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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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국민투표
3.1. 선거 진영3.2. 해당 선거의 유권자3.3. 투표 전개와 결과
3.3.1. 투표3.3.2. 예측조사3.3.3. 개표 결과
4. 직후의 영향과 이후 예상5. 반응6. 탈퇴 과정과 이슈들7. 트리비아
7.1. 입장 불분명7.2. 잔류 지지7.3. 탈퇴 지지
8. 기타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브렉시트 일러스트.png

파일:external/blog.jonolan.net/Straight-Outta-Europe.jpg
Straight Outta Europe

BRitish/BRitain + EXIT: - BREXIT. 영국이(그리고 영국령 지브롤터[1]가)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려는 데서 나온 말. 이런 종류의 신조어는 그렉시트가 원조. 단, 그리스의 경우 유로존을 탈퇴해도 유럽연합 자체를 탈퇴할 방침까진 없었다. 경제,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 내 주류 위치에 있는 국가로 평가되는 영국이 탈퇴하면 존재 의미가 크게 퇴색되는 유럽연합의 입장에선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영국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일 뿐만 아니라 유럽 문화권에서 갖는 상징성이 매우 큰 국가이고, 전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브렉시트는 EU를 넘어서서 전세계적인 이슈로 발전했다.

2. 배경[편집]

브렉시트 이유(영어)

2013년 당시 선거를 치르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몇 년 안에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특히 보수당을 중심으로 유럽 연합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불거져 나왔다. 캐머런 총리는 국민여론을 어느 정도 수용하여 영국 내 이민 억제에 나서면서 EU가 "빈곤국→선진국" 인구 유입을 적당히 조절해줄 것을 요구하게 된다. 즉 인구 이동의 자유 자체를 제한하거나, 영국에 한해 예외를 인정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중심으로 한 EU 지도부는 "영국의 탈퇴를 감수할지언정 EU 내 이동의 자유 제한만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사실상 협상은 평행선을 걷고 있었으나, 2015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형성함에 따라 캐머런 총리의 공약이던 유럽 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2017년까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었고, 2016년 6월 23일 전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되었다.

3. 국민투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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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2016) 브렉시트 주요인물 말말말

2016년 2월 19일, 유럽 각국은 영국의 EU 탈퇴를 막기 위한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주된 골자는 외국인 이주민 정책 분야에 '본국에 자녀를 두고 온 이주민에 대해 양육수당 삭감, 7년간 복지혜택 중단', 영국의 독자적인 통화·금융정책 보장 약속이다.# 전체적으로 영국의 입장을 배려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영국 내 반응은 엇갈린 상태였다. 캐머런 총리가 잔류파로 돌아서면서 국민들을 설득하였지만, 탈퇴파들 사이에선 국민투표에서 탈퇴가 압도적으로 나올 경우 EU 잔류를 원하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결국 이 합의안을 바탕으로 전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투표를 2016년 6월 23일 실시하기로 하였다. 영국 정부는 기본적으론 경제적 불안을 우려해 영국이 EU에 남는 것을 권고하는 입장이었으나, 각 장관들은 개인적으로 탈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은 찬반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으며, 같은 기관의 여론조사조차 며칠을 주기로 뒤바뀌기도 하였다. 계층별로는 영국 내 청년층과 중장년층 중 진보층의 경우 EU 잔류 쪽이 압도적이고, 반대로 노년층이나, 청년층 중 보수층은 브렉시트 찬성이 우세하였다. 또한 금융 자산이 많은 계층일수록 찬성이 우세하였다. 그리고 당시 배팅업체나 도박사들은 대체로 잔류 가능성을 70%로 봤다. 이것도 원래 78%였다가 찬성 우세여론이 나오자 조금 낮춰 수정한 것.# 이는 부동층의 영향과, 큰 변화에 대해서 일단 경계를 갖는 인간의 본성을 고려해서 나온 분석이라 한다.

현지 시간으로 6월 16일, EU 잔류를 주장하던 노동당 소속 좌파 하원 의원인 조 콕스(Jo Cox, 女) 의원이 주민과의 간담회를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가 도서관 앞에서 50대 남성에게 총을 맞고 흉기에 찔려 중태에 빠졌다가 끝내 사망했다. 테러범은 공격을 하면서 "Britain first!(영국이 먼저다!)"라고 외쳤다는 증언이 있었으나, 영문 이름이 같은 영국의 극우 정당인 영국 제일당(Britain First)은 자신들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 사건이 잔류 측에 호재가 될 것으로 많은 이들이 예상했으나 잔류파와 탈퇴파간의 의견차가 크고, 무엇보다 선동과 비방이 난무했던 선거 전 상황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투표일 하루 전까지도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오차 범위 이내의 결과가 나오는 초박빙 양상을 보였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투표함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결같이 말했다. 오늘 브렉시트 국민투표... 영국·EU '운명의 날'.

투표에서 제외된 지역이 몇군데 있는데 맨 섬채널 제도가 EU의 지역에 속하지 않아서 제외되었으며, 북아일랜드의 경우 전 지역 통합으로 개표 결과를 추산하는데, 18개 선거구에서 각자 개표 결과를 발표하기 때문에 BBC 등의 언론사에선 선거구 단위로 개표 결과를 알렸으나, 공식 발표는 모든 선거구의 개표 결과가 나온 뒤 확정되었다. 그리고 지브롤터도 투표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지브롤터는 영국의 속령들 중 유일하게 EU 관할하에 들어가 유럽의회 총선도 치루기 때문이다.

3.1. 선거 진영[편집]

정부로부터 공인받은 잔류파 대표 진영으로 'Britain Stronger in Europe(유럽과 하나되어 강력한 영국)'이 있다.

공식적인 탈퇴파 진영으로는 영국 독립당 당수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Leave.EU와 전직 런던 시장인 보수당 당원 보리스 존슨이 이끄는 Vote Leave가 있는데, 이 중 Vote Leave가 정부로부터 공인을 받았다. 영국 독립당 당원 몇몇이 Vote Leave에 끼었지만, 패라지의 Leave.EU는 이후로도 독자적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이외에도 영국 노동당 내 정통 사민주의 계열 당원들과 의원들이 중심이 된 별도의 탈퇴 지지 캠페인 또한 진행되었다. 때문에 위의 잔류파 진영에 속한 노동당 내 잔류파들과의 갈등이 노동당 내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2]

3.2. 해당 선거의 유권자[편집]

1. 영국 선거법상 의회 선거권을 가지게 되는 만 18세 이상의 성인.

2. 그레이트브리튼 섬과 부속 도서들, 지브롤터, 북아일랜드 거주자.

3. 1.과 2.의 조건을 충족하는 영국 국적자.

4. 1.과 2.의 조건을 충족하는 아일랜드 공화국 국적자.

5. 1.과 2.의 조건을 충족하는 호주, 캐나다, 인도 공화국, 말레이시아, 자메이카영연방 소속국 국적자.

이 때문에 영국에 거주하는 아일랜드몰타를 제외한 EU 시민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그리고 타 EU 국가나 외국에 거주하다 영국에 온 영국 시민들은 영국에 15년간 거주한 적이 있어야만 투표권이 있었다. 또한 지브롤터를 제외한 포클랜드버뮤다 등 해외 속령 주민들은 투표권이 없었다. 그 대신 영국에 거주하는 영연방인들이 대거 선거인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3.3. 투표 전개와 결과[편집]

3.3.1. 투표[편집]

구분

대한민국 시간 기준
(GMT+9)

영국 시간 기준
(GMT+1)

투표 시작 시간

2016-06-23 15:00

2016-06-23 07:00

투표 마감 시간

2016-06-24 06:00

2016-06-23 22:00

3.3.2. 예측조사[편집]

이번 국민투표에는 방송사가 주관하는 출구조사가 없다. 인디펜던트 기사. 그 대신 리서치 회사들의 예측조사가 투표 끝나고 곧바로 현지 시각으로 오후 10시, 한국 시각으로 오전 6시에 발표되었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총 표본 4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2%는 잔류, 48%는 탈퇴를 선택. 다른 여론조사기관 입소스모리의 조사에서는 표본 약 5000명에 잔류 54%, 탈퇴 46%. 한편,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영국독립당이 1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탈퇴가 52%로 나왔다. 이 조사들은 어디까지나 예측조사일 뿐 정식 출구조사는 아니었지만, 한 때나마 세계의 브렉시트 우려는 완화되었고 금융 시장 역시 안정된 양상을 보다.

그리고 예측조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판은 엎어진다.

3.3.3. 개표 결과[편집]


BBC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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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chef.bbci.co.uk/b3b49ae4-7c84-402a-84d3-ce0623ea4d23.jpg

(개표 전, 여론 조사에서 잔류 측의 승리가 예상되자)
영국은 미쳤다

(개표 후, 탈퇴 측의 승리가 확실시 되자)
나중에 이유!/[3]

황색언론인 《더 선》 紙의 브렉시트 관련 반응.

UK votes to LEAVE the EU
영국의 선택, "EU 탈퇴"

BBC 국민투표 관련 페이지에 적힌 문구다.

파일:denfiej9rj48jifjgimfg.png

EU 탈퇴

EU 잔류

투표율

17,410,742표(51.9%)

16,141,241표(48.1%)

72.2%

탈퇴파의 승리

탈퇴 매직 넘버가 소멸되었고, 영국은 유럽 연합을 떠나게 된다.

유럽 연합 탈퇴 표가 51.9%로 개표 종료되었고, 주요 방송사의 투표 결과로는 탈퇴로 결정되었다. 원래는 잉글랜드에서 찬반 비율이 접전으로 나오는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예측되었지만, 잉글랜드에서 예상보다 표차가 크게 나면서 결과가 뒤엎어진 것.

영국 선거위원회 위원장 역시 한국 시간 16:00(현지 시간 07:00)에 탈퇴 51.9%로 통과되었다고 선포하였다.

지역별 개표 결과

투표율

EU 탈퇴

EU 잔류

런던

69.7%

1,513,232표(40.0%)

2,263,519표(60.0%)

잉글랜드[4]

73.6%

13,674,351표(55.5%)

10,984,155표(44.5%)

웨일스

71.7%

854,572표(52.5%)

772,347표(47.5%)

스코틀랜드

67.2%

1,018,322표(38.0%)

1,661,191표(62.0%)

북아일랜드

62.7%

349,442표(44.2%)

440,707표(55.8%)

지브롤터

83.5%

823표(4.1%)

19,322표(95.9%)

지역별 결과는 위의 표와 같다.

연령별 개표 결과. 젊은층으로 갈수록 잔류에 표를, 노년층으로 갈수록 탈퇴에 힘을 실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한 시각화(출처: 가디언). 가디언지의 최종 투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번 투표는 다분히 계급/계층적 요소가 강하였다. 교육 수준, 공인 자격증의 수, 임금, 사회계층 등이 낮은 지역일수록 탈퇴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종합적으로 봤을 때 브렉시트 투표는 연령별 투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동시에 보수당의 전통적 지지층들[5]은 노동당이 공식적으로 추진하던 잔류에,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층[6]들은 많은 수의 보수당이 공식적으로 추진하던 탈퇴에 투표하며, 기존 지지정당의 공식 입장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영국 민주주의 역사에 전무후무한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7]

한편, 국민투표로 인해 브렉시트가 법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국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회를 위한 "참고 자료"라 할 수 있다. 영국 총리가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여 유럽 연합 탈퇴를 선언해야 확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 국가에서는 국민투표를 통해 표출된 국민의 의사 표현을 정치인 개인적 판단으로 무시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 한다면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 그러므로 사실상의 구속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확정되었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인식이 그저 틀렸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나아가 성문 헌법이 없는 영국에서는 정치적 관례 역시 중요한 헌법적 요소이다. 이론적으로 영국 여왕이 총리 임명권 등 중요한 정치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총선 후 의회의 협상 결과에 따르지 않고 다른 인물을 임명하는 것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봐도 그렇다.

4. 직후의 영향과 이후 예상[편집]

5. 반응[편집]

직후의 각종 반응들과 단기 충격 이후 상황은 해당 문서에 따로 정리한다.

6. 탈퇴 과정과 이슈들[편집]

전개되고 있는 구체적인 탈퇴 과정과 논란, 그리고 쟁점들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

7. 트리비아[편집]

주의: 특정 유명인의 잔/탈 의사를 서술할 때 단순히 찬/반으로 서술하면 해석에 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탈퇴 찬성, 탈퇴 반대 혹은 잔류 의사, 탈퇴 의사로 명확히 기술하여 주십시오.

7.1. 입장 불분명[편집]

  • 밴드 오아시스의 전 멤버인 가수 노엘 갤러거의 인터뷰도 화제가 되었다. 민중들을 대신해 정치를 이끌어 나가야할 정치인들의 무능력함과 책임 떠넘기기에 대한 질타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 번역본. 노엘 갤러거의 경우 브렉시트 국민 투표 기간 동안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아예 언급 자체를 피하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노엘 갤러거의 인터뷰에 앞서 오아시스의 또다른 전 멤버 앤디 벨도 트위터로 데이비드 캐머런에 대한 비판의 트윗을 짧막하게 했다. 영국 특유의 냉소적인 어조의 비판이 인상적.#


2016년 3월 9일더 선이 '여왕이 브렉시트를 지지한다'고 1면에 기사를 냈는데, 버킹엄 궁전 측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지난 63년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며 해당 기사를 독립언론윤리위에 제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여왕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국이 유럽의 일부여야만 하는 이유 3가지를 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왕이 브렉시트를 두둔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이에 영국 왕실은 "여왕은 정치 중립적이다. 여왕의 발언은 단순한 질문이다"라고 해명했다.

  • 영국의 황색 언론 중 하나인 데일리 메일은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데일리 메일의 불분명한 왕실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여왕 사후 왕위 계승 1위 후보인 찰스 필립 아서 조지는 오래 왕위에 있지 못할 것이고, 이후 2위 후보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가 왕좌에 앉을 것이 분명하며, 윌리엄은 EU 체제 내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연방 왕국을 유지하는데 그의 할머니 만큼 열성적이지 못하다."라는 소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데일리 메일은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와 영연방 복귀 없이는 자신의 사후 영연방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바탕으로, 데일리 메일은 엘리자베스 2세가 영연방을 구하기 위해 브렉시트를 지지했다는 보도를 올렸다. 다만 이건 출처가 불명확한 황색 언론의 보도이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봐야한다.]

  • 닉 클레그 전 자민당 당수의 지인의 입을 빌어 엘리자베스 2세가 영연방과 관련해 유럽 연합에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으나 이 역시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니 주의해서 봐야 한다.#

    • 2017년 6월 21일 국왕의 칙유 발표를 위해서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의 모자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유는 모자가 유럽 연합기와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간접적으로 유럽 연합을 지지한다는 뜻을 비추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 몇 년 간 본 행사에 흰색 드레스를 고수해 왔기에 이러한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 2015년 6월 24일 독일을 정식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의 연설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과 독일 수상 앙겔라 메르켈이 참석한 회담에서 여왕은 "유럽의 분열은 우리 모두에게 위험하다."라고 경고했으며, "우리 영국은 유럽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핵심층"이라며 영국과 독일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매우 가까운 외교 관계를 유지했음을 강조했다. 즉, 여왕은 직접적으로 "영국이 유럽 연합에 잔류하기를 원한다."라는 뜻을 밝힌적이 있고, 이를 고려하면 6월 21일 국왕의 칙유와 같은 중대한 국사에 유럽 연합기를 연상시키는 모자를 쓰고 나온 걸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7.2. 잔류 지지[편집]

다음은 EU 잔류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유명인들의 일부.

  •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13명도 잔류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들 중에는 힉스 입자를 예견한 피터 힉스는 물론 세포분열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세포주기를 조절하는 핵심인자를 발견한 생물학자 폴 너스가 포함되었고, 노벨상 수상자는 아니지만 스티븐 호킹 또한 EU 잔류를 주장하였다. 이들은 "영국 국민들이 EU에 지불하는 분담금이 영국 과학자들의 지원으로 돌아온다"며 브렉시트가 일어날 경우 과학자들을 위한 예산을 다시 짜야 한다고 발언. 게다가 EU 탈퇴시 타 EU국적의 과학자들과 교류 및 협력하는데도 지장이 있어서 영국 학술계의 발전이 크게 저해될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 개표날이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의 본격적인 공연 첫 날이었는데, 축제 취지와 참가자 성향상 EU 잔류 쪽 성향을 보이고 있다. 설문 결과 참가자 78%가 EU 잔류를 찍었다고. 브렉시트를 까는 시를 붙인 후 공식 트위터에다 올리기도 했으며 개별적으로도 데이먼 알반은 "민주주의가 우리를 배신했다(Democracy has failed us)"라는 발언을 공연 중 남겼고, 제임스의 기타리스트인 사울 데이비즈는 찬성파에게 대놓고 "Fuck them!"이라며 욕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후자는 방송 중 나온 말. 제러미 코빈은 원래 공연장 중 한 군데에서 연설을 할 예정이었는데 취소하였다고 한다. 본래 일부 스테이지에선 공개 토론도 한다.

  • BBC 탑기어의 전 진행자 제임스 메이제레미 클락슨은 자신들이 동의하는 것은 샌드위치 스프레드, 포드 몬데오, 영국의 EU 잔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둘이 얼마나 싸워대는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놀랄 만한 것으로, 제임스 메이 또한 이를 두고 '평소의 우리답지 않다(uncharacteristic)'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했을 정도.

7.3. 탈퇴 지지[편집]

  • 다이슨 사의 창립자이자 CEO인 제임스 다이슨 경은 영국 재계에서 가장 명망 높은 탈퇴 지지파였다. 그는 브렉시트가 영국의 온전한 독립과 자유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동시에 영국이 영연방 각국과 다시 한 번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영국 재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영연방과의 단결을 주장하는 인물이 바로 다이슨 경이기도 하다.[8]

8. 기타[편집]

  • 바로 위에서 언급되었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진짜로 대통령에 당선되어버리면서 브렉시트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따져보면 둘 다 어느 선택을 하든 별로 마뜩찮은 상황에서 설마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일반적으로 더 안 좋을 것이라 생각되던 선택을 해버리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개표 전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는 것까지 유사하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따지면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은 핵심 계층이 영국 북부 쇠락한 공업지대 계층으로, 트럼프 반란의 핵심인 러스트 벨트와 통하는 바가 많다고 한다. 두 사건이 모두 굉장히 경제적인 이슈 그 중에서도 빈부격차 및 자유무역 문제와 깊게 맞닿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한국에서는 영국이 정치적 힘을 강화하고, 트럼프 미국 대선 후보자의 지지 의견을 근거로 미영동맹을 강화하려 한다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 교황 프란치스코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한 결정은 국민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며 "이제 영국과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공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서구권에는 "지난 1992년에 인간 광우병이 창궐하던 지역들은 2016년 현재 브렉시트에 찬성한 지역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괴담이 퍼지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서구 웹상에 떠도는 짤은 그냥 똑같은 분포도를 한쪽은 컬러, 한쪽은 흑백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이라고. 광빈치 코드

  • 한편 미국의 보수언론 폭스 뉴스는 브렉시트 보도에서 영국이 UN을 탈퇴한다고 자막을 잘못 내보내 네티즌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만약 이 시나리오가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UN에서 나가게 되는 만큼 국제 정세는 정말로 개판이 되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세계적으로 UN무용론이 대두되어 다른 나라들도 하나둘씩 UN을 탈퇴해 UN이 해제되고 전후 질서가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다. 중국과의 외교 싸움에서 밀려 반강제적으로 탈퇴한 대만이나,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학살 문제로 유엔 회원국 자격을 박탈당하고 강제적으로 추방당했다가 전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실각한 후 다시 재가입한 세르비아, 이웃나라 말레이시아와의 외교 관계 악화로 자발적으로 UN을 탈퇴했다 다시 복귀했던 인도네시아 등을 제외하면 UN 창설 이래 UN에서 나간 국가는 전무하다. 그냥 오타인데 왜케 진지하게 반응하는겨?

  • 투표 두 달 전만 해도 이 문서의 길이는 그렉시트 문서보다 훨씬 짧고, 토막글보다 약간 길었다(...). 정작 '브렉시트'라는 단어의 유래가 된 그렉시트는 2016년 6월에 와서는 어디서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

  • 오바마 대통령은 브렉시트와 관련해 갑자기 달아오르고 있는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면서, 호들갑과는 달리 영국이나 유럽 연합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 의견을 밝혔다.

  • 브렉시트 문제와는 별개로 한국 언론들이 너무 영미위주의 보도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언론들의 보도 행태가 영미편향적이며 유럽 대륙주의자들의 주장을 너무 간과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브렉시트 = EU의 해체를 기정사실로 놓는다는 점이 영미 편향의 증거이며, 오히려 대륙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아니꼽던 상대가 나갔으니 오히려 더 EU가 결속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영국 내의 반유럽주의자들 못지않게 유럽 대륙 내의 반영주의자들 또한 많은 편인데, 반유럽주의자들의 동향은 자세히 보도되면서 반영주의자들의 동향은 그러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는 국제 정세를 영어권 언론에게 거의 의존하다시피 하는 한국 언론의 행태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영어 외의 다른 서양어는 영 모른다거나...

  • 위의 지적과는 별개로 영연방과 브렉시트의 관계나 브렉시트에 대한 영연방과 유럽 각국들의 반응도 몇몇 신문사의 기사를 제외하면 한국 언론에 소개되지 않거나, 아주 간단하게만 언급됐다. 당장 BBC가 국제란에서 주요 기사로 뽑아내는 기사 내용도 소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의 소양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 독일의 저명한 경제 학자가 다음 유로 탈퇴국으로 이탈리아를 지목했다. 기사(영어)

9. 관련 문서[편집]

[1] 유럽연합 회원국의 속령들은 본국과 별도로 유럽연합에 속할지 말지 다르게 정하고 있는데, 영국의 경우 속령 중에 지브롤터만이 온전하게 유럽연합의 일부이다. 다른 속령은 EU의 조약이 일부만 선택적으로 적용된다. 그래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도 영국 본토와 지브롤터에서 치러졌다.[2] 사실 유럽 공동체 가입을 주도한 것은 영국 보수당이었고, 영국 노동당 정통파들은 노동자 권익 보호와 영국 정부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 유럽 공동체 탈퇴를 숙원 사업으로 삼았다. 마거릿 대처와 토니 블레어 이후 영국 정치와 사상판이 심각하게 왜곡되며 현재와 같은 기묘한 판도가 나타나게 되었다.[3] 'SEE YOU LATER'의 말장난으로 'SEE EU LATER'라고 써 놓았다. 자매품인 'ADIEU' 도 존재한다.[4] 득표,투표율 모두 런던, 지브롤터 제외..[5] 고학력자, 고소득자, 화이트 컬러, 신자유주의자[6] 저학력자, 저소득자, 워킹 클래스, 사민주의자, 영연방인[7] 사실 브렉시트 투표 당시의 이런 현상은 대처리즘과 블레어리즘 이후 영국 노동당과 보수당의 유럽 연합에 대한 정치적 스탠스가 상당히 뒤엉킨 것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8] 다이슨 경의 개인적 성향과 더불어, 현재 연구 기지와 본사는 영국에, 생산 기지는 말레이시아에 만들어 놓은데다, 주력 시장은 아시아 각국과 호주, 북미인 다이슨 사 입장에서,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와 영연방 각국과의 양자-다자 FTA나 경제 공동체 형성은 유럽 연합 잔류보다 훨씬 더 큰 이득이 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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