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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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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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대의

FW
유상철

MF
신태용

MF
이천수

MF
안드레

MF
서정원

DF
김현수

DF
김태영

DF
최진철

DF
홍명보

GK
이운재

200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주영

FW
마차도

MF
김두현

MF
이천수

MF
이호

MF
조원희

DF
임중용

DF
유경렬

DF
조용형

DF
김영철

GK
김병지


파일:이천수.jpg

이천수
(李天秀 / Lee Chun-Soo)

생년월일

1981년 7월 9일 (37세)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출생지

인천광역시 계양구[1]

본관

전주 이씨 양녕대군[2]

신체 조건

172cm, 65kg, A형

가족

부모, 2남 중 막내, 배우자 심하은, 딸 이주은

종교

개신교[3]

포지션

공격수[4]

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14번[5]
울산 현대 호랑이 - 10번

유소년 클럽

부평동중학교 (1994~1997)
부평고등학교 (1997~2000)
고려대학교 (2000~2002)

프로 입단

2002년 울산 현대 호랑이

소속 클럽

울산 현대 호랑이 (2002~2003)
레알 소시에다드 (2003~2005)
CD 누만시아 (2004~2005, 임대)
울산 현대 호랑이 (2005~2007)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7~20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8, 임대)
전남 드래곤즈 (2009, 임대)
알 나스르 FC (2009~2010)
오미야 아르디자 (2010~2011)
인천 유나이티드 (2013~2015)

국가대표

78경기 10골

별명

풍운아

1. 개요[편집]

풍운아를 품은 우리는 행운아


이천수의 은퇴식에서 인천 팬들이 걸었던 걸개의 문구


킥천수
그라운드의 악동.개과천선의대가
레알 마드리드 아니에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출신 JTBC 축구 중계 해설위원이자 방송인.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2.1.1. 프로 데뷔 이전[편집]

고등학교 시절 이미 전국구 선수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고교 축구계는 명실상부한 부평고 천하였는데, 부평고 같은 학년 선수인 이천수, 최태욱, 박용호 셋을 일컬어 부평고 귀각 3인중이라 했다. 여담으로 이들의 1년 후배가 김정우. 또한 이들 넷은 그대로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서 뛰면서 8강을 달성했다. 이 때에도 특유의 독특한 성격은 유명했던 것으로, 3학년때 교육감배 대회 운봉고전에서 다리부상으로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팀이 너무 못뛰어서 감독에게 경기 출장을 제의했으나 거절당하자 그 자리에서 깁스를 벗어던지고 나가서 결승골을 넣고 1:0으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다소 근성 스포츠물 만화같은 일화가 있다.(...)

고려대 시절인 2001년 유벤투스 FC로부터 입단 제안을 받았다고 했지만 실제로 이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결렬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프랑스LOSC 릴에서도 테스트를 받았다.

대표팀 소집이 들지 않자 프로가 아니라 대학생 신분이라 관심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 이천수가 고려대 감독에게 읍소해 성사한 것으로, 이 때 네덜란드 전지훈련을 하던 히딩크가 이천수를 부르자 합류한 이후 시차적응이 끝난 유리한 상황에서 체력훈련 1등을 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며 눈도장을 따내어 자연스럽게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2.1.2. 울산 현대 호랑이 1기[편집]

2002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한 뒤 2002년 K리그 준우승에 크게 공헌하여 신인상을 받게 되었고 2002년 FIFA 월드컵에서의 활약과 K리그에서의 활약을 종합하여 AFC 올해의 신인상에 선정되었다

2.1.3. 레알 소시에다드[편집]

파일:attachment/Lee_Real_Sociedad.jpg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3년 7월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했다. 레알 소시에다드는 2002-2003시즌 깜짝 준우승하여 다음 시즌준비를 위해 이천수를 영입하였다. 당시 레알 소시에다드에는 세르비아 출신 다르코 코바체비치터키 출신 니하트가 43골을 합작하였고, 미드필더에는 국내에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신인이었던 사비 알론소가 있었다.[6] 스페인 언론에서도 이천수를 코리안 혀컴 베컴이라고 소개하며 활약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코너 위컴만도 못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천수 특유의 패턴인 데뷔전 좋은 활약 후 점점 떨어지는 경기력으로 적응 실패, 향수병 등으로 결국 실패로 끝났고 다음 시즌 CD 누만시아로 임대되었다. 여담으로, 당시 소시에다드 입단 인터뷰에서 "몸값 올려서 레알 가는 게 꿈"이라 당당히 입을 털었던 흑역사가 있다. 덕분에 팬과 구단관계자의 반감을 사버린 것은 당연지사.

2.1.3.1. CD 누만시아 (임대)[편집]

하지만 CD 누만시아에서도 부진을 떨치지 못해 결국 2005년 3월에 국내로 복귀했다. 라리가 통산 0골.

2.1.4. 울산 현대 호랑이 2기[편집]

해외진출이 폭망하고 2005년 울산 현대로 복귀하여 바로 2005 K리그 MVP를 수상. 풀시즌 40여 경기를 소화한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17경기(정규시즌 14경기,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10골 7도움을 기록한 이천수가 MVP로 선정되었다. 이 시즌 울산은 수비와 조직력 면에서는 탄탄했지만 경기의 흐름을 바꿀 선수가 없었는데, 시즌 중간에 투입된 이천수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며 정말 리그의 수준을 뛰어넘는 기량을 보여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기에, 이 시즌 울산의 우승은 이천수가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즌 절반을 소화하고도 MVP에 선정될 수 있었다. 이 시즌의 이천수는 말 그대로 사기유닛이라 불리며 K리그를 평정했다.

역대 K리그 단일시즌 최고의 선수 5명

2.1.5. 페예노르트 로테르담[편집]

파일:attachment/Lee_Feyenoord.jpg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7-08 시즌 송종국이 뛰었던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이적해서 데뷔경기 엄청난 활약을 펼쳤으나[7] 폼이 점점 떨어져, 여전히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다. 당시 네덜란드와 한국을 오가면서 향수병이다 태업이다 말이 많았는데, 훗날 밝혀진 바로는 국내에서 사기를 당해 입단 계약금을 몽땅 날리는 바람에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8][9] 이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한창 적응해야 할 시간에 저러고 있었으니 네덜란드 언론이나 페예노르트 구단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2.1.5.1. 수원 삼성 블루윙즈 (임대)[편집]

결국 2008년 1년 임대로 K리그 수원으로 복귀했는데, 울산 시절 '사기 유닛'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인 데다 설상가상 부상까지 당하며 팀 전력에서 제외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다수 축구팬들은 지금 당장은 네덜란드 진출 실패 여파로 이천수의 활약상이 저조하지만, 머잖아 심신을 추스리면 예전 기량을 되찾으리란 믿음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수원의 코칭 스텝에게 항명 파동을 일으킨다. 부상을 핑계로 팀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면 삼성 스포츠과학 지원실에서 재활훈련을 하라는[10] 팀의 지시조차 거부했다. 거기에 문민귀가 이천수에게 폭행당해 전치 12주로 아주대병원에 눕게되자 결국 차범근 감독은 분노해 이천수를 임의탈퇴 공시했다.[11]

2.1.5.2. 전남 드래곤즈 (임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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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초기에는 박항서 감독의 지휘 아래 예전 기량을 찾을 뻔했지만, 6월 후반 들어 계약서 조항 자작극이나 주먹다짐 등 평지풍파가 끊이지 않다 소동 끝에 임의탈퇴가 되어버렸다. 자세한 것은 문서 하단 전남 부분으로.

울산 현대 시절에는 김정남 감독체제의 공격의 핵이었다. 울산이 그저 수비를 단단히 굳히고 있으면 몇 안 되는 인원을 이끌고 나가 적의 진영을 붕괴시키고 골을 넣은 후, 그저 잠궈버리는 수비축구의 선봉장. 해외에서 돌아온 시즌에는 리그 절반만 뛰고도 울산에게 리그 우승을 가져다주고 본인은 리그 mvp를 차지한다. 반면, 수원 팬들에겐 애증이 섞인 선수. 비싼 돈을 주고 데려왔는데 제대로 활약도 못 하고 전남으로 가버려서 그렇다고 한다. 그리 대단한 애증은 아닌 게 얼마 뛰지도 않았고 수원은 그런 선수들 트럭으로 담아도 트럭이 작으면 트럭이 비좁을 지경이다. 첨언하자면 이천수라는 선수에 대해서 '증'만 크게 가지고 있던 수원팬들이 막상 이천수가 수원에 오게 되니 자기 선수 욕하긴 뭐하고 '그래 뭐가 어쨌던 네 실력은 인정. 사실 우리가 욕했던 것도 네가 실력이 뛰어나서 질투한 것도 있다' 정도로 정신 위안(?)을 시전하며 멘탈 정리를 하던 와중에 문민귀 폭행 사건 후 임의탈퇴 되자 '아 그냥 꾸준히 욕할 걸 저딴 놈 뭐하러 받아들여줬지' 정도의 멘붕을 일으켰다.

전남으로 이적한 후에도 여러가지 사건 사고에 휘말렸으나, 준수한 활약으로 역시 이천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2009년 6월 이천수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고 마는데... 그 과정이 복잡하지만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남에서 뛰는 도중 사우디 클럽인 알 나스르에서 이천수에게 오퍼가 왔다. 한창 6강 싸움 중이던 전남은 이천수를 잔류시키고자 했고, 이에 불복한 이천수는 전 소속팀 페예노르트와의 이면 계약을 이유로 알 나스르로의 이적을 확정 짓는다. 이천수를 보내게 된 전남은 마지막으로 고별경기를 뛰어달라고 부탁했으나 이천수는 거부한다. 명목은 사타구니 부상이었으나, 이천수의 몸상태를 알고 있는 김봉수 코치가 이의를 제기하자... 이천수는 코치진과 맞짱을 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몸상태가 아니라 이적이 확정돼서 테스트 때문에 경기 안뛰는거라는걸 다 알고 있는 일이고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서 경기 뛰게 하지 말라고 공문까지 보냈는데 코치진이 일방적으로 성질낸것....맞짱이란 표현 보다 코치 쪽에서 컵을 벽에 투척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이천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2군 캠프로 옮겼다는 반론 역시 있다.

이천수는 그 날로 숙소를 이탈했고, 전격적으로 알 나스르로의 이적을 확정지었다. 그 후 이천수의 에이전트였던 김민재 대표의 이면계약은 없다는 폭풍의 기자회견이 나오며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 이중계약도 아닌 거짓계약으로 이적을 한 이천수는 임의탈퇴 처분이 내려지지만...사우디아라비아에서 뛰게 되었으니 당사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듯 하다.[12]

2.1.5.3. 알 나스르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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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나스르 시절의 이천수

그리고 이천수는 알 나스르에서 임금 체불을 이유로 다시 무단이탈 이후 J리그 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한다. 위의 사진에서도 그렇고(...) 힘들었던 모양.

2.1.5.4. 오미야 아르디자[편집]

2011년 J리그오미야 아르디자와 계약이 만료된 후 2013년 초까지 무직 상태였다.

끊임없이 K리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으나, 임의탈퇴 조치를 한 전남구단은 입장 변화가 없었다. 지금도 전남 구단과 이천수와의 위약금 문제 재판은 현재 진행형이다. 일단은 프로연맹에서도 사인한 에이전트가 내야하는 것이기에 그 에이전트는 손해를 보기 때문에 징계를 내리지 않는다는 기사가 있었고, 재판도 그리 진행되었다. 진짜 위약금이 발생할 상황이라면 계약당사자인 페예노르트에 물려야겠지만 문제가 없었고 그걸 이천수에게 물린다는 계약내용 자체가 심각하게 문제가 있던 것이다.

K리그 복귀는 요원한 상황에서 이천수도 해외리그 재진출을 노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잘 안되는 듯 하다. 2012년 7월 7일 QPR에서 아시아 선수를 영입한다고 공언하여 알싸등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천수가 아닌가 말이 있었지만... 그 대상은 박지성이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카더라였지만 꽤나 반향이 있었다.

2012년 9월 호주 클럽에서 오퍼가 왔지만 K리그에서 용서받기 위해서 K리그에서 다시 뛰고 싶다고 밝히면서, K리그계에서 이천수 논란을 재점화했다(참고). 이후 10월에 전남구단 홈 경기가 열린 날 경기장을 방문, 관객들에게 사과의 인사를 전했다. 이천수 본인은 용서받을 때까지 홈그라운드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와서 사과하겠다고 말했는데, 축구인들 상당수는 '진정성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평하고 있다.(링크)

그러다가 마침내 2013년 2월 5일. 마침내 K리그가 다시 그를 받아주게 되었다. 임의탈퇴를 풀어 주기로 결정된 것. 관련기사

그리고 2013년 2월 22일, 전남 드래곤즈도 그의 임의탈퇴 공시를 해제하며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고향 팀인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 등번호는 10번.

2.1.6. 인천 유나이티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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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1. 2013 시즌[편집]

4년만에 드디어 K리그에 복귀하는 만큼 각오가 남다른 모양이다. 그렇게 놀기 좋아하던 선수가 아버지가 주시는 술도 거절하는 등 절주를 선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방황하던 기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심적으로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거기에 K리그에 복귀한 2013년에 득녀까지 한 상황. 오로지 가족과 축구에만 모든걸 집중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2013년 3월 31일 K리그 클래식 4R 대전 시티즌과의 홈경기에서 교체선수로 복귀전을 치렀다. 4년 만에 돌아온 선수치곤 나쁘지 않았다는 평. 그러나 팀은 2-1로 패배했다.

4월 16일에 치른 7R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해 많은 축구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전성기 때를 방불케 하는 활약을 펼쳤다. 데드볼 상황에서의 킥이 다소 부정확했다는 게 흠이지만, 지는건 죽는것보다 싫다는 특유의 악바리 근성과 공수 양면에서 엄청난 활동량으로 종횡무진 경기장을 누비며 '역시 이천수 ㄷㄷ'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인저리 타임에는 골대 하단을 노린 강력한 중거리슛을 때렸지만 김병지의 선방으로 데뷔골 무산. 결과적으로 경기는 0-0으로 비겼으나 본인의 크랙 기질을 유감없이 선보인 승부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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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뒤 전남 서포터석을 찾아 깍듯이 인사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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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정 온 전남 서포터들은 그에게 박수로 화답해주었다.

약 2년 간의 공백기가 있는데다 30대 초반이기 때문에 보통은 전성기 시절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지만, 경기에 출전할수록 점점 경기력이 올라갔기에 팬들의 기대는 높아졌다. 4월 20일 8R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홈경기에서 역전골을 어시스트하면서 팀의 막판 역전승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이는 2009년 5월 23일 성남 일화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이후 1,428일만의 공격포인트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진짜 친정팀이라 할수있는 울산 현대와의 K리그 클래식 9R 경기에서도 0:1 지고있던 상황에서 동점골을 어시스트.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서서히 예전 전성기 시절의 폼을 끌어올리는 중.

이날 역시 이천수는 전남전과 마찬가지로 정중히 친정팀의 팬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고 울산 홈팬들도 'K리거 이천수를 보고싶다'라는 걸개까지 내걸며 이천수의 K리그 복귀를 축하하고 격려해주었다.

다음 상대는 어찌보면 '이천수 사건'의 모든것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남, 울산, 수원까지 1달동안 연속해서 이천수의 과거와 밀접하게 얽혀있는 팀들과 대결하는게 흥미로웠는데 전남팬,울산팬들에게 용서를 받았으니 이제 됐다 생각했으나 더 큰 산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역시나 수원 홈팬들의 격한(...) 환영을 받으며 호된 신고식을 치뤘다. 이 경기에서 이천수는 90분 폴타임 출전하며 고군분투 했으나 팀은 0:1로 패배했다. 이후 팀동료 김남일과 함께 수원팬들을 찾아가 인사를 하며[13]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사를 어느정도는 청산하며 마음의 짐을 덜었다.[14]

친정팀과의 대결 이후 마음이 가벼워진건지 5월 12일 K리그 클래식 11R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는 거의 전성기 시절을 방불케하는 시즌 최고의 경기력으로 시종일관 골문을 두드렸으나 이 날 MVP에 선정된 박준혁 골키퍼의 미친선방과 골대불운속에 아쉽게도 득점은 올리지 못했다.

5월 19일 K리그 클래식 12R 강원 FC에서는 전반전 프리킥 상황에서 안재준의 헤딩골을 어시스트 하며 시즌 3호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원정경기를 나서는 강원의 빗장수비탓에 전체적으로 경기력이 좋지 않았는데[15] 강등권에 처한 상황에서 처절한 수비를 보여준 강원을 상대로 꾸역꾸역 공격포인트와 승점을 챙기는 이천수의 클래스를 볼수 있었던 경기였다.

5월 25일 K리그 클래식 13R 부산 아이파크전에서 드디어 터진 시즌 첫 골을 포함해 1골 1도움 맹활약하며 팀의 3:0 완승을 이끌어냈다. 이로서 인천은 6승 5무 2패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무리. 기분좋게 휴식기를 보낼수 있게 되었다.

6월 딸을 득녀하며 그도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덕분에 올스타전에서 득녀세레모니를 하였다. 후반기가 시작됐지만 급작스런 현역 복귀로 몸이 적응을 못했는지 발목 부상이 도져 줄곧 출전을 못하고 있다. 전반기부터 통증이 계속 있었다고. 일단은 이석현을 비롯한 후배선수들에게 자리를 맡기고 차분히 다시 몸을 만드는 중이다.

8월 3일 K리그 클래식 21R 울산 현대전에서 오랜만에 다시 복귀전을 가졌다. 과감한 움직임으로 전반전 골대를 한번 맞추는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 날 경기를 지배했던(...) 심판의 벽을 넘지 못하고 2:2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옛날 성격은 못버렸는지 참다참다 주심에게 판정에 관해 항의를 하다 경고를 받기도 했다.

8월 10일 K리그 클래식 22R FC 서울과의 경기에도 선발 출전. 전반전 설기현의 골을 어시스트 하며 K리그 통산 32번째로 30-30 클럽에 가입을 했다. 다만 경기는 아쉽게도 2:3 인천의 패배.

8월 28일 K리그 클래식 25R 수원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오랜만에 멋진 활약을 보이며 3:1 완승. 상위 스플릿 리그 진출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직접적인 어시스트는 없었지만 날카로운 프리킥과 넓은 시야로 사실상 두 골을 만들어낸거나 다름없없다.

이후 인천 유나이티드가 상위 스플릿 라운드에 올라간 뒤에도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선 골까지 기록하였다. 하지만 아래에 후술할 음주 폭행 논란으로 10월 6일 FC 서울과의 홈경기가 그의 2013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2013 시즌 총 기록은 19경기 출전 2골 5도움.

2.1.6.2. 2014 시즌[편집]

인천 유나이티드가 시즌 전체적으로 강등권에 위치하면서 이천수 본인도 부진한 시즌이었다. 28경기 1골 3도움. 아무래도 나이가 있어서인지 전체적인 체력이 떨어졌고, 본인의 다른 장점인 킥력도 약해졌으며 이천수 하면 떠오르는 미친 활동량이 크게 줄었다는 평가가 있다. 그나마 돌파력은 준수했고 어떻게 어떻게 경기장 끝까지 공을 몰고 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2.1.6.3. 2015 시즌[편집]

시 지원금이 줄어들어 재정난이 심각해진 인천에서 고액연봉자로 분류되어 있었고, 계약기간도 끝난데다 중국 중동 쪽에서 고액 오퍼도 오고 다른 팀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연봉 삭감을 감수하고 인천과 재계약했다. 본인 말로는 "내가 한참 어려운 시기일 때 인천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줬는데, 이제 와서 팀이 어렵다고 외면할 수 없다"라고 재계약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2015 시즌을 앞두고 인천이 감독선임으로 난항을 겪으며 감독없이 동계시즌을 허숭세월로 보내고 있을 때 자체적으로 후배들을 모아 연습을 시키는 등 팀 최고참으로서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이러다 보니 대다수 국축팬들은 이제야 나이먹고 철이 들었다는 반응으로, 때마침 뒤통수를 치고 갑자기 은퇴한 같은 팀 전 동료 설기현과 멘탈 면에서 많이 비교되고 있다.

개막 첫경기에서 날카로운 패스로 김도혁의 첫 골을 어시스트하여 시즌 첫 어시스트와 K리그 클래식 2015시즌 첫 득점 기록에 일조한다. 이후 체력이 떨어져 풀타임을 소화하진 못하지만 지속적으로 출장하고 있으며, 케빈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골로 연결하기도 했다. 전체적인 경기력도 저번 시즌에 비해 많이 올라왔으며, 잘 풀리는 날에는 어느 정도 과거의 사기유닛 시절을 보는 듯한 돌파력을 보여주고 있다.

5월 4일에는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1억원을 기부했다.

8월 2일 현재 중퇴했던 고려대학교에 재입학 신청을 하였고, 재입학 허가가 받아들여졌음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나이를 속일 수는 없는지 시즌이 지나면서 한계점이 다시 보이고 있다. 돌파력과 별개로 이후의 슈팅이 막히는 경우가 많으며, 노쇠화로 인한 부족한 체력은 항상 교체카드 하나를 잡아먹는 상황이다. 세트피스와 킥력이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애매해졌다. 이천수의 킥이 돋보인 상황은 전남 드래곤즈 상대로 케빈 오리스의 득점을 어시스트한 것, 그리고 대전 시티즌 상대로 터뜨린 프리킥 골 정도. 무엇보다도 부상 빈도가 높아져서 출전 빈도도 줄었다. 최근에는 박세직이 주전으로 나오는 상황. 그럼에도 경험 많은 이천수의 존재는 인천에게 보탬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인천은 시즌 초반 강등후보라는 예상을 뒤엎고 마지막까지 제주와 상위스플릿 진출을 놓고 경쟁했으나, 아쉽게 팀은 상위스플릿 진출에 실패. 그리고 이천수 역시 부상으로 팀에서 이탈하면서 서울과의 FA컵 결승마저 관중석에서 응원하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팀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인천의 FA컵 우승을 바랬으나 결국 준우승.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2.1.7. 현역 은퇴[편집]

그리고 11월 5일 이천수는 JTBC 뉴스룸에 나와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16] 멘탈갑으로 유명했던 선수들이 보통 은퇴할 때도 욕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천수는 말년에 보여준 철든 모습으로 인해 훈훈하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17] 다른 멘탈갑 선수류들과 같이 실력은 정말 좋았는데... 하면서 아쉬워하는 팬들도 많고.

은퇴하면서 "천재가 아닌 악바리로 팬들에게 기억되길 원한다."는 말을 남겼다.

은퇴후 바로 JTBC의 축구 해설위원을 맡기로 했다. 다만 해설뿐만 아니라 방송인 활동도 염두에 두는 듯하는데, 이영표와 안정환이 해설과 방송인을 겸하는걸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건 없다. 어찌됐건 평소 잘 보여주던 입담을 본다면 딱 맞는 직업이라는 팬들의 평가. 그의 파란만장했던 선수 시절을 생각해서라도 그의 제 2의 삶이 순탄하기를 진심으로 빌어 주자.

그리고 인천 유나이티드의 유소년(U-12) 총괄 디렉터를 맡는다고 한다.

은퇴 직전에 태국 파타야 유나이티드[18] 등 태국리그 여러팀에서 오퍼가 들어왔었다. 돈도 넉넉하게 줄수있는 구단들이었지만 지난 알 나스르에서의 경험이 걸려서인지 거절하고 고향팀 인천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는걸 고른다.

11월 28일 시즌 마지막 홈경기가 은퇴 경기가 될 예정.. 근데 그 상대가 하필 전남 드래곤즈 (...)

하지만 부상이 낫지 않아, 결국 은퇴 경기를 못 치르고 은퇴식으로 대체했다. 이천수 본인도 김도훈 감독도 굉장히 아쉬워했다고. 그래도 마지막에는 인천 시민들과 팬들에게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인천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로 은퇴식을 장식했고, 서포터즈 측에서도 "풍운아를 품은 우리는 행운아"라는 걸개로 이천수를 환영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풍운아의 마지막을 배웅하게 된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했던 악동이었지만 미워할 순 없던 최고의 풍운아가 그라운드를 떠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커리어는 항상 비난과 조소에 휩싸여 있었지만 마지막만큼은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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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국가대표 경력[편집]

2.2.1.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1999년 청소년 대표팀 주전으로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방가반두 컵[19]에 나가 준우승을 거둬들였다. 이 당시 태국 올림픽 대표팀을 상대로 7:2 대승을 거둬들였는데 이 경기에서 4골을 이천수가 넣었다. 당시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까지 이기고 결승에서 일본 JFL(실업리그)팀에게 아쉬운 2:3 패배로 마무리했지만 이천수는 8골을 기록하며 득점왕 및 대회 MVP를 차지했다. 이때부터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밀레니엄 특급" 이라는 별명까지 생기기도 했다.

2.2.2.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2.2.1. 2000 시드니 올림픽[편집]

올림픽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오른 것은 2000년(당시 19세). 특히 시드니 올림픽 본선 조별리그 2차전 모로코와의 경기 때의 일화가 나름 재밌는데, 전반 종료 직전에 한국이 페널티킥을 얻고 주장을 비롯한 팀내 고참들이 모여 누가 찰지를 정하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누군가가 아무말 없이 공을 들고서 페널티 지역으로 걸어가길래 다들 황당해 하며 쳐다보니까 이천수였다.[20] 그리하여 이천수가 페널티킥을 찼는데 골키퍼의 선방에 걸려서 튕겨나온 볼을 다시 차넣어 1:0 이 되었고 그대로 결승골이 되면서 한국은 스페인과의 1차전 0-3 패배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2승 1패를 거뒀음에도 골 득실에 밀려 8강에 탈락하였다.

이영표의 말에 따르면 처음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부터 비범했단다. 이천수가 합류할 당시 대표팀은 한일전에서 패배한 상태라 분위기가 대단히 무거웠다. 그런데 합류 직후 선배 선수들과 대화하던 도중 한일전 이야기가 나오자 "어떻게 일본에 질 수가 있냐. 내가 있었으면 이겼다!" 라고 말했다고......

2.2.2.2. 2004 아테네 올림픽[편집]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 이란 원정 경기 결승골을 뽑아 냈는데, 아직 A대표팀도 2무 3패로 한번도 이기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대표팀을 통틀어 이란 아자디 원정에서 결승골을 넣어본본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또한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서도 출전하였으며 파라과이와의 8강전에서는 0:3으로 뒤진 후반에 중거리슛과 페널티킥으로 2골을 혼자 만회했으나 끝내 패배. 경기 종료 직후 주저 앉아 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서 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2.2.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2.3.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편집]

2002년 월드컵에서는 주전은 아니었지만 자주 투입되며 스피드와 체력을 이용해서 수비진을 자주 흔들어줬다. 폴란드전에서는 유상철을 대신해 후반전에 투입되었고 미국전에서는 부상당한 박지성을 대신해 전반전에 투입되어 활약했다. 패널티킥이 선언되자 자신이 차려 했지만 이을용이 순번이라서 찼지만 실축(...).그리고 안정환의 동점골 때 아폴로 안톤 오노 역할을 하기도 했다.이탈리아전과 스페인전에서도 교체로 활약했다.그리고 이탈리아전에서는 파올로 말디니에게 싸커킥을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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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독일전에서는 부상이 있던 안정환설기현을 대신해 차두리와 선발로 나서서 거의 골과 다름없던 슛도 날렸으나 올리버 칸에게 막혔다. 박지성이나 안정환 등처럼 눈에 띄는 공격포인트는 없었지만 특유의 패기 넘치는 플레이로 활력을 불어 넣는데 충분했다.

2.2.3.2. 2006 FIFA 월드컵 독일[편집]



2006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 2002 한일 월드컵 때의 후보로서의 모습과 달리 월드컵 데뷔 첫 골인 토고전 프리킥 골을 비롯해 한국이 출전한 세 경기 모두에서 굉장한 활약을 보여주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첫경기 토고전은 결승골을 넣은 안정환에, 두번째경기 프랑스전은 동점 골을 넣은 박지성에, 세번째 경기 스위스전은 심판 판정이 잘못된것은 없었지만 오심이라는 명목하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경기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본다면, 2006년 국가대표팀의 실질적 에이스는 분명 이천수였다. [21] 여담으로 스위스와의 경기가 끝나고 탈락이 확정되면서 그라운드에서 엎드려 울어 또다시 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2.3. 기록[편집]

2.3.1. 울산 현대 호랑이[편집]

  • 리그컵 준우승 : 2002, 2005

  • K리그 준우승 : 2002

  • K리그 우승 : 2005

  • 슈퍼컵 우승 : 2006

  • A3 챔피언스컵 우승 : 2006

  • 리그컵 우승 : 2007

2.3.2. 페예노르트 로테르담[편집]

  • KNVB컵 우승 : 2007-08

2.3.3. 수원 삼성 블루윙즈[편집]

  • K리그 우승 : 2008

  • 리그컵 우승 : 2008

2.3.4. 인천 유나이티드[편집]

  • FA컵 준우승 : 2015

2.3.5.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 아시안 게임 축구 동메달 : 2002

2.3.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 AFC 아시안컵 3위 : 2000, 2007

  • CONCACAF 골드컵 4위 : 2002

  • FIFA 월드컵 4위 : 2002

2.3.7. 통산 성적[편집]

2.3.7.1. 국가대표[편집]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연령

출전

U - 17

0

0

U - 20

13

20

U - 23

27

11

A 대표

78

10

종합기록

118

41

2.3.8. 주요 개인 수상[편집]

  • 춘계대통령배 도움왕 : 1998

  • 추계연맹전 득점왕 : 1998

  • 백운기 득점왕 : 1999

  • 말레이시아 방가반두 컵 득점왕 : 1999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 2002

  • 체육훈장 맹호장 : 2002

  • K리그 신인상 : 2002

  • K리그 도움왕 : 2002

  • K리그 베스트 XI : 2002, 2005

  •  아시아 올해의 청소년 선수상 : 2002

  • 제18회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프로스펙스 특별상 : 2004

  •  프로축구 골든볼 골든슈 시상식 - 월간 (9, 10월) 골든볼 : 2005

  • K리그 MVP : 2005

  • AFC 아시안컵 베스트 XI : 2007

  • 제24회 베스트 드레서상 최고의 베스트 드레서 스포츠 부문상 : 2007

2.4. 플레이 스타일[편집]



빠른 스피드와 크로스, 킥 능력이 좋은 2선 공격수
청소년 대표 시절 최태욱과 함께 투톱으로 뛰며 당시 한국 축구계에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작은 체구에 뛰어난 스피드를 가졌으며 특히 공 잡고 방향전환하면서 순간적으로 가속을 붙이는 능력이 좋았다. 거기에 발재간, 정교한 크로스와 킥 능력 등으로 국가대표 경기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공격 포지션은 대부분 소화했지만, 가장 파괴적이던 위치는 쳐진 스트라이커. 이후 국가대표에서는 작은 키로 인해 최전방 공격수보다는 주로 측면 공격수로 뛰게된다. 또한 정지된 상태에서 킥 능력은 세계적이었으나, 러닝 크로스의 성공률은 생각보다 평범하다.[23]

그럼에도 이천수가 한때 박지성과 비교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엄청난 활동량을 이용한 뛰어난 오프더볼 움직임과, 순간 속도를 이용한 돌파, 침투능력, 위협적인 중거리 슛 덕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골 욕심으로 말도 많은데, PK나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상황에서 전담 키커를 무시하고 자신이 공을 차려는 경우가 빈번하다. 프리킥의 경우 욕심을 내는 편이나 자신보다 잘 찬다고 인정하는 선수라면 굳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지만 이천수의 킥 능력은 아시아 원톱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고 이을용, 고종수 등 톱클래스 왼발잡이 키커들을 제외하면 당시 국내선수 중 이천수만큼 프리킥을 잘차는 선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에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24] PK의 경우 2006년 A3 대회에서 실축하고 나선 다시는 차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울산 현대는 그 경기에선 PK 실축으로 2-3으로 패했지만, 다음 경기인 알 샤밥전에서 이천수를 앞세워 6-0으로 승리하고 우승했다. 두번의 유럽진출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두번의 울산현대 시절의 이천수는 그야말로 언터처블.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멘탈적으로도 무시무시한 선수였는데, 사건 사고에 자주 연루되는 악영향도 있지만 그 똑같은 멘탈이 필드 위에서는 흔히 전설로 얘기되는 파올로 말디니 뒤통수 후려차기[25]나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 PK를 자청하던 모습 혹은 06 월드컵 스위스전에서의 투혼과 눈물처럼 긍정적으로 나타난다. 긍정과 부정 양측면이 국내 선수에게는 유래가 드물 정도로 공히 두드러지니, 이런 류의 멘탈이 거의 천부적이란 걸 생각하면 이 선수의 선수 생활이 끝나감에 이르러서 못내 아쉬운 감은 금할래야 금할 수가 없다. 다행이 말년인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술집 폭행 사건을 제외하고는 정말로 갱생한 듯 사고가 크게 줄었으며, 특히 말년에 고향 팀 인천에 대한 충성심은 당시 설기현의 통수질로 분노가 극에 달한 인천 팬들에게 위안이 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실력은 차이가 있겠지만 안토니오 카사노와 커리어가 묘하게 비슷하다.[26] 또한 체력과 활동량도 최상급.

2.4.1. 게으른 천재?[편집]

동갑내기 축구선수이자 같은 시기에 스타로 떠오른 박지성과 비교되며 '게으른 천재'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노력하는 수재 박지성과 노력하지 않는 천재 이천수. 이러한 비교가 흥하게 된건 두 선수의 축구인생이 상당한 대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천수는 대학 축구 최고 명문인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고, 히딩크와 박지성조차도 박지성보다 이천수가 뛰어나다고 말한 사실 때문에 천재 이미지가 강했고 박지성은 어렸을때부터 축구선수로선 치명적인 평발에다 받아주는 대학도 없었고 천재로 유명했던 이천수와 달리 거의 무명 선수로서 안습한 시절을 보낸뒤 월드컵을 통해 스타가 되며 '노력끝에 성공한 수재' 이미지가 있었던것.

거기다 두사람 다 비슷한 시기에 해외 진출을 했는데, 이천수가 적응 실패 이후 귀국하여 여러가지 스캔들에 휘말리며 일이 꼬인데 비해 박지성은 승승장구하고 성공하여 맨유로 간 이후에도 거의 도닦는 스님 수준의 멘탈을 보였으니 두 선수는 비교될수 밖에 없었다. 스타에서 출발하여 여러가지 스캔들등으로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한 선수와 무명 듣보에서 출발하여 현세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국민적 스타가 된 선수의 대비이니 축구인생 자체로만 놓고보면 딱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게으른 천재vs성실한 수재의 전형이었던것. 또한 이런 저런 스캔들 때문에 안 좋은 의미의 풍운아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천수도 충분히 노력하는 선수였다. 부평고 시절 고교 축구계를 씹어먹던 동갑내기 최태욱에게 실력의 벽을 느끼고, 최태욱을 이기기 위해 미친듯이 연습했다고 한다.[27] 비교대상인 박지성 역시 전국에서 가장 축구 잘하는 초등학생 6명에게 주는 차범근 축구상을 받았을 정도로 매우 재능이 좋았던 선수였고 여러가지 의미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선수였던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평발 + 무명시절로 인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력가로 보였을 뿐이다. 물론 노력가는 맞지만 노력 이상의 재능이 있는 선수였다는 것.

애초에 박지성과 이천수를 재능과 노력의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다. 한국 학원축구를 통해 성장한 선수가 월드컵에서 유럽 최강국들(포르투갈, 스페인)을 탈탈 털었다는 데에서 이미 두 선수는 한국에서 재능과 노력 모두 끝판을 찍은 것이다. 스페인전에서 이천수가 투입되기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명확하다. 20살에 경기 내용을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거 자체가 실력 포텐 모두 최상급이라는 얘기이다. 이 두 선수 중 한 선수는 세계 최고의 감독에게 '미친듯이 공간창출 해내는 월드클래스'라는 찬사를 받고 한 선수는 유럽에서 숱하게 방출된 이유를 찾자면 축구외적인 멘탈관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2002년 선례가 없고 앞으로도 있기 힘든 너무 큰 성과를 거두었고 그 주역들 역시 단숨에 톱스타 반열로 올라갔다. 이는 박지성과 이천수 모두 관련되는 얘기이다. 고참 선수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이제 막 프로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이 한국에서 '영웅' 칭호와 함께 최고 스타반열에 올라간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을 케어해줄 에이전트 시스템 역시 전무했다. 그당시 한국의 에이전트 시스템이라 해봤자 세계적으로 자기 선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줄도 모른채 그저 4강 가고 유럽 강국들을 상대로 깜짝활약을 했으니 유럽에서도 먹힐거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있었고 선수의 유명세를 이용해 광고나 뮤직비디오 출연 등 단기적인 수익에만 열을 올리는 상황이었다. 박지성은 성격 자체가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던 반면, 이천수 자체가 워낙 이고가 강한 선수라 이러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 흠뻑 빠져있었다. 수많은 B급 연예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으며 20살 축구선수 치고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자서전[28], 수많은 TV광고와 예능 출연으로 한국에서의 톱스타로서의 위상을 충분히 즐겼다.

만약 이천수가 한국에서만 뛸 것이었으면 그냥 저냥 스타성있는 선수로 자리잡을 수 도 있었지만, 당시 이천수의 재능은 충분히 탈아시아 급이었다.[29] 에이전트 역시 이천수가 정말 유럽에서 일류 선수 급에 들어가는 줄 알았고 전시즌 라리가 2위였고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레알 소시에다드에 진출시킨다.[30] 그러나 아무리 월드컵 깜짝 스타라고 하더라도 이천수는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자세로 도전자의 자세로 이적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안정환은 '유럽에서 축구를 아예 새로 배웠다,'고 언급할 정도로 당시 한국 축구와 유럽 축구는 수준차가 매우 컸다.

반면 박지성의 경우, 한국에서의 톱스타 대우와 네덜란드에서의 일개 아시아인의 입장 차이를 어느 정도 빨리 받아들였고 도전자의 자세에서 이적을 임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초반에의 부진 역시 부상 여파도 있었지만 유럽 수위리그에서의 완전히 다른 축구를 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도전자의 자세로 부와 명성이 보장되는 J리그 리턴의 유혹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만개하기 시작하면서 03/04 아인트호벤의 역대급 스쿼드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그는 퍼거슨의 콜을 받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진출하게 된다. 거기다 박지성은 같은 팀의 감독인 히딩크가 애정을 가지고 그를 지도했다는 점도 큰 차이였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에게 일반적인 유럽 구단과 감독들이 하는 것 이상의 애정과 관심을 쏟아서 키워냈다. 아는 사람 없는 타지에서 능숙하지 않은 외국어와 냉정한 평가 속에 던져진 이천수와,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지닌 베테랑 감독과 이영표라는 의지할만한 한국인이 함께하고 있던 박지성의 차이는 유럽 적응에 있어서 크게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31]

결국 두 선수의 이러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것은 어린 나이에 너무나 큰 성공 후의 멘탈관리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스포츠 언론인들 사이에서의 중평은, 해외진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적응력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선수 중 이 적응력이 강한 사람이 박지성, 안정환, 설기현 등이고, 약한 사람이 이천수, 이동국, 송종국 등이다. 국가대표에서 보여준 축구 실력적인 측면에서는 결코 해외 리그에서 성패가 이렇게 크게 벌어질 레벨은 아니지만, 시즌준비부터 시작해서 한 시즌이라는 긴 기간 동안 용병이라는 입장과 외로움을 이해하고 사생활관리를 하며 경기력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만드는 것에서 커다랗게 수준 차이가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1월 녹화한 지역민방 프로그램 <토크콘서트 화통>에 출연해 초등학교때 부터 축구를 하면서 체격이 작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을 하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다[32]는 이야기를 전한다. 끈기의 사나이. 목표의식[33]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축구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고한다.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도 '게으른 천재'라는 세간의 평가를 직접 언급했는데, 자신은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다는 주의이며 현역시절 노력파였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천수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와 별개로, 은퇴 후에도 박지성과 비교되며 까이고, 게으른 천재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그의 재능을 보고 기대했는지를 알 수 있다.[34]

2.5. 사건, 사고[편집]

2.5.1. 축구계의 풍운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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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계의 풍운아, 악동 등이라는 별명들이 설명해주듯 심심할 때마다 크고 작은 구설수에 휘말린다. 다음은 이천수의 숱한 사건사고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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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유명한 이천수의 말디니 사커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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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자바위 사건 - 자신이 넣은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자 심판에게 감자바위를 먹이고 총쏘기를 하는 바람에 기수로 나가는 징계를 받았다.[35]


2.5.2. 2009년 이천수 임의탈퇴 논란[편집]

자세한 것은 이천수 임의탈퇴 논란 항목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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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2013년 음주폭행 논란[편집]

2013년 10월 14일에 새벽 한 술집에서 폭행시비에 휘말렸다. 그러나 이후 기자와 전화 인터뷰로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고 옆에 와이프와 지인들도 같이 있었다. 어떻게 싸울수가 있는가. 혼자 참느라 손이 그렇게 됐다. 그 정도(폭행이 발생할 정도)도 아니었다. 내가 폭력을 휘두른것처럼 여겨져서 정말 미치겠다. 솔직히 예전에 이런 일들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전에 잘못했던 일들은 내가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 이천수라는 사람은 달라졌다. 달라진 이천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고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고 취객들이 아내에게 시비를 건것이 분쟁의 원인이였으며 뺨을 때렸다는 피해자측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고 그런 일이 있었으면 현행범으로 바로 체포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36]

그리고 이천수의 주장처럼 피해자측이 술에 취한채 뒷통수를 때리고 폭언을 퍼붓는등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었다고 밝히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왔다. 증언이라고 올라오는 글들이 워낙 많았는데다 선수 본인이 확신을 가진채 폭행이 없었다고 주장한통에 구단측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진실로 받아들였다. 차후 경찰의 조사 상황을 좀더 지켜봐야 할 듯 싶었으나 결과는 폭력혐의 입건이었다.

경찰 조사를 받은 결과 이천수의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으며 본인 역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한다. 경찰이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그의 폭행 혐의는 인정되었으며 이천수가 주장한 폭행시비의 이유(아내를 욕보여서 맥주병을 깼다) 인 아내는 본인의 주장과 달리 사건 당시에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천수의 아내가 나타난 것은 사건이 종료되고 경찰이 올즈음, 즉 이천수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현장을 찾아온 것이지 술자리에 합석하지조차 않았던것.

당연히 이천수와 자칭 목격자들의 증언만을 믿고 그를 옹호해줬던 구단측과 팬들은 모두 황당해했고 구단은 매우 당황스럽다고 하며 일단 선수와 피해자측의 합의를 도운뒤 징계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천수의 인터뷰가 기사화 된뒤 자신이 경찰조사에 출두한 목격자라고 주장하며 이천수의 주장과 비슷한 증언을 올리는 네티즌들이 있었는데 자연히 이 증언들도 모두 허위 소문임이 입증되었다. 사실 목격자의 증언이라는 원본 출처는 대부분이 댓글이나 커뮤니티의 게시글, 즉 카더라 통신이 대부분이다. 평소에도 목격담, 현장증언담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관심종자들의 거짓말등이 판을 치는 게 인터넷 댓글란이고 경찰 조사 결과 진짜 목격자들의 증언과는 아예 동떨어진 이야기들이었으니 사실상 선수의 인터뷰를 듣고 자기들끼리 지어낸 소설에 가깝다. 그런데 인증샷이나 구체적인 증거 없이는 별로 신빙성 있는 소스가 아니었는데도 기자들은 그걸 현장증언담이라는 이름으로 인용을 많이 했었다.

피해자측과는 어찌 저찌 합의가 되었지만 벌써 폭행사건에 휘말린 것만 총합 4번째이기 때문에 후폭풍은 상당히 거셌다. 특히 반복되는 폭행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후 거짓말로 인한 분노가 더 극심한 상황이라 축팬들에게도 "더이상 믿을수 없다"며 양치기 소년으로 완전히 찍혀버렸다. [37]

사실 사람이 없는데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 종업원 및 손님들이 즐비한 바 안에서 벌어진 일이니 목격자도 넘쳐나는 상황에, 경찰 조사 조금 해보면 금방 밝혀진 일인데 왜 저렇게 확신을 가지고 거짓말을 했을까에 대해 의문이 많았는데 만취 상태에서 기억이 얽혀버렸던 것 같다는게 중론. 실제로 경찰조사에서도 술에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그냥 처음부터 솔직하게 기억 안 난다고 말했으면 그나마 넘어갔을 일을 본인이 키웠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인천 구단 내 징계가 결정되었다. 2013 시즌 잔여경기 출전정지, 2,000만 원 벌금, 사회봉사 명령 100시간, 재발방지 각서 및 사과문 게시였다. 여담으로 이천수와 동석한 같은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 후배 선수들 2명에게도 구단 엄중경고와 선수단 회칙에 의거한 벌금이 부과되었다.

이를 두고 축구계 영구 추방을 해야느니 네티즌들 반발도 있었고 심지어는 최성국같은 이들을 옹호하는 이들까지 누군 가벼운 실수(...)한 것으로 영구추방하고 이천수는 이리도 봐주냐 이딴 개드립을 치며 승부조작에 관여한 천하의 개쌍놈보다도 못하다고 까였다. 사실 해외 구단에서도 이런 경우는 왕왕있는데 무거운 징계를 내리긴 하나 영구제명까진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천은 이전에 이미 숙소를 이탈해서 술먹고 행인과 시비가 붙은 강수일이세주에게는 초범인데도 불구하고 임의탈퇴 공시라는 중징계를 먹였는데, 이천수는 알다시피 술집에서 폭행시비 붙은것만 3번이고 폭행 전체로만 따지면 4번인데 구단 최고위 징계랍시고 저런 내용의 솜방망이 처벌을 하니 욕먹어도 솔직히 할말은 없다.[38] 임의탈퇴가 아니라 영구제명 징계를 내려도 할 말이 없는 상황.[39]

2.5.4. 언론의 희생양[편집]

이천수의 별명이 악동이나 무법자라면, 반대로 언론의 희생양이라는 말도 항상 따라다닌다. 크고 작은 사고를 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 잘못보다 부풀려지고 과장된 언론보도로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독 이천수에게만은 가혹한 듯한 느낌도 사실. 박지성은 인터뷰가 철저한 편이라 흠잡힐 구석이 없고, 박주영은 인터뷰를 회피해서 인터뷰로는 까일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천수는 인터뷰가 서툰감이 있는데다 직설적이고 별 생각없이 툭툭 내뱉은 말을 기자들이 좋다고 달려들어 대서특필한 경우가 많다.

그렇게 말버릇이 고약한 선수는 아니지만 언론의 왜곡으로 입만 살아있다고 입천수, 혀천수[40]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한국의 베컴'이라는 별명 탓에 혀컴, 입으로 축구를 한다하여 오랄사커(…) 등의 별명도 갖고 있다.

대한민국 축구계 인사들의 경우 이천수에 관해서 실드를 쳐주기보다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우회적인 발언만을 하고 있는데, 이유는 임의탈퇴 문제로 인해 축구계가 한바탕 뒤집어진 바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언급을 꺼린다고 보는 게 맞을 듯 싶다. 임의탈퇴 문제는 돈이 걸린 계약문제이기 때문에 제3자가 함부로 말할 내용이 아니고 이해관계가 있어도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 본인이 독박을 쓸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선수시절 황혼기에 이르면 관심을 덜 받는 입장이 되다보니 언론에서도 딱히 안주거리로 삼지 않았다.

3. 방송인 경력[편집]

파일:마리텔_로고.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Munhwa_Broadcasting_Company.svg.png 마이 리틀 텔레비전 역대 우승자

MLT-37 ~ 38

MLT-39

MLT-40

No. 089
허당닥터
옵세닥터

No. 100
아컴

No. 025
징글박
No. 039
매미킴
No. 059
양필라
No. 092
조코치
조코치st

홍혜걸
여에스더

이천수

박지우
김동현
양정원
조준호
조준현


은퇴한 뒤에는 연예계 진출을 선언했다. 입 털던 이미지 때문에 댓글은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다는 건 함정 아무래도 안정환, 송종국이 연예계에서 잘 나가는 것을 보고 결정한 듯. 그리고 마침내 MBC 엔터테이너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에 참가했다. 출전 이름은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며 현역 은퇴 후 처음으로 선 무대라고 언급했다. [41]

기믹으로 독일 월드컵 전에 열렸던 투표로 뽑혔던 2006 월드컵에 나온 세계 추남 축구선수 중 2위에 오른걸 밀고 있다. 1위는 호나우지뉴, 3위는 카를로스 테베즈.[42]

1 대 100 422회에서 1인으로 참가해서 6단계까지 갔으며 자신의 현역 은퇴에 대해 아내에게 이야기하자 쿨하게 수락했다고 언급했다.

상술한 추남선수 2위 기믹으로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에 출연했고, 아육대에도 출연했다. 아육대에서 상대편 감독을 맡은 하석주는 "이천수 한 번 이겨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O tvN어쩌다 어른 12회[43]에 출연했다.

2016년 3월부터 JTBC3 FOX Sports에서 K리그 클래식 해설을 맡고 있으며, JTBC에서 생중계로 편성되는 경기의 해설위원으로도 출연하고 있다. K리그 해설에 대한 평가가 현재까지는 굉장히 안좋다. 축구 팬들이 정말 싫어하는 형식의 해설[44]+그 해설도 잘 못함. 이 겹쳐져서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다. 또한 경기전 선수들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김보경이 골을 넣자 당당하게 K리그 복귀골이에요라고 하여 김보경이 K리그에 처음 입단한 것을 아는 사람들은 뒷목을 잡았다. 그래도 나중에는 평가가 많이 좋아지긴 했다.

단 경기에 따라서 좋은 해설과 나쁜 해설의 차이가 심하게 나는게 단점.

슛포러브 캠페인에서 35m밖에서 농구골대에 5회 시도만에 넣었다.

파일:/image/011/2016/08/11/1L03M3ND2A_1_99_20160811063404.jpg
슛 포 러브 일원과 함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축구 직관을 하다가 한국의 8강 진출이 확정된 뒤 손흥민을 필두로 선수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MLT-39에 출연하여 모르모트 PD에게 축구를 가르쳐줬다. 강력한 1위 후보 이경규도 나왔지만 이경규를 제치고 1위를 차지.

2017년 8월 방영되는 소사이어티 게임 2 플레이어로 참가 확정되었다. 이천수/소사이어티 게임 참고. 이곳에서도 초반부터 강력한 입담과 정치질을 보여주었다.

히딩크의 축구의 신에 출연하였다.

4. 여담[편집]

  • 2002년 월드컵 당시 홍명보에게 반말을 한 사람이 김남일이 아닌 이천수 본인이라고 밝혔다. 히딩크 감독의 지시에 의해서 그렇게 했고, 나중에는 그냥 그게 자연스러웠고 경기력에도 훨씬 도움이 됐다고 이야기 하였다. 명보야 밥먹자!

  • 2002 국대에서 뛸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는 골때리게도 릴리 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맙소사 프랑스 축구 클럽인 릴 OSC로 이적을 추진했었던 경력 때문에 릴+성인 리(Lee)를 합쳐서 그렇게 부른 것.

  • 2003년 7월 스페인 진출 직전 "난 야구가 싫다."라는 발언으로 야빠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45] 다만, 이것은 기레기들이 쓰는 와전된 이야기라고 말하는 의견도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뒤 야구 시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 롯데 자이언츠의 시구를 하기도 했으며[46] 2017년 중순부터는 연예인 야구단 활동도 하고 있다.

  • 2003년에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다.루다-투비

  • 이영표 말에 의하면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천수는 남달랐다고 한다. 당시 올림픽 축구 대표팀에서 만났다고 한다.[47] 한일전에서의 씁쓸한 패배 뒤 이천수가 팀에 합류를 했었고 안좋은 분위기에서 밥을 먹고 있는 자리였는데 이영표를 비롯한 대표팀 선배들에게 이천수가 꺼낸 멘트는 일본한테 지냐. 내가 있었으면 이겼다라는 멘트를 날렸고 당시 상상을 초월한 문화충격을 받은 이영표는 아무말도 못했다고 한다.

  • JTBC 소속으로 2016년부터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과 K리그의 해설을 맡고 있다. 같은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썰전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남긴 중국화 발언이 이후 국가대표팀의 연일 거듭되는 부진에 맞물려 연승 중재평가 받았다.[48] 카타르전에서 홍정호, 이란전에서 장현수가 이걸 제대로 증명했다. 본인은 나중에 그런뜻이 아니었다 해명하긴 했으나[49] 슈틸리케가 중국파까지 포함한 해외파를 실력, 출전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중용하고 K리거들을 차별하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예사롭지 않다.

  • MBC 예능 미래일기 11월 18일 방영분에 아내인 심하은 씨와 함께 출연했다. 처음으로 장모님이 나오셨는데, 이천수가 한창 방황 중일때 딸과 만났던 당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그래도 그만큼 선한 사람이 없었는데...언론이 너무 쏘대니까 그렇죠.라고 하는 등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이천수를 아들!'이라고 부르며 친아들처럼 아끼는 장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앞서 말했지만 아자디 원정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이 승리를 거뒀을 때, 결승골을 넣었다.[50]

  • 일본 웹에서 일종의 방송사고로 유명한데, 한국 유스로 출전한 일본 고교선발팀과의 경기에서 일본 캐스터가 8번인 이천수, 좋은 찬스다.(8番のイチャンス,いいチャンスだ)(하치반노 이챤스, 이이 챤스다.)라고 말한 뒤 살짝 웃음이 터지는 영상이 있다. 사실 원래 일본식 외래어로 제대로 읽으면 이쵼수(イ・チョンス)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 슛포러브에서 이천수의 근본투어를 기획하여 직접 레알 소시에다드의 연고지 산 세바스티안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현지팬들의 대다수와 심지어는 훈련장 바로 옆 숙소 로비에 근무하는 직원 조차 못알아봤다(...)이천수는 연신 괜찮다 했으나 사실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51] 결국 시내까지 나가서 퍼레이드를 벌이는 곳까지 갔으나 정말 알아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없었....는줄 았았으나 한 현지팬이 이천수를 알아봤다. [52] 그렇게 계속 희망을 가지고 올라 거리면서 인사를 했으나 처음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우연히 만난 15살의 스페인소년들과 일종의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 어떤 분이 먼저 이천수를 알아봤다. 인터뷰 도중 뒤에서 '혹시 전에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셨던 분 아니신가요?' 라며 먼저 물어봤다.[53] 사실 이 분은 당시 레알 소시에다드 구단 소속 택시기사를 하셨다고한다. 이천수와 이천수의 어머니를 실제로 몇 번 태워서 기억이 난다며 이천수와 사진을 찍으며 훈훈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이천수는 내친김에 젊은 이들이 많은 번화가까지 가서 공세를 펼쳤고 우연히 만난 20살의 청년과의 인터뷰에서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한국이라 답했고, 그 청년은 '이 분은 15년 전에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었던 분 입니다.'라는 소개를 듣자마자 이천수!!!????? : 리츈수!!!???라고 소리쳤고. 이에 이천수는 말 그대로 데꿀멍 [54] 영입 당시 기대가 커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지못미 이후 건너편에서도 몇몇 현지팬 분들이 알아보며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며 이천수의 근본 투어는 끝이 난다. 이천수의 근본 투어 그리고 스페인에 간 김에 백승호를 만나러 지로나 FC에 갔는데, 1군 감독인 파블로 감독이 이천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누만시아의 연고지인 소리아 출신이고, 경기를 보러 갔었다고 했다.

  • 후배인 이승우를 매우 아낀다. 이승우가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한 이후에는 인터뷰에서 이승우를 칭찬하고 그의 개성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젊은시절의 에고가 강하던 본인의 모습이 겹쳐보이기 때문에 더 애정을 쏟는듯 하다.

  • 박경림몰래카메라(일밤)에 나와서 희생상대로 나왔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는데 본인이 그래도 너무 사랑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연기하며 상담하는 역이었는데, 진심으로 조언하면서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여서 그 동안 싸가지 없고 성격 나쁘기만 하다는 이미지를 약간 벗었다. 어느 커피 전문점에서 진행됐는데, 옆에서 지켜보면서 안절부절 하는데 대놓고 티는 못내느라 30분 가량 물을 계속 주문하면서 2리터 정도를 끊임없이 마시는(...) 개그를 보였다. 본인은 끝까지 눈치를 채치 못했던 게 몰래카메라는 원래 연예인만 하는 건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도 맞바람을 피겠다며(...) 새 남자를 소개하는 척 숨어있던 이경규가 나오자 그 때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 누나가 미쳐서 갈 데까지 갔구나' 했다고...

[1] 출생 당시에는 인천직할시 북구. 계양구와 부평구로 분구된 해는 1995년이다.[2] 전주 이씨 양녕대군 18세손, 시조 41세손 秀자 항렬이다. 고종의 동생 뻘이다.[3] # [4] 전형적인 스트라이커가 아니며 윙어로 또한 활약 [5] 2002, 2006 월드컵[6] 당시 사비 알론소는 동갑인 이천수에 대해 "너는 프리메라리가에서 성공할 수 있다!"라고 립서비스를 하였다. 그러나 이천수는 당시 사비 알론소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였고, 성격도 좋지 못하다며 회고하였다. 사비 알론소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알론소는 자기가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과 깊은 친분을 쌓고,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과감하게 거리를 두는 성격이다. 그러면서도 성격이 나긋나긋한 것도 아니라 자기가 하고싶은 말은 다 하는 스타일인데 이천수처럼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와는 친해지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당시의 이천수는 성격이 당찬 정도를 넘어 자존심이 무진장 강했다. 알론소한테 성격이 나쁘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닐듯. 실제로 최근 슛포러브에서 풋살훈련시 골대를 옮기는 등의 사소한일로 사비 알론소와 빈번하게 다툼이 있었으며 거의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바람에 주변 동료들이 말릴 정도였다고 밝혔다.사비 알론소는 서양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한바탕 하고 난 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잘 지내려고 했었지만 이천수 본인은 끝까지 담아두고 한번 걸리기만 해봐라라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래도 알론소의 축구 실력은 인정했다. [7] 기록만 보면 믿기지 않겠지만, 데뷔경기 포함 초반 몇경기를 본 축구 팬들은 영점조절만 되면 무난하게 주전을 먹을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 못 믿겠으면 데뷔전을 검색해서 보자.[8] 훗날에도 이적을 둘러싼 불상사, 특히 돈에 얽힌 이야기가 많은 걸로 봐서는 축구 외적으로는 비상식적으로 허술하고 매니저에게 휘둘리는 사람인 것같다.[9] 많은 프로 선수들이 이런 사기를 당한다. 운동에만 전념하고자 믿는 사람한테 맡기는데... 안정환도 당했다.[10] 특히 야구팬이 이곳의 명성을 익히 잘 알고 있을 텐데, 삼성 트레이닝 센터는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11] 차범근 감독의 말에 따르면 임의탈퇴를 시켰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하는 생각으로 임의탈퇴를 풀고 받아들일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천수의 정신자세가 모자라다 판단, 다른 팀에서라도 뛰는 편이 좋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분노해서 방출했다고 보긴 어렵다.[12] 임의탈퇴는 징계가 아니다. 연맹에서 징계 먹였으면 페예노르트, FIFA와 싸웠어야 할 판이다.[13] 김남일 역시 팀을 떠날때 큰 갈등을 빚어 수원팬들과 사이가 좋지않다. 자세한 내막은 항목참조[14] 정확히 말하자면 이때 수원팬들과 완전히 화해한 것은 아니다. 김남일과 이천수가 손잡고 수원 서포터 응원석으로 올 때에 경기 마친 수원선수들도 마침 같은 응원석 쪽으로 오던 터라 자기 선수들에게 쳐준 박수가 제 3자가 보기엔 김남일과 이천수에게 쳐준 것으로 보였던 것. 그리고 실제로 이천수에게 가운뎃 손가락을 들어올렸던 수많은 수원 팬들은 자기 선수들에게 욕하는 것 같은 묘한 상황을 연출했다[15] 지난시즌부터 불거진 우려였는데 인천은 공격적으로 나서는 팀을 상대로 역습을 하는데 강하지만 시작부터 걸어잠그는 팀을 상대로는 이상하리만치 약한모습을 보여주었다. 개막전 경남 FC와 시즌 첫패를 안겨줬던 대전 시티즌이 대표적인 예[16] 파올로 말디니를 일부러 걷어찼음을 이 날 밝혔다.[17] 인천 팬들의 경우 갑자기 뒤통수를 치고 도망간 설기현 때문에 그에 대비되는 이천수의 모습에 고마워했다. 보고 배워라 설통수[18] 이천수의 은사 임종헌감독이 있었던 팀이다.[19] 이상하게도 방가반두컵을 검색하면 국내 인터넷 블로그나 기자들까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대회로 적었다. 틀림없이 방가반두는 방글라데시에서 열렸던 대회다. 그나마 1999년 연합뉴스를 찾아보면 제대로 나와 있다.[20]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미국전 당시 페널티킥을 얻었을때도 이때와 비슷하게 원래 본인이 차려고 했었다. 물론 이번에는 저지당해서 게임 시작 전부터 전담 키커로 지정되어 있었던 이을용이 찼지만 실축한다(...).[21] 유럽에서의 처참한 실패와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으로 이 시절의 이천수를 폄하하는 사람도 있는데[22], 2005년부터 2006 월드컵 끝나고 페예노르트 이적 직후까지가 이천수의 최전성기로, 박지성과 비견되는 오프더볼 움직임 및 활동량, 세계 최상위권의 정지된 상태에서 킥 능력, 탄탄한 신체 밸런스와 순간 속도를 이용한 돌파, 뛰어난 축구지능을 이용한 연계 모두가 어우러진 만능 공격수였다. 박지성보다 더 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더블 에이스라고 불릴 정도의 활약은 했다. 지금에야 박지성이 압도적인 커리어와 경기력으로 평가를 압살하지만, 2006 월드컵 당시 기사를 보면, 박지성과 함께 국가대표팀 에이스라고 불리던 것을 알 수 있다. 야구로 비유하자면, 김광현vs류현진 정도의 취급이었다.[22] 게다가 2006 월드컵을 보지 못한 세대가 많아지기도 했다.[23] 이 분야에선 설기현이 압도적이다.[24] 오른발 킥력 만큼은 한국에서 역대급으로 꼽는다. 그와 비견 되는 오른발 키커는 김형범 정도.[25] 당시에는 경기중에 순간적으로 공으로 착각했다고 해명했으나, 훗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무릎팍도사뉴스룸에 출연해서는 일부러 걷어찼다고 인정했다. 무릎팍도사에선 "아니 사람 머리를 공으로 착각한다는게 말이 되나요"라면서 셀프디스까지 시전.[26] 어린 시절 천재로 주목받음, 그러나 멘탈이 극도로 나빠 전성기 때 평가는 이중적, 해외 진출 실패(카사노는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실패를 경험했다), 나이를 먹고 나서야 정신차림.[27] 그리고 이천수와 최태욱이 3학년이 된 해에, 부평고는 학성고, 포항제철고, 풍생고, 강릉농고 등 전통의 강호들을 그야말로 압살해버린다.[28] 일반적으로 자서전이라는 것이 인생을 회고하면서 쓰는 것임을 생각하면 데뷔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20세의 선수가 월드컵 한 번 경험했다고 축구선수로서의 인생을 회고한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29] 최근에야 유럽에서의 활약이나 출신 클럽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경향이 강해, 이천수를 두고 국내용이니 아시아용이니 하며 까내리지만, A매치에서의 영향력을 따지면, 2004년까지는 박지성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었다. 2006년에 스포츠 신문의 헤드라인에 지성 만들고 천수 마무리라는 있을 정도로, 전남에서 훅 가라앉기 전까지는 박지성과 거의 비슷하거나 김남일과 함께 다음 가는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됐었다.[30] 이 선택은 이천수에겐 매우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이천수 자신도 함부로 레알 마드리드를 운운할 정도로 분에 넘치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유럽 중하위권 팀에서 차근차근 배우며 현지 적응에 노력을 기해도 모자랄 판에,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라는 라리가에서 우승을 노리던 돌풍의 팀으로 입단해서 막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니 실패하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초반에야 꽤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외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큰 기대가 전부 부담감으로 돌아가자, 현지에 딱히 친한 선수나 믿음을 주던 감독도 없었던 이천수는 그대로 국내에 유턴하고 만다.[31] 실제로 근본 투어에서 이천수는 외지에서 어머니와 둘이 생활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지성도 유럽 진출 초기에는 홈 팀 팬에게 온갖 조롱을 당하고, 팀원에게 디스를 당할 정도로 부진했지만, 그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애정으로 지켜봐준 히딩크 덕에 자신감을 얻고 주전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32] 과거 다른 방송에서는 고교시절 이천수가 새벽 동 트기도 전에 부평 공원묘역에서 러닝을 하던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담력과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는 것. 깜깜한 새벽에 공동묘지를 뛰어다니는 이천수가 더 공포였을 듯.[33] 이천수 본인이 생각하는 의미는 단어 본연의 뜻인 목표에 대한 인식과 함께 목표추진의 과감함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념어린 노력과 끈기, 정열을 말한다.[34] 노력을 안해서 재능을 망쳤다며 박지성과 비교를 한다는 건, 곧, 노력만 열심히 했다면 박지성 같은 선수가 될 수 있었을텐데라고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35] 본인의 해명에 따르면 한번만 봐달라고 표현한 것이 총쏘기가 됐다고 한다.[36] 당연히 이것이 폭행이 없었다는 확실한 근거가 될수는 없다. 경찰 입장에선 이천수가 유명인이기도 하고 소재 또한 확실했기 때문에 굳이 체포하지 않아도 문제는 없기 때문.[37] 음주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팬들도 있지만 13일 연습경기후 김봉길 감독이 선수들에게 14일 하루 휴가를 주었기 때문에 술자리를 갖는 것 자체가 문제될 일은 아니다.[38] 사실상 의미가 없는 징계인게, 시즌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이었고 인천은 스플릿 A 진출로 사실상의 목표를 달성한 상황에서 이천수가 남은 경기를 뛰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39] 이건 반론이 가능한 게 이천수가 사고를 친 날 근방으로는 A매치 데이가 끼어 K리그 경기가 없었고 이 때문에 휴가를 받은 반면, 강수일과 이세주의 경우는 경기를 이틀 앞두고 숙소 이탈을 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봐야 된다. 업무시간에 사고를 친 것업무시간 외에 사고를 친 것은 사회적으로 보면 똑같은 사고로 보일 수 있지만, 직장 입장에서는 한참 다른 것이다. 그리고 시즌 막바지에 저런 징계가 물징계라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강수일과 이세주가 징계를 받았을 때는 K리그 경기는 겨우 2경기 남았고, 인천은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가 확정된 상황이었다. 임의탈퇴 자체가 무거운 징계라고는 하지만 구단이 마음먹으면 쉽게 풀 수 있고, 실제로 강수일은 제주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면서 임의탈퇴가 풀렸다. 이세주뭐......[40] 사실 뮤직비디오 촬영중 당시 아이돌이었던 투야의 멤버 김지혜와의 키스씬에서 진짜 혀를 넣은 일 때문에..[41] 참고로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7현인 이후의 소크라테스 철학을 상징하는 말이 됐을 뿐. 델포이에 위치한 아폴론 신전의 앞마당인 프로나오스에 새겨져 있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이다. 이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탈레스가 제일 유력하다고.[42] 사실 네티즌들이 투표 사실을 알자 몰빵한것.[43] 2016년 2월 18일분[44] 전술 해석이 아닌 노닥거리면서 하는 해설[45] 이 당시 나온 이승엽의 300홈런이 보기 싫었다던가, 메이저리거인 박찬호 경기 중계해 주느라고 K리그는 뒷전으로 밀려서 야구가 싫다는 말을 했다. 다만 2003년 당시 텍사스에서 한창 먹고 튀려고 하던 박찬호는 6월 초 이미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어버린 상황. 당시 한창 활동하던 메이저리거는 김병현서재응이었다.[46] 차명석 해설위원에 따르면 스냅을 제대로 넣었다고 한다.[47] 당시 이영표는 대학생 4학년, 이천수는 고등학교 3학년[48] 참고로 같이 해설로 발탁된 유상철 역시 저 발언 이후, "우리도 1, 2년 조기축구회 뛰면 조기축구화 된다"는 첨언을 남겼다.[49] 짤방이 악마의 편집이긴 한 것이 원래는 중국 슈퍼리그가 유럽리그 출신 초고액 용병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수준이 올라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50] 참고로 이 승리는 2004 아테네 올림픽 축구 지역 예선전 승리. 그래도 이긴게 어디냐[51] 아마 이천수의 성격 상 아무래도 상처를 받긴 받았을 것 같다 하지만 15년전에 그것도 마지막 시즌은 타팀 임대에 한 골도 기록 못한 선수를 팬들이 기억할리가.....[52] 이름은 기억 못하는듯 하였으나 '공격수였잖아요', '별로 안 뛰어서 못 알아봤어요' 라는 식으로 말하는걸 보니 진짜로 기억은 나는게 맞는듯하다[53] 이 분도 얼굴과 이름이 '리'였다는 사실 정도만 기억난다고 하셨다[54] 이게 대단한 것이, 아무리 현지 팬이라도 본인이 5살 때 응원하던 팀에서 폭망해버린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선수를 기억하는 현지 팬이 몇이나 될지 생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