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세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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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serrat

공식명칭

몬트세랫
(영어: Montserrat)

면적(㎢)

102

인구

5,138명 (2015년)

수도

브라데스 (Brades)[1]

시차

UTC-4

화폐단위

동카리브 달러 (XCD)

정치체제

입헌 군주제, 의회가 존재하는 속령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총독

엘리자베스 캐리

수상

도날드슨 로미오

책임장관

제임스 더드리지 MP

공용어

영어

GDP

약 5천9백만$ (2013)

1인당 GDP

명목 11,565$ (2013)


1. 개요2. 역사
2.1. 화산 폭발
3. 지방 행정4. 지리5. 정치6. 경제7. 교육8. 교통9. 주민10. 스포츠11. 전원 규격12. 트리비아

1. 개요[편집]

몬트세랫(Montserrat)은 카리브 해의 소앤틸리스 제도에 있는 화산섬으로, 영국의 해외 영토이다. 넓이는 102㎢로,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보다 약간 작으며 더블린과 비슷한 정도이고, 인구는 5000명을 조금 넘기는, 대한민국의 면 수준의 인구이다. 생활지의 80%가 해수면 기준으로 915m 높이인 수프리에르 힐스 화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이며 통화는 소앤틸리스 제도의 지역에 공통의 동 카리브 달러이다. 수프리에르 힐스(Soufrière Hills, 915m) 가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수도는 섬의 남서부에 있는 플리머스이다. 하지만 1995년부터 1997년에 걸쳐 발생한 화산 폭발로 수도를 변경하여 현재는 브라데스를 임시수도로 하고 있다.

2. 역사[편집]

1493년 11월 3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두 번째 항해 때 발견하고 스페인 의 몬세라트 수도원을 기념하여 산타 마리아 데 몬토세라테로 명명했다. 당초 스페인은 정착하지 않고, 대신 영국과 프랑스의 관심이 증가했다. 1625년 찰스 1세는 식민지 개척을 인정하여 영국 특허장을 주었다.

1631년 박해를 받고 있던 아일랜드 천주교인들이 몬세라트와 안티구아에 강제로 이주하게 된다. 1632년 세인트 키츠에서 온 영국인 개신교 이주민들에 의해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1649년 올리버 크롬웰이 크롬웰파 아일랜드 점령 기간동안 특히 드로이다 공성전에서 아일랜드에서 승리 한 후, 아일랜드의 정치범은 이 곳에 이송되었다. 1655년 크롬웰이 섬에 내왕하였으며 환대를 받았다.

1768년 3월 17일 농장의 흑인 노예가 영국인 주인에게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로 끝났다. 1782년 미국 독립 전쟁에서 프랑스가 점령하였다. 1782년 파리 조약으로 영국에 반환된다. 1958년 서인도 연방의 한 주가 되었다. 1962년 다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89년 9월 17일 허리케인 휴고의 직격탄을 받았다. 최대 풍속은 60m/s 이상에서 섬에 도달하면서 섬의 90% 이상 피해를 주었다. 이 영향으로 비틀즈의 프로듀서로 알려진 조지 마틴이 소유하고 있던 레코딩 스튜디오 에어 스튜디오 몬트세랫이 폐쇄에 몰리는 바람에 다른 관광 산업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1995년 7월 18일 수프리에르 힐스(Soufrière Hills)의 분화로 인구의 3분의 2가 해외로 피난하였다. 영국은 구제를 위해 군함을 파견하였다.

2.1. 화산 폭발[편집]

몬트세랫은 지각의 섭입대 바로 위에 위치해있는데 북대서양 지각판이 서쪽으로, 카리브 지각판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마찰열과 압력으로 인해 마그마가 생성되어 소앤틸레스 열도가 생성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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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18일, 370년간 조용하던 화산에서 굉음이 들렸고, 이러한 굉음이 계속되자 과학자들이 찾아와 플리머스에 임시 관측소를 설치했다. 데이터는 24시간 내내 전송되어 4개의 장치에 기록되었다. 산에서 증기가 분출되면서 최초의 폭발이 일어나더니 2달후 화산재가 2km까지 치솟았다. 섬의 북서부는 화산재로 덮이고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화산재가 그쳤다.

영국군을 동원해 산비탈의 주민 600여명을 8km 떨어진 임시 구호소에 이주시켰으나 개발중인 곳이어서 교회에 40~50명, 학교에도 수십명이 들어서는등 살기에는 부적절한 곳이었다. 이후 남부의 경제기반 80%는 섬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출입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11월에 다시 화산 꼭대기에 돌과 재가 쌓여 용암원정구를 만들고 점착성 용암이 쌓였다. 화산쇄설류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다시 북부로 대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남부는 금지구역이 되었다. 하지만 도로통제가 허술해 주민들은 그냥 드나드는 상황이었다. 이후 화산에서 마그마가 분출되면서 폭발이 다시 일어나 영국 지질조사국에서 조사팀을 보냈다. 용암원정구[2]가 뾰족하게 돌출되어 과학자들은 화산 비탈면에 경사계를 설치해 화산의 크기와 팽창변화를 관찰했고 중반북부지역에는 영구 관측소를 건설했다. 이후 조사과정에서 화산활동주기가 2배나 빨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7년 6월 25일 큰 지진이 발생했고, 오전 7시 긴급상황을 알리는 방송이 섬 전체에 나가고 대피를 지시했다. 12시 45분 사이렌까지 울리며 대피를 지시했고 10분후 모스키토킷에서 용암원정구가 붕괴되면서 화산이 폭발해 화산 쇄설류가 산의 비탈면을 타고 내려왔다. 화산의 폭발로 인한 열기때문에 북동쪽 3km의 해리스 마을에서 주유소가 폭발할 정도였다. 화산 쇄설류가 3번이나 발생해 2번째에서 계곡을 뒤덮었고 3번째 쇄설류는 뒤덮인 계곡을 타고 내려가며 속도가 붙어서 마을을 뒤덮었다. 150가구와 4제곱km를 파괴했고, 총 19명의 사망자를 낸뒤 1달뒤 또 폭발하면서 플리머스를 강타해 1998년 플리머스를 포기하고 수도 기능을 브라데스로 이전하였다.

결국 위 지도에서 보듯이 화산이 있는 섬 남부를 중심으로 섬의 3분의 2 가까이가 출입금지 지역이 되었다.

영국정부에서는, 이지역 주민들의 구제를 위해 지역주민들에게 1998년에는 영국 국내 거주권을 주었고, 2002년에는 영국 시민권을 주었다.

3. 지방 행정[편집]

3개의 행정 단위 (교구) 로 나누어져 있다.

  • 세인트 안토니 (Saint Anthony)

  • 세인트 조지 (Saint Georges)

  • 세인트 피터 (Saint Peter)


그러나 화산폭발로 인해 취소선이 그어진 교구는 통제되었고, 세인트 피터 교구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

4. 지리[편집]

화산 산악섬으로, 카리브 판과 북아메리카 판의 충돌이 이 부근에서 일어나며, 이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화산 활동이 소앤틸리스 제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의 프리에르 힐스도 활화산으로 알려져 종종 분화를 일으켜 피해를 내고 있다. 산의 표면은 무성하고 있는 식물군과 아일랜드에서 초기 이주자를 따서, 카리브 해의 에메랄드 섬 또는 서쪽의 에메랄드라고 불리고 있다.

5. 정치[편집]

몬트세랫은 입헌군주제 하의 의회가 존재하는 속령이며, 몬트세랫의 의회는 입법 회의라고 불린다. 국가원수는 현 영국여왕이며 영국여왕이 임명한 총독이 수장이다.

입법 회의는 주민들이 직접 선거로 선출한 9명의 의원들과 재무 장관 및 법무 장관이 임명한 2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전 지역은 한 개의 선거구로 이루어져 있다.[3] 선거는 5년마다 열린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선거는 2014년 9월 11일에 있었던 선거로, 전체 유권자의 71.06%가 참여한 선거에서 새로 창당된 인민 민주 운동이 50.02%를 득표, 7석을 얻어 제1당이 되었고, 변화와 번영을 위한 운동이 35.36%를 득표, 2석을 얻어 제2당이 되었다.
이외에 독립 후보자의 동맹 (4.16%), 무소속 후보 (10.45%)가 선거에 참여했으나, 의석을 얻지 못하였다. 다음선거는 2019년에 있을 예정이다.

군사적으로는 영국이 방위를 수행하나, 의전부대인 몬트세랫군이 있다.

6. 경제[편집]

농업은 바나나 등이며 관광도 섬의 경제 유망한 산업이지만, 다른 카리브 해 섬들과 비교하면 뒤쳐진다.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섬의 경제에 큰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외에도, 이곳에 소재한 수출기업들의 골재의 판매와 배송으로 수입을 얻고있다.

7. 교육[편집]

몬트세랫에서, 5세에서 14세의 아이들은 의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후 17세까지의 교육은 자신의 선택으로 받을 수 있다.

2003년에는, 몬트세랫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과학과 미술, 기술대학이 개교했다.

8. 교통[편집]

산악 섬이므로 많은 도로는 해안선을 따라서 있다. 동부에 있던 W.H. 브램블 공항(W.H. Bramble Airport)은 1997년의 분화로 파괴되었으며 2005년에 섬의 북부에 제랄즈 공항(Gerald's Airport, 2008년 존 A 오스본 공항으로 개칭) 이 완성되었다.

9. 주민[편집]

아프리카계 흑인이 96%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혼혈 물라토와 백인 등도 소수이지만 있다. 종교는 영국 성공회가 38%, 감리회가 28%이며 그 뒤로는 천주교를 믿고 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나기 전인, 1995년경에는 인구가 1만 여명에 달했지만, 화산 폭발 이후 사람들이 대피를 하며 인구는 점점 줄어들어 2002년경에는 4,400명으로 최저치에 달하게 되는데, 하지만 그 뒤로는 대피했던 주민들의 복귀를 비롯한 인구 증가를 지속해 2015년 10월 4일 기준으로 5,138명으로 증가했다.
이중 남성은 2,726명으로, 전체 인구의 53.1%를 차지하며, 여성은 2,412명으로, 전체 인구의 46.9%를 차지했다. 만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전체에서 26.9%, 15세에서 64세의 노동가능인구는 66.6%, 65세 이상의 노인인구는 6.5%이다.

2015년 1월 1일부터 10월 4일까지 몬트세랫에서는 45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27명이 죽었다.

10. 스포츠[편집]

축구분야에서는, 부탄, 아메리칸 사모아, 산마리노와 함께 FIFA랭킹 최하위권으로 유명했으나 쿡 제도,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지브롤터 등등의 신흥약자(!)들이 잇따라 출현하면서 2013년 12월 기준 187위로 올라가있는 상태. 최다 승리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를 상대로 이긴 7:0이다. 몬트세랫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고.

이외에도 크리켓서핑, 농구, 육상 등이 유명하다.

11. 전원 규격[편집]


230볼트에 60헤르츠를 쓴다
Montserrat Islands 230V 60Hz
https://www.school-for-champions.com/science/ac_world_volt_freq_list.htm#.Wo1gJq5l8-V

전원코드 규격 추가 바람

12. 트리비아[편집]

이 섬 지도를 활용해 2017 수능완성 세계지리 36쪽 5번[4]출제되었다.


[1] 법상 수도는 플리머스 (Plymouth) 지만, 화산폭발로 인해 사실상 수도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2] 점성이 높은 용암이 화구에서 밀려 올라오면서 흐르지 못하고 화구 주변에 반구 모양의 화산체를 이룬 것.[3] 화산 폭발이전인 1995년 까지는 전 섬이 7개의 선거구로 분할되어 있었으나, 화산폭발 이후 주민들이 안전지역이었던 세인트 피터 교구에 몰려살게 되면서 한개의 선거구에서 9명의 의원을 선출하게 되었다.[4] 문항코드번호는 6057-0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