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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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本主義, fundamentalism.


1. 설명[편집]

"근본인 것들을 지킬 수 있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한판 붙을 작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


1920년대 미국 저널리스트 커티스 리 로우스, 당시 새로 등장한 종교 성향에 대한 논평 中

원리주의라고도 한다. 근본주의자/원리주의자로도 여기로 들어올 수 있다.

독실한 신앙이 종교 교리에 충실한 것이라면, 근본주의는 전통주의 또는 종교극단주의, 보수주의로 오해하나 비교적 이해의 역사가 짧다. 매니토바 대학교에 재직하면서 권위주의 연구로 유명해진 정치심리학자 밥 알테마이어(B.Altemeyer)는 근본주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근본주의란, 인간과 신에 대해서 오류 없이 전하는 종교적 가르침의 세트는 단 하나뿐이며, 이 진리가 오랜 시간 동안의 적용과 규칙에 따라 준수되어야만 한다고 믿는 신념이다.


Altemeyer & Hunsberger 1992년

이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매우 확실히 알고 있다. 사실, 너무 확고하게 알고 있어서 문제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들의 경직된 태도는 특정한 세계관이나 신념에 대해서 그것 하나만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기 때문에 나타난다. 언뜻 확신에 차 있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이들의 믿음의 이면에는 뜻밖에도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공포, 그리고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내면의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근본주의자들이 그들과 다른 생활 양식이나 문화에 거부감을 보이고, 성 소수자다른 인종에 대해 더 심하고 모질게 차별적인 행동을 하며, 성경의 내적 모순들에 대해서 더 히스테릭하게 반응하고, 특히 공포와 불안이 심해지면 신앙치료에 대해 심정적으로 더 매달리게 되고, 심지어는 군국주의 역시 더 심하게 옹호한다고 보고하였다.[1]

재미있게도 미국의 종교 근본주의자들은 누구보다도 성경 문자주의적인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막상 기독교에 관련된 종교 퀴즈가 나왔을 때 평균적으로 반타작도 못 했다고 한다(…).[2] 이 퀴즈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올린 사람들은 무신론자들이었고[3], 그 다음이 그들이 그리도 혐오하던 유대인과 모르몬교인들이었다. 결론적으로 종교에 대해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종교적 교리에 대해서도 박식한 결과가 나왔다. 결국,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받든다고 하면서도 정작 성경에 대해서는 별로 알고싶어하지 않았던 것. 종교 퀴즈에서 점수가 높은 사람들이 일반 상식도 역시 많이 맞추었다는 사실도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관련 포스트

1.1. 보수주의/권위주의와의 학술적 구분[편집]

심리학에서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차이점을 호모포비아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보수주의자들은 성 소수자들이 "사회의 보편적 성 윤리를 따르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방종한 생활을 하며, 성 규범을 어기고 가정과 가족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에" 그들을 배척하고 심지어는 그들에게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4] 근본주의자들은 "성 소수자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게 되면 그들이 갖고 있는 종교적 세계관 자체가 뒤흔들리기 때문에 그와 같은 심리적 불안과 부담감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성 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두 가지가 파이널 퓨전을 일으킨 사람들도 정말 많이 있고, 대체로 근본주의와 보수주의는 서로 함께 움직이는 관계로 취급된다.

흔히 같이 나타나는 권위주의와도 사뭇 다르다. 바실리스 사로글로우(V.Saroglou) 등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근본주의자들은 공격적인 교리나 구절을 접하면 권위주의자들보다 더 심한 배타성과 공격성을 보이지만, 반대로 박애와 사랑을 강조하는 교리나 구절을 접할 때에는 권위주의자들보다 덜 배타적이며, 심지어 근본주의자이자 권위주의자인 사람들에게서도 그 배타성이 일정 부분 상쇄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5] 또한 이들은 자신과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들에게 한해서는 매우 친절하다고 한다. 짧게 말하면, 이들은 선한 교리를 접하면 한없이 선해지고, 위험한 교리를 접하면 한없이 위험해지는 반면, 권위주의는 이런 영향이 덜하다는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근본주의 세력은 여러 분야에서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특히 정치학계에서는) 자유주의와 대비되는 권위주의 세력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2. 현황[편집]

안 그런 집단들도 있긴 하지만 흔하게 알려진 근본주의 집단들은 대부분 세속 사회와 충돌하여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교리에 확대해석한 나머지 경전의 내용을 자신들이 가장 잘 지키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서술된 것처럼, 종교계에서 근본주의가 나타날 경우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생활양식이나 가치판단 등에 있어 교리에 근거한 자신들의 기준을 절대화 하는 자체는 개인차원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것을 사회전반에 강요하고 뜯어고치려는 노력을 하는것이 문제이다. 아미시 같이 아예 고립적인 근본주의적 집단들은 사회에 물의를 끼치지 않는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는 모양인데, 아미시 공동체 내에서 작은 사회의 전형적인 성폭력, 근친 문제를 보고 그런 말이 나올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유대인 하레디들은 과거 자신들의 조상들도 현실에 맞춰 지키던 600여개 계율을 현대문명을 거부하며 지키는데, 이들이 이어받았다고 주장한 순수 유대인 즉 과거 수천년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언어 토라 뿐만아니라 세속 지식까지 다 배웠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땅에 무력으로 원주민을 쓸어버리고 유대인만을 위한 신정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19세기까지 정통 유대교 랍비들은 회당에서도 히브리어만 쓰고 개신교식으로 찬송가를 만들어서 활용하자는 진보적인 주장에도 반대했지만, 과격적인 시온주의는 그저 미친소리로 여기고 회당안에서 시온주의를 선동하는 무리들을 빗자루를 휘둘러 쫓아낼 정도였다.. 그러나 19세기부터 동유럽에서의 포그롬 서유럽에서도 반유대주의로 특히나치의 유대인 박해 학살로 유럽내 보수 정통 신학을 가진 유대인 공동체가 파괴되자, 2차대전 전후 평소에 회당에도 나오지 않던 과격 급진 무리들이 자신들이 정통이라 주장받기 위해 더 극단적 종교근본주의자가 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개신교에서도 우리가 오늘날 근본주의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미지들은 사실 근본주의가 아니다. 18세기 까지 유럽의 개신교 학자들에게 있어, "세상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는 문구는 1~2세기 사도시절에만 해당한다고 보는게 통설이었다. 그리고 성령체험, 방언은 역시 성서시대에만 나오는 것으로 보는 은사중지론이 19세기까지 통설이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시기 칼로 전도하는 과혁혁명론자와 성령을 직통으로 받는다는 토마스 뮌처를 비롯한 재세례파들을 이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은사중지론을 설파한 대표적 인물인 벤저민 워필드(B.B.Warfield)는 실제로 장로회의 유명한 신학자이기도 하다.

근본주의 하면 보통 이슬람이나 그리스도교(그 중에서도 특히 극단주의 계통) 등 유일신교 계통 종교들을 떠올리기 쉬우나 실제로는 다른 종교도 근본주의는 당연히 존재한다. 근본주의자들은 나라에 따라서 권유 수준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막장스런 나라들은 아예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서 아예 나라 전체나 특정지역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 최근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은 자경단을 조직하여 이슬람 도축 업자들을 살해하고 다니며 미얀마와 태국의 불교도들은 소수 종교인 이슬람과 소수 민족들을 탄압한다.

간혹 아미쉬 공동체들을 근본주의라 여기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이나 종교를 절대화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반대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도 않는다. 이들은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체계를 갖고 살아가는 타인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본주의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는데, 일단 당장 아미시 공동체가 그렇게 외부에서 보는 것 처럼 털어도 먼지 안나오는 사람들인지 부터 의문이고 [6], 애초에 근본주의의 정의에서 사회적 민폐는 부차적 요소고, 17세기 이민 당시의 종교관, 사회관을 의식적으로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아미시는 근본주의 맞다. 이바디 이슬람 처럼 그냥 외부와 차단 자체를 끊고 사는 것이지, 외부 전파를 안한다고 해서 근본주의가 아닌게 아니다.

한국의 경우 매우 보수적인 가톨릭의 모더니즘 비판을 통한 근본주의와 개신교 대다수 교파에서 정통주의적 태도를 통해 근본주의와 비슷하게 보이는 문제[7]는 분명 있을지언정 다른 나라들처럼 타 종교인을 상대로 살해나 테러 등의 종교 분쟁이 미약한 수준이다. 이는 좋은 치안에 기여하고 있다.

근본주의가 한국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 도올 김용옥은 한국은 샤머니즘기복신앙과 유가적 현실주의가 뿌리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즉, 종교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복신앙적 요소는 종교 내부에서 크게 비판하고 있기도 하고 적대시하는 경향도 있기에 무조건 옳은 주장이라고 하기엔 아니다. 또, 이러한 주장은 주기철을 비롯해서 신사참배 문제로 일제에게 희생당한 아픈 역사가 있는 기독교인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근본주의나 극단주의와 같은 말의 문제는 이것이 일부 이단 논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가령 종교적 가르침에 의한 범죄가 일어났다 하면 해당 종교인들이 발벗고 나서서 자신들이 따르는 종교의 이름값을 지키기 위해 "이건 근본주의자들이나 극단주의자들이 책임이지 온건(moderate)주의자들은 상관 없음"이라고 하면서 비판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종교에 의한 테러가 많이 발생하는 서구권 등지의 경우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에 책임을 돌리지 특정 종교의 명백히 존재하는 교리에 대해서는 가치판단이나 비판이 쉽게 무력화된다는 폐해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부 이단 논리가 지지를 얻는 순간 세를 확장하여 자신들과 믿음의 방향이 조금 다른 집단에 이단이라는 식으로 낙인을 찍는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원천봉쇄의 오류에 빠져선 안 된다.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의 극단적 태도를 해당 종교의 평화적 교리로 비판하려는 운동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의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행동을 통해 해당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옅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온건주의자가 근본주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교리에 대한 곡해와 왜곡으로 해석하여 근본주의를 비판한다. 이런 경우엔 온건주의자들은 근본주의가 근본이란 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매우 불쾌해한다. 해당 종교의 근본이 그런 폭력적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종교들이 과학과의 공존을 추구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런 온건주의가 주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근본주의와 극단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서술된 부분이 더러 있고, 무엇보다 종교적 교리와는 상관없는 민족주의 또는 부족주의적 동기에 의한 행동의 결과물을 근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오류가 많이 범해지고 있다. 가령 불교 항목에 있는 이슬람 대 불교라든지 힌두교 항목에 나와 있는 힌두교 대 타 종교라든지 하는 문제들은 신도들이 불교나 힌두교의 교리를 근본주의적으로 실천한다기보다는 부족주의나 민족주의에 더욱 강한 동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 항목은 읽는데 주의를 요하며 꽤 많은 수정이 필요하다.

2.1. 유대교[편집]

파일:external/www.maozisrael.org/0212-argue-with-police.jpg
경찰과 맞장 뜨는(...) 하레디 유대인.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이면 경찰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끔살당하고, 이스라엘 좌파나 진보인사라면 딱 팔레스타인 사람 수준으로 개돼지처럼 두들겨 맞다 풀려나면 다행이다.

이들은 평소에도 경찰을 자주 무시하고 세속법을 더럽다(!)면서 언젠가는 자신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이스라엘을 하레디 국가로 바꾸리라고 믿는다. 이스라엘 강경파 중에서 가장 강경한 집단이 바로 이들이다. 자세한 내용은 하레디 항목 참조.

흔히 이들을 바리사이파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AD 1세기경의 바리사이파는 어디까지나 평신도 신학운동이었을 뿐 정계의 주류와는 거리가 먼 집단이었다. 그리고 신학적 경향이 딱히 근본주의적이지도 않았다. 이들이 근본주의적이었다면 예수가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교리를 만드냐는 비난도 없었을 테니까.

기본적으로 율법은 해석이 필요한 면이 있다. 토라의 '안식일을 범하지 말라'는 규정만 해도,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예외는 무엇인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게 마련이며, 특히 율법 규정이 일상생활의 규범이 되는 1세기 유다인의 경우, 그러한 해석의 필요성은 더욱 강해진다. 바리사이파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토라 이외의 전통까지 폭넓게 받아들여 율법을 해석한 학파다.

게다가 자기들과 해석이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거나 죽인것도 아니고[8], 모두에게 이러한 해석을 따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다른 학파들과 논쟁이야 자주 벌였지만, 이건 모든 경전의 종교에서 흔한 모습이다. 이런면에서 바리사이는 근본주의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토라 이외의 전승을 일체 인정하지 않고, 토라의 준수만을 주장하여 바리사이와 극단적으로 대립한 사두가이파가 진짜 근본주의에 가깝다.[9] 그럼에도 사두가이파는 영혼멸절설을 주장했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때문에 전문 학계가 아닌 곳에서는 여전히 오해가 널리 퍼져있다.

본래 초기 유대교에는 죽은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내세 개념이 희박했다. 초기의 유대교는 지극히 현세적인 종교였고, 죽은 자의 혼백은 지하세계인 셔올로 내려가 잠자는 것처럼 머문다고 믿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에 대한 관용 표현으로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다'고 종종 표현한다. 영혼의 부활 같은 개념은 상당히 후대에 생긴 것이며, 바리사이파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토라 외에는 인정하지 않았던 사두가이파는 영혼이나 내세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전통적인 신앙 형태를 고수했던 것에 불과하다.

현대 유대교에서 사두가이와 가장 교리가 근접한 분파로는 카라이파가 있으며, 이들도 하레디 못지 않게 근본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10] 하지만 1세기경의 사두가이와 다른 점들도 많으며,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면 토라 외에도 이사야다니엘로 대표되는 네비임, 욥기시편 등 케투빔이 포함된 유대교 경전[11] 전체를 인정한다는 점과 카라이파는 사두가이파와 달리 부활과 심판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링크1), (링크2) 애초에 이들은 사두가이파가 단절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9세기쯤에 가서 생긴 분파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2.2. 기독교[편집]

종교개혁 시기를 지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많은 학문들이 이성에 기초한 과학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신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18세기 이후 현대 문명의 발전에 대한 긍정주의 및 근대 이성에 대한 낙관주의가 기독교 안에서 퍼지면서 자유주의 신학이 신학의 주류가 되었다. 그 당시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반동은 크게 세 가지로 보는데, 이들 중 하나가 가톨릭의 모더니즘 단죄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개신교의 근본주의 태동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이성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 이성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초라하게 짓밟히는지를 체험하면서 몰락하였다.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가톨릭의 모더니즘 반대는 자신의 영역에서 굳건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개신교의 근본주의는 정통주의가 득세하며 몰락해가고 있는 중이다.

미국에서 근본주의가 생겨났다면, 유럽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발로 나름대로의 보수적 신학관을 견지하는 정통주의와 유연하고 진보적인 신정통주의가 태동되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미국에서는 근본주의가 무조건 우세할거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근본주의는 신학적 특성상 이성을 버렸기에 아무런 신학적 성과를 얻을 수 없었기에 정통주의 신학에 크게 밀려버렸다.

정통주의는 근본주의와 달리 기존의 전통적 교리서들을 인정하면서 보수적인 성경 해석을 견지한다. 따라서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되며 한국의 정통주의 교회를 근본주의 교회로 오인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많은 한국 교회가 정통주의 신학을 이어받아 진화론과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이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무조건 옳다고 해석하는 근본주의와 분명히 다른 것임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2.2.1. 가톨릭[편집]

흔히 가톨릭은 교황청의 지도를 일률적으로 받고 다른 종교들에 보다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며 나주 성모동산 사건의 사례처럼 자동 파문하는 제도가 있으므로 근본주의가 아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성 비오 10세회처럼 근본주의에 근접한 단체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단지 개신교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가톨릭 근본주의자들은 미사에 현대 음악이 도입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들은 새 미사(바오로 6세 미사)는 개신교의 영향에 오염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트리엔트 미사를 고수한다. 개신교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현대 가톨릭과 달리 전통 가톨릭에서는 교회일치운동에 비판적이며, 개신교를 여전히 이단 열교라고 부른다. 현대 가톨릭은 개신교에 대한 이전의 규정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것은 아니나 대개 개신교를 순화된 표현으로 '갈라진 형제'라고 부른다.[12]

동성애자들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전통 가톨릭은 현대 가톨릭보다 더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대 가톨릭 교회의 경우에는 성생활을 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영성체와 기타 성사를 받는 것을 금지하되 미사 참례 자체는 금지하지 않지만, 전통 가톨릭에서는 성생활을 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영성체는 물론 미사 참례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동성애 성향 자체에 대해서는 전통 가톨릭이나 현대 가톨릭이나 미사 참례와 영성체 자체를 못할 죄로 보지 않는다. 전통 가톨릭에서도 성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미사 참례와 영성체 둘 다 허용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군주제와 공화제를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추구하는데, 단 여기서 말하는 공화제는 민주공화제가 아니라 가톨릭을 국교로 지정하거나 최소한 친가톨릭 성향의 공화제다. 사실 성경에서는 왕국, 즉 군주제가 강조되고 있고, 가톨릭 교회가 군주제 성향을 띄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새 예루살렘=그리스도의 왕국인 셈이다. 물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는다. 모순된 게 많다고 보는 게 정확한 입장일 것이다. 아무튼 보수 개신교 평균보다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더 강한 편이다.

더 자세한 것은 전통 가톨릭 항목을 참조하자.

2.2.2. 개신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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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근본주의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미국에서 1883년 뉴욕에서 개최된 모더니즘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대응책으로 사경회가 나왔고, 이를 요약하여 워필드(B.B Warfield)의 주도로 《근본적인 것들(Fundamentals)》소책자가 나왔었고,[13][14] 1910년경부터 1915년까지 연이어 보수적 개신교 저술가들이 <근본들: 진리를 증언함> 같은 책자들이 발간되었다. 그리하여 이 당시 저널리스트 커티스 리 로우스가 1920년경 " 근본인 것들을 지킬 수 있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한판 붙을 작정을 하고 있던" 사람들을 가리켜 근본주의(fundamentlaism)라 부르면서 근본주의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그 뒤로 근본주의는 늘 아무 생각 없이 비판도 없이 교리만을 최고로 여기는 개신교의 한 형태를 가르키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나만 옳고 남은 모두 그르다"는 형태의 종교인들은 개신교와 다른 종교를 가리지 않고 근본주의라고 여기는데, 단순 보수 종교인을 근본주의로 부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착각이다. 20세기 초반 신학자 마틴 키티의 말대로 앞서 근본주의의 태동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으며, 구체적으로 19세기와 20세기 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나왔던 근본주의 주장은 1차 2차 세계대전으로 과학과 이성과 문명에 대한 긍정적이던 모더니즘의 몰락과 더불어 신학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이 나란히 퇴장했고, 자유주의의 퇴조를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여긴 착각한 근본주의자들은 더더욱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 남부에서 계속 세력을 확장했고 나중에는 국수주의반공주의까지 장착한 기독교 정치세력인 기독교 우파로까지 발전했다. 사실 극초기에는 윌리엄 J. 브라이언의 사례처럼 신앙적으로만 근본주의였을 뿐, 세속 정치에 관해서는 되려 리버럴적 관점을 견지한 인물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구성이 강화되고 세속적으로까지 보수 우파를 편드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대체로 극단적으로 성경은 모두 "문자 그대로" 진실이며 일점 일획도 틀린 것이 없다고 보며,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설을 믿고, 각종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경향을 보인다. 정통주의와 신정통주의 또한 창조설을 지지하고 진화론을 배격하지만, 성경에 인간의 영향이 들어가 성서를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근본주의자들은 동성애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성향을 보인다. 정통주의자들과 신정통주의자들도 동성애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는 건 마찬가지이긴 하다. 신관은 대체로 자비 없는 진노의 하나님을 강조하여, 조금만 자연재해나 사건사고가 터져도 하나님의 응징이라고 본다.[15] 근본주의가 아닌, 일반적 정통주의에서는 자연재해를 비롯한 재앙을 함부로 하나님의 응징이라 말하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라고 가르친다.

다만 근본주의에 대한 기준이 애매한지라 일각에서는 조금이라도 보수적인 교리를 내세우는 교단이나 교인들을 근본주의로 몰아세우고 구한 말 한국에 온 외국인 개신교 선교사가 죄다 근본주의자였다고 주장하지만, 앞서 근본주의는 구한말이 아니라 1920년대에 발호하기 시작하여 1940년대부터 폭증한 걸로 본다.[16] 구한 말 개신교 선교사들도 반개신교 커뮤니티나 리그베다 위키 등에서 묘사한 것과 달리 근본주의자들은 아니었다. 한국에 온 외국인 개신교 선교사들은 한국에 철저히 동화되고 한국 민족의 고통에 동감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이들에게 신학을 배우고 제자가 된 목사들 중에는 박형룡처럼 정통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에 자리잡은 사람도 분명 있었지만, 보다 유연한 신학을 견지했던 사람들도 많았으므로 한국의 초기 개신교 목사 / 신학자들이 모두 근본주의자였다고만 볼 수 없다.

이를 보면 근본주의와 보수주의를 동의어로 보는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의 개신교가 보수주의와 근본주의의 영향을 함께 받은 건 사실이나 이 역시 1930년대부터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등에 의해 노골화된 것이지, 구한 말부터 개신교가 근본주의적인 성향을 띄었다고 보기는 힘들며[17] 보수주의는 성경을 위에 두긴 해도 각종 교리문답이나 신앙고백서를 같이 중시하므로, 성경 외에는 다 배척해야 한다고 말하는 근본주의와는 매우 다르다. 그래서 성경침례교의 사례처럼 침례회 쪽이 근본주의로 경도되기 쉽고, 반대로 교리나 인습적 전통을 중시하는 루터회성공회는 보수주의까지는 가도 근본주의로는 가지 않는 것이다.

자유주의나 근본주의는 반대 진영에서 명명된 것이고 당시 자유주의자나 근본주의자들이나 정통주의자들이나 신정통주의자들이나 서로가 자신들을 진정한 복음주의자로 자처했으며 이 때문에 미국 현지에선 근본주의자들이 복음주의 용어를 쓰는것에 거부감을 느껴서 1960년대부터는 근본주의자들과 분리하여 복음주의를 내세우는 입장에서는 신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물론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신복음주의자들과 분명히 다르며 신복음주의에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가끔 아미시몰몬교도 근본주의가 아니냐고 하는데, 이들의 교리는 일반적인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등의 교리와 완전히 다른 점도 상당하기 때문에 근본주의라 볼 수 없다. 또한 인터넷에서는 과거의 나무위키 서술을 포함해서 신사도 운동이나 통성기도 등도 근본주의에서 유래한 것으로 잘못 서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근본주의가 아니라 오순절주의에서 파생된 은사주의라 부르는 것이며 한국에서 강경 보수 교단에 속했거나 대놓고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교회들은 오히려 신사도운동으로 대표되는 은사주의적 요소를 철저하게 배척한다.[18]

근본주의 신학은 이성을 완전히 버렸기에 신학적 성과를 얻을 수 없어 정통주의 신학에 크게 밀려버렸기에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근본주의 교단들을 찾기 힘들며, 나오는 사례들은 진짜 근본주의라기보다는 정통주의와 오순절 운동 등의 영향을 받은 강성 복음주의에 더 가깝다. 심지어 스스로 근본주의를 자처하는 경우에도 알고보니 강성 정통주의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 단순히 동성애와 진화론을 배척하고 과격한 행동을 보인다 해서 근본주의라 보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외국도 마찬가지라, 제3세계권 등에서 성장세라는 개신교 교회들은 신복음주의나 오순절 계통이지 완전한 근본주의는 아니다. 실제로 남미 오순절주의는 해방신학을 지지했던 하층민들이 대거 옮겨가는 식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일부 사회 문제(경제적 문제)에 관해서는 진보적이다.

2.2.3. 정교회[편집]

정교회 근본주의는 사장적 측면이나 지정학적 관점에서 일종의 민족주의 내지는 문화적 국수주의 성향을 띠고 있다. 특히 현대 러시아에서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은 반서구주의, 반 모더니즘적 이데올로기를 주창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조의 바탕에는 신성한 러시아 혹은 모스크바 제3의 로마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개중에는 현재의 국가 체제에 불만족하고 옛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추구하는 분위기도 있다.

2.3. 이슬람[편집]

이슬람 근본주의는 15세기까지 기독교 문명보다 더 잘 살던 이슬람 문명이 계속 기울면서 이들도 기독교 문명의 산물인 입헌정치,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를 수입해서 부흥하려 했으나 결과가 영 좋지 않다. 그래서 20세기에 들어서자, 이런 와중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 본연에 충실하라, 샤리아가 아닌 모든 외세의 이념은 악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시작했다. 이를 풀려는 의무가 바로 지하드[19]다. 쿠란 자체가 시대에 뒤쳐지지 말라고 하라는 후대의 해석에 따름을 생각하면 굉장한 모순이다. 오히려 역주행 이슬람 근본주의의 설명은 이슬람 근본주의 항목 참고.

이슬람 근본주의는 교리적 근본주의와 공격적인 극단주의가 둘 다 짬뽕된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명확히 분리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다른 종파에 비해 문제가 되는 그 빈도가 굉장히 높다. 물론 꼴통들 하는 짓거리는 어느 종교, 어느 사회에도 있지만 이쪽은 워낙 스케일이 범지구적이고, 사회 경제적 저개발, 정치적 권위주의와 깊게 맺혀 있으며, 열강들도 입으로는 테러와의 전쟁 운운하지 필요에 따라선 수니파는 사우디, 시아파는 이란을 통해 얼마든지 야합하며 세력을 뿌려댈 수 있음으로 21세기 작금에선 전 지구적 골치로 자리잡았다. 물론 이게 얼마나 이슬람교 본질적인 폭력성, 억압성의 발현이냐, 아니면 한정적인 작금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의해 증폭된, 본질이 아닌 근대적 비극이냐는 끊임없는 이슬람 혐오주의자와 다원주의자간의 논쟁 여부이다.

2.4. 불교[편집]

불교는 이미 교리나 일화에서부터 드러나듯, 비교적으로 타 종교나 사상에 대해 온건하다는 평이다. 이는 모든 갈등과 싸움 또한 집착과 갈애의 결과물로 보는 불교의 특성에 기인하는데, 집착과 갈애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석가모니의 핵심 가르침(지혜)과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자연스레 얻어지는 바른 행위(자비)가 불가사상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임을 생각해 볼 때,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에게 총질을 한다는 것은 불자들에게 있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가사상은 근본주의에 근접할수록 흔히 보이는 결벽증에 의한 대립과 불화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야기하지 않으려는 성격이 더 두드러지는 특이한 양상을 보일 것 같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향성이 옳았을 때의 얘기고, 지역의 토속종교 및 문화와 쉽게 융합하는 특유의 친화력 때문에 오히려 민족성을 강하게 띄므로, 이런 방향을 채택한 불교는 매우 강력한 배타성과 광적 공격성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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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물은 '아신 위라투'. 미얀마승려로, 이슬람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보여, 테러마저 불사하는 위험한 인물이다. [20]이성현의 말씀이야 어떻든 결국 어디에나 못난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이는 불교도 마찬가지다. 태국에서 또한 비슷한 양상의 이슬람·불교간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의해 합병 당한 티베트의 경우 또한,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독립운동 초창기에는 상당히 거친 모습을 보였다.

근본주의를 논하기도 전에 이미 불교가 생활의 전반과 동일시되는 티베트인들을 생각해볼 때, 불교를 탄압하고 수백수천의 사찰을 불태운 중국 공산당은 나쁜 놈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달라이 라마가 비폭력노선을 지향하면서 폭력저항은 힘을 많이 잃었다. 티베트인들에게 달라이 라마는 그냥 '부처' 그 자체다. 부처님이 폭력을 쓰지 말라 했으니 그걸 어떤 티베트인이 거역할까? 이 때문에 티베트 지역은 가까스로 미얀마태국의 꼴이 나지 않게 되었다. 만일 달라이 라마가 무장독립운동을 지지했다면, 아니, 묵과하고 넘어가기만 했어도, 지금쯤 티베트 지역의 자살폭탄 테러는 이슬람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이러한 평화노선이 과연 티베트에 좋게 작용했는가는... 글쎄... 그건 따로 생각해 볼 문제.[21]

아무튼 더 이상 폭력적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수 없게 된 티베트인들은 현재 소신공양이라는 걸 하는데, 쉽게 말해 분신자살이다.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것. 물론 독립운동인 만큼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해 과연 이것이 불교의 근본주의와 연관이 되는가에 있어 논란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한때 제정일치 종교국가였던 티베트임을 감안해 볼 때 이러한 독립운동 또한 일부나마 '극단적 근본주의'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을 쉬이 부정하기는 힘들다.

한편, 소신공양은 한국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4대강 정비 사업에 반발해 소신공양한 문수스님이라든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며 소신공양한 정원스님 등이 있다.

소신공양 자체가 아닌 자신의 뜻에 더 신경써달라고 한 고인의 유언에 따라 관련 사진자료는 첨부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교계의 모습에 대하여 변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소신공양이라는 것은 보통 정치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데, 이처럼 불교가 극단적 행각을 벌일 때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다른 외부적 요인과의 결합이 관찰된다. 사실 이건 생각해 보면 근본주의가 아니다. 차라리 '극단주의'라고 볼 순 있을지 몰라도, 순수하게 근본주의라 하기엔 '너무 오염된 사상'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그자들은 근본주의가 아니라 외부요인과 영합한 극단주의'라고 주장한다면, 같은 이치로 그리스도교나 이슬람의 근본주의 역시 '외부사상과 영합한 극단주의'라는 옹호가 가능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리스도교든 이슬람교든 외부에게 욕을 먹는 모습에 관하여 "그러한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교/이슬람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변명은 매우 흔하다.

자결은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불교 교리에서 옳지 못한 행동으로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항상 모든 극단을 지양하고 '중도(中道)'를 따를 것을 가르치는데, 불교 근본주의자가 가장 극단적인 선택이라 여겨지는 자결을 택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물론 그 목적과 내용에 따라 소신공양이 매우 거룩한 행위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앞서 말했듯 정치적이거나 기타 이념적인 측면에서의 얘기지 불교의 원리주의적 해석에서는 분명 잘못된 행위다.

이하 서술내용은 한국불교, 특히 조계종에 한하여 작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최대 불교종단인 조계종도 기본 이념은 불교 근본주의에 기초를 둔다. 실제로 불교정화운동이란 이름으로 한창 근본주의를 내세울 때의 조계종은 불교의 발전과 비불요소철폐라는 명목으로 나이에 상관없이 신도들은 무조건 승려에게 존칭을 쓰도록 규정하고, 한국 불교 특유의 발자취에 해당하는 삼성각, 산신각도 철거하며 불사라는 이름으로 자연에 손상이 큰 확대 재건축도 서슴치 않았고, 절에서 하는 천도재와 49재 등도 비불적 성격이 크다며 대폭 단순화하고 축소했다.[22] 서울 조계사는 명색이 조계종의 중심사찰이라는 점 때문인지 이때 간략화한 사찰의례를 계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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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佛法)에 대처승(帶妻僧)없다."
당시 일본불교의 잔재라 여겨진 대처승(혼인한 승려)에 반발하여 '불교정화운동'을 벌이는 모습

근본주의가 절정에 이르던 시절에는 불자보감(불자독송집)에 토속신 전각에 참배하지 말라고 적거나,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을 불교의 입장을 강조하는 쪽[23]으로만 설명도 하였으나 다시 줄어든 지금은 불자보감에도 딱히 참배 말라는 말은 없고,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 부분도 보다 현실적인 내용[24]으로 바뀌었으며, 불교정화운동을 진행했던 조계종은 견원지간인 태고종승려를 초청해서 사라진 전통 재법을 다시 진행도 했다.[25] 한국 불교계의 어두운 흔적.

그러나 그 반작용으로 각종 사고와 신도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점차 사그라들었고, 지금은 신도들의 별 저항이 없는 대규모 절 개축불사절 확장공사만 하는 정도. 이것도 문화재로 지정한 사찰의 무단 개보수로 학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부른다.[27]

승려에 대한 존대 문제는 승려들의 자질 문제와 맞물려 여전히 문제다. 특히 2012년 조계종 승려들의 흡연/도박 행위가 언론을 타면서, 그 사이 한국불교계 내부에서 쉬쉬하던 승려들의 자질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났다. 2015년에는 승려들의 성보 도둑질 의혹사건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현재 성보 도둑질은 허위고 모 불교 언론사의 허위기사라는 게 밝혀졌지만 과거 성보 분실은 사실이며, 이외 대처승 문제나 비리 문제 등과 관련해 조계종과 진보 성향 불교 언론들의 충돌이 심해지는 중이다.

사실 불교개혁 문제는 이미 구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불교계 내부에서 나오던 문제였다. 당시 한국 불교계는 기존의 구습에서 벗어나는 한편, 일본 사회에서 대중화한 일본불교의 형태를 보고 한국불교 역시 일본불교처럼 대중화하여 불교의 위상을 높이자는 주장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대처승 문제가 나와 타락한 승려들의 논의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으나, 이는 만해 한용운 같은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한 스님이나 불교계 인사들도 불교의 대중화의 일부로 대처승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었지 단순히 타락한 승려들의 주장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당시의 개혁주의자들이 한국 불교 내 토속신앙 관련 건물/문화의 철폐, 승려가 양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는 것 등 각종 개혁을 외친 까닭은 근본주의를 내세워 불교의 배를 불리자는 게 아니라, 개혁과 대중화를 거쳐 한국 불교를 건설적으로 발전시키자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현재는 불교 교단과 구성원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많이 변질한 감이 있다.

또한, 근래 남방불교[28]가 국내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것이 근본주의와 결합하여, 일각에서 기존의 대승불교를 전면 부정하고 초기불교[29]로의 회귀를 강요하며, 또는 아함경이나 이른바 부처님의 말씀을 담았다는 <빠알리 니까야>[30] 등 "초기불교만이 진짜 불교의 가르침이니 이것만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근본주의 불교라는 것은 그저 서구 기독교 신학 방법론의 영향을 받은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참조 링크. 데바닷타의 종단이 왜 사라졌나도 모르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은, 교단 내부에서 비불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과, 외부에 나가서까지 타 집단에 시비를 거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로 구분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근본주의가 위협이 되는 것은 후자와 같이 그 사상이나 이념이 다른 외부사상을 폭력적으로 핍박하기 때문이지, 전자에서처럼 스스로 자정작용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행위 자체는 결코 욕먹을 짓이 아니다.

단지 불교가 지금껏 여러 비불적 민속신앙을 받아줬다고 해서 앞으로도 반드시 받아줘야 한다고 말한다면, (기복신앙을 지양하는) 불자들에게 있어 이는 호이가 계속되면 그게 둘리인줄 알아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밖에. 쓸데없는 반발만 일으킬 뿐이다. 즉, 극단주의적 근본주의는 비난받아야 마땅할지언정, 비불요소 제거 등, 하나의 종교로서 그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 자체에 태클을 거는 건 불교 입장에서 억울하기 짝이 없다는 것.

다에쉬처럼 타종교인을 참수하는 것도 아니고, 산신각 방문객을 매달아 화형시키는 것도 아닌데 겨우 잘못된 기복신앙좀 없애보려 하는 것까지 '극단적 근본주의'라고 부르는 건 분명한 이중잣대다. 아마도 불교가 토속화된 역사가 길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 테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중잣대가 맞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부분으로 한국 불교의 정체성 논란이 있다.

한국불교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원효대사의 '화쟁'에서 기인한 통불교성격을 갖는다. 통불교라 함은 그 의미 자체가 서로 다른 관점과 쟁점을 모두 화해시켜 통합한다는 것을 뜻하므로 정체성 논란이 있는 것 자체가 황당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대한불교조계종은 공식적으로는 간화선 수행을 하는 남종선을 정통 불교 수행법으로 보며, 중국 남종선 중 임제종파의 법맥을 잇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게다가 진각종[31]이나 미륵종[32]같은 일부 종단을 제외하면 태고종을 비롯한 다른 한국 불교 종단들 또한 상당수 선종에 속한다.

한국 불교의 본질이 이럴진데 현대불교가 대중 포교를 중시하면서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간화선보다 염불선이 일반화되질 않나, 승려들의 간화선 수행 축소되고 [33], 불교학이 발전함에 따라 선불교의 정체성 자체가 도전받는다든가[34], 남방불교 수행법이 경쟁적으로 유입되는 등 여러가지 작고 큰 문제들이 선종의 존립 자체에 큰 위기를 안겨 주고 있다.

남방불교 수행의 경우, 기존에 소승이라 폄하되면서 외면받기 일쑤였으나 실질적으로 초기불교의 모습이 더 살아있다는 장점이 있어 불교 근본주의 운동이 거세짐에 따라 다시 각광받게 되었다. 특히 간화선보다 일반인의 접근이 쉬운 위빠사나 수행이 들어오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포교당/대중선원에서 간화선보다 염불선과 위빠사나를 중시하는 등 갖은 논쟁[35]이 일어나고 있다.

현대에 들어 화자되는 극단적 근본주의 불교는 이러한 선불교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여과 없이 남방불교를 대체재로 삼는 양상을 보인다. 즉, 근본주의로 회귀하면서 한국불교에 깃들어 있는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맛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조계종을 넘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선방에서조차 이미 승려들의 40%가 전통적인 간화선을 하지 않고 다른 수행방법을 선택하는 등, 간화선이 아예 사라지게 생겼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36]

윗물이 이러니, 벌써 이로 인한 혼란이 일반 신도층까지 퍼져 아예 조계종에서 수행법에 대한 혼란과 논쟁을 정리한 책을 교단에서 펴내기까지 했는데도 불구, 쉽게 혼돈의 상태가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사실 생각해보면 쉽게 넘길 문제도 아니다. (대승비불설 항목 참고.)

이에 조계종에서도 2013년 간경과 염불 수행을 안거로 인정하면서 실상사에서 간경안거를 시작하고 봉선사에 염불원을 설립하였으며[37], 염불만인회를 꾸준히 개최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기사 연도에 나오듯이 화두선 외의 수행 인정에 상당히 늦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마저도 조실이나 방장, 선원장 자격 기준이 되는 수선안거로는 인정되지 않아 여전히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청화스님이 조계종 원로 대접을 그나마 받은 게 신기할 지경이다[38] 더군다나 염불과 간경을 안거로 인정한 후에도 후발조치가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여기에 조계종의 고승 송담선사가 탈종을 선언하면서, #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조계종 내부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2위인 태고종 역시 교단 지도부의 충돌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

2.5. 힌두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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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S(민족의용단)의 집회 모습.

힌두교 근본주의는 '힌두 민족주의'(또는 '힌두 트바')라고도 많이 불리는데,이들은 인도에서 힌두교가 아닌 이슬람기독교에 굉장히 배타적이다. 현재는 그 세력이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과거에 반해 점점 더 부상한다. 이들은 인도의 국가 정체성이나 인권을 중시하는 서구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스트를 포괄하는 힌두교의 결집을 추구하기 위해서 과거였다면 생각도 못할 하위 카스트와 상위 카스트들이 모여 함께 식사도 하고 하위 카스트 우대 정책도 그대로 지킬 정도. 단 이들은 언제까지나 힌두교 이념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므로 하위 카스트를 차별하는 태도나 하급 카스트 및 달리트들에 대한 폭력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우대 정책을 유지하는건 국민들의 눈치를 봐서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인도에서 세속주의 성향인 국민회의당과 함께 가장 큰 양대 정당인 인도인민당(BJP)이 힌두교 근본주의 성향이 심한데, 이들은 이슬람과 기독교를 배척하고 위협하는 일종의 종교 민병대인 RSS를 하부조직으로 둔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이슬람, 그리고 자유운동가들 및 타종교인들과 극심한 종교 갈등을 일으켜 왔다. 농담이 아니고 이들이 하는 짓을 보면 정말 인도판 황금새벽당, 아니 그 이상이다.인도 힌두교 극우주의자들의 횡포

심지어 이들은 역사도 가위질하려고 든다. 대표적인 예가 이슬람을 믿은 무굴 제국은 인도 역사가 아니다!하는 식. 무굴제국뿐만 아니라 델리제국 등 이슬람 인도국가 및 비힌두교 나라들을 인도사가 아니라며 전부 부정한다. 마이클 우드가 쓴 인도이야기라는 책에 실제로 나오는 내용이라 흠좀무.

3. 관련 문서[편집]

[1] 이상의 내용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Altemeyer, 2003; Nelson & Milburn, 1999; Saucier & Cawman, 2004; Laythe, Finkel, & Kirkpatrick, 2001; Fisher, Derison, Polley, Cadman, & Johnston, 1994; Rothschild, Abdollahi, & Pyszczynski, 2009; Friedman & Rholes, 2007; Vess, Arndt, Cox, Routledge, & Goldenberg, 2009.[2] 다만, 기독교 근본주의는 이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특성상 신학적 성과를 잘 올릴 수 없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3] 무신론자들은 무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종교 비평을 위한 종교 공부를 많이 하는 특성이 있다.[4] 방종한 무임승차자나 규범 위반자에 대한 처벌 의지는 보수주의자들의 심리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Skitka(1992a; 1992b) 등 참고.[5] e.g. Blogowska & Saroglou, 2011; 2012.[6] 항목에 들어가서 나와 있는 성폭력 같은 문제는 외부에게 피해주지 않으니 근본주의적 민폐와는 다르다는 현대 보편 인권의 개념을 아예 물말아 먹는 신박한 반론도 가끔은 있는 모양이다[7] 물론 근본주의 종파도 존재하지만 국내에서는 정통주의, 신정통주의 교단에 비해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8] 사실 위에 나온대로 바리사이는 평신도 신학 운동이었기 때문에, 그럴 권력도 없었다[9] 출처: E. P. Sanders, The Historical Character of Jesus, pp. 44-47, 213-219[10] 하지만 경전 외 전통을 일체 인정 안 하므로 오히려 다른 유대인들보다 편한 점도 있는데, 일례로 고기와 우유를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11] 케투빔은 시가(詩歌)서, 네비임은 예언서이다. 즉 개신교에서 말하는 구약성경 39권 배치가 유대교에서는 좀 다르게 나타나며, 히브리어로는 각각 첫 글자를 따서 타나크(Tanakh)라고 부른다.[12] 그렇지만 현대 가톨릭도 구원의 제1수단은 가톨릭교회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현대 가톨릭은 가톨릭이 구원의 최선의 수단이나 개신교에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반면, 가톨릭 근본주의에서는 개신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잘라 본다. 전통 가톨릭 내에서도 강경파('마리아의 군대' 등)는 개신교를 아예 '사탄이 거룩한 교회(가톨릭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만든 이단'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13] 『기독교의 역사』(티모시 존스)[14] 그러나 워필드를 근본주의자로 본다면 심히 곤란하다. 워필드가 주장한 성서무오설은 인간의 영향을 받았다고 견지하는 조심스러운 성서무오설이지 나무위키가 성서무오설이라고 부르는 극단적인 성서무오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한 개혁주의자 였다. 그저 용어의 시초로 생각하면 편하다.[15] 실제로도 전쟁과 자연재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정학적 조건은 종교 근본주의가 퍼지기 쉬운 토양을 제공해 준다.[16] 알리스터 맥그래스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에 대하여>[17] 사실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 보수 편향성에는 박형룡 목사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보수적 편향성이지, 박형룡 목사의 영향을 받은 보수 교단들이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본다면 심히 곤란하다.[18] CCM이 신사도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현대적인 찬송가이기에 주류 개신교가 CCM을 배척한다고 본다면 심히 곤란하다. 통성기도 또한 예배 시간에 진행하는 경우가 있으나 방언을 비롯한 신비주의적 태도를 굉장히 경계한다.[19] 물론, 십자군 전쟁 때의 그 지하드와는 좀 다름[20] 이 사람은 이디 아민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바벳 슈뢰더 감독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21] 그래도 비폭력 노선 덕택에 티베트 독립 운동이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지지를 확보한 것은 사실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행한 비폭력주의 운동 덕택에 영국 제국주의의 잔학함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면서 인도의 독립 운동이 대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반대로 체첸 독립운동가들이 폭력 노선을 고수하다가 무고한 민간인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놈들로 찍히고 지지를 잃고 말았으니, 폭력을 엄금한 달라이 라마의 정책은 굉장히 현명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무장독립운동을 하다가 와하비즘 뽕맞고 맛탱이가 가버린 체첸 독립운동가들의 경우를 보면, 폭력주의 노선을 채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 수 있다. 아직도 티베트 불교가 국교나 다를 바 없는 티베트가 무장투쟁을 벌였다면 불교버전 다에쉬가 나오고도 남았을 것이다.[22] 이걸 세게 밀어붙인 승려 중 하나가 유명한 성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로 유명한 그 스님 맞다.[23] "보통 불교가 이만큼 통이 크다"는 식으로 우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불교가 하면 대인배, 기독교가 하면 기복신앙 지금도 조계종 청년회 홈페이지 등 몇몇은 이렇게 설명하는 일이 은근히 많다.[24] 대중화를 위한 민간신앙의 수용이나, 양자간의 평화로운 결합 등으로 설명한다. 물론 불교가 주체이기에 불교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 자체는 그대로다.[25] 구미래 저,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참조. 내용을 살펴보면 "현실적인 신도들의 바람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는 공통점이다.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절에서 여는 각종 법회/재가 절의 재정에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지금도 노보살/노거사[26]들이 절에 칠성불공, 산신불공 등의 이름으로 바치는 각종 재화(돈이나 등)가 많다.[26] 불교에서 여성 평신도는 '보살', 남성 평신도는 '거사'라 한다.[27] 엄연히 문화재로 지정한 사찰의 내부구조를 다르게 뜯어고쳐 놓는다던가, 비닐장판과 전기/온수 난방을 목조건물에 넣으면서 흰개미를 어느 만큼 줄이던 재래 구들장이 없어지고 습기가 차 흰개미가 늘어난다던가. 후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도 전자는 못 변명할 문화재 파괴 행위다.[28] 상좌부 불교, 소승불교[29] 실제로는 기존의 남방불교와도 다른 극단주의[30] 물론 이것이 진본인지 확증할 수 없어 논란이 많다. 대다수 학자들은 이 불경의 일부분은 아함경 등 타 불경과의 겹치는 내용 및 논지의 일관성 등으로 볼 때, 부파불교 이전 수행 공동체의 가르침이리라고 본다. 따라서 일부 부처의 진설을 포함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확증이 어렵다.[31] 밀교 교단이다. 진선여자중학교, 진선여자고등학교, 심인중학교, 심인고등학교, 위덕대학교 등의 불교계 학교들도 운영하고 있다.[32] 본래 증산도 계열의 무을교(戊乙敎)였으나 1964년부터 대한불교미륵종으로 개칭.(참조사이트.)[33]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30|[34] 선불교 사상의 근본이 되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은 위경이다. 유명한 염화시중의 미소도 이 경전에 실린 것이다.[35] 링크 모음:@@@###[36] 논쟁이 한창 불거지기 시작할 무렵 한국을 방문한 미얀마의 고승 파욱 스님은, 상좌부불교의 자존심을 드러내며 간화선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37] 기사는 2014년이지만 2013년 설립이 맞다.[38] 청화 스님 문중은 유일하게 염불을 주력 수행으로 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