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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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uwon_Samsung_Bluewings.svg.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8 시즌 스쿼드

감독 서정원 · 코치 이병근 · GK 코치 이운재 · 1군 코치 최성용 · 2군 코치 김태영 · 피지컬 코치 하혁준

1 신화용 · 2 송준평 · 3 양상민 · 4 김은선 · 5 조성진 · 7 바그닝요 · 8 조원희 · 9 박기동 · 10 데얀 · 11 임상협 · 13 박형진
· 14 한의권 · 15 구자룡 · 16 이종성 · 17 김종우 · 18 김종민 · 19 최정훈 · 20 곽광선 · 21 노동건 · 22 사리치 · 23 이기제 · 24 박종우
· 25 최성근 · 26 염기훈 · 27 장현수 · 28 유주안 · 29 박지민 · 30 윤용호 · 31 김선우 · 33 홍철 · 35 장호익 · 41 강봉균 · 42 송진규
· 44 김민호 · 55 박준형 · 66 김태환 · 70 주현호 · 77 조지훈 · 88 김준형 · 93 신세계 · 99 전세진 · - 신상휘

* 이 틀은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스쿼드에 변동이 생기면 두 틀 모두 수정해주시길 바랍니다.
* 타 팀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서정원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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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 현재

1대
김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대
차범근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3대
윤성효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4대
서정원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행
이병근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역대 주장

박건하
(2001)

서정원
(2002)

김진우
(2003)


서정원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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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

FW
황선홍

FW
최순호

MF
김주성

MF
신태용

MF
유상철

MF
서정원

DF
최강희

DF
김태영

DF
홍명보

DF
박경훈

GK
신의손




1999 K리그 베스트 XI

FW
안정환

FW
샤샤

MF
서정원

MF
고종수

MF
데니스

MF
고정운

DF
강철

DF
김주성

DF
마시엘

DF
신홍기

GK
이운재

2001 K리그 베스트 XI

FW
우성용

FW
산드로

MF
신태용

MF
서정원

MF
송종국

MF
남기일

DF
우르모브

DF
김현수

DF
김용희

DF
이영표

GK
신의손

2002 K리그 베스트 XI

FW
김대의

FW
유상철

MF
신태용

MF
이천수

MF
안드레

MF
서정원

DF
김현수

DF
김태영

DF
최진철

DF
홍명보

GK
이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10주년 베스트 XI

FW
샤샤

FW
나드손

MF
데니스

MF
김두현

MF
고종수

MF
김진우

MF
서정원

DF
최성용

DF
박건하

DF
이병근

GK
이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주년 레전드

18
박건하

13
산드로

14
서정원

22
고종수

29
곽희주

7
김진우

3
이병근

1
이운재

11
데니스

12
나드손




Suwon Samsung Bluewings FC

파일:169339_203835_0010.jpg

이름

서정원
徐正源 | Seo Jung-Won

출생

1969년 12월 17일 (48세)/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군[1]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신체

173cm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2]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안양 LG 치타스(1992~1997)
상무 축구단(1994~1995 / 군 복무)
RC 스트라스부르(1997~1998)
수원 삼성 블루윙즈(1999~2004)
SV 잘츠부르크(2005)
SV 리트(2006~2007)

감독

대한민국 U-20팀(2009~2010 / 전력분석)
대한민국 U-23팀(2009~2010 / 전력분석)
대한민국 대표팀(2010~2011 /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2012 /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2013~ )

국가대표

88경기 16골(대한민국 / 1990~2001)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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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1, 14

별명

세오[3], 날쌘돌이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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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약 유럽으로 일찍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사진은 1998 월드컵 벨기에전.

축구수도를 이끄는 감독[4]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3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을 맡고 있다.[5]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2.1.1. LG 치타스/안양 LG 치타스 시절[편집]

1992년 LG 치타스 소속으로 프로팀에 데뷔하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FC 바르셀로나, 바이어 04 레버쿠젠 등의 팀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으나, 당시 군대 문제 및 LG 치타스의 소극적인 이적 태도 때문에 해외리그 이적에 실패하였다. 이때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던 데트마어 크라머도 재능을 알아보고 독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놈의 군대 문제.[6] 그리고 그걸 해결하고 왔더니 안양 LG가 징징거리면서 선수를 놔주지 않았다.

참고로 크라머는 레버쿠젠에서 차범근을 지도했고 바이에른 뮌헨을 분데스리가 우승에 올려놨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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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는 벤피카에서 영입 제의가 있었고 실제로 벤피카 소속으로 훈련을 같이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벤피카는 서정원이 월드컵 아시아예선에 출장하지 않기를 희망하였으나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던 차범근 감독은 국가대표로 호출하고 싶어서 벤피카 이적은 서정원이 속고 있는 것이라고 언론사에 주장하였다. 그래서 당시 한국 방송국과 신문사는 차범근의 말을 믿고 서정원이 벤피카에 입단을 구걸하러 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흠좀무

그로 인해서 최종적으로 대한축구협회에서는 국가대표 콜업을 거부한 이 건으로 인해 서정원에게 미운 감정을 가져서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해 주지 않아서 이적이 무산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벤피카의 레전드 에우제비우홍명보를 만나면 서정원의 안부를 매일 묻는 것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벤피카의 9번 배번을 받고 정식으로 이적이 될 뻔한게 맞던 것이었다. 전지 훈련도 같이 한 것도 그런 맥락. 그래서 서정원의 팬들은 차범근 감독을 싫어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차범근과 서정원은 고려대 선,후배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그리고 수원 삼성에서 감독과 선수로도 잘 지냈다. 그리고 서정원은 가끔 차두리와 장난치는 모습도 언론에 포착되었다. 2016년 K리그 FA컵 우승을 서정원이 일궈냈을때는 시상대에서 차범근이 그를 꼬옥 안아줬다!

2.1.2. 르 샹피오나 진출[편집]

대신 시간이 지나고 이적료 110만 달러에 프랑스 르 샹피오나RC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하여[7] 당시 이 금액이 파격적인 금액이라서 안양 LG도 승락 더군다나 당시에는 르 샹피오나 리그가 유에파 랭킹 2위였다. 12경기에서 4골을 넣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며 당시 강등권이 돼서 서정원을 급하게 영입한 스트라스부르의 강등권 탈출에 일조했다. 그런데 서정원이 스트라스부르로 영입됐던 때 리그 경기가 12경기 남았을 때였는데, 그 적절한 시기에 12경기를 모두 출전했고 팀의 상승세를 주도해 일약 스타로 떠오르며 다음 시즌 배번 11을 받았다. 여담으로 서정원은 프랑스 리그 데뷔전이었던 올림피크 리옹 전에서 데뷔골을 넣었고, 지롱댕 보르도 전에서는 당시 보르도의 신예 윙어 키키 무삼파와 서로 1골씩 주고 받으며 4-4 경기를 연출하기도 했다.[8]

당시 스트라스부르의 감독이 뒤게페로(Jacky Duguépéroux)를 거쳐서 르네 지라르[9]였다. 그러나 지라르가 다음 해에 프랑스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가면서 감독이 바뀐 후 아시아 선수라는 이유[10]로 기용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서정원을 기용하지 않자 구단 수뇌부도 서정원에게 스위스 리그에 강팀으로 임대가는게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당시에 본인 폼이 좋았던건 알았던 서정원은 거부. 실제로 그럴만도한게 당시에 잘 나가는 스트라스부르의 핵심 선수들이 서정원, 올리비에 다쿠르, 이스마엘 정도였다.[11] 서정원이 한국으로 왔을 때도 스트라스부르 서포터들이 편지를 보내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후로 팀은 부진에 빠져 결국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DTD그 시즌을 벤치에서 보냈으며,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도 발렌시아 C.F., 바이에른 뮌헨의 오퍼가 있었지만 에이전트의 업무미숙(...) 때문에 K리그로 복귀하게 된다. 이때 수원 삼성이 해외에서 다시 불러주면 돌아가는 조건으로 서정원의 마음을 열게 된다. 더군다나 안양 LG 시절에는 서정원의 해외진출을 그렇게 막았으니.. 하지만 십자인대 부상으로 그 꿈은...

2.1.3. K리그 복귀, 그리고 K리그판 유다 신드롬[편집]

비록 해외 진출 때 잡음이 있긴 했지만, 많은 축구팬들은 서정원이 친정팀인 안양 LG 치타스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정원은 데뷔 때부터 해외진출에 관해 안양 LG 프런트와 충돌이 잦아서 좋지 않은 감정이 많았고, 수원에서 다시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는 조건으로 당시 최전성기를 달리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소속을 바꾸게 된다. 이때부터 안양 LG와 수원 삼성간의 감정섞인 K리그 최고의 더비가 시작된 계기가 됐다. 그런데 수원에게 약속 받았던 해외진출은 K리그 복귀 후 십자인대 부상으로(...)

여기서 좀 웃긴 점은 사실 서정원이 활약하던 시절은 LG 치타스에서 안양 LG 치타스로 바뀌고도 동대문 운동장을 쓰던 시절이라 실제로 서정원이 안양에 잔디를 밟은 기간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당시 서포터스 문화가 처음 들어오고 유럽에서는 이런 경우 선수에게 안티활동도 한다던데 우리도 해보자 이런 의식에 영향을 받아 안양 LG 서포터에서 순혈로 입단해 10년 이상 활약하다 이적한 것도 아닌 선수의 이적에 화형식 퍼포먼스 등 오바한 사례가 되겠다

KBS 스포츠 다큐 '승부' - 슈퍼매치의 한가운데에 서다 근데 이거 ㅅㅇ더비보다는 지지대 더비에 더 맞는 얘기인데?? 당시 서정원은 안양 LG로 복귀하는 조건으로 안양 LG에서 서정원에게 준 50만 달러(당시 약 7억원) 반환청구소송에 피소됐다. 결국 서정원이 패소하면서 그 금액을 안양 LG에게 돌려줬다. 그 정도로 서정원과 안양 LG와의 관계는 험악했다. 또한 서정원은 프랑스에서 뛰면서 보스만 룰 사례나 에이전트(당시는 '매니저'로 표현) 제도를 접하면서 그동안 기존에 K리그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관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1999년에 수원 삼성으로 복귀한 이후 전 소속팀 안양을 상대로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넣는 등 맹활약하여 K리그 2연패, AFC 챔피언스 리그 2연패[12], FA컵 등 많은 우승컵을 수원 삼성에 선사했다. 아시안 수퍼컵의 마지막 대회에서는 알 샤바브에서 우승컵을 뺏길 뻔 했으나 그 어려운 중동에서 서정원이 2골을 몰아붙이면서 수원에게 우승컵을 가져다 주는 등 소위 폭발할 때 미친 활약을 했다. 특히 2003년 안양과의 라이벌전에서 넣은 골은 김○○기자의 K리그 베스트 골 5에도 선정될 정도로 멋진 골이였는데 이 골로 인해 안양은 0:2 패배하여 결국 수원과 서정원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더 강해지는 계기가 됐다.

2001, 2002, 2003 수원 팬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

2.1.4.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진출[편집]

파일:attachment/Seo_Ried.jpg

2005년에 은퇴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13] 오스트리아 SV 잘츠부르크로 축구 연수를 겸해서 자유계약으로 이적하였는데 이게 의외로 대박이었다.

잘츠부르크에서 12경기 2골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올렸고, 다음 해에는 SV 리트로 이적하여 리그에서 7골을 기록하면서 막 2부에서 올라온 팀을 인터토토컵 종합우승을 거두게 하면서 UEFA 컵에까지 출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덕분에 오스트리아 유명 일간지 <쿠리어>나 <슈포르트보헤>지에서 2년 연속 최우수 외국인선수로 선정[14]됐다. 그 활약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1·2부리그 팀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으나 나이와 지도자 공부 문제로 은퇴하였다. 은퇴 직전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있던 은사 김호 감독이 선수로 뛰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 만약 그랬다면 수원팬들의 전투력이 상승했을지도?!

서정원의 말년 활약 때문에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가 K리그보다도 훨씬 수준이 낮은 것 아니냐고 비하하는 의견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서정원의 K리그 마지막 시즌은 원래 포지션이 아닌 윙백으로 차범근이 출전시켜서 골 기록이 없었던 것이고 오스트리아에서도 SV 리트로 이적한 뒤에야 원래 포지션인 윙어로 뛸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진출 첫해인 SV 잘츠부르크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다. 잘츠부르크에서 계약 기간이 끝나고 라피드 비엔나등의 우승 후보 팀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승격팀인 SV 리트의 감독이 서정원을 계속 찾아와서 공격적인 윙어로 확실히 쓰겠다고 못을 박았다. 삼고초려 그리고 그 해 SV 리트는 강등 예상팀이었는데 무려 4위로 시즌 마감. 그리고 이 감독은 레드 불 잘츠부르크에 기술고문으로 가면서 파스칭의 새 감독이 부임했고 이때는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또한 서정원 외에 강철, 최성용, 노병준 등 K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오스트리아에 진출한 적이 있지만, 이들 중 서정원처럼 센세이션을 일으킨 선수는 없다. 그리고 요즘은 황희찬의 활약이 좋을 때마다 다시 서정원과 오스트리아 리그의 수준을 논하는 글들이 축구커뮤니티에 올라오지만 유에파 순위와 상관없이 서정원이 활약하던 시절은 그래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오스트리아 리그로 이적해서 1-2년 뛰다 은퇴하거나 더 좋은 리그로 이적하는 이름값있는 선수들이 많아서 지금보다는 질적으로 스쿼트가 좋았다. 당시에는 동유럽에 명문 구단 선수들도 은퇴전에 오스트리아에서 활약했다. 예를 들어 서정원이 활약하던 시절에는 레드불 잘츠부르크의 선수로 알렉산더 치클러(Alexander Zickler)나 토마스 린케(Thomas Linke)처럼 바이에른 뮌헨 팬이라면 모를리 없는 선수들과 니코 코바치(Niko Kovač) 그리고 얀 콜러와 장대 축구의 스트라이커로 유명했던 브라티슬라프 로크벤츠(Vratislav Lokvenc)등이 있다. 송종국과 페예노르트에서 활동하던 토마스 종사(Tomasz Rząsa)도 말년에 오스트리아로 진출해서 서정원과 같은 소속팀에서 활동했다.

이렇듯 서정원이 활동하던 2000년대 초반에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는 유럽 클럽 랭킹 10위권 중순을 하기도 했었다. 이 정도는 스위스 리그라든지 유럽에서 상위리그 급이었다. .(서정원이 K리그에서 진출했던 SV 잘츠부르크는 93~94시즌에 유로파리그 전신인 유에파컵 준우승(인테르가 2-0으로 이겨 우승)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후에 좀 추락하여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리그 랭킹 20위권 초반을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했다. 그리고 과거와는 다르게 현재 오스트리아 리그는 독일인 출신 노장 선수들도 2부(2.Bundesliga) 출신이다. 10년전에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독일 1부 선수들이 활동했다. 당장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유명한 레드 불 잘츠부르크의 스쿼트를 봐도 웬만한 축덕들에게도 생소한 스쿼트다. 과거에는 오스트리아 리그에 갔던 한국인도 K리그에서 프로 경력을 쌓았던 선수들이 진출했지만 지금은 프로 경험이 없었던 황희찬과 이진현 같은 젊은 선수들이 진출해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10전과 지금의 리그 수준 차이가 커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리그 수준을 논하기 전에 서정원의 적응력이 뛰어난건 인정할 수 밖에 없고. K리그 시절에는 심판들 능력이 좋지못해서 주력이 빠른 서정원의 골들이 오프사이드로 처리된게 많았다. 반면 유럽 축구는 그런 것도 없고



리그 잔여 경기가 12경기 남은 상태에서 SV 잘츠부르크로 선수 겸 코치로 이적해서 12경기를 모두 출장하고 2득점 했다. 자신의 포지션이 아닌 중미로 활약하며 잔류를 확정지었고 SV 잘츠부르크는 다음 해의 레드 불 잘츠부르크로 탄생했다.SV 잘츠부르크의 처음이자 마지막 멤버가 되었다.









SV 리트에서 2년 활약하면서 리그에서 총 9골을 득점했다. 마지막 시즌은 윙백으로 활약해서 골이 적다 카더라 리그 마지막 헤딩 골은 링크에 없다. 혹시 가지고 있는 위키러는 업로드 바란다. 서정원 감독님 가족만 가지고 계실듯 또한 컵대회와 FA컵에서의 골 장면들도 포함되지 않았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으며, 그 때 잠시 함께한 데트마어 크라머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 국가대표 A대표팀으로 1994년, 1998년 월드컵에 출전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스웨덴전에 득점하고 이름을 알렸으며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라운드 1차전인 스페인전에서 1-2로 뒤지고 있던 후반 45분에 홍명보-황선홍의 1:1 패스 후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은 뒤 홍명보의 패스를 받아 동점골을 넣기도 했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골 1위로 꼽히는 명 장면이기도 하다.

1997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헤딩 동점골을 넣으며 도쿄 대첩의 시작을 알렸다.

그런데 정작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팀의 추락과 함께 서정원 역시 눈에 띄는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서정원 본인의 사정도 있었는데, 프랑스로 출국하기 전 수두에 걸린 아들을 안아주다가 그만 아들의 수두가 옮아버려 비행기도 선수단과 따로 타는 등 전혀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것.

또한 2002년 월드컵의 멤버를 선정할 때는 십자인대 부상 후유증이 있었고 소속팀인 수원 삼성의 김호 감독도 히딩크 감독에게 국가대표로 선발해서 출장시키지 않을거면 선발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히딩크의 자서전인 마이웨이에는 최종 엔트리에 선발하지 않아서 아쉬웠던 멤버를 몆명 적었는데 그 중에서 서정원의 이름도 언급했다.

2006년때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노장 투혼을 하자 한때 대표팀에 선발하자는 여론도 형성되었다. 국가대표 통산 기록은 87경기에 출장하여 16골을 기록하였다.

여담이지만 당시 이 골로 인해 이근호보다 먼저 "월드컵에서 골을 기록한 선수 중 가장 연봉이 적은 선수"라는 씁쓸한 칭호가 붙었다. 1990년 병장 월급이 9,400원이니 진짜 작은 셈. 이근호는 서정원에 비하면 고액 연봉이다. 아니, 그 전에 물가상승률을 고려해야(...) 그 당시 서정원은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도중 대표팀에 소집되었다.[15]

3. 플레이 스타일[편집]

100m를 11초에 끊는 준족의 빠른 스피드를 활용 좌우측 측면을 휘젓는 플레이를 선호하며 체력이 좋아서 가끔은 윙백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90분 내내 미친듯이 움직였다. 한국의 윙 스페설리스트 계보를 이을 만한 선수.[16] 특히 1994년 월드컵 당시 스페인전과 독일전에서 보여준 플레이가 백미.

또한 가끔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넣기도 하는 등 발을 활용한 능력은 나이를 먹어도 최고 수준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스피드가 죽자 맨유의 라이언 긱스처럼 중앙과 측면으로 움직이며 상대 수비수를 속임수로 벗겨먹는 플레이를 선호하였으며 K리그 말년에는 차범근 감독 부임 이후에 윙백으로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진출 이후에는 SV 잘츠부르크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다가 SV 리트로 이적, 자신의 원래 포지션인 윙으로 돌아가서 2년 더 활약하다 은퇴했다. 그 후 아마추어로 오스트리아 린츠에 있는 3부 리그 팀에서 잠시 뛴 거 같긴 하다.

4. 지도자 경력[편집]

5. 이야깃거리[편집]

  • 자기소개서 형식으로 작성된 인터뷰에서 TWICE 이라는게 드러났다. 딴 감독들이야 아이돌 아닌 이승철, 임창정을 써내거나 요즘 아이돌을 써놓되 "애들이 좋아한다"라고 했지만 이 분은 그런거없이 딱 트와이스라고 써놓았다. 물론 댁의 세 명이 아들들이라 애들이 좋아해서 썼을 수도 있다

  • 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는 정원을 가꾼다고 한다. 감독이 된 지금도 , 담배는 물론 탄산음료까지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꾸미는 스타일

  • 아들인 서동한 역시 축구선수인데, 2018년 현재 매탄고 2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다.다만 아버지와 다르게 폭팔적인 스피드의 윙어가 아니라 공격 형 미드필더 또는 중앙 미드필더라고 한다.서정원의 폭팔적인 스피드를 좋아하던 아재,줌마 팬들은 뭔가 아쉽다!?

[1] 광주군의 시 승격은 2001년.[2]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3] 프랑스 르샹피오나 시절 성인 SEO를 프랑스식으로 읽은 별명[4] 빅버드 소개멘트[5] 2018년 8월 27일 구단에 자진사퇴 의사를 전달했지만, 아직 구단에서는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직 감독은 서정원이 맞지만, 경기준비 등을 위해 임시로 이병근을 감독대행을 맡겼다는 얘기. 자세한 내용은 기사 참조. 기사 같은해 10월 15일에 복귀했다.[6] 1994 FIFA 월드컵 미국 당시 국군체육부대 이등병이었다.[7] 원래는 릴 OSC 스카우터가 애정을 표현했지만 릴은 당시 2부 리그에 있어서 선수가 거부. 그러자 아깝다며 자기 친구가 일하는 스트라스부르에 연락을 해서 "저 선수 아까우니 니가 관찰해봐라"해서 이적이 성사되었다.[8] 참고로 무삼파는 말년에 노쇠해서 K리그 왔다가 망했다. 그 후 이근호를 영입하려던 빌렘이 무삼파를 영입했다가 역시 망했다. 결국 빌렘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했다.[9] 몽펠리에를 2011-12시즌 리그앙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그 뒤 2015년까지 릴 OSC 감독이었다.[10] 감독이 외국선수는 아프리카 선수만 고집하면서 서포터들에게도 욕을 먹었다. 이 때 바뀐 감독이 바로 피에르 만코프스키 (Pierre Mankowski) 카메룬 국대 감독이었던 양반인데 결국 최후의 결과는 좋지 못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만코프스키가 한국에 왔을때는 아시아 선수들이 좋다며 뻔뻔하게 립서비스를 했다. 이 새끼가[11] 올리비에 다쿠르는 AS 로마로 이스마엘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니 납득이 간다.[12] AFC 챔스의 전신 중 하나(FA컵과 리그컵 우승팀이 나가던 아시안 컵 위너스 컵이 합쳐졌기 때문)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2000~2001)으로 이 대회 마지막 우승도 수원이 거뒀다. 참고로 이전 글에선 아시안컵 위너스 컵 우승이라고 잘못 적혔는데 이 컵에서 한국 클럽팀은 준우승만 3번 했을뿐, 우승한 적은 없었다.[13] 1998 월드컵 직후부터 노장 소리를 들어왔고 2002년에는 플레잉코치를 권하는 등 국내에서 가장 오랫동안 '노장'소리를 들어온 선수로 불러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14] 놀랍게도 이 시절 몸 상태가 20대 중후반 정도였다고. 마침 대표팀의 주전 윙어였던 설기현역주행 사건으로 한창 욕을 먹던 시기였던지라 일부 축구 사이트에선 독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설기현 대신 서정원을 넣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까였던 설기현은 프랑스 전에서 동점골 어시스트를 했으니 뭐... 아니다. 정확히 독일 월드컵 프랑스 전 박지성 골은 설기현이 올려준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해준 조재진의 어시스트 다. [15] 공식적으로는 상무 소속이었다. 방위병이었는데 어째서 상무 소속이었냐하면 다른 선수들은 전부 입대시 상무 지원이었지만 서정원만은 방위병-상무 파견 형식이었기 때문. 그래서 방위병의 주말경기 출전이 가능했던 94년, 95년에 각각 4경기씩 안양 소속으로 리그 경기를 뛸 수 있었다.[16]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윙어들이 강한 편이었는데 그 이유로는 빠른 스피드와 체력(을 빙자한 정신력)이었다. 차범근-원래 윙포워드로 시작했다-, 고정운, 하석주 등등... 하지만 히딩크가 온 이후로 우리나라 선수 체력 좋다는 이야기는 쑥 들어감. 애당초 한국은 전통적으로 키와 파워를 지닌 대형 포워드를 선호했고(황선홍, 최용수, 김도훈 등등) 양사이드 무한 크로스-헤딩골이 주요 공식이었다. 그런 영향으로 한국 국대는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설기현, 이천수 등 뛰어난 윙어가 꾸준히 나왔으나 요샌 전방의 대형 스트라이커 실종과 맞물려 윙어도 이청용, 이근호 등으로 근근히 이어가는 수준이다. 사실 체력이 좋았다기보다는 정신력으로 많이 뛰던 시절이었다. 즉 강한 정신력으로 많이 뛴다 - 얘네들 체력이 좋네? - 실상은 체력 저하 때문에 경기 내에서 기복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