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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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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구분

1960년

1961년

1962년

연대구분

1950년대

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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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구분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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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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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1961년

대한민국

43년

단기

4294년

불기

2505년

이슬람력

1381년 ~ 1382년

간지

경자년 ~ 신축

주체

50년

민국

50년

일본

쇼와 36년

히브리력

5721년 ~ 5722년

1. 소개2. 사건
2.1. 실제
2.1.1. 1월2.1.2. 2월2.1.3. 3월2.1.4. 4월2.1.5. 5월2.1.6. 6월2.1.7. 7월2.1.8. 8월2.1.9. 9월2.1.10. 10월2.1.11. 11월2.1.12. 12월
2.2. 가상
3. 탄생
3.1. 실존인물3.2. 가상인물
4. 사망
4.1. 실존인물4.2. 가상인물
5. 데뷔
5.1. 가수5.2. 만화계
6. 달력

1. 소개[편집]

동아일보 선정 1961년 10대 뉴스

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1961년도 다사다난한 해였다. 갓 독립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대규모 무력충돌이 벌어지고 여기에 열강들이 연루되어 긴장이 고조되었으며, 이를 중재하던 함마슐드 UN 사무총장이 사고로 죽고 다시 이 와중에 인도포르투갈 식민지를 무력 침공하는 등 분쟁의 씨앗이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해 소련쿠바미사일 기지 설치를 합의했다. 제3차 세계대전을 부를 수 있는 초유의 일이 이 해에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반기에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이 기승을 부렸으나 박정희5.16 군사정변이 일어남으로써 고려 무신정변 이후 8백여년 만에 군부통치의 막을 올려 잠깐동안의 민주주의는 끝을 고하였으며, 동시에 32년 군사정권이 개막되었다. 그리고 그 전에 제제2공화국어린이날공휴일로 지정했다.

2. 사건[편집]

2.1. 실제[편집]

2.1.1. 1월[편집]

  • 1월 8일 - 장건상을 중심으로 한 '혁신당'이 결성되었다.

  • 1월 10일 -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한국경제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1월 21일 - 이동화를 중심으로 한 '통일사회당'이 결성되었다.

  • 1월 27일 - 민주당 소장파 32명이 '신풍회'를 결성하였다.

2.1.2. 2월[편집]

  • 2월 3일 - 민의원은 선교류 후경제, 평화선 수호 등을 골자로 한 대일정책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 2월 8일 - 한미경제협정이 조인되었다.

  • 2월 12일 - 서울시내 7개 대학 민족통일연맹은 국민계몽대와 제휴하여 '전국 한미경제협정 반대 전국학생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2월 13일 - 혁신계 신문인 <민족일보>가 창간되었다.

  • 2월 14일 - 통일사회당과 사대당, 혁신당 등 14개 정당 및 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한미경제협정 반대 공동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2월 20일 - 민주당 구파를 중심으로 한 정당 '신민당'이 정식 결성되었다.

  • 2월 21일

    • 중립화통일론을 주장하는 혁신계 우파 인사들은 '중립화조국통일총연맹(이하 중통련)'을 구성하였다.

    • 서울에 현 문화방송의 전신인 '한국문화방송'이 세워졌다.

  • 2월 25일

    • 남북협상론을 주장하는 혁신계 좌파 인사들은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이하 민자통)'를 결성하였다.

    • 법무부는 1차로 '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처벌법'에 의거한 공민권 박탈자 609명을 공고하였다.

  • 2월 27일 - 이날 국회에서 일본으로의 중석 부정수출이 문제화되기 시작했다(중석불 사건).

  • 2월 28일 - 3.15 부정선거 수사 업무를 맡았던 특별검찰부가 활동을 종결하였다. 이때까지 특검이 입건한 관련자 수는 총 886건, 기소는 31명, 도망은 185명이었다.

2.1.3. 3월[편집]

  • 3월 10일 - 장면 내각은 당시 유행하던 통일운동과 노동운동 등을 억압하기 위해 '반공임시특별법'과 '집회 및 시위 운동에 관한 법률(일명 데모규제법)' 시안을 공개하였다. 이른바 '2대 악법'이다.

  • 3월 11일 - 각 대학 산하 민통련 등 학생 대표들은 '2대악법반대 전국학생투쟁위원회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3월 13일 - 민주민족청년동맹, 피학살자유족회청년학생위원회, 통일민주청년동맹, 조국통일민족전선 등 11개 단체들을 주축으로 한 '악법반대 전국청년단체공동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3월 14일

    • 장면 총리는 민의원에서 반공임시특별법 통과에 야당 측의 협조를 부탁하라고 언명하였다.

    • 혁신당 등 5개 진보정당 및 각 사회단체들을 주축으로 한 '반민주악법반대 공동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북한측은 소련 대표단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 뒤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선거를 실시케 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유엔에 보냈다. 이에 유엔 한국대표 측은 유엔을 혼란시키는 공세라 하여 소련의 통한 각서를 비난하였다.

  • 3월 18일 - 경북 대구에서 반공법과 데모규제법 등 2대 악법에 항의하는 '2대 악법 반대운동'이 열렸다.

  • 3월 21일

    • 경북 대구에서 반민주 악법 반대 2차 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 '반민주악법반대 경남학생공동투쟁위원회'가 조직되었다.

  • 3월 22일

    • 반민주악법 공동투쟁위원회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시민과 학생 3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반공법 반대 성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때 공동투쟁위원회 측은 “반공법·데모규제법 폐기”, “반민족적 장면 정권 사퇴”등 5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이후 경찰과 충돌이 발생해 쌍방에서 50여 명이 부상당하고 참가자 123명이 연행되었다.

    • 장면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반공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반공법안 형식을 변경해 국가보안법을 보강키로 합의하였다.

    • 한국영세중립추진위원회 마산지구는 ‘악법철회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3월 23일

    • 신현돈 내무부장관과 조재천 법무부장관은 전날 발생한 난동시위 주동자를 잡아다 의법조치하겠다고 담화하였다.

    • 이태희 검찰총장은 반공법안 반대 시위 등 난동시위자는 소요죄로 입건하라고 전국 검찰에 지시하였다.

    • 이날 부산역 광장에서 '반민주 악법 반대 경남학생공동투쟁위원회' 주도로 15,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2대 악법 철회를 요구하며 궐기대회를 벌였다. 이후 이들은 횃불 시위와 시가행진을 벌였다.

    • 경남 마산에서 ‘악법반대 학생투쟁위원회’ 주도로 1천여 명의 시민·학생이 참가한 가운데 악법 제정에 반대하며 성토대회가 개최되었다.

    • 정부는 국가보안법 개정시안을 작성하였다.

  • 3월 24일

    • 2대악법반대 경북학생투쟁위원회’는 대구역 광장에서 '2대 악법 반대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장면 총리와 조재천 법무부장관을 성토하는 '가상 결혼식 및 가상 결혼식' 및 횃불시위도 같이 벌였다.

    • 신현돈 내무부 장관은 내무위에서 반공법에 반대하는 시위는 정부 혼란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 대구 대학생 민주수호학생회와 4월혁명학생동지회 경북본부는 '2대 악법 저지대회'를 개최하였다.

  • 3월 25일

    • 야당측은 미국측의 전기회사 3사 통합 강요에 대해 내정 간섭과 주권외교 실패라고 비난하였다.

    • 조재천 법무부 장관은 “어떠한 시위가 있더라도 보안법을 보강하려는 정부의 태도에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마산 혁신계 학생들의 주도로 시민 1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반공특별법 및 데모규제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민 성토대회'가 개최되었다.

    • 이날 부산에서 반민주악법반대 경남공동투쟁위원회의 주도로 2천여 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반민주 악법 제정에 반대하는‘시민 성토대회'가 개최되었다.

    • 전북 전주에서도 혁신계의 주도로 시민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촉진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 3월 26일 - 대전의 혁신계 정당 및 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악법반대 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3월 27일

    • 반민주악법 공동투쟁위원회는 서울역 광장에서 궐기대회를 열려고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 이날 경북 안동에서도 민민련 안동군 준비위원회의 주도로 군민 2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악법반대 궐기대회'가 열렸다.

  • 3월 28일

    • 한국교원노조총연합회는 어떠한 반공입법 시도도 분쇄한다는 내용의 대정부 경고성명을 발표하였다.

    • 61개 우익단체 총연합은 용공세력을 규탄하며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 3월 30일 - 정부는 국가보안법 개정안과 데모 규제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3월 31일 - '2대악법반대 경북공동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2.1.4. 4월[편집]

  • 4월 1일

    • 악법반대 전남공동투쟁위원회는 6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악법 반대 시민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 통사당 관계자인 윤길중의 주도로 원주 공설운동장에서 '악법반대 대회'를 열었다.

  • 4월 2일 - 이날 경북 대구에서도 민민청 등 혁신계의 주도로 시민 3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가운데 ‘반공법 및 데모규제법 규탄대회’가 개최도어 경찰과 충돌이 발생하였다.

  • 4월 3일 - 치안국은 전날 대구시위 관련자 43명을 구속하고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 4월 12일 - 소련에서 첫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발사했다. 유리 가가린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로 나아간 사람으로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 4월 13일 - 포르투갈에서 살라자르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군사쿠데타가 시도되었으나 실패했다.

  • 4월 15일

    • 대한민국 신학기 제도가 종전의 9월에서 3월로 변경되었다.

    • 건국대 민족통일연구회가 구성되었다.

  • 4월 17일

    • 특별재판부는 최인규 전 내무부 장관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

    •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바 망명자들이 무력으로 쿠바를 침공, 정권 전복을 노렸으나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를 피그만 침공이라 한다.

  • 4월 18일 - '민자통 경남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때 경남위원회 측은 <평화통일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4월 19일 - 이날 열린 '4.19 혁명 1주년 기념식'을 주도한 민통련은 3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침묵시위를 벌였다. 다른 한편 서울대 학생회는 <4.19 제2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20일 - 장면 총리는 참의원 회의에서 용공 통일보다는 분단이 낫다고 밝혔다.

  • 4월 21일

    • 장면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보안법 개정안과 데모규제법은 여당 단독으로라도 통과를 강행함과 동시에 남북교류 주장의 배후를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 여성판사 황윤석 자살사건이 발생하였다.

  • 4월 22일

    • 한일통상협정이 조인되었다.

    • 알제리 독립에 반대하는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 4월 23일 - 공민권제한심사위원회가 자체 심사를 종결하였다.

  • 4월 27일 - 시에라리온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2.1.5. 5월[편집]

  • 5월 1일 -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물인 <인스턴트 히스토리>가 방영되었다.

  • 5월 5일

    •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결성 준비위원회는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준비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민통련 측은 판문점 남북학생회담을 이달 내에 열기로 결의하였다.

    • 정부는 남북학생회의를 환영한다는 북한의 성명은 음흉한 계획이며 학생들의 주장을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 같은 날, 어린이날공휴일로 지정되었다.

  • 5월 6일 -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결성준비위원회는 공동선언문과 성명서 및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13일에 시청 광장에서 남북학생회담을 환영하고 민족 통일을 촉진하는 궐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5월 10일 -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이 제정되었다.

  • 5월 13일 - 이날 서울운동장에서 시민 3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남북학생회담 환영 및 통일촉진 궐기대회’가 열렸다.

  • 5월 16일

    •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민간 정부인 제2공화국이 출범 1년도 안 되어 종식되고, 이로 인해 한국에서 고려 무신정변 이후 8백여 년 만에 군정이 시작되었다.

    • 쿠데타와 동시에 군사혁명위원회는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각료 전원에 체포령을 내렸다.

    • 군사혁명위원회는 장도영 의장 명의로 <혁명공약>과 11개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 주한 미국대사 대리인 마샬 그린과 유엔군 사령관 카터 B. 매그루더는 장면 내각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군사혁명위원회는 포고령 1호에 따라 보도 사전검열제를 실시하였다.

  • 5월 18일

    • 장면 내각이 총사퇴하였다. 그리고 이날 미국 정부는 박정희 군사정권을 인정하였다.

    • 박정희 군사정권은 혁신계 인사 3,300여 명과 민족일보 관계자들을 전격 체포하였다.

    • 치안국은 폭력배 1,500여 명을 검거하였다고 발표하였다.

  • 5월 19일

    • 군사혁명위원회가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되면서 다음날부터 장도영을 의장으로 하는 군사내각이 조직되었다.

    • <민족일보>가 군사정권의 지령 92호에 의거해 강제 폐간되었다.

  • 5월 22일

    •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포고령 제6호로 정당 등 사회단체의 해체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노련이나 교원노조 등 각종 노동조합들이 강제 해산되었다.

    • 치안국은 용공분자 2천여 명과 깡패 4천 5백여 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하였다.

  • 5월 23일 - 최고회의는 사이비 기자를 단속한다는 명분으로 정기간행물 1,200여 종을 폐간시켰다.

  • 5월 24일 - 최고회의는 각 도지사와 9개 시장직에 군인들을 임명하였다.

  • 5월 25일 -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아폴로 계획을 발표하며, 10년 안에 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모두들 이를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밀리던 미국의 개소리로 치부했으나….

  • 5월 26일 - 국군 작전통제권이 유엔군사령부에 반환되었다.

  • 5월 27일 -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비상계엄을 해제하고 경비계엄을 선포하였다. 이 조치는 1962년 12월 6일부로 해제된다.

  • 5월 28일 - 최고회의는 '부정축재처리요강'을 발표하였다.

2.1.6. 6월[편집]

  • 6월 1일

    • 문교부는 대학생 교복 착용과 중고생 삭발 등을 골자로 한 '학원정화 5개 준수사항'을 발표하였다.

    • 경기도 인천에서 경인일보의 전신 중 하나인 <인천신문>이 창간되었다.

  • 6월 6일 - '국가재건 비상조치법'이 제정되었다.

  • 6월 10일

    • 국가재건최고회의법, 중앙정보부법, 농어촌고리채정리법이 제정되었다.

    •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안이 발표되었다.

  • 6월 21일 -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 조직법'이 제정되었다.

  • 6월 22일 - 국무원 사무처 산하 공보국과 방송관리국이 통합되어 '공보부'로 출범하였다.

  • 6월 23일 - 서울중앙방송국의 해외 라디오 방송부문이 독립되어 '서울국제방송국'으로 출범하였다.

2.1.7. 7월[편집]

  • 7월 1일 - 종전의 남선전기, 조선전업, 경성전기 3개사가 통합해 한국전력으로 출범하였다.

  • 7월 3일 - 최고회의는 의장에 박정희 소장을, 내각수반 겸 국방부 장관에 송요찬을 각각 임명하였다.

  • 7월 4일 - 반공법이 제정되었다.

  • 7월 6일 - 북한이 소련과 상호 방위조약을 조인하였다.

  • 7월 9일 - 장도영 전 최고회의 의장 등 44명이 반혁명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 7월 11일 - 북한이 중국과 우호협력 상호 원조 조약을 맺었다.

  • 7월 12일 - 혁명재판소와 혁명검찰부가 활동을 개시하였다.

  • 7월 22일

    •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정부 기구가 1원 11부 1처로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경제기획원이 신설되었다.

    • 경제기획원은 종합 경제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2.1.8. 8월[편집]

  • 8월 2일 - 부정축재처리위원회는 89개 업체에 총 82억 1천만 환의 처분액을 통고하였다.

  • 8월 3일 - 노동조합 재조직을 허용하고, 기존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한 '근로자의 단체 활동에 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되었다.

  • 8월 4일

    • 정희섭 보건사회부 장관은 전국 단일 산별노조 건설방침을 천명하고, 어용화로 권익을 해쳤던 자 등은 관여말라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 군사정권에 의해 노조 재건 책임자로 임명된 9명을 중심으로 한 '한국노동단체재건위원회(일명 9인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8월 5일

    • 농어촌 고리채 신고 접수가 실시되었다. 이 접수는 9월 25일까지 진행되었다.

    • 김말룡 등 구 한국노련 간부들은 9인위원회의 노조 재건에 반발하며 '전국노동단체재조직연락위원회(이하 연락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8월 6일 - 정희섭 보건사회부 장관은 <노조 재건의 순수를 요구하며>라는 담화를 발표해 9인위원회를 사실상 지지하였다.

  • 8월 8일 - 9인위원회는 연락위 측이 차지한 노총회관을 접수하려 하였다.

  • 8월 9일 - 연락위 측은 보사부가 노동운동을 관제화하려 한다고 비난하였다.

  • 8월 10일 - 대한민국의 표준 시간이 종전보다 30분 앞당겨 변경되었다.

  • 8월 12일 - 박정희 의장은 "'정권 이양 시기에 관한 특별성명"을 골자로 한 8.12 성명을 발표하였다.

  • 8월 13일 - 소련과 동독이 서베를린으로의 망명을 막기 위해 베를린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 8월 15일 - 종전의 (구)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이 통합하여 '(신)농업협동조합'으로 출범하였다.

  • 8월 16일 - 전국섬유노동조합, 전국광산노동조합, 전국체신노동조합이 산별노조 형태로 재건되었다.

  • 8월 17일 -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산별노조 형태로 재건되었다.

  • 8월 18일 - 전국운수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19일 - 김말룡 연락위 위원장이 노동운동에서 은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 성명에서 보사부 당국이 일방적으로 9인위원회를 지지함으로써 민주 노동운동의 완전 말살을 기도했다고 비난하였다.

  • 8월 22일 - 전국화학노동조합, 한국전력노동조합이 산별노조 형태로 재건되었다. 그러나 한국전력노조는 위원장 김규선이 정부 지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성이 무효화되었다.

  • 8월 25일 - 혁명재판소는 고대생 피습 사건 관련자인 임화수에게 사형, 신도환에게 무기, 유지광에게는 징역 12년을 각각 선고하였다.

  • 8월 28일 - 혁명재판소는 민족일보 사건으로 구속된 조용수 등 관련자 4명에 대해 사형 선고를 내렸다.

  • 8월 29일 - 산별노조 연합체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새로 결성되었다. 같은 날 김말룡이 군사정권에 구속되었다.

2.1.9. 9월[편집]

  • 9월 13일 - '전국화학노동조합 국제상사 지부(이하 국제상사 노조)'가 결성되었다.

  • 9월 14일 - 혁명재판소는 사회당 사건 관련자인 최백근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 9월 15일 - 삼양식품의 전신인 '삼양제유'가 설립되었다.

  • 9월 17일 - 부정축재처리위원회는 공무원과 정당인에게 총 7억 2천 2백만 환의 부정축재 환수액을 통고하였다.

  • 9월 18일 - 콩고민주공화국 위기를 중재하기 위해 현지로 향하던 UN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가 비운의 항공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 9월 20일 - 혁명재판소는 최인규, 이강학, 한희석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 9월 21일 - 전국부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9월 22일 - 한국전력노동조합이 '전국전력노동조합'이란 이름으로 재결성되었다.

  • 9월 28일

    • 문교부는 서적 검열을 골자로 한 새 출판사 등록규정을 마련하였다.

    • 시리아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연방의 해체를 선언, 이집트와 시리아간의 국가연합인 통일 아랍 공화국이 해체되었다.

  • 9월 30일

    • 혁명재판소는 경무대 발포 사건 관련자인 곽영주와 홍진기에게 사형, 류충렬에게 무기를 내리는 한편 민통학련 사건 관련자 전원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 유럽경제협력기구(OEEC)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개편되었다.

2.1.10. 10월[편집]

2.1.11. 11월[편집]

  • 11월 11일 - 박정희 의장이 미국을 방문하여 12일에는 일본의 이케다 하야토 총리와, 14일에는 케네디 대통령과 각각 회담을 열었다.

  • 11월 16일 - 박정희 의장은 미국에서 군정을 필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였다.

2.1.12. 12월[편집]

  • 12월 중 - 원로 만화가들과 출판업자들로 구성된 자율심의기구 '한국아동만화자율회'가 발족되었다. 이와 동시에 아동만화 사전검열(만화 검열제)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 12월 8일 - 박정희 군정은 특별법으로 혁명과업 수행 방해죄를 신설하였다.

  • 12월 16일 - 한국무용협회가 창립되었다.

  • 12월 17일 - 인도포르투갈령 인도 식민지인 고아, 디우, 다만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했다. 포르투갈 식민지는 다음날 항복했고, 이들 식민지는 바로 인도에 흡수되었다.

  • 12월 18일 - 한국미술협회가 창립되었다.

  • 12월 21일 - 곽영주, 최인규, 조용수, 임화수, 최백근 등 5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 12월 22일 - 학사자격 국가고시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 12월 30일 - 부정축재처리위원회는 부정축재액을 30명에게 총 4백 22억 8천만 환으로 최종 통고하였다.

  • 12월 31일

    • 서울텔레비전방송국은 텔레비전 방송(KBS-TV)을 개시하어 저녁 6시부터 10시 반까지 4시간 반의 방송을 했다.

    • 한국문인협회가 창립되었다.

    • 전후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에게 무려 120억 달러의 거액을 지원하여 유럽의 재건을 앞당겼다. 역시 천조국

2.2. 가상[편집]

3. 탄생[편집]

3.1. 실존인물[편집]

3.2. 가상인물[편집]

4. 사망[편집]

4.1. 실존인물[편집]

4.2. 가상인물[편집]


5. 데뷔[편집]

5.1. 가수[편집]

5.2. 만화계[편집]

  • 오원석 - <따개비>

  • 윤영옥

  • 장은주 - <장미의 눈물>

6. 달력[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