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네드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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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ventus Football Club S.p.A.

파일:external/www.sport.co.id/pavel-nedved-juventus.jpg

이름

파벨 네드베트[1]
Pavel Nedvěd

출생

1972년 8월 30일 (46세) /
체코슬로바키아 헤프(cheb)

국적

체코 파일:체코 국기.png

신체

177cm | 체중 70kg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경영인

등 번호

유벤투스 FC - 11번

소속

선수

TJ 스칼나(1977~1985 / 유스)
RH 헤프(1985~1986 / 유스)
TJ 슈코다 플젠(1986~1990 / 유스)
VTJ 타보르(1990 / 유스)
두클라 프라하(1990~1991 / 유스)
두클라 프라하(1991~1992)
스파르타 프라하(1992~1996)
SS 라치오(1996~2001)
유벤투스 FC(2001~2009)
FK 스칼나 (2018)

경영

유벤투스 FC 기술이사(2012~2015)
유벤투스 FC 부회장(2015~)

국가대표

91경기 18골(체코 / 1994~2006)


1. 개요2. 플레이스타일3. 남자를 울리던 남자4. 트리비아5. 네드베드에 대한 말,말,말

1. 개요[편집]

"피치에서는 기력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서 달릴 것이다."

나는 하루에 12시간을 연습했고, 두 다리 중 어느 한 다리가 우월하지 않다고 느꼈을때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


네드베드의 인터뷰 中[2]


두 개의 심장[3]

체코의 前 축구선수이자 현 유벤투스 부회장. 애칭은 네디.

자국 리그에서 프로 데뷔하여 1년만에 체코 리그 명문인 스파르타 프라하로 이적, 서서히 네임밸류를 쌓아가다 참가한 유로 1996에서 말 그대로 미친 듯한 활약으로 당시까지 빈말로도 강팀이라 하지 못하는 전력이던 체코를 결승전에 올려보내며 전 유럽을 놀라게 했다. 결승전에서는 독일의 포스를 결국 당해내지 못하고 패배했으나 전 유럽에 파벨 네드베드라는 이름을 알리기엔 충분했다.

유로 1996에서의 임팩트 강한 플레이에 반한 각국의 명문구단은 떠오르는 신성 네드베드에게 잇따른 러브콜을 날렸고, 구애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세리에 ASS 라치오가 그를 채가는 데 성공한다. 네드베드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고, 이듬해 라치오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24년 만의 트로피였기에 라치오는 기세를 몰아 더욱 몸집 불리기에 나섰고, 라치오 구단의 과감한 투자는 그 당시에는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4][5]

당시 네드베드와 함께 뛰었던 라치오 스쿼드가 상당히 짱짱하다. 가이즈카 멘디에타, 에르난 크레스포, 크리스티안 비에리, 알레산드로 네스타,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데얀 스탄코비치 등등. 이 때의 세리에 우승을 가볍게 볼 수 없는 게, 당시 세리에는 흔히들 말하는 7공주시대였고, 지금의 뭔가 나사 하나 빠진듯한 세리에와는 격이 다른, 챔스 우승보다 세리에 우승이 더 어렵다는 말까지 나오던 시기였다.

01-02 시즌을 앞두고 팀의 에이스였던 지네딘 지단이 팀을 떠나자 다급해진 유벤투스 FC는 그의 대체자로 네드베드를 라치오에서 모셔오는 데 성공한다.[6] 그도 과연 사람인지라 팀을 옮긴 직후는 제법 부진한 모습을 보였었고, 그냥 우주괴수 그 자체였던 지단의 향수를 그리워한 사람들은 네드베드가 잠시 부진하자 신랄하게 까기에 이른다. [7] 그러나 잠시 숨고르기를 마친 후 곧이어 지단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자신만의 플레이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유벤투스는 챔스 준우승 및 세리에 2연패 등 지단 때 못지 않은 포스를 내뿜기에 충분했다. 네드베드 본인도 2003년도 발롱도르 수상자에 선정되며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

그 후 칼치오폴리 사건으로 유벤투스가 우승 박탈 및 2부리그로 강등되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패트릭 비에이라 등을 위시한 대부분의 동료들이 팀을 떠날 때, 확고부동한 주전이었던 네드베드에게도 역시 수많은 빅클럽들의 오퍼가 따랐다. 그 때, 이 사람은...

나는 녹색 잔디만 있다면 세리에 A든 B든 상관없다. 이제부터 세리에 B는 나의 챔피언스리그가 될 것이다.
나는 유벤투스의 팬들이 준 사랑에 보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내겐 팀 내 최연장자로서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을 전수해줄 의무가 있다.
유벤투스는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걸 돕는 것이 내가 할 일이며, 내가 유벤투스에 있어야 할 이유다.


라는 간지폭풍의 대사를 날려주며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지안루이지 부폰, 다비드 트레제게 등과 함께 팀에 남는다. 게다가 떠나려는 동료들을 설득까지 하는 모습까지 보이며[8] 충성심의 화신, 멘탈甲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팀을 1시즌만에 다시 1부로 승격시킨 후에도 2시즌을 더 뛰고, 강등까지 당했던 팀을 다시금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킨 뒤 그의 선수인생에 마무리를 고했다.

그런데 2017년 9월 22일 그는 자국의 아마추어 팀 FK 스칼나와 현역 계약을 했다! 이 팀에는 자신의 아들이 현역으로 선수 생활을 하고있다.
하지만 네드베드는 유벤투스의 부회장으로 활동하고있으며, 구단도 이 부분을 알고 출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계약 후 경기에서 뛴 적은 없다.

2. 플레이스타일[편집]



매 경기마다 온 몸을 불사르던 선수

어렸을 때부터 노력의 화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컸으며, 원래 오른발잡이였으나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 코치가 질릴 정도로 미친 듯이 노력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동시에 부유하지 않았던 집안 사정으로 집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연습장을 [9] 뛰어서다니다 보니 흠좀무한 체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도 유명한 백그라운드 스토리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유벤투스가 지네딘 지단을 보내고 그의 공백을 전혀 느끼지 못 하게 했던 최고의 선수. [10]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양발잡이라면 정말 성가시기 그지없는 타입인데, 그걸로 끝이 아니고 경기 다 끝나가는 시점 다들 혀 빼물고 늘어지려는 시간대에 이르러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경기장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네드베드를 상대하는 입장이 되어 보면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네드베드는 박지성두 개의 심장이라 불리기 이전에 이미 두 개의 심장, 세 개의 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선수다.

분명 골키퍼 바로 앞까지 내려와서 윙어의 드리블 돌파를 차단하며 수비가담을 하고 있던 선수가 1분도 지나기 전에 크로스를 올리고 있거나 반대로 상대 진영 골 포스트 앞에서 헤딩 경합을 하고 있다, 공격 상황에서도 상대 수비진을 혼돈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다. 오른쪽에서 오른발로 크로스 올리던 선수가 잠깐 카메라 돌아간 사이 왼쪽에서 나타나 크로스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미친 활동량을 자랑하는 선수가 테크닉까지 세계 정상급이었다. 그의 이런 미친 활동량에 수비들이 지쳐 나가떨어져 마크에 실패하면 곧바로 중앙으로 파고들어 특유의 정밀하면서도 대포알 같은 중거리슛을 때리던 선수다. 그는 당대 지단, 베르캄프와 함께 퍼스트 터치와 볼 트래핑에 있어 최정상급이었으며 네드베드의 크로스 역시 베컴 피구 긱스 등 당대 내로라하는 윙어들과 함께 최정상급이었고 델 피에로와 함께 프리킥을 번갈아 찰 정도로 킥력 역시 세리에 A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을 논했다. 이런 선수가 화려하진 않지만 실속있고 부드러운 드리블로 수비진을 해집는다.

네드베드의 주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지만 유벤투스에서 윙어로 출전했을 때는 중앙 미드필더 시절만큼 아주 훌륭했던 것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훌륭했던 선수였고 윙어임에도 수비력까지 절륜했던 선수다. 지단과 함께 축구라는 종목에서 필요한 모든 스킬을 완성형으로 구사했던 선수. 이런 사기적인 능력으로 윙어들의 무덤이라는 세리에 A에서 측면의 지배자라고까지 불리며 상대팀 사이드라인을 초토화시켰다.[11]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걸 정말 효율적으로, 그리고 온몸을 불살라 가며 사용할 줄 아는 남자였다. 30대 후반에 이르러서도, 은퇴하는 시즌에까지 그 플레이스타일은 변함이 없었으니 이건 뭐… 네드베드는 37세의 나이로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12.66km를 뛰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활약한 모든 선수들 중 가장 많이 뛴 선수로 랭크되었다.[12]

3. 남자를 울리던 남자[편집]

파일:external/m.cdn.blog.hu/nedved.jpg

이 사진 한 장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02/03 챔피언스리그 4강전 vs 레알 마드리드. 지단vs네드베드로 엄청난 설레발을 모았던 이 맞대결에서 승리한 팀은 유벤투스였으나 네드베드는 기뻐할 수 없었다. 팀의 승리를 확정짓는 쐐기골까지 박아넣었음에도 한순간의 실수로 경고를 받아 경고누적으로 결승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고, 그가 빠진 유벤투스는 결승전에서 AC 밀란에게 승부차기까지 간 접전 끝에 패배하고 만다. 선수 본인도, 팬들도 그 때 네드베드만 있었다면… 하며 몹시도 아쉬워했고, 위의 사진처럼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던 네드베드의 모습을 본 팬들은… 네드베드도 울고, 팬들도 울고, 하늘도 울고, 나도 울었다. [13]

이 일 후에도 비슷한 일이 또다시 일어났는데, 유로 2004에서 체코가 준결승[14]까지 전승으로 올라갔음에도 이번에는 준결승 도중 부상으로 교체아웃되었고[15]아, 앙대 그가 빠진 체코는 또다시 연장까지 갔다가 패배하고 만다.

한편, 유로 2004 이후 체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으나 2006 월드컵을 앞두고 체코가 지역예선에서 원체 죽을 쑤자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복귀, 플레이오프 끝에 간신히 체코를 본선까지 이끌었으나 체코미국전에서 3:0으로 승리한 후 가나 공화국이탈리아전에서 2연패를 당해 16강 능선을 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된다. 그러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필드를 종횡무진하던 네드베드의 모습은 수많은 축구팬들의 눈물을 뿌리게 만들었다. 오오 네디옹 오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이 됐다. 대회 이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으며, 유로 2008이 다가오자 체코 국가대표팀 복귀를 요청받았지만 거절하였다.

네드베드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후덜덜할 정도의 멘탈인데, 위에 상술한 대로 칼치오폴리 사건이 터진 직후에도 팀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오히려 떠나가던 동료들을 붙잡으려까지 하며 팀을 지켰던 모습에 반해버린 축구팬들이 부지기수다. 경기가 끝나가던 말던 방금 시작한 것처럼 미친 듯 뛰어다니던 그의 플레이 스타일도 그런 멘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은퇴한 후에도 유벤투스에서 프런트로 일하고 있다. 2013년 인터뷰.

4. 트리비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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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인의 이름이 이바나(Ivana)인데, 아들딸의 이름도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파벨과 이바나이다(...) 한동안 네드베드의 딸 이바나라고 알려졌던 사진이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해축빠가 퍼트린 축구계 도시전설이 많다. 맨유의 전설 스티븐 비게라 라던지...
하지만 실제 네드베드의 딸 이바나는 눈썹이 안 보일 정도로 밝은 금발인데다가 외모도 어릴 때 부터 통통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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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네드베드의 딸 이바나와 아들 파벨의 모습이다.

2009년 네드베드의 은퇴식때 찍힌 그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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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생이기에 아직 정변할 가능성이 있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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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에게 미스터리로 남아있다가 결국 2014년 유벤투스가 우승 세레머니를 할 때 찍힌 사진이다. 그래도 그럭저럭 정변했다.

  • 선수에서 은퇴한 지금은 유벤투스에서 기술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2년에 걸쳐 페라라에 이어 델 네리 감독이 유벤투스를 제대로 말아먹자 분노사자후한 인터뷰가 알려져 네드베드 본인이 감독으로 오는 것 아니냐 하는 설레발이 제기되었으나 정작 감독은 또다른 유벤투스의 레전드 선수인 안토니오 콘테로 결정. 이 사람은 왠지 감독하다가 경기 안 풀리면 자기가 뛰쳐나올거 같거든 이 양반이나 이 양반은 정말 보다가 답답해서 뛰쳐나왔다 다행이도 콘테는 유벤투스를 세리에 최강 팀으로 부활시키는데 성공하고 유벤투스를 떠났다.

  • 네드베드 은퇴, 카모라네시 방출 후 유벤투스의 윙어진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이다. 10-11시즌 공수해 온 밀로스 크라시치가 포지션은 오른쪽 윙으로 다르지만 그 공백을 훌륭하게 메워주는 듯 했다. 유럽시장에서 꽤나 주목받았고 찰랑이는 금발머리에서부터 얼굴 생긴 것까지 은근히 네드베드를 닮았기에 팬들이 크게 기대하였다. 하지만 윙어의 무덤이라는 이명이 보여주는 세리에 A의 두터운 수비 및 경기내내 다채로운 수비전술에 돌파 및 드리블 패턴이 너무 단조로운 크라시치의 개인능력은 초반 몇경기 반짝후 대처법을 발견한 감독 및 수비수들에게 읽혀서 결국 부상 크리가 뜬 후 주전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고, 11-12 시즌 복귀 후에도 몇 경기 못 뛰고 다음 시즌 페네르바흐체 SK로 이적했다. 그렇기에 전반기뿐이었지만 그래도 10-11시즌 막장테크의 유벤투스를 먹여살린 몇 안 되는 청년가장 중 한 명이었음에도 페짜델의 77시절을 근성으로 버틴 유베팬들이 지에구를 그리워하면 그리워했지 크라시치는 딱히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 후 11-12 무패우승 시즌에 오른쪽 윙어로 시모네 페페페페아님!가 각성하며 '페날두'란 별명을 얻고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12년 8월 왼쪽 허벅지에 부상이 생기더니 수술을 계속 했음에도 부상이 1년 반이 넘도록 재발하며 제대로 복귀하지 못 하고 있으며 은퇴설까지 돌고 있다. 끝내 쓸만한 윙 자원이 없어지자 콘테는 11-12시즌 후반기부터 쓰던 3-5-2를 주 전술로 정착시켰고 계속 사용하고 있으며 제 2전술로 쓰려는 4-3-3은 뭔가 아쉽다. 디 마리아샤키리산체스사주세요 ㅠㅠ아니 그냥 네디옹 10년만 회춘해주세요 ㅠㅠ

유벤투스의 이사회 멤버로 있다가 2015년 10월 현재 클럽 부회장이 되었다. 유벤투스 사이트 링크

5. 네드베드에 대한 말,말,말[편집]

나는 매일 지옥과 같은 트레이닝을 요구했다. 베론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파리처럼 쓰러져나갈 때, 오직 그만이 운동장에 서 있었다.

현대 축구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선수는 다름아닌 네드베드이다. 그와 같은 선수는 없다. 그는 절대 멈추는 법이 없다.

그는 내가 만나본 선수 중에 가장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네드베드는 팀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한 시간 동안 혼자서 사이클을 탔고, 훈련이 끝나면 다시 한 시간 동안 혼자서 조깅을 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소유자로 여간해서는 중간에 나오는 경우가 없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자서전 "나는 즐라탄이다" 中

(이제 최고의 미드필더다. 라고 말하는 기자들에게)
"네드베드가 은퇴했던가요?"

[1] /ˈpavɛl ˈnɛdvjɛt/, 실제 발음은 '네드비에트'에 가깝다.[2] 완벽한 양발잡이다. 주발은 오른발.[3] 두개의 심장이란 별칭을 가진 선수들의 조상님격인 선수가 바로 네드베드다.[4] 98-99 컵위너스컵 우승, 99-00 세리에 A 우승.[5] 하지만 이렇게 돈X랄에 맛들은 라치오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지르다 후에 경영부실로... 망했어요[6] 유벤투스는 이때 지단을 판매한 돈으로 라치오에서 네드베드를 사오고 파르마에서 잔루이지 부폰릴리앙 튀랑을 사왔다.[7] "네드베드가 지단보다 나은 건 머리숱 뿐이다"라는 개드립까지 나왔으니...[8] 즐라탄의 자서전을 보면 새로 부임한 데샹 감독이 그를 설득하려 면담했을때 그에게 압박을 주려는 목적이었는지 이미 잔류를 선언한 네드베드도 같이 왔었다고 한다. 비록 즐라탄이 이미 떠나기로 마음먹은 상태라 별 효과는 없었지만.[9] 연습도 항상 연습장의 불이 꺼질때까지 했다고 한다.[10] 그렇지만 두 선수의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지단이 그야말로 아트사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우아한 축구를 보여줬다면 네드베드는 숫사자 그 자체로 온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휘젓고 다니던 스타일[11] 사실 전통적인 윙어라고 하기보단 하프윙이나 왼쪽 측면에 배치된 프리롤 플레이 메이커에 가까웠다. 라치오 시절엔 대부분 중앙에 배치되었으나 유벤투스 이적 이후엔 대부분 4-4-2의 왼쪽에 배치되었다.[12] 미친 듯한 활동량을 기반으로 경기장을 갈아엎는다는 점에서 박지성과 플레이스타일이 비슷하다는 말이 있으며, 혹자는 박지성의 궁극적인 진화형이 네드베드라는 평을 내린다. 그래서 한때 디씨등지에서 (반은 비아냥으로) 박지성을 박드베드라 불렀고 심지어 네드베드에 박지성을 합성한 박드베드(...)짤방도 돌아다녔다. 판단은 각자 알아서 *[13] 라고 쓰여있어서 네드베드가 굉장히 억울하게 경고를 받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명백히 경고당할만한 백태클이였다. 네드베드 본인이 카드관리를 못한 것일뿐. 사진만 봐도 어필할 시도도 안하는걸 보면...[14] 상대는 유로 2004에서 우승한 그리스.[15] 교체 후 벤치에서 낙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