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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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의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2001 K리그 베스트 XI

FW
우성용

FW
산드로

MF
신태용

MF
서정원

MF
송종국

MF
남기일

DF
우르모브

DF
김현수

DF
김용희

DF
이영표

GK
신의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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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화이트캡스 FC 앰버서더[1]

이영표
(李榮杓 / Lee Young-Pyo)

생년월일

1977년 4월 23일 (41세)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출생지

강원도 홍천군 내면 창촌리[2]

종교

개신교[3]

포지션

풀백[4]

신체 조건

177cm, 67kg, O형

주로 쓰는 발

오른발

선호하는 등번호

12번

가족

부인, 슬하 3녀

학력

안양초등학교 (1984~1990)
안양중학교 (1990~1993)
안양공업고등학교 (1993~1996)
건국대학교 (1996~2000)

프로입단

2000년 안양 LG 치타스

소속 클럽

안양 LG 치타스 (2000~2003)
PSV 아인트호벤 (2003~2005)
토트넘 핫스퍼 FC (2005~2008)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8~2009)
알 힐랄 FC (2009~2011)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2011~2013)

국가대표

127경기 5골[5]

SNS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Sero(1:1 Video Q&A)[6]



1. 개요[편집]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한 명

13년간 대한민국의 측면을 책임졌던 레전드 풀백[7]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現 KBS의 축구 해설위원이다.

박지성과 함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레전드 선수이다. 황금세대라 불렸던 2002년 멤버 중 1명이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예선 최종전 포르투갈과의 결승골 어시스트, 16강전 이탈리아와의 결승골 어시스트를 올리며 활약했다. 이 때 구축한 좌영표-우종국 라인은 지금도 회자되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역대 최고의 윙백 라인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이후 박지성과 대표팀 주축으로 성장하면서 한국 축구는 무려 10년 동안 박지성과 이영표가 버티고 있는 좌측라인은 걱정할 일이 전혀 없게 된다.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자, 공격을 이끄는 화려함이 박지성의 몫이라면 이영표의 강점은 기복없이 안정되고 항상 수준급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에 있다. 자기관리를 잘하는 것으로 무척 유명한데 이영표가 대표팀에서 폼이 떨어져서 허우적대는 모습은 결코 보여준 적 없을 정도로 기복없는 플레이하면 이영표로 정평이 나있다. 특유의 헛다리 짚기 개인기도 유명하다.[8] 한국 축구에선 보기 힘든 윙어가 드리블로 상대팀의 수비 한 축을 허무는 모습도 이영표식 드리블 플레이는 축구팬들이 항상 즐거워하는 요소 중의 하나였다.

축구계 성실함의 대명사로서 그의 축구인생 역시 매우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려 후배들이 본받을 만하다. 대학교를 완전히 졸업하고[9] K리그에 입단, 이후 월드컵을 거쳐 네덜란드명문팀에 진출한다. 이후 바로 주력 주전으로 팀의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 등을 이끌고 빅리그 팀 중의 하나인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명문팀 토트넘과 분데스리가도르트문트에 진출하여 활약했다. 노장으로 접어든 이후로는 중동팀을 거쳐 북미 리그에도 진출, 36살의 나이로 전 경기 풀타임 출전 기록을 세우며 축구 인생을 마무리했다. 항상 철두철미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이룬 안정된 축구 인생의 한 전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항상 냉철하고 철두철미했던 현역 선수 시절 모습을 해설자로서 보여주고 있다. 경기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날카로운 안목으로 경기를 연이어 정확히 예측해내 큰 화제가 되었다. 또한 대표팀에 대해 따뜻하면서 가끔은 따끔하게 짚어낼 것은 짚어내는 해설로 해설자로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경기장의 초롱이텔레비전에서 이제 초롱도사로서 팬들과 만나고 있다.

그가 KBS 해설을 맡은 이후로 KBS 축구중계는 계속해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더불어 승률도 가장 좋다. SBS차범근 이후 선출 해설이 없자 장지현을 쓰고 있으며, MBC는 파업 이후 김성주를 쓰지 않고, 해설 역시 송종국을 쓰지 않으며 안정환을 배치했던 터라 가장 화제성이나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거 아닌가 했는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 스웨덴전, 멕시코전,독일전 모두 3개 방송사 중 시청률 1위를 달렸다. 선수와 경기에 대한 정확한 분석력과 예리한 해설로 정평이 나있다.

처음 해설자로서 데뷔한 2014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축구 3사 시청률 맞대결에서 거의 매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축구 헛다리는 잘 짚는데, 해설 헛다리는 안 짚는다.

하지만 2018년 5월 출간한 저서 <생각이 내가 된다>(두란노)에서 "동성애를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위험한 사람들이다라고 표현하는 등[10], 영락없는 개신교 근본주의자이자 호모포비아임을 만천하에 과시하였다. 그가 헌법과 공공가치를 준수해야만 하는 공영방송인 KBS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감안하였을 때, 향후 충분히 자격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부분.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2.1.1. 안양 LG 치타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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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했다. 2000년 리그우승과 2001년 수퍼컵 우승을 이끌었다. 월드컵 종료 후 한 달 후 벌어진 2002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 올스타전 최초로 자책골을 기록했다.

이임생 선수에게 경기 중 폭행당한 것도 이때다.(2002년 7월)

2.1.2. PSV 아인트호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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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부터 거스 히딩크 감독에레디비시PSV 아인트호벤으로 복귀하게 되는데,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과 함께 이영표를 네덜란드로 데려간다.[11] 2003년에 이적했고 이적하자마자 맹활약. 2004년에는 에레디비시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한다. 2006 월드컵 당시 BBC에서 선정한 세계 수비수 8위에 오르기도 했다.[12] PSV의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4강을 견인하는 등 박지성과 함께 맹활약한다.

2.1.3. 토트넘 핫스퍼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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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박지성이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진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영표도 같은 리그의 토트넘 핫스퍼에 입단했으며 팀내 연봉 5위 수준.[13]

초기에는 뛰어난 기량과 과감한 오버래핑으로 토트넘의 주축으로 자리잡았으나 수비능력에서 혼란을 겪은 적이 있었다.[14] 2번째 시즌초부터 베누아 아수 에코토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겨 4개월 동안 벤치멤버로 전락 하였으나 에코토는 겨울에 열린 아스날전에서 상대 공격수들에게 유린당하며 멘탈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이 경기 후반 이영표로 교체되었다. 이영표는 그 경기에서 전과는 달라진 수비능력을 보여주면서 스카이스포츠로부터 "IMPROVED" 라는 호평을 받으며 이후 주전자리를 공고하게 지켜냈다.

하지만 이영표의 공격 능력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다. 원래 크로스 킥력이 부족하고 정확도가 낮아서 드리블 돌파 후 이어지는 낮고 빠른 크로스라면 몰라도 상대를 제치면서 올리는 높은 크로스는 위협적인 경우가 많지 않았다. 높은 크로스는 EPL은 커녕 K리그에서도 좋지 못했다(일명 아리랑 크로스. 또는 두둥실 크로스). 가장 큰 문제점은 왼쪽 윙백이면서도 왼발로 크로스를 못 올렸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리그에서 뛸 때는 분명 왼발로도 크로스를 올린 적도 적지 않은데, EPL로 가면서 갑자기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오버래핑 후에 왼발로 바로 크로스를 올리지 못하고 뒤로 방향을 바꾼 다음에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리니 공격템포가 죽고 성공할 리가 없었다. 상대방 수비수골키퍼 사이 공간으로 크로스를 못 올리니 이영표의 오버래핑 공격은 성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를 데려온 마틴 욜 감독 시기까진 어떻게든 경쟁이 가능했으나, 2007/08 시즌 도중에 후안데 라모스 감독이 부임하면서 완전히 전력 외로 낙인찍힌다. 토트넘 부임 이전 세비야에서 다니엘 알베스라는 세계 최고의 공격형 풀백과 함께한 라모스 감독에게 이영표는 성에 차지 않았다.

2.1.4.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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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은 당시 도르트문트 감독 노말 원 클롭.


결국 장기 부상 당한 주전 레프트백 데데의 대체자를 찾던 BVB 도르트문트로 이적하게 된다.[15] 2008/09 시즌 초반에는 도르트문트에서 꾸준히 출전했고 1년 재계약에도[16] 성공했지만, 뛰어난 공격가담 능력을 가진 부주장 데데가 복귀하여 팀내 입지가 흔들리고[17] 본인도 다음 해에 월드컵이 있는 만큼, 꾸준히 경기 출장을 할 수 있는 팀을 찾았기 때문에 결국 사우디아라비아알 힐랄 FC로 이적했다.

2.1.5. 알 힐랄 FC[편집]

클래스가 훨씬 낮은 사우디리그에선 축구를 가르쳤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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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16일에 벌어진 FA컵인 크라운 프린스컵 8강전 알 아흘리 경기에서 승부차기 키커로 나와 득점에 실패했다.[19] 다행히 골키퍼의 활약으로 겨우 4:3으로 팀이 4강에는 진출했다. 그리고 팀의 크라운 프린스컵 결승 경기에서도 활약하며 팀은 대회 우승했다. 그 당시 결승이 이교도는 들어갈 수 없는 메카에서 치러지는 거여서 이영표를 포함하여 알 힐랄의 외국인 선수들이 참가를 못할 뻔 했으나 왕자의 중재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메카에 들어간 최초의 한국인 이교도일지도 모른다.[20]

2.1.6. 밴쿠버 화이트캡스 FC[편집]


2011년 6월, 알 힐랄과의 계약만료 이후 알 힐랄과 재계약하지 않고 거취를 고민하다가 12월 6일 미국프로축구(MLS) 밴쿠버 화이트캡스 FC와 1+1 계약을 확정짓고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였다. 자녀들의 교육 문제와 장래 지도자로의 변신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자신의 트위터티켓 필요한 밴쿠버 유학생들 연락달라며 새 팀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

2012년 4월 29일에는 7년 만에 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프리킥 골이다.

2012년 7월 20일에는 대한민국 기준 나이 36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북미 프로축구 리그(MLS) 전 경기 풀타임 연속 출전 기록을 달성했다.[21] 그야말로 이영표 선수의 몸관리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방증한다. 대한민국의 하비에르 사네티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2.1.7. 현역 은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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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7일 은퇴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2013년 10월, 현역에서 은퇴한다고 공식 발표됐다. 그리고 2013년 10월 28일, 공식 은퇴전을 치렀으며 이 경기에서 주장 밴드를 차고 나와 90분을 소화한 뒤에 추가시간에 교체되어 나왔다. 교체사인 뜨자마자 박수 쳐주는 피치 위의 동료들과 한번씩 포옹한 뒤 마지막에 교체선수와 포옹하면서 피치 위에서 완전히 내려왔다. 그리고 2013년 11월 15일, 스위스와의 A매치에서 현역 은퇴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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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잘 보자, 이영표 선수가 뛰었던 안양 LG 치타스, PSV 아인트호벤, 토트넘 핫스퍼 FC,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알 힐랄, 밴쿠버 화이트캡스 FC엠블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엠블럼이 이영표 선수의 얼굴과 나란히 실려있다.

이어서 건국대 홍보모델이 됐다.은퇴 이후 후배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해당기사

2.2. 대표팀 경력[편집]

2.2.1.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2.1.1. 2000 시드니 올림픽[편집]

본래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으나,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과 이영표가 재학중이던 건국대학교 간의 연습경기에서 허정무의 눈에 들어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했다. 당시 포지션은 3-4-3 포메이션의 왼쪽 미드필더.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오른쪽에서 영리한 플레이로 주가를 높이던 박진섭과 쌍으로 묶여 ‘좌영표 우진섭’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국가대표에도 발탁되는 영예를 누린다.[22] 당시에는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전격 발탁되는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는데, 이때 이영표와 같이 선수들 중 설기현, 이천수, 박지성 등은 훗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자리잡는다.

2.2.1.2. 2002 부산 아시안 게임[편집]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이운재김영철과 함께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준결승인 이란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갔는데, 이영표가 찬 공은 아쉽게 골대를 맞았다.[23] 이 한 번의 실축으로 대한민국이란에 패해 3-4위전으로 밀려났고, 울산에서 열린 3-4위전에서 태국을 이기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실축 때문에, 월드컵 탈락 한풀이를 하러 온 이동국은 시즌 후 빼도박도 못하고 군대 확정.자바드 네쿠남: 앗싸 금메달!

2.2.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2.2.1. 2000년 AFC 아시안컵[편집]

올림픽 대표팀을 맡고 있던 허정무 감독의 눈에 들어 1999년 6월 12일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24]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룬다. 예나 지금이나 대표팀 선수 대다수가 어려서부터 재능을 인정받고 U-17, U-20, 올림픽 팀(U-23)을 차례로 거쳐 대표팀에 뽑히는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에 비하자면 무척 희귀한 경우다.[25][26][27]

이 시절 이영표는 윙백이 아닌 윙어로서 공격력이 상당해 득점도 곧 잘 기록했다. 특히 중국에게 강했는데, 중국 대표팀과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레바논 아시안컵에서도 중국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었다.

2.2.2.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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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 포르투갈전에서 루이스 피구를 막아내는 이영표

그리고 히딩크 감독의 지옥훈련도 무난히 통과하여 월드컵 대표팀에도 승선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선 쓰리백을 사용한 대표팀의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나서 대회 기간 내내 맹활약했다.[28] 특히 예선 3차전에서 루이스 피구가 이끌던 포르투갈 대표팀을 좌영표-우종국의 미칠 듯한 콤비네이션으로 도륙내 버렸다. 이영표의 크로스를 받은 박지성의 환상적인 결승골로 기억되는 그 날의 경기는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 영원히 잊을수 없는 추억이다. 뿐만 아니라 16강전인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의 헤딩 골든골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 대회에서만 결승골 도움 2개를 기록한 것.

2.2.2.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편집]

2008년 11월 20일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차범근,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김태영, 이운재에 이어 센추리 클럽[29]에 가입했다.

그의 경기력과 신상에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했고, 4경기 모두 풀타임으로 뛰며 풀백으로서의 능력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단적인 예로 4대1로 대패한 아르헨티나 전은 이영표-박지성의 좌측 라인은 정상적으로 가동되어서 공격을 잘 막아냈지만 반대쪽 라인이 숭숭 뚫리면서 실점이 전부 우측에서 터졌다.

2.2.2.4. 2011년 AFC 아시안컵[편집]

2011년 1월 2011년 AFC 아시안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6경기 모두 뛰며, 대한민국 최고의 풀백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고, 마지막 경기를 통하여 A매치 127회라는 역대 대한민국 대표팀 3번째의 기록을 보유한 채 박지성과 함께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2.3. 기록[편집]

2.3.1. 대회 실적[편집]

  • 안양 LG 치타스

    • K리그 우승 : 2000

    • 슈퍼컵 우승 : 2001

    •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 : 2001-02

  • PSV 아인트호벤

    • 에레디비시 우승 : 2002-03, 2004-05

    • KNVB컵 우승 : 2004-05

    • 요한 크루이프 실드 우승 : 2002-03

    •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004-05

  • 알 힐랄 FC

    •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우승 : 2010

    • 사우디아라비아 크라운 프린스컵 우승 : 2010

2.3.2. 통산 성적[편집]

2.3.2.1. 국가대표[편집]

연령

출전

U - 17

0

0

U - 20

0

0

U - 23

23

1

A 대표

127

5

종합기록

150

6

2.3.3. 주요 개인 수상[편집]

  • KBS배 추계 축구선수권대회 MVP : 1995 

  • K리그 베스트 XI : 2001

  • 체육훈장 맹호장 : 2002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 2002 

  • 에레디비시 베스트 XI : 2003-04

  • 독일 월드컵 BBC 선정 세계 수비수 Top10 : 2006 

  • 벤쿠버 올해의 선수상 : 2012

2.4. 플레이 스타일[편집]


국내 축구 팬들에게는 특유의 '헛다리 짚기' 개인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실제로 그는 개인기를 통해 상대 수비수를 제치는 데서 재미를 느껴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무던히도 개인기를 연습했다고 한다. 소위 '헛다리'라 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중심축을 잃지 않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전성기 시절 그의 헛다리 드리블만큼은 월드클래스라 할 만 했다. 그러나 정작 이영표 자신은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는 "프리스타일" 에 대해서 그리 좋게 보지 않는 듯하다. 프리스타일 외국인 유망주가 개인기가 뛰어난 토트넘의 이영표 앞에서 자신의 기술을 시연한 적이 있는데 축구에서 저런 기술은 필요하지 않다며 혹평한 적이 있다.[30][31]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이적 첫 경기였던 대 리버풀 FC전에서는 측면에서 리그 탑 클래스 리버풀 수비 두 명, 스티브 피넌제이미 캐러거를 보란듯이 제껴버리고 크로스를 올리는 등 리버풀의 오른쪽을 경기 내내 제 집 드나들듯 유린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이날 이영표는 MOM에 선정되었다. 그 외 PSV 시절, 챔피언스 리그 4강전 대 AC 밀란과의 홈 경기에서[32] 레전드급 수비수 카푸를 완벽히 제치고 멋진 크로스를 올려 코쿠의 헤딩골을 돕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영표의 전성기 시절 클래스를 대표하는 명장면.

전성기가 지난 뒤로는 그 때의 폭발력은 더이상 보여주지 못했지만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관록으로 김동진, 장학영, 김치우 등등 뛰어난 왼발잡이 풀백들이 즐비한 한국 대표팀에서 은퇴하기 직전까지 부동의 주전자리를 지켰다.[33] 특히 박지성이 왼쪽 측면에 위치할 때는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에서도 최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이들이 있는 동안 대표팀 왼쪽 측면은 아르헨티나를 만나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특유의 헛다리 짚기가 유명하다보니 공격에 특화된 윙백으로 인식된 적도 있지만, 실상 이영표의 진가는 공격보다 수비에 있었으며 네덜란드 리그 시절 이후론 공격에서는 크게 두드러지지 못했다.[34] 수비는 상대와의 수싸움을 통한 자리 잡고 막는 방식과 피지컬로 커버하는 방식이 있는데 전성기 이영표는 상대와 수싸움도 능해 어지간하면 위험한 장면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상대방을 기본적으로 잘 읽는데다가 혹시나 제껴지더라도 금방 다시 따라와서 공격수를 막곤 했다. 특히 개인기에 능하다는 장점으로 돌파를 즐기는 상대에게 웬만하면 뚫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영표의 약점은 육체적인 능력에 있다. 스피드가 그렇게까지 빠르지는 않고 힘에서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상대 선수와 붙어서 수비를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게 대표팀 시절도 클럽팀 시절도 이영표의 약점 중 하나였다. 측면 수비의 딜레마는 붙으면 개인기로 제껴지기 쉽고, 떨어지면 크로스를 허용하기 쉽다는 점이라 이를 잘 이용하는 것이 측면 공격과 방어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영표는 잘 붙지 않으니 상대방이 그 특성을 알고 거기서 한 번 공격진 정비를 하거나 크로스를 허용하는 일이 잦았다. 때문에 크로스 허용률이 매우 높았다.

이영표의 이런 약점이 드러난 경기가 있는데, 호날두가 맨유 시절 이영표를 상대로 크로스를 한 번 올리고 나서 다시 공이 호날두 쪽으로 오자 이영표가 차마 두 번은 크로스 허용을 못하고 붙어버리자 치달을 이용해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진입하며 완전히 이영표를 털어버려 페널티킥을 얻어낸 적이 있다. 또 같은 경기에서 호날두는 후반전에는 직각이 아니라 대각선으로 사이드 라인 쪽으로 치고 들어오며 이영표를 털고 크로스를 올려서 한 골을 뽑아낸 적이 있다.[35]

이처럼, 신체적 한계도 있지만 축구 지능이 좋기 때문에 기복도 없고 실수도 거의 없는 안정적인 수비수였다. 피지컬이 중시되는 EPL 이적 초반에는 강력한 압박과 빠른 템포에 애를 먹기는 했지만 특유의 영리함으로 재빨리 적응했다.

주력과 개인기가 좋았지만 공격적인 측면에서는 킥력과 왼발 크로스를 못 올린다는 단점이 두드러져서 뛰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유망주시절 킥력이 나쁜 편은 아니였지만 부상을 당한 뒤로 더이상 강한 킥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양발잡이지만 킥력은 별로였고 특히 왼발로 올리는 러닝크로스가 붕 뜨는 아리랑 크로스였기에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파고들어서 날리는 중거리슛이 강한 것도 아니었기에 상대 입장에서는 접고 올리는 오른발 크로스만 조심하면 되었던 것.

신체능력이 정점에 있었던 네덜란드 시절엔 현란한 드리블과 강인한 체력을 활용한 무한 오버래핑으로 맞은편 상대 윙백을 밀어붙이곤 했다.[36] 그러나 신체 능력이 하락하기 시작한 토트넘 3년차부턴 순발력이 떨어지면서 수싸움에서 지레 지고 들어가는 장면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상대팀은 이영표가 있는 왼쪽 측면을 공격에서 일단 쉬어가는 전진기지로 삼기도 했기 때문에 은퇴 직전 시점 받았던 공수겸장으로서의 칭호는 사실 과하다고 할 수 있다. 본인도 은퇴하면서도 프리미어리거라는 간판 덕에 칭송받은 경향도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아공월드컵 때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우측 라인은 다 털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가 포진한 좌측은 박지성과 함께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를 보더라도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였고, 또한 대한민국 역대 최고 수비수 중 한 명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3. 사건사고/논란[편집]

3.1. K리그 복귀 불발 논란[편집]

2011년 알 힐랄 퇴단 후 무적 시절 국내에 거주하면서 구리시FC 서울의 연습장에서 몸을 만들었다. 이때 서울 영입설이 나돌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서울 입단 타진하다 계약조건이 맞지 않아서 바로 튀었다는 근거없는 루머가 나와 FC 서울 팬들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이영표가 자기 팀에 온다며 기대했던 것에 대한 실망감에 서울의 연습시설을 이용하기만 하고 실리를 찾아 해외팀과 계약 했다며 FC 서울의 팬들에게 비난받은 것인데, 더 나아가 그 동안 K리그에 대해 말로는 K리그에 대한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본인은 K리그에서 선수경력을 마치지 않는 것에 대한 배신감으로 일반 K리그 팬들에게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K리그 복귀 없이 밴쿠버 이적이 확정된 후 이영표를 비난하는 아이러브사커 축구커뮤니티의 K리그팬들.

2012년 말, K리그 복귀 없이 밴쿠버에서 1년 더 선수생활 후 은퇴가 확정되자 다시 한번 K리그 팬들에게 비난을 받았으며, 밴쿠버에서 은퇴 확정 후 이영표를 비난하는 아이러브사커 축구커뮤니티의 K리그팬들. 이에 대해 이영표는 "많은 팬들에게서 K리그로 돌아와 달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선수로 돌아와 도움을 주는 것과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나중에 도움을 주는 것 중에 후자가 더 큰 일이라고 생각하여 K리그 복귀를 하지 않은 것이란 입장 표명을 하였다. 기사링크.

3.2. 극단적인 개신교 근본주의 성향[편집]

종교적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적도 몇 번 있다. 대표적으로 최성국, 김동현을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라는 논리로 최태욱과 함께 옹호했었던 경력이 있다. 이외에도 기성용, 박주영, 송종국, 이천수 등 문제를 일으킨 개신교 신자 선수들과 성남 일화 천마와의 종교 대립과 옹호 문제로 인해 비난을 산 적이 있다.

'프리미어리그를 보러가다'라는 책자에 따르면 농담조인지는 몰라도 불교 신자인 후배 박지성을 교회에 나오게 하려 했다는 말을 했다가 영국에서도 좀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을 정도로 소싯적엔 전도에 열성적이었던 듯 하다. 이영표의 자서전에 추천사를 써준 박지성은 "영표 형은 내가 알고 있는 기독교인 중 가장 성실한 사람 중 하나이다. 나는 불교란 종교를 갖고 있지만 영표 형의 하나님 사랑에 감동받았다."라는 내용을 써줬을 정도. 지인의 자서전에 써준 추천사임을 감안하면 박지성에 대한 그의 전도가 굉장히 적극적이었을 것은 분명해보인다.

이런 열성적인 전도 활동 때문에 당시 잉글랜드 기자가 "당신은 축구선수인가, 선교사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고 한다. 이영표는 자서전에서 밝히길 개신교를 믿기 전에는 무신론자였었고,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였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이해를 한다고 언급했으나 정작 본인은 식사할 때마다 계속해서 기도를 했고 PSV 아인트호벤에서 함께 하던 박지성과 그 가족들이 상당히 불편해했는데도 그만두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어 2006년에는 측면 수비수를 구하던 AS 로마미도와의 맞트레이드로 이영표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계약 막판에 이영표가 종교적인 이유[37]로 거부하면서 이적이 불발, 토트넘 운영진의 미움을 받게 된다. 이 때 국내에서는 이탈리아가톨릭 국가라서 가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알 힐랄로 이적한 걸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알 힐랄 생활 중 일으킨 사건 탓에 하마터면 국제적 종교 분쟁을 일으킬 뻔하기도 했다. 이영표는 알 힐랄로 이적하면서 계약 조건으로 자기가 지정한 사람들에게도 입국 비자를 받아내달라는 조항을 내걸었다. 구단에서는 선선히 이를 받아들였는데, 알고보니 이영표가 지정한 사람들은 개신교 목사선교사들이었던 걸로 밝혀진다. 이슬람 국가들의 본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신교 선교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안다면 이건 말이 안되는 수준의 큰 결례나 다름 없는 행위다.[38] 만약 알 힐랄 구단에서 이를 사전에 알았다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조건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영표는 이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몰랐는지 방송에 나와서 자랑스럽게 밝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영표의 저런 뻘짓을 결국 사우디아라비아 측에서 알게 되었고, 결국 이 관련자들은 즉각 추방당했고,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영구 입국금지까지 당했다. 이후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측은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방지하고자 해당 선수 지인들에 대하여 신분조사 및 종교 조사를 엄격하게 하게 만들어 이런 꼼수는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본인의 저서인 <말하지 않아야 할 때>에 "창세기 3장 16절을 읽고 "아내의 출산 때 무통 주사를 거부했다""는 내용이 실려 논란이 되고 있다. 본인이 무릎 수술을 했을 때 받았을 마취는 거부하지 않았으면서, 왜 아내가 받을 수 있는 의학적 혜택은 출산의 주체도 아닌 이영표가 거부를 했느냐는 것이다. 종교에 미쳐 자기 가족의 고통마저 외면했다며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사람들은 "분명 이영표는 율법에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나와있는 걸 알텐데도 일요일에도 경기를 뛰었다. 그런 강력한 규율도 어기는 사람이 성경에도 나와있지 않은 무통 주사 맞지 않기를 아내에게 강요하는 건 무슨 경우냐?"며 비판하고 있다. 무통주사는 통증을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70%까지 줄여주는데(무통이라고 해서 말 그대로 통증이 없는 게 아니다!) 미국의 경우 산모가 척추 이상 등 무통 약물을 맞지 못하는 조건이 있는 게 아니라면 무통분만을 하는 쪽을 강하게 권고하고 있다. 게다가 많은 기독교도 산모와 그 가족들이 무통 주사로 아이를 낳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미국도 기독교도가 대다수인 국가이며, 마취 출산 기술을 만든 사람도 "하나님이 아담을 깊게 잠들게 하고 갈비뼈를 빼내서 이브를 만들었다."란 성경 구절을 근거로 마취 출산 기술을 만들어냈다.

논란이 된 기사가 나간 직후 이영표 본인이 자신의 SNS에 사건에 대한 전말과 해명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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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첫째와 둘째의 무통주사 출산은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었으며, 셋째의 무통주사 출산은 종교적인 이유가 맞으나 나의 강요가 아닌 아내의 제안으로 한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해명 후에도 "아내의 고통을 왜 겪지도 않는 이영표가 생색내는 것이냐", "무통주사를 맞고 분만하는 일을 쉽게 사는 방법으로 치부하지 말라"는 반발에 부딪혔다. 무통주사는 쉬운 출산? 이영표가 모르는 진짜 문제 여성의 고통은 왜 아직도 그렇게 이영표의 해명이 왜 여전히 지탄을 받아 마땅한지 정리한 페이스북 게시글 (한국이 아닌 중국의 사례이긴 하지만) 태아의 머리가 커 자연분만이 어렵기 때문에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도, 남편과 그 가족들이 끝까지 자연분만을 고집하며 수술 동의를 해주지 않아 병원 5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산모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제왕절개에 보호자의 동의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기도 하다.

한편 또 다른 본인의 저서인 <생각이 내가 된다>에서는 "동성애를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위험한 사람들이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말하고 틀린 것을 다를 뿐이라 말하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다른 것을 세상 속에서 다른 것을 다르다고 말하고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하는 것이 이제는 위대한 일이 되어버렸다."라는 내용을 담았으며, 앞서 무통주사에 대한 이야기가 불거진 <말하지 않아야 할 때>에는 "동성애는 죄이고 잘못된 것이며, 그것을 혐오하는 건 정의로운 일"이라고 쓰며 호모포비아적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영표 논란, 동성애 혐오 발언이 더 큰 문제 그가 과거 활동했던 토트넘 핫스퍼 FC솔 캠벨의 잠적을 동성애와 연관시켜 비하하는 노래를 불러 물의를 일으킨 뒤 프리미어리그 구단들 중 가장 앞장서서 동성애 혐오 근절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펼쳐왔으며, 이는 현재 프리미어리그 전체에서 동성애 혐오나 인종•성 차별 발언에 대해 경찰이 현장에서 즉결 처분을 내릴 정도로 의식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시기를 직접 겪으며 혐오 근절 캠페인에 동참했던 이영표가 은퇴 이후 동성애 차별 발언을 했다면 국제적인 논란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3.3. FC 서울과의 관계[편집]

이영표 본인과 FC 서울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안티들이 만들어 내는 억지 논란

2011년 알 힐랄 퇴단 후 무적 시절 국내에 거주하면서 구리의 FC 서울 연습장에서 몸을 만들었다. 이때 서울 영입설이 나돌기도했는데 이때문에 서울 입단 타진하다 계약조건이 맞지 않으니까, 바로 날랐다는 근거없는 루머가 나와 우리 영표형 영입하는거 아니냐는 기대에 차있던 FC 서울 팬들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입단설부터가 출처 불명의 루머였던 것을 생각하면 난데없이 날벼락이었다. 이영표가 자기 팀에 온다는 기대감이 워낙 커서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실망감이 커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말로는 K리그에 대한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본인은 K리그에서 선수경력을 마치치 않는 것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다른 팀팬까지 합세해서 한동안 시끌시끌 했다.K리그 복귀 없이 밴쿠버 이적이 확정된 후 이영표를 비난하는 아이러브사커 축구커뮤니티의 FC서울팬과 K리그팬들[39]

2012년말 K리그 복귀없이 밴쿠버에서 1년 더 선수생활 후 은퇴가 확정되자 다시 한번 커뮤니티가 시끄러워졌는데 이에 대해 이영표는 "많은 팬들에게서 K리그로 돌아와 달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선수로 돌아와 도움을 주는 것과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나중에 도움을 주는 것 중에 후자가 더 큰 일이라고 생각하여 K리그 복귀를 하지 않은 것이란 입장 표명을 하였다.기사링크

2013년 밴쿠버에서 은퇴 후 FC 서울에서는 이영표의 14년 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이영표를 위한 은퇴 기념 행사를 마련했고 이영표는 이 행사에 참석하여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그 자리에서 FC 서울을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짧은 은퇴소감을 전했다.기사링크

이영표는 은퇴식도 치뤘고 은퇴 후에 FC 서울 행사에도 참여하고 해설하면서 자신이 FC 서울에서 뛸 때라고 발언하는 자신이 FC 서울 출신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런데 FC 서울 안티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영표가 FC 서울의 안양 연고 시절에만 뛰었다니 서울 레전드가 아니며 안양 연고에서만 뛰었던 선수를 서울 연고의 레전드라며 띄워준 것은, FC 서울이란 구단의 정체성이 서울이란 지역이 아닌 LG-GS라는 모기업에 있다는 것을 제대로 만천하에 인증한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FC 서울이 싫은 거 + 반기업 정서를 기본적으로 포함하는 유럽식 연고주의에 대한 무한한 숭배가 빚어낸 현상. 범 LG가 기업구단인 FC 서울이 허창수거지 그럼 누구거란 말인가? K리그와는 비교도 안 되게 연고밀착 잘 되어 있는 프로야구팀들도 기업 총수가 구단 주인이고 모기업에 구단이 딸려 있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들은 더 나아가 FC 서울 팬덤에서도 이영표를 부정한다는 설득력 없는 주장을 한다. FC 서울 팬덤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건 유럽식 연고주의를 숭상하는 강경 소모임 일부 뿐이다. 가장 웃긴 사실은 K리그에 FC 서울보다 연고 정착 잘 된 구단이 없다는 것 이다.

은퇴식에서 이영표에게 안양에서 뛸 때 달던 12번 달아준 것도 꼬투리를 잡아 수호신에게 헌정한 번호를 이영표에게 줬는데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은 우스운 서울 팬들이란 비난까지 했는데 이영표가 12번 달고 뛴 것도 아니고 그저 이영표가 현역 때 달았으니 행사 때 달아준 것일 뿐이다. 연고정착을 내세우며 기업명 배제 같은 온갖 사소한 문제에 거품 물고 집착하는 서포터즈들의 좁은 소견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역대 서울 감독들이나 윤상철, 한문배, 이영진 같은 FC 서울 시절에 뛴 적 없는 다른 올드비들 데리고 행사할 땐 이런식으로 시비턴 적이 없었다. 결국 이영표라는 한국 최고의 스타가 (자기들 기준으로)패륜구단 레전드 되는 게 아니꼬왔을 뿐 이다.

아무튼 이영표 본인이 FC 서울 출신이라고 하고, FC 서울도 구단 레전드로 챙겨주고, 절대다수 서울팬들도 인정하는데 딴 팀 팬들이 아니라고 우기는 촌극이 몇년째 잊을 만하면 이어지고 있다.

이영표는 FC 서울의 연고이전 당시 A매치를 위해 입국한 자리에서 "선수를 떠나 학창시절부터 계속 팬이라서 애석하다"며 아쉬움을 표현하며 연고이전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입장이었고 기사링크, 이후에도 꾸준히 안양 연고 축구팀의 부활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며[40] FC 안양이 창단되자 시즌권을 대량 구매해서 보육원에 기부하기도 했다.기사링크 하지만 그와 별개로 자신이 뛴 팀은 FC 서울임을 누차 강조해왔다.

즉 이영표는 난 FC 서울 출신이지만 팀을 잃은 안양팬들의 심정도 헤아리며 역시 우호적으로 대해줬는데 패륜 프레임에 매몰된 이들은 이영표의 발언까지 무시하며 억지 논란을 만들고 있다.

4. 해설자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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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KBS2014 브라질 월드컵 해설위원으로 초롱팍 도사 활동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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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기간 중 KBS 뉴스 웹사이트에 메인에 걸려 있는 배너 이미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한국인.
대한민국 해설계의 앙리.

2014 브라질 월드컵 해설위원으로 활약을 예고하며 마찬가지로 해설자로 데뷔한, 같은 2002 멤버들인 송종국, 안정환 등과 경쟁구도가 성립되어있다. 2014년 1월 30일(현지시간 1월 29일)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 해설자로 데뷔전을 가졌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대표팀은 0:4로 대패. 처음에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실드쳐주던 이영표도 결국 경기 종반에 가서는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마지막까지 보여줄 의무가 있다. 선수들이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그리고 가나전에서도 4:0 완패를 당하자, "우리가 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위험하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네요".라는 명대사와 함께 최강 돌직구를 날렸다.

한편 월드컵 본게임 시작 이후부터는 다른 해설자들과 차별되는 작두 탄 족집게 해설가(...)로 각광받고 있다. 다른 전문가들과 달리 이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몰락을 혼자 예견했는데,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5대 1로 완패를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이영표의 예측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러 해외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한 경험과 국가대표로서 여러 국가의 팀들을 상대로 경기를 치러본 오랜 경험으로 상당한 수준의 해설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전문성이 돋보이는 정석적인 해설이라는 것. KBS 따봉월드컵의 빅매치 전망을 보면 해당 동영상의 4분 44초부터 5분 40초까지는 네덜란드의 선전을, 18분 30초부터 21분 10초까지는 스페인의 몰락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D조 이탈리아 vs 잉글랜드 경기의 스코어와(2:1 이탈리아 승) 코트디부아르vs일본 경기의 스코어까지 정확히 맞히는 신들린 모습을 보여줬다.(2:1 코트디부아르 승) 코트디부아르 경기에서는 국가대표로서 한일전 특유의 국민감정을 겪으며 뛰어야 했던 선수 시절의 경험 때문인지 "머리는 일본의 승리를 말하지만 가슴은 코트디부아르의 승리를 원한다"라며 2:1 승리를 예측하고 해설 중에도 코트디부아르를 노골적으로 응원하는 해설을 했다. 윌프리드 보니가 동점골을 성공시키자 너무 흥분해서 득점자를 제르비뉴로 일순간 착각했는데, 뒤이어 나온 "제르비뉴면 어떻고 보니면 어떻습니까!!!"가 이 경기의 백미였다. 코트디부아르의 찬스가 무산될 때마다 무의식중에 새어나오는 나라 잃은 한숨소리도 있었다. 동료 해설위원 김남일코트디부아르에 임대라도 다녀왔냐고 하면서 이런 편파 해설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사실 대부분 한국인들이라면 한일간 특유의 감정탓에 일본이 지기를 바라는 입장이기도 하고, 크게 거슬리는 내용도 없었기에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었고 오히려 네티즌들은 이영표의 해설 실력과 정확한 예상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는 반응이었다. 한편 김남일의 지적이 무색하게도 4년 뒤인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이영표는 일본전에서 편파 해설을 하였다.

굳이 족집게 해설이 아니라도 해설 능력 자체도 호평을 받고 있다. 발음이 뭉개지지 않고 발성이 또박또박하고 큰 편이라 듣기 편하고 차분해서 전문적인 해설같다는 평가. 발음이나 발성 부분에서는 다른 어떤 선수 출신 해설자들도 따라올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쨌거나 이미 일부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문어 영표로 불리고 있으며 문어 파울의 후계자이자 이번 대회의 예언자 자리에 등극했다. 코트디부아르 전에서는 해설 도중 드록바가 투입되는 장면에서 드록바라면 전세를 뒤집을수 있다고 하고, 10분 안에 동점골이 나오면 이후 코트디부아르가 추가골을 넣고 역전할 것이다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이 말을 내뱉은 후 정말로 본인의 말대로 되자 본인도 "이래도 되냐"며 놀라워하다 곧이어 "제가 뭐랬습니까"라 하였고, 함께 해설하던 조우종 캐스터 역시 "문어가 빙의한 것 아니냐"라고 드립을 날렸다. 여기에 킥오프할 당시 일본의 좌측 - 코트디부아르의 우측면, 나가토모 유토세르주 오리에의 매치업이 승부의 관건이라 전망했는데, 정말 오리에가 우측에서 정확한 크로스로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트위터에서 특별한 예지 능력이나 통찰력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해명했다.[41]

그 외의 예측 성공 사례들은 아래의 예측 목록 문단을 참고.

그리고 홍명보호의 첫 경기인 러시아전에서도 "경기 70분쯤부터 기회가 날 것이다", "이근호가 한 건 할 것이다" 등의 예상을 했는데 정말로 68분에 이근호가 선제골을 넣었다. 평가전에서의 졸전으로 인해 이전까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정확한 예상을 해냈다는 것에 많은 팬들이 놀라워하는 중. 러시아전 후 이근호는 "가장 힘들었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 탈락 당시 함께 숙소에서 울어 줬던[42] 영표 형에게 감사한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2014년 6월 23일 브라질월드컵 한국vs알제리전를 앞두고 2:1로 한국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그 예언의 반만 실현되었다. 전반 0:3, 후반 2:1. 결국 2:4 대패. 다만 이건 예측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립서비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느 나라의 해설이 자국민들이 생중계로 보고 있는데 대놓고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있을까? 알제리전 주목해야 할 선수로는 손흥민을 꼽았는데 1골을 넣기도 했고 멸망 수준의 한국팀에서 혼자 빛났다. 사실은 류현진 경기 예측한거라 카더라(...).

2014년 6월 27일 알제리vs러시아가 무승부를 하면서 16강 진출의 마지막 희망인 한국vs벨기에전에서 0-1로 패배하자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월드컵은 경험을 쌓는 곳이 아니라 증명을 하는 곳입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영표가 아르헨티나 경기 해설할 때마다 자주 하던 말이 리오넬 메시의 빈약한 활동량에 대한 지적이었는데 그간 메시빠와 바르샤빠들이 메시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라며 눈물겹게 쉴드쳤으나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적은 활동량으로 인한 문제가 제대로 터지면서 모두 버로우했다.

해설 스타일은 모범생. 시청자들을 빵 터뜨리는 의도적 멘트에 신경을 많이 쓰는 송종국, 안정환 등과 달리 본업인 해설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며, 나쁜 말 못하는 성격 때문에 직접적인 비판이나 구체적인 해결책 제시가 없었던 차범근 해설위원과 달리 촌철살인 멘트나 이렇게 해야 한다 지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목소리 톤도 한준희 해설위원처럼 중장년층이 듣기에 다소 시끄럽거나, 이용수 해설위원처럼 젊은층이 듣기에 좀 심심한 톤이 아니라 어느 연령대든 무난히 받아들일 만한 적당한 톤이다. 즉, 본인이 계속 공부하고 노력만 해나간다면 전 연령을 아우르는 해설자로 대성할 조건이 충분하다.

다만 골을 넣을 때 무작장 소리만 지른다거나 대부분의 경기 내내 비판적인 태도로만 임해서 보기 싫다는 여론도 있다. 또한, 사소한 단점으로 외국 축구 선수들의 이름을 간혹 아나그램화시켜 버리는 특징도 있다. 발레토리라든가, 샤리키라든가, 카예바라든가... 물론 해설의 본질에 영향을 끼칠 만한 실수는 아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오히려 이를 개그 요소로 받아들여 웃어넘기는 편이다. 한편 이영표 해설의 예측 적중이 지나치게 큰 관심을 받고 KBS도 이를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다보니 이영표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통찰하고 예측하는 게 아닌 KBS의 요청에 의해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날카롭기보다는 이상적인 축구 이론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이영표 본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나친 요구를 하는 KBS와 팬덤의 문제.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하는 시청자라면 이영표의 예측에 관심을 쏟기 보다는 해설에 관심을 쏟는 편이 더 적절한 시청이 될 것이다. 이영표의 통찰은 예측에서도 빛이 나지만 순간 순간의 해설에서도 충분히 발휘된다.

한편 이영표는 단순한 해설자로서의 역할을 넘어서서 K리그에도 공헌하였다. 이영표는 월드컵 때 해설 계약을 하였지만 계약 조건으로 K리그의 공중파 중계 확대를 내걸었고, 결국 2015 시즌에 이르러 주말 고정 편성을 이끌어냈다. 사실 방송사 입장에서 K리그 중계가 적은 이유는 케이블 채널의 경우 거의 매일 경기하는 야구와 겹쳐서 중계가 어렵고, 중계를 해도 아직까지는 타 종목에 비해 시청률이 낮아서 광고가 잘 붙지 않는다는 두 가지 문제가 가장 큰데, 어차피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이 문제를 광고 없이 공익적 성격이 강하게 운영하는 KBS 1TV에서 중계하는 것을 통해 해결한 결과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K리그 시즌 중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4.1. 적중한 예언 예측 목록[편집]

위에서 이미 설명이 되어 있지만, 말만 했다 하면 죄다 반대로 이루어지는 누군가와는 달리, 이영표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예언예측을 잘 한다. 게다가 그렇게 적중한 예언예측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 때문에 브라질 월드컵 당시 유명세를 타고 영국 BBC에서도 인터뷰했다고 한다. # 앞으로도 이영표 해설위원이 예언예측을 성공시킬 경우, 지속적으로 추가바람.

4.1.1.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편집]

"네덜란드는 쉽게 지지 않을 것."

▷네덜란드는 이 대회에서 스페인과의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 리매치를 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스페인의 강세를 예측했으나, 이영표는 저렇게 발언했다.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되어 네덜란드는 스페인에게 5대1로 대승을 거두면서 남아공 월드컵 결승에서의 패배를 원금에 이자까지 쳐서 톡톡히 갚았다. 게다가 이케르 카시야스는 이후 카성룡이라 불리는 굴욕을 당한다. 또한 네덜란드는 4강전인 아르헨티나 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끝에 패배하였으나, 3~4위 결정전 상대인 브라질에게 3대 0으로 대승을 거두면서 3위로 대회를 마무리한다. 4강전 승부차기를 패했다고는 하나, 공식적으로 승부차기까지 갔을 경우에는 무승부로 인정하므로, 대회 전적은 총 5승 2무 0패가 되어 이영표의 예언대로 결국 한 번도 패하지 않은 팀이 되었다.

"2000년대 최강의 팀은 스페인이 맞다. 스페인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많은 팀들이 스페인의 축구에 익숙해져있다. 2014년에는 축구팬들이 스페인의 몰락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칠레가 스페인을 이길 것."

▷칠레와 스페인의 경기에 대해 대한 예측. 이번에도 스페인은 칠레에게 2대 0으로 완패하면서, 스페인은 전년도 챔피언답지 않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조별 리그 탈락을 하고 만다.

"끈적끈적한 이탈리아가 우직한 잉글랜드를 괴롭힐 것".

"이탈리아가 잉글랜드를 2대1로 이긴다."

▷조별예선 D조 이탈리아 VS 잉글랜드의 경기에 대한 예측. 그리고 마리오 발로텔리가 후반 5분에 결승골을 넣으면서 승패 여부는 물론, 스코어까지 맞혔다.

"머리는 일본이라 말하는데, 가슴은 코트디부아르를 응원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가 일본을 2대1로 이길 것."

▷C조 코트디부아르 vs 일본 경기를 앞두고 내놓은 예측. 전반 16분 혼다 케이스케가 선제골을 넣으며 일본이 주도권을 가져갔으나, 후반 17분에 드록바가 투입된 것만으로 분위기가 180도 바뀌어 10분 안에 동점골이 나오면 이후 코트디부아르가 추가골을 넣고 역전할 것이다는 식의 발언했는데 투입 2분만에 윌프리드 보니의 동점골이 터지고, 또다시 2 분 후 제르비뉴가 역전골을 넣으며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그렇게 또 한 번 스코어까지 정확히 맞히는 예측을 보여주었다.

"경기 70분쯤부터 기회가 날 것이다"

"이근호가 한 건 할 것이다."

▷H조 대한민국 VS 러시아의 경기의 예측. 0대 0으로 흘러가던 도중, 68분경 이근호의 슛을 기름손 이고르 아킨페프알까기 놓치면서 그대로 골이 들어갔다!

"잘못하면 브라질이 대패할 것"

4강전인 독일 vs 브라질 경기에서는 경기 결과까지는 예측에 실패했지만[43], 2번째인 클로제의 골이 터진 직후 위와 같은 예측을 했고[44], 이에 대한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연속적인 골이 터지면서 예측 능력을 과시했다.

"아르헨티나는 네덜란드보다 강한 팀, 반드시 네덜란드를 이긴다."

▷4강전인 아르헨티나 vs 네덜란드 경기가 벌어지기 직전에 예측한 내용이다. 물론 이영표는 2-1로 아르헨티나가 이길 것으로 예측했으나 거기까지 맞히진 못했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아르헨티나가 네덜란드를 제압했다. 다만 이영표는 자기가 좋아하는 앙헬 디마리아가 출전했을 때를 기준으로 예측한 거고 실제 이 경기에서 디마리아는 결장했다.

4.1.2. 2014 인천 아시안 게임[편집]

"1:0 으로 이길 것 같다."'

"승부차기까지 안갔으면 좋겠고, 1분 안에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남자 축구 결승전인 대한민국 VS 북한의 경기에서 남긴 말. 경기 전 1대 0으로 이길 것 같다는 말을 시작으로, 연장 후반 종료 직전에는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당시, 4강전인 이란과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실축 경험 때문에 "1분 안에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임창우의 결승골이 터졌다!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다.

4.1.3. 2015 AFC 아시안컵[편집]

"우즈벡전 연장전 가능성 있다."'

▷우즈벡을 쉽지 않은 상대로 본 이영표 해설위원은 8강전에 대해 연장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8강 경기에서 두 팀(한국, 우즈벡) 모두 수비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연장전까지 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과 우즈벡이 치른 총 6경기 중 5경기는 1점 차로 희비가 갈렸다.

실제는 한국은 연장 끝에 우즈벡을 2대 0으로 제압하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영표 “우즈벡전 연장전 가능성” 예상한 이유는?(아시안컵 축구 8강)"

4.1.4.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편집]

"선제골을 넣는다면 5골 이상 넣을 수 있다."

"32분대에 선제골이 나올것이다."

▷남자축구 한국 대 피지 전에서 나온 예측. 5골차 이상 승리는 KBS 9시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이고, 32분대에 선제골이 나온다는 것은 중계 도중 했던 발언이다. 그리고 31분 18초경에 류승우가 선취골을 넣었는데, 공식적으로는 32분으로 기록된다. 또한 경기결과는 8대0이 되면서 이것도 적중했다.
▷남자축구의 최선의 시나리오로 피지에게 승리, 독일과 멕시코에게 비겨서 승점 5점을 챙기는 것을 꼽았는데, 피지에게 8:0으로 승리하고 독일에게 3:3으로 비긴 상황이다.그것도 막판에 들어가서 비긴 거다. 이영표의 말에 맞추기 위해 우주가 변했다
그리고 멕시코는 이겼다.

"최소 6명은 우리 진영에 남아있어야 상대의 역습에 대비할 수 있다."

▷온두라스 전을 앞두고 했던 말. 한국의 공격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던 영향 때문인지 윙백들이 계속해서 상대 진영 쪽으로 올라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이로 인해 선수가 부족해진 틈을 타 역습을 허용하면서 52분에 결승골을 내주며 패배했다.

4.1.5. 2017년 FIFA U-20 월드컵[편집]

▷22일 프랑스-온두라스 전 중계가 끝난 이후 아르헨티나전을 승리로 예상했다. 한국이 2-1로 승리를 거두면서 16강에 먼저 진출했다.
"'문어' 이영표, "한국, 어느 때 보다 아르헨티나 이길 가능성 높아" 승리 예언"

4.1.6.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편집]

"우리와 독일 중 어느 팀이 탈락했을 때 충격이 더 크겠습니까. 그렇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누가 유리한지 보이죠"
"시간은 약팀의 편." "그런 점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

▷국제 여론은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한 자리 수로 점치고 있었다. 이 때 그는 립서비스 경향이 강했지만,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이 독일을 상대로 골 득실 +2를 거두는 것이 가장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16강 진출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이기며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독일을 조별예선에서 광탈시켰다.

"[카잔 LIVE]이영표의 시각 "신감독님 기자회견도 트릭일 수 있다""

"대한민국이 독일을 상대로 골을 기록합니다!!!!!"
"반대~ 손흥민! 손흥민! 손흥민! 손흥민~~~~~ 손흥민!!!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대한민국! 2대 0입니다!"

▷흥분한 나머지 까방권, '방송 이제 안해도 된다' 등의 적절하지 않은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발언들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개그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승 후보는 프랑스, 감독이 팀에 5년 동안 있었기 때문에 뭘 보여줄지 기대된다."

▷볼쇼이영표와 1대 100에서 이광용과 2인으로 나와 패자부활전 문제를 풀 때 우승 후보로 프랑스를 지목했으며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펠레가 지목하면 떨어지는데 펠레는 그 입 다물라(...)[45] 그에게 묻는다 4년 뒤 월드컵우승국은?

4.1.7. 그 외[편집]

"우리 팀이 한 골 더 넣어서 비겼으면 좋겠습니다"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후 7월 25일 '팀 박지성'의 일원으로 K리그 올스타전에 참가하였는데, 교체 아웃되어 인터뷰 중 발언하자마자 2초 만에 박지성이 골을 넣는 신기를 발휘했다. 이를 눈 앞에서 본 해설진과 리포터, 해당 발언의 당사자인 이영표도 믿기지 않아 웃기만 했다.(...) 그리고 경기 결과 역시 6대 6으로 비겼다.

"손흥민, 2~3년후엔 유럽에서 최고 선수가 된다"

▷ 2017-18 시즌의 손흥민은 기복도 많이 줄고 오프 더 볼 능력이 향상되어 한층 더 수준 높은 선수로 발전하면서 리그 탑급 윙어의 폼을 보여주고 있다.

"조우종, 2년안에 프리선언 할 것"

▷이영표는 2014년 7월 31일 오후 11시 10분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에서 "조우종에 대해서 예측 한 번 하겠다"고 말했고 이어 "조우종은 2년 안에 프리 선언을 할 것이다. 그간 경기 결과는 장난으로 예측했지만, 이번 예측은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조우종이 실제 사표를 낸 것은 저 발언 후로부터 2년이 더 지난 2016년 9월이었는데, '원래 상반기에 제출하려던 것을 KBS의 만류로 리우 올림픽 이후로 미룬 것 뿐이다'라고 밝혔다. 상반기라면 7월이 되기 이전이니 아무리 늦어도 6월 30일이라는 뜻이고, 결국 정말 2년이 지나기 전에 프리랜서 선언을 한 것이다. 이젠 축구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적중 이 사람도 축구 이외의 분야에서 저주 날리던데, 영표 형도 축구 이외의 분야에서 적중한다 두 사람의 친분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것은 예언이라고 하기 보다는 폭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5. 어록[편집]

Our all. Our honour.[46]

"월드컵은 경험을 쌓는 곳이 아니라 증명을 하는 곳입니다."[47]

"K리그가 재미없다는 말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자신은 축구보는 수준이 높아서 유럽축구만 본다는 사람들...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모두를 느낄 수 있는 사람... 누가 더 미식가입니까?

"선진 리그는 경기력이나 환경, 선수도 좋지만 좋은 팬도 있다. 팬이 없이는 좋은 리그가 될 수 없다. K리그의 수준 안에는 팬도 포함이 된다. 수준 높은 팬 의식을 갖춰야 한다. 팬들도 자신이 K리그의 수준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아! 제가 박지성이라는 그늘에 가려져 있었습니까? 어쩐지 항상 시원하다 했습니다. 저는 그늘을 좋아합니다. 그늘은 서늘해서 낮잠을 자기도 좋습니다. 누군가 제게 그늘을 허락한다면 그 사람에게 감사해 할 것입니다."[48]

재능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나이키 광고 너를 외쳐 봐 CF 공식 인터뷰(40초부터)

진짜 정신력은 내가 강한 상대를 만나도 주눅들지 않고, 약한 상대를 만나도 얕보지 않는 것.
실패와 좌절을 많이 해봐야 겸손해질 수 있다.
겸손함이 곧 정신력
1|출처

우리는 원인을 문제점에서 찾아야지 자꾸 현상에서만 문제점을 찾으니까 어떤 때에 현상이 잠깐 좋으면 좋았다고 착각하는 현상, 안 좋으면 왜 안 좋냐고 뭐라고 하는데 원인부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이런 경기를 볼 때마다 현상보다는 원인 분석에 초점이 더 가는거죠.

월드컵이 매번 4년마다 바뀔텐데 4년마다 항상 우리는 우리가 잘할지 못할지 모르는 거에요. 이런 상태로 월드컵을 준비해야 한다면 월드컵이 4년마다 팬들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월드컵이 4년마다 팬들에게 스트레스가 돼요, 지금.

그래서 팬들이 월드컵 때문에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현상을 주는 것은 그저 저를 포함해서 축구인 모두의 책임이죠, 사실은...


이영표 KBS 축구 해설위원이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경기: 대한민국 vs 멕시코 전날에 했던 작심 발언 #

6. 트리비아[편집]

  • 2011년 국가대표 축구팀이 부진하자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박지성 복귀 가능성을 말했지만 박지성 측에서 바로 부인했다.

  • 2012년 병역연기를 한 박주영을 감정에 호소하는 논리로 두둔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 윤빛가람 이적 문제와 관련해서 뜬금없는 훈장질로 비판을 샀다.(이적거부권을 보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 2012년 축구판의 뜨거운 감자로 떠 올랐던 안양시 시민구단 창설에 대해서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런데...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정작 K리그에서는 고양 Hi FC를 지지하겠다고 한다. # 모종의 계약이 있었던건지 고양 Hi FC에서는 이영표의 얼굴이 박혀 있는 2013 시즌권을 판매했다.

  • 2013년 2월 이번에는 K리그 시즌권이 자기가 뛰는 캐나다보다 싸다는 이유로 K리그를 깠다자기 소속팀의 시즌권 가격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모 스포츠 일간지에서 이 떡밥을 물어서 K리그 공짜시즌권[49]을 깠다. 이에 팬들은 왜 그런 트윗을 해서 언론에 K리그를 깔 소지를 제공했느냐며 또다시 이영표를 까기 시작했다.

  • 부천 SK(현 제주 유나이티드)와 안양 LG(현 FC서울)의 경기를 했을 때 이임생 선수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이영표가 이임생을 너무 잘 마크하고 있어서 이영표에게 살살해 달라고 했으나 그렇게 안 한 이영표 선수에게 화가 난 이임생은 이영표를 폭행하였고 결국 이영표가 90도 인사로 사과를 했다고 한다..... #

  • 본래 한국 선/후배 문화가 본인도 있었지만 2003년 이후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면서 그런 문화가 사라졌다고 한다.

  • 리우올림픽 8강에서 올림픽대표팀이 온두라스에서 패한 경기에서 "완벽한 골찬스가 났는데도 골을 못 넣는 것은 저로서도 뭐라 해설을 할수가 없네요."라고 말했다.

  • 팬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초롱이. 2002년 월드컵 당시 이미 만 25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귀엽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 상징하는 백넘버라면 12번을 들 수 있는데 처음엔 특별히 12번에 애착을 가져서 택한 건 아니고 계속 달다보니 본인의 번호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팀에서 자리를 잡으면 주로 3번으로 번호를 바꾸곤 했다.[50]

  • 2014년 브라질 월드컵KBS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받은 돈 전부를 기부하였다. 조우종 캐스터의 말에 의하면, 입금이 되었다는 얘길 전해듣고, 액수를 확인도 하지 않고, 유니세프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조우종 캐스터가 이영표 해설위원에게 "왜 입금액을 확인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금액을 확인하면 마음이 흔들릴까봐, 그리고 어차피 내가 가질 돈이 아니라 기부하기로 마음 먹은 돈인데.." 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꾸준히 기부를 실천해오고 있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빠돌이이기도 하며, 특히 앙헬 디 마리아의 열렬한 팬이다. 링크에 있는 인증샷은 이영표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에서 아르헨티나 대 스위스전에서 이영표가 아르헨티나의 승리를 찍으며 밥 내기를 했는데 디마리아의 골로 아르헨티나가 이겨서 얻어먹은 밥을 인증한 사진이다.

  • 나이키의 광고 '너를 외쳐 봐' 편에서는 각종 운동을 하는 사람들 옆에서 딴죽을 거는데,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내뱉는 한마디가 인상적. 이를 본 팬들 사이에서는 공익광고 수준이라며 대호평. 너를 외쳐 봐 공식 인터뷰

이건 시간 낭비야. 인생에 도움이 안 돼. 운동이 밥 먹여 주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예뻐지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남들 하는대로 하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아.
그런데도 끝까지 하겠다는 거야?

  • 현역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인 아르옌 로벤과 친했기도 했는데, PSV 아인트호벤에 있을 당시부터 그랬다고 한다. 독특하게도, 로벤이 이영표를 보고 한국어인 '형'을 붙여서 '영표 형'이라고 불렀다고.[51][52] 그런데... 로벤이 축구계에서 손꼽히는 노안이고 이영표는 동안이라 위아래가 바뀐 거 아니냐는 소리가 들릴 정도이다.(...)[53]

*
사랑의 이영표의 주인공(........)이 되시겠다.

  • 2017년 11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명성교회 부자 세습을 강하게 비난했다. "오늘 수십년 간 한국 교회를 대표했던 한 목사의 마지막 퇴장이 비참하게 '세습'이라는 이름으로 끝나고 말았다.", "모든 인간에게 등장보다 퇴장이 훨씬 중요한 이유는 누구든지 자신의 마지막 무대에서 퇴장하는 그 모습 그대로 역사 속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즉시 재등장하기 때문", "아무리 판단력과 분별력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판단과 분별 의 경계가 희미해진 사람들에게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작은 생각으로 그저 다를 뿐인 것을 틀렸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그러나 분별력을 상실한 채 틀린 것을 단지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상실의 사람은 더더욱 되지 말자" 라며 독실한 개신교신자로 알려진 이영표가 이정도로 강하게 비난할 정도이니 그의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부분.#

  • 참고로 이영표가 KBS 해설을 맡은 이후로는 KBS가 국가대표팀 경기 중계시 승률이 매우 좋다.[54]

  • 2018년 6월 15일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와 사우디의 경기에서 알 힐랄 시절 경험을 언급하며 사우디의 대패를 정말 안타까워했다.

  • 2018년 6월 25일 일본과 세네갈의 경기에서는 '세네갈은 일본보다 평균 신장이 4cm 높다. 합치면 40cm 차이.'라는, 황당한 계산법을 보여줬다.

  • 해설할때 유독 아르헨티나를 '아르연티나'로 말하거나 후안 콰드라도를 '후안 꽈드라도'라고 말하는 등, 자신만의 발음으로 틀리게 말하는 버릇이 있다. 해설 초기부터 몇몇 시청자들에게 지적된 부분으로, 최근에 해설했던 칠레 국가대표 와의 친선전을 포함해서 이는 지금까지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것뿐만 아니라, 바이에른 뮌헨도 면헨이라고 발음한다. 이러한 이유로 캐스터가 바로잡은 경우도 종종있는데, 이것은 해설자로서 분명히 고쳐야 하는 부분이다.

[1] 홍보대사.[2] 다만 학교경기도 안양시에서 다녔다.[3] 매우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유명하다.[4] 양쪽 모두 가능하며, 왼쪽을 선호한다.[5] 로또 유니폼을 입던 시절,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주로 라이트백으로 출전해서 2득점을 올렸으며 두 번 다 박지성이 어시스트해줬다.[6] 아직은 안드로이드 폰에서만 질문가능, 모든 수익은 기부한다고 한다.[7] 다만 2006년 월드컵 기간에는 우측 풀백의 부재와 양발 가능한 이영표가 좌측으로만 뛰던 김동진을 위해 오른쪽으로 잠시 갔다.[8] 다만, 헛다리 짚기 개인기를 선보였던 선수들은 이영표 데뷔 이전에도 많았다. 대표적인 선수가 가레스 상윤으로 유명한 성남 일화 천마의 레전드 이상윤이 처음으로 헛다리 짚기를 선보였다.[9] 같은 세대에 활약했던 박지성, 이천수의 경우 각각 명지대학교고려대학교를 휴학, 중퇴하고 프로에 입문했다. 또한 요즘 프로에 입단하는 선수들 중에서도 대학을 중퇴하고 프로에 뛰어드는 경향이 많다.[10] #[11] 이 때 박지성은 정식 입단으로 3년 계약을 체결했으나, 이영표는 6개월 임대 후 완전 이적 계약 여부 결정이었다. 때문에 이영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매우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12] 순위표를 보자. 7위가 푸욜이고 9위가 마테라치였다(...). 푸욜과 마테라치 사이.[13] #[14] EPL은 에레디비지보다 수준이 훨씬 높다. 특히 킥이 발달한 EPL에서 크로스를 허용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협적인 일이기에 수비수는 상대방이 크로스를 올리지 못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반면 네덜란드 리그는 크로스를 올려도 별로 위협적인 크로스가 드물기에 수비수들이 적극적으로 막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영표는 네덜란드 리그에서 하던 것처럼 상대방이 크로스 올리는 것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였다.[15] 클롭이 마인츠 감독 시절에 차두리가 마인츠에서 선수로 뛴 적이 있는데 이 때 인연이 되어 차두리에게 이영표에 대해 물어보았다고 한다. 이후, 클롭은 시간이 흘러 지동원을 영입할 때도 차두리에게 먼저 물어보았다고 한다.[16] 데데가 다음 시즌을 끝마치고 브라질로 복귀하겠다고 밝혔던지라 구단측은 2년 재계약을 제안했으나 이영표 측에서 1년 재계약을 원했다.[17]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데데는 여전히 부상에 자주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유망주인 마르셀 슈멜처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우연이지만 이영표의 선택이 틀리지만은 않았다[18]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에게 지적했던 많은 문제점들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19] 승부차기를 잘 못 찬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도 4강 이란전 마지막 키커로 나갔다가 실축해 금메달을 날리고 이동국군대로 보내버린 바 있다. 일명 이동국 군대가라슛![20] 사실 종교를 판단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옷만 비슷하게 차려입고 무슬림 행세를 하면 이교도라도 들어갈 수는 있다고 한다.[21] 7월 20일 기준 21경기 연속 풀타임 출장.[22] 박진섭 역시 이영표와 함께 국가대표에 승선하였으나, 피지컬의 부족으로 인해 히딩크감독 부임 후 국가대표에 승선되지 못한다.[23] 일명 이동국 군대가라 슛....[24] 여담으로 이 대회가 1970년대에 박스컵에서부터 이어졌던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의 마지막 대회였다. 당시 참가팀은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멕시코, 이집트, 크로아티아. 우승은 1년 전의 돌풍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크로아티아가 차지했다.[25] 잘 모르겠지만 이영표의 청소년 시절에 이영표보다 더 주목받던 선수가 있었다. 양현정이라는 선수였는데 이 당시 이관우와 함께 1996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우승에 공헌했고 1997년 말에 국가대표 상비군으로도 발탁되었다. 이 당시 차세대 윙어로 주목받던 선수고, 부상 이전에는 2002 멤버로까지 거론되던 차세대 기대주였다. 양현정은 잦은 부상을 겪으며 기량이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십자인대 부상이라는 치명적인 상황을 맞았고, 한때 무명이었던 이영표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빛을 발할 동안 K리그에서... 그것도 부상 때문에 얼마 뛰지도 못하다가(그가 남긴 족적이라고는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으로 2000년 신인상이 유일하다.) 베트남 리그로 이적했다. 이후로 은퇴해서 지도자가 되었는데, 현재 동티모르 청소년 대표팀을 맡고 있다.[26] 또 다른 기대주 박진섭은 박주영이 나타나기 전까지 천재소리를 듣던 유망주였지만, 체력이 모자라고 체격이 왜소하다는 이유로 강판, 이후 그의 자리를 꿰찬 선수가 바로 송종국이다. 그래도 박진섭은 양현정과 달리 선수생활 자체가 말리진 않았고 당시 K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하던 성남 일화의 일원으로 우승도 경험하며 나름대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다.[27] 약간의 오류가 있는데 양현정은 윙어였고, 이영표와 박진섭의 포지션은 스리백의 윙백과 포백의 풀백이다. 그리고 이영표는 대표팀 커리어 기간 동안 전문적으로 윙을 맡았던 선수는 아니다. 2000년 아시안컵에서 잠시 윙어를 본 적은 있지만, 당시엔 하석주와 공존 시키려는 허정무의 고육지책에 가까웠다. 애초에 이영표는 유소년 시절 주목받던 선수가 아니었고(고등학교 때 까지는 대부분의 한국 선수들이 그렇듯이 공격수 출신이다), 양현정은 측면 수비수로 뛴 적은 없는 선수다. 차라리 양현정 관련된 코멘트는 경쟁 포지션이었던 설기현의 내용에 들어가는 게 더 어울려 보인다.[28] 다만, 1~2차전에는 결장했었다. 개막 전 훈련 도중 왠 기계인간과 부딪히면서 부상을 당했기 때문.(...)[29]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30] 호나우딩요호날두 그리고 네이마르 등 테크닉이 뛰어난 선수들은 프리스타일에도 일가견이 있어 프리스타일 자체가 축구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애초에 공 다루는 감각이 뛰어나야 가능한 거니까. 하지만 진짜 프리스타일만 전문으로 파는 프리스타일러의 기술들은 축구보다는 서커스에 어울릴 정도로 동작도 크고 잔 움직임이 많다. 이영표가 혹평한 이유는 이것인듯.[31] 프리스타일이 체스라면 축구는 격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오히려 이영표의 저런 혹평이 유망주에게는 일시적인 상처로 남았겠지만 사실 정말로 필요는 없다.[32] 박지성이 선제골을 넣은 바로 그 경기다.[33] 다만 김동진이 흥할 때는 포지션 경쟁에서 밀려 오른쪽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그러나 김동진이 지병으로 롱런에 실패하여 다시 왼쪽으로 복귀했다.[34] PSV 시절에는 04/05시즌 1골 10도움을 올렸을 정도로 공격에서도 엄청난 모습을 보여줬었다. 특히 10도움은 14/15시즌 예트로 빌럼스가 12도움으로 갱신하기 전까지 10년 동안이나 네덜란드 리그 단일시즌 수비수 도움 최다 기록이기도 했다. 하지만 빅리그(EPL+분데스리가) 스탯은 4시즌동안 0골 2도움으로 좋은 편은 아니다.[35] 그러나 이 경기 하나만으로 이영표의 실력을 평가절하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36] 이영표의 이런 공격 특징의 하이라이트는 앞서 언급한 PSV와 AC밀란과의 챔피언스 리그 4강 경기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풀백이라고 불리던 밀란의 우측 윙백 카푸를 맞아 90분간 무한 오버래핑을 시전하여 '그' 카푸를 제대로 발라버렸다. 국대 경기에서도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 아르헨티나의 오른쪽 사이드를 탈탈탈 털어버리면서 이영표 커리어의 역대급 하이라이트로 불릴 수 있는 경기가 있다.[37] 책에서도 언급하였는데 에이전트가 이영표는 빅 크리스천이라고 뭉뚱그려 말했고, 이게 와전된 모양이다. 거절한 이유.[38] 중동 이슬람 국가에서는 개신교 선교는 공식적으로 불법이다. 국가에 따라서는 사형에 처하는 국가도 있다. 비자를 받아내달라는 조건을 걸었다는 것은 개신교 목사 및 선교사가 합법적으로는 입국비자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실상 구단을 속여서 이용한 셈이며 법률을 고의적으로 어긴 것.[39] 당연한 얘기지만 K리그에서 뛰지 않는다고 해서 K리그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몇몇 축구 커뮤니티의 일부 K리그 팬들의 여론은 K리그 지상주의가 만연해 있었고, K리그에 입단하지 않고 해외진출을 하는 축구선수들에 대한 인신공격도 아무런 제재없이 남발되고 있던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영표를 두고도 말로만 K리그 사랑을 외친다는 터무니없는 비난이 가해졌던 것이다.[40] 2004년 FC 서울이 연고 이전을 하자 이영표가 "나의 친정팀은 죽었다" 이런 강경한 발언을 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이 발언은 FC 서울팬들이 지적한대로 국내 축구 갤러리에서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41] 해피투게더에서 해명한 바가 있는데,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한다고... 볼 탈취가 정상보다 엄청나게 많은 팀이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와서 싸우는 팀이고, 파울이나 라인 아웃이 많으면 협력 수비를 기반으로 몰아내는 수비를 하는 팀이니 그런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내용을 예측한다고 한다.[42] 당시 이근호는 국가대표팀에서 전지훈련까지 함께 하다 최종 탈락의 비보를 접했다.[43] 다들 잘 알겠지만, 예측한 사람이 더 이상하다고 들을 만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44] SBS의 차범근, MBC의 송종국&안정환 등도 이 시점에서는 모두 예측하지 못했다.[45] 참고로 다른 보기는 브라질아르헨티나였으며 브라질은 37명, 나머지 두 나라는 14명씩 선택.[46] 파일:/image/087/2013/10/28/213102700189_59_20131028120902.jpg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이영표의 은퇴경기를 위해 제작한 티켓[47]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 탈락 직후 인터뷰에서 홍명보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라는 발언을 하자, KBS에서 해설을 하던 이영표는 위의 말로일침을 날렸다.[48] 인터뷰 중 '항상 박지성이란 그늘에 가려져 있는 게 아쉽지 않느냐' 질문에 대해서.[49] 물론 "공짜시즌권"이라는 것은 없다. 공짜표 & 시즌권이면 몰라도...[50] 참고로 2002년 월드컵 한국 국대의 10번이다. 당시 월드컵 엔트리 규정에 따르면 골키퍼는 1번, 12번, 18번, 23번만 배번이 가능해서 김병지에게 12번을 주고 10번을 단 것이다. 10번은 엔트리 제출일에 거스 히딩크감독이 고심하다 준 것이다. 10번의 상징성으로 인해 많은 대표팀 선수들이 내심 달기를 원했지만, 팀의 단합을 중시하던 히딩크는 가장 성실히 훈련에 임하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이영표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국가대표 팀에서 수비수가 10번을 달은 매우 희귀한 케이스다.[51] 이영표 선수의 결혼식 당시 로벤이 네덜란드에서 보낸 축하 영상에서도 '영표 형'이라고 언급한다.[52] 이건 나이도 어린 로벤이 이영표를 부를 때 'Lee' 라고 부르는 게 맘에 안들어 아예 자기 이름을 '영표 형'이라고 부르게 해서 그렇다. 해피투게더 3 460화 참고.[53] 이영표 본인의 말에 의하면, 로벤을 처음 보고 3가지 이유로 놀랐다고 한다. 축구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한 번, 실력에 비해 나이가 어려서 두 번, 나이에 비해 너무 늙어보여서 세 번.(...)[54] 반면 MBC나 SBS가 중계시 승률은 떨어진다. 특히 SBS가 승률이 가장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