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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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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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이파크 역대 감독

이차만
(1997~1999)

김호곤
(2000~2002)

이안 포터필드
(2003~2006)

울산 현대 역대 감독

김정남
(2000~2008)

김호곤
(2009~2013)

조민국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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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호곤 (金鎬坤 / Kim Ho-Gon)

생년월일

1951년 3월 26일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생

경상남도 통영시

본관

김해 김씨

포지션

수비수

소속팀

상업은행 (1969~1970)
연세대학교 (1971~1974)
서울신탁은행 (1975~1982)

지도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1980~1983)
현대 호랑이 코치 (1983~1987)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1985~198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코치 (1988)
연세대학교 감독 (1992~1999)
부산 아이파크 감독 (2000~200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대행 (200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감독 (2002~2004)
울산 현대 감독 (2009~2013)

국가대표

126경기 5골


1. 개요2. 선수 시절3. 지도자 시절
3.1. 울산 현대 부임3.2. 2011년 철퇴축구 등장3.3. 2012년 철퇴축구 완성3.4. 2013년 新 철퇴축구
4. 행정가 시절5. 기타

1. 개요[편집]

197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수비수이자 철퇴축구로 울산 현대의 부흥을 이끌었던 명장

그러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으로서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 인물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에는 수비수로 뛰었다.

2. 선수 시절[편집]

70년대 대표팀 붙박이 선수로, A매치 120경기에 출장해 센추리 클럽에 가입조건을 갖췄다. 그 풍부한 경력만큼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 선수로 뛰었는데, 이때 높으신 분의 지시에 따라 대표팀이 승부조작을 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한창 북한과 체제경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경쟁의식이 대단했다. 그런데 북한 축구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전례가 있는 강팀이었다.[1] 결국 '뭐든 북한에 지는 꼴은 못본다'는 높으신 분의 뜻에 따라 남북대결을 피하기 위해 쿠웨이트에 일부러 패했다. 하지만 이 패배가 화근이 되어 대표팀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 했다. 여담으로 북한축구의 약진에 자극받은 대한민국은 대표팀 제도를 개편해 화랑, 충무 팀을 만든다.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화랑이 1군,충무가 2군인데, 이때 화랑팀 멤버가 허정무 조광래 박성화 등 2000년대 대한민국 축구의 중진들이다.[2] 그밖에 조영증, 이영무 등 축구협회에서 활약한 이들도 이 시기 대표팀에 뽑혔다.

197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마침내 남북대결이 벌어졌다. 더구나 분단 이후 남북 대표팀의 첫 A매치였다. 이때 김호곤은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양팀은 팽팽한 대치 끝에 0-0 무승부를 기록했는데, 연장 승부차기 규칙을 적용하지 않은 대회였기 때문에 공동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시상식에서 사고가 터진다. 양보를 받아 시상대에 먼저 오른 북한 주장 김종민이 자리를 내주지 않자, 김호곤이 억지로 비집고 올라섰다. 그러자 북한 골키퍼 김광일이 뒤에서 확 밀어버려 김호곤이 시상대에서 떨어졌다(...). 자칫 승부차기 대신 현피가 벌어질 판국인데, 김호곤은 침착하게 '보는 눈도 많은데 웃으며 포즈를 취하자'고 김종민과 어깨동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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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사진

1970년대 선수인데 부끄럽게도1990년대까지 출장 기록이 묻혀 있었다. 즉 축구협회에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90년대 후반 PC 통신에서 활동하던 축덕들이 국회도서관에서 옛 신문을 뒤지고 해외까지 나가 자료를 수집해 발굴해냈다. 여담으로 이렇게 축덕들이 자료를 발굴해서 FIFA에서 정식으로 인증한 사람이 바로 차범근이다. 이거시 대한민국 축덕의 위엄

3. 지도자 시절[편집]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박항서호

김호곤호

베어벡호(U-23)

1980년부터 코치를 하다가[3] 1992년부터 정병탁 감독이 떠난 모교인 연세대학교 감독을 시작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햇수는 오래지만, 도중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간부로 지냈기 때문에, 감독한 프로팀은 부산 아이콘스 (現 부산 아이파크)와 울산 현대 호랑이 딱 둘 뿐이다.

2004 아테네 올림픽 감독을 맡았는데, 이전 부산을 맡았을 때 팀 성적이 하위권여서 자격 논란이 일었다. 또 네덜란드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할 때 기자들 앞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는지 '그는 돈만 밝힌다'고 비난했다. 한 언론에선 직접적으로 보도하여 '히딩크 그 XX 파문'이라고 보도하는 바람에 한동안 파문 시리즈가 유행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그 유명한 호로곤. 그 당시 김호곤은 히딩크 감독이 국대의 스케줄을 무시하고 이천수와 장시간 대화를 하느라 팀의 스케줄에 영향을 미쳤다든지, 올림픽 대표팀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별 도움을 주지 않았다든지 하는 소리를 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이천수와 대화를 나눈 것은 1~2분에 불과했으며, 최대한 상세히 정보를 주었지만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고 반론하였다. 누가봐도 합리적인 반론이었고, 김호곤이가 사과를 하는 선에서 끝났지만, 13년 후에 엄청난 태풍으로 다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그리고 이때부터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다.

우려를 뒤로 하고 지역예선 통틀어 8전 전승에 무실점을 기록했고[4], 사상 두번째로 팀을 본선 8강까지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사상 최초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상 최초가 아니다. 그 이전에 런던올림픽에서 8강에 진출한 적이 있다. 고마워요 탐부라 사실 예선 3차전에서 말리를 만나 3-0으로 지다가 조재진의 2골로 따라잡고 말리 선수의 자책골로 3-3 무승부를 이루며 꾸역꾸역 기사회생,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8강에선 파라과이를 만나 또 3골을 먼저 허용하며 2골을 넣은 이천수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2-3으로 패했다.

3.1. 울산 현대 부임[편집]

2009년에 울산 김정남 감독이 물러나자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언론에 부임 소식이 뜨자마자 정몽준의 연줄로 울산 현대 감독이 되었다고 온갖 욕을 다 먹었다. 게다가 2008 시즌 리그 4위를 기록한 팀이 2009 시즌에 8위로 떨어지면서 폄칭 호로곤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2009 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리그 일정이 빠듯해 호주 뉴캐슬 제츠 원정에서 2군 선수를 대량으로 차출했다. 축구 칼럼니스트 존 듀어든은 챔스 포기했냐며 강도 높게 비난했고, 그해 K리그 팀들 중 유일하게 16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더더욱 까였다. 김호곤 감독은 가뜩이나 탈락해서 기분 나쁜데 듀어든 마저 자신을 비판하자 집에 전화까지 걸어서 항의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축구사이트들은 김호곤의 뻘짓이라고 더 비난했다. 실은 듀어든 말고도 축구기자들이나 언론도 비슷한 기사를 썼음에도 만만한(?) 듀어든에게 까분다면서... 챔스리그 포기로 K리그의 망신이 아니냐는 기자의 비아냥적인 글도 올라왔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2010 시즌 프랜차이즈 스타급[5]현영민을 내주고 김치곤을 데려오면서 온갖 욕을 다 먹었다.

하지만 서울제주가 월등한 승점차로 선두다툼을 벌이고, 풋사과 초보 감독 신태용이 이끄는 성남이 약진하는 가운데,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경남 FC가 약한 전력을 갖고도 분전하는 바람에 가장 늦게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은 울산은 완벽히 묻혔다.

심지어 DTD 스쿼드가 좋으니까 순위가 높을 뿐, 다시 내려올 거라며 무시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이 쯤 되면 그냥 안습.

3.2. 2011년 철퇴축구 등장[편집]

하지만 2011년 마지막 리그컵인 러시앤 캐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부임 이후 처음으로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체면치레를 했다. 물론 다른 강팀들은 리그컵 대회에 열의를 보이지 않고 2군 선수들을 보내는등 비교적 무난하게 우승컵을 거머쥐긴 했다. 무엇보다 김호곤 감독은 리그컵을 없앤다는 방침에 반대도 해왔고, 인터뷰(스포츠서울)에서 리그컵을 우습게 대하면 안된다고 다른 감독들과 정반대 의견을 보였다. 결국 정예 멤버를 총동원하며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다고 쉽게 우승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여타 중하위권 팀들이 리그 대신 리그컵에 매진했기 때문에 상당히 고전했다. 결승에서도 부산 아이파크와 격전을 벌이며 어렵사리 우승을 거뒀기에 우습게 볼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전설의 시작. 링크

2011년 리그 6위 성적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참가했다. 일반적인 예상을 뒤집고 6강 플레이오프에서 리그 3위팀 서울을 3:1로 완파하며 준플레이오프에 진출, 역시 예상을 뒤집고 리그 4위팀 수원과 만나 연장종료 1:1을 기록 결국 승부차기 끝에 3:1로 물리쳤다. 잇단 승전보에 K리그팬들은 농담삼아(...) 김호곤 명장론을 내세우며 조광래 대신 대표팀에 보내라며 부왘을 울리고 있다. 철저한 수비+세트피스에서의 한방으로 승부를 보는 김호곤 감독의 울산을 보며 철퇴축구라 부르기도 한다.국내축구 갤러리, 사커라인 등에서는 철퇴왕 김호곤, 호거슨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이 생겨나고 있다. 반면 수원팬의 윤성효 경질 목소리는 하늘을 찌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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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짤도 만들어지고 뉴스까지 탔다(...!).

결국 포항과의 동해안 더비, 설기현 더비에서 수비수의 벽을 앞세우며 단단하게 막아내며 승리

김호곤 감독의 축구가 수비적이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제3자의 시각일 뿐, 팀을 응원하는 이에겐 결국 승리가 중요하다. 닥공으로 따내든 우주방어로 따내든 승점 3점은 똑같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무리뉴첼시 역시 똑같은 비난을 들었지만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생깠으니(...). 근데 그러면 똑같이 수비적이고 지루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성적은 훨씬 좋았던 전임 감독은..... 그 전임 감독 축구가 다큐멘터리라면 철퇴 축구는 시청률 30% 예능

2011년 울산은 중위권 성적을 내면서도 파울수나 경고수에서 강원과 함께 최하위를 다투고 있다. 다만 득점이 적을 뿐(...). 리그 5위 부산과 승점이 똑같은데 득실차에서 밀렸다

6강 플레이오프 결과에서 보이듯, 원래 이런 컬러를 가진 팀은 어느 한 경기를 콕 찝어서 반드시 잡겠다고 작심하고 덤비면 무척 상대하기 까다롭다. 서울과 수원 모두 전력이 밀렸던 게 아니라, 반드시 단판 시합에서 승부를 내야하는 조건하에서 울산의 견고한 수비를 뚫지 못해 초초해하며 자기 페이스를 잃고는 카운터를 얻어맞는 패턴으로 당했다. 반면 장기전인 리그에서는 예상밖의 난관에 부딪히기 쉬운데, 자력으로 양민학살을 못하기 때문이다.[6]

3.3. 2012년 철퇴축구 완성[편집]

김승용, 이에나가 아키히로, 이근호 대박 영입을 이루어내면서 K리그 최강의 스쿼드를 갖췄다는 평이다. 전방의 김신욱의 압박 만으로도 웬만한 팀은 답이 없는데 공간을 찢어주는 이근호의 움직임이 조합되니 이것은 버틸 수가 없다! 팬들은 호곤신을 찬양하는 중이다.

사실 김호곤이 영입한 선수들은 대부분 대박을 쳤다. 2010년 에스티벤 영입, 2011년 곽태휘 영입, 2012년 이근호 김승룡 아키 영입은 결과적으로 최고의 꿀 영입이다 되었다. 그리고 이 선수들은 제대로 활용하는 김호곤 감독의 용병술 또한 빛나고 있다. 사실 에스티벤이 원래 포지션이 왼쪽 풀백이었던 것, 김신욱의 공격수 전업이 성공적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이다.

올시즌 성적 역시 아직 3라운드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리그에선 3연승,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2:1로 승리하면서 무지막지한 철퇴축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FC도쿄와 원정에서 2-2 무승부 이후 K리그 4라운드에서 대구에게 일격을 당하며 1-0으로 패배, 슬슬 체력에 한계가 오는 거 아니랴는 의견도 보인다. 이제 3월인데 아닌게 아니라 김호곤 감독 스타일상 베스트 11만 주구장창 돌리기 때문에 지난 시즌과 달리 플레이오프 없아 장기전으로 44라운드나 되는 리그 더구나 AFC 챔피언스 리그를 병행하는 살인적인 스케쥴을 견뎌낼 수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5월 6일 11라운드 문수 전남전에서 1:0으로 이기며 승점 3점을 획득, 울산을 1위로 올려놓았다. 아챔과 리그를 통틀어 16경기중 패배라곤 4라운드 대구전의 1패 뿐. 그러나 이후 강력한 우승 경쟁상대 수원과 전북을 만나 잇달아 패배하며 5월 최종 순위는 5위로 떨어졌다.벌써부터 상위권 팀끼리 물고 물리는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지면서 이번 시즌에도 토토팬들은 멘붕

결국 8월 30라운드가 끝나고, 4위 성적을 기록하며 상위 스플릿에 남았다. 3위 수원과 승점(53) 득실(12)은 같았으나 다득점에서 밀렸다. 한편 5위 포항은 승점 50점으로 바짝 추격중이라 역시나 대혼전을 예고하고 있다.

9월 수원을 승점 1점 차이로 젖히고 리그 3위로 올라섰다.

10월 상위 스플릿 판세가 크게 둘로 나뉘었다. 리그 우승은 사실상 서울(80)과 전북(73) 두 팀의 경쟁으로 좁혀졌다. 한편 4위 포항(62)이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순위와 무관하게 2013년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면서, 3위 수원(66)과 5위 울산(59)은 마지막 한장 남은 진출권을 놓고 다툼을 펼치게 되었다. 한편 리그와 병행중인 AFC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승리하며 리그 순위와 무관하게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총력전을 선언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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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11년부터 축구팬들은 울산과 김호곤 감독에게 후한 점수를 줬는데, 축구 뿐만 아니라 어느 구기 종목이든 결국 성적을 내는 팀은 수비가 강한 팀임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수비로 일낸다는 예외 또한 예전까지 우주방어로만 유명하던(...) 울산이 2011년을 기점으로 철퇴라는 찬사를 들을만큼 한방 공격력을 갖추면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었고, 그 시점은 예상외로 빨리 그리고 적절하게 찾아왔다.

3.4. 2013년 新 철퇴축구[편집]

공격수 이근호, 수비형 미드필더 이호, 수비수 이재성국군체육부대에 입단했다. 설상가상 수비형 미드필더 에스테벤과 계약이 끝났고, 울산의 주장이자 대표팀 주전 수비수인 곽태휘와 미드필더 고슬기가 해외이적크리. 전력 누수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둥뿌리가 뽑혀나가다시피했다. 그나마 해외진출설이 나돌았던 김신욱이 잔류한 것이 다행이었다.

결국 주전 절반 정도가 새 얼굴로 바뀐만큼 아무래도 이번 시즌 좋은 성적을 내기는 힘들고 강제 리빌딩 팀 전력을 끌어올리는데 초점을 맞추는데 만족해야 한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천원돌파 철퇴축구 2000년대 초반 압도적인 전력으로 리그를 지배했던 깡패 축구 재림이었다. 팀 컬러 자체는 크게 변함이 없었지만, 볼을 전개하는 속도는 더 빨라졌고 공격진의 파괴력은 더 강력해졌다. 2012년 철퇴축구의 완성이란 표현이 무안해질 정도로 확연히 업그레이드한 모습을 보였다.

비결은 다름아닌 2012년과 마찬가지로 김호곤 감독이 부족한 팀 전력을 꿀영입을 통해 훌륭히 메꿔낸 것이다. 부산 시절 한 페르시라 불리며 기대를 받았으나 성남 이적후 한요윤으로 불리며 역적 취급을 받은 한상운을 영입하고, 일본 대표팀 경력이 있으나 상대적으로 활약은 미미했던 마스다 치카시(増田誓志)를 영입한다. 팬들로선 아챔을 제패한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뒷목을 움켜잡을 뜬금없는 영입 소식이었다. 한페레기를 이적료 15억에 3+1년? 마스다란 개듣보가 울산에 오겠다니까 덥석 받아줌? 그런데 한상운이 6개월만에[7] 성남 시절 부진을 털어내고 포텐을 터뜨린다. 이근호의 공백을 전혀 느끼지 못할만큼 하피냐(11골) 한상운(8골) 두 공격수가 맹활약하면서 진격의 거인 김신욱이 동반 상승한다. 또한 마스다는 일본 선수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활동량과 강력한 압박, 몸싸움으로 울산 허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오죽했으면 에스테벤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것이 신의 한수였다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 또한 1년 내내 주전만 주구장창 돌리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어느 감독과 달리 김용태, 최보경 등 서브 멤버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혹서기에 주전들의 출장 시간을 조절하면서 40라운드 장기 레이스에 대비했다. 여기에 유스 출신 골키퍼 김승규가 대표팀 골키퍼 후보인 김영광을 벤치로 밀어내면서 주전을 꿰차는 등 외부영입 뿐만 아니라 내부육성조차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김호곤 감독의 어깨를 가볍게 만든다. 이처럼 주전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짜임새 있는 팀 운영을 선보였다. 글자 그대로 진정한 Football Manager.

덕분에 울산은 시즌 초부터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선두권을 지켰고, 스플릿으로 분리된 이후 포항 스틸러스를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리그 우승이 유력해 보였다. 상위 스플릿에 속한 팀들 가운데 인천과 부산은 전력차가 심했고, 나머지 우승 경쟁팀인 서울, 수원, 전북, 포항은 각자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다. 서울은 아챔과 리그를 병행하는 가운데 이미 9월부터 주전들의 체력 고갈 현상이 두드러졌고, 수원은 아예 성적을 포기하고 리빌딩에 들어간 상태였다. 전북 역시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으로 떠난 동안 팀이 망가져서 수습이 곤란한 지경에, 포항은 재정난으로 선수층이 두텁지 못해 아슬아슬한 유스출신 돌려막기로 꾸려가는 처지였다.

그리고 38라운드 2위 포항과 승점 5점차가 나면서 우승 9부 능선을 넘은 듯 보였다. 이때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 발목을 잡힌다. 바로 세제믿윤. 최종 라운드 바로 전 경기인 부산전에서 1:2 치명적인 역전패를 당하면서 2위 포항과 승점차가 2점으로 줄어든다. 설상가상 주전 공격수 김신욱과 하피냐가 모두 경고를 받아 사실상 챔피언 결정전최종전인 포항과 홈 경기에 경고누적으로 결장하게 되었다.

결국 포항을 상대로 우승을 놓고 건곤일척의 맞대결을 벌인 결과 0:0 팽팽한 경기가 지속되다가 후반전 95분 김원일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얻어맞고 0:1로 패했다. 결국 승점 1점차로 안방에서 숙적 포항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허탈하게 지켜봐야 했다. 이날 경기는 비단 영남 더비 뿐만 아니라 K리그 역사에 역대급 경기로 길이 남으리란 찬사가 쏟아졌으나..... 어쨋든 김호곤은 패장이었다.

K리그 시상이 끝난 후 12월 4일, 우승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돌연 사임을 선언했다. 이미 지난 시즌부터 은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돌긴했으나, 시즌전 성적에 대한 우려와 달리 훌륭하게 팀을 이끌면서 2014 시즌 아챔과 리그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던만큼 울산팬 뿐만 아니라 관계자들까지 충공깽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노장은 녹슬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닳아 없어지는 것


김호곤 감독이 사임을 선언하며 남긴 말을 볼 때 울산을 이끈 지난 5년간 상당한 피로가 누적된 듯 하다. 잠시 재충전 시간을 가진 뒤 다시 현역에 복귀할지 아니면 이대로 은퇴 혹은 축구협회로 이동할지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할 듯.

그리고 울산은 조민국조예스 1년, 윤정환 2년의 암흑기(?)를 보내고 김도훈 감독에게로 사령탑을 넘겼다. 울산의 화양연화는 언제쯤 돌아올 것인가.

4. 행정가 시절[편집]

울산 감독직 사임 이후로는 행정 업무로 나아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단에 올라갔다. 이후 2017년 6월 26일 김호곤 부회장을 기술위원장으로 선임하였다.

기술위원장으로서의 초기 행보는 나쁘지 않다. 전임 기술위원장이 추진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나가면서 사견으로 밝혔던 허정무 대세론에 대해 백지론을 들고나와 새 기술위를 통해 백지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전임 기술위원장과 명백한 선을 그으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그러나 둘 다 지금 구설수에 오른건 함정..

7월 4일에는 기술위를 거쳐 신태용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다만 U-23 감독은 여전히 공석인데 원래 이 자리는 국가대표팀을 맡은 신태용 감독이 물망에 올랐던 만큼 그 대체자를 구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런데 만약 구하지 못해 성적이 잘못되면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원래 U-23 감독으로 가던 신태용의 국가대표팀으로 가는 것에 역할을 한 것이 김호곤 위원장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그리고 7월에 치러진 23세 이하 아시아 선수권 대회 예선은 임시 감독으로 부임한 정정용 감독이 대신 치렀다.

4.1. 비판[편집]

여기에 비판도 있는 편이다. 기술위는 국가대표팀만 관장하는 것이 아닌데 다른 것들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새로 선임한 기술위원에는 프로감독들도 있어서 기술위를 여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급한 것은 국가대표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사건의 우선순위를 둬서 먼저 해결했다 볼 수도 있고 프로감독이 있는 것은 최근 불거지는 현장경험적 측면을 기술위에도 대입했다고 볼수도 있다. 또한 젊은 인사로의 인적쇄신 모두를 고려한 인사였다고 볼 수 있다.

4.1.1. 2017년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을 만들다.[편집]

히딩크XX[8]


자세한 사항은 2017년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 참조.

9월 14일, 히딩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이 원한다면 어떤 역할과 자리라도 맡겠다"면서 3개월 전, 그러니까 지난 6월 대리인을 통해 한국 감독직을 맡을 의사가 있다는 것을 축구협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호곤 위원장은 이에 대해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입장을 발표한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이 발언은 거짓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히딩크 재단은 "히딩크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이 높으니 기술위가 남은 최종예선 두 경기를 맡을 임시 감독을 뽑고 월드컵 본선 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 후 지원자 중에서 뽑는 게 어떻겠냐"고 김호곤 위원장에게 제안했으며, 해당 내용이 담긴 문자를 공개했다. 히딩크 재단에 따르면 히딩크 측의 이런 제안에 대해 김호곤 위원장이 "본선에 올라간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반응했다고 밝혔다.# 카톡에서 메세지 지우면 기록도 사라지는 줄 알았나보다 같은 날 터진 축구협회 횡령사건과 김호곤 위원장의 거짓말 논란으로 인해 축구협회에 대한 불만 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히딩크의 재부임설 문제가 단순한 대표팀 감독 선임의 문제를 넘어서 축구협회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 요구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카카오톡 접촉 이후 전화 통화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관련기사

히딩크 재단이 6월에 보냈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는 히딩크 재단이 공개한게 아니라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공개했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9월 15일 오후 카카오톡 메시지를 감독 선임 제안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YTN에서 공개한 카톡내용을 보면 기술위원장에 선임된 후 히딩크 재단측에서 히딩크 감독 관련 일로 만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으나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이를 무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본인에게 그나마 유리한 내용의 카톡을 공개 한 후 그 카톡 내용#을 근거로 히딩크 재단측에서 감독 선임 제안을 했다고 볼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YTN의 추가 보도로 인해 타당성을 잃게 되었다.

한편, 이따위 상황을 초래한 주제에 기술위원장 직함을 달았으면서도 모로코 전을 직관하다 꿀잠을 자는 추태를 보였다.

귀국하여 기자회견을 펼쳤으나, 여기서도 이게 제안일 정도로 대한민국 수준이 이거밖에 안되냐[9] 거짓말 하지 않았다, 정말 기억이 안난다는 만능 회피논법만을 써대며 자기변명에만 매달렸다. 자식들 보기 부끄럽다는 되도 않는 감성팔이는 덤이다.

결국 2017년 11월 2일부로 축구협회 부회장직 및 기술위원장직에서 사퇴하였다.

5. 기타[편집]

2011년 12월 조광래 감독이 국대감독에서 경질되면서 축구협회에서 바로 그를 다음 차기 국대감독으로 내세운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친 축협인사로써 대표적인 인물이라 가능성은 높지만 조광래감독의 항명과 여론을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듯. 일단 본인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서 부정했다.

그럼에도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김호곤 밖에 없다는 떡밥을 던져서 어차피 처음부터 김호곤만 감독으로 내정했다는 비난이 나왔다. 하지만 국가대표 감독에는 전북의 최강희 감독이 선임되면서 김호곤 내정설은 사장되었다.

2012년 8월 8일 성남과의 K리그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K리그 감독 중 역대 12번째로 100승을 거두었다.

2012년 11월 29일 2012 AFC 올해의 축구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또한 울산은 올해의 클럽상, 이근호는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면서 겹경사를 맞이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홍명보 감독이 자의반타의반으로 사퇴하자, 다시 국가대표 감독 물망에 오르고 있다. '철퇴왕' 김호곤 감독, 대표팀 차기 사령탑 물망

결국,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선임되면서 이 이야기는 낭설이 되었다.

이후 2014년 12월 대한축구협회의 성인리그 운영 담당 부회장으로 부임하였다.#

기술위원장 사퇴 이후 한동한 소식이 뜸하다가 신태용호의 세르비아와의 평가전에선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와 함께 관전하는 모습이 찍히면서 정말 오랜만에 한국 축구팬들에게 얼굴을 보였다.

영어를 꽤 잘한다고 한다. 사실 의외일 것도 없는게 대한축구협회 행정가나 현장 축구인들 중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1] 1966년 월드컵은 지역예선에서 북한에 패할까봐 아예 기권을 했다.[2] 참고로 히딩크호에서 코치를 했던 박항서 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주로 충무팀에 있었다.[3] 김정남 감독 밑에서 국가대표 코치를 맡은 기간도 포함[4] 이 과정에서 최종예선에선 무려 이란을 상대로 더블을 달성, 고로 성인대표팀은 아직 한번도 달성하지 못한 아자디 스타디움 원정승까지 따냈다.[5] 프랜차이즈 스타'급'인 이유는 현영민이 울산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울산에서 오래뛰었을 뿐. 김호곤 감독은 FC 서울에 현영민을 내주면서 김치곤은 물론이고, 프랜차이즈 스타로 내세울 울산 출신 미드필더 한태유를 데려오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는 무산되었다.[6] 극단적인 예를 들면 이렇다. 1승(3:0) 2패(0:1 0:1)와 3무(0:0 0:0 0:0)를 거둔 팀은 승점이 3점으로 같지만, 득실차를 따졌을 때 한번도 안진 팀(±0)이 두번 진 팀(+1)보다 순위가 하위로 쳐지는 결과가 나온다.[7] 2012년 여름 J리그 쥬빌로 이와타로 이적했다[8] 발언 자체는 2004년에 나왔으나, 이 말 한마디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히딩크에 대한 김호곤이의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별도로 하더라도 사실 이 모든 논란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무엇때문에 시작되었는지를 잘 알려주는 발언이다.[9] 대한민국 축구를 이 지경으로 몰락시킨게 어디인지를 생각해본다면 이 작자가 할 말은 아니다. 무엇보다 월드컵에서 부진하면 세계의 벽이 높은 것을 어떻게 하냐는 핑계로 면피해대면서 이럴 때는 대한민국 축구의 위상을 높이는 환상적인 논리가 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