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최근 수정 시각:
[ 펼치기 · 접기 ]
|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 |
Newcastle United FC | |
정식 명칭 | Newcastle United Football Club[1] |
약칭 | NEW, NUFC |
창단 | |
소속 리그 | |
연고지 | |
홈구장 | 세인트 제임스 파크 (Stadium James’ Park) (52,264명 수용) |
라이벌 | |
구단주 | |
회장 | |
CEO | |
스포팅 디렉터 | |
테크니컬 디렉터 | |
감독 | |
수석 코치 | |
주장단 | |
역대 한국인 선수 | |
클럽 앰버서더 | |
65위[10] | |
공식 웹사이트 | |
팬 커뮤니티 | |
우승 기록 | |
1904-05, 1906-07, 1908-09, 1926-27 | |
EFL 챔피언십 (2부) (4회) | 1964-65, 1992-93, 2009-10, 2016-17 |
FA컵 (6회) | 1909-10, 1923-24, 1931-32, 1950-51, 1951-52, 1954-55 |
EFL컵 (1회) | 2024-25 |
FA 커뮤니티 실드 (1회) | 1909 |
UEFA 인터토토컵 (1회) | 2006 |
인터-시티 페어스컵 (1회) | 1969 |
구단 기록 | |
최고 이적료 영입 | |
최고 이적료 방출 | |
최근 영입 | |
최다 출장 | |
최다 득점 | |
리그 득점왕 (5회) | |
잉글랜드 타인위어주 뉴캐슬어폰타인에 위치한 프로 축구단. 홈구장은 세인트 제임스 파크이다.
1892년 뉴캐슬 이스트 엔드가 뉴캐슬 웨스트 엔드를 인수·합병하면서 창단되었으며, 창단 이후부터 계속해서 사용해오고 있는 홈구장인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52,354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이는 잉글랜드 내에서 일곱 번째로 큰 규모이다. ‘맥파이스’(The Magpies, 까치들)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며, 2005년 영화 《골!》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90년대에는 앨런 시어러가 몸담았던 팀으로 유명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그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 말인즉 성적이 매년 요동치는 클럽이었다는 것. 어떤 시즌은 유로파 진출을 노릴 정도로 호성적인 반면, 어떤 시즌은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전형적 하위권 팀의 기복을 보여줬었다. 화려한 90년대 이후 세계적인 명장 중 하나인 바비 롭슨이 2000년대 초반까지 클럽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그의 감독 은퇴후 꾸준히 하락세를 겪다가 마침내 강등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구단이 사우디 국부 펀드에 인수되며 전력을 강화하고 새 감독인 에디 하우가 부임한 이후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더니 기어코 2022-23 시즌에는 리그 4위를 차지하고 오랜만에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하게 되었다. 또한, 2024-25 시즌에 카라바오컵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꺾고 70년 무관을 끊어냈다.
구단의 라이벌로는 선덜랜드와 미들즈브러가 있다.
2021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왕세자가 실질적인 구단주로 오면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구단주를 가진 팀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구단의 위상이나 재정적 페어플레이 규정, 불리한 연고지 등의 이유로 인해 오일머니의 대명사인 맨체스터 시티나 파리 생제르망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빅클럽들만큼 돈을 쓰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선수단을 강화하고 구단 시설을 개선하면서 빅6 클럽들을 위협하는 PL의 강호로 성장하는 중이다.
1892년 뉴캐슬 이스트 엔드가 뉴캐슬 웨스트 엔드를 인수·합병하면서 창단되었으며, 창단 이후부터 계속해서 사용해오고 있는 홈구장인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52,354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이는 잉글랜드 내에서 일곱 번째로 큰 규모이다. ‘맥파이스’(The Magpies, 까치들)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며, 2005년 영화 《골!》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90년대에는 앨런 시어러가 몸담았던 팀으로 유명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그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 말인즉 성적이 매년 요동치는 클럽이었다는 것. 어떤 시즌은 유로파 진출을 노릴 정도로 호성적인 반면, 어떤 시즌은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전형적 하위권 팀의 기복을 보여줬었다. 화려한 90년대 이후 세계적인 명장 중 하나인 바비 롭슨이 2000년대 초반까지 클럽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그의 감독 은퇴후 꾸준히 하락세를 겪다가 마침내 강등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구단이 사우디 국부 펀드에 인수되며 전력을 강화하고 새 감독인 에디 하우가 부임한 이후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더니 기어코 2022-23 시즌에는 리그 4위를 차지하고 오랜만에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하게 되었다. 또한, 2024-25 시즌에 카라바오컵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꺾고 70년 무관을 끊어냈다.
구단의 라이벌로는 선덜랜드와 미들즈브러가 있다.
2021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왕세자가 실질적인 구단주로 오면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구단주를 가진 팀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구단의 위상이나 재정적 페어플레이 규정, 불리한 연고지 등의 이유로 인해 오일머니의 대명사인 맨체스터 시티나 파리 생제르망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빅클럽들만큼 돈을 쓰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선수단을 강화하고 구단 시설을 개선하면서 빅6 클럽들을 위협하는 PL의 강호로 성장하는 중이다.
※본 문서는 간략화한 것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타 구단으로 임대한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
[ 펼치기 · 접기 ]
| ||||||||||||||||||||||||||||||||||||||||||||||||||||||||||||||||||||||||||||||||||||||||||||||||||||||||||||||||||
[ 펼치기 · 접기 ] |
역대 리그 순위 | |||||||||||||||||||||||||||||||||||||||||||||||||||||||||||||||||||||||||||||||||||||||||||||||||||||||||||||||||||||||||||||||||||||||||||||||||||||||||||||||||||||||||||||||||||||||||||||||||||||||||||||||||||||||||||||||||||||||||||||||||||||||||||||||||||||||||||||||||||||||||||||||||||||||||||||||||||||||||||||||||||||||||||||||||||||||||||||||||||||||||||||||||||||||||||||||||||||||||||||||||||||||||||||||||||||||||||||||||||||||||||||||||||||||||||||||||||||||||||||||||||||||||||||||||||||||||||||||||
[ 펼치기 · 접기 ]
| |||||||||||||||||||||||||||||||||||||||||||||||||||||||||||||||||||||||||||||||||||||||||||||||||||||||||||||||||||||||||||||||||||||||||||||||||||||||||||||||||||||||||||||||||||||||||||||||||||||||||||||||||||||||||||||||||||||||||||||||||||||||||||||||||||||||||||||||||||||||||||||||||||||||||||||||||||||||||||||||||||||||||||||||||||||||||||||||||||||||||||||||||||||||||||||||||||||||||||||||||||||||||||||||||||||||||||||||||||||||||||||||||||||||||||||||||||||||||||||||||||||||||||||||||||||||||||||||||
- 풋볼 리그 1 / 프리미어 리그
- 우승: 1905, 1907, 1909, 1927
- 준우승: 1996, 1997
- 3위: 1902, 1912, 1994, 2003
- 우승: 1965, 1993, 2010, 2017
- 준우승: 1898, 1948
- 3위: 1984, 1990
- 우승: 1910, 1924, 1932, 1951, 1952, 1955
- 준우승: 1905, 1906, 1908, 1911, 1974, 1998, 1999
- 우승: 2025
- 우승: 1909
- 준우승: 1932, 1951, 1952, 1955, 1996
- 우승: 1969
- 우승: 2006
뉴캐슬 명예의 전당 등재 선수나 감독은 볼드체 처리한다.
산티아고 뮤네스: 축구 영화 "골"의 주인공으로, 실존하는 축구선수가 아닌 영화상의 인물이다. 배우는 멕시코 배우인 쿠노 베커. 산티아고는 미국에서 접시를 닦으며 어렵사리 축구 선수의 꿈을 이어가던 멕시코계 불법체류자인데 우연히 뉴캐슬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뉴캐슬로 향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프로 선수로 성공하고, 몰락해가던 옛 명가 뉴캐슬을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시켰다. 하지만 속편에서 마이클 오언과 맞트레이드 되었다는 설정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이 덕에 뉴캐슬 경기가 있을 때에는 뮤네스 안 나오냐는 농담이 오가곤 했고, 영화 개봉이 10년이 지난 2015년에는 뉴캐슬의 전설 혹은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로서 회자(?)되곤 한다. 이 영화를 접하며 뉴캐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결국 팬이 된 사례도 드물지 않게 있는 편이다.
- 크레이그 벨라미: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앨런 시어러와 투톱을 이루어 활약했다. 그러나 그래엄 수네스 감독과의 불화로 팀에서의 입지를 잃고 셀틱으로 임대를 갔는데 뉴캐슬이 FA컵 4강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배를 당하자 앨런 시어러에게 비웃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날렸다. 시어러는 "돌아오면 강냉이 날아갈 각오하라"라며 격분했고 그로써 벨라미와 뉴캐슬의 관계는 끝났다.
- 키어런 다이어, 리 보이어: 2005년 4월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 경기[11]에서 공과 관련 없는 상황에 서로 멱살잡고 치고박아 상대 팀 주장 가레스 배리가 이들을 뜯어말리는 촌극을 벌였다. 당연히 즉결 퇴장과 세 경기 정지 처분을 받았고 선빵을 때린 보이어는 더 많은 벌금을 내야 했다. 이 둘은 나중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도 함께 뛰었다. 보이어는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시절 우드게이트와 함께 폭행사건을 저지른 전력이 있을 정도로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음은 유명한 선수였고, 다이어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활약을 했을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지만 알아주는 유리몸이었다.
- 마이클 오언: 2005년 여름 친정 팀 리버풀, 에버튼 등의 제의를 뒤로 하고 뉴캐슬에 입단했다. 곧 2005년이 끝날 때까지 리그에서 7골을 넣는 등 활약했으나 2005년의 마지막 날 토트넘의 골키퍼 폴 로빈슨과 충돌하여 발가락뼈 골절상을 입었다. 월드컵을 뛰기 위한 열망으로 굳이 회복 기간이 긴 수술을 선택, 잔여 시즌 결장이 확정되었고 월드컵에서도 무릎 부상을 당해 이듬해 봄에야 복귀할 수 있었다. 복귀 후에도 지지부진한 재계약과 무성의한 플레이로 충성심을 의심받았다. 케빈 키건 감독 체제에서는 주장 완장을 달고 나름대로 책임감 있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으나, 팀의 상태가 점점 막장으로 치닫자 결국 재계약을 거부하였다. 뉴캐슬이 강등되자 자유 계약인 그를 영입해갈 팀들을 위해 34쪽의 홍보물을 스스로 제작해 돌렸다. 뉴캐슬에서 뛸 당시 주급은 11만 파운드로 알려졌으나 공식적인 금액이고 이면계약으로 얼마를 더 받았을지 알 수 없다. 먹튀 중의 먹튀. 그가 떠난 후 선수단 분위기는 급속도로 밝아졌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뉴캐슬이 승격한 후 뉴캐슬이 승격해 와서 좋다고 하였다. 과거 오언은 언론관리가 철저하여 전 소속 팀에 관하여 입을 안 여는 걸로 유명했지만, 트윗질을 개시하면서부터는 맨유에서 벤치 워머로 있으면서 "강한 팀에서 가끔씩 뛰는 게 별 볼일없는 팀에서 매 경기 뛰는 것보다 낫다"라는 둥의 개소리를 늘어놓으며 뉴캐슬 팬들의 분노를 샀다.[12] 이렇게 험악한 이별을 한 탓에, 맨유 소속으로 2009년 방한했을 때 공항에서 국내 뉴캐슬 팬 몇 명에게 욕을 먹은 적이 있다. 유니폼을 든 팬들이 "Shame on you" 등을 외치며 달려든 것. 웃으며 입국장을 나오던 오언은 이내 표정이 굳어진 채 버스에 황급히 올라탔다 카더라. SNS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이제는 뉴캐슬이나 맨유 팬 가운데서도 올드비들만 아는 이야기.
- 조이 바튼: 끝판왕. 월드컵씩이나 나가서 사고를 친 상또라이들 탓에 묻혀버렸지만 이놈도 월드 클래스 미친놈이다.[13] 맨체스터 시티에서 버려지다시피 한 걸 갱생 전문가 샘 앨러다이스 감독이 자신 있게 영입했다. 그러나 2007년 크리스마스에 고향 리버풀에서 사촌들과 함께 시비 거는 행인을 폭행했고 2008년 5월엔 급기야 교도소에 가는 신세가 되었다. 풀려난 후에는 맨시티 시절 동료 우스망 다보의 얼굴을 묵사발로 만든 데 대한 징계가 내려져 여섯 경기를 뛸 수 없었다. 그 후에도 장기 부상에 신음하다 복귀한 강등 싸움을 위한 중요한 경기인 리버풀전에서 사비 알론소에게 무리한 태클을 가해 퇴장당했다. 경기종료 후 락커룸에서 자신을 질책하는 임시 감독 앨런 시어러에게 "당신의 전술은 형편없는 쓰레기"라는 막말을 날렸다. 강등 후 많은 구단의 입질이 있었지만 뉴캐슬에 남았고, 시어러와는 화해했다. 이는 "그 나쁜 바튼도 남았는데"라는 이유로 오언이 틈만 나면 까이는 데에 한몫한다. 현재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큰 야유를 당하는 선수. 성질 잘 죽이고 뛰나 싶었더니, 2010년 11월 11일 경기중 블랙번 선수 모르텐 감스트 페데르센의 배를 풀 파워로 때린 게 포착되어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술 먹으면 성질이 돋는 대표적 선수. 다만 피나는 재활 끝에 술을 끊은 지금은 성질을 많이 자제했다. 그 예로, 2011년 2월 아스날과의 4:4 경기에서는 자신의 뒷덜미를 잡고 밀어버린 아부 디아비에게 아무런 행위를 가하지 않았다.[14] 그런데 뉴캐슬 팬들을 제외한 해외축구 팬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바튼이 먼저 도발했을 것" 이라고 하기도 했다. 성격은 많이 죽었는지 몰라도 경기 외적으로 사고치는 성향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는지 트위터를 가지고 뉴캐슬 구단의 경영진을 비난하다가 자유 계약으로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로 이적당했다. 이적하면서 본인은 끝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고 트위터에 적어놓았다. 다만 뉴캐슬 팬들에게는 승격 이후 보여 줬던 준수한 경기력과 헌신적인 플레이로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으며, 실제 바튼의 트위터 계정을 보면 팀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뉴캐슬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이다. 적어도 뉴캐슬 시절만큼은 바튼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 외, 잉글랜드 쪽 선수들은 불륜이나 업소 추문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은데, 바튼은 의외로 이성 사생활은 상당히 깨끗했다고 한다.
- 샤를 은조그비아: 2009년 1월 위건 어슬레틱으로 이적하기 전 자신을 기용하지 않는 조 키니어 임시 감독을 "그는 내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인섬니아라고 부른다"라고 비난했다. 키니어는 이에 "그는 매일 빅클럽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마치 환상의 나라 속에 사는 미키 마우스 같다"라며 응수했다. 빅클럽[15] 으로 이적하면서[16] "뉴캐슬은 날 떠나보낸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과연 뉴캐슬과의 원정 경기에서 두 골을 넣고 앨런 시어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뭐랬어." 이후 위건에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지 '뉴캐슬은 빅클럽' 이라며 뉴캐슬로 돌아가고 싶다는 언플질을 일삼으며 팬들의 뒷목을 또다시 잡게 했지만 결국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다.
- 호세 엔리케: 이적해 온 첫 시즌엔 적응 못하고 빌빌 헤매다가 온갖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못하는 선수야 안 쓰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당시 뉴캐슬에는 전문적으로 왼쪽 측면 수비수를 보는 선수가 호세 엔리케를 제외하면 전무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중앙에서 콜로치니와 테일러가 자동문 수비를 선보이고 있던 참이고, 딱히 기용할 수 있는 선수가 없던 참이라 꾸준히 출장하게 되었고, 당시 주전 골키퍼 셰이 기븐만 죽어라 고생하는 상황이 계속 되던 와중에 기븐이 맨체스터 시티 이적하면서 팀이 강등당하고 만다. 챔피언십에서는 적응을 끝마친 덕분에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2부 리그 측면의 절대자가 되어 있었고, 그 탄탄한 수비와 준수한 오버래핑은 호나스 구티에레스의 능력과 함께 챔피언십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왼쪽 라인이 되었다. 다음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윙백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뉴캐슬과의 계약이 거의 다 끝나가는 시점에 "챔스권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라며 땡깡을 부리다 재계약을 거부하고, 리버풀로 이적하며 뉴캐슬 팬들의 어이를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렸다. 엔리케가 재계약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유럽 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난 시즌의 거한 삽질로 챔피언스 리그는커녕 유에파 컵에도 출장하지 못하는 리버풀로의 이적은 뉴캐슬의 팬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엔리케가 리버풀로 이적을 한 11-12 시즌은 뉴캐슬은 5위를, 리버풀은 8위를 기록하며 엔리케와 리버풀은 슬픈 결산을 했다.
- 무사 시소코: 14-15 시즌까지는 그럭저럭 활약해 왔지만 15-16 시즌 내내 태업을 의심케 할 정도의 무성의한 플레이로 팀의 강등에 단단히 한몫을 했다. 그의 부진한 플레이가 여기저기서 지탄을 받을 때도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은 "시소코가 살아야 팀이 산다"라며 주장 완장을 채워 줬지만, 시소코는 팀이 강등을 확정지은 후에야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최종전에서 토트넘을 5-1로 털어버리지 않나, 급기야 유로 2016에서는 결승전에서 MOM급 활약을 펼치며 뉴캐슬 탈출의 열망을 전 세계에 드러냈다. 강등당하자 책임을 통감하며 팬들에게 사과를 남긴 다른 모든 주전급 선수들과 달리, 이분은 강등되자마자 "챔피언십에 있기에 나는 너무 큰 선수"라며 동네방네 이적하겠다며 떠들고 다녔고, 뉴캐슬은 유로에서 거품도 꼈겠다 계약도 3년이나 남았겠다 돈도 있겠다 가격표 £35m을 붙이며 응수했다. 자신의 이적이 쉽지 않게 되자 시소코는 1주일에 한 번씩 팀을 비난하며 차원이 다른 징징거림을 선사해 툰 아미들은 흡사 마이클 오언이 돌아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이적 시장 마지막 날 토트넘으로 £30m에 이적하면서 소원 성취에 성공했는데, 웃긴 건 시소코는 평소 뉴캐슬에서 뛰면서도 "내 심장은 아스날에 있다"라는 인터뷰를 서슴지 않던 선수였다는 점. 이적 시장 막판에도 에버튼이 먼저 이적료에 합의한 후 뒤이어 토트넘이 이적료를 맞추자 전용기를 대기시키고 기다리던 에버튼 쪽의 전화를 받지 않고 토트넘으로 향하는 등 끝까지 인성을 보여 줬다. 뉴캐슬 팬들에게는 새로운 금지어로 불리게 될 듯하다.
- 그레이엄 수네스: 위 모든 인물과 연관된 막장 중의 막장.[17] 04-05시즌 초반에 부임해 전 시즌 5위로 마쳤던 팀을 14위로 추락시켰다. 특정 선수를 편애하고 장기적인 구상이 없다는 원성이 높았으며 아메오비와 벨라미를 양쪽 윙에 놓는 막장 전술을 구사하기도 했다. 2005년 여름 총 5,000만 파운드(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잔디를 갈기 위한 200만 파운드 제외[18]) 를 썼음에도 순위가 강등권 바로 위에서 허덕이자 2006년 2월 2일 경질되었다. 케빈 키건, 케니 달글리시를 비롯하여 그나마 좋은 분위기였던 리버풀과 뉴캐슬 간의 인재 이동은 수네스(이쪽은 리버풀도 버려놨다)와 오언, 그리고 캐롤로 인해 꽤나 험악하게 바뀌었다.
앨런 파듀: 외부에서 최고 성적만 놓고 보면 성공한 축에 속하지만 결국 아래의 맥클라렌까지 이어지는 나락의 밑바탕을 깔아놓기도 했다. 덕분에 뉴캐슬 팬 중에서도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 편.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 스티브 맥클라렌: 잘못된 전술과 선수단 장악 실패로 70m 파운드를 쓰고도 뉴캐슬을 또다시 강등시킨 원흉
한국인 선수로는 김태영, 조재진, 조용형, 이강인, 김민재 등과의 링크가 있었다.
김태영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4강 진출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뉴캐슬이 관심을 보였다. 바비 롭슨 당시 감독이 직접 영입을 희망했다고 한다. 당시 나이가 33살로 노장 축에 속했으나 기량적으로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데,[19] 문제는 나이 때문에 뉴캐슬이 터무니없이 낮은 이적료를 불렀다는 점이다. 이에 김태영의 소속 팀 전남 드래곤즈는 선수를 붙잡았고 김태영 또한 구단의 레전드로 남아달라라는 전남 이회택 당시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적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김태영은 그 선택이 내심 아쉬웠다고 훗날 회고했다. ##
특히 조재진은 뉴캐슬 입단 목전까지 갔었다. 감독 목 갈아치우기 좋아하던 보드진 아래서 버티기는 성적이 위험했던 당시 감독 샘 앨러다이스가 뻥축 좋아하는 본인 취향에도 맞고 자리도 위험해 큰 돈 쓰기 어려운데 월드컵 활약도 있고 아시아 프리미엄에 값도 싸다고 봐서 조재진 영입을 시도했으나 당시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후에 조재진이 은퇴하고 나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메디컬 테스트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이적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2011년 4월 말에는 앤디 캐롤의 대체자로 지동원을 노린다는 링크가 떴지만, 뜬소문에 불과한 루머였으며, 정작 지동원은 뉴캐슬 최대의 라이벌 팀으로 가 버렸다. 그렇게 계속 링크만 뜨다가 마침내 2018년 6월 스완지 시티 AFC와 계약 만료 후 FA 신분이던 기성용이 뉴캐슬과 2년 계약을 맺으면서 뉴캐슬 역사상 첫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20] 기성용은 뉴캐슬 역사상 처음 입단한 아시아계 선수이기도 하다. 예전에 기성용은 같은 타인위어 주 내 라이벌 프로축구 클럽인 선덜랜드 AFC에서 잠시 임대 선수로 뛴 적이 있다.
김영권 역시 광저우에서 주축으로 뛸 당시 에버튼, 노리치, 호펜하임, 프랑크푸르트와 뉴캐슬에게 오퍼를 받았음을 밝혔으나, 감독의 만류로 이적이 무산되었다.
2022-23 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서 이강인에게 관심을 보인 구단은 대략 아스톤 빌라 FC,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정도로 추정된다.
2025년 여름에 쿠팡플레이 시리즈로 내한이 확정됐다. 7월 30일과 8월 3일, 수원과 상암에서 팀 K리그와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친선 경기를 가질 예정이다. 내한에 한 발 앞서 올리버 슬레이터 스카우터를 한국으로 파견해 이천수와 함께 유소년 경기를 관전시키며 한국 선수 스카우트에 나섰다. ##
7월 30일 수원에서 열린 팀 K리그와의 경기에서는 전북 현대 모터스의 김진규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1-0 패배를 당했다.
8월 1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와의 프로 야구 경기에 뉴캐슬 선수단이 단체 관람을 온 모습이 포착되었다.
한편 한국에는 의외로 오래된 뉴캐슬의 팬 커뮤니티가 있다. 바로 툰아미코리아[21]인데, 다음 카페에서 시작해 규모가 커지며 사이트로 독립했으며 2025년 기준 20년에 육박하는 역사를 자랑한다.[22] 중소 규모 PL 클럽의 팬 사이트 중 가장 팬 커뮤니티가 잘 구축되어 있다. 운영자와 회원들이 성금을 모아 서버 비용을 충당하고 두 차례의 사이트 리뉴얼을 성공시키는 등 회원들의 충성심이 강한데, 리뉴얼 과정에서 과거의 글이 유실된 점이 다소 아쉽다. 2025년 뉴캐슬 구단의 방한에 맞춰 구단 정식 서포터 클럽으로 인증되었다.
2025년 7월 24일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공격수 박승수가 뉴캐슬에 입단했다.
김태영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4강 진출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뉴캐슬이 관심을 보였다. 바비 롭슨 당시 감독이 직접 영입을 희망했다고 한다. 당시 나이가 33살로 노장 축에 속했으나 기량적으로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데,[19] 문제는 나이 때문에 뉴캐슬이 터무니없이 낮은 이적료를 불렀다는 점이다. 이에 김태영의 소속 팀 전남 드래곤즈는 선수를 붙잡았고 김태영 또한 구단의 레전드로 남아달라라는 전남 이회택 당시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적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김태영은 그 선택이 내심 아쉬웠다고 훗날 회고했다. ##
특히 조재진은 뉴캐슬 입단 목전까지 갔었다. 감독 목 갈아치우기 좋아하던 보드진 아래서 버티기는 성적이 위험했던 당시 감독 샘 앨러다이스가 뻥축 좋아하는 본인 취향에도 맞고 자리도 위험해 큰 돈 쓰기 어려운데 월드컵 활약도 있고 아시아 프리미엄에 값도 싸다고 봐서 조재진 영입을 시도했으나 당시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후에 조재진이 은퇴하고 나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메디컬 테스트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이적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2011년 4월 말에는 앤디 캐롤의 대체자로 지동원을 노린다는 링크가 떴지만, 뜬소문에 불과한 루머였으며, 정작 지동원은 뉴캐슬 최대의 라이벌 팀으로 가 버렸다. 그렇게 계속 링크만 뜨다가 마침내 2018년 6월 스완지 시티 AFC와 계약 만료 후 FA 신분이던 기성용이 뉴캐슬과 2년 계약을 맺으면서 뉴캐슬 역사상 첫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20] 기성용은 뉴캐슬 역사상 처음 입단한 아시아계 선수이기도 하다. 예전에 기성용은 같은 타인위어 주 내 라이벌 프로축구 클럽인 선덜랜드 AFC에서 잠시 임대 선수로 뛴 적이 있다.
김영권 역시 광저우에서 주축으로 뛸 당시 에버튼, 노리치, 호펜하임, 프랑크푸르트와 뉴캐슬에게 오퍼를 받았음을 밝혔으나, 감독의 만류로 이적이 무산되었다.
2022-23 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서 이강인에게 관심을 보인 구단은 대략 아스톤 빌라 FC,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정도로 추정된다.
2025년 여름에 쿠팡플레이 시리즈로 내한이 확정됐다. 7월 30일과 8월 3일, 수원과 상암에서 팀 K리그와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친선 경기를 가질 예정이다. 내한에 한 발 앞서 올리버 슬레이터 스카우터를 한국으로 파견해 이천수와 함께 유소년 경기를 관전시키며 한국 선수 스카우트에 나섰다. ##
7월 30일 수원에서 열린 팀 K리그와의 경기에서는 전북 현대 모터스의 김진규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1-0 패배를 당했다.
8월 1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와의 프로 야구 경기에 뉴캐슬 선수단이 단체 관람을 온 모습이 포착되었다.
한편 한국에는 의외로 오래된 뉴캐슬의 팬 커뮤니티가 있다. 바로 툰아미코리아[21]인데, 다음 카페에서 시작해 규모가 커지며 사이트로 독립했으며 2025년 기준 20년에 육박하는 역사를 자랑한다.[22] 중소 규모 PL 클럽의 팬 사이트 중 가장 팬 커뮤니티가 잘 구축되어 있다. 운영자와 회원들이 성금을 모아 서버 비용을 충당하고 두 차례의 사이트 리뉴얼을 성공시키는 등 회원들의 충성심이 강한데, 리뉴얼 과정에서 과거의 글이 유실된 점이 다소 아쉽다. 2025년 뉴캐슬 구단의 방한에 맞춰 구단 정식 서포터 클럽으로 인증되었다.
2025년 7월 24일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공격수 박승수가 뉴캐슬에 입단했다.
- 이렇게 선수들 성격이 개차반이라서 막장을 달리거나, 마이클 오언처럼 멀쩡한 폼을 가지고 입단했음에도 막장화가 되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끝없는 부진에 빠지고 연속 부상을 당하는 등, 유독 뉴캐슬 소속 선수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비꽈서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수맥이 흐르는 게 그 이유라고 주장하는 국내 팬들이 있다. 2005년 여름 당시 감독이었던 그레이엄 수네스가 선수 한 명을 사들일 만한 거금인 200만 파운드를 들여가며 구장 잔디를 죄다 갈아버리는 공사를 하다가 수맥을 건드렸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실 뉴캐슬은 수네스 시절 이전부터 부상에 시달리는 선수가 많았다. 무패 우승 이후에 매번 부상에 시달리는 아스널과 엎치락뒤치락할 수 있을 정도다. 2019년과 2020년에도 5대 리그 최다 부상자 발생 팀으로 등극했다.
- 뉴캐슬이라는 연고지 특성상 타 팀들에 비해 선수 체력관리가 까다로운 편이다. 지도에서 뉴캐슬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홀로 잉글랜드 최상단에 위치하며 주변에 축구 클럽이 뉴캐슬 외에는 아무 곳도 없다. 때문에 리그 일정의 절반을 차지하는 원정 경기에서 이동거리 문제로 상당히 불리한 위치. 반대로 홈어드밴티지는 어느 곳보다도 강력한 팀이기도 하다.
- 훌리건 천국 잉글랜드에서도 팬들이 열정적이기로 손꼽힌다. 근 100년간 리그 우승은커녕 중하위권에서 자주 논 클럽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연고지인 뉴캐슬은 잉글랜드 중부, 북부의 많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축구 하는 날엔 도시 전체가 축구에 미친다. 특히나 상의를 탈의한 비만 남성들이 SJP에서 유독 많이 보인다.
- 뉴캐슬이 강등당한 해의 입장료 수입과 타 구단의 입장료 수입을 비교해 보면 팬들의 열정이 얼마나 엄청난지 알 수 있다. 2008-09 시즌 뉴캐슬은 유럽 대회도 못 나가고, 리그 컵은 두 경기 만에 탈락, FA컵은 헐 시티와 재경기 끝에 첫 판에서 떨어지는 등 리그 외의 수입이 사실상 없었는데도 높은 수입을 올렸다. 당시 빅 4나 런던 특수에 관중석이 많은 토트넘 보단 떨어지지만 훨씬 축구는 잘하던 에버튼이나 아스톤 빌라보다 수익이 우월했다. 타 리그와 비교하자면, 2009-10 시즌에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한 아틀레티코가 간신히 2008-09 시즌 뉴캐슬의 관중 수입을 넘기는 정도다. 오죽하면 강등당하고도 평균 관중 50,000명[25]에 근접하면서 역대 챔피언십 최다 평균 관중 수를 찍었다. 그리고 결국 2016년에 다시 강등되어 챔피언십 2016-17 시즌에서도 최다 평균 관중을 기록하고 유유히 우승했다.
- 하지만 이럼에도 팀의 재정 형편은 매번 적자였다. 위에 서술하듯이 아랍 왕족 인수 문제도 무산되었으니 차후 더 어려울 듯했었다. 그러나 결국 2021년 사우디 국부 펀드가 인수에 성공하면서 재정 형편은 좋아질 전망이다. 벌써부터 뉴캐슬 서포터들은 해외 유명 축구선수 얼굴을 합성한 이미지를 올릴 정도다. 뉴캐슬 측은 리그 우승 후보가 되자면 몇 해를 기다리고 준비할 기간이 필요하지만, 일단 4,000억 이상으로 현재 리그 강등권인 팀을 잔류시키는 게 먼저라고 밝히고 있다. 반대로 라이벌 선덜랜드 AFC 서포터들은 초상집 분위기라고 한다.
- 선수들 탓인 건지 팬들 성향이 대체로 유쾌한 건지 많은 전현직 선수들의 문서가 멋진 해학과 블랙 유머로 가득하다. 영국판 롯데 자이언츠이다.
- 2021년 10월 18일 영국의 뉴캐슬 서포터들이 "10월 7일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의 구단 인수 이후 팀 훈련 횟수가 줄었다. 우리는 일하는 구단과 선수들을 원한다"라며 시위를 했다.
- 막대한 자금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에 인수된 후 , 디 애슬래틱에 의하면 프리미어 리그 구단들은 뉴캐슬과 거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2022년 1월 겨울 이적 시장 때 번리의 크리스 우드,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의 댄 번, 아스톤 빌라의 맷 타겟이 뉴캐슬로 이적함에 따라, 결국 이 합의는 상당히 느슨했거나 이 뉴스 자체가 낭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 /ˈnjuːkɑːsl jʊˈnaɪtɪd/[2] 뉴캐슬 사투리로 "도시(Town)"를 의미한다. 조르디 사투리에서는 -own 이 -u:n 에 가깝게 발음되는데, 뉴캐슬 사람이 "우리 동네"라는 의미의 Toon 이라 말하는 것이 그대로 뉴캐슬 자체를 뜻하게 되었다.[3] "뉴캐슬 사람", 혹은 "잉글랜드 북동부 사람"을 의미한다. 어원은 몇가지 설이 있지만 불분명하다. 원래는 잉글랜드 북동부 주민을 아울러 이르는 단어였지만 라이벌 도시인 선덜랜드가 부상하면서 이쪽을 부르는 "매켐(Mackem)"과 나눠져 현재는 뉴캐슬과 그 주변지역의 주민만 칭하는 단어가 되었다.[4] #[5] 뉴캐슬과 선덜랜드는 잉글랜드 북동부에 위치한 라이벌이다. 두 도시에 흐르는 강 이름을 따 타인위어 더비라 부른다. 뉴캐슬어폰타인과 선더랜드는 도시간 근 천 년을 헤아리는 대립의 역사를 지니고 있어 미들즈브러의 타인티스 더비보다 더 치열하다.[6] 미들즈브러 역시 북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두 도시에 흐르는 강 이름을 따 타인티스 더비라 부른다.[7]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주도한 국부 펀드이다. 2020년에도 뉴캐슬 인수를 시도했었지만 7월 30일, 사우디 공공투자 컨소시움이 인수를 포기해 마이크 애슐리 구단주 체제로 이어지고 있었다. 2021년 10월 7일에 공식적으로 컨소시움이 인수가 확정되면서 마이크 애슐리는 뉴캐슬을 떠나게 되었다. 2021년 당시에는 루벤 형제와 아만다 스테이블리 (Amanda Staveley)가 각각 10% 지분을 소유했는데 2024년 7월에 아만다 스테이블리가 지분을 공공투자기금과 루벤 형제 측에 절반씩 나눠 팔고 사임했다.[8] 이 형제는 인도에 살던 유대인 조상을 둔 영국 국적의 사업가로 순자산이 25조원에 달하는 영국 내에서 손꼽히는 부호 가문이다. 이 중 데이비드의 아들인 제이미 루벤이 뉴캐슬의 공동 구단주 역할을 하고 있다.[9] 빈 살만 왕세자의 최측근 중 한명으로 사우디 공공투자기금 총재, 아람코 회장 등 사우디 아라비아 국가사업의 요직을 맡고 있는 인물이기에 영국에 상주하지 않는 비상임 회장직이다.[10] 출처[11] 경기는 애스턴 빌라에게 0:3으로 완패했다. 후반 경기 끝나기 10분도 안 남겨두고 같은 팀끼리 주먹질을 나누는 드문 볼거리를 제공한 셈이었다. 당시 다 이겨가던 아스톤 빌라 선수들이 나서서 필사적으로 이 둘을 잡고 같이 말렸었다.[12] 맨유 이적 뒤로는 전 소속 팀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는 언플을 많이 해서 욕을 들어먹고 있다. 리버풀 팬들 역시 이젠 오언에 대해 결코 안타깝게만은 보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13] 조이 바튼 본인도 저 또라이들 중 한 명의 미친행동에 대해 디스한 적이 있는데, 그로부터 며칠 후 나머지 한 놈이 더 미친짓을 벌이고야 말았다. 하지만 필드 위에서의 기행으로 악명높아도 밖에서는 사고를 안 치는 페페나 수아레스와 다르게, 바튼은 길거리에서도 폭행 논란에 연루되며 그 성질머리를 그대로 드러냈다.[14] 물론 태클상황이 먼저 있었는데, 깊숙하긴 했지만 공을 건드린 정당한 태클이었다.[15] 이걸 비꼬아 뉴캐슬 팬들은 위건을 빅클럽이라 부른다.[16] 이때 맞트레이드로 뉴캐슬로 온 선수가 라이언 테일러로 은조그비아가 생각나지 않을 만한 좋은 활약과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7] 마이클 오언이 뉴캐슬로 온 이유 중 하나가 리버풀 레전드 수네스가 있었기 때문이다.[18] 이것 때문에 수네스는 뉴캐슬 시절 '잔디 관리사'로 통했다.[19] 특히 중앙 수비수로서 굉장히 희귀한 양발잡이였다는 점이 결정적 이유였다고 한다.[20] 계약 만료 후 이적이라서 뉴캐슬이 스완지에 지급한 이적료는 없었다.[21] 원래 이름은 '툰 코리아'였으나 동명의 불법 웹툰 공유 사이트 때문에 이름을 변경했다.[22] 이스타TV서 뉴캐슬 관련 콘텐츠에 자주 나올 정도로, 두 번의 강등, 24/25 카라바오컵 우승 퍼레이드도 직접 가서 볼 정도인 이정민 대표 역시 박지성의 맨유 이적 전부터 뉴캐슬의 팬이었다고 할 정도.[23] 영화 Goal!에서 미국 술집 뉴캐슬 팬 1 로 까메오 출연하기도 했다.[24] 오른쪽 팔에 구단 로고를 타투로 세길 정도의 광팬이다.[25]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최대 수용 인원이 52,354명이다. 즉 원정석을 제외하면 거의 항상 꽉 찼다는 뜻이다.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