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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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유도.png   KIA 타이거즈 소속 현역 내야수 박찬호에 대해서는 박찬호(내야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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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11일 시카고 컵스와 벌인 경기에서
개인 첫 완투승을 기록하는 순간.

2014년 올스타들이 쏘아 올린 '전설 박찬호.'

이름

박찬호 (朴贊浩 / Chanho Park)

생년월일

1973년 7월 28일[1] (44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남도 공주시[2]

본관

충주 박씨

신체

185cm, 95kg, O형

가족

아내 박리혜, 슬하 3녀

출신학교

공주 중동초등학교
공주중학교
공주고등학교
한양대학교(경영학 학사[3])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아마추어 자유계약(LA 다저스)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4~2001)
텍사스 레인저스 (2002~2005)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5~2006)
뉴욕 메츠 (200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8)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9)
뉴욕 양키스 (2010)
피츠버그 파이리츠 (2010)
오릭스 버팔로즈 (2011)
한화 이글스 (2012)

응원가

지누션 - A Yo[4]
서진필 - 사나이 순정[5]

공식 홈페이지

http://www.chanhopark61.com/

1. 등번호2. 개요3. 생애
3.1. 유년기3.2. 선수 경력3.3. 은퇴 이후
4.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5. 플레이 스타일
5.1. 박찬호는 정말 100마일을 던진적이 있는가?5.2. 투구폼
6. 이야깃거리
6.1. TV활동
6.1.1. CF
6.2. 역대 연봉6.3. 읽을거리6.4. 가족6.5. 작품 속 박찬호6.6. 자서전6.7.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
7. 주요기록
7.1. 좋은 기록들7.2. 영 좋지 않은 기록들
8. 말말말9. 연도별 성적

1. 등번호[편집]

LA 다저스 등번호 61번

얼 로빈슨(1958)

박찬호(1994~2001,2008)

조시 베켓(2012~2014)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61번

제임스 허스트(1994)

박찬호(2002~2005)

케빈 리차드슨(2009)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번호 61번

-

박찬호(2005~2006)

닉 헌들리(2008)

뉴욕 메츠 등번호 61번

제프 던컨(2003)

박찬호(2007)

리반 에르난데스(2009)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61번

케인 데이비스(2007)

박찬호(2009)

션 오설리반(2014~2015)[6]

뉴욕 양키스 등번호 61번

로이스 링(2010)

박찬호(2010)

스티브 개리슨(2011)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등번호 61번

션 버넷(2004~2008)

박찬호(2010)

제프 로크(2011)

오릭스 버펄로스 등번호 61번

-

박찬호(2011)

-

한화 이글스 등번호 61번

-

박찬호(2012)

김주(2013)

2. 개요[편집]

No.61

코리안 특급

Too Much Talker

한국의 前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 선수이자 KBO 국제홍보위원. 역대 두 번째 아시아인 메이저리거[7]이다. 불같은 강속구[8]와 낙차 큰 커브로 '코리아 특급'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한때 다저스의 1선발 에이스[9]까지 올라갔던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100승을 달성한 투수. 2001년에는 다저스의 개막전 선발이었다.[10]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큰 이력을 남긴 역대 최강의 투수.[11] 또한 한국인 야구선수로서 최초로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때린 타자이기도 하다.[12][13]

주무기는 빠른 강속구와 파워 커브, 슬로 커브, 슬러브. 특히 파워 커브는 메이저 최고의 명품 구질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14] 그 외 오렐 허샤이저에게 전수받은 투심도 상당히 인정받고 있다.[15] 박찬호의 커브는 2000시즌과 2001시즌 2년 연속으로 메이저리그 단장과 감독들 선정 최고의 커브 부문 3위를 했을 정도로 대단한 구질이었다. 그리고 내야수(3루수) 출신답게 수비 실력도 훌륭한데, 특히 번트 대처능력은 귀신급.

게다가 저 기록들은 이른바 스테로이드 시대[16]에 세운 기록이라 더욱더 빛난다.

2005년에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딸 셋을 두고 있다. 부인은 박리혜 씨로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인 미국 CIA(보통 당황하기 쉽지만 예전에 다큐멘터리에도 나왔다...)를 졸업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유명한 부자의 딸로 박리혜가 상속받은 재산이 1조가 넘는다.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과 같은 은퇴해도 바로 명예의 전당에 들 수 있는 레전드급 투수들 때문에 대체로 빛을 잃기도 했지만, 전성기 때는 리그에서도 1~2선발급 실력을 보유했던 선수이다.[17][18][19]

탈삼진의 경우, 랜디 존슨에 이은 2위[20]를 마킹한 시즌이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LA다저스가 아닌 리그 중위권 수준의 팀에서 활약했을 시, 에이스로 활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다저스의 1선발은 아니었지만 1선발급 수준이었다고는 주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 어차피 투수의 탈삼진 능력에 부여하는 개개인의 평가는 상당히 다양하고 똑같이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이하는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타격도 투수치고는 상당하여 통산 3홈런을 기록하였고, 번트가 특히 정교한 편이었다. 2006년엔 시즌 중반까지 3할 초반대의 정교한 타율을 기록하면서 내셔널리그 실버슬러거 투수부문 컨텐더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었다.[21] 이 해에 박찬호는 선발투수로 풀시즌을 보냈음에도 대타로 2번 등장하여 한 번은 무사 1루에서 희생번트를 기록했고, 나머지 한 번은 연장전에서 2사 주자없을때 펜스앞에서 잡힐정도로 큰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을 정도. 그외 A.J 버넷의 99마일 직구를 깨끗하게 받아쳐서 안타를 만들었다거나, 브랜든 웹을 상대로 3타수 3안타 2타점을 올렸다거나 한 일이 모두 2005~2006년 즈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박찬호와 비슷한 수준의 통산 커리어를 보유한 선수로는 노모 히데오로 실제로 선수 간의 커리어 유사성을 비교하는 Similarity Score가 952점으로 서로에게 가장 높은 점수다.

3. 생애[편집]

3.1. 유년기[편집]

1973년 7월 28일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전파사[22]를 하던 가정의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는지 교사의 추천으로 공주중동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23]

공주중학교 3학년 시절 투수로 포지션을 바꿨고, 공주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어려웠던 집안 사정상 그렇게 배불리 먹지는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 야구선수로 성공하겠다는 다짐으로 타석에 들어섰을 때 공에 대한 공포를 견디기 위해 스스로 공동묘지에 가서 담력훈련 겸 스윙훈련을 했다는 얘기는 요즘도 종종 회자되곤 한다. 또한 하체단련을 위해 공주산성을 토끼뜀을 하며 오르내렸다는 트레이닝 일화가 유명하다.[24]

3.2. 선수 경력[편집]

박찬호/선수 경력 항목 참조.

참고로 출국 당시 에피소드가 있다. LA 다저스와 계약을 하고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 공항으로 몇명 안되는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배웅을 나왔다.

박찬호: 제가 백억을 벌어서 오겠습니다.
기자들: 백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찬호: 아 농담한건데 너무 심하네ㅋㅋㅋㅋㅋㅋㅋ
모두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찬호 답지 않게 두마디로 끝났다.

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이 아이는 몇 년 후에 코리안 빅 맥이 됩니다 100억이 아니라 1000억을 벌어 왔다. 연봉이 백억을 훌쩍 넘었다.

3.3. 은퇴 이후[편집]

  • 샌디에이고시절 도움을 받았던 구단주와의 친분으로 지도자 수업보다 구단경영에 관심을 가져서 미국으로 구단 경영수업을 받으러 갈 거라고 한다.진짜 박사장을 볼날이 머지 않았다. 차기 한화이글스 구단주.

  • 친한 사이인 배우 차인표의 권유로 SBS땡큐라는 토크프로그램에 공동 MC가 되었다. 추석특집으로 파일럿으로 혜민스님편이 반응이 좋아서 정규프로그램으로 승격이 되었다. 매주 한국사회의 저명한 인사들을 캠프로 초청하여 하나의 테마를 바탕으로 그들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주는 힐링프로그램성격의 토크프로로, 워낙 굴곡진 선수생활을 많이 겪고 이겨낸 박찬호의 인생경험과 철학이 그대로 토크에 녹아 있어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었다. 첫 회 게스트로 만화가 이현세와 사진작가 김중만이 나와서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이제는 매주 금요일 방송했으며 반고정으로 출연했다. 프로는 개편때 시청률 저조로 폐지되었다.

  •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송재우 해설위원과 함께 JTBC의 한국전 중계 해설을 맡았다. 최고의 투수답게 매 상황마다 선수의 상태나 개인적인 경험 등을 살려 좋은 해설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번은 투수가 어떤구질로 승부할지 예측했는데 그게 그대로 이루어져 역시 박찬호라는 찬사도 받으면서 성공적으로 해설가의 길로도 안착했다. 중간 중간 소강상태때마다 해주는 메이저리그 뒷얘기라고 쓰고 피아자 디스[25]는 덤. 거기에 피처 까지. 하지만 대표팀은 1라운드 탈락

  • 2012년에 유한양행 삐콤씨와 한화생명[26] 광고에 출연. 삐콤씨의 "궁금해 박찬호", "하루 두 알"이라는 구호와 대한생명 광고에서 (아내:야구 관두면 뭐하고 살까?)아내의 말에 콕콕!! (감독:어째 공이 예전과 다르다?)감독의 말에 콕콕!! 대충대충 인생살게?! 콕콕짚어 인생설계!! 라는 랩을 구사하며 프로야구 광고 때마다 등장하여 깨알같은 웃음을 주고 있다. 하지만 코코몽한테 발린건 안자랑[27] 워낙 건강하고 믿음직한 성실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광고에서 그를 계속 볼수 있을것 같다.

  • 2013년 메이저리그 NLCS 시리즈 3차전 다저스 홈경기에 등판하는 류현진을 응원하러 다저 스타디움을 찾았다.[28]

  • 2014년 5월 27일(미국시각 기준) 다저스 구단에서 개최된 한국의 밤 행사 기념으로 나타나서 경기 전에 한시간정도 팬들과 싸인회를 가졌고 시구를 했다. 포수는 류현진. 그리고 시구 버프를 받은 다저스는 그날 경기에서 승리했다. 시구영상 이날은 관람객들에게 류현진 바블헤드를 주는 날이기도 했는데 묘하게도 바블헤드는 류현진을 별로 닮지 않았고, 오히려 얼굴에 펜으로 수염을 그리면 오히려 박찬호와 많이 닮는다.

  • 2014년 시즌 중반부터서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2014년에 은퇴식이 열린다는 소리가 돌았는데 결국 선수협에서 박찬호의 은퇴식이 없었다는게 마음에 걸렸는지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2014년에서 은퇴식이 열리는걸로 확정이 되었다. 대체로 프로야구와는 인연이 깊진 않았지만 한 때 한국 야구인으로서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여론. 다만 올스타전이 아니라 연고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올스타전이 열리는 경기장이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인지라, 광주광역시기아 타이거즈와 연고가 없는 박찬호가 이 곳에서 은퇴식을 여는 것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29] 올스타전에 비가 오고 있었지만 은퇴식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되면서 박찬호는 공식적으로 야구를 은퇴하게 됐다.

  • 2014년 8월 미국에서 열리는 리틀 야구 월드 시리즈에서 한국 대표팀 대 푸에르토 리코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시구를 하고, 대표팀 선수단을 격려했다.

  • 2012 시즌, 박찬호의 한화 시절 선발 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선 오재원은 평범한 땅볼을 쳤는데 발에 맞았다고 주장, 파울 판정을 받아낸 사례가 있었다. 그 후에 볼넷으로 출루. 박찬호는 이 일로 단단히 화가 나서 경기가 끝나고 두산 김진욱 감독과 벤치에 항의하고 오재원에게 사과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뒤 인천 아시안 게임기간 동안 SBS에서 특별 해설로 나선 박찬호는 국가대표팀 선발출장을 한 오재원을 보고 이 일을 얘기하면서 극딜을 했다.#,네이버 영상 1시간 51분 이후 참고 아프리카 고화질 영상 1:43 이후 참고 허나 오재원은 이에 대해 인터뷰에서 분명히 공에 맞았으며, 박찬호에게 사과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박찬호 같은 대선배를 상대로 헐리우드 액션을 할 배짱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후 엠엘비파크에서 리플레이 캡쳐 사진을 합성해 타구의 궤도를 볼 수 있게 한 사진이 올라왔다. # 합성된 사진으로 보면 타구 궤적이 꺾이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이로써 박찬호-오재원의 파울볼 논란은 박찬호의 착각이었음이 분명해졌다. 또한, 개인적인 일을 2년이 지나서야, 그것도 국가대표 경기 해설에서 이야기한 박찬호의 부주의를 지적하는 야구팬들이 많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해설자가 꺼낼 정도의 수위가 아니었고, 나중에는 오재원 쪽 주장이 맞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면서 야구 팬 사이에서 거의 절대적 존재였던 박찬호도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외에도 이거성 뺨치는 비난해설(...)을 보여주며 거성의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 은퇴 기념 300개 한정 피규어가 제작되었다.120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이지만 그 가격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피규어 구입후기

  • 2015년 프리미어 12 한일전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프리미어 12의 글로벌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활동했던 것이 주된 이유인듯. 구속은 101km를 기록했다.

  • 2016년 동갑내기 전 농구선수 우지원과 함께 MBC 진짜사나이 동반입대 특집편에 출연했다. 여담으로 박찬호는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아 예술체육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쳤다.동갑내기 특집에 이어 남녀동반 해군부사관 특집에도 출연 고생을 하고있는 중이다. 계속 예능에 출연하는것으로 봐선 안정환의 성공사례처럼 방송인으로서 변모하려는것이 아닌가 하는 예측이 있다.

4.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편집]

전성기 시절 새가슴이라는 일부 비난이 있었던데다,[31] 한만두처럼 잘 던지다 한 번에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보여 '멘탈이 약한 선수가 아닌가' 하는 이미지가 강했으며, 의외로 이 이미지는 아직도 많은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듯. 그러나 그가 홈페이지에 남기는 글이나 인터뷰[32] 등을 보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자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

사실 박찬호는 국가대표급 멘탈이다. 메이저리그 자체가 치열한 정글이다. 제 아무리 최고의 선수라도 잠시 부진하면 가차없이 팬들에게 질타를 당하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수 있기에 정신적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다. 게다가 박찬호는 선발때마다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엄청난 한국기자들이 항시 쫓아다녀서 심적 부담도 훨씬 컸을 것이다. 김병현은 기자와 싸움까지 벌여서 논란이 되지 않았던가? 당시 김병현의 고백 보면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기자들이 자꾸 옆에 와서 사진 찍고 이런 것 자체만으로 예민한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 것이다. 또한 박찬호는 IMF당시 우상급이었기에 유혹도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다. 헌데 박찬호는 10년 이상 큰 기복없는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았고 딱히 사생활적인 측면이나 언론과의 마찰 등 별다른 트러블 없이 묵묵히 야구에 정진했다라는 점에서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멘탈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축구 등 다른 분야에서 어린 나이에 과도한 관심과 집중을 받아서 부담감에 무너지거나 혹은 유혹에 넘어가 여자와 노닥거리다가 막장테크 탄 선수들과 비교해보자.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면서도 PED에 손대지 않았다는 점 또한 주목할만 하다. 박찬호가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던 시기는 스테로이드 시대 중에서도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고, 메이저리거들 상당수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PED를 사용했지만, 박찬호는 그러지 않았다.

박찬호가 새가슴이란 비난을 받았던건 볼넷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면승부하지 못하고 도망가는 피칭을 하다보니 겁이 많다고 안티들이 조롱했던 것인데, 그렇게 도망가는 피칭을 했어도 박찬호의 피홈런수는 꽤 많았다. 다저스타디움은 투수친화적인 구장이라 점수가 잘 나지 않는 구장이다보니 홈런 맞고 점수를 내주면 치명적인지라 굳이 무리하게 정면승부를 하지 않고 안되면 내보냈던 것인데, 박찬호는 삼진도 많이 잡던 투수였다. 오히려 주자를 내보내면 부담스러워서 무리하게 스트라이크를 잡으려다가 무너지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헌데 박찬호는 주자를 내보내는걸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이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며 주자 내보내도 다음 타자 잡으면 그만이란 전략으로 무리하지 않았으며, 실제 볼넷 위기 상황에서도 볼넷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유인구를 던져 삼진도 많이 잡은 것을 보면 여유가 느껴지기도 하고 굳이 무리하게 승부하지 않았을 뿐이다.

올림픽 유도 김재범은 유도는 3초만에 결정된다는 명언을 남겼는데, 한번 상대를 맞잡아보면 '어 오늘 할만하다'라든지, '오늘은 좀 느낌이 안좋은데' 이런 식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이는 다른 스포츠 분야도 마찬가지인데, 박찬호도 일단 첫타자 상대해보면 오늘 제구와 구위가 괜찮다라든지, 컨디션이 안좋다라든지 느껴질텐데, 박찬호도 삘 받았을때는 상대를 윽박지르며 압도하는 강속구 투수로 변신한다. 완봉승을 거둔 날이라든지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한 날에는 메이저리그 강타자를 상대로 과감한 정면승부로 많은 삼진을 뽑아내는 등,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한국야구에선 타자를 압도했던 류현진도 떡대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선 기교파 투수에 가까워졌고, 박찬호 전성기때는 약물러들 전성기였는데 그때 동양인 박찬호가 힘좋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강속구로 압도하는 피칭을 했었다. 다만 박찬호가 제구가 안되는 날에는 여지없이 가운데로 몰리면 홈런을 맞았기에 이럴 때는 무리하지 않고 볼넷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가급적 유인구로 승부하는 전략을 취했을 뿐이다.

잘 던지다 한번에 무너지는 모습을 종종 보여서 멘탈이 약하다는 오해도 받았는데, 이는 멘탈에 과도한 환상을 갖는 한국인들의 잘못된 인식이다. UFC김동현은 국내에 '멘탈전도사'로 유명했고 연승 중에 드디어 강자와의 대결이 잡히자 언론에서는 현재 김동현이 구름을 넘어선 경지라는 둥 극찬했고 실제 경기 시작하자마자 겁없이 백스핀엘보우를 날리며 멘탈지존의 모습을 보여줬으나, 상대가 가볍게 피하고 카운터 날리니까 한방에 뻗어버렸다. 멘탈은 신기루같은 것이다. 흔히 '전사의 심장'운운하는데, 그것도 맷집이 받쳐주니까 한대 맞고 두대 치는 전략으로 그렇게 나온 것일 뿐이다. UFC에서 K-1챔피언 출신 타격가 마크헌트와 5라운드 내내 전율의 타격전을 벌이며 '전사의 심장' '최고의 멘탈'로 찬양받았던 안토니오 실바는 약물적발 뒤 맷집이 급격히 저하된 모습을 보이며 KO패를 당했고, 마크헌트와 재대결때는 헌트의 주먹에 심하게 움찔거리며 심지어 뒷통수를 보이며 도망가는 모습까지 나오고 결국 무기력하게 KO패당했다. 결국 멘탈도 실력에서 파생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헌트 주먹 맞아봤는데 맞을만하다고 느껴지면 '오 더 때려봐' 이렇게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고, 내가 한번 휘둘렀더니 상대가 데미지를 받고 휘청이는 모습을 보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내가 한대 때렸는데 상대가 반응이 없으면 멘탈붕괴가 일어날 수 있고, 실제 멘탈지존 맥그리거는 좀비파이터 디아즈에게 패했는데, 자신의 필살 펀치를 맞고서도 끄떡도 안하고 덤벼드는 모습에 멘탈붕괴됐다고 한다.

여하튼 박찬호가 종종 무너졌던건 멘탈이 약한게 아니고 그게 실력이었던 것이다. 박찬호가 그렇게 무너졌어도 18승을 거두기도 하고, 방어율 3점대 초반을 기록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무너진 경기들이 없었다면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사이영상급 투수가 된다. 원래 야구에선 투수들이 유리하다. 메이저리그 강타자들이라고 해봐야 3할인데, 즉 강타자들 상대해도 10번 중 7번은 투수들이 잡아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못하는 투수들을 보면 계속 안타 맞는게 아니고 잘 던지다가 와르르 무너지는 등의 패턴을 보이는데, 그게 바로 정상급 투수냐,아니냐를 가르는 요소인 것이다.

사실 박찬호는 큰 기복없는 투수였다. 박찬호가 퀄리티 스타트(6이닝 3실점 이하) 많이 기록하지 않았던가?[33] 퀄리티 스타트의 가치가 큰 기복없이 안정적으로 던질 수 있느냐를 측정하는 잣대이고, 특급투수들을 보면 반드시 퀄리티 스타트 성적이 좋고 무너지는 경기가 거의 없기에 방어율이 높은 것이다. 박찬호가 종종 무너졌다고 해도 방어율 3점대 초반도 기록한 적이 있는데, 그 시즌 무너진 경기 없애고 그때도 안정적인 피칭을 했다고 계산하면 박찬호의 방어율은 2점대를 마크할 것이고, 20승도 넘을 수 있고 이러면 특급투수가 되버리는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고 그게 바로 실력이다. 멘탈 강하면 안무너지는게 아니고,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인 커쇼라도 컨디션이 안좋거나 부상이 있을 때는 제구가 안되서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자기소개 밖에 할 줄 몰랐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구단에서 붙여준 통역을 과감히 사양했다든지[34], 첫 차를 사기 전에 교통비를 아끼려고 경기장에서 숙소까지 뛰어갔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보면 고생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자세가 엿보인다. 또한 메이저리그에서 생존하기 위해 프로 초창기 때 던졌던 슬라이더를 봉인한 대신 빠른 공과 궁합이 맞는 커브를 장착한 이야기나, 샌디에이고 시절 장출혈, 필라델피아 시절 신종 독감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자기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프로정신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인 중에서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생업에 정착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의 특별한 프로정신 덕분에 아메리칸 드림 하면 생각나는 첫 번째 한국인이 되었다. 물론 이민 정착이 아니라 한국에 귀국해 살고 있지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에겐 최고의 롤모델로 손색없는 사람이 바로 박찬호. 미국 문화를 이해하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던 모습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어떤 업계에 진출하더라도 저런 근성 없이 성공을 바라면 안 될 것이다.

5. 플레이 스타일[편집]

이 말 한마디로 끝난다. 아시아 야구 역사상 최강의 패스트볼을 뿌렸던 선발투수

다만 구속만 따진다면 오타니가 데뷔 후에 100마일을 뻥뻥 던지고는 있어서 아시아 투수들 중 패스트볼 구속기록은 오타니가 가지고 있다. 다만 구위에 영향을 미치는건 구속뿐만이 아니라 무브먼트도 있으니 단순비교는 좀 무리가 있다. 게다가 경기 중 평균 구속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리그의 타자들을 그 구위로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특히 패스트볼의 경우 타자들의 레벨이 올라갈수록 제구력에 대한 부담과 결정구에 대한 부담, 그리고 스테미너 문제 때문에 선발 투수들의 경우 구속을 최고 수위로 끌어 올리며 유지하기가 힘들다. 즉, 일본 타자들을 상대하는 오타니의 100마일과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하는 박찬호의 98마일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일본에서는 구속과 구위로 타자들을 압살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구속 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어서 제구력과 변화구를 장착하고 그 때문에 직구 구위와 구속이 떨어졌던 이라부 히데키다.

한편, 박찬호는 전성기 시절 97~98 마일을 최소 5번 이상은 나왔고 이러한 강속구에 80마일 중반의 파워커브 레퍼토리는 분명 기교파 투수와는 거리가 있다. 아니 사실 기교파는 말도 안되는 얘기고, 전성기 시절이었던 98시즌 전후 보다 오히려 직구의 구속과 구위가 더 압도적이었던 96~97시즌 연간의 박찬호는 경기 내내 평균 95마일 이상의 직구를 뿌리며 경기 후반까지도 97~98마일의 직구를 뿌리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었고, 내셔널리그에서도 손 꼽히는 플래임스로워 중 한명이었다. 당시 박찬호의 투구를 두고 USA 투데이의 저 유명한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인 밥 나이팅게일은 '80년대 중후반을 장식했던 강속구 투수들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클래식한 강속구 투수라고 평한 바가 있을 정도였다.

현재까지도 패스트볼의 구위만으로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압도한 동양인 선발투수는 박찬호와 노모[35] 뿐이고 그나마 구원투수 쪽에서는 사이토 다카시우에하라 고지가 있으며 현역 동양인 선발투수 중에서 다르빗슈의 패스트볼 구위가 박찬호에 가장 근접해 있다.[36]

박찬호 악포심 던진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말년에는 이를 악물고 괴성으합! 흐압!을 질러가며 포심을 던진 적도 있었다. 지가 무슨 샤라포바야? LA나 필라델피아, 피츠버그 등에서 이런 일이 좀 잦았는데 해설자들이 이야깃거리로 삼은 적도 있을 정도였다. 또한 이러한 습관 때문에 어금니가 망가져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고, 남아있는 치아의 보호를 위해 대책으로 마우스가드(피스)를 착용하고 던진다.[37][38]

류현진의 미국진출 후 은근히 류현진과 비교가 되거나 재평가되고 있는데 박찬호는 전형적인 구속, 무브먼트로 윽박지르는 파워피쳐이고, 류현진[39]은 다재다능함을 자랑하긴 하지만 박찬호처럼 우격다짐형 파워 피쳐과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스타일이 완전 달라서 두 명의 다져스 한국선수의 경기를 모두 본 사람들에게 잔잔한 재미를 주고 있다. 젊을 적에는 사실상 패스트볼과 커브 투피치[40]로 A급 투수로 등극할 만큼 스터프로 먹고사는 스타일이었다. 90마일 초중반대에 무브먼트도 심해서 제구가 되는 날에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며 삼진의 산을 쌓는 원동력이었다.그러나 제구가 안될 때에는 미칠듯한 볼넷[41] 이후 여러 구질을 배우고 보완하면서 다양한 구질을 던지게 되고 또 몇몇 구질은 부활의 원동력이 되긴 했으나 항상 박찬호를 상징하고 박찬호가 있게 한 것은 강력한 속구였다. KBO에서 류현진은 속구로 타자들을 윽박지를 수 있었지만 MLB에서는 힘으로 타자들을 압도할 수 없어서 박찬호보다는 압도적인 면이 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안정적으로 경기를 이끌어가는 타입이다. 그래도 힘으로 찍어누르는 압도적인 구속이 빠른 파이어볼러 투수가 인기도 높고 많은 야구팬의 로망이라 전형적인 정통파 우완투수로 리그를 호령하는 한국 투수인 박찬호는 선구자 타이틀이 없어도 매력적인 투수였고, 박찬호 이후 정통파 한국인 메이져리거를 다시 보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전성기때는 흔히 기억되는 박찬호와 달리 상당히 안정적인 투수였다. 이상하다 매번 각잡고 본 기억밖에 없는데 특히 '퀄리티스타트'라는 단어를 한국에 처음 정착시켰으며 박찬호의 투구를 보고 퀄리티 스타트가 쉬운 걸로 아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매번 나오면 6이닝 3실점은 당연한거였다. 다만 삼진 아니면 볼넷그리고 홈런일 정도로 제구되는 날과 안되는 날의 기복이 좀 있었고 볼넷으로 위기를 자초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경력이 쌓일 수록 위기관리능력이 늘어 삼진과 병살로 잘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훗날 후배가 1회마다 비슷한 짓을 하고 있다

투수치고는 타석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어 가끔씩 홈런을 치고는 했다. 연장 13회 때 선발출장한 투수를 대신하여 '대타' 박찬호가 나서는 일도 있었다. 흠좀무. 1호 홈런2호 홈런. 가장 마지막 기록을 보자면 09/04/26 vs플로리다전에서 홈런을 쳤다.[42] 더 대단한건 3개의 홈런 모두 밀어서 넘긴 홈런이다. 시즌 타율은 투수 중에서도 높은 편인 1할 대 후반에서 2할 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보내기 번트 능력은 메이저리그 투수 중 정상급이다.

사실 잘 믿기진 않지만 박찬호는 원래 내야수로 야구를 시작했고, 소속팀 감독으로 부터 타격에 제법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공주중학교 재학 당시 2학년때 투수로 전향한 이후에도[43] 공주고등학교에서도 클린업을 쳤었다. 고교야구에서는 강타자의 수비 위치가 투수인 경우가 종종 있다.

박찬호를 비롯한 당시 92학번은 '전설의 학번'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재들이 많은 학번이었다. 특히 투수쪽에는 조성민, 임선동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즐비했었다. 근데 재미있는 건 당시에는 이 세 명의 투수 중 박찬호에 대한 평가가 가장 낮았다고 한다.[44] 공은 빠르지만 세세함이 부족하고 컨트롤이 잘 안되는데다 부상도 많았다는게 이유. 그래서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갔기 때문에 더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메이저리그는 선수의 단점을 고치는 한국 스타일보다 선수의 장점을 강화시키는 훈련 스타일인데다 체계적인 트레이닝으로 선수의 몸관리를 해서 오랫동안 선수로 뛸 수 있게 되었다는게 그 이유다.

전형적인 슬로우 스타터다. 전성기 때 시범경기 성적이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어코 10승 이상을 올리는 활약을 보여줬다. 시즌 초인 4~5월에 난타를 당하는 경기를 자주 보여주다가 6월 하순부터 발동(?)이 걸리기 시작, 7~8월은 리그 특급 투수의 성적을 찍어줬다. 그래서 중계를 하던 iTV에서도 날이 더워질 즈음엔 여름의 사나이 라던가 뜨거운 이미지와 관련된 표현을 많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초창기 때 전담포수를 둘 정도로 포수와의 호흡은 상당히 민감했다. 방망이는 좋지만 수비와 리드가 시망인 마이크 피아자, 토드 헌들리, 폴 로두카[45] 대신에 찰스 존슨이나 채드 크루터 같은 수비형 포수를 선호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게, 저 시기 국대경기에서는 약드래곤 대신에 잉금님을 선호했다[46] 그러다 점점 연차가 찬 이후에는 그다지 까탈스럽지 않은 투수로 변했다.[47]

강했던 팀과 선수는 시카고 컵스, 밀워키 브루어스, 다저스 시절 필라델피아 필리스, 제프 켄트, 에드가르도 알폰소[48]. 약했던 팀과 선수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미네소타 트윈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배리 본즈, 블라디미르 게레로, 클리프 플로이드, 에릭 차베스, 미네소타의 자크 존스, 그리고 박찬호 잡는 귀신으로 불리던 브래드 풀머와 마지막으로 페르난도 타티스를 빼먹으면 섭하다.

2006년 WBC 일본전에 던진 박찬호의 공을 보고 일본 기자들이 "변화구를 많이 던진 것이 아니냐"라고 질문하자 박찬호가 "오늘 변화구는 던진 적 없고 투심 던졌다."라고 대답한 일화도 있다. 그만큼 공의 변화가 엄청났다는 얘기.

또 사족으로 일본의 마쓰이 히데키의 천적이다. 통산 전적에서도 마쓰이가 박찬호를 상대로 단 한개의 안타를 쳤을 뿐 거의 밥이라고 할 정도로 마쓰이에게 강하다. 통산 9타수 1안타. (그런데 그 1안타가 홈런이다) 실제로 마쓰이는 "박찬호의 공은 도저히 칠 수가 없다."라고 이야기 한 적도 있다.

구질 욕심이 보통이 아니다. 전성기 시절 투피치 피처로 구분되긴 하나, 2000년부터 재미를 보던 슬러브를 비롯, 속도가 40km/h가 차이 나는 커브를 실전에 쓰기도 했다. 또한 상술된 바 투심도 수준급이며, 너클볼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질을 실전에 사용하였다. 알고보면 팔색조 투수.

노모 히데오에게 메이저리그 시절 포크볼을 알려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노모 히데오가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내가 당신의 패스트볼을 가지고 있었다면, 포크볼 따윈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오릭스에 가서도 포크볼을 배우려고 하는 건 여전하다. 오릭스의 동료 선발투수에게 체인지업을 가르쳐 주고 그에게 포크볼을 배우려고 로비하기도 했다.

5.1. 박찬호는 정말 100마일을 던진적이 있는가?[편집]

박찬호에 대한 논란 중 하나가 그의 최고 구속이다. 박찬호가 한창 싱싱하던 96년도 무렵에 비공식적(infomally)으로 100마일을 던진 수 있다는 의견이 미국의 잡지에도 실린적이 있지만 실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100마일을 던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박찬호의100마일에 대한 도시전설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49]

1. 직구 구속이 다소 빠르게 측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진 쿠어스 필드에서 100마일을 던졌다. 쿠어스 필드의 경우 타 구장에 비해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공기 밀도가 약간 더 희박하고 따라서 공이 받는 공기 저항 역시 감소한다. 실제로 쿠어스 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이라 알려져 있는데, 공기 저항이 적은 만큼 타구의 비거리가 증가하여 타 구장에 비해 장타를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쿠어스 필드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팀컬러가 장타를 펑펑 쳐대는 대포군단인 것도 이러한 특성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타구의 비거리를 늘릴 정도로 공기 저항이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니, 쿠어스 필드에서 평균 구속이 타 구장보다 높게 나온다는 이야기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혹시라도 관련 기록이나 데이터가 있으면 추가 바람.

2. 100마일을 넘어 101(약 163km/h)마일을 던진적이 있으며 이는 당시 국내 스포츠신문에 대문짝하게 보도되었다.

이것이 실제 신문지면이었는지 TV광고에 나오는 그래픽이었는지 불확실하나 쿠어스필드 160km라는 문자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정말 이상한 것이 100마일 또는 101마일을 던지는 것을 봤다는 사람은 많은데 그 영상을 업로드하거나 링크를 제시하는 사람은 없으며 (분명 본인들도 영상으로 봤을텐데?) 그것을 보도한 스포츠 신문을 봤다는 사람은 많은데 (구체적으로 일간스포츠네 스포츠서울이네라고까지 말한다) 그 신문 기사의 링크를 제시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참고.
참고 링크.
이것도 참고

실제 많은 사람들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에서의 최고 구속이 98~99마일이라고 하고 있으며 박찬호 자신은 진짜 사나이에 출연하여 자신의 최고 구속은 160km/h (약 100마일)이라고 한 바가 있다. 박찬호가 100마일 혹은 그 이상의 직구를 뿌리는 영상이나 움짤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으면 업로드 혹은 링크 제시 바람.

5.2. 투구폼[편집]

박찬호가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장거리 달리기를 매일 같이 해와 하체가 튼실하다는 점과 국내에서는 금기시한 하이 키킹 동작을 했다는 점이다.

  • 장거리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는 그를 다룬 책이자 불쏘시개이기도 한 <메이저리그와 정복자 박찬호>에서 나오는데, 고등학생 때부터 달리기를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마이너리그 시절 차가 없었을 때는 경기장에서 집까지 뛰어서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인지 모교인 공주고 학생들이 아침 저녁으로 숙소에서 학교까지 왕복으로 달리기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 국내 지도자들이 금기시했던 하이 키킹을 시도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의 영원한 우상인 놀란 라이언 투구 동작 사진을 구해 부분부분 연습해 구속이 빨라졌다고 한다. 여기에는 한가지 사연이 있다. 1991년 한미일 청소년 대회를 마치고 귀국 후 바로 공주로 갈 수는 없어서 이태일 기자(現 NC 다이노스 사장)의 집에 머물렀는데 박찬호가 놀란 라이언의 책을 보고 관심을 보이자 이태일 기자가 그 책을 박찬호에게 선뜻 선물을 했다. 그리고 박찬호는 그 책에 나와있는 그림을 보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하이키킹 투구폼을 완성했다.

    물론 마이너리그 서비스 타임시절에 이 극단적인 투구폼은 손을 보면서도 강속구를 살리는 방법으로 코칭을 받았다고 한다.

6. 이야깃거리[편집]

6.1. TV활동[편집]

경인지역 민영방송의 밥줄이었다. iTV 때도 그랬고 OBS도 MLB중계를 시작했다. 그러나 돈이 안 돼서 결국 2010시즌의 중계권은 포기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 다시 중계를 시작했다. 2010시즌 중계권을 소리소문 없이 구매해서 잘 방영했다. 다만 추신수 위주의 중계방송을 시도하는지라 박찬호의 비중은 많이 줄었다.

2009년 초 1박 2일에 출연해 적극적으로 촬영에 참여[50]하여 여전히 많이 남아 있던 박까들을 팬으로 전향시키는 기적을 실현하기도 했다. 한겨울에 계곡의 얼음을 깨고 멤버들과 계곡물에 입수한 장면은 당시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멤버들과 돈독한 우정이 쌓였는지 녹화가 끝난 뒤에도 장문의 문자를 멤버들에게 일일히 보냈다고 하고 그 해 KBS 연예대상에도 1박 2일 멤버들과 함께 참석했으며, 이로부터 2년 뒤에 혹한기 특집에도 치킨과 함께 다시 찾아와 멤버들을 한번 더 계곡에 입수시키기도 했다.[51] 2010년 시청자 투어 때도 치킨을 이번에는 콜라와 함께 보내줬으며, 2011년에는 이승기 - 이수근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박찬호의 집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병뚜껑 복불복 게임에서 역대급 제구를 보여주기도 했다. 괜히 코리안 특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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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본인이 가장 놀랐다

2011년 12월 1일, 주병진의 토크콘서트 첫 방송의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중간에 노래는 잊자고요.

2013년 7월 18일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다.

2015년에 냉장고를 부탁해신승훈과 함께 출연했다. 그런데 훗날 2016년 9월 12일에 그의 아내 박리혜 셰프가 여성 셰프 최초로 냉장고를 부탁해스페셜 셰프로 참여하게 되었다.

배우 정준호와의 오랫동안 친분을 계기로 그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달콤살벌 패밀리에 특별출연했다. 영어쓰는 충청도 학부모 역.

6.1.1. CF[편집]

전성기였던 90년대 후반에는 대한민국 광고계의 블루칩이었다.

- '익사이팅'이라는 '본격(?) 스포츠 껌: 광고가 '찬호형! 나에게 힘을 줘! 라는 어느 유망주의 기도에 응답, 익사이팅 껌을 건네준다. 꼬꼬마가 껌을 씹는 게 아니라 코에 갖다대고 냄새를 흡~맡자 갑자기 에이스 투수의 기운이 빙의한다는 스토리.
- 게토레이: 근래의 영상에선 찾기 어려운 메이저리그 초창기시절의 하이키킹 동작을 확인해볼 수 있다. 해당 동작이 음료 캔에 직접 인쇄되어 있었을 정도.
- 삼보컴퓨터 체인지업: 박찬호의 인지도에 더불어 무료로 업그레이드를 해준다는 제품 컨셉트 자체도 충격적이었기에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광고. LA 다저스 유니폼을 본딴 선수복을 입고 등장, "쳬인졉으로 업그뤠이드"하는 버터발음을 보여주었다.
- 롯데삼강 찬호박 아이스크림: 취소선이 들어간 이유는, 광고에 그가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언어유희로 그의 인지도만 이용한 것. 사실 진짜 호박맛이 나고, 아이스크림이라 차갑기 때문에 딱히 태클걸기도 어렵다. (...) 그래도 CF에 야구선수들이 등장하는데다, 이창명의 명대사인 "이걸 미국으로 보내버려?"덕분에 인지도를 이용했다는 것 자체는 확실.
- 이외에 오리온 썬칩, 나이키등 광속구를 구사하는 개척자, 정복자 이미지로 수많은 광고에 출연하였으며, 무려 화장품(!!) 광고를 하기도 했다.


2010년대에도 LG패션 타운젠트, 플렉스파워 등을 통해 여전히 활발한 CF 활동을 하고 있다.

6.2. 역대 연봉[편집]

년도

액수

소속팀

소속리그

1994년

10만 9000 달러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1995년

11만 4000 달러

1996년

12만 4000 달러

1997년

27만 달러

1998년

70만 달러

1999년

230만 달러

2000년

395만 달러

2001년

990만 달러

2002년

688만 4803달러

텍사스 레인저스

2003년

1300만 달러

2004년

1400만 달러

2005년

1500만 달러

텍사스 레인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6년

1550만 5142달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7년

60만 달러

뉴욕 메츠
휴스턴 애스트로스(마이너)

2008년

50만 달러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9년

250만 달러

필라델피아 필리스

2010년

120만 달러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2011년

2억 5천만엔

오릭스 버팔로스

일본프로야구

2012년

2,400만원[53]

한화 이글스

한국프로야구

박찬호가 여태껏 벌어들인 돈[54][55]

팀명

금액

원화로 환전 시

메이저리그에서 번돈

8,665만 6,945달러

969억 9511만 8500원

일본프로야구에서 번 돈

2억 5천만 엔

28억 9,582만 5,000원

한국프로야구에서 번 돈

2,400만원

총액

999억 1,494만 3,500원


어느 메이저리거 후배가 회장님의 5년 6,500만 달러를 경신했다!![56]그리고 선배의 아픈 추억이 있는 팀과의 계약이라 국내팬들의 걱정이 많았고 결국...

원래 94년경 첫 출국 당시 당당히 100억 벌어오겠다고 큰소리쳤는데 정확히 10배를 벌어 온 것이다! 이로써 박찬호의 재산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숫자로 드러났다. 다만 추신수가 방송에서 직접 밝힌 적도 있듯 세금과 에이전트비 등의 기타 지출을 감안한 실제 수입은 30~40%까지 줄어든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물론 반대로 재태크 성공으로 재산이 늘어난 것도 감안해야 한다. 박찬호 건물로 알려진 빌딩만 해도 75억에 샀는데 2017년 기준 시세가 350억이 넘는다고 한다. 근데 부인 재산은 더 어마어마하다고 알려졌다

6.3. 읽을거리[편집]

  • 미국 진출 첫해 마이너에서 고생할 때, 팀 동료들이 마늘냄새가 난다며 피하기에 처음에는 인종차별인줄 알았다고 한다. 노이로제가 걸려서 하루에 대여섯번씩 샤워를 했을 정도라고. 그러던 어느날 한 선수가 먼저 시비를 걸어 싸움이 붙고 감독에게 불려갔는데 영어를 하지 못해 오히려 원인 제공자로 몰려 벌금까지 물었다고 한다. 너무 분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으나 결국 잘지낸다고 거짓말을 하고 끊었고, 그 다음날부터 한국 음식을 완전히 끊고 냄새나는 치즈를 억지로 먹었다고,[57] 그런데 그 이후로는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고, 실제로 외국인들에겐 마늘 냄새가 견디기 힘들었던거지 자신을 따돌리는 것이 아니었다는걸 깨달았다고 한다.

  • 선수 시절 일본 출신인 노모 히데오와 라이벌 기믹이 잠깐 있었고, 한국 언론에서는 유독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를 비교하면서 깎아 내리는 경우가 많았었다. 실제로는 같은 선수로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수준이었고, 박찬호의 비공개 결혼식에 참석할 정도로 개인적인 관계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 전담포수였던 채드 크루터를 고소한 적이 있다. 사유는 빌려준 돈을 안 갚았다고. 그런데 나중엔 소송을 취하했다. 오오 대인배 오오

  • 인천 자유공원 인근에 있는 야구 배팅장에는 투구 자세로 타격을 하는 괴랄한 모습의 박찬호 그림이 있다. 이 의뢰를 받은 화백[58]은 본래 박찬호의 투구 자세를 그렸으나 타격을 연습하는 시설인 만큼 배팅장 사장님이 타자의 그림으로 다시 그려달라고 요청, 귀찮아진 화백이 어깨 너머로 방망이만 하나 덜렁 그려서 마무리했다는 설이 있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 패러디되기도... 자유공원 박찬호 웹툰 생활의 참견에서 작가 김양수는 자신의 선배 얘기라며 본 에피소드를 연재한적이 있었다.

  •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활약하던 시절, 엑스포츠 개국 초기 딱히 광고수입이 없던 당시 박찬호 등판경기 때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엑스포츠에서 우릴대로 우린 조여정의 송월타월 광고에서 본따 타월을 선물하자는 얘기도 있었다. 벅 쇼월터 감독을 '벅 송월터' 감독으로 불렀던 그 시절이다. 송월타월 광고를 보며 허벅지를 꼬집던 네티즌들은 박찬호가 삼진을 하나 잡으면 타월이 1cm 내려간다는 드립을 쳤다나(...).

    이때 조여정과 송월타올 광고를 지긋지긋하게 본 탓에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을 올릴 당시 국내 메이저리그 팬덤에서는 박찬호와 조여정을 맺어주자고 하는 여론까지 생겼었다. 배스타월로 몸만 가린 조여정의 타월을 벗기고 싶다던 일부 남성 해야팬들도 있었다. 극소수 팬들은 조여정이 타월을 벗으면 돔구장 건립은 현실이라는 말을 했다 카더라. 믿거나 말거나.

  • 2009년 월드시리즈 때 독감에 걸린 채로 등판되었다고 보도가 되었으나, 실제로는 신종플루였다는 것이 본인 입에서 밝혀졌다.
    신종플루 또한 사람, 돼지, 조류에 감염되는 A형 독감의 변형된 형태로 돼지독감, 멕시코 독감, 혹은 H1N1이라고도 불린다.

  • 희한하게도 그가 공을 잘 던지면 나라가 곤경에 빠진 증거라는 설이 있다. 그냥 웃으면서 넘기기에는 참 미묘한 시기에만 잘 던지는 것이 또 나름의 아이러니.

  • 특이하게도 박찬호는 선수 시절 내내 미국 영주권이 없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구단의 협조까지 받아가면서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메이저리거라는 신분이 보장되는 확실한 직업이 있어서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금방 딸 수 있다. 그런데 박찬호는 어차피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끝낼 것이기 때문에 영주권을 따지 않았다는 식의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지만 정말인지 불분명했으나 어쨌든 이 때문에 계약이 새로 갱신될 때마다 노동비자를 새로 발급받는 불편함을 감수했다.

  • 뉴욕 양키스의 투수 조바 체임벌린이 위에 나온 박찬호의 폭풍설사 인터뷰를 듣고 폭소했다. 사실 당시 양키스 선수치고 이 영상을 안 본 선수가 없고 안 웃은 선수가 없는 지경이니 조바는 "박찬호는 오랜 시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투수였다. 어렸을 때 나는 박찬호의 투구를 자주 봤다. 그의 팬으로 나는 성장했다. 그런데 이제 같은 팀 불펜에서 선수생활을 한다는 것이 기쁘다"라고 말했다.

  • 해외야구 갤러리에선 박찬빈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정확하게는 찬빈님or챈빈님이라 불리며 숭배되고 있다.(한때 박찬호가 부진했을때 역술인이 이름을 바꿔야한다고 했는데 바꾸면 좋은 이름중 하나가 찬빈이었다) 박찬호의 등판 때마다 갤은 페이지가 쉽게쉽게 넘어가며, 상대팀에서 박찬호에게 좋은 타격을 한 선수나 삽질을 하는 한화 선수는 매국노 소리를 듣게 되고, 삽질을 하는 상대 선수는 애국자로 칭송받는다. 갤러리에서는 허구헌날 IMF 때의 채무 의식을 되새기라면서 찬빈님에 대한 존경을 강조한다. 그런데, 처음 찬빈 얘기가 나왔을 땐 정말로 박찬호한테 호의적인 분위기도 없진 않았으나, 박찬호가 은퇴한 뒤엔 찬빈이란 별명은 남았지만 원래 맹렬한 박찬호까이던 해야갤의 특유한 분위기와 섞여 찬빈님이라 불리긴 하는데, 한만두, 볼질, 위의 설사 얘기 등을 갖고 허구헌날 까이는 신세가 됐다. 이런 매국노들

  • 지누션의 두 멤버와 친구사이다. 박찬호가 마이너와 메이저를 오가던 시절 LA로 가면 자주 만났던 친구들이라고 한다. 2001년에 박찬호는 등장음악으로 지누션의 A-Yo!를 쓰기도 했다. 요즘은 서로 왕래가 뜸한 편이긴 하지만 예전에 지누션이 가지고 있던 의류브랜드 MF(메이저 플레이버)의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래퍼가 된건가!!

  • 자신이 전성기를 보낸 팀에서 뛰고 있는 후배와는 달리 팬서비스를 매우 잘해준다. 사인을 잘해주는 것은 물론 팬과 함께 신나게 만담까지 하는걸로 유명해 "바쁜 팬의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장난스런 찬양까지 받는다.

6.4. 가족[편집]

부인 박리혜는 아버지가 일본 부동산 재벌 박충서다.[59] 이와 관련 거짓 소문으로는, 그가 박찬호에 대해서 "우리 사위가 야구하느라 돈은 별로(!) 못 벌었지만 사람은 좋다."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치로의 WBC 당시 발언이나, 2002 월드컵 당시 토티의 발언이 의도와 다르게 변질되어 한국사회에 퍼진 것을 보면, 이 발언도 비슷한 기레기의 소행이 아닐까 싶을 정도. 이미 스포츠 신문이나 가십거리 다루는 케이블 프로그램등에 저런 말을 인터뷰에서 했다고 나오는데 해당 인터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박찬호가 장인이랑 비슷하게 벌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건 아니고 실제로 박찬호보다 장인이 훨씬 부자는 맞다. 국내 기사에 따르면 장인도 야구를 좋아했다고 하니, 최소한 박찬호가 번 돈의 규모를 모를 리 없으며 일본 사회에서 프로야구 선수가 가지는 위상은 한국 사회에서보다 훨씬 대단하다. 그들보다 더 대단한 大리그(일본에선 메이저리그를 이렇게 부른다)에서 장기간 활약한 박찬호를 장인이 폄훼할 이유는 없다. 참고로 박찬호는 연봉으로 번 돈도 많지만 여기저기 산 건물들도 있는데 그 건물의 시세도 오르고, 임대료로 알차게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이 소문 자체는 워낙 많이 퍼지다 보니, 박찬호의 팬들조차 농담 삼아 말하기도 할 정도다.

부인인 박리혜는 위에서 서술한대로 요리사이며, CJ의 요리 전문 케이블 채널 O'live에서 홈메이드 쿡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부인이 요리사라는 사실을 두고 DC인사이드 야구갤러들은 박찬호 선발 경기에서 특별한 활약을 보이는 선수(박찬호의 선발승을 위해 적시타나 홈런을 치거나 호수비 등을 하는 팀원이나, 결정적 에러로 상대방 팀분위기를 일순에 꺾는 상대 팀원)를 '박사장 회식 초청자 명단'에 추가하기도.

부인이 재일교포 2세이기 때문에 한국어한국 요리 실력이 영 좋지 않다고 한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일본어로 된 라벨링이 많이 나왔으며, 잘못 적은 한국어 라벨링도 보였다.[60] 맵고 짠 음식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듯하며, 박찬호도 현 시점에선 그 입맛에 길들여진 듯. 아내가 풀코스로 요리하는 걸 선호하는지라 러시아워인 아침밥 시간에는 싸움도 벌어진다고. 박찬호의 냉부 출연 이후 부인을 냉부의 스페셜 셰프로 강제 등판시키기도 했다.

여담으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KLPGA에서 활약하던 프로골퍼 박현순이 박찬호의 사촌누나다.

6.5. 작품 속 박찬호[편집]

1990년대 당시 아시아선수가 드물었던 메이저 리그에서노모 히데오와 함께 아시아 선수를 대표했으며 더불어 두자리 승수의 실력까지 겸비해서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만화 메이저에서는 본명이 아닌 '안종빈'이라는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팀 에이스의 모티브로 나왔으며, 일본 작품 답게 한국팀과 안종빈이 비열하게 나온다. 그 바람에 여태까지 쌓아온 메이저의 이미지가 한국에서 완전히 꺾이게 되어버려서 지금은 이제 듣보잡이 되어버렸다.

김성모의 만화 스터프 166km에서는 박찬화라는 2차 창작 비슷한 캐릭터가 나오는데, 셰필드의 '박찬화에게 전해, 난 영원한 도우미라고!'라는 명대사가 유명하다. 그리고 이는 클로저 이상용에서 3차 창작으로 이어진다.

4만년 이후를 배경으로 한 게임에도 등장했다.

6.6. 자서전[편집]

  • “나의 꿈 나의 도전 박찬호”

흠좀무 한 것이 초판 인쇄일이 1996년 12월 15일이다. 겨우 만 23세.
박찬호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끈 요인이 IMF로 한참 힘든 한국인에게 희망을 줬다는 것인데, 1996년은 IMF는커녕 박찬호가 마이너리그에서 2년간 고생하고 막 메이저리그로 올라온 시점이다. 책 내용도 1996년 4월 7일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첫승을 거둔 부분에서 끝난다. 즉, 이 책의 내용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성공기가 아니라,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기인 것이다. 때문에 박찬호가 승승장구 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 어린시절, 공주고와 한양대 시절, 마이너리그때 힘들었던 일 등이 집중적으로 실려 있다.
특히 박찬호의 마이너리그 경험담과 메이저리그 도전이 당시 국내에는 워낙 생소했기 때문에 잘 팔린 편이다. 요즘에야 워낙 메이저리거가 늘어났고 인터넷이 발달하여 마이너리그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PC통신 시대였던 만큼 마이너리그에 대해서 개인 팬이 정보를 얻기는 정말 힘들었다. 당장 현업인인 자신도 마이너리그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던 상황에서 강등된 박찬호는 엄청난 문화 충격을 받았고, 책에서 이 경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게 된다.
박찬호는 대망의 메이저리그 1승을 달성하고 나서 이 책의 초고를 완성했지만, 탈고를 마친 시점에서는 이미 10경기 출전에 5승이라는 전적을 올리고 더 많은 경험을 쌓은 채 시즌을 마무리한 상황이었다. 메이저리그 투수로서 올라서기 위한 중요한 기점들을 다 거치고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이쯤 되면 책 한권 써도 되겠다 싶었을 것이다. 아직 리즈 시절이 오기 전 도전정신에 가득차 있던 시기의 박찬호를 알기 가장 좋은 책이다.

그리고 선구자, 개척자의 이미지와 국민적인 영웅이라는 이미지에 가려져 뭔가 '위인 박찬호'라는 느낌에 박찬호가 종종 '투수'라는 것을 잊게 되는데 이 책의 내용을 읽고 있으면 박찬호도 빼박 투수구나라는 어쩌면 당연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즉, 그정도로 투수라는 포지션에서 어떤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가, 투수는 어떤 플레이를 해야하는가 등의 본인의 투수론이 잘 드러나 있어 투수 박찬호를 느낄 수 있다.

6.7.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편집]

7. 주요기록[편집]

7.1. 좋은 기록들[편집]

  • 199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입단. 그 해에 NL에서 두번째로 어린 선수였음 (만 21세)

  • 1997년~2001년 5년 연속으로 13승 이상 기록

  •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드림팀 I) 소속으로 금메달 (병역특례)

  • 2000년 18승 10패, 평균자책점 3.27, 226이닝 기록, 다승 NL 5위

  • 2000년 피안타율 6.89개 - NL 1위 (다만 피출루율은 NL 10위권 밖)

  • 2000년 삼진 217개 - NL 2위

  • 2000~2001시즌에 걸쳐 34이닝 연속 무실점 피칭.[61]

  • 2001년 35경기 선발 출전 - NL 1위 (15승 11패, 평균자책점 3.50, 234이닝)[62]

  • 2001년 올스타전 출전

  • 2001년 삼진 218개 - NL 3위

  • 통산 국제대회 성적 2승 3세이브 26⅔이닝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0.68[63]

  • 2009년 월드 시리즈에 4경기 3⅓이닝 등판해서 평균자책점 0 기록

  • 통산 홈런 총 3회 기록[64]

  • 2010년 9월 13일까지 메이저 리그 통산 123승 97패, 노모와 더불어 아시아 최다승 타이기록.

  • 2010년 10월 2일 124승 98패로 아시아 최다승 달성

7.2. 영 좋지 않은 기록들[편집]

웃긴건 그 날 팀벨처 역시 6회 데본화이트에게 만루홈런을 맞음.공교롭게 박찬호,팀벨처 모두 만루포를 맞았다.

  • 2000년 124 볼넷으로 NL 볼넷 2위. 그런데 볼넷 1위와는 단 1개 차이다.

파일:찬호본즈71.gif
파일:찬호본즈72.gif

  • 2001년 올스타전에서 칼 립켄 주니어에게 홈런을 맞았다. 다만 칼 립켄 주니어에게 사실상 홈런을 헌납한 것이라고 후에 밝혔다. 영상으로 보면 92마일짜리 한복판에 직구를 던졌다. 오오오!! 레전드에 대한 예우![66]

파일:찬호립켄.gif


여러 모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기록을 많이 세웠다. 좋은 기록이든 나쁜 기록이든 간에.


참고로 ML통산우타자 상대 피안타율 .228 ,좌타자 상대피안타율 .271

우타자 상대 피홈런 99개 ,좌타자 상대 피홈런 131개

데뷔 첫 피홈런:1994년 4월 14일 브라이언 조던(STL)
마지막 피홈런:2010년 8월 15일 크리스 존슨(HOU)

박찬호 상대로 타석에서 홈런을 친 투수:앤디 페티트,C.C.사바시아







8. 말말말[편집]

저녀석을 앞으로 10년간 상대해야 된다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마크 그레이스[67]

"저에게 있어서 야구장은 학교와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야구는 제가 선택한 인생 과목이었습니다."
ㅡ 박찬호. 2014년 7월 18일, 올스타전 은퇴식에서.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전 ‘자기 자신을 믿으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자기 자신을 믿으면 시행착오는 겪을지 모릅니다. (강한 어조로) 그러나 그걸 통해 분명히 성장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겁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으세요. 제가 절 믿고 이 자리에 섰듯이요.
ㅡ 201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의 정신-개척자 상을 수상한 후 인터뷰 中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며 살 겁니다. 그리고 목표를 세울 거에요. 전 목표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봐요. 목표를 향해 오늘과 내일 똑같은 스텝을 밟아 걷는 것. 전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생 최고의 목표가 아닐까 싶어요. 어쩌면 현역시절의 제 목표도 통산 124승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요. 제 가장 큰 목표는 오늘도 내일처럼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거였어요.
매거진S 인터뷰에서

말이 점점 길어진다

9. 연도별 성적[편집]

박찬호는 NPB와 KBO에서는 홀드세이브를 기록한 적이 없다.박찬호를 불펜으로 쓰는 병신팀이있어? 알고보니 다저스

MLB 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1994

LAD

2

0

0

0

4

0

0

-

0

11.25

5

6

6

2.50

1995

2

1

0

0

4

0

0

-

0

4.50

2

2

7

1.00

1996

48

10

0

0

108⅔

5

5

-

0

3.64

82

75

119

1.41

1997

32

29

2

0

192

14

8

-

0

3.38

149

78

166

1.14

1998

34

34
(5위)

2

0

220⅔

15

9

-

0

3.71

199

108

191

1.34

1999

33

33

0

0

194⅓

13

11

0

0

5.23

208

114

174

1.58

2000

34

34

3

1

226

18
(5위)

10

0

0

3.27

173

136

217
(2위)

1.31

2001

36

35
(1위)

2

1

234
(3위)

15

11

0

0

3.50

183

111

218
(3위)

1.17

년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02

TEX

25

25

0

0

145⅔

9

8

0

0

5.75

154

95

121

1.59

2003

7

7

0

0

29⅔

1

3

0

0

7.58

34

31

16

1.99

2004

16

16

0

0

95⅔

4

7

0

0

5.46

105

46

63

1.44

2005

20

20

0

0

109⅔

8

5

0

0

5.66

130

60

80

1.68

년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05

SD

10

9

0

0

45⅔

4

3

0

0

5.91

50

30

33

1.66

2005 시즌 합계

30

29

0

0

155⅓

12

8

0

0

5.74

180

90

113

1.67

2006

SD

24

21

1

1

136⅔

7

7

0

0

4.81

146

54

96

1.39

년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07

NYM

1

1

0

0

4

0

1

0

0

15.75

6

2

4

2.00

년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08

LAD

54

5

0

0

95⅓

4

4

5

2

3.40

97

40

79

1.40

년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09

PHI

45

7

0

0

83⅓

3

3

14

0

4.43

84

38

73

1.40

년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10

NYY

27

0

0

0

35⅓

2

1

1

0

5.60

40

13

29

1.47

년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10

PIT

26

0

0

0

28⅓

2

2

1

0

3.49

25

9

23

1.13

2010 시즌 합계

53

0

0

0

63⅔

4

3

3

0

4.66

65

22

52

1.32

MLB 통산(17시즌)

476

287

10

3

1993

124

98

20

2

4.36

1872

1048

1715

1.40

NPB 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평균자책점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11

오릭스 버팔로즈

7

7

1

0

42

1

5

4.29

44

16

21

1.33

KBO 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완투

완봉

이닝

평균자책점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12

한화 이글스

23

1

0

121

5

10

5.06

134

63

68

1.54

개인 통산

통산

경기

선발

완투

완봉

이닝

평균자책점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19시즌

506

316

12

3

2156

130

113

20

2

4.40

2050

1127

1804

1.41

역대 기록(MiLB)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1994

샌안토니오 미션스(더블 A)

20

5

5

0

0

3.55

91

57

100

101⅓

1995

앨버커키 듀크스(트리플 A)

23

6

6

0

0

4.91

93

76

101

110

2002

오클라호마 레드호크스(트리플 A)

1

0

1

0

0

9.00

9

76

3

3

2003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스(더블 A)

2

1

0

0

0

2.45

10

3

3

11

2003

오클라호마 레드호크스(트리플 A)

3

3

0

0

0

4.89

27

8

12

18⅓

2004

애리조나 래인저스(루키리그)

4

1

1

0

0

1.71

15

15

20

21

2004

호클라호마 레드호커스(트리플 A)

4

0

2

0

0

3.72

21

3

19

19⅓

2007

라운드 락 익스프레스(트리플 A)

15

5

8

0

0

5.21

100

24

70

84

2007

뉴올리언즈 제피어즈(트리플 A)

9

4

3

0

0

4.57

64

16

16

51⅔

2010

스크랜턴 양키스(트리플 A)

1

0

0

0

0

0.00

1

0

2

1

타격 기록[68]

통산

타석

타수

안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통산

479

430

77

3

27

31

20

155

0.179

0.215

0.240


[1] 음력은 6월 29일.[2] 공주시를 대표하는 현대 인물이다보니 그의 이름이 들어간 야구장이 존재한다. 또한 상기한 것처럼 박찬호의 고향 공주산성 근처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산성찬호길이 있다.[3] 2학년 재학 중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중퇴했으나 2001년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4] 2001년 다저스 시절에 초구를 던지기 전, 혹은 완투승, 완봉승을 거둘 때 나오던 노래였다.[5] 묻지 마라. 욕하지 마라. 찬호는 계속 던진다. 야구와 함께 살아왔다. 나의 과거를 묻지를 마라. 던지고 던진 인생이었다. 후회 없지만 눈물이 난다. 야구를 하면서 난 너를 만났고 사랑을 알았고 꿈을 가졌다...이 생명 다 바쳐 널 위해 던진다. 사나이 한평생 내 사랑 팬을 위해 실패를 해도 욕하지 마라. 찬호의 도전 이란다. 박찬호 순정이란다.[6] 넥센에서 15점대(...)를 기록한고 방출된 선수 맞다.[7] 첫 번째는 1963년 난카이 호크스 소속의 신인으로 마이너리그로 유학을 갔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어 얘 뭐냐?"라며 메이저리그로 콜업했던 무라카미 마사노리(村上 雅則). 다만 당시 난카이 호크스에서 "쟤 우리 선수인데 왜 너희가 맘대로 콜업하냐"라며 더 데리고 싶어했던 자이언츠의 요구를 무시하고 일본으로 강제소환(...)하며 메이저리거 경력은 단 2년에 불과했다. 중간계투로 활약하며 54경기 5승 1패 9세이브 3.4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실제로 2년차 때는 45경기(1경기 선발 출전) 4승 1패 8세이브 3.08를 기록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8] 단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000-2001시즌에는 속구 구위가 상당 부분 감소한 상태였다.[9] 케빈 브라운 때문에 에이스까지는 차지하지 못 했지만 그래도 다른 중하위권 팀에서는 에이스 노릇해도 이상하지 않은 성적이었다.[10] 21세기에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 위에서 공을 뿌린 첫번째 선수가 되는 것이다.[11] 추신수가 박찬호의 통산 WAR를 넘었기에 역대 최고의 메이저리거는 아니다. 박찬호 통산(투수+타자) 17.9, 투수 15.8. 추신수 2012년 7월 7일 기준 19.8. 비단 WAR뿐만이 아니라 7년 1억 3000만 달러의 계약으로 박찬호가 기록한 계약까지 깨뜨렸다. [12] 최희섭이 아니다![13] 박찬호가 선수 초기부터 텍사스로 이적하기 전까지 뛰었던 내셔널 리그에는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는 규정이 있다. 그러다 보니 돈트렐 윌리스잭 그레인키처럼 수준급 타격 실력을 뽐내는 투수도 곧잘 등장한다.[14] 여기에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함께 들어갈 수 있겠으나, 슬라이더는 마이너리그 시절 통타 당하던 구질이라 이후에는 구사를 자제하다 2008시즌부터야 적극 활용했고, 체인지업은 그가 던질 수 있는 구질 중에서 민감하고도 완성된 시간도 꽤 오래 필요했던 구질이다.[15] 미국 폭스TV 중계방송 당시 아나운서가 박찬호의 투심을 보고 '저런 투심은 플레이스테이션2에서나 볼 수 있다.'라며 칭찬하기도 하였다.[16] 사실 MLB에서 약물의 시대가 아니었던 적은 없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베이브 루스가 양의 고환 추출물을 복용했다는 기록이나 미키 맨틀이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다가 종기가 나서 결장한 사건, 행크 애런이 암페타민을 복용했다고 밝힌 것 등 약물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는채로 약물 복용이 성행했으며, 미첼 리포트가 터지며 선수들의 금지약물 사용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된 이후에도 약쟁이는 꾸준히 적발되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통상적으로 스테로이드 시대를 일컫는 경우 1980년대 후반부터 2007년까지를 일컫는다.[17] 굳이 1~2선발급 실력이라고 표현한 것은 박찬호가 텍사스 시절 1선발이었던 때가 있었지만 그에 걸맞는 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다저스 시절 2선발로 활약했을 때에도 1선발인 케빈 브라운을 압도하는 성적을 보였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박찬호의 전성기 시절 수상기록을 살펴보아도, 2001년 올스타를 제외하곤 딱히 주요부문 평균자책점, 탈삼진, WHIP, 승수, 이닝수 등에서 1위를 마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제구력도 1선발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불안했고.[18] 다만 케빈 브라운은 당시 리그를 대표하는 우완투수였다. 박찬호가 브라운을 밀어내지 못했다고 해서 1선발급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최근 몇 년간 그레인키가 다저스의 1선발이 되지 못했던 것은 오직 커쇼라는 괴물 때문이지 그가 1선발급 투수가 아니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박찬호의 전성기 성적은 클래식 스탯으로는 리그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당연히 넣을 수 있는 성적이었다.[19] 박찬호의 마이너리그 시절 스카우팅 리포트를 보면 빅리그 선발진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다는 평을 내렸다. '확실한 유망주', '미래의 메이저리그 프런트라인 급 투수'로 평한 부분은 새삼 박찬호가 대단했다는 걸 방증해준다.#[20] 물론 큰 차이가 있긴 하다. 2000 시즌 217K를 잡아내는 위엄을 보였지만 그분은 347K. 다만 이 시즌에 볼넷도 124개로 리그 2위를 기록하여 삼진/볼넷이 1.75였다.[21] 최종 0.268/0.268/0.268 하지만 볼넷 0개에 장타가 없어서 출루율,장타율이 낮았기 때문인지 결국 그해 실버슬러거는 타율은 0.151에 그쳤지만 그해에만 80타석에서 6개의 홈런을 쳐낸 카를로스 잠브라노가 가져갔다.(0.151/0.160/0.397)[22] 지금의 가전제품 판매 및 수리 점포. 전자기기 업체 노릇을 하던 전파사도 있었고, 웬만한 동네에는 개인이 직접 운영하는 전파사가 하나 둘 정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 거의 사장된 점포 형태이다.[23] 2013년 출연한 무릎팍도사에서 한 발언에 따르면 그 당시 야구부는 라면을 먹을수 있어 그 라면이 먹고싶어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위대한 한국라면 만세[24] 그 때문인지, 도로명주소 개편 당시 박찬호가 살았던 공주산성 근처 있는 작은 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산성찬호길이 생기기도 했다.[25] 변화구가 땅바닥에 튀자 '피아자는 블로킹을 못해서 항상 2스트라이크 잡고는 직구를 요구했었죠.' 라든가[26] 2002년 한화그룹에 인수된 뒤 2012년 10월 9일부로 사명이 바뀌었다.[27] 이 광고가 나가던 시기 한화 성적은 현시창이었기에 한화 경기를 보며 혈압이 올라 쓰러질 것을 대비한 고단수 보험 마케팅이라는 드립이 성행했었다.[28] 그리고 미국 진출을 위해 미국으로 온 윤석민도 이날 경기를 보러왔다고 한다. 하지만 둘이 만났다거나 사전에 이곳에 오기로 했다는 걸 알고있던 건 아니었으며, 박찬호는 현장에서 윤석민이 왔다는 걸 기자가 알려줘서 알았다고 말했다. 이날 박찬호와 함께 류현진 경기를 응원한 건 피터 오말리 전 구단주.[29] 박찬호가 고향팀인 한화 이글스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밝혀왔으며 대전에서 은퇴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대한민국 국가대표로서 한국 프로야구의 올스타들이 모이는 올스타전에 은퇴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전에서 올스타전을 하려면 6년뒤라.. 대전에서 올스타전은 박찬호의 현역시절인 2012년에 있었기 때문에 대전 올스타전 은퇴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한화 이글스에서도 공식 은퇴식 외에도 홈구장인 한밭구장에서 박찬호의 은퇴와 관련된 컨텐츠를 박찬호와 조율하고 있다고 하니 한화팬이라면 크게 실망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언제 프런트가 은퇴식 자체 여부로 의리를 안지킨적이 있던가[30] 양학선 선수는 카잔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31] 실제 박찬호는 고등학교 때 담력을 키우기 위해 야밤에 공동묘지에 혼자 가서 방망이질(?)을 하거나(이 일화는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다.), 일부러 미팅에 나가는 등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대학 1학년때는 선배였던 구대성이 박찬호에게 뻔뻔함을 길러주기 위해 지하철 잡상인을 시키기도 했다고.[32] 내가 원하는 것은 선발투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꿈 속에서만 살 수는 없다. 때로는 현실을 이해하고, 그 현실 속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33] 한창때는 그 랜디 존슨보다도 많이 기록해본 적이 있다.[34] 이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메이저리그에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은 뒤에는 히스패닉 선수들과 제대로 소통을 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추가로 공부했다고 한다.[35] 물론 두 선수 모두 각자 리그에서 손꼽히는 슬러브와 포크볼로 재미를 보기는 했다.[36] 하지만 정작 다르빗슈는 자신을 다양한 구질로 타자를 상대하는 유형의 투수로 생각하는 듯 하다. 또한 인종적 차이를 고려한다면 다르빗슈 유는 이란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의 혼혈이다. 흔히 동양인이라 말하는 황인종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해당 문서 참조.[37] 이미 어금니는 심하게 마모되었다고 한다.[38] 2008년 12월 28일에 방송된 1박 2일에서 밥을 먹기 위해 치아 보조기를 착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39] 류현진이 KBO 에 있을 때에는 최고의 파워 피쳐에 컨트롤도 최고의 피네스 피쳐라 부를 수 있는 완전체였다. 메이저리그로 와서는 양쪽 모두가 정점인 완전체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정교한 제구력과 섬세한 운영이 장점으로 평가받는다.[40] 사실 패스트볼을 포심과 투심으로나눈다면 3피치. 그런데 주무기를 패스트볼과 커브로 단순화했을 뿐이지, 다른 구종을 못 던지는 것은 아니었다.[41] 괜히 팩질이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42] 2000년에 2개의 홈런을 날린 후 9년만에 쳐낸 통산 3호 홈런. 세 홈런 다 홈런이 나오기 힘든 구장(1호 다저 스타디움, 2호 퀄컴 스타디움, 3호 돌핀 스타디움(댄 매리노의 집))에서 쳐낸 것도 대단한 기록이다.[43] 박찬호를 투수로 전향 시킨 감독은 당시 학교내에서 수많은 반대의견, 특히 다른 투수들의 학부모의 반대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박찬호를 기어이 투수로 전향 시켰는데, 후에 박찬호의 졸업 이후 이로 인한 말썽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해임 당하고, 이후 교편을 잡게 된다. 이 감독은 박찬호 본인이 가장 존경했던 은인이자 스승 중의 한 사람으로 꼽고 있다. 참고로 박찬호가 투수로 전향하자, 원래 투수였다가 박찬호의 포지션이었던 3루로 전향한 선수가 바로 홍원기다.[44] 사실 92학번 전체를 이야기해보면 더 많은데 손경수, 정민철, 염종석, 차명주, 전병호, 안병원 그리고 타자로 박재홍, 송지만, 이영우, 김종국 등이 있다.[45] 다만, 토드 헌들리가 다저스의 주전 포수를 보던 1999 시즌에는 채드 크루터 영입 전까지 일시적으로 박찬호의 전담포수를 맡기도 했다.[46] 잉금님이 까였던건 투수진과의 불화가 주된 요인이고 그 외에 리드 때문이지 수비 능력 자체는 좋다.[47] 짬이 차면 포수 리드를 따르기보단 포수와 조율하거나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던지는 경향이 많아지기 때문. 이런 점 때문에 신인급 포수는 그 팀의 최고 베테랑 선발의 경기에 주로 투입되곤 한다. 아예 그냥 투수가 리드까지 전담하게 되는 것.[48] 뉴욕 메츠에서 2루수로 뛰다 나중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도 뛰었던 그 선수 맞다.[49] 민훈기씨의 칼럼에 의하면 그렇다. 물론 민훈기씨의 칼럼이 신뢰할만하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링크 [50] 박찬호의 고향인 공주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51]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던 은지원이 가장 먼저 입수를 함으로서 다른 멤버들은 빼도박도못하고 전원 입수를 하게 되었다.[52] 이 때 나PD와 혐상하면서 탁구대 맨 끝 선에 걸치면 얻는 혜택이 걸친 사람 1명 빼고 나머지 야외취침이었다가 전원 구제로 바뀐 건데, 안바꿨으면 박찬호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이 밖에서 잘 뻔했다. 참고로 1명 빼고 야외취침을 제안했던 사람은 은지원, 나영석 PD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자 얼빠진 상태로 전원 실내취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텐트 걷자는 자막은 덤. 그래도 1박 2일 역사에 손꼽히는 명장면을 건졌으니 손해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53] 한국프로야구 최저 연봉이다. 박찬호/2012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사실상 연봉 0원이다. 한화는 박찬호를 영입하면서 적지 않은 연봉을 준비하였었는데, 박찬호가 오히려 연봉 0원으로 하겠다고 제안하였다. 대신, 한화는 6억 원 상당의 금액을 유소년 야구에 사용하라고 기부를 했다. 박찬호 역시 연봉 전액(2,400만 원)을 같이 기부하였을 뿐만아니라, 추가로 개인적으로도 기부하였다고 한다. 박찬호는 연봉 0원이 아니라 마이너스로 뛴 셈. 덤으로 박찬호는 한국프로야구 최저연봉이 이렇게 적은 줄 몰랐다고 언급하였다. 메이저리그에서 대략 2000이닝을 던지면서 969억을 벌었으며, 이닝당 4,800만원 정도로 계산할 수 있다. 박찬호가 2,400만원을 어떻게 보는지 대충 가늠할 수 있다. 참고로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은 5억이 넘는다. 흠좀무[54] 달러와 엔화는 모두 2013년 3월 16일 환율 기준으로, 해당 시절 가치가 반영되지 않았으니 참조만 하길 바란다. 광고 등의 추가 수익도 있으니 오차범위도 생각하시길.[55] '외화벌이'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박찬호를 보기 위한 야구 팬들의 입장료, 한국에서 박찬호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들어간 돈 등등을 제외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메이저 당시 세금은 미국에 낸다. 이게 크다 물론 단순 외화벌이로 박찬호 등 국위 선양하는 선수들의 가치를 폄하할 순 없다.[56] 추신수는 2014년에 7년간 1억 3천만 달러, 한화로 총 1,474억 원에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했다.[57] 막상 박찬호 본인은 다른 선수들에게서 나는 치즈냄새가 더 역겨웠었다고, 그래서 너희들도 니네 몸에서 나는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당해보라는 의도였다고 한다.[58] 당시 동인천 인근에는 미림극장, 애관극장 등 오래된 극장들이 많아 옛날식 영화 판넬을 그리는 화백들이 많았다.[59] 여담이지만 박충서의 아버지 박용구는 개혁 성향의 인물로 조용수의 민족일보 창간에 큰 기여를 한 결정적 후원자였다. 훗날 이와 관련해 시국 사건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박정희로부터 모종의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 이후 박정희가 박용구 대신 선택한 사람이 신격호라는 이야기가 있다. 박용구는 재능 있는 유학생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했고 아들 박충서가 이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혁 성향의 박용구가 세운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한 인물 중 하나가 허문도. 이래저래 박찬호는 한국 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집안에 사위로 들어간 셈.[60] 흑마늘을 훅마늘로 적어놨다(...)훅 맞은것 마냥 매운 마늘.[61] 애리조나 전 8이닝, 샌디에이고 전 17이닝, 밀워키 전 7이닝, 샌프란시스코 2회 실점까지 무실점 피칭을 펼쳤으며 당시 타고투저시대에 나온 값진 기록, 참고로 ML최고기록은 오렐 허샤이저의 59이닝 무실점[62] 당시 다저스 선발 최다이닝. 2013년 클레이튼 커쇼가 236이닝으로 경신한다.[63] 자책점 2점은 당시 알루미늄 배트가 허용된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허용한 실점이었고 이후 참가한 국제대회에서 13이닝 무실점 3세이브 활약을 펼쳐 합법적 병역브로커의 면모를 보여주었다.[64] 1호 2000년 8월 24일 몬트리올 엑스포스 홈경기(허용 투수 하비에르 바스케스), 2호 2000년 9월 30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원정경기(허용 투수 우디 윌리엄스), 3호 2009년 4월 25일 플로리다 말린스 원정경기(허용 투수 크리스 볼스태드). 재미있게도 세 홈런 모두 다 투수에게 극도로 유리한 구장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홈런을 달성한 경기와 얽히 사연도 있었는데, 1호 홈런 경기가 있던 날 경기전 행사로 당시 유학중이던 가수 양파다저 스타디움에 공식 초청되어 미국국가를 불렀고, 2호 홈런 경기는 박찬호의 프로 첫 완봉승 경기였다.[65] 사실 옆으로 안 차고 돌려차기했다고 밝혔다.[66] 농담이 아닌 것이 이 당시 주니어는 자신의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한 상태였고 따라서 레전드 선수의 마지막 올스타전이 된 것이었다. 현지에서도 다들 박찬호가 이 홈런을 선물한 것으로 생각했고[67] 1997년 컵스전에서 완투승을 한 박찬호를 보고 당시 컵스의 1루수였던 그레이스가 한국인 기자에게 박찬호의 나이를 물어봤는데 기자가 24살이라고 답하자 한 말이라고 한다. 참고로 최희섭이 은퇴당시 후배를 위해 길을 비켜주는 마크 그레이스처럼 되고 싶다고 회고한 바 있는데 이사람이 그 사람이다.[68] 투수치고는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