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트레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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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FC 엠베서더

다비드 세르지오 트레제게
(David Sergio Trezeguet)

생년월일

1977년 10월 15일

국적

파일:프랑스 국기.png 프랑스

출신지

로렌

신체 조건

189cm, 86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소속 클럽

CA 플라텐세 (1993-1995)
AS 모나코 FC (1995-2000)
유벤투스 FC (2000-2010)
에르쿨레스 (2010-2011)
바니야스 SC (2011-2012)
CA 리버 플레이트 (2012-2014)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임대) (2013-2014)
FC 푸네 시티 (2014)

국가 대표

71경기 34골


1. 개요2. 클럽 경력
2.1. 아르헨티나2.2. AS 모나코 FC2.3. 유벤투스 FC2.4. 에르쿨레스2.5. 이후2.6. 은퇴
3. 국가대표4. 플레이 스타일5. 콩라인6. 기타7. 기록
7.1. 대회 실적7.2. 득점 기록

1. 개요[편집]

트레골
'유벤투스'콩라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선수 중 1명

2. 클럽 경력[편집]

2.1. 아르헨티나[편집]

1993-1994 시즌 아르헨티나의 CA 플라텐세에서 주전공격수와 교체 출장으로 첫 공식 경기 데뷔를 했으나 3경기 출장에 무득점이라는 성적을 낸다. 재능이 개화되기 전이였고 무엇보다 굼뜬 몸놀림이 가장 큰 약점이였기 때문. 결국 2년동안 5경기 출장에 그쳤으나 그의 가능성을 본 스카우터에 의해 AS 모나코 FC로 이적하게 된다.

2.2. AS 모나코 FC[편집]

티에리 앙리와 함께 프랑스의 주축이자 모나코의 주축이 되다.

모나코에서도 바로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였다. 2년 동안 9경기에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여주다가 3년차 1997-98 시즌 27경기 18골을 기록하며 프랑스 전역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1]

이후 1998-99 시즌 27경기 12골, 1999-00 시즌 30경기 22골로 커리어 하이 득점을 기록한다. 그리고 세 시즌간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로 2000에도 차출되지만 당시 프랑스의 대표 공격수였던 실뱅 윌토르, 동갑내기의 티에리 앙리 등에게 밀려 후보로 출전했지만 결승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연장전 추가시간 결승골[2]이라는 대형 사고를 치며 전 세계와 유럽 명문 구단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다. 그리고 유벤투스 FC로 이적하게 된다.

2.3. 유벤투스 FC[편집]

부상이 잦았지만 득점을 꼬박꼬박 해준 선수
팀이 강등되어도 남아서 활약한 의리남

2000년 여름, 트레제게는 세리에 A 최고 명문 클럽 유벤투스로 이적한다. 당시 유베의 공격진에는 이미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필리포 인자기라는 걸출한 공격수들이 버티고 있었다. 첫번째 시즌은 로테이션으로 활약하며 14골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긴다.

2001년 5월, 유벤투스는 2년 연속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을 해임하고[3] 트라파토니 이후 유베의 90년대 황금기를 열었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을 다시 불러들인다. 부임한 리피는 대대적인 개혁의 일환으로 지네딘 지단레알 마드리드로, 필리포 인자기를 3,700만 유로에 라이벌 AC 밀란으로 매각해 버리고, 잔루이지 부폰, 파벨 네드베드, 릴리앙 튀랑 등을 새로 영입하기에 이른다. 트레제게는 이들과 함께 팀 개혁의 중심이 되어 01-02 시즌 스쿠데토를 다시 탈환하였고 동시에 리그 24골을 넣어 카포칸노니에레(세리에 A 득점왕)도 차지한다. 시즌 종료 후 출전한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세네갈 쇼크지단의 부상으로 인한 프랑스광탈로 종료되었다.

다가오는 02-03 시즌에 그에게 슬럼프가 찾아온다. 부상으로 출장횟수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써 10골도 채 올리지 못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베는 02-03 시즌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한다. 하지만 트레제게는 시즌 내내 부진한 경기력과 더불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승부차기 실축 등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03-04 시즌에는 다시금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알렸다. 하지만 이번엔 팀이 문제였다. 유벤투스는 작년과는 대조될 정도로 성적이 하락하여 리그 3위에 그친다. 비록 트레제게는 16골을 기록함으로써 제몫을 했지만 스쿠데토는 밀란의 차지가 되고 마지막 희망이던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도 라치오에게 덜미를 잡히며 결국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04-05 시즌을 앞서 마르첼로 리피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 그리고 AS 로마의 우승청부사,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새 감독으로 부임한다. 카펠로는 부임과 동시에 AS 로마로부터 양아들 에메르손, 조나단 제비나를 영입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 신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영입되었는데 이때문에 트레제게가 이브라히모비치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릴 거라 예상되었지만 오히려 델 피에로가 카펠로 감독의 눈밖에 나게 되어 이브라히모비치와 함께 유베의 새로운 투톱을 구성하게 된다.[4]

06-07 시즌을 시작하기에 앞서 2006년 여름, 유럽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칼치오폴리가 터지고 결국 칸나바로, 튀랑, 잠브로타, 에메르손, 비에이라, 이브라히모비치 등 주전들이 대거 팀을 떠나기에 이른다.
그러나 트레제게는 델 피에로, 부폰, 네드베드, 카모라네시 등과 같이 팀에 남아서 세리에 B 우승을 거두고 1시즌만에 승격을 이루어 낸다.

승격 첫시즌 영혼의 투톱 델 피에로와 함께[5]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각각 20골 이상씩 득점하며 승격 첫시즌만에 팀을 챔피언스리그로 이끌며 건재함을 보였다. 이후에도 매시즌 이적시장이 열릴때마다 최전방 공격수가 필요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AC 밀란, FC 바르셀로나등 수많은 클럽들과 링크가 났으나 매번 거절하고 팀에 잔류하던중 아마우리의 영입과 맞물려 후보로 전락[6]하게 되었고 이후 에르쿨레스로 떠나게 되었다.

2.4. 에르쿨레스[편집]

에르쿨레스에서 31경기 12골을 기록[7]하였다.

2.5. 이후[편집]

잠시 아랍에미리트 리그 바니야스 SC에서 뛰었다가 2011년 12월 19일 CA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하였다. 2012년 9월 9일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로 임대되었다.

2014년 7월 30일 인도 슈퍼리그 소속의 FC 푸네 시티로 이적하였다.

2.6. 은퇴[편집]

인도 슈퍼리그의 시즌이 끝난 후 세리에 B의 모데나에게 계약 제의를 받았지만 유벤투스 FC의 스태프로 합류하기 위해 거절하고 은퇴하였다. 구단 엠베세더 겸 남미 스카우트로 활동하게 되었다.

3. 국가대표[편집]

1998년 1월 20일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뤘고, 자국에서 열린 1998 프랑스 월드컵에도 출전하며 우승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그 활약상은 마치 카카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 것처럼 거의 없고 사실상 엔트리에 이름만 올려놓고 우승 업적을 달성한 것에 불과하다. 트레제게가 뛰어야 할 자리에는 티에리 앙리가 주로 활약했다.

유로 2000에 출전하였고,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연장전에 로베르 피레스의 크로스를 받아 왼발 슈팅으로 골든골을 넣으며, 조국을 우승으로 이끈다.

2002년 5월 26일 대한민국과의 평가전[8]에서 티에리 앙리의 크로스를 논스톱 오른발 가위차기로 선제골을 넣으며 프랑스의 3-2 승리에 기여했다. 골을 넣고 시크하게 달려가다가 축하해주려고 달려오는 에마뉘엘 프티를 보고 씩 웃는 장면이 인상적.

그 이후에 2002 한일 월드컵, 유로 2004, 2006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큰 활약은 못 했고, 2006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 실축까지 하며 이탈리아에게 우승을 헌납했다.

그 이후로 당시 프랑스 감독이었던 점성술사 레몽 도메네크는 트레제게를 대표팀에 발탁하지 않았고, 유로 2008에도 발탁되지 않았다.

도메네크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던 트레제게는 프랑스가 유로 2008 광탈에도 불구하고 도메네크를 유임한다고 발표하자 결국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원샷 원킬
전형적인 골 넣는 스트라이커. 헤딩 능력도 일품이고 무엇보다 골 결정력이 매우 뛰어났지만 2년 주기라는 특이한 징크스가 존재한다.[9] 플레이 스타일이 매우 유사한 선수로는 같은 시대를 보낸 네덜란드의 영원한 과소평가받는 스트라이커 로이 마카이가 있다.[10]

세간의 평가는 이러하나 실상 포스트 플레이와 공격 조율에 능하였다. 득점 능력에 특화된 선수답게 아무래도 볼 키핑이나 패스 및 드리블 등 다재다능한 최근의 현대 축구에서 추구하는 공격수는 아니었다. 아예 젬병일 정도는 아닌데 동시대에 뛰었던 탑급 공격수에 비하면 부족하긴 했다. 위에 서술한 프랑스 대표팀에서 앙리에게 밀린 이유는 아무래도 이 때문이라고 봐야 하겠다.그 시대에 앙리랑 비빌만 한 공격수가 호나우두, 라울, 셰브첸코, 반 니스텔루이 말고 없다는게 함정[11] 유벤투스에서는 투톱 전술을 쓰기 때문에 델 피에로가 그의 단점을 메워주기 때문에 둘의 시너지 효과가 났지만...

무엇보다 슈팅력에 굉장한 재능을 보여줬던 선수로 사나운 타격의 발리슛과 원터치 슛에 굉장히 능했고, 박스 안에서의 매서운 공격력 때문에 전성기의 그를 박스에서 막을땐 포스트 플레이를 불가능하게 볼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상대팀의 주요 공략이었다. 완벽한 슈팅 찬스를 내줬을 때에 트레제게는 어떤 공격수보다도 무서웠고, UEFA 챔피언스리그 맨유 vs AS모나코 경기에서 보여준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98mph의 슈팅은 유명한 일례 중 하나였다.

세리에 시절 득점기록에 기복이 있어서 과소평가가 있을 수 있다. 물론, 그가 시즌마다 기복이 있었던 것은 사실. 허나, 당시 세리에는 최고의 리그이자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던 리그였었다. 게다가, 리그 자체가 지나치게 수비적이고 라인이 내리다 보니 득점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이는 당시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였었던, 셰브첸코 역시 피할 수 없었던 것.

5. 콩라인[편집]

국대에서는 동갑내기인 절친 티에리 앙리에게 밀려 쭈욱 2인자 신세였다. 레블뢰 군단의 전성기 시절에는 앙리나 트레제게나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햇병아리라 98년 월드컵에는 크리스토프 뒤가리와 실뱅 윌토르 등에게 밀렸으나 본격적으로 능력이 개화된 유로 2000 이후 시기에는 이들을 제치고 주전급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점성술사레몽 도메네크가 부임하여 4-5-1 전술을 즐겨 사용하였다. 도메네크 체제에서는 같이 능력이 개화되다 못해 대폭발한 앙리를 즐겨사용해 자연스레 원톱인 앙리의 후보 선수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상기했다시피 독일 월드컵에서도 앙리에게 밀려 조커였으나 결승전 패널티킥에서 실축해서 준우승을 경험하기도…[12] 그 밖에도 02-03시즌 리그 라이벌 AC 밀란에게 페널티킥으로 석패해 챔스 준우승을 하고, 칼치오폴리로 소속팀이 2부리그로 강등되기도 하고 승격 첫시즌에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에 밀려 최종 득점 순위 2위를 하는등 변함없는 콩라인을 인증하였다. 이와는 무관하게 우승복은 좋은 편이지만 절정의 폼을 보이던 시절의 챔스 준우승과 월드컵 준우승의 포스에 전부 눌려버렸다.[13]

6. 기타[편집]

  • 강신우 축구 해설위원이 지네딘 지단의 교체 선수로 누굴 투입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하면서 "돌파의 지울리냐, 조율의 트레제게냐." 라는 말을 하면서 트레제게하면 조율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애칭으로는 트레골과 상기한 조율의 트레제게가 있다.

  • 별명은 트레골이다.. 해설자가 트레제게의 이름을 다 말하기도 전에 골을 넣어서 "트레..골!!!!"이라고 계속 외치게 되어서.[14]

  • 이집트 리그에도 트레제게가 있다. 본명은 아닌 등록명. # 고조할아버지가 이집트 원정을 따라가셨었나? 프랑스 트레제게는 "나보다 머리가 길고 포지션이 다르다....그래도 아버지가 이집트 여행을 간적이 있는지 확인해야겠군..."이란 말을 남겼다.

7. 기록[편집]

7.1. 대회 실적[편집]

  • AS 모나코 (1995/96 - 1999/00)

7.2. 득점 기록[편집]

시즌

클럽

리그

경기

1993/94

CA 플라텐세

프리메라 디비시온

3

0

1994/95

CA 플라텐세

프리메라 디비시온

2

0

1995/96

AS 모나코

리그앙

4

0

1996/97

AS 모나코

리그앙

5

0

1997/98

AS 모나코

리그앙

27

18

1998/99

AS 모나코

리그앙

27

12

1999/00

AS 모나코

리그앙

30

22

2000/01

유벤투스

세리에 A

25

14

2001/02

유벤투스

세리에 A

34

24

2002/03

유벤투스

세리에 A

17

9

2003/04

유벤투스

세리에 A

25

16

2004/05

유벤투스

세리에 A

18

9

2005/06

유벤투스

세리에 A

32

23

2006/07

유벤투스

세리에 B

31

15

2007/08

유벤투스

세리에 A

36

20

2008/09

유벤투스

세리에 A

8

1

2009/10

유벤투스

세리에 A

19

7

2010/11

에르쿨레스

프리메라 리가

31

12

2011/12

바니야스 SC

UAE 걸프리그

3

0

2011/12

리베르 플라테

프리메라 B 나시오날

19

13

2012/13

리베르 플라테

프리메라 디비시온

16

3

2013/14

뉴웰스 올드 보이스

프리메라 디비시온

24

7

2014

FC 푸네 시티

인도 슈퍼리그

9

2


[1] 이때의 활약으로 월드컵에도 차출되지만 앙리와 더불어 조커 신세였다.[2] 골든 골 제도가 아직 있었기 때문에 바로 경기 종료가 되었다. 어차피 추가시간 득점이라 곧 끝날 예정이긴 했지만.[3] 라이벌 팀의 레전드를 감독으로 세웠다며 부임 당시부터 서포터들의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마침 리그 우승도 못했으니.[4] 알레는 부상과 슬럼프로 인해 05-06시즌까지 후보로 밀리게 된다.[5] 국내에선 어째선지 티에리 앙리와 영혼의 투톱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둘의 조합은 이론상으로만 완벽할뿐 결과물은 현시창수준의 조합이었고 실제로는 델 피에로와의 조합이 훨씬 좋았다.[6] 단순히 골만 잘 넣는 스타일의 선수보다 다재다능한 스트라이커를 원하던 유벤투스는 아마우리 영입을 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반대급부로 트레제게가 포지션 경쟁에서 밀리게 된 것. 물론 그 외에도 아마우리 이적 이후에 본인이 부상으로 좀 골골댄것도 있기도 하고 나이도 많고 고액주급자 였기 때문에 리빌딩을 위한 정리대상인 점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트레제게 대신 아마우리를 선택하는 그런짓은 정말 하지 말았어야...[7] 이적 후 11경기만에 7골을 넣었으며 그중엔 레알 마드리드전에서 카시야스를 농락했던 골도 있었다. 떠난 트레제게가 날아다니고 남은 아마우리가 부진에 빠지자 당시 유벤투스 한국 당사에선 게시글 대부분이 보드진에 대한 욕이었다.[8] 바르테즈를 상대로 한 박지성의 왼발 중거리 동점골 나온 경기이며 무엇보다도 김남일의 지단을 상대로 한 그 유명한 "아, 내 연봉에서 까라고 하세요!" 발언이 나온 바로 그 경기다.[9] 유벤투스에서의 골 기록을 보자면 00-01시즌 14골, 01-02시즌 24골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 02-03시즌 9골, 03-04시즌 16골, 04-05시즌 9골, 05-06시즌 23골, 06-07시즌 15골(세리에 B), 07-08시즌 20골~~로 2년마다 한번씩 부상, 소속팀 강등 등의 이유로 골 기록이 널뛰기를 하고 있다.[10] 두 선수 모두 클로킹 모드로 경기장에서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나 까방권 획득 골을 집어넣는 모습을 아~주 많이 보여주었다. 하지만...[11] 뭐 사실 동시대에 앙리를 밀어낼 만한 공격수가 세계에 얼마나 있었겠냐만은...[12] 다들 알겠지만 이건 트레제게 보다 지단의 박치기 퇴장이 더 크다[13] 발락 또한 리그 우승 컵대회 우승 등 우승 경력이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많은 편이다. 트레제게의 경우 98 월드컵 우승과 유로 2000 결승전 골든골 등 메이저 대회 우승기록도 있지만 이때 그는 티에리 앙리와 나란히 후보 선수였다.[14] 왠지 이 사람 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