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근 수정 시각:

도이칠란트 연방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
Federal Republic of Germany

국기

파일:독일 국기.png

국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Coat_of_arms_of_Germany.svg.png

국호

독일 연방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

건국
·
정부수립

• 962년 2월 2일 (신성로마제국 건국)
• 1815년 6월 8일 (독일 연방 성립)
1871년 1월 18일 (독일제국 수립)
1933년 2월 27일 (나치 독일 수립)
1949년 5월 23일 (독일연방공화국 수립)
1949년 10월 7일 (독일민주공화국 수립)
1990년 10월 3일 (통일)

수도

베를린

상징

표어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1]

국가

Deutschlandlied

국목

참나무[2]

국가 코드

DE, DEU[3], GER[4]

자연환경

면적(영토)

357,168km² (2015년)

인문환경

인구

(총 인구) 80,636,124명 (2017년)
(민족) 독일인 80.7%, 터키인 4.0% 등

공용 언어

독일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종교

국교 없음.
(무종교 33.5%, 가톨릭 29.5%, 개신교 27.9% 등[5])

행정구역

연방주

16개

도시 수

2,060개

정치

정치이념

공화제(국민주권), 민주주의(대의제), 연방국가, 정교분리, 의원내각제[6], 양원제, 다당제, 성문법주의(대륙법계)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3위[7]

외교

국제연합 가입

1973년 (·서독 동시 가입)

대한수교
(對韓修交)

대한민국: 1886년[8], 1955년[9]
북한: 2001년

경제

경제이념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조정시장경제 ,혼합 경제, 토지 사유제, 절대적 소유권, 사적 자치

명목 GDP

(전체 GDP) $3조 6200억 (2017 / 추정)[10]
(1인당 GDP) $43,269 (2017 / 추정)[11]

GDP(PPP)

(전체 GDP) $4조 537억 (2017 / 추정)[12]
(1인당 GDP) $48,835 (2017 / 추정)[13]

수출·입액

(수출) $1조 2830억/세계 3위[14]
(수입) $9876억/세계 4위[15]

외환보유액

$2004억[16]

신용등급

Aaa(무디스)
AAA(S&P)
AAA(Fitch)

공식 화폐

유로 (€)
ISO 4217: EUR

ccTLD

.de, .eu

국가 예산

1년 세입

$1조1426억 (2017 / 추정)

1년 세출

$1조1423억 (2017 / 추정)

단위

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 +1
(일광절약시간제 실시)

도량형

SI 단위

국가원수
·
핵심 요인

연방대통령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Frank-Walter Steinmeier
(사회민주당)

연방수상[17]

앙겔라 메르켈
Angela Merkel
(기독교민주연합)

연방상원의장
(상원)

말루 드라이어[18]
Malu Dreyer
(사회민주당)

연방하원의장
(하원)

노어베르트 람메르트
Norbert Lammert
(기독교민주연합)

사법재판소장

베티나 림페르크
Bettina Limperg

헌법재판소장

안드레스 포스쿨레
Andreas Voßkuhle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Germany_on_the_globe_%28Europe_centered%29.svg.png

1. 개요2.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가
3. 역사
3.1. 과거사 문제
3.1.1. 나치 독일에 대한 입장3.1.2. 제국주의에 대한 입장3.1.3. 1차대전독일 제국에 대한 입장3.1.4. 일본과의 비교
4. 자연환경5. 인문환경
5.1. 인구5.2. 이민 문제5.3. 언어5.4. 종교5.5. 교통
6. 행정구역
6.1. 주요 도시들
7. 정치
7.1. 헌법7.2. 국내 정치
7.2.1. 선거7.2.2. 정당7.2.3. 대통령7.2.4. 수상7.2.5. 상원
7.3. 독일/외교
8. 경제
8.1. 최저임금8.2. 자산
9. 사회
9.1. 과학기술 및 학술적 역량9.2. 연금제도9.3. 사회문제
9.3.1. 노동시간과 노동강도9.3.2.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9.3.3. 사회지표에 대한 반론
10. 문화
10.1. 교육
10.1.1. 초/중등 교육10.1.2. 고등 교육
10.2. 스포츠
11. 군사12. 창작물에서의 독일13. 이야깃거리14. 같이보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randenburger_Tor_abends.jpg

1. 개요[편집]

중앙유럽에 위치한 국가. 시계 방향으로 북쪽에 덴마크, 동쪽에 폴란드, 체코, 남동쪽에 오스트리아[19], 남서쪽에 스위스, 프랑스, 서쪽, 북서쪽에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댄다. 그야말로 유럽의 중앙부.

일본에 맞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경제대국으로, 프랑스와 함께 현 유럽 연합 체제를 이끄는 국가[20]다. 그리고 EU의 경제를 책임지는 유로존 최대의 물주이기도 하다. 수도는 베를린. 독일은 서북쪽의 북해와 동북쪽의 발트해와 접해 있다.

독일에는 여러 운하가 있는데 그 중에서 독일 북부에 있는 킬(Kiel) 운하는 지금까지도 잘 쓰이고 있다. 하지만 강 사이 사이를 연결한 마인-도나우 운하는 환경 파괴의 요소가 많기 때문에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고, 카를스루에 대학 베른하르트 교수가 4대강 사업에 대해 비판하며 마인-도나우 운하를 예시로 든적이 있다. 다만 킬 운하로 와전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듯하다.

경제적으로는 GDP 4위 네이버 GDP IMF 순위 다음 GDP IMF 순위 , PPP 5위 , 특별인출권 유로화 , 1인당GDP 18위 , 국제통화기금 투표권 4위 영어위키백과 IMF Voting power , 보유고 2위 영어위키백과 Officially reported holdings , 무역량 총합 3위 # , AIIB 지분율 4위 연합뉴스

군사적으로는 GFP 평가 9위 , 국방비 9위 # , 무기 수출은 5위를 하고있다 매일경제 , 경향신문

2.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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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Bundesrepublik Deutschland / Deutschland, BRD

한국어

독일연방공화국(獨逸聯邦共和國) / 도이칠란트, 독일(獨逸)

문화어

도이췰란드련방공화국 / 도이췰란드

영어

Federal Republic of Germany / Germany

프랑스어

République fédérale d'Allemagne / Allemagne

러시아어

Федеративная Республика Германия / Германия[21]

중국어

德意志联邦共和国 / 德国(더궈)

일본어

ドイツ連邦共和国 / ドイツ(도이츠)

그리스어

Ομοσπονδιακή Δημοκρατία της Γερμανίας / Η Γερμανία[22]

네덜란드어

Bondsrepubliek Duitsland / Duitsland

라틴어

Res publica foederata Germaniae / Germania

라트비아어

Vācijas Federatīvā Republika / Vācija

리투아니아어

Vokietijos Federacinė Respublika / Vokietija

스웨덴어

Förbundsrepubliken Tyskland / Tyskland

스페인어

República Federal de Alemania / Alemania

에스토니아어

Saksamaa Liitvabariik / Saksamaa

이탈리아어

Repubblica Federale di Germania / Germania

터키어

Almanya Federal Cumhuriyeti / Almanya

폴란드어

Republika Federalna Niemiec / Niemcy

핀란드어

Saksan liittotasavalta / Saksa

헝가리어

Német Szövetségi Köztársaság / Németország

히브리어

הרפובליקה הפדרלית של גרמניה / גרמניה

에스페란토

Germanio / Germanujo

자국어로는 도이칠란트(Deutschland, /ˈdɔʏtʃ.lant/)라고 부른다. 이를 풀어서 쓰면 "das deutsche Land", 독일인(Deutsch)의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도이치라는 말은 고대 게르만어 diutisc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 민족이라는 의미이다. 국제적으론 영어의 영향력으로 Germany로 부른다. 더치 페이더치(Dutch)와도 그 어원이 비슷하다. 이런 원어명과는 달리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어서 가령 프랑스에서는 독일을 게르만 민족인 알레마니족의 땅이라는 의미의 '알마뉴(Allemagne)', 폴란드에서는 슬라브어 녜메트(němьcь)에서 유래한 '녬치(Niemcy)'[23], 핀란드에서는 색슨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삭사(Saksa)'로 부르며, 에스토니아에서도 색슨족의 땅이란 뜻의 삭사마(Saksamaa) 어? 라고 부른다. 한편 발트어권인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에서는 '바치야'와 '보키에티야'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 이름들의 경우 어원이 불분명하다.

한국에서 부르는 독일이라는 명칭은 일본의 한자 음역으로 들어온 것이 정착한 것이다. 개화기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덕국(德國, 정확히는 德意志(덕의지)) 등의 표현도 쓰였으나 지금 이 표현이 쓰이는 경우는 독일의 기술력과 관련되어 독일을 부를 때 인터넷에서 쓰인다. 또 다른 중국식 음역으로 일이만(日耳曼)이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24] 등 많은 국가들이 자국어 명칭에 가까운 한국어 발음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미국, 영국, 호주 등과 함께 어지간해선 원어명으로 불리지 않는 국가에 속한다. 유럽국가에 한정하면 영국과 함께 유이한 케이스. 80년대 교과서에서 원어발음에 따른 도이칠란트를 밀기도 했고, 이원복 교수처럼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도이칠란트 표기를 고집하는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의 매체에서의 명칭 사용은 독일로 굳어져 있다.[25] 이 이유는 발음의 경제성 원리 때문인데, 원어명의 독음이 5글자(도이칠란트)로 너무 길어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더 적은 품이 드는 독일이 더 선호되는 것이다. 근데 왜 오스트리아는 오지리라고 하지 않는 것일까?[26]

2.2. 국기[편집]

파일:attachment/germany1.jpg
국기는 , , 3색으로 구성된 '연방기'이다.짱구를 떠올리자 이와 함께 국장인 독수리가 붙어 있는 버전이 있는데, 이는 연방정부의 부처에서만 사용되고 민간과 주 정부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검정은 인권 억압 및 탄압에 대한 분노와 어둠을,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금색은 진리와 지혜를 뜻한다. 독일어판 위키백과는 1813년 해방 전쟁에서 나폴레옹에 대항한 뤼트초프 의용군의 군복색에서 이 3색이 왔다고 설명한다.[27] 프로이센의 소장(Generalmajor) 아돌프 폰 뤼트초프 아래로 모인 독일 전역의 의용병들은 저마다 다른 군복이나 사복을 들고왔기 때문에 여기에 통일성을 주기 위해 옷을 검정으로 물들였고, 여기에 금빛 놋쇠 단추를 달고 소매를 빨간색으로 했다고 한다. 당시에 이 3색이 가졌던 의미는 다음과 같다.

파일:attachment/독일/5CIpRHp.png
"예속의 어두움에서 피의 살육을 지나 자유의 황금 빛으로."

의미에 대한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검은색 부위는 독일이 타국에 짓밟히던 17세기 이전 유럽의 빈곤하던 독일의 시절을 의미한다.[28] 붉은색은 역시 예상대로 프로이센부터 나치까지 이어져 온 침략들을 표현하며 많이 반성하고 있다. 그런 의미는 독일인들에게 아주 중요하다. 금색 부위는 밝고 희망찬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새로운 독일, 전쟁과 침략이 없는 독일을 바라는 독일인의 소원을 표현한다."

- 2014년 4월 ZDF, 훔볼트 대학교 교수 만프레드 S. 헬러 교수


1848년 통일 후 처음 지정되었으나 폐지되고 1919년 제정이 폐지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재지정되었으나 1933년 아돌프 히틀러 독재정권인 나치 정권이 수립되면서 폐지, 하켄크로이츠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가 1945년 나치 정권의 패망하자 1949년 다시 동-서독일의 국기로 지정되었다. 그러다가 동독은 1959년 이 국기에 호밀 이삭, 망치, 컴퍼스가 그려진 국장(國章)을 추가하여 서독과 구분하였다.[29] 1990년 10월 3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가입하면서 동독의 국기는 자연스럽게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동독이 서독에 흡수될 당시 이를 환영하던 몇몇 동독인들은 독일연방공화국 국기를 대신해 동독 국기에서 문장이 있는 부분을 동그랗게 오려 내거나 검은 테이프 등으로 문장에 X자를 쳐서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30]

참고로 국기의 금색을 금색(Gold)이 아니라 노란색(Gelb)이라고 하는 건 독일에서 불법이다[31]. 1959년 6월 독일 연방사법재판소(Bundesgerichtshof)의 판결에 따르면 독일의 국기를 노란색으로 부르는 것은 나치 시기 민주주의 비방과 같으며 네오나치 처벌과 동급으로 취급한다고 하였다. 옛 나치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흑적금 국기의 금색을 노란색, 겨자색, 똥색(...) 등으로 부르며 비하한 적도 있었다.

2.3. 국가[편집]

국가(國歌)는 독일의 노래 중 제3절만 사용하는데, 1·2절은 국가로 지정돼 있지 않다. 특히 1절은 나치 독일의 상징으로 여겨져 독일인들도 어지간하면 부르지 않으니 주의. 시인 호프만 폰 팔러슬레 벤이 쓴 가사에 하이든이 지은 곡을 붙여 만든 곡이다. 상세한 설명은 독일의 노래를 참고할 것. 동·서독 분단 당시에는 서독에서만 단독으로 불렸던 국가였으나[32] 1990년 10월 3일 동서 독일이 통일되면서 통일 국가로 지정되었다.

3. 역사[편집]

해당 문서 참조.

3.1. 과거사 문제[편집]

3.1.1. 나치 독일에 대한 입장[편집]

반성을 하고 있는 흑역사 중의 흑역사

두 차례 대전과 분단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안았음에도 과거에 대한 반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변국의 신뢰를 회복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등 매우 교훈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이미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러나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현재 세계 강대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정치와 외교,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대인, 폴란드체코,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벨기에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에게 전쟁 피해를 겪었거나 싸운 적이 있었던 유럽 국가들[33]에게 외교적으로 밉보이지 않기 위해 하는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종전 직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한 비판이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1950 ~ 1970년대에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서 역으로 나치를 비판하다가 주변인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34] 대표적인 예가 전후 6년 만에 등장한 사회주의 국가당(SRP, Sozialistische Reichspartei)인데, 이 정당은 서독에서 친위대독일군 출신들이 모여 합법적으로 나치즘을 계승할 목적으로 만든 당이었다. 나치의 정강 정책이나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심지어 북부 독일 일부에서는 25%에 달하는 득표율을 기록하여 나치 깃발이 다시 휘날리는 상황도 벌어졌다 하니 흠좀무. 결국 헌법수호청1956년, 이 정당에 해산 명령을 내리고 후속 내지는 대체 정당 금지도 선고했다.# 물론 21세기 현재 이 짓을 하면 경찰한테 끌려간다고는 하지만....

독일에서는 나치나 히틀러 우호 발언 뿐 아니라 나치 휘장, 하켄크로이츠를 공중(公衆)에 내비치는 것조차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 역시 위법. 그래서 독일어 위키백과#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일부 나치 관련 문서는 편집제한 문서로 묶여 있으며, 토론란에도 키보드를 잘못 놀리면 감방 갈 수도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히틀러와 나치즘 경험이 치욕스럽고 끔찍했는지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Bundesamt für Verfassungsschutz)이 정치인, 공인들을 상대로 사상을 검증하여 조금이라도 나치즘, 파시즘스러운 발언을 했다간 공직 인생은 그대로 말아먹게 된다. 제2의 히틀러와 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하는 것. 이는 외국인에게도 예외는 없어서 나치 등을 소재로 삼아 독일을 비하하면 독일 법에 저촉된다. 한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도 독일 여행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아예 이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조차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팔만 잘못 올려도 당장 잡아간다. 이러다 보니 몇몇 독일인들은 독일이 애국심을 가지면 좋게 끝난 적이 없다며 국가의 상징들을 혐오하기도 한다. 이건 독일이 딱히 개념이 충만하다기보다는 전 국민이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진 것에 가깝다. 위에서 말했듯이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때문에 나치나 히틀러에 대해서 언급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도 않고, 학교에서도 올바른 역사와 나치와 히틀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교육한다. 독일 내 곳곳에 박물관을 만들어서 어린이들이나 관광객들에게 과거의 조상이 대참사를 일으킨 장본인이었으니 절대 이렇게 되면 안 되고 후세에는 절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교육을 철저히 한다.[35] 반면교사?

물론 요즘 나치나 나치가 아니더라도 과거 강했던 독일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아랍 난민들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

아무튼 법과 제도, 교육에서는 나치즘에 대한 반성을 계속하고 있다. 유산에는 재산도 있지만 빚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완전한 나치 청산이 아니라서 1950년대에서 60년대까지 서독 법무부 간부 77% 나치당원 출신이라는 자료가 있다. 허나 이는 어쩔 수 없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 정부 관료들을 통째로 10~20년 만에 갈아엎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직된 분위기가 오히려 당시 상황을 객관적이고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여지까지 없애버렸다는 내외적인 비판도 있다. 현재 독일 정부와 국민들의 나치즘이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자세는 흑역사로 묻자에 가깝지, 이걸 계속 곱씹어보겠다는 게 아니다.[36]사회 분위기가 아예 그와 관련한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말고, 굳이 해야 한다면 그냥 '절대악'쯤으로 치부하자는 식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 자체가 나오려야 나올 수가 없다. 말 잘못하면 바로 매장 분위기니까... 독일가서 사람들에게 매장당하기 싫으면 말실수하지 말자.


독일은 통일 당시 동프로이센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해야 했다. 이는 소련폴란드가 통일 독일을 국가로 승인하는 전제조건으로 영토 포기를 내세웠기 때문인데, 그 정도로 주변 국가들이 독일 통일에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기도 하지만 영토까지 포기하는 피해도 감수하면서 통일을 이루려 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물론 당장의 국가의 존립을 위해 소련에게 밉보일 수 없었던 사정도 있긴 했지만. 그런데 구 독일령 내에 거주했던 독일인들의 재이주 및 해당지역 내 재산 귀속 문제를 두고는 폴란드, 체코와 갈등 중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 점에 대해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피력했으나, 폴란드, 체코 측에서는 나치의 일이라며 논의를 피하려 한다.

'마스 강에서 메멜 강까지 에치 강에서 벨트 해까지'라는 가사가 실린 국가 1절은 공식 행사에서는 안 불렀으나 월드컵 경기 중 관중들이 떼창을 해서 문제가 생긴 적이 있다. 때때로 다시 네오 나치가 창궐해서 폭력을 휘두르고 다니는데, 경찰이 검거에 실패했다거나 하는 뉴스는 잊을 만하면 올라온다. 심지어는 경찰이 눈이 멀었다고 할 정도다.

전 국방군의 장례식 같은 행사는 생각보다 거창하고, 그 시절의 전투 등 일부 업적은 나치 혐의로 비난받는 일이 있더라도 기념하는 것도 있다. 만약 그렇게 빡세게 배제하고 싫어한다면 전 독일 전차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티거라는 이름의 약국을 운영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차 에이스 미하엘 비트만SS 소속이어서 전과가 삭제되었다.

희한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RTS 게임인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 보면 그렇게 경멸해야 할 대상임에도 독일인들은 100이면 99는 죄다 독일군으로 플레이한다.자기 나라인데 당연하지 아닌 게 아니라, 미니어처 계열에서도 독일군 미니어처 중 구하기 힘든 모델은 독일제를 구하는 편이 쉽다. 아예 페이퍼 플랜으로 끝난 병기들만 주로 생산하는 개인 회사도 있다.

물론 독일 국방군홀로코스트에 관련되긴 했지만 얘네들은 무장친위대와 달리, 나치즘이라는 사상 아래 강제로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가치중립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어디까지나 비교적으로다. 해군선옥론 문서의 '독일의 깨끗한 국방군 신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들도 전쟁범죄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3.1.2. 제국주의에 대한 입장[편집]

독일이 제국주의적 과오에 관한 한, 결코 일본의 모범이 될 수 없는 이유

제국주의와 식민지배, 식민지의 원주민에게 자행한 인권유린에 대한 관점이 과거에 제국주의 국가였던 다른 유럽권과 일본과 차이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

아프리카의 과거 식민지로 삼았던 탄자니아, 나미비아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민지 침략이나 학살과 인권 탄압 등에 대해선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된 보상과 사과가 이뤄진 적이 없다. 2004년에 하이더마리 비쵸레크-조일 경제장관이 관련하여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과를 언급하긴 했지만 독일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보긴 어려운, 장관 개인의 견해 표명에 그쳤다. 학살에 관해서도 개별적 배상을 하진 않았고 대신 매년 14억 마르크만큼 경제 원조를 약속했던 바가 있다. 그나마도 현금으로 지급되면 배상금으로 보일 수가 있으니 담수화 시설 원조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지원하겠다 천명하였으며 일본이 한국에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건낸 6억불은 당시 일본 외환보유고의 절반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었으나 14억 마르크는 독일 외환보유고의 1%도 안되는 적은 금액이다.

독일과 나미비아 정부가 독일제국 당시 있었던 나미비아 학살 사건을 집단학살(genocide)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공동 선언을 놓고 양자 회담 중이며 2016년 연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러나 독일 측 대변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사과로 인한 배상조처나 법적 결정이 도출될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고, 사과 이후 관련한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서의 태도 전환을 취할 여지 또한 부인하고 있다.

만약 일본한국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하며 소위 '사과 계획'이라는 것을 표명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자. 현재까지 이 사안과 관련하여 독일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그리 칭찬받을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이 전후 제3제국이 자행한 전쟁 범죄를 어찌 다루었는가에 대해 되돌아 보고, 그리고 제3제국 전쟁 범죄의 직·간접적인 면면을 상기하면, 독일이 상대를 봐가며 반성과 사죄를 그때 그때 달리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봐서 독일이 과거 식민지에게 지원한 경제적 원조는 한국이 일본에게서 받아낸 독립 축하금과 차관보다 미비하며 독일이 식민지에게 한 사과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며 일본 총리들에게 받아낸 담화만 못한 수준이다. 독일일본 모두 자신들을 패망하게 만든 미국과 서구 열강들에게는 비굴한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들이 침략하여 지배한 식민지에 대한 사과는 언급조차 안해왔다. 다만 독일이 지배한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여전히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에 독일에게 적극적인 사과를 요구할 처지가 못 되는 반면 한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발전을 거듭해왔기 때문에 일본에게 사과를 받아낼 역량을 키워냈기 때문에 일본 총리황실한테는 어느 정도 사과를 받아낼 수는 있었던 것이다.

요즘은 예전의 제국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고, 반성을 해야 한다는 시선도 늘고 있는 추세이다.

3.1.3. 1차대전독일 제국에 대한 입장[편집]

전 문서에서는 독일 정부가 1차대전독일 제국군에 대한 입장은 전혀 밝히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독일이 독일 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모를 수밖에 없다고 나와 있었는데, 알고 보면 독일 제국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힌 바가 꽤 된다. 다만 특이한 점은 독일 제국에 관해서는 시대에 따라 그 입장이 다르다.

우선 빌헬름 1세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다스리던 시절의 독일 제국 전반기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다. 빌헬름 1세는 독일 내에서 거의 한국의 세종대왕이나 광개토대왕만큼 칭송받는 군주 중 한 명이며, 비스마르크는 독일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중 하나이다. 한국으로 따지만 거의 이순신 수준으로 존경받는다.

하지만 빌헬름 2세가 다스리던 제국 후반기 및 1차 세계대전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 빌헬름 2세는 독일 내 우익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군이라고 평가를 하는 군주이며, 특히 빌헬름 2세의 세계 정책, 온갖 외교적 병크,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 가장 커다란 불씨를 제공했다는 사실 때문에 정말 히틀러나 나치 다음으로 혐오하는 독일인들도 많다.

게다가 1차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은 벨기에의 강간과 같은 전쟁범죄도 저질렀고 국제법을 위반하며 독가스를 선제 살포하는 만행도 저질렀기 때문에 더더욱 독일 내에서의 평가가 좋지 않다. 2001년 5월, 당시 독일의 국방차관 발터 콜보브(Walter Kolbow)는 벨기에의 강간에 대해 벨기에 정부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표하였고, 유족들과 그 후손들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관련기사.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무리 나치랑은 전혀 상관없는 1차대전 독일 제국군이라 해서 함부로 빨거나 옹호하는 일은 힘든 일이다. 게다가 독일 제국의 상징인 흑-백-적기도 현재 독일에서는 혐오시되는 실정이다.

3.1.4. 일본과의 비교[편집]

※ 주의: 여기서는 일본이 독일과 비교될 만큼 과거사를 잘 청산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이 일본과 비교될 만큼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깔끔하게 청산했다는 이미지로 인해, 일본의 태도를 비판할 때 모범 답안으로 독일이 자주 제시된다. 그러나 독일이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모범답안이 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특히 제국주의 문제는 일본보다 낫다고 볼 여지는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 독일이 나치즘은 흑역사로 여기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역시도 위안부 등의 전쟁범죄와 카미카제, 카이텐 등 인명 경시는 분명하게 흑역사로 여기고 있다. 난징 대학살이 존재하였다는 점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에서 위안부가 일본인을 제외하면 한국인이 많았다는 점, 당사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졌다는 점, 군의 관여 하에서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줬다는 점,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되었다는 점, 위안소의 설치와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하여 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는[37] 인정하고 사과했다. 아시아 각국이 피해를 입은 전쟁 범죄들에 대해서는 무라야마 담화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즉 2차 대전 시기에 일어난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도 독일 정부도 모두 공식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반면 한국인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위안부 문제를 제외하면) 2차대전 당시의 반인륜 범죄가 아니라, 20세기 초부터 일어난 식민통치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대한 것은 독일 역시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영국 프랑스조차 제국주의에 대해선 일절 사과 언급은 없었다.[38][39]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독일인유대인의 관계를 '일본인한국인의 관계'로 오해하여 벌어지는 것인데, 독일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합병한 적이 없었고, 유대인은 '독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나타나기 한참 전부터 독일 땅에 살고 있었다. 즉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자국의(혹은 유럽 내의) 소수 민족에 대한 학살의 문제이며, 제국주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일본 제국은 엄밀히 말해서 나치 독일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 제국과 나치 독일에 함께 대응하는 것이며, 구 일본군독일 제국군독일 국방군에 같이 대응해서 봐야 한다. 그런데 독일인들이 과거사를 대할 때 반성의 대상에서는 독일 제국독일 제국군제국주의는 보통 제외된다.

심지어 독일 국방군마저도 나쁜 것은 모조리 나치 친위대가 한 짓이라며 미화되는 경우가 많다. 민간 차원에서 볼 경우 옛 일본군에 대한 현 일본인들의 생각처럼, '나라를 위해 싸운 젊은이들'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며, 전체주의 등의 사상과는 선을 그으려 한다.[40] 오늘날 일본인들이 2차 대전 당시의 각종 요소들, 이를테면 일본군의 군복이나 무기류 등을 대중 매체에서 미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 역시도 국방군의 티거 전차를 비롯한 무기류 등을 주구장창 잘만 미화했다. 그나마 국방군의 경우는 나치와 완전하게 선을 긋는 게 불가능해서 독일 내에서도 자정 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기에 대해서는 일본보다는 조금은 나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제국군으로 시선을 돌리자면, 이들에 대한 독일인의 관점은 결코 모범답인이라 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계속 강조되고 있지만, 일본군은 독일 제국군독일 국방군에 함께 대응하므로, 당연히 독일 제국군에 대한 현 독일인들의 관점을 거론할 수 밖에 없다.

또한 하켄크로이츠욱일기에 대한 관점 차이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켄크로이츠는 나치즘의 상징이고 욱일기는 일본군의 상징이다. 그런데 일본은 일본군을 흑역사로 여기지 않으니, 당연히 욱일기를 금지하지 않는 것이다. 독일이 하켄크로이츠를 금지한 것은 나치즘의 청산이라는 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으나, 만약 하켄크로이츠가 나치즘의 상징이 아니라 독일 제국군과 국방군의 공통되는 상징이었다면 독일이 금지하였을까? 대답은 부정적일 것이다.[41]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무의미하다고는 하지만, '하켄크로이츠를 금지하여 일본과는 비교된다'는 관점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쪽에서 독일을 조금 옹호하자면, 2차 대전 이후 추축국에 대한 서구인들의 비판은 전체주의와 학살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으며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나오지 않는 점을 거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이야기로 가자면, 영국이든 프랑스든 자기들도 했던 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 추축국들의 과거사 반성에서는 제국주의는 '그때는 외국도 그랬음'이라는 식으로 어영부영 넘어가기 쉬웠다. 더 근본적으로 문제를 파고 들자면, 제국주의는 옛 추축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옛 열강 국가들이 모두 반성해야 하는 문제라 할 수 있으며, 당연히 독일과 일본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또한 제국주의 문제가 아니라 2차대전 쯤에 벌어진 반인륜 범죄들에 대해서는, 그래도 독일이 일본보다는 그나마 태도가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나치독일때 벌어진 잔혹한 행위들을 숨기지 않고 낱낱이 자세히 밝히며 어떠한 변명 없이 자신들의 잘못이라는 점을 분명하고 철저하게 교육하지만 일본은 그러한 행위들에 대해선 매우 성의없이 넘어가며[42] 잘못에 대한 가치판단은 전혀 드러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원폭 투하등 자국 피해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세하게 가르침으로써 피해자인 듯한 뉘앙스를 강하게 띄우는 등 독일에 비해서 이 문제로 잡음이 많다. 옛 군대에 대한 태도를 거론하자면 일본군이 독일 제국군과 독일 국방군에 함께 대응되니까 독일이 잘 청산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2차 대전 문제에 있어서도 독일은 일본보다는 반성적인 태도를 많이 보여왔다.

결국 이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비교하여 정리하자면 이렇게 결론이 날 것이다.

1. 전체주의 체제와 2차 대전에 대한 관점에서는, 독일이 여러 문제점은 남아있을지언정 그래도 일본보다는 확실히 잡음이 적다는 게 중론이다.

2. 대다수의 한국인이 문제삼고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위안부와 간토대학살등의 식민통치시기의 반인륜적 집단범죄들이지 식민통치 그 자체가 아니란 견해도 있지만, 애초 한일 강제병합 자체가 그러한 반인륜적 범죄가 자행될 수 있는 기본적 토양을 조성한 역사적 범죄행위였다는 점, 그리고 당시 일본을 위시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행한 전세계적 단위의 침탈행위가 오늘날 명백히 역사적 과오로서 평가되고 있는 현황을 돌이켜 봄, 제국주의적 강점 행위와 강점 후 자행한 추가적 침탈범죄를 분리해서 따지는 것 자체가 상당한 모순을 내재하고 있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각계각층이 일본의 태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 처럼, 독일이 제2제국 시절 자행한 대학살극의 피해자인 나미비아의 부족들 또한, 2017년 초 부족 차원에서 미국 법원에 독일 정부에 대한 피해 보상 소송을 청구하는 등[43], 독일을 상대로 꾸준히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과 청산을 요구중에 있다. 아직 독일이 제2제국의 식민범죄에 대해서 만큼은, 분명 일본의 모범이 될 수 없단걸 보여주는 명징한 일례랄 수 있겠다.

3. 근대 이래 제국주의적 차원에서 자행되어 온 역사적 범죄는, 비단 한국과 일본간에서의 관계 뿐이 아닌, 범세계적 차원에서 야기되었던게 사실이고, 그러므로 한국이 역사적으로 입은 제국주의적 피해에 대한 인식 또한, 이런 범세계적 차원의 보편사에 대한 이해가 동반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온당하다. 그런즉슨, 분명 구제국주의적 범죄에 대해 온전히 반성하고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독일을, 일본과 비견해 무슨 역사반성의 모범적 사례인양 추켜세우는 식의 스테레오 타입 식 논리가, 한국사회 전반에서 널리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경계되고 바로잡혀져야 할 현황이라 볼 수 있다.

4. 자연환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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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문환경[편집]

5.1. 인구[편집]

2013 CIA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독일의 출산율은 1.42로 세계 최하위권을 형성하고 있으며[44]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다.[45] 참고로 영국은 출산율 1.90, 프랑스는 2.08로 선진국 중에선 선방하고 있는 편.[46] 이대로 수십 년이 지나면 독일의 인구 및 GDP는 유럽연합 내 1위에서 3위로 떨어질 게 확실해지고 있다. 당연히 독일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다만 묻지마 출산의 부작용을 겪는 것[47]보다 이질적인 사람이라도 능력 있는 인구가 낫다고 판단했는지 세계 4위의 경제 규모를 기반으로 이민을 열심히 받고 있다. 과거에는 터키 출신이 많았는데 현재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독일과 유사한 점이 많은 남유럽동유럽 출신 이민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편으로 역시 동남아시아 출신과 중국인이 이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과 비슷하다. 이주민들이 많다 보니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이민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고령화가 2번째로 진행된 나라로 출산율 감소로 인구가 줄어들 우려를 낳고 있다.# 그리고 독일은 이민자, 난민들의 유입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경제 활력 VS 사회 통합 저해라는 두 가지 갈등에 직면해 있다.#

독일계 미국인이 미국 백인 중 가장 많은 인구비를 차지하고 있다.[48]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도 종종 미국인으로 착각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영국계가 다수를 차지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다르게 독립 당시 제헌 회의를 할 때 독일어를 공용어로 쓸 것인지 고민하기도 했다는 도시전설이 있을 정도다.[49]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영웅으로 대통령까지 된 아이젠하워도 독일계. 'Eisenhauer'에서 'Eisenhower'로 고치긴 했으나 Eisen만 봐도 독일계인 걸 알 수 있다. 체스터 니미츠 제독과 록펠러[50]도 독일계다. 야구계에서는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워렌 스판, 존 스몰츠, 빌리 와그너,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등이 독일계이며, 이 외에 수많은 미국 백인들이 독일인의 피가 섞여 있다. 헐리우드에서 활약하는 미국 백인 배우들의 절반 이상은 독일인의 피가 섞여 있다고 해도 무방한데, 대표적인 예인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머니가 독일인이다.[51]

독일계 러시아인 역시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마노프 왕조는 독일인의 후손.

독일계는 이름을 보면 아 이 사람 독일계구나!하고 대충 어느 정도 알 수 있다.[52] 산 이름을 딴 -버그(-berg), 사람이란 의미의 -만(-man, mann)[53], 돌이란 뜻의 -슈타인(-stein),[54] -워, 어(-er, uer)로 끝나는 이름 중 대부분이 독일계이거나 독일 출신 유대인들이다. 독일 귀족들은 색깔 이름을 성으로 썼는데 (출처필요)[55], 브라운(Braun), 바이스(Weiss), 슈바르츠(Schwarz) 등이 있다. 동양식으로 풀어 쓰면 각각 葛, 白, 黑에 해당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V2 로켓 개발의 주축이었다가 전후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 출신 미국 물리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er von Braun)은 독일 귀족 가문 출신으로, 중간에 von이란 칭호만으로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란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5.2. 이민 문제[편집]

이민자의 증가와 구 동/서독 간에 미묘한 감정대립이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나 터키계 이주민 때문에 "너희들 때문에 실업자가 됐음!"이라고 화내는 젊은 양아치들을 중심으로 네오 나치가 생겨났다. 나치는 그냥 관심 끌기 위한 떡밥으로 이름만 빌려 쓴 단순한 양아치 집단이라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인도, 동남아시아, 아랍 등지의 구 식민지 국가들에서 몰려드는 다양한 인종, 민족의 이주민들로 고생하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과는 달리, 독일은 거의 터키계 이민자들이 300만 이상으로 압도적. 이는 독일 전체 인구의 3~4%에 달하는데,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독일이 식민지가 많은 영국, 프랑스와 대항하기 위한 동맹자로서 터키(당시 오스만 제국)와 손잡은 이래 우호관계가 지속되어 터키인들이 독일로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요새는 중국인들의 유입도 상당히 많아졌다. 당시 독일의 외교 정책의 근간이었던 3B 정책, 베를린 - 비잔티움 - 바그다드도 이런 성향을 반영한 것. 지금도 독일은 터키의 유럽에서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서, 유명한 터키의 여행지의 설명문이 자국어 다음에 먼저 독일어로 되어 있고 그 다음에 영어로 되어 있다. 터키어 알파벳에도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외에 흑인들도 80만명 정도 산다.

특히 터키인들의 유입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축구선수들의 경우 2002년 당시 독일로 유입된 터키의 축구선수인 일한 만스즈나 마찬가지로 독일 태생인 하미트, 하릴 알튼톱 형제, 메흐메트 에키지는 터키 국적으로 월드컵에 출전했고 하칸 찰하노글루도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을 택해서 터키 국적으로 뛰고 있는 반면 똑같이 독일에서 태어난 터키계인 메수트 외질[56]이나 메흐메트 숄 아예 독일 국적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외에도 전반적인 분야에서 터키인들의 유입이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아예 터키 쉬페르 리그 갈라타사라이 SK가 한때 베를린 갈라타사라이라는 이름으로 분데스리가로 갈려다가 좌절된 적이 있을 정도다. 독일어판 언사이클로피디아의 독일 국기의 붉은 부분에 아예 터키 국기가 그려져 있다.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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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으면 여기로

이와 같이 이주민들과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점차 심해지고 있지만, 대부분이 세속화된 터키 이민자들이기에 종교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독일의 터키인 이주자들은 대체로 본토의 동포들보다 더 종교적이다. 독일 거주 터키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72%가 이슬람만이 참 종교라고 하였으며, 90%가 자신을 종교적이라고 대답했다. 애초에 터키인의 독일이민은 터키에서 군사 정권에 의해 세속주의가 정점에 달하던 시절에 많이 이루어졌는데, 단순히 돈벌러 동부 시골에서 독일로 간 경우도 많지만, 터키 본국의 강압적 세속주의 정책에 반발해 독일로 이주한 이들도 있었다.[57] 주로 종교 지식인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터키인은 외국에서도 터키인이다."라며 모스크이슬람 학교를 중심으로 터키 이주자들을 결합시키기 시작했고, 이들을 통해 일반 터키인 노동자들 중에서도 이슬람주의에 경도되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2016년 현재 독일 내의 터키이민자들은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아니면 독일화되어 터키어만 모국어로 사용할 뿐 사고방식은 완전히 독일인이거나 양극단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런 종교적 보수성은 터키계 커뮤니티만의 문제도 아니라, 유럽 난민 사태로 들어온 시리아 난민들조차 아랍어 사용 모스크가 와하비즘-살라피즘 물이 들어 너무 수구성이 짙다고 평가한다. 마치 자이쉬 알 이슬람[58]이 생각난다는 평은 압권. #

또한 유럽 연합이 생긴 이후로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 등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동유럽 국가들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폴란드 태생이나 독일로 이민가 독일 대표팀으로 뛰었던 축구선수 루카스 포돌스키가 그 예이다. 물론 동유럽권 이민자들은 같은 유럽 가톨릭 문화권이고 인종도 백인이기 때문에 타 이민자들에 비해 비교적 독일 사회에 동화가 쉬운 편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계속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건 위에서 언급했듯이 선진국 중에서도 유별나게 낮은 출산율 때문이다. 물론 독일도 나름 중산층 대상 출산 장려에 힘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식 문제라 해결이 안 된다는 걸 동서독 분단 시절 뼈저리게 체험하고 21세기부터는 이민 수용과 빈민층 출산 장려로 전환했다. 그러나 구 동독 지역 중심으로 상당한 반발이 있다.[59] 덕분에 2015년 들어 무분별한 난민 수용 때문에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2016년 독일 열차 테러, 2016년 베를린 트럭 테러 등 몸살을 앓고 있는 중.

5.3. 언어[편집]

전반적으로 영어가 잘 통하며,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더 잘한다. 오히려 젊은 사람에게 영어로 말을 걸면 대답은 해주는데 목소리가 모기 소리가 된다거나 아예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덤으로 독일은 학교에서 라틴어는 물론 프랑스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나라이다.[60][61] 게다가 학교에서도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구동독 지역은 러시아어가 제1외국어로 지정되었다. 프랑스어도 많이 가르치고 있으며 북부에는 덴마크어, 프리지아어사용자가 일부 존재한다. 동부에서는 소르브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소르브인도 거주하고 있다.[62] 심지어는 구소련에서 이주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독일계 후손들도 많이 존재하고 있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63]

터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독일에서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터키어만 써도 사는 데에는 별 지장 없다. 일단 웬만한 깡촌이 아닌 이상 관공서부터 터키어를 사용하는 터키인 공무원이 있고, 터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은 한국의 김밥천국 수준로 널려있으며 터키 물건을 취급하는 슈퍼마켓과 카페트 가게도 있으며, 심지어 터키에선 관광지에서나 파는 물담배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모스크도 곳곳에 있고. 심지어 베를린은 터키 제 3의 도시라고 할정도니 이쯤 되면 독일이 아니라 그냥 터키다.

2017년 8월 14일에 독일의 옌스 스판 외무차관은 베를린에서 독일어보다 영어가 잘 통한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독일내에서는 독일어가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5.4. 종교[편집]

마르틴 루터에 의해 종교 개혁이 일어나 개신교가 탄생한 곳이다. 해당 문서 참조.

독일은 1919년 바이마르 헌법을 통해 정교(政敎)분리가 이루어져 국교는 없다. 다만 역사적 전통을 존중하여 국가는 교회의 재산권과 신도에 대한 종교세 부과를 인정하며 교회활동의 유지비용을 일부 지원한다. 루터교는 34%를 차지하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북부·북동부(구동독) 지역에서 강세다. 가톨릭은 34%를 차지하고 있고 남부·서부에서 강세다. 상공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루터교가 우월하고 농촌지역에서는 가톨릭이 우세한 점이 특징이다.[64]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신· 구교 간에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것도 독일 교회의 특징이다. 그 외에 소수 교파로서 장로교· 침례교 등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 구동독 지역에선 공산정권 40년의 영향으로 무종교인 비중이 높다. 그래서 과거에는 개신교:가톨릭 비중이 2:1이었는데 지금은 1:1로 바뀌었다.

독일 가톨릭교회는 교회세와 각종 지원을 통해 바티칸 재정의 20% 이상을 지원하면서 가톨릭계 안에서 독자적 영향력을 확보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 사제 및 사제의 결혼, 이혼 및 재혼, 동성애 문제 등에 있어서 급진적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괜히 복고 가톨릭교회가 나온게 아니지 특히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기간 중에는 교회 안에 270개 낙태 상담소를 설치한 뒤 여성들에게 확인서를 발부하기 시작하면서 교황청과 3년 동안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교회가 분열되는 사태로 발전될 조짐까지 보였으나 마침내 독일 주교회의가 교황의 최후 통첩을 받아들여 낙태확인서 발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3년 동안 지속되던 교황청과 독일 교회 간 다툼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독일 가톨릭 교회가 막나가는 곳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워낙 철학적 기반이 탄탄한 국가이다 보니, 현대 가톨릭 신학에서 사실상 대장님 역할을 하고 있다.[65] 게다가 철학 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이 전반적으로 모두 발달해서 우수한 신학자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그리하여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꼽히는 카를 라너,[66] 교황이자 초 네임드 신학자인 베네딕토 16세 등 다른 나라 가톨릭 교회가 부러워 죽는 수퍼스타 라인업을 자랑한다. 물론 개신교 신학에서도 독일의 위상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67] 일찍이 마르틴 루터가 탄생하기도 했고, 디트리히 본회퍼, 볼트만 등의 신학자 라인업을 자랑한다.

5.5. 교통[편집]

6. 행정구역[편집]

6.1. 주요 도시들[편집]

대부분이 구 서독 지역에 몰려 있다. 10위권까지만 봐도 구 동독지역은 한 군데(그나마도 한 곳은 두 개로 나눴던 거 합쳐서)고, 20위권까지 보면 그나마 라이프치히(작센, 52만 명)와 드레스덴(작센, 52만 명)이 들어가는 형편이다. 특히 라인-루르 지방은 인구 30만 이상의 대도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독일 최대의 도시권이다. 51위까지 봐도 거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도시들이 21개로 이쯤 되면 거의 도배 수준이다(…). 그다음으로 많은 곳이 바덴-뷔르템베르크니더작센인데 겨우 4개씩만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라인-루르 지방에 대도시가 얼마나 붙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7. 정치[편집]

독일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79

2012년, 세계 13위[69]

언론자유지수

10.24

2013년, 세계 17위[70]

독일 대통령

15대

16대

(현직)

요아힘 가우크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현직)

독일 수상

7대

8대

(현직)

게르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

(현직)

7.1. 헌법[편집]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민주헌법이라 불리는 그리고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를 만들어낸 바이마르 헌법을 만들어냈다. 신성 로마 제국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방제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방제 정치 제도는 해당 분야에서 매우 선진적인 것으로 꼽히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식 정당명부제다. 이 제도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고.

현재 독일은 양원제, 내각책임제로 허수아비 연방대통령(Bundespräsident)과 연방상원(연방참사원, Bundesrat)을 두고 실세인 연방수상(Bundeskanzler, 2015년 현재 Bundeskanzlerin)와 연방하원(연방의회, Bundestag)이 실제 정치를 하고 있다. 양원제라지만 실질은 단원제[71].

7.2. 국내 정치[편집]

7.2.1. 선거[편집]

7.2.2. 정당[편집]



전통적으로 중도우파를 대변하는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CDU/CSU)과 중도좌파를 대변하는 사회민주당(SPD)이 독일정치의 양대축이다. 그외에 1980년대 국회에 진출한 동맹 90/녹색당(Grüne)과 1997년 창당한 좌파당(Linke)이 현재 독일 연방하원의 주요정당이다.

자유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FDP)이 오랜기간 제3당으로 역할을 하였으나 2013년 총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연방하원 진출에 실패하면서 대몰락하였다.

그외에 연방하원에 의석이 없는 소수정당으로 2013년 총선에서 갑툭튀한 독일을 위한 대안(AfD), 카피레프트를 지지하는 해적당[72], 사실상 네오나치 성향의 극우 정당인 독일민족민주당(NPD)도 있다. 민족민주당은 인종차별적 정당으로 정당해산 시도가 몇 번 있었는데 상원과 하원, 헌법재판소의 손발이 안 맞아서 망했다. 현재 함부르크, 브레멘을 제외한 모든 주 의회에 진출해 있으나 연정 파트너로 삼으려는 정당은 당연히 아무 데도 없으며, 16개 주 모두 NPD정당 활동 금지 조례를 만들려고 벼르고 있다. 현재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이 매의 눈으로 감시중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공산당은 2차대전 패전 이후 처음 치뤄진 1949년 총선거에서 연방 하원의원 15명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냉전이 본격화되고 서독內에서 재무장화로 이슈가 되면서 1950년대, 당시 아데나워 수상체제였던 서독정부는 독일공산당을 소련정부에 충성하는 반헌법세력이라고 주장하였다.[73] 3여년간의 심리끝에 1956년 독일연방 헌법재판소독일 공산당의 마르크스레닌주의 강령이 연방헌법에 위배된다면서 정당해산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 판결에 대해서는 법적, 역사적으로 충분한 정당성을 가졌냐를 두고 지금까지 계속 논쟁이 되고 있다.# 어쨌든, 당시 해산당한 독일공산당(KPD) 당원들 중 일부는 다른 군소 좌파정당의 당원으로 입당해서 활동했다. 공산주의 정당의 활동은 1968년 당시 빌리 브란트 체제 시기에 다시 허용되었고, 그해에 독일공산당(DKP)이 결성되었다. 이 정당은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물론, 지지율 자체는 X망 수준.. 거의다 링케로 넘어갔는데.. 독일 공산당은 나치 정권 시절 활동이 금지되었다가 종전 후 연합국의 점령군에 의해 활동이 허가되었는데, 10년 남짓 후에 금지되었다가 12년쯤 후에 공산주의 정당의 활동이 다시 허용된것이다.[74]

7.2.3. 대통령[편집]

연방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중임할 수 있다. 연방대통령은 연방하원 및 각 주 의회에서 추천한 자로 구성되는 연방회의에서 선출하며, 선출 즉시 모든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취임한다.[75] 내각책임제 국가라 대통령에게 큰 권한은 없지만, 연방하원에 연방수상 후보를 추천하고 임명하며, 연방수상의 제청에 의해 연방장관을 임명하고, 연방수상의 필살기인 하원해산 요청에 응해 하원 해산(및 조기 총선 실시)을 명령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실제로는 거의 수상의 요청을 그대로 승인하기 때문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나마 연방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법률을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가장 강력한 역할은 거부권 행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권한도 함부로 실행하지 않고 대부분은 의회를 통과한 그대로 승인해주고 있다. 어쩌다 거부권 행사를 하면 그게 대통령으로서 적절한 결정이었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정도니 말 다했다. 결국 실권은 거의 없고 거의 외국 귀빈과 상호 방문하고 국민들에게 덕담해주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2012년 2월 17일에는 대통령인 크리스티안 불프가 사의를 표하고 물러났다. 2008년에 니더작센의 주지사 직을 역임하던 중 자택 구입에 불법 사채를 쓴 혐의가 불거졌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전임자인 호르스트 쾰러[76]에 이어 두 번째로 임기 중 불명예 퇴임한 독일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후임으로는 2009년에 불프와 경합하다 낙선했던 무소속 정치인 요아힘 가우크가 유력시되었고, 2012년 3월에 개최된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 투표에서 찬성 991표로 80.4%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7.2.4. 수상[편집]

연방수상은 연방하원 선거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 연방하원 선거를 하면 그 다수당에서 수상이 나오는 시스템. 물론 이론상 다수당이 아닌 다른 당들이 일제히 연합해서 그 중에 가장 큰 당의 대표를 수상으로 추대하는 것도 이론상 가능하고 실제로 그런 적도 몇 번 있다. 제1당이 다른 작은 당(주로 제3당, 가끔은 제2당)과 교섭해서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뒤 제1당 당수가 수상으로 추대된다. 그러면 수상이 연정 파트너가 된 당의 당수를 부수상으로 지명하고 연정 협상에서 결정된 대로 자기 당과 부수상의 당에 장관직을 배분한다. 독일 총선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1인 2표를 행사하는데, 제1투표는 지역구 의원에게 주는 표이고 제2투표는 비례대표 정당에게 주는 표다. 하원은 지역구 299석, 정당명부제에 의한 비례대표 299석으로 598석이 정원인데, 여기에 독일 선거제도의 묘미인 초과의석이 등장한다.[77]

여러 가지 이유로 독일 선거에서는 과반을 넘기는 정당이 거의 나오지 않는지라 연정이 당연시된다. 심지어 예전에 기민당+기사당[78]이 단독 과반을 이뤘을 때도 자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단독과반은 이례적인 경우에만 나오기 때문에 향후 총선 이후까지 고려했을 때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려면 타협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발상이었기 때문. 연정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까 아예 어떤 연정들은 이름까지 있다. 여태까지 있었던 소연정은 흑황연정(기민당+기사당과 자민당), 적황연정(사민당과 자민당), 적록연정(사민당과 녹색당) 대연정[79], 흑적연정(기민당+기사당과 사민당)이 있다. 하지만 이론상 다른 연정의 등장 가능성도 상정해볼 수는 있다.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으로 꾸리는 이른바 (3색-적황록)신호등 연정(Ampelregierung)(...),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80]의 적적록 연정, 기민당+기사당, 녹색당, 자민당의 이른바 자메이카 연정[81] 등도 가능한 조합이긴 하며, 실제로 2014년 이후부터 독일을 위한 대안이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기존 연정을 탈피한 연정들이 나오고 있다. 흔히 어렵다고 생각되던 적적록 연정의 경우 현재 튀링겐[82], 베를린에서 적적록 연정이, 브란덴부르크에서 적적연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바덴뷔르템부르크 같은 경우 역으로 녹색당이 다수당인 키위연정(녹흑연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라인란트팔츠주에서는 신호등연정도 실현되었다. 2016년 독일 총선의 경우 현재 적적연정이 가동 중인 주만 3개인 상황에서 사민당의 인기가 급증하고 기민-기사연합의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중이라 그 어느때보다 적적록연정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

7.2.5. 상원[편집]

연방상원은 총 69석으로, 각 주의 인구에 따라 최소 3석에서 최대 6석까지 부여된다. 그런데 사실 입법기관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연방상원의 의원은 연방주에서 파견하는 각료나 공무원이기 때문.[83] 사실상 지방자치 행정부가 입법에 관여하는 셈인데, 따라서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이라도 연방주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부결될 가능성이 생긴다.[84] 높은 수준의 지방자치가 허용되는 연방공화국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부분인 셈. 그래도 여기에서 통과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이상 법률이 성립된다. 특이하게도 각 주마다 하나의 의견을 내야 해서, 헤센 주에 배정된 5개 의석에서는 무조건 찬성 5표 아니면 반대 5표만 나와야 한다. 즉, 베를린에 오기 전에 미리 주 의회에서 어떤 의견을 낼지에 대해 의견을 맞춰서 와야 하는 것. 미국 대통령 선거인단?? 다만 각 주의 주정부도 연방하원 선거와 동일한 규칙으로 치뤄지는 주의회 선거에서 정당별 연정을 통해 수립되므로 이미 어느정도 의견이 통일된 상태이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돌아가는 편이다.

7.3. 독일/외교[편집]


문단의 양이 방대하므로 독일/외교 문서로 분리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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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공으로 표현한 독일의 정치 관계. 왼쪽 위의 'germany'부터 시계방향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brothers: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두 나라 모두 독일과 언어, 문화 면에서 유사성이 대단히 큰 국가이며 역사적으로도 접점이 많다.

  • father:독일 제국, 즉 '제2제국'을 뜻한다.

  • Ancestors:독일의 기원, 선조. 프로이센, 바이에른 등 옛 독일 영방 제후국 때부터 기원한 지역들을 의미한다.

  • Former enemy:전세계를 적으로 둔 적이 있다는 의미. 나치 독일제2차 세계대전을 의미한다.

  • Best friend:각각 EU, 캐나다, 일본을 가리킨다.

  • Friendly rival:미국과는 밀접한 동맹 관계이면서도 여러 부분에서 미국과 대립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 Natural enemy:독일과 러시아는 수백년 동안 숙적 관계였다.

8. 경제[편집]

  • 일본과 중국이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는 세계 수출 1위를 한 적도 있었다. 현재도 경상수지는 세계에서 제일 많다.

  • 서비스 산업 부분에서는 거의 막장을 달리고 있어서 미장원이나 식당에 가도 대부분 셀프 서비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래서 서비스업의 무덤, '서비스의 사막 독일' 이라고도 불린다. 다만 조목조목 따지면 툴툴거리면서도 들어주는 점만은 칭찬할 만하다. 일본처럼 공손하게 말하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츤데레 성향을 보여주는 의외의 면도 있다. 또한 매춘이 합법화된 얼마 안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 국가대표 기업 문서를 보면 기계공업과 화학공업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도배된더러운 덕국 걸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DHL, 루프트한자 같은 글로벌 물류업체가 있는 등 선진국답게 고루고루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8.1. 최저임금[편집]

독일엔 모든 직업군에 적용되는 통일된 최저임금이 없었다. 기존에는 직종별 노사간 합의에 따른 최저임금이 존재해서, 고용주가 어디냐에 따라 법정 최저임금이 달랐다. 하지만 노조가 사실상 전무한 소규모 서비스업종들에선 보호받기가 힘들었다는 현실.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독일 통일과 그에 따른 독일병으로 전체 노동자의 25%가 이웃 프랑스의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일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임금 침체를 겪었었다. 기사 참고 21세기를 10년 이상 넘겨서야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되었다.

전체 일자리의 1/5이 450유로 월급이 안 되는 미니잡(mini-job)이다. 미니잡은 소득세 면제 및 의료 보험에 들 필요가 없어 월급을 그대로 받을 수 있으며, 고용주도 각종 세금이 면제되기 때문에 900유로 월급에 한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미니잡으로 2명을 고용하는 것을 훨신 선호한다. 저소득층의 소득세는 겨우 14%이기 때문에, 실제 문제가 되는 것은 월급의 1/4에 달하는 의료보험료. 참고로 미니잡은 의료보험을 내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85] 정확히는 받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런 이들은 배우자나 부모를 통해 해결한다. 우리나라에서 학생이나 백수들이 돈 못 번다고 의료보험에서 제외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사에 따르면 독일에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수는 전체 국민의 0.2%에 불과하다.

저축된 돈도 없는 최하층으로 진입한 빈민을 위해 기초수당인 Hartz IV가 존재한다. 2014년 기준 1인 가구 382유로, 2인 가구 706유로로 심지어 대한민국보다 낮은 상황이다.[86] 다만 3인 이후 가구부터는 자녀에 따라 달라지는데, 미성년자 자녀 기준으로 3인 가구 967유로, 4인 가구 1228유로를 받게 되어서 대한민국보다 한화 5만원 가량 높은 수준이 된다. 이 외에 추가로 임대주택와 난방비 보조금액 소액이 나오나 대한민국에서도 나오는 수준의 금액이며 당연히 대도시에 거주시 주택 수당으로 주택비 납부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무의미해진다. 사실 Hartz IV를 수령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한번이라도 정부에 손을 벌렸다면 은행신용도는 최하로 내려가서 제 1 금융권과는 영영 이별이라는 점. 간단한 창업을 위해서 돈을 빌리는 것도 불가능하고, 경력 단절로 인해 정규직 입사도 힘드니 당연히 미니잡으로 직행. 독일의 빈민층의 고착화는 유럽 내에서도 최상위권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독일 전국에서 140만 명이 시간당 5유로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87] 거기에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동유럽의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와 독일인들이 도저히 오지 않을 시급에 부려먹으며 세금을 아끼려 정부에 신고조차 하지 않는 사업장이 속속 발각되고 있으며, 그것까지 포함하면 실제 통계는 더 암울한 수준까지 내려가리라 독일 정부에서 예측중.

동독 지방정부에서 시간당 55센트(약 800원)직업을 강제시킨 충격적인 일이 지난 몇 년 동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밝혀져 논란이 된 적이 있을 정도다. 하기 싫어도 일을 하지 않으면 기초생활수당이 끊기니 어쩔 수 없이 저런 곳에 가서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오는 수밖에는 선택지가 없다. 독일 정론지 벨트지의 취재 결과, 시급 400원에 알바생을 고용하던 호텔까지 발견되었을 정도 역시 선진국 영화 유로트립이 거짓말이 아니였다.[88] 근데 한국 병사보단 많이받는다.

독일 정치인들은 옆 나라 프랑스의 낮은 고용률을 들먹이며 이런 일자리라도 있는 것이 최저임금을 하고서 일자리가 없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실제 독일의 고용률은 프랑스보다 무려 10%나 높은 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제가 있는 영국의 고용률은 71.7%로 독일과 동급이다. 사실 독일의 고용률이 영국의 고용률을 추월한 것은 2010년에서나 이루어진 최근의 일이다. 독일은 제조업 중심이라 일자리가 많았다는 이상한 소리를 단번에 논파하는 자료다. 1990년 통일 직전 서독의 고용률은 당시 이탈리아에 국내총생산을 추월당했던 영국보다도 10% 가량이나 낮았던게 현실. 현재 독일의 고용률은 미니잡에 힘입어 2005년 이후 폭등한 결과로 내실이 별로 좋지 않다.

2013년 총선 이후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간 연정 협약서에 따라 2017년 1월 1일부터 전국 시간 당 8.5유로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이 도입 결정된 이후 오히려 그동안 많이 주었다며 주던 시급을 2017년부터 적용 예정인 최저임금 수준으로 내리는 만행을 저지른 기업들에 대해 독일 내에서 지탄이 쏟아지기도 했다.

8.2. 자산[편집]

독일의 서민이 가진 재산은 유럽에서도 적은 편. 장기간 바캉스를 즐기며 주택 구입 대신 월세를 선호하는 독일인의 특징이 그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휴가를 비슷하게 가며 자가주택비율만 독일보다 10%가량 높은 영국 서민의 재산은 독일의 2.25배, 더 긴 바캉스를 즐기면서 자가주택비율은 독일과 비슷한 프랑스 서민의 재산은 독일의 3배나 되는 상황이다.크레디트 스위스 Global Wealth Report

서민 재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하면 일자리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되고, 이들은 결국 다시 한 달 450유로가 안 되는 미니잡에 뛰어들고 있다. 노년층의 자살률이 영국의 5배나 달하고 있는 것이 현 독일의 주소다. 정확한 수치는 조금 다르다.참고 기사

※다만 자살율과 재산 사이에 반드시 직접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볼 수는 없다. 프랑스의 노년층 자살률도 독일 못지 않으며 저 기사에 인용된 그래프를 보면 자산보유율이 유럽보다 넘사벽으로 높은 일본의 노년 자살률이 독일보다 높게 나왔다(...)

유럽 국가들의 자산 평균값/중간값의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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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들의 자산 상위 20%/하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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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빈부격차는 유럽 내 최고 수준이다. 진짜 부자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돈과 자산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팩트. 한국보다도 많이 나쁜 수준이니 감이 팍 오리라 믿는다.

소득지니계수만 보고 독일이 부(자산)의 분배가 잘되어있는 나라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매우 잦은데, 소득지니계수는 말그대로 "부(자산)"를 축적하는 "소득"의 지니계수를 측정하는 것이지, 빈부격차와 분배를 논할때 핵심요소이며 인간이 삶을 영유하는데 소비하는 재산인 부(자산)의 분배를 나타내는 지수가 아니다. 독일은 스웨덴,덴마크,오스트리아등과 같이 소득지니계수가 낮으며 복지제도가 우수한 국가이지만, 그에 반해 자산지니계수는 높은 국가에 속한다.12

2014년 독일 최대 경제연구소인 베를린 독일경제연구소(DIW)의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의 빈부격차는 더 심각해져 유로존내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ECB의 조사 결과에서도 독일은 주요 유럽 국가 중에 압도적으로 자산이 낮았다. #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독일에서도 구 동독지역의 주민은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전후 호황기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에 서독에 비해 압도적으로 자산 축적 수준이 낮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가난한 구 공산권 국가와 부유한 서방 선진국이 한 국가로 통합된 국가는 오직 독일 뿐이기 때문에, 서독 지역의 높은 자산 수준과 동독 지역의 낮은 자산 수준이 대비되어 빈부격차가 고평가된다. 그리고 동독 지역의 낮은 자산 때문에 전체의 중간 자산도 극단적으로 저평가될 수 밖에 없다.

9. 사회[편집]

동포사회 커뮤니티로 베를린리포트(독일에 오면 방문하지 않게되는 곳)가 있다. 이전 독일 전체가 비뚤어진 애국심을 가져서 애국이라더니 결국 나라를 망쳤기 때문에 현대 독일은 교육 과정에서 애국심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자국을 우리민족, 조국 등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꺼리도록 한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나라는 전범국이니깐 국까가 되셈"하는게 아니고 "평화로운 독일인으로서 다른 민족과 평등하게 어울리는 것"을 가르친다.# 독일인들은 은근히 열받을 듯하다. 옛날 어떤 놈 때문에 항상 노심초사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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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폴란드공에서 풍자했다(...). 독일이 애국심의 강조를 다른 국가 수준으로만 평범하게 해도 득달같이 나치 드립까지 꺼내며 경계하니까 '내가 그런거 신경쓰게 생겼냐!'라며 폭주하는 이야기.

참고로 Vive Le France가 아니라 Vive La France다. France라는 단어가 여성명사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프랑스어 문서 참조. 그리고 Vamos España 이다.

9.1. 과학기술 및 학술적 역량[편집]

세계에서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나라가 독일이다. 물론 무작정 노벨상 수상자와 기술력이 정비례한다고 보긴 힘들지만. 나치 시대 때문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위시한[89] 고급 인력들이 대거 미국과 소련으로 빠져나갔고[90],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몰락해 버린 데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났음을 생각해 본다면 기본적인 기술 기반은 탄탄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건 냉전으로 인한 미국의 지원의 덕을 톡톡히 본것도 크다. 그리고 현대에는 일부 분야에서 특출난 수준이기는 하지만 전성기때처럼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다.

사실상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독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막스 플랑크, 에른스트 마흐, 헤르만 헬름홀츠, 마르크스, 베버, 니체, 입센, 스트린드베리, 폰 호프만스탈, 루돌프 클라우시우스, 빌헬름 뢴트겐,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 등은 모두 독일인이거나 독일어권 인물이다. 1991년 미국의 역사학자 노먼 캔터는 "20세기는 가히 독일의 세기가 될 수도 있었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그만이 아니라 베를린에서 열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오토 한, 리제 마이트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에 참석한 프랑스 철학자 레몽 아롱도 이 세 사람이 모두 1878~1879년에 태어난 것에 주목하며 독일의 역사학자 프리츠 슈테른에게 캔터와 같은 발언을 했다.

'그럴 수도 있었다'는 캔터와 아롱의 말에는 1933년 아돌프 히틀러라는 재앙이 닥치지만 않았더라면 이 시기에 세계 최고의 수준에 올랐던 독일의 사상가, 예술가, 작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서 갓 통일된 조국을 전에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새로운 나라로 만들 수도 있었다는 의미가 숨겨져있다. 이 1848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간에 활약한 독일인들의 명단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어디선가 독일인들의 히틀러에 대한 증오가 더 커지는 소리가 들린다

9.2. 연금제도[편집]

연금제도도 유럽 내에서는 최하위로 전체 연금 수령인의 50% 이상이 한달 700유로(100만원)가 안되는 연금을 수령하고 있다.

1인당 GDP가 비슷하고 유로화를 사용하는 프랑스의 경우 유로화 사태 이후 삭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달 620유로의 기초노령연금을 보장[94] 중인 것과 심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사실 프랑스를 비롯한 대다수의 복지 선진국들은 가정주부에게도 어느 정도 금액을 보장해 주고 있으며, 북유럽의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나 북미의 캐나다등에서는 매달 실수령 100만원 근처가 나온다.

남유럽의 이탈리아도 유로화 사태 이후 삭감되었지만 2014년 기준 기초연금이 1달 540유로#이다. 근데 기초연금과 전체 수령액 자체가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이탈리아인의 41%가 매달 1,000유로 이하의 연금을 받았다고 한다.# 스페인은 15년간 세금을 낸 연금 수령인들에게 550유로를, 독일과 함께 최하위 케이스로 자주 언급되는 영국조차 30년간 납세한 연금 수령인들에게 매달 500파운드를 보장해 주고 있다. 여담이지만 기초노령연금이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로 연간 실수령 기준 연간 2,400만원 가량이며[95] 2위인 호주는 2,100만원이 나오고 있다.

독일 하위계층의 노년문제는 상당히 심각한데, 정말 최악의 케이스를 가정해 비정규직인 미니잡으로 취업해 45년간 연금을 부으면 월 140유로 수령(...).# 물론 마음만 먹으면 맥도날드에서도 열심히 일해서 채용이 되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만큼 비현실적이지만 독일의 황당한 연금제도를 단편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예다. 이웃나라인 프랑스는 납세를 한 적이 없어도 620유로를 보장해주는 판에... 괜히 독일에서 30년 이상 연금을 부은 수령액의 결과가 700유로(100만원)도 안되는게 아니다.

9.3. 사회문제[편집]

9.3.1. 노동시간과 노동강도[편집]

확실히 명목상의 노동시간은 1,363시간으로 OECD 국가들 중에서 매우 짧고 한국에 비해 야근은 무척 드문 편이다. 문제는 체감적인 노동강도와 집중률은 한국보다 더하다는 것.(증언) 그래서 친분이 있는 사이라도 근무시간 중 사적인 전화통화는 금기라고 한다.

9.3.2.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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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별 대졸이상/고졸이하의 임금 격차

이런 저임금 노동자들의 상황과 반대로 대졸자 연봉은 1인당 국민소득과 비슷하며, 같은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는 이웃의 프랑스보다 최소 만 유로가량 높다. 대졸자와 비대졸자간의 소득격차가 아일랜드에 이어 서유럽에서 2위. 근데 서유럽에서 2위라는 건 조금 말장난에 가까운 것이 안 그래도 가뜩이나 청년고용률이 시망 중의 시망인 그리스, 포르투갈이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마저 독일보다 높다는 건 참 뭐라고 해야할지(...)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13에서는 한국, 독일 등 각 나라의 교육 지표들을 연구해서 내놓고 있다. [96]

목차

독일

한국

대졸 임금

고졸임금의 1.64배

고졸임금의 1.47배

고졸~전문대졸 실업률

5.8%

3.4%

대졸 실업률

2.4%

2.9%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 고졸은 독일 대졸보다 실업률이 훨씬 높고 임금도 훨씬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2014년 현재 BMW의 뮌헨 본사 공장에서는 막 성인이 된 고졸들을 생산직 견습을 시켜준다며 4년간 1000유로를 주고 일을 시키고 있다. 세후 770유로니 한화 110만원이 월급이다. 마이스터가 어떻고 어떻다고요?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울산광역시, 구미, 거제는 1인당 GDP가 5만 달러를 넘어가는데, 고졸(생산직)이 도시 경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한다면 전문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고졸이라도 마이스터 자격을 얻으면 생계에 큰 문제는 없을 정도. 하지만 마이스터 자격을 얻는 것이 대학 졸업보다 쉽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종류에 따라서는 더욱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기도 하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대학 진학률도 낮으며, 대학에 입학 후에도 졸업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꽤 높기 때문에, 대졸자의 경우 취업과 전혀 상관없는 과가 아닌 한, 취업하지 못할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이런 것을 보면 대학 졸업자 이상의 고학력자는 독일에서 꽤 대우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몇 분야는 박사학위 없이는 취업이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독일에서 실업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국에서는 청년층 전체 실업률을 이야기하는데, 서독지역에서 대졸자/전문대졸자/고졸로 나눠서 분석한 실업률은 대졸자는 3~4% 수준, 전문대졸자는 7~8% 수준, 고졸은 20% 이상으로 최근 통계에서 집계되었다. 다만, 서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낙후된 동독지역의 경우는 대졸자/전문대졸자/고졸로 나눠서 비교하면 상관관계 자체는 서독과 비슷하지만, 비율 자체가 크게 상승하여 대졸자 10%수준, 전문대졸자 20% 수준, 고졸 50% 수준에 육박한다. 이는 사실 한국과 산업 구조 상 차이가 약간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학사 수준의 지식으로도 일부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으며, 석사의 경우 취업 못해서 석사갔다는 소리까지 나돌지만, 독일의 경우 취업 시 고학력자이 요구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저학력자들에게는 기회가 비교적 적은 것은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학교 학위가 없는 계급을 독일에서는 Arbeiterkinder 즉 노동자로 칭하는데, 노동자 계급의 자녀 중 단 9%만이 대학교 진학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부모의 학력에 따라 자녀의 학력도 대물림이 되는 경향이 유럽 내에서도 제일 높은 나라가 바로 독일. 이는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진로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인문계열(대학 진학)과 실업학교가 갈린다. 한국이 성적이 우수하든 아니듯 적어도, 고3 대학입학시험을 볼 때까지,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비슷한 교육을 받는 것과 상당히 대조된다. 독일 여자의 32%는 최종 학력이 중학교(하웁트슐레) 졸업 이하다[97]. 사실 이쯤 되면 대학교 학비가 무료인 것이 나라의 부의 재분배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게 된다.

상대적으로 높은 대졸자와 기술 숙련자의 연봉 차이가 독일 내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미용사의 평균 연봉은 15,787유로, 트럭 운전기사의 평균 연봉은 28,534유로로, 겨우 22세 먹은 대학교 학부 졸업생의 평균 초봉이 40,000유로대라는 걸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게 낮은 금액. 참고로 저 40,000유로는 본봉 기준이며 수당이나 보너스는 포함하지 않은 통계다.기사참고 민간기업들은 물론이고 공무원조차 학벌에 따른 차등연봉을 지급하는데 대졸 공무원은 고졸 공무원에 비해 2배 더 높은 연봉으로 시작한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트럭운전사 평균 연봉은 2,850만원, 대학교 학부 졸업생 초봉은 4,000만원이라는 이야기. 우리나라에 적용되면 대학 경쟁률이 지금의 10배로 오를 기세 다만,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70%로, 40%인 독일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즉, 한국의 통계는 대졸자 70%와 고졸 이하 30%의 연봉 격차를 의미하는 것이고, 독일은 대졸자 40% 이하[98]와 고졸 이하 60% 이상의 연봉 격차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독일의 대졸자는 우리나라 대졸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프리미엄이 있다.

13,000유로부터 53,000유로까지는 같은 24%의 소득세를 내기에 이들간의 생활 수준 격차가 좁혀지기가 절대 쉽지 않다. 북유럽보다는 덜하지만 어느정도 서민증세를 하고 있는 셈. 53,000유로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53,000유로 이상의 소득분에 대해서는 40%를 가져가서 전반적으로 소득이 촘촘하게 모여있다. 덕분에 퍼진 정도가 낮아 소득격차는 한국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니계수로는 0.297.# 실제 서민들끼리의 차이는 당연히 크다. 연봉 1,300만원 받는 사람과 5,300만원 받는 사람의 세율이 같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아무튼 일을 시작해 10~15년 경력을 쌓아도 대학교 학부 졸업생의 초봉을 못 따라잡는 나라는 서유럽에서도 독일이 사실상 유일.

청년실업 문제와 구직시장에서 구직자와 구인자 간의 미스 매치 현상이 이슈화 되면서 독일의 직업교육을 본받자는 얘기가 많이 나돌았는데 특히 경제지를 중심으로 확실히 독일의 청년고용률 자체는 매우 높은 편이나 그렇게 독보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며, 안 좋은 면을 보면 빠른 진로의 결정이 사회계층화를 강요하고 있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자세한 통계는 OECD/교육지표 문서 참조.

9.3.3. 사회지표에 대한 반론[편집]

하지만 독일인의 실제 소득 및 생활 수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반론의 여지도 있다. 우선, 독일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물가가 상당히 저렴하다. 물론 난방/전기/수도 요금은 상당히 비싸지만, 공산품과 식료품의 경우는 인근 프랑스나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보다 확실히 저렴하며, 경제사정이 안좋다는 이탈리아 등에 비해서도 물가가 낮고 안정되어 있다. 또한 공교육에 드는 비용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의료보험이나 연금제도도 나쁘다고는 하지만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실업급여제도도 이전 세후 소득의 60~67% 수준에서 최장 960일까지 지급될 정도로 잘 보장되기 때문에 실업에 대한 두려움도 낮다. 따라서 큰 돈 들 일이 없으니 저축이나 투자에 대한 욕구가 적은 편.

독일 국민 특성상 사치를 싫어하고, 높은 소득을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치를 싫어하더라도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 열악한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간의 생활수준 차이는 다른 서유럽 선진국과 비교하면 통계상으로도 명확히 크게 나타난다.

위의 위키 본문에서 언급된 김나지움을 가지 못한다 하여 반드시 취업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회사의 사무직은 김나지움이 아닌 레알슐레를 나오면 충분히 가능하다.

미니잡 역시 월급을 적게 주기 위한 나쁜 제도가 아니라, 소득세율이 높은 독일에서 소득세를 피하면서 부가수입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독일은 가구당 소득세를 부부 합계로 납부한다. 1인 기준 53,000유로 이상 소득을 납부해야 두번째 세율구간에 진입하지만, 부부의 경우는 그 2배에 달하는 10만유로까지 연봉을 받아도 24% 세금만 낸다. 단, 배우자가 전문의라서 10만유로를 넘는 연봉을 받는다면, 월 400유로 미만의 임시 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파트타임이나 임시직들이 활성화되어 있어, 주부나 학생들의 아르바이트로 활용된다. 보통 주당 10~16시간 미만 선에서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미니잡 시급이 결정되므로, 이것을 풀타임 급여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편. 단 이는 독일 남부의 부자지역의 기준이 그렇고, 베를린만 가도 400유로를 주면서 40시간 근무를 요구하는 곳이 많다.

물론 위에서 예시든 것처럼 45년동안 미니잡으로 사는 경우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으나, 일단 그 기간동안 미니잡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는 예시라 하겠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결국 사회보장제도 역시 정상적인 노동을 일정기간 충족하는 경우를 전제로만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위의 미니잡 관련 외부링크기사 역시 말미에 수치가 과장되어 해석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여성이 받는 평균 연금액은 533유로이나, 이는 연금액만 가지고 계산된 것이며, 실제로 미혼인 노령여성의 평균 수익은 1,188유로이며, 부부의 경우 평균 2,248유로를 벌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일단 연금액 자체가 낮은 것은 사실. 사실 이렇게 된것도 이유는 있는데 1970년대 이후 독일의 출산율이 2.0명(서독이고 동독이고 가릴거 없이!)을 밑돌기 시작하고 이게 2010년대까지 회복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 65세 이상인구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져나가자 재정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독일정부에서 연금제도를 개편해 많이 내고 덜받는 식의 구조로 전환되어 버린 것.

또 한 가지 유념해야 될 것은 바로 통일이다. 서독과 동독이 합쳐지고 이제 겨우 25년 가까이 지났는데, 그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병크가 터지면서 독일 경제를 시궁창에 몰아넣은 바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로, 근로자들의 능력과 생산성 등을 감안하지 않고 통화를 무조건 단일화하면서[99] 동독 지역의 임금이 폭증[100] 실업률은 50%까지 폭증했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보장에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것은 당연하고... 간단하게 생각하자. 오늘날 8000만 독일인 중에 4분의 1일인 1500만은 나머지 3/4에 비해 국민소득이 65%에 불과했었다. 극히 신중하게 이루어져야할 경제 통합 과정 역시 날림으로 진행되었다.[101] 그 후유증이 아직까지 만만치 않게 남아있는 셈.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 간의 경제 격차는 여전히 독일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91년에서 03년까지 통일 비용이 대략 1조 7000억 유로(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약 2300조. 물론 화폐가치를 고려해야 한다)인데 이중에서 50% 가까이가 사회보장(연금, 노동시장, 의료보험)에 소요되었다.[102] 이러한 복지 지출의 급증에 이어 통일 직후 독일은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들으며 실업률이 10%까지 올라가고 재정지출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국가 파탄을 방치할 생각이 아닌 이상 어떤 식으로든 개혁은 필수적이었다. 실업급여를 필두로 사회보장을 빡세게 깎고 대규모 노동시장 유연성 정책을 펼친 것도 대충 이 시기. 재밌게도 이러한 정책을 이끈 것은 보수 정당이 아니라 수십 년만에 정권을 잡은 독일 사민당에 의해서였다. 이후 메르켈 보수정권이 다시 집권하면서 이러한 기조는 이어가고 있고. 물론 실업자의 상대적 빈곤율이라든지 비정규직의 급증 등 부작용으로 인해 반발과 비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며 상술했듯이 최저임금을 도입하는 등 기존의 정책에서 어느 정도 선회하고 있다. 유로존 위기 이후 사실상 독일이 유럽을 이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시경제적으로는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옆나라 프랑스에 비교하면 국민 삶의 질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사실 프랑스가 대단히 관대한 사회보장정책의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인 탓도 있다.[103][104]

10. 문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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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부모가 있는 앞에서 어린아이에게 혈액형을 함부로 물어보면 안 된다. 독일에서 혈액형을 묻는 것은 일종의 부모와의 혈연관계를 의심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타인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혈액형을 모를 가능성이 높고, 아이의 혈액형을 병원에서 안 가르쳐 주기 때문에 부모마저도 아이의 혈액형을 모른다. 사실 성인에게도 혈액형을 물어봐서 좋을 것 없고, 어차피 독일의 특성상 말도 안 되는 혈액형 성격설로 농담을 삼을 일도 없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하는 게 좋다. 혈액형 성격설은 해당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우생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독일은 20세기 중반에 우생학으로 아주 크게 병크를 친 적이 있고 현재는 그것에 대해서 뼈저리게 반성하는 나라다. 자기들마저 치욕스러워하는 우생학의 흑역사를 외국인 입장에서 얘기해서 좋을 것이 전혀 없다.

10.1. 교육[편집]

10.1.1. 초/중등 교육[편집]

독일의 대부분의 학교는 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이며 각각의 주마다 다른 교육 정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래에서 서술하는 내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수많은 예외가 존재한다. 공립학교 이외에도 공교육과 같은 교육을 제공하는 종교재단의 사립학교들이나, 수준이 더 높은 IB나 영국의 A-Level을 가르치는 학비가 매우 비싼 귀족학교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공립 대학의 경우 학비를 안 받거나, 받더라도 한국돈으로 80만 원 정도밖에 안 한다. 물론 이는 선별적 교육과정을 운영하기에 가능한 측면이 많긴 하지만.

독일의 어린이들은 만 6살부터 의무교육과정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초등학교는 4년제로 읽기, 쓰기, 산수와 같은 기초교육을 비롯하여 음악, 미술, 스포츠 과목을 배우는 외에도 공동체학습과 질서의 준수 등을 습득한다. 이밖에도 합창, 배구, 악기 다루기 같은 특별활동시간도 주당 2시간 정도 있으며 하루의 수업시간은 반나절 정도 된다.[105] 초등학교를 마친 후에는 상급학교로 진학하게 되는데, 진학 가능한 학교의 종류는 3가지가 있다. 9년 과정의 김나지움(인문계 학교), 6년 과정의 레알슐레(실업학교), 5년 과정의 하웁트슐레(직업학교). 연방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진학자의 비율은 김나지움 33%, 레알슐레 27%, 하웁트슐레 24%, 게잠트슐레[106] 및 발도르프슐레 10%, 기타[107] 7% 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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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김나지움에서는 고대 그리스어,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 러시아어, 스페인어외국어로 배우며, 영어는 영국식 영어를 배운다.

이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 한번 물갈이를 하기 때문에, 학생의 수준 자체가 우리나라와 비교시 다르다고 보면 되며, 실제 독일 일부 주의 김나지움의 수업 수준은 미적분을 고1 때 배우기 시작하는 등 우리나라보다 1-2년이 빠르다. 이러한 정책은 4학년 이후에 벌써 진로가 상당 수준 결정되는 것이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성적은 1등급에서 6등급까지로 매겨지고(1등급은 매우 좋음, 5등급 이하는 낙제) 김나지움 졸업반 때는 2개의 주요과목을 선정하는데, 1점이 최하점, 15점이 최고점으로 매겨진다. 학기 말에 5등급이 2개 있거나 또는 6등급짜리 과목이 하나라도 있다면 예외 없이 유급된다. 그리고 두 번 유급되면 세 번째는 없다. 졸업장도 없이 학교에서 쫓겨난다.[109]

김나지움은 과정을 수료하고 졸업 시험에 성공적으로 합격하면 아비투어(Abitur)라는 학력 증서를 받게 된다. 이 증서는 해당인이 전인교육을 받았으며 앞으로 어떠한 전문 교육도 받을 능력이 있다는 증서다. 이 증서를 받은 사람은 자연과학이나 인문과학 분야 대학에 아무런 제약 없이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며 자격은 평생 유효하다. 레알슐레는 과정을 수료하고 졸업 시험에 성공적으로 합격하면 미틀러레라이페(Mittlere Reife)라는 학력 증서를 받게된다. 이 증서를 가진 사람은 곧바로 대학 진학은 못하지만 일반 교양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사무직이나 행정직(예를 들어 은행원, 경찰, 공무원, 비서, 이공계 기능직 등의) 직업을 배운 후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다는 증서이다. 레알슐레 졸업 후 김나지움에 편입하여 아비투어를 취득하거나[111] 2년간의 직업교육 뒤에 파흐호흐슐라이페(Fachhochschulreife)를 취득하여 파흐호흐슐레로 진학할 수 있다. 하웁트슐레는 과정을 수료하고 졸업 시험에 성공적으로 합격하면 하웁트슐압슐루스(Hauptschulabschluss) 증서를 받게 되는데, 이 증서는 직업을 배우기 위한 최소한의 학력은 소지하고 있다는 증서다. 이 증서는 직업을 배우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물론 하웁트슐레 졸업 후 레알슐레로 편입하여 미틀러레 라이페(Mittlere Reife)를 취득할 수도 있다.

레알슐레와 하웁트슐레는 졸업하고 나면 일반 기업과 직업학교에서 이원화된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이 과정을 마치고 각 지방의 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직업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정식으로 취업이 가능하다. 이후 원하는 학생들은 마이스터 과정을 밟을 수 있다. 김나지움을 마치고 나면 졸업시험을 치르고 종합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대학교는 일반 종합대학(Universität), 파흐호흐슐레(Fachhochschule)[112], 음악대학(Musikhochschule), 미술/예술 대학(Kunstakademie) 등으로 나뉜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홈스쿨링은 범죄 행위로, 당국에 적발된 경우 부모는 벌금형에 처해지며, 아이는 공립학교에 강제 통학하게 된다. 이 때문에 홈스쿨링 하기 위해 미국, 영국 등지로 망명하는 가족이 생겨나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있을 정도. 독일 정부측은 "공동체에서 어울려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며 공교육의 의무를 강조하는 입장. 반면에 이와 같은 독일 교육 정책에 대해 '국가주의의 잔재'라고 비판하는 시선도 있다.

또한 학교폭력 문제나 교육 방법론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도 지적이 있는데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에 대한 보호는 공권력으로도 한계가 명백하며 교권과의 충돌 문제가 있고[113], 또한 홈스쿨링이라 해서 아이가 이상한 교육을 받거나 하는 게 아니고[114] 제대로 교육시키되 집에서 하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막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2017년 8월 29일에 독일의 디벨트는 독일의 공교육투자율이 EU내에선 최하위라고 밝혔다.#

10.1.2. 고등 교육[편집]

독일의 고등교육정책은 1999년에 시작된 볼로냐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독일의 전통적인 학위과정이었던 9~10학기의 디플롬과 마기스터 과정이 점차 폐지되고 6학기의 학사와 4학기의 석사과정이 도입되고 있다. 이에 따라 파흐호흐슐레와 종합대학의 차이는 전보다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파흐호흐슐레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후 종합대학의 석사과정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또한 유럽 전역에서 ECTS라는 통일된 학점제도를 도입하여 유럽 대학간의 교류가 더욱 수월하게 되었다.

종합대학(Universität)에서의 학업은 전통적으로 이론적이고 학문적 부분에 집중되어있으며, 박사과정 및 교수자격취득(Habilitation)은 기본적으로 이곳에서만 가능하다.[115] 파흐호흐슐레는 좀 더 실질적이고 응용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대부분 직업실습이 학위과정에 의무로 규정되어있다. 음악, 미술 등의 순수예술 분야의 실기교육은 종합대학에서 이뤄지지 않고[116] 각각 음악대학, 조형예술대학 등의 단과대학에서만 가능하다.

독일에서는 유학생들에게 똑같이 학비를 받지 않고 물가가 싸서 생활비 부담도 적기 때문에 독일로 유학을 가려는 학생들이 매우 많은 편이다. 생활비는 모든 집값, 세금, 음식비, 교통비, 보험비, 심지어 유흥비까지 전부 합해도 한 달에 150만원이면 충분하며, 지역 물가, 개인 생활방식에 따라 100만원 이하로도 충분히 넉넉한 생활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물론 물가는 주 마다 판이하게 다르다. 예를 들면 바이에른 주 물가는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 못지 않게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물론 저 둘에 비하면 비싼것도 아니긴 하지만 물가가 싸다지만 외식비는 그리 저렴한 편이 아니므로 가난한 유학생 이라면 집밥과 외식의 비율 적절히 조절하는게 시간면에서나 비용면에서나 윈윈이다. 독일 유학생활시 생활비가 타 국가에 비해 저렴한 결정적 이유는 대학생 한정으로 교통비가 '공짜' 이기 때문. 일단 대학생이 되면 문과대 기준 한학기 평균 260유로 정도를 학생증 발급과 학생회비 등의 명분으로 지불한다. 그러면 학생증이 나오는데, 이 학생증이 교통카드 역할을 한다. 그 대학이 속해있는 주 내에서는 학생증에 적힌 유효기간동안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117] 주말이나 공휴일, 오후 7시 이후에는 무려 동반 1인까지 무료다. 즉 한학기에 평균 260유로=30만원 남짓한 돈으로 교통비+학비를 해결하는 셈. 다만 이 역시도 학교에 속해있는 주 마다 비용이나 구역차이가 존재하긴 한다.[118]

독일 대학교 목록을 보려면 여기로.

10.2. 스포츠[편집]

모두가 알다시피 세계적인 축구 최강국들 중 하나다. 최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으며, 체계적인 유스 시스템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자국 리그인 분데스리가도 유럽대회에서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분데스리가 참조. 또한 2017년 6월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의 조국이기도 하다.[119]

야구의 경우 1984년에 출범한 베이스볼 분데스리가가 있다. 서독 시절 유럽야구선수권대회에서 호 성적을 낸 것을 제외하면 아직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독일 야구 국가대표팀을 꾸준히 출전시켜 경험을 쌓고 있다. 미네소타 트윈스맥스 케플러필라델피아 필리스애런 올테어가 독일 국적 메이저리거.

핸드볼 최강국들 중 하나이고 저변도 꽤나 넓고 인기가 약간 있는 편이다. 핸드볼 분데스리가는 전세계에서 핸드볼을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리그로 정평나있는데 윤경신이 이곳에서 4회 득점왕을 기록하며 레전드로 거듭나기도 했다. 내일은 실험왕에서 막스 바우어가 괜히 핸드볼 선수로 설정된 게 아니라 사실 고증을 잘한거다.

모터 스포츠 역시 최강국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포뮬러 원에서는 2년 연속으로 메르세데스팀이 내구레이스에서는 포르쉐아우디가 넘버원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고 WRC에서는 폭스바겐이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FIA가 주관하는 메이저 3개 대회를 모두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휩쓸었다. 대표적인 드라이버는 미하엘 슈마허제바스티안 페텔이 있다.

또한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기준으로 미국소련에 이어 3위를 기록 중인 국가다. 단 서독, 동독, 동서독 단일팀을 따로 계산할시 금메달 수에서는 7위다. 영어 위키백과 자료

11. 군사[편집]


독일은 2011년 7월 1일 징병제를 폐지했다.# 공식 명칭은 징집 유예지만 유럽인들의 성향이나 징병제의 비효율성 등 여러모로 봤을 때 독일이 다시 징병제 국가가 될 확률을 거의 없다. 더군다나 나치 정권 때문에 큰 죄를 짓고 자신들도 고통받은 독일인들로서는 나치 독일과 연관성이 깊은 징병제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시행하고 싶지 않은 제도가 되는 셈. 모병제로 전환해서 군대에 남은 병력도 평화유지군에 도움을 주는 임무 위주로 활동한다고 한다. 현역 군인으로 징집된 인원들은 늘 징병제 폐지 과정이 그렇듯 지원자에 한해서 직업군인으로 전환되며 전역을 원하는 인원은 순차적으로 전역을 한다. 또한 대체복무로 해왔던 사회봉사요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모집공고를 실시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냉전 이후 군축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군이 전체적으로 비약해져 버렸다. 군축을 통해 독일이 바란 독일군은 고도로 훈련된 소수 정예의 군을 가지는 걸 원했겠지만 현실은 예비 총열도 못 사서 해외 훈련에 기관총 총열 대신 빗자루대를 꽂아놓고 훈련에 참가할 정도다. 거기다 유로파이터, NH-90 같은 각종 악재들이 겹치면서 국방력 강화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이를 통해 대체하려고 했던 F-4F 팬텀이나 도르니어 205 등 노후화된 장비들을 몇 년 더 연장해서 사용하게 되면서 예산이 더 빠져나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레오파르트2의 허상이 드러나고 G36의 총몸 문제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는데 예산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여 전력 강화는 커녕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동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유럽에 신냉전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독일군의 정규군 전력은 냉전 시기와 비교하기 초라할 정도인 3개 사단으로 축소되었고 상당수의 병력이 아프간, 소말리아, 동유럽 등으로 파병나간 상태다. 이마저도 아프간 등 파병지에서 근무 실태들이 드러남에 따라 실전 능력을 고려하기 전에 군인으로서의 기초가 안 되어있다.[120]

이래나 저래나 어느 정도 실상을 알고 있는 밀덕판에선 2차 대전, 냉전기의 강한 독일군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현재는 퇴물, 이빨 빠진 호랑이, 속빈 강정으로 여겨진다.

12. 창작물에서의 독일[편집]

13. 이야깃거리[편집]

  • 한국 유명인 중에서 차두리는 유년기만 독일에서 보냈고 하하 역시 독일 출신이다.

14.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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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의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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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키프로스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

핀란드

헝가리

*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 부속 규정에 의거하여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탈퇴 협상을 시작하며, 2년이 경과한 2019년 3월 29일까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연합에 가입한 27개 회원국들 중 단 하나의 회원국이라도 협상의 시한 연장을 거부할 경우, 협상의 진행 상황과 타결 여부와 무관하게 2019년 3월 29일부로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는 자동으로 상실된다.
* 탈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은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의 지위는 유지된다. 다만 영국 정부가 희망하면 유예기간 내에도 탈퇴는 가능하다.



[1]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는 '통일과 정의와 자유'라는 뜻으로, 국가의 도입부 가사이다.[2] 19세기 프로이센 왕국 시절에는 수레국화(Centaurea cyanus)가 국화(國花)였다.[3] ISO 3166에서 규정. alpha-2는 DE, alpha-3는 DEU이다. UN 통계를 비롯하여 국제 공통으로 사용한다.[4] GER은 IOC 국가코드와 FIFA 국가코드이다.[5] 그 외에 이슬람 5%, 기타 4.1%이다. 독일 내 거주하는 이슬람교도의 상당수는 대부분 서아시아북아프리카 출신 난민 및 이민자들이다.[6] 국가 원수는 대통령, 행정 수반은 총리이다. 대통령은 독일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역할을 수행한다.[7] 2015년 기준 통계. 이코노미스트 지 기준 : 완전 민주주의 체제[8] 독조 외교협정 체결 기준[9]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10] #[11] #[12] #[13] #[14] 2016년 기준 통계. # [15] 2016년 기준 통계. #[16] 2016년 기준 통계. #[17] 독일 정부수반의 직함은 Premierminister가 아니라 Bundeskanzler(남성형), Bundeskanzlerin(여성형)이다.[18] 말루 드라이어는 라인란트-팔츠 주 총리도 겸임하고 있다.[19] 오스트리아와 접한 남쪽 끝 부분은 알프스 산맥의 중턱에 해당한다.[20] 경제력으로는 영국도 있지만, 유로에도 참가하지 않는 등 내내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제외. 게다가 브렉시트까지[21] 독일은 게르마니야라고 쓰지만 독일인은 넴치(Немцы), 독일어는 네메츠키(Немецкий)라고 한다.[22] 문자 그대로 옮기면 게르마니아(Γερμανία)지만 현대 그리스어 발음으로 '예르마니아'다. 정식국명은 '이 오모스폰디아끼 디모크라띠아 띠즈 예르마니아스'.[23] 라틴어 게르마니아에서 따 온 "Германия"(Gyermaniya)라고 부르는 러시아를 제외하면, 보통 슬라브어권 국가에서 독일을 부르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이 "녜메트"에서 나온 것이다. 녜메트는 "벙어리"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그런 명칭을 사용한 게르만 부족에서 따온 것. 그리고 러시아어 마저도 형용사로 쓸 때는 Немецкий(니몌츠끼)로 적는다.[24] 이태리(伊太利)라고 불리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25]이원복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 편을 전후로는 독일을 사용한다.[26] 사실 오스트리아는 영어 Austria, 독일어로는ðsterreich, 동쪽 이라는뜻의 ost + 국가라는뜻의 reich의 합성어다.[27] 비정상회담의 독일인 패널 다니엘 린데만도 이렇게 설명하였다.[28] 종교 때문에 일어난 이유가 큰 30년 전쟁으로 완전히 빈곤 국가로 전락해버린 적이 있다. 더군다나 빌헬름 1세와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가 통일하기 전까지 독일은 심할 땐 300개 이상의 소국가들로 나뉜 적이 있었다. 로마 제국훈족부터 시작해 해상왕국 영국과 단일 육군 최고인 프랑스에 짓밟히며 살았다.[29] 올림픽 등에서 동·서독 단일팀을 구성하거나 단일팀을 구성하지는 않아도 공동의 상징물을 썼을 때가 있었다. 동독 국기가 서독과 달라진 이후 동·서독 공동으로 쓸 깃발로 독일 삼색기 위에 작게 흰 오륜 마크를 추가한 것을 썼다. 오륜 마크? 중화 타이베이? 대한민국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할 경우 한반도기로 대신한 것과 비슷하지만, 남·북의 국기에 공통점이 없는 한반도와 달리 동·서독의 공동 깃발은 그래도 흑적금 삼색이라는 공통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30] 참고로 헝가리, 루마니아 등에서 공산당 정권에 반대하여 투쟁할 때도 이와 비슷하게 국기의 가운데를 동그랗게 오리거나 검은 테이프 등으로 X자를 쳐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문장을 떼어내기도 했다. 동구권 반공 투쟁 당시 유행이라고 보면 될 듯. 과거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국기들은 전통적으로 썼던 옛 국기 위에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국장을 덧붙인 디자인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31] BGH, Urteil vom 16. November 1959, Az. 3 StR 45/49.[32] 올림픽 등에서 동·서독 단일팀을 구성하거나 단일팀을 구성하지는 않아도 공동의 상징물을 썼을 때가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환희의 송가를 국가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대한민국북한의 단일팀을 구성할 때 아리랑을 국가 대용으로 썼던 것과 같다. 참고로 환희의 송가는 오늘날 유럽연합의 찬가(anthem)로 쓰이고 있고, 엉뚱하게도 프랑코포니에서도 찬가로 쓴다.[33] 불가리아루마니아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산업 파괴, 국토 황폐화, 인명 피해 속출 등의 전쟁 피해를 겪었던 것은 맞지만 제2차 대전 초기 나치 독일추축국에 가담하여 군대를 추축국 전선에 파병해 나치 독일의 전쟁 수행을 지원하거나 군사 보급로 등을 적극 제공한 전력이 있어 일방적인 전쟁 피해국으로 보기에는 애매한 점도 있다. 하지만 불가리아의 경우는 조금 논란이 있는데 자세한 건 먼 나라/안 좋은 사이, 추축국, 상임이사국 문서 참고.[34] "독일국방군". 볼프람 베테 지음.[35] 反나치화. 독일어로는 Entnazifikation, 영어로는 denazification이라고 한다.[36] 물론 2차 대전 관련된 독일 영화가 조금씩 나오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전 U보트, 몰락[37] 일단 공식적인 차원에서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무라야마 담화 등을 계승한다는 입장이긴 하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라는 것. 실질적으로는 현 일본 정부는 UN에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헛소리를 내뱉으면서 고노 담화의 내용을 전면으로 뒤집는 입장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38] 그래서 일부 학자는 2차 세계대전이 제국주의 출신 국가에 대한 면죄부를 줬다는 의견도 상당하다.[39] 그러나 독일은 전쟁 중 발생했던 유대인에 대한 전쟁범죄는 사죄했다. 일본 또한 사과하였으나 총리등이 딴소리를 하고 있다. 일본도 덴노 히로히토는 번복 발언 안하는디?[40] 물론 개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독일 국방군일본군 중 많은 수가 순수한 애국적인 동기나 징병 등으로 군에 들어왔다. 그러나 개개인의 성향을 통해, 집단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념적 어긋남을 덮으려 한다는 게 문제다.[41] 단적으로 독일 제국시절부터 군기와 훈장에 사용되었던 철십자 마크는 연방군도 잘만 쓰고 있다.[42] 최근에는 그것 또한 정부 지시로 축소 및 왜곡하는 일이 빈번하다. 단, 일본도 전쟁범죄등이 잘못되었다는 입장은 동일하다.[43] 기사[44] 224개 국가 중 200위. 2015년 독일통계청에 따르면 1.50명을 기록하여 1982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래봤자 이 분야 최고는 우리나라다[45] 현재 지구상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국가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포르투갈, 그리스, 불가리아, 핀란드 총 9개국이다.[46] 단 이 나라 같은 경우에는 이민자들의 출산율이 상당히 높다.[47] 영국프랑스, 북유럽의 경우 한부모 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출산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48] 통계상이다. 사실 1980년대 이전 통계에서는 영국계가 독일계보다 많았다.[49] 하지만 독립 당시 미국 백인들의 75% 가량이 영국계였고, 독일계는 대략 8~9%였다. 독일계가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건 19세기 이후부터였다.[50] 록펠러의 경우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에서 쫓겨난 위그노가 조상이다.[51] 아버지는 이탈리아/독일계 미국인, 어머니는 독일인과 러시아인의 혼혈, 외할머니는 러시아인이다.[52] 단, 이름이 독일어식이라도 독일계가 아니라 스위스미국인, 오스트리아미국인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며 이들은 독일계 미국인과는 별도로 구분하는데, 이들도 조상들이 거주하던 곳은 독일어권이라 독일어식 성씨, 이름을 사용한다.[53] 그냥 Mann 자체가 성인 사람도 있다. 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토마스 만이 대표적.)[54] 예: 아인슈타인(Einstein)[55] 이는 에릭 버거스트가 쓴 나치 부역자 베르너 폰 브라운의 평전 달나라에 꿈을 건 사나이에 나오는 이야기로 베르너 폰 브라운을 귀족 출신으로 묘사하기 위한 장치인것으로 보는 편이다. 합스부르크 왕가나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등으로도 알 수 있듯, 독일도 프랑스처럼 대귀족의 성은 지명을 따 왔다는것이 정설.[56] 외질이나 알튼톱 형제 모두 똑같이 겔젠키르헨(Gelsenkirchen)이 고향이다.[57] 1980년대 케난 에브렌 정권 시절에는 알라의 알 자만 입에 담아도 '인민의 집(Halk Evi)'으로 끌려가 케밥을 코로 흡입할 수 있었다.[58] 시리아의 이슬람원리주의 반군[59] 당연한 일인 게 이민자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 구동독 주민들이 가장 피를 본다. 좀 심하게 말해서 현재 독일의 이민 수용에 따른 내부 혼란은 인식 문제를 배제하면 한국보다 더 심할 가능성이 있다.[60]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대학교에서 라틴어 학습자와 비학습자를 따로 구분했다.[61] 독일인에게 어설프게 독일어로 말걸면 프랑스어로 대답해 준다! 독일어로 말거는걸 보면 영어는 못하나보다 싶으니 공용어인 불어로 답하는 것. 한국인들 입장에선 이런게 인종차별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 독일어로 했더니 이놈이 불어로 사람을 놀리네?[62] 소르브어는 슬라브어계 언어이고 소르브인들은 독일 정부에서 인정한 슬라브계 소수 민족이다.[63] 1990년대에 구소련의 독일계 후손들이 독일로 많이 이주했지만, 대부분이 독일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64] 물론 일반화는 금물이다. 독일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은 바이에른은 대표적인 골수 가톨릭 지역이다.[65] 일찍이 토마스 아퀴나스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표현을 빌리자면 독일 가톨릭 교회는 최강의 집사를 보유한 셈이다. 사실 프랑스도 독일 못지 않은 수퍼 집사들을 보유했지만, 그쪽은 프랑스 혁명 이후로 사회 분위기상 도저히 신학자들이 무럭무럭 자랄 토양이 아니다(...)[66] 하이데거의 제자이며, 하이데거 사상을 신학적으로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대략 중세 신학자들이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집사로 삼은 것과 비슷하다.[67] 한국의 개신교 고학력 목사 중 유학파는 영미권 아니면 독일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68] 구 서독의 수도였다.[69] http://cpi.transparency.org/cpi2012/results/ [70]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다. 언론자유 최상은 0.0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00점,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 http://en.rsf.org/press-freedom-index-2013,1054.html [71] 상원이 중시되는 나라가 드물다. 상원이 주목받는 곳은 미국이 거의 유일하다.[72] 2011년 9월 18일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8.9%, 15석을 차지했다! 흠좀무. 그러나 2012년부터 지지율이 급락해 총선에서 망했어요.[73] 당시 KPD(독일 공산당)이 서독 재무장화 추진에 가장 적극적인 반대입장을 냈던 정당이었다.[74] 한편 동독 지역에서는 소련군정의 압력으로 1946년 4월 독일 공산당과 동독 사회민주당이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으로 강제 통합되었었다.[75] 독일은 나치의 기억 때문에 포퓰리즘으로 당선돼 독재자가 탄생할 가능성이 큰 대통령 직접선거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물론 아돌프 히틀러는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 의회를 장악하면서 독재자(수상을 맡고 있던 중 대통령이 되어 둘 다 겸임한 것. 총통이라 부른다.)가 된 것이었지만 독일은 그때의 기억 때문에 선동 정치인의 집권 가능성을 줄이려고 여러 곳에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다만 역시 나치로 홍역을 치렀고 내각제에 가까운 권력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그냥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한다.[76] 2004년에 부임한 기민련 출신 대통령. 2009년에 재선 되어 2선 대통령이 되었지만, 2선 된 지 1년도 안 되어 아프가니스탄 방문 중 군사 작전을 독일의 이익에 빗대어 연설했다가 신나게 까이고 자진 사퇴했다.[77] 일단 제1투표의 결과대로 지역구를 배정하고 제2투표에서 5% 이상의 득표를 한 정당만 모아서 그 비율에 따라 각 주별로 작성된 비례대표 명부에 따라 각 주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한다. 그런데 항상 비례대표 명수만큼의 지역구 의석이 나와야 하므로 녹색당처럼 지역구에서는 죽을 쑤고 비례대표에서 대박을 내는 경우에는 모자라는 지역구 의석을 따로 만들어준다(예컨대 3명의 지역구대표와 5명의 비례대표가 선출되면, '지역구 의원 2명을 만들어' 지5:비5로 맞추는 셈. 이 정당 하나로 이미 2개의 초과의석 발생.). 반면에 기민당/기사당, 사민당처럼 지역구에서 대박을 내는 경우에는 비례대표 의석도 그대로 가고 지역구 의석도 그대로 간다. 따라서 비례대표보다 더 당선된 지역구 의석이 넘치게 되는 것. 이게 바로 독일 연방하원의 초과의석이다.[78] 독일 기독교민주연합과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은 자매 정당이고 각자 활동하는 주가 구분되어 있다. 기독교사회연합은 바이에른 주에서만 활동하고 기독교민주연합은 바이에른 이외의 주에서만 활동한다. 그래서 연방하원에서는 둘이 단일한 교섭단체를 구성, 사실상 하나의 정당처럼 움직인다.[79] 이념 격차가 큰 거대 정당끼리 구성하는 연립정부. 이를테면 거국내각, 초당적 내각[80] 동독 공산당의 후신.[81] 자메이카 국기의 색상(녹+흑+황)과 같아서 자메이카 연정이라고 한다(...).[82] 여긴 심지어 좌파당이 다수당이다. 원래 선거에서 1위당은 기민당이었는데, 좌파당이 사민당과 녹색당을 끌어들여 연정을 성공시키면서 기민당을 물먹였고, 이에 메르켈도 충격을 받아 마르크스주의자에게 부총리를 주면 안 된다고 비난하거나 대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을 공격하는 등 이례적으로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83] 따라서 연방상원이 아니라 연방참사원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지 몰라도 어렵게 번역했다. 그리고 어감도 영... 연방심의회나 연방위원회, 주 대표회의 정도로 쓰든가, 그냥 연방상원이라고 써도 어차피 외국 기관인 이상 무난하다.[84] 2016년 1월 현재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은 7개 주에서, 사회민주당은 13개 주에서, 녹색당은 9개 주에서 내각에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연방 상원을 장악한 사회민주당..."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85] Minijobs sind sozialversicherungsfrei, d.h., sie begründen keinen eigenen Sozialversicherungsschutz[86] http://www.gegen-hartz.de/hartzivregelleistung.html 참고로 대한민국의 기초생활수급 수당과 비교시 1인가구 60만원, 2인가구 102만원, 3인가구 133만원, 4인 가구 163만원. 국민소득이 2배는 높은 독일이니 상대적으로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 대충 짐작이 가능할 듯.[87] 참고로 각종 보험과 세금을 납부해야 하므로 시간당 7.5유로를 받아야, 현재 주휴수당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최저임금과 같은 수준이 된다.[88] 유럽 여행중이던 주인공일행이 독일에서 히치하이킹을 잘못하여 지명도 알 수 없는 독일 동부지역에 내리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수중에는 몇달러의 돈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주인공 알행은 몇 달러 가지고 그 지역 고급호텔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지낸다는 영화적 과장. 참고로 부지배인이 팁으로 50센트를 받고나서 지배인의 빰을 갈기면서 호텔차릴거라고 말하고 나가는게 백미[89] 아인슈타인은 독일 태생이지만 독일국적을 버리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스위스에서 대학을 나와서 스위스에서 특허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그 뒤에 독일에서 연구활동을 한지로 애매하다.[90]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처럼 독일에 남아 과학부 장관 자리에 올라서 독일 핵개발을 지휘했던 사람도 있다.[91] 나치의 집권으로 독일서 탈출했다.[92] 다만 하이데거는 히틀러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나치당원이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스승이었던 후설을 대학에서 내쫓은 흑역사가 있다. 최근에 발견된 '검은 노트'로 유대인 혐오자의 모습이 더욱 부각되는 중.[93] 정확히 말하면 칸딘스키는 러시아 태생이지만 뮌헨에서 활동하면서 현대 예술의 중요한 돌파구인 추상화에 이르렀다.[94] 기초노령연금이란 간단히 말해서 일정 이상의 나이가 들면 다 주는 연금을 말한다. 당연히 연금이 발달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기초노령연금 외에도 공적연금으로 세대간 부양의무를 지우는 국민연금, 그 외에 사적연금으로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으로 다양한 노후보장체계를 마련하여 노후의 빈곤을 막는다. 즉 연금 수령액 전체를 통털어서 700유로인 것과 기초노령연금 500~800유로인 것은 천지차이다. 물론 이탈리아 같은 경우 노인들 빡세게 보장해 주면서 세금 부담 때문에 나라가 망해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둥 꼭 좋게 볼 수만은 없다.[95] 물가가 저렴한 나라로 이사를 가면 괜찮을 것 같지만, 해외 거주 시 그 나라 물가 대비해서 연금이 나온다. 예를 들어서 스페인에 거주한다고 치고 세금 전부 다 떼면 1달 600유로 실수령(...). 스페인에 집이 있다면 모를까 노르웨이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다만 기초노령연금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잊지 말자. 대다수의 노르웨이인들은 이것보다 당연히 많이 받는다.[96] 실업률, 임금은 만 25세에서 만 64세 사이[97] 근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노년층까지 포함하면 평균학력이 저정도 수치로 나올 것이다.[98] 독일 대학은 중도 탈락률도 높다는 점을 유의하자[99] 헌데 당시 상황으로는 통화교환을 1:1로 안하기에도 그랬던게 당시 동독의 임금수준이 명목상으로는 서독의 1/3 정도수준에 머물렀었고(대신 그 만큼 물가는 싸긴 했지만) 동독 마르크의 가치는 잘쳐도 서독 마르크의 1/3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이 아닌 동 3: 서1으로 통화를 교환했을 경우에는 동서독의 임금 격차가 무려 1:9까지 벌어지고 거기에다가 서독의 물가수준은 동독의 물가수준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이런상황에서 당연히 동 3: 서 1로 교환한다면 통일후엔 그 만큼 빈부격차, 생활격차가 커진다는 얘기이니 셈이니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00] 물론 그래도 임금수준이 서독보다는 많이 낮은 편이었고(대신 생산성도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물가(바나나나 향수 가격같은 건 크게 싸졌고 여타 물품도 공급이 크게 늘어나고 종류도 다양해졌지만 그 대신 주택임대료나 전기료, 수도요금, 식사료는 폭증했다.)는 그보다 더 올라서 동독인들이 많이 불평했었다.[101] 여담이지만 인구는 2배 차이, 국민소득은 수십 배 차이나는 남한과 북한이 통일 과정에서 이런 뻘짓을 한다면? 아마 한반도의 운명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02] 통일연구원, 독일통일 20년 조망 : 독일통일이 한반도 통일에주는 시사점 - 통일 주변환경 조성 중심 기사도 참고[103]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이 유로존에서 최상위,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도 유로존에서 제일 높은 수준. 다만 최근들어 프랑스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많아지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은지 2014년 5월 현재 프랑스 좌파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그야말로 좃망 수준. 부자들이 싫다고 대놓고 얘기하던 좌파 올랑드가 법인세 감세와 규제 개혁, 재정 지출 축소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우향우를 하고 있다.[104] 물론 이게 성공할지는 정말로 미지수. 사회복지비용에서만 210억유로(한화 30조 정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각각 180억 유로, 110유로를 줄이겠다고는 하는데, 안 그래도 지지율이 시망에 국민전선보다 밀리는 막장 판국에 인기없는 긴축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까? #[105]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유럽 내 학습능력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것에 충격을 받은 몇몇 주에서는 종일반으로 운영되고 있다.[106] 김나지움, 레알슐레, 하웁트슐레가 한 학교로 합쳐져 있는 형태. 진보적인 정당이 집권한 몇몇 주에 도입되었다.[107] 하웁트슐레, 레알슐레가 한 학급에 있는 경우 등.[10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79954 오마이 뉴스 기사에서 사진 링크함. 기사에 따르면 독일에는 "학원"이라는 단어가 없어서 한참동안 그 개념을 설명해주면서 독일의 중학교 학생과 인터뷰 했다고 한다. 학원에 다니냐는 질문을 받은 독일 중학생은 "학교가 끝난 뒤에 왜 또 같은 과목을 배우러 다른 학교를 가죠?"라고 답변했다. "예습"이라는 단어도 없는 것 같다.[109] 참고로 아인슈타인은 김나지움에서 아비투어를 취득하지 못하여 독일대학교 입학자격 자체가 없었다. 다만 독일어권 이공계 최고학부인 취리히 연방공대(ETH Zürich)는 고등학교 졸업장(아비투어)이 없어도 본고사만 통과하면 입학이 가능하다. (물론 이 전통은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다. 다만 취리히 연방공대는 [110]) 1895년 10월 아인슈타인은 그래서 입학시험을 치뤄 수학과 물리학에서 매우 뛰어난 성적을 받았지만 다른 과목들이 발목을 잡아 낙방하고 말았다. 그는 1년간 아라우(Aarau)의 고등학교를 다녀 독일의 아비투어에 해당하는 마투라(Matura)를 취득한 후인 1896년 10월에야 ETH에서 학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110] 아인슈타인 당시까지는 지잡대였다가 아인슈타인 덕분에 명문대로 올라섰다는 말도 있다.라 적혀 있었는데, 헛소리다. 당시 19세기때 대학나온 사람이 몇명이었는지 생각해보자. 아인슈타인은 독일식 교육에 질려서독일교육을 포기하고 스위스로 향했다. 그래서 위학위가 없었던것. 또 아인슈타인은 물리 수학에서 모두 상위권이었다. 이에 상당한 명문이었던 서연고급 취리히 연방공대에 합격했으며, 동기가 그 유명한 폰노이만이다.(...)[111] 이 부분은 각 주의 교육정책에 따라 다르고 학생의 성적에 따라서도 달라진다.[112] 파흐호흐슐레는 전문대학이라고 번역할 수 있으나, 한국의 전문대처럼 사회에서의 인식이 낮지는 않다.[113] 사후 처벌을 엄격하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징역 몇십년, 몇백년을 밥먹듯이 때리는데도 범죄 발생을 막지 못하는 미국을 생각해보자.[114] 실제로 자식을 집에서 키우면서 이상한 사상을 주입시키거나 하는 막장 부모가 있는 건 사실이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고 단순히 공교육을 불신하여 집에서 직접 가르치는 케이스다.[115] 예외적으로 몇몇 파흐호흐슐레가 종합대학과 협력해서 박사과정을 개설하는 경우가 있고, 하노버 미대, 베를린 예술대 등이 종합대학은 아니지만 박사과정 개설권을 가지고 있다.[116] 종합대학에서도 예술과 관련된 과목이 있지만 이는 음악학, 미술사 등의 이론적인 과목에 한해서다.[117] 기차의 경우 Region Express 까지 탈 수 있다. IC나 ICE 같은 고속열차는 이용이 불가하다.[118] 자세한 내용은 TUM 문서 참조.[119] 현역 시절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42경기 3골을 기록했으며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유로 1980에 출전했다. 은퇴 이후에는 독일 대표팀 수석코치와 독일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120] 아프간에서 독일군과 같이 근무했던 캐나다 군인 수기에선 경계근무 도중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독일 군인들이 막사로 돌아가는 근무지 이탈이 있었다고 언급되었었고 소말리아에 해적 퇴치를 위해 파견된 독일군 장병들이 지급된 장비를 들고 소말리아에서 용병 활동도 겸업했다는 사실은 한때 독일 내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121] 그도 그럴것이 나치독일은 서구권에서 다루기 껄끄러운 주제이고 나치독일 이후의 독일은 전쟁과 거리가 멀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