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지

최근 수정 시각:


1. 소개2. 경력
2.1. 클럽2.2. 국가 대표
3. 평가4. 은퇴 후
4.1. 해설가4.2. 그 이외
5. 이야깃거리6. 논란
6.1. 막내아들의 다툼 사건
6.1.1. 시작6.1.2. 상대 학부모 주장6.1.3. 진실(반전)

파일:PYH2016091811560005700_P4.jpg

이름

김병지 (金秉址 / Kim Byung-Ji)

생년월일

1970년 4월 8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남도 밀양군 무안면 [1]

신체 조건

184cm, 78kg

포지션

골키퍼

소속팀

울산 현대 (1992~2000)
포항 스틸러스 (2001~2005)
FC 서울 (2006~2008)
경남 FC (2009~2012)
전남 드래곤즈 (2013~2015)

등번호

1번

국가대표

61경기 72실점

은퇴발표일

2016년 07월 19일

199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라데

FW
세르게이

MF
신태용

MF
바데아

MF
홍명보

MF
하석주

MF
김현석

DF
윤성효

DF
김주성

DF
허기태

GK
김병지

199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현석

FW
샤샤

MF
고종수

MF
유상철

MF
백승철

MF
안정환

MF
정정수

DF
안익수

DF
마시엘

DF
이임생

GK
김병지

200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주영

FW
마차도

MF
김두현

MF
이천수

MF
이호

MF
조원희

DF
임중용

DF
유경렬

DF
조용형

DF
김영철

GK
김병지

200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까보레

MF
따바레즈

MF
이관우

MF
김기동

MF
김두현

DF
아디

DF
마토

DF
황재원

DF
장학영

GK
김병지

1. 소개[편집]

파일:ZoIaPGY.gif [2]

"우리는 더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골키퍼(김병지)가 너무 뛰어나서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했다." - 1998년의 마르세유의 치욕 당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

2. 경력[편집]

2.1. 클럽[편집]

파일:2015072403474_1_0.jpg

이운재와 함께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골키퍼이자 롱런의 아이콘

1992년 울산 현대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15 시즌까지 무려 24시즌을 현역으로 뛰었다. K리그는 2015년 기준으로 32시즌이다.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현역 1998 월드컵 출전자였으며[3] 그가 2016년 7월 20일 은퇴한뒤 이제 2002 월드컵 현역멤버는 현역민현영민만 남게 되었으나 그 현영민마저 2017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1995년, 발레리 사리체프를 앞세운 천안 일화 천마의 3연속 우승 쇼크에 울산 현대를 제외한 K리그 전 구단이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는 붐이 일어났을 때도, 그만은 토종 골키퍼의 자존심을 지켰다. 덤으로 울산 현대는 골키퍼 명가의 명성을 이어 간다.

1996년 K리그 우승과 1998년 K리그 준우승에 일조한다. 특히 1998년 포항과의 PO 2차전에서 보여준 헤딩 골은 많은 팬들에게 회자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당시 상황은 1:1, 후반전 추가 시간, 울산이 프리킥을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김병지가 포항의 페널티 에어리어를 향해 달려왔고 때마침 올라온 골을 그대로 헤딩, K리그 사상 최초로 골키퍼 필드 골을 넣었고 플레이오프 1, 2차전 합계 스코어 4:4를 만들면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결국, 팀은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여 결승에 진출했다.



2001년에는 국내 선수 최고 이적료를 받고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 2004년 K리그 준우승에 여러모로 일조했다. 수원과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는 말 그대로 야신 모드로 엄청난 슈퍼세이브를 경기 내내 보여주며 무승부를 이끌어 냈다. 2차전 승부차기에서는 포항의 5번째 키커로 등장했는데, 김병지가 실패하면 수원의 승리가 되는 상황이었다. 김병지가 찬 공은 결국 영원한 라이벌 이운재의 손에 막히며 팀도 패하고, 본인도 라이벌에게 패하는 아픔을 겪었다.

2006년에는 FC 서울로 이적하여 2006년 팀의 하우젠 컵 우승에 공헌하고 2007 시즌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005년에는 통산 무실점 기록[4]을 경신하였다. 2006년 K리그 사상 2번째로 4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고 그 해 최다출장기록을 경신했다. 2007년에는 통산 최다 무교체 출장기록을 153경기로 경신했다. 이 기록은 칠레와의 A매치 경기에서 입은 부상[5] 때문에 마감되었다. 이 때 부상으로 잠시 전열에서 이탈한 사이 후배 골키퍼 김호준이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고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던 귀네슈 감독의 의향에 따라 2008 시즌에는 김호준의 백업으로 머물게 된다. 이것을 크게 불쾌하게 여겨 이적 후 축구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주전이었다면 우승했을거라며 2008시즌 준우승에 머무른 서울과 귀네슈 감독을 디스했다.[6]

파일:/image/139/2008/12/30/SK004_20081230_160101.jpg

K리그 통산 500번째 경기 날 등번호 500번 유니폼을 들고

파일:/image/410/2012/10/07/20121007_1349597951.jpg_59_20121007172116.jpg

K리그 통산 600번째 경기 날 경남의 모든 선수가 기념 티셔츠를 입었다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AKR20150727026900007_01_i.jpg

세 아들과 함께 시축을 한 그의 K리그 통산[7] 700번째 경기날!


이를 참을 수 없었던 김병지는 2009년 고향 팀인 경남 FC플레잉 코치 신분으로 이적한다. 비록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그는 5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당시 등번호 500번 유니폼을 제작했는데, 처음에는 프로연맹에서 반대하였지만 이후 500번째 경기에서 500번 유니폼 착용을 허락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 경기에서 4골이나 먹는 바람에 통산 500실점이라는 그다지 썩 좋지 못한 기록을 세웠다#.

2012년 6월 27일 통산 200번째 클린시트를 달성하였다. 오 대단 2012년 10월 7일, 서울을 상대로 대망의 6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2012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는데, 경남 FC 주전 수비수 이재명과 함께 전남행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이재명은 전북으로 갔다.

결국 전남 드래곤즈로의 이적을 합의했다.# 여담으로, 김병지 슬하의 아들 셋이 모두 축구를 하는데, 모두 전남 드래곤즈의 유스 팀으로 옮긴다고 한다. 사부자가 구단을 접수한다!

특이한 것이 경남 시절에는 분명 플레잉 코치로 입단했는데, 전남에 와선 플레잉 코치가 아닌 선수로 입단했다. 이 때 그의 나이 43세(...). 참고로 김병지가 전남에 입단하기 전, 전남의 주전 키퍼는 다름 아닌 이운재다.(...). 이운재를 버리고 김병지를 취하는 전남의 클래스[8]
게다가 하석주 감독과는 겨우 3살 차이. 그나마도 하석주가 2014시즌을 끝으로 물러나고 수석 코치인 노상래가 감독을 하면서 코치진이 리뉴얼 되었는데, 김병지보다 나이 많은 코치가 한명도 없다.[9] 다시 플레잉 코치로 전환하셔도 될듯??

그리고 2015년 7월 26일, 대망의 700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 700번째 경기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3대 1로 승리를 했다. 777번째 경기가 자신의 은퇴 경기가 될 거라고 선언했다. 아직 2~3년이나 남았다. 그나저나 주전자리 찾아서 온 김민식 지못미

그러나 이번 700경기 인터뷰에서 아버지 뒤를 이어 축구를 하고있는 장남 김태백 군이 프로에 데뷔할 때까지 뛸거라고 하니까 어쩌면 777경기보다 더 오래할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김민식 지못미## 1000경기가 문제가 아니라 이정도 기세면 장남 김태백 군 은퇴할 때 같이 은퇴할지도 모른다

2015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이적시장에 나왔다. 그러나 이미 40대 중반의 최고령인데다가 후술할 막내아들 폭행사건 수습의 영향으로 2016 시즌 전반기엔 소속팀을 구하지 못하고 무적으로 남았다.

2016년 7월 19일, 김병지는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최고령의 나이에 6개월의 공백 기간이 있었고, 결코 저렴하지 않을 몸값(대우), 또 앞서 말한 사생활 이슈가 결국 그를 은퇴의 길로 끌고 갔다. 기사 링크 K리그 최고의 선수라 부를 수 있는 선수가 이렇게 그라운드 밖으로 나아갔다. 통산 706경기 출장, 229경기 무실점, K리그 최고령 출장(45년 5개월 15일)의 대기록을 남긴 채.

은퇴식은 9월 18일 일요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렸다.

2.2. 국가 대표[편집]

파일:AP0627_2113_32.jpg

1995년 6월 5일 코리아컵 코스타리카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했다. 국가대표팀의 간판 골키퍼로 활약했으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맹활약한다. 특히 최고의 명장면은 조예선 2차전 네덜란드전이었다. 당시 우승후보 네덜란드의 선수진 면면을 살펴보자면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에드윈 반 데 사르, 에드가 다비즈, 데니스 베르캄프, 필립 코쿠, 프랑크 데 부어, 야프 스탐 등의 축구계에서 손꼽힐 만한 선수들이 한 팀에 모여있었다. 팀은 그야말로 떡실신 당했지만 김병지는 빛났다.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는 우승후보로 꼽히는 명실상부 최고의 팀[10]이었다. 그런 팀을 상대로 대한민국마르세유의 치욕을 당하고 결국 차범근 감독이 해임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겨우 5실점밖에 하지 않은 건 김병지의 눈부신 선방 때문이었다. 실제로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더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골키퍼가 너무 뛰어나서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후에 히딩크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맡게 되었을 때 인터뷰 내용중 프랑스 월드컵에서 김병지의 활약을 언급하자 월드컵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골키퍼가 있다는 것은 팀에게도 감독에게도 좋은 일이며 더구나 그 때 김병지가 가장 인상에 깊게 남았었는데 그와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세계적인 감독이 변방의 나라 골키퍼 팬 이 곳이 김병지의 나라입니까?? 인터뷰도 좋지만 난 김병지부터 먼저 만나겠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9실점을 했는데, 3경기 다 합쳐서 유효슈팅 56개 허용해주고 이렇게 털린 베경에는 전체적으로 팀의 수비전술의 문제가 있었다. 3-6-1 포메이션에서 선수비 후역습으로 어느 정도 상대의 측면돌파를 윙백이 끊어주고 중앙에서 강하게 압박하는 등 시도 자체는 해볼만 했다. 그러나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은 체력적으로나 개인 기량적인 면에서나 한국팀을 아득하게 앞서는 넘사벽 수준의 팀. 당장에 저 멤버로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은 팀이니 더는 할말이 없다.

1차 저지선이어야 할 허리라인은 상대의 현란한 개인기와 패스 조합에 우왕좌왕하다 헝클어지면서 윙백의 부담이 커진데다가, 레프트 윙어인 마르크 오베르마스를 위시한 네덜란드의 윙플레이어들의 미친 돌파력으로 윙백들이 최후방라인보다 더 내려가게 되어버려 쓸모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협력수비 한답시고 다들 공이 가는 곳마다 몰려다녀 정작 베르캄프, 클루이베르트 등의 공격수를 놓치면서 공간이 호남평야마냥 훤하게 드러나 침투도 용이해지는 바람에 골키퍼의 부담의 가중까지 미쳐 올라가는 지라 한마디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병지 탓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때문에 김병지는 당시 골키퍼 선방 횟수 19개로 예선에 참가한 전체 골키퍼 중 2위를 기록했으며 야신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만약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했다면 김병지가 수상했을 것이라는 아쉬운 목소리도 있다. 예선도 통과 못 한 팀의 선수에게 상을 주기에 아까웠던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 말에 '16강 진출팀이나 예선탈락 팀이나 어찌 보면 한끗 차인데 야신상 받기엔 그저 그런 성적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는 뉴비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그 전 대회에서 야신상을 받은 골키퍼는 16강에서 독일에게 3-2로 패배해 탈락한 벨기에의 주전 GK 미셸 프뢰돔이 받았다. 전례가 바로 그 전 대회에서 있었기 때문에 아주 신빙성이 없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1998년 월드컵이 끝나고 당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게 영입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본인이 언어 문제 때문에 거절하여 무산되었다"고. 뭐 당시는 프리미어리그가 최고의 리그가 아니던 시점이기도 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역사적인 트레블은 1999년, 김병지가 영입제의를 받았을 때는 1998년이었다.[11] [12]하지만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수비수들과의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한 포지션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매우 곤란해진다. 따라서 김병지 본인이 언어 문제때문에 거절한 건 타당한 이유가 된다.[13]

어이없어하는 거스 히딩크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는 핌 베어백의 모습이 압권.

이런 뛰어난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지만, 2001년 1월 칼스버그컵 파라과이 전에서 무리하게 공을 몰고 가다 상대 미드필더인 구스타보 모리니고에게 공을 빼앗기는 아찔한 실수를 벌였고, 결국 후반전에 교체되고 말았다. 비록 대한민국이 승부차기에서 승리했지만 이 경기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 밖에 나게 되면서 한동안 대표팀에서 볼 수 없었으나, 후에 리그에서 성실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 해 11월에 다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2002년 월드컵 엔트리에도 포함되면서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에서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벤치에서 4강 진출의 기쁨을 맛봐야 했다. 히딩크 감독 자서전에 의하면 이운재김병지 두 선수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으나, 이후 기용된 이운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지속적으로 출전시켰다고[14].

이후에도 대표팀의 주전 수문장은 이운재로 고정되어 가게 되는데, 김영광이나 김용대 등 젊은 골키퍼들도 두각을 나타내었고 한일 월드컵이후 외국인 감독들이 국제경험이 많으면서 최근 월드컵을 경험한 이운재를 중심으로 삼게되면서 자연적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되곤 하였다. 그러나 2004~2005 두 시즌 간 이운재의 리그와 대표팀에서의 기량정체 및 저하로 언론과 축구팬들 사이에서 독일 월드컵 대표팀의 부동의 1번에 의구심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대표팀 재입성이 재기되었다. 실제로 기록만으로 본다면 이운재는 1점대 이상의 실점률을, 김병지는 0점대의 실점률을 보이며 수치상으로는 이운재를 압도하는 중인데다가 이운재의 소속팀은 그 유명한 K리그 대표팀 중의 하나인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한 수원 블루윙즈였지만 김병지는 과거의 전통명문 구단이면서도 중위권 팀으로 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력이 열세인 포항 스틸러스 소속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비교가 되었다.[15]

이 현상에 대해 이운재는 "좋은 후배들이 많기 때문에 김병지가 대표팀에 돌아오면 후배들의 앞길을 틀어막는다."며 디스를 시전하였고 얼마 뒤 김병지가 '너나 똑바로 해라. 네가얼마나 대표팀에서 빙다리 핫바지식으로 굴었으면 나를 찾는가?? 내가 돌아갈 정도면 네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입을 놀리는 것인가??'라는 식의 맞디스를 날리면서 으르렁거리는 상황이 펼져졌고 양 선수들의 팬들까지 서로 '파라과이 무한돌파 실패한 벤치멤버', '운동도 안하고 살만찌는 돼랑이'라고 온라인에서 물어뜯으며 국가대표팀 엔트리 발표일까지 두 선수의 향방이 주목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는 뭐... 이후 2007년 아시안컵 음주 파동에 휘말린 이운재를 대신해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했으나, 2008년 1월 칠레와의 경기에서 허리 부상을 당하면서 다시 아웃된다. 이후 국가대표는 본인이 후배들을 위해서 길을 터줘야 한다며 사실상 국가대표 자리에서 은퇴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3. 평가[편집]

이운재와 함께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골키퍼.

동물적인 판단력과 순발력, 탁월한 반사신경, 좋은 킥력 등 골키퍼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 준족을 살린(100m 11초) 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하며, 골키퍼로서 큰 키가 아니지만 점프력이 좋아 공중볼 처리에도 능하다.

전진수비가 많고 골키퍼임에도 공을 차고 앞으로 나가는 돌출행동을 할 때가 있어, 이운재보다 수비 안정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이건 억울한 평가인 게 히딩크 시절의 기억이 깊게 남은 탓이지, 커리어 전체로 보면 돌출 행동이 많은 선수는 아니며 전진 수비로 인한 실점도 적은 선수다. K리그 통산 클린시트 횟수 2위에 올라 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해 준다.

이후 마누엘 노이어가 안정된 볼처리와 킥, 반응속도를 근간으로 한 전진수비로 골키퍼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스위퍼키퍼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한국에서 김병지의 전진수비가 재조명되고있다(...). 독일의 김병지가 마누엘 노이어

이 쯤 되면, 골키퍼의 영역을 넘어서 K리그를 대표하는 올타임 레전드로 봐도 된다.

4. 은퇴 후[편집]

4.1. 해설가[편집]

자질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해설위원

2016-17 시즌부터 SPOTV의 해설위원으로 EPL 중계에 참여하고 있다. 에취~

너무 낮은 텐션과 어눌한 발음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데 이건 듣기 좀 불편할 수는 있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16]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는데 바로 종종 해설위원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발언들을 많이 한다는 것.[17] 또 해설위원은 빨리 돌아가는 경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선 포인트를 잘 잡아 짧은 설명으로 이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김병지는 말이 너무 장황하게 긴 편이다.

아무래도 선수 출신 해설가들과 비선출 해설가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비선출의 경우 팬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구단, 선수, 감독, 리그의 경력이나 역사, 규정, 기타 제반 사항에 관해 능통한 편이다. 반면 경기 내용에 관한 전문 지식이나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 같은 경우는 선수 출신 해설가들이 월등하다. 비선출 해설가의 최고봉에 있는 한준희조차 인정하는 부분으로, 선수 출신 해설가들의 관건은 본인 머리 속의 느낌이나 흐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정확하게, 기왕이면 보다 더 느낌을 살려서 전달할 수 있냐에 달려 있다. 김병지는 K리그에서 압도적인 출전수와 화려한 국가대표 경력을 자랑하는 만큼 잘 들어보면 머리 속에서 그리는 그림은 선수 출신 해설가들 중에서도 압도적이다. 그러나 상술한 것처럼 말이 지나치게 길어서 비경제적이고, 횡설수설하는 경향이 있고, 텐션이 낮고, 표준어 발음이 불명료하며, 어휘선택도 그 시대 선수 치고는 좋은 편이지만 해설가 기준으로는 좋지 못하다. 게다가 골키퍼 관점에서 얘기하는 경향이 잦다 보니 독특해 좋다는 평과 공감하기 어렵다는 평으로 갈린다.

이렇기 때문에 최태욱과 함께 시청자들로 하여금 스포티비 축구 해설진에 대한 평가를 깎아먹는 데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 특히 김병지는 유난히 빅매치만 맡는다[18]

참고로 김병지는 2010 남아공 월드컵때도 해설을 맡은 경력이 있었고 이 때도 많은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었는데 수년이 지난 후에도 큰 발전이 없다는 점은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다.

4.2. 그 이외[편집]

자신의 이름을 딴 '김병지축구재단'을 통한 활동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10월에는 수원 인계동에 재활전문치료센터를 오픈했다.

2017년 11월 19일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기사 차가 크게 파괴되지 않아 별 일 없는 줄 알았지만 후유증으로 디스크 파열로 인해 신경이 마비되었고 수술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 이후 다리에 마비가 왔는데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본인의 SNS로 미루어보아 생각보다 큰 사고였던듯하다.

5. 이야깃거리[편집]

  • 12회 연속 올스타 출전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서 올스타전 참가는 15회, 2015년까지 합치면 16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

  • 2009년 11월 1일. 본인의 리그 500번째 경기는 F4를 앞세운 전북과의 경기였다. 499경기 때까지 김병지는 실점 496점을 기록하며 평균 실점 0.994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근데 하필이면 이때 또 전북이 폭발해 4골을 득점. 본인의 500번째 경기에서 500번째 실점을 하며 평균 실점 1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 23년 동안 현역으로 뛰고 있고, K리그의 기록 제조기의 비결은 역시 자기관리. 정말 철저하다. 23년의 현역 선수생활 동안 데뷔했을 때의 몸무게가 지금까지 단 1킬로도 찌지 않았다고 한다.[19]우스갯소리로 술과 담배는 끊었지만 드리블은 끊지 못했다는 소리가 있다. 이건 김병지 본인도 해설 도중 언급하기도 했다.

  • 마산공고 재학 시절 부산 소년의 집[20]으로 전학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감독으로부터 키가 너무 작으니 축구를 접으라는 소리를 들어서, 둘째는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님이 멀쩡히 계심에도 불구하고 단지 축구가 하고 싶어서이다. 그의 축구 사랑은 위대하다.

  • 마산공고 재학시절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의 강호동과 함께 마산 시내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던 학생들 가운데 하나였다. 마산공고 축구부와 마산상고 씨름부에서 둘 다 엄청 유명했다고. 그래서 마산상고 씨름부와 마산공고 축구부의 1학년 패싸움에서도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 후일 강호동은 '공포의 쿵쿵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2002월드컵 직전이었던 시기에 "당시 마산에서 유명한 운동부가 우리 마산상고 씨름부와 마산공고 축구부였는데 서로 마산 운동부를 대표하다보니 1학년끼리 신경전이 생겼고 결국 우리끼리 야산에서 패싸움을 했었다. 우리는 잡으면 던지고(?), 그쪽은 발로 차는 걸 잘했다(?). 당시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당시 상대학교선수들 중에 뒷머리를 꽁지머리로 멋내서 길렀는데 굉장히 싸움을 잘해서 두려웠던 상대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나이먹고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김뱅지' 선수였던 거 같다. 굉장히 빨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유재석이 '김뱅지'라고 한 걸 지적하고 웃다가 맞았다. 재석이 고마해라 고마해라 고마하라고 후일 이것이 작은 이슈가 되어 김병지 역시 스포츠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패싸움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 사람이 자신이 맞았고 싸울때 이미 강호동을 알고 있기도 했고 싸울때 본 것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러 우리동네 예체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며 결론적으로 둘다 패싸움에 각 운동부 리더격으로 참여했다는 것을 인증했다. 예체능 출연보다 한참전에 강호동의 방송 발언 이후 두 사람이 사적으로 만나서 이미 그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현 기능사에 해당하는 자격증인 선반기능사 2급,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소년의 집에서 취득한 것으로, 학교가 공고인데다가 실전을 중시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자격증 취득을 장려한다. 김병지의 신장이 작다는 이유[21]로 팀들이 입단을 거절했었고, 결국 LG산전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축구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상무(당시에는 리그에 참여하지 않는 그냥 상무팀)에 입단 테스트를 요청하여 상무에서 뛰게 된다. 상무에 입단 테스트를 요청한 경우는 전무후무한 기록.

  • 1998년 K리그 플레이오프 준결승 2차전 포항과의 경기에서 팀이 1대1로 비기고 있을 때 게임 종료 직전에 공격에 가담하여 헤딩슛으로 골을 넣었다. 이로 인하여 K리그 최초의 골키퍼 득점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 2010 남아공 월드컵 개막전인 남아공 vs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해설을 맡았다. 언론에서는 성공적인 해설이라고 했지만, 팬들로부터는 경기 흐름을 전혀 읽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사투리를 쓰거나 말을 버벅거린 것도 감점 요인. 다음 경기인 프랑스 vs 우루과이 경기의 해설을 맡은 박문성의 해설과 비교되어 평가가 더 나빠졌다. 다만, 이후 안 좋은 점을 고쳤으며 나름대로 좋은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점점 해설에 적응해 가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회 중반 이후로는 상당히 훌륭하게 해설을 했고, 특히 세트피스 상황에서 골키퍼 출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사항들을 해설해 줘서 평가가 굉장히 좋았다. 실제로 파라과이 vs 이탈리아 전에서 파라과이의 프리킥 상황에서 이탈리아 선수들의 포지셔닝에 대한 지적을 했는데, 그 뒤 이탈리아는 파라과이에 바로 선제골을 먹혔다.

  • 2010년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네이트에 칼럼을 연재했다. 필력도 괜찮은 편이고 오랜 선수생활 동안의 풍부한 경험, 선수들만이 알 수 있는 경기 내적인 내용이나 현장에서의 고충을 토대로 서술하여 인기가 좋았다. 다만 어디까지나 선수 신분이기에 전문 칼럼니스트들처럼 취재, 조사하고 다닐 처지는 아니라서 연재가 정기적이지 않고 분량이 약간 짧았다. 2011년 5월 27일 칼럼을 마지막으로 네이트에서 '연재 종료' 칼럼으로 분류되었다.


파일:attachment/김병지/twitter.jpg

  • 경상남도 출신이라 그런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도 챙겨 보는 모양이다. 2010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 당시 이대호의 호수비를 보자 트윗에 글을 남겼다.

  • 2000년 8월 16일 심장 부정맥으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임수혁에게, MVP 및 캐넌슈터왕으로 얻은 상금 중 300만 원을 임수혁의 치료비에 보탰다.

  • 2005년 FC 서울로 이적할 때, 당시 꼬꼬마였던 박주영이 김병지를 보고 어떻게 부를까 고민하다가 김병지가 '삼촌'이라 부르라고 한 뒤부터 1985년 이후 출생 선수들에게는 '삼촌'이라 부르도록 했다. 이후 경남 FC로 옮긴 뒤로도 막내들에게 삼촌이라고 불린다. 사실 나이로만 보면 삼촌뻘이 맞긴 하다. 그리고 2015 시즌 기준으로 최연소 선수가 빠른 1997년 생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라운드에서 아들뻘 되는 선수들과 뛰는 장면도 볼 수 있다는 것.

  •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축구계를 뒤흔들고 있던 2011년 5월 어느 날, 한 인터뷰를 통해 "나에게 승부조작 제의가 왔다면 패버렸을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그의 축구사랑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이 소식을 들은 일부 축구 팬들은 김병지라면 실제로 그럴지도...라고 평했다.

  • 김병지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일화로 1999년 SBS 모 예능프로 몰래카메라에 김병지가 출연한 적이 있었다. 몰래카메라의 시나리오는 김병지가 지나가는 앞에서 괴한들이 여자를 괴롭힌다는 것. 김병지는 위에 설명했듯이 마산에서 싸움으로도 한 때 유명했던 사람이었던지라 괴한 중 한 명에게 바로 날라차기를 시전했고 다른 괴한역의 연기자들은 쫄아서 도망가버렸다. 하지만 김병지는 전성기에 100m를 11초대에 끊던 준족. 얼마 도망가지도 못하고 연기자들은 잡히고 나서 김병지에게 빌었다고...덕분에 몰래카메라 촬영은 중단되었다. 신동엽(당시 프로그램 MC)이 인증해주었다.잡았다 요놈!!

  • 위 발언은 전술된 네이트에 연재된 칼럼 가운데 마지막 칼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승부조작 사건을 바라보는 백전노장의 안타까운 마음이 물씬 담겨있는 글이니 주석에 링크된 칼럼은 한 번씩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 2011년 12월, 트윗을 통해 2011년 목표를 운전면허 정복의 해로 선정, 트레일러와 오토바이 운전면허를 취득하였고 대형 면허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 2012년 10월, 자신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에 직접 댓글을 달아 화제가 되었다. 댓글의 내용은 하이킹을 하던 중 히치하이킹을 하게 되었는데 탑승한 차량이 김병지의 차였던 것. 목적지까지 태워준 것은 물론 용돈까지 줬다고 한다. 김병지 본인이 단 댓글에는 대략적인 위치까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기억왕 김병지

ryuh****

10년전 배낭여행하던 나는 경상도 어딘가에서 히치하이킹을 했고! 고급세단이 나를 태워줬다! 그리고 놀랐다 운전자가 김병지형님이었지! 어린친구가 멋지다라고 격려하면서 목적지 까지 태워다 주었고 용돈10만원도 받았다! 그이후 나는 김병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김병지 형님! 정말 인간적으로도 너무 멋진분!


leos****

김병지 입니다.. 생각나네요..포항에서 영덕가는 국도변에서 대구 지역 대학생이었던걸로 기억나네요..두분이셨던것두요...강원도 설악산까지 하이킹 하신다고, 열혈도전에 깊은 인상이 남네요..아마 그때 그 도전정신으로 지금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좋은 기억과 추억으로 자리하길 바랍니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305180405860106011.jpg

  • 슬하에 아들이 셋 있다. 큰아들 태백, 작은아들 산, 막내아들 태산으로, 세 아들의 이름을 태백산에서 따왔다고 한다. 세 아들 모두 축구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모두 골키퍼를 하고 싶다고. 김병지가 평하길, 태백이는 패스타이밍이, 산이는 킥력이 좋고, 태산이는 두 형에 비해 피지컬이 좋다고.이 글만 보면 왠지 재능을 셋으로 나눠서 물려준 거 같은데 특히 작은아들 산이는 KBS N 스포츠 '날아라 슛돌이'의 2기~4기에 이을용의 아들 태석이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4기 때는 부주장을 맡기도.
    김병지가 전남으로 이적할 때 세 아들 역시 구단 산하의 유스팀으로 옮겼다.[23] 김병지는 큰아들 태백이가 프로 무대에 데뷔할 때 같이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24] 한편, 최근에는 막내아들 태산이는 야구에 관심이 있는 듯 하다. 일단은 광양에 있는 한 리틀야구팀에 소속돼 있다.

  • 과거 '논키퍼'라는 농약의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 "축구에는 골키퍼 논에는 논키퍼"

  • 2014년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아디의 은퇴식을 엎어버리고 승리한 후 최용수 감독의 두 손 악수를 한 손으로 잡아주는 위엄을 보여주셨다! 큰삼촌급 선수의 위엄[25]


파일:external/static.munpia.com/qFrmii3einbvThoa.jpg
경기 시작 전에는 서울 키퍼 김용대 더러 "너 아직 골키퍼 하냐?"...며 놀렸다.(...) 이 아저씨가

  • FIFA 14에서 골키퍼로 득점하면 깰 수 있는 골드 도전 과제 '공수의 달인'의 설명에는 '김병지를 아시나요?'라고 적혀 있다.???:그럼 나는?

  • 2014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 히딩크 감독이 보는 앞에서 폭풍드리블 후 볼 뺏기기(...)를 재현해서 큰웃음을 선사했다.# 보고있나 히딩크? 그 앞장면에서 초근접거리에서 김신욱의 강슛을 세이브해내는 장면도 쩔긴 쩐다.

  • 싸인을 거의 뿌리는 수준으로 해준다고 한다. PC방 컴퓨터 본체에 해줬다라는 일화도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해당 네티즌에 의하면 온 동네에서 김병지 싸인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segye.com/20150724003685_0.jpg

  • 2015년 7월 26일 열릴 전남 드래곤즈와 제주 유나이티드간의 경기가 김병지의 k리그 통산 700번째 출장경기다. 그래서 7월 17일 열린 k리그 올스타전에서 등번호 700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전후반 90분 동안[26]맹활약 했다.

  • 2015년 현재 권순태에 이어 클린시트 경기 수 2위라고 한다. ㅎㄷㄷ...

파일:external/down.humoruniv.org/game_1927148_1439283740.56693.jpg

  • 해피선데이 1박 2일에 출연한 유희열이 젊은 시절의 윤상이 김병지를 닮았다고 말해서 화제를 모았다#

  • 피파3에서 김병지를 공격수로 세우면 이런일이 일어난다.# 그렇긴해도 구 엔진에서만 가능한 일이며, 파일럿의 기술이 좋아야한다. 이 플레이로 인해 피파3 유저들은 페르난도 병지라는 별명을 붙였다.김병지는 포지션 어디냐고 물어보면 ST라더라.

어어... 김병지 선수가 문제인 거 같아요. 골대를 지켜야 하는데 안 지켜요. 그리고 골키퍼가 공격수도 아닌데 공격하러 저~기 가있고... 어.. 일단 그... 골키퍼도 약간 교체를 해야 된다고(생각합니다).

6. 논란[편집]

6.1. 막내아들의 다툼 사건[편집]

김병지가 은퇴하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건.[27][28]

6.1.1. 시작[편집]

2015년 11월 6일, 아들이 학교에서 다른 학생을 폭행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29]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고 그 내용도 전혀 다르지만 다른 아이들에 대한 폭행이 54건이나 있었다는 피해자 측의 진술과 피해자 측에서 공개한 아이의 사진을 봐도 자식 얼굴을 저렇게 만들어 놨으니 부모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일단 아이의 얼굴을 저렇게 만들어 놓은 데다, 다른 경우도 있어 상습적인 폭행이라는 진술이 있다는 점에서 크게 비판을 했다. 또한 기사에 따르면 가해 학생이 ADHD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6.1.2. 상대 학부모 주장[편집]

이번에 폭로한 학부모 말고 다른 학부모들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실로폰으로 맞은 아이, 얼굴에 침을 맞은 아이 등 또 다른 피해 학생들의 진술이 계속 나왔다. 일부 학부모 증언으로는 학교에서 전학 다음으로 징계 수위가 강한 타반 이동을 명하자 가해자와 엄마, 외삼촌이 교장실에서 난동을 부렸으며 다른 반 담임선생님들은 아이(가해자)를 받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심지어 가해자의 담임선생님은 급성스트레스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상대 학부모는 이런 심각한 사태임에도 김병지 측은 유명인이라 깎아내리려 한다, 장난인데 왜 그러냐, 공개된 사진 속 상처는 넘어지면서 실수로 긁은 것이다. 등의 변명을 한다고 주장했다. 종편과 YTN에서도 지속적으로 다루며 사태가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30]

6.1.3. 진실(반전)[편집]

상대방 어머니의 폭로글http://pann.nate.com/talk/328822538[31]네이트 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장학습을 간 볼풀장에서 김병지의 아들(A)과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아이(B) 측의 다툼이 시작이다. B측은 김병지의 아들이 공을 먼저 던졌고 다툼이 일어나 김병지의 아들이 피해자 측 아이를 깔고 앉으며 얼굴 등에 상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얘기들은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게시판에 "학교폭력 피해자 엄마입니다. 가해자의 횡포, 어디까지 참아야 합니까?"라는 제목으로 B측이 폭로하며 쟁점화됐고 이 사건은 방송에도 소개될 정도로 크게 번졌다.

이후 논란이 커지자 김병지가 해명 인터뷰를 하였다. 링크 링크 링크

인터뷰에서 공개된 목격자 아이의 녹취 파일에 사건의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먼저 김병지의 아들이 장난으로 던진 공이 튀어서 상대방 측 아이에게 맞았고, 이에 상대방 측 아이가 김병지의 아들에게 공을 여섯 번 던졌다고 한다. 그러자 김병지의 아들이 상대방 아이의 얼굴을 할퀴었고, 여기에 상대방 아이가 김병지의 아들을 깔고 앉아 폭행한 것이 사건의 과정이라고 한다.

김병지 측에 따르면 진정 어린 사과가 없다는 상대의 주장과 달리 김병지 측은 집 앞까지 찾아가 사과를 하려 했다고 하며[32], 사과의 문자를 상대 어머니와 함께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신저 내용도 공개됐다.

과거부터 행실이 나빴으며, 여러 학부모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1학년 생활 기록부에 따르면 '심성이 착하고, 교우관계가 좋다'는 내용이 있다며 반박했다.[33] 이 내용대로라면 위의 54건의 폭행이 있었다는 주장과 정반대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학교측의 ADHD 보도에 관해서는 서울 유명 병원에 정신 감정을 받아봤지만 아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로 밝혀졌다고 한다.

한편 김병지의 인터뷰에 따르면 상대측 어머니는 커뮤니티 글을 통해 아들 일로 인해 혈압이 오르고 병원을 다녀오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하지만 같은 시기에 다른 온라인 카페를 통해 동남아 여행 계획을 세우고,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에 관해 묻는 등 이중성 있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아이 어머니가 올린 얼굴의 상처는 사실이지만 기자가 찍었다는 다른 사진의 경우, 기자가 방문한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고 김병지가 직접 민원, 고소, 고발을 했다는 커뮤니티의 글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김병지는 "고발을 했다면 증거서류가 시청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 서류를 제출하고 얘기하고 싶다"며 전혀 사실무근임을 주장했다.

김병지에 따르면 현재 아들은 다니던 학원에서도 더 이상 나오지 말아달라는 통보를 받고, 학교 역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김병지는 일방적인 판단을 내린 학교 측 관계자를 고소하고, 학교에 대한 불신으로 이제 홈스쿨링으로 자녀 교육을 시킬 것이라고 했다.

김병지는 “아들이 상대방 얼굴을 할퀸 건 맞지만 본인도 주먹으로 가슴을 맞는 등 서로 싸웠는데도 일방적인 폭행인 것처럼 인터넷에 허위로 글을 수차례 게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으로 피해자 어머니에게 3000만원의 배상을 요구했다.

김병지는 아들의 담임 교사 최모씨에 대해서도 1000만원의 배상을 요구했다. 그 이유는 “아들의 가슴에 멍 자국이 있는지 확인하겠다면서 학생들 앞에서 윗옷 단추를 풀게 해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을 줬다” 라고 말했다.

오모 교장에 대해서도 ‘김군의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과잉행동장애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며 1000만원의 배상을 요구했다.

김병지 측 변호를 맡은 전상희 변호사는 "상대측 어머니의 글과 주장은 허위이거나 심히 과장된 것이 많다. 허위사실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형사 소송, 민사 소송 역시 진행 중이다. 악성댓글에 대해서도 강력히 처벌할 것이다"고 언급했다.

2016년 6월28일 제2차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학교측은 1차 학폭위에서 김군의 일방적 폭행에 대한 조치를 결의한 것과 달리, 이날 2차에선 김군과 B군, 쌍방 모두의 잘못을 확인하고 B군의 가해 사실을 적시했다.#

[1] 밀양군은 1989년 밀양읍을 밀양시로 승격시킨 뒤 1995년 밀양시에 통합되었다.[2] 김병지와 1대1 대결을 하고 있는 사람은 베르캄프다.[3] 이 사진 보면 알 수 있듯이 김병지뿐만 아니라 2014년 7월 20일에 은퇴한 최은성도 노장 골키퍼를 대표해서 나온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최고령 선수 기록을 세운 콜롬비아의 파리드 몬드라곤보다도 나이가 많다는 것도 포인트.[4] K리그+컵 대회[5] 허리 디스크로 당시 고양시의 명지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경기 도중 골킥이 하프라인조차 넘기지 못할 정도였으니...[6] 그러나 2008 시즌 서울은 수원과 부산에게 각 1번씩만 패했을 뿐 충분히 우수한 시즌을 보냈고 김호준은 리그 24경기 23실점으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다. 이 해 서울이 우승 못한건 슈퍼매치까지 이겨놓고 선수들 멘탈관리 제대로 못하고 부산전에 터져서 리그 1위를 차지할 기회를 날리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데얀이 결정적인 찬스를 죄다 날려버려 홈에서 벌어진 결승 1차전에서 무승부에 그친 탓이다. 2008 시즌 서울의 무관은 그냥 멘탈 문제 이거 하나로 정리된다.[7] K리그-K리그 클래식으로 넘어간다.[8] 이운재는 2012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9] 노상래, 김태영이 그나마 그와 동갑인데, 둘 다 생일은 김병지보다 늦다.[10] 역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3번째로 나온 세계구급 강팀이었다. 첫째는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1974년 FIFA 월드컵 서독에서의 네덜란드, 두번째는 오렌지 3총사를 필두로 유로 1988에서 우승한 네덜란드, 그리고 바로 이 팀이다[11] 그러나 이때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는 전시즌 2위를 기록하였고 잉글랜드의 레전드 스트라이커 앨런 시어러가 있던 팀이었다. 김병지의 기량이 그만큼 높게 평가되었다. 그 때문에 국내 팬들은 해외로 가서 김병지의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게 아쉽게 느껴진다.[12] 냉정히 말하자면 당시 김병지가 뉴캐슬로 이적했다고 하더라도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경기도 뛰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뉴캐슬의 주전 골키퍼는 다름아닌 바로 셰이 기븐이었기 때문. 1997년 뉴캐슬로 이적한 기븐은 이전까지의 주전 골리였던 파벨 스르니체크를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하였고, 경쟁에서 밀린 스르니체크가 친정팀으로 돌아가자 백업 키퍼가 필요해서 김병지에게 비드를 넣은 상황이었다.[1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가 영국에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수비수들과 의사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14] 키퍼 문제는 히딩크가 월드컵 개막직전까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이운재를 낙점하고 김병지에게 개인적으로 찾아가 주전 키퍼로 이운재를 낙점했지만, 자신의 질책을 받아들이고 성실히 훈련에 임해온 김병지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병지도 이에 대해서는 히딩크에게 원망을 표하지 않았고, 히딩크는 이후로도 별말없이 성실히 훈련에 임하는 김병지를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다만 선수로써 최전성기 때 고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뛴다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친 것은 역시 한이 되는지 후에 히딩크와 2002년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는 늬앙스의 발언을 몇차례 하기는 했다.[15] 2003년부터 2005년까지의 3년간 수원과 포항의 슈팅 당 실점율을 비교하면 이운재가 가장 잘했던 시즌과 김병지가 가장 떨어지는 시즌의 실점율이 비슷한 수준이었다.[16] 사실 이것도 어쩔 수 없다기엔 너무나도 중대한 결함인데 비선수출신 중에 이정도로 발음이 부정확한 해설위원은 아무도 없다. 선수출신이 아니라면 방송사 문턱도 밟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 아나운서, 통역가와 마찬가지로 언어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해설가에게는 발음은 필수조건이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노련해도 발음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전달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음을 교정해내지 못한다면 해설가로서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없다. 김병지와는 비교하기가 실례일 정도인 이상윤 해설 역시 선수 이름을 뭉갠다는 이유로 잦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17] 유럽대항전 중계를 하는데 원정 다득점 원칙을 모르고 있었던 것, 해설하는 경기의 라인업 미숙지, 선수의 등번호를 몰라 콜네임 두 번 연속 실수, 그라운드에 쓰러져 실제로 고통스러워하는 선수를 보고 시간을 끄는 행위라 하거나 경기 내내 상황해설보다 잔디 얘기를 더 많이 하는 등 이것 말고도 많다.[18] 이것 때문에 해축갤에선 김병지는 페널티박스 바깥, 중계진, 피파3 선수팩(...) 등 나오지 말라는 데엔 꼭 나온다는 내용의 글이 개념글에 갔다.[19] 풋볼매거진 골에 나온 내용. 이에 김민지 아나운서는 부럽지만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20] 현재의 알로이시오 전자기계고등학교. 당시 이름은 소년의 집 기계공고.[21] 계속 거론되지만 그의 키는 184cm로, 위너이다. 일반인 기준으론 작은 키가 아니지만, 골키퍼 기준으로는 작은 키인 편이다.(보통 180 후반대~190) 물론 이운재 선수는 182cm로 더 작은 키이다. 1998년 월드컵 때도 "키가 좀 더 컸다면"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야신상을 받은 파비앵 바르테즈는 183cm.[22] "대표팀에는 뒤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소금 같은 선수가 필요합니다."[23] 그런데 큰아들 태백이는 전남 드래곤즈 산하 유스팀인 광양제철고로 진학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김병지 통산 700경기 출전에 맞춰 나온 기사에 따르면 서울 언남고 소속으로 소개가 돼 있다. 아버지를 따라간 것은 아닌 듯.[24] 다만, 문제는 역시 나이. 김병지는 2015년 기준으로 46세의 K리그 최선참인데 반해 큰아들 태백이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병지 옹 2세를 좀 일찍 보시지 그러셨어요(...) 그래서 김병지는 유럽처럼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프로데뷔가 가능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25] 일단 나이도 최용수 감독보다 1년 위인데다(김병지-1970년생, 최용수-호적상 1973년생, 실제로는 1971년생), 둘은 1998년과 2002년 월드컵 당시의 대표선수들이다[26] 원래 팀 최강희의 골키퍼는 2명이었다. 바로 김승규와 김병지였는데 김승규가 편도선염으로 인해 결장해서 김병지가 풀타임을 뛰었다.[27] 물론 김병지 선수의 잘못이 아니라, 상대측 부모의 막장짓과 사실확인도 안하고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그대로 퍼서 기사를 쓴 기자의 병크가 컸다.[28] 김병지 선수의 대처가 잘못되어 일이 커졌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래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누가 보더라도 학교 내의 다툼이 일어났을 시 학부모들이 하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대처 방법이었다. 오히려 김병지 측이 유명인인 것을 이용해 사건을 과대포장하고 돈을 뜯어내려는 상대측 부모의 대처방식에 문제가 있었다.[29] 기사에서는 폭행이라 표현하였으나 밑의 내용을 보면 알겠듯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다툼이다. 기레기가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 일부로 표현을 짜맞춘 것일 뿐이다.[30] 사실 이런 양심없는 일부 언론의 마녀사냥은 한두번이 아니다.채선당 임산부 사건, 푸드코트 화상 사고, 선릉역 짬뽕 사건 등등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한쪽의 의견만을 초기에 보도해서 문제를 일으켰다.[31] 네이트 판의 게시글을 사실 확인도 없이 기사를 쓴 부분에서 이미 이상한 것을 눈치 챘어야 했다. 특히 네이트 판은 세 모자 성폭행 조작 사건이 처음 퍼진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32] 집 안에 들어가려 했지만 상대측 부모가 거절했다고 한다.[33] 김병지의 아들은 사건 당시 2학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