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니스 마흐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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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83년 출생
- 1999년 데뷔
- 2016년 은퇴
- 키르쿠크 출신 인물
- 이라크의 남자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알 탈라바 SC/은퇴, 이적
- 알 와흐다 FC/은퇴, 이적
- 알 코르 SC/은퇴, 이적
- 알 가라파 SC/은퇴, 이적
- 알 아라비 SC/은퇴, 이적
- 알 와크라 SC/은퇴, 이적
- 알 사드 SC/은퇴, 이적
- 알 아흘리 SFC/은퇴, 이적
- 아르빌 SC/은퇴, 이적
- 이라크의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
-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참가 선수
-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참가 선수
-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선수
- 2015 AFC 아시안컵 호주 참가 선수
- AFC 아시안컵 MVP
- 이라크의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선수
-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이라크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2004 아테네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이라크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이라크의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 선수
유니스 마흐무드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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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마흐무드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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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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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유니스 마흐무드 Younis Mahmoud | مَحمُود خَلَف | |
본명 | 유니스 마흐무드 칼라프 Younis Mahmoud Khalaf يُونُس مَحمُود خَلَف | |
출생 | ||
국적 | ||
신체 | 185cm, 72kg | |
직업 | ||
주발 | 오른발 (양발) | |
소속 | 유스 | 카흐라바 알 디비스 (1997~1999) |
선수 | ||
국가대표 | ||
유니스는 2001년 자국의 알 탈라바에서 프로로 데뷔했고 2003년 잠시 아랍에미리트의 알 와흐다로 임대되어 선수생활을 한다. 이후 탈라바로 돌아온 그는 시즌이 끝나고 카타르의 알 코르와 계약하였고, 2006년까지 3년 동안 39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한다. 2006년 알 가라파로 이적하여 선수생활을 하였으며, 2008년 잠시 알 아라비로 임대되었다가 돌아온 후 2011년까지 총 95경기 72골로 맹활약하며 개인 커리어 중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다. 2011년 알 와크라로 이적했으나 2013년까지 33경기에 출전하는 데에 그쳤고, 시즌 후 알 사드로 이적한다. 알 사드에서의 커리어가 끝난 후 유니스는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했으나, 그해 9월 은퇴를 번복하고 알 아흘리에서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아흘리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 그는 2015 아시안컵 전까지 소속팀을 찾지 못했고, 결국 무소속으로 팀을 등록하여 아시안컵에 출전하게 된다. 다행히 아시안컵이 끝난 2015년 2월 자국의 아르빌과 계약에 성공했으며, 그해 9월 고향팀 알 탈라바로 무려 12년 만에 다시 컴백한다.
2001년 19세 이하 대표팀 데뷔를 시작으로 연령별 대표팀을 거친 뒤 2002년 3월에 A대표로 데뷔전을 치른다. 2002년 9월 요르단과의 경기에서 A매치 첫 골을 넣었다. 2007 아시안컵 예선에서 4골을 넣으며 팀의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본선에서도 4골을 터트리며 이라크가 첫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6] 이후 브라질 월드컵 예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출전하여 3위 결정전 태국전에서 헤더골을 넣어 팀을 3위에 도다르게 했고, 2015 아시안컵 예선 등에서 출전하여 팀의 주장을 역임했고, 2015 아시안컵 본선에서도 명단에 포함되어 2골을 넣었다.
2015년 아시안컵에선 노쇠하고 한물 갔다는 여론이 있는 상황에서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는데, 라이벌 이란과의 8강전에선 연장전 1대1 스코어 상황에서 역전골을 넣었고,[7] 이후 승부차기에선 4대3[8] 서든데스 상황에서 파넨카 킥을 성공시키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바로 3주 전에 열린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파넨카 킥을 실패했었는데, 똑같은 상대로, 그것도 실축하면 무조건 라이벌전 패배 + 대회 탈락하는 위험한 상태에서 가볍게 해내며 강심장을 자랑했다. 해설자들의 탄성은 덤이다.
한국과의 4강전에서 0:2로 패하자 쓰러져 있는 어린 선수들을 일으키며 관중들에게 박수를 보내게 하는 등, 그가 출전한 마지막 아시안컵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줬다.
2015년 아시안컵에선 노쇠하고 한물 갔다는 여론이 있는 상황에서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는데, 라이벌 이란과의 8강전에선 연장전 1대1 스코어 상황에서 역전골을 넣었고,[7] 이후 승부차기에선 4대3[8] 서든데스 상황에서 파넨카 킥을 성공시키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바로 3주 전에 열린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파넨카 킥을 실패했었는데, 똑같은 상대로, 그것도 실축하면 무조건 라이벌전 패배 + 대회 탈락하는 위험한 상태에서 가볍게 해내며 강심장을 자랑했다. 해설자들의 탄성은 덤이다.
한국과의 4강전에서 0:2로 패하자 쓰러져 있는 어린 선수들을 일으키며 관중들에게 박수를 보내게 하는 등, 그가 출전한 마지막 아시안컵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줬다.
- 키르쿠크 SC (1999~2001)
- 이라크 퍼스트 디비전: 2000-01
- 알 탈라바 SC (2001~2004)
- 이라크 스타스 리그: 2001–02
- 이라크 FA컵: 2001–02, 2002–03
- 이라크 슈퍼컵: 2002
- 알 코르 SC (2004~2006)
- 카타르 크라운 프린스 컵: 2005
- 알 가라파 SC (2006~2011)
- 카타르 크라운 프린스 컵: 2005
-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07–08, 2008–09, 2009–10
- 아미르컵: 2009
- 카타르 크라운 프린스 컵: 2010, 2011
- 셰이크 자심 컵: 2007
- 카타르 스타스 컵: 2009
- 알 아라비 SC (2008)
- 셰이크 자심 컵: 2008
- 알 와크라 SC (2011~2013)
- 카타르 스타스 컵: 2011-12
- 알 사드 SC (2013)
-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12-13
- 개인의 축구 경력 자체도 영광스런 때도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상당히 굴곡지고 어려움이 많았다. 심지어 1년여 간 소속 구단을 찾지 못하는 일은 물론이고 조국에서 내전까지 벌어졌으니 이쯤 되면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1] 다카하라 나오히로, 야세르 알 카타니와 공동 수상[2] 이라크 역대 최다 출장자.[3] 2019년의 알모에즈 알리까지 합해서 단 2명이 보유한 기록.[4] 당시 2점을 득표하며 29위에 랭크되었다. 이 당시의 아시아 선수 최고 발롱도르 순위 기록은 2019년 22위, 2022년 11위를 기록한 손흥민이 두 번 경신했다.[5] 또한, 언급한 손흥민 그리고 2023년 22위를 기록한 김민재와 더불어 아시아인으로서 발롱도르 표를 받아본 셋 밖에 없는 선수다. (일본은 2001 발롱도르 당시 공동 28위에는 올랐으나 득표에는 실패)[6] 이 해에 당시 아시아 최고 기록인 발롱도르 29위에 랭크됐다.[7] 이때 허리를 잡고 지팡이 세레머니를 하며 팬들에게 웃음을 주었는데, 노쇠했다고 비판하는 여론에 대한 자학개그였다. "그래 나 늙었다 어쩔래" 정도의 뉘앙스.[8] 양팀 한 명씩 실축하고 이란은 4번 성공한 상황. 마흐무드는 5번째 키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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