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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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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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21세기

22세기

밀레니엄 구분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제4천년기


1. 개요2. 정치, 경제, 사회3. 문화
3.1. 음악3.2. 디지털 방송3.3. 드라마3.4. 패션3.5. 영화3.6. 예능3.7. 만화, 애니메이션3.8. 게임
4. 이 시대에 시작되거나 만들어진 것들5.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6. 이 시대에 나온 유행어들7. 이 시대의 상징들
7.1.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것들
7.1.1. 한국 한정7.1.2. 세계 공통
7.2. 유행어
7.2.1. 초반(2000 - 2002)7.2.2. 중반(2003 - 2006)7.2.3. 후반(2007 - 2009)
8. 2000년대생9. 200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개요[편집]

21세기, 제3천년기의 시작이다. 2000년에서 2009년까지이다.

참고로 21세기는 2001년부터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달력의 첫 시작은 AD 1년 1월1일이며 였다. 100년을 한 단위로 하는 세기의 시작과 끝도 1년부터 100년이다. 이미 100년 전 20세기의 시작을 놓고 독일은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새로운 세기를 알리는 행사를 1900년에 실시한 전례가 있다. 반면 영국은 독일의 20세기 시작 선포를 인정하지 않고 1901년에 따로 거행했다. 21세기와 새로운 밀레니엄 개시를 앞두고 세계시간의 표준이 되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는 2001년이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1] [네이버 지식백과] 21세기의시작 (매일경제, 매경닷컴)

이 시기에 학교에(초1~ 고3) 다녔던 세대는 1982년생(2000년도 고3)~ 2002년생 부터이다.

2. 정치, 경제, 사회[편집]

밀레니엄을 맞이했다는 기대감과 함께 IT 버블 붕괴로 전세계적으로 주가가 대폭락하는 공포감도 생성되는 등 전 세계인들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2000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이듬해인 2001년 9.11 테러가 터지면서 세계 질서의 중대한 변화를 예고했다. 경제적으로는 호황 기조가 유지되면서 신자유주의가 절정에 달했으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세계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에 집중했었다.

(2000~2009)브릭스G7의 명목 GDP 흐름[2]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단위: 10억달러(약 1조원)

미국 전체 명목 GDP: G7

10,284

10,621

10,977

11,510

12,274

13,093

13,855

14,477

14,718

14,418

중국 전체 명목 GDP: 브릭스

1,192

1,317

1,455

1,650

1,944

2,287

2,793

3,504

4,547

5,105

일본 전체 명목 GDP: G7

4,731

4,159

3,980

4,302

4,655

4,571

4,356

4,356

4,849

5,035

독일 전체 명목 GDP: G7

1,891

1,882

2,013

2,428

2,729

2,771

2,905

3,328

3,640

3,306

프랑스 전체 명목 GDP: G7

1,372

1,383

1,505

1,851

2,126

2,207

2,327

2,666

2,937

2,700

영국 전체 명목 GDP: G7

1,496

1,485

1,623

1,877

2,221

2,324

2,486

2,858

2,709

2,217

이탈리아 전체 명목 GDP: G7

1,107

1,124

1,229

1,517

1,73

1,789

1,874

2,130

2,318

2,116

브라질 전체 명목 GDP: 브릭스

644

554

506

552

663

882

1,089

1,366

1,653

1,622

캐나다 전체 명목 GDP: G7

739

732

752

887

1,018

1,164

1,310

1,457

1,542

1,370

인도 전체 명목 GDP: 브릭스

476

493

523

618

721

834

949

1,238

1,223

1,365

러시아 전체 명목 GDP: 브릭스

259

306.

345

430

591

763

989

1,299

1,660

1,222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561

533

609

680

764

898

1,011

1,122

1,002

901

같은 시기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라 불리는 4개 국가들이 크게 약진하며 미래의 강국으로 부상했고 2000년부터 유로화를 도입한 유럽연합도 이 시기에 크게 팽창했다가 2008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에 가장 직격탄을 맞아 그 후 유로화 사태를 초래해 경제성장이 크게 위축이 되는 다음의 10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은 이 시기부터 경제성장률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신흥공업국이었던 70~90년대처럼 10년 단위로 수배씩 경제규모가 커지던 고도성장시대의 종말을 고했으며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인터넷, 핸드폰 등의 IT가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의 생활에 차츰 자리잡기 시작했다. 핸드폰의 경우 스마트폰이 등장 및 상용화되기 이전 시기로서 오늘날 피쳐폰이라 불리는 형태의 폴더폰, 슬라이드폰 등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2010년대와는 구별되는 2000년대 고유의 풍경 중 하나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래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함으로서, 2008년 초까지 민주당계 정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이 10년 간 여당으로 집권했다. 또한 2003년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하고 2004년에는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정계를 은퇴함으로서, 한국 정치를 풍미했던 삼김시대가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이 10년간 집권했던 시기로서 특히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1980년대 운동권 출신 386세대들이 17대 총선을 계기로 제도권 중앙정계에 대거 진출하였고 이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 환수,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 북한과의 화해, 협력 등 1980년대에 형성된 자신들의 이념을 2000년대의 현실 정치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시도하였으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은 현실 정치의 벽에 막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한편 2004년 17대 총선에서 진보정당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최초의 원내 진출을 이루어내는 등 이전까지 강력한 사회적 반공 분위기 속에 기를 펴지 못 했던 진보세력이 제도권 정치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및 386세대 정치인들은 부동산 정책 실패, 양극화의 심화 등으로 경제 문제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2007년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이 500만표가 넘는 표차로 승리하면서 2000년대 후반의 정치 지형은 보수 강세로 다시 변하게 된다. 보수 강세 외에 2000년대 후반의 중요한 정치적 흐름이 한가지 더 있는데 바로 정치 불신이다. 17대 대선에서 총 투표율은 63%에 그쳤으며 특히 20대의투표율은 40%대에 그쳤다. 2000년대 초반의 남북정상회담, 반미 열풍과 노무현 열풍 등 새로운 시대를 열망했던 한국사회의 열정은 오래 지나지 않아 2000년대 후반경제대통령이라는 현실을 내세운 이명박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와 냉소적인 정치불신으로 차갑게 식고 만다.

2000년 6월 15일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으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의 남북교류가 제한적으로나마 이루어진 시대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인식이 동족, 통일의 대상 등으로 좋은 편이었다. 여기에 2002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 등으로 반미감정이 더해지기도 했다. 이는 1990년대 탈냉전 시대 이래 반공을 과거 독재정권의 낡은 이념으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북한과의 화해를 역사적 과제로 여겼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겠다.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과 같이 문화예술계에도 이와 같은 사회분위기가 반영되었다. 그러나 2006년 1차 핵실험 등으로 서서히 북한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기 시작해 결정적으로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면서 한국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극도의 증오와 불신이라는 정반대의 분위기로 변하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IMF 사태 이후로 취업난, 비정규직, 공무원 열풍 등 2010년대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0년대 현재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웰빙 열풍이 나타나는 등 체감경기는 2010년대보다는 상대적으로 훨씬 나았다는 평가다. 이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까지는 중국의 급성장 등으로 세계 경제가 호황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의 도입으로 인해 IMF 사태 이전에 비해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어 OECD 1위 수준의 높은 자살률 문제 등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2000년대의 정치인 김근태는 이를 두고 ''패자부활전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고 한탄하기도 하였다.

2002년 동티모르가 독립을 했다. 21세기 최초 탄생한 국가다. 다음으로 2006년에 독립한 몬테네그로, 그리고 2년 후 독립한 코소보가 있다.

3. 문화[편집]

3.1. 음악[편집]



인터넷의 발달과 그로인한 음악시장의 체질개선

음악적으로는 2000년대 에 잠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포스트록의 열풍이 불었으나, 90년대의 그런지브릿팝등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그야말로 하나의 정형화된 음악적인 흐름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이는 다시 말하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음악들이 나타나는 시기였다고 할 수도 있다. 이 무렵부터 인디 음악이 인터넷과 기술의 발전으로 크게 성장하기 시작하여 아케이드 파이어애니멀 콜렉티브 같은 거대 그룹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흥행한 뮤지션들은 오히려 90년대에 음악적 기반을 둔 콜드플레이 같은 포스트 브릿팝 그룹들이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최고의 아이돌로서 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다. 그녀의 라이벌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역시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아메리칸 아이돌 초대 우승자인 켈리 클락슨은 2000년대 중반을 완전히 휩쓸며 메가히트곡들을 배출해냈다. 또한 혜성처럼 나타난 에이브릴 라빈은 독보적인 컨셉으로 2000년대 초중반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미지 변신 후에도 큰 인기를 얻으며 2000년대를 지배했다.

다만 이 무렵부터 대중음악의 주류는 락을 중심으로 한 백인음악에서 흑인음악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되었다. 솔로데뷔를 한 비욘세는 말그대로 '아이콘'이 되었으며 2000년대 초반 암흑기를 겪었던 머라이어 캐리는 힙합과 R&B를 적극적으로 결합시켜 다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199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한 힙합은 여전히 메인스트림에 건재했으며 빌보드를 지배했다. 이 시기에 성공한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Jay-Z, 칸예 웨스트, 에미넴, 아웃캐스트 등이 있다. 또한 장르에 있어서도 00년대 후반에 들어서 기존의 올드 스쿨, 붐뱁 장르가 아닌 사우스 힙합을 기반으로 한 트랩뮤직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R&B 장르의 성장 역시 두드러져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같이 소울에 기반을 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또한 산타나, 리키 마틴,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마크 앤소니, 샤키라 등의 라틴팝이 메인스트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기도 2000년대 였다. 이후 라틴팝은 그 자체보다는 댄스음악이나 힙합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로 시작된 옛 것을 가져다가 현대식으로 조합하는 복고 열풍은 현재까지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인터넷 문화와 컴퓨터 음악의 발달에 힘입어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무렵부터는 방구석 인디 밴드라고 해도 자신들의 음악을 당시 흥했던 마이스페이스 등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 올리는 것으로 자신들을 알릴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인기를 얻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정말 엄청난 데뷔 시절 인기를 보여준 악틱 몽키즈. 또한 DAW나 신디사이저의 발전 등으로 개인이 음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됨에 따라 여러 개성있는 소규모 그룹 혹은 원맨 밴드 등이 인디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인디 신의 성장을 바탕으로 피치포크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만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1990년대에 정점을 찍었던 피지컬 앨범시장이 급격히 축소되기 시작한다. 1990년대엔 자주 나오던 3천만장 돌파앨범도 단 1개밖에 없었다. 2000년대 후반엔 본격적으로 디지털 시장이 발달하기 시작하고 유튜브도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2010년대 초반의 디지털 시장 황금기의 기반이 다져진 시기이기도 하다.[3]



한국에서는 2002년을 끝으로[4] 1세대 아이돌들이 물러가게 되었고 한동안 공백상태이던 가요계를 브라운 아이즈를 시작으로 SG 워너비, 테이 등의 미디엄 템포 발라드와 소몰이창법의 발라드, 버즈를 위시로 한 비주얼계 락발라드 장르들이 엄청난 인기를 이끌었다.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은 해체 또는 침체기를 맞았지만 2000년대 초반은 여자 솔로 가수들의 전성기였으며 장나라, BoA, 이효리, 이수영등이 전성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그나마 남자 아이돌들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등이 데뷔하면서 큰 인기를 얻고 명맥을 이어갔지만 이 시기에 걸그룹 시장은 말 그대로 초토화였다. 그나마 남아있었던 게 쥬얼리 정도이며 아이돌 공장이라 불리우는 SM 엔터테인먼트마저 걸그룹 히트에 연달아 실패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열풍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2017년 히든싱어, 슈가맨 등의 프로그램으로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 같은 추억보정을 얻고 있지만 소몰이창법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가요계는 식상하다, 감정을 낭비한다 등의 지탄을 받고 있었고 매 곡마다 짜는 듯한 목소리로 대중들의 귀도 지쳐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던 2007년, 상반기엔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가 포문을 열었고, 이어서 나온 원더걸스Tell Me가 엄청난 반응과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후크송 시대를 열게 되며 이후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의 2세대 아이돌들이 발라드, 락발라드 가수들을 대체하면서 본격적인 2차 아이돌 전성시대가 00년대 후반경부터 시작되었다.

인디 음악의 경우는 그야말로 흥망성쇠를 거듭한 시기로, 한창 성장하고 있던 시기에 카우치 사건으로 한번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후 2000년대 에 들어 2세대 그룹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인디 신 자체를 부활시키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한국 음반시장은 카세트 테이프CD음반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소리바다프루나, 당나귀로 대표되는 불법 P2P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던 2000년대 의 타격과 연이은 아이리버, 코원, YEPP, iPodMP3 플레이어의 공격으로, 2000년대 이 되면 카세트 테이프는 물론 CD로 음악 듣는 시대는 사실상 끝이 난다. 물론 2020년대를 향해가는 지금도 CD 판매고를 차트 산정의 주요 척도로써 인정하고는 있지만, 1990년대의 판매량에 비하면 무시해도 될 수준인 경우가 많고, 몇몇 아이돌 그룹이 기록하는 음반 판매량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해당 그룹의 차트 순위를 높이기 위한 팬들의 화력지원일 뿐, 실질적으로 CD로 음악을 듣는 팬들은 몇몇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팬들 입장에서는 음원 판매량도 음반 판매량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에, 어차피 CD를 샀더라도 음원을 구입하게 되므로 굳이 귀한 CD를 개봉하여 상품성을 낮추느니 음원으로 듣는 게 훨씬 속 편하기도 하기 때문. 따라서 음반 제작사에서는 음반을 구매한 경우에만 얻을 수 있는 각종 특전(예를 들어 화보사진 카드나 보너스 트랙 같은)을 부여하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200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일본 대중음악(J팝)은 에이벡스 계열의 위세가 잠시 주춤한 사이, 2000년대 중반까지 J-힙합, J-레게 등의 음악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대표적으로 GReeeeN, FUNKY MONKEY BABYS, 케츠메이시 등의 아티스트들이 대중성을 바탕으로 장르의 지평을 넓혔다. 그러나 2000년대 에는 음반 시장의 쇠퇴, 그리고 새로운 아티스트의 부재로 인해 J팝 전반이 침체기를 맞았다.

3.2. 디지털 방송[편집]


임창정 - 소주 한 잔 SBS 인기가요 라이브 (2003.06.08)





버즈 - 가시 MBC 음악캠프 라이브 (2005.05.28)버즈 - 겁쟁이 KBS 뮤직뱅크 라이브 (2005.03.11)[5]


스카이라이프 CF - 전인권 편(2003)

2002년 한국에서 스카이라이프지상파 방송사들이 시험방송을 끝내고 본격적인 디지털방송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하지만 방송방식을 DVB VS ATSC 논쟁때문에 시청자의 HDTV 전환시기를 놓치게 했으며 사람과셈틀을 공중분해되게 만들었다. 스카이라이프는 2002년 3월 1일에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UHD에서도 답습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HDTV의 활성화가 되지 않아(2002년 HDTV 보급률은 2%에 불과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2000년에 BS디지털이라고 위성방성을 이용한 디지털방송이 시험방송되었다. 이때부터 인텔 펜티엄4 시리즈[6]와 nVIDIA Geforce FX또는 ATi Radeon 9500의 보급으로 HD영상[7]컴퓨터로 볼수 있었고 HD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16:9모니터와 디지털방식의 TV[8]도 같이 보급이 이루어 졌다.

HD로 인한 와이드 스크린 열풍때문에 16:10모니터도 나왔을 정도이며 부작용도 생겼는데 배우의 얼굴에 잡티까지 나와서 HD방송을 위한 화장법(?)도 생겨났다. 케이블 방송도 2005년에 CJ헬로비전을 시작으로 2000년대 후반 들어 모든 사업자가 디지털 채널의 운용을 개시하였다. 2006년에 다채널방송(MMS)[9]을 시험방송하면서 위 영상의 화질은 물건너 갔다 카더라. 휴대전화에서도 2005년도에 DMB라는 규격이 개발되어[10] 언제 어디서든지 TV를 볼수있다.

3.3. 드라마[편집]

파일:external/file2.nocutnews.co.kr/03164741000_60800030.jpg
2000년대의 한류열풍을 이끈 겨울연가
지상파 정통 멜로의 전성기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 드라마들이 많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겨울연가, 올인, 천국의 계단, 파리의 연인, 미안하다, 사랑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 쾌걸춘향, 베토벤 바이러스 등이 있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은 해외로까지 수출되어 한류 열풍을 이끌기도 하였다.

케이블 방송 드라마 같은 경우 이때까지만 해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대부분의 인기 드라마는 지상파 드라마였다. 아직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 등이 활성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시청률이 30-50%에 달하는 드라마들이 여럿 나올 수 있었다.

이 때 드라마들의 특징으로는 첫째, 명대사가 많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천국의 계단)"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안에 너 있다(파리의 연인)" "애기야(파리의 연인)" 등이 있다.

다음으로는 특히 초중반의 멜로 드라마를 중심으로 주인공들이 평범하기보다는 특별하고 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 환생, 기억상실, 죽음, 재벌, 악역의 음모로 인한 이별 등 주인공들은 평범하기보다는 매우 다사다난한 인생을 사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작품이 많다.[11] 이러한 극적인 스토리 전개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부각시키며 드라마에 극적인 긴장감 및 감동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드라마에 OST가 삽입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명곡이 많았다는 특징이 있다. 천국의 계단보고싶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눈의 꽃, 쾌걸 춘향응급실, 베토벤 바이러스의 들리나요.. 등이 유명하다.

결론적으로 2000년대의 명작 드라마들은 주인공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명대사를 통해 감정을 풍부하고도 애절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한편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OST까지 명곡이 많았기 때문에 작품에 완성도를 더해주었다. 이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드라마는 2000년대와 같은 무거운 정통멜로보다는 잔잔한 일상을 다루거나 로맨틱 코미디와 같은 장르가 유행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3.4. 패션[편집]

3.5. 영화[편집]

3.6. 예능[편집]

3.7. 만화, 애니메이션[편집]

대부분의 사람들이 90년대와 이시대를 일본 애니 최후의 전성기로 기억한다

3.8. 게임[편집]

2004년 E3 당시 닌텐도 DS 발표영상


닌텐도의 경우 이 시대 부활했고 이시대에 출시된 에 비해 저평가를 받아 왔던 시대였고, 마이크로소프트엑스박스 시리즈엑스박스 / 엑스박스 360이 등장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소니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경우 초반부의 전성기중후반의 암흑기를 동시에 겪었던 시대다.

4. 이 시대에 시작되거나 만들어진 것들[편집]

5.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편집]

이전 시대에 나와 지속적으로 쓰인 것들을 적을 것.

  • 고가차도: 원래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서 건설되었으며, 과거에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추앙받았으나, 2000년대부터 오히려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도시미관을 저해시킨다는 이유로 하나씩 철거되기 시작하였다.

  • 공중전화: 2000년대까지는 심심치 않게 사용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편이긴 했으나 2010년대 이후론 완전히 쇠퇴하였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긴 하다

  • 지상파 애니메이션 방송: 2000년 ~ 2004년까지는 황금시간대에 애니메이션 방영을 해 주었으나 2005년 이후 투니버스 등 케이블 애니메이션 전문채널으로 히트작이 넘어가게 된다.

  • 교련

  • 단파방송, 단파수신기

  • 노점상: 2000년대 초반까지는 길거리에 꽤 많이 보였으나[17], 세금을 내지 않고 탈세하며 장사한다는 인식,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인식, 위생 문제 등이 점차 확산이 되면서 철거되는 추세이다.

  • 도서대여점 : 만화책과 (인터넷 소설, 장르소설 위주의 각종) 소설, 비디오와 DVD가 공존하던 도서 대여점은 2000년대의 상징과 같은 것이 되었다.

  • 떡볶이 활동복: 2000년대까지 군대의 활동복 하면 이걸 생각했다.

  • 라디오

  • 만화 카페

  • 비둘기호: 이미 1990년대부터 장거리 편성들이 자취를 감추다가 2000년 11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정선선 구간의 비둘기호가 운행을 종료한다.

  • 빠른 생일: 2010년부터 1월생~12월생이 함께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하면서 '빠른 년생'이 사라지게 되었다.

  • 새마을호: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최고등급의 열차라는 상징성이 강했으나, KTX의 개통으로 최고 열차의 지위에서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 노후화 때문에 점점 편수가 줄어들고, 2014년 이후 ITX-새마을로 거의 대체되었다. 그리고 2018년 5월에는 완전히 퇴쇄하였다.

  • 오락실: 한국에서는 PC방의 부흥으로 인해 시망크리를 탔고, 결정적으로 오락기를 가장한 도박기계가 나오면서 완전히 몰락한다.

  • 카세트 테이프: MP3의 등장으로 쇠퇴하였다.

  • 패키지 게임: 한국 한정으로 [18] 온라인 게임불법 공유, 그리고 무분별한 게임잡지 번들 공급으로 인해 망했고 스팀이 나오면서...

  • 프로씨름

  • 플로피 디스크

  • 유고슬라비아 몬테네그로의 탈퇴로 해체

  • 통일호: 2004년 KTX의 개통으로 완전히 폐지. 이제는 사진이나 박물관에 가서 봐야 한다.

  • CD 음반: 불법 다운로드 급증과 음원 서비스의 발달로 CD 음반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 MBC 대학가요제: 2000년대 들어 망조가 보이더니 결국 2013년 폐지 크리.

  • 음악캠프: 2005년 7월 말 카우치 노출사고 때문에 폐지 크리.

  • CRT: LCD가 나오면서 사라져갔다.

  • PC통신: 인터넷의 대중화로 급격히 쇠퇴하였다.

  • VHS: DVD의 보급 및 불법 다운로드 등으로 쇠퇴하였다.

  • 윈도우 95, 윈도우 98, 윈도우 ME: 2006년에 함께 지원이 종료되었다.

  • 콩코드: 2003년 11월 26일을 마지막으로 운항 종료.

  • 축산업협동조합, 삼림협동조합 : 2000년 7월 농협과 통합하면서 사라졌다. 현재도 일부는 축협이라는 단위를 쓰나 농협 마크로 통일되었다.

  • 서울종합터미널(호남선) : 2000년에 센트럴 시티로 전환되었다.

  • 호남선터미널에서 출발했던 영동선 고속버스 노선 : 2000년 7월에 경부선터미널로 이전하였다.

  • 조흥은행 / 서울은행 / 주택은행 : 2000년대 들어서 타 은행과의 합병으로 사라졌다. 조흥은행은 신한은행과 합병되었고(2006년) 서울은행은 하나은행과 합병되었고(2002년) 주택은행은 국민은행과 합병되었다(2002년). 주택은행의 주택예금과 복권사업은 국민은행으로 이관되었다.[19]

  • 초저항 : 철도박물관에 정태보존중인 대한민국 철도청의 1x01편성이 1999년에 퇴역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울지하철공사(現서울교통공사)의 초저항도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VVVF 전동차로 대체되면서 사라졌다.

  • 서울특별시 시내버스(2004년 7월 개편 이전) : 2004년 7월 1일 대중교통 개편화에 따라 입석, 좌석버스가 폐지되고 간선, 지선, 광역, 순환버스로 전환되었다.

  • 서울 - 경기, 서울 - 인천 시내버스 시계외요금(입석버스 기준) : 2004년 7월 1일부로 전면폐지되었다.

6. 이 시대에 나온 유행어들[편집]

7. 이 시대의 상징들[편집]

7.1.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것들[편집]

7.1.1. 한국 한정[편집]

  • 스타크래프트: 2000년대의 상징 그 자체이며 이 게임 덕분에 e스포츠프로게이머가 생겨났으며 게임 자체는 1998년 3월 31일에 나왔으나,[26] 2000년대 들어서 전성기를 누렸다.

  • 박지성: 박지성이 맨유에서 활약하던 시절이다.

  • 버즈: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이 채 안되는 짧은 전성기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인기로 당시 10대들의 우상으로 부상했다.

  • 리니지 - 리니지 2: 리니지는 1998년에 나와서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고, 이후 2003년 10월에 정식 상용화된 속편인 리니지 2로 2000년대 중반 온라인 게임 시장을 호령했다.

  • 2002 한일 월드컵 - 태극전사들의 첫 FIFA 월드컵 4강 진출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4LEAF

  • 개그 콘서트: 1999년 9월 4일 첫방송

  • 메이플스토리: 2003년부터 정식 서비스된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간 검색어 순위 10위 이내에 자주 등재될 정도로 대표적인 국산 2D MMORPG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 바람의 나라

  • 노스페이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전국적으로 제2의 교복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 논스톱 시리즈: 2000년 5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방영했던 청춘 시트콤 시리즈.

  • 네이트온

  • 대장금: 2003~2004년 사이에 방영된 사극 드라마로, 평균 시청률 40%를 넘은 대히트작.

  • 버디버디: 2000년 1월에 처음 서비스된 이래로 훗날 다른 경쟁사 메신저의 영향력이 커지기 전까지는 한때 독보적인 인스턴트 메신저였다.

  • 반미

  • 피처폰: 피처폰의 일종인 폴더형 휴대폰이 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다면, 또 다른 종류인 슬라이드형은 2000년대 중반에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후반에 터치폰이, 2010년대 이후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면서 현재 사용자는 많이 줄었지만 공부에 전념하기 위한 학생들이 임시 기기로 사용하는 모습이나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모습은 간간히 볼 수 있다.[27]

  • 싸이월드

  • 세이클럽

  • 아이러브스쿨

  • 야후 - 야후꾸러기: 당시에는 네이버의 쥬니어네이버와 경쟁을 치렀으나, 2012년 12월 31일부로 아후코리아가 폐쇄되었다.

  • 엽기

  • 엽기송

  • 엽기토끼: 2000년에 플래시 애니메이션인 마시마로의 숲을 통해 알려진 이후로 본명보단 엽기토끼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 외계어

  • 웰빙

  • Windows 98 SE: 1999년 10월에 시작된 국민PC의 보급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널리 사용되었던 OS.

  • Windows 2000: 기업용 및 서버용에 많이 쓰였던 OS. 반 년 뒤에 나온 Windows Me의 혹평으로 인해 가정용으로도 사용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 Windows XP

  • 소몰이창법

  • SG 워너비

  • 장미가족의 태그교실

  • 조폭 코미디

  • 졸라맨: 2000년 엽기토끼와 함께 어도비 플래시로 제작된 웹 애니메이션 중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중 하나.

  • 판타지 개그

  • 패밀리가 떴다

  • X맨을 찾아라

  • 패밀리 레스토랑: 경양식집의 후계자로 보다 다양한 메뉴와 훨씬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2008년 경제 위기로 쇠퇴했다.

  • 포트리스 2 블루 아케이드

  • 포트리스3 패왕전

  • 플래시사이트

  • 태권브이 활동복: 물론 얼마 안 가 떡볶이로 다시 교체되기는 했다.

  • 원더걸스 텔미 열풍

  • 투니버스(2000년부터 2010년까지):투니버스에서 방영해준 소위 추억의 애니들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2000년대초반생들에게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 햇볕정책

  • 허무개그

  • 허무송

  • 힐리스: 2003년부터 반짝 인기 상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 지상파 DMB: 2005년 12월 개통 이후로 전철 탑승객들이 대부분 지상파 DMB를 감상하는 진풍경으로 바꾸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맡고 있는 중.

  • PMP: 2002년에 처음 등장한 이후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까지 동영상 감상용 플레이어로 많이 사용된 휴대용 전자 기기.

  • 닌텐도 DS: 현재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기가 식었지만 2006년 7월 한국닌텐도의 공식 출범 이후로 인기를 끌기 시작해 90년대생 ~ 2000년대 초반생들에게는 휴대용 게임기의 대명사가 되었다.[28]

  •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 닌텐도 DS만큼 대중적이진 않았지만 2007년 4월 가격 인하 발표 덕분에 닌텐도 DS와의 가격 차이가 크게 줄어들어 한때 고사양 휴대용 게임기의 대명사로 거듭나기도 했었다.[29]

  • 플레이스테이션 2: 일반 가정용뿐만 아니라 업소용으로도 인기가 많았던 게임기이자 거치형 콘솔 게임기로써는 마지막 리즈시절이었다.

  • WAP: 물론 비싼요금때문에 사회문제가 많았다.[30] 하지만 중, 후반부터 범국민 데이터 요금제라던가 무게타라던가 프리존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는 쓸만해졌다.

  • Fimm 240 무제한 프로모션/june(Data) 무제한 프로모션: 그 당시 스마트폰사용자들에겐 상징과도 같은 요금제였다.

  • KTF: 원래 1997년에 창립된 한국통신프리텔로 출발했던게 2001년 5월부터 사명이 변경되어 2009년 6월 KT에 흡수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7.1.2. 세계 공통[편집]

7.2. 유행어[편집]

7.2.1. 초반(2000 - 2002)[편집]

7.2.2. 중반(2003 - 2006)[편집]

7.2.3. 후반(2007 - 2009)[편집]

8. 2000년대생[편집]

2000년부터 200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또한 이들을 M세대라하며 it업게에서는 Z세대라고 한다.

사회적으로는 저출산 시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60만대를 유지하던 출생아수가 즈믄둥이로 불리는 2000년을 정점으로 2001년에는 55]만으로 확 떨어지고, 2002년부터는 40만대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32] 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2020년대부터 인구 절벽으로 헬게이트가 벌어질 예정이다. 때문에 이 세대들이 일본같은 사례처럼 인구 감소로 실업률이 낮아지지는 않을까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사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2020년대 중후반에는[33] 많은 노동이 자동화되어 일자리가 더 부족해질 수도 있고 자동화가 의외로 그리 많은 노동을 대체하지는 않아서 줄어든 인구 덕에 취업이 원활해질 수도 있고 혹은 실제 역사처럼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일자리들이 쏟아질 수도 있다.

2000년대생들은 이들이 유치원. 초등학생이던 2010년대에 들어 급격한 디지털화와 교육정책 등의 변화로 유년시절 기억이 같은 2000년대생이라도 하늘과 땅 차이로 갈린다. 2000~2004년생들은 유년시절 기억을 떠올리라고 하면 아날로그 물건들이 떠오르겠지만, 2005~2009년생들은 상당히 디지털화가 진행될 때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아날로그 물건에 대한 기억이 없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2000년 - 2002년생의 경우 그들은 초등학교에서 좌측통행우리들은 1학년, 놀토를 경험했으며 아날로그 TV나 비디오테이프 CRT 모니터, 피쳐폰 같은 물품들을 사용이라도 해본 세대라고 봐도 무방하다.[34] 2000년대 초반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버즈나 2세대 아이돌인 카라나 브라운아이드걸스같은 그룹들, 피쳐폰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2003년 - 2006년생들의 경우 아날로그를 경험한 세대의 끝이며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를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시절 좌측통행우측통행으로 바뀌었고, 놀토가 사라졌으며[35] 우리들은 1학년도 없어졌다[36]

2000년대 후반에 태어난 2007년 - 2009년생들의 경우 2018년 기준 초등학교 3~5학년이며 2000년대 초반생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태어난 세대들로 아날로그 시대의 끝에 태어났기에 이들은 아예 아날로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때는 완전히 디지털 시대, 스마트폰 시대로 바뀐 뒤이다.

2000년에 센트럴 시티가 개장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이전생들이 경험해봤던 호남선터미널 2층 짜리 가건물 구경을 해봤던 적이 없었던 세대들이기도 하다. 센트럴 시티가 생기기 전까지 호남선 터미널은 2층 짜리 가건물 신세였던지라 선대에 만들어졌던 크고 웅장했던 경부선터미널에 비해서 작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는 말이 많았다. 그리고 영동선이 그 터미널에서 운행하였다가 경부선으로 이전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영동선 노선도 경부선에서 출발한다는 것만 기억한다.

2004년 7월생들을 기준으로 하면 이전생들에 비해서 이명박 시장 시절 서울 시내버스 대개편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전생들이 봤을만했던 서울 시내버스의 한 자리 및 두 자리 번호(1,2,3번 등)을 직접 봤던 적도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 이전인 2003년 7월생들은 청계고가 철거 이후에 태어나고 2005년생들을 기준으로 청계천이 복원되었기 때문에 청계고가에 대한 기억도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들의 다수 일부로 추정된다.[37][38][39]
00(새천년) & 빠른 01(21세기둥이) - 01 & 빠른 02(월드컵둥이)``` - (월드컵둥이)02 & 빠른 03(?)`` - 03 & 빠른 04(?)``[40] - 04 & 빠른 05(?) - 08 & 빠른 09(?)`

정치적으로는 김대중 정부 때 2000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2000년생~2003년 2월생들을 기준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접하게 된 대통령이기도 하다. 2003년 2월생~2008년 2월생까지는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접한 대통령이고, 2008년 2월생~ 2009년생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처음 접한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로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를 거치게 되면서 보수성향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민주당 출신 정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41]

2000년대생의 경우에는 급속한 탈민족주의화로 인해서 진보성향이 이전보다는 좀 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중도 성향도 상당한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전 세대들보단 더욱 합리적인 세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극단적인 정치 성향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라는 의미. 또한 암울하다 못해 처참했던 20세기에 태어난 사람들보단 인권, 경제, 혜택 등에서 누린 것이 정말 많은 세대이다 보니 이전 세대들보단 극단주의적 성향이 약한 편이다. 보다 중도적인 세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땐 바로 이전 세대인 90년대생들과 거의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태어난 2000년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였고 남북정상회담도 두 번씩이나 열렸을 만큼 평화로운 이미지가 심어져 있으나 10대에 들어선 2010년대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였으며 이 때는 북한의 도발이 굉장히 심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시선이 좋을리 없다. 이를 미루어 보았을 때 안보관은 정치성향과 거의 마찬가지로 현재 20대인 90년생들과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0년대가 끝나갈 무렵인 2018년 초,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 해서 남북대화가 다시 재개되었고, 같은 해 4월 27일에는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만약 평화적인 남북관계로 발전될 경우 이들이 20대가 될 때에는 상당히 유화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유심히 잘 지켜봐야 할 사항이다.

-02 ~ 04년생에게 2002 월드컵 질문-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보지 못했다..[42] 2002년 7월 이후 출생자의 경우는 아예 일생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겪지도 못했다..

9. 2000년대에 들어가는 해[편집]

[1] 그러나 2000년에 시행한 밀레니엄 행사에는 그리니치 천문대의 주요 인사들도 참가했다.[2] (2000~200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3] 물론 디지털 시장도 유튜브의 엄청난 성장과 스포티파이등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으로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4]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H.O.T.는 2001년 2월 해체, 젝스키스 2000년 5월 해체했다. 1세대 걸그룹으로 불리는 핑클과 S.E.S의 경우 S.E.S는 2002년 12월 19일 해체했고, 핑클은 공식 해체는 하지 않았지만 2002년 이후 완전체로서의 활동이 전무해 사실상 해체와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5] 뮤직뱅크는 2007년에 HD화가 되었다.[6] 팬티엄 3에서도 메모리빨로 재생된다는 소리가 있다.[7] 이때는 HD영상을 제대로 돌리기가 무리였고 대다수 영상들은 아날로그 방송을 녹화하거나 480p급으로 다운스케일링을 해서 시청하였다. 이건 당시 나왔던 DVD디코더의 영향도 있다. 본격적인 HD동영상 열기는 NVIDIA Geforce 6시리즈와 ATi Radeon R400계열의 보급, YouTube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리고 컴퓨터의 성능상 720p동영상만 재생이 가능했지만 2006년쯤 인텔 코어2 시리즈가 출시되자 1080p동영상도 재생할수 있었다.[8] 디지털방식 말고도 HDReady라고 디지털방송은 지원하지 않지만 HD영상은 지원하는 TV도 판매되었다.[9] Multi Mod Service의 약자, 유럽에서는 Multiplex를 줄여서 MUX라고 한다.[10] 개발까진 아니고 DAB를 뜯어 고친거다.[11] 당장 위에 언급된 대표작들만 봐도 베토벤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위의 요소들이 하나 이상씩은 꼭 들어가 있다. 특히 천국의 계단,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이러한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드라마다.[12] 게임보이 어드밴스의 뒤를 잇는 2000년대 휴대용 게임기의 대표 선두주자였다[13] 2002년 현대자동차대우버스에서 처음으로 출시하였다. (저상 슈퍼 에어로시티, BS120CN)[14] 28일 후가 최초.[15] 물론 정액제는 있었다. 문서참고.[16] 2년 전인 1998년 안산 경원여객에서 먼저 시험 도입한 적이 있었으나, 2000년 서울시에서 대대적인 보급을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17] 2005년까지 방송되는 드라마에서는 노점상에서 음식먹는 장면이 꽤 많이 보였다.[18] 전세계 시장은 콘솔이 주류다[19] 2002 월드컵 은행도 주택은행이 선정되었으나 국민은행으로 이괸되었다.[20] 통신사 한솔엠닷컴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와 더불어서 2000년대 초반에 대유행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했던 배우 정우성의 명대사로, 음료수 2% 부족할 때의 광고카피다.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이 광고 카피는 정우성, 이정재 주연의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정우성이 이정재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다.[21] 물론, 음악 그룹의 개념은 1990년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걸그룹, 보이그룹의 단어가 나온 건 2000년대다.[22] 서양에선 보이밴드라 하지만 한국에선 보이그룹이라고 칭한다.[23] 삼각관계를 다룬 한솔엠닷컴 통신사 CF에서 나온 광고카피인데, 공전절후의 대히트를 친 차태현김민희의 명대사였다.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유행어로 부족하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패러디를 했을 정도로 유명했었다.[24] 일본 중년 여성팬들이 배용준을 부르는 호칭.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배용준의 인기도 상승했고, 특히 겨울연가의 주 시청층이었던 중년 여성들이 배용준을 많이 좋아했는데 이들이 배용준의 '용'에 일본어 극존칭 표현인 '사마'를 붙여 '욘사마'라고 불렀다. 이밖에 이병헌은 '뵨사마', 최지우는 '지우히메'라 불렸다.[25] 다만, 1990년대에 온라인 게임 리니지포트리스가 대유행할때도 썼던 단어라서 애매한 감이 있다.[26] 한국에서는 1998년 4월 9일에 정발되었다.[27] 피처폰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HD 해상도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2012년초반부터다.[28] 본격적으로 닌텐도의 인기가 식기 시작한 것은 닌텐도 3DSWii U 출시 이후인 2012년부터다. 그리고 2014년에는 Wi-Fi 커넥션까지 지원이 끝났다.[29] 하지만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PSP의 인기가 하락했으며, 스마트폰의 급격한 성능 향상으로 인해 고사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졌다. 물론 게임 자체의 평균 퀄리티는 후계기인 PSVITA가 나오기 이전에도 PSP쪽이 당연히 우세였다.[30] 요금제는 거의 홍보를 안했다. 자살 사례도 있었을정도(...) 이것때문에 알요금제같은 청소년요금제에서는 데이터 통화료가 포함되서 소진된다.[31] 삼각관계를 다룬 한솔엠닷컴 통신사 CF에서 나온 카피인데, 공전절후의 대히트를 친 차태현김민희의 명대사였다.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유행어로 부족하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패러디를 했을 정도로 유명했었다.[32] 이후에도 카드대란 등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계속 떨어져서 2005년에 1.08명이라는 역대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다가, 2007년 들어 황금돼지해로 잠시마나 오르기는 했다. 다만 이후에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주춤해졌다.[33] 대졸 기준[34] 하지만 2000년대 중반세대까지도 스마트폰의 부담스러운 가격등으로 인하여 피처폰을 사용해본 경험이 꽤 많으며, CRT모니터도 어릴적 컴퓨터를 처음배울때 사용해본 경험이 많이 남아있을것이다.[35] 그러나 정확히는 2011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2004년생까지 놀토를 경험하였다.[36] 정확히는 2005년생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2012년까지 우리들은 1학년이 존재했다.[37] 아마 이 연대에 그 중 하나인 03부터로 추정하여 더 이상 빠른이 본격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즉 다시 말해 '빠른 04'란 존재하지 않게 된다.[38] 조기졸업 그리고 몇 년 이상 휴학-재학한 일부 등등 역시도 포함되며 앞으로도 포함될 예정일 듯 하다.[39] 바로 이 00년대생의 모든 이들이 완벽한 성인기로 끝마치게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거나 단 한 번쯤이라도 상상해본다면 아마 최대 2028년까진 기다려야 된다. 즉 20년대에 본격 사회활동이 거의 한창이자 최적화일 2019년 ~ 2028년[40] 물론 이 해부터 빠른이 폐지되었으므로 '빠른 04'부터 존재치 않는다.[41] 이건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하는 형식상이고, 신생아/영아기 때의 기억이 있는 사람이 당연히 있을리가 만무하기 때문에 정확히 서술하자면 2000년생~2003년2월생이 처음으로 접하게 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일 가능성이 높다. 2003년2월생~2009년생까지의 경우는 태어난 시기는 참여정부 때와 이명박 정부 초반기였지만, 이명박 정부 때 어린이로 성장했고, 대부분 기억은 만 3~4세 때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거의 많기 때문에 이들이 처음으로 접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된다.[42] 그래도 2002년 초반생 까지는 집에 앨범을 잘 뒤져보면 비더 레드티를 입고 찍은 사진이 한 두장 정돈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