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최근 수정 시각: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국가

대한민국 여권법에 의한 여행금지국가(특별여행경보 제외)

파일:리비아 국기.png
리비아

파일:소말리아 국기.png
소말리아

파일:시리아 국기.png
시리아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png
아프가니스탄

파일:예멘 국기.png
예멘

파일:이라크 국기.png
이라크

파일:필리핀 국기.png
필리핀1

여권법 외의 별도의 대한민국 법률로 출입이 금지된 지역

파일:북한 국기.png
북한
(국가보안법·남북교류협력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Flag_of_the_Antarctic_Treaty.svg.png
남극
(남극활동법)

1 잠보앙가, 술루 군도, 바실란, 타위타위 군도 한정

이라크 공화국
جمهورية العـراق
كؤماری عێراق‎‎
Republic of Iraq

파일:이라크 국기.png

국기

파일:이라크 국장.png

국장

국호

이라크 공화국
جمهورية العـراق
كؤماری عێراق ‎‎

면적

438,317㎢

인구

39,118,724 명 (2018년)

수도

바그다드

정치체제

의원 내각제

대통령

푸아드 마아숨

총리

하이다르 알 아바디

시차

GMT+3

공용어

아랍어, 쿠르드어

국교

없음(대부분 이슬람)

민족구성

아랍인 75%~80%, 쿠르드족 15%~20%, 기타 5%

1인당 GDP

명목 6,900$, PPP 7,100$(2014)

화폐 단위

디나르 (D)

표어

الله أكبر
알라는 위대하시다.[1]

대한수교현황

남한 단독수교(남한 1981, 북한 1968(1980년 단교))

여행경보

여행금지 :전 지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1px-Iraq_on_the_globe_%28Afro-Eurasia_centered%29.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Iraq-CIA_WFB_Map.png

1. 개요2. 역사3. 경제4. 군사5. 행정구역6. 종교7. 스포츠8. 외교 관계
8.1. 미국과의 관계8.2. 한국과의 관계8.3. 북한과의 관계8.4. 러시아과의 관계
9. 국기10. 국가11. 관광12. 기타13. 이라크 국적, 출신의 캐릭터

1. 개요[편집]

서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공화국. 수도는 페르시아어로 '신의 선물' 이라는 의미의 바그다드. 1932년에 영국에서 독립했고 영국이 들어오기 전에는 오스만 제국의 땅이었다. 고대에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이 대부분 이라크 땅이다.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두강인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모두 이라크 전국을 지난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대 오스만 전선에 아랍인들을 이용하고자 무함마드의 자손이며 메카의 샤리프(شريف, 귀족)였던 후세인 이븐 알리(حسین بن علی)와 협상을 벌여 1915년 아랍인의 독립 국가를 건설해주겠다는 '맥마흔 선언' 을 발표하고 아랍 반란을 이끌어낸다.[2]

▼ 현대의 이라크에 대한 정리된 영상이다. 쿠르츠게작트의 것.

2. 역사[편집]

3. 경제[편집]

4. 군사[편집]

5. 행정구역[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Iraqi_Governorates.svg.png

1. 바그다드 주 (바그다드)
2. 살라딘 주 (티크리트)
3. 디얄라 주 (바쿠바)
4. 와시트 주 (쿠트)
5. 마이산 주 (아마라)
6. 바스라 주 (바스라)
7. 디카르 주 (나시리야)
8. 무탄나 주 (사마와)
9. 카디시야 주 (디와니야)
10. 바빌 주 (힐라)
11. 카르발라 주 (카르발라)
12 나자프 주 (나자프)
13 안바르 주 (라마디)

튀르크지역 [3]
14 니나와 주 (모술)
15 키르쿠크 주 (키르쿠크)

쿠르드 지역
16 다후크 주 (다후크)
17 아르빌 주 (아르빌)
18 술라이마니야 주 (술라이마니야)
19 할라브자 주 (할라브자)

6. 종교[편집]

종교적으로 미군 침공 이후 갈등이 계속되고있다. 사담 후세인 시절에는 소수라고 해도 기독교인들은 차별이 있을지언정 같이 공존했고 이슬람 과격파가 여기 시설을 공격하면 세금으로 복원하고 범인들을 응징하였다. 과격파들에겐 어차피 군부 독재자도 적이기에 후세인에게도 적이기 때문이었고 소수 종파를 배려하여 자신을 지지하게 만들면 나쁠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세인은 수니파 지도자고 이라크의 다수 종교는 시아파라는 사정도 있다(수니파가 다수고 시아파가 소수며 그 시아파의 지도자가 아사드인 시리아와는 사정이 반대다). 덕분에 집시들도 이라크에선 평온하게 지냈고 그 밖에 야지디교라든지 바하이교 같은 소수 종파들도 공존했다.

사실, 이런 것은 특별한 현상은 아니고, 종교의 영향을 슬슬 벗어난 단계의 근대 서구 문화와 종교를 혐오하는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대세계 여러 신흥국 독재국가에 흔하게 나타난다. 국민교육을 통해 종교불문하고 국민의 힘을 통합해 국가 역량을 키우고, 분리독립의 싹을 자르며, 발전을 위해 타파해야 하는 구습의 상징인 전통 종교를 억압하고, 정권에 도전하는 조직화된 반대 세력의 성장 견제 등. 심지어 독일 제2제국의 비스마르크조차 종교정당과의 투쟁이 독일 통일 자체보다 더 오래 애쓴 과제였고, 19세기까지의 프랑스는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획득한 영토와 말이 많이 다른 지방에 표준어를 보급해 국민을 통합하는 데 열심이었다. 독재정권의 생존 방편이기도 한 이 세속주의 정책은, 나름 탈종교 근대화 수순으로서도 기능하고 있었으나, 반대로 아직 일반 국민의 의식은 여전히 종교에 크게 의지했기에, 멀게는 이란 혁명 가깝게는 전쟁과 아랍의 봄과 터키 쿠데타 등을 거치며 세속주의를 추종하는 구 정권이 권좌에서 내려오자 이 지역 거의 모든 국가에서 종교에 심취하려는 역풍을 맞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미군이 쳐들어오면서 시아와 순니 이외 소수 종교에겐 지옥이 열렸다.[4] 기독교의 경우 칼데아 가톨릭이나 아시리아 동방교회 같은 토착 종파가 있었고, 1997년 통계에 따르면 신도가 130만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2015년엔 그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기독교계 이라크 국회의원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에 이은 헬게이트가 없었다면 이라크 내 기독교 인구는 지금쯤 200만 명을 돌파했었으리라고 탄식하였다.

또한 미군이 철수하면서 대다수인 시아파(인구 60% 이상)가 득세하면서 골치를 겪고 있다. 2012년 와서 정치수반인 알 말리키(시아파)가 순니파인 알 무틀라크 부총리와 부통령인 알 하셰미 탄핵 및 구속을 이뤄냈고 순니파가 다수인 쿠르드인 지역에 간섭하면서 말이 많았다. 이라크 내 순니파에선 이란의 원조를 받는 시아파가 득세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내전 양상이란 세간에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인식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일반 국민들간의 종파간 갈등은 미미한 편이고 도리어 옆동네 시리아 내전의 불똥이 튀어 외국에서 테러 단체들[5]의 유입과 그로 인한 묻지마 차량 폭탄 테러로 신음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무슬림이든 비무슬림이든간에 일반 시민들은 테러하면 아주 학을 떼며 질색해하는게 일반적인 정서다. 2010년대에도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테러가 벌어지고 있는 판이고 중부지역에서도 테러가 펼쳐지던 2000년대 중 후반 당시에는 하도 테러사고가 연달아 벌어지다보니 버스나 자동차도 목숨잃을까봐 조마조마하면서 타는건 물론이고 축제 때도 테러가 벌어지는 판이었으며[6] 테러때문에 치안도 덩달아 나빠져서 인프라 사업 재건도 지지부진했으니[7] 일반인들이 테러에 질색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여하튼 이라크 전쟁 및 미군의 삽질로 인한 소수 종교 지옥화[8]에 시리아 및 이란에서 오래전부터 거주하던 기독교 및 소수 종교인들은 이후 차라리 현 정부 유지가 낫다고 지지하게 되지만 시리아는 그놈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때문에.

7. 스포츠[편집]

역시 오일머니로 인한 투자 및 여러 모로 축구 강호였다. 국대에 대한 자세한 것은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그 밖에 클럽 축구도 인기가 많지만 역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 2번(1971, 1989)만 기록했다. 중국조차도 역대 이 대회 우승을 거둬들인 걸 보면 화려한 리그 강호라고 볼 수도 없으며 지금은 AFC컵에 나오고 있다.

과거 포항 스틸러스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압바스 자심이 이 나라 출신이다.

8. 외교 관계[편집]

세계에 모든 인접한 이웃 나라들이 그렇듯이 이라크 역시 주변 이웃 국가들하고 사이가 안 좋다. 1980년대무려 8년 동안이나 이란-이라크 전쟁을 치뤘던 이란하고는 말할 필요도 없는 앙숙이고, 쿠웨이트와도 1990년 걸프 전쟁을 치른 이후로 불구대천지원수 그 이상이다. 걸프 전 당시 이라크에게 짓밟힌 원한이 오죽 사무쳤으면 이집트, 사우디, 모로코 등 다른 아랍권 국가들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비난할 때 쿠웨이트만은 이라크 전쟁에 찬성했었을 정도였었다. 공식적인 입장 표명 등으로 대놓고 찬성하진 않았으나 속으로는 엄청나게 지지했다. 하지만 후세인이 죽은 뒤에 현 이라크 정부가 두둑한 보상금을 이자까지 내주며 보상하고 후세인을 비난하고 침략전쟁을 사죄하는 태도를 보이는 터라 쿠웨이트는 일단 외교적으로는 우호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거기다 이란 이외에 시리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주변 국가들과도 역사적, 정치적으로 사이가 안 좋은 편이고 그나마 이웃 국가들 중에 요르단하고는 사이가 좋은 편이다.[9] 이스라엘과의 관계 역시 다른 여러 아랍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적대적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걸프전쟁 당시 싸우기도 했었지만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 국경 중간에 있었던 "사우디-이라크 중립지대"라는 영토 때문에 분쟁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1992년 이후 본격적으로 해결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분쟁이 없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이라크 지도를 볼 때 남부 국경이 다르게 표시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옛날 이라크 지도를 쓰거나 남부 국경지대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분쟁이 있기 때문.. 게다가 같은 아랍권이지만 이라크는 7세기 중엽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에 의해 이슬람, 아랍인화되기 이전 메소포타미아와 아시리아 등 지금의 사우디 일대의 아라비아 반도 지역 아랍인들과는 다른 민족,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국가여서 같은 아랍권이지만 서로 상이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같은 아랍 국가이면서도 두 나라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게다가 이라크는 2017년 사우디와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리비아, 바레인등 아랍권의 여러 국가들이 대이란 적대 정책에 반대하며 중립 노선을 취하던 카타르에게 국교단절, 무역봉쇄등의 보복 조치를 취하자 카타르와 국교단절을 하지 않으며 사실상 사우디와 대립하던 카타르를 편 들어주기도 했었다.[10] 사실 사우디의 카타르 봉쇄가 카타르의 친이란 태도를 돌리기 위함이었는데, 지금 이란과 이라크 모두 시아파 정부다 보니 예상된 일이었다. 게다가 사우디는 이라크까지 배척하면 바다 건너 이란을 견제하거나 레반트 지역 일대의 이슬람권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뻗히는데 전혀 힘을 쓸 수 없어 이라크내 과반은 아니라도 수니파 인구가 많기 때문에 이라크와의 외교 관계는 반드시 신경 쓴다. 그리고 2017년 걸프전쟁 후 단항되었던 두 나라간 정기 직항 항공편을 재개되고 국경선을 재개방하면서 두 나라 관계가 가까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라크는 사우디의 카타르 단교/봉쇄 조치에 동참하지 않으며 카타르와 사우디의 대립에 되도록이면 중립을 지키고 있다.

시리아와는 이란-이라크 전쟁과 걸프 전쟁에서 이라크와 싸우고 있던 이란과 쿠웨이트를 시리아가 지지하고, 1980, 90년대 당시 집권 바트당의 정통성 문제를 두고 대립할 정도로 사이가 나빴었으나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고 아랍의 봄 이후 다에쉬가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에서 발호하여 다에쉬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싸우게 되면서 많이 가까워진 편이다.

다만 전 인구의 60% 이상이 이슬람 시아파이기 때문에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시아파 맹주 이란과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미국의 침공 이후 사담 후세인 정권 인사들은 모두 쫓겨나고 후세인 시절에 이란으로 망명했던 시아파가 지금의 이라크 정부를 구성했으니 이란에는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이 천문학적인 액수를 쏟아부은 이라크 전쟁이 아이러니하게도 적국인 이란에게 좋은 일이 된 셈이다. 특히 다에쉬 격퇴전에는 이란이 자국의 정예군인 혁명수비대를 파견, 혁명수비대 사령관 카심 솔레이마니가 군사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등 지금은 사실상 동맹국 수준으로 관계가 가까워졌다.[11] 다에시 때문에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라크 - 이란 - 미국의 삼각 동맹이 지금 이라크에서는 현실이 됐다.[12] 다만 어디까지나 예전보다 가까워졌지, 사이가 좋아진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라크의 시아파 무슬림들 중에는 이란을 증오하고 이란의 적국인 미국이나 시아파와 앙숙지간인 사우디, 모로코,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같은 수니파 아랍 국가들에게 친화적인 사람들도 많이 있다. 왜냐면 이라크 시아파 기준으로는 이란은 자기 민족을 학살한 외세이고[13] 미국은 독재자 후세인의 억압에서 구해준 해방군이기 때문이다. 2018년에도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서 이라크 시위대 수백명이 이란 대사관으로 몰려가 반이란 시위를 벌이며 이란 대사관에 불을 지르고 이란 국기를 태우는 사건이 발생했을 정도였다.#

유럽 국가인 그리스와는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다. 오스만 제국 시기에 터키에게 지배당한 역사도 있고 국민감정 역시 터키에게 적대적 감정이 있는것도 비슷하기 때문[14]이다. 거기다 2003년 미국의 조지 워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자 그리스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격렬하게 비난하였다.[15][16]

8.1. 미국과의 관계[편집]

미국의 경우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이 후세인 정권을 지원하면서 한때 우호적인 관계가 시작되었으나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을 거치면서 상당한 적대 관계를 유지해왔다. 후세인 정권 실각 이후 들어선 현 이라크 정부의 경우 후세인만큼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친이란 성향을 보이는지라 미국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으며 일반 국민들의 경우 미국에 대한 감정은 상당히 복잡하다.[17] 그렇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가 포함된 입국 대상 금지 국가 명단을 발표하면서 이라크인들을 입국 금지 대상에 포함시켜 추방하겠다고 뻘짓을 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당연히 이라크 내에서는 나라의 명운을 걸고 다에쉬 놈들과 싸웠더니 추방이나 시키냐!라면서 반 트럼프 감정이 엄청나게 폭발하였다. 결국 이러한 이라크의 격렬한 반발과 항의에 트럼프의 미국내 입국 대상 금지 국가 명단에서 이라크는 제외되었다.

이라크 내전이 소강 상태에 이르자 미국은 이라크에서의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방지하려고 이라크 정부에게 이라크 내의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를 철수시킬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는 거부했다.#

2017년 12월 미국은 이라크 정부의 IS를 완벽하게 소탕하는데 성공한것을 축하했다.# 그다음엔 이라크에 대한 재건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4월 8일 트럼프 대통령과 아바디 이라크 총리가 전화통화를 하며 5월의 이라크 총선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30일 미군은 이라크 주둔 사령부를 폐쇄했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병력은 이라크에 남는다고 했다.#

추가바람

8.2. 한국과의 관계[편집]

이라크는 한때 1968년 북한과 단독 수교하였으나 1989년에는 대한민국과도 수교를 하였고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에도 계속해서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4년에는 비무장군인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 파병되어 주둔하고 있었다. 참고로 자이툰 부대의 환송식이 일부 반전 단체의 시위로 인해 비공개로 열렸던 적도 있었다.

2003년 전까지만 해도 치안이 양호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학까지 갔던 나라였지만 전쟁 이후 상황은 악화, 2007년 이후 2017년 현재까지 계속해서 대한민국 국민은 정부 허가 없이 들어가면 안되는 여행금지국가이다. 2014년에 이라크는 ISIL의 준동으로 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에 인접 국가에서 무단 입국할 수 있지만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2.0을 찍고 싶지 않다면 그만두자.

2013년경 치안이 그나마 좋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삼성이나 LG 등은 이런 나라에서도 자사의 전자제품을 팔려고 했다. 실제로도 이라크에선 LG나 삼성에 대하여 인지도가 매우 높고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오죽하면 중국 짝퉁도 판을 친다. 참고로 90년대 후반 LG컵 국제 축구대회 같은 대회가 이라크에서 열려 만원 사례를 이룬 적도 있다.

물론 파견을 원하는 이는 많지 않지만 대기업 주재원으로 위험국가에 파견가면 방탄복이 지급되고 오지 수당이 눈 튀어나오게 많이 나온다. 삼성, LG의 경우 특A급 오지이다 보니 국내 근무시 연봉+주재원 수당+오지 수당이 더욱 붙는다. 원래 봉급과 주재원 수당을 제외하고 오지 수당만 해도 대리 급에서 1년에 2,000만원~3,000만원 정도다. 다만 신입 입사 직후 이라크 파견 근무를 명받자 한 달 뒤 사직하는 등의 케이스가 많은 편이다.
건설회사의 경우 생명수당 명목으로 월 300~400만원이 추가 지급된다고 한다. 현지인의 왕래도 드문 위치에서 근무하지만 여전히 파견을 꺼리는 직원이 많다고 한다.

이런 곳에 가면 권총이 지급되고 1억원에 가까운 선불오지 수당을 받는다는 유머가 있지만 유머는 유머로 받아들이자.

이런곳에서 주재원이 살때는 철저하게 요새처럼 가둬진 공업단지 내에서만 활동하고 밖으로 나갈때는 반드시 현지 경호원이 대동된다.

사실 전자제품보다는 이라크의 대세는 남부 지역에 파묻혀있는 석유가 약 800억 배럴이고 이걸 개발하기 위해 국제적 규모의 석유 컨소시엄들이 달려들고 있는 판이었다.

한화건설이 80억 달러 규모의 신도시 개발사업을 수주하여 현재 시공 중에 있다. 이름은 비스마야 신도시.

과거에는 이라크에도 대한항공이 취항했다. 직항은것. 보잉 707로 취항할때는 아랍에미리 아니고 제3국인 태국에 중간 기착하는 형태였다.[18]

가까운 미래에 다에시가 축출되고 난 뒤에 재건을 시작하면,더욱 우호적인 관계로 접어들 전망이다.

외교공관의 경우 이라크 바그다드 '그린존' 내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위치해 있다. 주한 이라크 대사관은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에 위치해 있다.

2018년 9월 18일에 이라크의 살만 알리 하싼 알주마이리 기획부 장관이 방한하면서 이라크 재건 사업에 한국 기업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8.3. 북한과의 관계[편집]

북한과는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인 1968년에 일찍이 수교하여 단독 수교국으로 부상하였으나 1980년에 일어난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라크의 적대국인 이란을 북한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지원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한과는 1980년에 단교하였다.

8.4. 러시아과의 관계[편집]

러시아와는 매우 가까운 관계이다. 그리고 소련시절부터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에도 지금도 매우 친한 편이다.

9. 국기[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Iraq_%281921%E2%80%931959%29.svg.png

이라크 왕국 시기의 국기(1932~1959). 요르단 국기와 매우 유사하다. 그도 그럴 게 당시 이라크 왕실은 요르단과 같은 가문인 알 하심 가문이었으며, 요르단과 이라크는 혈맹+형제국으로 매우 우호적인 사이였다. 뭐 1958년 쿠데타로 이라크에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된 현재에도 이라크와 요르단의 관계는 나쁘지만은 않다. 국기에 들어있는 7각별 두 개는 이라크의 주요하천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상징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Iraq_%281959-1963%29.svg.png

카심 장군의 쿠데타 이후 들어선 공화국 정권(1959~1963)의 국기. 1963년 바트당의 쿠데타로 카심 정권이 전복될때까지 약 5년밖에 사용되지 못 했다.

파일:320px-Flag_of_Iraq_(1963-1991);_Flag_of_Syria_(1963-1972)_svg.png

바트당 쿠데타 이후의 국기(1963~1991). 가로 적백흑의 삼색기 안에 초록색 별 3개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 국기 안에 들어간 초록색 별 3개는 원래 이라크의 아랍 연합 공화국(이집트와 시리아가 결성한 연합 공화국) 참가 구상을 상징했었으나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 초기였던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쓰였으며, 같은 시기 바트당의 쿠데타로 바트당이 집권했던 이라크의 이웃나라 시리아에서도 1960년대에 이 국기를 사용했었다.[19]

파일:320px-Flag_of_Iraq_(1991-2004)_svg.png

걸프 전쟁 당시에 제정된 국기(1991~2004). 1990년 쿠웨이트를 상대로 걸프전쟁을 일으킨 와중에 전쟁 발발 이듬해인 1991년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별 사이에 아랍어 문자인 알라후 아크바르를 추가해 새로 개정했으며 초록색 별의 상징도 바트당 정부의 슬로건인 "통일, 자유,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사담 후세인 독재 정권 말기까지 사용되었다.

파일:Flag_of_Iraq_(2004-2008)_svg.png

이라크 전쟁,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에 쓰던 국기(2004~2008). 별 사이에 새겨진 아랍어 문구의 글씨체가 고대 아랍어 문자인 쿠픽체로 바뀌었다.

파일:이라크 국기.png

현재의 국기. 2008년에 바뀐 것이다. 이전에 사용하던 국기에서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이끌던 바트당의 슬로건인 '통일, 자유, 사회주의' 를 뜻하는 세 개의 초록색 별을 삭제하고 'الله أكبر (알라후 아크바르)' 라는 문구만 남기었다. 사실 후세인 정권 시기 억압받았던 이라크의 쿠르드족들이 별이 그려진 후세인 시대때 사용되어 온 이라크 국기 사용에 격렬하게 반대했었고, 후세인 축출 후 새로 집권한 이라크 정부 측에서도 후세인 잔재를 없애자며 2008년에 국기 개정을 추진해 결국 초록색 별 3개를 삭제하고 별 사이에 끼워져 있던 아랍어 문구만 남기고 개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라크 내 일각에서는 이 국기가 너무 밋밋하고 국가를 상징하는 상징성이 없는 깃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다, 원래 초록색 별이 그려진 이라크의 국기는 후세인 집권 이전에도 썼는데 왜 삭제했냐며 별 3개와 쿠픽체로 수정된 아랍어 문구가 그려진 2004년 후세인 축출 이후 제정된 국기를 다시 부활시켜서 국기 안의 초록색 별의 상징을 새롭게 변경, 적용하거나, 알라후 아크바르 문구를 지우고 1963년에 제정된 별 3개만 그려진 이전 이라크 국기를 다시 꺼내서 쓰거나, 2011년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고 카다피 정권 이전 1950, 60년대 알 세누시 왕정 시대때 쓰던 적흑녹의 3색기 국기를 다시 채택한 리비아처럼 옛날 하심 왕정 시대때 쓰던 국기를 다시 채택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1963년 이래 쓰던 기존의 적백흑 3색기 국기를 없애고 새로 국기를 제정하자는 의견들이 있다고 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60px-Proposed_flag_of_Iraq_%28Coalition_Provisional_Authority%2C_2004%29.svg.png

2004년에 제안되었던 새 이라크 국기. 이 새로운 국기는 아랍권에서 외면하던 월성기를 이슬람권이라는 이유로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이라크인들은 물론 이라크군이나 친미 정부 수반들조차도 아예 거들떠도 안 보고 듣보잡 취급하여 잊혀졌다. 실제로 새로운 이라크군 공식 행사에서 이 국기를 매달자 그 자리에 있던 친미 수반들이 벌떡 일어나서 당장 내리라고 항의했고 군인들도 노려보는 탓에 미국 측이 놀라 이 깃발을 내리고 종전 깃발을 할 수 없이 매단 적도 있다.

이는 하얀색-파란색 배치가 적대 국가인 이스라엘의 국기를 연상시키는 점도 한 몫 했거니와 초승달을 보통 노랑, 녹색, 빨강, 흰색으로 칠하고 파란 초승달은 찾아볼 수 없는 이슬람권의 배경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만들었다. 사실 파란 배경에 초승달이 들어간 국기는 우즈베키스탄이나 위구르처럼 튀르크권에서는 꽤 흔한 편이고, 아예 1930년대 동투르키스탄의 국기처럼 파란 초승달이 들어간 국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파란색은 튀르크족의 상징색처럼 쓰인 거라 아랍권인 이라크에서 쓸 이유는 없다. 게다가 초승달과 별이라는 디자인 자체도 월성기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튀르크계 국가들이 국기로 주로 쓰기 때문에 서아시아의 아랍권 나라에선 이 국기를 하나도 쓰지 않으며 오히려 오스만 제국 시절에 탄압받은 적이 있어 이 문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그저 "초승달=이슬람"일 것이라고 무지로 만들어 낸 미국의 실수다. 그래서 이 깃발은 하루도 매달지못한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10. 국가[편집]

이라크의 국가 Mawtini(나의 조국)는 원래 팔레스타인의 유명 시인 이브라림 투칸이 쓴 시에다가 곡조를 붙인 노래이다 이 노래는 1967년까지 팔레스타인에서 사용되었다가 이라크에서는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사용되고있다



팔레스타인 버전 가사와 음 모두 동일하다

11. 관광[편집]

파일:great-mosque-of-samarra-in-samarra-iraq-14.jpg
사마라의 대모스크

기원전 4000년대까지 올라가는 매우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수많은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남겨놓은 건축물들이 많기 때문에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현재 이라크 남부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20]이며 이라크에 이미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대부분 남부에서 체류하고 있다. 반면, 이라크 북부는 2017년까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라는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장악되어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현재 IS는 공식적으론 이라크에서 완전 소탕된 상태이다. 그러나 아직 테러리스트의 활동이 빈번하고 인프라가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어 여전히 전후 혼란을 겪고 있기에 방문하기 위험한 곳이다. 아직까지 이라크는 여권법으로 입국이 금지된 국가이므로 대한민국 국민은 가지 않아야 한다.

이곳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났던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빌로니아 및 신바빌로니아(칼데아)의 유적지인 바빌론이나 아시리아, 수메르, 사산 왕조의 크테시폰 등의 유적지들이 있기에 충분히 여행객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및 다에쉬의 만행으로 인해 아시리아의 유적지, 하트라가 파괴되었고 다른 문화재들도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지금과 달리 걸프전이 발발하기 전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했다.. 걸프전 이후에도 방문이 힘들긴 했지만 요르단을 통하여 이라크로 방문할 수는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 이후에는 불안정한 치안과 분쟁 때문에 더욱 방문하기 어려워지게 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1월 이라크 전 지역을 당시 여행경보 3단계였던 '긴급한 용무가 아닌 한 되도록이면 귀국하라'는 여행자제로 지정했다. 2004년 4월엔 결국 이라크에 대한 방문이 사실상 금지되었다. 이라크 방문 시엔 반드시 외교부에 신고서를 제출토록 했는데 신고서 없이 방문한다 해도 관련 법률 미비로 현실적인 제재 방안이 없었다. [21] 그러다 2007년 8월 여권법 개정으로 여행금지제도를 정한 이후에서야 이라크 방문은 확실히 금지되었다. 해외의 경우,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2004년 초반까지는 미국이나 영국같은 나라에서 관광 등 목적으로 방문이 잠시 가능했다고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어 내전이 터지자 자국민을 즉시 대피시켰고 사실상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한다.

지금은 여행금지국가지만, 이웃나라 시리아나 남쪽 먼 나라 예멘, 인도양 바다건너 소말리아 같은 다른 아프리카, 중동권의 여행금지국가들로 지정된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상황이 그나마 많이 좋아진 편이다. 2017년 12월 이후 현재 다에쉬들을 모두 축출하여 전쟁이 사실상 끝났고, 전후 수니파 이슬람교와 시아파 이슬람교가 권력을 두고 싸웠던 적대감정을 청산하고, 쿠르드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여행금지국가에서 해제될 가능성도 있다.

12. 기타[편집]

한국군 비전투병이 파병되었던 아르빌은 쿠르드족 자치구역인 쿠르디스탄 지방정부(Kurdistan Regional Government)가 세워지면서 그럭저럭 안정을 찾았고 전쟁으로 박살난 이라크 프로리그도 열렸다. 이 지역이 연고지인 아르빌 FC가 한때 AFC 챔피언스리그에도 나오기도 했다.[22] 물론 쿠르드인 자치정부라 이웃한 터키가 종종 대포를 쏴대며 시비를 거는 문제는 있지만...

오랜 내전으로 이라크 사회 전체가 병영화되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중동 전문매체 MEE에 따르면, "학생들이 군복을 입고 다니고 심지어 여성들도 군복 무늬의 속옷을 입는 게 유행이 됐을 정도"라고 한다.#

엑소시스트의 첫 부분에서 메린 신부가 참가한 발굴 현장은 이라크의 유적이다. 그리고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에선 왠지 몰라도 소련군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국가별 특수 유닛 중에서 가장 흠좀무한 성능을 자랑하는 데졸레이터가 이라크의 유닛이라서 소련 플레이어들은 너도나도 이라크를 고르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전직 국회의원이 운영했던 홈페이지에서는 금지어다.

내무부 대변인 사드 만 이브라힘(Saad Maan Ibrahim)이 독일 ARD와 인터뷰를 했는데 영어로 슬픈 사람이란 뜻인 'sad man' 을 떠올린 사람들이 많고 때마침 본인도 적절히 슬픈(?) 표정을 지어줘서 거의 필수요소로 떠올랐다. 해당 프로그램 전부.



이라크 바스라는 최고 기온이 58.8도였다!

2005년 이라크는 기존의 토요일~수요일에 근무하던 것을 일요일~목요일에 근무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금요일은 여전히 휴일인 대신 목요일을 평일로 바꾸고 토요일을 주말로 지정한 것.

이라크도 한국처럼 10월 3일이 공휴일이다.

13. 이라크 국적, 출신의 캐릭터[편집]

[1] 국기와 국장에 새겨진 초록색 문장은 이 표어를 적은 것이다.[2] 이때 당시 후세인의 아들 파이살과 함께 행동했던 영국 정보원 로렌스의 일대기가 《아라비아의 로렌스》란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여러모로 과대포장된 이야기다.[3] 현재까지 이 지역의 다수를 차지하는 튀르크멘족은 이라크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이나 혼란이 계속되면서 차라리 터키로 합병하자는 분리주의자들도 늘고있다.[4] 2008년 쿠르드족의 야지디 교도들이 살던 지역에선 야지디교인 소년이 이슬람 시아파 소녀를 사랑한다며 이슬람에 대한 증오가 넘치던 야지디 교도들이 가서 그 소녀를 때려 죽였다. 이걸 찍은 동영상이 해외로 퍼져 한국 방송에서도 나왔고 이에 대한 시아파 과격파들의 보복 공격으로 많은 야지디 교인들도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기독교 외 다른 소수 종교들도 헬게이트가 열렸다.[5] 주로 알 카에다나 그 분파들이었지만 알 카에다 지도부가 다에쉬와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별개의 단체가 되었다.[6] 2007년 아시안컵에서 이라크가 연이은 선전을 거두어서 축제분위기가 되었을때에도 테러가 터졌고 선수의 가족들도 테러의 마수에서 피해가지 못할 판이었으니 말 다했다.[7] 물론 미군이 전후복구작업을 무능하게 진행하고, 부정부패로 인해 중간에서 빠져나가는 금액도 상당한 영향이 크지만 테러의 영향으로 치안이 불안해지다보니 인프라 공사가 줄줄히 지연먹은점은 결코 무시할수가 없다.[8] 무법천지를 기회삼아 먹고 살기 힘들고 치안공백인 지역에선 서로 청소하려고 덤빈다.[9] 그도 그럴 것이 독립 초기 이라크는 요르단의 왕실과 같은 뿌리였던 하심 왕가가 다스리고 있었던 군주국이었기 때문이다. 1958년 카셈 장군의 쿠데타로 왕정이 붕괴되자 잠시 악화된 적도 있었으나, 1963년 카셈 정권 실각 후 다시 관계가 회복되었다.[10] 물론 이라크뿐만 아니라 모로코, 레바논, 알제리, 튀니지, 쿠웨이트, 오만 등 카타르와 국교 단절과 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카타르의 편을 들던 아랍권 국가들도 몆몆 있긴 있었다. 현재 이들 아랍권 나라들은 사우디,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주도의 카타르 단교, 보복 사태 이후 외교적으로 고립된 카타르의 최대 무역 대상국으로 급부상했다.[11] 사실 이라크 입장에서는 자국 군대가 오합지졸 수준인데다 미국은 공습에만 의존하고 지상군 투입 등 적극적인 개입은 꺼리고 있으며 다른 아랍 국가들은 모두 수니파라 시아파 정부인 이라크를 도와주려고 하지를 않으니 그나마 이란의 도움이 절실하며, 이란 입장에서도 이라크 정부가 붕괴되고 다에쉬에게 장악되면 이란도 위험해지니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12] 물론 미국 정부는 이란과의 군사협력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지상 작전에서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휘하는 시아파 민병대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13] 사실 민족부터 틀린데 이란은 페르시아인이고 이라크는 아랍인이다. 특히 이란은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란-이라크 국경 지역에서 살던 이라크인들과 이라크군 포로를 학살, 고문하는 전쟁범죄도 자행했다.[14]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이 터키의 참전을 요청했다가 친미 이라크 수반들이 터키군이 이라크 안으로 들어온다면 저항 세력이나 이라크군이 다같이 손 잡고 싸울 거라면서 으르렁거리는 바람에 미국이 화들짝 놀라 전면 없던 일로 했을 정도이다. 아랍인들에게는 서방권보다 오히려 더 증오하는 대상이 터키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터키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로부터의 모술 탈환전에 개입하려고 했을 때 이라크 정부가 노발대발했던 것도 그 맥락.[15] 그리스에 사는 한 이라크계 이민자가 한국인 여행자와 만나서 친해져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리스 사람들이 이슬람을 믿는 자신을 처음에 보면 터키 사람이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럴 땐 "난 이라크 사람입니다. 터키는 이라크에게도 원수에요. 같은 이슬람이라고 더 좋은 거 없었어요" 라고 하면 그리스 사람들은 대부분이 '맞아요!' 라면서 '이라크라면 수백여 년 동안 터키의 압제 속에 고통 받은 게 우리와 똑같군요' 라면서 맞장구치는 게 많다고 할 정도이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 지배 시절에 되려 친오스만 그리스인들이 더 등용되었을 정도로 이라크나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 예멘 등 아랍 지역 국가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당했다.[16] 지금도 시아파 수니파 할 것 없이 터키는 이스라엘 다음가는 적 취급이고, 터키는 이스라엘과 매우 우호적이다. 이 감정을 모르고 "아라비아의 로렌스"같은 것을 읽으면 뜬금없이 보이는 얘기가 많다.[17] 과거에는 증오 일색이었지만 현재는 미국의 공격으로 후세인 체제가 붕괴된 점을 부정할 수 없고 게다가 미군이 치안을 유지해 주는 동안에는 그래도 시아파 기득권층의 횡포가 어느정도 억제되고 최소한의 안전이 유지되는 효과가 있었기에 수니파의 경우에는 이전과 달리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특히 시아파의 수니파 탄압을 막은것이 미국이다.[18] 당시에는 중국 영공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돌아서 갔던 트도 기착했었다. 즉, 바그다드-아부다비-돈므앙-김포 경로다.[19] 다만 이 국기를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까지 써먹던 이라크와 달리 시리아는 1970년대 아사드 정권의 집권으로 이 국기를 폐지하고 이집트, 리비아와의 아랍 공화국 연방을 구상하고자 이집트, 리비아와 같이 노란색 매 문장이 들어간 국기를 쓰기도 했었고, 제4차 중동전 이후 이집트의 이스라엘 화해 정책에 격분한 나머지 1980년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결성한 아랍 연합 공화국 시기의 별 두 개가 들어간 국기를 도로 제정해 쓰게 되었다.[20] 하지만 다에쉬가 장악한 이라크 북,동부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을 뿐이지, 이라크 남부 지역 역시 치안 상황이 나쁜 건 마찬가지다.[2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2&aid=0000032930[22] 아르빌 FC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동네북 되면서 지금은 AFC컵에 나오고 있다. 2011년에는 이라크 알 타라바와 같이 이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23] 이라크 내 쿠르드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