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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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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ern Ireland(영어)
Tuaisceart Éireann(아일랜드어)
Norlin Airlann(얼스터 스코트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British_Isles_United_Kingdom_NI_highlighted.svg.png

면적

13,843km²

인구

1,870,451명(2017)

수도

벨파스트

정부 형태

입헌군주국·단일국가 산하의 자치정부
(권력 분담제, 의원내각제, 단원제)

국가원수

엘리자베스 2세

공동 정부수반[1]

공석
대리: 제임스 브로큰셔[2]

공용어

영어(사실상)

소수 언어

아일랜드어, 얼스터 스코트어

1인당 GDP

명목 26,920$, PPP 24,760$(2013)[3]

최상위 도메인

(없음 - .uk 사용 중)[4]


1. 소개2. 깃발3. 역사4. 아일랜드 분쟁5. 정치
5.1. 정당
6. 인구
6.1. 종교6.2. 정체성
7. 행정구역8. 기타

1. 소개[편집]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게일어: Tuaisceart Éireann, 얼스터 스코트어: Norlin Airlann)는 아일랜드 섬 동북부에 위치하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와 함께 영국제국을 구성하는 지방 중 하나이다. '얼스터(Ulster, 게일어로는 Ulaidh)' 라고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아일랜드 섬의 지역 구분[5]에 따른 것이다. 아일랜드 섬에서 얼스터 지역은 9개 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영국령 북아일랜드는 6개 주[6]에 해당하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틀린 것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얼스터 = 북아일랜드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아일랜드 사람들 중 일부는 북아일랜드를 되찾아야 할 영토라는 뜻으로 '6개 주(six counties)'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아일랜드과 영국이 분단국가는 아니고,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함께 데리고 나가지 못한 땅처럼 여기는 것.

아일랜드 헌법에서는 북아일랜드도 자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는 1937년 아일랜드의 공화국 선포 당부터 1999년까지 아일랜드 헌법 2조의 규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딱 잘라 아일랜드 섬 전체가 아일랜드 영토라고 하지는 않는다. 1998년 아일랜드영국, 북아일랜드 내 각 정당들은 북아일랜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벨파스트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 중에 아일랜드가 헌법의 영토조항을 삭제하는 게 있었다. 그래서 1999년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했다. 그래서 현행 헌법에서는 대신 간접적인 표현[7]으로 변경되었다. 물론 예외규정을 통해 남북 아일랜드가 통일되기 전까지는 아일랜드의 헌법이 적용되는 지역은 현재 아일랜드의 실효지배 지역으로 한정됨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지금도 아일랜드 헌법에서는 북아일랜드 역시 아일랜드 영토에 해당됨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헌법에 영토의 범위를 규정하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8].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서유럽 지역에서 드물게 바람잘 날 없는 곳이다. 축구할 때 독립국가가 아니면서 출전 자격이 있는 지역이나, 웨일스와 더불어 워낙 인적 자원이 적은 지라 유럽 예선에서 정기적으로 물을 먹고 있다. 이와 관련한 세부적인 이야기는 본 문서 아랫쪽을 확인하기 바란다.

2. 깃발[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St_Patrick's_saltire.svg.png
원래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국기는 세인트 패트릭(성 파트리치오) 깃발로 현 영국 국기의 빨간색 'X'자 심 부분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남부가 아일랜드 자유국 및 현재의 아일랜드로 독립한 이후에도 북아일랜드 국기로 쓰이기는 했으나 지금은 아예 역사속으로 사라진 깃발이라 보면 된다.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gb-niedw.gif
이 깃발은 '얼스터 배너'라 부르며 1953년부터 1972년까지는 공식적인 국기로 지정되었으나 그 후 폐지되었다. 영국을 지지하는 연합주의(unionist) 진영에서만 사용하고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싫어하고 아일랜드의 국기를 사용한다.[9] 현재 북아일랜드 내 유일한 깃발은 영국 국기 뿐이나 역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이 싫어한다.[10] 다만 북아일랜드 축구대표팀(연합주의자들이 주도)이 국제 대회에 나갈 때는 이 기를 사용하며 이때 국가연주는 영국 국가 God Save the Queen를 사용한다. #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과 국가가 같기 때문에 두 팀이 경기를 할 경우 국가를 공동으로 한 번만 연주한다.[11] 커먼웰스 게임에서도 북아일랜드 대표팀이 이 깃발을 쓰지만 국가는 Londonderry Air라는 (북)아일랜드 민요에 Danny Boy라는 가사를 얹어서 부른다.[12][13]

깃발 한가운데에 있는 문장은 '얼스터의 붉은 손'이라 부르는데, 아일랜드의 왕이 되려고 자신의 오른팔을 잘라 바위에 던진 '헤레몬 오닐'의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3. 역사[편집]

이 지역은 그레이트브리튼-스코틀랜드에 무척 가까워서 예로부터 인적 교류가 있었다. 고대에 아일랜드가 팽창했을 때는 아일랜드인들이 여기를 통해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정착하기도 했는데, 후대에 잉글랜드가 팽창하여 아일랜드가 복속되자, 개신교인들이 대거 이주하여 이 지역에 정착했다(그 가운데는 잉글랜드화, 개신교도화된 아일랜드 출신도 있었다). 아일랜드인들은 여전히 가톨릭을 믿고 있었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얻은 개신교도들이 가톨릭교도들을 박해하면서 분쟁의 씨앗이 뿌려진다.

20세기 들어 아일랜드는 우여곡절 끝에 독립을 쟁취했으나, 개신교도 수가 가톨릭교도보다 많은 이 지역은 개신교도를 중심으로 영국에 잔류하기를 원하며 반독립운동을 벌였던 곳이었다. 아일랜드의 독립 운동을 주도한 세력들도 북아일랜드 문제로 분열되어 1922년 아일랜드 내전이 일어났고, 결국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국토로 아일랜드 자유국이 수립된다. 신생 독립국의 안정을 원한 아일랜드 정부에 의해 북아일랜드는 버려진 것이다. 이후 북아일랜드는 끝없는 분쟁으로 세계적인 분쟁 지역이 되었다.

보다 못한 영국에서 군대를 직파하여 치안을 유지하였으나, 1972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터트리는 등 30년 동안 IRA와 소모적이고 성과 없는 분쟁 이후 철수하였다. 공식적으로는 "보그사이드 전투"라 불리는 데리/런던데리[14]에서 일어난 1969년의 대대적인 시위 이후, 1998년 굿 프라이데이 협정으로 분쟁에 관련된 대부분의 무장 단체가 종전 선언을 했을 때까지 기간을 "북아일랜드 분쟁", 혹은 영어로는 The Troubles라고 부른다.

4. 아일랜드 분쟁[편집]

기본적인 대립 구도는 이주 영국인 VS 토착 아일랜드인의 구도로, 개신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이주민은 영국 잔류를 희망하고 영국 여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영국 국기를 걸어놓는 반면, 반대로 아일랜드인은 독립국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바라며 아일랜드 국기를 걸어놓고 있다. 영국은 개신교도 VS 가톨릭교도의 종교 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아일랜드인들은 식민 VS 반식민의 이념 분쟁으로 주장하고 있다.

영국본토[15]-아일랜드의 민족 구분은 혈통이 아니라 출신 지역별로 구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예를 들어 20세기까지만 해도 잉글랜드 출신 부모를 가진 아이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면 이 아이는 Irish로 분류했고 지금도 어느정도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거두였던 찰스 스튜어트 파넬(Charles Stewart Parnell)같은 경우 Irish로 분류되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족보나 가문을 따라가 보면 잉글랜드계(Anglo-Irish)였다. 한국-일본의 예를 들자면 한국에 태어나서 터를 잡은 일본인 2세, 3세가 한국인으로 분류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16] 때문에 오늘날 북아일랜드의 갈등을 Irish vs English, Irish vs Scottish의 민족 갈등처럼 생각하면 곤란하고 오히려 신교 vs 구교, 왕당파 vs 공화파, 연방주의 vs 민족주의간 이념 갈등, 사상 갈등으로 봐야할 것이다.

수도인 벨파스트는 개신교 지역과 가톨릭 지역이 벽으로 확연히 나뉘어 있는 분단된 듯한 도시이며, 거리 곳곳에 지지 정파를 드러내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영국의 다른 지역과 다르게 긴장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중세부터 아일랜드의 농민들은 영국의 부재지주로부터 큰 수탈을 당해왔고, 산업사회가 되어서는 영국의 산업자본 밑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노동자가 되었다. 영국은 북아일랜드를 버리지 못하는 근원적인 이유로 영국군이 물러날 경우 이주 영국인 및 개신교도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이주를 강권하자니 죽어도 이주는 안 하겠다고 하고(사실 영국 본토 이주 지원 대책도 엄청난 돈이 소요된다), 사실 영국 재정에서는 막대한 지원비만 타내고 쓸 만한 산업기반도, 노동력도 없는감자밖에 없는 북아일랜드는 어마어마한 짐더미라는게 영국의 설명.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독립으로 스코틀랜드까지 떨어져나가서 '연합왕국'이라는 체제 자체가 무너지고 잉글랜드로 쪼그라드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 지역 무장단체로는 IRA가 유명하며, 영국 충성파가 만든 UDA 등 반 IRA폭력단체도 극성을 부렸다. 일단은 IRA는 2005년 무장 해제를 선언하여 극소수 원칙주의자를 제외한 IRA의 무장은 공식적으로 해체된 상태. 그래도 산발적으로 무력 테러가 일어나기도 하고 있다.일단은 북아일랜드는 다른 영국의 지역에 비해 광범위한 자치를 보장받고 있는 편이기는 하다. 참고로 영국 충성파들 중에는 네오나치들과 손을 잡거나 아예 네오나치 성향을 같이 띄는 부류들도 많다(...) 1920~60년대 사이 IRA는 노골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을 주장했고, IRA의 좌경화와 입만 살아서 실제로 가톨릭 주민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꼬락서니에 반발해서 60년대 후반에 분리하고 나간 다수파 PIRA 또한 반민족주의적 극좌 성향을 배격하긴 했지만 최종적인 슬로건은 여전히 통일된 (united), 민주적인 (democratic), 사회주의 (socialist) 아일랜드 공화국 성립을 유지하고 조직 내에 단순한 반영 민족주의를 넘어 좌익 세력을 유지하며, 현재 정당으로서 신페인 또한 많은 사민주의적 정책을 미는 등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은 예나 지금이나 좌익 세력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5. 정치[편집]

오랜 갈등의 역사 때문에, 1999년에 부활한 자치정부에서는 쌍두정(diarchy)과 대연정(grand coalition)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영국 정부와 스코틀랜드·웨일스 자치 정부의 수반은 각각 1명, 즉 영국 정부의 총리(Prime Minister)와 스코틀랜드·웨일스의 총리(First Minister)이다. 영국 정부와 스코틀랜드·웨일스 자치정부에서는 부총리(deputy Prime Minister나 deputy First Minister)가 있을 경우 이들은 명목상 총리 '다음'의 지위를 갖는 사람들이 된다. 하지만 북아일랜드에서는 총리·부총리가 이름은 달라도 법적으로 동등한 공동 정부수반이며, 자치의회 내 선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북아일랜드의 친영 진영과 아일랜드 민족주의 진영에서 각각 한 자리씩 맡게끔 제도가 설계돼 있다. 따라서 양 진영이 모두 자치정부에 참여하여 두 진영의 반강제적인 타협을 유도함으로써 양측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양 진영 간의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식물 정부가 될 위험 역시 크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실제로 북아일랜드 자치가 재개된 지 얼마 안 된 2002년 10월 15일부터 2007년 5월 8일까지 자치의회의 갈등으로 자치정부 내각을 구성하지 못해 자치정부의 기능이 정지되고, 그 기간 동안은 영국 중앙 정부가 대신 직접 북아일랜드를 관리한 적이 있었다.

5.1. 정당[편집]

북아일랜드에서는 현지 기반의 정당들이 주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영국 본토의 주요 정당들은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

보수당은 선거 때마다 형식적으로나마 북아일랜드에 후보를 내고 있다. 본래 연합주의(Unionist) 정당인 얼스터 통일당(Ulster Unionist Party, UUP)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나 1970년대 이후 관계가 틀어져, 1980년대 말부터 북아일랜드 현지에 당 조직이 들어서서 선거에 자기 당 후보를 공천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당은 형식적으로만 공천을 했을 뿐 실제론 별 인기가 없었고, UUP는 2000년대 이후 더 보수적이고 강경한 연합주의 노선을 취하는 민주통일당(Democratic Unionist Party, DUP)[17]에게 밀리는 상태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와 2010년 총선에서 다시 부활한 이들의 연대는 2012년까지 유지되다가 해체되었고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치러진 선거에서는 보수당과 UUP가 별도로 공천을 했다. 참고로 2015년 총선에서는 UUP가 당세를 조금 회복해 2석을 당선시켜 하원 원내정당으로 복귀했다. 북아일랜드 보수당은 당연히 당선을 못 시켰다

영국 노동당자민당은 북아일랜드인들의 입당을 받아들이긴 해도 북아일랜드에 공천하진 않는다. 노동당의 경우에는 창당 당시에는 아일랜드 섬 전체가 영국의 일부였는데, 여기는 아일랜드 노동당[18]의 관할 지역으로 쳤기 때문. 아일랜드가 분할돼 북아일랜드만 영국에 남은 이후에도 이때의 방침이 오랫 동안 남아서 2000년대까지 북아일랜드 사람들의 입당을 막았다. 그리고 북아일랜드 현안은 현지 주요 정당 중 하나인 사회민주노동당(Social Democratic and Labour Party, SDLP)과 연계해 처리하면 된다고 봤던 것도 있고. 자민당의 경우에는 자매 정당으로 북아일랜드 동맹당(Aliance Party of Northern Ireland)이 있다. 이 당은 자유민주당과 비슷한 정책 지향을 가지고 있고 상징색도 비슷하게 노란색 계열이다. 일부 북아일랜드 동맹당원들은 아예 자유민주당 당적을 함께 가지고 있다. 참고로 북아일랜드 동맹당은 북아일랜드의 양대 진영인 연합주의(unionism, 친영국)와 아일랜드 민족주의(Irish nationalism, 아일랜드과의 통일 지지) 진영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몇 안 되는 정당이다.

한편 좌파 아일랜드 민족주의 쪽의 주요 정당으로는 신페인당과 사회민주노동당(SDLP)[19]이 있다.

이들 북아일랜드 정당들은 영국본토 정당들과 별개이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의 전체 의회에도 의석을 가지고 있다. 신페인당은 영국 국회에 의석은 보유하지만 보이코트한다(abstentionism).

6. 인구[편집]

인구 181만(2011)으로, 영국을 이루는 네 지역 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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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은 개신교, 청색은 가톨릭 우세지역이다. 세력이 대체로 브렉시트 찬반투표의 양상과 비슷한 구도이다.BREXIT 찬반투표 결과(BBC), The overall result 참고

6.1. 종교[편집]

2011년 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는 40.8%를 차지한다. 한편 아일랜드 장로교회 신자가 19.1%, 아일랜드 성공회 신자가 13.1%, 아일랜드 감리교회 신자가 3%였다. 즉 개신교 신자는 41.6%를 차지한다[20]. 기독교가 아닌 타 종교 신자는 0.8%, 무종교/무응답은 16.9%였다.

성공회 신부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C. S. 루이스가 이곳 출신이다.

6.2. 정체성[편집]

2011년 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본인을 영국인(British)이라 생각하는 이는 48.4%, 아일랜드인(Irish)이라 생각하는 이는 28.4%, 북아일랜드인(Northern Irish)이라 생각하는 이는 29.4%, 잉글랜드인/스코틀랜드인/기타는 5%였다(복수응답 가능). 웨일스는 기타

가톨릭 신자들은 본인을 영국인이라 생각하는 이는 12.9%, 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이는 57.2%, 북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이는 30.7%, 기타는 5.2%였다(복수응답 가능). 한편 개신교 신자들은 영국인이라 생각하는 이는 81.6%, 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이는 3.9%, 북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이는 26.9%였다(복수응답 가능).

아일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이 거의 모두가 공화주의(Republican)인 반면[21],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은 연합주의(Unionist)가 대다수를 차지한다.[22] 즉 아일랜드에서는 개신교 신자라 하더라도 북아일랜드 독립을 지지하는 반면, 북아일랜드에서는 개신교 신자들 상당수가 영국 잔류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자신을 영국인이라 생각하는 비율이 81.6%가 나온 것이다. 반대로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도 어차피 종교의 자유를 허용해 주는데 영국에 잔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 존재한다. [23] 즉 가톨릭은 공화주의, 개신교는 연합주의일 가능성이 높지만, 예외는 존재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Northern_Ireland_Life_and_Times_Survey_constitutional_preference.png
벨파스트 퀸즈대학교와 얼스터대학교가 주관하는 연례 여론조사. 푸른 계열은 영국 잔류, 붉은색은 (아일랜드와는 별개의)북아일랜드 독립, 녹색은 아일랜드와의 통합, 노란색은 기타 의견, 회색은 관심이 없다는 응답이다.

7. 행정구역[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82px-Northern_Ireland_-_Counties.png
1921년부터 1972년까지는 위 지도처럼 전통적인 6개 주로 나누었다.

  • 앤트림(Antrim) - 인구 61만 8천(2011)으로, 주도는 앤트림. 북아일랜드의 주도중심지 벨파스트는 대부분 앤트림 주에 있으나, 다운 주에도 일부가 걸쳐 있다.

  • (런던)데리((London)derry) - 인구 24만 7천(2011).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런던데리/데리[24]가 있다. 주도는 Coleraine.

  • 타이론(Tyrone) - 인구 17만 8천(2011). 주도는 오마(Omagh).

  • 퍼매너(Fermanagh) - 인구 6만 1천(2011). 주도는 에니스킬린(Enniskillen).

  • 아마(Armagh) - 인구 17만 5천(2011). 주도는 아마.

  • 다운(Down) - 인구 53만 2천(2011). 주도는 다운패트릭(Downpatrick).


위 행정구분은 현재는 차량 번호판 표시와 같은 한정된 용도로 쓰이고 있고, 1972년 이후부터는 아래의 26개 지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rthern_Ireland_-_Local_Government_Districts.png 출처

8. 기타[편집]

당연하지만 영국에 속한 지역답게 축구의 인기도 높다. 맨유의 레전드 조지 베스트가 여기 출신이고 1982년과 1986년 2회 연속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1982년에는 당시 개최국이었던 스페인을 잡는 성과를 내기도 했었다. 참고로 북아일랜드는 1986년을 마지막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유로 2008 때는 예선에서 무려 13골[25]을 넣은 데이비드 힐리를 앞세워 홈에서 스페인, 스웨덴, 덴마크를 전부 물리쳐서 본선 진출 전망이 밝았다. 그렇지만 도중에 감독 교체 후[26] 원정경기에서의 패배와 연속경기에서 자책골을 넣는 등 부진하면서 결국 탈락.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 때 역시 초반에 1위를 달렸으나 결국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법칙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이 지역의 축구 대표팀에 대한 것은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참고로, 현역 축구선수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은 아무래도 유스 출신으로 맨유에서 수비수로 뛰고 있는 조니 에반스(현재는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소속).

또한, 셀틱 FC아스톤 빌라 감독을 했던 마틴 오닐 감독이 이 지역 출신인데 이례적으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정작 마틴 오닐은 아일랜드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마틴 오닐 말고도 브렌던 로저스도 북아일랜드 출신이다.

럭비는 아직도 독립국 아일랜드와 단일팀을 이루어 출전한다. 즉, 럭비협회가 아일랜드 섬 전체를 관할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기게양과 국가에 있어서 논란이 계속되었는데, 참신한 신곡(?)의 출현과 국기에 아일랜드 섬 네개 주의 문양을 때려박는 것으로 어느정도 해결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자세한 것은 아일랜드의 관련항목 참조.

골프를 상당히 잘 치는 나라로 손꼽히는데 인구는 고작 180만 밖에 안되지만 골프장이 무려 100개 가량 있다고 한다. 유명 선수로는 로리 매킬로이, 그레임 맥도웰[27], 대런 클라크[28]등이 있다. 한국처럼 돈 깨지는 그런 스포츠가 아니라 조기축구 하듯 상당히 대중화 되어있다고 한다. 북아일랜드 특유의 예측불허의 기후도 골프실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레슬링 선수중에선 핀레이가 있다. 아쉽지만 혼스워글미국 출신이다.

각종 밀리터리물에서 아일랜드 출신 캐릭터들은 좀 별종으로 취급 받는다.

참고로 생존왕은 북아일랜드 도나하디 태생이다.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아버지도 북아일랜드 출신.

영국답게 뮤지션도 꽤 많이 배출한 편인데 대표적으로 밴 모리슨, 게리 무어, 언더톤스, 애시, 투 도어 시네마 클럽, 스노우 패트롤[29]등이 있다.

나니아 연대기를 쓴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도 북아일랜드 출신.

닥터후에선 33세기까지 영국에 복속되어 있다. 지못미. 마지막으로 영국의 4개 홈네이션 중에 동성결혼이 인정되지 않는 유일한 곳이다. 시민결합(Civil Union)만 인정된다. 속령인 채널 제도, 맨 섬도 시민결합만 인정.

기동전사 건담 00에선 1기 3화에서 리얼 IRA가 400년 만에 무력 테러를 중지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1] 북아일랜드는 공동 정부수반을 두고 있다. 두 수반은 총리(First Minister)와 부총리(deputy First Minister)로 직함을 달리하지만 실제 양자의 권한은 동일하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는 총리가 수반, 부총리(임명된 사람인 경우)가 부수반이라 북아일랜드와 다르니 주의. 다만 현재는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서 북아일랜드의 두 수반이 모두 사퇴한 상태다.[2] 영국 중앙정부의 북아일랜드 담당 장관(Secretary of State for Northern Ireland).[3] 서유럽 지역 치고는 소득 수준이 낮은 축에 속한다. 명목만 놓고 봤을 때는 남유럽에 속하는 키프로스, 스페인과 비슷하지만 구매력 지수로 환산했을 경우 오히려 공산주의 체제를 경험한 중부 유럽 국가들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4개국 모두 포함) 보다도 낮은(최저 27,000 달러에서 최대 32,000달러) 수치이다.[4]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uk를 싫어하고 아일랜드(공화국)의 .ie를 선호한다. 아일랜드 민족주의 성향이 아닌 민간인들은 북아일랜드(NI)를 강조하고 싶을 때 엉뚱하게도 니카라과의 도메인인 .ni를 쓰기도 한다고 한다.[5] 아일랜드 섬은 크게 렌스터(동부, 더블린이 여기에 있다.), 코노트(서부), 먼스터(남부) 그리고 얼스터(북부, 북아일랜드가 여기에 있다.)로 나뉜다. 모두 아일랜드에 있었던 옛 왕국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6] 이것은 아일랜드 독립전쟁 결과 체결된 영국-아일랜드 조약으로 사실상 남부 아일랜드의 분리가 확정된 상황에서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이 북부의 확실한 다수파를 차지하기 위해 얼스터 9개 주 중에서 유난히 가톨릭 신자들이 많았던 3개 주(도니골, 모나한, 캐번)를 북아일랜드의 영역에서 의도적으로 분리시키려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얼스터의 나머지 3개 주가 북아일랜드의 영역에 포함되었을 경우 개신교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인구 비율은 가까스로 개신교 신자들이 우세하기는 하나, 사실상 다수파로서의 의미와 다소 거리가 먼 1:1에 근접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3개 주를 제외한 나머지 6개 주에서의 인구 비율은 약 3:2로, 이 경우는 개신교 신자들이 다수파로서의 기득권을 차지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7] 아일랜드 섬에서 태어난 이의 아일랜드 민족/국적 취득권(2조), 평화적 방식과 다수결에 의한 아일랜드 통일(3조)[8] 대표적으로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다. 즉 현실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온전하게 가지지 못한 상태이며 건국 이후 이북지방을 공식적으로 다스린 적이 없다. 그냥 그렇게 통치영역을 가지고 싶다는 희망사항이나 다름없다.[9]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범 아일랜드 단체에서는 아일랜드 섬 전체의 깃발을 아일랜드의 삼색기로 쓰기도 한다.[10] 이 때문에 벨파스트 시의회가 시청에 영국 국기를 거는 날을 국경일로 제한하는 조례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연합주의자들이 폭력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난리가 나기도 했다.[11]리히텐슈타인의 국가는 곡은 동일하지만 가사가 다르기 때문에 잉글랜드 대 리히텐슈타인, 또는 북아일랜드 대 리히텐슈타인의 경기가 치러질 경우 같은 곡이 두 번 연주된다.[12] Air는 음악 장르 중 하나이다. 공기라는 뜻이 아니다 이 곡이 유래한 런던데리는 북아일랜드의 도시 중 하나인데, 명칭에서 보듯이 London 때문에 민족주의자들이 이 명칭을 싫어해 Derry로 부른다.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 이름 가지고 싸우는 희귀 케이스 중 하나이다. Londonderry Air 자체는 가사가 없어서 그 음계에 맞춰 부르는 가사들이 몇 가지 있는데, Danny Boy는 그 중 하나이다.[13] 커먼웰스 게임에서는 잉글랜드도 God Save the Queen 대신 다른 곡을 쓴다(근래에는 Jerusalem을 선호).[14] 아일랜드의 가톨릭 주민들은 데리(Derry),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주민들과 친영 세력들은 런던데리(Londonderry)라고 부른다.[15] 잉글랜드,웨일스, 스코틀랜드[16] 이런 구분이 못마땅했던 조지 버나드 쇼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고 Irish라니! 그럼 공기 중에서 태어나면 Airish겠군!"이라고 비꼬았던 적도 있다. 참고로 조지 버나드 쇼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으로 두 나라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17] 이언 페이즐리가 前 당수였다.[18] 현재 아일랜드의 주요 정당 중 하나이다.[19] 영국 노동당이 이들과 연대했던 이유는 영국 노동당은 1990년대 초까지 북아일랜드가 영국에서 벗어나 독립국 아일랜드와 통일 아일랜드를 이루는 걸 지지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에 영국 주요 정당들은 북아일랜드 문제에 대해 확정적인 당론을 없애고 현지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20] 유럽의 전반적인 트렌드는 이곳도 예외가 아니라서, 청년층(10-30대) 중심으로만 따지면 이미 역전당했다. 그리고 그쪽을 중심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증가하고 있는데(약 45%) 개신교 신자들은 감소하고 있다(약 35%)[21] 이를 '개신교 공화주의'라 하는데, 수적으로는 적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남북 아일랜드 분단 이후에도 몇몇 개신교 공화주의자들이 북아일랜드 광복과 남북 아일랜드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22] 근본주의 노선과 결합된 하드코어 연합주의자들은 아예 아일랜드 장로교회에서 떨어져 나가서 교단을 하나 새로 차리기까지 했다. 이 교단의 실질적인 실세는 친영파 목사인 이언 페이즐리다. 친영파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근본주의적인 것은 좀...[23] 이들을 가톨릭 연합주의라 한다.[24] 개신교도는 런던데리, 가톨릭교도는 데리라고 부른다. 1613년 제임스 1세의 칙허장으로 "런던"이라는 이름을 앞에 달게 되었다. 일단 정식명칭은 런던데리다.[25] 유로예선 개인최다골 기록이다.[26] 상승세를 이끌었던 로리 산체스 감독이 예선 도중에 풀럼 FC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산체스는 풀럼에서 성적부진으로 도중에 경질되고 말았다.[27] 2010 US 오픈 우승.[28] 2011년 브리티시 오픈 우승.[29] 엄밀히 말해서 스코틀랜드 밴드지만 멤버들 대다수가 북아일랜드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