호가 수원에 입단한다는 합의서가 있는지는 당연히 몰랐다. 그걸 모르는 상태에서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선수단의 고령화에 대해 지적하며 장래성 있는 젊은 선수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백승호 영입을 추천했다"고 했다.
김상식 전북 감독도 스포츠한국과의 통화에서 "솔직히 말하면 영입을 추진 당시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백승호에 대해 박지성 어드바이저에게 물어봤고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조언을 해줬다. 또한 유럽생활을 많이 한 선배다보니 백승호에게 직접 연락해 안부를 묻고 소속팀에서 상황이 어떤지 정도 묻는 ‘축구 선배’ 역할을 한번 해봐줄 수 있냐고 부탁했고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그렇게 해준게 전부"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백승호 영입 전반에 모두 관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것은 아니다"라며 "박지성 어드바이저는 구단 유소년 정책에 많은 관여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직접적인 선수 영입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상황 설명을 하기도 했다.
스포츠한국과 1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김 감독은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백승호 영입에 깊이 관여했다는 것에 대해 “선수를 영입하는데 있어서 감독이 원하지 않는 선수를 뽑지 않는다. 선수를 영입하는데 감독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냐. 백승호도 제가 관심이 있어서 영입한거지,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영입하시죠’ 해서 영입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백승호에 대해 박지성 어드바이저에게 물어봤고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조언을 해줬다. 또한 유럽 생활을 많이 한 선배다 보니 백승호에게 직접 연락해 안부를 묻고 소속팀에서 상황이 어떤지 정도 묻는 ‘축구 선배’ 역할을 한번 해봐줄 수 있냐고 부탁했고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그렇게 해준 게 전부다."라고 답했다.
요컨대 박지성은 딱 전형적인 유럽파 선배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을 했을 뿐이고 그 시점에서는 수원과 백승호의 계약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는 것. 전북 구단에서도 계약을 알고 난 뒤 공식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다고 밝힌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합당한 결론이다. 애초에 박지성이 아무리 한국 축구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크다한들 이제 막 부임한 어드바이저에게 선수 영입의 전권을 맡긴다는 것부터가 비약적인 추측이다. 아무리 박지성이 한국 축구계에서 대단한 업적을 세웠어도 선배인 김상식 감독의 권한을 침해하면서까지 전북 선수단의 훈련을 주도하고 전술을 짜는 것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 사건은 백승호 측과 수원 측의 입장이 엇갈리며 정확한 잘잘못과 팩트가 가려지지 않은 채 원만히 합의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따라서 이 사건으로 박지성이 비난을 받은 것은 더더욱 아이러니하며 박지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억울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백승호 수원 삼성과의 합의서 위반 논란 문서를 참고하자.
2021년 6월 7일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의 장례식에 박지성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당시 에펨코리아 등 일부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부 극성 누리꾼들은 SNS를 하지 않는 박지성 대신 아내 김민지 유튜브 채널에 가서 무분별한 비난 댓글을 달기도 했는데 #, 오죽하면 김민지가 이런 분들은 도대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겁니까?라며 무지성 비난을 멈추어 달라는 글을 쓸 정도였다. #
당시 박지성은 영국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런 팩트 확인조차 제대로 안 하고 선동에 휩쓸려 그냥 무지성 비난을 한 것. 이런 뉴스들이 나오자 이를 비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비판받기도 했다.# 사실 조금만 따져봐도 박지성에 대한 이러한 비난에는 어떠한 합리성도 없다. 추모란 고인과의 생전의 관계에 따른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일이지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행할 것인가, 애초에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제 3자가 왈가왈부 할 권리는 없다. 더군다나 신문 기사나 SNS 따위로 세상에 공공연하게 알려서 일자일면식도 없는 대중들에게 "나 이렇게 추모를 했습니다"라고 선전하고 다니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을 받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고인의 가족들과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조용히 추모의 뜻을 전하는 방법도 있고 그것은 개인의 내면적인 선택일 뿐이다. 박지성이 영국 자택에 머무르고 있고,[99] 개인 SNS가 없으며 화환을 보냈는가 여부 등의 물리적으로 티나는 행동이 가능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는 부수적인 문제고 타인이 참견할 사항이 되지 못한다.
그야말로 현대 인터넷 사회의 프로불편러, 방구석 코난같은 성향의 족속들로 대표되는, 함부로 타인의 행동을 재단하고 비난을 일삼고 그러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불러일으킨 촌극이나 다름없는 사건이다.
게다가 후에 김병지에게 직접 연락이 왔다고 한다.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뜻을 밝혔으며 조만간 대한민국을 찾을 때 방문 예정이라고 한다.
6월 17일 보도 자료를 통해 악플러들을 고소하고 선처는 없다고 밝혔다. 박지성의 매니지먼트인 에투알클래식에 따르면 박지성을 대신해 박지성 부친이 대신 조문해 조의를 표했으며 박지성 역시 멀리서나마 연락을 취해 유가족과 슬픔을 나누었다고 한다.
또한 존경하는 선배이자 동료 축구인을 잃은 참담함 속에서 박지성의 조의 표현 여부를 알리는 것이 중요치 않다는 박지성의 의견에 따라 매니지먼트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억측으로 유상철 전 감독에게까지 누를 끼칠까 우려되어 오해가 없도록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뉴스
7월 25일, 유상철 전 감독의 49재에 조용히 참석했다고 한다. <스포츠니어스> 김현회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박지성이 먼저 유가족 측에 참석 의사를 밝혔고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축구계 관계자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박지성은 영국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런 팩트 확인조차 제대로 안 하고 선동에 휩쓸려 그냥 무지성 비난을 한 것. 이런 뉴스들이 나오자 이를 비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비판받기도 했다.# 사실 조금만 따져봐도 박지성에 대한 이러한 비난에는 어떠한 합리성도 없다. 추모란 고인과의 생전의 관계에 따른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일이지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행할 것인가, 애초에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제 3자가 왈가왈부 할 권리는 없다. 더군다나 신문 기사나 SNS 따위로 세상에 공공연하게 알려서 일자일면식도 없는 대중들에게 "나 이렇게 추모를 했습니다"라고 선전하고 다니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을 받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고인의 가족들과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조용히 추모의 뜻을 전하는 방법도 있고 그것은 개인의 내면적인 선택일 뿐이다. 박지성이 영국 자택에 머무르고 있고,[99] 개인 SNS가 없으며 화환을 보냈는가 여부 등의 물리적으로 티나는 행동이 가능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는 부수적인 문제고 타인이 참견할 사항이 되지 못한다.
그야말로 현대 인터넷 사회의 프로불편러, 방구석 코난같은 성향의 족속들로 대표되는, 함부로 타인의 행동을 재단하고 비난을 일삼고 그러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불러일으킨 촌극이나 다름없는 사건이다.
게다가 후에 김병지에게 직접 연락이 왔다고 한다.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뜻을 밝혔으며 조만간 대한민국을 찾을 때 방문 예정이라고 한다.
6월 17일 보도 자료를 통해 악플러들을 고소하고 선처는 없다고 밝혔다. 박지성의 매니지먼트인 에투알클래식에 따르면 박지성을 대신해 박지성 부친이 대신 조문해 조의를 표했으며 박지성 역시 멀리서나마 연락을 취해 유가족과 슬픔을 나누었다고 한다.
또한 존경하는 선배이자 동료 축구인을 잃은 참담함 속에서 박지성의 조의 표현 여부를 알리는 것이 중요치 않다는 박지성의 의견에 따라 매니지먼트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억측으로 유상철 전 감독에게까지 누를 끼칠까 우려되어 오해가 없도록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뉴스
7월 25일, 유상철 전 감독의 49재에 조용히 참석했다고 한다. <스포츠니어스> 김현회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박지성이 먼저 유가족 측에 참석 의사를 밝혔고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축구계 관계자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가족 측에서 ‘박지성은 왜 조문하러 오지 않느냐’는 비난 분위기 때문에 박지성 어드바이저를 많이 걱정했다. 오히려 박지성 어드바이저에게 부담이 될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49재에 참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뉴스
- 전학 가기 전, 박지성이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운동부가 야구부밖에 없었고 어린 시절 박지성은 야빠라서 야구 선수가 되고 싶어했다. 박지성의 아버지가 직접 언급하기도 했으며 "축구 선수가 안 되었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요?"라는 질문에 회사원이나 야구 선수가 되어 있었을 듯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컴퓨터와 IT에 관련된 일반 회사원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반문한 후 "아니면 야구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축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야구를 많이 하곤 했다. 당시 학교 야구부에 가입하려 했는데 너무 어리다고 받아주지 않았다. 1년 뒤에 오라고 해 대신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당시 야구부에서 받아 주었다면 이후 계속 야구를 해서 야구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야구를 계속했다 하더라도 프로 야구 선수가 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지성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부에 입회 신청서를 냈는데 4학년부터 가입이 가능하다고 하여 1년 뒤로 계획을 미뤘다. 그 사이 집이 수원으로 이사하며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전학 간 학교엔 축구부가 있었고 운동이 하고 싶어 축구부에 가입했다고 한다.[102]
- 대신 2026년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한 2007년생 박지성이 U-18 야구 월드컵에선 등번호 13번을 고르고, KBO 등장곡으로는 위의 위송빠레를 선택하면서 박지성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었다.
- 동시대에 뛰던 박지성과 동명이인의 축구 선수도 존재했다. 박지성(1984) 문서 참고.
- 박지성이 재능형 선수냐 노력형 선수냐에 대한 논쟁이 붙을 때 재능형을 주장하는 측에서 주로 활용하는 근거가 초등학생 때 수상한 차범근축구상인데 박지성은 자신은 6명 중 가장 끝인 장려상을 받은 것이고 재능형 선수였다면 대학 진학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재라고 하기엔 학창 시절 한 번도 청소년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고 대학에 진학한 후 올림픽 대표에 선발된 것이 첫 대표팀 경력이기 때문에 자신은 재능형 선수라기보단 노력형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인터뷰했다.

- 한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시절 박지성의 인기 절정에 힘입어 캡틴박이란 이름으로 썬더일레븐 카드팩을 판 적 있다. 현재는 저연령층 사이에 추억의 카드로 남겨졌다.
- 수원공고 시절 막 창단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볼보이를 하면서 "난 언제 저기서 뛰어보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듯하다.
- 명지대 신입생 시절 올림픽 대표팀이 명지대와 연습경기를 하게 됐는데 당시 김희태 감독이 미드필더였던 박지성을 윙백으로 깜짝 기용했다. 신입생에 주목받는 선수도 아니라서 본인도 놀랐다고. 그런데 이 경기에서 박지성이 단독 드리블로 올림픽 대표팀 여러 명을 제끼고 골을 성공시켰다. 이날의 경기로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던 허정무의 눈에 들었고, 경기 후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됐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자신은 신입생인 데다 빠른 생일로 만 18세에 불과해 당연히 19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된 줄 알았다고 한다. 대표팀에 소집된 후에야 올림픽 대표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자신보다 4살 정도 많은 형들과 훈련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참고로 최연소 올림픽 대표 선발이라는 타이틀로 스포츠 뉴스에도 등장했다.
- 영국에서 7년 체류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평생 헌혈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나, 관련 규정이 완화되며 헌혈이 가능해졌다.
- 2009년부터 박지성 가족이 개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름이 한골이었다고 한다. 제발 한 골만 넣자는 염원에서 였다고 한다. 관련 기사.
- 박지성의 가장 친한 친구로는 파트리스 에브라와 카를로스 테베즈가 유명하며, 서로가 인터뷰에서 가장 친하다고 밝히기도 했고 셋이 같이 찍은 사진이 많다. 다만 이들은 모두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맨유 선수들은 물론 퍼거슨 감독도 이들이 어떻게 친한지 의아해했으며, 매일 같이 다니는 이들에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105]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들의 친분은 후일 은퇴하고도 이어져서 박지성의 어머니가 작고하였을 때 에브라가 한국에 입국해 빈소에 방문했으며 관 운구에도 직접 나설 정도이니 말 다한 셈. 이는 2024년 현재까지도 맨유에서의 하나의 밈으로도 여겨지고 있으며, 2023년 퍼디난드의 유튜브에 에브라가 출연했을 때 이 내용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2024년 6월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에 박지성이 관련 내용을 기고하기도 했다.#
- 2002년 월드컵 4강으로 병역 특례를 받은 뒤, 맹호부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 가운데 사격에서 만점을 기록, '사격왕' 메달을 수여 받기도 했다. 주간·야간·영점 사격 등 세 분야로 실시된 사격 훈련에서 150명의 훈련병 中, 그는 주간과 야간에서 만점을 받았으며 특히 과녁 조준에 대한 정교함 및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영점 사격에서는 다른 두 명의 만점 훈련병을 제치고 당당히 사격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 한국 언론에는 그다지 소개되지 않지만 친한 일본 선수들이 꽤 있다. 비시즌 중에 곧잘 일본으로 놀러가는 모양. 박지성이 휴식 차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 절친으로 알려져 있는 일본 축구의 전설 미우라 카즈요시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박지성을 보러 한국에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박지성한테 만나러가도 되는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더니 '응? 지금 다들 모여있는 거야? 기다려, 내가 당장 갈게!'라는 말을 남기곤, 다음날 아침 나리타 공항에서 선물을 한 움큼 끌어안고는 '나 여깄어~'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다들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는 사람이 그리도 반갑게 찾아오는 걸 보고서 굉장히 감동했다고 한다. 그 이외에도 교토 시절 같이 뛰었던 마츠이 다이스케[106]와는 그의 부인과도 친할 정도로 절친한 관계다. 상술했듯이 교토에서 대활약을 했던 경력도 있어서 2ch의 혐한들도 박지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편이다. 그 대신 친일파니, 일본이 키웠다느니 등등의 드립을 치긴 하지만[107] 적어도 디스의 강도는 이청용과 더불어 타 한국 축구 선수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지금도 간혹 박지성에 대한 기사나 영상이 올라오면 '한국은 싫어도 박지성은 인정.'이라는 식의 댓글이 심심치 않게 보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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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 중 박지성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모종의 이유로 버로우 시켜버렸다는 짤도 유명하다. '호날두가 맨유를 떠난 이유'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진 짤. 다만 슛 포 러브의 더 클래스 레전드 기획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박지성이 이 사진에 대한 해명 아닌 해명을 하길 아마 각도 때문에 저렇게 보였을 거라고 생각하고, 또한 호날두도 어디가서 쉽게 버로우 할 사람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해당 영상 2023년 맨인유럽 촬영으로 슛 포 러브와 다시 만난 뒤 리오 퍼디난드, 파트리스 에브라에게 이 움짤을 보여줬는데, 영상의 주인공이 박지성이란 것을 알아채고는[108] 신나게 놀려먹었다.# 2026년 OGFC 촬영으로 카를로스 테베스의 집에 방문했을 때 테베스에게도 이 짤을 보여줬는데 역시나 박지성이라는 것을 알아채자마자 빵 터진 모습을 보여줬다.#
- 2011년 챔스 결승 오프닝 영상에서 박지성의 드리블 장면이 잠깐 비춰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
- 2012년 박지성이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의 이적하면서 박지성을 후원하던 아시아나항공이 물을 먹게 되었다. 박지성은 아시아나항공의 홍보 대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구단주가 아시아나항공의 경쟁사인 에어아시아의 오너이기 때문이다.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메인 스폰서는 에어아시아였고 박지성은 에어아시아 로고가 찍힌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아시아나항공사는 박지성과 아시아나항공은 2013년 4월까지 계약되어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은 겉으론 박지성이 국위선양에 이바지했으므로 계약 기한까지 박지성을 모델로 쓰겠다는 방침을 보여줬다.
-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적 당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기회를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편지 내용에 따르면 평소 박지성의 광팬이었던 퍼거슨 감독의 손자가 박지성의 이적이 확정되자 퍼거슨 감독에게 한동안 말도 안 걸었다고 한다.
- 박지성이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한 뒤 많은 팬들이 아쉬워 한 영상이 있다. #
- 평발을 극복한 운동선수 신화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운동 능력에 전혀 영향이 없는 유연성 평편족이다. 박지성이나 이봉주를 예로 들면서 평발이 극복이 가능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전혀 틀린 사실이다. 축구 국가대표팀 주치의 曰 '박지성의 발은 생리학적으로 기능에 전혀 문제가 없는 유연성 평발' 박지성 평발 극복에 대한 오해와 진실 병이 되는 평발은 따로 있다.
- 다만 유연성 평발 또한 축구 등의 격렬한 운동을 하면 통증이 있거나 염좌가 발생할 수 있고 쉽게 피로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기사기사기사 박지성이 그동안 평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한 것도 통증과 관련된 부분이다. 박지성은 2005년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에서 "평발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다른 선수들과 큰 차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다만 이후로 발에 조금 더 신경을 쓴다. 내가 아픔을 이겨내는 것은 그렇다 치고 발을 너무 혹사시키는 게 미안하기도 해서다."라고 했다. 2019년 인터뷰에서는 "병원에 갔을 때 평발이라고 하긴 했지만 뛰기 힘들 만큼은 아니었습니다."라고 언급했다.기사 쉽게 말해서 흔히 생각하는 일상생활조차 지장이 있는 수준의 그런 평발과는 다르지만 운동을 업으로 삼는 사람 기준으로는 불편한 점이 맞다.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2016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때 배성재, 박문성과 함께 SBS 해설 위원으로 등장했다. 방송 도중 언급된 바로는, 호날두와 같이 뛸 때 "로니"[112]라고 불렀다고 한다.
- 과거의 많은 운동선수들이 똥군기로 인해 많은 구타를 당했듯이 박지성 본인 또한 선배들에게 구타를 당하면서 축구를 배웠다고 한다. 본인은 그런 고통을 후배들은 부디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절대로 후배들을 구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결국 그것을 실천해냈다. "후배들에게 진정한 선배가 되고 싶다면 실력으로 승부하길 바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선배들에게는 저절로 권위가 생긴다."는 말을 하면서 군기를 중요시하는 왕기춘 같은[113] 꼰대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날렸다.[114]. 참고로 박지성 축구센터 설립의 이유도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환경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환경에서 축구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 호날두가 UEFA 유로 2004 종료 직후 호나우지뉴를 비롯한 몇몇 동료와 함께 쇼걸 20명을 불러서 집단 섹스 파티를 벌였는데 이때 박지성에게도 초대장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박지성의 맨유 입단은 2005년이었기 때문에 이 일화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문서의 '여담' 항목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이 부분은 거짓일 확률이 높고 아마도 이때의 일화가 와전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 인터뷰 중 인터뷰어의 낚시질에 낚였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는 악질 맨체스터 시티 훌리건 출신이다. 맨유를 아주 혐오한다. 박지성에 대해 알고 있냐고 질문 받았을 때 자기들은 맨시티 팬이라 그런 선수 모른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웨인 루니와의 기타 일화도 유명하다. 더 자세한 사항은 오아시스(밴드) 항목 참조.
- 안정환을 축알못으로 만들어버린 적이 있다. 마리텔 19회에서 안정환이 '솔샤르는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안정환의 말이 맞다'/'안정환 축알못이다'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에 대해 박지성은 '솔샤르는 공격수가 맞다'라고 단정내려서 졸지에 안정환을 축알못으로 인정해버렸다. 사실 이 논쟁은 포지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는 것이라서 안정환의 주장도 완전히 틀렸다고 보긴 힘들다. 박지성 본인 또한 결론을 내면서도 '정환이 형을 디스하는 셈이지만'라는 말을 하며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웃어 넘기는 수준이었다. 물론 네티즌들 사이에선 안정환은 축알못 확정이다.
- 경기도 화성시와 수원시를 연결하는 도로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동탄지성로가 해당 도로로,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에 위치한 박지성축구센터가 이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수원구간에는 아예 대놓고 '박지성로'라고 이름이 붙었지만 도로명 주소 시행 과정에서 도로를 통합하면서, 실존인물의 이름은 도로명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정책에 따라 해당 도로가 연결되는 화성시(동탄)와 수원시의 협의로 동탄지성로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다만 교차로 이름으로는 아직 잔존하고 있어서, 박지성사거리(舊 박지성삼거리[115])는 수원시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 2018년 1월 12일 어머니 장명자가 한국시간 새벽 교통사고로 영국에서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단독]박지성, 어머니 영국서 잃고 큰 슬픔 ‘교통사고’ 박지성의 어머니와 박지성의 딸 연우가 같이 차를 타고 있었는데 사고가 나면서 손녀를 지킬 생각에 몸을 던졌고 정작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설상가상 어머니가 사망한 지 몇 시간 뒤인 오후 친할머니 김매심마저 한국에서 사망하면서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
- 기네스 기록을 갖고 있었다. 36m 높이 상공에서 떨어지는 공을 5회 리프팅에 성공하여 기록을 인증받았다. 슛 포 러브가 기록 달성 당시 상황을 영상에 담았다. 종전 기록은 시오 월콧이 갖고 있던 34m. 그러나 동년 5월 3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Christopher Njokwana 라는 사람이 37.458미터로 기록경신을 하였다. 그 후 제이미 레드냅이 38.9m로 기록을 경신했고, 레드냅의 기록을 조원희가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50m를 기록하여 이를 갈아치웠다.
- 2015년 4월 2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JS컵 개막식에서 걸그룹 여자친구가 〈유리구슬 (Glass Bead)〉을 부르며 축하 공연을 선보였는데 이날 걸그룹 여자친구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 2015-16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때 SBS 객원 해설을 맡았는데 별로 좋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목소리와 발성은 해설자 스타일은 아닌 듯하다. 그래도 2023년을 기준으로는 많이 좋아졌다.
- 2018년 6월 10일, 17일에 SBS 집사부일체 11대 사부로 출연하였다.
- 2019년 10월 4일,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에 최종 성화봉송 주자 10명 중 1명으로 참석했다.
- 박지성의 양력 생일은 1981년 3월이지만, 호적상 박지성은 음력 생일인 2월을 사용해서 1980년 생과 동창으로 지냈고, 이것 때문에 동갑내기인 이천수는 박지성을 '지성이 형'이라고 부른다. 박지성과 이천수가 처음 한 팀에서 뛴 것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인데 99년 대표팀 발탁 당시 박지성은 대학교 1학년, 이천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 외모로 주목받지 않아 잘 언급은 덜 되나, 엄청난 동안이다. 2021년에 불혹이 되었음에도 얼굴이 선수 시절 그대로다. 2022 월드컵 때 해설로 얼굴을 비추면서 해외에서도 박지성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고 화제가 되고 있다. 퍼디난드와 찍은 사진.
- FIFA 23에서 드디어 FUT 히어로 등급의 선수로 출시되었다. 오버롤은 86으로 책정되었고, 디펜스를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80 이상이고,[117] 그중 속도와 드리블은 85라는 육각형 선수로 출시되었다. 성능도 매우 준수하여 미드필더로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한 가지 단점이라고 한다면 포지션은 좌우 윙어만 선택할수 있는데, 능력치상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포지션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인지라 케미스트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인게임 포지션 변경이 필수라는 것이다. 포지션 관련 단점은 업그레이드 버전인 월드컵 히어로 카드에서 CAM을 선택 가능하게 변하면서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 맨유 시절 응원가에서 박지성을 팔면 맨유 팬들이 폭동을 경험하게 될 거라는 가사가 있다.
- 슛 포 러브와 진행한 '근본투어'에서 자신이 뛰었던 교토 상가 FC 구장을 방문해서 옛 동료들이나 당시 있었던 직원들과 반갑게 재회했다.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일본어로 하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는 모습이었다. 홈구장을 방문해서 경기도 관전하면서 하프타임 때 경기장에 내려가서 팬들에게 통역 없이 일본어를 구사하며 인사했다. 한편 슛포러브가 영상을 게시하기 전에 해당 경기의 관중석에 욱일기 모양을 형상화한 깃발이 걸려 있는 모습이 국내 축구 커뮤니티 사이에서 논란이 됐는데 슛포러브와 박지성도 이걸 보면서 당혹감을 느꼈고 구단 측에 직접 시정 조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해당 영상에서는 모자이크로 처리했다.
- 남아공 월드컵 때 자신의 예언들이 틀린 적도 있어 제2의 펠레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 어린시절 몸을 키우기 위해 사골국을 많이 먹어서 사골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영상
- 2024년 7월 12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 감독 부임을 매우 강하게 비판했다. 평소 입장을 확실히 밝히지 않고 스리슬쩍 넘어가는 스타일의 인터뷰를 하던 걸 감안하면 정말 화가 많이 난 듯, 작심하고 자기 입장을 확고히 밝히며 선배들을 질타하는 인터뷰를 했다. 심지어 기자가 중간에 끊으려고 했으나 본인이 더 해도 괜찮다며 발언의 수위를 높인 것이다.
-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선수를 꼽으라는 질문에는 무조건 메시부터 이야기하고 본다. 실제로 월드컵과 챔스에서 박지성의 팀은 메시에게 탈탈 털렸다.
- 2011년 당시 30세로 혼기에 들어선 나이였기 때문에 열애설이 빈번하게 나왔다.
- 2008년 솔비와의 열애설: 사실 무근으로 솔비는 박지성을 만나본 적도 없다고 밝혔다. 솔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고 박지성도 팬으로서 좋아하기 때문에 라이브 중계를 챙겨본 것"이라며 루머를 일축했다.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생방송으로 챙겨본다는 소식이 지인들 사이에서 알려지면서 열애 루머에 힘을 실어주게 된 것 같다는 해석이다. 열애설 당시 솔비의 소속사는 "방송에서 몇 번 박지성 선수가 이상형이라고 말한 게 와전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결국 열애설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 2008년 이보영과의 열애설: 당시 이보영이 박지성을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 출국했다는 루머가 퍼졌지만 이보영은 “박지성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라고 열애설을 일축했다. 결국 둘의 열애설은 박지성과 배우 지성의 활동명이 같아 발생한 해프닝으로 종결됐다.
- 2010년 일본의 배구 선수 기무라 사오리와 열애설: 이 보도의 근원지는 베트남의 스포츠 신문 인터넷판으로 박지성의 아버지인 박성종이 직접 라디오에서 근거 없는 소식임을 밝혔다. 박지성은 "모르는 분하고 스캔들이 나서 정말 당황스러웠다. 이런 일도 세상에 벌어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언급하기도.
- 2011년 허정무의 둘째 딸 허은과의 열애설: 2년 전부터 교제해 왔으며 결혼이 임박해 왔다고 기사가 떴다. 박지성 측은 사실 무근이라 부인하며 법적 대응까지 거론했다.
- 박지성의 여자친구 문제는 영국 현지 언론에서도 떡밥거리였는지 해당 업계에서는 유명하다는 파파라치가 한 달여 동안 몰래 따라다니며 취재를 했지만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성추문에 연루된 선수들이 나오면서 이런 곳에서 사고 한번 안 친 박지성을 칭찬했다.
- 2012년 1월 11일 스포츠서울닷컴에서 재일동포 사업가 오지선과 열애 사실을 특종으로 냈다.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는데 기사 내용도 틀린 부분이 많으며, 아버지 박성종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 본인도 심드렁한 반응을 나타내며 흐지부지해졌다.
- 2012년 7월 14일 배두나와 스캔들이 터졌다. 한 네티즌이 '박지성과 배두나가 런던에서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가더라!'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이것이 퍼져 각종 매체에서 뉴스화까지 된 것. 배두나의 소속사는 두 사람의 친분을 알지 못했는지 "두 사람은 아예 친분이 없다.", "영국에서 만난 것은 친한 사진 작가."라는 식으로 입장을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배두나는 미니 홈피에 "이봐, 나를 대신해 그것에 대해 말하기 전에 최소한 나한테 먼저 전화를 했어야지(hey. you should have phoned me at least before you spoke about it on my behalf)라는 글을 올렸다. 얼마 후 박지성은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배두나와 친분이 있는 것은 맞지만 열애설은 사실무근임을 밝혔다. 당시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당시 공식 인터뷰에서 취재진은 열애설이 민감한 사안이라고 생각하고 질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공식 인터뷰가 끝나고 자리를 파하려고 하자 박지성은 "왜 (열애설) 안물어보세요"라며 먼저 말을 꺼냈다. 박지성은 "만난 건 사실이고, 분명히 아는 사이는 사실입니다"라면서도 "많은 분들이 만드신 자극적인 제목처럼 열애설은 아닙니다"라며 "누나, 동생 사이지만 편하게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이지 연인 사이는 아닙니다"라고 해명했다. 열애설이 터진 뒤 배두나와 전화 통화를 했느냐는 질문에 박지성은 "통화를 했다. 서로 웃어 넘기기엔 상당히 심각한 상황으로 가 있었다"며 "열애설로 인해 그 친구가 더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열애설이 터지면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쪽이 피해가 많은 것 같더라"고 말했다.
- 2013년 6월 김사랑과 열애설 및 결혼설이 터졌다. 김사랑과 박지성이 면도기 광고를 통해 커플 컨셉의 화보를 촬영한 후 소위 카톡 찌라시를 통해 루머가 유포된 것이었다. 결국 6월 15일 김사랑 측이 유포자에 대한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카톡 찌라시와는 다르게 박지성은 김민지 아나운서와 열애 중이었고 커뮤니티에서 구체적인 장소와 데이트 목격담이 돌기도 했다. 김사랑과의 열애설은 헛소문이었던 것. 6월 20일 박지성은 김민지와의 열애 파파라치 기사가 난 후 열애설을 인정하는 기자회견에서 김사랑에게도 직접 공개 사과했다. 괜히 자신과의 헛소문으로 인해 김사랑이 피해를 보지 않았을까 배려한 것이다. 박지성 공개사과, "김사랑 상처 준 것 같아 미안해". 이에 대해 김사랑 측은 박지성 본인이 사과하는 상황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고 답변했다. 박지성이 열애설을 유포한 것도 아닌데 사과를 받기도 안 받기도 애매하다는 것김사랑,"박지성과 훈훈하게 마무리, 법적대응 없다".
- 당초 선자리에 정계 내지 재계 인사의 딸, 판사, 검사 등 법조인을 추천하려 했으나 박지성 본인이 고사했다고 한다. 상대방으로 인해 부담을 느껴서라고 밝혔다.

- 2013년 6월 19일 스포츠서울닷컴 보도를 통해 김민지 SBS 아나운서와 열애설이 터졌다. # 결국 김민지는 사귀는 게 맞다고 시인했다. 2013년 6월 20일에 박지성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민지와의 열애를 시인했지만 일각에서 제기한 7월 결혼설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은퇴 전까진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2013년 11월 12일, 드디어 결혼 기사가 떴다. 게다가 이미 상견례에서 결혼을 확정지었다고 한다.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은 구체적인 날짜는 미정이며 2013-2014 시즌이 끝나면 결혼한다고 밝혔다. 그 후 SBS 연예대상에서 김민지가 시상 소감을 말하는 중 프로포즈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 2015년 박지성 본인이 직접 첫 아이 임신 소식을 페이스북에 공개했으며 태명은 만두라고 밝혔다. 마침내 2015년 11월 19일 득녀했다. 이름은 연우. 박지성은 은퇴 후 2020년 현재까지 줄곧 영국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이유로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출산했다고 한다.
- 2018년 2월 초에는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이름은 박선우. 관련 기사
- 2021년 2월 방송된 MBC 쓰리박에 출연해 결혼 후 남편, 아빠로서의 박지성의 모습을 최초로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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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적 [ 펼치기 · 접기 ] | |||||||||||||||||||||||||||||||||||||
[1] 음력 1981년 2월 25일.[2] 출생지는 서울특별시이고 출신지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점암면이다. 학창 시절은 경기도 남부(주로 수원시)에서 보냈다. 본인은 고흥군과 수원시 양쪽을 고향으로 여기며 때문에 고흥군과 수원시 양쪽에 박지성 이름을 딴 체육 시설이 있다. 박지성이 출생할 당시에는 가족이 서울에 거주해서 박지성 아버지가 고흥에 계신 박지성 할머니께 '박지선'이라는 이름으로 고흥군 면사무소에 대신 출생 신고를 부탁드렸는데 면사무소 직원이 잘못 알아듣고 '박지성'으로 등록해서 이름이 '박지성'이 됐다고 한다.[3] 프리미어 리그 공식 웹사이트상 프로필 다만 박지성은 2008년에 자신의 실제 신장이 178cm라고 밝힌 바 있고 월드컵 중계 화면에도 178cm로 나왔다. 관련 기사 그 후 차범근과의 동반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신장이 프로필(178cm)보다는 작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4] 선수 시절의 기준으로 현재는 약간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운동선수는 대체로 은퇴 후 운동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식사량을 감당하지 못해 체중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박지성은 은퇴 이후에도 운동과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하기 때문.[5] #[6] 박지성의 주 포지션. 좌우를 가리지 않았으며 교토 퍼플 상가 초창기 시절 중앙 미드필더로 뛰다가 월드컵 이후 윙어(LM)로 뛰었고 PSV 에인트호번 시절에는 주로 윙 포워드로 출전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 후에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했지만 주로 4-4-2 윙어(LM)로 뛰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종종 4-3-3 포메이션을 사용할 때면 윙 포워드로 출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주로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다.[7] 중앙 공격수, 즉 최전방 스트라이커를 제외하고 세컨드 스트라이커와 윙 포워드 포지션도 수행했다.[8] B급 라이선스 취득을 위해 잠시 활동했다.[9] 대표팀 역대 득점 23위.[10]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박지성의 어머니와 같은 날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샀다.[11] 2017년 말 영국 런던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회복 중이었으나 2018년 1월 12일에 사망했다. 향년 58세.[12] 1996년 3월 1일 점암초등학교 신안분교로 전환, 2019년 8월 31일 폐교.[13] 現 스포츠·예술대학.[14] 석사 학위 논문: 한국 유소년 축구의 발전을 위한 방향제시: 문헌조사와 사례분석에 기초하여(2012.2.).[15] M.A.(국제 스포츠 경영, 법률 및 인문학 석사) #[16] 법명을 5개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불기 2549년 부처님오신날에 불자대상을 수상했다.[17] 중요한 골을 넣을 때에는 왼발을 주로 사용했을 만큼 왼발도 준수하게 사용했다.[18]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2004년 중국 아시안컵까지.[19] QPR에서 PSV로 임대 이적했을 때의 번호. 당시 박지성의 나이도 33세였다.[20] 원래 8번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7번으로 변경.[21] 한일 월드컵 때는 아디다스의 프레데터 추구화를 착용했지만, PSV 에인트호번 입단쯤해서 나이키와 계약 맺었다.[22] # 소위 '위송빠레'로 불리는 PSV 아인트호벤 시절의 응원가. 가사 내용은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에서 온 오른쪽 미드필더 골 머신, 위! 송! 빠레~ 박지성이 PSV 에인트호번으로 돌아옴에 따라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노래는 미들즈브러 FC의 앤썸이기도 했으며 현재는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의 골 송으로도 쓰인다. 또한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 소속 포뮬러 1 드라이버 막스 베르스타펜의 응원가로도 쓰이는게 인스타 등지에서 밈이 되었는데 이게 대한민국에도 전파되어 박지성 응원가 베낀게 아니냐는 농담도 있다. 마침 베르스타펜도 네덜란드인이라 PSV 에인트호번 팬이다.[23] # '개고기송'으로 널리 알려진 맨유 시절 응원가. 'Park, Park, Wherever You May Be'. 대략 '한국에선 개고기를 먹지만 그게 뭐 대수냐, 리버풀 임대 주택가에선 쥐고기를 먹는데'라는 내용이다. 못 살기로 유명한 리버풀을 까는 내용이라지만 한국인이 들으면 다소 불쾌할 만도 하다. 참고로 볼턴 원더러스에 입단했던 이청용의 응원가도 개고기송이었다.[24] 마일리 사이러스의 아버지.[25] # 첫 소절 'Don't Sell My Park'로 유명한 맨유 시절 응원가[26] 출처: 배우자 김민지 아나운서[27] 1호 박지성(2005, 맨유 이적), 2호 이영표(2005, 토트넘 이적), 3호 설기현(2006, 레딩 승격 이적), 4호 이동국(2007, 미들스보로 이적), 5호 김두현(2009, WBA 승격), 6호 조원희(2009, 위건 이적), 7호 이청용(2009, 볼턴 이적), 8호 지동원(2011, 선더랜드 이적), 9호 박주영(2011, 아스날 이적), 10호 기성용(2012, 스완지 이적), 11호 김보경(2013, 카디프 승격), 12호 윤석영 (2013,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적), 13호 손흥민 (2015, 토트넘 이적), 14호 황희찬 (2021, 울버햄튼 이적). 참고로 설기현이 2004년 프리시즌에 안데를레흐트에서 디비전1 울버햄튼 원더러스로 이적하여 잉글랜드 리그에서 먼저 뛰긴 했으나 승격은 레딩으로 이적하면서 하게 된다.[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 관련 기사[29] 2006-07, 2007-08, 2008-09, 2010-11[30] 2008-09, 2010-11[31] 2007-08[32] 당시 명칭은 FIFA 클럽 월드컵. 2007-08.[33] 2004-05 시즌 호나우지뉴, 사무엘 에투, 사무엘 에투, 안드리 셰브첸코, 아드리아누와 함께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 5인에 선정되면서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하게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다. 수상자는 호나우지뉴.##[34] UEFA 올해의 팀 후보 55인에 든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 중 왼쪽 미드필더 부문 5인에 올랐으며 투표 결과는 수상자 파벨 네드베드 (29.10%)와 아르연 로번 (27.94%)에 이은 3위 (22.61%)였다. 베스트 11으로 팀을 나눌 때 3군에 들어간 셈이다.# # 미국 스포츠식 개념으로 치면 UEFA 서드팀에 들어갈 성적이었던 것.[35] 박지성이 다녔던 신안초등학교는 점암초등학교의 분교장으로 강등되었다가 2019년에 폐교되었다.[36] 관련 기사[37] 출처[38] 2002년 포르투갈, 2006년 프랑스, 2010년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선정되었으며 혼다 케이스케와 공동 1위 기록이다. 랭킹[39] 5승.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 스페인전은 승부차기 승리이기 때문에 전적상으로 무승부다.[40] 3골로 안정환, 손흥민과 타이 기록.[41] 출처[42] 오죽하면 홈 팬들마저 자기가 출장하면 야유를 보낼 정도라 히딩크 감독이 원정 경기에서만 출전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돌아갈까도 수차례 생각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고 다짐하면서 하나하나 다시 쌓아올렸다고 하며 이후 부진을 극복하자 홈 팬들부터 환영했다고 한다.[43] 표를 얻는데는 실패했는데 당시 발롱도르 최종 후보는 50명이었고 후보자들에게 투표를 하는 유권자는 '유럽 한정' 기자단 52명이었으므로 이 당시 축구 불모지의 아시아인으로서는 한 표 받기 조차 매우 어려웠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재 발롱도르 투표 시스템과 비교해 보면 더욱 체감이 되는데 현재는 96명의 "전 세계" 각국의 기자단 유권자가 최종 후보 30인에게 투표를 하고 있다. 유권자가 던질 수 있는 표는 두 배가 되었지만 후보의 수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 당연한 얘기이지만 대한민국 기자단도 2005년 당시 발롱도르 최종 후보에 대한 투표권은 없었다. 나카타 히데토시(1998, 1999, 2001), 설기현(2002), 이나모토 준이치(2002) 이후 네 번째 아시아인 노미네이트.[44] 호나우지뉴, 안드리 셰브첸코, 아드리아누, 사무엘 에투와 함께 후보 5인에 선정되면서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하게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다. 수상자는 호나우지뉴.[45] UEFA 올해의 팀 후보 55인에 든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 중 왼쪽 미드필더 부문 5인에 올랐으며 투표 결과는 수상자 파벨 네드베드 (29.10%)와 아르연 로번 (27.94%)에 이은 3위 (22.61%)였다. 베스트 11으로 팀을 나눌 때 3군에 들어간 셈이다.[46] 월드컵 공식 올스타팀을 선정한 FIFA의 후원사 마스터카드가 별도로 팬 투표를 취합하여 발표한 올스타팀이다.[47] FIFA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부터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나온 약 2400골 가운데 아름답거나 큰 의미가 있는 '원더풀 골'로 8개를 뽑았는데, 박지성의 2002 월드컵 포르투갈전 골이 그중 하나로 선정되었다.[48] 팬투표에서는 4위에 머물렀지만 패널들이 선정한 순위와의 합산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49] 팬투표, 옵타 선정 베스트 XI에 모두 포함되었다.[50] AFC는 2011년 아시안컵에서 베스트 11을 선정하지 않았고 대신 기술위원회가 선정한 우수 선수 4인을 대회 공식 리포트를 통해 발표했다. 선정된 4인은 대회 MVP로 선정된 혼다 케이스케를 비롯해 박지성, 해리 큐얼, 세르베르 제파로프.[51] 팬과 전문가 양쪽이 선정에 참여했다.[52] 1990년까지 시상하던 대한축구협회 최우수 선수상 이후 최초 수상.[53] 02 월드컵 포르투갈전, 10 월드컵 그리스전[54] 구단 공식 선정.[55] 구단 공식 선정. 국가별로 1명씩, 각 대륙에서 최소 1명의 선수를 골라야 하는 조건[56] 구단 공식 선정.[57] 구단 공식 선정.[58] 구단 공식 선정.[59] UEFA컵 + UEFA 챔피언스 리그[60] 요한 크루이프 스할[61] UEFA 챔피언스 리그 + UEFA 유로파 리그[62] UEFA 슈퍼컵 + FIFA 클럽 월드컵 + FA 커뮤니티 실드[63] UEFA 유로파 리그 + UEFA 챔피언스 리그[64] 최종 후보 50인[65] FIFA 월드컵 역대 공동 7위이자 아시아 대륙 역대 최다 수상랭킹[66] #[67] 2004-05 시즌 호나우지뉴, 사무엘 에투 안드리 셰브첸코, 아드리아누와 함께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 5인에 선정되면서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하게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다. 수상자는 호나우지뉴.##[68] LM 3위, UEFA 올해의 팀 후보 55인에 든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 중 왼쪽 미드필더 부문 5인에 올랐으며 투표 결과는 수상자 파벨 네드베드 (29.10%)와 아르연 로번 (27.94%)에 이은 3위 (22.61%)였다. 베스트 11으로 팀을 나눌 때 3군에 들어간 셈이다.# #[69] 2008-09 시즌[70] 2008-09, 2010-11 시즌[71] 2010-11 시즌[72] 2007-08 시즌[73] 2003-04 시즌부터 2011-12 시즌까지 시즌9시즌[74] 2013-14시즌 PSV 복귀해에 3차 예선을 출전한 시즌을 포함할 경우 아시아 선수 유일 두 자릿수 10시즌 출장[75] 2008 클럽 월드컵[76] 이나모토 준이치도 아스날 시절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했지만 단 한경기도 못 나오면서 우승 메달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77] 4회[78] 2006-07시즌, 2007-08시즌, 2008-09시즌[79] 정규 시즌 공식 경기 풀타임 주장. 2011-2012 UEFA 유로파 리그 32강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약스와의 경기 [80] 2011-12 UEFA 유로파 리그 32강 2차전 아약스와의 경기#[81] #[82] #[83] 구 칼링컵[84] 2005.12.21#[85] 2002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 2006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86] 총 4회로 2002년 포르투갈, 2006년 프랑스, 2010년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선정되었으며, FIFA 월드컵 역대 공동 7위이자 아시아 대륙에선 혼다 케이스케와 공동 1위의 기록이다. 랭킹[87] 21세 3개월 19일#[88] 2004-05 시즌 에레디비시, KNVB 베이커[89] 5승[90] 3골로 안정환, 손흥민과 타이 기록[91] 2005.05.05#[92] PSV의 팬인 막스 베르스타펜의 응원가도 이 곡이 원곡이다.[93] 박지성은 이미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한국 축구에 있어서 문제인지를 충분히 알고 있다. 다만, 저 표현은 박지성이 상당히 에둘러서 말한 것이다. 박지성은 대한축구협회의 중요한 직책인 유스 전략 본부장을 맡고 있고 그런 직위를 가진 상태에서 방송으로 섣불리 자기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탓이라고 말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94] 고종수, 고창현 등 김호의 아이들 중 상당수를 직접 스카우트한 사람이다.[95]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홍명보의 자서전 내용을 통해 납득할 수 있다. 홍명보가 나온 동북고는 당시나 지금이나 축구 명문으로 명성이 있었다. 그런데 기수 차이가 얼마 안나는 한두학년 위의 선배들이 그 명문 동북고를 졸업하고도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고 서술한다. 이를 들어 홍명보는 "대회 성적이 저조했기 때문에 프로팀은 고사하고 불러주는 대학교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수원공고보다도 훨씬 명문에 속하는 동북고마저 대회 성적이 낮으면 대학교조차 진학하기 힘든데, 그보다 더 지명도가 낮고 심지어 대회 성적마저 저조했던 수원공고에서 좋은 대학을 진학하기 쉬웠을 리가 없다.[96] 명지대 김희태 감독과 허정무 감독이 바둑을 두다 뽑았다는 얘기도 있었다.영상[97] 히딩크와 퍼거슨은 박지성의 전 소속팀과 현 소속팀 감독이라서 당연했다지만 크루이프는 말 그대로 뜬금없었는데 PSV와 AC밀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에서 보여준 박지성의 플레이가 마음에 든다면서 보증인 서명을 해 준 것.[98] 위 기사에서도 박지성이 백승호에게 K리그행을 권유한 조언에 대한 것만 실체적인 것으로 언급했고 나머지는 추측의 영역이다. 김상식 감독이 박지성 어드바이저에게 어느 정도 권한을 주었을 것이고 협상의 마무리를 맡길 것이다 라는 추측이지 이것이 실제로 백승호 영입에서 박지성이 최종적으로 모든 결정을 내린 것인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99] 코로나19 상황으로 국내 입국이 힘든 상황이며 설령 입국할지라도 2주 정도의 자가 격리 기간을 고려하면 사실상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위르겐 클롭 감독은 고향인 독일에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독일의 봉쇄 조치로 인해 귀국하지 못해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심지어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이강인조차 자가 격리 면제 받는 대신 이동 제한이 걸려있어 유상철 감독 장례식에 가질 못했다.[100] 2008년까지는 ‘3월생 ~ 다음 해 2월생’이 같은 학년이었다.[101] 원칙적으로는 둘이 동갑이지만, 운동부는 주로 학번으로 서열을 정리한다. 그래서 자신과 나이가 같거나 어려도 앞학번이면 선배고, 자신과 나이가 같거나 많아도 뒷학번이면 후배인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102] 야구부가 3학년 때부터 받아줬다면 야구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까운 야구 인재 하나를 날렸다[103] 그리고 절친 에브라는 원래 Evora였는데 o를 빼먹어서 Evra가 되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이런거까지 20년지기 친구 답게 닮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104] 이때 박지성이 위닝 박지성을 보고 "아... 박지성 골을 못 넣네...?"라고 말하는 짤이 유명해지기도 했다.[105] 좋은 놈 = 박지성, 나쁜 놈 = 에브라, 이상한 놈 = 테베즈.[106] 아내가 배우인 카토 로사다.[107] 당연하지만 한국에서는 "박지성은 엄마, 아빠가 키웠다"라고 말한다.[108] 훈련할 때 에브라, 박지성, 테베스가 항상 나란히 있었기에 알아챌 수 있었다고.[109] 다른 불자들에게는 몰라도 청년불자들에게는 출가자 만큼이나 은사스님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삶의 방향을 지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110] 출처는 <프리미어를 보러가다>[111] 하지만 들리는 이야기론 2005년 맨유로 막 이적했을 당시 구단 동료 에드빈 판데르사르에게 네덜란드어로 인터넷 설치를 도와달라 했다 한다.[112] 호날두의 맨유 1기시절 대표적인 별명이며, 올드 맨유 현지팬들도 자주 로니라고 부른다. 다른 예시로는 웨인 루니의 Wazza.[113] 똥군기를 옹호하던 왕기춘은 결국 여러 사건사고들로 인해 뻑하면 구설수에 오르더니 결국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을 일으켜 구속되었고, 2021년 7월 29일 대법원에 의해 징역 6년이 확정됐다. 개인적으로도 대한유도회에 의해 삭단 징계를 받은 것은 물론 영구제명도 때려지면서 하늘이 두쪽 나지 않는 한 유도계에 절대로 컴백할 수가 없게 되었고 연금도 박탈당했다.[11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가 주장일 때를 기점으로 후배들을 괴롭히는 군기 문화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러한 마인드는 박지성의 다음 주장들이었던 기성용 - 손흥민에게도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기성용은 특유의 성깔 있는 모습을 보였다가 주장이 되고 나서는 최대한 자제하고 팀이 부진할 경우 자신을 먼저 자책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차후에 이강인이나 이동경 등 U-20 출신 젊은 선수들이 부담없이 성인 대표팀에 쉽게 적응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네딘 지단 같은 레전드급 선수를 생각해 보면 공감이 갈 것이다. 지단은 조용한 성격이면서도 팀워크가 오합지졸이었던 프랑스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였다. 지단의 은퇴 후 2010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카리스마를 가진 지네딘 지단이 떠나자마자 그야말로 사분오열되고 최악의 팀워크를 보여주면서 심하게 망했다.[115] 당시에는 교차로 서쪽으로 통하는 곡선로가 아직 개통하지 않았다. 영통 아이파크 캐슬과 반정 아이파크 캐슬이 입주한 2022년 하반기에 개통. 동시에 교차로 이름도 개칭되었다.[116] SBS 박지성, MBC 안정환, KBS 이영표.[117] 그 디펜스도 78이어서 조직력 아이템을 붙여 보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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