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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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국민투표
3.1. 선거 진영3.2. 해당 선거의 유권자3.3. 투표 전개와 결과
3.3.1. 투표3.3.2. 예측조사3.3.3. 개표 결과
3.3.3.1. 영국인들은 브렉시트를 후회한다?
4. 브렉시트의 원인5. 직후의 영향과 이후 예상6. 반응7. 탈퇴 과정과 이슈들8. 트리비아
8.1. 입장 불분명8.2. 잔류 지지8.3. 탈퇴 지지
9. 기타10.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브렉시트 일러스트.png

파일:external/blog.jonolan.net/Straight-Outta-Europe.jpg
Straight Outta Europe

BRitish/BRitain + EXIT: - BREXIT. 영국이(그리고 영국령 지브롤터[1]가)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려는 데서 나온 말. 이런 종류의 신조어는 그렉시트가 원조. 단, 그리스의 경우 유로존을 탈퇴해도 유럽연합 자체를 탈퇴할 방침까진 없었다. 경제,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 내 주류 위치에 있는 국가로 평가되는 영국이 탈퇴하면 존재 의미가 크게 퇴색되는 유럽연합의 입장에선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영국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일 뿐만 아니라 유럽 문화권에서 갖는 상징성이 매우 큰 국가이고, 전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브렉시트는 EU를 넘어서서 전세계적인 이슈로 발전했다.

2. 배경[편집]

브렉시트 이유(영어)

2013년 당시 선거를 치르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몇 년 안에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특히 보수당을 중심으로 유럽 연합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불거져 나왔다. 캐머런 총리는 국민여론을 어느 정도 수용하여 영국 내 이민 억제에 나서면서 EU가 "빈곤국→선진국" 인구 유입을 적당히 조절해줄 것을 요구하게 된다. 즉 인구 이동의 자유 자체를 제한하거나, 영국에 한해 예외를 인정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중심으로 한 EU 지도부는 "영국의 탈퇴를 감수할지언정 EU 내 이동의 자유 제한만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사실상 협상은 평행선을 걷고 있었으나, 2015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형성함에 따라 캐머런 총리의 공약이던 유럽 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2017년까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었고, 2016년 6월 23일 전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되었다.

3. 국민투표[편집]

국민투표로 인해 브렉시트가 확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오해다. 국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회를 위한 "참고 자료"일 뿐이다. 영국 총리가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여 유럽 연합 탈퇴를 선언해야 확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 국가에서는 국민 투표를 통해 표출된 국민의 의사 표현을 정치인 개인적 판단으로 무시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한다면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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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2016) 브렉시트 주요인물 말말말

2016년 2월 19일, 유럽 각국은 영국의 EU 탈퇴를 막기 위한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주된 골자는 외국인 이주민 정책 분야에 '본국에 자녀를 두고 온 이주민에 대해 양육수당 삭감, 7년간 복지혜택 중단', 영국의 독자적인 통화·금융정책 보장 약속이다.# 전체적으로 영국의 입장을 배려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영국 내 반응은 엇갈린 상태였다. 캐머런 총리가 잔류파로 돌아서면서 국민들을 설득하였지만, 탈퇴파들 사이에선 국민투표에서 탈퇴가 압도적으로 나올 경우 EU 잔류를 원하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결국 이 합의안을 바탕으로 전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투표를 2016년 6월 23일 실시하기로 하였다. 영국 정부는 기본적으론 경제적 불안을 우려해 영국이 EU에 남는 것을 권고하는 입장이었으나, 각 장관들은 개인적으로 탈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은 찬반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으며, 같은 기관의 여론조사조차 며칠을 주기로 뒤바뀌기도 하였다. 계층별로는 영국 내 청년층과 중 좌파의 경우 EU 잔류 쪽이 압도적이고, 반대로 노인층이나 젊은 우파로 갈수록 브렉시트 찬성이 우세하였다. 대부분 브렉시트가 나온 발상이 테러범들이 EU 를 통해 유입되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 자산이 많은 계층일수록 찬성이 우세하였다. 즉, 금융자산이 적은 청년일수록 반대하고, 금융자산이 많은 노인층일수록 금융 규제가 많은 EU를 떠나므로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 배팅업체나 도박사들은 대체로 잔류 가능성을 70%로 봤다. 이것도 원래 78%였다가 찬성 우세여론이 나오자 조금 낮춰 수정한 것.# 이는 부동층의 영향과, 큰 변화에 대해서 일단 경계를 갖는 인간의 본성을 고려해서 나온 분석이라 한다.

현지 시간으로 6월 16일, EU 잔류를 주장하던 노동당 소속 좌파 하원 의원인 조 콕스(Jo Cox, 女) 의원이 주민과의 간담회를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가 도서관 앞에서 50대 남성에게 총을 맞고 흉기에 찔려 중태에 빠졌다가 끝내 사망했다. 테러범은 공격을 하면서 "Britain first!(영국이 먼저다!)"라고 외쳤다는 증언이 있었으나, 영문 이름이 같은 영국의 극우 정당인 영국 제일당(Britain First)은 자신들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 사건이 잔류 측에 호재가 될 것으로 많은 이들이 예상했으나 잔류파와 탈퇴파간의 의견차가 크고, 무엇보다 선동과 비방이 난무했던 선거 전 상황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투표일 하루 전까지도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오차 범위 이내의 결과가 나오는 초박빙 양상을 보였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투표함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결같이 말했다. 오늘 브렉시트 국민투표... 영국·EU '운명의 날'.

투표에서 제외된 지역이 몇군데 있는데 맨 섬채널 제도가 EU의 지역에 속하지 않아서 제외되었으며, 북아일랜드의 경우 전 지역 통합으로 개표 결과를 추산하는데, 18개 선거구에서 각자 개표 결과를 발표하기 때문에 BBC 등의 언론사에선 선거구 단위로 개표 결과를 알렸으나, 공식 발표는 모든 선거구의 개표 결과가 나온 뒤 확정되었다. 그리고 지브롤터도 투표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지브롤터는 영국의 속령들 중 유일하게 EU 관할하에 들어가 유럽의회 총선도 치루기 때문이다.

3.1. 선거 진영[편집]

정부로부터 공인받은 잔류파 대표 진영으로 'Britain Stronger in Europe(유럽과 하나되어 강력한 영국)'이 있다.

탈퇴파 진영으로는 영국 독립당 당수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Leave.EU와 전직 런던 시장인 보수당 당원 보리스 존슨이 이끄는 Vote Leave가 있는데, 이 중 Vote Leave가 정부로부터 공인을 받았다. 영국 독립당 당원 몇몇이 Vote Leave에 끼었지만, 패라지의 Leave.EU는 이후로도 독자적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3.2. 해당 선거의 유권자[편집]

1. 영국 선거법상 의회 선거권을 가지게 되는 만 18세 이상의 성인.

2. 그레이트브리튼 섬과 부속 도서들, 지브롤터, 북아일랜드 거주자.

3. 1.과 2.의 조건을 충족하는 영국 국적자.

4. 1.과 2.의 조건을 충족하는 아일랜드 공화국 국적자.

5. 1.과 2.의 조건을 충족하는 호주, 캐나다, 인도 공화국, 말레이시아, 자메이카영연방 소속국 국적자.

이 때문에 영국에 거주하는 아일랜드몰타를 제외한 EU 시민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그리고 타 EU 국가나 외국에 거주하다 영국에 온 영국 시민들은 영국에 15년간 거주한 적이 있어야만 투표권이 있었다. 또한 지브롤터를 제외한 포클랜드버뮤다 등 해외 속령 주민들은 투표권이 없었다. 그 대신 영국에 거주하는 영연방인들이 대거 선거인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3.3. 투표 전개와 결과[편집]

3.3.1. 투표[편집]

구분

대한민국 시간 기준
(GMT+9)

영국 시간 기준
(GMT+1)

투표 시작 시간

2016-06-23 15:00

2016-06-23 07:00

투표 마감 시간

2016-06-24 06:00

2016-06-23 22:00

3.3.2. 예측조사[편집]

이번 국민투표에는 방송사가 주관하는 출구조사가 없다. 인디펜던트 기사. 그 대신 리서치 회사들의 예측조사가 투표 끝나고 곧바로 현지 시각으로 오후 10시, 한국 시각으로 오전 6시에 발표되었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총 표본 4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2%는 잔류, 48%는 탈퇴를 선택. 다른 여론조사기관 입소스모리의 조사에서는 표본 약 5000명에 잔류 54%, 탈퇴 46%. 한편,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영국독립당이 1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탈퇴가 52%로 나왔다. 이 조사들은 어디까지나 예측조사일 뿐 정식 출구조사는 아니었지만, 한 때나마 세계의 브렉시트 우려는 완화되었고 금융 시장 역시 안정된 양상을 보다.

그리고 예측조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판은 엎어진다.

3.3.3. 개표 결과[편집]


BBC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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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 전, 여론 조사에서 잔류 측의 승리가 예상되자)
영국은 미쳤다

(개표 후, 탈퇴 측의 승리가 확실시 되자)
나중에 이유!/[2]

황색언론인 《더 선》 紙의 브렉시트 관련 반응.

UK votes to LEAVE the EU
영국의 선택, "EU 탈퇴"

BBC 국민투표 관련 페이지에 적힌 문구다.

파일:denfiej9rj48jifjgimfg.png

EU 탈퇴

EU 잔류

투표율

17,410,742표(51.9%)

16,141,241표(48.1%)

72.2%

탈퇴파의 승리

탈퇴 매직 넘버가 소멸되었고, 영국은 유럽 연합을 떠나게 된다.

유럽 연합 탈퇴 표가 51.9%로 개표 종료되었고, 주요 방송사의 투표 결과로는 탈퇴로 결정되었다. 원래는 잉글랜드에서 찬반 비율이 접전으로 나오는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예측되었지만, 잉글랜드에서 예상보다 표차가 크게 나면서 결과가 뒤엎어진 것.

영국 선거위원회 위원장 역시 한국 시간 16:00(현지 시간 07:00)에 탈퇴 51.9%로 통과되었다고 선포하였다.

지역별 개표 결과

투표율

EU 탈퇴

EU 잔류

런던

69.7%

1,513,232표(40.0%)

2,263,519표(60.0%)

잉글랜드[3]

73.6%

13,674,351표(55.5%)

10,984,155표(44.5%)

웨일스

71.7%

854,572표(52.5%)

772,347표(47.5%)

스코틀랜드

67.2%

1,018,322표(38.0%)

1,661,191표(62.0%)

북아일랜드

62.7%

349,442표(44.2%)

440,707표(55.8%)

지브롤터

83.5%

823표(4.1%)

19,322표(95.9%)

지역별 결과는 위의 표와 같다.

연령별 개표 결과. 젊은층으로 갈수록 잔류에 표를, 노년층으로 갈수록 탈퇴에 힘을 실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한 시각화(출처: 가디언). 가디언지의 최종 투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번 투표는 다분히 계급/계층적 요소가 강하였다. 교육 수준, 공인 자격증의 수, 임금, 사회계층 등이 낮은 지역일수록 탈퇴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중 특히 교육 수준은 가장 큰 상관관계를 가졌다.

3.3.3.1. 영국인들은 브렉시트를 후회한다?[편집]

영국인, 브렉시트 국민투표 통과시켜놓고 EU시민권은 원해

제목만 보면 영국인들이 EU는 탈퇴하지만 그 혜택은 여전히 누리고 싶다는 뉘앙스로 적혀 있고 거기에 낚인 댓글들도 상당하다. 중국 등 나라의 뉴스에서도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는 뉘앙스로 보도하여 포퓰리즘을 까기에 급급했다. 급기야 영국인들은 태세전환러 내지는 얌체족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워낙 찬반이 거의 박빙으로 갈린 사안이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위 수치에서도 나오다시피, 찬성표는 52% 미만으로 턱걸이로 반을 넘겼고, 이마저도 EU 탈퇴 반대 입장이었던 젊은층들의 저조한 투표율에 힘입은 결과다. 그리고 EU시민권 유지를 원하는 영국인들도 10명에서 6명 꼴로 압도적인 다수라고 할 수 없다. 결국 대체적으로 찬성하던 사람이 찬성하고 반대하던 사람이 반대하는, 예전과 큰 차이가 없었음에도 거대한 입장의 차이를 무시한 채, '영국인'으로만 묶어서 서술하는 것이 문제.

그러나 10명 중 6명이 유지를 원한다면 48%정도인 브렉시트 반대 세력과 비교해 10%가 초과되는데 적은 수가 아니다. 잉글랜드만 따져도 10%면 500만이다.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없다. 아주 간단히 독일 난민은 500만의 1/5인 100만인데 이로 인해 정치지형이 난리가 났다. 즉 충분히 유의미한 조사라고 할 수 있다.

4. 브렉시트의 원인[편집]

탈퇴 측의 논지를 중심으로 브렉시트를 촉발한 원인을 볼 필요도 있다. 이는 해당 문서에 정리되어 있다.

5. 직후의 영향과 이후 예상[편집]

너무 길어진 관계로, 브렉시트 직후의 악영향과 이후 예상(주로 EU 잔류파의 논지)에 대해 해당 문서에서 따로 정리한다. 브렉시트 추진 이유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에 정리하면 된다.

6. 반응[편집]

직후의 각종 반응들과 단기 충격 이후 상황은 해당 문서에 따로 정리한다.

7. 탈퇴 과정과 이슈들[편집]

전개되고 있는 구체적인 탈퇴 과정과 논란, 그리고 쟁점들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

8. 트리비아[편집]

주의: 특정 유명인의 잔/탈 의사를 서술할 때 단순히 찬/반으로 서술하면 해석에 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탈퇴 찬성, 탈퇴 반대 혹은 잔류 의사, 탈퇴 의사로 명확히 기술하여 주십시오.

8.1. 입장 불분명[편집]

  • 밴드 오아시스의 전 멤버인 가수 노엘 갤러거의 인터뷰도 화제가 되었다. 민중들을 대신해 정치를 이끌어 나가야할 정치인들의 무능력함과 책임 떠넘기기에 대한 질타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 번역본.

  • 노엘 갤러거의 인터뷰에 앞서 오아시스의 또다른 전 멤버 앤디 벨도 트위터로 데이비드 캐머런에 대한 비판의 트윗을 짧막하게 했다. 영국 특유의 냉소적인 어조의 비판이 인상적.#

  • 2016년 3월 9일더 선이 '여왕이 브렉시트를 지지한다'고 1면에 기사를 냈는데, 버킹엄 궁전 측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지난 63년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며 해당 기사를 독립언론윤리위에 제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여왕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국이 유럽의 일부여야만 하는 이유 3가지를 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왕이 브렉시트를 두둔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이에 영국 왕실은 "여왕은 정치 중립적이다. 여왕의 발언은 단순한 질문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왕의 발언이 여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영국 내 브렉시트 찬반 여론이 근소한 차이를 보여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왕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발언 전인 지난 19일 여론조사에서는 EU 탈퇴가 42%, 잔류가 45%였다. 하지만 발언 이후 실시된 24일 국민투표 결과에서는 EU 탈퇴가 51.9%를 기록했다. 한편 영국 가디언지는 "보도의 목적이 불순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사는 상당히 왜곡됐고 취재원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 2017년 1월 현재 영국 내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가 브렉시트를 지지하였으며 이를 실제로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가 국가 현안에 대해 침묵을 지키던 것과 대비되게 이례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비공식 석상에서라도 표출한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현재 영국 황색 언론들 사이에서 나오는 가장 유력한 이론은 엘리자베스 2세가 영연방 국가들과 영국의 관계는 물론 영연방 자체가 자신의 사후 흔들릴 것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 영국의 황색 언론 중 하나인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고 한다. 데일리 메일의 왕실 소식통은 "현재 여왕 사후 왕위 계승 1위 후보인 찰스 필립 아서 조지는 오래 왕위에 있지 못할 것이고, 이후 2위 후보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가 왕좌에 앉을 것이 분명하다. ... 그는 EU 체제 내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연방 왕국을 유지하는데 그의 할머니 만큼 열성적이지 못하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즉,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와 영연방 복귀 없이는 자신의 사후 영연방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을 구하기 위해 브렉시트를 지지했다고 한다. 또한 일설에는 2011년에 이미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의 유럽 연합 잔류와 이로 인한 영연방의 약화에 부정적 의견을 표출한 적도 있다고 한다.[4] 다만 이건 영국 왕실의 공식적 입장은 절대로 아니며, 출처 또한 불명확하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봐야할 필요가 있다.[5]

        • 2017년 6월 21일 국왕의 칙유 발표를 위해서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의 모자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유는 모자가 유럽 연합기와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간접적으로 유럽 연합을 지지한다는 뜻을 비추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본 행사에 흰색 드레스를 고수해 왔기에 이러한 추측이 강한 힘을 얻었다. 2015년 엘리자베스 2세가 독일을 방문할 당시 유럽 연합에 긍정적인 발언을 한 것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가 유럽 연합 잔류를 지지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 다만 엘리자베스 2세가 옷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전례가 별로 없고, 19세기 이후 영국 국왕의 발언은 대부분 자신의 본심과는 다르더라도 집권 내각의 정책 지향에 맞춰주는 것이 전통이었기 때문에[6], 무슨 모자를 썼느냐, 공석에서 무슨 연설을 했느냐, 사석에서 무슨 발언을 했냐는 걸 가지고 찬반 양측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정치적 해석을 하는 게 지나친 과민 반응이라는 이야기 또한 나오고 있다.

8.2. 잔류 지지[편집]

다음은 EU 잔류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유명인들의 일부.

  •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13명도 잔류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들 중에는 힉스 입자를 예견한 피터 힉스는 물론 세포분열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세포주기를 조절하는 핵심인자를 발견한 생물학자 폴 너스가 포함되었고, 노벨상 수상자는 아니지만 스티븐 호킹 또한 EU 잔류를 주장하였다. 이들은 "영국 국민들이 EU에 지불하는 분담금이 영국 과학자들의 지원으로 돌아온다"며 브렉시트가 일어날 경우 과학자들을 위한 예산을 다시 짜야 한다고 발언. 게다가 EU 탈퇴시 타 EU국적의 과학자들과 교류 및 협력하는데도 지장이 있어서 영국 학술계의 발전이 크게 저해될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 개표날이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의 본격적인 공연 첫 날이었는데, 축제 취지와 참가자 성향상 EU 잔류 쪽 성향을 보이고 있다. 설문 결과 참가자 78%가 EU 잔류를 찍었다고. 브렉시트를 까는 시를 붙인 후 공식 트위터에다 올리기도 했으며 개별적으로도 데이먼 알반은 "민주주의가 우리를 배신했다(Democracy has failed us)"라는 발언을 공연 중 남겼고, 제임스의 기타리스트인 사울 데이비즈는 찬성파에게 대놓고 "Fuck them!"이라며 욕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후자는 방송 중 나온 말. 제러미 코빈은 원래 공연장 중 한 군데에서 연설을 할 예정이었는데 취소하였다고 한다. 본래 일부 스테이지에선 공개 토론도 한다.

  • BBC 탑기어의 전 진행자 제임스 메이제레미 클락슨은 자신들이 동의하는 것은 샌드위치 스프레드, 포드 몬데오, 영국의 EU 잔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둘이 얼마나 싸워대는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놀랄 만한 것으로, 제임스 메이 또한 이를 두고 '평소의 우리답지 않다(uncharacteristic)'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했을 정도.

8.3. 탈퇴 지지[편집]

  • 다이슨 사의 창립자이자 CEO인 제임스 다이슨 경은 영국 재계에서 가장 명망 높은 탈퇴 지지파였다. 그는 브렉시트가 영국의 온전한 독립과 자유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동시에 영국이 영연방 각국과 다시 한 번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영국 재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영연방과의 단결을 주장하는 인물이 바로 다이슨 경이기도 하다.[7]

9. 기타[편집]

  • 바로 위에서 언급되었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진짜로 대통령에 당선되어버리면서 브렉시트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따져보면 둘 다 어느 선택을 하든 별로 마뜩찮은 상황에서 설마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일반적으로 더 안 좋을 것이라 생각되던 선택을 해버리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개표 전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는 것까지 유사하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따지면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은 핵심 계층이 영국 북부 쇠락한 공업지대 계층으로, 트럼프 반란의 핵심인 러스트 벨트와 통하는 바가 많다고 한다. 두 사건이 모두 굉장히 경제적인 이슈 그 중에서도 빈부격차 및 자유무역 문제와 깊게 맞닿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한국에서는 영국이 정치적 힘을 강화하고, 트럼프 미국 대선 후보자의 지지 의견을 근거로 미영동맹을 강화하려 한다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 교황 프란치스코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한 결정은 국민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며 "이제 영국과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공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서구권에는 "지난 1992년에 인간 광우병이 창궐하던 지역들은 2016년 현재 브렉시트에 찬성한 지역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괴담이 퍼지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서구 웹상에 떠도는 짤은 그냥 똑같은 분포도를 한쪽은 컬러, 한쪽은 흑백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이라고. 광빈치 코드

  • 한편 미국의 보수언론 폭스 뉴스는 브렉시트 보도에서 영국이 UN을 탈퇴한다고 자막을 잘못 내보내 네티즌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만약 이 시나리오가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UN에서 나가게 되는 만큼 국제 정세는 정말로 개판이 되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세계적으로 UN무용론이 대두되어 다른 나라들도 하나둘씩 UN을 탈퇴해 UN이 해제되고 전후 질서가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다. 중국과의 외교 싸움에서 밀려 반강제적으로 탈퇴한 대만이나,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학살 문제로 유엔 회원국 자격을 박탈당하고 강제적으로 추방당했다가 전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실각한 후 다시 재가입한 세르비아, 이웃나라 말레이시아와의 외교 관계 악화로 자발적으로 UN을 탈퇴했다 다시 복귀했던 인도네시아 등을 제외하면 UN 창설 이래 UN에서 나간 국가는 전무하다. 그냥 오타인데 왜케 진지하게 반응하는겨?

  • 투표 두 달 전만 해도 이 문서의 길이는 그렉시트 문서보다 훨씬 짧고, 토막글보다 약간 길었다(...). 정작 '브렉시트'라는 단어의 유래가 된 그렉시트는 2016년 6월에 와서는 어디서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

  • 오바마 대통령은 브렉시트와 관련해 갑자기 달아오르고 있는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면서, 호들갑과는 달리 영국이나 유럽 연합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 의견을 밝혔다.

  • 브렉시트 문제와는 별개로 한국 언론들이 너무 영미위주의 보도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언론들의 보도 행태가 영미편향적이며 유럽 대륙주의자들의 주장을 너무 간과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브렉시트 = EU의 해체를 기정사실로 놓는다는 점이 영미 편향의 증거이며, 오히려 대륙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아니꼽던 상대가 나갔으니 오히려 더 EU가 결속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영국 내의 반유럽주의자들 못지않게 유럽 대륙 내의 반영주의자들 또한 많은 편인데, 반유럽주의자들의 동향은 자세히 보도되면서 반영주의자들의 동향은 그러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는 국제 정세를 영어권 언론에게 거의 의존하다시피 하는 한국 언론의 행태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 위의 지적과는 별개로 영연방과 브렉시트의 관계나 브렉시트에 대한 영연방과 유럽 각국들의 반응도 몇몇 신문사의 기사를 제외하면 한국 언론에 소개되지 않거나, 아주 간단하게만 언급됐다. 당장 BBC가 국제란에서 주요 기사로 뽑아내는 기사 내용도 소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의 소양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 독일의 저명한 경제 학자가 다음 유로 탈퇴국으로 이탈리아를 지목했다. 기사(영어)

10. 관련 문서[편집]



[1] 유럽연합 회원국의 속령들은 본국과 별도로 유럽연합에 속할지 말지 다르게 정하고 있는데, 영국의 경우 속령 중에 지브롤터만이 온전하게 유럽연합의 일부이다. 다른 속령은 EU의 조약이 일부만 선택적으로 적용된다. 그래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도 영국 본토와 지브롤터에서 치러졌다.[2] 'SEE YOU LATER'의 말장난으로 'SEE EU LATER'라고 써 놓았다. 자매품인 'ADIEU' 도 존재한다.[3] 득표,투표율 모두 런던, 지브롤터 제외..[4] 사실 영국이 1972년을 기점으로 영연방과 관계를 약화시키고 유럽 공동체에 가입한지 45년이 된 시점이라 대부분의 영국 신세대들은, 이쪽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지 않는한, 영연방 국가들에 대한 각별함과 이해가 기성세대보다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5] 이와는 별개로, 엘리자베스 2세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브렉시트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상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6]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가 속으로는 마거릿 대처 내각의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를 드러낸 적은 없었고, 오히려 연설 등의 공식적 발언들은 대처 내각의 방향에 거스르지 않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또한 엘리자베스 2세는 즉위 직후 영연방 순회를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 동생 마거릿 공주가 당시 보수당 내각의 의사에 반해 내뱉은 발언들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뺀 경험이 있다.[7] 다이슨 경의 개인적 성향과 더불어, 현재 연구 기지와 본사는 영국에, 생산 기지는 말레이시아에 만들어 놓은데다, 주력 시장은 아시아 각국과 호주, 북미인 다이슨 사 입장에서,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와 영연방 각국과의 양자-다자 FTA나 경제 공동체 형성은 유럽 연합 잔류보다 훨씬 더 큰 이득이 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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