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삼성 블루윙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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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SUWON SAMSUNG BLUEWINGS F.C.

전체이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단

법인명

㈜수원삼성축구단

별칭

트리콜로(Tricolor)

구단형태

기업구단

소속 리그

K리그1 (K League 1)

창단

1995년 12월 15일

연고지

경기도 수원시

홈구장

수원종합운동장 (1995~2001)
(11,808명 수용)
수원월드컵경기장 (2001~ )
(43,959명 수용)

라이벌

FC 서울 - 슈퍼매치
전북 현대 모터스 - 공성전
수원 FC - 수원 더비

모기업

제일기획[1]

구단주

유정근[2]

단장

박창수[3]

감독

서정원

주장

김은선

부주장

최성근, 이종성

상징색

파란색(靑), 하얀색(白), 빨간색(赤)[4]

마스코트

파일:external/samsungtomorrow.com/blue_8.jpg

아길레온 패밀리[5]

워드마크

파일:Bluewings wordmark.png

캐치프라이즈

파일:캐치프라이즈수원.jpg

Home of Football

셔츠 프린팅

전면: SAMSUNG QLED TV
후면: Maeil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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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기록

★★★★
K리그1
(4회)

1998, 1999, 2004, 2008

★★★★
FA컵
(4회, 최다)

2002, 2009, 2010, 2016

K리그 리그컵
(6회)

1999(2)[6], 2000, 2001, 2005, 2008

K리그 수퍼컵
(3회)

1999, 2000, 2005

★★
AFC 챔피언스 리그
(2회)

2001, 2002

아시안 슈퍼컵
(2회)

2001, 2002

A3 챔피언스컵
(1회)

2005

팬퍼시픽 챔피언십
(1회)

2009

클럽 기록

최다 출장

곽희주 - 369경기

최다 득점

산토스 - 62득점

최다 도움

염기훈 - 103도움

최다 관중

45,192명 - FC 서울 전 (2012년 4월 1일)

최다 연승

8경기[7]

최다 무패

18경기[8]

클럽 수상 기록

2001 AFC 올해의 클럽

2002 K리그 공로상

2003 K리그 올해의 페어플레이상

2013 K리그 풀스타디움 수상
(336,098명)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페어플레이상

2016 KEB하나은행 FA컵 페어플레이상

유니폼

파일:2018수원홈.jpg

파일:2018수원원정.jpg

파일:2018수원골키퍼1.jpg

파일:2018수원골키퍼2.jpg

HOME

AWAY

GK RED

GK YELLOW

메인 스폰서

용품 스폰서[9]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0px-Samsung_wordmark.svg.png

파일:zaicro__logo.jpg

유소년 시스템

U-18

매탄고등학교

U-15

매탄중학교

U-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U-12

U-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U-10

보급반

리틀윙즈

Home of Football


1. 개요2. 구단의 역사와 현재
2.1. 창단 역사2.2. 과거부터 현재
3. 우승 기록4. 타 구단과의 관계5. 시즌별 일람6. 유소년 시스템7. 사건/사고8. 시설 및 장비
8.1. 경기장8.2. 클럽하우스8.3. 재활시설8.4. 차량8.5. 유니폼
9. 캐치프라이즈10. 기념 로고11. 영구결번12. 선수단
12.1. 코칭 스태프 명단12.2. 선수 명단 및 임대 선수
13. 역대 주요 선수14. 역대 감독15. 홈 관중 관련 통계16. 서포터즈
16.1. 네임드 팬16.2. 커뮤니티16.3. 응원가
17. 에피소드18. 흑역사
18.1. 블루윙즈폰
19. 둘러보기

수원 삼성 블루윙즈 10주년 베스트 XI

FW
샤샤

FW
나드손

MF
데니스

MF
김두현

MF
고종수

MF
김진우

MF
서정원

DF
최성용

DF
박건하

DF
이병근

GK
이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주년 베스트 XI

FW
박건하

FW
나드손

MF
데니스

MF
고종수

MF
김진우

MF
서정원

DF
최성용

DF
마토

DF
곽희주

DF
이병근

GK
이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공식 레전드

18
박건하

13
산드로

14
서정원

22
고종수

29
곽희주

7
김진우

3
이병근

1
이운재

11
데니스

12
나드손

10
산토스

1. 개요[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 All the Best!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린 축구클럽[10]
막대한 자금력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으로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호로 발돋움한 클럽

2. 구단의 역사와 현재[편집]

2.1. 창단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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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1 소속의 프로축구단. 연고지는 수도권[11] 경기도 수원시.

리그 순위에서 언제나 상위권에 위치했던 구단이며, 관중 동원도 창단 이래 늘 리그 최상위권을 다투는, K리그에서 최초로 슈퍼 클럽의 모습을 제시했던 클럽이다.

창단 당시부터 세계 축구계의 중심으로 가기 위한 목표를 삼고 모기업의 막강한 자금력과 '1등 주의'에 기반한 팀내 성향으로 우수한 선수들을 모집해 리그 참가. 첫 해 준우승과 창단 3년만에 리그 우승과 리그 2연패 + 전관왕, 2001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12] 우승까지 하는데 불과 5년 남짓의 시간만이 걸렸을 뿐이다.

1998-99년의 수원은 리그 역사상 최강팀 중 하나로, 여기에 견줄 팀은 1997년 부산 대우 로얄즈와 2001-03 성남 일화 천마[현] 뿐이다.

서포터즈는 그랑블루2009년 분리된 하이랜드 에스떼로 양분되어 있었으나 2012년 5월 20일 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부터 프렌테 트리콜로라는 이름으로 단일화되었다.

2.2. 과거부터 현재[편집]

파일:FpgAT3l.png

파일:JeRO4hu.jpg

400억의 위엄. 그러나 이듬해 부터 운영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게 다 세제믿윤 때문이다


부유한 모기업을 두고 창단 직후부터 좋은 성적을 내고 리그에서 손꼽히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곤 했기에 곧잘 K리그첼시, 레알 수원 같은 별명으로 불렸으나...

서정원 체제에 들어선 지금은 지출을 줄이고 자생에 무게를 두기 시작하면서 옛말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윤성효 전 감독 시절부터 운영비가 줄어들기 시작, 2012-14시즌 3년간 꾸준히 연간 운영비가 줄어들었고, 2015시즌에는 2014년의 250억보다 줄어든 200억 원의 운영비로 팀을 꾸려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사한국프로축구연맹의 연봉공개 추진과 맞물려 삼성전자 측에서 "투자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며 운영비를 삭감하기 시작한게 컸다. 관련 기사

물론 삼성은 '삼성인 만큼' 선수단 연봉이나 구단 인프라는 좋지만 과거의 처럼 현금을 쏟아부어 거물급 스타를 대거 영입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14] 그리고 이 기사에 따르면 ‘모기업이 주는 예산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우승하는 구단’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 매출을 발생시키고 성적도 적절히 내는 구단’으로 바뀌려고 하는 중이라고 한다.

물론 이게 말 처럼 쉬운 건 아니라서 아직까진 자생률이 20%가 될까 말까한 수준.

2013년까지 서울 삼성 썬더스 농구단와 함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기업 구단으로서 삼성전자의 부회장이 대대로 구단주를 맡았다. 삼성전자 축구단이라는 법인명을 놓고 수원 구단을 비하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또한 법인명이란 어디까지나 재무제표에나 쓰는 이름에 불과한 만큼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15]. 그런데 이제는 프로축구단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에서 삼성그룹 계열 광고 회사인 제일기획으로 바뀐다.

제일기획2014년 3월 19일 경영 위원회에서 수원 삼성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일기획삼성전자가 보유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지분 100%를 인수할 계획이다.[16]

수원 삼성 축구단은 2014년 4월 1일자로 제일기획 소속이 되며, 삼성전자는 수원 삼성 축구단의 후원사로 남는다. 관련 기사[17]


구단 이름에도 날개가 들어가고 홈 구장의 애칭도 빅버드라 그런지 다른 구단의 서포터들은 '닭(날개)'이라고 부른다. 공인 라이벌 지역야구단 생각나면 지는 거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마스코트인 아길레온(Aguileon)은 독수리(Aguila)와 사자(Leon)를 결합한 이미지(...)[18]라고 구단 측에서 설명하고 있으나 누가 봐도 퍼런 닭처럼 생겼기 때문에 '닭'이란 별명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상대 팀들은 중요한 경기에서 수원을 만날 때마다 선수들에게 치킨을 먹인다고(...). 경기 후에 승리했을 경우 월드컵 경기장 앞 모 갈비 집에서 식사하고 가기도 한다.

2005년에는 첼시 FC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모기업인 삼성과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면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첼시 FC간의 친선경기가 열렸다. 하이라이트 영상

2008년이 들어, 구단의 엠블럼에 리그 참가 연도였던 1996을 창단 연도인 1995로 바꾸고 밑에 영문으로 SAMSUNG F.C.이라 적혀 있던 것을 SUWON으로 바꾸면서 지역 연고를 확고히 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여담으로 2014년을 기준으로 K리그 팀들 중 가장 마지막에 창단된 기업 구단이다(1995년 2월). 이후에 창단된 구단들은 모두 시민구단이었다. 하지만 2014년 4월 이랜드가 창단을 선언하면서 19년 만에 기업 구단이 창단하게 되었다. 충주 험멜은?[19]

3. 우승 기록[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K리그에 소속된 구단들 중, 가장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대회

우승횟수

우승년도

K리그 1

4회

1998, 1999, 2004, 2008

FA컵

4회

2002, 2009, 2010, 2016

K리그 수퍼컵

3회

1999, 2000, 2005

K리그 리그컵

6회

1999[20], 2000, 2001[21], 2005, 2008[22]

AFC 챔피언스리그

2회[23]

2001, 2002

아시안 슈퍼컵

2회

2001, 2002

A3 챔피언스컵

1회

2005

클럽 수상

2001 AFC 올해의 클럽
2002 K리그 공로상
2003 K리그 올해의 페어플레이상
2015 K리그 페어플레이상
2016 FA컵 페어플레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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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컵이 매우 많군요 2016 FA컵 하나 사진 추가해 주세요 없던데

파일:external/image.asiatoday.co.kr/500%EC%82%BC%EC%84%B1%20%EC%9A%B0%EC%8A%B9.jpg

K리그1 우승

1997

1998, 1999

2000

부산 대우 로얄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안양 LG 치타스

2003

2004

2005

성남 일화 천마

수원 삼성 블루윙즈

울산 현대 호랑이

2007

2008

2009

포항 스틸러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북 현대 모터스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2016120317205652000_99_20161203172504.jpg

FA컵 우승

2001

2002

2003

대전 시티즌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북 현대 모터스

2008

2009, 2010

2011

포항 스틸러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성남 일화 천마

2015

2016

2017

FC 서울

수원 삼성 블루윙즈

울산 현대

파일:external/www.kfa.or.kr/20091028153048.jpg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24]

1999-2000

2000-2001, 2001-2002

2002-2003

알 힐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알 아인

4. 타 구단과의 관계[편집]

K리그를 대표하는 인기구단[25] 답게 수원과 라이벌로 엮인 구단이 많다.

4.1. FC 서울[편집]

유럽에 엘 클라시코가 있다면, 아시아에는 슈퍼매치가 있다.

BLUEWINGS[26]

파일:external/www.bluewings.kr/%EA%B3%BD%ED%9D%AC%EC%A3%BC%EB%B6%81%EB%B2%8C%EC%99%84%EC%9E%A5(1).jpg

北伐(북벌)

파일:external/dimg.donga.com/40800358.2.jpg

http://old.soccer4u.co.kr/bbs/data/soccer4ugallery/1113208987/%C1%A6%B8%F1_%BE%F8%C0%BD.jpg

한때 안양 LG 치타스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이 두 팀이 붙는 경기는 '지지대 더비' 혹은 '1번 국도 더비' 등으로 불릴 정로로 유명했으며 당시 그랑블루는 안양과 라이벌 시절에 치토스[27]미트스핀하기도 했다. 그 유명한 '오늘은 치토스 먹는 날'. 흠좀무.



마지막 안양전으로, 나드손의 3분의 기적으로 유명하다. 조광래의 씁쓸한 표정이 일품... 이 당시 수원 소속이었던 에닝요는 볼을 안양 벤치에다가 뻥 차는 등...

그러나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로 연고이전하여 FC 서울로 바뀐 후에는 그런 거 없다. 각종 언론들은 수원과 서울을 일부러 라이벌 구도로 묘사하고 있으나, 절대 그런거 없다...[28] 라고는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천상 라이벌이다. 샤다라빠는 이 두팀의 관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라이벌'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서울과의 라이벌 구도 형성 과정을 살펴 보면 과거 안양과의 라이벌 구도를 이어받았고 그것을 언론에서 어느 정도 띄워주면서 형성되었다는 의견이 강하지만[29], 그보다도 FC 서울의 연고 이전 당시 K리그 서포터 집단 가운데 세력이 크면서 강성했던 그랑블루가 문자 그대로 극렬한(...) 반대와 비난을 퍼부어 댄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그랑블루는 패륜송을 만들어 부를 정도로 서울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을 해 왔고(지금도 해 오고 있으며 선수들도 구단 행사 같은 곳에선 부른다) 그것이 양 팀 서포터들 간의 앙금으로 남아 라이벌 구도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서 과거 안양과의 라이벌 관계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수원 입장에서는 서울을 라이벌로 인정한다면, 안양 치타스FC 서울을 동일한 구단으로 보고 안양 시절 역사를 서울 역사의 일부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러니 그랑블루 입장에서는 라이벌이 아니라고 결사 부인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서로 불편해진 관계에 또 한번 불을 당긴 건 세뇰 귀네슈 감독이 FC 서울에 부임하고부터였다. 당시 귀네슈 감독은 K리그 부임 이후 공격 축구를 표방하며 초반 무패 가도를 달렸고 다른 K리그 팀들이 지나치게 수비 지향적인 축구를 한다고 거침없는 쓴소리를 했다. 이런 발언에 대해 국내 감독들 가운데 제법 명망(?)있던 수원의 차범근 감독이 '귀네슈 감독은 아직 K리그에 대해 잘 모른다'고 정면으로 맞받아쳤는데, 이러한 설전 이후 벌어진 수원과 서울의 컵대회 대결에서 수원은 박주영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4:1로 참패(...)를 당하며 굴욕을 맛봤지만[30], 얼마 뒤 리그 경기에서는 서울 5만여 관중 앞에서 1:0의 승리를 거두며 설욕을 했다.

이후에도 양 감독은 경기마다 설전을 아끼지(?) 않으면서 두 팀 간의 라이벌 관계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이 두 감독은 서로가 추구하는 전술이나 스타일의 차이가 커 양 팀 간의 대결 구도를 더욱 볼 만하게 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귀 두 감독들의 대립 구도 속에서 양 팀 서포터들도 지지 않고(...) '안정환 사건'이나 '경기장 방화 사건'등을 일으키며 두 팀 간의 관계 악화(...)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FC 서울을 잘 잡는 이미지를 구사하려고 하지만 프렌테 트리콜로 자체가 워낙 대규모 서포터즈인 관계로 사건사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욕을 먹는 부분은 있다[31]. 프렌테 트리콜로는 종종 과거 이름이던 그랑블루의 비하어인 '개랑' 내지는 서포터즈의 이름과 합친 '개랑블루'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무튼 앙숙인 양 팀의 경기이고 수원, 서울 모두 최고의 인기팀이라서 K리그 최고의 흥행 매치인 점은 부정할 수 없다. K리그 관계자들이 가장 기대하는 대박 경기. FIFA에서도 공식 웹 사이트에 Asia's Top Derby라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냈을 만큼 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K리그 대표 라이벌 더비로 인정받고 있다. 양 팀 서포터들 가운데서도 이제는 라이벌의 '실체'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정도다.[32]

2007년 4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더비에서는 무려 "55,397"명의 관중이 입장. 결승전도 아닌 정규리그 도중에 이 정도 관중이 들어선 것은 이례적인 일로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 사상 역대 관중 동원 기록 3위으로 남아있다.

2011년 10월 3일 개천절빅버드에서 벌어진 더비에서는 44,537명의 관중이 입장해, 월드컵 경기장 최초의 만석 기록을 세웠다. 약 6개월 뒤인 2012년 4월 1일에 펼쳐진 경기에서는 45,192명의 관중 수를 기록해 구단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파일:attachment/수원 삼성 블루윙즈/Example.jpg
2012년 6월 20일 FA컵 16강전에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진 경기에서는 수원이 2-0으로 완승했다. FC 서울에서는 스테보에 대해 반칙왕이라고 디스하는 동영상을 제작해 경기전에 페어 플레이를 하자고 수원을 도발했지만 시합 결과는... 게다가 거칠게 나온 것은 오히려 서울이었고 수원의 라돈치치는 이 경기로 8주 부상을 끊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경기를 난투극 운운하면서 막장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실제로 관전한 팬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나쁜 시합은 아니었다. 김주영의 자책골[33]이 경기 전 페이스북으로 서울을 북패라고 디스한 오범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할 이슈가 많은 시합이었다.

윤성효 감독 시절까진 아무리 팀 상태가 안좋아도 서울만큼은 귀신같이 잡아내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서정원 감독 부임 이후 4년간 한번도 시즌 전적이 서울에게 앞선 적이 없다. 2013년에는 1승 1무 2패, 2014년에는 1승 3패, 2015년에는 1승 1무 2패로, 2016년에는 2무 1패다.(FA컵 포함 1승 2무 2패) 수원팬들이 서정원 감독에게 아쉬워하는 점 중 하나. 그래도 2016년에는 FA컵 결승에서 1승 1패를 주고받은 다음 승부차기에서 승리해 FA컵 우승을 차지해서 짜릿한 반전에 성공했다. 2017년에도 상대전적 열세는 계속되어 2무 2패로 한번도 못이겼다.

K리그는 판이 좁고 재정상태 열악한 구단이 많다보니 라이벌이라곤 해도 선수 이적은 활발한 경우가 많은데 이 둘은 운영비 2, 3위에 속하는 대기업 구단들이라 아쉬울게 없는덕에 이적이 드물다. 수원에서 서울로 이적한 선수는 2016년이상호 단 한 명 뿐이다. 처음엔 수원 팬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이후 수원이 알짜 자원들을 영입하며 서울로 이적한 이상호에게 '북짜[34]', '북상호' 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35]

그러나 2018 시즌에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인 중 한 명인 데얀 다미아노비치를 영입했다! 아직까지 슈퍼매치에서의 득점은 터지지 않았다.

4.2. 전북 현대 모터스[편집]


공성전[36]
수원이 서울보다 더 벼르고 있는 상대
우선 수원과 전북과의 악연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조재진이다. 조재진은 수원 출신이긴 했지만 2004년 5월 23일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상대선수와 친목을 도모했다는 이유, 수원에서 나갈 때 뒤끝이 안좋았다는 등의 루머로 인하여 여러가지로 수원 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국 2004년을 끝으로 조재진은 J리그로 갔다. 그러던 중 조재진은 2008년 다시 J리그에서 전북 현대로 이적했고, 5월 5일 경기에서 동점골을 작렬시키고 수원 서포터에게 주먹감자를 먹이는 세레모니를 한다. 이에 격앙된 수원 서포터들은 다음 번 홈경기에서 조재진과 루머가 있었던 모 가수[37]의 이름을 부르며 조재진을 도발했지만 조재진은 1골 1어시를 작렬시키며 팀을 5-2 승리로 이끈다.[38]

또한 차범근의 악연들이 전북과의 관계를 이루는 축이 되었다. 최강희 감독은 울산 현대에서 뛰던 현역 말기에 차범근에 의해 강제로 은퇴를 강요당한 전적이 있다. 고참 선수와 젊은 신임 감독의 흔한 힘겨루기 중에 하나로도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최강희는 차범근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최강희는 수원의 김호 감독 시절 코칭 스태프의 일원이었으나 김호와의 불화 끝에 팀을 나갔다는 루머도 존재하고 있었다. 최강희가 국가대표 감독을 사임하고 전북으로 복귀하기전 전북 구단에서는 그동안의 노고를 감안해 조금 쉬었다 오라고 했지만 수원이 전북을 5-4로 꺾는 모습을 보면서 이 경기가 전북이 매수했다는 의심을 받는 경기였다는 게 함정 근데 이겼네?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빠른 복귀를 결정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수원 소속이었던 선수가 전북에 가서 유난히 잘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말한 조재진은 J리그에서 성장해서 전북으로 온 경우이긴하지만, 수원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하던 에닝요, 루이스 등의 선수들의 포텐이 전북에서 터지는 경우도 많았으며 특히 루이스의 경우는 차범근 감독도 잡고 싶었지만 계약문제로 잡지 못하고 전북이 영입한 결과... 유독 이런 선수들이 수원에 골을 잘 넣는 경우가 많아 많은 수원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최강희의 전북 감독 부임 ~ 윤성효 경질까지는 수원 대 전북 전적이 심각하게 안습했었는데 2013년, 서정원감독 부임 이후 첫 해에 3승 1무를 찍으며 전북에게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2014년에도 1승 1무 1패로 팽팽한 전적을 기록했지만 정작 중요한 경기는 다 말아먹었다 성남전 제파로프 동점골이라던지 2015년에는 1무 2패로 탈탈 털렸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염기훈의 프리킥 선제골과 카이오의 역전골로 승리했다. 2016년 시즌에는 3경기에서 1무 2패의 열세.

원래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에두 가계악 논란(에두 문서 참조)과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이후로는 관계가 더 악화되었다. 애초에 공공의 적 이미지가 있었던 FC 서울보단 나은 관계였지만 이 사건 이후로 전북 현대가 떠오르는 공공의 적이 되면서 오히려 락사커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전북에 대한 비판으로 수원 팬들과 서울 팬들이 대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그리고 6월 15일 전북과의 원정 경기에서 전북 측 경호원과의 충돌, #, 동시에 전북 서포터들의 내로남불식 비난,[39] 9월1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양측 서포터즈들의 충돌과 이동국-이종성 건 등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이미 수원 서포터즈 측에서도 패륜송에 가사만 바꾼 매수송이 나오기까지 하는 등 이젠 두 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FC 서울보다 더한 증오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40]

4.3. 대전 시티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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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 1996년 수원이 9번째, 1997년에 대전이 10번째로 가입함으로써 서로 신생 구단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대전의 컨소시엄을 이루었던 계룡건설이 부도가 나고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기업들이 어려워지면서 구단의 재정도 많이 어려워졌고, 이는 상대적으로 강력한 모기업을 갖고 있었던 수원과 대비가 되었다. 그러던 중 당시 PC통신에서 수원 팬들이 대전 팬들의 어그로를 끄는 광역 도발들을 시전했고(이는 당시 1997년 수원과 대전의 모 경기에서 대전 선수의 도발성의 골 세레모니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대전과의 관계 악화의 시발점이었다. 압도적인 전력 차가 존재했기 때문에 대전이 수원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고 수원은 대전에 대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해왔다. 특히 '대전 킬러'로 불렸던 산드로, 고종수와 데니스의 존재는 대전이 버텨내기 쉽지 않았다. 물론 대전에도 이관우, 김은중과 같은 선수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양 측 서포터 간의 폭력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 것이 특이할 만한 점이다. 특히 2001년 6월 24일 수원에서 열린 경기가 시발점이었다. 2-2였던 후반 막판 주심이 착각 끝에 수원 수비수 졸리에게 레드 카드를 뽑았는데, 졸리가 이를 무시하고 스크린 플레이에 참가했고 고종수는 왼발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터뜨린다. 결국 대전 선수단은 심판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대전 서포터들이 경기장에 난입하면서 경기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후 대전 서포터즈는 이 경기의 주심과 프로 축구 연맹 회장을 현상 수배하는 전단을 돌렸고 주심이 이들을 고소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화룡점정을 찍게 된다. 한 달 후인 7월 28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대전 서포터들이 쇠 파이프등을 사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ㄷㄷㄷ 조폭 뺨친다... 사실 이날 발단은 수원 서포터들이 원정 서포터의 응원석을 점거한 데서 시작되었다. 수원 측은 대전 서포터가 지난 달에 난입한 일에 대해 사과를 받기로 했으나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원정 서포터 대상 입장료 할인, 지정 응원석 등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를 통보받고 도착한 대전 서포터들은 수원 측과 멱살잡이를 벌이고 쇠 파이프를 휘둘러 의자를 부수었으며 경기 후에는 주차되어 있던 차량 등을 파손하는 등 30여 분간 난동을 부리다가 결국 현장에서 체포되어 양 측 서포터즈 회장이 수원 중부 경찰서로 연행되었으나 대전 구단이 피해를 보상하는 조건으로 훈방되는 등 K리그의 흑역사로 남아 있는 사건을 만들었다.

그 이후로도 위에 서술되어 있는 사건의 뺨을 칠 정도로 과격한 마찰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으며 수원 서포터들은 대전 원정에서만큼은 긴장 아닌 긴장을 하고 떠나야만 했다. K리그/더비 매치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서술되어 있는 정도로 평화로운 더비가 아니었다... 축구 수도 더비라는 것은 그나마 폭력적인 마찰이 줄어들었던 최근까지의 일이었고 2000년대 초중반의 이 두 팀의 관계는 적 그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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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000년대 중반 들어서 대전 시티즌이 연패를 당하는 등의 분위기가 안좋은 상황 속에서 항상 수원삼성전 승리를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일이 종종 벌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다해 저주이다. 2008년 7월 15일 대전 시티즌 홈경기에서 이다해가 시축자로 나섰는데, 당시 대전은 좀처럼 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수원 삼성은 18경기 연속 무패와 리그 11연승을 달리고 있었다.[41]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대전은 수원 삼성을 1:0으로 꺾으며 수원 삼성의 연승을 저지하며 화제가 되기도 하였으며, 2012년에도 대전이 승리 한번 거두지 못하고 있다가 리그 1위인 수원 삼성을 상대로 홈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시즌 첫승을 거두기도 하였다.

대전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이후 서로 만날 일이 희박해졌다. 이후의 2000년대 후반의 일은 K리그/더비 매치를 참조할 것.

대전이 놀라운 성적으로 K리그 챌린지를 씹어먹고 2015 K리그 클래식에 합류하면서 수원과 다시 만나게 됐으며, 대전은 2015시즌에 극도로 부진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것처럼 전반기 유일한 1승은 수원에게서 따냈다.

하지만 대전이 2015년 K리그 클래식에서 12위로 강등되고 2016년에 이어 2017년도 승격에 실패하면서 빨라야 2019년에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김호가 대전 사장으로 오면서 대전 출신 인사들이 수원 삼성출신들로만 구성되면서 대전과 수원의 사이는 더욱 악화될 전망.[42]
.

4.4. 성남 FC[편집]

마계대전 참조. 다만 2018년 현재 성남이 K리그 2 1위를 하고 있어서 2019년에 만날 가능성은 높다.
성남의 시민구단 전환, 2016 시즌 성남의 역대급 DTD로 챌린지에 강등되면서 더이상 일화 천마 시절의 라이벌 관계는 없어졌다고 보면 될 듯.

4.5. FC 안양[편집]

4.6. 포항 스틸러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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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 결정전 승부차기에서 김병지의 슛을 막아내고 포효하는 김병지의 골을 스틸한 포항 스틸러스 소속이운재

2004년 챔피언 결정전이 유명하다. 당시 전기 리그 우승팀과 후기 리그 우승팀 간에 연말에 결전을 벌였는데, 전자가 포항, 후자가 수원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당시 이 두 팀에는 당시 국가대표 골키퍼인 김병지와 이운재가 최후방을 지키고 있었다. 실제 경기도 이들 키퍼들의 싸움이 되었고, 포항과 수원에서 벌어진 1, 2차전 모두 무승부로 끝났다. 2차전이 끝난 직후, 챔피언을 결정하기 위해 바로 연장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연장전에도 결판이 나지 않았고,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승부차기 조차도 팽팽하게 진행되었고, 포항의 마지막 키커로 나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김병지였다. 하지만 김병지의 슛은 이운재에게 막혔고, 키퍼들의 싸움이 되었던 2004년 K리그 챔피언 결정전은 이운재의 승리로 끝났다.

그 이후 2014년까지 포항 원정에서 5-0, 3-0 패배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2014년 시즌 첫 포항 원정 경기에서 2-1로 역전패 당했지만 홈에서 4-1 승리, 2-1 승리등 홈 경기에서 완전히 압도했고 2014년 마지막 포항 원정이자 K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산토스와 정대세의 골로 징크스를 깼다.

2015년 전적은 2승 1무 1패로 수원이 우세한 전적을 기록했다.

2016년부터는 수원과 포항 양측 팬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서로를 형제(...)라 칭하고 있다. 갈수록 줄어드는 모기업의 지원과 선수유출, 리그에서의 부진 등 동병상련을 겪고 있기 때문. 심지어 2016년 상대전적은 4전 4무다! 수원시포항시가 자매결연을 맺은것은 덤.[43]

2017년 현재 전적(2017.10.15 기준)은 3전 2승 1무로 수원이 우세하다. 그리고 포항이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올시즌은 이대로 마무리 되었다.[44]

4.7. 울산 현대[편집]

수원의 리그 참가전부터 울산에서 견제가 심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두 모기업인 삼성과 현대의 라이벌 의식 때문에 이는 수원이 리그 참가 이후에도 모기업의 영향으로 라이벌로 묶이곤 했다.

더군다나 수원은 1996년 리그 참가 당시 신생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한다. 당시 챔피언결정전의 상대가 바로 울산 현대. 수원은 울산 종합 운동장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조현두의 골로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우승에 한발짝 다가서게 된다. 이대로 수원이 우승하면 신생구단이 참가하자마자 바로 우승하는 엄청난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나... 수원은 홈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3-1로 패하며 울산에게 K리그 우승컵을 안겨주게 된다.[45] 2차전은 레드 카드가 다섯 장이나 나올 정도로 굉장히 거친 경기였으며, 당시 윤성효는 선수 생활에서 처음으로 레드 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이후 수원은 1998년 챔피언결정전에서 울산을 꺾고 우승하며 설욕. 한편 96년 당시 울산 소속으로 우승을 경험했던 신홍기는 1997년 수원으로 이적, 1998년 수원에서 또다시 K리그 우승을 경험하는 흔치 않은 커리어를 쌓게 된다.[46]

2000년대 들어서도 잊을만하면 양 팀은 충돌했다. 대표적으로 2003년 빅버드에서 열렸던 수원-울산 경기. 이 경기에서 울산 서포터들은 '서포터' '김호 감독' '삼류 심판' 등의 팻말을 붙여 닭을 투척#했고, 수원의 한 서포터는 경기장에 난입하여 울산의 김현석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버라이어티한 모습이 펼쳐졌다. 자세한 건 포스팅 참조##

http://cyimg9.cyworld.com/common/file_down.asp?redirect=%2Fh25001%2F2005%2F10%2F31%2F42%2F%2525A4%2525BB%25253B%25253B%281240%29.jpg
한편 이천수가 '삽질개천수'라는 팻말을 보고 셋째 손가락을 들어올렸던 것도 수원 서포터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

4.8. 수원 FC[편집]

현재 K리그에 있는 연고 라이벌중 하나이다. 수원 FC가 2013년에 K리그 챌린지에 진출하게 되면서 최초이자 유일한 연고더비 였지만, 2015년 서울 이랜드가 창단하면서 현재는 유이한 연고더비가 되었다[47]. 하지만 수원 삼성과 수원 FC의 전력 차이가 있기 때문에 팬들은 서로를 아직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FA컵에서 3차례[48] 만났었지만 리그에서는 2015년까지 만난 적이 없다. 둘이 만날려면 수원 삼성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하거나 수원 FC가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해야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2015년에 수원 FC가 시시 곤잘레스를 영입하면서 현재 선두권 싸움을 하는 만큼 잘하면 2016년에는 K리그 클래식에서 수원 더비가 성사될 가능성이 생겼고, 결국 부산 아이파크와의 승강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1-0 승리, 2차전 2-0으로 승리하여 수원 FC가 승격. K리그 클래식 최초의 지역 더비가 확정되었다.

둘 간에 상대 전적은 수원 삼성이 3승 1무[49]를 거두었다

지금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수원 FC 두 팀에서 둘 다 뛰어본 선수로는 수원 FC 수석코치를 맡고 있는 조종화 코치, 서울 이랜드에서 뛰고 있는 이상기, 선문대를 졸업하고 입단하자마자 수원 삼성에서 수원 FC로 1년간 임대갔었던 김종우 등이 있다.

2016년 5월 14일 옛 홈 경기장인 수원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K리그 첫 로컬더비에서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 날 블루윙즈 서포터들은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종합운동장까지 걸어서 원정길을 떠났고 수원 FC의 홈인데도 원정팀인 블루윙즈 서포터들의 함성이 더 크게 들렸다.[50]

시즌 최종전적은 3승 1패. 그리고 수원 FC가 강등을 당하면서 FA컵에서도 만날 일이 없게 되었다. 2017 K리그 챌린지에서 수원 FC가 플레이오프권으로 순위를 끌어올리지 못하면서 수원 더비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5. 시즌별 일람[편집]

6. 유소년 시스템[편집]

유소년 시스템

U-18

매탄고등학교

U-15

매탄중학교

U-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U-12

U-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U-10

보급반

리틀윙즈

7. 사건/사고[편집]

8. 시설 및 장비[편집]

8.1. 경기장[편집]

8.2. 클럽하우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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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클럽하우스

준공일

2006년 6월

소유주

삼성전자[51]

위치

경기도 화성시 반월동 412번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내1부지

건설비용

약 90억 원(2005년 기준)

시설

연면적 1,623평(지하 2층, 지상 3층)
천연잔디 구장 3면


완공 당시 국내 최고의 클럽하우스였으나 현재는 그 자리를 전북 현대 모터스 클럽하우스에 넘겨줬다. 구단과 모기업의 위상에 비해 클럽하우스가 늦게 만들어진 편으로 늦은 대신 유럽 명문 팀들의 클럽하우스들을 철저히 벤치마킹하여 만들어졌다.

클럽하우스 건립 전에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내 숙소를 사용하고 연습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내의 연습구장에서 했기에 거리가 멀어 훈련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으로 인해 2005년 9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내의 연습구장 위치 부근에 현재의 클럽하우스를 건설하고 2006년 6월 29일 선수들이 입주했다. 선수들이 최적의 컨디션으로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둔 설계로 라커룸과 훈련장-샤워장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최소화하고 안락한 공간 확보, 대회의실, 휴게실, 식당, 사우나실, 체력단련실, 물리치료실 등의 첨단 시설을 갖춤으로써 선수들이 훈련에 필요한 모든 사항을 클럽하우스 내에서 충족시킬 수 있도록 시공되었다. 클럽하우스 입구 로비에는 그동안 수집한 우승 트로피와 유니폼 등을 전시해 구단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게 했다.

특별히 합숙을 해야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유부남 선수들은 클럽하우스 근처 동탄쪽에 집을 구해서 훈련이 있을때에 출퇴근하는 형식이고 미혼 선수들만 클럽하우스에서 생활한다.

2012년에는 클럽하우스에서 팬즈데이를 진행하여 팬들에게 공개했고, 2013년에도 일부 팬들들을 초청해서 공개했다. 이후에 클럽하우스 명칭을 팬들에게 공모한 적이 있었는데 마땅한 이름이 없었는지 없던 일이 되었다.

클럽하우스 뒷편에 삼성전자 육상단 숙소와 훈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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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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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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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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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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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트 트레이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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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쓰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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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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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8.3. 재활시설[편집]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서 재활치료를 담당한다.

8.4. 차량[편집]

프로선수단 버스는 기아 그랜버드를 사용하고 있고 그 외 유소년이나 기타는 현대 에어로버스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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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유니폼[편집]

9. 캐치프라이즈[편집]

파일:external/www.kleague.com/201322013474.jpg

  • 2014: 푸른 도전! 승리 수원!

  • 2015~: Home of Football

10. 기념 로고[편집]

  • 1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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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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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영구결번[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 영구결번

No. 38

윤성효

  • 1998년 윤성효 은퇴 후 비공식적으로 영구결번 형식을 취해 아무도 달지 않았으며 팬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2008 시즌에 김현준이 38번을 달고 뛰었고 이에 팬들이 "뭥미?"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이후 윤성효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다시 영구결번으로 확정되었다. 프런트가 영구결번인걸 잊고 사는듯

  • 이 외에 2014년 PSV 에인트호번과의 친선 경기에서 박지성을 명예 선수로 등록하면서 등번호 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줬다.

  • 2017년 곽희주 은퇴 후 구단이 영구결번을 제안하였으나 본인이 거절했다고 한다. #

12. 선수단[편집]

12.1. 코칭 스태프 명단[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8 시즌 코치진

직책

이름

영문 이름

국적

생년월일

비고

감독

서정원

Seo Ju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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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 17일

코치

이병근

Lee Byung-Keun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73년 1월 28일

GK 코치

이운재

Lee Woon-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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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4월 26일

1군 코치

최성용

Choi Sung-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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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1월 14일

2군 코치

김태영

Kim Tae-Young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70년 11월 8일

피지컬 코치

하혁준

Ha Hyeok-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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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월 27일



12.2. 선수 명단 및 임대 선수[편집]

파일:Suwon_Samsung_Bluewings.svg.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8 시즌 스쿼드[주의]

[ 펼치기 · 접기 ]

번호

이름

영문 이름

포지션

국적

생년월일

신체조건

비고

1

신화용

Shin Hwa-Yong

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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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4월 13일 (35세)

183cm, 82kg

2

송준평

Song Jun-Pyung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6년 7월 29일 (22세)

177cm, 76kg

3

양상민

Yang Sang-Mi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4년 2월 24일 (34세)

182cm, 80kg

4

김은선

Kim Eun-Su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8년 3월 30일 (30세)

182cm, 78kg

파일:수원 주장.png

5

조성진

Jo Sung-Ji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0년 12월 14일 (27세)

187cm, 78kg

7

바그닝요

Wagner(Waguininho) da Silva Souza

FW

파일:브라질 국기.png

1990년 1월 30일 (28세)

178cm, 69kg

8

조원희

Cho Won-Hee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3년 4월 17일 (35세)

177cm, 72kg

9

박기동

Park Gi-Dong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8년 11월 1일 (29세)

190cm, 84kg

10

데얀

Dejan Damjanović

FW

파일:몬테네그로 국기.png

1981년 7월 27일 (37세)

187cm, 81kg

11

임상협

Lim Sang-Hyub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8년 7월 8일 (30세)

181cm, 74kg

13

박형진

Park Hyung-Ji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0년 6월 24일 (28세)

182cm, 75kg

14

한의권

Han Eui-Gwon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4년 6월 30일 (24세)

181cm, 72kg

ACL에서는 79번

15

구자룡

Koo Ja-Ryong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2년 4월 6일 (26세)

183cm, 75kg

16

이종성

Lee Jong-Sung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2년 8월 5일 (26세)

187cm, 72kg

부주장

17

김종우

Kim Jong-Woo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3년 10월 1일 (25세)

176cm, 73kg

18

김종민

Kim Jong-Mi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2년 8월 11일 (26세)

188cm, 78kg

19

최정훈

Choi Jung-Hoo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9년 3월 9일 (19세)

177cm, 71kg

20

곽광선

Kwak Kwang-Su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6년 3월 28일 (32세)

186cm, 76kg

21

노동건

No Dong-Geon

GK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1년 10월 4일 (27세)

191cm, 83kg

22

사리치

Elvis Sarić

MF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png

1990년 7월 21일 (28세)

180cm, 72kg

ACL에서는 19번

23

이기제

Lee Ki-Je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1년 7월 9일 (27세)

176cm, 68kg

24

박종우

Park Jong-Woo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9년 3월 10일 (29세)

181cm, 74kg

ACL에서는 89번

25

최성근

Choi Sung-Geu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1년 7월 28일 (27세)

181cm, 70kg

부주장

26

염기훈

Yeom Ki-Hu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3년 3월 30일 (35세)

182cm, 78kg

27

장현수

Jang Hyun-Soo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3년 1월 1일 (25세)

179cm, 73kg

28

유주안

You Ju-An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8년 10월 1일 (20세)

176cm, 70kg

29

박지민

Park Ji-Min

GK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00년 5월 25일 (18세)

189cm, 86kg

준프로 계약

30

윤용호

Yoon Yong-Ho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6년 3월 6일 (22세)

175cm, 68kg

31

김선우

Kim Sun-Woo

GK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3년 4월 22일 (25세)

188cm, 81kg

33

홍철

Hong Chul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0년 9월 17일 (28세)

176cm, 67kg

35

장호익

Jang Ho-Ik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3년 12월 4일 (24세)

176cm, 62kg

41

강봉균

Kang Bong-Gyun

GK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3년 7월 6일 (25세)

188cm, 85kg

42

송진규

Song Jin-Kyu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7년 7월 12일 (21세)

178cm, 66kg

44

김민호

Kim Min-Ho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7년 6월 11일 (21세)

188cm, 82kg

55

박준형

Park Jun-Hyung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3년 1월 25일 (25세)

189cm, 80kg

66

김태환

Kim Tea-Hwa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00년 3월 25일 (18세)

181cm, 68kg

준프로 계약

70

주현호

Joo Hyun-Ho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6년 3월 6일 (22세)

184cm, 77kg

77

조지훈

Cho Ji-Hu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0년 5월 29일 (28세)

188cm, 80kg

88

김준형

Kim Joon-Hyung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6년 4월 5일 (22세)

177cm, 77kg

93

신세계

Sin Se-Gye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0년 9월 16일 (28세)

178cm, 73kg

99

전세진

Jeon Se-Jin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9년 9월 9일 (19세)

180cm, 62kg

99

신상휘

Shin Sang-Hwi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00년 7월 14일 (18세)

178cm, 71kg

구단 정보

감독

구장

서정원

수원 월드컵 경기장 (빅버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8 시즌 임대 및 군 복무 선수 명단

[ 펼치기 · 접기 ]

임대 구단

이름

영문 이름

포지션

국적

생년월일

신체조건

비고

상주 상무

김건희

Kim Gun-Hee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5년 2월 22일 (23세)

186cm, 79kg

2020년 2월 20일 전역

아산 무궁화

민상기

Min Sang-Gi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1년 8월 27일 (27세)

184cm, 79kg

2019년 2월 10일 전역

아산 무궁화

양형모

Yang Hyung-Mo

GK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1년 7월 16일 (27세)

186cm, 82kg

2019년 9월 6일 전역

대전 시티즌

고민성

Ko Min-Seong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5년 11월 25일 (23세)

173cm, 70kg

임대

FC 안양

문준호

Moon Jun-Ho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3년 7월 12일 (25세)

173cm, 70kg

임대

FC 안양

김진래

Kim Jin-Rae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7년 5월 1일 (21세)

182cm, 68kg

임대

대구 FC

고승범

Ko Seung-Beom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4년 4월 24일 (24세)

174cm, 72kg

임대

수원 FC

이상민

Lee Sang-Mi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5년 5월 2일 (23세)

174cm, 68kg

임대


[주의]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스쿼드에 대한 간략한 틀은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수정할 때는 여기도 같이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

13. 역대 주요 선수[편집]

☆는 구단에서 지정한 공식 레전드

  • 고종수☆(1996~2004) : 한때 수원 팬들 등에 22번이 도배되게 한 적이 있던 앙팡 테리블. 프리킥 하면 고종수다.

  • 김진우☆(1996~2007) : 수원 한 팀에만 충성을 바친 유일무이한 원 클럽 맨. 단단한 수비형 미드필더.

  • 데니스☆(1996~2003, 2006~2007) : 2001 시즌 K리그를 박살낸 고-데-로(고종수-데니스-산드로) 트리오의 일원이다. 성남으로 이적한 후 이성남으로 개명하며 한국 귀화.

  • 바데아 (1996~1998) : 수원 창단 멤버로,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뛰었으며 강렬한 프로 의식으로 수원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다. 김호가 칭찬할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다. 지고도 웃는 동료들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하며, 필드, 날씨에 따라 축구화를 다르게 신는 등 당시 수원 선수들에게 프로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1998년 이후 J리그로 이적했다.

  • 박건하☆(1996~2006) : 수원 창단 멤버, 신인왕 출신. 옷깃을 세우는 득점 세레머니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 윤성효 (1996~2000): 화려하진 않지만 강한 투쟁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했으며 패스와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뛰어났던 선수. 구단 유일의 영구결번 지정자. 구단 최초 선수 출신 감독. 감독 시절에는 북패 잡는 귀신!지금은 욕먹는다. 세제믿윤.

  • 이광종 (1996~1997) : 수원 창단 멤버, 창단 후 수원의 정규리그 1호골을 기록했다.

  • 이병근☆(1996~2006) : 수원 창단 멤버, 오래 수원의 뒤를 지켜오던 수비수. 현 감독 대행.

  • 이운재☆(1996~2011) : 수원 창단 멤버, 국대 팬들한테는 까이지만 수원에서는 다르다.퐈이야를 보고 이젠 국대 팬들도 신대접 2017 시즌부터 수원의 골키퍼 코치로 돌아왔다.

  • 올리 (1997~2000) : 수원 초창기 용병 중앙 수비수.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의 감독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기도 했다. 현 장쑤 쑤닝 감독.

  • 비탈리 (1998-2000) : 1999 시즌 당시 샤샤와 투 톱을 이뤘던 선수. 득점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같은 팀의 데니스와 함께 10어시스트로 도움왕에 오른바 있다.

  • 샤샤 (1998~2000) : 1999년도에 가공할 만한 득점력으로 수원의 전관왕에 매우 큰 공헌을 한 선수. 득점왕을 했으나 신의 손 사건 때문에 MVP는 안정환이 가져갔다. 신의손 사건만 없었어도 MVP는 샤샤가 탔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포스트 플레이에 능했다. 다만 샤샤는 커리어의 상당 기간을 부산과 성남에서 쌓아서 수원 팬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이미지가 적은 편이다. 공교롭게도 한국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펠릭스 호세[52]와 같은 해에 종목은 달라도 둘 다 똑같이 전성기급 활동을 펼쳐, 그야말로 프로스포츠 외국인 선수의 전성시대를 열어젖힌 인물로 평가받는다.

  • 정용훈 (1998~2003) :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요절한 선수. 빠른 발이 인상적인 선수여서 포텐을 기대하던 팬이 많았기에...

  • 서정원☆ (1999~2004) : 안양 LG 치타스와의 지지대 더비를 만든 주역. 그만큼 수원에서 사랑받던 윙어. 수석코치를 거쳐 수원의 4대 감독 역임.

  • 산드로☆ (2000~2002, 2005~2007) : 고-데-로 트리오의 일원. 고데로의 최전성기였던 2001 시즌 때 최연소 득점왕에 올랐다.

  • 가비 (2002~2004) : 올리와 같은 루마니아 출신 선수. 패스가 좋았던 플레이 메이커.

  • 곽희주☆ (2003~2013, 2015~2016) : 두 말이 필요 없는 수원의 레전드. 곽대장. 현재 매탄고등학교 축구부 코치.

  • 나드손☆ (2003~2008) : '원 샷 원 킬'이라는 별명의 작고 빠른 공격수. 브라질 U-18대표 출신. 특히 2004년에 수원이 리그 우승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지라 외국인 선수 최초로 K리그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수원 팬들에 있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라 할 수 있는 선수다.

  • 뚜따 (2003) : 키도 크고 드리블도 좋았으며 득점력도 꽤 좋았던 선수. 전 소속팀 안양과의 라이벌 관계에 기름을 끼얹은 주역. 그런데...

  • 김대의 (2004~2010) : 성남에서 이적해 온 이후 쭉 수원의 왼쪽 측면을 든든하게 책임진 선수. 선수 은퇴 후에도 유스 양성과 선수 발굴에 이바지하였다. 스카우터 재직 시절 좋지 않은 모양새로 팀을 떠난 후 현재는 수원 FC 감독이 되었다.

  • 마르셀 (2004, 2011) : 나드손에 많이 묻혔지만 나름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다. 2011년에 반도 대체 선수로 왔으나 2004년과는 달리 실망스러운 플레이를 보여준 채 방출.

  • 김남일 (2005~2007) : 수원에 있을 때는 사랑받는 존재였지만 거짓말까지 하면서 팀을 떠난 후에는 김배신 취급.

  • 마토(2005~2008, 2011) : 일명 '통곡의 벽'이자 뛰어난 킥력과 헤더로 10골을 넣기도 한 공수겸장의 수비수. 2008 시즌 종료 후 J리그 오미야로 이적했으나 2년 만에 복귀했다.

  • 송종국 (2005~2010) : '레알 수원'이라 일컬어지는 2008 시즌 주장, '하얗게 눈이 내리던 그 날'에 결승골을 넣은 장본인이다.

  • 이관우 (2006~2010) : 2006 후기 리그 우승의 일등공신, 당대 K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이자 팀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 U-12 유스팀 코치와 감독을 거쳐 현재는 수원 FC 수석 코치로 재직 중이다.

  • 백지훈 (2006~2011, 2015~2016) : 이관우와 더불어 06년도 후기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 날이 갈수록 잦은 부상과 들쑥날쑥한 경기력 때문에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했다.

  • 에두 (2007~2009) : 나드손 이후로 오랜만에 등장한 K리그 사기 유닛 공격수. 분데스리가 샬케 04로 이적해서 케빈 쿠라니헤페르손 파르판이라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공격수들 사이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인테르전에서, 그것도 인테르의 홈인 주세페 메아차에서 2골 작렬. 그것도 에가 보는 앞에서. 탈 아시아급 용병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 현재는 FC 도쿄, 전북 현대 모터스, 허베이 종지를 전전하다 다시 전북으로 리턴. 모종의 사건 이후에는 매두라고 까인다.

  • 리웨이펑 (2009~2010) : 중국 국가대표팀 등에서 보여준 더티 플레이를 일삼는 거친 이미지 때문에 처음 영입될 때만 해도 수원 팬들마저 우려하던 선수였으나 그러한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좋은 실력을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 팀에 대한 헌신으로 수원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가끔씩 수원 홈경기를 관전하러 온 것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곤 하였다.

  • 스테보 (2011~2013) : 2011년 중반에 영입되어 2년 간 수원의 최전방을 책임진 선수. 골 결정력도 준수했지만, 무엇보다 구단과 팬들에 대한 사랑과 그 표현이 매우 뛰어나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다. 특히 2013년 7월 3일 대전 시티즌과의 홈 고별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하고 후반 교체 후 관중석에 올라가 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모습은 수원 팬이라면 눈물이 고일 만한 명장면. 그 후 전남에서 뛰다 마케도니아로 귀국후 은퇴했다.

  • 정대세 (2013~2015) : 인민루니. 한 때 인민먹튀 소리까지 들었지만 2015년에는 팀에 녹아든 플레이로 5eou1이라는 전설급 경기를 남기는 등 리그 상반기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났다. 일본 이적 후에도 비시즌 기간에 빅버드를 방문하는 등 수원에 대한 사랑이 여전히 깊은 선수.

  • 권창훈 [53] (2013~2016) : 수원 유스가 낳은 최고의 걸작. 수원 유스 출신 최초 유럽 프로리그 진출자. 2010년대 초중반 힘들었던 수원의 중원을 지탱하던 소년가장. 프랑스 이적 후에도 그의 성장은 현재진행중이다.

  • 산토스☆(2013~2017) : 일명 山土水 선생. 기복 없이 준수한 활약으로 서정원이 가지고 있던 팀 내 최다 득점 기록과 K리그에 소속된 브라질리언 최다 득점까지 갈아치웠다. 계약 종료 후 구단에서 그 동안의 활약을 높이 사 구단의 11번째 공식 레전드로 지정하였다. [54] [55]

  • 조나탄 (2016~2017) : 수원의 호날두. 수원에서 활약한 기간이 긴 편은 아니지만 그동안 보여준 활약은 그야말로 역대급. 2016년 챌린지 강등에서 벗어난 것도 FA컵 우승도 그의 공이 가장 컸다. 2017년에도 리그 득점왕에 리그 최다 연속 멀티골 기록 경신, 입단한지 1년도 안되어서 수원 삼성 역대 최단시간 30골 달성 기록도 새로 썼다. 팬서비스도 뛰어나 수원 팬들에게 매우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 K리그 외인 최고 이적료[56]를 경신하면서 톈진 터다로 이적했다. 이 이적료로 수원은 2018 겨울 오랫만에 비교적 돈 걱정 없이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으나 시장에 쓸만한 매물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놓고 데려온 게 데얀

  • 김민우 [57](2017) : 홍철, 권창훈이 없는 수원 좌파라인의 명맥을 이은 2017 시즌 최고의 영입. 사간티노들이 왜 그를 그리워하는지 알 수 있었던 활약을 펼쳤다. [58]

14. 역대 감독[편집]

순번

이름

재임 기간

경기 수

승률

1

김호

1996~2003 (8년)

312

153

77

82

49%

2

차범근

2004~2010 (7년)

241

102

69

70

42%

3

윤성효

2010~2012 (3년)

137

70

31

36

51%

4

서정원

2013~2018 (6년)

268

114

80

74

57%

5

공석

15. 홈 관중 관련 통계[59][편집]

연도

평균 관객 수

주말

평일

최다 관객 수

최소 관객 수

리그 성적

1996

14,589[60]

16,850

12,534

35,208

5,130

준우승

1997

8,127

9,573

5,854

20,197

1,527

5위

1998

16,778

20,349

11,869

36,456[61]

1,765

우승

1999

19,916

21,631

18,030

27,525[62]

8,425

우승

2000

13,981

15,349

12,028

25,033

4,864

5위

2001

15,244

16,565

12,472

33,311

4,512

3위

2002

20,406

24,423

16,389

42,280

3,655

3위

2003

11,864

13,394

9,652

24,869

3,485

3위

2004

21,289

21,660

20,424

38,163

6,637

우승

2005

19,145

21,667

10,320

33,479

9,731

9위

2006

20,306

23,288

15,086

38,526

5,873

준우승

2007

22,744

25,185

20,032

41,819

8,236

2위(PO 탈락)

2008

22,377

24,920

18,245

41,044

12,318

우승

2009

18,174

18,583

12,449

35,058

10,206

10위

2010

26,182

42,377

18,241

7위

2011

24,021

44,537

13,004

4위

2012

20,265

45,192

9,227

4위

2013

17,689

18,949

14,961

37,879

4,861

5위

2014

19,019

22,377

11,465

29,318

6,527

준우승

2015

13,165

29,046

6,538

준우승

2016

10,643

28,109

4,042

7위

2017

8,786

26,581

3,818

3위

16. 서포터즈[편집]

16.1. 네임드 팬[편집]

16.2. 커뮤니티[편집]

16.3. 응원가[편집]

17. 에피소드[편집]

18. 흑역사[편집]

  • 1999 시즌 : 대한화재컵에서 샤샤의 신의 손으로 우승해 논란. 정규리그 결승전에서는 부산에 문제 없이 승리. 정작 1999년 수원은 K리그 역대 최강의 스쿼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런 최강급 스쿼드로 정상적인 플레이를 해서 이겼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어떤 각도로 어떻게 살펴봐도 연장전 결승골이 샤샤의 손에 맞고 들어갔으니 까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스포츠 신문들도 축구 까기 인형 모드로 1면에다 큼직하게 반칙 사진을 싣는 등 대놓고 깠다.

  • 2006 시즌 : 전반기 당시 그랑블루에서 차범근 감독과의 면담을 공개적으로 요청했을 정도. 하지만 후반기에 극적인 반전으로 챔피언 결정전까지 나갔다.

  • 2009 시즌 : 누가 봐도 흑역사...

  • 2010 시즌 : 전반기 순위표에서 대전 시티즌보다 밑에 있었을 정도면... 막판 상승세로 7위로 시즌을 마쳤다.

  • 2011 시즌 : AFC 챔피언스 리그 알 사드와의 경기 난투극, 설레블.

  • 2013 시즌 :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으며, 정규시즌에서도 5위로 2014 ACL 진출에 실패했다.

  • 2016 시즌 : 9월이 시작됬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위였으며, K리그 챌린지로의 강등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나 하위 스플릿 이후 상승세를 타 하위 스플릿 최상위인 7위로 시즌을 마쳤으며,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 2017 시즌 : 이정수 은퇴 파동, FA컵 4강 결승골 무효 판정

18.1. 블루윙즈폰[편집]

파일:external/www.bluewings.kr/20100316_view(2)(2).jpg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모기업의 주도하에 야심차게 준비한 재고떨이 마케팅으로 당시 삼성전자의 주력 스마트폰인 옴니아 II옴니아 팝을 기반으로 2010년 3월 블루윙즈폰을 출시했다.

SK텔레콤과 연계해 통신사는 SKT로만 쓸수 있었으며 스펙 자체는 기존 옴니아와 동일했다. 기존에 출시한 옴니아와 다른 점이라면 블루윙즈 어플 내장, 블루윙즈 테마, 블루윙즈 일정 등 지금와서 보면 일반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구현할수 있는 기능이었지만 당시 팬들은 이 마케팅에 혹해 구매한 호갱 팬들이 많았다.

삼성스포츠단 내 다른 구단들도 있는데 굳이 수원만 이런 마케팅을 한 것은 아마도 가장 팬층이 두터운 것과 모기업이 삼성전자라서 이뤄질 수 있었던 듯. 또한 세계적으로도 단일 스포츠팀 전용 스마트폰은 유례가 없다는 점이 한몫한 것도 있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옴니아폰의 악평이 자자했기에 당시 갤럭시 S 출시를 앞두고 재고소진의 목적을 마케팅이라는 허울좋은 껍데기에 씌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같은 달 후속작인 갤럭시 S를 공개하고 3개월 뒤에 판매를 시작해 이걸 산 팬들을 호구로 만들었다. 게다가 이 블루윙즈폰의 기획에 당시 서포터 운영진이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등... 구단이 팬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지 증명한 사례 중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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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성그룹의 계열사로 삼성그룹 전 계열사의 광고, 마케팅과 프로스포츠단 운영을 맡고 있다.[2] 현 제일기획 대표이사 [3] 제일기획 상무[4] 서포터즈의 이름인 프렌테 트리콜로( 전선)의 뜻과 연관이 있다. [5] 왼쪽부터 딸 레나, 부 아길레온, 모 아길레오나, 아들 레온[6] 아디다스컵, 대한화재컵 2개 대회 우승[7] 1999년 7월 29일 ~ 8월 29일, 2008년 3월 19일 ~ 4월 26일 [8] 2008년 3월 9일 ~ 6월 28일[9] 2018시즌부터 자이크로와 계약. 관련기사[10] 23회[11] 연고지는 수원시이지만 팬들의 구성을 보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수원 시민들 뿐 아니라 용인, 화성 등 수원 주변 경기도 지역, 서울의 강남 3구 거주자까지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옛 비칭이 수원 2중대인 이유도 인천이 창단되기 전 수원을 응원하던 많은 인천 거주 수원 팬들이 주축이 되어 인천 서포터를 구성했기 때문. 경기가 있는 날이면 강남역, 잠실역, 사당역에서 수원으로 출발하는 광역버스와 신분당선에서 수원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12]아시아 챔피언스 리그[현] 성남 FC[14] 그리고 2014년부터 삼성그룹 전체가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 시작했다. 대한축구협회 스폰서에서도 빠졌고 대한레슬링협회의 후원도 2013년을 끝으로 종료된 상태다. 2014년에 서울 삼성 썬더스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이어서 삼성전자제일기획으로 넘어간 것도 몸집 줄이기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15] 게다가 기업명이 비하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문화는 K리그 전체로도 좋지가 않다. 기업들이 수백억씩 쓰면서 구단을 운영하는 이유는 "모기업 광고" + "세제혜택" + "사회환원" 차원에서 운영하는 건데 기업명이 들어간다고 비하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어떤 기업이 리그에 돈을 풀고 팀을 창단할까? 일부 팬들은 "일본만 봐도 잘만 그렇게 하고있고 FC 서울과 제주 유나이티드도 기업명이 들어가지 않는데요?"라는 주장을 하지만, 그래서 K리그에 다른 조옥들 처럼 기업들이 돈을 풀고 활발히 선수 영입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16] 인수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다.[17] 이후 삼성전자 소속이었던 남자농구단, 삼성생명 소속이었던 여자농구단, 삼성화재 소속이었던 배구단 그리고 야구단까지 모두 제일기획에서 운영을 맡게 됐다.[18] 그리폰이라고 불리는 신화 속 동물이다.[19] 충주 험멜은 여태까지 K리그 참가만 안했을뿐 이미 1999년에 창단된 팀이다. 그리고 해체되었다.[20] 아디다스컵, 대한화재컵[21] 아디다스컵[22] 삼성 하우젠컵[23] AFC 챔피언스리그 전신 "아시안클럽 챔피언십" 시절에 우승[24] AFC 챔피언스리그 전신으로 우승기록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기록으로 계승되며 수원은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시절 마지막 우승팀이 되었다.[25] 그러나 2016년에 이르러 지속적인 성적 부진과 프런트들의 삽질로 인기가 FC 서울, 전북 현대에게 추월당했기 때문에 "대표하는 인기구단"이라는 말이 "대표했던 과거의 인기구단"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6년 FA컵 우승으로 간신히 위기를 면했다.[26] BLUE는 수원의 상징색이자 팀명에 들어간 단어로 수원을 지칭하고 WIN은 단어 그대로 이긴다는 뜻, GS는 FC 서울의 모기업인 GS그룹 즉 FC 서울을 지칭한다. 마치 FC 서울이 GS그룹 소유로 넘어간다는걸 예상이라도 한듯 절묘한 팀명이 아닐수 없다.[27] 정확히는 체스터 [28] 현재 수원에서 인정하는 라이벌은 대전 시티즌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FC 안양이 창단되어 그 팀도 라이벌 반열에 들어갈 것 같았지만 라이벌이 아닌 동맹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팀 때문에.[29] 2008년 수원과 서울의 매치를 좀 더 띄우기 위해서 수원 프런트가 '슈퍼 매치'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기도 한다. 출처는 "대한민국은 K리그다"-김현회[30] 컵대회라고는 하나 양 팀 모두 베스트 멤버를 총출동시키며 경기를 치렀다.[31] 타 지지자구단 보다 규모도 큰데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이런 저런 사고가 많았던지라 첫 우승 때 흥분에 못 이겨 경기장 밖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을 다 때려 부셔 구단이 차 값 물어준 적도 있었고, 2006년 FC 서울의 홈 구장인 상암에서 방화 사건을 일으킨 후 즉각적인 사과와 후속조치의 미비로 빈축을 샀으며 2008년 전북과의 경기에선 조재진의 야유방법으로 조재진과 스캔들이 있었던 백지영을 끌어들여 논란을 일으켰다. 참고로 이때 지지자연합 수뇌부의 대응은 '백지영에게는 미안하지만 조재진은 까야 하는 존재'로 요약된다.[32] 물론 여기에는 서로 상대방이 악역을 맡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33] 김주영은 수원 이적을 거부하고 서울로 이적한, 수원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을 범한 선수[34] 이상호가 과거에 FC 서울에게 "북패 짜식들"이라고 SNS에 게시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35] 그렇다고 서울이 손해본 영입은 아니다. 공격포인트는 많지 않지만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활발하게 플레이해주고 슈퍼매치에서 활약이 좋아서 서울 팬들도 만족하고 있다.[36] 전북 홈 경기장인 전주월드컵경기장의 별칭인 전주성과 수원시의 랜드마크인 수원화성에서 따와 성을 공격한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37] 이 사건 이후 그랑블루는 "해당 가수에겐 미안하지만, 조재진에겐 이래야만 했다."라는 이야기를 했다.[38] 잠시 몸 담을 선수로 생각했던 전북의 팬들은 이 사건으로 조재진을 매우 사랑하게 된다.[39] 수원과의 경기를 앞두고 상대 서포터들에게 전북 비난하는 걸개를 제재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자기네들은 닭(수원을 까는 말) 이벤트, 영원한 승3 제공자 라면서 수원을 비난했다.[40] FC 서울 역시 수원에 버금갈 정도로 전북과의 사이가 안좋아졌다.[41] 이에 과거 이다해를 시축자로 초청한 두 경기서 수원 삼성이 모두 패한걸 안 대전 구단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다해를 시축자로 초청했다고 한다.[42] 당장 감독인 고종수부터 시작해서 김진우 수석코치, 이기범 2군 감독(마지막 현역생활을 수원에서 했음), 주장인 오장은까지 모두 수원 출신이다.[43] 참고로 포항은 이 시즌에 클래식 데뷔무대를 가진 또 다른 수원 연고팀에게 4전 전패를 당했다.[44] 이날 산토스는 서정원을 꺾고 수원소속 K리그 최다골을 기록하게 되었다. 2017.10.15일 기준 현재 55골.(서정원은 46골이다.)[45] 울산의 첫 K리그 우승[46] 신홍기는 울산에서 수원으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울산과 마찰을 겪어 울산 올드팬들에게는 배신자 취급을 당하고 있다.[47] 물론 서울 더비는 아직이다. FC 서울이 K리그 클래식에서 하위 스플릿조차 한 번도 없는 반면, 서울 이랜드 FC는 챌린지 중위권에 머물러 있다.[48] 수원 FC가 프로화 되기 전인 수원시청 축구단 시절에 만났었다. 마지막 경기는 2011년이다.[49] 1무는 2005년도 FA컵에서 나왔는데 1:1로 비겼지만 결국에는 승부차기에서 수원 삼성이 이겼다.[50] 이날 프렌테 트리콜로는 과거 구호였던 수원 삼성과 종합운동장 시절 썼던 몇가지 응원가들을 다시 쓰면서 여기가 과거 우리집이었다는걸 상기시키는듯 했다.[51] 구단 소유가 아니고 구단이 삼성전자로 부터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다.[52] 99년에 골든글러브 탔다.[53] 권창훈 선수의 부모님이 수원에서 빵집을 운영하신다 하여 빵훈이란 별명이 붙었고, 실제 비시즌 기간에는 부모님 빵집에서 간간히 알바를 뛰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지금은 가족이 프랑스 디종에 있다고 한다[54] 다만 절차상 아쉬움이 남는 것이 2017 시즌 수원의 마지막 경기는 전북 원정이었고, 그 경기 이후 산토스의 수원과의 계약은 종료되었다. 수원은 이를 연장하지 않아 산토스는 자유 계약 신분이 되었고, 수원이 재계약 의지가 없음에 따라 결국 짐을 싸게 되었다. 이에 이런 선수를 공식 고별식도 없이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한 팬들을 달래고자 부랴부랴 지정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55] 한편 팬들은 산토스가 출국하는 날 인천공항까지 배웅을 나가 산토스 콜을 부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56] 추정치 약 65억원 조나탄의 유산[57] 별명 피르민우 [58] 여담으로 김민우가 수원으로 이적한 2017년 겨울 토스에서 수원사간 도스와 친선전을 벌일 때 수원 측에서 김민우 이름을 마킹한 2017시즌 수원 유니폼을 10벌 가량 특별 판매했다(국내 팬들은 아직 받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10만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한시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59] 리그+리그컵 기준으로 FA컵은 산정치 않았다.[60] 챔피언 결정전 2차전 기록 누락.[61] 챔피언 결정전 2차전 Vs. 울산[62] 챔피언 결정전 2차전 Vs. 부산[63] 전재운을 전북에 조공하고 받은 선수. 영입 당시 장신(196cm)의 타겟 맨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2년 동안 골 하나 못 넣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며 방출되었다. 지금은 경산에서 축구 교실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64] 루이스 임대 종료 후 영입한 선수. 안 그래도 루이스가 전북에서 포텐 터진 것 때문에 욕먹는데 얘 때문에 더 욕먹는다(...). 팬들은 주로 루카스 오일(...)이라고 깐다.[65] 수원에서 적응에 실패한 후 전북으로 이적해서 전북의 판타스틱 4로 활약하였다. 수원 시절 루이스를 윙어로 써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차붐은 루이스가 보여준 전북에서의 포텐 폭발로 인해 엄청 까였다. 사실 루카스를 영입할 때까지만 임대 형식으로 데리고 있다가 임대종료가 되었다.[66] 수원 시절 등록명이며, 수원에서 가비고종수라는 두터운 공격형 미드필더 주전 자리를 뚫지 못해 방출된 후 몇 년 지나서 대구로 이적할 때는 에닝요로 등록. 대구에서의 활약으로 전북으로 이적했다. 역시 판타스틱 4의 일원이며 루이스와 같은 이유로 욕먹는다.[67] 2014 시즌 수원 수비의 중심인 헤이네르와 이름만 비슷한 잉여 공격수.[68]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되었으나 교체 출장할 때마다 손정탁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절망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게다가 2014년에 부상을 입어서 STC에서 재활을 받는 동안 재활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매우 불성실하여 수원 구단에 의해 임의 탈퇴 처리되었다. 임의 탈퇴 때문에 국내 리그에서는 입단이 불가하여 결국 태국 3부 리그로 이적했다가, 2015 시즌부터 내셔널리그 용인시청 소속으로 뛰고 있다. 수원 드래프트의 저주에 한 획을 그은 그냥 전봇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