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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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칠란트 연방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
Federal Republic of Germany

파일:독일 국기.png

파일:독일 국장.png

국기

국장

상징

국가

Deutschlandlied(독일의 노래)[1]

국목

참나무[2]

표어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통일과 정의와 자유)[3]

역사

독일연방공화국 수립 1949년 5월 23일
독일민주공화국 수립 1949년 10월 7일
통일 1990년 10월 3일

수도

베를린

면적

357,168㎢

인문 환경

인구

총인구

82,335,756명(2018년)

민족 구성

독일인 79%, 유럽인 11%, 아시아인 7%, 중동인 2.3%, 터키인 3.5%, 아프리카인 0.8%, 아메리카인 0.5%, 미집계 1.7%

인구밀도

230명/㎢(2018년)

출산율

1.59명[4](2016년)

공용 언어

독일어

공용 문자

라틴문자

종교

국교 없음(정교분리)
무종교 33.5%, 가톨릭 29.5%, 개신교 27.9%, 이슬람 5%, 기타 4.1%[5]

자국군 보유 여부

독일 연방군

하위 행정 구역

1특별행정구, 2자유시, 13주

일반

2,060개

정치

정치 체제

공화제(국민주권), 민주주의(대의제), 연방국가, 정교분리, 의원내각제[6], 양원제, 다당제, 성문법주의(대륙법계)

민주주의 지수

169개국 중 13위(2017년)[완전민주주의]

국가원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8]
(사회민주당)

연방대통령

정부 요인

연방총리

앙겔라 메르켈[9][10]
(기독교민주연합)

연방상원의장

미하엘 뮐러[11][12]
(사회민주당)

연방하원의장

볼프강 쇼이블레[14][15]
(기독교민주연합)

연방헌법재판소장

안드레스 포스쿨레[16]

연방대법원장

베티나 림페르크[17]

경제

경제 체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조정시장경제, 혼합경제, 토지 사유제, 절대적 소유권, 사적 자치

명목 GDP

전체 GDP

$4조 2,116억(2018년 추정치)

1인당 GDP

$50,841(2018년 추정치)

GDP(PPP)

전체 GDP

$4조 3,739억(2018년 추정치)

1인당 GDP

$52,801(2018년 추정치)

수출입액

수출

$1조 2,830억(2016년) / 세계 3위

수입

$9,876억(2016년) / 세계 4위

외환보유액

$2,004억(2016년)

신용 등급

무디스 Aaa
S&P AAA
Fitch AAA

화폐

공식 화폐

유로(€)

ISO 4217

EUR

국가 예산

1년 세입

$ 1조 5,980억(2017년 추정치)

1년 세출

$ 1조 5,730억(2017년 추정치)

ccTLD

.de, .eu

국가 코드

276, DEU, DE

국제 전화 코드

+49

단위

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1
(일광절약시간제 실시)

도량형

SI 단위

외교

대한수교현황

조선국 최초수교: 1886년[18]
대한민국: 1955년[1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001년[20]

무비자 입국

양국 모두 90일

국제연합 가입

1973년 (·서독 동시 가입)

주한 대사관 / 총영사관

주한독일대사관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한강대로 416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Germany_on_the_globe_%28Europe_centered%29.svg.png

독일어

Bundesrepublik Deutschland / Deutschland, BRD

한국어

표준어: 독일연방공화국(獨逸聯邦共和國) / 도이칠란트, 독일(獨逸)
문화어: 도이췰란드련방공화국 / 도이췰란드

영어

Federal Republic of Germany / Germany

프랑스어

République fédérale d'Allemagne / Allemagne

러시아어

Федеративная Республика Германия / Германия[21]

중국어

간체자: 德意志联邦共和国 / 德国(더궈)
정체자: 德意志聯邦共和國 / 德國(더궈)

일본어

ドイツ連邦共和国 / ドイツ(도이츠)

그리스어

Ομοσπονδιακή Δημοκρατία της Γερμανίας / Η Γερμανία[22]

네덜란드어

Bondsrepubliek Duitsland / Duitsland

라틴어

Res publica foederata Germaniae / Germania

라트비아어

Vācijas Federatīvā Republika / Vācija

리투아니아어

Vokietijos Federacinė Respublika / Vokietija

스웨덴어

Förbundsrepubliken Tyskland / Tyskland

스페인어

República Federal de Alemania / Alemania

포르투갈어

República Federal da Alemanha / Alemanha

에스토니아어

Saksamaa Liitvabariik / Saksamaa

이탈리아어

Repubblica Federale di Germania / Germania

터키어

Almanya Federal Cumhuriyeti / Almanya

폴란드어

Republika Federalna Niemiec / Niemcy

핀란드어

Saksan liittotasavalta / Saksa

헝가리어

Német Szövetségi Köztársaság / Németország

히브리어

הרפובליקה הפדרלית של גרמניה / גרמניה

에스페란토

Federacia Respubliko Germanio / Germanio, Germanujo[2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randenburger_Tor_abends.jpg


1. 개요2.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가
3. 역사4. 과거사 청산5. 자연환경6. 인문환경
6.1. 인구6.2. 이민 문제6.3. 언어6.4. 종교
7. 관광8. 교통9. 행정구역
9.1. 주요 도시들
10. 정치11. 외교12. 경제
12.1. 최저임금12.2. 자산
13. 사회
13.1. 과학기술 및 학술적 역량13.2. 연금제도13.3. 사회문제
13.3.1.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13.3.2. 사회지표에 대한 반론
14. 문화
14.1. 교육
14.1.1. 초/중등 교육14.1.2. 아우스빌둥14.1.3. 고등 교육
14.2. 스포츠
15. 군사16. 창작물에서의 독일
16.1. 독일을 모티브로 한 것들
17. 이야깃거리18. 같이보기

1. 개요[편집]

중부유럽에 위치한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시계 방향으로 북쪽에 덴마크, 동쪽에 폴란드, 체코, 남동쪽에 오스트리아[24], 남서쪽에 스위스, 프랑스, 서쪽, 북서쪽에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댄다. 그야말로 유럽의 중앙부이다.

유럽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프랑스와 함께 현 유럽연합 체제를 이끄는 국가[25]다. 그리고 EU의 경제를 책임지는 유로존 최대의 물주이기도 하다. 수도는 베를린. 독일은 서북쪽의 북해와 동북쪽의 발트해와 접해 있다.

독일에는 여러 운하가 있는데 그 중에서 독일 북부에 있는 킬(Kiel) 운하는 지금까지도 잘 쓰이고 있다. 하지만 강 사이 사이를 연결한 마인 도나우 운하는 환경 파괴의 요소가 많기 때문에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고, 카를스루에 대학 베른하르트 교수가 4대강 사업에 대해 비판하며 마인-도나우 운하를 예시로 든 적이 있다. 다만 킬 운하로 와전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듯하다.

경제적으로는 GDP 4위 네이버 GDP IMF 순위 다음 GDP IMF 순위 , PPP 5위, 특별인출권 유로화, 1인당 GDP 18위, 국제통화기금 투표권 4위 영어위키백과 IMF Voting power , 보유고 2위 영어위키백과 Officially reported holdings , 무역량 총합 3위 # , AIIB 지분율 4위 연합뉴스

국방 분야에서는 국방비 세계 9위, 군사무기 수출은 세계 5위를 하고 있다.

2.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자국어로는 도이칠란트(Deutschland, /ˈdɔʏtʃ.lant/)라고 부른다. 이를 풀어서 쓰면 "das deutsche Land", 독일인(Deutsch)의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도이치라는 말은 고대 게르만어 diutisc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 민족이라는 의미이다. 더치 페이더치(Dutch)와도 그 어원이 비슷하다.

다른 언어에서는 유래가 다른 국호를 쓰고 있다. 영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에서는 라틴어 Germania에서 따온 Germany/Germania/Германия(Gyermaniya)를 쓰며,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에서는 독일을 게르만 민족인 알레마니족의 땅이라는 의미의 알마뉴(Allemagne)/알레마니아(Alemania)/알레마니아(Alemanha), 폴란드어에서는 슬라브어 녜메트(němьcь)에서 유래한 '녬치(Niemcy)'[26], 핀란드어에서는 색슨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삭사(Saksa)'로 부르며, 에스토니아어에서도 색슨족의 땅이란 뜻의 삭사마(Saksamaa)라고 부른다. 한편 발트어권인 라트비아어와 리투아니아어에서는 '바치야'와 '보키에티야'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 이름들의 경우 어원이 불분명하다.

한국에서 부르는 독일이라는 명칭은 일본의 한자 음역으로 들어온 것이 정착한 것이다. 정작 일본에서는 독일(獨逸)이라고는 거의 쓰지 않으며 도이츠(ドイツ)라고 쓴다.[27] 개화기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덕국(德國[28]) 등의 표현도 쓰였으나 지금 이 표현은 독일의 기술력과 관련되어 독일을 일컫는 인터넷 속어로만 쓰인다. 또 다른 중국식 음역으로 '게르만'에서 따온 것으로 모이는 일이만(日耳曼)이 있다. 프랑스 등 많은 국가들이 자국어 명칭에 가까운 한국어 발음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미국, 영국, 호주 등과 함께 어지간해선 원어명으로 불리지 않는 국가에 속한다. 1980년대 교과서에서 원어발음에 따른 도이칠란트를 밀기도 했고, 이원복 교수처럼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도이칠란트 표기를 고집하는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의 매체에서 명칭 사용은 독일로 굳어져 있다.[29] 이 이유는 발음의 경제성 원리 때문인데, 원어명의 독음이 5글자(도이칠란트)로 너무 길어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더 적은 품이 드는 독일이 더 선호되는 것이다.

2.2. 국기[편집]

파일:attachment/germany1.jpg
국기는 , , 3색으로 구성된 '연방기'(Bundesflagge)이다. 이와 함께 국장인 독수리가 붙어 있는 버전인 연방당국 직무기(Dienstflagge der Bundesbehörden) 혹은 연방직무기(Bundesdienstflagge)가 있는데, 이는 연방정부의 부처에서만 사용되고 민간과 주 정부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검정은 인권 억압 및 탄압에 대한 분노와 어둠을,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금색은 진리와 지혜를 뜻한다. 독일어판 위키백과는 1813년 해방 전쟁에서 나폴레옹에 대항한 뤼트초프 의용군의 군복색에서 이 3색이 왔다고 설명한다.[30] 프로이센의 소장(Generalmajor) 아돌프 폰 뤼트초프 아래로 모인 독일 전역의 의용병들은 저마다 다른 군복이나 사복을 들고왔기 때문에 여기에 통일성을 주기 위해 옷을 검정으로 물들였고, 여기에 금빛 놋쇠 단추를 달고 소매를 빨간색으로 했다고 한다. 당시에 이 3색이 가졌던 의미는 다음과 같다.

파일:attachment/독일/5CIpRHp.png
"예속의 어두움에서 살육을 빛으로."

의미에 대한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검은색 부위는 독일이 타국에 짓밟히던 17세기 이전 유럽의 빈곤하던 독일의 시절을 의미한다.[31] 붉은색은 역시 예상대로 프로이센부터 나치 독일까지 이어져 온 침략들을 표현하며 많이 반성하고 있다. 그런 의미는 독일인들에게 아주 중요하다. 금색 부위는 밝고 희망찬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새로운 독일, 전쟁과 침략이 없는 독일을 바라는 독일인의 소원을 표현한다."

- 2014년 4월 ZDF, 훔볼트 대학교 교수 만프레드 S. 헬러 교수


1848년 통일 후 처음 지정되었으나 폐지되고 검은색, 흰색, 빨간색으로 구성된 삼색기로 바뀐다. 1919년 제정이 폐지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재지정되었으나 1933년 아돌프 히틀러 독재정권인 나치 정권이 수립되면서 폐지, 독일 제국의 기가 잠시 부활하였다가 1935년 하켄크로이츠로 바꾸었다. 1945년 나치 정권이 패망하자 1949년 다시 동-서독일의 국기로 지정되었다. 그러다가 동독은 1959년 이 국기에 호밀 이삭, 망치, 컴퍼스가 그려진 국장(國章)을 추가하여 서독과 구분하였다.[32] 1990년 10월 3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가입하면서 동독의 국기는 자연스럽게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동독이 서독에 흡수될 당시 이를 환영하던 몇몇 동독인들은 독일연방공화국 국기를 대신해 동독 국기에서 문장이 있는 부분을 동그랗게 오려 내거나 검은 테이프 등으로 문장에 X자를 쳐서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33]

가로로 게양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지만 민간에서는 세로로 게양하기도 한다.

국기의 금색을 금색(Gold)이 아니라 노란색(Gelb)이라고 하는 건 독일에서 불법이다[34]. 1959년 6월 독일 연방사법재판소(Bundesgerichtshof)의 판결에 따르면 독일의 국기를 노란색으로 부르는 것은 나치 시기 민주주의 비방과 같으며 네오나치 처벌과 동급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옛 나치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흑적금 국기의 금색을 노란색, 겨자색, 똥색(...) 등으로 부르며 비하한 적도 있었다.

독일에서도 이웃 북유럽식 십자가 국기를 쓰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되었다. 후자는 본래 1944년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에 가담했던 요제프 비르머(Josef Wirmer)가 암살에 성공했을 경우 하켄크로이츠까지 없애버리고 대신 쓰려고 만든 깃발이기도 했다.

2.3. 국가[편집]

국가(國歌)는 독일의 노래 중 제3절만 사용하는데, 1·2절은 국가로 지정돼 있지 않다. 특히 1절은 나치 독일의 상징으로 여겨져 독일인들도 어지간하면 부르지 않으니 주의[35]. 시인 호프만 폰 팔러슬레 벤이 쓴 가사에 하이든이 지은 곡을 붙여 만든 곡이다. 상세한 설명은 독일의 노래를 참고할 것. 동·서독 분단 당시에는 서독에서만 단독으로 불렸던 국가였으나[36] 1990년 10월 3일 동서 독일이 통일되면서 통일 국가로 지정되었다.

3. 역사[편집]

4. 과거사 청산[편집]

5. 자연환경[편집]

6. 인문환경[편집]

6.1. 인구[편집]

2018년 기준: 82,212,578명
2017년 기준: 80,636,124명

19세기부터 독일은 러시아를 제외하면 유럽 최대의 인구를 가진 국가였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인구대국은 프랑스였으나 프랑스가 19세기부터 저출산을 겪은 데 비해 독일은 적극적으로 출산을 장려했고 출산율도 높았다. 독일이 유럽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이 때의 인구 증가 버프 덕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3 CIA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독일의 출산율은 1.42로 세계 최하위권을 형성하고 있으며[37]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다.[38] 비교하자면 영국은 출산율 1.90, 프랑스는 2.08로 이민자 버프를 받아 선진국 중에선 선방하고 있는 편이다이쪽은 이민자 버프도 있겠지만 워낙에 사랑의 나라라... 이대로 수십 년이 지나면 독일의 인구 및 GDP는 유럽연합 내 1위에서 3위로 떨어질 게 확실해지고 있으며,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고령화가 2번째로 진행된 나라로 출산율 감소로 인구가 줄어들 우려를 낳고 있다.#

당연히 독일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다만 묻지 마 출산의 부작용을 겪는 것[39]보다 이질적인 사람이라도 능력 있는 인구가 낫다고 판단했는지 세계 4위의 경제 규모를 기반으로 이민을 열심히 받고 있다. 과거에는 터키 출신이 많았는데 현재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독일과 유사한 점이 많은 남유럽동유럽 출신 이민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편으로 역시 동남아시아 출신과 중국인이 이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과 비슷하다. 이주민들이 많다 보니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이민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사회 통합이 저해되고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범죄가 급증한다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유태인 식당에 돼지머리 투척 및 협박, 난민수용소 공격은 2014년에만 192건, 2015년 상반기는 202건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주한 이후에도 계급 유동성은 상당히 낮다.

통계적으로 독일계 미국인이 미국 백인 중 가장 많은 인구비를 차지하고 있다.[40]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도 종종 미국인으로 착각을 받는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영웅으로 대통령까지 된 아이젠하워도 독일계이고, 현재의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도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건너간 뒤 그곳에 정착한 독일계 미국인이다. 'Eisenhauer'에서 'Eisenhower'로 고치긴 했으나 Eisen만 봐도 독일계인 걸 알 수 있다. 체스터 니미츠 제독과 록펠러[41]도 독일계다. 야구계에서는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워렌 스판, 존 스몰츠, 빌리 와그너,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등이 독일계이며, 이 외에 수많은 미국 백인들이 독일인의 피가 섞여 있다. 헐리우드에서 활약하는 미국 백인 배우들의 절반 이상은 독일인의 피가 섞여 있다고 해도 무방한데, 대표적인 예인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머니가 독일인이다.[42]

독일계 러시아인 역시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몫을 맡았다. 로마노프 왕조는 독일인의 후손.

독일계는 이름을 보면 독일계(혹은 스위스계, 오스트리아계)임을 대충 알 수 있다. 산 이름을 딴 -버그(-berg), 사람이란 의미의 -만(-man, mann)[43], 돌이란 뜻의 -슈타인(-stein),[44] -워, 어(-er, uer)로 끝나는 이름 중 대부분이 독일계이거나 독일 출신 유대인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V2 로켓 개발의 주축이었다가 전후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 출신 미국 물리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er von Braun)은 독일 귀족 가문 출신으로, 중간에 von이란 칭호로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란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6.2. 이민 문제[편집]

이민자의 증가와 구 동서독 간에 미묘한 감정 대립이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나 터키계 이주민 때문에 실업자가 됐다고 화내는 일부 사람들을 중심으로 네오 나치가 생겨났다. 나치는 관심 끌기 위한 떡밥으로 이름만 빌려 쓴 단순한 양아치 집단이라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인도, 동남아시아, 아랍 등지의 구 식민지 국가들에서 몰려드는 다양한 인종, 민족의 이주민들로 고생하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과는 달리, 독일은 거의 터키계 이민자들이 300만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이는 독일 전체 인구의 6.6%에 달하는데,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독일이 식민지가 많은 영국, 프랑스와 대항하기 위한 동맹자로서 터키(당시 오스만 제국)와 손잡은 이래 우호관계가 지속되어 터키인들이 독일로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의 외교 정책의 근간이었던 3B 정책, 베를린 - 비잔티움 - 바그다드도 이런 성향을 반영한 것. 지금도 독일은 터키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서, 유명한 터키 여행지에 나온 설명문이 자국어 다음에 먼저 독일어로 되어 있고 그 다음에 영어로 되어 있다. 터키어 알파벳에도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외에 흑인들도 80만명 정도 산다. 쿠르드인들도 80만명이 살고 있다.

특히 터키인들의 유입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축구선수들의 경우 2002년 당시 독일로 유입된 터키의 축구선수인 일한 만시즈나 마찬가지로 독일 태생인 하미트, 하릴 알튼톱 형제, 메흐메트 에키지는 터키 국적으로 월드컵에 출전했고 하칸 찰하노글루도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을 택해서 터키 국적으로 뛰고 있는 반면 똑같이 독일에서 태어난 터키계인 메수트 외질[45]이나 메흐메트 숄, 엠레 찬등은 아예 독일 국적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외에도 전반적인 분야에서 터키인들의 유입이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아예 터키 쉬페르 리그 갈라타사라이 SK가 한때 베를린 갈라타사라이라는 이름으로 분데스리가로 갈려다가 좌절된 적이 있을 정도다.

독일의 터키인 이주자들은 대체로 본토의 동포들보다 더 종교적이다. 독일 거주 터키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72%가 이슬람만이 참 종교라고 하였으며, 90%가 자신을 종교적이라고 대답했다. 터키인의 독일 이민은 터키에서 군사 정권에 의해 세속주의가 정점에 달하던 시절에 많이 이루어졌는데, 단순히 돈벌러 동부 시골에서 독일로 간 경우도 많지만, 터키 본국의 강압적 세속주의 정책에 반발해 독일로 이주한 이들도 있었다.[46] 주로 종교 지식인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터키인은 외국에서도 터키인이다."라며 모스크이슬람 학교를 중심으로 터키 이주자들을 결합시키기 시작했고, 이들을 통해 일반 터키인 노동자들 중에서도 이슬람주의에 경도되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2016년 현재 독일 내의 터키 이민자들은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아니면 독일화되어 터키어만 모국어로 사용할 뿐 사고방식은 완전히 독일인이거나 양극단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런 종교적 보수성은 터키계 공동체만의 문제도 아니라, 유럽 난민 사태로 들어온 시리아 난민들조차 아랍어 사용 모스크가 와하비즘-살라피즘 물이 들어 너무 수구성이 짙다고 평가한다. 자이쉬 알 이슬람(시리아의 이슬람원리주의 반군)이 생각난다는 평이 압권. #

또한 유럽 연합이 생긴 이후로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 등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동유럽 국가들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폴란드 태생이나 독일로 이민가 독일 대표팀으로 뛰었던 축구선수 루카스 포돌스키가 그 예이다. 물론 동유럽권 이민자들은 같은 유럽 가톨릭 문화권이고 인종도 백인이기 때문에[47] 타 이민자들에 비해 비교적 독일 사회에 동화가 쉬운 편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발생한 중동 난민들을 수용하고자 하는 것도 인도주의적 명분뿐만 아니라 저출산 극복 목적도 크다. 하지만 역시 이들도 대체로 세속주의와 사이가 좋지 못할 뿐더러 독일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은 마찬가지라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2016년 독일 열차 테러, 2016년 베를린 트럭 테러 등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계속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건 위에서 언급했듯이 선진국 중에서도 유별나게 낮은 출산율 때문이다. 물론 독일도 나름 중산층 대상 출산 장려에 힘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식 문제라 해결이 안 된다는 걸 동서독 분단 시절 뼈저리게 체험하고 21세기부터는 이민 수용과 빈민층 출산 장려로 전환했다. 그러나 구 동독 지역 중심으로 상당한 반발이 있다. 구 동독 지역의 소득수준이 낮은 만큼 이민자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 구 동독 주민들이 가장 피를 본다.

그래도 유럽에서는 다문화사회가 가장 잘 정착한 국가 중 하나다. 고위층에서도 이민계 독일인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이들 또한 대부분 독일 사회에 잘 녹아들어 생활하고 있다. 특히 베를린 등의 대도시에서는 미국보다 더 인종차별이나 서로 간의 인종적 거리감이 적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많은 독일 교민들이 얘기하는 게, 인종차별은 별로 없지만 언어차별은 있다는 점. 일반적으로 아시아인이라고 이상하게 바라보지는 않는데, 독일어를 못하거나 한국어로 뭐라고 얘기하면 "쟤 외국인인가?" 하고 이상하게 쳐다볼 수는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2018년 4월 12일에 독일 통계청은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수가 약 1,060만명을 나타낸 것으로 나타났고 이중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출신의 신규 EU 회원국 출신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독일측은 4월 19일에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2018년 8월부터는 독일에 정착한 난민 가족을 월 1천명씩 받아들이기로 확정했다.#

6.3. 언어[편집]

공용어로는 독일어를 쓴다. 독일어 참조.

전반적으로 영어가 잘 통하며,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더 잘한다. 오히려 젊은 사람에게 영어로 말을 걸면 대답은 해주는데 목소리가 모기 소리가 된다거나 아예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혹자는 평균적으로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당연히 영어를 더 잘한다고도 한다.[48] 그리고 학력에 따른 영어 구사능력 차이가 큰 편이다.

독일은 학교에서 라틴어는 물론 프랑스어스페인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나라이다.[49] 과거에는 프랑스어가 인기있었으나 요즘엔 스페인어의 인기에 밀리는 추세이다. 독일에서 불어나 서어를 배우는 건 한국으로 치면 학교에서 중국어와 일본어를 선택해서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학교에서 러시아어나 터키어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구동독 지역은 러시아어가 제1외국어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제1외국어는 무조건 영어다. 프랑스어도 많이 가르치고 있으며 북부에는 덴마크어, 프리지아어 사용자가 일부 존재한다. 동부에서는 소르브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소르브인도 거주하고 있다.[50]소련에서 이주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독일계 후손들도 많이 존재하고 있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51]

독일에서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터키어만 써도 사는 데에는 별 지장 없다. 일단 웬만한 깡촌이 아닌 이상 관공서부터 터키어를 사용하는 터키인 공무원이 있고, 터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은 한국의 김밥천국 수준로 널려 있으며[52] 터키 물건을 판매하는 슈퍼마켓과 카페트 가게도 있으며, 심지어 터키에선 관광지에서나 파는 물담배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모스크도 곳곳에 있고. 심지어 베를린은 터키 제3의 도시라고 할 정도니 이쯤 되면 독일이 아니라 그냥 터키다.

2017년 8월 14일에 독일의 옌스 슈판 외무차관은 "베를린에서 독일어보다 영어가 잘 통한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독일 내에서는 독일어가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진짜로 독일어가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닐 거고, 다만 독일어 보존에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이런 식이라면 영어 잘 통하는 네덜란드에서 네덜란드어는 진작에 사라졌다

6.4. 종교[편집]

마르틴 루터에 의해 종교 개혁이 일어나 개신교가 탄생한 곳이다. 해당 문서 참조.

독일은 1919년 바이마르 헌법을 통해 정교(政敎)분리가 이루어져 국교는 없다. 다만 역사적 전통을 존중하여 국가는 교회의 재산권과 신자에 대한 종교세 부과를 인정하며 교회활동의 유지비용을 일부 지원한다. 루터교회는 34%를 차지하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북부 지역에서 강세다. 가톨릭은 34%를 차지하고 있고 남부·서부에서 강세다. 전통적으로 상공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루터교회가 우월하고 농촌 지역에서는 가톨릭이 우세한 점이 특징이었는데 2차대전 이후 가톨릭 우위 지역인 바이에른의 빠른 산업화로 더 이상 이렇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상공업이 발달하였던 신교 지역이 2차대전 후 대부분 동독 지역에 편입되어 공산주의 치하에서 종교가 쇠퇴했던 점도 있고 상대적으로 덜 발달되었던 카톨릭 지역은 자본주의 서독 지역에 대부분 남아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상대적으로 종교전통이 보존된 점도 한몫한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신· 구교 간에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것도 독일 교회의 특징이다. 그 외에 소수 교파로서 장로회· 침례회나 독립 루터회[53] 등 자유교회(Freikirche)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 구 동독 지역에선 전통적으로 개신교가 우위였지만 이웃한 체코와 마찬가지로 공산정권 40년의 영향으로 무종교인 비중이 높다. 그래서 과거에는 개신교:가톨릭 비중이 2:1이었는데 지금은 1:1로 바뀌었다.

독일 가톨릭교회는 교회세와 각종 지원을 통해 바티칸 재정의 20% 이상을 지원하면서 가톨릭계 안에서 독자적 영향력을 확보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 사제 및 사제의 결혼, 이혼 및 재혼, 동성애 문제 등에 있어서 급진적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는 특히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기간 중에는 교회 안에 270개 낙태 상담소를 설치한 뒤 여성들에게 확인서를 발부하기 시작하면서 교황청과 3년 동안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교회가 분열되는 사태로 발전될 조짐까지 보였으나 마침내 독일 주교회의가 교황의 최후 통첩을 받아들여 낙태확인서 발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3년 동안 지속되던 교황청과 독일 교회 간 다툼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런 풍모는 오늘날에도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독일의 한 대교구의 종교개혁 기념 미사 중에 보수파 청년들이 항의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루터회 교인이자 동성애자인 귀도 베스터벨레 외무장관의 합동(가톨릭[54]과 루터교회[55] 공동 주최) 장례예식이 가톨릭 성당에서 치뤄지기도 했다. 독일 가톨릭의 급진적인 면은 독일에서 복고 가톨릭교회가 탄생하는 데도 기여했으며, 이런 측면 때문인지 전통 가톨릭 성향의 신자들 중 일부는 '독일은 이상한 신학의 발원지다', '게르만은 영적으로 이상한 것이 나오는 동네다', '게르만(독일) 애들은 영성이 이상하다'며 경계심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독일 가톨릭 교회가 막나가는 곳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워낙 철학적 기반이 탄탄한 국가이다 보니, 현대 가톨릭 신학에서 사실상 대장님 소임을 맡고 있다.[56] 게다가 철학 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이 전반적으로 모두 발달해서 우수한 신학자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그리하여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꼽히는 카를 라너,[57] 교황이자 초 네임드 신학자인 베네딕토 16세 등 다른 나라 가톨릭 교회가 부러워 죽는 수퍼스타 라인업을 자랑한다. 그리고 '기념'은 그 대상이 긍정적일 때만 쓰는 말이 아니다.

개신교 신학에서도 독일의 위상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58] 일찍이 마르틴 루터가 탄생하기도 했고,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디트리히 본회퍼, 루돌프 불트만 등의 신학자 라인업을 자랑한다.

독일 개신교는 2차대전 이후 EKD라는 교회협의회 체제로 개편되었으며, 11개의 지역 연합교단, 7개의 루터교단, 2개의 개혁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소속된 신자들은 7%정도를 종교세로 납부해야 한다. 2011년 조사 기준으로 개신교 신자가 많은 지역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55.7%)과 니더작센(51.5%)으로 나왔다. 다만 실제 출석률은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한 자릿수대에 불과하다. 한국 개신교와 정반대로 독일에는 국민선동금지법이 있어서 근본주의적인 설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2015년에는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를 비판한 브레멘의 한 목사가 고소당하는 일도 있었다.[59]

7. 관광[편집]

8. 교통[편집]

9. 행정구역[편집]

9.1. 주요 도시들[편집]

대부분이 구 서독 지역에 몰려 있다. 10위권까지만 봐도 구 동독지역은 그나마도 한 곳은 2개로 나눴던 거 합친 베를린에 라이프치히 정도고, 20위권에도 드레스덴 정도가 들어가는 형편이다. 특히 라인-루르 지방은 인구 30만 이상의 대도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독일 최대의 도시권이다. 50위까지 봐도 거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도시들이 20개로 이쯤 되면 거의 도배 수준이다(…). 그다음으로 많은 곳이 바덴-뷔르템베르크니더작센인데 겨우 4개씩만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라인-루르 지방에 대도시가 얼마나 붙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볼드 처리는 각 주의 주도.(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은 도시주.)

1. 베를린 350만 명
2. 함부르크 178만 명
3. 뮌헨 (바이에른) 145만 명
4. 쾰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106만 명
5.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헤센) 73만 명
6. 슈투트가르트 (바덴-뷔르템베르크) 62만 명
7. 뒤셀도르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61만 명
8. 도르트문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58만 명
9. 에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58만 명
10. 라이프치히 (작센) 56만 명

11. 브레멘 56만 명
12. 드레스덴 (작센) 54만 명
13. 하노버 (니더작센) 53만 명
14. 뉘른베르크 (바이에른) 50만 명
15. 뒤스부르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49만 명
16. 보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36만 명
17. 부퍼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35만 명
18. 빌레펠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32만 명
19. [60]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31만 명
20. 뮌스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31만 명

21. 카를스루에 (바덴-뷔르템베르크) 30만 명
22. 만하임 (바덴-뷔르템베르크) 30만 명
23. 아우크스부르크 (바이에른) 28만 명
24. 비스바덴 (헤센) 27만 명
25. 겔젠키르헨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26만 명
26. 묀헨글라트바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25만 명
27. 브라운슈바이크 (니더작센) 25만 명
28. 켐니츠 (작센) 24만 명
29. (슐레스비히-홀슈타인) 24만 명
30. 아헨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24만 명

31. 할레 (작센-안할트) 23만 명
32. 마그데부르크 (작센-안할트) 23만 명
33. 프라이부르크 (바덴-뷔르템베르크) 22만 명
34. 크레펠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22만 명
35. 뤼베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21만 명
36. 오버하우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21만 명
37. 에어푸르트 (튀링엔) 21만 명
38. 마인츠 (라인란트-팔츠) 20만 명
39. 로스토크 (메클렌부르크-포어폼메른) 20만 명
40. 카셀 (헤센) 19만 명

41. 하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18만 명
42.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17만 명
43. 자르브뤼켄 (자를란트) 17만 명
44. 뮐하임 안 데어 루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16만 명
45. 포츠담 (브란덴부르크) 16만 명
46. 루드비히스하펜 (라인란트-팔츠) 16만 명
47. 올덴부르크 (니더작센) 16만 명
48. 레버쿠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15만 명
49. 오스나브뤼크 (니더작센) 16만 명
50. 졸링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15만 명

10. 정치[편집]

11. 외교[편집]

문단의 양이 방대하므로 독일/외교 문서로 분리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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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리볼로 표현한 독일의 외교 관계. 왼쪽 위의 'germany'부터 시계방향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brothers: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두 나라 모두 독일과 언어, 문화 면에서 유사성이 대단히 큰 국가이며 역사적으로도 접점이 많다.

  • father:독일 제국, 즉 '제2제국'을 뜻한다.

  • Ancestors:독일의 기원, 선조. 프로이센, 바이에른 등 옛 독일 영방 제후국 때부터 기원한 지역들을 의미한다.

  • Former enemy:전세계를 적으로 둔 적이 있다는 의미. 나치 독일제2차 세계대전을 의미한다.

  • Best friend:각각 EU, 캐나다, 일본을 가리킨다.

  • Friendly rival:미국과는 밀접한 동맹 관계이면서도 여러 부분에서 미국과 대립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 Natural enemy:독일과 러시아는 수백년 동안 숙적 관계였다.

12. 경제[편집]

  • 일본중국이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는 세계 수출 1위를 한 적도 있었다. 현재도 경상수지는 세계에서 제일 높다.

  • 서비스 산업 부분에서는 거의 막장을 달리고 있어서 미장원이나 식당에 가도 대부분 셀프 서비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래서 서비스업의 무덤, '서비스의 사막 독일' 이라고도 불린다. 다만 조목조목 따지면 툴툴거리면서도 들어주는 점만은 칭찬할 만하다. 일본처럼 공손하게 말하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츤데레 성향을 보여주는 의외의 면도 있다. 또한 매춘이 합법화된 얼마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 국가대표 기업 문서를 보면 기계공업과 화학공업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도배된더러운 덕국 걸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DHL, 루프트한자 같은 글로벌 물류업체가 있는 등 선진국답게 고루고루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2.1. 최저임금[편집]

독일엔 모든 직업군에 적용되는 통일된 최저임금이 없었다. 기존에는 직종별 노사간 합의에 따른 최저임금이 존재해서, 고용주가 어디냐에 따라 법정 최저임금이 달랐다. 그래서 노조가 사실상 전무한 소규모 서비스업종들에선 보호받기가 힘들었다.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독일 통일과 그에 따른 독일병으로 전체 노동자의 25%가 이웃 프랑스의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일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임금 침체를 겪었었다. 기사 참고 21세기를 10년 이상 넘겨서야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되었다.

전체 일자리의 1/5이 450유로 월급이 안 되는 미니잡(mini-job)이다. 미니잡은 소득세 면제 및 의료 보험에 들 필요가 없어 월급을 그대로 받을 수 있으며, 고용주도 각종 세금이 면제되기 때문에 900유로 월급에 한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미니잡으로 2명을 고용하는 것을 훨신 선호한다. 저소득층의 소득세는 겨우 14%이기 때문에, 실제 문제가 되는 것은 월급의 1/4에 달하는 의료보험료. 또한 미니잡은 의료보험을 내지 않기 때문에 그의 직업으로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61] 이런 이들은 배우자나 부모를 통해 해결한다. 한국에서 학생이나 백수들이 돈 못 번다고 의료보험에서 제외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사에 따르면 독일에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수는 전체 국민의 0.2%에 불과하다.

저축된 돈도 없는 최하층으로 진입한 빈민을 위해 기초수당인 Hartz IV가 존재한다. 2014년 기준 1인 가구 382유로, 2인 가구 706유로로 한국보다 낮은 상황이다.[62] 다만 3인 이후 가구부터는 자녀에 따라 달라지는데, 미성년자 자녀 기준으로 3인 가구 967유로, 4인 가구 1228유로를 받게 되어서 한국보다 한화 5만원 가량 높은 수준이 된다. 이 외에 추가로 임대주택와 난방비 보조금액 소액이 나오나 대한민국에서도 나오는 수준의 금액이며 당연히 대도시에 거주시 주택 수당으로 주택비 납부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무의미해진다. 사실 Hartz IV를 수령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한번이라도 정부에 손을 벌렸다면 은행신용도는 최하로 내려가서 제 1 금융권과는 영영 이별이라는 점이다. 간단한 창업을 위해서 돈을 빌리는 것도 불가능하고, 경력 단절로 인해 정규직 입사도 힘드니 당연히 미니잡으로 직행이며, 독일의 빈민층의 고착화는 유럽 내에서도 최상위권이다.

독일 전국에서 140만 명이 시간당 5유로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63] 거기에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동유럽의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와 독일인들이 도저히 오지 않을 시급에 부려먹으며 세금을 아끼려 정부에 신고조차 하지 않는 사업장이 속속 발각되고 있으며, 그것까지 포함하면 실제 통계는 더 암울한 수준까지 내려가리라 독일 정부에서 예측중. 월 400유로 이하를 받는 근로자가 170만에 달할 정도로 미니잡을 늘리면서도 정재계에서 성공이라면서 자화자찬을 하고#, 최저임금법 제정 이전에는 시급 0.26유로로 부려먹은 일까지 발생했었다. 물론 이런 일자리는 대개 실습을 겸하기에 많은 돈은 안 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렇다 쳐도 생각 외로 착취가 심해도 너무 심해서 독일 내에서도 문제가 된다.

동독 지방정부에서 시간당 55센트(약 800원)직업을 강제한 일이 지난 몇 년 동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밝혀져 논란이 된 적이 있을 정도다. 하기 싫어도 일을 하지 않으면 기초생활수당이 끊기니 어쩔 수 없이 저런 곳에 가서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오는 수밖에는 선택지가 없다. 독일 정론지 벨트지의 취재 결과, 시급 400원에 알바생을 고용하던 호텔까지 발견되었을 정도 역시 선진국

독일 정치인들은 옆 나라 프랑스의 낮은 고용률을 들먹이며 이런 일자리라도 있는 것이 최저임금을 하고서 일자리가 없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실제 독일의 고용률은 프랑스보다 10%나 높은 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제가 있는 영국의 고용률은 71.7%로 독일과 동급이다. 사실 독일의 고용률이 영국의 고용률을 추월한 것은 2010년에서나 이루어진 최근의 일이다. 독일은 제조업 중심이라 일자리가 많았다는 주장을 단번에 논파하는 자료다. 1990년 통일 직전 서독의 고용률은 당시 이탈리아에 국내총생산을 추월당했던 영국보다도 10% 가량이나 낮았던게 현실. 현재 독일의 고용률은 미니잡에 힘입어 2005년 이후 폭등한 결과로 내실이 별로 좋지 않다.

2013년 총선 이후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간 연정 협약서에 따라 2017년 1월 1일부터 전국 시간 당 8.5유로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이 도입 결정된 이후 오히려 그동안 많이 주었다며 주던 시급을 2017년부터 적용 예정인 최저임금 수준으로 내리는 만행을 저지른 기업들에 대해 독일 내에서 지탄이 쏟아지기도 했다.

12.2. 자산[편집]

독일의 서민이 가진 재산은 유럽에서도 적은 편. 장기간 바캉스를 즐기며 주택 구입 대신 월세를 선호하는 독일인의 특징이 그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휴가를 비슷하게 가며 자가주택비율만 독일보다 10%가량 높은 영국 서민의 재산은 독일의 2.25배, 더 긴 바캉스를 즐기면서 자가주택비율은 독일과 비슷한 프랑스 서민의 재산은 독일의 3배나 되는 상황이다.크레디트 스위스 Global Wealth Report

서민 재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하면 일자리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되고, 이들은 결국 다시 1달 450유로가 안 되는 미니잡에 뛰어들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자산 평균값/중간값의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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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들의 자산 상위 20%/하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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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빈부격차는 유럽 내 최고 수준이다. 진짜 부자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돈과 자산이 많은 사람이며 자산 격차는 한국보다도 많이 나쁜 수준이다.

독일은 스웨덴,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과 같이 소득지니계수가 낮으며 복지제도가 우수한 국가이지만, 그에 반해 자산지니계수는 높은 국가에 속한다.12

2014년 독일 최대 경제연구소인 베를린 독일경제연구소(DIW)의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의 빈부격차는 더 심각해져 유로존 내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ECB의 조사 결과에서도 독일은 주요 유럽 국가 중에 압도적으로 자산이 낮았다. #

이렇게 된 아유는 독일에서도 구 동독 지역의 주민은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전후 호황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해 서독 주민에 비해 압도적으로 자산 축적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가난한 구 공산권 국가와 부유한 서방 선진국이 한 국가로 통합된 국가는 오직 독일뿐이기 때문에, 서독 지역의 높은 자산 수준과 동독 지역의 낮은 자산 수준이 대비되어 빈부격차가 고평가된다.

13. 사회[편집]

동포사회 커뮤니티로 베를린리포트(독일에 오면 방문하지 않게 되는 곳)가 있다. 이전 독일 전체가 비뚤어진 애국심을 가져서 애국이라더니 결국 나라를 망쳤기 때문에 현대 독일은 교육 과정에서 애국심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자국을 '우리' 민족, 조국 등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꺼리도록 한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나라는 전범국이니깐 국까가 되셈"하는게 아니고 "평화로운 독일인으로서 다른 민족과 평등하게 어울리는 것"을 가르친다.# 독일인들은 은근히 열받을 듯하다. 옛날 어떤 놈 때문에 항상 노심초사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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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폴란드공에서 풍자했다(...). 독일이 애국심의 강조를 다른 국가 수준으로만 평범하게 해도 득달같이 나치 드립까지 꺼내며 경계하니까 '내가 그런 거 신경쓰게 생겼냐!'라며 폭주하고, 2주 뒤 진짜로 나치가 부활해서 프랑스가 벙찌는 이야기.[64]

13.1. 과학기술 및 학술적 역량[편집]

전 세계에서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국가가 독일이다. 물론 무작정 노벨상 수상자와 과학기술력이 정비례 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나치당이 독일에 집권했을 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위시한[65] 고급 인력들이 대거 미국과 소련으로 빠져나갔고[66] 패전으로 몰락해버렸음에도 다시 일어났음을 생각해 본다면 기본적인 기술 기반은 탄탄하다. 냉전으로 인한 미국의 지원의 덕을 톡톡히 본 것도 있다. 또한 현대에는 일부 분야에서 특출난 수준이기는 하지만 전성기 시기처럼 자연과학 전 분야에서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독일의 시대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막스 플랑크, 에른스트 마흐, 헤르만 헬름홀츠, 카를 마르크스, 막스 베버, 프리드리히 니체, 입센, 스트린드베리, 폰 호프만스탈, 루돌프 클라우시우스, 빌헬름 뢴트겐,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 등은 모두 독일인이거나 독일어권 인물이다. 1991년 미국의 역사학자 노먼 캔터는 "20세기는 가히 독일의 세기가 될 수도 있었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그만이 아니라 베를린에서 열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오토 한, 리제 마이트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에 참석한 프랑스 철학자 레몽 아롱도 이 세 사람이 모두 1878~1879년에 태어난 것에 주목하며 독일계 미국 역사학자 프리츠 스턴에게 캔터와 같은 발언을 했다.

'그럴 수도 있었다'는 캔터와 아롱의 말에는 1933년 아돌프 히틀러라는 재앙이 닥치지만 않았더라면 이 시기에 세계 최고의 수준에 올랐던 독일의 사상가, 예술가, 작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서 갓 통일된 조국을 전에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새로운 나라로 만들 수도 있었다는 의미가 숨겨져있다. 이 1848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간에 활약한 독일인들의 명단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13.2. 연금제도[편집]

연금제도도 유럽 내에서는 최하위로 전체 연금 수령인의 50% 이상이 1달 700유로(100만원)가 안되는 연금을 수령하고 있다.

1인당 GDP가 비슷하고 유로화를 사용하는 프랑스의 경우 유로화 사태 이후 삭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달 620유로의 기초노령연금을 보장[71] 중인 것과 심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사실 프랑스를 비롯한 대다수의 복지 선진국들은 가정주부에게도 어느 정도 금액을 보장해 주고 있으며, 북유럽의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나 북미의 캐나다등에서는 매달 실수령 100만원 근처가 나온다.

남유럽의 이탈리아도 유로화 사태 이후 삭감되었지만 2014년 기준 기초연금이 1달 540유로#이다. 근데 기초연금과 전체 수령액 자체가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이탈리아인의 41%가 매달 1,000유로 이하의 연금을 받았다고 한다.# 스페인은 15년간 세금을 낸 연금 수령인들에게 550유로를, 독일과 함께 최하위 케이스로 자주 언급되는 영국조차 30년간 납세한 연금 수령인들에게 매달 500파운드를 보장해 주고 있다. 여담이지만 기초노령연금이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로 연간 실수령 기준 연간 2,400만원 가량이며[72] 2위인 호주는 2,100만원이 나오고 있다.

독일 하위계층의 노년문제는 상당히 심각한데, 정말 최악의 케이스를 가정해 비정규직인 미니잡으로 취업해 45년간 연금을 부으면 월 140유로 수령(...).# 물론 마음만 먹으면 맥도날드에서도 열심히 일해서 채용이 되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만큼 비현실적이지만 독일의 황당한 연금제도를 단편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예다. 이웃나라인 프랑스는 납세를 한 적이 없어도 620유로를 보장해주는 판에... 괜히 독일에서 30년 이상 연금을 부은 수령액의 결과가 700유로(100만원)도 안되는게 아니다.

13.3. 사회문제[편집]

13.3.1.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편집]

파일:attachment/germany9.png
OECD 국가별 대졸이상/고졸이하의 임금 격차

이런 저임금 노동자들의 상황과 반대로 대졸자 연봉은 1인당 국민소득과 비슷하며, 같은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는 이웃의 프랑스보다 최소 만 유로가량 높다. 대졸자와 비대졸자간의 소득격차가 아일랜드에 이어 서유럽에서 2위이다. 근데 서유럽에서 2위라는 건 조금 말장난에 가까운 것이 안 그래도 가뜩이나 청년고용률이 시망 중의 시망인 그리스, 포르투갈이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마저 독일보다 높다는 건 참 뭐라고 해야할지(...)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13에서는 한국, 독일 등 각 나라의 교육 지표들을 연구해서 내놓고 있다. [73]

목차

독일

한국

대졸 임금

고졸임금의 1.64배

고졸임금의 1.47배

고졸~전문대졸 실업률

5.8%

3.4%

대졸 실업률

2.4%

2.9%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 고졸은 독일 대졸보다 실업률이 훨씬 높고 임금도 훨씬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2014년 현재 BMW의 뮌헨 본사 공장에서는 막 성인이 된 고졸들을 생산직 견습을 시켜준다며 4년간 1,000유로를 주고 있다 세후 770유로니 한화 110만원이 월급이다. 그렇덴 이 말이 틀린게 독일은 고졸 4년차 부터는 대졸와 같은 임금 받으며, 독일은 중소기업이 탄탄하며 복지가 잘되어 있는국가다. 이게 일반화 하는것 무리이다.

독일에서는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한다면 전문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고졸이라도 마이스터 자격을 얻으면 생계에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마이스터 자격을 얻는 것이 대학 졸업보다 쉽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종류에 따라서는 더욱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기도 하다.[74]

독일은 기본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낮으며, 대학에 입학 후에도 졸업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꽤 높기 때문에, 대졸자의 경우 취업과 전혀 상관없는 과가 아닌 한, 취업하지 못할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이런 것을 보면 대학 졸업자 이상의 고학력자는 독일에서 꽤 대우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몇 분야는 박사학위 없이는 취업이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독일에서 실업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국에서는 청년층 전체 실업률을 이야기하는데, 서독 지역에서 대졸자/전문대졸자/고졸로 나눠서 분석한 실업률은 대졸자는 3~4% 수준, 전문대졸자는 7~8% 수준, 고졸은 20% 이상으로 최근 통계에서 집계되었다. 그러나 서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낙후된 동독지역의 경우는 대졸자/전문대졸자/고졸로 나눠서 비교하면 상관관계 자체는 서독과 비슷하지만, 비율 자체가 크게 상승하여 대졸자 10% 수준, 전문대졸자 20% 수준, 고졸 50% 수준에 육박한다. 이는 사실 한국과 산업 구조 상 차이가 약간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학사 수준의 지식으로도 일부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으며, 석사의 경우 취업 못해서 석사갔다는 소리까지 나돌지만, 독일의 경우 취업 시 고학력자가 요구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저학력자들에게는 기회가 비교적 적다.

대학교 학위가 없는 계급을 독일에서는 Arbeiterkinder 즉 노동자로 칭하는데, 노동자 계급의 자녀 중 단 9%만이 대학교 진학을 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부모의 학력에 따라 자녀의 학력도 대물림이 되는 경향이 유럽 내에서도 제일 높은 나라가 바로 독일인데, 이는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진로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인문계열(대학 진학)과 실업학교가 갈린다. 한국이 성적이 우수하든 아니듯 적어도 고3 대학입학시험을 볼 때까지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비슷한 교육을 받는 것과 상당히 대조된다. 독일 여자의 32%는 최종 학력이 중학교(하웁트슐레) 졸업 이하다[75]. 이쯤 되면 대학교 학비가 무료인 것이 나라의 부의 재분배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게 된다.

상대적으로 높은 대졸자와 기술 숙련자의 연봉 차이가 독일 내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미용사의 평균 연봉은 15,787유로, 트럭 운전기사의 평균 연봉은 28,534유로로, 겨우 22세 먹은 대학교 학부 졸업생의 평균 초봉이 40,000유로대라는 걸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게 낮은 금액이다. 참고로 저 40,000유로는 본봉 기준이며 수당이나 보너스는 포함하지 않은 통계다.기사참고 민간기업들은 물론이고 공무원조차 학벌에 따른 차등연봉을 지급하는데 대졸 공무원은 고졸 공무원에 비해 2배 더 높은 연봉으로 시작한다. 한국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트럭운전사 평균 연봉은 2,850만원, 대학교 학부 졸업생 초봉은 4,000만원이라는 이야기. 한국에 적용되면 대학 경쟁률이 지금의 10배로 오를 기세 이는 부분적으로 독일의 대졸자 비율이 한국보다 낮아 상대적으로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이다.

13,000유로부터 53,000유로까지는 같은 24%의 소득세를 내기에 생활 수준 격차가 좁혀지기가 절대 쉽지 않다. 북유럽보다는 덜하지만 어느정도 서민증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53,000유로 이상의 고소득자에게는 53,000유로 이상의 소득분에 대해 40%를 가져가서 전반적으로 소득이 촘촘하게 모여있다. 덕분에 퍼진 정도가 낮아 소득격차는 한국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니계수로는 0.297.# 실제 서민들끼리의 차이는 당연히 크다. 연봉 1,300만원 받는 사람과 5,300만원 받는 사람의 세율이 같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아무튼 일을 시작해 10~15년 경력을 쌓아도 대학교 학부 졸업생의 초봉을 못 따라잡는 나라는 서유럽에서도 독일이 사실상 유일.

청년실업 문제와 구직시장에서 구직자와 구인자 간의 미스 매치 현상이 이슈가 되면서 독일의 직업교육을 본받자는 얘기가 많이 나돌았는데 특히 경제지를 중심으로 확실히 독일의 청년고용률 자체는 매우 높은 편이나 그렇게 독보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며, 안 좋은 면을 보면 빠른 진로의 결정이 사회계층화를 강요하고 있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자세한 통계는 OECD/교육지표 문서 참조.

13.3.2. 사회지표에 대한 반론[편집]

우선 독일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물가가 상당히 저렴하다. 물론 난방/전기/수도 요금은 상당히 비싸지만, 공산품과 식료품의 경우는 인근 프랑스나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보다 확실히 저렴하며, 경제 사정이 안좋다는 이탈리아 등에 비해서도 물가가 낮고 안정되어 있다. 또한 공교육에 드는 비용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의료보험이나 연금제도도 나쁘다고는 하지만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실업급여제도도 이전 세후 소득의 60~67% 수준에서 최장 960일까지 지급될 정도로 잘 보장되기 때문에 실업에 대한 두려움도 낮다. 따라서 큰 돈 들 일이 없으니 저축이나 투자에 대한 욕구가 적은 편.

독일 국민 특성상 사치를 싫어하고, 높은 소득을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치를 싫어하더라도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 열악한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간의 생활수준 차이는 다른 서유럽 선진국과 비교하면 통계로도 명확히 크게 나타난다.

김나지움을 가지 못한다 하여 반드시 취업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회사의 사무직은 김나지움이 아닌 레알슐레를 나오면 충분히 가능하다.

미니잡 역시 월급을 적게 주기 위한 나쁜 제도가 아니라, 소득세율이 높은 독일에서 소득세를 피하면서 부가수입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독일은 가구당 소득세를 부부 합계로 납부한다. 1인 기준 53,000유로 이상 소득을 납부해야 2번째 세율구간에 진입하지만, 부부의 경우는 그 2배에 달하는 10만유로까지 연봉을 받아도 24% 세금만 낸다. 단, 배우자가 전문의라서 10만유로를 넘는 연봉을 받는다면, 월 400유로 미만의 임시 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파트타임이나 임시직들이 활성화되어 있어, 주부나 학생들의 아르바이트로 활용된다. 보통 주당 10~16시간 미만 선에서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미니잡 시급이 결정되므로, 이것을 풀타임 급여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편. 단 이는 독일 남부의 부자지역의 기준이 그렇고, 베를린만 가도 400유로를 주면서 40시간 근무를 요구하는 곳이 많다.

물론 위에서 예시든 것처럼 45년 동안 미니잡으로 사는 경우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으나, 일단 그 기간동안 미니잡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는 예시라 하겠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결국 사회보장제도 역시 정상적인 노동을 일정기간 충족하는 경우를 전제로만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위의 미니잡 관련 외부링크 기사 역시 말미에 수치가 과장되어 해석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여성이 받는 평균 연금액은 533유로이나, 이는 연금액만 가지고 계산된 것이며, 실제로 미혼인 노령여성의 평균 수익은 1,188유로이며, 부부의 경우 평균 2,248유로를 벌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일단 연금액 자체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1970년대 이후 독일의 출산율이 2.0명(서독, 동독 모두)을 밑돌기 시작하고 이게 2010년대까지 회복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 65세 이상인구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져나가자 재정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독일 정부에서 연금제도를 개편해 많이 내고 덜받는 식의 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유념해야 될 것은 바로 통일이다. 서독과 동독이 합쳐지고 이제 겨우 25년 가까이 지났는데, 그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이 터지면서 독일 경제를 시궁창에 몰아넣은 바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로 근로자들의 능력과 생산성 등을 감안하지 않고 통화를 무조건 단일화하면서[76] 동독 지역의 임금이 폭증[77] 실업률은 50%까지 폭증했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보장에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것은 당연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할 경제 통합 과정 역시 날림으로 진행되었다. 그 후유증이 아직까지 만만치 않게 남아있는 셈이다.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 간의 경제 격차는 여전히 독일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1991년에서 2003년까지 통일 비용이 대략 1조 7,000억 유로(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약 2,300조. 물론 화폐가치를 고려해야 한다)인데 이 중에서 50% 가까이가 사회보장(연금, 노동시장, 의료보험)에 소요되었다.[78] 이러한 복지 지출의 급증에 이어 통일 직후 독일은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들으며 실업률이 10%까지 올라가고 재정지출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국가 파탄을 방치할 생각이 아닌 이상 어떤 식으로든 개혁은 필수적이었다. 실업급여를 필두로 사회보장을 빡세게 깎고 대규모 노동시장 유연성 정책을 펼친 것도 대충 이 시기이다. 재밌게도 이러한 정책을 이끈 것은 보수 정당이 아니라 수십 년만에 정권을 잡은 독일 사민당에 의해서였다. 이후 메르켈 보수정권이 다시 집권하면서 이러한 기조는 이어가고 있다. 물론 실업자의 상대적 빈곤율이라든지 비정규직의 급증 등 부작용으로 인해 반발과 비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며 상술했듯이 최저임금을 도입하는 등 기존의 정책에서 어느 정도 선회하고 있다. 유로존 위기 이후 사실상 독일이 유럽을 이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시경제적으로는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옆나라 프랑스에 비교하면 국민 삶의 질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사실 프랑스가 대단히 관대한 사회보장정책의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인 것도 있다.

14. 문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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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부모가 있는 앞에서 어린아이에게 혈액형을 함부로 물어보면 안 된다. 독일에서 혈액형을 묻는 것은 일종의 부모와의 혈연관계를 의심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타인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혈액형을 모를 가능성이 높고, 아이의 혈액형을 병원에서 안 가르쳐 주기 때문에 부모마저도 아이의 혈액형을 모른다.

14.1. 교육[편집]

14.1.1. 초/중등 교육[편집]

독일의 대부분의 학교는 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이며 각각의 주마다 다른 교육 정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래에서 서술하는 내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수많은 예외가 존재한다. 공립학교 이외에도 공교육과 같은 교육을 제공하는 종교재단의 사립학교들이나, 수준이 더 높은 IB나 영국의 A-Level을 가르치는 학비가 매우 비싼 귀족학교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공립대학의 경우 학비를 안 받거나, 받더라도 한국 돈으로 80만 원 정도밖에 안 한다. 물론 이는 선별적 교육과정을 운영하기에 가능한 측면이 많긴 하지만.

독일의 어린이들은 만 6살부터 의무교육과정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초등학교는 4년제로 읽기, 쓰기, 산수와 같은 기초교육을 비롯하여 음악, 미술, 스포츠 과목을 배우는 외에도 공동체학습과 질서의 준수 등을 습득한다. 이밖에도 합창, 배구, 악기 다루기 같은 특별활동시간도 주당 2시간 정도 있으며 하루의 수업시간은 반나절 정도 된다.[79] 초등학교를 마친 후에는 상급학교로 진학하게 되는데, 진학 가능한 학교의 종류는 3가지가 있다. 9년 과정의 김나지움(일반계 학교), 6년 과정의 레알슐레(실업학교), 5년 과정의 하웁트슐레(직업학교). 연방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진학자의 비율은 김나지움 33%, 레알슐레 27%, 하웁트슐레 24%, 게잠트슐레[80] 및 발도르프슐레 10%, 기타[81] 7% 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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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3]

김나지움에서는 고대 그리스어,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 러시아어, 스페인어외국어로 배우며, 영어는 영국식 영어를 배운다.

이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 한번 물갈이를 하기 때문에, 학생의 수준 자체가 한국과 비교시 다르다고 보면 되며, 실제 독일 일부 주의 김나지움의 수업 수준은 미적분을 고1 때 배우기 시작하는 등 한국보다 1-2년이 빠르다. 이러한 정책은 4학년 이후에 벌써 진로가 상당 수준 결정되는 것이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교육 제도 상으로 유리천장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성적은 1등급에서 6등급까지로 매겨지고(1등급은 매우 좋음, 5등급 이하는 낙제) 김나지움 졸업반 때는 2개의 주요과목을 선정하는데, 1점이 최하점, 15점이 최고점으로 매겨진다. 학기 말에 5등급이 2개 있거나 또는 6등급짜리 과목이 하나라도 있다면 예외 없이 유급된다. 그리고 두 번 유급되면 3번째는 없다. 졸업장도 없이 학교에서 쫓겨난다.[84]

김나지움은 과정을 수료하고 졸업 시험에 성공적으로 합격하면 아비투어(Abitur)라는 학력 증서를 받게 된다. 이 증서는 해당인이 전인교육을 받았으며 앞으로 어떠한 전문 교육도 받을 능력이 있다는 증서다. 이 증서를 받은 사람은 자연과학이나 인문과학 분야 대학에 아무런 제약 없이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며 자격은 평생 유효하다. 레알슐레는 과정을 수료하고 졸업 시험에 성공적으로 합격하면 미틀러레라이페(Mittlere Reife)라는 학력 증서를 받게된다. 이 증서를 가진 사람은 곧바로 대학 진학은 못하지만 일반 교양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사무직이나 행정직[85] 직업을 배운 후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다는 증서이다. 레알슐레 졸업 후 김나지움에 편입하여 아비투어를 취득하거나[86] 2년간의 직업교육 뒤에 파흐호흐슐라이페(Fachhochschulreife)를 취득하여 파흐호흐슐레로 진학할 수 있다. 하웁트슐레는 과정을 수료하고 졸업 시험에 성공적으로 합격하면 하웁트슐압슐루스(Hauptschulabschluss) 증서를 받게 되는데, 이 증서는 직업을 배우기 위한 최소한의 학력은 소지하고 있다는 증서다. 이 증서는 직업을 배우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물론 하웁트슐레 졸업 후 레알슐레로 편입하여 미틀러레 라이페(Mittlere Reife)를 취득할 수도 있다.

레알슐레와 하웁트슐레는 졸업하고 나면 일반 기업과 직업학교에서 이원화된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이 과정을 마치고 각 지방의 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직업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정식으로 취업이 가능하다. 이후 원하는 학생들은 마이스터 과정을 밟을 수 있다. 김나지움을 마치고 나면 졸업시험을 치르고 종합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대학교는 일반 종합대학(Universität), 파흐호흐슐레(Fachhochschule)[87], 음악대학(Musikhochschule), 미술/예술 대학(Kunstakademie) 등으로 나뉜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홈스쿨링은 범죄 행위로, 당국에 적발된 경우 부모는 벌금형에 처해지며, 아이는 공립학교에 강제 통학하게 된다. 이 때문에 홈스쿨링 하기 위해 미국, 영국 등지로 망명하는 가족이 생겨나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있을 정도. 독일 정부측은 "공동체에서 어울려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며 공교육의 의무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반면에 이와 같은 독일 교육 정책에 대해 '국가주의의 잔재'라고 비판하는 시선도 있다.

또한 학교폭력 문제나 교육 방법론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도 지적이 있는데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에 대한 보호는 공권력으로도 한계가 명백하며 교권과의 충돌 문제가 있고[88], 또한 홈스쿨링이라 해서 아이가 이상한 교육을 받거나 하는 게 아니고[89] 제대로 교육시키되 집에서 하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막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비정상회담에서 독일 대표가 말힌 바에 따르면 젊은이들의 꿈과 목표가 없다고 말했으며 우수한 청년들은 좋은 대학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퍼져 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 부러워하는 마이스터 학교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명문대학에 입학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독일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대학들이 평준화되어 있지만 실상은 모범생들만의 리그인 상태이다.[90]

2017년 8월 29일에 독일의 디벨트는 독일의 공교육투자율이 EU내에선 최하위라고 밝혔다.#

14.1.2. 아우스빌둥[편집]

아우스빌둥은 하웁트슐레를 졸업하고 하는 것과, 레알슐레를 졸업하고 하는 것이 있다.
하웁트슐레는 한국의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하고, 레알슐레는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한다.
아우스빌둥 기간은 보통 3년이나, 직종에 따라 단축 혹은 증가 할 수 있고, 대졸자의 경우에도 단축 받을 수 있다.
아우스빌둥을 위한 체류허가는 외국인 담당 공무원의 허가 이전에 노동청의 허가가 있어야 하며, 특정 지역에선 외국인에 대한 아우스빌둥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대부분의 아우스빌둥은 유급 실습생이나, 그 금액은 200유로 수준이다.(1년차)
독일인 인력이 충분해 구인이 어렵지 않거나, 반대로 임금이 너무 낮은 직종의 아우스빌둥은 노동청의 허가를 받는것이 어렵다.
아우스 빌둥의 시작은 9월이 일반적이라 카더라. 아우스 빌둥을 위한 면접은 이 4개월 전이 보통이라 카더라.

14.1.3. 고등 교육[편집]

독일의 고등교육정책은 1999년에 시작된 볼로냐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독일의 전통적인 학위과정이었던 9~10학기의 디플롬과 마기스터 과정이 점차 폐지되고 6학기의 학사와 4학기의 석사과정이 도입되고 있다. 이에 따라 파흐호흐슐레와 종합대학의 차이는 전보다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파흐호흐슐레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후 종합대학의 석사과정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또한 유럽 전역에서 ECTS라는 통일된 학점제도를 도입하여 유럽 대학간의 교류가 더욱 수월하게 되었다.

종합대학(Universität)의 학업은 전통적으로 이론적이고 학문적 부분에 집중되어있으며, 박사과정 및 교수자격취득(Habilitation)은 기본적으로 이곳에서만 가능하다.[91] 파흐호흐슐레는 좀 더 실질적이고 응용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대부분 직업실습이 학위과정에 의무로 규정되어있다. 음악, 미술 등의 순수예술 분야의 실기교육은 종합대학에서 이뤄지지 않고[92] 각각 음악대학, 조형예술대학 등의 단과대학에서만 가능하다.

독일에서는 유학생들에게 똑같이 학비를 받지 않고 물가가 싸서 생활비 부담도 적기 때문에 독일로 유학을 가려는 학생들이 매우 많은 편이다.[93] 생활비는 모든 집값, 세금, 음식비, 교통비, 보험비, 심지어 유흥비까지 전부 합해도 1달에 150만원이면 충분하며, 지역 물가, 개인 생활방식에 따라 100만원 이하로도 충분히 넉넉한 생활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물론 물가는 주 마다 판이하게 다르다. 예를 들면 바이에른 주 물가는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 못지 않게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물론 저 둘에 비하면 비싼것도 아니긴 하지만 물가가 싸다지만 외식비는 그리 저렴한 편이 아니므로 가난한 유학생 이라면 집밥과 외식의 비율 적절히 조절하는게 시간면에서나 비용면에서나 윈윈이다.

독일 유학 생활시 생활비가 타 국가에 비해 저렴한 결정적 이유는 대학생 한정으로 교통비가 저렴하기 때문. 일단 학교마다 금액은 다 다르지만 대학생이 되면 한학기 평균 130-400유로 이상[94] 정도를 등록비용, 행정비용, 학생회비, 학생복지회비, 교통티켓 등의 명분으로 지불한다. 그리고 교통티켓이 포함된 학생증이라면 그 대학이 속해있는 주 혹은 교통공사 운영 범위 내에서는 학생증에 적힌 유효기간동안 모든 근거리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95] 주말이나 공휴일, 오후 7시 이후에는 무려 동반 1인까지 무료다.[96] 참고로 교통 티켓은 별도 구매 형식으로 제공하는 학교도 있어서 원하지 않으면 구매하지 않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18시 이후의 대중교통권을 등록금에 포함시키는 경우 등 꽤나 다양한 경우가 존재한다.

독일 대학교 목록을 보려면 여기로.

14.2. 스포츠[편집]

모두가 알다시피 세계적인 축구 최강국들 중 하나다. 최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으며, 체계적인 유스 시스템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자국 리그인 분데스리가도 유럽대회에서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분데스리가 참조. 또한 2017년 6월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의 조국이기도 하다.[97]

핸드볼 최강국들 중 하나이고 저변도 꽤나 넓고 인기가 약간 있는 편이다. 핸드볼 분데스리가는 전세계에서 핸드볼을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리그로 정평나있는데 윤경신이 이곳에서 4회 득점왕을 기록하며 레전드로 거듭나기도 했다. 내일은 실험왕에서 막스 바우어가 괜히 핸드볼 선수로 설정된 게 아니라 사실 고증을 잘한거다.

모터 스포츠 역시 최강국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포뮬러 원에서는 2년 연속으로 메르세데스팀이 내구레이스에서는 포르쉐아우디가 넘버원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고 WRC에서는 폭스바겐이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FIA가 주관하는 메이저 3개 대회를 모두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휩쓸었다. 대표적인 드라이버는 미하엘 슈마허제바스티안 페텔이 있다.

동계스포츠 중에서는 루지봅슬레이, 바이애슬론에서 최강자의 면모를 과시한다.노르딕 복합과 알파인 스키, 스키 점프, 스피드 스케이팅 등에서도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기준으로 미국소련에 이어 3위를 기록 중인 국가다. 단 서독, 동독, 동서독 단일팀을 따로 계산할시 금메달 수에서는 7위다. 영어 위키백과 자료

복싱, 농구, 배구, 아이스하키, 테니스, 승마, 골프, 요트, 수영, 조정 등도 인기가 있다.

올림픽 아마추어 권투 역대 14위다 https://en.wikipedia.org/wiki/Boxing_at_the_Summer_Olympics 통일 전 동독은 13위를 하고있다.

야구의 경우 1984년에 출범한 베이스볼 분데스리가가 있다. 서독 시절 유럽야구선수권대회에서 호 성적을 낸 것을 제외하면 아직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독일 야구 국가대표팀을 꾸준히 출전시켜 경험을 쌓고 있다. 미네소타 트윈스맥스 케플러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애런 올테어가 독일 국적 메이저리거.

그냥 한마디로 월드컵성적도 좋고 동계•하계올림픽 성적도 좋은 스포츠 강국이다. 야구대회 성적이 안좋은건 그냥 넘어가자 야구를 얼마나 했다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피파 랭킹 1위로 시작해 F조 꼴찌로 마무리 지었다.

체스도 인기가 꽤 있다. 다니엘 프리드만 등 세계 최강급의 체스 기사들이 자주 나온다.

바둑한국 출신 윤영선 五단의 보급을 통해 선수를 키워내고 있다. 삼성화재배 월드조 예선이나, 궁륭산병성배 여자바둑 본선에 독일 출신 바둑기사들이 초청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기사는 마뉴엘라 마르츠 三단. 마뉴엘라 三단은 원래 생물학 박사인데 취미로 바둑을 하면서 여자바둑 세계대회에도 나온다.

운동 필라테스와 운동기구 트레드밀의 발명국이다

15. 군사[편집]


독일은 2011년 7월 1일 징병제를 폐지했다.# 공식 명칭은 징집 유예지만 유럽인들의 성향이나 징병제의 비효율성 등 여러모로 봤을 때 독일이 다시 징병제 국가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나치 정권 때문에 큰 죄를 짓고 자신들도 고통받은 독일인들로서는 나치 독일과 연관성이 깊은 징병제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시행하고 싶지 않은 제도가 되는 셈. 모병제로 전환해서 군대에 남은 병력도 평화유지군에 도움을 주는 임무 위주로 활동한다고 한다. 현역 군인으로 징집된 인원들은 늘 징병제 폐지 과정이 그렇듯 지원자에 한해서 직업군인으로 전환되며 전역을 원하는 인원은 순차적으로 전역을 한다. 또한 대체복무로 해왔던 사회봉사요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모집공고를 실시했다.

냉전 이후의 군축을 통해 독일이 바란 독일군은 고도로 훈련된 소수 정예의 군을 가지는 걸 원했겠지만 현실은 예비 총열도 못 사서 해외 훈련에 기관총 총열 대신 빗자루대를 꽂아놓고 훈련에 참가할 정도다. 거기다 유로파이터, NH-90 같은 각종 악재들이 겹치면서 국방력 강화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이를 통해 대체하려고 했던 F-4F 팬텀이나 도르니어 205 등 노후화된 장비들을 몇 년 더 연장해서 사용하게 되면서 예산이 더 빠져나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레오파르트2의 허상이 드러나고 G36의 총몸 문제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는데 예산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여 전력 강화는 커녕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동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유럽에 신냉전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독일군의 정규군 전력은 냉전 시기와 비교하기 초라할 정도인 3개 사단으로 축소되었고 상당수의 병력이 아프간, 소말리아, 동유럽 등으로 파병나간 상태다. 이마저도 아프간 등 파병지에서 근무 실태들이 드러남에 따라 실전 능력을 고려하기 전에 군인으로서의 기초가 안 되어있다.[98]

이래나 저래나 어느 정도 실상을 알고 있는 밀덕판에선 2차 대전, 냉전기의 강한 독일군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현재는 퇴물, 이빨 빠진 호랑이, 속빈 강정으로 여겨진다.

16. 창작물에서의 독일[편집]

  • 시드 마이어의 문명에서 꾸준히 등장해온 문명이다. 시대는 신성 로마 제국, 프로이센, 독일 제국 등 주로 과거의 독일로 자주 등장한다.[99][100] 팬들 사이에서 독일=생산력으로 통하는데, 고유 건물인 한자가 문명5에서는 도시국가와의 무역, 문명6에서는 인접한 자원과 상업 중심지를 통해 많은 생산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안좋은 의미로 얼굴마담인 히틀러 대신, 좋은 의미로 얼굴 마담인 비스마르크가 지도자로 등장한다. Ai로 만나면 꽤나 계산적이면서도 할말은 다하는 성격. 문명6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등장하며, 지도자 아젠다 때문에 꽤 친해지기 힘들다.

  • 게임 클로저스에서도 꽤 비중을 차지한다. 일단 플레이어블 캐릭터 세명이 독일인.


과학력이 세계 으뜸이라 카더라
의학약학도 제일이다

16.1. 독일을 모티브로 한 것들[편집]

17. 이야깃거리[편집]

  • 한국 유명인 중에서 차두리는 유년기만 독일에서 보냈고 하하 역시 독일 출신이다.

  • 스키장들이 북부인 강원도에 몰려 있는 한국과는 달리 독일 스키장들은 대개 남부인 바이에른에 몰려 있고, 한국보다 스키 시즌도 더 길어서 10월 중하순, 빠르면 9월 말부터 개장해서 4월이나 5월 초순까지 한다.

  • 독일은 욕설에 매우 엄격한 벌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일반적인 욕설은 250유로, 경찰에게 반말은 600유로, 늙은 돼지[103]라고 하면 2,500유로. 행동으로 하는 욕설은 혀를 내밀면 150~300유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면 최대 4,000유로까지 내야 할 수도 있다.

  • 2014년 이후 독일의 대학들은 등록금을 완전히 폐지했다.

  • 상상원정대에서도 독일을 방문한 바 있었다. 독일 최고의 롤러코스터 실버스타 탑승은 덤.

18.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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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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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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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 부속 규정에 의거하여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탈퇴 협상을 시작하며, 2년이 경과한 2019년 3월 29일까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연합에 가입한 27개 회원국들 중 단 하나의 회원국이라도 협상의 시한 연장을 거부할 경우, 협상의 진행 상황과 타결 여부와 무관하게 2019년 3월 29일부로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는 자동으로 상실된다.
* 탈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은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의 지위는 유지된다. 다만 영국 정부가 희망하면 유예기간 내에도 탈퇴는 가능하다.

[1] 현재는 3절만 취급한다.[2] 19세기 프로이센 왕국 시절에는 수레국화(Centaurea cyanus)가 국화(國花)였다.[3] 국가의 도입부 가사이다.[4] 난민 유입 증가로 인한 출산율 상승[5] 독일에 거주하는 무슬림의 상당수는 서아시아북아프리카 출신 난민 및 이민자들이다.[6] 국가 원수는 독일 대통령, 행정 수반은 독일 총리이다. 대통령은 독일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일을 수행한다.[완전민주주의] [8] Frank-Walter Steinmeier[9] Angela Merke[10] 지금은 하원의장이 된 볼프강 쇼이블레의 뒤를 이어 2000년부터 만 18년 동안 기독교민주연합 대표직을 수행 중이다. 내각제 국가의 경우 총선 승리로 총리에 등극할 경우 메르켈처럼 오랜 시간 동안 당 대표 자리를 지키는 경우도 흔하다. 총리직은 2005년부터 수행 중.[11] Michael Müller[12] 베를린 시장 직을 겸임하고 있다. 베를린의 경우 도시주[13]이므로 그 시장은 타 주의 총리와 위상이 동등하다. 정확한 명칭은 시장이라기보다는 주 총리이고, 베를린의 정식 명칭도 베를린시가 아닌 베를린주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시의 정식 명칭이 서울이고 그 수장의 직함이 서울시장이 아닌 서울도지사인 셈이다. 참고로 나머지 두 도시주함부르크브레멘의 경우 정식 명칭도 자유 한자시(市)이다. 그러나 베를린이 도시주임을 감안해 그 수장을 시장으로 의역하여 기재한다.[13] 우리나라의 특별시 및 광역시와 유사[14] Wolfgang Schäuble[15] 의장이 되기 전까지 앙겔라 메르켈 내각에서 내무장관으로 4년, 재무장관으로 8년 가까이 근무했다. 헬무트 콜 내각에서도 내무장관으로 근무했고, 동서독 통일조약에 서독 내무장관 자격으로 직접 서명한 장본인이다. 헬무트 콜이 총리 5선에 실패하고 게르하르트 슈뢰더에게 총리직을 내준 이후 콜의 뒤를 이어 기독교민주연합의 대표가 되기도 했지만 정치자금 스캔들로 중도하차한다. 쇼이블레의 후임 당 대표는 앙겔라 메르켈.[16] Andreas Voßkuhle[17] Bettina Limperg[18] 조독외교협정 체결 기준[19]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당시 서독과의 수교. 한국은 동독과 수교한 적은 없다. 한국과 독일에서는 수교 연도를 조-독 수교 기준인 1886년으로 삼는다.[20] 동독과의 수교는 1949년. 북한은 서독과는 미수교 상태였다. 독일 통일은 동독의 국가 해체 이후 동독 주들의 독일연방공화국 가입의 형식으로 이루어졌기에 외교 관계가 현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승계되지 않았다.[21] 독일은 게르마니야라고 쓰지만 독일인은 넴치(Немцы), 독일어는 네메츠키(Немецкий)라고 한다.[22] 문자 그대로 옮기면 게르마니아(Γερμανία)지만 현대 그리스어 발음으로 '예르마니아'다. 정식 국명은 '이 오모스폰디아끼 디모크라띠아 띠즈 예르마니아스'.[23] 원래는 국가를 나타낼 때 -uj- 접미사도 쓰였으나 현재는 개정되어 -io를 쓴다.[24] 오스트리아와 접한 남쪽 끝 부분은 알프스 산맥의 중턱에 해당한다.[25] 경제력으로는 영국도 있지만, 유로존에는 참가하지 않는 등 내내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제외. 게다가 영국은 2019년 3월에 유럽연합을 탈퇴할 예정이다.[26] 라틴어 게르마니아에서 따 온 "Германия"(Gyermaniya)라고 부르는 러시아를 제외하면, 보통 슬라브어권 국가에서 독일을 부르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이 "녜메트"에서 나온 것이다. 녜메트는 "벙어리"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그런 명칭을 사용한 게르만 부족에서 따온 것. 그리고 러시아어마저도 형용사로 쓸 때는 Немецкий(니몌츠끼)로 적는다.[27] 사실 독일(獨逸)이라는 한자어 자체의 일본식 발음이 '도이츠'다. 역으로 '도이칠란트'를 줄여부른 '도이츠'를 한자로 음차한 셈.[28] 도이치의 음차 德意志(덕의지)에서 따옴[29]이원복먼나라 이웃나라 한국 편을 전후로는 독일을 사용한다.[30] 비정상회담독일인 패널 다니엘 린데만도 이렇게 설명하였다.[31] 30년 전쟁으로 완전히 빈곤 국가로 전락하고 빌헬름 1세와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가 통일하기 전까지 독일은 심할 땐 300개 이상의 소국가들로 나뉜 적이 있었다. 로마 제국훈족부터 시작해 해상왕국 영국과 단일 육군 최고인 프랑스에 짓밟히며 살았다.[32] 올림픽 등에서 동·서독 단일팀을 구성하거나 단일팀을 구성하지는 않아도 공동의 상징물을 썼을 때가 있었다. 동독 국기가 서독과 달라진 이후 동·서독 공동으로 쓸 깃발로 독일 삼색기 위에 작게 흰 오륜 마크를 추가한 것을 썼다. 오륜 마크? 중화 타이베이? 대한민국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할 경우 한반도기로 대신한 것과 비슷하지만, 남·북의 국기에 공통점이 없는 한반도와 달리 동·서독의 공동 깃발은 그래도 흑적금 삼색이라는 공통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33] 헝가리, 루마니아 등에서 공산당 정권에 반대하여 투쟁할 때도 이와 비슷하게 국기의 가운데를 동그랗게 오리거나 검은 테이프 등으로 X자를 쳐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문장을 떼어내기도 했다. 동구권 반공 투쟁 당시 유행이라고 보면 될 듯. 과거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국기들은 전통적으로 썼던 옛 국기 위에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국장을 덧붙인 디자인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34] BGH, Urteil vom 16. November 1959, Az. 3 StR 45/49.[35] 내용 상 ‘독일이 모든 것 위에 있고 세계 최고다.’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니 당연한 일.[36] 올림픽 등에서 동·서독 단일팀을 구성하거나 단일팀을 구성하지는 않아도 공동의 상징물을 썼을 때가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환희의 송가를 국가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대한민국북한의 단일팀을 구성할 때 아리랑을 국가 대용으로 썼던 것과 같다. 참고로 환희의 송가는 오늘날 유럽연합의 찬가(anthem)로 쓰이고 있고, 엉뚱하게도 프랑코포니에서도 찬가로 쓴다.[37] 224개 국가 중 200위. 2015년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1.50명을 기록하여 1982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래봤자 이 분야 최고는 한국이다[38] 현재 지구상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국가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포르투갈, 그리스, 불가리아, 핀란드 총 9개국이다.[39] 영국프랑스, 북유럽의 경우 한부모 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출산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40] 1980년대 이전 통계에서는 영국계가 독일계보다 많았다.[41] 록펠러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에서 쫓겨난 위그노가 조상이다.[42] 아버지는 이탈리아/독일계 미국인, 어머니는 독일인과 러시아인의 혼혈, 외할머니는 러시아인이다.[43] 그냥 Mann 자체가 성인 사람도 있다. 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토마스 만이 대표적.)[44] 예: 아인슈타인(Einstein)[45] 외질이나 알튼톱 형제 모두 똑같이 겔젠키르헨(Gelsenkirchen)이 고향이다.[46] 1980년대 케난 에브렌 정권 시절에는 알라의 알 자만 입에 담아도 '인민의 집(Halk Evi)'으로 끌려가 케밥을 코로 흡입할 수 있었다.[47] 사실 터키인들과 아랍인들도 인종적으로 볼 때는 백인이긴 하지만, 그것 말고는 유럽 백인들과 비슷한 게 적다.[48]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다른 경우이다. 대체로 영어가 잘 통한다고 보면 된다.[49]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대학교에서 라틴어 학습자와 비학습자를 따로 구분했다.[50] 소르브어는 슬라브어계 언어이고 소르브인들은 독일 정부에서 인정한 슬라브계 소수 민족이다.[51] 1990년대에 구소련의 독일계 후손들이 독일로 많이 이주했지만, 대부분이 독일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52] 하지만 보통 되너집이고 진짜 정통 터키요리를 접할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널려있진 않다.[53] 교회협의회(EKD) 소속이 아닌 루터교회를 말한다.[54] 몬시뇰[55] 루터회 목사[56] 일찍이 토마스 아퀴나스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표현을 빌리자면 독일 가톨릭 교회는 최강의 집사를 보유한 셈이다.[57] 하이데거의 제자이며, 하이데거 사상을 신학적으로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대략 중세 신학자들이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집사로 삼은 것과 비슷하다.[58] 한국의 개신교 고학력 목사 중 유학파는 영미권 아니면 독일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59] 한국의 일부 기독교인들에게는 낯설겠지만, 독일에서 성경을 근거로 동성애를 비판하거나 할 경우 증오발언 내지는 혐오선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처벌받을 수 있다. 독일은 기독교(카톨릭+개신교+기타 소수종파) 인구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인데도, 근본주의적 개신교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국민의 절대다수가 성소수자들에게 호의적인 국가이다.[60] 구 서독의 임시수도였다.[61] Minijobs sind sozialversicherungsfrei, d.h., sie begründen keinen eigenen Sozialversicherungsschutz[62] http://www.gegen-hartz.de/hartzivregelleistung.html 참고로 대한민국의 기초생활수급 수당과 비교시 1인가구 60만원, 2인가구 102만원, 3인가구 133만원, 4인 가구 163만원. 국민소득이 2배는 높은 독일이니 상대적으로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 대충 짐작이 가능할 듯.[63] 참고로 각종 보험과 세금을 납부해야 하므로 시간당 7.5유로를 받아야, 현재 주휴수당을 포함한 한국의 최저임금과 같은 수준이 된다.[64] 오류가 있는데, Vive Le France가 아니라 Vive La France다. France라는 단어가 여성명사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프랑스어 문서 참조. 그리고 Vamos España 이다.[65] 아인슈타인은 독일 태생이지만 독일국적을 버리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스위스에서 대학을 나와서 스위스에서 특허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그 뒤에 독일에서 연구활동을 한지로 애매하다.[66]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처럼 독일에 남아 과학부 장관 자리에 올라서 독일 핵개발을 지휘했던 사람도 있다.[67] 나치의 집권으로 독일서 탈출했다.[68] 기본적으로 헝가리인이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시절 출생했고 독일에서 공부한데다 학술 활동도 독일어로 했기에 독일 철학의 범주에 포함된다.[69] 다만 하이데거는 히틀러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나치당원이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스승이었던 후설을 대학에서 내쫓은 흑역사가 있다. 최근에 발견된 '검은 노트'로 유대인 혐오자의 모습이 더욱 부각되는 중.[70] 정확히 말하면 칸딘스키는 러시아 태생이지만 뮌헨에서 활동하면서 현대 예술의 중요한 돌파구인 추상화에 이르렀다.[71] 기초노령연금이란 간단히 말해서 일정 이상의 나이가 들면 다 주는 연금을 말한다. 당연히 연금이 발달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기초노령연금 외에도 공적연금으로 세대간 부양의무를 지우는 국민연금, 그 외에 사적연금으로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으로 다양한 노후보장체계를 마련하여 노후의 빈곤을 막는다. 즉 연금 수령액 전체를 통털어서 700유로인 것과 기초노령연금 500~800유로인 것은 천지차이다. 물론 이탈리아 같은 경우 노인들 빡세게 보장해 주면서 세금 부담 때문에 나라가 망해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둥 꼭 좋게 볼 수만은 없다.[72] 물가가 저렴한 나라로 이사를 가면 괜찮을 것 같지만, 해외 거주 시 그 나라 물가 대비해서 연금이 나온다. 예를 들어서 스페인에 거주한다고 치고 세금 전부 다 떼면 1달 600유로 실수령(...). 스페인에 집이 있다면 모를까 노르웨이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다만 기초노령연금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잊지 말자. 대다수의 노르웨이인들은 이것보다 당연히 많이 받는다.[73] 실업률, 임금은 만 25세에서 만 64세 사이[74] 어느나라가도 직업훈련 안받으면 저임금 노동 하는것 마찬가지다. 독일만 그렇것 아니다.[75] 한국노년층까지 포함하면 평균학력이 저정도 수치로 나올 것이다.[76] 헌데 당시 상황으로는 통화교환을 1:1로 안하기에도 그랬던게 당시 동독의 임금수준이 명목상으로는 서독의 1/3 정도수준에 머물렀었고 (대신 그 만큼 물가는 싸긴 했지만) 동독 마르크의 가치는 잘쳐도 서독 마르크의 1/3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이 아닌 동 3: 서1으로 통화를 교환했을 경우에는 동서독의 임금 격차가 무려 1:9까지 벌어지고 거기에다가 서독의 물가수준은 동독의 물가수준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동 3: 서 1로 교환한다면 통일후엔 그 만큼 빈부격차, 생활격차가 커진다는 얘기이니 셈이니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77] 물론 그래도 임금수준이 서독보다는 많이 낮은 편이었고(대신 생산성도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물가(바나나나 향수 가격같은 건 크게 싸졌고 여타 물품도 공급이 크게 늘어나고 종류도 다양해졌지만 그 대신 주택임대료나 전기료, 수도요금, 식사료는 폭증했다.)는 그보다 더 올라서 동독인들이 많이 불평했었다.[78] 통일연구원, 독일통일 20년 조망 : 독일통일이 한반도 통일에주는 시사점 - 통일 주변환경 조성 중심 기사도 참고[79]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유럽 내 학습능력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것에 충격을 받은 몇몇 주에서는 종일반으로 운영되고 있다.[80] 김나지움, 레알슐레, 하웁트슐레가 한 학교로 합쳐져 있는 형태. 진보적인 정당이 집권한 몇몇 주에 도입되었다.[81] 하웁트슐레, 레알슐레가 한 학급에 있는 경우 등.[8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79954 오마이 뉴스 기사에서 사진 링크함. 기사에 따르면 독일에는 "학원"이라는 단어가 없어서 한참동안 그 개념을 설명해주면서 독일의 중학교 학생과 인터뷰 했다고 한다. 학원에 다니냐는 질문을 받은 독일 중학생은 "학교가 끝난 뒤에 왜 또 같은 과목을 배우러 다른 학교를 가죠?"라고 답변했다. "예습"이라는 단어도 없는 것 같다.[83] 독일에도 과외를 의미하는 Nachhilfe라는 사교육 활동이 있다. 하지만 선행 학습보단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기 위한 복습 위주의 사교육이다. 성적이 미달할 경우 유급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나머지 공부 개념으로 Nachhilfe를 하는 학생들이 있다.[84] 참고로 아인슈타인은 김나지움에서 아비투어를 취득하지 못하여 독일대학교 입학자격 자체가 없었다. 다만 독일어권 이공계 최고학부인 취리히 연방공대(ETH Zürich)는 고등학교 졸업장(아비투어)이 없어도 본고사만 통과하면 입학이 가능하다. 물론 이 전통은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다. 다만 취리히 연방공대는 1895년 10월 아인슈타인은 그래서 입학시험을 치뤄 수학과 물리학에서 매우 뛰어난 성적을 받았지만 다른 과목들이 발목을 잡아 낙방하고 말았다. 그는 1년간 아라우(Aarau)의 고등학교를 다녀 독일의 아비투어에 해당하는 마투라(Matura)를 취득한 후인 1896년 10월에야 ETH에서 학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85] 예를 들어 은행원, 경찰, 공무원, 비서, 이공계 기능직 등의[86] 이 부분은 각 주의 교육정책에 따라 다르고 학생의 성적에 따라서도 달라진다.[87] 파흐호흐슐레는 전문대학이라고 번역할 수 있으나, 한국의 전문대처럼 사회에서의 인식이 낮지는 않다.[88] 사후 처벌을 엄격하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징역 몇십년, 몇백년을 밥먹듯이 때리는데도 범죄 발생을 막지 못하는 미국을 생각해보자.[89] 실제로 자식을 집에서 키우면서 이상한 사상을 주입시키거나 하는 막장 부모가 있는 건 사실이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고 단순히 공교육을 불신하여 집에서 직접 가르치는 케이스다.[90]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인서울 대학과 지거국, 일부 특수대학만 남기고 다 폐교한 후 대학을 평준화한 상태로 볼 수 있다.[91] 예외적으로 몇몇 파흐호흐슐레가 종합대학과 협력해서 박사과정을 개설하는 경우가 있고, 하노버 미대, 베를린 예술대 등이 종합대학은 아니지만 박사과정 개설권을 가지고 있다.[92] 종합대학에서도 예술과 관련된 과목이 있지만 이는 음악학, 미술사 등의 이론적인 과목에 한해서다.[93] 다만 2017년도 겨울학기부터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비EU 지역 출신 유학생에게 등록금을 학기당 1,500유로씩 받고 있다. 또한 다른 주에서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94] 학교나 주마다 금액 차이가 큰데 교통티켓을 의무로 구매해야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8년 여름학기 기준 베를린 자유대학은 교통티켓을 포함하여 311.59유로, TU 뮌헨은 129.4유로에 교통티켓은 별도로 구매할 수 있다. 카를스루에 공과대학은 153.69유로이고 교통티켓은 별도로 155유로에 구매할 수 있다.[95] 기차의 경우 Region Express 까지 탈 수 있다. IC나 ICE 같은 고속열차는 이용이 불가하다.[96] 자세한 내용은 TUM 문서 참조.[97] 현역 시절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42경기 3골을 기록했으며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유로 1980에 출전했다. 은퇴 이후에는 독일 대표팀 수석코치와 독일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98] 아프간에서 독일군과 같이 근무했던 캐나다 군인 수기에선 경계근무 도중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독일 군인들이 막사로 돌아가는 근무지 이탈이 있었다고 언급되었고 소말리아에 해적 퇴치를 위해 파견된 독일군 장병들이 지급된 장비를 들고 소말리아에서 용병 활동도 겸업했다는 사실은 한때 독일 내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99] 그도 그럴것이 나치 독일은 서구권에서 다루기 껄끄러운 주제이고 나치 독일 이후의 독일은 전쟁과 거리가 멀어서...[100] 하지만 고유유닛은 팬저, 유보트 등 꾸준히 나치 독일의 무기를 들고 온다. 나치 독일에 대한 이미지는 안 좋아도 그만큼 유명한 게 나치 독일의 무기이기 때문.[101]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처럼 이름만 따온건 제외[102] 단지 파시스트 국가라고 집어넣는게 아니라 역사나 문화적 공통점이 있어야 함[103] 독일어로는 Altes Schw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