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 캠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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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74년 출생
- 1992년 데뷔
- 2011년 은퇴
- 잉글랜드의 남자 축구 선수
- 자메이카계 잉글랜드인
- 복수국적자
- 수비수
- 잉글랜드의 남자 축구 감독
- 토트넘 홋스퍼 FC/은퇴, 이적
- 토트넘 홋스퍼 FC/역대 주장
- 아스날 FC/은퇴, 이적
- 포츠머스 FC/은퇴, 이적
- 노츠 카운티 FC/은퇴, 이적
-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매클즈필드 타운 FC/역대 감독
-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FC/역대 감독
- 잉글랜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잉글랜드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96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0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4 참가 선수
- 뉴엄 출신 인물
- 인터넷 밈/축구 선수
잉글랜드의 축구 감독 | ||
![]() | ||
이름 | 솔 캠벨 Sol Campbell | |
본명 | 설제어 제레미아 캠벨 Sulzeer Jeremiah Campbell | |
출생 | ||
국적 | ||
신체 | ||
직업 | ||
주발 | 오른발 | |
소속 | 선수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988~1989 / 유스) 토트넘 홋스퍼 FC (1989~1992 / 유스) 토트넘 홋스퍼 FC (1992~2001) 아스날 FC (2001~2006) 포츠머스 FC (2006~2009) 노츠 카운티 FC (2009) 아스날 FC (2010)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10~2011) |
감독 | ||
국가대표 | 73경기 1골 (잉글랜드 / 1996~2007) | |
링크 | ||
1989년 토트넘 유스에 입단한 후 1992년 1군에 콜업되면서 프로에 데뷔했다. 이후 9년간 팀의 상징적인 선수이자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주장으로 활약했다. 토트넘의 팬들이 캠벨에게 쏟는 애정과 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캠벨 역시 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리고 그 당시 솔 캠벨의 주요 등번호는 4번이었으니, 팀 내 핵심 수비수 포지션과 주장을 맡고 있었던 그의 팀 내 위상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닥주전을 맡을 정도로 기량 또한 엄청난 수준이었으나, 캠벨의 급료는 팀 내에서도 높은 편이 아니었던 데다, 캠벨이 상대 클럽 경비원에게 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을 때 클럽이 미온적으로 대응한 탓에[2] 캠벨이 단단히 감정이 상했던지라 연장 계약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거기다가 당시는 팀 리더십이 앨런 슈가에서 조 루이스&다니엘 레비로 넘어가던 과도기였던지라 보드진 내에서 협상에 집중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보스만 룰이 도입된 지 얼마 안 됐던 시기였던지라 기존 보드진들은 보스만 룰로 인한 자유계약의 가능성을 너무 안일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팀 성적이나 스쿼드의 수준도 캠벨이라는 월드클래스 선수가 만족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3]
결국 솔 캠벨이 토트넘 내 최고 수준의 급료를 주겠다는 제의조차 거절하며 계약 만료는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왔고, 캠벨은 국내외 수많은 클럽의 관심을 받게 된다.
실제로 캠벨은 이탈리아의 여러 클럽으로부터 오퍼를 받기도 했는데, 차라리 그대로 이탈리아로 갔다면 팬들이 이해라도 해줄 수 있을 여지를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솔 캠벨의 주요 등번호는 4번이었으니, 팀 내 핵심 수비수 포지션과 주장을 맡고 있었던 그의 팀 내 위상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닥주전을 맡을 정도로 기량 또한 엄청난 수준이었으나, 캠벨의 급료는 팀 내에서도 높은 편이 아니었던 데다, 캠벨이 상대 클럽 경비원에게 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을 때 클럽이 미온적으로 대응한 탓에[2] 캠벨이 단단히 감정이 상했던지라 연장 계약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거기다가 당시는 팀 리더십이 앨런 슈가에서 조 루이스&다니엘 레비로 넘어가던 과도기였던지라 보드진 내에서 협상에 집중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보스만 룰이 도입된 지 얼마 안 됐던 시기였던지라 기존 보드진들은 보스만 룰로 인한 자유계약의 가능성을 너무 안일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팀 성적이나 스쿼드의 수준도 캠벨이라는 월드클래스 선수가 만족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3]
결국 솔 캠벨이 토트넘 내 최고 수준의 급료를 주겠다는 제의조차 거절하며 계약 만료는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왔고, 캠벨은 국내외 수많은 클럽의 관심을 받게 된다.
실제로 캠벨은 이탈리아의 여러 클럽으로부터 오퍼를 받기도 했는데, 차라리 그대로 이탈리아로 갔다면 팬들이 이해라도 해줄 수 있을 여지를 남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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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경기 8득점 |
포츠머스에서 3년간 뛴 후 캠벨은 2009년 4부 리그인 노츠 카운티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데뷔전에서 4초 만에 백패스 실수를 범해 팀의 패배에 기여했고(...) 그 직후 계약을 해지당했다. 2010년 겨울 이적시장에 이전에 그가 활약했던 아스널로 다시 재이적하여 리그에서 11경기를 뛰었다.
2010년 6월 아스널과의 계약이 만료된 캠벨은 7월 28일 뉴캐슬로 이적하여 리그 7경기에 출전했다. 2011년에 계약이 만료되었고 그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1년 뒤인 2012년 5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력을 보면 알겠지만 선수 생활 내내 단 한번도 전 소속팀에 이적료를 안겨준 적이 없다.착한 아이에겐 이적료를 받지 않는 캠벨 할아버지
그리고 1년 뒤인 2012년 5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력을 보면 알겠지만 선수 생활 내내 단 한번도 전 소속팀에 이적료를 안겨준 적이 없다.
캠벨은 잉글랜드에선 유일하게 국제 대회에 6번 연속 출전한 선수이다[4]. 또한 바비 무어 다음으로 역대 2번째로 어린 대표팀 주장이기도 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서 득점을 하기도 했다.[5]
유로 2004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했으나 이후 존 테리-리오 퍼디난드 조합에, 레들리 킹, 제이미 캐러거 등의 등장으로 국대에서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3차전 스웨덴전 교체 출전이 전부였다.
유로 2008 예선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잉글랜드가 유로 2008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캠벨은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유로 2004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했으나 이후 존 테리-리오 퍼디난드 조합에, 레들리 킹, 제이미 캐러거 등의 등장으로 국대에서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3차전 스웨덴전 교체 출전이 전부였다.
유로 2008 예선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잉글랜드가 유로 2008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캠벨은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장갑차의 속도로 달리는 중전차. 캠벨의 최고 장점은 피지컬과 운동 능력. 몸싸움이 가장 거칠고 심한 리그인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캠벨을 피지컬로 이길 수 있는 선수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190cm에 육박하는 키와 근육질의 거대한 체격 덕에 마치 벽과 같은 느낌이었다. 비단 체격뿐만 아니라 순발력, 주력, 점프력 등 모든 운동 능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특히 거대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주력을 보유했다. 100m를 10초대 중반에 주파하는 축구계 대표적인 스피드 스타 팀 동료 티에리 앙리와 같은 속도였다고 한다.[6] 프리미어 리그의 발 빠른 센터백의 대표격인 리오 퍼디난드, 버질 반 다이크 등 보다도 훨씬 빠른 수준이다. 일단 속력과 피지컬이 워낙 사기적이다 보니 수비진영에서 공을 뺏고 앞으로 좀 달리기만 해도 상대 진영이 맥을 못 추는 상황이 많이 나왔으며, 이러한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센터백으로 알려져 있는 오늘날의 이미지와는 달리 우측 풀백으로도 출전했다.[7]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최고의 수비수이자 최고의 공격수로서 상대방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애초에 유스 시절에는 헤딩 성공률도 낮고 공격적인 재능이 없다고 평가절하 당했을 정도로 득점 수가 그렇게 많진 않지만, 커리어가 진행되며 실력이 향상해 결국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헤더로 득점하며 그 정점을 찍었다.
물론 사기적인 피지컬만 믿고 수비하는 스타일이었으면 절대 지금처럼 월드클래스로 평가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선 주장을 맡은 경력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리더십도 가지고 있고, 수비 조율 능력과 수비 시 위치선정 역시 수준급이었으며, 알레산드로 네스타처럼 면도날같이 공을 뺏는 수비수는 아니었지만 속력과 몸싸움을 위시하며 순간적인 강력한 압박 투사로 공을 뺏는 스타일의 수비에 굉장히 능했다. 수비 시에는 골키퍼 다음으로 내려앉아 있는 편으로 팀의 최후방을 책임졌다. 다른 센터백 한 명이 뚫리면 득달같이 달려가 커버하는 스타일이었으며 특히나 멘탈이 엄청나게 강한 선수로 유명했는데, 비단 친정팀의 뒷통수를 치고 라이벌팀으로 이적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플레이 중에도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바위처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체력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자주 받았다. 최후방 위주로 플레이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체력을 사용한 플레이를 구사하고자 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멘탈과는 별개로 패스 능력이 좋지 않아 간혹 가다 압박이 없는 상황에서도 어처구니없는 패스 실수를 저질러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캠벨은 엄청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파워풀한 파이터형 센터백으로서 동 시대 EPL에서 캠벨보다 윗급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센터백은 존 테리, 리오 퍼디난드 정도밖에 없을 정도인 EPL 최고의 센터백이었다.
물론 사기적인 피지컬만 믿고 수비하는 스타일이었으면 절대 지금처럼 월드클래스로 평가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선 주장을 맡은 경력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리더십도 가지고 있고, 수비 조율 능력과 수비 시 위치선정 역시 수준급이었으며, 알레산드로 네스타처럼 면도날같이 공을 뺏는 수비수는 아니었지만 속력과 몸싸움을 위시하며 순간적인 강력한 압박 투사로 공을 뺏는 스타일의 수비에 굉장히 능했다. 수비 시에는 골키퍼 다음으로 내려앉아 있는 편으로 팀의 최후방을 책임졌다. 다른 센터백 한 명이 뚫리면 득달같이 달려가 커버하는 스타일이었으며 특히나 멘탈이 엄청나게 강한 선수로 유명했는데, 비단 친정팀의 뒷통수를 치고 라이벌팀으로 이적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플레이 중에도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바위처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체력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자주 받았다. 최후방 위주로 플레이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체력을 사용한 플레이를 구사하고자 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멘탈과는 별개로 패스 능력이 좋지 않아 간혹 가다 압박이 없는 상황에서도 어처구니없는 패스 실수를 저질러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캠벨은 엄청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파워풀한 파이터형 센터백으로서 동 시대 EPL에서 캠벨보다 윗급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센터백은 존 테리, 리오 퍼디난드 정도밖에 없을 정도인 EPL 최고의 센터백이었다.
EFL 리그 2로 승격한 이후 팀은 2승만을 거두었고, 결국 마크 예이츠를 경질하고 매클즈필드 타운은 대체자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캠벨로 낙점되었고, 11월 28일 감독에 부임했다.
매클즈필드 타운을 리그 2에서 잔류시키는 등 안정적인 지도력을 보였다. 2019년 8월 상호합의 하에 팀을 떠났다.
그러나 캠벨의 떠난 이후 다음 시즌에 매클즈필드 타운은 결국 임금 체불 사태로 내셔널 리그로 강등되었고 이후 해체되었다.
결국 캠벨로 낙점되었고, 11월 28일 감독에 부임했다.
매클즈필드 타운을 리그 2에서 잔류시키는 등 안정적인 지도력을 보였다. 2019년 8월 상호합의 하에 팀을 떠났다.
그러나 캠벨의 떠난 이후 다음 시즌에 매클즈필드 타운은 결국 임금 체불 사태로 내셔널 리그로 강등되었고 이후 해체되었다.

이후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3부 승격~중위권 팀을 4부 리그로 강등시키며 지도자 커리어 강등의 쓴맛을 봤다.
그러나 정작 사우스엔드가 다음 시즌 백투백 강등을 당하고 선수단이 거의 붕괴 상태였다는 게 밝혀지며 재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엔 지도자 생활을 하지 않고 간간히 아스날 레전드라는 이름값으로 조언을 하는 게 언론을 타고는 한다. 흔히 레전드 조언하면 떠올리는 꼰대짓 같은 게 없고 어린 선수들을 존중해 주는 편.
- 토트넘 홋스퍼 FC (1992~2001)
- 풋볼 리그 컵: 1998-99
- 아스날 FC (2001~2006, 2010)
- 프리미어 리그: 2001-02, 2003-04
- FA컵: 2001-02, 2002-03, 2004-05
- FA 커뮤니티 실드: 2002
- 툴롱 토너먼트: 1994
- 잉글랜드 U-19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19 챔피언십: 1993
- 2009년부터 "Kids go Live"라는 자선 사업을 벌이고 있다. 도시권의 저소득층 어린이들이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를 관람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라고 한다.
- 감독 선임에 있어 인종차별을 보이는 영국 축구 풍토를 비판했다.
- FIFA 또는 PES 시리즈에 수록되어 있다. 엄청난 수비력과 속도, 그리고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졌지만 키가 190을 넘지 못하는 평균 수준의 키인 데다가 균형조절 능력이 별로이다. 피파 온라인 3에서도 월드 레전드 시즌이 업데이트되면서 등장하였다. 1레벨 기준 몸싸움 스탯이 99에 속가까지 빠른 사기 선수로 이름을 날렸었다. 가격대도 무지하게 비싼 편이었으나 당시 이벤트로 인해 캠벨의 물량이 제법 많이 풀린 편이기에 가격도 낮아졌다가 이후 시간이 상당히 흘러 다시 원래 가격대로 돌아왔다. 엔진 패치 이후론 몸싸움 스탯의 중요도가 낮아지고 캠벨보다 더 성능 좋거나 가성비 수비수들이 많아져 이전보단 위상이 떨어진 편이었으나 여전히 서버 종료 이전까지도 좋은 수비수로 평가받았다. 이후 나온 4에선 상술했듯 앙리만큼 빠른 선수였음에도 속도가 훨씬 느리게 나와 인기는 그저 그런 편이다.
- 터프하고 강인한 외모와 덩치에 비해 성격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편이라고 한다.
- 키 189cm / 체중 100kg의 육중한 체격이지만 100m를 10초대 중반에 주파하는 엄청난 주력을 보유했다.
- 2022/23 시즌 프레스턴과 토트넘의 FA컵 경기에서도 홈팀 경기는 아니었지만 토트넘 경기를 보러 경기장을 찾았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토트넘 팬들이 기다렸다는 듯 캠벨이 죽는 소식을 접하면 파티를 열 것이라며 캠벨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노래를 부르자 캠벨이 이번에는 충격을 받은 듯 데일리메일에 "사람들은 인간이 되는 방법을 잊은 듯하다. 어떻게 누군가가 죽기를 바랄 수 있나? 그리고 그 후엔 파티를 연다고?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맞나?"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내며 다시 한 번 토트넘 팬들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11][12]
- 아이콘 매치 2에서 Shield UTD로 합류하였다. 아스날 시절 멤버였던 지우베르투 시우바, 애슐리 콜과 한 팀이며 FC Spear 소속인 티에리 앙리와 로베르 피레스, 아르센 벵거 감독과는 적으로 만났다. 그리고 실드 유나이티드에 토트넘 소속이었던 이영표, 마이클 캐릭과 동료가 되었다. 다만 캐릭은 같은 국대 동료이긴 했지만 캠벨이 토트넘을 떠난 뒤에 토트넘으로 넘어온지라 토트넘에서 솔 캠벨과의 인연은 없다. 이영표 역시도 캠벨이 토트넘을 떠난 이후에 토트넘으로 온 케이스라 역시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 메인 매치가 끝난 이후 아스널 멤버들과 다시 모여 기념 사진을 찍었다.
- 이러한 자신을 향한 토트넘 팬들의 악감정에 이제는 자신도 지쳤는지 결국 2025년 11월에 자신은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콘서트에도 간 적이 없다는 발언으로 자신도 토트넘과 연을 완전히 끊은 듯한 불만성 발언을 냈고, 심지어 자신의 아스널 이적이 토트넘 수뇌부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당시 토트넘 수뇌부들을 비난하는 발언까지 했다.
솔 캠벨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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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캠벨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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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캠벨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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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이스 피구같은 사례로도 보듯이 사실 축구계에서 특정 선수가 팀의 라이벌로 이적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가끔씩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순전히 상징성과 실력이라고 볼 수 있다. 토트넘에서 똥을 싸던 베르흐바인이 아스날에 이적설이 불거질 때도 토트넘 팬의 여론이 심드렁한 이유가 그렇다.[2] 결과적으로 이 고소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되었다.[3] 캠벨은 토트넘 시절 딱 두 번 유럽 대항전에 출전했다(95-96 인터토토컵, 00-01 UEFA컵).[4] 1996, 2000, 2004유로, 1998, 2002, 2006 월드컵[5] 그의 커리어에서 유일한 A매치 득점이기도 하다.[6] 사실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스프린트는 키가 클수록 유리하다. 키가 크면 다리도 길고 넓은 보폭으로 한 번에 많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기 때문.[7] 물론 본 포지션은 엄연히 센터백이다.[8] 축구 자체가 노동 계급에서 기원한 스포츠인지라 정치적으로 축구 쪽은 좌익 정당의 지지세가 강한 경향이 있다. 물론 캠벨이나 프랭크 램파드같은 예외도 있으니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9] 단 영국 흑인들은 미국 흑인들보다는 진보좌파 계열 정당 지지세가 좀 덜한 편이긴 하다. 당장 케미 베이드녹 현 영국 보수당 대표도 흑인이기도 하다. 물론 영국 평균 대비 영국 흑인들의 노동당 지지세가 높은 편인 건 맞다.[10] 참고로 토트넘 지역 일대와 아스날의 홈구장이 있는 이즐링턴 지역 일대는 노동당 초강세 지역이다. 이즐링턴 지역의 국회의원이 노동당 당수를 지냈던 제러미 코빈이고, 그 역시 구너이다. 이즐링턴과 가까운 홀본세인트판크라스 지역구는 현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가 있기도 하다. 여담으로 제러미 코빈과 키어 스타머 모두 노동당(출신)이고 구너다.[11] 당시 크리스티안 스텔리니 토트넘 수석코치는 이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듣지 못했다. 당신이 말해서 알았다.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답했다.[12] 신구장 개장 행사때와는 달리 이번엔 캠벨의 말에 공감을 해주는 토트넘 팬도 소수나마 존재했다, 아무리 미워도 죽음과 연관된 저주를 거는 것은 도리가 아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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