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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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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에 대해서는 박지선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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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앰버서더

박지성
(朴智星 / Park Ji-Sung)

생년월일

1981년 3월 30일[1] (36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2]기사출처

본관

밀양 박씨

가족

부모[3], 배우자 김민지, 딸 박연우

포지션

윙어[4], 중앙 미드필더[5]모든 포지션[6]

신체 조건

175cm, 73kg[7], O형

선수시절 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교토 상가 FC,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 7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13번
PSV 아인트호벤 - 7번[8], 33번[9]

학력

세류초등학교 - 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 - 명지대학교
명지대학교 대학원 석사
잉글랜드 드몽포르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소속팀

교토 상가 FC (2000~2002)
PSV 아인트호벤 (2003~20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2012)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2~2014)
PSV 아인트호벤 (임대) (2013~2014)

스태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앰버서더 (2014~ )

국가대표

100경기 13골

응원가

Pigbag - Papa's Got A Brand New Pigbag[10]
The Dubliners - Lord of the Dance[11]
Billy Ray Cyrus[12] - Achy Breaky Heart[13]

파일:attachment/KOR_FA.jpg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

2009년

2010년

2011년

상 제정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기성용
(셀틱 FC, 스완지 시티 AFC)


1. 개요2. 소개3. 클럽 경력
3.1. 학창시절3.2. 해외진출3.3. EPL3.4. 다시 PSV 아인트호벤으로
4. 국가대표5. 플레이 스타일
5.1. Defensive Winger?5.2. 높은 전술이해도5.3. 기타
6. 수상 기록
6.1. 클럽 수상6.2. 개인 수상
7. 은퇴에 대한 본인의 생각8. 기록
8.1. 프로 통산8.2. 국가대표 통산 득점
9. 은퇴와 그 이후
9.1. 석사 과정
10. 박지성 팬들
10.1. 언론10.2. 축구관련 커뮤니티의 박빠들
11. 트리비아
11.1. 응원가11.2. 예능 출연
11.2.1. 2012년 런닝맨11.2.2. 2013년 런닝맨11.2.3. 2014년 런닝맨
11.3. 떡밥
11.3.1. 결혼 떡밥
11.4. 결혼
12. 박지성에 대한 한마디

1. 개요[편집]

EPL 최고의 팀의 전성기를 함께 보낸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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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선수이다. 수원 산남초등학교에서 처음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해 2000년 일본 교토 퍼플상가에서 프로로 데뷔하였고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2014년 아인트호벤으로 돌아와 은퇴. 국가대표로서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주장 등으로 활약했다. 은퇴 이후엔 JS파운데이션 이사장이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홍보대사(ambassador)로 활동 중이다.

2. 소개[편집]

현역 시절 아시아 No.1 플레이어

약 10년 간 축구 국가대표팀을 책임진 에이스 플레이어였다.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한 황금세대 히딩크호의 주역으로 포르투갈전 멋진 골과, 스페인전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는 등 주전으로 맹활약했다. 이후 유럽 빅리그로 진출하여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음과 동시에 기량 역시 만개하여 한국 축구 대표팀의 절대적인 에이스이자,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연이어 활약했고, 특히 출전한 모든 월드컵에서 골을 성공시켜 전 세계에서도 몇 안되는 '3연속 월드컵에서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대표팀 주장으로 캡틴박 이라고 불리며, 월드컵 4강, 원정 첫 승, 원정 첫 16강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현역 당시에는 한국 축구의 아이콘, 현역 아시아 No.1 플레이어라는 평을 받을만큼 커리어를 쌓았다.[14] 네덜란드 명문팀인 PSV 에인트호번에 진출하여 네덜란드 리그 우승과 챔스 4강을 달성하였으며 이후 세계 최정상급 팀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 최초의 한국인 프리미어 리거가 되었다[15]. 또한 맨유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챔스 결승전 주전 출전, 맨유 주장으로 리그 경기 출전 등 이게 정말 현실인지 눈을 씻고 보게 만드는 업적과 장면들을 무수히 만들어냈다[16]. 여기에 월드컵 4강, 원정 16강, 월드컵 3연속 출전과 3연속 골이라는 대표팀 커리어까지 합치면 정말 세계에서도 손꼽을만한 커리어이다.

플레이어 박지성의 진가는 공수에 기여하는 멀티 플레이어로써의 면모와, 뛰어난 축구 지능, 두 개의 심장 같은 수식어가 붙을 정도의 영리한 플레이, 광활한 활동범위, 강철 체력에 있다. 수비형 윙어의 대표격으로 여겨질만큼 공격뿐만 아니라 헌신적인 수비와 수준급 태클로 팀에 기여했다. 넓은 활동 반경으로 공수에 기여하는 강철체력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그 정도로는 그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함께 뛰는 선수가 호날두, 루니같은 초일류선수들이라 그렇지 박지성의 돌파력, 볼 간수, 패싱 또한 수준급이었다. 맨유에서는 보조로써 팀에 기여하는 데 집중했지만 대표팀에서는 해결사로 직접 골까지 마무리 짓는 팀의 에이스로 변모한다.

대표팀에서의 박지성은 그가 있는 대표팀과 없는 대표팀이 갈릴 정도이다.

커리어 뿐 아니라 그의 현역 시절은 모범적인 운동선수의 전형 그 자체였다. 말도 안되는 일부 찌라시를 제외하면 정말 일체의 스캔들이나, 잡음 없이 본업에 충실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같은 한결 같은 모습으로 코리아특급 시절 박찬호, 메이저 대회 우승 커리어를 쌓던 박세리와 함께 한국의 스포츠영웅 대명사로 자리매김하였다. 다만 시기적으로 앞의 두 선수는 90년대를 대표하던 선수[17]들이고 박지성은 0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라서 시대의 차이는 존재한다. 또한 역대 가장 국민적 사랑을 받은 축구선수이다. 지금도 모든 대표팀 후배 선수들의 기사에는 '박지성 좀 본받어라' 하는 댓글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박지성이 뛰어났고, 현재 한국 축구에 포스트 박지성이라 불릴 만한 선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박지성은 흔히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일군 노력형 선수의 대명사격으로 불린다. 그렇지만 좁고 치열한 프로시장, K리그에 입성하는 것만도 어느 정도 천재성과 엄청난 노력이 담보가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박지성의 위업을 단순히 노력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전 세계의 축구 천재들이 모인다는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또 최정상의 팀 맨유에서 7년을 버텨냈다는 것은 박지성도 재능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한국인으로서는 범상치 않은 역대급 재능에, 스스로의 뼈를 깍는 노력, 거기다 때마침 출범한 히딩크호라는 천운까지 합쳐져 이룩된 위업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3. 클럽 경력[편집]

3.1. 학창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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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축구상을 수상하거나 중학교 시절 별 볼 일 없던 팀을 도내 상위권 팀으로 변모시킬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헌데, 그 중학교가 차범근이 서울로 전학가기 전에 다녔던 안용중학교이다. 이 때문에 국외에서 유명한 한국 축구계 전설 2명을 배출한 학교가 된 셈이다. 허나, 수원공고 시절부터는 왜소한 체격 때문에 여러모로 박대를 당했다. 거기에 더해 발 또한 평발.[18] J리그에서 은퇴하자마자 수원공고의 감독으로 부임한 이학종 감독은 그의 체격을 보완시키기 위한 훈련만 시켰고, 이는 박지성이 기본기를 철저히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의 부모는 박지성의 체격을 보완하고자 개구리로 즙을 만들어 먹이는 등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고, 그 정성 탓인지 키가 158cm에서 170cm로 컸다. 현재 박지성의 키는 공식 프로필 상 175cm.

고2 때부터 수원공고에서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박지성을 받아주는 K리그 팀과 대학 팀이 없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학을 졸업한 후 프로 리그로 가는 것이 대부분이였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 직행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19] 그러나 이학종 감독의 도움으로 김희태 감독이 있었던 명지대학교에 입학한다. 일반적인 인식 상으로는 박지성이 실력이 딸려 명지대도 겨우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에 대해 김현회 등이 밝힌 바에 따르면 과정이 조금 다르다. 당시 박지성이 노리던 곳은 관동대와 수원삼성이었다. 하지만 수원삼성은 너무 경쟁이 치열했고, 관동대의 경우 당시 박지성이 재학 중이었던 수원공고에서 다른 선수 두 명을 끼워서 넣으려다 실패한 것이다.

김희태 감독의 일화에 따르면 당시 명지대 축구부는 이미 신입생 선발을 끝냈기 때문에 박지성을 추가로 입학시키기 위해 테니스부를 찾아가 TO(정원)을 빌려와서 박지성을 축구부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지금도 한국에 방문하면 학교에는 거의 꼭 방문하는 등 애교심을 보인다. 명지대 자연과학캠에는 '박지성 장학금'도 있다. 물론 100% 박지성 출자로 알려져 있다.[20]

그 후 명지대 축구부가 울산에서 전지훈련을 할 때 마침 울산으로 전지훈련을 왔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하게 되고, 이때 왼쪽 윙백으로 출전해 뛰어난 활약을 펼치자 허정무 감독의 눈에 띄어 바로 올림픽 대표로 선발된다.[21]

그러나 박지성의 올림픽 대표 선발을 두고 당시 참 말들이 많았다. 일단 당시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작은 체격에 이리저리 뛰어다기만 하는 걸로 보였으며, 박지성 스스로도 수비 헛발질 등으로 삽을 푸기도 했다. 결국 일부 언론에서는 명지대 감독 김희태와 올림픽 대표 감독 허정무가 자주 바둑을 두는 친한 사이이기 때문에, 박지성이 바둑 때문에 뽑힌 거 아니냐고 까기도. 오죽했으면 한 기자가 허정무 감독에게 박지성 발탁을 두고 '뇌물 얼마 받았냐'고 물었다던 일화마저 있다.

갈 대학이 없어 전전하던 시기에 그야말로 무명의 설움을 제대로 받았던 박지성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명지대 입학 → "우연히" 같은 곳에서 전지훈련을 하던 올림픽 대표와의 친선 경기 → 깜짝 올림픽 대표 선발 → 교토 퍼플상가로 이적 → 2002 월드컵 활약 → 거스 히딩크를 따라 아인트호벤 입성 → 챔스 활약 → 맨유 입단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를 보면 참 천운이 따르는 선수인 것 같기도 하다. 김희태 명지대 감독도 박지성은 참 운이 좋다고 하기도 했다. 물론 그냥 운으로 보기에는 철저한 노력과 근성, 준비된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야기.[22]

3.2. 해외진출[편집]

3.2.1. 교토 퍼플 상가 (2000~2002)[편집]

그 이후 각급 국가대표팀에서 여러 포지션에서 활동을 하다가 파격적인 제안을 받고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하게 된다.

2002 월드컵 직전 열린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동점 헤딩골을 넣은데 이어, 며칠 뒤에 열린 마지막 평가전[23]에서는 프랑스에게 0-1로 뒤진 상황에서 김남일의 롱패스를 받아 중거리슛으로 동점을 만들어내는 등의 활약을 펼쳐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끌게 된다. 그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도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설기현-안정환(황선홍)-박지성의 3톱의 주전으로 나선다. 미국 전에서 경미한 부상으로 일찍 교체됐으나 포르투갈을 상대로 골을 넣어 16강 진출에 결정적인 활약을 하는 등 맹활약을 펼친다. 이탈리아 전에서도 설기현의 동점골 과정에 기여하고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는 2번째 키커로 나와 침착하게 슛을 성공시켰다. 그렇게 박지성은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해낸 2002년 국대의 멤버로 큰 인기를 얻는다.

대회 후 다시 교토로 복귀하여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이끌었고, 2003년 1월 1일 열린 일왕배 전 일본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0-1로 뒤지고 있던 팀을 후반 7분 헤딩골로 동점을 만들며, 역전승에 큰 기여를 했다. 원래는 그 전날인 12월 31일 교토와는 계약이 만료되었으나, 팀을 위해 계약기간 만료에도 불구하고 출전했다. 하위권이었던 교토 퍼플 상가를 상위권으로 이끈 것도 있고 계약기간이 일왕배 결승전 전날 끝났지만 결승을 무보수로 뛰어주면서 1골 1도움으로 교토에게 현재까지도 유일한 우승컵을 안겨줬기 때문에 영웅 대접을 해주고 있다. 당시 경기영상. 등번호 7번이 박지성. 덕분에 교토 구단 측에서는 박지성이 무보수를 선언했음에도 감사의 의미로 보수를 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구단주는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하는 박지성에게 어딜 가든 응원하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돌아와달라고 하며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온다해도 받아주겠다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24] 그렇게 2002 시즌을 교토에서 보낸 뒤 2003년, 히딩크가 이끄는 PSV 아인트호벤으로 3년 계약을 하게 된다.

3.2.2. PSV 에인트호번 (2003~2005)[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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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잦은 부상[25]으로 부진한 플레이를 보였고 함께 이적한 이영표에 비해 많은 야유를 받게 된다. 특히 홈팬들에게 더 야유를 받게 되자 이러한 심리적 압박으로 동료에게 패스를 받는 것조차 편치 않게 되고 다시 부진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밖에 나가는게 무서워 벌벌 떨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후에 인터뷰하기를 난생 처음으로 경기에 뛰는 게 무서웠고 축구를 하기 싫어진 시기였다고 한다.[26] 당시 홈팬의 야유가 굉장히 심해서 거스 히딩크 감독도 원정 경기에만 박지성을 출전시키는 등 배려를 해줬을 정도였다. 교토에서 엄청난 연봉으로 회유하면서 1년 만에 유턴하는 이적설이 한창 돌기도 했고 스스로도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한번이라도 증명해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버티기로 하였고 히딩크의 무한한 믿음과 배려로 기량을 점차 끌어올리게 된다.[27]

반 봄멜과 같은 일부 선수들이 한국선수들에 대한 불평을 터뜨리던 시즌도 있었으나 1년 여를 헤매고 난 후 어느새 팀원들과 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28] 03/04시즌 중반부터 발군의 활약을 보이기 시작한 박지성은, 04/05 시즌 주전으로 출전하며 PSV의 에레디비시에 독주에 공헌함과 함께 챔피언스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전 유럽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6강 모나코전, 8강 리옹전에서 골을 넣지는 못했으나 말 그대로 1인압박을 펼치며 엄청난 활동량과 에너지로 상대팀을 관광시키는 활약을 했고 챔피언스 리그로의 제도 전환 후 PSV 사상 최고의 성적인 챔피언스 리그 4강까지 오르는데 일조한다.[29] 4강전 AC 밀란과의 경기는 밀란의 홈에서 0:2로 패배하며 PSV 팬들의 희망은 꺼져가고 있었으나, 아인트호벤의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3:1로 승리하는 압도적인 경기를 펼친다. 특히 2차전 전반 9분경, 하셀링크와의 연계 패스를 통해 카푸-스탐-네스타(!)의 밀란 수비진을 뚫고 호쾌한 첫골을 터뜨리며 홈팬들을 열광에 빠뜨리는 동시에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30] [31] PSV의 압도적인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원정 다득점에 따라 결승전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이 시즌을 기점으로 박지성은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다. 04/05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최우수 공격수 후보 5인에 포함되기도 했으며[32] 2005년 발롱도르 1차 후보 리스트에 포함되기도 했다. 특히 이 때의 활약이 퍼거슨 감독의 눈에 들어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다. 이와 관련된 뒷 이야기로, 사실 히딩크는 박지성이 맨유에 가면 벤치에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팀에 1년 더 잔류해서 자신과 함께 하며 기량을 끌어올릴 것을 요청했고 때가 되면 PSV와 커넥션이 있는 첼시 FC로 이적시켜주겠다고 했다고 한다.[33] 그러나 결국 박지성의 뜻이 단호하여 결국 그의 의견을 수렴하고 맨유로 보내줬으며, 후에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박지성이 맨유에서 그토록 적응을 잘할지는 예상을 못했던 바라고 밝혔다. 당시 리버풀 FC을 비롯하여 유럽 여러 클럽이 영입 제안을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에는 FC 바르셀로나도 있었다! 박지성은 자신의 세번째 자서전 <마이스토리>에서 바르사가 보낸 관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지성은 PSV 에인트호번에서 활약하던 시절 팀 동료였던 필립 코쿠가 “‘(PSV에서) 한 시즌만 더 뛰다 가면 어떠냐? 내가 이전에 뛰었던 팀이 바르셀로나고 현재 바르셀로나의 감독이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레이카르트인데 널 유심히 보고 있다"며 바르사 이적을 추진해보자고 구체적으로 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당시 바르사는 루도빅 지울리의 대체자를 물색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영입이 무산되자 꿩 대신 닭이라고 대체자를 바르샤 유스에서 끌어올렸는데 대체자가....꿩 대신 닭이 아니라 봉황새를 얻었다 또는 사슴을 놓아주고 호랑이를 얻었다 거나

지금은 카가와도 맨유에 가기 때문에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당시만 해도 박지성의 맨유 이적은 한국인과 아시아인들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와 유럽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몰고왔다. 초창기에는 유니폼 팔이니, 저렴한 가격이라 영입했니 하는 소리가 나왔지만[34] 맨유에서 박지성을 영입하기 전에 보여준 관심을 보면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들이었다. 네덜란드의 맨유 스카우터가 맨유에 박지성 영입을 추천하는 보고서를 올렸고, 그걸 검토한 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직접 경기장에 가서 박지성의 플레이를 본 후 영입을 결정했다. 참고로 박지성 설득은 퍼거슨이 직접 나섰다고 한다. 그 정도로 맨유는 박지성 영입에 진지했다. 퍼거슨감독의 자서전에 의하면 8강 리옹과의 경기에 리옹의 에시앙을 보러갔다 박지성을 처음보고 반했다고 서술 되어있다.[35]

3.3. EPL[편집]


그리운 건 박지성인가 그때 그 시절인가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축빠들의 행복했던 순간들.

일개 축구선수를 넘어 2000년대 후반의 문화 아이콘이 된 시절

본격적으로 김연아와 함께 대한민국의 스포츠 영웅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던 시기[36]

3.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5~2012)[편집]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항목 참조.

3.3.2.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12~2013)[편집]

박지성/퀸즈 파크 레인저스 항목 참조.

3.4. 다시 PSV 아인트호벤으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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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팀으로 1년 임대를 간 박지성.[37]

꽤 연봉도 깎이긴 했지만, 감독이 PSV 시절 같이 뛰던 필립 코쿠에 코치가 맨유 시절 같이 뛰던 뤼트 반 니스텔로이이다. 위 두명과의 친분이 꽤 시너지로 작용한 듯 싶다.

이적이 된 후, 부상으로 복귀경기가 늦어지다가 그가 제일 필요한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도 출전이 불투명할 줄 알았으나...귀신같이 회복했는지 당당하게 선발에 이름을 올렸다. 복귀 당시의 포지션은 오른쪽 윙어로 68분간 8.8Km를 뛰면서 경기를 성실하게 조율하였다. 그야말로 수비형 윙어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수비진보다 커팅 잘 했다 그리고 경기는 1:1로 비겼다. 경기 후 골닷컴에선 뛴 선수들 중 가장 높은 평점인 5점 만점에 4점을 받아 MOM에 선정하였다.(여담으로 평점이 가장 낮은 선수는 설리 문타리였다.) 필립 코쿠 감독은 경기후 박지성을 경기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극찬하였다. 레드냅 개갞기해봐

거의 출전시간 내내 울렸던 위송빠레는 이 경기의 감초같은 역할을 했다.(역시 응원가는 따따따따 위송빠레!)

2013년 8월 25일 PSV가 전반 6분만에 실점하며 0-1로 끌려가자 코쿠 감독은 후반 21분 박지성을 교체투입했고, 박지성은 후반 41분 동점골을 작렬시키며 이에 화답했다. 무려 575일 만에 리그득점이었다.

그러나 4일 후 원정경기로 치른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마티아 데 실리오에게 집중마크 당하며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고, 후반 15분 플로리안 오제프손과 교체당했다. 결국 아인트호벤은 보아텡에게만 2골을 내주며 0-3 완패를 당했고 챔피언스리그 본선행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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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박지성오바마
맨유 레전드 둘이서 물론 한명은 맨유의 레전드 먹튀

2013년 9월 23일 리그 우승을 위하여 이겨야할 라이벌 AFC 아약스와의 아인트호벤 안방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팀은 4:0으로 아약스를 처바르며 리그 1위로 올라섰다.

그후 몇 경기 더 나오다 부상으로 한 달 이상을 결장했다. 그 사이에 PSV는 순위가 10위까지 떨어졌으며 네덜란드의 한 언론으로부터 먹튀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다시 출전하게 되면서 PSV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2014년 3월 16일 리그 28차전, 2위 비테세 아른햄 원정에서 쐐기골을 도왔다. 이 승리로 팀은 3위까지 올랐다. 아직 트벤테가 추격 중이지만 비테세와 승점차가 2점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걸린 2위를 두고 아인트호벤이 한층 힘을 내게 되었다.

맨유가 3연패를 당한 직후 맨유 현지 팬들이 분노해서 박지성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중이다.

4. 국가대표[편집]

큰 경기에 매우 강하다.[38]

우리에게 절대 지지 않을 거란 느낌을 주는 판타지스타.[39]

그야말로 한국 축구의 최전성기인 2000년대 초~2010년까지의 대표팀의 중심에는 박지성이 있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였으며 지금까지도 박지성처럼 국가대표팀에서 크랙으로써 활약해주는 선수는 없다.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 라오스 전에 성인대표로 데뷔하였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활약하였다.

초창기에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윙백으로 출전하면서 딱히 특출난 활약상은 없었지만 꾸준히 국가대표에는 발탁되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의 공격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윙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잠재력을 뽑아내기 시작했고, 국가대표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경기는 한일 월드컵 직전 잉글랜드와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터뜨리면서 부터이다. 특히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이영표의 크로스를 받아 가슴으로 트래핑 후 왼발 슛으로 득점하며 팀의 1-0 승리와 조별리그 1위 통과에 큰 기여를 하였다. 골을 넣고 난 후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안기는 장면도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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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전이었던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는 승부차기 때 2번째 키커로 나와서 성공시켰다.

이후 PSV로 이적하면서 한때는 부상 및 부진으로 부침을 겪었지만 부상 회복 이후 2004년부터 점점 국가대표팀의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2005년 맨유 이적 이후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절대적인 에이스이자 주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전력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졌다.

2006년 독일 월드컵 1차전 경기 토고 전에선 MVP급의 활약을 펼쳐주며 토고 대표팀을 멘붕시키는 데 일조했다. 0-1로 뒤지던 한국 대표팀이 터뜨린 2골 모두에 관여했다. 후반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패스를 받아 토고의 주장인 아발로의 무게중심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대시로 1:1 찬스를 만들었지만 그 아발로가 박지성에게 태클을 걸게 만들어 프리킥을 얻어낸다. 이미 전반에 박지성에게 파울을 저질러 경고를 받았던 아발로는 그대로 퇴장. 그렇게 박지성은 두 데드볼 스페셜리스트 이천수와 이을용에게 천금같은 찬스를 줬고 이천수가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동점.

그 후 페인팅모션 한 번으로 안정환에게 짧은 노마크 찬스를 줬으며 안정환이 이를 놓치지 않고 환상적인 터닝슛으로 마무리 지으며 역전에 성공. 원정 월드컵 최초 승리를 거두게 되는 데 1등공신이 된다. 조별리그 2차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후반전 설기현의 측면 크로스를 조재진이 헤딩으로 떨궈준 공을 절묘하게 차서 골을 성공시키며 극적인 1-1 무승부를 이끌었다. 뒤에 있는 골키퍼는 프랑스의 바르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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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는 무릎 부상으로 아시안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부상 회복 이후 국가대표에 복귀해 다시금 활약을 보였고 2008년 하반기부터 김남일의 뒤를 이어 허정무호의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선출되었고,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때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았다. 주장 선임 이후 한동안 부침을 겪던 축구 대표팀은 이후 반등에 성공하여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박지성은 5골을 기록하며 조 1위 무패통과에 기여하였으며, 이란과의 홈&원정에서는 극적인 동점골을 각각 기록하면서 이란의 월드컵 진출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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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 : 봤냐??이게 클라스다 XX들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전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6분 선제골을 넣으며 한순간에 일본 응원단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특히, 골을 넣은 후 사이타마 둘레길 산책 세레머니를 선보이며 일본 관중들에게 굴욕을 안겼다. 당시 경기 끝난 후 인터뷰에서는 '일본 응원단에게 보내는 무언의 메세지였다'라고만 대답하여 일본 기사에서는 J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던 박지성이 매너있게 조용한 세레머니를 한 것이었다는 긍정적인 해석을 하기도 했으나, 4년이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SBS 특별 방송위원으로 참가한 박지성이 직접 세레모니의 뜻을 확실하게 밝혔다. 박지성의 발언에 따르면, 이날 선수 소개 당시 박지성의 이름이 울리자 수많은 일본 관중들이 야유를 보냈기에 약간 건방진 세레머니로 그에 대한 응답을 해준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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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이동국우라와 레즈를 상대로 골을 넣고, 산책 세레모니를 똑같이 따라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이타마 경기장에서 골을 넣으면 산책 세레머니를 해야 되는 것이 암묵의 룰이 되었다.

사실 박지성은 한국 축구 선수들 중 일본에 팬이 많은 편이고, J리그 출신이었기에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선수이다(교토 퍼플 상가에서 프로 데뷔를 했고 그 팀의 레전드이다). 당시 일본방송 중계에서도 '아시아 NO.1 플레이어'란 자막을 따로 써서 설명해주었을 정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그리스 전에 쐐기골을 넣으며 2-0 승리에 기여하였으며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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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탈춤
3차전 나이지리아전에서도 2-2 무승부를 거두며 대한민국의 첫 원정 16강을 이루는데 기여하였다. 박지성은 이 경기에서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16강 우루과이전에서는 고군분투하며 경기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활약했지만 2-1 패배로 빛이 바랬다.

2011년 AFC 아시안컵이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무대가 되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기여하였고, 2011년 4강 일본전을 마지막으로 100경기를 달성하여 센추리 클럽 가입을 달성하였다. 마지막 경기였던 3-4위전에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않았다. 2011년 1월 31일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국가대표팀 은퇴 선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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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플레이 스타일[편집]

사실 한국축구 역대급 천재인데 외모 때문에 강제로 노력형 선수가 되어버렸다.[40] 이천수는?

웨인 루니처럼 저돌적인 돌파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였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처럼 강력한 슈팅력이 있었던 것도, 라이언 긱스처럼 화려한 드리블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필요할 때 한 건 해주는 탑 클래스 미드필더였다.

2002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 국대와 교토, PSV 시절에서는 거의 붙박이 주전으로 출장했었다.[41] 당시의 플레이 스타일은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움직임이 왕성한 역동적인 윙어였다. 공격시에는 빠른 스피드와 침투 능력을 이용해 자신에게 볼이 오지 않아도 언제나 공간을 찾아 움직였고 수비시에는 전방부터 치열한 압박을 전개하고 윙백과의 뛰어난 협력 플레이를 보여줬다. 가장 오랜 시간 몸 담았고 이름을 날렸던 맨유 소속일 때의 위치는 준주전선수 및 전술적 플레이어. 한국인으로서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팀 내 위치를 본다면 붙박이 주전이라 할 순 없었다. 경기출장을 기대하였으나 선발에서 곧잘 빠져 매주 주말 선발명단을 보며 퍼거슨을 욕하는 일이 일상다반사이기도 했다. 겉으로 이를 드러내지는 않았으며 아버지 박성종씨에게 '그 양반은 늘 그래요' 하고 푸념하는 정도였다고 했다.[42][43] 물론 전술상 필요한 경기,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 자주 선발 출전했으며 뛰어난 활약을 보인 경기가 많았지만 맨유가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분위기를 바꾼다거나 경기를 뒤집기 위한 목적의 교체카드로는 잘 활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박까들이 '벤치성'(...)이라고 비아냥대거나 티셔츠팔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입지고 뭐고 없는 수준은 더더욱 아니었다. [44]

PSV에서의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그 능력을 퍼거슨에게 인정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록 많지 않은 출전 경기수임에도 박지성은 매번 많은 활동량을 보여주었으며 강팀에게 강한 그의 전술적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때문에 그를 붙박이 주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많으나 벤치만 달구는 2, 3류급 후보선수라고 하는 것은 거의 모독과 가깝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개인능력에 의한 공격력. 비록 활동량과 스피드, 전술적 이해도와 정신력은 누구보다 강하였으나 볼컨트롤에 대한 타고난 재능이나 킥력, 감각이 부족한 점이 아쉬운 점이다.

그래서 혼자서 상대선수를 제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였고 그 때문에 수비에 막히거나 같은팀에게 패스를 돌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골찬스때도 다소 안습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PSV 시절 그라운드를 거의 씹어먹다시피 한 박지성의 활동량과 파괴력을 본 퍼거슨이 05-06시즌 영입직후 곧바로 즉시전력으로 선발로 기용해 리그경기만 34경기를 뛰었지만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리지 못했고 호날두나 긱스같은 경쟁자들과 비교해 개인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이후부터는 부상도 있던 탓이 있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때 항상 리그 우승을 목표로 하는 맨유에게는 매경기를 승리로 장식해야 하기 때문에 골과 직결되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중용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박지성은 다른 시즌들은 첫시즌만큼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프로답게 수많은 이적설과 기용되지 못하는 심리적 소외감을 견디며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프로정신을 발휘했다. 맨유에서 선수기용문제로 이적한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을 감안하면 박지성의 정신력은 정말 높이 칭찬할 만하다. 또 10-11시즌처럼 마찬가지로 많은 경기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중요할때마다 골을 터뜨리는 등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공격포인트 문제를 해소하며 팀의 구세주로 활약했던 시즌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박까들이 '결국 로테이션이 아니냐'며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맨유에서 붙박이라고 할만한 선수는 드물다.[45] 특히 미드필더는 모두가 로테이션에 가깝다.[* 박지성이 뛰는 동안 완전한 주전선수라 불릴만한 선수들은 전 포지션에서 꼽아도 호날두,에브라,루니,캐릭,반데사르,비디치&퍼디 정도 밖에 없었다.한마디로 7명이완전한주전인데 이는 붙박이가
드물다는 위의 자기위안과 모순된다. (호날두는 중간에 이적했고, 반데사르는 11년 은퇴, 캐릭과 비디치&에브라는 박지성보다 각각 1년, 반년 뒤에 입단) 나이로 인한 체력문제로 네빌, 긱스와 스콜스는 물론 나니도 한 시즌 반짝하고 로테이션이 됐으며, 플레쳐는 붙박이할 만큼 물이 오를 때 부상이 시작됐다. 발렌시아는 윙과 풀백을 번갈아 다녔다.]

즉, 로테이션이니까 박지성의 입지를 의심해야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맨유가 어떤 팀인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 맨유에서 7년간 버틴 것 자체가 대단한 선수라는 증거다. 대런깁슨과 쿠쉬착등도 대단하다이는 박지성이 맨유에 머문 7년 간 어떤 선수들이 들어왔다 나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출전 경기수로 말하자면 리그 경기가 200경기가 아니라 챔스, 기타 컵대회를 포함한 경기가 200경기다. 7년간 200경기라고 말하면서 시즌당 30경기 뛰었다고 왜 박지성이 주전이 아니냐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46] [47]

또 맨유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1/12시즌에는 영과 발렌시아, 나니에게 주전경쟁에서 대놓고 밀렸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박지성의 리그 경기출장수는 12경기에서 17경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부상이 없었음에도 출전 시간이 전에 비해 큰 폭으로 줄게 되었다.(프리미어리그 전체 경기 수는 38경기다.) 하지만 박지성과 경쟁했던 다른 미드필더(ex. 나니, 마이클 캐릭, 안토니오 발렌시아 등)들은 모두 20경기 이상을 출전했다.[48] 알렉스 퍼거슨이 박지성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잡고 싶었지만 기회를 많이 못 줘 미안하다'는 부분이 있다. 다만 퍼거슨은 같은 편지에서 박지성의 고질적인 무릎 컨디션을 우려하여 조심히 기용했다고도 밝혔기 때문에 단순히 주전경쟁에서 밀렸다고만 판단할 수는 없다.

모든 미드필더 위치는 물론 윙백[49]에서도 뛸 수 있는 전천후 플레이어. 한국 국대에서 뛰는걸 보면 박지성이 없는 곳이 없다. 2000 올림픽팀과 국대 데뷔 초반에는 중앙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했다. 교토에서도 초반에는 중앙에서 활약했으나 히딩크의 국대에서 윙어롤을 맡게 된 이후 쭈욱 윙어로 활약하게 된다. 다만 점차 나이가 들고 부상이 여러차례 발생하면서 활동량이나 스피드가 줄어들어 중앙 미드필더나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50]

공간 이해도와 태클의 정확도 등 수비력이 좋아 에브라 이전에 1선에서 상대팀 윙어를 차단하는 등 윙어로서는 상당히 유니크한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나쁘지 않은 돌파력과 다소 엇박자스러운 드리블, 괜찮은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나 그다지 예리하다고는 할 수 없는 롱패스와 크로스가 윙어로서 단점이다. 하지만 짧은 패스능력은 상당히 정확하고 위력적인 편이며 특히 원터치 패스를 통한 공간 창출 능력은 특유의 전술이해도 및 축구지능과 맞물려 맨유의 다른 선수들이 공격을 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재치있는 침투능력과 수비수 몰이 능력까지 겸비해, 포지션을 정신 없을 정도로 바꿔가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전술을 사용할 경우 매우 파괴적인 모습을 보였다.[51] 물론 윙어로서 아쉬운 수준이기는 하나 때때로 좋은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하기도 했다.

선수로서 박지성이 자랑하는 가장 큰 장점은 전술하였듯 월등한 스태미너와 높은 전술이해도, 공간침투력으로 개인능력이 월드클래스급인 선수가 넘쳐나는 맨유에서 이런 능력을 살려 보조적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팀의 주축공격수였던 PSV시절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역할이다. 간단히 말해 원터치 패스를 통해 역습시 공격 루트를 여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공 시에는 상대 수비진의 빈 공간을 꿰뚫어보고 거기 가서 뛰고 있으면 박지성을 신경쓰느라 수비진은 흐트러지고, 그 틈을 이용해 맨유의 공격진들이 쇄도하는 형식.[52] 이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짐에도 오랜 시간 맨유에서 꾸준한 활약을 했으며 점차 그의 가치가 인정받게 된다.[53]

또한 주전 윙플레이어로 활약하기엔 많은 골을 넣고 있지 못하기에 대체적으로 공격력은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그 이유로 07/08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출전하지 못하기도 했다.[54] 하지만 그 이후 첼시 리버풀 아스날 밀란 등 강팀들의 골문에 득점을 성공시키는 등 특이하게 강팀과의 중요한 경기에서 엄청난 결정력을 보여주었다.[55]

다만 혹평받는 공격력이지만 그렇다고 리그 하위권이나 쓸모없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컨디션이 좋은 시즌을 골라보면 사실 골도 꽤 많이 넣었다. 10/11시즌의 골을 보면 리그와 컵, 챔스를 합쳐서 모두 8골. 윙 플레이어 치고는 많은 편의 골이며,[56] 윙 플레이어가 5골 이상만 넣어줘도 제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 박지성의 공격력도 윙어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57]

박지성의 대표적 별명이 산소탱크인데, 이는 혀를 내두를만한 뛰어난 스테미너 때문이다. 출전했던 거의 모든 경기에서 10~12km의 활동량을 보여 3순위 안에 드는 게 일과였다. 특히 박지성의 컨디션이 좋았을 때는 골에어리어를 제외한 경기장 대부분에 발도장을 찍고 다녔으며, 상대했던 선수들을 무기력할 정도로 지워버리기도 했다.

국가대표 경기에서의 움직임을 보면 공수 양면에 걸쳐 빼어난 활약을 보이는 올라운드 미드필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 국가대표에서도 맨유에서 못지 않은 클러치 능력을 보여준다. 2002년 프랑스와 잉글랜드와의 연이은 평가전에서 기록한 골에서 부터 출발하여 월드컵 3연속 골은 말할 것도 없고 월드컵 예선전 당시 테헤란과 서울에서 연이어 이란에게 좌절을 안겨준 동점골, 일본 축구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작렬한 한일전에서의 선취골 까지 그야말로 2000년대 한국 축구의 임팩트 있는 골의 주인공은 안정환 아니면 박지성인 수준....이라고 국대 위주 팬들은 많이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그냥 박지성이나 안정환 위주로 기억을 되돌려 회상하다 보니 그런 인상을 받을 뿐으로, 그냥 골들을 하나하나 되돌려 보면 의외로 그렇지도 않다. 다른 선수들의 골이 왜 임팩트 없냐면, 다른 골들은 똑같이 혹은 그 이상 중요도가 높아도 팬들은 그저 까이지 않는 두 선수 위주로 기억을 되돌렸을 뿐이다.

단순히 박지성, 안정환이 이름값이 있고 안티가 없기에 다른 선수들의 골보다 돋보엿단건 말은 어폐가 있다. 축구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월드컵에서 각각 3골씩 넣은 선수들이다.그것도 대부분 역전골 내지는 결승골로. 당연히 축구팬들에게는 기억에 남을수 밖에 없고 이는 월드컵 성적으로 말해준다(4승 2무). 박지성, 안정환 두 선수가 넣은 골들이 전부 중요도 높은 골도 아니고 다른 선수들도 중요한 순간에 골들을 넣어주었지만 2000년대에 가장 중요하고 임팩트있었던 골의 주인공을 꼽자면 두선수가 먼저 생각나는건 당연한거다.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전, 이탈리아전, 프랑스전에 넣은 골보다 중요도가 높은 골은 대체 무엇일까?

5.1. Defensive Winger?[편집]

수비 가담 능력이 좋은 편. 수비형 윙어라는 포지션을 창조해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할 정도이다.그러나 박지성의 자서전에서 밝혀진 바로는 영국의 언론인 가디언이 수비형 윙어라는 포지션을 박지성이 만들었다고 기사를 잘못 올린 것이 발단이라고 한다. 구글 등을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Defensive Winger"라는 용어가 박지성 이전에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보편적으로 해외 축구계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용어로 보인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박지성 이전에도 수비지향적인 윙어들이 있었다. 리버풀의 윙포워드인 디르크 카윗도 수비형 윙어 소리를 듣는 등 국내의 인식과 달리 수비력이 뛰어난 측면 미드필더가 아주 희귀한 존재는 아니다.[58] 현대축구에서 윙어는 단순히 측면공격 뿐 아닌 적의 측면 공격을 차단하는 역할도 겸하는데다 한쪽 측면이 공격을 나가면 다른 한쪽 측면은 포지션을 지키며 2선 라인을 조율하는 편이 안정적이다.[59] 애초에 우리나라에 박지성이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라는 말이 떠돌게 된 이유는 영국의 가디언지에서 박지성을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라고 했다는 기사 때문인데, 실제로는 그런 말 없다. 오역이든 낚시든 퍼온 기자가 잘못 전달한 것. 어쨌든 그의 능력은 폄하할 수는 없고 PSV 시절 04/05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러한 능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전 시즌 챔스 준우승팀이었던 모나코와의 16강 경기에서 에브라를 발라버린다.응? 리옹 전에서도 이영표와 협력으로 좌측을 밀어버린다.[60] 특히 4강인 AC 밀란전에서 혼자서 한쪽 측면을 휘젓다시피 하면서 1인 압박축구를 펼친 장면은 유명하다. 2009년 5월 6일 아스날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선 아스날의 측면 공격수 시오 월콧을 경기장에서 지워버렸는데 그 날 월콧은 평점 4점을 받았다.

그리고 09/10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도 재현되어 AC 밀란의 플레이메이커 안드레아 피를로를 글자 그대로 지워버렸다. 이것이 인상깊었는지 퍼거슨이 박지성을 언급하면 이 경기를 자주 언급할 정도, 후에 유로 2012때 피를로의 대활약에 당시 피를로를 지워버렸던 박지성의 평가도 올라갔다. 그의 수비 가담 능력은 이토록 뛰어나지만, 3백의 윙백과 달리 4백에서 풀백을 맡을 때는 별반 활약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윙백과 풀백의 본질적인 차이에 의한 것으로 3백에서의 윙백은 일단 3명의 중앙수비수가 수비를 하기에 수비에 대한 부담이 적은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4백의 풀백의 경우 중앙수비수가 둘 밖에 없기에 수비에 대한 부담이 크며, 박지성의 수비력은 전문 수비수처럼 일대일 마크가 뛰어난다거나, (수비수로서) 경기 흐름을 읽는다거나 하는게 아니라 왕성한 활동량으로 상대 선수를 압박하는 것이기에 전문 수비수로서의 능력은 떨어진다는 것에 기인한다. 쉽게 말해, 박지성은 전문 수비수와 함께 상대 선수에게 압박을 더해서 상대공격수를 무력화 시키는 방식의 수비력이 뛰어나다는 얘기. 아무래도 수비수가 아니다보니 1:1 마크에 능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무서울 정도로 공만 따내는 태클도 장착하여 수비력이 한층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 어떤 선수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메시에게 백태클을 걸겠는가.

윙어의 본분은 공격이라며 수비형 윙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그런 시각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윙어는 흔히 공격적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며 축구적 재능이 뛰어난 선수가 보통 공격적으로 활용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술과 선수의 능력에 따라서 윙어는 무조건 공격적이어야만 하는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윙어가 공격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전술의 틀 안에서만의 얘기이다.[61] 다만 예컨대 호날두처럼 공격에 온 역량을 쏟게 해야 하는 선수보다는 좀 재능이 떨어진다고 얘기할 수는 있다.[62] 요즘은 윙어에게 공격력은 물론이고 전방에서의 수비 가담 능력도 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추세기 때문에 "수비형 윙어"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또한 스타일이 수비적일 뿐이지 그렇다고 공격적인 가담을 안하는 것도 아니다. 풀백들이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로 수비가담이 적은 윙어나 공격수들을 상대할 때는 풀백들이 상대적으로 더 넓은 공간에서 더 안전하게 공을 다룰 수 있지만 박지성 같은 타입은 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압박한다. 그러다보면 풀백들이 공을 더욱 신경써서 다루게 만들고 심리적 압박이 심해져 당연히 실수가 나올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런데 풀백이 수비위치에서 실수하게 되면 바로 키퍼와 맞서는 찬스가 나거나 적어도 측면이 텅텅 비어있는 상황이 연출되기 마련이다. 실제 박지성은 풀백들의 실수를 유도하고 풀백의 공을 뺐어서 팀의 찬스를 만든 적이 많았다. 그 희생양 중엔 이영표도 있다. 즉 수비하면서 계속 상대를 압박하는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게 박지성의 스타일이었다. 2010년 월드컵 그리스전 골이 그런 박지성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수비 시에도 압박하지만 공격할 때도 상대 풀백에게 끊임없는 판단을 강요한다. 박지성의 또 하나의 강점으로 돌파, 패스, 쇄도, 슛의 선택과 판단력이 좋다. 매번 그 상황에 적절한 판단을 하는 편이고 무엇보다 그 판단이 빠르다. 즉,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공을 잡고 오래 끌지 않는다. 패스를 받기 전에 이미 빈공간을 향해서 뛰고 있고 그 공을 받기 전에 이미 다음 행동을 판단해서 받자마자 바로 시행한다. 빈공간 쇄도->받자마자 1:2패스->패스하자 마자 빈공간 쇄도->또 패스 or 돌파 이런식으로 후방에서 안정적으로 계속 볼만 보급이 된다면 상대 윙백의 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판단을 강요하고 계속 움직이게 만들어 지치게 하는 식으로 풀백을 괴롭힌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수비를 끌고 다니며 다른 선수들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도 덤.

QPR에서 박지성이 좋은 폼을 보이지 못한 것은 이런 스타일이 QPR에서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백패스 건 1:2패스건 '쇄도 후 잡고 패스 또 쇄도 또 잡고 또 패스' 이런식으로 플레이가 연결이 돼야 박지성의 강점이 사는데 QPR에서는 후방으로 패스를 돌려주면 다시 패스가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팀이 꼭 박지성에 맞춰줘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패싱게임을 하는 팀이 아니었던 QPR에서 박지성이 설 곳은 없었다. 즉, 안정적으로 계속 패스가 제공되지 않으면서 박지성의 오프 더 볼 능력의 강점이 확 죽어버렸으며 아울러 다른 강점인 축구지능, 판단력도 빛을 잃었다. 박지성은 QPR초기에는 돌아오지 않을 패스를 계속 하면서 경기내내 백패스만 한다는 비난에 시달렸고 이후에는 결국 이 팀에서는 자신에게 패스가 계속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이 불리한 위치와 상황에서도 QPR의 다른 선수와 마찬가지로 돌파를 시도할 수 밖에 없었다.

맨유 초반에는 이런 스타일이 아닌 공격적인 윙포워드였으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플레이스타일을 가지게 된 것은 2007년에 당한 무릎 인대 부상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년여에 가까운 아주 커다란 부상이었으며, 그로 인해서 PSV ~ 맨유 초창기 시절의 활발하던 스피드와 돌파력, 활동량이 대폭 죽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이러한 신체적 능력의 저하를 커버하기 위해서 선택한 박지성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활동량이 줄고 뜀박질하는 모습을 보기 힘든 것은 무릎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다만 국가대표에서는 움직임이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같지만 공격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2000년대 한국 대표팀의 크랙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래서 박지성이 전성기였을 당시에는 이를 두고 넷상에서 축빠들의 많은 토론이 있었다. 다만 박지성의 자서전에 따르면 맨유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공격적 능력이 더 뛰어나고 자기가 공격을 하는 것보다 그들이 공격하는 것이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 조연의 역할을 맡는 것이라고 했으며 국가대표에서는 자기가 주연이 되어야 하니 그렇게 플레이 스타일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비슷한 선수를 꼽자면 잉글랜드/리버풀 FC의 제임스 밀너, 코스타리카/아스날 FC의 조엘 캠벨 정도.

최근 수비가담을 전혀 하지않는 데파이, 또한 2010년 이후 축구 전술에서 각광받는 게겐프레싱 두줄수비 등 공격형 윙어라도 수비가담을 안하면 욕먹는 전술들이 트렌드화 되면서 많은 축구팬들은 박지성을 다시금 한번 떠올리고 있다.

5.2. 높은 전술이해도[편집]

2002멤버들이 대거 그러하듯 전술이해도가 뛰어나며 한국 선수 특유의 성향 탓에 감독의 주문에 군말없이 잘 적응하기로 유명하다. 교토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PSV에서는 4-3-3의 스리톱, 맨유에서는 4-4-2의 측면 미드필더, 국대에서는 중앙, 측면에서 평균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는것만 봐도 그의 전술이해도와 재능은 여간 비범하지 않다.심지어 박지성이 실축으로 위닝을 구현한다고 할 정도로 어느 포지션에서나 필요한 플레이를 해줬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소속팀 감독들이 박지성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며 전술적으로 뛰어난 감독들은 장기말이 되기를 마다 않는 박지성을 싫어할 수가 없다.[63]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을 국대 소집하자마자 결점이 없다고 평했고, 퍼거슨은 매년 빅게임에서 박지성을 꾸준히 기용하면서 재미를 꽤 봤다. 단 QPR 시절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활약이 없었다..[64] 또한 손흥민이 현재 토트넘에서 오프 더 볼 움직임, 전술 이해도 부분에서 부족한 점을 보이고 있어, 박지성의 전술적 움직임이 얼마나 뛰어났었는지 재조명 되고 있다.[65]

5.3. 기타[편집]

2010년 6월 12일 그리스와의 월드컵 B조 1차전에서 득점에 성공하여 3개의 연속된 월드컵 대회에서 골을 넣은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66] 2차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도 역시나 선발 출전하였고 온 경기장을 누비고 다녔으나 활동량만 많았을 뿐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에게 완벽하게 지워지며 팀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3차전 나이지리아전에서는 박주영의 프리킥 역전골에 기여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그리스전과 마찬가지로 MOM에 선정되었다.

2010년 10월 12일 한일전을 앞두고 머리를 붉게 염색(원래부터 가끔 염색을 하긴 했다.)하여 부진탈출이라든가 한일전 필승 다짐의 표현이라는 말들이 많았지만, 박지성 본인이 말하길 자기도 그런 색으로 염색이 될 줄은 몰랐다는 모양(…).

2011년 1월 25일에 있었던 2011년 AFC 아시안컵/4강&결승한일전에서 이영표에 이어 센추리 클럽[67]에 가입했다.

여담으로 고교시절 때 트라우마 때문에 페널티 킥을 차는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2011년 아시안컵 4강전 한일전에서도 주장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차지 않았을 정도.그리고 돌아온 것은 바로 삼연뻥 근데 아이러니하게 페널티킥을 잘 차긴 하는듯 하다. 히딩크가 한때 페널티 킥 전담키커로 정했을 정도[68]. 그리고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2002년 월드컵 미국전에서 이을용이 실축한 페널티킥은 원래 박지성이 차기로 되어 있었다! 경기 전 히딩크 감독이 페널티 킥 전담 키커를 미리 정했었는데 제 1순위가 박지성, 2순위가 이을용이였다. 근데 박지성은 미국과의 경기에서 전반전 38분쯤에 부상을 당해서 이천수와 교체아웃 됐었다. 만약 이 때 박지성이 부상을 당하지 않고 페널티 킥를 차서 성공시켰다면 아시아 최다골의 기록은 박지성 단독의 기록이였을수도 있다. 만약이란 없겠지만

또 팀을 불문하고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이기도 하다. 겸손한 태도로 항상 불만없이 성실하게 플레이하는 선수였기에 타팀 팬들까지 박지성을 좋아하는 편이다. 지금도 맨유나 프리미어리그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박지성 관련 게시물이 올라오면 댓글엔 온통 칭찬뿐이다.

6. 수상 기록[편집]

6.1. 클럽 수상[편집]

  • 교토 퍼플 상가
    일왕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1회 (2002년)

  • PSV 에인트호번
    에레디비시 우승 2회 (2002-03 시즌, 2004-05 시즌)
    에레디비시 준우승 1회 (2003-04 시즌)
    KNVB 컵 우승 1회 (2004-05 시즌)
    요한 크루이프 실드 우승 1회 (2002-03 시즌)
    요한 크루이프 실드 준우승 1회 (2004-0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회 (2004-05 시즌)

6.2. 개인 수상[편집]

2001년 J2리그 MVP 수상
2001년 J리그 베스트 XI 선정
2002년 J리그 베스트 XI 선정
2002년 일왕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MVP 수상
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2년 일본 오사카경제법률대학교 표창장
2002년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수상
2003년 피스컵 골든볼 수상
2005년 KNVB 컵 MVP 수상
2005년 유로스포츠 베스트 XI 미드필더 부문 선정
2005년 에스콰이어 '한국을 빛낸 10명의 남성'
2005년 타임지 선정 '아시아의 영웅 20인'
2005년 환경 재단 선정 '세상을 밝게 한 100인'
2005년 에레디비시 베스트 Xl선정
2005년 UEFA 챔피언스리그 베스트 Xl 선정
2005년 UEFA 클럽 풋볼 어워즈
2006년 한국 방송 프로듀서 선정 올해의 스포츠 스타
2007년 세계 경제 포럼 선정 차세대 지도자
2007년 명지대학교 공로상
2008년 슈퍼매거진 슈퍼어워즈 아시아 선수상 수상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3월 MVP 수상
2009년 제40회 경기도 체육상 스포츠 스타상 수상
2010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1월 MVP 수상
2010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2월 MVP 수상
2010년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상 수상
2011년 AFC 아시안컵 베스트 XI 선정

7. 은퇴에 대한 본인의 생각[편집]

이청용과의 대화나 일전의 인터뷰 등에서 밝혀졌듯이 박지성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기점으로 대표팀 은퇴를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황선홍이 "팬들이 원한다면 계속 대표팀으로 뛰어야 한다"라고 설득하려 하는 등 주위에서 대부분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진 뛰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말리고 있어, 2010년 5월에 발간한 자서전에 따르면, 좀 더 생각해보자는 쪽으로 바꿨다고 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여전히 남아공 월드컵을 자신이 대표팀 선수로서 뛰는 마지막 월드컵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브라질 월드컵이 열릴 때까지 자신의 기량이 좋다면 뛰어도 될 거라 생각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72].

그러나 무릎 부상 재발 때문에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2010년 12월, 2011년 1월에 치뤄지는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확고히 했다. 차범근 이후 최고의 스타의 은퇴발언이고,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축구 선수가 20대 말에 은퇴를 하겠다고 하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축구계에선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모양. 황선홍, 홍명보 등은 결국 본인 몸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본인 의사가 제일 중요하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회택 등은 박지성의 은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의사를 보이는 등 축구계내에서 찬반여론이 확연히 갈리고 있다.

이른 나이에 국대 은퇴를 결심한 원인은 아무래도 무릎 문제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다. 박지성이 무릎이 좋지 않은건 J리그 교토 퍼플상가때 부터 좋지 않다고 본인이 언급을 했다. 부상을 입은 후 몇차례의 수술로 인해 무릎 상태가 정상이 아니기에 계속 잘 관리해줘야 하는데 국대 소집으로 장거리 비행을 하고 나면 무릎에 물이 차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 맨유에서도 박지성이 한국 국가대표로서 시합을 치르고 나면 무릎에 이상이 생겨 한동안 못 뛰는 걸 불만스럽게 여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축빠들 사이에선 박지성이 은퇴를 선언한 이상 이제 그만 그를 놓아줘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국대에서 뛰어야 한다는 의견보다 많은 듯하다.

맨유 의료진의 검사 결과 무릎 상태가 길어야 4~5년, 계속해서 국대에 차출되면 겨우 2년 정도 밖에 버틸 수 없는 상태라는 기사가 났는데, 다름 아닌 그 유명한 최원창떡밥으로 박지성은 물론 처음 박지성의 은퇴를 공식화한 아버지 박성종도 거짓이라고 못박았다. 맨유 의료진들이 박지성의 무릎이 정상상태가 아니니 조심하라는 경고는 하고 있지만 기한을 밝힌 적은 없고, 특히 국대와 연관되는 것은 민감한 상황이라 해당 부분에 대한 발언은 극도로 조심한다고 한다.

다만 그런 시한부 판정의 진실여부를 떠나 장거리 비행을 하고 나면 무릎에 물이 차서 한동안 경기를 뛰지 못하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사실이며 박지성 본인도 결국 그것 때문에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조광래 감독이 경기출전을 별로 안 하더라도 박지성이 계속 대표팀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친선경기나 예선 등 중요하지 않는 경기에선 빠지고 월드컵 최종예선이나 본선 같은 중요한 경기에만 부르는 선별출장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나오고 있지만 박지성 본인이 그런 애매한 상황은 원치 않는다고 한다. 본인 말에 따르며 2014년 월드컵 때는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다고...결국 2011년 AFC 아시안컵/4강&결승에서 이영표와 함께 은퇴식을 치뤘다.

2011년 1월 31일, 한국으로 돌아와 공식적으로 은퇴발표를 했다. 2014년 월드컵에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으며 현역 선수 생활을 언제까지 하겠다고 정해놓은 것은 없지만 적어도 3, 4년은 더 뛸 것이라고. 은퇴관련 기자회견문 전문. 그리고 박지성의 은퇴에 대해 차범근은 축구 유망주들이 유년기에 훈련을 너무 많이 하는 관행을 고치려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것이 부끄럽다며 인터넷 상에 글을 올렸다(관련 기사).

다만, 월드컵 본선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없는건 아니다. 해외에서도 지네딘 지단 같이 국대에서 은퇴한 스타 플레이어가 월드컵 때에 복귀한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팀과 여론이 박지성 출전을 강력히 원할 것이고, 본선에만 출전하면 예선의 많은 경기와 장거리 여행에 대한 걱정도 없다. 그리고 QPR에서의 박지성의 입지는 단연 독보적이기 때문에 구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데다 QPR은 당장 잔류가 문제인 수준의 팀이라 경기 수도 적어 혹사당할 위험도 적다. 무엇보다 맨유에서의 명예로운 은퇴가 무산된 이상 국가대표로 뛰다 은퇴하는 명예나 월드컵 출전 자체의 유혹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2011년 현재 박지성 본인은 월드컵에 출전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치욕의 한일전 0:3 패배 후 검색어 1위 돌아와 박지성 한국 축구의 손오공

2013년 한국 대표팀이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팀이 아주 개판 오분전인 상황이라 홍명보 감독이 사실상 내정되었다는 소식에 언론들은 한 목소리로 홍명보 감독이 박지성과 이영표 세트를 복귀시켜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러나 박지성의 아버지는 대한민국이 최악의 위기라고 해도 지성이가 대표팀에 복귀할 일은 없다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상황. 박지성 본인도 6월 20일 기자회견에서 홍명보 감독이 부른다고 해도 대표팀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클럽의 경우 팬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맨유에서 은퇴하느냐 아니면 다른 곳에서 은퇴하느냐였다. 가장 좋은건 역시 맨유에서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이었지만 결국 QPR로 이적했기 때문에 이 쪽은 무산되었다. 다른 대안이라면 K리그나 교토에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되겠다.[73]

다만 현재 30줄을 넘긴 현재 시점에서 10경기 정도를 뛰고 무릎 부상을 당해서 누워버리고, 회복기간이 예전에 비해서 상당히 길어졌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지성의 무릎 상태나 몸상태가 확실히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로 보이며 본인도 인터뷰에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수차례 언급한 만큼, 박지성의 선수생명도 그다지 길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맨유에서처럼 로테이션을 돌며 무릎에 부담을 줄이게 된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팀이 팀인지라... 박지성이 로테이션 멤버로 뛸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PSV때나 퀸즈파크 시절을 봐도 한번 부상을 당하면 최소 70일~100일동안 결장을 했는데 이걸 봐서 무릎이 회복력이 떨어진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은퇴 시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에 의하면 남은 계약기간을 모두 다 채우고 은퇴한다고 한다. 즉 원소속팀인 QPR과의 계약기간이 끝나는 2015년 6월 은퇴하게 되는 셈. 은퇴 후에는 FIFA 마스터코스를 거쳐 축구행정가가 될 계획이라고 한다.

정리해보면, 박지성이 아시안컵이 끝나고 은퇴를 시사했던바는 맨체스터에서 주전경쟁이 쉽지 않고, 국가대표 차출로 인한 장거리 비행이 그의 무릎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시점(2014년)에서 박지성은 과거에 뛰었던 PSV로 임대간 신분이기 때문에 소속팀 기여에 대한 큰 부담이 없으며(과거의 기여도로 충분히 대우받을 수 있는 상황) 그의 무릎이 부담될 만큼 경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맨유시절에 비하여) A매치나 최종예선으로 통한 경기가 부담이었다면, 월드컵 본선(최소 3경기, 토너먼트 진출하면 그 이상)이 그렇게 부담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곧 장가도 가게 되면 경기외적으로 안정도 찾게 될 것이며, 모든걸 갖춘(현역 선수로서의 커리어) 상황에서 예전보다는 선택의 폭(월드컵 참가 or 불참)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박지성이 은퇴무대로 생각했던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은 일본과의 4강전에서 PK로 패해 3위에 머물렀는데, 이영표는 공식 은퇴한 상황이었고, 박지성은 비공식(인터뷰로만)으로 아시안컵을 우승하고 은퇴하겠다고 했는데, 우승을 하지 못했기에 그냥 은퇴하는걸 아쉬워 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지단과 피구는 적어도 월드컵 개최 1여년전 최종예선을 시작으로 복귀한데 비하여 지금 같은 경우 월드컵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아 복귀시점이 이미 지났다고 보는 팬들도 많으며 그리고 후배 양성을 위해서 복귀 안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팬들도 많다.

그러던 중, 홍명보 감독이 복귀의사를 물어보겠다는 기사가 떴다.#

하지만 박지성은 이미 수차례 밝혔듯이 대표팀 복귀는 없다고 확실하게 못박았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이 직접 네덜란드에 가서 박지성과 진솔하게 대화를 한 결과, 우리가 예상한 것 보다 무릎 상태가 심각하다라며 복귀는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8. 기록[편집]

8.1. 프로 통산[편집]

시즌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74]

-

-

경기

경기

경기

-

-

-

-

-

-

2000[75]

교토 퍼플 상가

J리그 디비전 1

13

1

1

0

2

0

-

-

2001

J리그 디비전 2

38

3

1

0

1

0

2002

J리그 디비전 1

13

4

4

1

0

0

시즌

소속 리그

리그

암스텔컵

슈퍼컵[76]

UEFA컵

챔피언스리그

경기

경기

경기

경기

도움

경기

도움

02-03[77]

PSV 아인트호벤

에레디비시

8

0

0

0

-

-

-

-

-

-

-

-

03-04

28

6

1

0

1

0

5

0

-

5

0

-

04-05

28

7

3

2

-

-

-

-

-

13

2

-

시즌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챔피언스리그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05-06[7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34

1

7

2

0

0

3

1

0

6

0

0

06-07

14

5

2

5

0

0

0

0

0

1

0

0

07-08

12

1

1

2

0

0

0

0

0

4

0

0

08-09

25

2

2

3

1

0

1

0

0

9

1

0

09-10

17

3

1

0

0

0

2

0

0

6

1

0

10-11

15

5

3

1

0

0

2

2

1

9

1

1

11-12

17

2

1

1

1

0

3

0

3

4

0

0

12-13[79]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

0

3

3

0

0

2

0

1

-

-

-

시즌

소속 리그

리그

암스텔컵

유로파리그

챔피언스리그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13-14[80]

PSV 아인트호벤

에레디비시

23

2

5

0

0

0

2

0

0

2

0

0

8.2. 국가대표 통산 득점[편집]

통산

일시

장소

대회

상대국가

득점원

도움

결과

1호

2000, 6/7

아자디 스타디움

LG컵 4개국 친선대회

마케도니아

왼발

없음

2:1 승

2호

2002, 5/21

제주월드컵경기장

친선경기

잉글랜드

헤딩

최진철

1:1 무

3호

2002, 5/26

수원월드컵경기장

친선경기

프랑스

왼발

김남일

2:3 패

4호

2002, 6/14

인천월드컵경기장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투갈

왼발

이영표

1:0 승

5호

2005, 6/8

카즈마 경기장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

쿠웨이트

오른발

김동진

4:0 승

6호

2006, 6/18

레드불 아레나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프랑스

오른발

조재진

1:1 무

7호

2008, 2/6

서울월드컵경기장

남아공 월드컵 3차예선

투르크메니스탄

오른발

박주영

4:0 승

8호

2008, 5/31

서울월드컵경기장

남아공 월드컵 3차예선

요르단

오른발

이청용

2:2 무

9호

2008, 10/15

서울월드컵경기장

남아공 월드컵 3차예선

UAE

오른발

없음

4:1 승

10호

2009, 2/11

아자디 스타디움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

헤딩

없음

1:1 무

11호

2009, 6/17

서울월드컵경기장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

왼발

이근호

1:1 무

12호

2010, 5/24

사이타마 스타디움

친선경기

일본

오른발

없음

2:0 승

13호

2010, 6/12

포트엘리자베스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그리스

왼발

없음

2:0 승

9. 은퇴와 그 이후[편집]

2014년 5월 14일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더 이상 무릎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2015년 6월까지 QPR과 계약이 되어있지만 은퇴하기로 결정했으며, 2014년 7월 27일 김민지 아나운서와 결혼식을 갖는다고 한다.
6월 6일 제주도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5월 24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경남 FCPSV 아인트호벤과의 친선전이 프로선수 박지성으로서는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이로써 박지성은 1991년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한 24년 간의 축구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맨유, PSV, QPR, FIFA 홈페이지에서 그의 은퇴 소식을 비중있게 전했으며 특히 맨유는 헌정영상을 제작하여 홈페이지에 올렸다.

동년 6월,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상가 FC의 클럽 창단 20주년 경기에 출전한 뒤 은퇴식을 가졌고, 7월에는 K리그 올스타 vs 박지성 올스타로 이뤄진 K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다.

2014년 9월 30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페이지에 박지성과 라이언 긱스에 관련된 흥분되는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이니 채널을 고정해 달라는 메세지가 올라왔다. 이에 팬들은 박지성이 엠버서더로 임명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맨유 엠버서더란 전 세계를 돌며 맨유를 홍보하는 사람으로, 구단이 공식으로 인정하는 레전드 선수를 의미한다. 그간의 맨유 엠버서더에는 보비 찰튼을 비롯해 데니스 로, 브라이언 롭슨, 앤드루 콜, 알렉스 퍼거슨, 개리 네빌, 피터 슈마이켈이 있었다. 2014년 10월 9일 SBS 풋볼매거진 골 방송을 통해 그가 8번째 맨유 엠버서더라고 밝혔다. 맨유 앰배서더로 임명 될 경우, 비유럽 국가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맨유 앰버서더가 되는 것이다.

엠버서더가 되기 위해서는 맨유 내에서 400경기[81] 이상 출전하거나 100골[82] 이상을 기록해야 자격이 주어진다는 정책에 따라서 박지성은 자격이 될 수 없지만, 맨유에 마케팅수단이 아닌 미드필드 전력보충을 위해 영입된 아시아인 선수로 맹활약하여 커다란 팀 공헌도에 기여한 것이 위촉의 이유인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엠버서더가 되기위한 400경기-100골 기준은 잘못 해석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일단 전자는 성골 유스나 종신 키퍼가 아니면 못하고, 후자도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이상 못한다이 기준에 대한 기사나 게시물에서 근거로 드는 것은 맨유 공식 웹사이트에 나와있는 레전드 항목#인데, 이것은 맨유 공홈 관리자가 웹사이트를 꾸밀 때 이 항목에 게시할 만한 대표적인 레전드를 추려낸 자의적 혹은 여태까지 맨유 레전드로 선정된 선수들의 공통점을 기준으로 작성한 가능성이 높고, 레전드와 비(非)레전드를 나누는 공식적인 기준이 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레전드라는 것은 메이저리그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처럼 어떤 기준을 통해 선발되는 것이 아니라 인상적인 활약으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선수들에 대한 일반적인 경칭일 뿐[83]그래도 결국 없는걸?[84]인데, '레전드 기준'이라는 게 있다는 섣부른 확대해석 때문에 박지성이 레전드냐 아니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확실한 것은 박지성이 기록적으로써 맨유의 레전드이건 아니건 맨유 구단과 팬들이 박지성을 7년간 맨유의 일원으로써 이루어낸 업적에 대한 공헌을 인정함과 동시에 팬들과 구단관계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아온 선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10월 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박지성을 맨유의 엠버서더로 임명했음을 공식발표했다. 계약기간은 다년. 다년간 전세계에서 개최되는 맨유 공식행사에 참여하게 되며, 연봉 개념으로 활동비 1억 5천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로써 박지성은 맨유 역사상 8번째이자 비유럽권 및 아시아인 최초의 맨유 엠버서더가 되었다. 드디어 실업자신세 끝났다. 민지야 오빠 일자리 구했어~!![85]

엠버서더 위촉식은 프리미어리그 7라운드 에버턴 전에서 경기 시작 전에 홈팬들 앞에서 행해지며, 박지성의 스승이기도 한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이 직접 위촉한다고 한다. 그리고 현지팬들은 깨알같이 개고기송을 불러주며 새로운 엠버서더 위촉식을 축하해줬다. 차라리 Don't sell my Park, my Ji-Sung Park 해주지.....



2015년 6월 14일, 맨유와 뮌헨의 레전드 매치에 맨유 레전드로 선발 출장하였다.

2015년 11월 15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리는 영국 연방팀과 세계 올스타가 맞붙는 유니세프 자선경기에 '세계 올스타' 소속으로 풀타임 출전했다.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존 테리 등이 포함된 영연방팀의 수장은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이며,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이끄는 세계 올스타는 반 데 사르, 카푸, 파트리크 비에이라, 로베르 피레스,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호나우지뉴 등의 화려한 선수들로 구성되었다.[86]

2016년 3월 FIFA의 마스터 코스에 합격, 본격적인 행정가 수업을 받을 계획이다.

9.1. 석사 과정[편집]

2016년 9월 22일 영국 드몽포트대 스포츠 매니지먼트 전공 석사 과정을 시작한다.
파일:박지성 영국 드몽포르대 스포츠 매니지먼트 전공 석사 과정 신입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jpg
영국 드몽포트대 스포츠 매니지먼트 전공 석사 과정 신입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는 영국 공영방송 BBC에도 영국 레스터에 위치한 드몽포트대에서 국제 스포츠 매니지먼트와 법률 및 인문학 석사 과정을 공부할 예정이라고 보도되었다.

박지성은 이에 대해 "한 동료가 (이곳에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며 "축구장 안팎에서 지식을 향상시키고 싶었다. 이후엔 어쩌면 한국 축구리그를 위해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드몽포르대 홈페이지에 말을 남겼다.

그리고 학교 축구 경기에 출장했다는 #트윗이 올라왔다. 양민학살 아닌가요 과대항전 나갔더니 상대편에 맨유 레전드가 있네...
하지만 팀은 7-1로 졌다고 한다(...)어디서 많이 본 점수다

10. 박지성 팬들[편집]

10.1. 언론[편집]

그가 맨유로 가면서 네이버 댓글란에 매뉴판들과 박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스포츠 기자가 유명 축구 선수와 인터뷰를 하면 괜히 인터뷰에 안 맞게 박지성에 대해 줄창 물어봐 대답하는 사람을 곤란하게 하고 그걸 보는 한국 사람들을 민망하게 만든다.
됐어! 이젠 김치불고기 말고도 물어볼 게 생겼어! 이 뒤를 어떤 가수자기 노래로 이었다더라

게다가 기자들의 단골 낚시 사용 소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박지성 맨유 달력에서 1월달 모델'이라는 기사를 들여다 보면 맨유 아시아 발매판 달력이라는걸 알 수 있으며 '박지성, 퍼거슨에게 맨유에서 꼭 필요한 선수로 정해져'라는 기사를 보면 십중팔구 나니, 긱스, 호날두, 박지성, 하그리브스 이런 식으로 묶어서 발언한 것이다...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행태를 보고 그러려니 하지만 박빠들은 이 제목에 환호한다. 박지성의 영향인지 스포츠 기자들도 맨유 위주로 기사를 쓰는 듯.[87]

하지만 인터뷰를 하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박지성은 기자들 사이에서 인터뷰하기 까다로운 선수로 꼽히며, 기껏 인터뷰를 해도 "특별히 없다."라는 답변이 인터뷰 절반을 차지해 인터뷰를 밋밋하게 만든다. 거기다 "~때문에"라는 말을 정말 많이 사용한다.[88] 이 버릇을 CF에 그대로 가져가 쓰기까지 했다! OOO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부족한 화술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그의 부친 박성종씨가 대변인격으로 언론에 자주 노출된다.

결국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SBS에서는 박지성을 방송위원으로 초빙하여 박지성의 때문에라는 코너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굳이 빠는 아니라도 한국을 대표한다고 여기는지 스포츠 기자들이 오버할 때도 있다. 유로 2008 당시, 현지 취재를 하던 월간 베스트 일레븐 기사에 의하면 당시 현지에서 만난 은퇴하여 이젠 유럽 구단에서 스카우터라든지 지도자같이 관계자로 일하는 유럽 축구 스타들과 인터뷰할 때 하던 소리가 "당신도 박지성에 대하여 묻는거라면 대답 안 하겠다. 내가 무슨 프리미어리그와 맨유 경기만 보는 게 아니다."였는데...다짜고짜 이런 말을 한 게, 한국인 기자라면 죄다 박지성 아느냐? 경기를 봤느냐? 그를 어찌 생각하느냐? 너무 지겹게 물어봐서였다고 한다...

10.2. 축구관련 커뮤니티의 박빠들[편집]

축구관련 커뮤니티에서 "박빠"란 박지성에 대한 지나친 사랑으로 객관성을 상실한 무개념 부류를 일컫는 말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박지성이 입단한 이후 그 수가 급격히 늘었다. 그들의 특징이라면 PSV 아인트호벤에 있을 무렵 박지성이 팀 최고의 에이스였다고 주장하며[89], 박지성에 대한 행동 하나하나에 매우 큰 관심을 갖는다. 아무런 통계도 없이 그냥 자신들이 보기에 박지성에게 패스 안하는 선수들을 찍어놓고 신나게 까며, 그렇게 까다가도 박지성하고 골을 합작하고 끌어안기라도 하면 급반전돼서 추앙받는다.(폴 스콜스)

박지성의 포지션 경쟁자들을 부모의 원수 보듯 미워하며 05/06 때는 호날두와 긱스, 리차드슨, 플레처를 깠으나 긱스가 회춘하고 호날두가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성장하자 그들은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

리차드슨의 이적과 플레처가 중앙 미들로 거의 굳어지면서 그들에 대한 까임도 거의 사라졌지만 나니의 경우는 여전히 까이고 있다. 나니도 10/11시즌 들어 EPL 최고의 윙어로 성장하자 그에 대한 까임도 많이 줄어들었다.

알렉스 퍼거슨 경에 대한 극단적인 태도 또한 특징. 그를 출전시키면 유럽 최고의 명감독이 되고, 그를 출전시키지 않으면 노망난 영감, 인종차별주의자가 된다. 07/08 챔스 결승전에 박지성이 결장한 것은 퍼거슨 감독도 스스로 힘든 결정이었다고 했으며, 그가 밝힌 결장의 이유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었지만 박빠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지성이 나오면 맨유 응원, 박지성이 나오지 않으면 그의 중요함을 알게 하기 위해 맨유 상대편을 응원하는 태도와 그와의 관계에 따라 선수들과 감독을 심하게 까는 행위 때문에 기존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무척 싫어한다.

11. 트리비아[편집]

  • 2014년 결혼 이후 축구 행정가 공부를 위해 영국유학을 떠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수원공고 시절 막 창단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볼보이를 하면서 "난 언제 저기서 뛰어보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 생각은 지금에 와선 아무래도 상관없는게 되어버렸다...

  • 나이키에서 출시한 박지성의 축구화인 JS PARK TIEMPO LEGEND의 프로모션을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데 만들긴 잘 만들었지만 보기 민망하다는 견해가 많다.

  • 쉬는 날에는 위닝일레븐을 즐겨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처음엔 맨유 동료들에게 영미 버전 위닝인 프로 에볼루션 사커로 붙어서 관광 당했으나 위닝으로 갈아타자마자 역으로 팀 동료들을 관광시켰다.그렇다 박지성도 사이버전투민족 패시브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적 초기에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뤼트 판 니스텔로이(반니)와 에드윈 판 데르 사르, 루이 사하와 친했으나 반니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버리자 할 일 없는 박까들이 박지성 왕따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가장 친한 친구는 파트리스 에브라카를로스 테베즈로 서로가 인터뷰에서 밝혔으며 셋이 같이 찍은 사진이 많다. 박까들은 백인들이랑 못 친해지고 유색인종들끼리 논다고 까고 있다. 백인이랑 친하면 인종차별이라 깔거면서? 사실 박지성이 뭔 짓을해도 욕한다 카더라

  • 2002년 월드컵 4강으로 병역 특례를 받은 뒤 맹호부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 가운데 사격에서 만점을 기록, '사격왕' 메달을 수여 받기도 했다. 주간·야간·영점 사격 등 세 분야로 실시된 사격훈련에서 150명의 훈련병 中, 그는 주간과 야간에서 만점을 받았으며 특히 과녁조준에 대한 정교함 및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영점사격에서는 다른 두명의 만점 훈련병들을 제치고 당당히 사격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 한국 언론에는 그다지 소개되지 않지만 친한 일본 선수들이 꽤 있다. 비시즌 중에 곧잘 일본으로 놀러가는 모양. 박지성이 휴식차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 절친으로 알려져있는 일본축구의 전설 미우라 카즈요시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박지성을 보러 한국에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박지성한테 만나러가도 되는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더니 '응? 지금 다들 모여있는거야? 기다려, 내가 당장 갈게!'라는 말을 남기곤, 다음날 아침 나리타 공항에서 선물을 한웅큼 끌어안고는 '나 여깄어~'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다들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는 사람이 그리도 반갑게 찾아오는걸 보고서 굉장히 감동했다고. 그 이외에도 교토 시절 같이 뛰었던 마츠이 다이스케와는 그의 부인과도 친할 정도로 절친한 관계.[90][91] 상술했듯이 교토에서 대활약을 했던 경력도 있어서 2ch의 혐한들도 박지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편. 그대신 친일파니, 일본이 키웠다느니 등등의 드립을 치긴 하지만 지금이야 박지성이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온 상황이라 그렇게 많이 언급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디스의 강도는 이청용과 더불어 타 한국 축구 선수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 디시인사이드 해외축구 갤러리에서는 박지성의 일거수일투족을 별명으로 만들어 부르기도 한다. 별명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 들어가는게 포인트. 수비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 수비성, 넘어졌다 → 자빠지성, 패스했다 → 패스성, 반칙했다 → 반칙성, 선발 엔트리에 없다 → 벤치성, 후보 명단에도 없다 → 없성, 부상으로 쓰러져있다 → 아팠성, 골을 넣었지만 주워서 넣었다 → 줍지성. 양복을 입은 채로 결승을 관람했다(07/08챔스) → 양복성, 포지션에 따라 → 우지성, 중앙성, 좌지발음 조심하자등이 있다. 09/10 시즌에는 맨날 벤치신세라고 '의자왕'이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10/11 시즌에는 맨유 입단 때부터 칼링컵에 출전하면 날아다니는 그에게 박칼링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11/12시즌에는 결장이 잦아 쩌리팍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은퇴후에는 해버지(해외축구+아버지)라 부르며 찬양하고있다. 물론 과도한 찬양도 있는만큼 반발로인해 벤치성 드립도 많다. 과도한 찬양을 풍자하기위해 펠레, 마라도나 등 전세계적으로 역사에 남을 축구선수들과 비교해서 박지성이 비기거나 승리하는 우스개 글이 유행하기도 했다.[92] 해외파 선수들의 경기력이 별로면 박지성 하이라이트를 올린뒤에 비교하며 '해버지 실력좀 봐라' 이런식의 글을 많이 올렸지만 은퇴한지 꽤 지난 최근에는 가끔씩 올라오는 편이다. 여러모로 한국 축구사의 거인이라고 볼 수밖에.

  • 한때 MBC ESPN의 초강력한 밥줄...이었으나 프리미어리그 중계가 2009년부터 SBS 스포츠로 넘어가게 되어 이후에는 한동안 SBS ESPN의 초강력 밥줄(…)이었다. 물론 이청용의 해외진출로 인해 이청용의 경기도 중계해주지만 같은 날 동시에 경기할 경우 맨유의 경기를 먼저 틀어주는 등 아직까지는 박지성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그래도 아직은 박지성이죠 손흥민토트넘으로 이적했으니 이제 제한토?

http://www.wsgvet.com/data/file/gif/3730941267_FREjSAzi_jsp.gif

아시아의 자존심.

  • K리그 팀들의 안목을 깔 때 예시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박지성을 영입한 교토 때문에 J리그보다 안목이 없다며 대차게 까이기도.[93]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지만 탈락했으며 당시 수원의 스카우터이던 정규풍 씨는[94] 당시 박지성의 피지컬이 타 선수들에 비해 약해서 크게 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서 영입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당시 박지성의 피지컬이 같은 세대의 한국 선수들에 비해 밀렸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나중에 K리그보다 피지컬, 압박, 미친 일정탓에 체력 소모가 더욱 심한 프리미어 리그 + 유럽 대항전에서도 잘 적응 해낸 것을 보면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고졸 상태에선 대학을 마친 다른 신인들과 달리 프로 데뷔가 힘들다는 이상한 제도 탓도 있다. 게다가 이 때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고종수, 서정원, 데니스, 샤샤, 박건하, 김진우 등이 포진하여 슈퍼컵, 대한화재컵, 아디다스컵에 이어 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던 K리그 역대 최강급 스쿼드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당시 박지성의 입지로는 발붙일래야 발붙일 수가 없었다.# K리그에서 선택받지 못한 박지성에서 J리그에서 오퍼가 들어왔던 것도 피지컬보다는 테크닉을 중시하는 J리그의 스타일이 반영된 결과이다. 아무래도 수원공고에서 당시 J리그에서 막 은퇴한 이종학 감독에 의해 성장되었으니, 그러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 사실 K리그에서 박지성을 아예 안 뽑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당시 수많은 선수들이 그랬듯, 대학을 거쳐 오는게 관례였고 박지성은 그런 대세를 뚫고 혁신적인 시도를 했던 것, 하지만 아시다시피 결과는 실패였다. 사실 명지대 입학 우여곡절도 대학 진학을 알아봐야 할 시기에 프로팀 입단테스트를 보느라 대학들이 이미 선수들을 다 선발한 뒤였기 때문에 그랬을수도... 당시 고교 졸업후 진학하는 경우는 고종수, 이동국과 같이 고교레벨 탑선수들이나 가능했었고 박지성은 그당시 그렇게 고교레벨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도 아니였고 모교였던 수원공고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거둔 적도 없었기 때문에 영입할 이유가 없었다고 보는게 맞다. 고교레벨 탑선수를 영입해도 프로에 와서 실패하는 선수들이 많은데[95] 고교레벨에서도 탑레벨이 아닌 선수를 영입할 프로팀이 어디있을까? 또한 대학 진학때도 명지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축구계에서 그리 잘하는 팀이 아닐뿐더러 그런 학교에 축구부도 아닌 테니스부 T.O를 얻어 겨우 입학한 것만 봐도 그당시 박지성의 입지나 실력이 어땠는지 짐작케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K리그가 선수 보는 안목이 없어서 J리그에 박지성을 내줬다는 얘기도 오류가 있는 것이, 당시 박지성의 프로 데뷔 연봉이 무려 5천만엔(한화 5억)이다. 올대에서 활약을 보이니 교토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한 듯 보이며 당시 J리그에서도 꽤나 높은 연봉이었을 것이다. 2004년 J리그 연봉 통계 자료 김정우가 2012년 전북과 맺었던 15억의 연봉 계약이 리그 역대 최고액이였고, 전설적인 외인 공격수로 평가되는 데얀이 FC 서울에게 받았던 연봉도 10억이 약간 되지 않았다. 이들도 리그 최고의 기량에 리그 최고의 부자팀에서 뛰었으니까 이 정도다. 그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 K리그에서도 5억이면 시민 구단은 줄 수도 없고 기업 구단이라도 핵심 멤버들이나 받는 금액이다. 당시 신인들한테 줄수 있는 최고 연봉이 5천만원이었던걸 감안하면 머니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올대 이후엔 영입을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이다.

  • 일부에서는 K리그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못했으므로 K리그가 박지성을 버린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데 박지성은 드래프트 신청 자체를 안했다. 수원 입단이 좌절되자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다른 구단에 가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뒤늦게 대학 진학을 택한 것이다.

  • 종교불교이며, 부모화성시 용주사를 자주 다녔고 할아버지49재도 용주사에서 지냈기 때문에 용주사에 개인적으로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한다.이 위치한 곳이 송산동이라 송산동과 안용중학교는 한국축구에 있어서 중요한 지역과 학교가 아니냐는 설레발도 나오게 되었다. 2005년에는 조계종 불자대상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이영표가 박지성을 개신교개종시킨다는 말을 토트넘 핫스퍼 시절에 인터뷰로 말했던 적도 있다. 축구선수가 아니라 선교사.[96]

  • 여담으로 한국 - 라이베리아 유명 혼혈인 심제프도 박지성의 팬이라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같은 한국인의 피가 흘러서라고(...)...

  • 2012년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의 이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이 울적하게 되었다. 퀸즈 파크의 저지에 찍혀있는 기업이 QPR의 구단주 중 하나인 토니 페르난데스 소유의 에어아시아인데, 박지성을 홍보대사로 2013년 4월까지 계약한 아시아나 측은 경쟁사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 사진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겉으론 국위선양에 이바지했으므로 계약기한까지 박지성을 모델로 쓰겠다는 방침을 보여줬다. 그래서, 상기한 이나모리 가즈오 前 교세라 회장이 일본항공 회장에 취임한 것까지 합치면, 3개 항공사를 쥐락펴락한 마성의 남자란 소리도 나올뻔 했다는 평가도 있다.

  • 동명이인으로 축구계에 몸담고 있는 1984년 박지성도 있다. 중학교 졸업 후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났을 정도로 열의에 찬 인물이었지만 박지성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온갖 불운을 다 겪어야 했고[97] 심지어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떨어지며 프로 무대조차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채 아마추어와 실업 무대를 전전하다 은퇴한 비운의 인물. 지도자로 선회한 이후에도 불운은 끊이지 않아 지방의 한 축구교실로부터 봉급을 떼먹히는 등 온갖 수난을 겪다가 서울 둔촌중학교 축구부 코치로 가까스로 자리잡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칼럼을 참고하자. '동명이인' 박지성으로 한국 축구계에서 산다는 것.

  • 서양에서는 유해진과 닮았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심지어 평발인 것도 똑같다.

  • 2015년 5월 23일, 2세가 생긴 소식을 전했다! 5월 23일 기준으로 임신 4개월째라고 한다. 태명은 만두.

  • 2015년 11월 득녀하였다. 이름은 연우.

  • 모국어인 국어를 비롯해, 일어영어, 네덜란드어까지 4개국어 구사가 가능하다. 3개국어. 네덜란드어 못한다고, 어렵다고 인터뷰까지 했다. https://youtu.be/_TMRY7k36NQ?t=1m56s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2016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때 배성재, 박문성과 함께 SBS 해설위원으로 등장했다. 방송 도중 언급된 바로는, 호날두와 같이 뛸 때 "로니"라고 불렀다고.

11.1. 응원가[편집]


첫번째는 PSV 아인트호벤 시절 박지성의 찬트인 'Song for Park'. 일명 '위숭빠레(위숭빠르크)' 가사 내용은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에서 온 오른쪽 미드필더 골 머신, 위! 숭! 빠레~ 박지성이 PSV 아인트호벤으로 돌아옴에 따라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두번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시절 찬트인 'Park, Park, Wherever You May Be'. 대략 '한국에선 개고기를 먹지만 그게 뭐 대수냐, 리버풀 임대 주택가에선 쥐고기를 먹는데'라는 내용이다.지역드립인종차별을 응원가 한큐에 저지르는 대단한 맨튜니언들 못살기로 유명한 리버풀을 까는 내용이라지만 한국 사람이 들으면 다소 불쾌할 만도 하다. 참고로 볼튼 원더러스에 입단한 이청용의 응원가도 개고기송.


세번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시절 2010년 들어 유행한 'Don't Sell My Park'. 개고기송이 그를 응원하기보다는 리버풀을 공격하는 내용이었던 것과는 달리, "지성을 팔지 말라, 그를 팔면 우리가 폭동을 일으킬거다" 하는 여전히 과격하긴 하지만 선수를 응원하는 내용에 멜로디도 익히기 쉬워서 국내 반응이 좋았다.

11.2. 예능 출연[편집]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지성의 활약상을 담은 항목으로 해당 프로그램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다. 2013년 말까지는 런닝맨에만 2회 출연했고 런닝맨에 세번째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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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2012년 런닝맨[편집]

2012년 5월 20일~6월 4일까지 태국에서 열리는 아시안 드림컵 홍보를 위해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처음에는 런닝맨 멤버들에게 미션만 나눠주는 정도로 출연하는가 싶더니 런닝맨 멤버들을 JS파운데이션 운동장으로 불러내고 직접 출연해 멤버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추가 게스트인 아이유까지 들어와 '초능력 축구'및 기타 미션을 2일간 진행하였다.

초능력 축구에서부터 생각보다 괜찮은 예능감을 보이기도 했는데, 기린이 능력을 써서 시간을 멈춘 사이그리고 호랑이를 잡는 동안 골대 앞까지 공을 끌고가서 누워서 골을 넣는 능욕을 선보였다. 물론 선수 숫자 2:7의 패널티를 씹어먹는 축구 실력으로도 멤버들을 농락했다.

다음날 진행된 이름표 뜯기에선 스파이가 되어 미션 중에 얻은 태국 화폐로 런닝맨 멤버 1명을 파트너로 고용할 수 있었고, 유재석을 고용해 쏠쏠하게 써먹었다. 맴버들 스스로 내분을 일으켜 아웃시키고, 유재석을 활용해 이광수를 아웃시키고, 유재석을 끝까지 믿은 김종국도 유재석에 의해 아웃. 마지막에 남은 아이유는 유재석과 둘이서 연극을 해서 방심시킨 후 아웃시켜서 최종 승리했다. 그리고 우승자 특권으로 런닝맨 멤버 전원을 태국으로 초청했다.

태국에 도착한 후 스케쥴 사정으로 귀국하게 된 유재석을 대신해 1일 MC로 활약하기도 했다. 멤버들과 제작진이 많이 도와 준 점을 감안하더라도 꽤 깔끔한 진행이다. 뱀발로 방송 중 팔뚝에 검은 줄무늬가 찍혀 혹시 '팔에 문신을 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이 이 떡밥으로 물고 늘어졌지만, 다음 방송에서 그 정체가 밝혀졌다. 싱겁게도 그냥 싸인하다 매직이 팔뚝에 묻은 거였다.[98] 우정 출연으로 리오 퍼디난드정대세가 출연하였고 아시안 드림컵 경기중엔 골 찬스를 놓친 크리스티아누 호랑이를 혼내는 등 적절한 예능감을 보여줬다.

11.2.2. 2013년 런닝맨[편집]

2013년 6월 30일~7월 14일 1년만에 다시 런닝맨에 출연하여 여전히 살아있는 입담을 과시했다. 특히 촬영 전날에 김민지 SBS 아나운서와의 열애설이 터졌던터라 그쪽으로 관심이 많이 쏠렸고, 본인도 "SBS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등 능글맞게 대처했다. 하지만 그 직후 상대편 주장으로 출연한 구자철에게 관심이 쏠리자 씁쓸하게 바라보고, 옆에서 구자철 보겠다고 카메라 가리는 국민MC에게 핀잔을 주는 등 방송분량은 적절하게 뽑아내고 있다.그리고 같이 출연한 설리는 작년 아이유 포지션인 것 같지만 그냥 병풍이 되었다.(하지만 오프닝 복장은...) 이번에도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안 드림컵 홍보일환으로 참가였고, 런닝맨 멤버들도 런닝맨 방송에서 진행되는 게임을 통해 4명까지 선발되어 경기에 참여하게 된다.

7월 7일 방영분 첫 게임인 족구에선 축구선수 클래스를 발휘해 미스 없이 공수 전반에서 활약. 다른 남자 멤버인 유재석, 하하, 개리가 후반까지는 무난하게 활약해주었으나 막판에 실수가 겹치면서 아쉽게 패배. 두번째는 식당에서 알람토크[99]를 진행하면서 열애설과 국가대표팀 복귀 등등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마지막 이름표 뜯기 레이스에선 공을 차서 패널에 달린 이름표를 달아야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는데, 상대편의 이광수, 구자철, 김종국에게 큰 이름표를 선사해 게임을 나름 유리하게 가져갔다. 본인은 다른 멤버들 이름표 다 달아주고 마지막에 입장했고, 구자철과 막판에 서로 이름표를 뜯기 위한 수컷의 몸싸움을 보여주었다. 결국 송지효가 아웃되면서 박지성팀이 우승하고 상하이로 넘어가게 된다.

7월 14일에는 우정 출연으로 박지성의 절친인 파트리스 에브라가 출연했다. 등장하면서 에브라가 "노 바보입니다"라고 했는데, 예전에 박지성이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에브라에게 한국말로 장난친게 있었다고 한다.[100] 에브라의 예능감도 대단해서 박지성과 미션으로 치열하게 방송분량을 뽑는 등 꽤 활약해주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시안 드림컵에서는 선수 겸 감독으로 경기를 지휘했고, 특히 경기 중에 프리킥 실수를 한 이광수에게 킥을 날리는 등 방송에 쓸만한 장면을 여럿 만들기도 했다.

11.2.3. 2014년 런닝맨[편집]

이쯤되면 런닝맨의 연례행사라 할 수 있겠다. 2014년 6월 8일부터 6월 15일까지 출연했으며 역시 런닝맨의 인도네시아 에서 있을 아시안 드림컵 참여와 홍보를 위해 나왔다. 하지만 김종국의 방향잃은 헛다리, 이광수는 키만 컸지 헤딩은 불가능하고 유재석은 페널티킥을 실축 하는 등 런닝맨 멤버들이 지난 두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에 결국 몇가지 수련[101]의 과정을 겪게된다. 더군다나 방송에 나왔을 쯤 에는 프로 은퇴를 선언 한 후 라서 뭐 런닝맨 멤버들도 이미 두번이나 봤겠다 별로 신기해 하지도 않고 오히려 지석진은 박지성을 막 대한다.

6월 8일 방송분의 첫번째 수련은 목동 SBS 사옥 에 있었고 멤버들이 미션을 수행하고 다 끝낼 때 까지 혼자서 미션을 수행하는 거 였다. 이를테면 처음엔 멤버들이 다른 색깔의 옷을 겹치지 않게 빌려입는 동안 박지성은 제기차기 하는 거지만 박지성이 실패했고 두번째는 멤버들이 초성 'ㅁㅈ'로 시작하는 물건을 갖고오는 동안 박지성은 줄넘기를 해야했지만 역시 박지성이 실패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멤버들이 각각 다른 나이대 분들을 모셔와야 하는 거고 박지성은 그동안 축구공 리프팅을 해야 했는데 이건 성공한다. [102] 그리고 두번째 수련은 사옥 야외에서 박지성이 차 안에다 공을 차서 넣는건데 이것도 쉽게 성공, 그리고 세번째엔 논두렁에 가서 릴레이를 했다. 네번째엔 차범근이 나와서 런닝맨 멤버들에게 축구 기본기를 가르쳐 줬고 그리고 마지막엔 설기현이 감독하는 축구 좀 하는 아이돌[103] 들이 나와서 런닝맨 멤버들과 풋살을 했고 [104] 여기서 런닝맨이 5골을 먹으며 털렸지만 박지성이 나오니 한골을 어시스트 하고 두골을 혼자서 넣으며 아마추어와 프로의 갭 차이를 명확히 보여줬다.

6월 15일 방송은 인도네시아에 간 것 부터 시작해서 바로 자선경기로 넘어갔다. 이 자선경기에는 이탈리아 국가대표 주전 풀백 이었던 잠브로타와 현재 AC밀란에서 뛰고있는 스테판 엘 샤라위[105]가 나왔고 이광수가 선발로 뛰었다. 박지성을 포함한 런닝맨 멤버들에게는 경기를 뛰면서 할 만한 미션이 주어졌고 박지성 에겐 해트트릭 [106], 유재석, 개리, 김종국, 하하, 이광수는 지난 두 경기에서 뛰어 본 경험이 있기에 공격포인트 1점을 기록하고 그리고 첫 출전하는 지석진송지효는 볼터치 다섯번을 해야했다. 미션을 실패하는 사람들은 벌칙을 받아야 했다.

http://img.yonhapnews.co.kr/etc/inner/KR/2014/06/03/AKR20140603001700104_03_i.jpg

이광수는 선발로 뛰었지만 공이 가질 않았고, 결국 그가 뛰었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의 활약만 펼치고 벤치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후 지석진이 교체로 뛰게 됐는데 근데 지석진과 교체한 선수가 캡틴 지(Ji) 로 경기에 나섰고 솔직히 볼터치 5번 쉬울 줄 알았지만 딱 한번 했고 그것도 실점 후 중앙에서 시작 할 때. 만지자 마자 전반이 끝났다.

후반에는 박지성, 유재석, 김종국, 개리, 하하 그리고 차범근 까지 다 출전했고 전 해, 전전 해 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다.[107] 그렇지만 미션 자체는 모두 다 실패했고 결국 전부 다 벌칙을 받게 됐다.애초에 미션 자체가 어려웠다.

벌칙은 다음날에 사파리 파크에 가서 미션을 수행하는 것 이었고 전날 축구와는 다르게 전부 다 성공한 모습을 보여줬고 더군다나 그 회는 런닝맨 200번째 에피소드 였고 쉽게 모시기 어려운 게스트와 같이 했다는 점 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후 런닝맨에서 4월에 수원에서 열린 JS컵 응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514

11.3. 떡밥[편집]

  • 가장 큰 떡밥은 역시 차범근 vs 박지성. 그 외에도 과연 누가 박지성의 부인이 될 것인가는 전국민의 관심사였다.

  • 런닝맨에 같이 출연했던 아이유와 친해졌는지 아이유의 전국투어 콘서트에 갔다. 콘서트중에 박지성 선수 왔다고 소개를 받았다. 장내는 남성들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다.


파일:attachment/박지성/캡틴박멘붕.png

  • 팀 내에서 유독 왼쪽 풀백들과 친하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다. PSV 시절에는 이영표, 맨유 시절에는 파트리스 에브라와 친했으며 QPR 이적 후에는 파비우가 항상 박지성을 따라다니는 중. 이중 에브라는 박지성과 같은 라인이면 풀백들이 편하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 안정환을 축알못(?)으로 만들어버린 적이 있다.마리텔 19회에서 안정환이 '솔샤르는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안정환의 말이 맞다'/'안정환 축알못이다'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에 대해 박지성은 '솔샤르는 공격수가 맞다'라고 단정내려서 졸지에 안정환을 축알못으로 인정해버렸다. 사실 이 논쟁은 포지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는 것이라서 안정환의 주장도 완전히 틀렸다고 보긴 힘들다. 박지성 본인 또한 결론을 내면서도 웃어 넘기는 수준이었다. 물론 네티즌들 사이에선 안정환은 축알못 확정이다.

11.3.1. 결혼 떡밥[편집]

  • 2011년 시점에서 30세, 즉 혼기에 들어선 나이이기 때문에 결혼설이 빈번한게 나온다. 여러 결혼설이 있으나 대부분 근거도 없는 풍문. 이젠 뭐 거의 스캔들메이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2008년 솔비와의 결혼설 : 전혀 사실 무근으로 솔비는 박지성과 만난 적도 없다고.

  • 2010년 일본의 배구선수 기무라 사오리와 열애설 : 이 보도의 근원지는 베트남의 스포츠 신문 인터넷판으로 박지성 선수의 아버지인 성종씨가 직접 라디오에서 근거 없는 소식임을 밝혔다. 박지성 본인도 "나보다 키가 큰 여자는 싫다."로 일축했다.

  • 2011년 허정무 감독의 둘째 딸 허은과의 결혼설 : 2년 전부터 교제해왔으며 결혼이 임박해왔다고 기사가 떴다. 박지성 측은 사실무근이라 부인하며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고 있다.

  • 박지성의 여자친구 문제는 영국 현지 언론에서도 떡밥거리였는지 해당 업계에서는 유명하다는 파파라치가 한달여 동안 몰래 따라다니며 취재를 했지만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했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성추문에 연루된 선수들이 나오면서 이런 곳에서 사고 한번 안 친 박지성을 칭찬했다.

  • 2012년 1월 11일 스포츠서울닷컴에서 재일동포 사업가 오지선씨와 열애사실을 특종으로 냈다.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는데, 기사내용도 틀린 부분이 많으며, 아버지 박성종씨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 본인도 심드렁한 반응을 나타내며 흐지부지해졌다.

  • 2012년 7월 14일, 배우 배두나와 스캔들이 터졌다. 한 네티즌이 '박지성과 배두나가 런던에서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가더라!'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이것이 퍼져 각종 매체에서 뉴스화까지 된 것. 배두나의 소속사는 처음엔 "두 사람은 아예 친분이 없다." "영국에서 만난 것은 친한 사진작가."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니, 하루가 지나자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사실이나 친구 사이일 뿐이다."라고 말을 바꿨다. 이젠 명실상부한 스캔들 메이커 박지성.

  • 김민지 아나운서와 열애설이 터지기 직전 배우 김사랑과 열애설이 터졌는데, 유포자에 대한 법적대응으로 갈뻔하다가 이 열애설이 나오면서 그냥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11.4. 결혼[편집]

  • 2013년 6월 19일 스포츠서울닷컴 보도를 통해 SBS 김민지 아나운서와 열애설이 터졌다!!# 결국 김민지는 사귀는게 맞다고 시인했다. 2013년 6월 20일에 박지성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민지와의 열애를 시인했지만 일각에서 제기한 7월 결혼설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은퇴전까진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 그리고 2013년 11월 12일, 드디어 결혼 기사가 떴다. 게다가 이미 상견례에서 결혼을 확정지었다고 한다!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는 구체적인 날짜는 미정이며, 13-14시즌이 끝나면 결혼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SBS 연예대상에서 김민지 아나운서가 시상소감을 말하는 중 프로포즈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돌렸는데, 이 청첩장이 호평을 받고있다. 심지어는 영국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 마침내 2015년 11월 19일 득녀하였다. 한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고 영국에서 출산했다고 한다.

12. 박지성에 대한 한마디[편집]

박지성은 아주 환상적이고 사랑스러운 선수이다. 그와 가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박지성과 한 팀에서 뛰고 있어 좋다. 그는 온 종일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체력을 가지고 있다. 경기 외적으로도 나의 좋은 친구이다. 그는 마치 전기(Electricity)와 같이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끊임없이 달리며 경기장을 누빈다. 나는 그와 함께 뛰는 것이 즐겁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박지성 선수와 여러 번 경기를 했죠. 챔피언스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월드컵의 한국 전에서 상대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아주 중요한 선수죠. 퍼거슨 감독이 좋아하는 선수고요. 한국 대표팀에서도 아주 중요한 선수입니다. 완벽한 선수라고 생각해요.”- 리오넬 메시

박지성은 어느 경기에 나가든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수이다. 에너지가 넘치고 현명한 플레이를 한다. 또 어떤 상황에도 눈에 띄는 플레이를 한다. 박지성이 상대 수비수들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서서 막아야 할지, 태클을 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해 한다. - 웨인 루니

가끔 그를 유령이라고 부른다. 박지성의 움직임의 변화는 정말 놀랍다. - 파트리스 에브라

PSV전에서는 등번호 7번의 한국인, Park ji sung이 신경쓰였다. 쭉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모기와 같은 인상이었다. 여기서 쫓아버려도, 그는 다른 곳에 나타난다. 언제나 달리고 있고, 돌파력도 있으며 항상 위험한 존재다. 어디서 그런 체력을 손에 넣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정말로 좋은 선수인 것 같고, 이탈리아 어느 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헌신'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와 타입이 비슷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헌신'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는 선수이다. - 젠나로 가투소

박지성은 좋은 윙 플레이어의 조건을 모두 갖춘 선수다. 움직임이 매우 좋고 다른 선수들을 독려한다. 부상으로 박지성이 빠져서 내 출전시간이 늘었다. - 라이언 긱스

박지성 같은 선수가 있기에 루니, 호날두와 같은 공격수들이 신경쓰지 않고 골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박지성이 맨유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 카를로스 테베즈

솔직히 놀라울 것도 없지 않은가. 그 같은 환상적인 플레이어가 맨체스터 같은 명문으로 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인지도 모른다. 퍼거슨은 그에게 감사하라. 박지성이 PSV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이제야 느낀다. 그의 공백이 너무 크다. - 필립 코쿠

나의 베스트 11을 뽑는다면 왼쪽 날개는 박지성이다. - 마르크 반 봄멜

그는 첼시에서 뛰고 있는 아르연 로번보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이다. 만약 2차전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 주인공은 박지성이 될 것이다. - 요한 크루이프[108]

마이클 오언을 영입했다면 좋은 옵션이 되었겠지만, 그보다 난 박지성을 원했다. 100% 확실한 선수다. 헌신적이고 훌륭한 축구선수다. 경기장 위에서의 지능이 좋다. 그것이 내가 그를 존중하고 기용하는 이유다. 그는 결코 우리에게 패배를 안겨주지 않는다. - 알렉스 퍼거슨

최후방에서부터 달려나가 상대 4백의 뒤를 잡는다. 상대는 그것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가 공이 없는 곳에서 보여주는 움직임은 특별한 것이었다. - 알렉스 퍼거슨

박지성의 가세로 우리는 더욱 거센 공격을 받을 것이고, 그는 잉글랜드 축구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 주제 무리뉴

박지성을 처음부터 막았더라면 경기를 더 쉽게 풀 수 있었을 것이다. - 게리 케이힐

동료 선수들 중에서 박지성의 실력을 저평가하는 선수는 한 명도 없다. 훈련 중에 박지성은 악몽 그 자체다. - 개리 네빌

박지성은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모두 다재다능하다. 비록 박지성은 팬들에게 돋보이는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는 아니더라도 그가 뛰는 모든 경기에서 우리 팀에게 굉장한 도움을 준다. -네마냐 비디치

당시 그는 한국 국가대표팀의 '아이콘'이었다. 경기 전 우리 팀 감독이 박지성의 수비에 대해 강조했던 기억이 뚜렷하다.90분 내내 그를 놓치지 말라는 지시가 팀 전원에게 떨어졌다. 그와 유니폼을 교환하는건 영광이었다. - 루이스 수아레스

박지성은 절대적으로 위협적인 존재다. - 루이 사하

그는 언제나 '충직한 하인(servant)'처럼 자신을 버리고 동료를 위해 뛰어 맨유 전성기의 일부가 됐다. - 리오 퍼디난드

그가 말이 없어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지만 그는 무서운 선수다. 마치 아스날의 전설적인 윙어 융베리와 비슷하다. - 아르센 벵거[109] (가장 저평가된 선수 중 한 명이라 이야기하며)

더 이상의 표현은 없다. 박지성은 내가 발굴한 최고의 선수다. - 거스 히딩크

피를로를 막을 선수가 필요하다. 박지성은 선수 시절 피를로가 공을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다.[110][111] - 폴 스콜스

지금 잉글랜드에는 박지성 같은 선수가 필요하다 - 폴 스콜스[112]

그는 전자(electron)의 속도로 경기장을 뛰어다녔고 아마 한국 역사상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첫 한국인이었을 것이다. - 안드레아 피를로

박지성과 다른 선수들이 있기에 한국 축구는 앞으로 더 발전할 것입니다. - 티에리 앙리

박지성은 루니에 버금가는 강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 - 루드 반 니스텔루이

박지성은 이제 유럽의 축구 선수라면 모두가 아는 하이레벨의 선수이다. - 사무엘 에투

아시아에 저런 괴물이 존재했었나... 솔직히 지금 상태의 PARK 때문에 카카, 피를로, 가투소, 세브첸코 등의 빅스타들이 대망신을 당하게 생겼다. - 조니 맥셔드[113]

박지성은 에너지가 충만하고 이기적이지 않으며 팀을 위해 봉사한다. 그는 위험을 감지하고 불을 끄는 소방관처럼 작전을 수행한다. 양쪽 측면을 오가면서 풀백들의 수비를 지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방으로 돌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 그의 저돌적인 돌파로 상대의 기를 꺾는다. - 밥 휴스

박지성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선수이고, 그의 움직임은 상대 팀을 곤란하게 했다. 팀에게 정말 가치있는 선수이다. - 패디 크레란드

박지성은 진정한 하드워커다. 경기장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공격부터 수비까지 팀에 보탬이 되기 위해 정말 부지런히 뛰는 선수이며 맨유에서 꾸준히 성장해나가고 있다. - 엠마누엘 프티

박지성이 라이언 긱스를 부동의 왼쪽 자리에서 중앙으로 내몰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박지성은 좌우 어느 쪽이든 뛸 수 있을 뿐더러 상대를 끊임없이 흔들다보니 항상 위협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솔저같다. - 루드 굴리트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스태미너로 달리는 박지성은 골까지 터뜨릴 뻔 했고, 나니가 넣었어야 할 결정적인 찬스도 제공했다. -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

맨유가 아시아 시장을 위해 그를 영입했다고 말한다면, 그건 박지성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 FourFourTwo

맨체스터는 몇 안되는 진정한 아시아의 슈퍼스타를 영입했다. - 타임즈

로마에는 또 다른 다니엘레 데 로시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유나이티드의 아시아인이였던 PARK이나 미하엘 발락처럼 팀에 에너지가 되는 선수들이요. 그들은 하드워커이면서 매우 영리하기까지 하거든요. - 알레산드로 네스타

맨유의 아주 훌륭한 미드필더. - 호나우두

역시 정신력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불가능한 지점에서 헤딩 크로스를 올린 박지성의 정신력이 우리 팀에는 없었다. 다음 주 열리는 원정 2차전에서 우리 선수들이 박지성과 같은 정신력을 갖지 않는다면 차라리 집에 머무는 편이 나을 것이다. - 루치아노 스팔레티

박지성은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이다. - 쑨지하이

박지성은 환상적인 선수다. 골과 어시스트를 모두 잘했고, 내가 같이 뛴 동료들 중에서 가장 저평가된 선수다. - 웨인 루니[114]

박지성 같은 존재가 되고싶다. - 카가와 신지

제발 그만 좀 뛰어라. - 마이클 에시엔[115]

역대 아시아 최고의 프리미어리거는 박지성. - 오카자키 신지출처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선수다. 정말 축구를 사랑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다. - 다비드 비야출처

모른다. 그런 선수 모른다. - 노엘 갤러거[116]

메시를 1:1로 막는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네스타와 박지성이 그를 가장 잘 막았다. - 잔루카 잠브로타

지미의 멘트는 누가 들어도 칭찬 아닌가? 캐러거에게 매우 감사하다. 그 말은 '내가 정말 환상적이다'라는 뜻이니까 - 안데르 에레라 (플레이스타일이 박지성과 닮았다는 말을 듣고 그에 대한 답변)

박지성은 최고의 공간 지배자였다. - 리오 퍼디난드 출처

선수 중에 선수, 팀 플레이어 등 당신이 어떤 호칭을 해도 좋다. 모두 어울린다. 박지성은 정말 영리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엄청난 퀄리티를 가졌던 선수였다.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 마이클 캐릭 출처

박지성은 빅매치마다 결정적인 득점을 했으며, 그토록 훌륭한 선수와 뛴다는 것은 내 기쁨이었다. 우리는 피치 위에서 서로를 잘 이해했다. - 마이클 캐릭 출처


출처 추가바람.

[1] 음력 1981년 2월 25일.[2] 일반적으로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알려져 있고 출생 신고도 고흥군에서 했지만, 그의 자서전인 ≪박지성 마이 스토리≫, ≪멈추지 않는 도전 박지성≫, ≪나를 버리다 - 더 큰 나를 위해≫에서 서울 출생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남 고흥군은 서울에서 태어난 이후 어린 시절 이주하였다. 실제로 은퇴경기에서 서울 출생이라고 스스로 밝혔다.[3] 무녀독남 외아들이다. 집안의 장손이기도 한다.[4] 디르크 카윗과 더불어 몇 없는 '수비형 윙어'라고 불려진다. 실제로도 박지성의 수비 능력은 대단해서 안드레아 피를로를 봉쇄한 적도 있다. 다만, 맨유 시절 이후에는 윙어로 뛴 경우가 거의 없다.[5] 맨유 말기 시절부터 중앙 미드필더로 드물게 뛰다가 QPR 이적 이후 완벽하게 포지션 변경을 했다.[6] 취소선이 있지만 실제로 필드포지션 중 박지성이 뛰지 않은 포지션은 센터백과 원톱뿐이다. 골키퍼는? [7] 현역시절 프리미어리그 공식 프로필.[8] 2003년 ~ 2005년[9] 2013년 임대로 복귀했을때 이미 7번은 주인이 있어서 33번을 달았다. 당시 7번을 달았던 선수는 2015년에 박지성 처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그 이후는...[10] 소위 '위숭빠레'로 불리는 PSV 아인트호벤 시절의 응원가.[11] '개고기송'으로 널리 알려진 맨유 시절 응원가.[12] 마일리 사이러스의 아버지[13] 첫소절 'Don't Sell My Park'로 유명한 맨유 시절 응원가.[14] 호날두가 뛴 포르투갈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독일에 이은 4위를 기록한 바 있다.[15] 1호 박지성(2005, 맨유 이적), 2호 이영표(2005, 토트넘 이적), 3호 설기현(2006, 레딩 승격이적), 4호 이동국(2007, 미들스보로 이적), 5호 김두현(2009, WBA 승격), 6호 조원희(2009, 위건 이적), 7호 이청용(2009, 볼턴 이적), 8호 지동원(2011, 선더랜드 이적), 9호 박주영(2011, 아스날 이적), 10호 기성용(2012, 스완지 이적), 11호 김보경(2013, 카디프 승격), 12호 윤석영 (2013,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적), 13호 손흥민 (2015, 토트넘 이적). 참고로 설기현이 2004년 오프시즌에 RSC 안더레흐트에서 디비전1 울버햄튼 원더러스로 이적하여 잉글랜드 리그에서 먼저 뛰긴 했으나 승격은 레딩으로 이적하면서 하게 된다.[16] 이 시기의 맨유는 현재의 FC바르셀로나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리그우승을 하지 못하면 실패한 시즌이라는 소리를 듣던 시기였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기본이 8강, 4강에 우승후보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을 만큼 강력한 팀이었다. 이런 팀에 박지성이 합류했기에 당시의 한국 축구팬들에게 맨유의 인기가 압도적이었던 것은 당연했다[17] 또한 이 두 선수는 IMF로 전국이 침울해하던 시기에 활약한 선수들이라 스포츠영웅이라 불린것이다.[18] 일화로, 2002년 당시 박지성은 발이 아파 어느 병원에 진단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축구를 잘 몰라 박지성이 누구인지 몰랐던 그 의사는 "평발이니까, 운동 많이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고. 박지성은 그때 자기가 평발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19] 안정환 이영표 등 걸출한 유망주들 조차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뛰어들 정도로 당시에는 그것이 하나의 관례였다. 박지성이 단지 프로의 문을 두들이다가 문전박대 당했다고 잘못 알려진 면이 있는데, 명지대 진학 이후 올림픽 대표를 거쳤기 때문에 K리그에 가려 했으면 충분히 갈 수 있었으나 박지성은 빨리 프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명지대 재학 중 좋은 조건으로 J리그에서 영입 제의를 받고 대학교 중퇴 후 교토 퍼플상가로 갔다.[20] 입단 당시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에 와서는 명지대와 김희태 감독으로서 정말 신의 한 수다.[21] 70m를 홀로 드리블 질주하며 올림픽대표 5명을 제친 후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허정무가 올림픽 대표로 깜짝 선발할 만 했다. 박지성은 그때를 회상하며 마치 수비수가 비켜주는 느낌이었다고 한다.[22] 박지성의 노력과 열성적인 태도를 볼 수 있는게 다양한 외국어 능력이다. 일본에서 뛸 때는 일본어 회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맨유에서도 영어 인터뷰가 가능할 정도로 외국어 공부에 노력을 기울였다. 영어 젬병에 통역만 믿고 맨유에 간 카가와와 비교가 되기도.[23] 김남일의 그 유명한 "아, 내 연봉에서 까라고 하세요." 발언이 나온 경기다. 김남일 어록 참고.[24] 위 사실 만으로 이미 팀의 레전드급이었으나 박지성이 맨유에 가자 '교토가 낳은 박지성'이 되었고 명실상부한 레전드, 자랑거리로 등극한다.[25] 이때 입은 무릎 부상은 2000-2002년 휴식없이 혹사당한 영향이었고 박지성 커리어 내내 따라다니게 된다. 무릎 인대를 제거한 수술이었는데 06-07 시즌 블랙번전에서 공교롭게도 같은 부위에 부상을 입어 선수생명이 끝날 뻔 했다. 그래서 위에 나온대로 플레이 스타일을 변경하게 된다.[26] 박지성은 선배들의 가혹행위에도 개인연습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선수다.[27] 당시 히딩크 왈, "지성, 지금 J리그에서 너에게 몇팀이 오퍼를 넣었어. 네가 가고 싶으면 가도 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넌 분명히 이 시련을 이길 수 있고,난 절대로 내 눈을 의심치 않아."[28] 반 봄멜은 지난 자신의 인터뷰를 사과했으며, 비난하던 홈팬들도 박지성 송(위송빠레로 불리는 그 노래 맞다.)을 만들어 전폭적인 응원을 한다. 특히 반 봄멜은 이 이후 자신이 꼽는 베스트 11의 한 자리를 무조건 박지성에게 할애한다.[29] 물론 이것은 챔피언스리그로 개편된 이후의 기록이다. PSV는 87/88시즌 유러피언컵을 우승 하였고 챔피언스리그유러피언컵을 계승하였으므로 우승 1회로 기록되어 있다, 이때도 감독은 거스 히딩크, 챔피언스리그로 개편된 후엔 아약스의 94/95시즌 우승, 95/96시즌 준우승과 04/05시즌 PSV의 4강진출 이후 에레디비시에의 팀들은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도 힘든게 현실이다.[30] 역사적인 한국인 유럽 챔피언스리그 본선 첫 골이기도 하며, 아시아선수의 첫 골이기도 하다. 알리 다에이는 뮌헨에 몸 담았을 시절 4강 전에 출장은 했지만 골은 못 넣었다. 이후 아시아인의 결승전 첫 출장 역시 박지성이 세우게 된다. 아쉽게도 골 기록은...[31] 한국인 유럽챔스 본선 첫 골이기는 하나 예선까지 포함했을때 한국인 챔스 첫골은 03-04시즌 안더레흐트의 설기현이 예선 라운드에서 기록한바 있다.[32] 호나우지뉴-에투-아드리아누-셰브첸코-박지성(!)[33] 실제로 많은 PSV 선수들이 첼시로 향했다. 로벤, 케즈만, 알렉스...그리고 선수는 아니었지만 히딩크 본인도 임시감독으로 첼시에 갔었다.[34] 아스날에서 한 경기도 못 뛴 이나모토가 있었고, 맨유에도 중국에서 데려온 동팡저우가 있었기 때문이다.[35] 동팡저우 같은 경우는 자신이 실제로 플레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스카우터의 추천과 구단의 마케팅 목표에 따라 영입된 것이라고 퍼거슨이 언급했다. 이후 맨유 사장은 동팡저우를 나쁜 예, 박지성을 좋은 예로 비교하며 마케팅을 하더라도 실력을 겸비한 선수만을 이적시킬 것임을 언급했다.[36] 해외진출 스포츠영웅으로 3박(박찬호, 박세리, 박지성)을 꼽는 일이 많지만 시기적으로는 앞의 둘보단 같은 00년대 스포츠 스타인 김연아와 겹친다.[37] 남은 계약기간이 1년이므로 다시 QPR을 갈 일은 없을 듯하다.다행이다[38]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국대 박지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가대표팀에서의 그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39] 배성재 아나운서가 박지성을 보며 한말이다. 배 아나운서 왈, 박지성이 넣은 골은 정말 필요할때 터졌고, 고영양가의 골이었다. 정말 판타지스타 같은 존재였다고...[40] 이 의견에도 일리가 있는 것이 대학 시절 허정무가 직접 올림픽 대표팀으로 발탁하고, 2002년 당시 쟁쟁한 멤버들 사이에서 히딩크 감독이 PSV 아인트호벤으로 직접 데려간 것 봐도 재능은 확실한 선수에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하는 선수였다. 그리고 스무살때부터 연봉 4억 받으면서 공차고 있었다 게다가 챔피언스리그의 활약으로 퍼거슨이 직접 전화를 걸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고 주전급으로 발돋움 하였다. 박지성이 수비형 윙어라는 포지션이었다고 하지만 공격 전개 과정에서의 기술적인 면도 좋았던 선수였고, 결정적으로 테크니션들이 부상 혹은 노화로 30대 초반을 전후로 기술적 기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테크까지 탔다.[41] PSV 시절에도 초반에는 힘겨운 시기가 있었지만 적응한 후에는 거의 풀타임 출장했다. 체력관리 차원에서 결장시킬 정도.[42] 특히 07-08 챔스 결승 결장은 한국 팬들 뿐만 아니라 박지성 본인에게도 트라우마가 되었을 법한 일이다.[43] 2012년, 맨유 통산 200경기 출전을 돌파했다는 점을 봤을 때 물론 대단하다고 평가할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사람들의 착각이 있다. 언뜻봐도 선발명단에 빠진적이 많은 박지성이 그렇게 많이 출전했나 싶을 정도인데 실상 리그경기 자체는 총 134경기뿐이고 나머지는 챔스나 기타 컵대회를 모두 포함한 경기이다...물론 맨유에서 버티는 것만 해도 대단하고 100경기 이상 출전도 대단하지만 리그 경기만 순수히 봤을때는 사실상 박지성의 객관적 입지가 확연히 드러난다.[44] 한 때는 1군에서 완전히 밀려난 모양새로 리그 경기에는 거의 출전하지 못하고 중요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칼링컵 등의 경기에 1.5군 내지는 2군 선수들과 함께 출전하곤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경기마다 최소 1공격포인트씩은 해주면서 호날두 놀이를 했고, 이 때문인지 얼마 안가 박지성은 다시 리그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45] 컨디션 문제가 없음에도 매 경기 출장을 못시키다보니 돌고 도는게 맨유의 역사다. 반니가 경기 출장이 줄어 이적했고, 그 원인이 됐던 사아도 다음 시즌엔 마찬가지였다. 득점 2위를 하며 그 자리를 뺏았던 테베즈도 그 다음 시즌엔 베르바토프에게 자릴 뺏겼고, 베르바토프는 치차리토에게 빼았겼다. 치차리토는 그 다음 웰벡에게...웰벡은 반페르시에게 뺏겼다. 12-13시즌에 반페르시가 중심이 되자 붙박이에 가깝던 루니도 자기 자릴 뺏겼고 경기 출장이 현저하게 줄어버렸다. 이게 맨9다.[46] 그나마도 교체출장이 잦았다??? 박지성의 맨유 통산 출전 기록 205회 중 60회가 교체 투입 출전이다. 이 중 사실상 경쟁에서 밀린 11/12 시즌의 교체 출전 횟수가 11회이며, 데뷔시즌인 05/06 시즌이 전체 45회 출전 중 교체 출전 횟수가 17회이다. 박지성은 서브로써 교체출전해 팀에 주로 기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47] 사실 박지성의 맨유 출전 경기수가 떨어지는건 두번의 큰 부상 등 부상의 영향도 크다. 최고의 활약을 펼친 10/11 시즌에조차 시즌 도중 아시안컵 차출과 그에 따른 부상으로 역시 오래쉬면서 리그에선 고작 15경기에 출전했다. 반면 부상이 거의 없었던 05/06 시즌, 08/09 시즌엔 모든대회 합쳐 40경기 이상씩을 출전했다.[48] 영과 웰벡이 이적 초반 미친듯한 스탯 쌓기를 해대서 퍼거슨이 그들에게 선발 기회를 몰아줬던 게 모두에게 뼈아픈 점이다. 영이 중요한 시점에서는 아무 활약을 못하면서 맨유가 결국 우승도 놓쳤던 시즌이니.[49] 과거에 몇번 뛰었지만 적당한 자리는 아니라고 평가받는다. 허정무의 눈에 들었던 국대와 명지대 간의 연습 경기에선 윙백으로 뛰었으며 아시안컵에서는 오른쪽 풀백인 박진섭의 서브로 출전했다지만 어디까지나 3-4-3 포지션에서 윙백으로 뛴 것.[50] 박지성의 왕성한 활동량이나 적절한 공수밸런스, 예리한 숏패스 실력 등으로 볼 때 중앙이 매우 적합한 포지션으로 생각되나, 실제로는 국대를 제외하면 공격적인 측면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받았을 때 더욱 뛰어난 활약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지성에게 포지션에 따른 역할을 기대하면 실망하기 쉬우나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역할을 기대한다면 뛰어난 활약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51] 07-08 시즌 호날두-루니-박지성 삼각편대로 이어지는 맨유 역습은 엄청나게 빠르고 공격적이었다. 정말 덜덜거릴 정도.[52] 이러한 스타일 때문에 강팀과의 시합에서 박지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약팀이라면 굳이 이렇게 흔들지 않아도 정면으로 뚫으면 그만이라서 약팀 상대로는 강팀과의 경기에서보다 좋은 모습을 보이기 힘들다. 나니 등 개인기가 출중한 선수가 리그 스탯이 항상 좋은 이유기도 하다.[53] 07-08 시즌 이후 박지성을 칭하는 말 중 하나로 'Unsung Hero'가 나온다. 여기서의 sing은 서양의 신화 등에서 음유시인들이 영웅을 노래한다는 의미에서의 sing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칭송받아야 마땅하지만 그에 걸맞는 주목을 받지 못한 영웅이라는 의미이다.[54] 당시 수석코치였던 퀘이로즈가 경기예상에서 나니와 안데르손이 교체투입자원으로 더 요긴하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퍼거슨이 결정을 내린 사항이긴 하지만, 나니와 안데르손이 첫시즌이었고 박지성이 4강에서 맹활약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엔트리에서 빠진 것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정말 애석한 결정이다.[55] 특히나 박지성은 유독 아스날과 밀란에게 강한 성향을 보였다. 후에 벵거도 인터뷰를 통해 인정한 부분.[56] 같은 포지션의 나니는 10/11시즌 9골, 긱스는 4골을 기록했다. 발렌시아는 1골을 기록했다.[57] 실제로 프리미어리그의 다른 윙어들과 비교했을 때 경기 출전당 공격스탯은 결코 적은 수준은 아니었다. 상위권도 아니지만 하위권도 아닌 수준.[58] 설기현을 지도했던 감독으로 알려진 스티븐 코펠도 맨유에서 7번을 달고 뛰었을 때 공격보다는 수비로 존재감을 발휘한 선수였다.[59] 특히 호날두가 엄청난 공격력을 보인 06~08시즌까지 박지성이 중용되었는데, 호날두가 나간 밸런스를 맞춰줄 선수가 박지성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내 신문에서는 경쟁자라고 불리던 호날두가 이적한 뒤 오히려 박지성의 출장이 줄어들게 된다.[60] 경기를 중계하던 크루이프가 엄청난 칭찬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61] 윙어가 아예 없는 전술을 상정해 본다면, 혹은 그 중간지점이나 약간 윙쪽으로 치우친 곳에 윙어를 두는 전술을 상정해 본다면 반드시 그러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62] 이것도 리베리가 바르셀로나를 상대할 때 상당히 수비적인 역할을 맡았던 것처럼 반드시 들어맞지는 않는다. 대개 들어맞긴 하지만.[63] 사실 멘탈 좋지, 전술 이해도 좋지, 활동량 좋지, 멀티 플레이 가능하지, 게다가 홀로 빛나는 선수는 아니지만 주변 선수들을 모두 빛나게 만드는 버프 능력자다. 이쯤 되면 어떤 감독이라도 좋아할 수 밖에 없지... 노예로 굴리기 딱 좋다. 단, 저 홀로 빛나는 타입이 아닌 관계로 일반인들의 눈에는 딱히 잘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능력도 써먹을 수 있는 감독과 동료들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제다. 게임으로 표현하자면 능력이 굉장히 출중한 대신 그 능력이 아군이 존재해야만 진가를 발휘하는, 팀빨을 많이 타는 캐릭터라고 보면 된다. 알렉스 퍼거슨이나 거스 히딩크급 정도의 명장들만이 박지성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었다.[64] 그럴만도 한게 당시 QPR의 조직력은 말 그대로 모래알 같았고, 이 상태에선 아델 타랍 제이미 마키 타락마귀 같은 개인기 위주의 선수가 혼자 다 해먹는 상황에 이르기 때문이다.[65]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던 시절에 시청자들은 박지성에게 패스 안해주는 선수를 깠지만, 손흥민에게 패스 안해주는 토트넘 선수들을 까지 않는다. 손흥민의 위치가 패스를 주기 힘든 지역인데다 오히려 동료선수들과 동선이 겹쳐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토트넘에서의 손흥민과 맨유시절 박지성의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움직임을 비교해보면 박지성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새삼 느껴지는 부분[66] 이 날 기준으로 월드컵 통산 3골로 안정환,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자베르와 아시아 최다골 동률이다. 이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팀 케이힐에게 깨졌지만, 케이힐의 월드컵 골들 중 두 골은 호주가 오세아니아 소속으로 본선에 진출했던 시절인 2006년에 넣었던 골이여서 아시아 국가대표팀 선수들 중의 최다골이라 하기에는 좀 애매하다.[67] 국가대항전 100경기 이상 출전[68] 실제로 2002년 월드컵 8강 스페인전의 승부차기에서 두번째 키커로 나와서 이케르 카시야스를 상대로 킥을 여유있게 성공시켰다.[69] 아시아 선수 최초의 EPL 우승 메달 수상.[70]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71]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의 챔스 결승 출전.[72]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나의 월드컵이 끝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는데, 얼마 후에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기량이 괜찮다면 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건 이래서다.[73] 박지성은 MBC 스페셜을 통해 아인트호벤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교토 구단주도 박지성이 사지가 망가져도 영입한다고 했으니 맨유를 제외하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74] 대회명 : 야마자키 나비스코[75] 후기리그 시기에 J리그 교토 퍼플 상가에서 첫 프로 계약.[76] 대회명 : 요한 크루이프 실드[77] 겨울 이적시장에서 자유계약으로 PSV 아인트호벤 입성.[78] 여름 이적시장에서 85억 원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성.[79] 여름 이적시장에서 36억 원에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입성.[80] 여름 이적시장에서 임대이적으로 PSV 아인트호벤 복귀.[81] 그러면 리그와 컵 유럽대항전까지 매번 풀타임을 뛰어도 9년이 걸린다[82] 400경기를 뛰어도 경기당 0.25골을 기록해야한다[83] 야프 스탐, 드와이트 요크, 테디 셰링엄, 퀸튼 포춘 등의 선수들도 영국 현지에서 맨유의 레전드로 불리곤 하는데, 박지성의 맨유에서의 업적을 보면 이들보다 못할 것이 없다.[84] 실제로 NBA에서는 팀에 지대한 공을 세운 선수들을 위해 그들을 위해 헌정의 밤을 마련하고 그 선수와 가족 및 친지들을 직접 경기장을 초대한다. 쉬는 시간중에 이벤트를 치루며, 팬들의 엄청난 환대를 받고, 보통 그날에는 그선수의 관련된 상품을 팔거나 나눠주기도 한다.[85] 계약 기간은 1년이고 아시아에 국한된 걸로 알려져 있었지만, 계약기간 다년에 전 세계 맨유 행사에 나가는걸로 밝혀졌다.[86] KBS의 세상의 모든 다큐에 베컴이 여러대륙을 돌아다닌 이야기를 다른 다큐에서는 한번 나오지만...[87] 박지성 팬들이 이런 기사에 환호한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박까만의 편견이다. 이런 기사의 댓글에서 사실지적이 나오며 기자를 욕하는 댓글이 넘쳐난다. 정확히는 낚시일지 않을까 의심하며 눌러보는 경우가 많다.[88] 영어로 인터뷰할 때도 "because"라는 말을 많이 쓴다...사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박지성이 인터뷰로 한번 크게 데인 적이 있기 때문. 선수 시절 초창기 인터뷰를 했는데 이게 꽤나 안 좋은 쪽으로 화제거리가 되어서(정확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추가바람), 그 이후로는 아는 바와 같이 모범적인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89] PSV에서 박지성은 중요 선수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었지만, 팀내 최고의 에이스라고 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 PSV는 딱히 팀을 책임질 정도라고 불리울 만한 '최고의 에이스'가 없었다.[90] 교토 시절에 같이 소개팅에 나가기도 했단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때 소개팅을 주선했던 여자가 마츠이의 부인이란 것.[91] 참고로 마쓰이의 부인은 모델 겸 연예인인 가토 로사. 하필이면 가토 로사와 교세라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는 가고시마에 출생하거나 석주명박사가 다닌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 출신이다. 거기에 이나모리 가즈오는 우장춘의 막내사위로 찰스 다윈과의 교점이 되는 세라믹으로 성공한 사업가이기에 더더욱 호사가들 입에 오르게 만들었다. 더욱이 석주명박사는 존경하는 인물이 우장춘이나 다름없는데, 어떤 은사가 우장춘같은 이가 너도 될 수 있다고 관련 학문으로 인도했다는 일화에서 가히 아이돌에 가까울까? 거기에 석주명 박사를 표현하는 것 중 동양 혹은 한국의 파브르라는 호칭마저도 다윈과 파브르 역시 살아 생전 학문적 교류를 아끼지 않은 절친에 가까웠기에 우장춘과의 관련도 귾임없이 상기될 수 밖에 없다. 참고로 고흥과 가고시마는 공통점이 많은데, 하나는 한일 우주정책을 수행에 가장 중심지가 되는 지자체이며, 또 하나는 한일 해양무장세력 대명사를 가리키는 이들이 활동한 본거지(시마즈 요시히로)이거나 첫 해양 관련 업무(이순신)를 한 지역이란 점이다. 이쯤 되면 자매결연도 추진되어도 무방할 정도다. 한편 우장춘 업적인 십자화과에 속하는 유채꽃을 유전자조작식물을 만든 몬산토는 현재 바이엘에 들어갔는데, 차범근이 뛴 프로팀 모기업이기도 하지만, 아스피린버드나무와 동일한 성분이란 것이 대한민국 제약업계에서 버드나무를 성씨로 쓰는 전설적인 기업가 떠오른다는 말도 있다.[92] 근데 이것도 챔스나 리그커리어, 월드컵 4강 등 커리어가 대단한 편이기 때문에 장난식으로 맞춘거긴해도 가능한거다.[93] 사실 정확히 따지면 교토는 올림픽 대표 박지성을 영입한 것이다. 그의 재목을 알고 중용한 사람은 허정무. 올림픽 대표인 박지성을 K리그 팀들이 뽑지 않은 건 박지성보다 더 좋은 선수들을 뽑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 진출 이전까지 박지성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한 축구계 지도자들은 해외무대에서 뛰었던 경력을 가진 이들이 많다라는 점이다.[94] 고종수, 고창현김호의 아이들 중 상당수를 직접 스카우트한 사람이다.[95]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영입했던 윤화평이 대표적.[96] 출처는 <프리미어를 보러가다>[97] 대표적으로 2002년 이탈리아의 3부 팀과 계약했으나 구단주가 안정환이 몸담았던 그 페루자의 구단주도 겸하고 있었던지라 이탈리아의 한국전 패배에 대한 분풀이로 계약 파기. 이후 이탈리아 지역 리그에 입단하려고 이탈리아 축구협회에 신분증명서를 요청했더니 저 박지성의 신분증명서가 날아와서 등록에 실패한다.[98] 그런데 문신을 할 수 도 있는것이지 이걸 가지고 트집 잡는 것은 오지랖이다.[99] 2012년 성룡이 출연했을 때 했던 그 게임. 알람 시간을 랜덤으로 셋팅하고 질문&답변. 알람이 울릴 때 휴대폰을 가진 자가 탈락.[100] http://nimg.nate.com/etc/bbs/SPORTS/2010/12/20/201012202307530794.jpg http://nimg.nate.com/etc/bbs/SPORTS/2010/12/20/201012202308334753.jpg[101] 수련을 위해 차범근을 섭외한다(!) 근데 어차피 월드컵도 다가오니.[102] 방송을 보면 10분을 넘기면서 했는데 보통의 프로선수 들이 1분에 100개 정도 하는 걸 감안하면 박지성은 방송에서 리프팅 1000번을 한거다.[103] 청소년 대표팀 출신인 빅스레오, 옆 동네 에서 이영표가 축구선수 했으면 국가대표급 재능 이라고 칭찬한 비스트 이기광, 축구 좋아하고 즐기기로 유명한 비스트윤두준양요섭, 2AM창민, B1A4바로, BTOB민혁 그리고 제국의아이들동준.[104] 박지성은 총 15분밖에 뛸 수 없는 핸디캡이 주어졌다.[105] 부상으로 시축만 했지 뛰진 못했다.[106] 박지성은 자기가 축구 하면서 해트트릭을 해 본적 이 없다고 너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107] 개리는 어시스트를 할 뻔 했고 프로선수를 상대로 볼키핑을 보여줬고 유재석을 프로선수를 제끼고 골키퍼와 1대1 찬스까지 만들었다. 김종국이야 런닝맨 멤버 중 운동 특히 축구를 자주 즐기니 보여준 크로스나 패스 자체는 좋았다.[108] 04-05 시즌 PSV와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을 앞두고 한 말. 여담으로 박지성은 그 경기에서 골을 뽑아내며 기적을 연출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원정다득점으로 인해 PSV는 탈락했다.[109] 사실 벵거에게 박지성의 플레이가 특히 인상에 남았을지 모른다. 박지성이 유독 아스널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고, 골도 많이 기록했기 때문.[110] 2014∼2015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 유벤투스(이탈리아)-레알 마드리드(스페인)의 경기에 대해 폴 스콜스가 영국 ITV 해설자로써 직접 한 말이다.[111] 실제로도 박지성이 피를로를 막았을 때 평균 79회의 패스 시도가 25회로 줄었을 정도로 피를로가 경기장에서 아예 지워져버렸다.[112] 이번엔 2016년 답이 없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을 비판하며 나온 말.[113] 영국인 해설자[114] 동료가 아니었던 선수들 중에 가장 저평가됐다고 생각하는 선수로는 젠나로 가투소를 꼽았다.[115] 박지성의 자서전에 언급된 내용으로 10-11 시즌 우승을 두고 다투던 첼시와의 홈경기에서 경기시작 35초만에 치차리토에게 어시스트를 찌르고, PSV 시절 1인 압박축구를 재현하며 첼시 우측면을 도륙을 내버리고 평점 9점을 받았던 그 경기 당시 에시엔이 다가와서 한 말이라고 한다.[116] 갤러거 형제는 유명한 맨체스터 시티 초강성 팬이며 시티는 맨유의 라이벌로 유명한 팀이기도 하다. 에릭남의 인터뷰 중 한국에서 받을 질문 예습이라며( 박지성 사진 보여주고 물어본 질문의 대답이다. 물론 농담성이며 노엘 역시 농담성으로 받아쳤다. 노엘이 철천지 웬수의 주요 선수를 모를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