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언 긱스
최근 수정 시각:
분류
- 1973년 출생
- 카디프 출신 인물
- 웨일스의 남자 축구 선수
- 시에라리온계 영국인
- 흑인계 쿼터
- 개명한 인물
- 웨일스의 축구 감독
- 1990년 데뷔
- 2014년 은퇴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원클럽맨/축구
- UEFA 챔피언스 리그 100클럽 가입 선수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역대 감독
- 선수 겸 감독/축구
- 감독 대행/축구
-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영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올림픽 축구 와일드카드
- 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선수
- 대영제국 훈장 4등급
- 윙어
- 중앙 미드필더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수상자
- PFA 올해의 선수 수상자
-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수상자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역대 스태프
라이언 긱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라이언 긱스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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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긱스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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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ford City Football Club | ||
![]() | ||
이름 | 라이언 긱스 Ryan Giggs | |
본명 | 라이언 조지프 긱스 Ryan Joseph Giggs | |
출생 | ||
국적 | ||
신체 | ||
주발 | 왼발 | |
후원사 | ||
직업 | ||
소속 | 선수 | |
감독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3~2014 / 선수 겸 코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4 / 감독 대행)[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4~2016 / 수석 코치) 웨일스 대표팀 (2018~2022) | |
경영 | ||
국가대표 | 64경기 12골 (웨일스 / 1991~2007) | |
링크 | ||
요약하자면 클럽 선수로서는 화려한 커리어를 누렸지만, 국가대표로선 녹록지 못한 조국의 국가대표팀 전력을 극복하지 못한 채 FIFA 월드컵은 물론이고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마저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비운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조지 웨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에릭 칸토나[8], 모하메드 살라 등과 더불어 명성에 대비되는 부실한 국대 커리어로 곧잘 거론되는 선수다.
FIFA 월드컵 대회 중에 언제나 나는 늘 작은 방에 틀어 박혀 있었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기억해주겠지요. 이 영광의 대회 팬 중에는 영국의 작은 나라의 한 선수, 라이언 긱스가 있었다는 사실을.라이언 긱스가 FIFA 월드컵의 꿈이 좌절된 소감을 웨일스의 축구 전문지에다 직접 기고한 편지의 내용에서.
잉글랜드 대표가 되길 희망했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되는 질문이 여전히 날 괴롭힌다. 난 웨일스인이다. 이것으로 모든 이야기는 끝이다.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내 부모와 아무 관계도 없는 잉글랜드를 위해 뛰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라이언 긱스에게 "왜 잉글랜드 대표가 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영국에 나뉘어 있는 네 개의 축구협회를 선택하는 것에서 우선하는 것은 출생지와 부모 및 조부모의 출신지였다. 외국에서 태어나는 등의 일정한 특수요건이 있다면 자유롭게 선택이 가능한데 라이언 긱스의 친할아버지는 시에라리온 국적, 친할머니, 외조부모는 모두 웨일스 출신에 어머니와 아버지마저도 웨일스 출신이었다.[9] 그나마 긱스 자신의 출생지도 웨일스의 중심지 카디프. 현재 개정된 영국 국대 선발 규정대로라면,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뛸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어떤 식으로든 잉글랜드 대표팀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라이언 긱스가 프로 데뷔하던 당시 잉글랜드 U-21 대표팀에서도 그를 뽑으려 했지만 이러한 사실 때문에 뽑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긱스는 어렸을 적 잉글랜드 학생선발팀의 주장으로 뛴 적이 있어서 오해를 부른 듯 하나 규정상 당시 학생선발팀의 발탁 기준은 선수의 출신이 아니라 거주지였다. 즉 국가대표와는 연관이 아예 없었다.#
결국 라이언 긱스는 1991년 웨일스 U-21 대표팀에서 단 한경기를 뛰고 바로 웨일스 성인 대표팀에 차출, A매치에 데뷔하게 된다. 물론,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규정이 있더라도 어차피 같은 영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니 규정을 뜯어 고쳐가며 데려올 수도 있을 위인들이지만 그것은 라이언 긱스 자신도 그렇게 해서라도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뛰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한국 뿐만이 아니라 영국 현지,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긱스와 잉글랜드 대표팀'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다들 알다시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왼쪽 윙 자리는 20년이 넘도록 답이 없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잉글랜드는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게다가 조직력까지 갖춰져 있었던 명실공히 우승후보였다. 당시 맨유가 자랑하던 좌긱스-우베컴 라인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가동했다면 월드컵이나 유로에서 한 번 정도는 우승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레스 베일이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웨일스 국가대표 최연소 데뷔였으며, 웨일스 국가대표 역대 최장 기간 주장 역임이었다. 사실상 긱스 이외에는 전력이 참 눈물나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경기라도 있다치면 베컴, 네빌, 퍼디난드 등 클럽팀에서 똑같이 우승을 맛봤던 동료들을 상대로 다구리를 맞아야 했던 긱스였다. 어느 인터뷰에서 긱스는 "분명 내가 공격하고 네빌이 나를 수비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국가대표 경기에서의 모습은 (웨일스의 전력이 약해서) 늘 반대였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2007년 여름, 체코와의 유로 2008 예선 경기[10]를 끝으로 눈물없이 볼 수 없었던 그의 국가대표 경력을 끝냈다. 팬들은 사방에 플래카드를 걸고 주장 완장을 내려놓는 국가의 레전드의 뒷모습에 박수와 함께 눈물을 뿌렸다. 이렇게 긱스의 국대 경력이 끝났다.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영국 단일팀(Team GB) 최종 엔트리에 선발되었다. 올림픽 대표팀은 일반적으로 국대라 불리는 A 대표팀이 아니라 U-23 대표팀이고, 긱스가 평생 뛰었던 웨일스 대표팀이 아닌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팀이지만 그의 국제대회 마지막 도전이라 그의 팬들은 은근히 호성적을 기대하고 있다.[11] 게다가 주장 자리에도 낙점되었다.#
2012 런던 올림픽 조별 리그 2차전 UAE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12] 주장으로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8강 대한민국 전에서도 승부차기에서 영국 단일팀의 네 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시켰으나, 불행히도 팀은 다섯 번째 키커였던 다니엘 스터리지의 킥이 이범영 골키퍼에게 막히고 대한민국의 다섯 번째 키커 기성용의 킥을 막지 못하며 승부차기에서 패배함에 따라 긱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국가대항전 도전도 막을 내렸다. 유럽과 남미 국가들에게는 올림픽 축구는 A매치가 아니기에 결코 메이저 대회라고 할 수 없지만 긱스의 국가대표 커리어가 선수 본인의 클래스에 비해 워낙 부실하다보니 탈락에서 속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웨일스 대표로 월드컵에 한번도 못 나간 것에 한이 맺혔는지 2002년 월드컵 기간에 집에서 혼자 노는 긱스라는 주제로 몇개의 웃긴 리복 CF를 찍었다. 혼자서 집 정원에서 웨일즈 국대 유니폼을 입고 잉글랜드를 상대로 월드컵 결승전에 나간 상상을 하며 노는 것이 특히 웃기다.#
끝끝내 긱스가 은퇴할 때까지 웨일스는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은퇴 후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드디어 64년 만에 진출에 성공한다.
조지 베스트의 재림 혹은 왼쪽의 절대자라 불렸던 전성기 긱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귀신같은 드리블. 영국 축구 역대 최고의 드리블러를 꼽을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전성기 긱스의 드리블은 말 그대로 알고도 못 막는 레벨이었고, 입이 벌어지는 주력과 돌파에 이은 다이렉트 러닝크로스의 정확도는 당시 누구와도 비교를 거부했다.[13]
주특기인 온 더 볼과 주력, 왼발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왼발 크로스 능력과 패스가 강점이다. 거기다 득점력[14], 전술 이해도, 개인기 등 윙어로서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완벽에 가까운 선수다.[15] 심지어 헤더마저 나쁜 편은 아니었으며, 킥의 정확도 역시 천하의 데이비드 베컴과 번갈아가며 프리킥을 찰 정도였으며 베컴이 레알로 떠난 후에는 팀의 전담 키커였다.
젊은 시절의 긱스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기술과 주력, 판단력, 차분함을 갖춘 선수였다. 특히 드리블을 할 때면, 긱스가 가진 덕목들이 모두 시너지가 되어 말 그대로 눈이 즐거운 드리블이 펼쳐졌다. 공을 발에 붙였다, 멀리 떨어뜨렸다를 반복하는, 제동 및 가속을 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깔끔한 볼 터치로 민첩한 방향전환을 하며 자유자재로 공을 몰았다. 원체 균형감각과 밸런스가 좋아서 급격한 방향전환을 할 때도 전혀 흔들림이 없이 우아함을 뽐냈다.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이 맞붙은 FA컵 4강전이 좋은 예. 여기서 나온 일명 사과나무 골은 맨유 역대 최고의 골 중 하나로 두고두고 회자되곤 한다.[16]
나이가 들면서 발이 다소 느려졌지만[17] 그래도 타고난 속도와 가속력 자체가 워낙에 뛰어나서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도 치고 달리기로 돌파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더 이상 상대 수비를 젊을 때 만큼은 따돌릴 수 없었고, 순발력도 젊은 시절보다 떨어지면서 일대일 상황에서 위력이 반감 되어 있었다.[18] 그러나 긱스는 자신의 몸에 나타난 변화를 그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고, 화려함을 버리는 대신, 영리함과 정교함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은퇴를 바라보는 30대의 나이에 중앙 미드필더로의 변신을 시도한 긱스는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 능력, 빠른 두뇌 회전을 무기로 새 포지션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19]
뿐만 아니라 수비가담이 뛰어난 선수였다. 퍼거슨 감독이 수비력이 좋지 못한[20]폴 스콜스를 4-4-2의 미드필더의 한자리로 기용할 수 있었던 것도 측면 미드필더인 긱스와 베컴의 수비 가담이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굳이 단점을 찾는다면 반댓발(오른발) 활용이 아쉽다는 것.[21] 길고 긴 그의 커리어에서 그가 오른발로 넣은 골의 개수를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무려 24년 간의 긴 클럽 경력에서 단 한 번도 퇴장을 당하지 않았을 만큼 페어 플레이어이기도 했다.[22]
주특기인 온 더 볼과 주력, 왼발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왼발 크로스 능력과 패스가 강점이다. 거기다 득점력[14], 전술 이해도, 개인기 등 윙어로서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완벽에 가까운 선수다.[15] 심지어 헤더마저 나쁜 편은 아니었으며, 킥의 정확도 역시 천하의 데이비드 베컴과 번갈아가며 프리킥을 찰 정도였으며 베컴이 레알로 떠난 후에는 팀의 전담 키커였다.
젊은 시절의 긱스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기술과 주력, 판단력, 차분함을 갖춘 선수였다. 특히 드리블을 할 때면, 긱스가 가진 덕목들이 모두 시너지가 되어 말 그대로 눈이 즐거운 드리블이 펼쳐졌다. 공을 발에 붙였다, 멀리 떨어뜨렸다를 반복하는, 제동 및 가속을 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깔끔한 볼 터치로 민첩한 방향전환을 하며 자유자재로 공을 몰았다. 원체 균형감각과 밸런스가 좋아서 급격한 방향전환을 할 때도 전혀 흔들림이 없이 우아함을 뽐냈다.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이 맞붙은 FA컵 4강전이 좋은 예. 여기서 나온 일명 사과나무 골은 맨유 역대 최고의 골 중 하나로 두고두고 회자되곤 한다.[16]
나이가 들면서 발이 다소 느려졌지만[17] 그래도 타고난 속도와 가속력 자체가 워낙에 뛰어나서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도 치고 달리기로 돌파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더 이상 상대 수비를 젊을 때 만큼은 따돌릴 수 없었고, 순발력도 젊은 시절보다 떨어지면서 일대일 상황에서 위력이 반감 되어 있었다.[18] 그러나 긱스는 자신의 몸에 나타난 변화를 그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고, 화려함을 버리는 대신, 영리함과 정교함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은퇴를 바라보는 30대의 나이에 중앙 미드필더로의 변신을 시도한 긱스는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 능력, 빠른 두뇌 회전을 무기로 새 포지션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19]
뿐만 아니라 수비가담이 뛰어난 선수였다. 퍼거슨 감독이 수비력이 좋지 못한[20]폴 스콜스를 4-4-2의 미드필더의 한자리로 기용할 수 있었던 것도 측면 미드필더인 긱스와 베컴의 수비 가담이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굳이 단점을 찾는다면 반댓발(오른발) 활용이 아쉽다는 것.[21] 길고 긴 그의 커리어에서 그가 오른발로 넣은 골의 개수를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무려 24년 간의 긴 클럽 경력에서 단 한 번도 퇴장을 당하지 않았을 만큼 페어 플레이어이기도 했다.[22]
17세에 데뷔할 때부터 이미 완성형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윙어로서 모든 능력을 갖춘 특급 재능이었다. 유망주 시절 센세이셔널한 활약으로 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했고 전성기에는 가히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 세계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으로 평가되었다.
전성기에 보여준 퍼포먼스로만 봐도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들 중 하나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정 받는 부분은 철저한 자기 관리에 따른 긴 선수 경력이다. 뛰어난 관리와 영리함을 바탕으로 불혹의 나이에도 선수 커리어를 지속하며 탑급 기량을 선보였다는 것은 그의 꾸준함과 영원한 클래스의 방증이다. 또한 유스 시절 포함 무려 27년을 세계 최고 명문 클럽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만 헌신한 원클럽맨으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다. 이러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긱스는 PL 역사상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이자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진다.[23]
라이언 긱스의 기록
전성기에 보여준 퍼포먼스로만 봐도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들 중 하나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정 받는 부분은 철저한 자기 관리에 따른 긴 선수 경력이다. 뛰어난 관리와 영리함을 바탕으로 불혹의 나이에도 선수 커리어를 지속하며 탑급 기량을 선보였다는 것은 그의 꾸준함과 영원한 클래스의 방증이다. 또한 유스 시절 포함 무려 27년을 세계 최고 명문 클럽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만 헌신한 원클럽맨으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다. 이러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긱스는 PL 역사상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이자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진다.[23]
라이언 긱스의 기록
- 클럽 통산 963경기 169골 263어시스트
- 프리미어리그 통산 632경기 109골 162어시스트
- 프리미어리그 통산 최다 출전 3위 (632경기)
- 프리미어리그 통산 최다 어시스트 1위 (162어시스트)
- 프리미어리그 통산 최다 우승 1위 (13회)
- UEFA 챔피언스리그 통산 최다 출전 11위 (141경기)
- UEFA 챔피언스리그 통산 최다 어시스트 5위 (31어시스트)
- 맨유 통산 최다 출전 1위 (963경기)
- 맨유 통산 최다 득점 8위 (169골)
- 맨유 통산 최다 어시스트 1위 (263어시스트)
다만 대표팀에서 단 한 번도 메이저 대회 출전이 없다는 점에서 국가대표 활약상에 아쉬움이 남는 선수이기도 하다.
2013-14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은퇴하기도 전, 플레잉 코치 역할을 수행하던 중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의 경질로 시즌 잔여 경기를 지휘한 것이 첫 감독 경력이다. 상기 선수 경력에 함께 서술. (2승 1무 1패)
2014년 5월 19일 맨유의 차기 감독으로 루이 판할 감독이 선임되면서 수석 코치에 내정되었다. 아무래도 구단 차원에서 차차기 지도자를 맡기기 위해 전략적으로 키우는 듯. 반 할 감독은 월드컵이 끝나 네덜란드 국가대표팀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대로 구단에 정식으로 합류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마침내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의 현역 생활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맨유 통산 963경기 출장.
은퇴 후 그의 등번호는 유망주 아드낭 야누자이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야누자이의 소시에다드 이적 이후 앙토니 마르시알이 2016-17 시즌에 11번을 달게 되었다.[24]
그리고 이에 따라, 마침내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의 현역 생활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맨유 통산 963경기 출장.
은퇴 후 그의 등번호는 유망주 아드낭 야누자이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야누자이의 소시에다드 이적 이후 앙토니 마르시알이 2016-17 시즌에 11번을 달게 되었다.[24]

저번 시즌에 이어서 판 할의 수석 코치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번 시즌은 작년과 다르게 판 할 감독이 훈련장과 경기 당일에서의 권한을 부여했고[25] 전술적인 부분에서 긱스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첼시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것과 스완지 전에서 2:1로 승리한 것. 이 경기 모두 긱스의 전술로 경기를 했다.
이번 시즌 판 할의 부진으로 다음 시즌 무리뉴와 함께 감독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판 할이 경질되고 무리뉴가 맨유 감독에 선임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긱스가 수석 코치 직을 떠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결국은 주제 무리뉴가 감독으로 공식 선임되었다. 팀은 긱스가 U-23(2군)의 감독이 되기를 원하고, 긱스는 판 할의 후임 감독이 되기를 원했으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긱스가 떠난다고 사실상 확정되는 분위기. 무리뉴는 어떻게든 긱스가 남게 하기 위해 "원하는 어떤 자리든 내주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무리뉴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에도 7월 2일 자신의 야망을 위해 맨유를 떠났다. 29년간 오로지 맨유를 위해 헌신했던 왼발의 마법사도 끝내 막을 내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난 후에는 2016년 카디프 시티 감독 경쟁에서 밀렸었다.
2018년 1월에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탈락 후 공석으로 남아 있던 모국 웨일스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첫 경기인 중국전을 6-0 대승으로 잡으면서 좋은 시작을 보였다. 2018년 9월에 개막한 네이션스 리그에서는 리그 B 4조에 속해 첫 경기 아일랜드전을 4-1로 이기고 덴마크에는 0-2로 패했다.
유로 2020 예선에서는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등이 포진된 E조에서 치열한 순위 경쟁 끝에 헝가리와의 최종전에서 2-0 승리를 거두면서 조 2위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로써 긱스는 선수 시절 이루지 못했던 메이저 대회의 꿈을 감독으로서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감독 경력을 이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20년 11월 2일, 긱스가 여자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 이로 인해 웨일스 축구 협회도 선수단 발표가 연기되었다고 밝혔고,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이 폭행 혐의가 사실이라면 더 이상 웨일스 대표팀의 감독으로 활동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1월 3일 웨일스 축구 협회는 긱스가 11월에 지휘봉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롭 페이지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됐다. 그리고 2021년 3월에 있을 2022 카타르 월드컵 예선#, 6월에 있을 유로 2020까지 불참이 결정되었다.#
결국 2022년 6월 21일에 사퇴하고 롭 페이지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이에 따라 현역 시절에 밟지 못한 꿈의 무대 참석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아라얀에서 열리는 웨일스 - 잉글랜드간의 영국 축구 더비 또한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 긱스의 기여도가 사실상 없기도 했고 범죄 행위로 재판을 받는 와중이라 팀 사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첫 경기인 중국전을 6-0 대승으로 잡으면서 좋은 시작을 보였다. 2018년 9월에 개막한 네이션스 리그에서는 리그 B 4조에 속해 첫 경기 아일랜드전을 4-1로 이기고 덴마크에는 0-2로 패했다.
유로 2020 예선에서는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등이 포진된 E조에서 치열한 순위 경쟁 끝에 헝가리와의 최종전에서 2-0 승리를 거두면서 조 2위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로써 긱스는 선수 시절 이루지 못했던 메이저 대회의 꿈을 감독으로서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감독 경력을 이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20년 11월 2일, 긱스가 여자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 이로 인해 웨일스 축구 협회도 선수단 발표가 연기되었다고 밝혔고,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이 폭행 혐의가 사실이라면 더 이상 웨일스 대표팀의 감독으로 활동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1월 3일 웨일스 축구 협회는 긱스가 11월에 지휘봉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롭 페이지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됐다. 그리고 2021년 3월에 있을 2022 카타르 월드컵 예선#, 6월에 있을 유로 2020까지 불참이 결정되었다.#
결국 2022년 6월 21일에 사퇴하고 롭 페이지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이에 따라 현역 시절에 밟지 못한 꿈의 무대 참석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아라얀에서 열리는 웨일스 - 잉글랜드간의 영국 축구 더비 또한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 긱스의 기여도가 사실상 없기도 했고 범죄 행위로 재판을 받는 와중이라 팀 사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즌 | 클럽 | 리그 | FA 컵 | 리그 컵 | 대륙 대회[26] | 기타[27] | 전체 | |||||||||||||
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990-91 | 2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2 | 1 | 0 | ||
1991-92 | 38 | 4 | ? | 7 | 0 | ? | 8 | 3 | ? | 1 | 0 | ? | 1 | 0 | ? | 51 | 7 | ? | ||
1992-93 | 41 | 9 | 5 | 2 | 2 | 0 | 2 | 0 | 0 | 1 | 0 | 0 | - | 46 | 11 | 5 | ||||
1993-94 | 38 | 13 | 7 | 7 | 1 | 0 | 8 | 3 | 0 | 4 | 0 | 2 | 1 | 0 | 0 | 58 | 17 | 9 | ||
1994-95 | 29 | 1 | 11 | 7 | 1 | 4 | - | 3 | 2 | 0 | 1 | 0 | 0 | 40 | 4 | 15 | ||||
1995-96 | 33 | 11 | 10 | 7 | 1 | 1 | 2 | 0 | 1 | 2 | 0 | 1 | - | 44 | 12 | 13 | ||||
1996-97 | 26 | 3 | 5 | 3 | 0 | 0 | - | 7 | 2 | 0 | 1 | 0 | 1 | 37 | 5 | 6 | ||||
1997-98 | 29 | 8 | 9 | 2 | 0 | 3 | - | 5 | 1 | 2 | 1 | 0 | 1 | 37 | 9 | 15 | ||||
1998-99 | 24 | 3 | 1 | 6 | 2 | 1 | 1 | 0 | 0 | 9 | 5 | 2 | 1 | 0 | 0 | 41 | 10 | 4 | ||
1999-00 | 30 | 6 | 12 | - | 11 | 1 | 2 | 3 | 0 | 1 | 44 | 7 | 15 | |||||||
2000-01 | 31 | 5 | 7 | 2 | 0 | 0 | - | 11 | 2 | 4 | 1 | 0 | 0 | 45 | 7 | 11 | ||||
2001-02 | 25 | 7 | 3 | 1 | 0 | 0 | 13 | 2 | 4 | 1 | 0 | 1 | 40 | 9 | 8 | |||||
2002-03 | 36 | 8 | 9 | 3 | 2 | 0 | 5 | 0 | 0 | 15 | 5 | 3 | - | 59 | 15 | 12 | ||||
2003-04 | 33 | 7 | 11 | 5 | 0 | 8 | 8 | 1 | 4 | 1 | 0 | 0 | 47 | 8 | 23 | |||||
2004-05 | 32 | 5 | 10 | 4 | 0 | 0 | 1 | 1 | 0 | 6 | 2 | 1 | 1 | 0 | 0 | 44 | 8 | 11 | ||
2005-06 | 27 | 2 | 10 | 2 | 1 | 0 | 3 | 0 | 0 | 5 | 1 | 2 | - | 37 | 4 | 12 | ||||
2006-07 | 30 | 4 | 7 | 6 | 0 | 2 | - | 8 | 2 | 8 | - | 44 | 6 | 17 | ||||||
2007-08 | 31 | 3 | 6 | 2 | 0 | 3 | 9 | 0 | 2 | 1 | 1 | 0 | 43 | 4 | 11 | |||||
2008-09 | 28 | 2 | 6 | 2 | 0 | 2 | 4 | 1 | 2 | 11 | 1 | 3 | 2 | 0 | 3 | 47 | 4 | 16 | ||
2009-10 | 25 | 5 | 11 | 1 | 0 | 0 | 2 | 1 | 1 | 3 | 1 | 1 | 1 | 0 | 1 | 32 | 7 | 14 | ||
2010-11 | 25 | 2 | 8 | 3 | 1 | 1 | 1 | 0 | 0 | 8 | 1 | 5 | 1 | 0 | 0 | 38 | 4 | 14 | ||
2011-12 | 25 | 2 | 8 | 2 | 0 | 0 | 1 | 1 | 0 | 5 | 1 | 2 | - | 33 | 4 | 10 | ||||
2012-13 | 22 | 2 | 3 | 4 | 1 | 2 | 1 | 2 | 0 | 5 | 0 | 1 | - | 32 | 5 | 6 | ||||
2013-14 | 12 | 0 | 2 | - | 2 | 0 | 0 | 7 | 0 | 1 | 1 | 0 | 0 | 22 | 0 | 3 | ||||
24시즌 | 통산 | 672 | 113 | 161 | 74 | 12 | 27 | 41 | 12 | 5 | 157 | 30 | 49 | 23 | 1 | 9 | 963 | 168 | 251 |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0~2014)
- FA컵: 1993-94, 1995-96, 1998-99, 2003-04
- 풋볼 리그컵: 1991-92, 2005-06, 2008-09, 2009-10
- FA 커뮤니티 실드: 1993, 1994, 1996, 1997, 2003, 2007, 2008, 2010, 2013
- UEFA 챔피언스 리그: 1998-99, 2007-08
- 유러피언 슈퍼컵: 1991
- 인터컨티넨탈컵: 1999
- FIFA 클럽 월드컵: 2008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LW 8위)
- UEFA 챔피언스 리그 도움왕: 2006-07
- PFA 올해의 선수: 2008-09
-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1991-92, 1992-93
- PFA 올해의 팀: 1992-93, 1997-98, 2000-01, 2001-02, 2006-07, 2008-09
- PFA 세기의 팀 (1997~2007)
- PFA 메리트상: 2016
- FWA 헌정상: 2007
- 프리미어 리그 10시즌 어워즈 (1992-93~2001-02)
- 내국인팀: 2002
- 프리미어 리그 20시즌 어워즈 (1992-93~2001-02)
- 최고의 선수: 2012
- 팬 선정 팀: 2012
- 패널 선정 팀: 2012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06년 8월, 2007년 2월
- 인터컨티넨탈컵 MOTM: 1999
- 브라보상: 1993
- BBC 올해의 스포츠 인물: 2009
- BBC 올해의 웨일스 스포츠 인물: 1996, 2009
- BBC 올해의 골: 1998-99
- 웨일스 올해의 축구 선수: 1996, 2006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올해의 선수[29]: 1997-98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 선정 올해의 선수: 2005-06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올해의 영플레이어[30]: 1989-90, 1990-91
- GQ 올해의 운동 선수: 2010
- 골든풋: 2011
- IFFHS 레전드: 2016
- IFFHS 올타임 웨일스 드림팀: 2022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5
- 글로브 사커 어워즈 플레이어 커리어상: 2019
- 원클럽 어워드: 2020
- 풋볼 리그 레전드 100인: 1998

아버지와 찍은 사진. 아버지는 시에라리온 혈통의 웨일스인이자 유명 럭비 선수 대니 윌슨이었다. 그는 웨일스 출신의 16세 소녀 라이네 긱스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 후 아이까지 낳게 된다. 그 아이가 바로 라이언 윌슨.
하지만 윌슨의 바람기는 상당히 유명했는데, 라이네와 결혼한 후에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가 있었지만 여러 여자를 만나러 다녔고 그 모습을 소년 라이언이 보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라이언은 아버지에 대해 실망하고 싫어하게 되었다. 이후 윌슨이 이적함에 따라 라이언은 맨체스터로 이사하게 되고,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카우터였던 데니스 스코필드에게 발굴되어 딘스 유스클럽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귀신 같은 드리블을 치는 꼬마가 있다라는 스카우트의 보고를 받은 알렉스 퍼거슨이 14세 생일날 긱스의 집에 직접 찾아가 라이언의 첫 유스 계약을 성공시킨다.
라이언이 14세가 된 어느 날, 아버지 윌슨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이혼을 하게 된다. 이미 아버지에 대해 좋은 기억이 없던 라이언은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고 성도 어머니의 성을 따른 "긱스"로 바뀌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라이언에게 퍼거슨 감독은 많은 위로를 해주었고 라이언은 퍼거슨을 아버지처럼 따르게 된다.
긱스의 할아버지가 시에라리온 출신이기 때문에 긱스 역시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31] 그 때문에 어렸을 때 인종차별[32]로 인한 힘든 시절을 보낸 듯, 그 당시를 잊지 못하고 성년이 된 지금 유니세프의 인종차별 추방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33]
그동안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가정적인 가장의 이미지를 쌓아 왔으나 선수생활 말미에 불륜 행각이 폭로되면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과거 자신이 아버지의 불륜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타 선수들에게 귀감 및 모범이 되어야 할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벌인 불륜이라 배신감을 느끼는 팬들이 많으며 옹호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럴만도 한 게, 그렇게 증오하던 자신의 아버지를 넘어선 불륜 행각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흐른 뒤 아내와는 이혼하였고, 그 이후에도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나다가 이를 문제삼은 여자친구를 폭행하여 기소당하는 등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웨일스 대표팀 감독에서도 사실상 사임한 상태다.
긱스의 이런 갑작스런 막장극장을 풍자한 한국 누리꾼의 댓글 원문
2007년경 카카가 AC 밀란 시절 긱스의 멱살을 잡는 사건이 있어서 까인 적이 있는데 2011년 긱스의 스캔들이 드러나자 타 팀 팬들에게 찬양받았다.[34]
결국 시간이 흐른 뒤 아내와는 이혼하였고, 그 이후에도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나다가 이를 문제삼은 여자친구를 폭행하여 기소당하는 등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웨일스 대표팀 감독에서도 사실상 사임한 상태다.
긱스의 이런 갑작스런 막장극장을 풍자한 한국 누리꾼의 댓글 원문
2007년경 카카가 AC 밀란 시절 긱스의 멱살을 잡는 사건이 있어서 까인 적이 있는데 2011년 긱스의 스캔들이 드러나자 타 팀 팬들에게 찬양받았다.[34]
- 첫 번째 불륜: 연예계 최고의 모델
언론에 알려진 첫 번째 불륜 상대는 이모겐 토머스(Imogen Thomas)라는, 1982년생 웨일스 출신의 유명한 슈퍼 모델이다. 2010-11 시즌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EPL에서 오래 뛰고 타이틀을 많이 얻은 웨일스 선수가 불륜을 했고 아내에게 고백해서 결국 아내를 울리게 했다.'고 현지 언론 및 신문이 보도하기 시작했다. 조건이 워낙 한정적이라 웬만한 사람들은 누군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당사자가 안팎으로 존경받는 인물이기에 그냥 뻘루머로 여기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선 이미 널리 퍼질 대로 퍼져나갔고 특히 5월 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 간의 경기를 앞두고 런던 원정에 긱스가 아무런 이유 없이 불참하면서 SNS 및 팬 포럼에 상주하던 사람들은 사실상 확정짓게 되었다. 결국 더 선이 냄새를 맡고 제대로 터뜨리려고 하자 재빠르게 본인은 아내에게 사실대로 고백하고 법정에 보도 금지 명령을 신청해서 막았는데, 다른 법역[35]인 스코틀랜드에서 보도하는 것은 보도 금지 명령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악용한 영국 언론이 거의 대놓고 당사자의 사진을 올리며[36]# 스코틀랜드에서 보도하게 된다.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앞두는 중요한 시점에서 맨유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 터졌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 출전은 했고 루니에게 어시스트를 올렸으나 오프사이드 상황이었고, 맨유에서 가장 많이 뛰었지만 멘탈 초토화로 인한 공황사커 끝에 그라운드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축구계의 슈퍼스타에게 젊은 애인이 하나 생겼거니 하는 “쯧쯧쯧” 정도의 시각과, 이모겐 토머스란 여성이 과거부터 축구선수에게 자주 달라붙었다는 사실에 “에휴 긱옹 어쩌다가...” 하는 반응과 더불어 눈물겨운 맨유 팬들의 억지 쉴드가 있었다.
- 두 번째 불륜: 동생의 아내 (제수씨)
전설의 시작. 폭탄이 제대로 터졌다.
상대가 동생과 만나기 전부터 나이트에서 만나 관계를 가졌으며, 동생에게 그녀를 소개해 줬고 그녀가 동생과 약혼한 후에도 8년간 계속 관계를 가져왔다고 한다.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테리: 긱스는 나보다 나은 선수. 나는 동료의 아내였지만 그는 동생의 아내였다.’, ‘긱스 조카가 귀신같은 왼발 드리블을 치기 시작하는데...’ 같은 드립을 치면서 긱스를 깠다. 형에게 NTR을 당한 긱스 남동생이 2006년 태어난 자신의 아들 친자 확인 검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만일 검사 결과 긱스 남동생의 아들이 긱스 아들로 밝혀진다면 역대 스포츠 스타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전설로 등극할 것이다. 사실 지금 터진 것만 따져도 충분히 역대급 전설이다.[37]
그런데 긱스와 8년간 불륜을 저지른 나타샤가 긱스와 사귀면서 긱스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동료와도 불륜을 저질렀다고 한다. 나타샤가 긱스가 아닌 다른 맨유 선수[38]와 사귄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며, 사람들은 어떻게 나타샤가 긱스와 남편 로드리, 또 다른 맨유 선수와 동시에 만날 수 있었을까 매우 궁금해 했고, 특히 긱스는 나타샤가 자신의 팀 동료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감쪽같이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나타샤 긱스가 드와이트 요크 이외에도 맨유 선수 출신 2명과도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상대는 필 바슬리(선덜랜드), 대니 심슨(뉴캐슬)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타샤가 뉴스 오브 더 월드에 충격적인 고백을 했는데, 나타샤가 긱스의 아이를 임신하자 낙태를 종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낙태 확인만 했을 뿐 곁에 있어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긱스는 언론에게 집중 포격을 받았다. 또한 나타샤는 그 외에도 긱스의 동료들과는 잠시 만났을 뿐 그들과의 관계는 언론이 부풀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타샤가 일방적으로 “자신은 피해자다”라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현지에서는 “나타샤 역시 가해자이다”라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단순히 긱스와 밀애를 가진 것이 아니라 많은 선수와 원나잇 스탠드를 가진 것을 비롯하여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관계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 이모겐 토머스의 등장과 자폭하는 심정으로 일을 터트렸다는 것으로 현지에서는 긱스만큼이나 ‘미친 년’으로 까이고 있다. 긱스의 아내인 스테이시 역시 “나타샤가 긱스를 망가트리고 빼앗기 위해 터트린 폭탄이다.”, “내 남편을 빼앗기지 않겠다”라며 긱스를 용서하겠다고 하여 더욱 더 까였다. 이쯤 되면 단순한 불륜극이 아니다.#
- 세 번째: 과거 최고 모델
이번에 나온 상대는 과거 미스 카디프 출신 모델인 1968년생 리사 제인스. 본인이 데일리스타에서 폭로한 뒤 알려졌다. 위의 이모겐 토머스처럼 웨일스 출신의 인기 모델에 금발이고 유명 리얼리티 쇼 『빅브러더』의 영국판에 출연한 적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의 관계는 13년 전에 처음 시작되었다고는 하는데, 사실 이건 불륜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는 것이 당시 긱스는 물론 제인스 역시 싱글이었다. 1년 정도 만남을 가지다 헤어졌다고 하는데, 영국 현지에서도 ‘10년도 지난 일을 이제 와서 꺼낸다는 건 긱스 스캔들 여파에 물타기로 돈이나 뜯어내려는 수작’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세다.[39]
- 계속되는 막장 드라마
긱스와 스테이시는 지난 11일 맨체스터 근교 워즐리의 한 중화요리 레스토랑 밖에 나타샤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봤다. 이들은 지난 6월 나타샤가 긱스와의 근친상간을 폭로한 뒤 이날 처음 만난 뒤 말싸움으로 번졌고 이 와중 긱스는 “난 네게 신경도 쓰지 않아. 그저 잠자리 상대였을 뿐이야”라고 나타샤에게 어떤 감정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나타샤의 남편이자 본인의 친동생인 로드리 긱스에게 우리형은 ‘벌레(bug)’라는 욕설까지 듣게 되며 라이언 벅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종합해 보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넘어 PL의 출범과 함께 그 시작을 함께 했던 레전드 중의 레전드지만, 스캔들 한방에 모든 영광을 싸그리 날려버렸다. 차라리 원래부터 여성 문제로 시끄러웠다면 충격이 덜했겠지만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 긱스의 이미지는 바른 생활하고 가정적인 건전한 스포츠인이었다. 게다가 과거의 일도 아니고 8년이나 계속해왔다는 사실에 대해 배신감과 가증스러움을 느꼈다는 팬들도 많다. 축구 관련 웹툰에서도 종종 등장하여 동료들의 아내를 탐하는 모습으로 자주 비춰진다. 결국 선수 말년에 그리고 맨유 수석 코치에 이어 웨일스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지금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2015년 긱스의 동생이 한 인터뷰의 내용이 화제가 되었는데, 자기 때문에 친동생의 가정이 완전 파탄났음에도 이에 전혀 뉘우치는 기미 없이 뻔뻔하게 “단지 성관계였을 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대응하고 있음이 알려지면서 더욱 파문이 일고 있다.[40]# 그러다 얼마 후, 동생과 화해했다는 기사가 떴다.# 로드리가 나타샤와의 관계 지속에 실패하고 이혼 절차를 밟고 난 후, 라이언이 로드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사과를 했다고. 이후 형제 간의 관계가 서서히 회복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으나...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정작 그 사건 이후로 긱스는 동생이 아내와 이혼하면서 정신적인 고통으로 마약에까지 손을 대면서 불운한 가정사과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이후 한동안 조용하다가 2016년 결국 라이언 긱스 자신도 아내와 이혼 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긱스 자신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에게 작업을 걸다가 이걸 아내에게 들켜버렸다. 그동안 참아왔던 세월도 있고 그 사건 전후로부터 누적된 것이 폭발하여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아내가 이혼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2017년 결국 아내 스테이시가 거액의 위자료를 청구한 이혼 소송을 걸었고, BBC에 따르면, 긱스의 재산의 절반을 위자료로 청구하였다 한다.# 그리고 12월에 최종적으로 이혼했으며 자세한 합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법률 대리인이 한다는 말이 이혼했지만 두 사람은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지낼 거라고 한다.
이혼할 무렵 긱스는 호텔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때 비즈니스적으로 도움을 준 8세 연하의 케이트 그레빌과 2018년에 공개 연애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2020년 11월, 두 명의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 들키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여자친구를 폭행해 체포되었다. 가족의 인터뷰도 실렸는데 아버지 데니 윌슨은 “라이언은 여자를 많이 밝히지만 폭력 쓸 사람은 아니다. 아들을 믿는다.”였고, 동생 로드리는 “형은 섹스 중독. 여자랑 사귀면 무조건 섹스를 생각한다. 그냥 딱할 뿐이다.”라는 인터뷰를 올렸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클럽 감독이 되었을 때, 성적 안 나오면 가정 방문하겠다 등의 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결국 2021년 4월에 작년 11월 폭행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폭행 사건으로 기소되기 전에 긱스는 란제리 모델이자 11살 연하인 자라 찰스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생활 문제 때문인지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은커녕 후보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41] 선수 시절 커리어만 보면 1순위로 들어가야 하지만, 수많은 선수들이 헌액이 됐는데도, 심지어 비슷하게 불륜 논란이 있었던 존 테리, 리오 퍼디난드, 웨인 루니 등도 헌액된 마당에 긱스가 헌액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불륜 행각이 그중에서도 가장 추하게 여겨지기 때문임이 분명하다.[42] 게다가 저들은 적어도 아내를 폭행하진 않았다.[43] 그리고 이 놈의 사생활 문제로 자신이 감독으로서 이끌던 조국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했음에도 감독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성적 안 나오면 가정방문 등의 드립이 난무하던 시기가 있었다.
2022년 9월 4일(한국시간) 영국 언론 '더 선'은 "긱스의 이모인 조안나 윌슨은 2018년 긱스가 웨일스 대표팀 감독이 되자 한 편의 시를 만들어 선수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조안나는 가레스 베일을 비롯한 선수들에게 아내를 지키라는 농담조의 경고를 했었다"고 밝혔다.#
2022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전 부인인 스테이시와 그의 아이들, 그리고 현 여친인 자라 찰스와 함께 맨체스터의 한 레스토랑에서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사진을 올리며 네티즌들로부터 역시 정상적인 멘탈의 소유자는 아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2023년 7월 18일 3년에 걸친 재판 끝에 폭행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 동생 장모 불륜설
파문 와중에 타블로이드지인 미러에서 나타샤의 어머니.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사부인과도 일이 있었다는 기사가 터졌다.# 긱스가 가족 모임에서 동생 장모까지 꼬시려고 했고, 심지어는 동생 장모와도 불륜을 저질렀다는 찌라시인데 이걸 국내 정론지에서 인용하여 기사들을 쏟아내는 바람에[44] 일반인들에게 팩트로 각인되어버렸다. 하지만 국내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 해외의 모든 긱스의 동생장모 유혹설을 언급한 기사들의 출처가 위의 미러 지 기사 딱 하나인데, 이 미러 지는 더 선과 더불어 갖가지 찌라시 소설들을 매일 같이 업데이트하는 황색언론으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라 더 이상의 후속 보도도 없는 것으로 보아 사실상 동생 장모 유혹설의 신빙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허나 임팩트가 센 루머여서 그런지 현재는 라이언 긱스하면 장모님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하나의 밈이 되었다.
- 현재는 불륜 사건 때문에 평판이 상당히 안 좋아졌지만 선수 시절 인품에 대해 평가하면 상당히 고평가 받는다. 당시 맨유의 주장 에릭 칸토나는 락커룸에서 후배 선수들을 폭행하는 등의 횡포를 하였는데, 특히 체격이 왜소한 스콜스와 긱스를 자주 괴롭혔다고 한다. 그런데 칸토나가 갑작스레 은퇴를 발표한 이후 긱스는 부주장으로 팀을 이끌며 이러한 꼰대 문화를 모조리 없애버리고 팀원들 간의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실제로 성격적인 면에서 긱스가 논란이 되었던 적은 선수 시절에 없었고 퇴장도 긴 클럽 경력동안 단 하나도 받지 않았다.

- 골닷컴 선정 UEFA 챔피언스 리그 시대별 최고의 선수에서 1990년대 부문 5위에 이름을 올렸다.
[1] 말년에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었다.[2] 1985년부터 맨시티 유스에 속해 있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당시 맨시티 스카우트였던 데니스 스코필드의 딘스 축구 클럽에서 뛰었던 것일 뿐 정식 맨시티 유스 계약은 아니었고 상주하는 유스 선수도 아니었다. 게다가 긱스는 어릴 적부터 맨유 팬이었고 당시 학교에서 럭비 선수로도 뛰고 있었다. 14세 생일 날 맨유와의 정식 유스 계약이 공식적인 유스 커리어의 시작이다.[3] 모예스 경질 후 2013-14 시즌의 남은 경기를 감독대행으로 수행했다.[4] 10% 소유[5] 162도움[6]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로 계산한다면 제임스 밀너가 1위이고 긱스는 3위이다.[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대 최다 출장, 최다 도움[8] 물론 즐라탄과 칸토나는 팀의 전력보다는 본인이 메이저 대회에서 못한 탓이 가장 크다.[9] 아버지인 대니 윌슨이 잉글랜드 출신 또는 대표팀이었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정보다. 사실 대니 윌슨은 웨일스 럭비 대표에 뼛속까지 웨일스 사람이었고, 잉글랜드 럭비 리그에서 뛸 때도 자신이 웨일스 출신이라는 것을 어필했다.[10] 이 경기는 양쪽 모두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났다. 참고로 웨일스는 체코와 독일에게 밀려 탈락하였다.[11] 의무 차출 규정도 없는 데다가 성인 대표팀도 아닌 U-23 대회에 나서는 것에 다른 선수 같으면 반발이 심했겠지만 긱스의 국가대항전에 대한 비운은 모두가 잘 알고 있기에... 맨유팬들조차도 긱스옹이 올림픽이라곤 해도 세계 국가대항전인 만큼 말년에 한번 잘 뛰고 오길 바랄 정도였다...[12] 이 득점은 올림픽 축구 역대 최고령 득점으로 기록. 1924년 파리 올림픽 당시 이집트의 헤가지가 보유했던 기록(27세)을 갈아치웠다. 최고 기록이 27세의 나이라 언제든지 깨질 기록이었다만 무려 만 38세의 11살차이라는 압도적인 나이차로 기록을 세워버렸다.[13] 베컴의 경우 러닝크로스는 전문이 아니었다. 베컴은 잠시 키핑 → 택배 배달이 메인. 중앙에서 스콜스가 패스를 뿌리고 전혀 다른 스타일의 세계 최고를 다투는 좌우 윙어가 측면에 있었다.[14] 물론 어디까지나 4-4-2의 측면 미드필더 한정. 기본적으로 측면 돌파 후 크로스를 올리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중앙으로 파고들어 득점을 주로 노리는 요즘의 윙 포워드들에 비하면 당연히 골 수 자체는 적다. 그래도 맨유 역대 최다 득점 8위다. [15] 이 이상의 극찬을 받은 선수로는 루이스 피구가 있다. 당대 최고의 윙어로 같은 포지션에서 긱스, 베컴조차도 한 수 접어 줘야 했을 정도. 좌 긱스-우 피구는 그야말로 꿈의 조합.[16] 1대1로 비기고 있던 상황, 연장전 후반에 하프라인에서 파트리크 비에라의 패스를 인터셉트하고 그대로 골 박스까지 수비수들을 모두 드리블로 제끼고 왼발로 강하게 때려 골든골을 넣었다. 80년대에 태어나서 90년대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를 본 축구 팬들에게는 살면서 본 가장 인상깊은 골 중 하나로 기억된다.[17] 젊은 시절의 긱스는 아르연 로번 부럽지 않은 주력을 가진 폭발적인 드리블러였다.[18] 물론 젊을 적 보다 떨어진 것이어서 13-14 시즌 나이 40에도 여전히 간간히 나오는 위력적인 돌파와 빠른 순간속력을 자랑했다.[19] 박지성이 맨유 시절 끝끝내 긱스를 벤치로 밀어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나이가 들고도 긱스는 노련함과 원체 뛰어난 축구센스로도 여전히 PL 탑클래스 미드필더였다.[20] 패스길목 차단 정도는 했지만 태클 실력은 정말 형편없었고, 힘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21] 해외 선수들의 경우 주발이 아닌 반댓발의 정확도가 확연히 차이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반댓발을 써야 할 상황에서도 굳이 주발을 고집해서 답답하게 기회를 날리는 경우가 많다. 양발잡이라는 유형이 축구에서 유독 중요한 게 드리블이나 킥에서 전혀 예측할 수 없고 페이크 모션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예시로 히딩크가 우리 대표팀 감독을 맡고 나서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우리 선수들을 보고 놀랄 정도였다.[22] 국가대표 경기에서 딱 한 번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23] 애초 PL 명예의 전당 최초 헌액자에 티에리 앙리와 이름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후술할 논란으로 인해 PL 역대 최다 득점자인 앨런 시어러가 대신 헌액되었다.[24] 마르시알이 막 맨유에 온 2015-16 시즌에는 9번을 달았다. 이후, 마르시알은 2019-20 시즌에 다시 9번을 달았다.[25] 훈련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선수들이 불평하던 판 할의 반복적인 훈련 방식 대신 퍼거슨 시절의 훈련 루틴을 도입하였다.[26]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27] FA 커뮤니티 실드, UEFA 슈퍼컵, 인터컨티넨탈컵, FIFA 클럽 월드컵[28] 프리미어 리그 개인 최다 우승 기록.[29] 맷 버스비 올해의 선수[30] 지미 머피 올해의 영플레이어[31] 그래서 풋볼 매니저시리즈 할 때 긱스 프로필을 보면 이중국적란에 시에라리온이 적혀있다. 만약 웨일스 국가대표도 안 가고 시에라리온 국대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웨일스보다 더 부실한 국가대표 경력을 쌓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조지 웨아의 시에라리온버전이 될지도. 공교롭게도 하필 둘이 이웃나라다.[32] 우리가 얼핏 보기엔 그냥 백인으로 보이지만, 서양인 눈에는 백인의 혼혈 구분이 다 간다고 한다. 긱스옹과 비슷한 케이스로 한국계와 프랑스계 혼혈인 줄리엔 강 역시 서양에서는 동양인 얼굴이 보인다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받았다.[33] 그 때문인지 경기장에서도 인종차별 느낌이 드는 제스처가 발생하면 표정이 급 안 좋아진다. 단적인 예로 2009년 맨유 방한 경기 당시 논란이 됐던 마케다의 골 세리머니. 선수단 짬밥 No.1인 긱스가 정색을 하고 달려와서 마케다를 뜯어말렸다.[34] 카카는 독실한 개신교인으로 현역 시절 술담배는 물론이고 축제를 즐기러 다니느라 축구에 소홀해 본 적도 없고 선수은퇴 이전엔 한 명의 여자만 바라보고 혼전순결로 결혼한 선수다.[35] 영국(본국)의 법역은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셋으로 나뉜다. 해당 보도 금지 명령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만 효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6] 눈을 가렸지만 딱 봐도 긱스인지 알 수 있는 수준의 사진을 실어서 보도했다.[37] 긱스 동생이 둔기를 들고 긱스에게 쳐들어가려 했다는 뉴스가 떴다. 이런 상황에서 친자 확인 결과 긱스 남동생의 아들이 알고보니 긱스의 아들로 밝혀진다면 충격이 더 클 것이다.[38] 긱스와 함께 맨유에서 100경기 정도 출전했으며 세번의 정규 리그 우승을 함께 만들었고, 아직 미혼이라는 이 선수는 맨유를 떠난 상황이라고(former teammate)하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유력한 용의자였는데 알고보니 드와이트 요크였다.[39] 따지고 보면 둘 다 싱글인 상태에서 만났고 긱스가 결혼하기 이전에 헤어졌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안이다. 이건 애초에 불륜이라 할 수도 없다.[40] 그래도 로드리는 바로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았는데, 이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때문에 자신이 고통을 겪은 걸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또한 형 라이언은 이혼 당시 14-15세라서 맨유 유소년 클럽 동료들과 축구를 하거나 놀면서 고통을 잊고, 아버지같은 존재인 알렉스 퍼거슨이 있어서 안정을 찾았지만 훨씬 어린 자신한테는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라이언이 동생한테 신경을 좀 써줬다면 어느 정도 상처는 덜했을지도 모른다.[41] 성 관련 실언 등으로 오랫동안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한 비슷한 사례로 농구계에서는 팀 하더웨이가 있었다. 하더웨이는 현역 시절 All NBA팀 5회, 퍼스트팀 1회, 올스타 5회에 선정, 2000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수상, 소속팀 마이애미 히트에서의 영구 결번으로 명예의 전당에 큰 이견없이 헌액될 자격이 충분했지만 2007년 올스타 주간 당시에 커밍아웃한 전직 NBA 선수에 대해 논하는 과정에서 공개 인터뷰를 통해 “동성애자들을 싫어한다”는 실언을 하면서 NBA 홍보대사직을 박탈당하고 2007년 올스타 주간 모든 행사에서 출입금지를 당했고, 이후 그는 세 번이나 농구 명예의 전당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세 번 다 미끄러졌다. 그래도 하더웨이는 이 발언에 대해 후회한다고 밝혔으며, 성소수자들을 위한 단체를 지지선언하고 플로리다에서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할 것을 촉구하는 탄원서에 첫 서명자가 되고, 성소수자 관련 시위에 참석하는 등 성소수자 지지 활동을 해왔고 이런 행보로 뒤늦게 2022년에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결정되었다. 다만 하더웨이가 긱스와의 큰 차이점은 하더웨이는 저 실언을 제외하면 크게 사생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42] 유럽에서 축구선수의 불륜 스캔들은 예로부터 워낙 흔한(...) 일이기도 하고 서구권에서는 불륜과 같은 개인 사생활 문제를 선수 평가와 같은 공적인 영역으로까지는 끌고 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다만 그곳에서도 어쨌든 불륜은 매우 비도덕한 행위로 여겨지는데, 특히 불륜의 유형에 따라서도 그것의 심각성이 달라진다. 동료의 여자를 건드렸던 존 테리 같은 유형도 엽기적이긴 하지만 이런 케이스가 축구계에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일반인들의 삶에서도 은근 존재하는데, 긱스는 형제의 여자와 불륜이라는 막장드라마에서도 비현실적인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성 관념이 비교적 개방적인 서구권에서도 도덕적인 지탄을 넘어서 혐오스러운 인간으로 대접받게 된 것이다.[43] 실제로 긱스는 불륜 스캔들 이후로도 선수 및 감독 생활을 잘만 했고 방송에도 자주 나왔다. 그러나 여성 폭행은 완전히 다른 얘기라서 단순히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직업과 명예를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44] 조선일보, 동아일보, YTN, 디스패치, 연합뉴스[45] 제대로 보고 싶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고의 골로 선정된, 99년 FA컵에서의 아스날 전을 보자. 긱스가 셔츠를 벗고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지금은 보기 어려운 흥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나이가 20대 중반임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흥분했을 가능성이 높다.[46] 전술적인 호흡 때문인 걸로 보인다. 종종 섀도우 스트라이커도 봐 왔지만, 긱스는 05-06 시즌을 기점으로 중앙 미드필더도 보는 빈도가 늘어났는데, 정확히 위 네 명이 입단하는 시기와 거의 겹친다. 특히 박지성과 에브라가 영입되고부턴 긱스와 전술적 호흡이 매우 좋았다. 긱스는 하프윙같은 컨셉으로 중앙에서 왼쪽으로 돌아 나가는 움직임을 보이면, 박지성이 왼쪽에서 가운데로 들어와서 스위칭을 가져가준다. 이는 맨유 내 다른 윙어들에겐 기대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에브라는 발이 매우 빠르고 공수를 오고가는 게 부지런 해서 늘 수적 우세를 유지시켜줬다. 에브라-긱스-박지성 삼자 간의 호흡이 굉장히 좋았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 10-11 시즌엔 아예 이 멤버를 베스트 11으로 해서 챔스 결승까지 갔다. 루니 역시 활동량으로 스위칭을 해 주면서 긱스와 좋은 호흡을 보였고, 캐릭은 긱스의 옆에서 계속 노하우를 가르쳐 주며, 좋은 포지셔닝을 가져가 준 덕분에 긱스가 좀 더 편하게 중앙 미드필더로 뛸 수 있었다.[47] 국내버전의 경우 설기현, 이영표, 최성국이 모델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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