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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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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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
2.1. 실제2.2. 가상
3. 탄생
3.1. 실존인물3.2. 가상인물
4. 사망
4.1. 실존인물4.2. 가상인물
5. 데뷔
5.1. 가수5.2. 배우5.3. 만화계

1. 개요[편집]

이 해에는 국군의 베트남전 파병이 실시되었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미국 하와이로 망명한 후 사망하였던 해였으며 한국일본이 해방 및 패전 20년 만에 한일 국교 정상화를 통해 양국간 외교관계를 맺게 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국제 협력의 해'로 지정했다.

2. 사건[편집]

2.1. 실제[편집]

  • 1월 8일 - 정부는 국군 공병부대, 의무대, 수송부대 등 비전투병력을 베트남 전쟁에 파병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26일부로 국회를 통과하였다.

  • 1월 18일 - 제7차 한일회담이 개최되었다.

  • 2월 15일 - 캐나다가 국기를 변경하여 단풍잎 문양이 들어가는 오늘날의 국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다른 영연방 와 비슷한 국기를 사용했다.

  • 2월 16일 - 대일굴욕외교반대투쟁위는 한일회담을 전면 거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2월 17일 - 일본 외무대신 시이나 이치나부로가 한국을 방문했다.

  • 2월 18일 - 감비아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2월 20일 -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되면서 전국적으로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 2월 21일 - 미국 뉴욕 할렘가 오두본블룸에서 맬컴 엑스가 연설 도중 암살당했다.

  • 3월 1일 - 충청북도 일대에 야간통행금지 해금이 실시되었다.

  • 3월 8일 - 미 해병대 1개 연대남베트남에 전개했다. 미국의 첫 지상군 전투부대가 베트남에 도착한 것이다.

  • 3월 18일 - 소련의 우주선 보스토크 2호에 탑승한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인류 최초로 우주 유영을 했다.

  • 3월 19일 -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일굴욕외교반대투쟁위가 주최한 '한일회담 반대 성토대회'가 개최되었으나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어 75명이 연행되었고, 함석헌장준하 등 4명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같은 날 부산에서도 시청과 중앙동 우체국 앞에 "굴욕적인 한일외담을 즉각 중지하라"는 내용의 유인물 수만 매가 뿌려졌다.

  • 3월 20일

    • 서울운동장에서 '대일 굴욕외교 반대 성토대회'가 열린 뒤 전국적으로 한일회담 반대 투쟁이 계속되었다.

    •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 3월 22일 - 정부는 단일변동환율제를 실시하였다.

  • 3월 24일 - 국군 비둘기부대 제1진이 남베트남에 상륙하였다.

  • 3월 31일 - 이날 전남대에서 총학생회 주최로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매국외교 결사규탄 성토대회'가 열린 뒤 시위가 벌어졌다. 이 시위에서 학생들은 경찰과 투석전을 벌여 1백여 명의 학생과 20여 명의 경찰이 부상당했고, 32명의 학생이 연행되었다.

  • 4월 중 - 여성잡지 <주부생활>이 창간되었다.

  • 4월 3일 - 한일 양국은 한일문제 3대 현안(어업, 청구권, 재일교포 지위) 합의 요강에 가조인하였다. 이에 야당 측은 가조인된 한일협정을 전면 부인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6일부터는 원내외에서 극한투쟁을 전개할 것을 선언하였다.

  • 4월 8일 - 중앙정보부는 경향신문의 이준구 사장과 이형백 간부, 홍화수 업무국장 등 10명을 간첩 혐의로 체포하였다(무전간첩단 사건).

  • 4월 9일 - 동국대 학생 5백여 명이 '한일회담 반대 성토대회'를 열어 한일협정 가조인은 무효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4월 10일

    • 내무부는 한일협정 반대 시위에 맞서 춘계 치안대책을 명분으로 비상근무에 돌입하였다.

    • 서울대 법대생 5백여 명이 평화선 사수와 매국외교를 반대를 등을 요구하며 '매국외교 반대 성토대회'를 열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 4월 12일 - 서울시내 초급대학연맹회는 한일회담 반대 결의문을 발표한 뒤 구속 학생의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같은 날 동국대 시위 당시 부상당한 김중배 학생이 숨을 거두었다.

  • 4월 16일

    • 이날 동국대 학생들은 '김중배 학생 위령제'를 열고 난 뒤 시위를 벌였다. 이에 문교부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대한 대책으로 임시 휴교령을 내렸다.

  • 4월 17일 - 서울 효창공원에서 4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굴욕외교 반대 범국민 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 4월 19일 - 정부는 이틀 전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해 군을 투입해 초강경 진압할 것을 예고하였다.

  • 4월 28일 - 오스트레일리아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 5월 1일 -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 사이에 해상충돌이 벌어져, 중국 인민해방군이 참패했다.

  • 5월 4일 - 이날 부산에서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부산시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때 1만여 명의 시민들은 '한일회담 즉각 중지'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한 뒤 가두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 5월 6일 - 국내 최초의 상업신문인 신아일보가 창간되었다.

  • 5월 8일 - 이날 광주공원에서 3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시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때 군중들은 기동경찰에 맞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 5월 10일 - 이날 육군 일부 장교들의 쿠데타 음모가 적발되어 원충연 대령 등 10여 명이 체포되었다.

  • 5월 12일 - 서독이스라엘이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홀로코스트의 악연을 떨쳐내고 화해를 위한 발걸음이었다.

  • 5월 16일 -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였다.

  • 5월 19일 - 이날 박정희-존슨 간에 열린 2차 정상회담에서 한미현안 문제 협조와 미국의 한일회담 찬성을 요지로 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자 한일회담 시위에서 반미 구호가 처음 등장했다.

  • 6월 12일 - 서울대 법대생 2백여 명은 5월의 학내 투쟁에서 방향을 전환해 굴욕적 한일회담 반대 및 한미정상회담 호혜평등 관철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6월 14일 - 서울대 법대생들은 한일회담 조기 타결 반대 및 한미행정협정에서의 미국의 성의를 촉구하며 '민족주체성 확립' 및 '부정부패 일소'를 구호로 내세워 2백 시간 동안 단식 농성을 전개하였다.

  • 6월 16일 - 체 게바라피델 카스트로에 편지를 남기고 쿠바를 떠난다. 혁명 동지인 이 둘은 이후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된다.

  • 6월 21일 - 서울대 등 서울시내 12개 대학 및 양정고 등 3개 고교생 등 1만여 명이 모여 매국외교에 반대하며 가두 시위를 벌였다. 이에 정부는 오후 5시부터 전국 경찰에 갑호 비상근무령을 내려 시위를 막고자 했다.

  • 6월 22일 - 일본 도쿄에서 이동원 외무부 장관과 시이나 외무대신이 한일협정을 정식으로 맺고 수교했다. 이후 양국 정가와 사회에 모두 커다란 폭풍이 휘몰아치게 된다.

  • 6월 23일 - 이화여대 등 7개 대학생들이 한일협정 조인 무효화와 협정 비준에 반대하며 성토대회 및 시위를 벌였다. 이는 7월 7일까지 지속되었다.

  • 7월 2일 - 국무회의는 1개 전투사단을 베트남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8월 13일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통과되었다.

  • 7월 9일 - 작가 남정현이 <현대문학> 8월호에 낸 <분지>가 북한 잡지에 다시 실렸다는 이유로 인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 7월 14일 -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한일협정 비준 동의안을 기습 발의하였다.

  • 7월 19일 -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사망하였다.

  • 7월 26일 - 몰디브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7월 30일 -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사회보장법에 서명하고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 8월 7일 -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싱가포르가 탈퇴해 독립 국가가 되었다.

  • 8월 12일 - 야당인 민중당 의원 61명이 한일협약 비준에 반대하며 사퇴서를 냈으나, 14명만 사표가 수리되었다.

  • 8월 14일 - 이날 국회에서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한일협정 비준안이 기습 통과되었다.

  • 8월 17일 - 서울대 법대 학생회는 '한일협정 비준 무효화 선언식'을 열었다.

  • 8월 18일 - 서울대 법대생들이 '한일협정 비준 무효화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같은 날 경기대, 동아대, 서울농대 등에서도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 8월 25일 - 고려대학교 도서관, 신문사, 강의실 등지에 무장 군인들이 난입하였다.

  • 8월 26일 - 한일협정 비준 반대 투쟁이 벌어지자 정부가 서울 일대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을 시내 및 학교에 주둔시켰다.

  • 8월 27일 - 전날 무장군인 난입에 분노한 고려대생들이 '학원방위 학생 총궐기대회'를 개최하며 '학원방위단'을 결성하였다.

  • 9월 4일 - 정부는 고려대와 연세대에 무기 휴업령을 내리고 학사 감사를 시작했다.

  • 9월 7일 - 중국인도 공화국과의 국경지대에 전력을 증강배치했다. 이는 제2차 인도 공화국-파키스탄 전쟁에서 파키스탄군이 참패하고, 인도군이 파키스탄 영내로 진공하자 동맹국 파키스탄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로, 이로 인해 남아시아에 잠시 긴장이 고조되었다.

  • 9월 9일 - 중국티베트 지역을 시짱 자치주로 설정하고 이름뿐인 자치권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시짱 자치주의 영역은 실제 티베트보다 작으며, 상당수 티베트 지역이 칭하이 성 등 주변 행정구역에 흡수되었다.

  • 9월 16일 -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 간부 5명이 구속됨과 동시에 민비연이 해체되었다(제2차 민비연 사건).

  • 9월 18일 - 경인선 전 구간이 복선화되었다.

  • 9월 22일 - 삼성그룹 계열 일간지인 중앙일보가 창간되었다. 이로서 현재 우리나라의 3대 신문 체제가 완성된다.

  • 9월 30일 - 인도네시아에서 공산당 세력이 전국적인 총궐기로 우익 장교 7명을 죽여 정권 전복을 시도했으나 군에 의해 진압당했다. 이로서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사실상 소멸하고, 군부의 수하르토가 실권을 쥐게 된다.

  • 10월 9일 - 한국군 첫 전투부대가 베트남에 도착했다.

  • 10월 19일 - 금성출판사가 설립되었다.

  • 11월 8일 - 남베트남 총리 응우옌 까오 끼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 12월 5일 - 필리핀 근해를 지나던 미해군 항공모함에서 핵폭탄을 탑재한 A-4E 스카이호크 공격기가 바다로 굴러떨어져 침몰한 브로큰 애로 등급 원자력 사고가 발생한다.

  • 12월 8일 - 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났다. 이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대대적인 개혁을 하게 되고 유럽 중심의 교회에서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고 세계 종교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

  • 12월 18일 - 한일 양국은 한일협정 비준서를 교환하며 비로소 수교를 맺었다.

  • 12월 24일 - 이날 민주공화당 내부에서 항명파동이 일어나 소속 의원 7명이 징계를 받았다.

  • 12월 30일 - 필리핀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선진부국이었던 필리핀은, 마르코스의 독재 통치와 부정부패로 인해 라오스, 캄보디아와 같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못 사는 후진국으로 전락하기 시작한다.

  • 12월 31일 -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장 베델 보카사가 권력을 잡게 되고, 이후 그의 폭압 정치가 시작된다.

2.2. 가상[편집]

3. 탄생[편집]

3.1. 실존인물[편집]

3.2. 가상인물[편집]

4. 사망[편집]

4.1. 실존인물[편집]

4.2. 가상인물[편집]

5. 데뷔[편집]

5.1. 가수[편집]

5.2. 배우[편집]

5.3. 만화계[편집]


[1] 정확한 출생 년도가 알려지지 않았다.[2] 미야노코우지 미즈호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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