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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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상징, 여성 기호 깃발

1. 개요2. 명칭3. 역사
3.1. 페미니즘의 기원3.2. 제1파(1세대 페미니즘)3.3. 제2파(2세대 페미니즘) 3.4. 제3파(3세대 페미니즘)
4. 분파
4.1. 자유주의 페미니즘 (리버럴 페미니즘)4.2. 급진적 페미니즘 (래디컬 페미니즘)4.3. 교차 페미니즘4.4. 트랜스페미니즘4.5. 사회주의 페미니즘4.6.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후기 구조주의적 여성주의)4.7. 보수주의적 페미니즘4.8. 스피리추얼 페미니즘4.9.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즘4.10. 에코 페미니즘 (생태여성주의)4.11. 성적 차이 페미니즘4.12. 다윈주의적 페미니즘4.13. 흑인 페미니즘(우머니즘)4.14. 이슬람 페미니즘4.15. 아나카 페미니즘4.16. 뚱뚱한 페미니즘4.17. 성 긍정 페미니즘
5. 논란
5.1. 진짜, 가짜 페미니스트?5.2. 여성 보호에 대한 반대5.3. 집안일과 사회활동5.4. 임신과 출산5.5. 한국 사회의 성평등 정도5.6. 원시 모계사회5.7.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5.8. 섹시한 복장은 페미니즘에 반대된다?5.9.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교육 의무화? 5.10. 여성징병제 논란 5.11. 남성 비하/모욕/차별 논란5.12. 성별 편가르기 논란5.13. 현실과 이론의 괴리감
6. 비판
6.1. 성소수자와의 관계6.2. 여성우월주의 문제6.3. 강간의 해결에 대한 방법론적 문제6.4. 검열 문제6.5. 이념을 위해 다른 것들을 무시함6.6. 일부 이단이라는 식의 책임 회피6.7. 국내 문제6.8. 남성이 배제된 평등6.9. 숟가락 얹기6.10. 기존 좌파 측면에서의 비판6.11.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6.12. 급진적 방법에 대한 비판
7. 기존 학문의 재해석과 충돌
7.1. 자연과학7.2. 역사학
8. 대안
8.1. 포스트페미니즘8.2. 포스트젠더리즘8.3.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Feminism, 여성주의(女性主義)

2015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키워드이며, 나무위키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비롯하여 정치계, 언론계에서도 뜨겁게 논하는 이슈 중 하나.[1]

여성주의(Feminism, 페미니즘)는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용어다. 페미니즘(féminisme)이라는 용어는 1837년 프랑스의 유토피아 사회 철학자 샤를 푸리에가 만들어 냈다고 흔히 알려져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1872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1890년에는 영국에서, 1910년에는 미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옥스퍼드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은 1852년을 여성주의자(페미니스트)가 처음으로 출현한 해, 1895년을 페미니즘의 해로 수록했다. 페미니즘은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의 인정을 기반으로 시작되어 여성의 사회적인 이미지와 권리를 남성과 동등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여성의 권리 확장과 성차별적인 대우의 타파를 통해 여성해방과 성 평등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다.[2]

근대 초기부터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참정권, 투표권, 여성이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 여성이 남성과 법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획득할 권리, 아동과 노약자 보호, 성폭력 예방, 올바른 성교육, 환경보호, 사회복지, 노동환경 개선 등 폭넓은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어 냈다. 학계에서는 학제 간 연구의 일환으로 여성학 협동과정 등의 정규과정을 통하여 활발하게 탐구되고 있다. 페미니즘의 선구자로는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3]가 꼽히며,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나 베티 프리댄의 《여성의 신비[4], 케이트 밀릿의 《성의 정치학》 등이 있다. 성 평등을 주장한 19세기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를 주장해 초기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5]

2. 명칭[편집]

상술한 대로 시대가 시대인지라 사상의 이름에서부터 'Femini-(여성의-)'를 포함하는 만큼 일단 대외적으로 성적 불평등이 상당수 해결된 현재로선 '여성만을 위한 사상이다.'라는 인상으로 여겨진다는 의견이 나타나면서 외부만이 아닌 페미니즘 운동권 내부에서도 명칭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는 중. 즉 다른 성평등을 추구하는 단어를 찾을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사용되던 단어를 계속 쓸 것인지의 차이.

페미니즘 명칭 존치측에서는 Femini라는 단어를 제외할려는 것에서 여성에 대한 문제를 감추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다분하기 때문이며 어느정도 개선되도 유리천장, 유리벽 등 암묵적인 차별이 크게 와닿는 와중에 근본적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바꾸면 페미니즘을 완벽히 달성할 수 없으니 명칭을 바꾸기엔 아직 빠르다는 의견.

페미니즘 변경 찬성 측에선 상술한 의견도 긍정하긴 하지만 현재로선 그 이상으로 시스젠더트랜스젠더등 성의 기준자체가 모호한 사람이 많고 여성보다 이들이 더 소수이며 그만큼 더 차별을 받는 와중에 페미니즘이란 늬앙스는 원래의 모든 성의 평등을 가리키는 것과는 반대로 차별받는 축에서도 여성만 아낀다거나 아니면 남성과 다른 성을 배척하고 여성들부터 살펴야 한다는 반발이 나올수도 있다는 것.

실제로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변경하자는 의견측의 주장대로 원래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성평등'에서 현재까지도 성적소수자들까지 포용하기보단 근대 여권신장운동에서 시작하여 여성의 인권만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고 어디까지나 근대에선 제3의 성이란 것 자체가 없다시피했으므로 페미니즘의 사상이 여성에 쏠리기도 한다는 것과 현재 페미니즘 단체가 여초상태나 아니면 남성자체를 배척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로 틀린 게 없는 의견.

다만, 페미니즘 운동 초기에 추구하던 여성 참정권, 사회 참여 등의 진전과 함께[6][7] 최근에는 생물학적 성에 기인한 억압과 차별에 대한 폐지와 양성의 동일한 권리, 기회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차별 타파 위주의 평등주의와 혼용되기도 한다. 즉 페미니즘은 평등주의 그 자체는 아니지만 다른 부분에서도 평등주의의 입장을 많은 부분에서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배우 엠마 왓슨UN 여성의 날 스피치 역시 같은 관점을 반영했으며[8], 디즈니 또한 남성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했고,[9] UN의 여성 권리 운동 역시 성별, 종교, 인종 등으로 인한 차별의 타파를 추구하고 있다.[10]

물론, 모든 페미니즘 분파가 모든 차별의 타파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월성 Superiority참조.) 국내의 워마드처럼 오직 여성 권리를 위해 남성 성소수자, 트랜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비하를 묵인하기도 한다.[11] 물론 여기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도 존재한다.(비 TERF) 참고로 이러한 극단적 현상은 인권운동에서 나타나는 흔한 양상으로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하여 한창 흑인인권운동이 활성화되던 60년대 미국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편하다. 인권운동이 활성화되면 꼭 집단이기주의를 동반한 극단적 우월주의도 따라오는 법이니..

3. 역사[편집]

크게 3개의 시대적 사조로 구분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역사 연구에서는 n세대라는 표현을 흔하게 쓰지만, 최근 여성 운동권이나 여성학계에서는 이 시대적 구분을 'wave'로 부르고 n파(또는 'n의 물결')로 번역하고 있다.

3.1. 페미니즘의 기원[편집]

The belief and aim that women should have the same rights and opportunities as men; the struggle to achieve this aim.
여성이 남성과 같은 권리와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믿음과 목표, 혹은 이를 성취하기 위한 투쟁

옥스퍼드 영어사전

Feminism is a radical notion that women are people.
페미니즘은 여자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급진적인 개념이다.

마리 시어 (Marie Shear)[12]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여성주의)은 18세기 근대 유럽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학자들 중에서는 프로토 페미니즘이란 용어를 써서 계몽 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성평등 이념의 역사를 다루는 이도 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에서 "신체적인 힘에서 비롯된 차이만을 제외하면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다"고 언급했다.[13] 프로토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을 가르는 기준은 "페미니즘 개념이 정립된 때"이다.[14] 그렇다면 페미니즘 개념이 언제 정립됐는지가 중요한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특정한 신념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한 건 1837년 샤를 푸리에가 처음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주장이 오류라는 반론도 있다.[15] 최초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한 인물은 프랑스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위베르틴 오클레르(1848~1914)였고[16], 1892년 파리에서 열린 '제1차 국제여성회의'에서 "성평등 이념에 입각하여 여성에게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페미니즘을 정의했다고 한다.#참조 여러 사료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페미니즘 개념이 온전히 정립된 건 19세기 후반 이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만약에 '프로토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인다면, 페미니즘의 기원은 당겨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늦춰질 수도 있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프로토 페미니즘을 거부하기도 한다.[17]

18세기 근대 유럽, 당시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중시했고, 동등한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그러나 만인이 평등하다는 천부인권은 여성에게는 인정되지 않았다. 많은 계몽주의자들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일부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으니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 여성에게도 참정권 등의 법적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벌어진 논쟁은 근대적인 성평등 이념을 이끌어냈다. 초기 페미니스트들은 계몽주의에 입각하면서도 계몽사상의 한계인 남성 편향성을 극복하려는 비판적 성찰을 가졌다.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활동하던 시절도 바로 이 때이다.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계몽 시대의 남성우월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에밀>(1762)에서 여성의 아름다움, 교태, 수줍음 등이 남성을 흥분시키게 한다는 이유로 "여성은 남성의 마음에 들도록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남성은 가정에서 여성의 뜻에 따르는 대신에, 사회에서는 강자 행세를 하게 된다. 남성은 이성에 따라 스스로 성욕을 억제할 수 있지만,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하여 정숙한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루소는 여성이 남성에게 예속되는 것을 정당화했다.[18] 다만, 루소의 여성관에 대해서는 상반된 해석도 존재한다. 루소는 성(sex)에 있어서만 남녀의 차이를 주장했고 종(species)에 있어서는 남녀의 평등을 주장했으며,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여성성을 강조하였으며 여성 교육을 주장하면서 당시로서는 페미니즘의 발전에 긍정적인 불씨를 제공했다는 것이다.[19]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는 계몽 시대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다. 그는 프랑스의 정치인 탈레랑이 "여성은 가사교육만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한 데 반박하여, 저서 <여권의 옹호>(1792)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을 것"을 주장했다. <여권의 옹호>에서 주된 비판 대상은 루소였다.[20] 울스턴크래프트는 루소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여성상에서 '이성(理性)'이 결여되어 있음을 비판했다. 루소가 주장했던 여성 교육 역시 가부장제에 부합한 행실과 욕망을 자극하는 용모만을 갖추는 데 그친 노예 훈련이라고 비판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이 남성처럼 정치.경제.사회.문화 활동 전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남성과 여성은 상호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성에 대한 이중잣대를 공격했다. 다만, 울스턴크래프트에게도 한계점은 있다. 그는 여성과 남성이 완전히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주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즉, 완전히 같은 내용의 시민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울스턴크래프트는 1797년 둘째 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을 낳고 사망했다. 향년 만 38세. 딸 메리는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결혼했으니, 호러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가 그 메리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사상은 생전에 나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사후, 세 번째 남편이자 선구적 아나키스트였던 윌리엄 고드윈(1756~1836)<여권의 옹호 저자에 관한 회고록>(1798)을 발간한 걸 계기로 맹비난을 받았다. 고드윈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개방적인 인물이었고 <회고록>에서 아내 울스턴크래프트의 연애 이력, 이혼, 자살 시도, 부부 생활을 꽤나 솔직하게 밝혔다. 당대의 사회 통념과 보수 윤리에는 어긋나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고드윈의 의도와는 다르게 울스턴크래프트의 평판은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선구적인 정신은 백여 년 동안 잊혀졌지만, 20세기 들어서 버지니아 울프(1882~1941)엠마 골드만(1869~1940)에 의해 발견되고 재평가받았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작성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여성이나 무산계급을 배제하고 남성에 대해서만 인권을 천명했다. 이에 반발한 몇몇 계몽주의자들은 여성에게도 권리를 부여할 것을 주장했다. 예를 들어, 니콜라 드 콩도르세(1743~1794)는 <여성의 시민권을 위한 청원>(1790)에서 남성에게 부여된 자유와 권리를 여성에게도 부여할 것을 요구하며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다. 올랭프 드 구주(1748~1793)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1791)에서 남성에게 부여된 모든 권리를 여성에게도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자코뱅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세력들을 숙청하는 공포 정치를 단행하고 있었다. 올랭프 드 구주는 왕정제를 옹호하고 자코뱅을 비판하는 저술활동을 벌이다가 길로틴에서 처형당했고, 그의 동지였던 콩도르세 후작은 체포된 직후 음독 자살했다.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평등주의)에서 파생되었나"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선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용어가 문서마다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키백과철학의 기초에서는 이갈리타리아니즘을 평등 이념을 하나의 사상 체계로 정립한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 정의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이갈리타리아니즘은 스토아 학파의 코스모폴리타니즘(세계시민주의)이나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평등 사상을 포괄하는 의미로 쓰였다.[21] 반면에 스탠포드 철학사전 등에서는 고전적인 리버럴리즘(자유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별개의 운동이 된, 좁은 의미의 이갈리타리아니즘을 상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갈리타리아니즘은 용어가 정립된 이후인 19세기 후반에 형성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참조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하는 측은 좁은 의미가 아닌 넓은 의미의 이갈리타리아니즘을 말하고 있다.

스토아 학파가 이갈리타리아니즘적이라는 건 "후대의 평가일 뿐"이라는 반론이 있다. 이 반론에 일관성을 맞춘다면,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개념이 정립된 19세기 이전에 존재했던 평등 사상들이 이갈리타리아니즘적이라는 건 모두 "후대의 평가일 뿐"일 것이다. 그리고 페미니즘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에 여성의 평등을 주장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올랭프 드 구주(1748~1793)의 사상이 페미니즘적이라는 것도 "후대의 평가일 뿐"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이갈리타리아니즘과 페미니즘을 모두 가장 협소한 의미로 파악하게 되어 서로 간에 큰 상관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개념짓기 이전인 프랑스 혁명기의 여권 운동가들도 페미니즘이라고 용어의 반경을 넓히는 이상 "후대의 평가일 뿐"이라는 반론은 자기모순이 있다. "후대의 평가"라는 반론 외에도, 프로토 페미니즘인 플라톤스토아 학파보다 이전의 세대이므로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보다 먼저 발생했다는 반론도 있다. 잘못된 반론이다. 프로토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기원이 아니라 전사(前史)를 말하므로, "플라톤이 프로토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페미니즘은 아니었지만 그 이전에 영향을 준 사상"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프로토 페미니즘만으로는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보다 먼저 발생했다는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갈리타리아니즘을 분명히 정의하고, 스토아 학파는 이갈리타리아니즘이 아니라 이갈리타리아니즘의 전사(前史)에 해당한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스토아 학파는 평등에 이론적으로 영향을 주었을지언정 근대 정치철학으로서의 평등 사상까지 이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근대적 의미로 한정한 예에 비추어봤을 때, 스토아 학파를 이갈리타리아니즘의 전사(前史)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계몽주의자들의 평등 사상까지는 이갈리타리아니즘의 범주로 묶일 수 있을 것이다.

넓은 의미의 이갈리타리아니즘은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평등은 인류 보편의 관념이지만, 어떤 것이 평등인지에 대한 근대적 이론 체계는 고안되는 것이며, 이런 이론들은 넓은 의미에서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범주로 묶일 수 있다. 사변적으로 봤을 때 페미니즘 역시 이갈리타리아니즘의 범주로 묶여 일응 하위 개념이나 파생 개념으로 보일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그러나 아무리 이갈리타리아니즘을 넓게 보더라도, 일상적으로나 학술적으로나 현실상에서 페미니즘은 이갈리타리아니즘의 하위 개념, 파생 개념이 아니라 별개의 독립 개념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계몽 시대의 페미니즘은 이전의 이갈리타리아니즘을 그대로 계승한 게 아니라 안티테제로서 등장했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1792)보다 시기적으로 앞섰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1789)은 <여성과 시민의 권리선언>(1791)보다 앞섰지만, 단순히 시기적으로 앞섰다는 사실만으로는 파생관계라고 볼 수 없다. 계몽 시대와 그 이후에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던 지식인들은 지속적으로 여성을 평등의 대상에서 배제해왔으며, 페미니스트들 역시 자신들을 이갈리테리안과 구분지어왔고 오랫동안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애초에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용어는 좁은 의미로나 '평등'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많이 쓰이고, 계몽 시대의 평등 사상은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고 묶이기도 하지만 계몽주의 일반이나 자유주의와 함께 묶여서 설명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과정과 통용되는 언어 사용을 고려했을 때 페미니즘은 이갈리타리아니즘과 별개의 범주로 묶는 것이 타당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된다. 생각을 서로 공유하거나 영향을 받은 지점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아나키즘의 탄생에 자유주의의 영향이 있었을지라도 아나키즘이 자유주의의 파생 개념인 건 아니다.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에서 파생되었다"라고 주장하는 건 온전히 맞는 얘기라고 볼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에서 파생되었는가"라는 논의는 "페미니즘을 젠더 이갈리타리아니즘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논의와는 결이 다르다. 비록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으로부터 파생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건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개념을 현실적인 쓰임과 과거 용례 등 언어의 사회성을 고려해서 정의내렸기 때문이다.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측도 현실적인 쓰임을 주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언어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함께 변화한다. 오늘날 말하는 이갈리타리아니즘은 젠더 평등을 포함하고 있고, 페미니즘이 과거 여권 운동의 틀을 넘어서 젠더 평등을 지향하는 운동이 되었기 때문에, 대체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체되려면 사회적 수용과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 아직은 일상에서나 학계에서나 논의가 미흡하다.

3.2. 제1파(1세대 페미니즘)[편집]

"1세대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원래 미국 68운동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을 2세대로 규정지으면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부르던 말이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전개되었으며,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발견된 페미니스트도 포함시킨다. 주로 자유주의 페미니즘 성향이 말했지만, 동시대에 유럽에서 진행되던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22]사회주의 페미니즘도 포함시킨다. 이들은 법적 수단을 통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으려 했으며 여성의 자유와 선택을 중시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과 그 아내 헤리엇 테일러 밀자유주의개인주의를 근간으로 하여 페미니즘 사상을 한층 더 이론적으로 강화시켰다. 울스턴크래프트와 밀 부부는 뒤이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18세기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는 참정권, 취업권, 재산권 등 법률적 권리의 획득과 관련된 투쟁이 이어졌다. 특히 1890년에서 1920년 사이에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일어났던 여성 참정권 운동이 핵심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에멀린 팽크허스트였다. 그는 1903년 여성 참정권 도입을 목표로 여성사회정치연합(WSPU)를 창립했다. 《서프러제트》는 이를 다룬 영화이다.# 이 움직임들은 당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으나, 결과적으로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최초로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한 나라는 1893년 뉴질랜드였고, 1920년 미국에서도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해방 이후 실시된 첫 선거(1948년)부터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여성참정권론자들의 경우에도 남성성에 우월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여성들이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남성과 같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중반의 2세대 페미니스트들에게 비판받게 된다.

개중에는 비백인 여성과 여성 노동자를 차별하는 등 친제국주의 성향의 여성 운동가도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비판받았다.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남성 특권에 맞선 투쟁에서는 사자처럼 행동하는 부르주아 여성들은 대부분 참정권을 얻고 나면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반동 진영의 유순한 양이 될 것이다."#참조

심지어 에멀린 팽크허스트조차도 장녀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와 함께 국가를 위한다는 이유로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일에 앞장섰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팽크허스트 가의 반(反) 볼셰비키 성향이 강해져 1926년 에멀린-크리스타벨 모녀는 파업을 분쇄하기 위해 여성특별경찰부대에 자원 입대했다. 성병의 유해성을 이유로 남성 순결을 주장하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삼녀 아델라 팽크허스트는 훗날 파시즘에 심취하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일본 제국을 옹호하다가 구금되기도 했다.[23]

한편 미국에서는 여기서 페미니스트들이 기독교 근본주의와 결탁해 금주법 제정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캐리 네이션은 첫 남편이 알콜중독과 도박으로 사망하자, 금주, 금연, 금오락 운동을 주도했고, 보수주의 페미니즘 단체 '여성기독교금주연맹'을 이끌었다. 술집을 폐쇄하기 위해 직접 도끼를 들고 다니며 술집과 오락실, 경마장을 때려 부수다가, 30번이나 체포되었다. 결국 미국에서는 1920년 여성의 참정권 부여와 함께 금주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금주법 시행 이후 범죄가 폭증하자 금주법 반대 연합 AAPA를 중심으로 금주법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여성 정치인 폴린 세이빈은 1929년 금주법을 반대하는 여성 단체 WONPR를 결성하기도 했다.

영국의 로버트 오언(1771~1858)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협동조합 같은 대안 공동체를 통해 사회변혁을 꿈꿨던 유토피아 사회주의 사상가였다. 그는 여성의 재생산 기능(가사노동, 양육과 교육 등)을 공동체 전체의 책임으로 확대하려고 노력했다. 윌리엄 톰슨(1775~1833)은 오언주의의 여성관을 확장시켰다. 톰슨이 1825년에 저술한 <인류 절반을 위한 호소(Appeal of One Half the Human Race)>에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서 여성의 재생산은 필연적으로 남성에 대한 경제적 종속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만약에 협동조합에 기초한 사회주의로 이행한다면,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보장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오언주의자들은 여성 노동자에게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이라는 이중부담을 지우는 걸 거부하고 결혼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성적 자유에 관해서는 일치된 견해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도 남성처럼 합리적으로 정념을 다루고 출산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성욕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오언주의자도 있는 반면에, 여성이 남성보다 경제적으로 취약해 연애 시장에서 불리하다는 이유로 자유 연애에 반대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프랑스의 생 시몽(1760~1825)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상호협력에 기초한 노동자연합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하여 무산계급해방시키려 한 유토피아 사회주의 사상가였다. 생 시몽 사후에 그의 추종자 앙팡탱(1796~1864)은 진정한 해방을 위해선 정치적 혁명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전통 윤리를 대체하는 도덕 혁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가톨릭이 여성성을 억압해왔다고 봤고, 여성의 감정적인 본성이 남성의 이성적 본성을 보완하는 사회를 꿈꿨다. 성적 자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보았다. 앙팡탱을 위시한 생시몽주의자들은 점점 종교적 성격을 띠어 여성 메시아의 도래를 굳게 믿고 종교공동체를 조직했다. 그러나 1832년 앙팡탱이 풍기문란죄(집회조례 위반)로 투옥된 걸 계기로 이들 조직은 해산되었다. 앙팡탱의 여성관은 당시로서는 진일보한 면도 없진 않았으나, 오늘날의 관점으로 봤을 땐 '여성숭배'에 해당되어 비판의 여지가 많다.

프랑스의 샤를 푸리에(1772~1837) 역시 유토피아 사회주의 사상가로서, 이성도덕에 기반을 둔 문명 사회 전반을 부정하고 '정념'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그는 시장경제는 빈곤을 양산한다는 이유로, 일부일처제는 성욕을 억압한다는 이유로 인민의 욕구 충족을 방해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모성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정념, 즉 사회적 능력과 성욕을 억압한다. 푸리에는 여성 해방을 사회진보의 척도로 삼았으며,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보장하고 여성의 성욕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족제도가 변화할 것을 주장했다.

3.3. 제2파(2세대 페미니즘) [편집]

1960년대~1970년대에 걸친 운동으로, 소위 래디컬하다 일컫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에코 페미니즘이 그 중심이 된다. 단순히 일할 권리만이 아니라 직장에서의 평등. 그리고 남성 유명 대학에 입학할 권리, 임신중절 합법화와 시민권 운동의 일환으로 행해진 운동이다. 차별적 관행뿐만 아니라 가부장제 철폐를 목표로 하는 래디컬 페미니즘 계열이 주가 된다. 근세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여성우월주의도 2세대 페미니즘에서 갈라져 나왔다.

1세대 페미니즘의 성취로 여성참정권 보장 등 법적 기본권이 확대되었고, 세탁기, 분유, 피임약의 발명은 여성들이 짊어지고 있던 이전까지의 가사노동이나 출산의 부담을 경감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사회구조가 지속되고 있었으며, 68혁명 이후의 세대들은 여기에 의문을 갖고 새로운 페미니즘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사상사적으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 베티 프리댄의 <여성성의 신화>(1963), 케이트 밀레트의 <성 정치학>(1970), 캐럴 해니쉬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1969),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블랙 파워 다음은 여성의 해방>(1969),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1970)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1963년 미국의 프리랜서 작가였던 베티 프리댄(1921~2006)<여성성의 신화>[24]를 출간해 페미니즘의 제2파를 촉발시켰다. 여기서 프리댄은 많은 여성들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서도 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모성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이 과도하게 찬양받는 사회를 비판했다. <여성성의 신화>는 큰 반향을 이끌어 1963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천명한 임금평등법이 제정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프리댄은 '현대 여성 운동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후 프리댄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 성향의 사회 운동을 벌였다. 1966년에는 전미여성기구(NOW)를 창립하여 여성권리장전을 채택하였는데, 이 단체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여성주의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68년에는 처음으로 코넬 대학교여성학 강좌를 개설하는 데 공헌했다.

1967년 슐라미스 파이어스톤(1945~2012)이 뉴욕급진여성모임 NYRW를 창설했는데, 이 단체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표방했다. 이들은 성차별적이라는 이유로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 항의하는가 하면, 전통적인 여성상을 상징하는 마네킹을 땅에 묻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급진-페미 계열의 단체 '레드 스타킹'은 낙태 금지 법안을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파이어스톤은 1970년 <성의 변증법>에서 프로이트, 라이히, 마르크스, 보부아르 등의 사상을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 종합하여, 여성학의 토대를 형성했다. 1970년 케이트 밀럿(1934~2017)<성의 정치학>을 출간해, 가부장제를 분석했다.

여기서 '급진'이란 과격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성 억압의 근원을 파헤친다는 의미이다. 이들은 제도적 변화를 강조하는 리버럴-페미를 강하게 비판하고, 제도의 기저에 깔려 있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급진주의의 입장은 관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는데, 파이어스톤은 남성 지배가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구성되었으며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통해 여성이 성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케이트 밀럿은 문화적 차원을 강조하여 가부장제 문화가 남성 지배를 확산시키기 때문에 가부장제를 해체할 것을 주장했다.

급진주의 경향은 68세대 젊은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나,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퇴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캐서린 맥키넌(1946~ )안드레아 드워킨(1946~2005)은 급진주의를 극단적으로 적용하여 사회의 모든 폭력적인 것들을 가부장제강간 문화와 결부짓기 시작했다. 특히 포르노, 성매매, 그리고 BDSM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고, 80년대 안티-포르노그래피 운동을 주도했다. <포르노그래피: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1981)에서 드워킨은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 "결혼이란 강간을 정당화하는 제도" 등의 언급을 했으며, 문예 비평에서도 남성 작가들이 강간과 성폭력을 에로티시즘으로 긍정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기독교 우파와 결탁하여 음란물을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는 데 힘쓰기도 했다. 이들은 미네폴리스주와 버지니아주에서 반 포르노법을 제정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와 급진 리버테리안 페미니스트들이 FACT(Feminist Anti-Censorship Taskforce, 페미니스트 반 검열 대응본부)를 표현의 자유 운동가들가 함께 세워 연방대법원에 위헌 소송을 하였고, 이에 대법원이 받아들여 미국에서 반 포르노법은 폐지된다.[25]

맥-드워킨주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 진영으로부터 "도덕적 권위주의이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는 이유로 공격 받았을 뿐만 아니라, 게일 루빈(1949~ ) 등 급진주의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도 안티-포르노 운동은 비판받았다. 엘렌 윌리스의 저서 <여성 운동은 친-섹스인가?>(1981)에서는 섹스가 남성 지배의 수단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오락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포르노그래피는 다양하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관건이라고 역설했다. 친-섹스 페미니스트들이 포르노의 남성편향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것 역시 여성 억압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 징후이고, 안티-포르노 운동은 본말전도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친-섹스주의자들은 페미니즘 포르노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대립은 가수 마돈나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으로 예를 들 수 있다. 친-섹스주의자들은 마돈나가 여성의 성을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페미니스트라고 본 반면에, 맥-드워킨주의자들은 마돈나가 남성우월주의를 선전한다고 분노했다. 마돈나의 누드집 <섹스>(1992)가 발매되었을 때는 "마돈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노출이 심한 여자다. 사람들은 마돈나의 몸에 대해 자기 배우자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이렇게 섹스 논쟁 또는 포르노 논쟁을 거치면서 2세대 페미니즘은 내부 갈등을 빚으며 퇴조하였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부활하게 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원인을 자본주의의 문제로 보았던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과 그 원인을 남성 지배의 문제로 보았던 급진주의를 절충한 사조였다. 또한 페미니즘 외부에서도 페미나치, 포스트 페미니즘라는 신조어가 생기는 등 대중이 페미니즘에 질려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사회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 역시 하향세를 걸었다. 대신에 80년대에는 페미니즘이 여성학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운동권 측에서는 여전히 학계의 남성편향성이 심하기 때문에 주류편입에 따른 보수화와 타협을 우려했다. 그러나 여성학은 운동으로서의 언어를 학문으로서의 보편 언어로 정제하여 페미니즘의 깊이를 한층 더 난해 심오하게 만들어주었다.

3.4. 제3파(3세대 페미니즘) [편집]

90년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학과 퀴어이론의 영향으로 2세대와는 선을 긋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했다. 이들은 2세대에 비하면 정치적 운동으로서의 성격은 약했지만, 대신에 일상의 페미니즘을 주장했다. 정신분석학, 포스트 모더니즘, 생태주의 등 다양한 학문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페미니즘의 새로운 흐름을 창출해냈다. 그리고는 어떤 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삶에 페미니즘을 맞췄다.

제2파에 이어 보다 여러 분파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 시기부터 '여성주의'의 범위에서 벗어나 서구권, 백인, 중산층 여성 등의 권리뿐만 아니라 제3세계, 제 3, n개의 성 등의 "교차성" 담론에 도달하였다. 즉 제2파에서 전제되어왔던 소위 '여성문제'라는 것이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로 규정되는지 의문이 일었고, 학계의 논의가 진전됨에 따라 여성과 여성문제를 일반화된 범주로 인식하는 것은 오류라는 합의에 이른 것이다. 예컨대 같은 여성이라도 무급가사노동에 종사하는 30대 히스패닉 여성과 고소득 전문직을 가진 50대 백인 여성의 삶의 양식은 크게 다르다. 이들이 겪고 있는 삶의 문제를 모두 '여성문제'라는 프레임에 끼우는 것이 아니라 n개의 성, 내지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 등의 개념을 통해 좀더 넓은 범위에서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 현대 페미니즘 학계의 주된 경향이다.[26]

n개의 성에는 생물학적 남성과 그 속의 수많은 젠더, 섹슈얼리티가 모두 포함된다. 요컨데 현대 페미니즘은 여성만이 아닌 다른 소수성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교차 페미니즘, 트랜스 페미니즘, 아나코 페미니즘, 우머니즘과 같은 다른 소수자와의 연대, 여성내에서의 차별을 주장하거나 아나키즘등 사상을 결합한 페미니즘이 3세대 페미니즘에 들어간다. 립스틱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도 3세대 페미니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근래 한국에서는 래디컬 세력에 지친 일부 이들이 교차 페미니즘을 주장하기도 한다. 다만 교차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성소수자, 트랜스 여성과의 연대를 거절하거나 되려 타도하는 래디컬한 교차 페미니스트 내지 TERF도 있긴 하다. 다만 현대 선진국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대안, 신좌파와 페미니즘의 결합을 주장하는 이들과 인권을 키워드로 삼은 이들이 주가 되고 있어 연대파가 강하다.

4. 분파[편집]

페미니즘의 분파

자유주의 페미니즘
(liberal feminism)

래디컬 페미니즘
(radical feminism)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intersectional feminism)


페미니즘은 범위가 매우 넓으며 폭넓은 사상답게 수많은 분파가 있어 페미니즘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단 그 넓은 범위안에서도 지지가 많은 분파도 있는 반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분파도 있는 등 분파별 사회적 노출과 영향력에 격차가 존재한다. 하기된 분파들은 서로 공유하는 이론도 있고 공유하지 않는 이론도 있기 때문에 특정 분파의 페미니즘이라고 해서 다른 페미니즘과 완벽히 분리된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27]

앤 카플란은 페미니즘을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28],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으로 나누었다. 여기에 로즈마리 통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추가했으며, 이들 다섯 가지 분파는 대부분의 여성학 교재에서 공통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 밖에도 보수주의 페미니즘, 레즈비어니즘, 에코 페미니즘 등으로 나뉜다. 흔히들 페미니즘이 진보적 사상이라고 불리지만, 스스로를 보수적인 페미니스트들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여성 인권 신장을 분석하는 다른 학문이나 문제에 접목하는 과정에서도 여러가지 분파가 갈리게 되었다. 즉 아나키즘처럼 좌우 관련이 없는 사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한국에서는 과거 NL, PD나 민주당계 정당 등 진보 성향의 단체들이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유사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다. 현재도 정의당,민중당, 노동당 등에서는 온건한 페미니즘을 추구하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 내에도 관련된 인물이 몇몇 존재한다.

녹색당이나 노동당,정의당 내부 생태사회주의/페미니스트 그룹[29][30],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와 사회운동위원회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종종 녹색당은 급진주의 페미니즘와 생태주의가 결합된 에코 페미니즘을 종종 부르짖는다. 그 외에도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도 여기에 속한다.

노동당[31], 정의당[32] 같은 구좌파 계열 정당이나, 우리미래, 인권정당 등 신생 신좌파계의 정당들이나, 더불어민주당 친이재명계는 제3파 이후에 갈라져 나온 대안적인 페미니즘을 부르짖는 경우가 많다. 트페미, 쭉빵카페 등은 사실상 메갈 2중대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지만 현재는 메갈-웜과 달리 남성 성소수자, 트랜스젠더와의 연대를 주장하거나 래디컬을 거부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33]. 이는 여성시대-메갈리아-워마드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전체적 분위기에서 나온 기조라는 설도 있다. 한편 소수자 운동권에서도 주로 교차 페미니즘같이 대안적인 방안들을 모색하곤 하지만,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세력도 있다.[34]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볼셰비키그룹을 비롯한 극좌파 사회주의 운동권 조직들과 법외정당(즉, 법적 지위는 노동운동 단체임)인 사회변혁노동자당의 학생위원회와 사회운동위원회를 제외한 나머지 당원들이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페미니즘과 사회주의가 양립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들의 사상이 페미니즘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

4.1. 자유주의 페미니즘 (리버럴 페미니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자유주의 페미니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급진적 페미니즘 (래디컬 페미니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급진적 페미니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3. 교차 페미니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교차 페미니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모든 여성이 겪는 성차별은 같지 않다는 페미니즘으로,이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이 여성들 간의 평등에도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고, 남성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에도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4.4. 트랜스페미니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트랜스페미니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5. 사회주의 페미니즘[편집]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이 자본주의에, 래디컬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그 둘 모두 여성억압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소위 '이중구조'의 억압이론. 즉,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밝혀내고 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에서 가부장제를 동시에 타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당연하게도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는 운동 정파로부터는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상정하여 공격하고 '남성 권력'에 맞선 '젠더 투쟁'을 추구함으로써 노동계급 분열에 앞장서고, 이를 통해 자본가 계급의 분할 통치 전략에 동조하는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을 받는다. 사실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공통된 비판이긴 하지만, 얘네들이 '자본주의 분쇄'와 '남성 권력 분쇄'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분쇄'의 필수요소인 '모든 장벽을 초월한 전 세계 노동자의 일치단결'을 방해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똑같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던 정파가 존재하는 노동자연대와 노동당(물론 2016년 기준이다.), 사회변혁노동자당(학생위, 사운위 한정)이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 둘의 차이점을 잘 알 수 있다. 노동자연대는 정신의학 전문가, 범죄 심리학 전문가들의 입장에 따라 이 사건을 '조현병 환자가 여성에 대해 품은 피해망상으로 인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일으킨 묻지마 범죄'라는 입장을 취한다.[35] 반면 노동당과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 및 사운위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을 따라 이 사건을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고 남성들의 의식을 뿌리 깊게 지배하고 있는 '여성혐오'로 인해 일어난 여성혐오 살해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4.6.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후기 구조주의적 여성주의)[편집]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을 둔 페미니즘이다.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주디스 버틀러가 있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n개의 성' 담론이나 '옷장' 담론으로 유명하다. 모든 인간은 독자적인 젠더를 갖고 있다고 보며,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부조리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퀴어하다". 여성성이나 남성성 같이 정체성으로 성을 규정하는 것은 결국 실재하는 것이 아닌 이미지로 덮어씌우지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가부장제자본주의 등의 억압에 대해서는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활동가들이 다른 페미니스트들과는 다르게 화장이나 옷차림을 '일부러' 더 신경쓰는 식의 방식으로 성에 관련된 이데올로기들을 조롱하는 실천을 하게 만든 기반이 된다. 이런 해결방식은 장 보드리야르 식의 해결방식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의도는 어쨌든 남성사회에 순응하라는 식으로 비추어져서 다른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을 사기 딱 좋다. 항목참조. 억압의 주체에 대한 관점 역시 좌파 페미니즘 입장에서 보면 딱 "너네 저항 무쓸모"로 보일 여지가 있기 때문에.

<메두사의 웃음>(1975)에서 '여성적 글쓰기'를 주장했던, 프랑스의 작가 엘렌 식수(1937~ )도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에 속한다.

벨기에의 뤼스 이리가레(1930~ )는 <하나가 아닌 성>(1977)에서 정신분석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페미니즘에 접목시켰다.쥘리아 크리스테바(1941~ ) 역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에 속한다.

4.7. 보수주의적 페미니즘[편집]

conservative feminism
기존 자유주의나 좌파-진보 연대쪽에 거부감을 많이 갖는 보수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의 이론으로 여성 권리 신장을 외치지만 사회 이슈적인 면에서 윤리-도덕을 강조하며 보수성을 많이 띠는 페미니즘을 말한다. 주로 우파 세력의 여성들이 이 포지션에 많이 속해있다. 대표적으로 성문화 개방이나 낙태, 성 상품화를 반대하고 기독교 우파쪽과 연대해서 보수성을 띄는 신앙적 페미니즘, 또는 우익 국가주의자들이나 신보수주의자들과 연대하여 여성에 대한 보호를 명분으로 사회문화에 대한 검열을 적극 찬성하는 보수적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YWCA의 일부 보수적인 인사들과 이들이 소속된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이 쪽에 속한다. 외국에는 세라 페일린이 있다.

그런데 대체로 보수 우파계열은 가부장제와 남성성을 더 숭상하는 경향이 있고, 오히려 여성인권을 후퇴시킨다는 비판이 있기에 보수주의적 페미니즘은 '아이스 핫커피', '둥근 삼각형'과 같은 형용모순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추가로 낙태 반대, 성 개방화 반대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는데, 왜냐하면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하는 억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8. 스피리추얼 페미니즘[편집]

이 페미니즘은 여성성에 자연과 연결되는 신비성이 있다고 하는 생각으로,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사회사상이라기 보다는 종교나 오컬트 성이 강한 것이다. "고대에 모권제 사회에서 부권제 사회로의 이행은 초자연적인 원리에 따른 것이었다"는 등의 주장이 스피리추얼 페미니즘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여성 버전이란 비판을 받는다.

4.9.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즘[편집]

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식민지가 독립하면서 식민지라는 특수환경을 고려하여 여성 억압을 보는 관점. 국내에서는 주로 위안부(일본군 위안부)[36], 양공주(주한미군 위안부)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민족주의 계열 활동가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할 때 주로 택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4.10. 에코 페미니즘 (생태여성주의)[편집]

에코 페미니즘(ecofeminism)은 페미니즘에 생태주의을 결합시킨 사상이다.

생태주의(ecologism)는 환경 문제를 제도적 차원에서만 접근했던 환경주의를 거부하고 사회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한 사상이다. 이들은 환경 문제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문제와 연관지었으며, 생태 위기가 인간의 자연 지배와 착취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연 해방을 추구했다. 자연 억압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는지에 따라 생태주의는 분파가 나뉘었다. 심층생태주의는 인간중심적 사고를 문제삼았고, 사회생태론자는 국가의 권위주의 구조를 문제삼았으며, 생태사회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문제삼았다. 반면에,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자연이 여성성과 연관되어 왔기 때문에 자연 억압 역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자연 해방과 여성 해방을 같은 맥락에서 파악했다.

여성이 사회에서 남성들에 의해 무시되고 억압되는 사회현상을, 인간이 자연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려 하고 자연 파괴를 일삼는 사회현상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즉 사회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또한 여성은 남성들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동일시하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두 생태주의와 여성주의는 연관된 것이라 주장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생태여성주의는 양성에 대한 차별의식은 이원론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모든 관점에서 이원론적 관점을 배제한다. 또한, 단순한 이성이 아닌, 극단적 이성주의도 반대하며, 특히 남성주의(정확히는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주의에도 반대한다.

생태여성주의는 인간과 자연을 통합시켜 똑같은 권리를 누릴 존재로 인식하였다. 또한, 생태여성주의는 기존의 여성 운동과 환경 운동에 대한 수단 제시를 새롭게 제시하였는데 가령, 여성 운동은 사회적으로 남성의 권위와 거의 '똑같아질 정도'의 권위향상만으로는 만족해서는 안 되며,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완전히 없애고, 남성과 여성과의 양성평등 인식을 후대에서 널리 전할 수 있도록 여성 운동은 항상 직접적인 행동과 파격적인 권위향상을 조건으로 내걸어야 하며, 환경 운동 또한, 고액의 보수를 들여 만든 친환경 사업일지라도 그것은 환경 운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생태라는 것은 애초에 물질적인 것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환경 자체를 보존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환경 운동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사 그것이 미미하게 지구 생태에 영향을 주는 친환경적인 정책 및 설계일지라도, 생태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하기 때문에, 이를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만약에 이러한 여성 운동이 일어나지 못할 경우 여성은 언제까지 사회적으로 남성보다 권위가 아래일 수 밖에 없으며, 환경 운동 또한 기존의 방향으로 고수하여 실행한다면, 서구권 처럼 단순한 오염물질 폐기시설 설치, 고액의 친환경설비 건설로만으로 만족하는 본질없는 환경 운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37]

이에 대한 비판으로 캐런 워런의 비판이 있다. 그는 인디언 수 족의 예시를 들어 이를 반박했다. 수 족은 매우 자연친화적인 부족으로 위의 생태주의에 충실히 따르는데 정작 여성인권은 최악을 달린다.[38] 이것을 두고 엘슈테인은 생태주의와 여성주의가 항상 연결되는 것은 아님을 지적했다. 그리고 자연-여성을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 가부장제에 의해 규정된 여성성을 진실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오히려 여성억압을 조장한다고 래디컬 페미니스트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39]

에코 페미니즘은 다시 두 개의 부류로 나뉜다. 사회적 에코-페미는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이 서구 이분법적 사고에서 유래했다고 보고 자연 해방과 여성 해방을 동시에 진행했다. 반면에 컬추럴 페미의 영향을 받은 문화적 에코-페미는 자연과 여성은 합치되기 때문에 이러한 연관성을 강화시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했다. 메리 데일리수잔 그리핀은 후자에 속했다.

이 운동은 1970년대 시작으로 1990년대 부터 여성 운동의 큰 폭을 차지하고 있다. 반다나 시바로 인해 유명해졌다. 반다나 시바는 칩코(Chipko) 운동을 통해 에코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신학자 현경의 저서 <결국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를 통해서 알려졌다. 원래 1세대 페미니스트에 해당되는 현경은 진보적인 성향의 신학대인 유니언신학대에서 아시아 여성 최초로 종신 교수가 되었다. 특이하게도 기독교 신학자이면서도 불교의 영향을 받은 범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페미니즘이며, 모성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최근 우리나라에서 주로 알려진 래디컬 페미니즘과는 사상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극단적인 대립을 피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라면 논란을 일으킬 만한 표현도 있다 예를 들면 이슬람 여성들은 맞서 싸우려 드는 서양의 페미니즘보다는 한국의 기생 문화에서 배울 게 더 많다고 얘기해라든가.링크

4.11. 성적 차이 페미니즘[편집]

성차(sexual difference)의 페미니즘이라고도 불린다. 벨기에 출신의 프랑스의 여성학자 뤼스 이리가레에 의해 주창된 분파이다. 대충 컬추럴 페미니즘에서 주장한 남성-여성간의 특유한 차이를 인정하되 컬추럴 페미니즘의 다소 나이브한 면들을 제거하고 대신 그 부분들을 언어학적, 사회구조적, 정신분석학적 연구로 대체했다. 느낌상 컬추럴 페미니즘 + 사회주의 페미니즘 정도로 보면 된다. 이리가레의 이론은 첫째, 남성성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둘째, 여성성을 새롭게 발견해내고, 셋째,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간주체성을 탐구하는 데로 나아간다. 성적 차이, 혹은 성적 차이의 윤리라고 할 때는 이 셋째 측면에 강조점을 두는 것인데,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성성의 새로운 발견도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이 여성성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지점이 성적 차이 페미니즘과 컬추럴 페미니즘을 나누는 부분이기도 하다. 컬추럴 페미니즘이 기존에 있는 여성성을 긍정하는 경향을 지니는 반면, 이리가레는 기존의 여성성을 남성에 의해 규정된 여성성이라고 보아, 여성에 의한 새로운 여성성의 발견을 강조한다.

한국에서는 사회진보연대와 전국학생행진 정도가 성적 차이 페미니즘을 따르는 편이며, 여성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여/성이론>에서도 종종 이리가레의 이론이 소개된다.

4.12. 다윈주의적 페미니즘[편집]

찰스 로버트 다윈이 1859년 출간한 '종의 기원' 이라는 책에서 비롯된 페미니즘. 당시 다윈이 제시한 성 선택은 '암컷은 알을 만들거나 임신 등으로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므로 보통 암컷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수컷은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심지어는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먹이를 물어다주고 갖은 공을 들여 집과 둥지를 지어주기까지 한다.'는 등의 사회적으로 매우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거의 100년 가까이 묻혀 있었던 학문이었다. 한 때 크게 불거졌던 진화론 및 진화심리학과 여성학의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4.13. 흑인 페미니즘(우머니즘)[편집]

복합문화 페미니즘의 분파이기도 하며 '블랙 페미니즘'이라고도 한다. 마틴 루서 킹맬컴 엑스가 한창 활동하던 무렵에 태동하였으며 미국의 흑인 시인 앨리스 워커에 의해 제시된 분파이다. 1960년대 당시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철저히 중산층 이상 백인 여성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백인 여성보다 열등한 흑인 남성"이 투표권을 먼저 얻은 데 대해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당연히 그들과는 성장 배경부터 다른 흑인 여성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었다. 우머니즘 계열에서는 미국에서 흑인여성에게 행해지는 억압을 예로 든다. 그들은 미국에서 흑인여성은 먼저 백인여성에게 "흑인"으로서 억압받고 과거 인종차별에 대한 복수로서 백인여성에 대해 성폭행을 자행하는 흑인남성들이 백인여성을 흑인여성보다 더 상위인 것으로 봄으로서 일종의 도구로 취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머니스트들은 이 사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는 성문제에만 국한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인종간, 계급간의 문제들도 성문제와 차별됨이 없이 동등하게 고려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주 담론이 인종 차별을 당하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4.14. 이슬람 페미니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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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위키백과


Islamic feminism

이슬람권에도 페미니즘 운동가들이 있다. 무슬림들에게는 절대적인 진리이자 불변하지 않는 계시라고 믿어지는 쿠란을 근거로 원래 이슬람은 성평등을 추구하는 종교인데 여성혐오적인 전통주의자들(이슬람 이전의 토착풍습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해석하고 이슬람 이전의 악습들을 비판없이 받아들여서 이 모양이 됐다고 주장하는 무슬림 페미니스트가 생겼으니, 이들의 사상이 바로 이슬람 페미니즘인 것이다.

20세기 초반 이슬람 사회는 서구문명의 유입과 동시에 탈아입구 사상을 기반으로 중동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을 배제하고 서구 페미니즘 담론을 비판 없이 수용하기 시작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같은 인물들이 주창한 급진 세속주의는 터키이집트에서 민족주의와 결합해 반제국주의적 의식 각성에 기여한 바가 있다. 이를테면 중혼금지, 종교정치의 분리, 남녀보통선거, 여성의 사회진출에 있어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이슬람권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오늘날에도 많은 흔적을 남겨놓았다.

문제는 세속주의 공화국 정권 하에서도 제국주의적 침탈이 가속화되면서, 전통적인 이슬람 문화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보다 과격하게 변하고, 이들이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소수의 도시민에 비해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농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함에 따라 페미니즘은 민주주의, 세속주의와 마찬가지로 서구에서 온 타락한 사상일 뿐이며 이들은 이슬람의 윤리적 관점에서 볼때 타락했다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서구의 영향을 받은 기존의 페미니즘 운동은 터키를 제외하고는 딱히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슬람 페미니스트들은 쿠란의 재해석을 통해 남녀평등을 쿠란에서 찾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또한 쿠란을 해석함에 있어서 텍스트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텍스트가 쓰여진 당시의 시대적, 역사적, 문화적 상황을 고려해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해석에서 이슬람이 일부다처제를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 장인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보고 그들의 재산을 관리하되, 제대로 관리할 자신이 없으면 그들중 하나와 결혼하라.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좋다." 라는 구절이 무함마드의 시대 당시 메카군에게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쓰여진 구절임을 들어 이것은 당시 유목민의 풍습상 한 집안 혹은 부족의 재산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위해 형사취수 하던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지 남자가 다수의 여자를 소유하라고 써 있는 구절이 아니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히잡 또한 당시의 시궁창같은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던 것이지 오늘날에는 성폭력방지를 위한 각종 법적장치가 있고, 사람들의 인식도 당시보다는 개선된 상태이므로 굳이 히잡을 강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40], 히잡이나 니캅 등을 쓰는 것은 여성의 자유라고 보는 해석도 있다. 이들은 이슬람권에서는 강제로 입히는 사회 분위기와 싸우고, 서구권에서는 강제로 벗기려고 하는 사회 분위기와 싸운다.

현재까지 완성된 이론도 아니고, 이 이론을 주창하는 학자들이 거의 대부분 파키스탄, 미국 등 비 아랍권출신이라는 점이 상당한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이러한 움직임 또한 존재한다. 잘 알려진 운동가로 무크타르 마이(Muhktar Mai, 1972~ ),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이 있다.

4.15. 아나카 페미니즘[편집]

아나카 페미니즘(Anarcha-feminism)은 아나키즘과 페미니즘을 결합시킨 사상이다. 그래서 '무정부주의적 여성주의'라고도 하지만, 최근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하는 데 문제 제기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탈권위주의, 반강권주의, 비권력주의' 등으로 번역하거나 원어 그대로 아나키즘으로 음차하는 것이 추세이다. 따라서 무정부주의적 여성주의라는 표현은 자제하는 편이 좋겠다.

이들은 가부장제를 분권화된 자유연합으로 교체되어야 하는 강제적 위계구조로 파악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가부장제와의 투쟁을 계급투쟁과 무정부주의적 투쟁의 연장 선상으로 파악한다. 리버럴과 비슷하게 자유 연애를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볼테린 드 클레어(1866~1912)엠마 골드만(1869~1940) 등이 있다.

엠마 골드만은 리투아니아 출신의 아나키스트였다. 그는 18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모든 정치 권력을 반대하는 아나키즘 운동을 벌였고, 자유연애를 신봉했다. 1919년 미국은 그를 러시아로 강제 추방했지만, 여기서도 볼셰비키에 맞서다 망명 생활을 겪게 됐다.

4.16. 뚱뚱한 페미니즘[편집]

뚱뚱한 페미니즘(Fat feminism) 또는 몸 긍정 페미니즘(body-positive feminism)이라고 한다. 최근 영양의 과다 섭취로 인해 비만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뚱뚱한 사람에 대한 사회 인식은 나빠지고 차별 받기 쉬우며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차별 속에서 1960년대 지방 수용 운동이 생겼으며 뚱뚱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수용 할 것을 요구했다. 이 운동과 페미니즘이 만나 뚱뚱한 페미니즘의 개념이 탄생했다. 이들은 비만인 신체에 대한 사회 인식에 반발하여 주위의 시선이나 비판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신체의 행복함을 위해 생활한다. 뚱뚱한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옷을 거리낌 없이 입고 힘들게 다이어트를 장려하지 않는다. 말그대로 뚱뚱한 것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행복함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이다. 더 나아가 비만인 인물도 차별 없이 방송에 출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 이들은 자신들의 수용을 바랄뿐이지 과체중이 아닌 사람을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국내에서는 외형적인 것을 남녀 모두 중시 여기는 풍조가 있어 큰 설득력은 얻지 못하고 있다. 또한 외국에서도 역으로 뚱뚱하지 않은 체형을 배척하거나, 남성이 뚱뚱한 것은 여전히 보기 좋지 않다고 여기거나, 아예 비만이 건강에 문제가 없으나 그렇게 여겨지는 것은 비만 혐오 때문이라는 등, 방향이 엇나가는 경우가 많이 보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논란 하의 문제에 있는 사상.

4.17. 성 긍정 페미니즘[편집]

성 긍정 페미니즘(Sex-positive feminism)이란 성적 자유가 여성 해방의 필수 요소라는 페미니즘 사상을 일컫는다. 성 긍정 페미니즘과 안티 포르노 운동가들의 설전은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대목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페미니즘 관련 이론서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은 세력인 것처럼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페미위키에서도 성 긍정 페미니스트들을 성자유주의자들로 퉁치고 있는데, 성 긍정 페미니스트들은 리버럴 페미로부터 영향받은 성적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있는 반면에, 래디컬 페미의 기본 논조를 계승한 성적 급진주의 페미니즘도 존재한다. 오히려 자유주의자라기보단 래디컬 페미니스트에 가까운 쪽이 훨씬 많다.

성 긍정 페미니즘에선 기존의 페미니즘에서 간과한 개념으로 '섹슈얼리티'를 말한다. 이들은 가부장제 사회가 이제껏 인간의 섹슈얼리티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위계를 구분하고, 동성애, BDSM, 포르노 등의 성적 양식들은 비정상라고 취급당하고 일방적으로 억압받아왔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성 긍정 페미니즘은 여성의 성적 자유나 에 대한 문제를 심도 있게 얘기하며, 성적 자유에 부정적이거나 TERF 성향인 사람들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페미니스트에게도 포르노가 필요하다며 페미니즘 포르노를 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게일 루빈, 캐시 애커, 니나 하틀리 등이 있다.

5. 논란[편집]

2016년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페미니즘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123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123이 동시에 커짐으로서 양측 사이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닌게 세계 여성의 날에 유튜브 자체에서 영상을 올리고 댓글에는 수많은 반대의 댓글이 달리고 비추천이 찍히는 등 외국에서도 안티페미니즘적인 시각이 늘어나는 상황. #

이 문단을 읽기 전에, 해당 문단에는 페미니즘과 여성우월주의, 또한 페미니즘 그 자체가 아니라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악용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구별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어떤 문단이 어떤 주장에 대한 비판인지는 스스로가 판단해야 오류 없이 비판을 이해할 수 있다.

5.1. 진짜, 가짜 페미니스트?[편집]

예전에 한국에서는 '여성을 배려하고 여성을 위해 온갖 힘든일과 봉사를 마다하지 않는 남성'이나 '남성이 할 일도 할 수 있다며 도맡아서 하는 여장부'를 페미니스트로 생각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과거에나 유효했었고 아주 좁은 의미에 한정된 페미니즘으로 여겨지고 있다.[41]

세월에 따라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였고 요즘은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며 성별과 관련된 한 사회적으로 올바른 주장만을 펼치는 이'로 통용되는 편이다. [42] 인식이 대체로 그러하다는 것이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페미니즘을 위의 정의로 인정하고, 그에 해당하는 주장을 펼치는 자에 대해서는 '진짜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즐겨 쓰이게 되었다. 일련의 의론에서 여성 우월주의, 역차별 논리 등의 해석을 악용하여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자들은 '진짜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가짜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의 탈을 쓴 ~', '페미나치' 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즘의 전파 과정에서 성평등을 강조한 바 있고, UN 헌장 등 또한 성평등에 기반한 정의를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또는 그렇게 자칭하는 자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사회적으로 올바른 주장을 펼친다' 라고 정의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그 예시로,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이 각각 '공산주의', '자유주의',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것처럼 페미니스트 또한 넓은 의미에서 단순히 '페미니즘'을 신봉하는 이들을 일컬을 뿐이다. 앞서 나열한 사상이 선악에 기반해 판단될 수 없는 것과 같이 페미니스트들의 주장 또한 단순히 '페미니즘에 기반한 다른 주장'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는 이상과 사상의 근본적인 차이이기도 하며, 생각하는 방식과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포함하는 '사상'으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즉, 페미니즘은 수단적 의미로써의 사상이지 궁극적 도달점으로써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페미니즘의 기반 이론이 그 주장의 온건함이나 (일반적인 의미의) 절대적 성 평등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에 기반해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그의 주장이 도덕적인가, 사회적으로 올바른 의견인가, 성평등에 기반한 의견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접근 방식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실제로 과도한 방책으로써 역차별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음은 이미 문제시된 바 있다. 특히 현대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이 가부장제 기반 담론이기에, 이에 대해서 여성의 참여가 높고 논의 대부분은 여성 권리의 신장, 불평등의 해소에 대해 일어나기 때문에 여성우월주의나 성별 이기주의로 빠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자기검열의 책임을 성차별주의자들보다 페미니스트들에게 보다 강력하게 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페미니스트들 입장에서 이런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라는 평등과 이상에 기반한 이념에서마저도 여성의 투표권은 배제했었던 역사가 있는 와중에, 여성 주도의 페미니즘 말고 그 다른 어떤 사상이 여성인권을 높여주었었나?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기 힘들다. [43] 또한, 페미니즘이 성평등에서 멀다고 주장하는 안티페미니스트들도 그러면 뭐 다른 어떤 방식으로 성평등을 추구하면 되는지에 대한 대안을 내놓는 데에는 별로 집중하고 있지 않다. [44]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과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결별한 뒤에 나타난, 2파 이후 현대 페미니즘의 기본 전제는 '역사 이전부터 뿌리깊게 내려온 남성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이 존재한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다. 이는 가부장제(patriarchy)로 대표되는 개념이기도 하며 성 역할 고정관념과 같은 사상적 형태로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가부장제 등이 잔재한 사회적 구조 안에서 가부장적 사회를 살아가는 한 성차별은 피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해 성 역할에 근거한 사회적 고정관념을 해소하고 성적 불평등을 해소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있다.

페미니즘 분파는 다양하나, 대부분의 현대 페미니즘 분파가 여기까지는 기본적인 전제나 이론의 틀로써 인정한 바 있다. 이 중 페미니즘의 일파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구조를 철저히 파괴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기존 가족 구조의 대체, 성 구분의 소멸 등으로 완전한 남성 중심적관념의 파괴를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래디컬(radical) 페미니즘은 이러한 방식 중 급진적이거나 과도한 파괴를 행함으로써 이에 대한 해소가 더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수단으로 남성 도태(정확히는 남성성 도태), 여성우월주의(!)의 전파 등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와 비판을 알고 싶으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항목 참고. [45]

한편, 사회주의 페미니즘 등에서는 다른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구조를 유지시킨 채 기존 사회관념에서 묵살되었던 여성 권리, 또는 성적 불평등에 기반한 권리를 신장시킴으로써 성 평등 구조를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권리는 인권일 수도 있으며 경제권일 수도 있고 여타 다른 사회문화적 권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방식을 유지한다면 언젠가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구조를 부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얻게 되며 그 때 비로소 여성의 해방, 성적 불평등의 해소가 일어난다고 보는 것 등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46]를 비롯한 특정 여초사이트의 상당수와 여성가족부를 주로 페미니스트로 본다.

사실 이런 논의는 굉장히 공허한 논쟁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지금 여시나 메갈, 워마드등이 보이는 각종 작태들은 이미 서구에서 래디컬 페미니즘 계열이 보여주었던 행동양식과 대단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앤 테일러 플레밍의 "만일 내가 지금 임신하게 되면 당장 낙태를 해버리겠다"는 소리나, 밸러리 솔라나스 같은 살인미수 범죄자 등이 설치는 꼴만 봐도 대한민국 인터넷 상에서 퍼진 페미니즘은 흔히 알고 있는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좋고 옳은 것"이라는 순진한 편견과는 달리,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적이 많은 래디컬 페미니즘도 엄연히 페미니즘이다. 사실 이런 편견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게 대한민국이든 미국이든 주류 페미니즘은 대중에게 지지받는 리버럴 아니면 교차이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맥락에서 대학을 포함해 각종 연구에서는 페미니즘을 활용하지만, 정작 본인은 실현할 의지가 별로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 경우 학문으로서 페미니즘을 연구하여 출세의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일명 '강단 페미니스트'. 이는 정치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어쨌거나 이들도 가짜 페미니스트임에는 틀림 없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니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5.2. 여성 보호에 대한 반대[편집]

한국에서 무조건 여성을 보호하려는 사람을 페미니스트로 보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잘못된 것이다. 위에 열거된대로 페미니즘에서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약한 여성은 무거운 짐을 들면 안된다", "약한 여성과 싸워서는 안된다"는 등의 발언은 여성을 남성에게 의존하고 보호를 받는 약자로 간주하는 가부장제의 소산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여긴다. 페미니즘에서 여성에 대한 보호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성을 보호하려는 것 자체와 페미니즘이 일대일 대응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여성의 권리증진과 피해약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는 보호라고 볼 수는 있다. 다만, 그 주체가 남성이 부여하는 게 아니라 제도적 압력과 사회적 인식변화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몇몇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만든 여학생 휴게실은 많은 부분에서 남여학생의 차별이 개선된 지금에도 성추행의 위험으로부터의 자유, 여성의 흡연을 백안시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함축되어 있다는 명분으로 아직 존재하고 있다.[47]

주로 아마존 페미니즘 계열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스포츠에 참여해 신체를 단련하고 힘을 기를 것을 강조하며, 많은 경우에 군대 역시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대에는 상당수의 국가에서는 직업군인으로 여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90년대 여성단체에서 여성의 평등한 군 참여 확대를 주장하며 운동을 벌인 바 있으며 심지어 일부 여성주의자들은 여성도 군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여성징병제에 찬성하는 것이 주류는 아니다. 이는 대다수 여성주의 단체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군인이 되도록 나라에서 강제하는 징병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워낙에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다른 국가에 비해 이 문제에 대한 대립이 첨예하다. 권리와 의무가 같이 가는 것이라면 여성이 군대를 가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많다. 그렇지만 이것이 남성혐오적인 것은 아닌게 이런 단체들은 사실 모병제가 맞다고 보고 있으며 남성들에 대한 징병은 법률이 규정하고 있으니까 하는 것이지 남성만 징병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2세대 페미니스트들을 중심으로 남녀평등 수정헌법 운동이 반짝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반페미니스트들 및 보수적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그 법이 통과되면 여자도 징집당한다고 약을 팔아서 침몰당한 적도 있다(...) 물론 여성징병 문제가 운동이 파토난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꽤 큰 영향을 미쳤다.

5.3. 집안일과 사회활동[편집]

“설거지, 세탁, 화장실청소, 기저귀 갈기 같은 집안일은 창조성도 필요하지 않고 더럽고, 명예도, 돈도 되지 않으며 일생을 바쳐도 역사에 이름도 남지 않고 존경도 받지 못하는 하찮은 육체노동이다.” - 와카쿠와 미도리

초등학생 2학년 아들과 4개월 된 딸을 키우는 38세의 전업주부의 경우 음식 준비 및 정리 시간 3시간 30분 *세탁, 다림질, 바느질 등 의류관리 1시간 30분 *청소 및 정리 40분 *시장 보기 등 가정관리 관련 물품 구입 30분 *가계부 정리, 은행, 관공서 일 보기 등 가정경영 30분 *미취학 자녀 보살피기 5시간 * 초등생 자녀 보살피기 2시간 *배우자 보살피기 20분으로 김씨의 1일 총 가사노동시간은 14시간. 이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432만 9000여 원이 된다고 한다. -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산정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

대개는 밥을 먹기만 하는 쪽은 남성, 밥을 해야만 하는 쪽은 여성이다. - 조주은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이 집안일에 종사하는 것을 남성중심사회와 가부장제의 억압으로 보고 있다. 가사노동이 '여자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는 것 자체가 그 가치를 격하시키고, 여성을 집 안에 묶어놓고, 사회적 약자로 만드는 구조적 억압이라는 것. 가사일=쓸모없는일이라기보다는 가사일=하찮은 일=근데 여자는 무조건 해야함 왜냐면 여자일이니까 라고 박혀 있는 사고방식 자체가 여성을 억압해왔다는 쪽이다. 다시말해 이렇게 구조화된 억압으로서의 가사일이 여성의 자아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는 주장. 따라서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이 집안일(사적 영역)에서 해방되어 자아 실현과 자기 가치의 발견을 위하여 사회활동(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런 기존의 관점은 이 역시도 가사노동이나 육아, 즉 돌봄노동을 하찮고 능력없는 여성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부딪히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남성이 여성의 사적 노동을 폄훼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

하지만 어떤 역할이 다른 역할보다 가치가 낮다는 것이냐, 라는 것은 이슈의 본질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역할을 강요받아야 하느냐 라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 제기이며, 이는 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족 부양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집안일에서는 소외되어야 하느냐 라는 질문으로도 연장될 수 있다. 즉, 직업이든 집안일이든 성별에 의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역할에서 멀어지거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다른 역할을 강요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페미니즘에서는 돌봄노동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직업이 있는 여성 vs 전업주부의 구도를 폐지하려는 추세. 집안일과 주부를 가사노동과 가사노동 종사자라는 개념으로 대치시키는 것 역시 페미니즘의 과제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사적 노동 자체에서 해방되는 것을 과제로 여겼다면, 지금은 사적 영역의 가치를 공적 영역에 맞먹는 것으로 회복시키는 것 역시 운동의 일환으로 편입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5.4. 임신과 출산[편집]

여성억압의 원인은 생물학 즉, 언제나 여성의 운명이라고 해온 불공평한 임신에 있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급진적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여성, 그러니까 암컷으로서의 (생물학적으로) 숙명인 임신출산,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아동 양육은 여성의 자주적인 삶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임신과 출산을 여성만이 하므로, 남성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임신과 출산은 공적 사회 영역에서 여성이 출세하는 데 방해가 되며, 아동 양육 또한 여성의 시간을 과도하게 빼앗아 여성의 사회 진출에 크나큰 장애를 만든다. 따라서 궁극적인 여성 해방은 과학적 방법(인공자궁의 개발 등)을 통하여 임신과 출산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48]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90년대 이후로는 인기가 시들한 상태이다. 현재 주류 페미니즘계에서는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노동이 아니라면 육아는 신성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더 크다. 당장 여성계에서 모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비혼을 끝끝내 고수하며 결혼보다 비혼이 낫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많다. 그러나 래디컬 페미니즘이 주류였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대놓고 결혼은 비혼보다 못하다고 발언하면 다른 페미니스트들로부터 타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기 딱 좋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페미니즘의 육아에 대한 시선은 상당히 많이 바뀌었음을 주목하자. 물론 그렇다고 여성에게만 육아 책임을 맡기는 어떤 사회 행태를 페미니즘이 긍정한다고 본다면 곤란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들에게 "엄마로서" 과도한 모성애 이미지가 부과되고 있다고 보는 페미니스트들은 존재한다. 이들은 모든 여성들이 필연적으로 자식 사랑을 하는 게 순리라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제 아이가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아요, 제가 비정상인가요?" 라고 묻는 여성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사회가 강제로 주입한 의무감을 내려놓으라고 확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 모성애는 "모성신화" 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가끔 등장하는, 남성은 몰라도 여성에게는 필연적인 모성애가 있다고 주장하는 측에 대한 반기이기도 하다.

EDEN의 소피아 테오도레스가 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한다. 해당 캐릭터는 인간의 신체를 하고 있을 때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전혀 사랑하지 못하고 방치하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입양시키는 인물이다. 그러나 뇌를 제외한 신체 전부를 기계로 대체한 이후에는 모성애 비슷한 것을 느낀 것인지, 혹은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인지 가상 가족 관계까지 형성하면서 부모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페미니즘과 비교해서 보면 꽤나 복잡미묘한 캐릭터.

5.5. 한국 사회의 성평등 정도[편집]

통계는 다양한 곳에서 대상만 바꾸면 순위가 천차만별 바뀔수 있는것이다. 실질적으로 본토 사회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즉 여성인권이 117위의 국가는 전혀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성(性)격차지수 (Gender Gap Index)에서 2014년 135개국 중 117위, 2015년 115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 통계는 내전과 집단강간, 여성할례, 명예살인 등이 일어나는 이슬람 아프리카 국가들이 한국보다 순위가 높은데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보다 약 7퍼센트 높은데도 불구하고 남성의 대학진학률이 110퍼센트를 육박한다는, 각 나라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통계를 내기도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단골로 인용하는 자료가 되었고 심지어 여성부 장관이 이 자료를 들어 해외에서 다음 생에는 남성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어처구니 없게 이야기 하여 또 한번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자료는 상당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보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

반면 UN에서 발표한 성불평등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09년 기준 11위로 미국, 뉴질랜드보다 높다.통계에 따르면 순위는 27위로 떨어졌다가, 17위로 다시 올랐다. 하지만 이 순위는 한국에서 격차가 가장 심한 소득 부분누락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임금격차는 10년 넘게 OECD 1위를 차지하고 있다.[49] 참고로 이에 대해 통계청은 “우리나라 여성은 결혼이나 출산 후에 직장을 아예 떠나거나, 아니면 전과 같이 전일제 근무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 출산률과 모성 사망률이 한국의 배경에서 여성 인권과 큰 상관이 없음에도 한국이 큰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50][51] 그러나 경제구조의 경우 후진국과 선진국, 동양권과 서양권의 차이가 두드러지고 여성의 종사직종, 경제력 부분에서의 남녀의 사회적 압력이 다르므로 성별에 따른 여기서 표시된 임금격차만으로 차별을 논하기는 힘들다. [52] 이에는 반론도 있는데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전일제·시간제 등 근로시간 형태와 직종을 포함하여 37.8%이다.[53] 다만, 임금격차의 경우 차별로 추정되는이라는 부분은 사실은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다. 실제로 차별적 요소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요인분석에서 포함시키지 못한 요인의 기원이라는 이야기. 실제로 차별을 밝혀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통계만이 아닌 실험이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OECD 응답 국가 32개 국가 중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으며 국가 지표 체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주당 36시간 미만 근로하는 여성 취업자의 수는 남성보다 약 천 여명 가량 많은데 비해 주당 36시간 이상 근무하는 남성의 수는 여성보다 약 오천여명 차이가 난다. 참고로 당시 취업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남자 46.0시간, 여자 40.4시간이였다. 이 자료는 해석하기에 따라 남녀싸움의 단초를 제공하게 되기도 한다. 일단 여성 측에선 입사과정에서부터 출산 혹은 육아로 문제로 인해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며, 그로 인한 경력단절과,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는 남성의 비율 또한 여성보다 많음을 들어 동등하게 진출하지 못하는 건 성차별의 영역이라 말한다. 또 남성은 위험하고 고소득인 직종에선 남성이 많고, 여성이 더 편하게 일하고, 남성이 더 많이 일하며, 소득차가 있어봤자 부담하는 세금이 더 많다고 말한다.

여성계 대부분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 성추행 문제도 그렇다. 성폭행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근절되어야 할 범죄이긴 하나, 이진욱이 무고하게 성폭행 죄를 뒤집어 쓴 것 처럼, 최근 남녀 서로에 대한 돈 때문에… 복수심에… 성범죄 무고죄 급증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무고죄는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을 하는 여성의 입을 막고 있으므로 선량한 남성들이 성범죄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인생이 박살나더라도 성폭력 케이스에 한에서 무고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며,# 무작위 대중에게 연예인들처럼 훼손될 명예갈취할 돈 없는데 니들은 왜 반발하냐는 차별적이고 비하 발언을 쏟아내는 중.

일부 페미니즘에서는 한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는 한국이라는 국가와 사회를 가부장제국가주의적 매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을 여성이 포함된 공동체라기보다는 여성이 배제되어 있는 '남성만의' 공동체로 여기며, 여성을 예속시키는 것으로 본다. 물론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며, 한국의 페미니즘도 그렇게 좁은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성향의 영 페미니스트, 환경 운동과 더불어 여성운동을 전개하는 에코페미니즘 계열, 기존의 리버럴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자들 등 그 스펙트럼은 서양의 그것과 비교해 많이 좁지 않다.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조금만 해 보면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납득 가능한 논지의 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요즘 알려진 여성가족부 이미지로 한국 페미니즘의 이미지가 굳은 것은 국민의 정부 시절 여성부가 만들어지면서 이 부서의 주류를 꿰찬 것이 상~중상위층 중심의 페미니즘이기 때문이다. 초기 페미니즘의 한계로 지적되는 상~중산층 이상 여성 위주의 특권의식과 다른 부류의 약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그대로 지닐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는 그 외의 부류의 페미니스트에게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않지만, 공인된 정부 부처인 만큼 여성가족부의 영향력이 매우 큰 것도 사실이므로 오히려 다른 파벌은 비주류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소위 '남성도 납득할 수 있는 논지의 주장을 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비주류 그룹이나 개인적인 활동에 불과하여, 법안 제출은커녕 제대로 활동 지원도 제대로 못 받는 입장에 있다.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이후 여러 사건들로 비주류 주류할 것 없이 전 부다 메갈리아같은 비상식적인 반사회집단을 성 대결로 보고 적극적으로 그들의 목적과 방법을 옹호하거나 혹은 극단적인 방법은 비난하더라도 소극적으로 그들의 목적이나 결과물을 지지하는 추태를 보임으로써 한국 페미니즘계 전체의 자정력을 의심할 지경까지 왔다.[54]

5.6. 원시 모계사회[편집]

남성 사냥꾼이 먹여살리는 일부다처 부계사회가 있었다는 기존 학설의 반박으로,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원시 공산주의'와 비슷한 설. 원시시대에는 모계사회가 있었으며 이것이 인간의 본래 사회 형태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만 현대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원시 모계사회', '군혼 사회'은 없고, 남녀 모두 비슷한 위치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실제로 수렵채집 사회에서도 일부일처제, 부계사회가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으며,이들의 수가 모계사회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추정된다. 아래 역사학 부분 참조.

5.7.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편집]

he for she 문서 참고. 성차별을 하지 않는 태도는 인류가 다함께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이다. 단 여성우월주의까지 수용할 필요는 없으며, 성평등과 페미니즘이 동일한 가치인 것은 아니다.

5.8. 섹시한 복장은 페미니즘에 반대된다?[편집]

국내 유명 쇼핑몰 대표 이희은 씨가 자신의 SNS에 섹시한 복장을 올리자 어떤 악플러가 그런 무개념짓이 여성 인권과 페미니즘을 후퇴시킨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이희은은 당신은 그런 댓글로 어그로 끌어서 페미니즘을 깎아내리고 싶어하는 반대파일 뿐이라며 본인이 입고 싶은 옷 입는 게 진짜 페미니스트라고 썼다.

“이런 무개념 때문에 한국 여성인권 바닥” 말에 쇼핑몰 대표가 한 말

물론 실제로는 페미니스트들은 섹시한 옷을 입는 것을 반대하는게 아니라 이걸 성적 대상화하는 대중과 상업화되는 것을 비판하니 이희은의 말이 페미니즘에 더 가깝다. 실제로 이희은 씨 역시 성희롱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어 이를 뒷받침해준다. 성희롱 고발계정 다만 SNS에서는 보통 어중간한 인식으로 무분별하게 비판을 날려대는 사람이 많기에 저 글을 쓴 사람이 꼭 안티페미니스트라고는 할 수 없다.

5.9.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교육 의무화? [편집]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 명 이상의 청원을 받아 공식적으로 청와대에서 답변을 했다.

페미니즘 자체가 위에서 서술했듯 'Femini-(여성의-)' 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보다는 새로운 성평등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페미니즘이 젊은 남성층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세력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기에 사회적으로 이슈가되고 있는 미투운동의 영향으로 급하게 판단하기보다 신중히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해당 국민청원을 답변한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은 "페미니즘 교육은 체계적인 인권 교육과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여성뿐 아니라 종교, 장애, 나이, 인종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적 표현은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 '차이를 인정하는 인권문제'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래디컬 페미니즘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어기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이걸 제대로 적용하면 래디컬 페미니즘은 뿌리뽑히게 된다. 즉 페미니즘 교육의 내용이 래디컬 페미니즘 등의 사회적으로 편향된 주장에 치우친다면 문제될 수 있다. 현재 교육과정을 검토하고 성평등적 내용의 분량이 부족하다면 이 부분을 강화하면서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평등에 대해서 도덕, 사회 등의 교과목에서 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가르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55]

실제로 최현희를 비롯해 몇몇 교사들이 학교에서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교육을 실시하여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들에 대해 진보 운동권에서는 맹목적 옹호와 지지에 나섰고 심지어는 페미니즘 교육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선전하기까지 했다. 박근혜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 때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반대했던 사람들이 말이다. 청소년에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가르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만, 젠더 권력론이니 잠재적 가해자론이니 맨박스니 차별비용이니 하는 온갖 황당무계한 궤변으로 점철된 급진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 지지하고 또 의무화해야 한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실제로 전희경을 비롯한 극우 자본전체주의, 시장전체주의자들은 역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과목이 좌편향되어 있다면서 모든 교과서를 국정화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떠든 바 있다. 그 때는 그렇게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정작 자기네들이 실시하는 페미니즘 교육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하다고 목에 핏대를 올리는 것이 이러한 진보 운동권 일각의 실태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교육은 용납할 수 없지만 페미니즘 교육은 꼭 해야 한다? 실로 내로남불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정치, 사회적 의식을 심어 주는 교육 자체는 가치가 있고 또 필요하다. 특정한 떡밥을 하나 던져 주고서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입시위주 교육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려할 필요도 있다.

관련기사

5.10. 여성징병제 논란 [편집]

징병제 국가인 한국에서, 여성징병제에 대한 찬반 여부는 오랫동안 회자된 이야깃거리다. 여성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징병제에 찬성해야 하는가, 아니면 여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군대에 여성이 부적절하니 반대해야 하는가의 차이이다. 일단 일반적인 페미니즘적 관점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서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의무를 짊어질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찬성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하지만 메갈리아 계열을 비롯한 래디컬 페미니즘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에서는 "대다수 여성은 군대에 부적합하므로 징병은 무리이니 남성이 누리는 권리만 똑같이 내놓아라"라는 식의 주장이 강하다. 여기에 더불어 여군의 존재를 들먹이면서 아주 안 가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우습게도 군대 가지도 않을 사람들이 더 강력하게 주장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권리에는 의무가 뒤따라야 한다는 상식과 정반대 주장을 하고 있는 것.[56]

일부 페미니즘 지지자들은 병역 의무는 특수 의무이고 여성 인권은 보편적 권리이기 때문에 특수 의무를 이유로 보편적 권리가 침해당해서는 안된다는 주장까지도 내놓는다. 문제는 병역 의무가 국방이라는 현실적인 사정이라는 이유로 국가에 의해 개인의 의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강제적으로 개인의 보편적 권리들을 모조리 짓밞는 행위[57]임을 생각하면 해당 논리의 설득력이 엄청나게 부족하다.[58]

5.11. 남성 비하/모욕/차별 논란[편집]

여성 인권에 대한 맹신적인 주장이 강해진 나머지 아예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여성을 높이려는 사고방식과 논리나 이에 대해 옹호하는 것으로 인한 논란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페미니즘에 대해 지지하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해온 사람들(남성들도 포함)들은 여성에 대한 혐오, 차별, 비하가 없어야 한다는 맥락으로 이에 호감을 표시한 것이지 또 다른 비하 모욕이 대세를 이루거나 주류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비하, 폄하, 차별를 거론하거나 옹호하는 식의 논리와 사고방식들은 사회 담론의 퇴보를 초래할 뿐이다.[59][60]

참고로 이러한 00우월주의는 정도가 심해지면 기존의 우호적이였던 대상은 물론 사회 전체에 거대한 반감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5.12. 성별 편가르기 논란[편집]

페미니즘의 담론이 점차 성별을 기준으로 한 니편/내편식의 이분법적인 편가르기로 고착화 되고 있다는 논란이 있다. 실제로 이것에 대해 우려하는 학자들도 상당수이다.

페미니즘에서 성별 대립에 함몰되서 사회 계급과의 연관관계나 계급간의 차이등 다른 사회적 변수들에 대한 고려와 이해가 지나치게 부족하며 성별위주로만 접근한 나머지 페미니즘 담론이 점차 편향적이고 경직되고 있다는 비판 또한 있다.[61]

5.13. 현실과 이론의 괴리감[편집]

한마디로 말해 현실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 페미니즘 이론들을 토대로 사회운동, 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페미니즘 이론의 근거를 논하는 학계, 학자들이나 칼럼,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 사이의 괴리감과 거리감에 따른 논란. 물론 같은 학자들 기자들간, 사회 운동, 시위자들 끼리도 괴리감들도 상당히 있다.

그외에도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담론과 그 과정에서 나오는 페미니즘의 부작용, 모순, 오류에 대한 이해를 모르거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채 페미니즘 담론에서 본인들에게 유리한 것을 취사선택하여 이를 토대로 사회운동,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 오해와, 모순들도 논란이 되었다.[62]

그밖에도 페미니즘은 현재 학자들이나 언론인들 개개인에 따라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는 논리와 주장들이 매우 다양하다. 때문에 한 쪽에서는 페미니즘은 남성 혐오나 차별, 비하 모욕 조장이 아닌 성 평등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퀄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실제로 현실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변호하는 일반 대중의 경우는 페미니스트는 남성 혐오나 차별, 비하 모욕주기가 아니라고 언급하지만 오히려 학자와 언론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주장하며 여성 위주의 페미니즘에 힘을 더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페미니즘을 생각하는 것과 학자, 언론인등 지식인이라 일컫는 식자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들이 서로 매우 다른 경우는 매우 많다.

때문에 페미니즘에 대해 차별받는 여성들에게 공정하게, 비하 혐오 발언 하지 말고 성적 모욕이나 가해를 하지 말라는 것이겠지 라고 생각하고 페미니즘에 대해 지지한다고 했다가 수많은 남성 비하 발언들과 모욕이 난무하는 페미니즘 시위에 등장하자 이에 벙쪄서 아니 도대체 내가 생각하던 페미니즘이란게 뭐냐고 혼란을 겪거나 아예 페미니즘에 대해 남성 혐오 비하 차별이였나 라고 생각하며 입장을 바꾸기도 한다. 물론 페미니즘에 대한 회의감과 불신감을 마음속에 품고서.....[63]

6. 비판[편집]

페미니즘이 남녀평등을 위한 여권 신장이 아니라, 여성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여성우월주의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당연하지만 페미니즘은 법률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이기 때문에 논란과 문제점이 있다.



한국 내부에는 1970년대 말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한국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는 데 일조하였으며 1980년 중엽에 발전하였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곡해하여 이용하는 여성계 출신 정치인들과 어설프게 배운 페미니즘을 가부장적 사고와 연계시켜 레이디 퍼스트 형식으로 전파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어, 무조건 여성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페미니즘의 성장이 주춤하고 있다. 정작 차별로 고통받는 여성들은 평범하거나 빈곤한 계층에 있음에도 이득을 누리는 건 이미 기득권을 획득한 소수의 여성들 혹은 여성 정치인들인 아이러니한 상태.

이제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페미니즘이 성역화되어 일체의 반론을 거부하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성차별주의자 혹은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페미니즘계가 저지른 각종 문제는 페미니스트와 관계없는 페미나치의 소행이라며 꼬리를 자르고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을 자처하는 테러리스트들의 잘못까지 뒤집어 씌우며 페미니즘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 논리적 오류이기는 하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나치들의 소행을 규탄하고 나서서 자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운동의 파급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일단은 당면한 적인 여성혐오와 성차별부터 해결하는 것이 내부 자정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중.[64] 물론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지금도 메갈리아나 워마드를 페미니즘의 일부로 보지 않기도 하지만 말이다. # 래디컬 페미니즘의 일종이라고 보는 것이 주류이다.

어쨌거나 이런 문제 때문에 남성들이 페미니스트들에게 여성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면 꼴마초 혹은 여성혐오자로 몰려 마녀사냥 당한다. 외국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팀 헌트 경 여성비하 모함사건이 있으며 국내의 사건으로는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가 주도한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이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2017년 5월의 나무위키에서도 유승민의 20대 득표율 속에 페미니즘에 환멸을 느낀 남성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 여자가 설거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꼰대 수준의 홍준표는 왜 20대에서 꼴찌인가 하는 논리로 부정된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 진영의 반박은 페미니즘 아니면 꼰대라는 전형적인 흑백논리 오류이다.

결국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온갖 오류와 병크로 인해 아래 후술할 내용들을 비롯하여 페미니즘에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졌으며, 국내외 할것 없이 페미니즘의 이미지는 점점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유튜브에 페미니즘을 한글과 영어로 검색해 보면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이 훨씬 더 많다. 물론 인터넷 상의 여론은 대부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기는 하지만[65] 이곳은 세계 최대의 동영상 사이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페미니즘의 현주소를 정확히 표현한 만화.

6.1. 성소수자와의 관계[편집]

성소수자의 권익 집단과도 긴밀한 연대가 있기도 하다. 이는 페미니즘이 섹슈얼리티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66][67] 하지만 성소수자 운동 활동가들 중 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이들도 반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이들도 있어 꼭 긴밀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양성애자/동성애자/이성애자/무성애자/범성애자 등 활동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반목은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꽤 골치아픈 문제. 성 소수자 운동가들과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이성애 중심의 가족 구조와 사회 구조를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뜻을 같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주류 사회와 투쟁하여 권리를 쟁취한다는 '전략적 목표' 때문에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정치적 동맹'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성소수자 가운데도 보수적인 사람은 존재하고, 성소수자 운동에 끼어드는 페미니스트들을 안 좋게 보는 성 소수자들도 존재한다. 특히 시스젠더 게이의 경우 소위 말하는 '성차별 꼴마초'인 게이도 적지 않다. 반대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 성소수자를 경멸조로 다루거나 남성 성소수자 역시 남성이라며 적대적으로 대하는 부류도 적지 않아[68] 좌파 진영에선 페미니즘이냐 성소수자냐 하는 식으로 다툼이 벌어지기까지 한다.

남녀관계 자체를 남성의 여성 지배로 파악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랑을 하겠다는 뜻에서 정치적인 이유레즈비언이 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다. 본인은 헤테로섹슈얼이지만 페미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호모섹슈얼 코스프레를 하겠다는 실로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취급하며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호모포비아들에게 크나큰 빌미를 내어주는 꼴이다.팀킬 애초에 같은 팀도 아니라 카더라

6.1.1.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핍박과 멸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TERF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2. 여성우월주의 문제[편집]

페미니스트이길 자처하는 사람들은, '성평등', '인종평등' 등의 일련의 평등주의에 동의하고 차별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왜 '페미니즘에 동의하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지 진지하게 고찰해보아야한다. 페미니즘은 어느샌가 전자들의 그것과 점점 다르게 변질되어가고있고 그 변화는 미묘하고 느려서 눈치채기 힘들다. -마일로 야노풀로스

페미니즘이 비판받은 가장 큰 이유

페미니즘은 결국 여성우월주의, 그리고 남성혐오로 귀결된다. 주류 페미니스트 학자은 여권이 신장함에 따라 남성은 퇴물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며, 페미니즘을 방패로 내세워 기득권을 얻으려고 하거나 온갖 사회적 문제와 범죄를 일으키려는 이익 집단과 커뮤니티들이 우후죽순으로 창궐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표적으로 메갈리아, 워마드가 속해 있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이미 페미나치라는 용어가 만들어졌으며 페미나치즘(feminazism. feminism+nazi), 페미나치스트(feminazist)[69]란 파생어가 추가되었을 정도. Feminazi 이외에도, SJW라는 말이 잘 쓰인다. 의미는 사회정의구현 전사들(Social Justice Warriors)으로 페미니스트나 LGBT 운동가 등을 비꼬아 표현할 때 쓴다.

페미니스트들을 지칭할 때 페미나치라는 비하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해당 용어에 대한 현상서술 이외의 용도로 타인을 함부로 비난하는데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70]

페미니즘은 어떤 의미에서는 성평등을 위시한 사상이지만, 그 사상을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는 결국 인간이고 오류를 저지를 수 밖에 없다는 인간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은 이상(ideal)이 아니라 사상(idealogy)이기에 절대적인 의미의 성평등과는 관점의 차이가 존재한다. 페미니즘만이 아니라, 이상적인 사상을 따른다고 반드시 '이상적이고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나타났다. 당연히 페미니즘을 실천한다고 페미니스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언제나 올바른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페미니즘이 정말 성 평등을 위시한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명칭의 문제도 다소 걸릴 수 있다. 성 평등을 주장하는 사상이 왜 페미니즘인가..? 과거에는 성 소수자에 대한 담론이 없다시피 했고 남성과 여성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여성이 보다 차별을 받는 위치에 있었기에 여성의 권익 신장이 성 평등에 다가가는 빠른 길이었으므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의 권익도 많이 신장되었고 차별받는 남성의 문제도 대두되었으며 다양한 성 소수자들의 문제까지 나타나는 등 상황이 바뀌었다. 왜 차별받는 남성과 성 소수자의 문제까지 페미니즘의 깃발 아래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는가? 페미니즘 진영은 특히 용어의 문제에 민감하다. 일례로 전이나 지금이나 절대 다수가 남성인 소방관의 경우도 fireman이 아닌 firefighter로 바꾸고 그 외에도 다양한 단어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물론 소방관 일을 하는 여성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fireman이 아닌 firefighter인 것이 맞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어의 정치적 올바름에 매달리면서 어째서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가 아닌 성 평등을 위시한 사상이다'라며 성 평등까지 페미니즘에 넣고자 하는 것인가? 페미니즘이 정말로 성 평등을 추구한다면 명칭부터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과연 명칭부터 특정 성을 강조하는 이념 아래에서 정말로 성 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정치적 올바름의 측면에서 재고해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또, 그런 '좋은 의도'를 끌어와 특정 상황에서만 내세우며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여성우월주의이기 때문에 유리하고 불리할 때마다 표현이 서로 충돌한다.

  • 1-1) 펜스룰, 성희롱 등의 논란이 벌어지면 '동의없는 성적 행동은 성폭력'이라고 한다.

  • 1-2) 1-1을 받아들여, '술 마시고 모텔 가자' 같은 말을 하면 성희롱으로 처벌한다.

  • 1-1)과 1-2)로 해석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 펜스룰을 하면 여성혐오라고 비난한다.

  • 2-1) 설명하고 가르치려는 남성에게 자존심이 상하면 맨스플레인이라고 비난한다.

  • 2-2) 정확히 같은 남성이 더 이상 그런 말 듣기 싫다며 펜스룰을 하면 여성혐오라고 비난하면서 멘토허를 해야 한다고 한다.

  • 3-1) 직장의 인간관계를 사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남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과 사를 구분할 줄 모르는 짐승들이라고 비난하고, 전보나 이직 등으로 공적 관계가 끊기면 바로 사적 관계 역시 차단한다.

  • 3-2) 그 남성이 더 이상 그런 말 듣기 싫다며 펜스룰을 하면 성폭력 외에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거냐며 비난하고, 사적 관계는 남자들과도 하지 말든지 여자들도 끼워줘야 한다고 비난한다.


즉 어떤 식으로 행동하더라도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6.3. 강간의 해결에 대한 방법론적 문제[편집]

페미니스트는 강간을 성욕 및 정신병과는 별개로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라 보고 있기에 교육을 통해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범죄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강간의 심각성에 대한 경시와 관대한 처벌을 통해 구현된 "강간 문화"가 사회문화적 요인으로서 존재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즐겨쓰는 가부장적 사회의 프레임에 합치한다. 이렇게 페미니스트는 강간을 젠더 이슈로 해석하기에 성범죄에 대한 교육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강간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성들에게 조심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Teach Men Not To Rape) 한다는 주장이다. 기존의 성교육에서는 강간을 단순히 여자가 조심해야 하는 것으로만 몰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에 따른 결과로 강간 피해자에 대해 “그러게 왜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녀?” 혹은 “그러게 왜 야한 옷을 입었어?” 등의 언행으로 상처를 더하는 2차 가해가 빈번했다. 심한 경우는 성희롱으로까지 번지는 이러한 2차 가해는 21세기에 들어서도 해결되지 않은 사회적 문제다. 강간의 도덕적 범죄적 책임이 가해자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여 사회적으로 2차 가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성폭행에 관한 교육에 변화가 필요하다.

다만 여기서 ‘남성들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가르쳐라 (TEACH MEN NOT TO RAPE)’라는 페미니스트의 캐치프레이즈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잠재적 가해자에 대한 토론과 마찬가지로 남성 전체에게 강간의 책임을 지우려는게 아닌가하며 페미니스트의 남성에 대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남성 전체를 일반화하여 그 집단에 포함된 모든 개체에 대해 책임을 지우거나 선입견을 덧씌우는 행위는 올바르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가르쳐라 (Teach People Not to Rape)"가 더 적합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순수히 수치로 판단을 해서 "Teach Men Not to Rape" 이란는것이 정당화 된다면, "Teach Blacks Not to Crime" (흑인들에게 범죄저질르지 말라고 가르쳐라) 라던가, "Teach Muslims Not to Terror" (무슬림에게 테러하지 말라고 가르쳐라) 가 정당화 되는가?

캐치프레이즈에 대한 반감과는 별개로 교육을 통한 범죄의 예방이라는 개념 자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절도가 나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저지를 사람은 저지르지 않는가. 성폭행 회피 방안 대신에 성폭행을 저지르면 안된다고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위에서 언급했듯 아직 사회적으로 만연한 2차 가해를 줄이려는 목적으로는 적합하다 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 성폭행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에는 의문점이 남는다. 심지어 극단 페미니스트 측에서는 피해자의 자구책이나 안전책을 언급하는 것 만으로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등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하여 대화를 더 어렵게 만든다. 피해자 측에서 최소한의 경계 및 예방을 할 수 있는 법을 가르침과 동시에 범죄의 책임은 무조건적으로 가해자에게 있다는 점 또한 확실히 알리는 교육이 가장 균형잡힌 형태라 할 수 있다.

6.4. 검열 문제[편집]

아청법을 주도하고 포르노 및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표현하는 매체에 대하여 페미니즘이 중심이 된 반대 운동은 미디어에 대한 검열을 옹호하는 주장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기사 이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페미니즘은 검열과 억압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참조)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미디어는 무엇이 되었건 금지해야 한다는 견해로 나누어져 있으며(주로 래디컬 페미니즘, 보수적 페미니즘이 이렇게 주장한다.) 특별히 통일적인 견해는 존재하지 않는다.[71] 당연하지만 페미니즘이 성해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페미니즘 이름을 참칭하는 인간들이 검열을 시행하는 요직에 앉아있기도 한지라. [72]

6.5. 이념을 위해 다른 것들을 무시함[편집]

많은 사상운동과 마찬가지로 사상운동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과보다는 사상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 당시 서강대 여총학생회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학생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러 시위를 하여 서정범 교수에게 본인들이 막고자 하는 2차 피해를 입혔다. 최종 무죄 판결이 나왔음에도 독이 든 사과를 먹는 행위라는 미명 하에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사과하지 않았다.

게구리 핵 의혹 논란 때에도 전디협 측에서 본인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게구리 선수를 자신들의 운동의 기치로 삼았다. 전디협이 내걸은 가치인 '여성프로게이머가 차별받지 않는 미래의 디바'를 위해 '차별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현재의 디바'를 희생시킨다는 조롱섞인 비판 여론이 일기도 하였다. 결국 계속되는 게구리 선수의 요청에 공식 입장문 및 사과문을 올렸지만 게구리 선수의 사건이 게임 내 여성혐오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해서 많은 논의가 활성화되었다며 사과보다는 어찌됐든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이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6.6. 일부 이단이라는 식의 책임 회피[편집]

들어가기 전에, 일부가 극단적이고 주류가 일부를 배척한다고 해서 페미니즘의 중심 사상이 전부 틀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비판은 페미니즘의 정당성에 관계되는 것은 아니고, 일부 합의되지 않은 의견들이 가지는 폭력성을 비판하여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달았다고 무조건 옳다고 보지는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어디까지나 '진짜' 페미니즘이 아닌 이단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에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페미니즘에 분파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페미니즘의 범위 내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페미니즘 내에서는 과격하거나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도 사상의 변방이 아닌, 주류 가까이에 포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석사 이상 학위를 가진 사람들은 여성이 과학연구 등에 배제되었다는 이유로 자연과학을 자x과학이라고 부르며 여성혐오, 남성우월주의로 매도하는 경우도 더러 있기에 일부 이단론은 힘을 잃는다.

일부 이단 식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도덕적 실태를 지닌다. 위에서도 논의된 바 있듯이 '슬프게도' 여성 우월주의와 그 선을 그을 수 없는 종류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또한 페미니스트들에게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그들도 페미니스트고 나도 페미니스트이나 그들과 나는 수단이 다를 뿐이다." 정도의 인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진짜'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이 문서에도 분명 다수 존재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거부하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것이 어떠한 심각성을 지니는가. 간단한 비유를 들어 보자. 과격파 운동가를 지닌 두 집단 A, B가 있는데, A집단의 경우 '그들은 우리 일파가 아니라 일부 이단이다.'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룬다. 그런데 B집단은 '그들과 우리는 같은 일파고 그들의 방식을 내가 따르지는 않으나 존중한다.'식의 인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전자와 후자는 크나큰 차이를 지닌다. 범죄를 저지르는 일부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A집단은 '우리의 이데올로기를 곡해한 이단적 행태'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포용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치나, B집단은 그러한 범죄조차 이데올로기의 다른 해석일 뿐이라며 '방관자적 지지'를 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의 일반적 행태는 어디에 가까운가. '선을 긋지 아니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부를 그들과 같은 집단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을 통하여', '방관자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이므로 명백하게도 후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도 '일부 이단' 운운은 문제가 발생하자 발을 빼기 위하여 내비친 표리부동한 예시일 따름이고 근본적으로는 단순한 페미니즘 계파적 차이임을 '개인 내적으로 주장'하고 있음과 다름 없다.

단순하게 의견을 밝히지 않는 것은 중립일 수 없다. 비도덕적 행위를 앞에 두고 중립을 표방한다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소극적 • 방관적 지지'일 따름이기 때문이다.[73] 이처럼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집단 내부에서 언급되는 '일부 이단' 식의 꼬리자르기 행태는 일견 비겁하게 느껴지리만큼 안팎이 대조된다 할 수 있다.

트위터에서 '100명의 페미니스트가 있으면 100가지 페미니즘이 있다.'는 식의 '백 가지 페미니즘' 드립이 잠시 흥하기도 했는데, 물론 위의 말처럼 페미니즘은 범주가 넓다는 의도로 쓰인 단어겠지만, 이러한 주장이 잘못된 페미니즘을 용인하는 도구로 사용되면서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남성혐오자, 에너지 뱀파이어들도 많아질 수 있을 뿐더러 그들 때문에 페미니즘 자체와 멀쩡히 잘 활동할 수 있는 페미니스트들이나 진짜 여성인권 관련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마저도 피해를 보고 있다.

미국에서도 페미니즘의 원로급 인물들이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내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대표적으로 글로리아 스타이넘 같은 페미니즘의 대표격 인물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힐러리 클린턴 선거 운동에 뛰어들어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을 성차별주의자에 창녀라고 매도한 사례가 있다(...) 창녀라는 단어는 여성 비하인데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비하를 일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당장 한국만 봐도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문화검열 찬성자들이 주요 단체에 상당수 포진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페미니즘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또한 이런 논리대로라면 가정폭력, 단톡방 성희롱 등의 여성 인권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제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이것도 일부 남성들의 행동이니, 무시해도 된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물론 트페미들의 말이 대체로 가정폭력처럼 한 개인을 실체적으로 위협하는 폭력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가부장적인 나라에서 남성에 의한 가정폭력이 많이 발생하며 가부장제가 성차별이라는 것 자체는 모두가 동의하는 점이다. 그러나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처럼 말로 사람을 마녀사냥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분명히 보여주는 예시가 존재하는 이상, '그저 가벼운 문제'라며 넘어갈 순 없는 것이다.

페미니즘 자체가 공산주의(혹은 사회주의)처럼 하나의 사상(ideology)이기에 극단적인 현상이 간헐적으로 나올 수는 있다. 위에 나온 사회주의인 경우도 현재의 쿠바나 과거의 현실사회주의를 표방하던 시대의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처럼 그럭저럭 살 만한 사회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소련의 스탈린 시대나 중국의 마오쩌둥 시대, 북한의 김일성 시대처럼 폭압적인 통치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들은 스탈리주의 같은 극단주의자와 손을 못 끊었기 때문에[74] 이들의 기반인 사회주의마저도 무조건 좋지 않게 평가한다. 특히 직접적인 피해자인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평판은 개판이다. 심지어 북한은 사이비 종교인 주체사상으로 아예 갈아탔는데도 그렇다. 정치적인 지형을 봐도 유럽에서는 좌익 정당(사회주의 계열 정당, 예로 들자면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들이 집권하거나, 약진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대한민국에 있는 좌익 정당인 노동당, 정의당이 기를 못 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문제는 그런 것이 페미니즘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도 극단주의자들을 무작정 옹호하거나 방치한다면 이들도 대한민국에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처럼 망할 수도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주류 페미니즘의 극단적인 색채를 전부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 탓으로만 돌리는 성향이 강하다. 미러링, 만물여혐설, 잠재적 가해자, 젠더 권력 논쟁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주류 여성단체나 인터넷상의 넷페미들은 메갈리아의 행동이나 논리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적어도 반대하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본인들 쪽에서 문제가 터지면 메갈리아의 행동이라고 하거나 일부의 문제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 메갈리아가 아닌 페미니즘이 메갈리아 측의 논조에 동조하거나 극단적인 소리를 낸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2, 3

최대한 우호적으로 해석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도움이 된다는 정치적 이유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나치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지위 향상을 기치로 세우는 사상이지 남성혐오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사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쪽은 잘라내고 배격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 명분이 없는 사회운동은 효용성을 잃기 쉬우므로, 이런 식의 은근한 옹호는 대중의 냉소를 사고 본인들에게도 뼈아프게 돌아올 확률이 높다. [75] 하지만 사실 자신이 운동하는 분야에서 사건사고가 터진다고 하여 이를 반드시 비판해야만 자신의 주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페미니즘 주류 활동가들이 이들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하여 페미니즘의 주류 사상이 틀리게 되는 이유는 아니며 이러한 문제는 페미니즘 운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이다.

6.7. 국내 문제[편집]

한국은 같은 여성이라도 누리고 있는 인권이 같지가 않다. 여성인권의 낙수효과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은 여성 남성을 떠나서 여전히 후진국 수준인데, 중~상층의 여성들의 인권의식만 제한적으로 높아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당장 대학에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면서 현장실습을 나가보면 빈곤층 여성들의 인권은 2017년 시점에서도 여전히 답이 없는 수준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76] 요즘 세상에 매맞은 여자가 어딨냐. 당장 고소하고 여성부 진정하고 난리날 거다라고 섣불리 단정 짓는 건 큰 오산이다.[77] 한국에서 여성의 인권의식과 평등 주장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문제는 그게 골고루 적용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못 견뎌서 쉼터로 도망치는 여성들을 보면 대부분 초, 중졸 학력에다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권리에 대해 무지하다.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으로 와서 다문화가정를 이루고 사는 여성의 경우에는 더 심각해서, 심지어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면 그걸 경찰에 고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이들에게 있어서 페미니즘은 다른 나라 이야기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등을 페미니즘의 주류에서 다루지 않고 자꾸 빈곤층 문제로 미뤄버리면서 사회복지 차원에서 해결하라고 외면하는 통에 동호회 수준의 여성단체만 소외계층 여성의 인권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단체들은 거창하게 여권신장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시키는 게 주목적인데 페미니스트들과 이들의 요구를 국정에 반영하는 사회지도층들은 이런 소외계층 여성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상태라 이들 단체의 활동영역은 민/관 쉼터로의 연결 혹은 법적인 자문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다만 이런 불균형과 소외계층 여성의 인권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권이 신장되어 있는 북미나 유럽에서도 공통적으로 대두되는 문제다.

정리하자면, 이렇듯 징병제 및 이런 저런 법규들 때문에 한국은 여성이 남성보다 제도적으로는 우위를 누리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며 기득권을 차지한 페미니스트들은 상대적 성 불평등에 대해서는 매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정작 적극적으로 나설 땐 여성차별의 존재만 강조할 뿐 '전체적 평등'은 강조하지 않거나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양성평등보다는 여성들이 피해를 입고있는 부분에 주목하여 한국 사회에서 여성만이 차별받는 부분이 매우 크다고 주장을 하며 성평등적 담론을 여성우월주의와 남녀 대결구도와 연결시키니 경계가 필요하다.

한국의 페미니즘이 남성혐오주의와 중상위층의 기득권 여성들의 편의와 이익만을 대변해주는 사상으로 변질된 데에는, 다른 진보적 운동(ex 노동운동 환경운동 등)과는 달리, 초창기부터 진보 정치권(특히 모든 야당들)의 무한한 비호를 받아서라는 주장이 있다.##이희호 여사나 이태영 변호사 같이 여성운동을 위해 노력한 위인들의 업적이 폄하되어선 안 되겠지만, 이런 여성운동가들은 야당 및 진보 정치인들과 오랫동안 결탁하였다. 그 결과 여성운동을 온실속의 화초처럼 만들었고, 세상물정을 모르고 양성평등이 아닌 여성우월주의남성혐오를 외치고 다른 소수자들에게는 오만방자해보이기까지한 결과를 양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쪽의 문제는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방향성의 상실이다. 정치계와 엮여있는 여성권 운동에서 핵심은 호주제 폐지였다. 그 다음에 좀 더 강하게 나선 것이 군 가산점 폐지였다. 주요 담론들이 김대중 정권 시기에 다 끝나버렸다. 여기에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는 시기에 성추행이 일본을 포함한 한국에 이슈화 되면서 여성부가 설립되는 전개로 나가서, 성추행과 성희롱이 나쁘다는 것이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즉, 이전에 주장하던 대형 이슈가 다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새로운 이슈를 잡아야 조직과 체제가 유지되는데, 이 다음에 이슈로 낼 것이 마땅치 않았다. 이 때문에 여성부를 비롯한 주류에서 들고 나온 이슈가 성매매와 음란물 문제[78]이고, 후에 메갈리아로 이어지는 비주류에서 들고 나온 이슈가 여성혐오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간 것이 메갈리아 등이 주장하는 '혐오에 대한 공포와 그 방어기제의 정당성'이다. 그리고 이를 감추기위한 주류 언론들의 가짜뉴스는 덤이다. 즉, 자신들의 존재를 위해서는 여성은 (실제로는 어떻든지) 항상 억압받는 상태여야 하는 것이다.

6.8. 남성이 배제된 평등[편집]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본 문서의 6.2.번 목차에도 관련 내용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여자들이 말하는 페미니즘, 이거 참 편리하지 않나요? 왜냐하면, 남자들을 X같이 대해서 그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반감을 느끼게 되면, 그냥 "페미니즘은 평등에 대한 거라고요!"라고 우기기만 하면 되니까요.


마일로 이아노풀로스


우선 반론부터 소개하자면,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의 명칭이 과거 성이 여성과 남성만으로 구분되던 시절에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에 생긴 불상사 이며, 현재는 소수자의 인권을 대표하는 사상으로 자리잡았다고 항변한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의 목적이 '여성의 권익 향상'을 통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지니기 위함이였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남성 인권에 할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은 인권은 제로섬이 아니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남성의 인권을 퇴보시키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음 이미지만 보더라도 이러한 반론은 지극히 감탄고토스러운 진영논리가 아닐 수 없다. 필요할 때는 정치적 올바름 진영에 섞여서 세력을 불리다가도, 정작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에서는 여성주의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도 인정하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부분이다. 관련 칼럼
파일:페미호 노젓기.jpg
닉값

페미니즘이라는 명칭의 어원은 femi(feminine)+ -ism으로 성평등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또한 페미니즘의 목적은 여성의 권익 향상이기 때문에 남성 인권에 할애할 이유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어휘는 일상적인 언어 생활에서 분명히 성평등과 거의 비슷한 용법으로 쓰이고 있으며, 이 때문에 종종 남성이 배제된 평등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물론 온건파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에 대한 차별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페미니즘 이념이 여성우월주의 또는 남성에 대한 혐오 문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등장하고 200년이 지난 지금도 페미니즘 진영 안밖에서는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로 의견이 분분하며, 정치인이나 할리우드 배우 등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사자를 제외한다면, 여성에 비해 남성 페미니스트가 압도적으로 적은 것 또한 사실이다. 당장 (사실상 여성위원회인)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위원회 위원의 절대다수가 여자인 것만 봐도 그렇다.

TERF는 많이 알려진 편이기도 하고 본 문서의 앞의 문단에도 해당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흔히 간과되고 있는 사실이지만 남성을 배제하는 페미니즘의 특징은 또한 젠더퀴어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모두 주류 페미니즘에서 반대하는 개념인 젠더 이분법의 옹호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자체의 논리적 모순이라고 볼 수도 있다. 3세대 페미니즘의 주장에는 교차성, N개의 성, 옷장담론과 같이 성별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있다. 진보적인 페미니즘 비판자들은 이러한 내용들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은 이미 페미니즘이라고 부를 수 없는 다른 무언가가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어쩌면 4세대 혹은 그 이후의 페미니즘은 외부의 영향이 아닌 페미니즘 내부의 진보에 의해서 스스로 페미니즘이라는 명칭을 버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소수자 문제 이외에도,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특정 다수를 잠재적 가해자, 젠더 권력자로 매도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하는 논의도 있다. 이는 페미니즘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올바름 진영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관한 논의는 정치적 올바름/비판, 신좌파, 퇴행적 좌파, 좌파 파시즘 문서를 참조하기 바람.

6.9. 숟가락 얹기[편집]

말 그대로 어떤 컨텐츠가 인기를 끌거나, 뭔가 이슈가 생기면 어디선가 페미니스트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와 이슈를 독점하기 시작하는 것. 예를 들어 어떤 작품은 여성 차별적이라 고쳐야 한다, 어떤 작품은 훌륭한 페미니즘 걸작이다, 어떤 작품은 페미니즘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며 다들 한 다리씩 걸치려는 행위를 말한다. 물론 작품에 대해 평가하거나 해석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이고 정당한 비판이거나 주제에 맞는 토론이라면 아무 문제도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이슈를 독점하고, 나아가서는 콘텐츠 자체에 이래라 저래라하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민폐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극히 작은 부분을 오도하거나, 침소봉대하여 남의 컨텐츠에 민폐를 끼치는건, 결국 나아가서는 결국 남의 권리를 해치는 행위가 될 뿐이다. 남의 컨텐츠의 가치를 폄훼하거나, 요점과는 아무 관계없는 토론으로 이슈를 소모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 더 나아가 남의 작품을 마음대로 페미니즘의 상징이라고 선포해버리거나, 남의 캐릭터를 자기네 마스코트로 삼고 로고를 박아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 정도까지 가면 민폐를 넘어서 저작권 침해다. 아무 상관도 없는 캐릭터나 컨텐츠를 자기네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건 소유권자의 동의를 얻지 못 한 이상, 그저 범죄 행위에 불과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미국 극우들이 개구리 페페를 자기들 상징으로 만들어서 제작자가 직접 조치를 취한 사태랑 유사한 경우다.

심지어 SNS로 인해 이슈 확산이 가속화되면서는, 그 컨텐츠에 별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이슈를 독점하며 민폐 끼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고 있다. 컨텐츠 제작자들로서도 전혀 원치 않는 논쟁에 휩싸여 컨텐츠의 가치가 훼손당할 수 있으니 골치 아픈 일. 그렇다고 이런 허용 범위를 벗어난 사용에 제동을 걸려하면 '페미니즘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건가요?'라는 비판이 쏟아지니 창작자로서는 반대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단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몰려왔던 인원들은 언제 그랬냔는 듯이 폐허만을 남기고 우루루 사라진다.

이들의 숟가락얹기 행태의 정점은 바로 정치권에서의 일이다. 이들은 정치권에서 여성담론을 각목으로 쓰며 지분을 요구한다. 본인들의 능력(=대중적 지지도)은 한없이 바닥에 수렴하는데 권력은 차지하고 싶으니 선택하는 일이 대중적으로 인기있거나 득표력이 있는(=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등) 정치인, 혹은 정파들에 강짜를 부려서 전부 다 자기네들 사람을 한두명씩 박아놓고 자기들만의 방식의 성평등 서약서에 서명하게 만드는 등의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유명 정치인들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고 나면 계파 안배라는 이유로 모자라는 자들을 억지로 써야하니 국가 차원에서도 손해고 이들이 사고를 치는대로 그 비난은 전부다 이 유명 정치인들이 받아야하니 이 정치인들도 손해고 페미니즘을 비판하는+아니면 페미니즘 자체는 찬성하더라도 이 여성계를 비판하는 절대다수의 유권자들은 페미니즘 거르고나면 찍을 후보가 아예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페미 묻은 후보를 찍어야하니 국민 대부분에게도 손해만 끼친다. 또한 여성 몫으로 주어진 자리는 진짜 능력있는 여성이 아닌 여성운동 하는 인간들이 다 차지하므로 이들은 여성들에게도 피해만 끼치는 인간들인 것이다.

6.10. 기존 좌파 측면에서의 비판[편집]

신좌파문서의 신좌파에 대한 비판 문단 참고

6.11.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편집]

신좌파를 위시한 페미니즘은 현대에서 일어나는 정체성 정치의 대표주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체성 정치는 이런 저런 비판을 많이 받고 있으며 문제점 또한 많이 지적되어 왔다. 그에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싶다면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론 참고

6.12. 급진적 방법에 대한 비판[편집]

"성평등은 지지하지만, 페미니즘은 지지하지 못하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다. 즉, 페미니즘이 성평등을 지지하는 것까진 자신도 지지하는데 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 이건 국내나 해외를 막론하고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고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생기는 주된 이유 중에 하나다.

일례로 영국에서 벌인 조사에 의하면 총 인구의 2/3 이상이 성평등을 지지하지만, 오직 7퍼센트의 사람만이 페미니스트라고 응답했다. 해당 기사

몇몇 페미니스트들이 하는 착각들 중에 하나는 "쟤는 성평등을 이루려는 목적을 가진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으니까 성차별주의자야." 같은 것이 있는데, 전혀 틀린 생각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몇몇 이들은 페미니즘을 볼 때 성평등을 추구한다는 목적성을 보는게 아닌, 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적합성을 보는 것이고, 그 적합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 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해놨지만 이 세상에는 많은 페미니즘이 있고 그만큼 많은 방법론이 있다. 그러나 대중에게 제일 와닿는 페미니즘은 그 목소리가 정부에게까지 잘 들릴말큼 큰 목소리를 내고 정책 형성에 영향을 주는 페미니즘이다. 즉, 그런 거대한 페미니즘이 그 시점에서는 페미니즘의 대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대중의 인식을 차치하더라도, 정부의 정책 형성 기능에 영향을 줄 정도면 "주류"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 페미니즘 집단이 대부분 사회적, 문화적 요소에도 할당제 등의 공권력을 투입한 급진적인 변화를 선호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정부기관이나 페미니즘 단체가 성평등을 위한답시고 남녀성비가 틀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남녀할당제를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그에 준하거나 그보다 더한 특혜을 찍어내는것을 보라. 이 "성평등은 지지하지만 페미니즘은 반대"하는 사람들은 할당제나 특혜제공 같은 것은 성평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선 안되거나 사용되더라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성평등을 위한답시고 이런 행태를 보이니 당연히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의 할당제나 여성가산점 등에 대한 관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자.

이 관점은 할당제 등은 본질적으로 특혜적 성격이 있다고 보며, 남녀할당제와 같이 남성을 향한 특혜든 여성을 향한 특혜든 이러한 조치 자체가 근본적으로는 공평한 경쟁 자체를 방해한다고 본다.

만약 어떤 문제로인해 불평등이 생겼다고 하자. 그 문제가 장애나 난치병과 같은 선천적인 혹은 해결하기 요원한 문제라면 당연히 할당제나 특혜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인한 것이라면 그 근본 원인 자체를 해결해야지, 단지 성비나 인종 끼워맞추기 식의 할당제는 사회 구성원의 박탈감과 사회적 모순만을 키운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남자 아이의 90%는 로봇을 가지고 놀고 여자 아이의 90%는 인형을 가지고 논다고 가정해보자. 이 관점에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혹은 문화적 요인 때문인가? 그렇다면 남성이 인형을 가지고 놀고 여성은 로봇을 가지고 노는게 전혀 이상할 게 없고 그것을 이유로 배척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캠페인과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만약 사회적 혹은 문화적 요인이 장난감 성비 불균형에 정말로 큰 영향을 미친거라면 그런 요인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성비 불균형이 크게 해소될 것이다.

그것이 경제적 요인 때문인가? 그렇다면 로봇과 인형을 둘 다 구매할 만큼의 경제적 여유도 없는 모든 계층에게[79]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저소득층의 소득 수준을 끌어올리며 소득 격차를 어떻게 해소하고 사회적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논해야 한다. 정말로 이 장난감의 성비 불균형에 경제적 요인이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거라면 이런 조치로서 성비 불균형이 크게 해소될 것이다.

그것이 그저 개인의 선호에 따른 선택인가?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소수자인 10%의 남성과 10%의 여성들이 배척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그렇게 함으로써 소수 성향이 보호받는 것은 물론, 만약 사회적 요인으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못하던 아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조치로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낼 수 있게 될 것이다. [80][81]

그런데 갑자기 정부가 쳐들어와서는 "어? 성비 불균형이 발생했네? 그럼 이제부터 로봇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과 인형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의 성비를 50:50으로 맞추기 위해 할당제를 실시하겠습니다." 라고 한다고 생각해보라. 현실에서 정부와 페미니즘 단체가 성평등 정책이랍시고 내놓는게 딱 이 정도 수준이다. 오히려 사회적 모순을 키우는 것이다.[82]

물론 이들이 할당제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건 아니다. 할당제가 꼭 필요한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다른 유효한 수단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해결책의 효과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해결책의 효과가 충분한 시간이 흘러야 발휘된다면 그때까지 로봇이나 인형을 가지고 놀게끔 강요당하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할당제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관점에선 그렇다 하더라도 할당제 등의 특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관점은 기회의 평등을 지향하며, 그에 반해 할당제나 여성 가산점등의 특혜들은 본질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본다. 그렇기에 할당제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을 때에만 최후의 수단으로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엄격한 기준 아래에서 사용되어야 하며, 그것의 수단으로서의 적합성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그 필요성이 낮아진다면[83] 지체없이 폐기해야만 한다고 본다.[84]

이 관점에서 특혜를 이렇게 시한폭탄처럼 조심스럽게 다루는 이유는 특정 집단으로의 특혜가 그만큼 사회 구성원들에게 사회적 박탈감을 유발하고 사회 모순을 심화시키기 좋기 때문이다.[85] 당장 어퍼머티브 액션도 역차별 문제가 거론되며 굉장히 많은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고 여러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지 않는가? 이처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와 더불어 해결 수단들이 무엇이 있으며 그것들의 효과와 부작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없이 이루어지는 특혜는 굉장한 부작용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양날검이다.

그런데 정부나 정책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영향력 있는 페미니즘 단체에서는 부작용에 대해 그저 "필요악"이라는 한 단어로 일축해 버린다. 즉, 이들은 여성정책으로서 급진적인 변화를 부르는 정책을 선호하면서도 그에 따를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은 그다지 심각하고 진중한 고려를 하지 않고(혹은 하지 않는 것처럼 대중들에게 비쳐지고), 이런 태도가 위에서 말했다시피 사회 구성원에게 사회적 박탈감, 더 나아가 반감을 사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무분별한 급진정책으로 인하여 반감이 터져나온 예를 들어보자.

  • 경찰청 이성은 성평등 정책 담당관은 여경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와중에 여경의 체력검정 시험이 수준미달이라는 것에 관련해 "100m 달리기나 팔굽혀펴기 등이 경찰 업무에 정말 필요한 역량인지 살펴봐야 한다" 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에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국민들은 이성은 담당관을 해임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해당 기사


물론 기사에 나온 이성은 담당관은 "체력 검정이 실무에 적합한지 검토해 봐야 한다는 취지였다."라고 해명했다. 일단 경찰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체력수준을 검증하는 시험에 의문을 품는 것 자체가 경찰로서 기본이 안된 관점이라는건 넘어가자.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사회 구성원들이 특정 계층에게 과도한 편의를 봐주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불합리하다고 느끼는지이다.

여경도 충분히 남경처럼 범죄자 제압 등을 할 수 있게끔 교육시키거나, 여경의 체력 검정 시험도 충분히 합리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거나, 지원하려는 직렬별로 체력 기준을 차별화시킴으로써 체력이 낮은 사람도 경찰 업무에 동참할 수 있게끔[86]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의 선행되어야 할 정책들에 대해선 일언 반구도 없이 그저 할당제의 비율을 늘리겠다고 하면 당연히 사회적 반감이 들끓을 수 밖엔 없다. 대중들이 정부가 공정한 경쟁을 조성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저해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태는 할당제 등과 같은 특혜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충분히 조심스럽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사회적 반감과 박탈감을 유발하는지를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반발감은 특히 젊은 남성 층에서 두드러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단군 이래에 최고로 성평등한 세대이다. 당장 20대의 양성간 소득격차를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소득이 더 높으며 양성간 대학 진학율을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대학 진학율이 높다.

그런 젊은 남성층들에게서 무슨 말이 나오는가? "정말로 불평등한 세상에서 불평등으로 꿀 빨던건 40~50대 이상의 남성이다. 그런 이들이 표 좀 얻어먹으려고 성 불평등 해소랍시고 20대를 희생양 삼아 여성가산점 같은 것을 사방팔방 뿌려댄다.[87] 근데 페미니스트들은 그런 기득권 남성 옆에 붙어서 성평등을 위하긴 커녕 이익만 취하려 한다." 이런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바로 위에서 말한 그것이고 안티 페미니즘이 세를 불리게 된 이유 또한 같다. 상기의 관점에서 봤을 땐 젊은 남성층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건 당연한 것인데, 그렇게 박탈감을 유발시킬만한 행동을 골라서 했는데 이런 반응이 안나오면 더 신기한거다.

요약하자면, 성평등을 지향하는건 좋다. 애초에 성평등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은 정말로 적다. 그러나 성평등을 위한다고 사용했던 방법이 이렇게 갈등을 조장하고 한 쪽에 박탈감을 심어줌으로써 사회 불만세력을 키웠다면, 비판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88]

7. 기존 학문의 재해석과 충돌[편집]

페미니스트 중 일부는 현재까지 확립된 학문의 기반이 남성의 지배적인 위치에 의해 단일한 관점만을 가지고 있는 형태라고 보며, 현대까지 타자의 시선인 페미니즘에 기반한 학문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이 가치있는 것은 주류의 역사 대신 억압된 소수의 입장을 대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일한 하나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대중적 관점을 전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지배자의 입장이 아닌 민초의 삶을 조명하는 미시사학이나 일상사, 서구중심주의의 탈피를 주장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조명되기 시작한 것과 맥락이 같다. 특히 한국에 대두된 페미니즘 계열은 타자 및 피억압자의 관점에 비중을 둔다는 점에서 포스트콜로니얼리즘과 많이 엮인다.

7.1. 자연과학[편집]

위의 에코 페미니즘이나 강간에 대한 '과학적' 접근, 학계에서 여성 과학자들이 암묵적인 차별을 받아 오고 있다는 주장부터 과학적 방법론이 성 역할을 고착시킨다거나, 과학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의도적으로 무시당해 왔다는 급진적인 주장까지 여러가지가 있다. 주된 입장은 과학자 커뮤니티의 여성 차별 관행 비판과, 이 비판적 관점으로 과학사를 재조명하려 하는 시도가 있다.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딸이자 최초의 프로그래머였던 에이다 러브레이스, 사생활 문제로 노벨상을 못 받을 뻔한 마리 퀴리, 남성 과학자 제임스 왓슨에 의해 DNA의 가장 중요한 증거를 도난당했던 로절린드 프랭클린[89], 셰페이드 변광성의 주기-밝기를 발견함으로써 현대 우주론의 기초를 쌓은 리비트[90] 와 같은 인물들을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것이 이에 해당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도 극단주의적 입장은 너무 나가고 마는데, 유명한 페미니즘 이론가 샌드라 하딩은 그의 저서에서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강간 매뉴얼"이라고 비하하고 실험도 논리도 없는 여성과학을 주장하자 리처드 도킨스에게 그건 여자는 논리력이 없다는 소리랑 똑같은 거임이라는 스티븐 핑커의 말을 인용하여 까이고 나중에 후회했다.[91]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인 뤼스 이리가레아인슈타인 방정식은 광속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므로 권력적이라고 주장하거나우리가 사는 우주는 남성우월주의적 여학생들은 월경으로 인해 수학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심지어는 유체역학 [92]이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과학에서 남성 지배적 성향이 여성의 성 기관과 연관있는[93] 유체역학의 발전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여성부급 개드립을주장했다가[94] 앨런 소칼에게 걸려서 탈탈 털렸다.

7.2. 역사학[편집]

인류의 역사는 문명이 시작된 이후 꾸준히 남성이 여성을 억압한 형태였다는 건 페미니즘의 대전제 중 하나다. 예전엔 모계사회였는데 농경이 발달한 이후로 지속해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해왔다는 것. 그러나 인류학의 최근 동향은 모계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지 않은 시기 모계사회는 일부 국가에서 존재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난교가 만연한 문화에서 남성은 자신의 자식을 확신할 수 없지만 여성은 임신하는 것이 본인이므로 가능하기 때문. 이러한 모계사회에 대한 의문 외에도 정말로 억압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고대 이후 권력자가 남성이 된 것도 전쟁을 필두로 한 정복사회였기 때문에 군대를 통솔하고 지휘하는 기사장군 계급이 자연히 득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여왕이 지배했던 시대에도 당연히 정복활동과 전쟁을 안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단순한 비교로는 무리가 있다.

사실 이러한 논쟁은 현대에 와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데, 당시는 성별뿐만이 아니라 태생의 계급을 토대로 차별이 만연했던 시기이며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의무가 달랐기 때문에 현대의 관점을 적용시키기 힘들다. 애초에 신라의 경우도 그렇고, 영국의 경우도 그렇고, 신분문제가 성별이슈보다 넘사벽으로 중요했기 때문[95]에 낮은 신분을 왕으로 올리는 것이 여성을 왕으로 올리는 것보다 더 견딜 수 없었을 뿐이라는 것이 현실이고, 귀족을 올리면 되지 않느냐라는 것도 비슷한 귀족들이 누군 위로 가고 누군 아래가 되는 것을 못 견딘 것이다. 역사 속의 남녀 차별 문화에 대한 조사는 그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 외에 실질적 양성평등의 이룩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대 페미니즘 운동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과거에 어땠느냐'가 아니라 현재에 어떤 부당함이 있느냐이다.

8. 대안[편집]

8.1. 포스트페미니즘[편집]

1980년대 중반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이다. 이 용어에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긍정적으로는 이제 여성들이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승리를 쟁취했으므로 페미니즘 자체가 불필요하게 되었다는 '페미니즘의 종언'을 일컬을 때 사용된다.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자유가 이미 확보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믿음에 연유하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는 그 동안의 페미니즘이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했기에 이제는 그 효력을 상실했다는 의미이다. 포스트페미니즘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여성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기존의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을 더욱 공고히 만들면서 여성들의 입지를 오히려 좁게 만들었다는 것, 혹은 여성들에 대한 특별한 장려와 배려가 결국은 훨씬 더 효과적인 여성 배제의 장치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차이보다는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 등의 보다 발전적인 제안을 담고 있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포스트페미니즘 [Postfeminism]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국학자료원)

8.2. 포스트젠더리즘[편집]

페미니즘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인격과 개성이 아닌 태생적인 특질(=성별)로 구분지으며, 그로 인해 진영논리를 조장하고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문제점이 있다. 포스트젠더리즘은 이러한 페미니즘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전 서술에서는 포스트 젠더리즘을 페미니즘의 일부로 분류하였으나, 영문 위키피디아의 문서에 의하면 포스트젠더리즘은 여성주의, 남성주의, 안드로진, 메트로섹슈얼/테크노섹슈얼, 트랜스젠더 운동 등에 뿌리를 둔다고 한다.[96]

포스트젠더리즘은 미래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적, 문화적, 생물학적, 심리적으로 존재하는 성 역할이 해체되어 성별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사상이다. 한마디로 트랜스휴머니즘젠더적 관점에서 세부적으로 파고든 것이다. 포스트젠더리즘에서 성별은 불필요하고 인위적이며 인간의 무한한 잠재성을 한정하는 족쇄와 같은 것으로, 미래에는 인간복제, 단성생식, 인공자궁 등 새로운 과학기술의 상용화와 이에 따른 인류의 인식변화로 인해 구식이 되거나 점차 사라지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기술적 특이점이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실현만 된다면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갈등에서 벗어나서 개개인의 자아 실현과 인류의 복리 후생에만 오롯이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게 될 것이다.

8.3.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편집]

자본주의가 여성을 억압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남녀 불평등을 결정하고 있으므로, 여성 해방의 방법으로서 자본주의의 해체에 초점을 맞춘다. 핵심은 가사노동의 전면 사회화사회 보장의 확대이며, 이를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현 체제 내에서의 부분적 개혁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야한 것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성적 보수주의에 대해서는 반동적이라며 일관된 반대 입장을 취한다. 생물학적 성별은 물론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심지어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성적 자기판단 능력이 있는 전 노동인민의 성적 욕망을 긍정하고, 다양한 성적 표현물들이나 (다른 인민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서) 인민의 자유로운 성적 욕망 추구에 대한 검열과 억압을 반대한다.

성폭력, 성범죄,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해서는 여성문제가 아니라 인민의 권리에 대한 문제로 간주한다. '여성을 강간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인간을 강간하면 안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이들의 입장을 잘 반영한 문구라 할 수 있다. 성범죄의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를 포함하는 계급 사회에서 찾는다. 남성의 성적 욕망이 성범죄를 낳는다 선전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남성혐오 선동에는 당연하게도 반대한다.

또한 성범죄 가해 지목자에 대해서도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주의, 죄형 법정주의,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같은 사법적 권리가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범죄 피해 호소자의 일방적 주장만을 근거로 가해자라 규정하는 것은 단순히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뉴라이트도 울고 갈 수준의 파시즘적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성매매에 대해서는 역시 이것이 자본주의를 포함하는 계급 사회의 산물이고, 자본주의가 철폐되지 않는 한 사라질 수 없다고 여긴다. 성매매란 것이 존재하는 현실은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성매매 당사자들(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에 대한 처벌은 반대하며 비범죄화를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상가에는, 여성으로는 클라라 체트킨,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실비아 판커스트가 있고 남성으로는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를 위시한 여러 사회주의 혁명운동가들이 있다.[97] 의외로 로자 룩셈부르크는 본인이 여성임에도 여성해방론 관련 저작은 딱 하나밖에 남기지 않았고, 또 특별히 여성해방 운동에 참여하거나 공헌하지도 않았다.

이 사상의 형성에는 카를 마르크스의 절친이었던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많은 공헌을 했다. 엥겔스는 저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과거 모계사회였던 인류는 농업을 통해 부계사회로 바뀌었다는 이론을 최초로 주장했다. 그는 또한 마르크스주의를 적용해 유산계급 혹은 소생산자 계급 남성의 여성억압의 원인을 남성이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재산을 확실히 자기 자식에게 상속하고자 여성을 지배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상속할 재산 자체가 없는 노동계급에 의한 사회혁명을 통해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반공 운동에서는 페미니즘과 공산주의를 한 세트로 묶어서 공격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그러나 골 때리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바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일찌감치 주류 페미니즘과 결별하며 관계를 끊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의 핵심 인물인 클라라 체트킨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모두 주류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심지어 실비아 판커스트의 경우 어머니와 언니가 자유주의 페미니즘 노선을 따른다는 이유로 결별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적일 뿐만 아니라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공식 논평에서 이 바닥 최악의 욕인 반동이란 말이 나올 정도면 말 다 한 셈이 아니겠는가?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에서는 가부장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부장제는 전자본주의 사회(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동아시아식 생산양식...)의 산물이고, 전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노동자가 됨에 따라 가부장제가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가 전자본주의에 비해서는 여성에게 더 나은 삶과 사회적 지위를 약속하지만, 그래도 완전한 여성해방과 성 평등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분쇄함으로서 여성해방을 성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페미니즘에 목숨 걸고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데,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로 자본주의 체제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표현되는 노동계급의 장벽을 초월한 연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노동계급의 단결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남성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 젠더 권력자로 매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대다수의 노동계급 남성들은 여성 차별적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결과적으로 손해이고, 여성 차별로 인해 득을 보고 있거나 볼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설령 그러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여성에 대한 사회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차별과 억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과의 차이점은 남성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 젠더 권력자로 여기는 래디컬 성향이 있나 없냐의 차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다른 모든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페미니즘 또한 노동계급의 분열을 획책하고 남성 노동자들을 여성해방 이슈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입장이다. 아니, 오히려 그쪽을 더 대차게 까는데, 그 이유는 래디컬 페미니즘은 어차피 부르주아들이라서 그러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사회주의의 탈을 쓰고서 페미니즘이라는 부르주아 사상을 갖다가 진보 민중운동을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성향의 대표적인 운동 단위로 볼셰비키그룹, 노동해방투쟁연대(노해투)[98],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 전선(노동전선)이 있다. 노동자연대는 박근혜 퇴진 운동 전까지는 소위 '성적 대상화'나 '성 상품화' 같은, 이성애적 욕망과 성적 지향을 죄악시하는 래디컬 떡밥을 일부 수용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이를 왔다갔다했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로는 노골적 친워마드 성향의 래디컬 페미니즘 노선으로 급선회했다.

다만 래디컬 페미니즘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하는 정파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과거 노동자연대는 페미니즘의 일부로서 존중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정중하게 대하며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무엇이 더 여성해방에 도움이 되는가를 이야기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고[99], 볼셰비키그룹은 이것은 페미니즘도 뭣도 아닌 일개 사회 병리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일간베스트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를 향해 증오와 조롱의 어휘를 내뱉는 데서 쾌감을 얻는 반동적 행태라는 입장이다. 현장 노동계급 투쟁을 중요시하는 노동전선은 노 코멘트이다. 노해투는 비판적이긴 하나 그 의의는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 속한 정당은 현재 남한 정치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이란 이름을 사용하나 법적으로는 노동운동 단체인 사회변혁노동자당이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단, 내부의 사운위나 학생위는 급진적 페미니즘에 가깝다.

참고로, '페미니즘'으로 분류되는 것을 본인들은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다. 최근 들어 나타난 경향이 아니라 이미 100여 년 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클라라 체트킨 시절부터 해당되는 이야기다. 대신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100]이나 '노동계급의 여성해방 운동'[101]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그렇게 불러 줄 것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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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페미니즘에는 엄청나게 많은 이해 관계와 이익 관계, 역사와 현재, 합리적 판단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등 많은 것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페미니즘이라는 주제가 거대한 화두가 됐다.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 2015년 이후부터 큰 이슈가 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페미니즘은 한국 포탈사이트에서 자주 내리오른 용어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가 당선된 2012년에는 해외 언론에서 페미니즘 사상이 한국에서 부각되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로 이미 페미니즘 사상은 2015년 이전에도 자주 인용된 용어였다. 사실 페미니즘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뜨거운 이슈이며, 유럽과 북미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이슈화 되었다.[2] 표면적으로는 남성에 대한 가부장제의 억압도 해체대상이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여성에 초점을 두는 사상이므로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해체로 인한 부가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 남성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초에 '가부장제'라는 것의 기준이 모호해서 '남성의 관점, 남성에게 득이 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도 강하다. 자세한 것은 페미니스트 항목 참조.[3]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의 어머니.[4] 여성의 신비란 제목은 국내로 들어오면서 오역된 것으로 원제는 《The Feminine mystique》 즉 여성성의 신화이다. 당초 1970년대 한국에서 이 책이 여성의 신비로 번역된 이유는 원제대로 출판하기에는 사회 정서상 논란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5] 페미니즘이전에 평등주의까지만 해도 누구나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고 하고있다. 여자라고 가부장제에 넘어가 당하고만 살라는건 옳은 것이 아니다. 여자는 가짜고 남자만이 진짜 대라고 생각하는 문화도 옳은것이 아니다. 다만 평등주의가 사회에 안착하고 페미니즘이 발생했을때는 옳은 것인지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다. 뷔페니즘과 여성주의로 남자를 오히려 밀어내려는 꼼수 아니라는 의혹과 페미를 이용한 무고죄에 대해 변호하는 것이나 내로남불 행위에 상당히 싫증이 난 사람이 많다.[6] History 참조[7] 단, 초기 페미니즘 사상의 태동 당시부터 등에 의해 페미니즘을 통한 차별의 철폐가 양성 해방의 맥락에서 같이 옹호되었다. 《여성의 종속》에서 밀이 여권을 옹호하는 근거 중 하나가 정당하지 못한 가부장적 지배권력에 도취된 남성이 삶의 왜곡과 인격파탄을 겪게 된다는 점이다.[8]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싫어한다면 단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단어 뒤에 숨겨져 있는 포부와 발상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후에는 양성평등(Gender Equality)이라는 말로 표현했다.[9]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으나, 주토피아에서는 역차별까지 다루는 급진적 모습을 보여주었다.[10] http://www.un.org/en/globalissues/women/[11] 워마드류와 메갈리아류는 성소수자 등 약자를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나뉜다. 국내에서는 여성신문 등의 페미니즘 언론이 메갈리아계류를 옹호하여 '젊은 페미니즘'으로 분류기도 했다.[12] 폴라 트라이클러(Paula Treichler)가 이 말을 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 글귀는 폴라 트라이클러와 체리스 크래머레이(Cheris Kramarae) 교수가 공동으로 집필한 'A Feminist Dictionary'(페미니스트 사전)라는 책을 마리 시어라는 신문 기자가 비평하며 신문에 쓴 글귀이다. 즉 폴라 자체는 이 말을 한게 아니고 오히려 이 말에 비평당한 입장. 현재로선 발언자에 대해선 둘째치고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인상적인 비평이라는 평이 많다.[13] 이는 굉장히 획기적인 발언으로 그리스 문명에서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보지 않았다.[14] Botting Eileen H, Houser Sarah L. "Drawing the Line of Equality: Hannah Mather Crocker on Women's Right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2006), 100, pp. 265–78[15] Karen M. Offen. "European Feminisms, 1700-1950: A Political History".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0.[16] Karen M. Offen. "European Feminisms, 1700-1950: A Political History".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0.[17] Ferguson, Margaret. "Feminism in time", Modern Language Quarterly, (2004), pp. 7–27.[18] 강선미 외, "가족철학:남성철학과 여성경험의 만남",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7).[19] 조희원, "『에밀』에 나타난 루소의 여성관에 대한 재조명", 페미니즘 연구 제12권 제2호 (2012).[20] 김용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페미니즘 재조명: 루소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아시아여성연구 (2004).[21]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교육학용어사전", 하우동설 (2011).[22] 페미니즘과 사회주의가 양립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들의 사상이 페미니즘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23] 한편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차녀 실비아 팽크허스트공산주의자로 활동였고, 좌파 정치와 멀어진 이후로도 파시즘제국주의를 반대했다.[24] <여성성의 신화>는 <여성의 신비>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지만, 이것은 The Feminine Mystique의 오역이다.[25] Tong, Rosemarie. Feminist Thought: A More Comprehensive Introduction (p. 49). Avalon Publishing[26] 아직도 흔히 쓰이는 양성(兩性)평등이라는 단어도 이러한 맥락에서 굉장한 어폐를 지닌 것이다. 단어 자체가 '두 개의 성이 평등하다'을 뜻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이라는 획일화된 범주를 전제하기 때문이다.[27] 물론 분파가 너무 많아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첫 번째로 어떤 사람이 페미니즘(또는 불합리한 차별 철폐)을 주장할 때 '꼴페미=메갈 극혐' 과 같이 몰아가고 선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페미니즘=남혐과 같은 프레임이 한번 씌워지면(또는 진짜 남혐들이 그러한 프레임을 만들어내면), 사람들은 정말로 불합리한 차별 철폐 주장에도 시큰둥하거나 부정적, 심지어는 공격적 반응을 내비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장점으로도, 단점으로도 볼 수 있는데 분파의 다양화로 한 가지 상황에도 수십 가지 다른 해석과 행동, 반응을 보여 논점이 흐려지거나 정작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지 못할 수 있다.[28] 이들은 페미니즘과 사회주의가 양립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들의 사상이 페미니즘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29]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몰락한 계기는 전근대적인 여성관 혹은 성폭력이다. [30] 정작 정의당 중앙여성위는 래디컬 성향이 아니다![31] 이전에는 래디컬 성향이 강한 신좌파 정당이였으나 현장파 출신의 이갑용 대표의 선출과, 이후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탈당,신좌파 계열의 몰락으로 구좌파 정당이 되었다.[32] 내부 신좌파 계열이 성폭력으로 무너졌다.[33] 스까페미라는 멸칭이 왜 나왔는지 생각해보자[34] 단 이들도 워마드는 싫어한다.[35] 볼셰비키그룹은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공식적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노동자연대가 이런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급진적 페미니즘 계열로부터 배척받고 온갖 음해에 시달리는 것에 대해서는 노동자연대를 변호하는 입장에 섰다.[36] 위안부라는 존재는 과거에는 일본군 위안부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았으나 최근의 연구 결과 일본군 위안부외에 한국전쟁 중 존재했던 한국군 위안부, 그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서 주한미군을 위해 만든 미군 위안부가 존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37] http://ko.wikipedia.org/wiki/생태여성주의[38] 인디언 부족에서도 의외로 명예살인이 많이 일어나는 데 수 족도 역시 거기에 해당된다.[39] 이상의 비판은 모두 Rosemarie tong,'Feminist thought',westview,1998[40] 쿠란에서 hijab이라고 분명히 명시된 장에서는 히잡이 오늘날같은 머릿수건이 아니라, 장막, 커튼을 의미하고 있다.[41] 사실 성별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따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성차별적이라서 페미니즘 계열에서는 저런 해석 자체를 옳지 않다고 본다.[42] 다만 그 어떤 종류의 페미니즘에서도 마초적인 사고방식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 특히 그런 남성을 동반자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은 명심하자. [43] 영국의 그토록 격렬했던 서프러제트 운동을 상기해보자. 서프러제트 운동의 과격성에 대한 비판은 가치가 있지만, 서프러제트 운동을 빼놓고 여성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44] 안티페미니스트들의 페미니즘의 기본적인 배경이념에 대한 비판은 이미 숱하게 공격당해온 페미니스트들 그 자신들도 이해하고 있다. 다만 안티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으며, 이대로가 충분히 평등하니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그냥 살면 된다는 사람 외에는 성평등 운동에 대한 논의에는 별로 집중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성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페미니즘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라는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뭐 비판은 대안을 내놓지 않아도 비판 그 자체로 의미있다고 주장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45] 이전 문서에는 이런 급진적 방식을 그 어디에서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듯이 써놓았으나, 이는 차별에 관한 문제를 너무 단편적으로 본 것이다. 단적으로 말콤 엑스를 생각해보자. 그는 현대까지도 그 과격하고 급진적인 운동방식으로 크게 비판받는 인물이지만, 말콤 엑스를 빼놓고 흑인인권운동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것과 별개로 그를 아예 지우고 흑인인권운동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단, 말콤 엑스도 이후 본인의 강경하고 배타적인 노선 방향의 한계를 인식하고 다른 인권운동 노선을 모색하고 서로 단결하고 노력하는, 변화된 모습을 자주 보였다.[46] 굳이 페미니즘에 대입하자면 전자의 2개는 래디컬, 워마드는 TERF로 본다.[47] 물론 여휴가 없어진 학교나 공평하게 남녀휴게실을 모두 설치하는 단과대학도 존재하지만 남학생 휴게실은 여학생 휴게실에 비해 시설이 매우 열악하다. 사실 남학생들이 휴게실을 잘 쓰지도 않긴 하지만서도.[48]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1세대 여성운동이 시작된 계기가 콘돔의 발명과 상용화에 있다고 생각한다.[49] 남녀간 임금격차 13년째 OECD 1위[50] 특히 한국에서 청소년 출산률이 낮은 것은 청소년 출산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 각주 참조. "UNICEF는 한국,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의 '청소년 출산률'이 낮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이 (개선된) 성교육 덕분이 아니라 아직 전통적 가치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즉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 이른 출산이 축복으로 여겨져 '청소년 출산률'이 높았다면, 이들 국가에서는 그 반대의 문화 때문에 도리어 '청소년 출산률'이 낮다는 것이다. UNICEF는 특히 한국의 사례를 별도로 언급한다. 한국에서는 혼전 성관계와 임신이 강력한 사회적 불승인에 직면하게 되고, 임신한 청소년들이 상당한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런 요소가 한국의 매우 낮은 '청소년 출산률'에 일부분 영향을 준다고 분석한다."[51] 자세한 것은 링크에 잘 설명되어 있다.[52] 대표적으로 가정주부의 비율은 한국, 일본등에서 높으며 이 국가들에서 GGI지수가 낮다. 하지만 일본은 비슷한 직종에서의 임금격차가 0.68포인트로, 0.63인 중국과 비슷하며 한국은 0.51로 그래도 낮다.[53] 남녀 임금격차, 가장 큰 이유는 ‘그냥’[54] 이와 비슷한 일로 민주통합당에서 통합진보당이나 임수경, 김용민을 안다가 18대 대선,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부산경남에서 선전하고도 중도성향과 충청도,경기도에서 패해서 새누리당에게 밀린 것이 예다. 또한 그 통합진보당에서도 경기동부연합이 나댄 결과는 해산이었다.[55] 래디컬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파쇼적인 발상일 수 있으나 기존의 인권평등 개념을 구체적으로 가르칠 필요는 있다. 만일 실제로 시행된다면 기존 인권 교육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강화하여 교육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56] 이에 대해 반론을 하면 엉뚱하게도 꼭 남성 위주의 사회 구조를 논하는데, 남성 위주의 사회 구조라고 해서 모든 남성이 주류인 것도 아니며 모든 여성이 비주류인 것도 아니다.[57] 강제적 병역 의무 이행 강제 집행을 통해 짓밞히는 권리들도 똑같은 보편적 권리들이다.[58] 결정적으로 최근 여성에게도 공평하게 징병제를 실행하는 국가들이 sns등의 발달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속속 알려지기 때문에 남성에게만 징병제를 실행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들에 대한 10~30대 젊은 세대의 반감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59] 특히 페미니즘에 취한 언론인들이 가장 큰 문제이다. 페미니즘 담론에 대한 깊은 이해나 이론적 근거에 대한 깊은 사색도 없이 칼럼과 기사의 인기를 위해 자극적인 단어들과 소재를 거리낌 없이 써대고 있다.[60] 그나마 한국에선 이러한 비하나 모욕적인 발언이 없는 축에 속한다. 미국의 경우엔 이사람이 설마 일베를 하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자극적인 단어들을 써가면서 비아냥거리가나 대놓고 폄하하면서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칼럼들을 자주 작성해댄다.[61] 페미니즘내에서도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사회 계급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며 주류의 위치에서 기득권을 줄곧 누리며 위에서 군림하며 살아가는 여성들도 있는가 하면 사회적 위치와 권력에서 소외된 피지배 남성들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들도 기존 사회의 엄격한 상하위계질서에서 소외자로서 불합리한 대우들을 줄곧 받아온 피해자들이자 때문에 연대가 가능한 대상으로 보고 페미니즘 담론이 성장하기 위해선 이들과도 연계가 필요하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이들은 페미니즘은 여성을 위한 것이며 남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기존의 페미니즘 주류에 의해 크게 비판받는다.[62] 당장 페미니즘 시위에서 자주 등장한 남성 비하 차별 혐오 발언들만 해도 학계 페미니즘에선 남성혐오와 비하, 차별에 대해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있었더라도 이러한 페미니즘 학자들은 다른 페미니즘 학자들에 의해 거세게 비판받았다.[63] 참고로 JTBC와 한경오가 크게 비판받은 것이 페미니즘에 대해 옹호를 하면서도 현재 페미니즘 시위들에서 나타나는남성 혐오, 비하 조롱의 주장들에 대한 보도를 꺼리는 편파 보도 때문이다.[64] 이 말은 결국 위의 '꼬리자르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65] 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주류 언론이 대부분 페미니즘에 긍정적이거나 페미니즘을 옹호하고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66] 애초에 젠더학의 가장 큰 세 갈래는 여성학, 남성학, 퀴어학이다.[67] 실제로 페미니즘에서 정의하는 여성혐오에는 동성애 혐오도 포함되어 있다.[68] 심지어 주류여성계가 이들을 지지하기까지 해 상황이 더 복잡하다.[69] 본래 이들 용어는 낙태에 찬성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대량학살을 찬성하던 나치와 같다는 의미로 만들어졌으나, 집단이기주의 및 반사회적인 주장을 하는 페미니스트를 지칭하거나, 가끔 페미니스트 전체를 지칭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70] 이는 나무위키 편집지침에서도 권고하고 있다. 용어에 대한 자세한 것은 페미나치 참고.[71] 사실 성매매에 관해서도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야한다는 분파가 있고, 여성의 억압이라 법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분파가 있다.[72] 이는 특히 개신교 보수주의와 연대한 보수적 페미니즘이 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금주법의 시행을 주도한 이들이나 YWCA 같은 이들을 봐도 알 수 있고, 이들이 진출한 곳이 많은 여가부가 검열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개신교 보수주의 + 보수적 페미니즘의 연합이 사실상 문화 검열의 주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진정한 남녀연대[73] 이것은 사실 페미니스트들이 모든 남성을 성차별주의자 또는 잠재적 성범죄자로 몰아갈 때 사용한 논리 중 하나이다. 뭐 "논리는 남성들이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도구"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도 있긴 하지만...[74] 물론 같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라고 친한 것은 아니었지만(중소분쟁, 중월분쟁 등이 있다.) 서로 사회주의 블록이라는 이유로 암묵적으로 용인했다. 물론 중월전쟁의 계기인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밀어버린 것처럼, 그 정권이 막장이면 갈아 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75] 19대 총선,18대 대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손잡았다가 중도층,충청도에서 참패했던 민주통합당을 생각해보면 된다.[76] 실제로 다문화 여성의 학대 피해 건수는 늘고 있다.[77] 당장 그 여성부가 가난하고 못 배운 여성들을 위해 뭘 해줬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찾아보자.[78] 여성부가 다룬 이슈는 거의 대부분 이쪽으로 귀착된다.[79] 이것도 중요하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그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의 비중이 어느 집단이 더 큰가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은 90%가 겪고 남성은 10%가 겪고있는 문제라고 여성만을 위한 해결책을 내놓는다면 소수자인 10%의 남성이 소외된다. 즉, 근본적인 원인 자체를 해결해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80] 여기에 대해서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형성에는 사회적, 문화적 요인만이 영향을 끼치며 개인의 선택이라는건 있을 수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 라이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오로지 사회적 요인만이 남성성과 여성성을 형성한다는 관점에서 실시한 실험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았는지 보면, 여러가지 성향의 형성에서 생물학적 (다르게 표현하자면 선천적)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다.[81] 당연하지만, 남성이 우월하고 여성은 열등하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다. 남성은 이걸 선호하고 여성은 저걸 선호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 중에서도 로봇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남성 중에서도 인형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저 그들 중 다수가 "무엇을 선호하는가" 가 생물학적 선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생물학적 요인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는 것이다.[82] 특히 현실에선 로봇이든 인형이든 그 숫자가 제한되어 있고 소수의 사람들만 그것을 쟁취할 수 있게끔 경쟁을 유도하는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권력이 개입하여 저런 할당제를 실시한다면? 당연히 사회적 반감과 불만이 커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83] 예를 들면, 예상보다 효과가 미약하거나, 이젠 더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거나, 부작용이 효과보다 크거나, 본질적 해결책이 본궤도에 올라서 더 이상 필요 없거나, 실용성에 의문이 생기거나 등[84]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과도한 수단을 사용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비례의 원칙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85] 심지어 그 특혜가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말이다.[86] 물론 이럴 경우 수행 업무에 따른 인사상의 차별(진급 등)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스트들은 부정하겠지만.[87] 당장 여성가산점은 여성에게 혜택을 주는건데 그런 여성과 경쟁해야 하는건 2030 남성들이지 중장년층이 아니다.[88] 약간 기존 좌파의 관점을 섞어보자면, 이들이 키운 그 불만세력은 무려 진보의 핵심이 되어야 할 무산계급이다![89] http://www.hani.co.kr/arti/science/kistiscience/316108.html[90]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7591[91] Nemecek, S. (1997) The Furor Over Feminist Science, Scientific American 276(1), 99-100[92] 참고로 유체역학은 카오스적 요소가 많아서 애초에 고전역학적 접근이라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자세한 점은 브라운 운동 문서 참조. [93] 남성기가 발기하면 단단해지므로 고체역학적이고 여성기에서는 애액생리혈이 분비되므로 유체역학적이라는 식이다. 일상생활 가능한가?[94] Postmodernism disrobed[95] 소위 말하는 기사도비슷한 신분의 여성인 레이디에 대한 예의이지, 농노는 물론이고 후에 부르주아가 되는 상층 평민 여성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저런 예의는 모조리 동일한 신분층에 대한 것이라는 부분을 착각하면 이상한 환상을 가지게 된다.[96] Postgenderism as a cultural phenomenon has roots in feminism, masculism, along with the androgyny, metrosexual/technosexual and transgender movements.[97] 사실 '마르크스주의' 안에 '여성해방론'이 들어 있기 때문에 웬만한 사회주의 혁명운동가들은 다 이쪽으로 분류될 수 있다.[98] 다만 2018년 8월에 나온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무죄 판결과 관련해서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선전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래디컬 페미니즘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이다.[99] 때문에 노동자연대는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당시에 메갈 성우를 비호하는 데 열을 올렸고, 최근 위례벌초등학교에서 남성혐오 선전 교육으로 논란을 일으킨 메갈 교사에 대해서는 아주 열렬히 비호하면서, 메갈 교사를 비토하는 남성 대중의 목소리를 싸잡아서 조선일보나 일간베스트의 논리에 동조하는 우익으로 매도하고 있다. [100] 노동자연대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101] 볼셰비키그룹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