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니스 베르캄프
최근 수정 시각:
분류
- 1969년 출생
- 암스테르담 출신 인물
- 네덜란드의 남자 축구 선수
- 세컨드 스트라이커
- AFC 아약스/은퇴, 이적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
- 아스날 FC/은퇴, 이적
- 네덜란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네덜란드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92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96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0 참가 선수
-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
- 1986년 데뷔
- 2006년 은퇴
- PFA 올해의 선수 수상자
- FWA 올해의 선수 수상자
- 프리미어 리그 도움왕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수상자
네덜란드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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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데니스 베르캄프 Dennis Bergkamp | |
본명 | 데니스 니콜라스 마리아 베르흐캄프 Dennis Nicolaas Maria Bergkamp | |
출생 | ||
국적 | ||
신체 | ||
직업 | ||
소속 | 선수 | |
지도자 | ||
국가대표 | ||
SNS | ||
베르캄프의 집은 전체적으로 맨유의 팬이었기 때문에 맨유의 선수 데니스 로[3][4]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베르캄프의 이름은 Dennis로 데니스 로의 이름에 n이 하나 더 붙었다. 데니스 로의 이름인 Denis가 네덜란드에서는 여성의 이름으로 쓰이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베르캄프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던 선수는 토트넘의 레전드이자 잉글랜드의 테크니션 글렌 호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라이벌인 아스날의 레전드가 되었으니 인생 참 모를 일이다.
후에 베르캄프는 축구 잡지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가족들이 좋아하는 팀과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소속팀을 놔두고 왜 아스날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자신의 아버지는 데니스 로의 팬이지, 맨유의 팬이 아니었고 본인 역시 글렌 호들의 팬이기는 했지만 토트넘 구단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아스날에 입단했다고 밝혔다.
베르캄프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던 선수는 토트넘의 레전드이자 잉글랜드의 테크니션 글렌 호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라이벌인 아스날의 레전드가 되었으니 인생 참 모를 일이다.
후에 베르캄프는 축구 잡지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가족들이 좋아하는 팀과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소속팀을 놔두고 왜 아스날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자신의 아버지는 데니스 로의 팬이지, 맨유의 팬이 아니었고 본인 역시 글렌 호들의 팬이기는 했지만 토트넘 구단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아스날에 입단했다고 밝혔다.
1990년 9월 29일에 열린 이탈리아와의 친선경기가 베르캄프의 국가대표 데뷔 경기였다.[5] 첫 메이저 대회 출전은 유로 1992였는데, 이 대회에서 맹활약으로 베스트 11에 선정되고 이를 바탕으로 1992년 발롱도르 3위를 기록한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모로코, 아일랜드, 브라질을 상대로 각각 1골씩을 득점하면서 맹활약하였으나 8강에서 브라질에게 2-3으로 아깝게 패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호사가들의 화제인 '세계 4대 공격수' 중 가장 유력한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함께 언급되던 동시대 공격수들은 호나우두,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앨런 시어러 등.[6]
이 대회에서 베르캄프는 한국 수비진을 그야말로 유린하며 5-0의 참패를 안겨줘 한국 축구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남겼다. 부상을 입은 채 출전해서 꽤 많은 1대1 찬스를 날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특히 한국 수비수들을 바보로 만드는 드리블 후 필립 코쿠에게 어시스트한 장면, 아크 정면에서 간결한 터치만으로 김태영과 이민성을 농락하고 가볍게 툭 차넣는 득점 장면은 지금도 회자된다.
같은 대회 16강전에서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사실 베르캄프는 이때 퇴장당했어야 마땅한 반칙을 저지른다. 유고슬라비아의 시니샤 미하일로비치의 무릎을 일부러 밟는 비신사적인 반칙을 저질렀지만 심판은 이를 보지 못했다.[7] 제대로 된 판정이었다면 베르캄프는 이때 퇴장당하고 8강전은 물론 4강전에도 못 나왔어야 했다.[8] 만약 이때 출전하지 못했다면 네덜란드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모로코, 아일랜드, 브라질을 상대로 각각 1골씩을 득점하면서 맹활약하였으나 8강에서 브라질에게 2-3으로 아깝게 패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호사가들의 화제인 '세계 4대 공격수' 중 가장 유력한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함께 언급되던 동시대 공격수들은 호나우두,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앨런 시어러 등.[6]
이 대회에서 베르캄프는 한국 수비진을 그야말로 유린하며 5-0의 참패를 안겨줘 한국 축구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남겼다. 부상을 입은 채 출전해서 꽤 많은 1대1 찬스를 날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특히 한국 수비수들을 바보로 만드는 드리블 후 필립 코쿠에게 어시스트한 장면, 아크 정면에서 간결한 터치만으로 김태영과 이민성을 농락하고 가볍게 툭 차넣는 득점 장면은 지금도 회자된다.
같은 대회 16강전에서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사실 베르캄프는 이때 퇴장당했어야 마땅한 반칙을 저지른다. 유고슬라비아의 시니샤 미하일로비치의 무릎을 일부러 밟는 비신사적인 반칙을 저질렀지만 심판은 이를 보지 못했다.[7] 제대로 된 판정이었다면 베르캄프는 이때 퇴장당하고 8강전은 물론 4강전에도 못 나왔어야 했다.[8] 만약 이때 출전하지 못했다면 네덜란드는...
그리고 1998년 월드컵 8강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전반전에는 천재적인 헤더 패스로 네덜란드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바로 다음에 서술된 골 때문에 매우 저평가된 어시스트인데 가히 베르캄프의 어시스트 중 가장 지능적이면서 창의적이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훌륭한 어시스트였다. 그리고 정규시간이 거의 끝나가던 90분, 길게 넘어온 롱패스를 받아 말도 안 되는 오른발로만 쓰리 터치 골을 성공시켰다. 이 골은 지금도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베르캄프 커리어 통틀어서 가장 경이로우면서도 중요한 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 골은 베르캄프가 어떤 선수인지를 완벽하게 담아낸 장면이다. 당시 그를 마크하던 수비수는 로베르토 아얄라로 역시나 한 시대를 풍미한 명 수비수이며[9], 롱패스 어시스트를 연결한 선수도 네덜란드의 레전드 센터백인 프랑크 더부르이다.[10] 하지만 4강전에서 호나우두의 브라질과 만나 혈투 끝에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유로 2000에서 네덜란드 대표팀 최초로 A매치 40골에 도전했으나 도움을 3개 기록한 반면 1골도 넣지 못했고 네덜란드도 4강에서 이탈리아에게 탈락해서 4강에서 멈추고 만다. 전성기보다는 살짝 내려온 기량이었지만 나이가 들었어도 게임 운영 능력은 국가대표내에서 여전히 대체불가의 선수였다.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다. 국가대표 은퇴 당시에는 네덜란드 대표팀 최다 득점자였으나 2004년 10월 클루이베르트에 의해 깨진다.
이후 베르캄프가 없는 네덜란드는 2002 한일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
정리해 보면 국가대표로서 79경기 출장, 37득점을 기록하였다. 현재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역대 득점 랭킹 5위.[11] 하지만 자신은 I`m assistant 라고 하며 '스코어러'보다는 '어시스턴트'로 기억되기를 원했다. 실제로 커리어 후반기로 갈수록 베르캄프는 국가대표와 클럽 모두에서 골보다는 어시스트를 더 많이 기록했다.
유로 2000에서 네덜란드 대표팀 최초로 A매치 40골에 도전했으나 도움을 3개 기록한 반면 1골도 넣지 못했고 네덜란드도 4강에서 이탈리아에게 탈락해서 4강에서 멈추고 만다. 전성기보다는 살짝 내려온 기량이었지만 나이가 들었어도 게임 운영 능력은 국가대표내에서 여전히 대체불가의 선수였다.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다. 국가대표 은퇴 당시에는 네덜란드 대표팀 최다 득점자였으나 2004년 10월 클루이베르트에 의해 깨진다.
이후 베르캄프가 없는 네덜란드는 2002 한일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
정리해 보면 국가대표로서 79경기 출장, 37득점을 기록하였다. 현재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역대 득점 랭킹 5위.[11] 하지만 자신은 I`m assistant 라고 하며 '스코어러'보다는 '어시스턴트'로 기억되기를 원했다. 실제로 커리어 후반기로 갈수록 베르캄프는 국가대표와 클럽 모두에서 골보다는 어시스트를 더 많이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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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캄프는 세계 최정상급의 퍼스트 터치, 드리블, 시야를 바탕으로 아름답고 부드러운 플레이를 펼쳤다. 세컨드 스트라이커라는 포지션을 완벽히 이해했다고 할 정도의 전술 이해도와 천재적인 축구 지능을 가졌다. 대한민국 축구팬들이 말하는 순두부 트래핑 또는 고려청자 트래핑을 자유자재로 해내는데 이는 동시대의 지네딘 지단정도를 제외하면 적수가 없는 수준으로, 베르캄프를 대표하는 명장면들은 하나같이 비범한 퍼스트 터치로 만들어낸 것들이다. 최정상급의 테크닉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페이스를 많이 잃어 발이 느려진 선수 생활 말기에도 경기에 나가면 간결한 퍼스트 터치와 드리블 센스로 수비수들을 제치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다. 패스를 받는 순간 수비를 따돌리기 용이하면서 위협적인 슛 또는 패스를 날릴 수 있는 방향으로 공을 보내는 재능은 그야말로 독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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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빈 공간으로 쇄도하는 선수를 바로 찾아내 망설임 없이 바로 스루패스를 찔러주는 능력도 세계 최정상급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성기에는 신체 능력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도 꽤 빨랐을 뿐 아니라, 상상 이상으로 민첩하고 터닝 동작이 빨랐다. 위에도 숱하게 언급한 퍼스트 터치 능력에 빠른 터닝 동작과 뛰어난 탈압박 능력이 더해지다보니 더욱 수비수가 막기 까다로운 선수였다.
그리고 양발을 모두 상당히 잘 쓰는 편이었음에도, 아스날에서 같이 뛰던 앙리와 비슷하게 오른발을 사용하는 걸 더욱 선호했다. 그래서 베르캄프의 슈팅을 보면 왼발로 찰 각이 나오는데도 오른발 인사이드로 감아차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티에리 앙리 특유의 오른발 감아차기와 비슷한 폼으로 슈팅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뿐만 아니라 전성기에는 신체 능력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도 꽤 빨랐을 뿐 아니라, 상상 이상으로 민첩하고 터닝 동작이 빨랐다. 위에도 숱하게 언급한 퍼스트 터치 능력에 빠른 터닝 동작과 뛰어난 탈압박 능력이 더해지다보니 더욱 수비수가 막기 까다로운 선수였다.
그리고 양발을 모두 상당히 잘 쓰는 편이었음에도, 아스날에서 같이 뛰던 앙리와 비슷하게 오른발을 사용하는 걸 더욱 선호했다. 그래서 베르캄프의 슈팅을 보면 왼발로 찰 각이 나오는데도 오른발 인사이드로 감아차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티에리 앙리 특유의 오른발 감아차기와 비슷한 폼으로 슈팅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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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베르캄프는 칩슛의 1인자 라울 곤살레스 못지않은 최고 수준의 칩슛 장인으로, 골키퍼가 조금 나와 있다 싶으면 그림 같은 포물선의 칩슛을 꽂아넣곤 했다.
다만, 준수한 신체 조건의 소유자였으면서도 몸싸움을 상당히 꺼리는 스타일이었다. 몸싸움에서 쉽게 밀리지는 않았지만 세컨드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서게 된 것도 상대 수비와 직접 몸으로 부대껴야 하는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4] 그는 자신의 피지컬을 수비수들로부터 버티며 공을 지키는 정도로만 활용하였으며, 최대한 빠르고 간결한 볼 처리를 위해 드리블도 매우 간결하고 짧게 구사했다. 이 점 역시 지단과 명확히 다른 부분이다.
1999년 4월 14일, 1998-99 시즌 잉글랜드 FA컵 맨유와의 준결승전에서 필 네빌의 반칙으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맨유의 전설적인 골키퍼 페테르 슈마이켈의 선방에 막혀 실축한 이후, 페널티킥 공포증도 생겼다. 이 경기 이후 그는 은퇴할 때까지 페널티킥을 한 번도 차지 않았다.[15] 그래서 아스날에서는 앙리가 주로 PK를 담당했고 앙리가 PK를 얻을 시에는 본인이 얻은 PK는 차지 않는 징크스가 있어서 보통 로렌이나 피레스가 찼다.
베르캄프의 천재적인 축구 지능과 수려한 플레이 스타일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과 아스날의 전술에 매우 큰 영향력을 끼쳤고 팀과 상관 없이 그는 주변 동료들의 기량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에 특화된 선수였다.[16] 특히, 국가대표팀에서 베르캄프의 영향력은 당시 절대적이었는데 실제로 베르캄프가 유로 2000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 후 바로 치러진 국가대표팀 대회인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본선에 오르지 못하고 귀신같이 유럽 예선에서 탈락했다.[17]
다만, 준수한 신체 조건의 소유자였으면서도 몸싸움을 상당히 꺼리는 스타일이었다. 몸싸움에서 쉽게 밀리지는 않았지만 세컨드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서게 된 것도 상대 수비와 직접 몸으로 부대껴야 하는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4] 그는 자신의 피지컬을 수비수들로부터 버티며 공을 지키는 정도로만 활용하였으며, 최대한 빠르고 간결한 볼 처리를 위해 드리블도 매우 간결하고 짧게 구사했다. 이 점 역시 지단과 명확히 다른 부분이다.
1999년 4월 14일, 1998-99 시즌 잉글랜드 FA컵 맨유와의 준결승전에서 필 네빌의 반칙으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맨유의 전설적인 골키퍼 페테르 슈마이켈의 선방에 막혀 실축한 이후, 페널티킥 공포증도 생겼다. 이 경기 이후 그는 은퇴할 때까지 페널티킥을 한 번도 차지 않았다.[15] 그래서 아스날에서는 앙리가 주로 PK를 담당했고 앙리가 PK를 얻을 시에는 본인이 얻은 PK는 차지 않는 징크스가 있어서 보통 로렌이나 피레스가 찼다.
베르캄프의 천재적인 축구 지능과 수려한 플레이 스타일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과 아스날의 전술에 매우 큰 영향력을 끼쳤고 팀과 상관 없이 그는 주변 동료들의 기량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에 특화된 선수였다.[16] 특히, 국가대표팀에서 베르캄프의 영향력은 당시 절대적이었는데 실제로 베르캄프가 유로 2000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 후 바로 치러진 국가대표팀 대회인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본선에 오르지 못하고 귀신같이 유럽 예선에서 탈락했다.[17]
- AFC 아약스 (1986~1993)
- 에레디비시: 1989-90
- KNVB 베이커: 1986-87, 1992-93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1986-87
- UEFA컵: 1991-92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3~1995)
- UEFA컵: 1993-94
- 아스날 FC (1995~2006)
- 프리미어 리그: 1997-98, 2001-02, 2003-04
- FA컵: 1997-98, 2001-02, 2002-03, 2004-05
- FA 커뮤니티 실드: 1998, 2002, 2004
- 발롱도르 2위: 1993; 3위: 1992
- FIFA 올해의 선수 3위: 1993, 1997
- FIFA 100: 2004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8
- FIFA 월드컵 도움왕: 1998
- UEFA 유로 득점왕: 1992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1992
- UEFA컵 득점왕: 1993-94
-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 선수: 1991, 1992
- 네덜란드 올해의 재능: 1990
- 에레디비시 득점왕: 1990-91, 1991-92, 1992-93
- PFA 올해의 선수: 1997-98
- PFA 올해의 팀: 1997-98
- FWA 올해의 선수: 1997-98
- 프리미어 리그 도움왕: 1998-99
-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2021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1997년 8월 · 9월, 2002년 3월, 2004년 2월
- 아약스 올해의 선수: 1992-93
- 아스날 올해의 선수: 1996-97
- BBC 올해의 골: 1997-98, 2001-02
- IFFHS 세계 최고 득점자: 1992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7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CF 8위)
- FWA 헌정상: 2025
별명은 Non-Flying Dutchman(날지 못하는 네덜란드인).[18] 비행 공포증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그의 성격으로 인해 붙여진 별명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한 저널리스트가 농담으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이 탈 비행기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고 주장해 비행이 취소된 사건 때문에 비행 공포증이 생겼다고 한다. 94년 월드컵 당시에는 자신에게 공포증이 생긴 줄 몰랐었고 월드컵이 끝나고 인테르 시절에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비행기를 아예 못 타는 것은 아니고 비행기만 타면 상당히 긴장을 해서 경기장에서 자신의 퍼포먼스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타는 것을 꺼렸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코치 생활을 하는 현재는 비행기를 타기는 한다고 한다.
플라잉 더치맨에서 플라잉은 헤맨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네덜란드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므로 그 이름으로 인해 뛰어난 네덜란드 출신 운동선수에게 곧잘 붙는 별명이다. 예를 들어, 호너스 와그너나 요한 크루이프, 마르크 오버르마르스, 로빈 반 페르시 등. 독일계인 호너스 와그너가 왜 더치맨인지는 항목 참조.
베르캄프는 장거리 원정 시에도 반드시 육로로 이동하기로 유명했다. 아스날의 유럽 대회에서 베르캄프는 혼자 육로로 이동했다. 동유럽처럼 먼 곳은 아예 참여하지 않았고 프랑스나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북부 등 원정경기는 참여했다. 마지막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는 꽤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에 스페인 원정경기에서 벤치에 앉긴 했다. 아스날이 결승에 진출하자, 그도 파리까지 육로로 이동하며 결승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골키퍼인 옌스 레만이 퇴장당하면서 교체카드 1장을 썼고 팀이 베르캄프를 투입할 여건이 안 되어 출전은 못했다. 아스날도 바르셀로나에 아쉽게 패하고 만다. 이 날의 결장으로, 공식적인 그의 마지막 아스날 소속 경기는 하이버리 고별전인 위건전이다.
베르캄프의 비행 공포증은 유로 2000 이후 비교적 빠른 국대 은퇴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의 국대은퇴 후 베르캄프-세컨탑 체제에서 클루이베르트-세컨탑 체제로 변환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2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같은 조의 포르투갈과 아일랜드를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시망.[19]
그 밖에도 '아이스맨'[20] 등의 별명도 있으며, 애칭은 '베르기'.[21]
플라잉 더치맨에서 플라잉은 헤맨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네덜란드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므로 그 이름으로 인해 뛰어난 네덜란드 출신 운동선수에게 곧잘 붙는 별명이다. 예를 들어, 호너스 와그너나 요한 크루이프, 마르크 오버르마르스, 로빈 반 페르시 등. 독일계인 호너스 와그너가 왜 더치맨인지는 항목 참조.
베르캄프는 장거리 원정 시에도 반드시 육로로 이동하기로 유명했다. 아스날의 유럽 대회에서 베르캄프는 혼자 육로로 이동했다. 동유럽처럼 먼 곳은 아예 참여하지 않았고 프랑스나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북부 등 원정경기는 참여했다. 마지막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는 꽤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에 스페인 원정경기에서 벤치에 앉긴 했다. 아스날이 결승에 진출하자, 그도 파리까지 육로로 이동하며 결승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골키퍼인 옌스 레만이 퇴장당하면서 교체카드 1장을 썼고 팀이 베르캄프를 투입할 여건이 안 되어 출전은 못했다. 아스날도 바르셀로나에 아쉽게 패하고 만다. 이 날의 결장으로, 공식적인 그의 마지막 아스날 소속 경기는 하이버리 고별전인 위건전이다.
베르캄프의 비행 공포증은 유로 2000 이후 비교적 빠른 국대 은퇴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의 국대은퇴 후 베르캄프-세컨탑 체제에서 클루이베르트-세컨탑 체제로 변환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2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같은 조의 포르투갈과 아일랜드를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시망.[19]
그 밖에도 '아이스맨'[20] 등의 별명도 있으며, 애칭은 '베르기'.[21]
'큰 대회에서의 불운'이라는 제목이 시사할 수도 있는 바와 달리 베르캄프가 큰 대회나 경기에서 약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월드컵을 단 2회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6골 4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조별 리그보다 토너먼트에서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기록한 득점이 전부 선제골, 역전골, 추격골이었기에 순도 역시 매우 높다.
오히려 조별 리그에는 몸이 덜 풀린 모습을 보여줬고 녹아웃 스테이지에서부터 본인의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편. 1994년 월드컵에서는 3골 1어시스트를 기록해 슈퍼스타로서의 면모를 보여줬고 1998년 월드컵에서는 더 좋은 경기력과 더불어 3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올스타 팀에 선정됐다. 1994년 월드컵 때 조별 리그에서 모로코를 상대로 1골 1어시스트, 그리고 토너먼트인 16강전 아일랜드 상대로 1골을 기록했다. 8강전에서는 결국 해당 대회 우승팀이었던 브라질을 상대로 추격골을 득점했다.[22] 1998년 월드컵 때 조별 리그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1골 1어시스트, 멕시코를 상대로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토너먼트인 16강전 유고슬라비아전에서는 1골 그리고 8강 아르헨티나전에서는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비행 공포증이라는 뚜렷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넘어 스포츠 대회 통틀어서 가장 위상이 높은 월드컵에서 베르캄프는 맹활약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테크니션인 그였지만 정작 월드컵과 같은 굵직한 대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굳이 찾자면 UEFA컵 우승 2회가 전부. 동시대의 테크니션인 지네딘 지단이 FIFA 월드컵과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UEFA 챔피언스 리그 등을 전부 우승한 것과 대조되는 부분.
오히려 조별 리그에는 몸이 덜 풀린 모습을 보여줬고 녹아웃 스테이지에서부터 본인의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편. 1994년 월드컵에서는 3골 1어시스트를 기록해 슈퍼스타로서의 면모를 보여줬고 1998년 월드컵에서는 더 좋은 경기력과 더불어 3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올스타 팀에 선정됐다. 1994년 월드컵 때 조별 리그에서 모로코를 상대로 1골 1어시스트, 그리고 토너먼트인 16강전 아일랜드 상대로 1골을 기록했다. 8강전에서는 결국 해당 대회 우승팀이었던 브라질을 상대로 추격골을 득점했다.[22] 1998년 월드컵 때 조별 리그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1골 1어시스트, 멕시코를 상대로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토너먼트인 16강전 유고슬라비아전에서는 1골 그리고 8강 아르헨티나전에서는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비행 공포증이라는 뚜렷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넘어 스포츠 대회 통틀어서 가장 위상이 높은 월드컵에서 베르캄프는 맹활약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테크니션인 그였지만 정작 월드컵과 같은 굵직한 대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굳이 찾자면 UEFA컵 우승 2회가 전부. 동시대의 테크니션인 지네딘 지단이 FIFA 월드컵과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UEFA 챔피언스 리그 등을 전부 우승한 것과 대조되는 부분.
- FIFA 월드컵 - 처음 참가했던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맹활약하며 오렌지 군단을 8강에 올려놓았지만 호마리우의 브라질에게 접전 끝에 3-2로 석패했다. 4년 뒤 그의 전성기이자 네덜란드 대표팀도 가장 전력이 강했다고 평가받던 1998 프랑스 월드컵 8강에서 그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지능적인 헤더 어시스트와 말도 안 되는 골을 기록하여 팀을 4강으로 이끌었으나 또다시 호나우두의 브라질을 만나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탈락했다. 1998년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을 인정받아 월드컵 올스타팀에 선정됐다.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 유로 1992에서 득점왕과 해당 대회 베스트 11안에 들었지만 팀은 덴마크에게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유로 1996에서는 스위스를 상대로 1골, 잉글랜드를 상대로는 1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8강전 프랑스를 상대로 승부차기에서 패배했다. 유로 2000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회일 것이다. 자신의 고향이자 친정팀인 아약스의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4강전에서 수적 우세에도 불과하고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다. 개최국인 네덜란드는 유로 2000 당시 강력한 우승후보였으며 죽음의 조를 통과하고 유고슬라비아를 6-1로 이기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4강전에서는 잔루카 잠브로타가 전반 34분 퇴장당하며 수적으로 우세했음에도 불구, 이탈리아 특유의 빗장수비에 막혀 연장전까지 간 끝에 승부차기로 이탈리아에 패하고 만다. 베르캄프는 후반 15분에 클라렌스 세도르프와 교체되어 나갔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A매치가 되었다.
- UEFA 챔피언스 리그 - UEFA컵은 아약스 시절과 인테르 시절 각각 한 번씩 우승했지만 챔피언스 리그와는 인연이 없었다. 2000년대 초중반 아스날이 잘나가던 시절에도 유독 챔스에서 고전하던 이유 중 하나가 유럽 원정경기에서의 그의 부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스날에서의 마지막 시즌 그에게도 베르캄프에게도 기회가 왔다. 조별 리그 툰과의 홈경기 1-1 상황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집념의 결승골을 넣을 정도로 챔스 우승의 열망을 나타냈다. 사실 마지막 시즌 그의 나이는 37세였고 주로 후반에 교체 출전했는데 챔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스날이 결승에 진출하자, 그도 파리까지 육로로 이동하며 결승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출전하지는 않았고, 아스날도 바르셀로나에 아쉽게 패하고 만다. 이 날의 결장으로, 공식적인 그의 마지막 아스날 소속 경기는 하이버리 고별전인 위건전이다. 참고로 아스날은 99-00 시즌에 UEFA컵을 준우승했는데 만약 이때 우승했더라면 베르캄프는 서로 다른 3개의 클럽에서 우승하는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다.
- 차갑고 냉철한 이미지에 테크니션이라는 특성에, 언론과의 접촉이 적어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23] 사실 트래시 토크와 교묘한 반칙성 플레이를 곁들인 몸싸움에 매우 능했다.[24] 오죽하면 같은 팀 동료였던 앙리조차도 베르캄프는 nasty했다며 반칙과 몸싸움에 상당히 능했다는 것을 증언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비신사적인 파울로 안드레 오이여르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힌 적이 있었다. 중요한 점은 언제나 그런 일을 절대로 심판에게 찍히지 않는 범위에서만 행했으며, 그를 통해 결정적인 순간에 심판에게서 좋은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나름의 노하우라면 노하우고 능력이라면 능력. 극상의 터치와 발재간, 센스에다가 이런 어둠의 기술(?)이 있었기에 수비수들에게는 더욱 공포와 짜증, 분노를 유발했다.[25]
- 이안 라이트와 룸메이트였다는데, 정작 성격은 정반대였다고 한다. 이안 라이트는 활달하고 쇼맨쉽도 있는 성격인 데 반해 데니스 베르캄프는 상단에 전술했듯이 차갑고 차분한 편이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의 타이트한 식단 관리도 베르캄프는 군말없이 따르고 거뜬하게 적응해냈지만 라이트는 좀 시무룩했다고 한다.[26] 한 번은 벵거의 식단에 지친 라이트가 몰래 티백을 숨겨들어와 방에서 마시려고 하자 베르캄프는 간만에 티를 마실 생각에 신난 라이트에게 "감독님은 우리가 티 마시는 걸 싫어한다. 우리 모두 감독님을 따르고 있는데, 넌 우리를 실망시킨다"며 타일렀고, 라이트는 결국 내적 갈등 끝에 티를 마시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 인테르 시절이 보통 흑역사로 취급되긴 하나, 베르캄프 본인은 인테르 생활을 하면서 축구를 좀 더 냉혹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접근해야 되는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아약스에서 축구 생활을 할 때는 찬스를 한 번 놓쳐도 어차피 한 경기에서 나오는 찬스는 많으니 괜찮다는 즐거운 마인드를 가지며 축구에 임했지만, 수비가 매우 강한 이탈리아 축구를 경험한 뒤로는 찬스 하나하나 신중히 처리해야 되는 냉정함의 중요성을 터득했다고 한다.
- 비행기 공포증 탓에,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접근하는 팀이 극히 적었다고 한다. 아스날과는 적절한 주급에 계약을 해나갔는데 은퇴할 때까지 1년씩 단기 계약을 했다.
- 챔피언십 리그의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에서 뛰었던 로날드 베르캄프는 그의 조카라 한다. 현재는 네덜란드 2부 리그 팀에서도 후보에 그치는 중이다.
- 아스날에서의 활약 때문에 아약스에서의 활약이 묻히는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베르캄프의 순수기량만 보면 발롱도르 2, 3위를 차지한 아약스와 인테르 초창기 시절이 전성기라 볼 수 있다. 참고로 베르캄프는 반바스텐보다 겨우 4살 어리고 앙리보다 8살이나 많다. 다만 1997년 아스날에서 활약할 때는 발롱도르 다음으로 가장 권위가 높은 FIFA 올해의 선수상에서 3위를 기록하며 브론즈 트로피를 수상했다. 이때 발롱도르는 아쉽게도 4위로 포디움에 들지 못했다.
- 본인은 향후 감독보다는 개인 시간이 보장되는 코치로 축구계에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 꽤 높은 공대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매우 훌륭한 투자자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로 벌었으며, 네덜란드 부자 500위 안에 들어간다.
-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을 5:0으로 깨부수었던 네덜란드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렇다 보니 한국 국대 축구를 보려고 TV를 보았다가 이 당시 베르캄프의 플레이에 충격을 받고 그의 팬이 된, 더 나아가서 당시 최전성기를 달리던 아스날의 팬이 된, 박지성보다 이전의 0세대 해외축구 팬들이 제법 된다.[29]
- 국가대표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승부차기와는 지지리도 인연이 없다. 유로 1992에서는 덴마크에게 4강전에서 승부차기로 탈락, 유로 1996에서는 프랑스에게 8강전에서 승부차기로 탈락, 유로 2000에서는 이탈리아에게 4강전에서 승부차기로 탈락, 그리고 본인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던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브라질에게 4강전에서 승부차기로 탈락했다. 정작 베르캄프 본인은 페널티킥을 모두 성공시켰기 때문에 더 억울할 수도 있다.
데니스 베르캄프의 국가대표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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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베르캄프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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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베르캄프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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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글 표기에는 183cm라고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188cm라는 얘기가 많다. 188cm인 앙리와 같이 서있는 사진에서도 키 차이가 거의 없다.[2] 대표팀 역대 득점 공동 5위[3] Denis Law. 스코틀랜드 출신의 스트라이커로 1964년 발롱도르 수상자. 바비 찰튼, 조지 베스트 등과 더불어 맨유의 1960년대 초기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경신하기 전까지 맨유의 한 시즌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가지고 있던 선수였다.[4] 여담으로 데니스 베르캄프가 태어난 해 데니스 로는 유러피언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하였다.[5] 당시 0-1로 패배.[6] 한국 vs 네덜란드전에서 신문선이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7] 다만, 유고슬라비아 선수들의 심기를 건들 수 있는 위협적인 반칙이었기에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날 뻔했으며, 하필이면 해당 상황이 벌어진 근처 관중석에 유고슬라비아 관중들이 있어 경기장에 오물이 투척되기도 했다.[8] 당시는 퇴장당하면 2경기 징계였다. 당시 같은 공격수였던 파트릭 클라위버르트도 조별리그 1차전인 벨기에전에서 퇴장당하며, 조별리그 2차전 한국전과 3차전 멕시코전에 출장하지 못했다.[9] 21세기 초반에 발렌시아에서 짠물 수비를 이끌며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과 리그 2번 우승, UEFA컵 우승을 이룬 명 수비수. 국대에서도 아르헨티나의 센추리 클럽 멤버이자 당대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 단신 센터백으로 파비오 칸나바로와도 흔히 비교되곤 했다.[10] 베르캄프의 언급에 따르면, 아약스 시절 동료였을 때부터 둘 사이에 간간이 하던 콤비 플레이였다고 한다.[11] 1위는 데파이, 2위는 반 페르시, 3위는 훈텔라르. 4위는 클루이베르트.[12] 나머지는 라울 곤살레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13] 지금의 성격이 조금 달랐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벵거볼은 '두두다다'로 대변되는, 지공보다 속공이 중시되는 빠른 템포와 패스로 상대방을 공략하는 스타일이었고 그 핵심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 베르캄프가 있었다. 하지만 베르캄프의 은퇴와 비에라 & 앙리 등 주축 선수들의 이적으로 벵거볼은 세스크 파브레가스 & 토마시 로시츠키 등을 통해 지공으로 변화하게 된다.[14] 실제로 베르캄프는 세컨드 스트라이커 외에도 최전방 스트라이커도 소화할 수 있기는 했지만 최전방에서는 서술한 인테르 밀란 시절 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뛸 때에 비하면 부진하였었다.[15] 이 경기에서 라이언 긱스의 그 유명한 매직 드리블이 나왔고 이 경기를 승리한 맨유는 FA컵 우승은 물론, 리그와 챔스까지 석권하면서 컨티넨탈 트레블을 달성했다.[16] 그와 발이 맞지 않았던 선수는 인테르에서 같이 뛰었던 루벤 소사 정도, 심지어 아스날에서 역대급으로 망한 프란시스 제퍼스조차 베르캄프와 함께 출전할 때는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17] 냉정하게 베르캄프의 국가대표 은퇴 이후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공격진은 이름값에 비해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소속 클럽에서는 활약해도 국가대표팀에서는 부진했다. 이후 웨슬리 스네이더와 아르연 로벤을 제외하면 베르캄프의 국가대표 활약과 대등하거나 그것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이견 없이 받을 만큼 활약한 네덜란드 공격형 미드필더나 중앙 공격수는 아직까지도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18] BBC[19] 국가대표 감독 루이 판할의 삽질도 큰 몫했지만... 이 당시 클루이베르트가 뛰던 바르사에서도 클루이베르트는 세컨톱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는데, 국대와 클럽 모두 하락세를 보이고 말았다. 이후 커리어는 정말 별 볼일 없다.[20] 냉정침착한 성격과 골 결정력에, 영화 '탑건'의 발 킬머와 닮아서.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21] 스카이스포츠[22] 브라질에게 2-0으로 뒤지고 있던 네덜란드는 베르캄프의 추격골 이후 2-2 동점을 만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으나 결국 역전골을 허용하며 탈락하게 된다[23] 이 때문에 인터 밀란 시절 언론과 꽤나 불편한 관계였다. 베르캄프는 자신이 정한 날에만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길 원했지만 이탈리아 파파라치들은 그걸 원하지 않았고 베르캄프에게 상당한 조롱과 압박을 가했다. 2시즌 만에 인터 밀란을 떠나게 된 이유 중 하나.[24] 대표팀 후배이자 라이벌 팀 주전 스트라이커도 비슷한 장점(?)이 있었다.[25] 사실 이런 음습한 기술은 VAR이 없던 시절에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을 이겨내야 했던 공격수들에게는 일종의 생존요령이기도 했다. 필리포 인자기의 오버액션과 심판에게 징징대기, 위르겐 클린스만의 다이빙 같은 것도 같은 맥락.[26] 사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닌 게 술이나 초콜릿 등 열량이 높으며 건강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기호품을 금지한 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납득하지만, 소금간을 비롯한 시즈닝도 안 돼 있는 삶은 닭가슴살을 그냥 생수와 먹게 했으며 무엇보다 영국인들의 생필품이라 할 수 있는 티까지 금지시켰으니, 선수 입장에서는 답답할만 하긴 하다.[27] 참고로 위의 저 해당 사진은 02-03시즌 프리미어 리그 27라운드(2003년 2월 9일) 일정에 치러졌던 경기이다. 그리고 장소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였으며, 베르캄프를 상대하는 선수는 아일랜드 국적의 앤디 오브라이언(Andy O'Brien)이다.[28] 판더베이크의 우상이 베르캄프이다. 성공한 덕후인 셈.[29] 대표적으로 박종윤 캐스터가 있다.[30] 공동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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