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최근 수정 시각:

연대 구분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세기 구분

20세기

21세기

22세기

밀레니엄 구분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제4천년기


1. 개요2. 정치, 경제, 사회3. 문화
3.1. 음악3.2. 디지털 방송3.3. 드라마
4. 이 시대에 시작되거나 만들어진 것들5.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6. 이 시대에 나온 유행어들7. 이 시대의 상징들
7.1.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것들
7.1.1. 한국 한정7.1.2. 세계 공통
7.2. 유행어
7.2.1. 초반(2000~ 2002)7.2.2. 중반(2003~ 2006)7.2.3. 후반(2007~ 2009)
8. 2000년대생9. 200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개요[편집]

21세기의 시작이다. 2000년에서 2009년까지를 일컫는 시기, 20세기를 마무리 짓는 시기, 제2천년기를 마무리 짓는 시기이자 제3천년기의 첫 시작점이다. 1980년대생들이 20대가 되는 시기이다.

회고해보면 20세기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니 새천년의 시작점인 이 시기에 거는 기대가 매우 컸다. 그리고 이 시기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점을 어느 정도 각인시킨 시기였다.

사실 21세기는 2001년부터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달력의 첫 시작은 AD 1년 1월1일이며 첫 번째 밀레니엄은 AD 1000년 12월31일까지였다. 100년을 한 단위로 하는 세기의 시작과 끝도 1년부터 100년이다. 이미 100년 전 20세기의 시작을 놓고 독일은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새로운 세기를 알리는 행사를 1900년에 실시한 전례가 있다. 반면 영국은 독일의 20세기 시작 선포를 인정하지 않고 1901년에 따로 거행했다. 21세기와 새로운 밀레니엄 개시를 앞두고 세계시간의 표준이 되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는 2001년이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21세기의시작 (매일경제, 매경닷컴)

이 시기에 학교에(초1~ 고3) 다녔던 세대는 1982년생(2000년도 고3)~ 2002년생(2009년도 초1) 까지이다.

2. 정치, 경제, 사회[편집]

밀레니엄을 맞이했다는 기대감과 함께 IT 버블 붕괴로 전세계적으로 주가가 대폭락하는 공포감도 생성되는 등 전 세계인들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2000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이듬해인 2001년 9.11 테러가 터지면서 세계 질서의 중대한 변화를 예고했다. 경제적으로는 호황 기조가 유지되면서 신자유주의가 절정에 달했으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세계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에 집중했었다.

(2000~2009)브릭스G7의 명목 GDP 흐름[1]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단위: 10억달러(약 1조원)

미국 전체 명목 GDP: G7

10,284

10,621

10,977

11,510

12,274

13,093

13,855

14,477

14,718

14,418

중국 전체 명목 GDP: 브릭스

1,192

1,317

1,455

1,650

1,944

2,287

2,793

3,504

4,547

5,105

일본 전체 명목 GDP: G7

4,731

4,159

3,980

4,302

4,655

4,571

4,356

4,356

4,849

5,035

독일 전체 명목 GDP: G7

1,891

1,882

2,013

2,428

2,729

2,771

2,905

3,328

3,640

3,306

프랑스 전체 명목 GDP: G7

1,372

1,383

1,505

1,851

2,126

2,207

2,327

2,666

2,937

2,700

영국 전체 명목 GDP: G7

1,496

1,485

1,623

1,877

2,221

2,324

2,486

2,858

2,709

2,217

이탈리아 전체 명목 GDP: G7

1,107

1,124

1,229

1,517

1,73

1,789

1,874

2,130

2,318

2,116

브라질 전체 명목 GDP: 브릭스

644

554

506

552

663

882

1,089

1,366

1,653

1,622

캐나다 전체 명목 GDP: G7

739

732

752

887

1,018

1,164

1,310

1,457

1,542

1,370

인도 공화국 전체 명목 GDP: 브릭스

476

493

523

618

721

834

949

1,238

1,223

1,365

러시아 전체 명목 GDP: 브릭스

259

306.

345

430

591

763

989

1,299

1,660

1,222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561

533

609

680

764

898

1,011

1,122

1,002

901

같은 시기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공화국, 중국)라 불리는 4개 국가들이 크게 약진하며 미래의 강국으로 부상했고 2000년부터 유로화를 도입한 유럽연합도 이 시기에 크게 팽창했다가 2008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에 가장 직격탄을 맞아 그 후 유로화 사태를 초래해 경제성장이 크게 위축이 되는 다음의 10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은 이 시기부터 경제성장률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신흥공업국이었던 70~90년대처럼 10년 단위로 수배씩 경제규모가 커지던 고도성장시대의 종말을 고했으며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인터넷, 핸드폰 등의 IT가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의 생활에 차츰 자리잡기 시작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래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함으로서, 2008년 초까지 민주당계 정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이 10년 간 여당으로 집권했다. 또한 2003년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하고 2004년에는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정계를 은퇴함으로서, 한국 정치를 풍미했던 삼김시대가 막을 내렸다.

2000년 6월 15일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으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의 남북교류가 제한적으로나마 이루어진 시대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인식이 동족, 통일의 대상 등으로 좋은 편이었다. 여기에 2002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 등으로 반미감정이 더해지기도 했다. 이는 1990년대 탈냉전 시대 이래 반공을 과거 독재정권의 낡은 이념으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북한과의 화해를 역사적 과제로 여겼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겠다.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과 같이 문화예술계에도 이와 같은 사회분위기가 반영되었다. 그러나 2006년 1차 핵실험 등으로 서서히 북한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기 시작해 결정적으로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면서 한국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극도의 증오와 불신이라는 정반대의 분위기로 변하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IMF 사태 이후로 취업난, 비정규직, 공무원 열풍 등 2010년대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0년대 현재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웰빙 열풍이 나타나는 등 체감경기는 2010년대보다는 상대적으로 훨씬 나았다는 평가다. 이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까지는 중국의 급성장 등으로 세계 경제가 호황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3. 문화[편집]

3.1. 음악[편집]




음악적으로는 2000년대 초반에 잠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포스트록의 열풍이 불었으나, 90년대의 그런지브릿팝등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그야말로 하나의 정형화된 음악적인 흐름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이는 다시 말하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음악들이 나타나는 시기였다고 할 수도 있다. 이 무렵부터 인디 음악이 인터넷과 기술의 발전으로 크게 성장하기 시작하여 아케이드 파이어애니멀 콜렉티브 같은 거대 그룹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흥행한 뮤지션들은 오히려 90년대에 음악적 기반을 둔 콜드플레이 같은 포스트 브릿팝 그룹들이었다.

다만 이 무렵부터 대중음악의 주류는 락을 중심으로 한 백인음악에서 흑인음악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되었다. 힙합은 본격적으로 메인스트림에 올라와 빌보드를 지배하는 장르가 되었으며, 이 시기에 성공한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Jay-Z, 칸예 웨스트, 에미넴, 아웃캐스트 등이 있다. R&B 장르의 성장 역시 두드러져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같이 소울에 기반을 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또한 산타나, 리키 마틴,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마크 앤소니, 샤키라 등의 라틴팝이 메인스트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기도 2000년대 초였다. 이후 라틴팝은 그 자체보다는 댄스음악이나 힙합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로 시작된 옛 것을 가져다가 현대식으로 조합하는 복고 열풍은 현재까지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인터넷 문화와 컴퓨터 음악의 발달에 힘입어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무렵부터는 방구석 인디 밴드라고 해도 자신들의 음악을 당시 흥했던 마이스페이스 등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 올리는 것으로 자신들을 알릴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인기를 얻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정말 엄청난 데뷔 시절 인기를 보여준 악틱 몽키즈. 또한 DAW나 신디사이저의 발전 등으로 개인이 음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됨에 따라 여러 개성있는 소규모 그룹 혹은 원맨 밴드 등이 인디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인디 신의 성장을 바탕으로 피치포크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2002년을 끝으로[2] 1세대 아이돌들이 물러간 뒤로 한동안 공백상태이던 가요계를 브라운 아이즈를 시작으로 SG 워너비, 테이 등의 미디엄 템포 발라드와 소몰이창법의 발라드, 버즈가 엄청난 인기를 이끌었다. 특히, 이 시기에 걸그룹은 그나마 남아있었던 게 쥬얼리 정도이며 아이돌 공장이라 불리우는 SM 엔터테인먼트마저 히트에 실패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열풍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2017년 히든싱어, 슈가맨 등의 프로그램으로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 같은 재평가를 얻고 있지만, 소몰이창법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가요계는 식상하다, 감정을 낭비한다 등의 지탄을 받고 있었고 매 곡마다 짜는 듯한 목소리로 대중들의 귀도 지쳐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던 2007년, 상반기엔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가 포문을 열었고, 이어서 나온 원더걸스Tell Me가 엄청난 반응과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후크송 시대를 열게 되며 이후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의 2세대 아이돌들이 발라드 가수들을 대체하면서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가 시작되었다.

인디 음악의 경우는 그야말로 흥망성쇠를 거듭한 시기로, 한창 성장하고 있던 시기에 카우치 사건으로 한번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후 2000년대 후반에 들어 2세대 그룹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인디 신 자체를 부활시키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한국 음반시장은 카세트 테이프CD음반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소리바다프루나, 당나귀로 대표되는 불법 P2P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던 2000년대 초반의 타격과 연이은 아이리버, 코원, YEPP, iPodMP3 플레이어의 공격으로, 2000년대 후반이 되면 카세트 테이프는 물론 CD로 음악 듣는 시대는 사실상 끝이 난다. 2010년 후반이 된 지금도 음반판매량이라는 이름으로 CD음반 판매량을 차트 산정의 주요 척도로 인정하고는 있지만, 1990년대의 판매량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인 경우가 많고, 몇몇 아이돌 그룹이 기록하는 음반 판매량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해당 그룹의 차트 순위를 높이기 위한 팬들의 화력지원일 뿐, 실질적으로 CD로 음악을 듣는 팬들은 몇몇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팬들 입장에서는 음원 판매량도 음반 판매량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에, 어차피 CD를 샀더라도 음원을 구입하게 되므로 굳이 귀한 CD를 개봉하여 상품성을 낮추느니 음원으로 듣는 게 훨씬 속 편하기도 하기 때문. 따라서 음반 제작사에서는 음반을 구매한 경우에만 얻을 수 있는 각종 특전(예를 들어 화보사진 카드나 보너스 트랙 같은)을 부여하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200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일본 대중음악(J팝)은 에이벡스 계열의 위세가 잠시 주춤한 사이, 2000년대 중반까지 J-힙합, J-레게 등의 음악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대표적으로 GReeeeN, FUNKY MONKEY BABYS, 케츠메이시 등의 아티스트들이 대중성을 바탕으로 장르의 지평을 넓혔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는 음반 시장의 쇠퇴, 그리고 새로운 아티스트의 부재로 인해 J팝 전반이 침체기를 맞았다.

3.2. 디지털 방송[편집]

임창정 - 소주 한 잔 SBS 인기가요 라이브 (2003.06.08)

버즈 - 가시 MBC 음악캠프 라이브 (2005.05.28)

버즈 - 겁쟁이 KBS 뮤직뱅크 라이브 (2005.03.11)[3]



스카이라이프 CF - 전인권 편(2003)

2002년 한국에서 스카이라이프지상파 방송사들이 시험방송을 끝내고 본격적인 디지털방송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하지만 방송방식을 DVB VS ATSC 논쟁때문에 시청자의 HDTV 전환시기를 놓치게 했으며 사람과셈틀을 공중분해되게 만들었다. 스카이라이프는 2002년 3월 1일에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UHD에서도 답습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HDTV의 활성화가 되지 않아(2002년 HDTV 보급률은 2%에 불과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2000년에 BS디지털이라고 위성방성을 이용한 디지털방송이 시험방송되었다. 이때부터 인텔 펜티엄4 시리즈[4]와 nVIDIA Geforce FX또는 ATi Radeon 9500의 보급으로 HD영상[5]컴퓨터로 볼수 있었고 HD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16:9모니터와 디지털방식의 TV[6]도 같이 보급이 이루어 졌다.

HD로 인한 와이드 스크린 열풍때문에 16:10모니터도 나왔을 정도이며 부작용도 생겼는데 배우의 얼굴에 잡티까지 나와서 HD방송을 위한 화장법(?)도 생겨났다. 케이블 방송도 2005년에 CJ헬로비전을 시작으로 2000년대 후반 들어 모든 사업자가 디지털 채널의 운용을 개시하였다. 2006년에 다채널 방송(MMS,Multi Mod Service(유럽에서는 Multiplex(줄여서 MUX))을 시험방송하면서 위 영상의 화질은 물건너 갔다 카더라. 휴대전화에서도 2005년도에 DMB라는 규격이 개발되어[7] 언제 어디서든지 TV를 볼수있다.

3.3. 드라마[편집]

파일:external/file2.nocutnews.co.kr/03164741000_60800030.jpg
2000년대의 한류열풍을 이끈 겨울연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 드라마들이 많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 파리의 연인, 올인, 미안하다, 사랑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 베토벤 바이러스 등이 있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은 해외로까지 수출되어 한류 열풍을 이끌기도 하였다.

케이블 방송 드라마 같은 경우 이때까지만 해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대부분의 인기 드라마는 지상파 드라마였다. 아직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 등이 활성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시청률이 30-50%에 달하는 드라마들이 여럿 나올 수 있었다.

이 때 드라마들의 특징으로는 첫째, 명대사가 많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천국의 계단)"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안에 너 있다(파리의 연인)" "똥덩어리(베토벤 바이러스)" 등이 있다.

다음으로는 특히 초중반의 멜로 드라마를 중심으로 각종 클리셰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출생의 비밀, 환생, 기억상실, 죽음, 재벌 등 다양한 클리셰들의 등장으로 주인공들은 평범하기보다는 매우 다사다난한 인생을 사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작품이 많다.[8] 이러한 클리셰들은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부각시키며 드라마에 극적인 긴장감 및 감동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드라마에 OST가 삽입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명곡이 많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음악 항목에 나와있듯 발라드 가수들이 많았던 것과도 연관이 있다. 천국의 계단보고싶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눈의 꽃, 쾌걸 춘향응급실, 베토벤 바이러스의 들리나요.. 등이 유명하다.

결론적으로 2000년대의 명작 드라마들은 주인공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명대사를 통해 감정을 풍부하고도 애절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한편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OST까지 명곡이 많았기 때문에 작품에 완성도를 더해주었다. 이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드라마는 2000년대와 같은 무거운 정통멜로보다는 잔잔한 일상을 다루거나 로맨틱 코미디와 같은 장르가 유행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4. 이 시대에 시작되거나 만들어진 것들[편집]

5.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편집]

이전 시대에 나와 지속적으로 쓰인 것들을 적을 것.

  • 고가차도: 원래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서 건설되었으며, 과거에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추앙받았으나, 2000년대부터 오히려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도시미관을 저해시킨다는 이유로 하나씩 철거되기 시작하였다.

  • 공중전화

  • 지상파 애니메이션 방송: 2000년 ~ 2004년까지는 황금시간대에 애니메이션 방영을 해 주었으나 2005년 이후 투니버스 등 케이블 애니메이션 전문채널으로 히트작이 넘어가게 된다.

  • 교련

  • 단파방송, 단파수신기

  • 노점상: 2000년대 초반까지는 길거리에 꽤 많이 보였으나[13], 세금을 내지 않고 탈세하며 장사한다는 인식,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인식, 위생 문제 등이 점차 확산이 되면서 철거되는 추세이다.

  • 도서대여점

  • 떡볶이 활동복: 2000년대까지 군대의 활동복 하면 이걸 생각했다.

  • 라디오

  • 만화 카페

  • 비둘기호: 이미 1990년대부터 장거리 편성들이 자취를 감추다가 2000년 11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정선선 구간의 비둘기호가 운행을 종료한다.

  • 빠른 생일: 2010년부터 1월생~12월생이 함께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하면서 '빠른 년생'이 사라지게 되었다.

  • 새마을호: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최고등급의 열차라는 상징성이 강했으나, KTX의 개통으로 최고 열차의 지위에서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 노후화 때문에 점점 편수가 줄어들고, 2014년 이후 ITX-새마을로 거의 대체되었다.

  • 오락실: 한국에서는 PC방의 부흥으로 인해 시망크리를 탔고, 결정적으로 오락기를 가장한 도박기계가 나오면서 완전히 몰락한다.

  • 카세트 테이프: MP3의 등장으로 쇠퇴하였다.

  • 패키지 게임: 한국에서는 온라인 게임불법 공유, 그리고 무분별한 게임잡지 번들 공급으로 인해 망해버렸고 스팀이 나오면서...

  • 프로씨름

  • 플로피 디스크

  • 유고슬라비아 몬테네그로의 탈퇴로 해체

  • 통일호: 2004년 KTX의 개통으로 완전히 몰락. 이제는 사진이나 박물관에 가서 봐야 한다.

  • CD 음반: 불법 다운로드 급증과 음원 서비스의 발달로 CD 음반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 MBC 대학가요제: 2000년대 들어 망조가 보이더니 결국 2013년 폐지 크리.

  • 음악캠프: 2005년 7월 말 카우치 노출사고 때문에 폐지 크리.

  • CRT: LCD가 나오면서 사라져갔다.

  • PC통신: 인터넷의 대중화로 급격히 쇠퇴하였다.

  • VHS: DVD의 보급 및 불법 다운로드 등으로 쇠퇴하였다.

  • 윈도우 98, 윈도우 ME: 2006년에 함께 지원이 종료되었다.

  • 콩코드: 2003년 11월 26일을 마지막으로 운항 종료.

  • 축산업협동조합, 삼림협동조합 : 2000년 7월 농협과 통합하면서 사라졌다. 현재도 일부는 축협이라는 단위를 쓰나 농협 마크로 통일되었다.

  • 서울종합터미널(호남선) : 2000년에 센트럴 시티로 전환되어졌다.

  • 호남선터미널에서 출발했던 영동선 고속버스 노선 : 2000년 7월에 경부선터미널로 이전하였다.

  • 조흥은행 / 서울은행 : 2000년대 들어서 타 은행과의 합병으로 사라졌다. 조흥은행은 신한은행과 합병되었고(2006년) 서울은행은 하나은행과 합병되었다(2002년).

6. 이 시대에 나온 유행어들[편집]

7. 이 시대의 상징들[편집]

7.1.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것들[편집]

7.1.1. 한국 한정[편집]

7.1.2. 세계 공통[편집]

7.2. 유행어[편집]

7.2.1. 초반(2000~ 2002)[편집]

7.2.2. 중반(2003~ 2006)[편집]

7.2.3. 후반(2007~ 2009)[편집]

8. 2000년대생[편집]

2000년부터 2009년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2000년을 제외하면 모두 21세기/제3천년기에 태어났다. 2017년 현재 2000년생은 고등학교 2학년[25]이고 2009년생은 초등학교 2학년이다. 2000년생의 절반 정도가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미 2000년대에 출생한 애엄마, 애아빠도 존재할 수 있다!

보통 인터넷 상에서 귀여운 세대로 불리고 있다. 2000년생들이 민증이 나온다는 기사가 나오자 모두 놀라며 시간이 빨리갔다고 할 정도. 사회적으로는 저출산 세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60만대를 유지하던 출생아수가 2001년 55만으로 확 떨어지고 2002년부터는 40만대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2020년대부터 헬게이트가 벌어질 예정이다. 특히 여성징병 문제를 놓고 2017년 현재 논란이 뜨겁다[26] 그렇다고 이 세대들이 실업률이 낮지는 않을 거라는 게 문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2000년~ 2002년생의 경우 스마트폰 이전 시대를 경험한 기억이 있는 세대이다. 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때가 바로 2000년대였고, 그들은 초등학교에서 좌측통행우리들은 1학년, 놀토를 경험했으며 아날로그 TV나 비디오테이프, 피쳐폰 같은 물품들을 사용이라도 해본 세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이들은 빠른 생일의 대상이 되는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년생들만 보더라도 그들이 갓 중학교 입학했을 즈음부터 스마트폰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2000년대 초반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2세대 아이돌인 버즈나 카라나 브라운아이드걸스같은 그룹이나 피쳐폰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2000년생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에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년도인 2010년도에 11살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이 구간의 사람들은 2000년대 초반생들과 달리 기억이 없을 것이다.

또 패션으로는 잠옷이나 내의, 그리고 속옷을 많이 입는 세대이기도 한데 주로 예쁜 잠옷이나 예쁜 내의, 또한 예쁜 속옷들을 많이 입었고, 또 드레스도 제법 입었고 잠바나 다채로운 교복도 많이 입어 본 세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와이셔츠나 청바지 등도 많이 입어본 세대이기도 하다.

2000년에 센트럴 시티가 개장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이전생들이 경험해봤던 호남선터미널 2층 짜리 가건물 구경을 해봤던 적이 없었던 세대들이기도 하다. 센트럴 시티가 생기기 전까지 호남선터미널은 2층 짜리 가건물 신세였던지라 선대에 만들어졌던 크고 웅장했던 경부선터미널에 비해서 작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는 말이 많았다. 그리고 영동선이 그 터미널에서 운행하였다가 경부선으로 이전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영동선 노선도 경부선에서 출발한다는 것만 기억한다.

2004년 7월생들을 기준으로 하면 이전생들에 비해서 이명박 시장 시절 서울 시내버스 대개편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전생들이 봤을만했던 서울 시내버스의 한 자리 및 두 자리 번호(1,2,3번 등)을 직접 봤던 적도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 이전인 2003년 7월생들은 청계고가 철거 이후에 태어나고 2005년생들을 기준으로 청계천이 복원되었기 때문에 청계고가에 대한 기억도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정치적으로는 김대중 정부 때 2000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2000년생들을 기준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접하게 된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게 되면서 보수성향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민주당 출신 정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2000년대생의 경우에도 진보성향이 강하지만, 제법 탈민족주의화로 인해서 진보성향이 이전보다는 좀 약하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2003년~ 2006년생들의 경우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를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시절 좌측통행우측통행으로 바뀌었고, 놀토가 사라졌으며[27] 우리들은 1학년도 없어졌다[28]

2000년대 후반에 태어난 2007년~ 2009년생들은 2000년대 초반생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태어난 세대들로 아날로그 시대의 끝에 태어났기에 이들은 아예 아날로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때는 완전히 디지털, 스마트폰 시대로 바뀐 뒤이다.

중고생 대부분은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여자친구 등의 그룹에 열광하고 있으며 하이큐!!, 오소마츠상, 문호 스트레이 독스, 러브라이브! 등의 애니메이션도 시청하였던 편이다.

9. 2000년대에 들어가는 해[편집]


[1] (2000~200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2]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H.O.T.는 2001년 2월 해체, 젝스키스 2000년 5월 해체했다. 1세대 걸그룹으로 불리는 핑클과 S.E.S의 경우 S.E.S는 2002년 12월 19일 해체했고, 핑클은 공식 해체는 하지 않았지만 2002년 이후 완전체로서의 활동이 전무해 사실상 해체와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3] 뮤직뱅크는 2007년에 HD화가 되었다.[4] 팬티엄 3에서도 메모리빨로 재생된다는 소리가 있다.[5] 이때는 HD영상을 제대로 돌리기가 무리였고 대다수 영상들은 아날로그 방송을 녹화하거나 480p급으로 다운스케일링을 해서 시청하였다. 이건 당시 나왔던 DVD디코더의 영향도 있다. 본격적인 HD동영상 열기는 NVIDIA Geforce 6시리즈와 ATi Radeon R400계열의 보급, YouTube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리고 컴퓨터의 성능상 720p동영상만 재생이 가능했지만 2006년쯤 인텔 코어2 시리즈가 출시되자 1080p동영상도 재생할수 있었다.[6] 디지털방식 말고도 HDReady라고 디지털방송은 지원하지 않지만 HD영상은 지원하는 TV도 판매되었다.[7] 개발까진 아니고 DAB를 뜯어 고친거다.[8] 당장 위에 언급된 대표작들만 봐도 베토벤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해당 클리셰가 하나 이상씩은 꼭 들어가 있다. 특히 천국의 계단,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이러한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드라마다.[9] 2002년 현대자동차대우버스에서 처음으로 출시하였다. (저상 슈퍼 에어로시티, BS120CN)[10] 28일 후가 최초.[11] 물론 정액제는 있었다. 문서참고.[12] 2년 전인 1998년 안산 경원여객에서 먼저 시험 도입한 적이 있었으나, 2000년 서울시에서 대대적인 보급을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13] 2005년까지 방송되는 드라마에서는 노점상에서 음식먹는 장면이 꽤 많이 보였다.[14] 통신사 한솔엠닷컴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와 더불어서 2000년대 초반에 대유행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했던 배우 정우성의 명대사로, 음료수 2% 부족할 때의 광고카피다.[15] 물론, 음악 그룹의 개념은 1990년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걸그룹, 보이그룹의 단어가 나온 건 2000년대다.[16] 서양에선 보이밴드라 하지만 한국에선 보이그룹이라고 칭한다.[17] 삼각관계를 다룬 한솔엠닷컴 통신사 CF에서 나온 광고카피인데, 공전절후의 대히트를 친 차태현김민희의 명대사였다.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유행어로 부족하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패러디를 했을 정도로 유명했었다.[18] 실제로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대한민국 역사상 최다 표차라는 대참패를 당한다.[19] 일본 중년 여성팬들이 배용준을 부르는 호칭.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배용준의 인기도 상승했고, 특히 겨울연가의 주 시청층이었던 중년 여성들이 배용준을 많이 좋아했는데 이들이 배용준의 '용'에 일본어 극존칭 표현인 '사마'를 붙여 '욘사마'라고 불렀다. 이밖에 이병헌은 '뵨사마', 최지우는 '지우히메'라 불렸다.[20] 다만, 1990년대에 온라인 게임 리니지포트리스가 대유행할때도 썼던 단어라서 애매한 감이 있다.[21] 피처폰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HD 해상도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2012년 경부터다.[22] 본격적으로 닌텐도의 인기가 식기 시작한 것은 닌텐도 3DSWii U 출시 이후인 2012년부터다.[23] 요금제는 거의 홍보를 안했다. 자살 사례도 있었을정도(...) 이것때문에 알요금제같은 청소년요금제에서는 데이터 통화료가 포함되서 소진된다.[24] 삼각관계를 다룬 한솔엠닷컴 통신사 CF에서 나온 카피인데, 공전절후의 대히트를 친 차태현김민희의 명대사였다.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유행어로 부족하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패러디를 했을 정도로 유명했었다.[25] 빠른년생 한정으로는 고3으로 이미 민증이 나온 고등학생들이 존재한다.[26] 이 문제는 박사모 혹은 일베의 농간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군대 규모 축소 자체는 불가피하기에 언급이 될 수 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단 모병제대신에 여성징병이 논란이 된 것에는 20대까지 느낀 남자들의 역차별 문제도 일부 있을 수 있다.[27] 그러나 정확히는 2004년생(11년 당시 초1)까지 놀토를 경험하였다.[28] 정확히는 2005년생까지 우리들은 1학년이 존재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