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마라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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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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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다니엘 파사레야
(1978~1986)

디에고 마라도나
(1986~1994)

오스카 루게리
(1994)


디에고 마라도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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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FIFA 월드컵

골든 볼
디에고 마라도나

실버 볼
하랄트 슈마허

브론즈 볼
프레벤 엘케어 라르센

1990 FIFA 월드컵

골든 볼
살바토레 스킬라치

실버 볼
로타어 마테우스

브론즈 볼
디에고 마라도나

월드사커 1986 올해의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


SSC 나폴리 영구결번

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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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디나모 브레스트 회장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 감독

이름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프랑코
(Diego Armando Maradona Franco)

생년월일

1960년 10월 30일 (57세)

국적

아르헨티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png

출생지

부에노스 아이레스 (Buenos Aires)

신체조건

165cm, 70kg

주로 쓰는 발

왼발

등번호

10번 (SSC 나폴리 지정 영구결번) (국가대표에서 10번)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유소년 클럽

에스텔라 로하 (1968~1969)
로스 세볼리타스 (1970~1974)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1975~1976)

소속 클럽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1976~1981)
CA 보카 주니어스 (1981~1982)
FC 바르셀로나 (1982~1984)
SSC 나폴리 (1984~1991)
세비야 FC (1992~1993)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93~1994)
CA 보카 주니어스 (1995~1997)

지도자

만디유 데 코리엔테스 (1994)
라싱 클럽 (1995)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2008~2010)
알 와슬 FC (2011~2012)
알 푸자이라 FC (2017~2018)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 (2018~)

국가대표
(1977~1994)

91경기 34골

종교

가톨릭

1. 개요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2.3. 플레이 스타일 및 평가2.4. 메시와의 비교2.5. 펠레와의 비교2.6. 라이벌
3. 흑역사 및 논란
3.1. 도핑3.2. 마약3.3. 탈세3.4. 기타
4. 감독 경력5. 대인 관계6. 트리비아7. 마라도나에 대한 말, 말, 말8. 어록9. 경력
9.1. 대회 기록9.2. 경기 기록

1. 개요[편집]



나폴리의 신이자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레전드

펠레와 함께 축구 역사의 양대산맥 중 하나이나, 금지약물 복용이라는 흑역사가 공존하는 선수

아르헨티나축구선수 출신 감독, 축구경영인.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알 푸자이라 FC 감독을 맡았으며, FC 디나모 브레스트 회장이자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 감독이다.

1960년 10월 30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모두에게 인정받는 초특급 유망주였으며, 1976년 10월 20일, 16세의 나이로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소속으로 데뷔하여 아르헨티나 리그의 역대 최연소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후반전 초반에 교체로 투입되자마자 일방적으로 밀리던 경기 양상을 단숨에 반전시켜 다음날 아르헨티나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그의 실력을 잘 알고 있던 동료들은 오히려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훗날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는 호세 페케르만은 이 시절 1군 선수들 모두가 일찌감치 훈련을 종료하고 유소년 팀에 놀러가 마라도나를 구경하던 일을 회상했다.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선수가 나타난 것이다.

2. 선수 시절[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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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가 있는 라 알비셀레스테는 우승후보였지만 마라도나가 없는 라 알비셀레스테는 이빨빠진 호랑이였다.

디에고 마라도나/국가대표 경력 참조.

2.3. 플레이 스타일 및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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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드리블러

득점 뿐만 아니라 경기 대부분의 요소들에 관여하며 플레이 전체를 주도함으로서 팀을 이끄는, 분업화가 이루어진 현대축구에서 어쩌면 다시 나오지 못할 진정한 의미의 원맨캐리[1][2]를 보여준 선수

마라도나의 플레이 스타일은 드리블링, 패싱, 플레이메이킹, 슈팅까지 모두 최고수준임을 과시한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만능 프리롤. 드리블 실력은 단연 역대 최고라는데 이견이 없다.

마라도나는 현역 시절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상당한 근육질이며, 몸도 상당히 단단하다. 그러다보니 마라도나와 몸싸움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상대방이 밀려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렇다고 마라도나의 드리블이 투박하다는 것은 아니다. 마라도나의 드리블이 상대 수비수 입장에서 버거운 점은 근육질의 단단한 몸을 바탕으로 기술적 측면에서의 드리블링 자체도 뛰어나다보니 몸싸움으로도, 스피드도 빨라서 에이스 킬러들이 매번 발목을 집요히게 노리는 살인태클이 날아오는 것을 지능적으로 요리조리 잘 피하기 때문에 태클로 뺏는 것도 쉽지가 않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나타난 마라도나 상대법중 하나는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마라도나의 발목을 노리는(...) 방법까지 대두될 정도다. 폭넓은 시야와 대인마크도 쉽게 따돌리는 테크닉을 기반으로 패싱과 연계를 하면서 두세명의 밀집수비도 그냥 손쉽게 붕괴시켜 버린다. 그래서 "압박축구는 마라도나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전술이다"라는 속설도 있을 정도다.

비록 마라도나는 단신이지만 신들린 볼 컨트롤에다 패스도 잘하고 몸싸움도 잘하고 힘과 순발력도 좋고 점프력까지 높아서 헤더도 잘하는데다 프리킥페널티킥까지 잘 차는 완벽한 선수다. 플레이 패턴과 콤비네이션을 예측하는 경우에도 막기가 쉽지 않으니 마라도나를 상대로 마크를 해야 되는 수비수의 입장에선 기가 질릴 지경이다.

게다가 마라도나의 왼발 킥은 최고수준의 정교함과 힘을 모두 겸비해서 정지 상태에서도 위협적인 플레이가 수시로 터져나온다. 그리고 운동량과 운동반경에서도 하프라인 아래부터 2선, 1.5선, 1선까지 너른 움직임을 왕성하게 가져가면서도 정형적이지도 않아서 대인방어는 물론이고 지역방어도 거의 불가능하다.[3]

아르헨티나 리그와 나폴리에서는 주로 미드필더임에도 리그와 컵 득점왕에도 오를 정도로[4] 문전 침투와 슛팅도 최고수준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아예 1선 포워드로도 플레이를 한 기간이 있을 정도. 단신인데도 헤딩능력도 준수했으며, 프리킥 능력도 최고였다. 한 마디로 어지간하면 그냥 못 막는 만능 슈퍼크랙이 바로 마라도나였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오른발의 사용 빈도와 정확도 모두 왼발에 턱없이 못 미쳤다는 점. 때문에 양발잡이 골게터만큼 변칙적인 슈팅 타이밍을 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전문 골잡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왼발 편향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드리블 실력과 준수한 득점력을 자랑했다는 사실이 마라도나의 왼발 테크닉이 얼마나 사기적이었는지를 반증한다.

마라도나는 물론 일개 플레이어로서도 역대 최고의 반열에 놓이는 선수였지만, 동료들을 잘 이용하면서도 이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있어 뛰어난 리더라는 점도 언급할 수 있다. 실제로 마라도나는 유럽 진출 이전 보카 주니어스에 있던 시절에 이미 팀의 주장을 맡을 정도로 강인한 리더십을 가진 선수였다. 국가대표로서도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주장이 아니었지만, 1인의 영향력이 가장 강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팀 곳곳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우승을 이끌었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1994년 미국 월드컵[5]에도 계속해서 주장으로서 역할을 맡았다. 플레이스타일 상으로도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단순한 크랙으로서만 인정받았던 것이 아니라,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주위 동료들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순간 정확한 킥력으로 볼을 바로바로 배급하는데도 능했다. 이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마라도나는 단순히 개인으로서만 빛났던 것이 아니라, 본인이 소속된 팀의 클래스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선수였다.

마라도나에 대한 위상과 평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 이래 최고의 선수이자, 펠레와 더불어 전 인류 역사 최고의 축구선수로 극찬을 해도 부족하지가 않다. 신문지상에서 간혹 90년대 말의 선수들에게 혼자의 힘으로 경기를 바꿀 수 있는 선수라는 과장된 수식어를 쓰는데, 마라도나는 그 역량이 충분했던 선수였고 "혼자의 힘으로 90분을, 21명을 지배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선수"라는 호칭이 붙여질 만하다.

그가 전성기 시절, 우승컵을 들었던 팀인 SSC 나폴리아르헨티나의 다른 멤버들을 감안해 볼 때, "축구에서 한 선수가 팀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가?"의 한계치를 평가하는 사례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중하위권 수준인 나폴리를 UEFA컵 우승까지 이끌고 나간 것은 다름아닌 마라도나 단 한 명의 능력이다. 그가 당대의 수비 시스템을 붕괴시킴으로 사키가 압박 수비를 고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마라도나는 매번 시합에서 기본으로 2명, 3명, 많게는 5명 이상이 따라붙으면서 온갖 거친 플레이를 받으면서 발로 걷어차고, 유니폼을 잡아당기고, 공이 아닌 발목을 향한 살인태클의 위협에 시달렸으니 인격자가 아닌 이상 화가 머리 끝까지 날 만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필연적으로 "매춘부"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헐리우드 액션의 달인이 되었을 수 밖에 없다. 모두가 메시처럼 안 넘어지길 바랄 순 없는 것이다. 게다가 메시도 정말 안 되면 액션을 쓰고.[6]

2.4. 메시와의 비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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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오르테가, 후안 로만 리켈메, 하비에르 사비올라, 파블로 아이마르, 카를로스 테베스, 세르히오 아구에로 등등 아르헨티나의 수많은 축구신동들은 이후 '포스트 마라도나'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대부분은 마라도나와 축구 포지션 및 스타일도 달랐으며[7],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이후부터 2015년 현재까지 이르러서는 리오넬 메시가 '마라도나의 재림'이라는 칭호를 받는 등, 지금까지의 아르헨티나 축구신동 중에서 포스트 마라도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기대받고 있다.[8] 마라도나 역시도 "그동안 새로운 마라도나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수십 번 반복되었다. 그러나 메시만이 내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재능을 갖고 있는 선수다." 라고 하며 메시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고 나의 마라도나는 메시라고 할 정도로, 실제로도 메시를 무척 아낀다. 2010 남아공 월드컵때 감독을 맡은 당시에도 팀의 에이스인 메시를 무척 싸고 돌았고 그후로도 계속 조언과 격려를 해주고 있다.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메시를 여러 이유로 혹독하게 까는 경향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곤 하고, 월드컵 우승이 없는 메시에게 우승으로 증명할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메시는 이런 비교에 대해 "펠레, 마라도나와 비교되는 것은 정말 영광이지만 그들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다. 그저 팀과 나의 발전을 위해 축구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으며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가장 존경하는 선수 역시 마라도나. 물론 역대최고 역시도 당연히 마라도나라며 존경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마라도나는 "누군가 나를 능가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르헨티나인이기를 바란다. 그 인물이 메시라면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라고 말한바 있으며 "나의 커리어는 이미 끝났지만 메시는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에는 펠레와 나의 반열에 오르게될 것이고 우리는 훗날 역대 최고의 자리를 놓고 서로 비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도 말한 적 있다.

장지현 위원은 두 선수를 사실상 비교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는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80년대의 축구와 현대 축구가 사실상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파고들자면, 1980년대 축구는 그 어느 시기보다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이 두드러지던 시대였다.

마라도나는 개인적인 플레이메이킹 뿐 아니라 드리블링과 연계 능력, 경기 내의 템포 조절, 직접적인 득점력, 수비 가담까지 모든 부분에서 단 한 명의 클래식 공격형 미드필더가 책임을 지는 시대에 나타난 선수였다. 압박이 등장하고 1인 공격형 미드필더가 더 이상 모든 부분을 책임질 수 있는 시대가 지나면서, 플레이메이킹은 후방 플레이메이커와 전방 플레이메이커로 이원화된다. 이러한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대표적인 선수는 호셉 과르디올라,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페르난도 레돈도등이었다. 한편, 후위에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좌한 플레이메이커도 태동되었는데 이러한 선수의 유형의 대표선수는 지네딘 지단이라 할 수 있다.

마라도나가 메시에 비해 확연하게 우위를 가져가는 분야는 동시대를 비교할 때 원터치 플레이와 패스 스펙트럼의 다양성, 팀원의 움직임을 최대한 살리고 맞춰주는 플레이메이킹, 다채롭고 변칙적인 무브먼트, 수비력, 우월한 근력과 지구력을 바탕으로 한 활동량이다. 마라도나는 메시처럼 섬세한 플레이지를 하진 않았지만 이는 우수한 피지컬에 의존하는 플레이 스타일상의 차이이다. 당시 중하위권 수준의 팀을 이끌고 빌드업에서 골게터까지 모든 역할에 관여하고 수행해야 하는 진정한 원맨팀에서 마라도나가 세얼간이라는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진과 함께한 메시만큼의 득점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였다. 메시 역시 FC 바르셀로나라는 현세대 최고의 팀 중 하나에서 축구사의 역사를 써내려가고있지만, 마라도나처럼 중하위권 팀을 이끌고 스쿠데토를 차지하고, UEFA컵을 홀로 우승시키거나 월드컵을 우승까지 떠먹이는 하드캐리를 하지는 못했다[9].

반면 메시는 비교적 균등한 양발능력을 활용한 득점력과 슛팅에 관여하는 전반적인 능력치, 더 섬세한 테크닉을 기반으로 하는 드리블과 그 후속 플레이로 라스트 패스나 슛팅까지 이어지는 파괴력, 연계나 침투 이후의 골 결정력에서 더 우위를 점한다. 왼발 편향으로 킥의 반경이 비교적 좁은 마라도나는 메시만큼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슛을 하지 못하며,[10] 중거리 슛을 비롯한 정확도 등이 메시보다 많이 부족하다.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거나 기계처럼 원투패스를 주고 받는 능력 등에서는 메시보다 떨어진다. 반면 메시는 플레이메이킹에서 마라도나보다 떨어지는데, 이는 포지션 자체가 더 공격적인 메시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11]

또 메시는 마라도나처럼 온 몸을 이용한 패스를 쏘아대지는 않는다. 메시의 탈압박은 본인의 뛰어난 발밑 기술을 통한 능력이라면, 마라도나는 볼이 오자마자 아웃사이드, 힐, 발바닥, 어깨나 가슴 등등을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온 몸을 이용해 원 터치로 다른 선수에게 넘겨버린 후 다른 곳으로 파고 들어가는 형식으로 플레이메이킹을 했다. 물론, 그 볼 순환에 있어 중심 플레이어는 마라도나였고 마라도나 개인 기량에 팀 전체가 큰 의존을 했다. 이는 마라도나 시대의 볼만 잡으면 백태클이 들어오는 너무나 폭력적이었던 축구 배경과, 일인 플레이메이커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시대에서 자연스레 나타났던 플레이 성향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드리블 비교에서 서술했듯 마라도나의 신체 구조는 보면 메시가 아니라 되려 카를로스 테베스와 유사하다. 그래서 피지컬에 의존한 플레이도 가능하고 거기에 왕성한 활동량까지 지녔으니, 메시가 마라도나급의 하드웨어를 지녔다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은 아르헨티나가 우승했을 확률이 높다. 이 월드컵 당시 메시는 4강 네덜란드전부터 체력부족을 노골적으로 호소하는 모습이 역력해서 그 이전의 경기들과는 달리 활약이 신통치 않았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서 8강 독일전에서 역시 메시는 체력부족을 호소했다.[12] 심지어 201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역시 메시는 칠레전에서 노골적으로 체력 부족을 호소했으며 승부차기에서 체력 부족이 원인이 된 집중력 저하로 인해 약점이었던 페널티킥에서 또다시 실축을 하고 만다.

결국 시대에 따른 축구의 흐름 변화를 전혀 살피지 않고 메시와 마라도나를 1대1로 득점력이나 패싱력 등으로 비교하며 누가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답이 나올 수 없다. 마라도나와 메시를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위상에 있어서만 가능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한 장지현위원은 사실상 두 선수의 위상은 비슷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요한 크루이프 역시 두 선수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우위를 말하는 관계자, 전문가들이 있기는 하나,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스타일, 장점, 커리어 등에서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서 갈리는 정도고, 어느 쪽이 선수 가치면에서 총체적으로 우월하다는 식의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마라도나 vs 메시에 대한 비교분석을 한 칼럼.

이 칼럼에서 한 번 더 풀어 설명해 줄 만한 점은 젊은 층이 현대로 올 수록 압박의 강도가 강해진다는 것, 그리고 정작 1990년대가 공수간격이 가장 좁았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공수간격이 좁을수록 모든 선수들이 더 밀착하고 더 가까운 상태이므로 압박의 강도가 강하다. 더군다나 룰이 거친 플레이를 2010년대보다 훨씬 더 많이 용인했으므로 반칙이 엄청나게 더 거칠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이 시대 미래 축구에 대한 예측은 기술보다는 피지컬에 집중했으며, 아프리카 출신 선수가 대두될 것이며 아프리카 대륙이 축구적으로 더 강해질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즉,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몸으로 비비고 부딪치고 충돌하는 행위는 1990년대가 훨씬 강도가 높았으며, 조직적인 압박은 2010년대가 더 강하다. 1990년대에는 처런 식의 거친 몸싸움과 더불에 마라도나는 현대 첨단 의학의 수혜를 입지 못한 것도 감안해야 할 시대적 환경이였다.

또한, 득점력 등 공격포인트 부분에서도, 1990년을 전후해서 축구가 가장 득점이 덜 나던 시절이라는 것을 무조건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가장 공수간격의 폭이 좁은 상태이기에, 선수들이 훨씬 더 달라붙어서 경기할 수밖에 없었고, 거칠기까지 한 데다가, 오프사이드 룰 완화나 골키퍼는 백패스를 손으로 잡는 것이 가능했던 등[13] 전체적인 축구경기의 평균 득점 차이가 난다.

하지만 앞서 서술한 장지현 위원의 말처럼 시대가 다른 두 선수의 비교에 큰 의미는 두지 않는것이 좋다.

2.5. 펠레와의 비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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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팬들의 영원한 떡밥 어깨뽕이 과하다

축구 황제 펠레에게 선수로서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보니 쌍방간의 비교 떡밥이 상당히 흥했다.

축구사에 영원히 남을 이 떡밥에서 마라도나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은 마라도나는 펠레와 달리 월드컵 뿐 아니라 유럽리그에서마저 독보적인 업적을 쌓았다는 점,[14] 더군다나 펠레와 같이 뛴 브라질의 축구대표팀 멤버 역시 호화찬란하기 그지 없는 데에 비해 마라도나와 같이 뛴 아르헨티나의 축구대표팀 멤버들의 경우는 거의 마라도나에게 의존한다는 점, 중하위권 수준인 나폴리UEFA컵 우승으로 이끈 주역 역시 마라도나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펠레에게 훌륭한 동료가 많다는 말을 역으로 뒤집으면 그런 기라성 같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펠레가 당당히 최고로 빛난다는 소리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반면 펠레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압도적인 골 기록, 17세의 나이에 기록한 월드컵 4강에서의 해트트릭, 결승에서 2골 기록, 월드컵에서 3번씩이나 우승하게 만든 업적 등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펠레의 손을 들어준다. 또한, 펠레가 현역이던 시절은 유럽과 남미의 리그 수준이 차이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는데, 실제로 펠레의 소속팀이었던 산토스 FC는 숱하게 유럽의 강호들에게 초청되어 투어 경기를 벌이면 대부분 압승을 거둘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펠레는 득점력 뿐만 아니라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6경기동안 28회의 키패스를 기록한 그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기회 창출 능력 역시 뛰어난 선수였다는 점 역시 펠레가 마라도나보다 나은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활동한 시기도 포지션도 다를 뿐더러 누구 한명을 억지로 추켜세워야만 두 사람의 위대함이 부각되는 것은 아니니 건전한 네티즌이라면 심심풀이로 비교해보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좋다. 한마디로 펠레는 펠레고 마라도나는 마라도나일 뿐이다.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서술하면 마라도나가 활약할 때부터 은퇴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는 축구팬들에게 마라도나가 우세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펠레가 마라도나보다 낫다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은 기록만으로 축구선수를 평가하는 축알못 또는 좆문가 취급을 받는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조차 펠레의 편을 들면 마라도나의 팬들에 의해 과거의 뽕에 취했다는 식의 폄하를 당했고, FIFA에서 20세기 최고의 선수를 선발할 때 펠레와 마라도나를 공동수상자로 정했을 때 마라도나가 이에 반발하여 퇴장하자 사람들은 마라도나를 이해한다는 반응부터 피파와 펠레의 커넥션에 대한 음모도 공공연하게 돌기도 했다. 하지만 마라도나가 은퇴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러 마라도나가 은퇴한 지 20년이 넘어갔다. 펠레의 플레이를 직접 보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줄었지만 마라도나의 플레이 자체를 기억하는 사람 역시 줄어가고 있다는 뜻. 그리고 2004년의 펠레 에테르노[15]를 시작으로 펠레의 영상 자료가 과거에 비해 많이 발굴되었다. 또한 적은 표본이긴 하지만 옵타 등 스포츠 통계 사이트에서 골 기록 외에도 키패스 등 다른 스탯에서도 현재의 슈퍼스타들에 모자를 것 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골 기록만 있고 영상 자료는 없던 과거에는 축구팬들이 펠레가 단순히 골만 많이 삽입하던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영상 자료들로 인해 축구팬들에게 축구 전반에 뛰어난 컴플리트 포워드로서의 모습으로 각인될 수 있었다. 덕분에 현재는 펠레의 평가가 많이 올라간 모습이다.

은퇴 이후 지도자로서의 경력은 비교 자체가 애매한 편이다. 펠레는 일선 코치나 감독으로 활동하지 않고 브라질 체육부 장관 등 스포츠 행정가로서 주로 활동한 반면,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는 등의 일선 감독으로 활동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펠레와 마라도나 둘은 경쟁 의식이 있는지 틈만 나면 서로를 디스한다. 펠레는 "그딴 약쟁이가 내 라이벌? 내 다음은 크루이프지"라고 까고[16]마라도나는 "아이고ㅋㅋㅋㅋ 그 영감님 아직도 박물관 안 가셨음?"이라고 깐다. 펠레가 메시를 평가할 때도 "메시는 아직 크루이프, 플라티니, 디 스테파노 등 예전 스타들을 따라잡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마라도나를 쏙 빼놓을 정도. 이제 메시가 저 셋 다 따라잡겠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유치전 당시 대한민국을 지지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펠레가 브라질의 우방국인 일본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덕택에 1995년 한국의 월드컵 유치 홍보 계획의 일환으로 열린 한국과 보카 후니오르스와의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 약물 복용으로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후 나선 첫 공식전이었기에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다.

2011년 6월 들어서부터 두 어르신들께서는 서로의 후계자를 두고 싸우기 시작하셨다. 마라도나는 네이마르를, 펠레는 리오넬 메시를 까면서 서로를 디스한다. 마라도나 : 계획대로 펠레가 먼저 유망주 네이마르가 메시보다 낫다는 희대의 개드립을 시전하자 마라도나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그 영감이 약을 잘못 먹었나ㅋ 어지러워서 지가 뭔 말하는지도 모르나봄ㅋ 약이나 잘 먹으셈" [17]이라고 어퍼컷을 날리며 서서히 발동걸린 이 라이벌 디스대전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죄없는 본인들 후계자들만 희생시키고 있다는 반응이다. 메시는 유망주와 비교당해 어이털리고 네이마르는 죄없이 거품이라고 폭풍 까이고... 그리고 펠레의 저주[18]

사실 펠레가 마라도나를 칭찬하면 반대로 펠레가 뛰어나지기 때문에 펠레가 더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펠레는 마라도나를 까잖아? 안될거야 아마...

실제 축구 실력과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과거 마라도나가 진행하던 토크쇼에 펠레가 게스트로 초정된 적이 있었는데, 이 토크쇼에서 둘은 서로의 이름과 등번호가 마킹된 유니폼을 교환하고 마라도나는 펠레를 칭찬(이라기보다는 까지 않는)하고, 펠레는 마라도나의 마약 끊기 노력을 크게 칭찬하는 등.



둘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이 진행되었지만... 마라도나가 먼저 헤딩 대결로 서로에게 헤딩해서 공을 넘겨주는 것을 제안하고, 즉석해서 성사되었다. 길게 가지 않고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펠레가 이겼다. 심지어 마라도나는 자신보다 20살이나 더 먹은, 60대 무렵의 펠레에게 헤딩 실력으로 진 꼴이 되었다. 마라도나가 실수를 해서 공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마라도나에게서 한 30cm 떨어진 채 바닥으로 직행... 하던 것을 마라도나가 재빨리 캐치해서 펠레와 뜨거운 포옹하는 애드립으로 넘기며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제대로 봤다면 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고, 마라도나는 자신이 진행하던 토크쇼에서 굴욕을 당했다. 펠레가 칭찬할 때부터 예정된 결과

2.6. 라이벌[편집]

호사가들이나 대다수 해축팬들이 꼽는 마라도나의 라이벌펠레지만 현역시절 마라도나의 라이벌로 꼽힌 선수는 서독의 킹 칼레 칼 하인츠 루메니게, 프랑스의 마에스트로 미셸 플라티니, 브라질의 하얀 펠레 지쿠[19], 네덜란드의 검은 튤립 루드 굴리트, 역시 같은 네덜란드의 스트라이커의 교본 마르코 반 바스텐, 그리고 월드컵과 세리에에서 심심하면 만나서 경쟁했던 로타르 마테우스가 있다.[20] 이 중 본인이 최대 라이벌로 꼽았던 선수는 로타르 마테우스였다.

사실 엄밀히 보면 루메니게, 플라티니, 지쿠는 마라도나보다 약간 전세대로서 전성기가 겹치지 않아서 완전히 라이벌이라고 보긴 좀 어려운 면이 있다. 루메니게, 플라티니, 지쿠가 이미 세계 최고로 꼽히던 1980년대 초반에 마라도나는 아직 20대 초반이었다.[21] 반 바스텐, 굴리트, 마테우스는 동시대이지만 전형적인 센터포워드인 반 바스텐은 포지션이 달라서 직접적인 라이벌로는 비교되는 빈도가 낮았다.

이래저래 동시대에서는 굴리트와 마테우스가 라이벌로 많이 논해졌으나, 굴리트는 라이벌 포지션은 전성기 2년 정도에 그쳤고, 마테우스는 마라도나보다 몇년 늦은 1980년대 후반에 전성기가 찾아왔지만 엇비슷한 나이인 마라도나와 전성기가 어느 정도 겹치고 2의 월드컵 결승과 세리에의 우승길목에서 계속 마주쳤기에 라이벌 포지션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강한 인상을 줬다. 물론 마라도나의 전성기인 1979년부터 1988년까지는 마테우스는 마라도나의 퍼포먼스에는 감히 비교되지는 못했지만. 그 뒤로 마테우스는 마라도나와 붙으면서 종종 맞대결에서 승리하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판정승하기도 하면서 발롱도르를 수상하면서 30살에 최고 선수에 등극한다. 반면 마라도나는 그때부터 마약 스캔들로 급속한 몰락이 시작된다.

현재는 자국 후배인 리오넬 메시가 세대를 넘어서는 라이벌이 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펠마메

3. 흑역사 및 논란[편집]

3.1. 도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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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go Maradona, the Argentine superstar with a history of fabled play on the soccer field and drug use off it, was abruptly removed from World Cup play today because he had tested positive for five variants of ephedrine, a stimulant banned by soccer's international governing body.
축구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자 마약 복용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슈퍼스타 디에고 마라도나가, 오늘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흥분제 성분이 들어있는 FIFA의 5가지 금지약물에 대한 양성 반응을 보여 퇴출되었다.


뉴욕 타임즈, 1994년 7월 1일 기사.


앞서 설명했다시피 1994년 미국 월드컵 출전 당시 에페드린 양성 반응으로 월드컵 도중 귀국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1994년 7월 1일) 경향신문 - 마라도나 약물 양성반응 충격 (1994년 7월 2일) 동아일보 - 월드컵 축구 약물복용 마라도나「축구인생」끝장. 이에 마라도나는 "감기약을 먹은 것일 뿐"[22]이라며 "나는 결코 신께 어긋날 행동을 한 적이 없다." 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마라도나는 도핑 결과 에페드린, 페닐프로판올아민, 슈도에페드린, non-pseudo-ephedrine 그리고 메틸에페드린 이상 5가지의 약물이 검출되었고, 당시 도핑을 담당했던 Michel D'Hooghe[23]가 "현존하는 치료 목적의 약물중에 5가지의 금지약물이 동시에 사용되는 약물은 없다.[24]"라고 판단해서 월드컵에서 출전 정지를 먹은 것.

이후 2011년에 마라도나는 "그론도나 당시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회장의 지시로 경기 전에 팀 닥터들이 커피에 약물을 타주었다."라고 고백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모든 선수가 도핑을 했다고 주장했다. sbs 뉴스

3.2. 마약[편집]

나폴리에서 뛸때부터 마약을 한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으로 마약 복용이 확인된 것은 1991년으로 코카인 양성판정을 받아 15개월간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후에도 마약을 끊지 못했고 1997년 보카 주니어스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할때 조차 마약에 빠져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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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우루과이에서 마약 소지혐의로 체포되기도하고 2000년, 2004년에 코카인 복용으로 인한 심장 발작증세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고 2004년 쿠바피델 카스트로의 도움으로 마약을 끊는데 성공한다.

3.3. 탈세[편집]

마라도나는 SSC 나폴리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할 당시 탈세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25] 지금도 그가 이탈리아로 여행가면 각종 귀중품을 빼앗긴다. 마라도나가 탈세한 액수가 모두 채워질 때까지 이 짓은 계속 반복된다고 한다. [26]

다만 이부분에서는 마라도나가 "이태리 국세청 놈들이 나에게 세금 고지도 안해놓고 탈세했다고 하네?"라고 항의 할만큼 마라도나 만의 잘못은 아니라는게 세간의 평이다. 왜냐하면 이태리 국세청에서도 이에 대한 반박은 못하고 슬그머니 체납액을 3,800만 유로에서 1,200만 유로로 깍아주었기 때문. 2016년 현재는 약 한화로 600억원 가량 체납액이 남아있다고 한다. 잠깐만.. 600억원이면 4천5백만유로를 넘는 수준인데.. 가산세 감안해도 이건 좀..

어쨌든 이게 원인이 되어 나중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이 되어서도 이탈리아에 가질 못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었다. 막말로 (마라도나가 받는 감독으로서의 급여)보다 배꼽(이탈리아에 가기만 하면 빼앗기는 세금)이 더 크니 이게 마라도나가 선수관리를 하는 데에 큰 애로사항으로 돌아오게 된다.

3.4. 기타[편집]

  • 신의 손 사건은 문서 참조.

  • 2013년 10월 14일 FIFA U-17 월드컵이 개최되자 마라도나는 여기서 굉장한 사건을 터뜨리고 만다. 이 마라도나의 발언 한 마디 때문에 온 아르헨티나가 뒤집어졌다. 솔직히 그럴 만 했다[27]

"난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아랍에미리트를 응원하겠다. 이제 아르헨티나는 더 이상 내 조국이 아니다."#

  • 러시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 D조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와 아이슬란드의 경기를 앞두고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한국 관중을 향해 눈을 찢는 인종차별 제스처를 취해 현재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마라도나는 "나는 월드컵에서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뉴스거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지만, 이 점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면서 "경기장을 수많은 팬 중에서 나는 멀리서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우리를 촬영하는 아시아 소년에게 놀랐다. 나는 심지어 아시아인들이 우리를 응원해주는 것이 얼마나 내게 근사하게 보였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그게 전부"라고 해명했다.해당기사 해명이 더 가관이다 [28]

  • 인종차별 논란을 빚은 아르헨티나의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D조 1차전 아이슬란드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크로아티아전에서 역사에 남을 졸전 끝에 3-0으로 떡실신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는데, 이후 나이지리아와의 3차전에서 그간 침묵하던 메시가 득점에 성공하자 실신할 듯한 표정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이후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1-1 동점이 되었다가 후반 막판 16강행을 결정짓는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키자 환호하면서 아르헨티나 월드컵 도전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법규를 시전하여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월드컵 중계방송 제작진이 마라도나를 비춰주는 순간 마라도나의 기똥찬 두 손가락을 보고는 황급히 선수들에게로 화면을 돌렸을 정도.

  • 그 외에도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FIFA에게 주의까지 받을 정도로 부적절한 발언이나 언행을 많이 하면서 축구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장 자리에 지원한 하비에르 사네티에게 너무 나댄다고 저격했다. 물론 사네티가 실력은 몰라도 인격적으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위인이기 때문에 역으로 까였다.

  • 최근에는 그동안 자신이 총애했던 메시“메시는 훌륭한 선수지만 신격화해서는 안된다. 그는 소속팀에선 맹활약을 펼치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선 다른 모습을 보인다. 경기 전에 20번이나 화장실을 가는 선수를 리더로 만들면 안된다.메시는 동료들과 이야기 하는 것보다 비디오게임을 하는 것을더 좋아한다.그가 좋은 모습을 보일 때까지 리더 역할을 맡겨선 안된다.”라고 비난했다.기사 참조

4. 감독 경력[편집]

문서 참조.

5. 대인 관계[편집]

마라도나는 정치적으로도 상당부분 엮인 인물이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카를로스 메넴[29]과 상당한 연줄이 있었기 때문에 메넴의 지지자였다. 그러다가 2002년 이후로는 성향이 변했는데, 아르헨티나 정계가 경제위기로 인해 격변기를 맞았고 급진시민연합이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페론당이 여러개의 정당으로 분당되었는데 마라도나는 이중에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창당한 승리를 위한 전선[30]을 지지하였고 그 이후로 부부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를 지지하였다. 다만 2007년 수출세 인상문제로 시끄러울때 마라도나가 수출세 인상에 대해 네스토르와 크리스티나를 깐건 보면 무조건적인 지지자라기 보다는 깔때는 까는 타입에 가깝기는 하다. 그와 별개로 쿠바피델 카스트로와도 1990년대 초반부터 절친하게 지냈고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었던 우고 차베스와는 생전에 매우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조지 부시 부자에 대해서는 BU卐H라고 대놓고 부르며 아돌프 히틀러와 동급으로 취급해 버렸고 2005년 FTAA 협상 당시에 반미 시위에 참여했었다.

이러한 인연은 마두로대에도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간 마두로 대통령이 유가폭락으로 인한 경제위기속에서 삽질을 많이 벌였고 마라도나도 이를 모르고있을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기 때문에 대놓고식으로 지지하는 스탠스를 보이지는 않았는데[31] 마두로가 정치적인 승부수로 내놓은 제헌의회 선거가 야권의 보이콧과 함께 여러 남미국가들과 유럽, 미국 등으로부터 사실상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제헌의회 구성후에 군사기지가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내전 얘기까지 나오자 마두로를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32] 이를 두고 마라도나가 CIA남미 정권교체를 유도하고 있다는 음모론에 과도하게 빠져서 맛이 간 것이 아닌가하는 뒷말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33]

그러던 와중에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자 대놓고 쌍수를 들며 환영하면서 "나는 부시집안이 망쳐놓은 미국에 대해 오바마가 원상복구 시켜줄 것을 강력하게 확신한다."라고 말하며 오바마를 지지했다. 그렇지만 이후로 가족과 함께 디즈니랜드로 갈려다가 반미 시위 참여 및 우고 차베스피델 카스트로와의 관계로 인해 미국 이민관리국으로부터 출입금지를 먹은 경력이 있어서인지 지금은 어떻게 볼지 다소 미지수. 그리고 우파성향의 마크리와도 상당한 인연이 있는데 이건 마크리가 CA 보카 주니어스의 소유주인데다가 마라도나가 CA 보카 주니어스에서 좋은 성적을 내다보니 사이가 나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크리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정리해고와 공공요금 인상 등의 정책을 펴자 이에 적극적으로 반발하며 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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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에는 아들과 딸이 둘씩 있고, 차녀는 아르헨티나의 신성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결혼한 사이다. 조석은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장인, 장인의 재림, 사위라는 훈훈한 가족(...)으로 묘사한 바 있다.

그리고 2013년 2월 13일 득남하여 늦둥이 아들이 하나 더 늘었다. 한마디로 아게로의 아들이자 마라도나 외손주인 벤하민은 자기보다 4살이나 어린 외삼촌을 갖게 된 셈. 이 무슨 막장 드라마... 36살의(!!) 애인 베로니카 오헤다가 어머니라고...이름은 디에고 페르난도라고 한다. 늦둥이 아들이 외손주 벤하민과 메시의 아들 티아고와 함께 대표팀에서 뛰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메시의 아들인 티아고가 축구를 가장 잘 할 것 같고 벤하민이 스트라이커, 그 뒤를 티아고와 페르난도가 받쳐주면 좋을거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장인, 장인의 재림, 사위에 이어 2세대마저 가족축구단될 기세;; 그리고 2030 FIFA 월드컵은 아르헨티나의 우승.

그러나 아구에로는 2014년 현재 마라도나의 딸 지아니나와 별거 상태에 들어갔고 이혼을 준비중이다. 마라도나는 아구에로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에까지 딸과 함께 가서 재결합을 위해 아구에로를 설득하는 부정을 보이기도 했다.

디에고 시나그라라는, 자매의 이복 오빠가 있다. 혼외자였고 이에 마라도나는 30년간이나 친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2016년 8월자로 친자임을 인정했다. 허나 축구 실력은 형편이 없다고.

6. 트리비아[편집]

  • 아르헨티나이탈리아(주로 나폴리 주변의 남부지방)에는 마라도나를 신으로 섬기는 종교도 있다고 한다.
    마라도나교(Iglesia Maradoniana)라고 하는데, 간단히 이야기 하면 기독교[34]여호와 내진 아도나이를 영(靈)의 아버지로, 마라도나를 육체(肉體)의 아버지로 여기고 섬기는 종교이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축구의 신: 마라도나(Maradona By Kusturica)'에서 그 전모(...)를 감상할 수 있다. 진짜로.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는 가톨릭이지만 마라도나를 성인으로 숭배한다고 한다. 종교보단 가톨릭의 한 교단 비슷한 개념으로 마라도나를 성자로 숭배한다. 종교의 우두머리격(?)인 인물들부터 전통적으로 믿는 신은 천주교지만, 마음의 신은 마라도나라는 신앙고백(...)을 할 정도. 이단이다! 참고로 이 종교의 오순절(성령강림대축일)은 위에 나온 멕시코 월드컵 당시의 '신의 손' 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십계명도 있다(...).

  • 명성이 워낙 대단하다보니 '레몬이나 오렌지로 트레핑 연습'을 한다던가 '일부러 공을 차서 골대만 맞추면서 논다'는 등의 이야기도 널리 퍼져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연습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선수 시절의 마라도나는 식사시간을 빼면 늘상 미친듯이 공만 차면서 노력하는 연습벌레로도 유명했다. 심지어는 지네딘 지단조차도 마라도나의 축구실력에 경의를 표하는데 지단이 직접 한 말에 의하면 "내가 배구공으로 간신히 할 수 있는 볼키핑을 마라도나는 탁구공으로 하고 있다."라고 극찬을 하는 정도이다.

  •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거지만, 그의 주포지션은 공격수가 아니라 미드필더이다. 공격력이 매우 뛰어나서 스트라이커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선수였다. 그의 골기록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

  • 호마리우가 등장하기 전까진 세계제일의 "악동" 선수로 명성이 자자했던지라 호마리우처럼 실력만 좋고 멘탈은 썩었다고 생각하는 젊은세대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새총을 쏘는 등의 기행이 있었긴 했어도[35] 선은 지켰고 나름대로 선행도 많이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그리고 축구협회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마라도나는 언제나 선수들의 편이었고 절대 축구협회 회장에게 빌붙지 않았다. 나폴리에서 나폴리의 마피아인 카모라들과 사이가 나빴으며, 그들에게 대놓고 비난했던 유일한 인물. 당시 카모라들에게 대든다는것은 정말 죽을 각오를 했어야 했다.

  • 또한 서방언론 특히 미국계 언론과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다. 일단 그 인생사, 물고 뜯을 게 많기 때문에 좋은 먹잇감이기도 하지만 남미인으로서 아르헨티나인으로서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다. 즉 미국을 몹시 싫어하고 신나게 깐다. 그리고 하고 싶은말 참지않고 바로바로 내뱉는 성격이다.[36] 체 게바라피델 카스트로를 좋아하는 것이 그 반증. 언론 역시 네 그러세요? 하며 신나게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 마약도 하니 뭐 카모라들이랑 한통속이라는 음모론도 있지만 완전 헛소리다. 당시 카모라의 아이들이랑 찍었다는 사진이 있는데 사실은 카모라들에게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찍은것을 카모라들이 그렇게 퍼트린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위하여 재단을 만들어 기부한것도 유명한 일. 괜히 나폴리에서 저렇게 떠받드는 게 아니다.

  • 한번은 친구의 딸이 병에 걸려서 비싼 수술비를 내기 난감했는데, 그 막대한 수술비를 내준 적도 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아들이 바로 디에고 포를란으로, 병에 걸렸던 여성은 포를란의 친누나인 알레한드라 포를란이다. 원래 테니스 선수였던 디에고 포를란은 마라도나의 극진한 애정에 감명받아 자신의 진로를 축구선수로 전향했다.그리고 2011년마라도나의 조국을 엿먹이게 된다.

  • 이런 모습은 필드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재능만 믿고 혼자서 다 하려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고 항상 동료들을 연계를 잘 활용하며 팀을 위한 플레이를 펼쳤다. 그의 주장완장은 결코 실력만으로 얻어진게 아니다.[37][38] 실제로도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나이는 많은데 신인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해트트릭을 한 것은 죄다 마라도나가 발만 갖다 대면 골로 이어지도록 절묘하게 어시스트를 해준 덕분이었다.

  • 마라도나는 역으로 감독으로서는 동정심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도 있다. 빈민촌 출신이며 없는 자인 카를로스 테베스를 자르지 못했는데 후임인 알레한드로 사베야는 테베즈를 잘라내고 승승장구했다는것이 그 근거. 그러나 사베야 재임기의 테베즈는 맨시티에서 트러블을 일으켜 경기도 못 뛰고 있었으니 잘라내는게 당연한 얘기이고, 마라도나 재임기의 테베즈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며 공격전개, 돌파, 연계까지 완벽하게 수행해 당시 미드필더진[39]의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맨시티를 이끌고 있었다.

  • 파파라치에게는 아주 쿨하게 대응했다. 아무 소리 안하고 그냥 공기총으로 위협사격을 했다. 이로서 가장 터프하게 파파라치를 상대한 유명인사가 되었다.[40] 이 때문에 지금도 파파라치가 마라도나에게 접근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 자신과 같은 테크니션에게 들어오는 거친 견제와 파울을 매우 싫어했다. 친선전에서 상대선수가 계속해서 거친 파울로 자신의 플레이를 끊어대자 경기후 인터뷰에서 '이럴거면 왜 나를 부른 것이냐'라고 불만을 토하기도 했고, 허정무에게 걷어차인 것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아마도 이 때문이다. 반면 전설의 드리블 5명 돌파 같은 경우는 "그건 상대 선수들의 페어플레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라며 잉글랜드 선수들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비판당하는 이유의 절반 이상을 이 인간 혼자서 차지하고 있다. 당장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서 지휘봉을 잡았으나 너무 엉망이었고 결국 지역예선에서 볼리비아에게 1-6으로 잡히고 그나마도 칠레에콰도르를 쳐잡아서야 겨우 턱걸이로 본선에 오르고 본선에 올라가서는 독일에게 0-4로 잡혔다. 더군다나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는 기껏 아르헨티나를 응원나와서 한다는 짓거리라는 게 빡휴 1개, 빡휴 2개 이러니 사람들이 아르헨티나팀을 싫어하는 이유의 대부분이 이 인간의 처신 때문이다. 당장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도 이 인간에 대한 논란을 서술한 항목이 따로 있을 정도다.

  • 전 아내가 돈을 훔쳤다고 고소했는데 액수가 137억원... #

  • 은퇴한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 년간 유니폼 판매량에서 꼬박꼬박 10위권 안에 개근 중.

  • 2010년 12월, 고작 22개월된 외손주 벤하민 아구에로가 범상치 않은 포스를 발휘하며 킥을 하는 영상이 올라오면서 20년 후를 책임질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마라도나에 아버지는 아구에로라아빠랑 제일 친한 친구 중 하나가 메시 과연 어떤 굇수가 탄생할지 설레발이 오가는 중.

  • 그런데 만 50살이 되던 2010년에 득남했다. 결국 벤하민 아구에로는 자기보다 어린 외삼촌을 두게 된 셈이다. 그리고 리오넬 메시의 아들 티아고 메시까지 해서 나중에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같은 괴물 3명이 동시에 뛰는 어마무지한 팀이 될 거라는 예측이 있으며 일각에서는 이 세명의 아이들이 축구선수가 되는 2030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 앞의 일화들을 보면 마라도나는 나름의리는 있는 사람이다. 월드컵에 끝나고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 마라도나는 그냥 연임시키고 코칭스텝만 경질한다고 하자 그 코칭스텝들의 편에 서서 그래도 안되니까 그들과 운명을 함께 했다. 마라도나는 체 게바라를 존경하며 그의 의지를 본받으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인다. 정치적으로 반미 성향이 강하고 사생활이 좀 허술해서 그렇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당장 디에고 포를란의 누나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 2010 남아공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 경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 한명 한명한테 볼에다 찐하게 뽀뽀를 해준다. 특히 국대의 에이스이자 본인 후계자인 메시에게 경기 후 격한 애정표현을 퍼붓는 사진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화권이 다른 우리가 보기엔 뜨악스럽지만 선수들은 굉장히 영광스럽게 여긴다나.2010년에도 현역시절 발재간은 아직 살아있어서 공이 날아오자 발재간으로 가볍게 툭 받아서 경기장에 돌려주는 센스를 보여줘서 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외에 훈련 동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 스핀이 잘 안들어가고 반발력이 심해서 유럽 일류선수들도 적응하는데 애먹었던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를 너무나 쉽게 가지고 놀면서 골대에 집어넣었다. 역시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 법이다.



오오 마느님 오오

덕택에 2ch에서는 이런 유머까지 나돌았다.

연습장에서 훈련중인 아르헨티나 선수들.
마라도나: 자, 다음 경기를 준비해보자. 이렇게 공을 잡고 3명을 제치면 되는거야. 어때 참 쉽지? (묘기를 부리며 3명을 제친다.)
메시: 아, 정말이네. 쉽다-! (다른 선수들도 묘기를 부리며 3명을 제친다.)
마라도나: 그래, 그럼 준비 끝. 남은 시간은 수영장에서 놀자구-! 농담이 아닌것 처럼 들린다.

  • 2014년 2월 21일, 데일리 미러를 비롯한 영국매체들은 마라도나가 54세에 아르헨티나 5부리그 소속인 데포르티보 리에스트에서 현역선수로 복귀한다고 전했다.

  • 2015년에는 제프 블라터가 이런저런 비리로 FIFA 회장에서 물러날 조짐을 보이자 자기가 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나섰다.

  • 마라도나 또한 데포르티보 리에스트의 영입 제의에 동의했고,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에 선수 등록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신청서가 통과될 경우, 마라도나는 오는 3월 23일 산 로렌조와의 경기에 데뷔한다.


파일:seibug.png

  • 세이부 컵 축구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장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철자가 하나 틀렸다. 즉, R이 아닌 L로 잘못 표기돼 있다.

  • 피파 부회장 출마 선언을 했다.##

  • 프랑스 풋볼 일간지인 So Foot에서 선정한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선수 TOP30에서 펠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7. 마라도나에 대한 말, 말, 말[편집]

파일:Amazon-va-adapter-la-vie-de-Diego-Maradona-en-serie_news_full.jpg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펠레다. 왜냐하면 디에고 마라도나는 축구의 신이니까."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누구냐고 물으면 내놓는 답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 신의 손 골 이후 그가 터뜨린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을 보며 아르헨티나 해설자가 외친 말

"왜 그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지를 증명하는 골입니다. 슬프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선수입니다." [43]

8강 상대였던 잉글랜드 해설자.

"지금까지 축구를 40년 넘게 봤지만, 그 마라도나의 골보다 더 뛰어난 골은 보지 못했다. 그때 경기장에 있던 게 특권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냥 놀랐던 기억밖에 없다. 60야드(68미터)나 되는 거리를 돌파하려면 한 번의 터치 실수도 없어야 하는데, 끔찍한 잔디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질주하면서 특출난 잉글랜드 수비수들을 간단하게 따돌리던 모습은 믿을 수가 없었다."

스티브 호지(8강 상대였던 잉글랜드 미드필더)

"마라도나가 우리를 상대로 두번째 골을 넣었을 때는 나조차도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런 기분이 든 건 처음이었다. 마라도나는 단연코 역대 최고의 선수다. 완벽한 천재다."

게리 리네커

"마라도나가 우리 팀에 테스트를 보러 왔을 때, 마라도나는 겨우 여덟살이였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그의 재능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마라도나의 플레이를 본 후 충격을 먹었는데, 고작 8살의 아이가 어른처럼 축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라도나의 재능이 심상찮다는 것을 알게된 나는 마라도나를 당장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프란시스코 코르네효(마라도나를 발굴한 아르헨티노스 유스 코치)

"압박 축구를 고안해 낸 것은 디에고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서이다."
아리고 사키

"녀석(디에고 마라도나)에겐 선수로서 전혀 대적할 수 없다."
요한 크루이프 [44]

"디에고 마라도나만큼은 나보다 위. 그는 격이 다르다."

요한 크루이프

"나는 펠레의 플레이를 보지 못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이다. 내가 백만 년을 뛰어도 마라도나에게 근접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역대 최고의 선수다."
리오넬 메시

"내가 펠레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디에고 마라도나는 다르다. 내가 축구공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는 오렌지로도 할 수 있다."
미셸 플라티니

"만약 발롱도르가 처음부터 전 세계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나의 발롱도르 3연속 수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다. 마라도나라면 최소한 5번은 수상했을 것이다"
미셸 플라티니

"나와 디에고 마라도나를 비교하는 것은 실례다."
지쿠

"오렌지 삼총사3 각기 실력을 발휘하고 나서 그와 처음 동등해진다."
아리고 사키

"펠레가 여러차례 월드컵 제패를 이룩함과 동시에 축구의 범대중화를 이끌며 축구계에 첫번째 혁명을, 요한 크루이프토탈 풋볼로서 전술적인 혁신을 일으키며 두번째 혁명을, 지단이 각 대륙의 장점만을 결합시킨 아트풋볼로서 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보이며 세번째 혁명을 일으켰다면 마라도나는 경기장에 선 그 자체가 혁명이었다."
아리고 사키

"난 축구 역사상 3번째로 뛰어난 선수다. 1위와 2위는 당연히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다."
호마리우

"나는 천재가 아니다. 천재라는 것은 아마 디에고 마라도나 같은 선수의 그것을 가리키겠지."
마르코 반 바스텐

"그를 마크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그와 같은 선수는 이제 다시 나타나지 않을거야."
파올로 말디니

"내가 배구공으로 간신히 할 수 있는 볼키핑을 디에고 마라도나는 탁구공으로 하고 있다."
지네딘 지단

"그와 비교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는 외계인이기 때문에."
지네딘 지단

''마라도나가 페널티 지점에서 볼을 차서 크로스바에 맞추고, 튕겨나온 볼을 다시 크로스바에 맞추면서 놀고 있던 그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나로선 해낼 도리가 없다."
지네딘 지단

"축구에서 한 사람의 힘으로 경기를 승리로 만들어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그것이 가능한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뿐이다."
안드리 셰브첸코

"내가 마라도나에 근접했다고? 그의 수준에 다가갔다거나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같은 비교를 넘어선 지평에 디에고 마라도나가 있다. 그는 축구 그 자체이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내 프리킥 실력이 그의 발 밑 정도에 근접했을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지안프랑코 졸라

"내가 브라질 사람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우상은 디에고다. 물론 펠레도 늘 영웅이었지만, 나는 디에고의 플레이에 언제나 경악했다."
호베르투 카를로스

"나와 로베르토 바조스타이긴 하지만, 슈퍼스타의 존재는 아니다. 현대 축구에서 슈퍼스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디에고 마라도나뿐이다."
호마리우

"로베르토 바지오, 루드 굴리트, 레이카르트, 프랑코 바레시 등등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반 바스텐이 내가 맡은 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선수이다. 그리고 지금껏 봐 온 선수 중에서 가장 대단했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다. 그는 위대한 선수였다. 그를 영입하려 했지만, 그는 나폴리이 되어 있었다. 두 명의 디에고 마라도나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오렌지 삼총사를 부른 것은, 한 명의 선수로 팀의 승패를 좌우 할 수 있는것은 디에고 마라도나 이외엔 없기 때문이다."
아리고 사키

"현재 전세계의 모든 현역 선수들은 전성기의 디에고 마라도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세계 최고의 선수는 로베르토 바조라고 생각한다."
요한 크루이프

"디에고 마라도나는 마르코 반 바스텐보다 위다. 그가 지금의 시대에서 활약할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프랑코 바레시

"디에고 마라도나에게는 언제나 당하고 있었다. 당시의 그는 최고로 빛나고 있었다. 최근의 은퇴시합의 그를 보면서 왠지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프랑코 바레시

"(당신이 대전했던 선수중 누가 가장 대단했나? 라는 질문에) 가장 대단했던것은 디에고 마라도나이다. 그는 특별하다. 그 다음은 마르코 반 바스텐. 그리고 조금 더 내려와서 미셸 플라티니다."
로타어 마테우스

"옛날, 바르셀로나 시절의 호나우두가 5, 6인을 제치고 득점하는 것을 보았다. 방금전에도 말한 것처럼 그는 경이적이었다. 호마리우도 발군이었지만, 전성기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내가 본 중 최고였지. 초일류의 선수다. 그리고 호나우두가 조금의 차이로 2위다 (웃음)."
바비 롭슨

"나의 커리어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만큼 대단한 선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는 두 눈을 볼에 고정시키지 않고도 룰렛이나 라보나 킥 같은 고난이도 기술을 사용했고, 두 눈으로는 그를 향해 날아오는 백태클을 피하는데에 사용했다. 그 다음은 인테르 시절의 호나우두. 그는 마라도나와 근접해있었다. 대단한 기백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호나우지뉴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파올로 말디니

"(연습 도중 안토니오 카사노에게) "백힐 패스를 계속하지 마라. 너는 마라도나가 아냐."
파비오 카펠로

"역대 최고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다. 1986년1990년 월드컵을 보며 그를 칭송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에도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이 뛰어난 선수가 있지만, 내가 본 마라도나의 플레이는 축구 역사 전체에서도 없는 것이었다."
라이언 긱스

"나는 1987년에 웸블리에서 열린 '영국 1부 리그 올스타 Vs 세계 올스타' 경기에 참여했었어. 엄청 스타들이 많았지. 지쿠, 플라티니, 푸트레, 마라도나까지. 우리 모두 몸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라도나가 끈이 풀린 축구화를 신더니 볼을 몇 번 툭툭 차다가 있는 힘껏 차올리는거야. 그리고는 공이 떨어지면 또 있는 힘껏 차올리고, 있는 힘껏 차올리고... 이걸 12번 반복하더라... 진짜 엄청났어. 옆을 보니까 플라티니가 입을 쩍 벌리고 바라보고 있더라. 정말 믿기지가 않더라니까.''
게리 리네커 (2007년 12월호 포포투 인터뷰)

"마라도나의 환상적인 기술을 보면 나 자신이 너무 작아졌다. 훈련장에서도 그런 기술들은 본 적이 없었다. 동료들이 본 걸 관중들이 못 봤다는 게 아까울 정도다.''
프란체스코 로마노 (SSC 나폴리 팀 동료)

"나는 메시를 좋아한다. 내 아들이 메시 능력의 1%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마라도나는 독보적이다. 그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선수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메시가 세 번 연속으로 월드컵에서 우승하거나 중앙선에서 오버헤드 킥으로 골을 터트려도 마라도나를 넘을 수는 없다."
엑토르 엔리케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대표팀 동료)

"볼을 취급하는 컨트롤 기술에선, 내가 처음 본 완벽한 선수였다. 마라도나가 볼을 컨트롤 하면서 달릴 때, 혹은 디펜스를 드리블로 제껴나갈 때, 그것은 마치 볼을 다리에 붙이고 있는 느낌이었지. 그건 첫 합동훈련 때였을 거야. 그가 처음으로 볼을 만진 순간 주위의 선수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모든 선수의 눈이 마라도나의 발밑에 고정되어 있었지. 왜냐고? 그가 펼치는 다양한 테크닉을 실제로 처음 직접 목격했으니까. 그런 선수는 두번 다시 나오지 않을 거야"
로보 카라스코(FC 바르셀로나 시절의 동료)

"나는 지쿠,플라티니, 마라도나와 팀메이트였지만, 최고의 선수는이라고 질문받으면 예외없이 마라도나라고 대답한다. 그는 미팅시 10분 20분 내키는 대로 오렌지레몬으로 리프팅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을수 없었다"
마씨모 마우로(나폴리 시절의 동료)

"지네딘 지단은 세계에서 탑5에 들어가는 대단한 GIOCATORE이지만, 디에고 마라도나는 다른 판타지스타들과는 차원이 다른 유일한 존재. 지단이 멈춰서서 하는 플레이를 그는 톱 스피드에서 정확히 해치워 버린다. 당시 나폴리의 연습에서는 많은 매스컴들이 보러 왔었는데, 거기에서 코치가 마라도나를 향해 강렬히 슛팅한 볼을 그는 어깨로 트래핑, 머리 위로 올려서 반대 어깨로 코치에게 돌려 보냈다. 믿어지나? 이런 광경을 마치 일상다반사처럼 볼 수 있었다"
치로 페라라(SSC 나폴리 시절의 동료)

"모두가 알다시피 발롱도르는 오직 유럽 선수들에게만 수여하는 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고 있다. 지난 10년간 누가 진정한 넘버원이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업적을 기리고자 특별한 발롱도르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는 이 시대 축구의 신이다"
드니 쇼미에르(프랑스 풋볼 편집장)

"메시는 현세대 최고 선수지만 나는 마라도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자신이 있던 모든 장소에서 차이를 만들어 냈다"
아리고 사키 아르헨티나 일간지 ‘라나시온’과 인터뷰에서

''마라도나는 훌륭한 선수다. 나쁜 본보기의 훌륭한 선수''
펠레

8. 어록[편집]

"나는 수많은 잘못을 했지만 축구를 더럽히진 않았다."

"그러면 감독님은 그것을 잘라야겠군요.자위를 안 해봤을 리는 없었을 테니까요."
카를로스 빌라르도 대표팀 감독이 "자꾸 머리를 만져서 연습을 못할거면 머리를 잘라라"라고 이야기했을 때 되받아친 말.

"그 때 공을 강타한 것은 나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었다."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8강 잉글랜드전에서 손으로 슛을 넣은 직후.

"나폴리의 국민들이여, 북녘의 주적[45]을 응원하지 말고 나폴리의 진정한 우방인 아르헨티나를 응원해 다오.[46]"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4강 이탈리아전에서 관중석에다 대고 외친 말.

"유럽 선수들은 대개 공을 제압하여 통제하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하지만 나는 공을 친구로 대한다. 경기 중에 내 친구가 어디로 가든지 하고 싶은대로 하게 놔둔다."

"펠레가 나이를 너무 먹어서 노망이 들었나보다."

펠레네이마르리오넬 메시보다 더 뛰어나다고 주장하자.

"우리 엄마는 내가 제일 뛰어나다고 하신다. 근데 펠레의 어머니는 펠레가 더 뛰어나다고 하시겠지?"

"차라리 내가 감독을 해보겠다. 비엘사 녀석 너무 못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아르헨티나가 조별리그 탈락하자 한 말. 근데 정작 감독을 잡고보니 비엘사가 명장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마라도나는 8강 갔는데?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X발놈(...)들을 제외한 모든 분들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남미 지역예선을 힘겹게 통과한 후 기자회견에서 발언. 실제로, 마라도나는 이 발언으로 인해 징계를 먹고 조추첨에 참가할 수도 없었다.

"마치 무하마드 알리의 펀치에 얻어맞은 기분이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8강 독일전에서 0-4로 대패를 당한 직후.

이 낙지놈, 나는 네가 죽어서 기쁘다. 월드컵에서 진 것도 다 너 때문이야.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독일전의 참패를 점친 문어 파울이 죽자 트위터에 올린 글.

"브라질은 별로다. 그렇다고 독일이 잘한 것도 아니다. 독일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중반이란 없었으며, 다비드 루이스의 호흡도 전혀 안 맞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브라질이 한 거라고는 롱슛밖에 못한 것이 전부라는 점이다."
미네이랑의 비극 직후 인터뷰에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에르난 크레스포? 그 두놈 자식들은 골방에 가둔 뒤 한쪽이 사망할 때까지 서로에게 펀치를 날리게 해야 한다."
ㅡ아르헨티나 국대에서 두 사람의 갈등에 대해 한마디.

"지난번에 디 마리아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 봤는데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고 대답했다. 국가를 대표하는 월드컵 우승이 아니라 말이다. 이딴게 얘들의 마인드다."

미국은 25분마다 TV광고를 하길 원할 것이고, 4번씩 나눠 100분을 뛰기를 바랄 것”

미국·캐나다·멕시코 북중미 3개국에서 2026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것에 대해 한마디

캐나다 사람 중에서는 틀림없이 좋은 스키어들이 많다”

미국·캐나다·멕시코 북중미 3개국에서 2026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것에 대해 한마디

9. 경력[편집]

9.1. 대회 기록[편집]

  • 보카 주니어스 (1981, 1995/96 - 1997/98)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메트로폴리타노 [47] 1981 : 준우승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 1996/97 : 우승

  • FC 바르셀로나 (1982/83 - 1983/84)

    • 코파 델 레이 (1) : 1982/83

    • 코파 데 라 리가[48] (1) : 1982/83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1) : 1983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 1979 FIFA 세계 청소년 대회 : 우승

    • 1979 FIFA 75주년 기념 대회 : 우승

    • 1979 남아메리카 청소년 대회 : 준우승

    • 1986 FIFA 멕시코 월드컵 : 우승

    • 1990 FIFA 이탈리아 월드컵 : 준우승

    • 1993 아르테미오 프란키 트로피[49] : 우승

9.2. 경기 기록[편집]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76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1

2

0

0

0

0

1977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49

19

0

0

0

0

1978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5

26

0

0

0

0

1979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6

26

0

0

0

0

1980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45

43

0

0

0

0

1981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0

28

0

0

0

0

1982/83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20

11

5

3

4

5

1983/84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16

11

4

1

3

3

1984/85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30

14

6

3

-

-

1985/86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9

11

2

2

-

-

1986/87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9

10

10

7

2

0

1987/88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8

15

9

6

2

0

1988/89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6

9

12

7

12

3

1989/90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8

16

3

2

5

0

1990/91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18

6

3

2

4

2

1992/93

세비야 FC

스페인 라 리가

26

5

3

3

-

-

1993/94

뉴웰스 올드 보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5

0

0

0

0

0

1994/95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4

5

0

0

0

0

1995/96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

0

0

0

0

0

1996/97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5

2

0

0

0

0

[1] 현대축구를 양분하는 선수 중 리오넬 메시에게는 세 얼간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는 라는 당대 최강의 중원 미드필더진이 있었고 전체적인 팀 전력 자체가 세계에서 1,2위를 다투었지만 마라도나의 나폴리는 당시 강호들과 비교시 팀 자체가 마라도나 한명에게 의지하는 수준이였다.[2] 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시절 보여준 충공깽스러운 시즌을 나폴리에 있던 동안 계속 보여줬다고 생각하면 편하다.[3] 이 부분이 마라도나와 메시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타고난 낮은 체력을 적지만 효율적인 활동량과 우수한 동료들의 지원으로 해결했던 메시가 동료들의 부진, 열악한 환경과 단기전이라는 악재들이 겹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이름값에 비하면 아쉬운 플레이를 펼친 것과 반대로 마라도나는 단기전이었던 월드컵에서 인생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었다.[4] 세리에 A에서의 7시즌 중 5시즌 동안 득점 4위 안에 들어갔고, 1987-88 시즌에는 득점왕을 차지했다.[5] 단, 위에서 언급하다시피 1994년 월드컵에서는 약물 복용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팀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6] 이건 사실 메시와 마라도나의 성격 차이에서 나온다. 메시는 성격 자체가 소극적이고 소심한 편이며, 승부욕은 강하되 자신이 정해놓은 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선수다. 이에 반해 마라도나는 성격 측면에서 대단히 튀는 성격에 승부욕의 화신이다. 쉽게 말해 마라도나는 팀이 이기기 위해서는 반칙이고 팔꿈치고 시뮬레이션이고 다 한다. 다이브의 달인인 이유도 무서운데, 마라도나는 원래라면 메시보다 몸빵이 더 좋아서 잘 안 넘어지는 선수이다. 그런데 프리킥으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그냥 자빠진다. 경기장내 멘탈로 치면 승부욕은 수아레스 급인데 냉정한 판단력으로 깨물거나 하는 충동을 자제하고 이기기 위해서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하는 선수. FM으로 치면 더티플레이 20, 스포츠맨십 1이라 반칙이 난무하는데 판단력 20이라 반칙을 쓸 때와 안 쓸 때를 무시무시하게 잘 구분하는 선수.[7] 저 중 오르테가가 포지션이나 플레이 스타일 면에서 그나마 비슷했다고 평가받는다.[8] 후술하겠지만, 메시와 마라도나 역시 포지션과 스타일이 다른 건 마찬가지다.[9] 물론 마라도나의 국가대표팀이 실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나, 지금의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만큼 당대 최고의 공격진을 보유한 대표팀도 아니였다.[10] 메시도 왼발 편향적이지만, 슈팅만큼은 오른발로도 제법 찬다.[11] 이전 버전에서 메시가 역대급 플레이메이커라고 설명한 부분이 있지만, 플레이메이킹은 단순히 킬패스를 찌르는 능력이 아니다. 공격과 수비의 안정적 배분, 볼의 점유에 대한 직접적 관여, 경기 리딩, 공의 배분, 완급 조절 등등의 총체적 능력이 플레이메이킹인데 킬패스를 찌르는 것은 지극히 한정적인 부분이다.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패스를 넣는 역할까지는 확실히 수행하고 있지만, 그 외의 플레이는 후위의 사비나 이니에스타, 라키티치 등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이것까지 메시가 맡아버리면(또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면) 바르셀로나는 답 없는 원맨팀이 되어 버린다.[12] 게다가 감기증상까지 있었다.[13] 룰이 개정되기 전에는 텔레비전에서 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학교 축구에서도 골키퍼가 엎어지면서 백패스 잡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14] 산토스에서나 브라질에서나 펠레는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맡은 적이 그다지 많지 않다. 펠레는 4-2-4 포메이션의 최전방 공격수 2명 뒤에 위치했는데, 이를 현대적 관점으로 보자면 공격형 미드필더세컨드 스트라이커의 사이에 해당하지만, 당시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라는 포지션이 정립 되기 전이었다.[15] 펠레의 다큐멘터리 영상. 현존하는 펠레의 스페셜 영상 출처의 대부분은 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5년 쯤 펠레 에테르노에서의 펠레의 플레이가 아이러브사커 같은 축구 동영상 카페에 소개 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16] 그런데 크루이프는 막상 "그 녀석(마라도나)은 선수로서 나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한다.[17] 다만 마라도나는 훗날 펠레가 메시 성격은 어떻냐고 물어보자 리더감은 아니라고 했다.[18] 그런데 펠레는 아르헨티나 신문을 통해 "마라도나는 자신을 매우 사랑하고있으며 우린 서로 매우 아끼고 이건 그냥 말장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둘이 주고 받는 말을 들어보면 절대로 애정표현이나 말장난은 아닌것 같다만...싸우다 든 정이 무섭다더니...[19] 공교롭게도 마라도나, 플라티니, 지쿠는 FIFA 회장선거에 출마했다모든 것은 펠레에게 달렸다[20] 6명 전부 전성기 시절 세리에 A에서 뛰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굴리트는 지쿠, 플라티니와 같은 세대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리그에서 부딪힌적이 단 한번도 없다. 사실 플라티니와 마주칠 수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헤이젤 참사 때 큰 충격을 받은 플라티니가 축구에 열정을 잃어버려 조기 은퇴한다. 훗날 인터뷰에서 헤이젤 참사 이후 축구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렸다고... 마라도나의 맞수로 치는 선수는 세리에 A에서 피터지게 우승경쟁을 했던 루드 굴리트...라는 건 딱 1987-88 딱 1시즌 이야기. 게다가 굴리트는 이후 부상으로 전성기가 끝났다.[21] 그러나 마라도나가 만 19세, 20세의 나이로 지쿠를 제치고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축구인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그 당시의 마라도나가 이미 더 뛰어난 선수라고 보는 시각도 많았으니 흠좀무...[22] 에페드린 자체를 복용하는 것은 감기약 처방을 받았다고 둘러댈 수 있는데, 에페드린을 과하게 복용하면 아드레날린을 증가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23] FIFA의 ​​집행위원회 위원이자 벨기에 출신 의사.[24] Maradona must have taken a cocktail of drugs because the five identified substances are not found in one medicine.[25] 당시 3,800만 유로를 체납했다.[26] 2009년에는 귀걸이를 빼앗겼다. 경매로 넘어간 귀걸이는 최종적으로 이탈리아/팔레르모 소속의 파브리치오 미콜리에게 한화 4500만원 가량에 낙찰되었다. 미콜리 본인은 귀걸이를 돌려주고 싶다며 마라도나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마라도나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지금은 가끔 미콜리가 하고 다니는 듯. 경기 중에도 마라도나의 귀걸이를 하고 나오는 모습이 간간히 보인다.[27]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2010년 월드컵 당시 부진(?)했던 것을 순서에 맞지 않게 진행했기 때문이다.[28] 남미권은 인종차별에 대한 의식수준이 매우 낮은 걸로 유명하고 그중 특히 마라도나의 조국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인종차별 국가로 비판을 받는 국가이다. 즉 마라도나도 인종차별의 중대성을 모르고 저런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29] 시리아 출신 아랍계 이주민으로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로 아르헨티나에서는 대처리즘적인 정책을 시행한것으로 유명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익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한국 주요 언론사에서 이부분은 꼭 빼먹는다 물론 임기 후반기에 대차게 말아먹었지만[30] 페론당의 분파로 2000년대 초반 페론당이 여러개의 정당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창당된 정당이다.[31] 다만 2013년 취임식에는 참석하기는 했다.[32] 사실 제헌의회 구성 자체는 일단 베네수엘라 헌법으로 규정되어있기는 하기는 하기때문에 불법은 아니고 대통령도 제헌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못하는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지만, 1년 반 넘게 여소야대인 의회와 거칠게 대립하고있는데다가 무엇보다도 1990년대 말에 처음 제헌의회를 구성했을때 1998년 대선을 한달 앞둔 시기에 선거를 치른 기존 국회를 무력화시킨 채로 개헌안을 통과시킨 전적이 있다보니, 임기보장이나 정권연장을 위한 면피책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사고있고 실제로도 제헌의회 구상발표 이후로 오히려 시위 사망자수가 불어나는 등 오히려 혼란상은 극심해졌다(...) 어쨌든 이러한 혼란상속에서 꾸억꾸억 치러진 제헌의회 선거에서 야권의 선거 보이콧과 미국, 유럽의회, EU의 반대속에서도 투표율이 40%초반으로 예상보다 크게 나오기는 했는데 이것도 뒷말이 많이 나오는데다가 기존 국회가 제헌의회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스탠스를 여전히 보이고 있고, 제헌의회 의원들도 기존 야권이 보이콧한 관계로 마두로 지지세력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 기때문에 사실상 의회가 두 개 있는 시스템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앞으로도 제헌의회가 해산될 때까지 혼란은 지속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33] 다만 아주 음모론까지는 아닌게 미국 행정부나 주요 정당들 내에서 남미 좌파정권들을 손을 봐야한다는 의원들이나 공직자들이 꽤 있기도 한데다가, 20세기뿐만 아니라, 21세기에도 중남미에서 우파정당을 지원한다거나 하는 식의 행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34] 여기서 말하는기독교는 당연 가톨릭이다.[35] 그러나 이것 역시 파파라치나 기자들에게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 중의 하나이다. 당장 영국의 다이애나 스펜서가 어떻게 죽었나를 보면 답은 뻔하다.[36] 펠레는 저주로 유명해서 그렇지 인터뷰는 립서비스를 많이 곁들여서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그리고 애시당초 펠레의 저주 자체도 펠레의 엄청난 유명세와 립서비스가 결합되어 나온 만들어낸 속설이다.[37] 참고로 마라도나는 월드컵 역사상 주장완장을 가장 오래 착용한 선수로도 유명하다.[38] 2010년 월드컵 당시 이미 2승을 거둬서 여유있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하게 되자 마라도나는 메시를 주장으로 임명했다. 그게 메시의 생일 선물이기도 했다.[39] 나이젤 데 용, 가레스 배리, 야야 투레[40] 유럽의 파파라치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다이애나 스펜서가 파파라치를 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고, 당시 파파라치들이 죽어가는 다이애나를 구할 생각은 않고 사진만 찍고있던 사건을 생각하면 마라도나만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41] 스페인어 사용지역의 정식 이름은 1st name- 2nd name - 아버지쪽 성 - 어머니쪽 성 방식을 따른다.[42] 말디니는 현역 시절에 지능수비로 유명했다. 마라도나가 고전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말디니 또한 마라도나를 현역시절 가장 막기 힘들었다고 언급한적이 있다.[43] 월드컵 당시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해 아르헨티나에 감정이 전혀 좋을 리가 없는 잉글랜드 사람인데도 마라도나를 최고라고 치켜세우면서 인정했으니 할 말은 다한 셈이다.[44] 요한 크루이프는 축구에 대한 이해도는 역사상 따라올 사람이 없고,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마인드로 유명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예외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45] 이탈리아는 남북간 갈등이 심하다. 참고로 이탈리아 북부는 남부에 비해 잘산다.[46]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19-20세기 걸쳐 엄청나게 많은 수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민갔고, 아르헨티나도 이런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주 이민국 중 하나였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워낙 이탈리아계 성씨가 많은 이유[47] 1981 시즌 당시 아르헨티나 리그 이름[48] 1982년부터 86년까지 있었던 라 리가 리그컵[49] 1985년과 1993년에 열렸던 유로 우승자와 코파 아메리카 우승자의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