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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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uwon_Samsung_Bluewings.svg.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8 시즌 스쿼드

감독 서정원 · 코치 이병근 · GK 코치 이운재 · 1군 코치 최성용 · 2군 코치 김태영 · 피지컬 코치 하혁준

1 신화용 · 2 송준평 · 3 양상민 · 4 김은선 · 5 조성진 · 7 바그닝요 · 8 조원희 · 9 박기동 · 10 데얀 · 11 임상협 · 13 박형진
· 14 한의권 · 15 구자룡 · 16 이종성 · 17 김종우 · 18 김종민 · 19 최정훈 · 20 곽광선 · 21 노동건 · 22 사리치 · 23 이기제 · 24 박종우
· 25 최성근 · 26 염기훈 · 27 장현수 · 28 유주안 · 29 박지민 · 30 윤용호 · 31 김선우 · 33 홍철 · 35 장호익 · 41 강봉균 · 42 송진규
· 44 김민호 · 55 박준형 · 66 김태환 · 70 주현호 · 77 조지훈 · 88 김준형 · 93 신세계 · 99 전세진 · - 신상휘

* 이 틀은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스쿼드에 변동이 생기면 두 틀 모두 수정해주시길 바랍니다.
* 타 팀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이운재의 역임 직책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유상철
(2002~2005)

이운재
(2005~2006)

김남일
(2006~2008)


수원 삼성 블루윙즈 역대 주장

곽희주
(2009)

이운재
(2009)[1]

조원희
(2010)


이운재의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199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안정환

FW
샤샤

MF
서정원

MF
고종수

MF
데니스

MF
고정운

DF
강철

DF
김주성

DF
마시엘

DF
신홍기

GK
이운재

200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대의

FW
유상철

MF
신태용

MF
이천수

MF
안드레

MF
서정원

DF
김현수

DF
김태영

DF
최진철

DF
홍명보

GK
이운재

200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나드손

FW
모따

MF
김동진

MF
따바레즈

MF
김두현

MF
김대의

DF
산토스

DF
유경렬

DF
무사

DF
곽희주

GK
이운재

200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에두

MF
김형범

MF
조원희

MF
기성용

MF
이청용

DF
아디

DF
마토

DF
박동혁

DF
최효진

GK
이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10주년 베스트 XI

FW
샤샤

FW
나드손

MF
데니스

MF
김두현

MF
고종수

MF
김진우

MF
서정원

DF
최성용

DF
박건하

DF
이병근

GK
이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주년 레전드

18
박건하

13
산드로

14
서정원

22
고종수

29
곽희주

7
김진우

3
이병근

1
이운재

11
데니스

12
나드손


파일:img_coach_04_02.jpg

수원 삼성 블루윙즈 골키퍼 코치

이운재
(李雲在 / Lee Woon-Jae)

생년월일

1973년 4월 26일 (45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북도 청주시

본관

여주 이씨

신체 조건

182cm, 90kg

포지션

골키퍼

학력

청남초등학교 (1980~1986)
대성중학교 (1986~1989)
청주상업고등학교 (1989~1992)[2]
경희대학교 (1992~1996)

프로 입단

199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11)
상무 (군복무, 2000~2001)
전남 드래곤즈 (2011~2012)

지도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골키퍼 코치 (2013~201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 (2016~2016.8)
수원 삼성 블루윙즈 골키퍼 코치 (2017~)

국가대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
1994 FIFA 미국 월드컵 국가대표
2000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국가대표
2002 FIFA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축구 국가대표
2003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2004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2006 FIFA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2007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2010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A매치 133경기 / 115실점
(U-23) 9경기 / 2실점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트리비아

1. 개요[편집]

아직도 그를 기억한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맞붙고 싶은 선수다.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3]
거미손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남 드래곤즈 소속 축구선수. 현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골키퍼 코치.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2.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11)[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멤버로 2011년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기 전까지 15년 가까이 수원의 골문을 지켜온 레전드. 수원의 K리그 우승 4번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국가대표 131경기 출전은 전 세계 현역 골키퍼 A매치 출전 순위 4위를 기록하고 있다.[4]

그리고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2002년 월드컵 끝난 뒤 스페인에서 이적 제의가 왔었다고 한다. 근데 조건도 안 좋고 그냥 남아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거절했다고... 이운재가 만약 이적했다면 수원의 수비는 어떻게 되었을까

2010년 4월 4일에 열린 서울전에선 8분동안 내리 3점이나 실점하는 삽질을 했다. 이로인해 국대 및 수원 주전 골키퍼 교체의 목소리가 커졌다. 5월 1일 기준, 시즌 8경기 22실점이라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부진을 보여주었다.

이후 국가대표에서는 물러났고 소속팀에서도 슬슬 은퇴를 생각해봐야할 나이(37)라 물러난 후를 준비하고 있는 듯 했다. 당시 기사에 의하면 본인은 팀에 남아 코치가 되는걸 바라고 있으며 농구선수 출신이던 이젠 농구계 암적 존재가 되어버린 강동희 감독[5]과 함께 음식점에 투자했다고 한다. 이제 수원에 운재갈비집이 생기는건가 이후 분당 정자동에 퓨전음식점을 냈지만 2012년 기준으로 망했어요...

2.1.2. 전남 드래곤즈 (2011~2012)[편집]

그러나 소속팀과의 코치직 협상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해 선수로 뛸 수 있는 다른 팀을 찾았고 2011년 1월, 전남 드래곤즈 입단이 결정되었다. 전남에서 10kg을 감량했다는데 그 덕에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엄청난 선방들을 보였고 그 결과 30경기 29실점으로 2011 시즌 최소 실점을 기록하였다.

2.1.3. 현역 은퇴[편집]

상당히 자존심이 강하고 인터뷰때도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김병지의 대표팀 합류설이 나왔을땐 대놓고 직설적인 말을 쏟아냈을 정도였으며 네티즌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내가 팀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느껴진다면 언제라도 옷을 벗겠다 라고 밝혔을 정도로 강한 자존심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2012년 12월 5일 은퇴했다.

2.2. 대표 팀 경력[편집]

2.2.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994~2010)[편집]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부동의 NO.1 골키퍼이자 역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이다. 퐈이야를 보고 확실히 알았다고 카더라

2.2.1.1. 김호호 시절 (1992~1994)[편집]
2.2.1.1.1. 1994년 FIFA 미국 월드컵[편집]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전까지는 김병지에게 밀려 국가대표팀에서 2인자에 머물렀었다. 단, 국가대표 데뷔전은 더 빨리 치뤘다. 경희대학교 3학년[6]1994 FIFA 월드컵 미국 국가대표팀에 선발됐고, 마지막 독일전 후반전에 최인영과 교체되어 투입된 게 월드컵 데뷔 첫 경기였다. 당시 21세의 나이에 비해 침착하고 기량 또한 뛰어나서 차기 국가대표 골키퍼감이라는 평가답게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결국 졌지만 그래도 전반전에 3골 털린 최인영에 비하면야...

2.2.1.2. 차범근호 시절 (1997~1998)[편집]

하지만 간염에 걸리며 체력이 뭉텅 주저앉았고[7], 결국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에 승선할 수 없었다. 간염이 완치된 뒤, 병역의무 수행으로 상무에 입대했다. 유명해진 건 2002년부터지만, 실제로는 그 전에도 리그에서 경기당 실점률 등을 볼 때 탑클래스였다. 다만 국대 축구 이외에는 대체적으로 무관심한 대한민국 성향상 2002년에 기용됐을 때는 듣보잡 취급을 당했었다. 각 게시판에서 쟤는 누군데(...) 왜 기용하는지 모르겠다는 게시글이 공공연히 올라올 정도.

2.2.1.3. 히딩크호 시절 (2001~2002)[편집]

그러나 김병지2001년 1월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페널티 라인 밖으로 뛰쳐나가다 실점할 뻔한 일이 있은 이후에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크게 신임을 잃자, 김병지 대신 중용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8]

2.2.1.3.1. 2002년 FIFA 한국/일본 월드컵[편집]

2002년 월드컵에서 안정된 수비진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면서 야신상 후보에까지 거론되었으나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수상자가 괴물 수문장 올리버 칸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정말 엄청난 성과다. #

2.2.1.4. 아드보카트호 시절 (2005~2006)[편집]

한일월드컵 이후 대표팀의 부진과 맞물려서 본인 또한 상당한 부진을 보였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 본선 직전에는 부진이 극에 달해서 소속팀인 수원의 부진의 원흉으로 몰리기도 했다.[9] 이에 대다수의 축구팬들 사이에서 당시 좋은 활약상을 보이고 있던 김병지를 국가대표 주전으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며, 결국 이운재가 주전 골키퍼로 낙점되고 김병지가 본선 엔트리에서 탈락하자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한 것이 아쉬운 선수 1위에 당당히 김병지가 선정되기도 했다.

2.2.1.4.1. 2006년 FIFA 독일 월드컵[편집]

그러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 본선에서는 미칠듯한 선방을 보여줬다. 특히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프랑스와의 조별예선 2차전은 이운재의 국가대표 인생경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라인에 걸린 슈팅을 그야말로 동물적 감각으로 아슬하게 쳐냈고, 박지성의 동점골로 경기가 무승부로 마무리되던 후반 막판 티에리 앙리와의 1:1 상황에서 페인팅에 속지 않고 앙리의 슈팅을 쳐냈다. 월드컵 본선에서의 선방쇼로 자신에 대한 비난을 어느 정도 불식시키는 듯 했으나... 소속팀에서의 부진은 계속되어 결국 2006년 후반기 리그에서 후보 골키퍼인 박호진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 채 후보 골키퍼로 전락하는 안습한 상황을 맞이했다.[10] 2007년 시즌을 앞두고 그랑블루 사이에서는 이운재 대신 박호진을 주전으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차범근은 결국 이운재를 선택했고 이운재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경기력을 조금씩 회복했다.

2.2.1.5. 베어벡호 시절 (2006~2007)[편집]
2.2.1.5.1. 2007년 AFC 아시안컵[편집]

그 뒤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 눈부신 선방으로 대한민국이 엄청나게 답답한 경기력과 골가뭄에도 불구하고 3위를 차지하는데 공헌했다. 1승4무1패의 성적으로 대회 3위(...)[11] 특히 이란, 이라크, 일본과 상대한 8강전부터 3,4위전은 무실점으로 끝까지 틀어막은 뒤, 상대를 승부차기까지 납치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 3번의 승부차기에서 2승1패를 기록했다. 흠좀무... 그러나 4강 이라크전에선 염기훈, 김정우가 2연뻥을 시전했고 이운재도 5번 모두 막지 못해서 패배. 어찌됐든 애무축구를 구사하며 답없는 공격으로 무득점을 내버린 대표팀에서, 대회 4경기 연속 무실점 및 승부차기 승리를 기록하여 호평을 받았다.[12]

그런데... 대회 기간중 접대부가 있는 주점을 방문하였고 한차례 더 이동국 우성룡 김상식 선수와 함께 술을 마시러 간 사실이 발각되어 술타스틱 4라는 오명과 함께 1년간 A매치 출장 정지를 당했다. 이운재 말로는 단합차원으로 마셨다고 한다. 그렇다고 접대부가있는 주점을 가나? 그런데 이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술 먹은 이운재가 술 안 먹은 다른 선수들보다 더 잘 한 수준을 뛰어넘어 거의 멱살 붙잡고 질질 끌어 캐리한건데 대체 그 나머지 선수들은 뭘 한 거지????

2.2.1.6. 허정무호 2기 시절 (2007~2010)[편집]

더불어, 나이는 속일 수는 없는지 2009년 이후로는 떨어진 운동량과 순발력 부족으로 불필요한 실점 허용이 늘었다. 검증 좋아하는 허정무 감독의 성향 탓에 국대 골리를 독점했지만 경험을 제외한 부분에선 김용대, 김영광, 정성룡 등 젊은 골키퍼들과 비교해서 나을 게 없다는게 중론. 오히려 이운재의 지나친 독점으로 그의 은퇴 이후 차기 골리 선정에서 크게 애를 먹을 것이 예상되었다. 8~10년 주기로 골기퍼 세대교체를 단행하며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독일과 특정 선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다 시먼 이후 대체자를 찾지못해 고생중인 잉글랜드의 예를 생각해보자.[13][14]

이운재를 비난하는 입장에서는 이운재가 2006년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 골키퍼로 김병지가 거론되던 시기에 김병지에게 '이제 후배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님?'식의 발언을 했던 것과 함께 실점할 때마다 수비들에게 성질(?)내는 모습 등을 근거로 인간성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게다가 월드컵 이후로도 부진이 계속되면서 과거에 언론에서 후배 골키퍼들에게 했던 '실력으로 나를 넘어봐라'는 발언을 놓고도 계속 까였다.

또한 독일 월드컵 당시 골키퍼 코치였던 정기동이 이운재를 편애해 경기력과 관계 없이 계속 주전으로 내세운다는 비난을 받았던지라 이 부분에서도 비판을 받게 되었다.[15] 비교하자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당시 김봉수 골키퍼 코치가 정성룡을 편애한다는 비판을 받은 것과 같다.

2.2.1.6.1. 2010년 FIFA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편집]

결국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B조 예선 그리스와의 첫 경기를 시발점으로 해서 정성룡에게 밀려 후보 신세가 되었고 그 이후로는 16강 우루과이전까지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 뒤 이번 월드컵이 끝나고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월드컵이 끝나고 치러질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 때 은퇴식을 가졌다. 그 업적을 기리는 건지 축협에서도 이례적으로 국가대표를 은퇴하는 이운재에게 일종의 은퇴식을 치러주기로 했다. 축구협회에서는 A매치 7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들에게 은퇴식을 열어준다. #

2.2.1.7. 총평[편집]

이렇듯 경기력에서 극과 극을 달렸던 탓에 평이 상당히 갈리는 선수로 등극했는데, 칭찬할 때는 거미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나 (2002년 이후로) 까일때는 주로 몸무게로 까이며 특히 돼운재 또는 배둘레햄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시기에 이운재를 까면서 나온 희대의 유행어가 바로 반반무많이. 물론 본인 말로는 물만 먹어도 몸이 부는 체질이라고. 여튼 국가대표가 자기관리도 못한다는 이유에서 꽤 비난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히딩크도 이운재를 처음 훈련에 합류했을 때, 근육보다 군살이 많다고 깠다.[16]

2006년 즈음부터 부진으로 인해 비판을 많이 받았으나 사실 아시아 역대급의 골키퍼라고해도 무방하며 전성기때는 그야말로 월드클래스급 골키퍼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괴물급 활약을 보이며 명실공히 세계최고 골키퍼였던 올리버 칸야신상 경쟁을 했던 게 이운재였다. 살쪘다고 까이던 2006년 독일 월드컵, 2007 아시안컵에서도 국대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 중 하나였고 자기 욕심만 강하다는 이미지와 달리 2010년 월드컵 때 우루과이전에서 패배했을 때 의기소침한 정성룡[17]에게 가서 "이제는 네가 최고다."라며 격려해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운재는 적어도 국대에서는 항상 경쟁자와 치열한 경쟁을 하던 선수였다. 1994 미국 월드컵 독일전 후반전에 깜짝 출장을 해서 최인영의 뒤를 잇나 했지만 서동명이라는 198cm의 장신 키퍼의 출현으로 올림픽 대표 시절 마지막까지 주전경쟁을 했으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에는 김병지와,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에도 김용대, 김영광, 정성룡 등 젊은 골키퍼들과 끊임없는 경쟁을 했다. 그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기도 벤치를 지키기도 했던 것이다. 경쟁자들의 임팩트나 명성 등이 치솟을 때에도 결국은 경기력으로 증명해냈으며, 많은 비판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은 실력으로 증명했다. 다소 2002년 4강신화 프리미엄속에 주전 경쟁에 우위에 있었지만 2번의 월드컵에서 만큼은 안정적인 활약을 했다

A매치 100경기를 훌쩍 넘긴 베테랑이 되면서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맡았다. 한일전에서 양팀 선수들이 격해져 몸싸움으로 번지려 하자 둘이 합쳐 A매치 200경기를 훌쩍 넘는 이운재와 일본의 가와구치 골키퍼가 양쪽 골대에서 달려오자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었던 흠좀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2.3. 기록[편집]

2.3.1. 수원 삼성 블루윙즈[편집]

  • K리그 우승 : 1998, 1999, 2004, 2008

  • K리그 준우승 : 1996, 2006

  • FA컵 우승 : 2002, 2009, 2010

  • FA컵 준우승 : 1996, 2006

  • 대한화재컵 우승 : 1999

  • 아디다스컵 우승 : 1999

  • 삼성 하우젠컵 우승 : 2005, 2008

  • 슈퍼컵 우승 : 1999, 2005

  •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 2001-02

  • 아시안 슈퍼컵 우승 : 2002

  • A3 챔피언스컵 우승 : 2005

  • 팬퍼시픽 챔피언십 우승 : 2009

2.3.2.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 아시안 게임 축구 동메달 : 2002

2.3.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 CONCACAF 골드컵 4위 : 2002

  • AFC 아시안컵 3위 : 2000, 2007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 2003

  • FIFA 월드컵 4위 : 2002

2.3.4. 통산 성적[편집]

2.3.4.1. 국가대표[편집]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연령

출전

U - 17

0

0

U - 20

0

0

U - 23

9

-2

A 대표

133

-115

종합기록

142

-117

2.3.5. 주요 개인 수상[편집]

  • K리그 베스트 11 : 1999, 2002, 2004, 2008

  • 체육훈장 맹호장 : 2002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 2002

  • 험멜코리아 - 스포츠투데이 선정 올해의 축구대상 골키퍼 부문상 : 2002

  • 제18회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선수 : 2004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최우수 골키퍼상 : 2005

  • AFC 아시안컵 베스트 XI : 2007

  •  K리그 MVP : 2008

  •  윈저어워즈 한국축구대상 베스트 11 골키퍼 부문상 : 2008

  • 하나은행 FA컵 MVP : 2009

  • 대한축구협회 공로패 : 2010

2.4. 플레이 스타일[편집]




김병지와 함께 대한민국 최정상의 골키퍼로 손꼽힌다. 김병지와 달리 안정적이고 수비적인 스타일을 추구해 어느 상황에서도 중간 이상은 가는 안정감으로 유명하다.[18] 이러한 스타일 덕분에 김병지와 달리 국가대표에도 잘 뽑혔다. 김병지와의 골키퍼 대결은 2004년 K리그 챔피온 결승전(포항VS수원)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 경기는 전설 아닌 레전드 수준인데, 1, 2차전은 두 골키퍼의 활약으로 무승부, 그리고 2차전 끝나고 연장전으로 들어가서도 득점이 안나서 승부차기로 들어갔다. 이때 포항측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온 것이 김병지였다. 김병지로서는 이것이 이운재와 결판을 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슈팅은 이운재에게 막혔고, 2004년 우승은 수원에게 돌아갔다.

강한 멘탈이야말로 이운재 최고의 장점으로, 침착성은 물론이고 과감한 판단력과 정확성으로 단점인 반사신경을 커버한다. 여기에 수비라인 형성은 여러 전문가들이 손꼽는 이운재의 장점. 골키퍼로서 뒤에서 호통까지 치면서 수비라인 형성을 지시해 수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 수비의 핵심이던 홍명보가 은퇴하고, 3백에서 4백으로 국가대표 수비 전술이 교체되던 단계에 이운재의 카리스마는 축구 국가대표의 수비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그 덕에 은퇴 전까지 국대팀의 주장도 겸임하였다.

단점이라면 끝까지 공을 보며 기다리는 타입이며, 이런 특성이 페널티킥 방어 시엔 강점으로 작용한다.[19] 승부차기에서 이운재에게 파넨카 킥을 시도한 결과...[20]

다만 순발력이 떨어져 프리킥이나 순간적인 중거리 슈팅에 약점을 보인다는 점. 특히 선수 말년으로 갈수록 체중관리에 실패한 것과 겹쳐서, 살이 쪄서 순발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많이 받아 돼흐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2.4.1. 승부차기[편집]

파일:attachment/이운재/d6.jpg

그의 이름이 전설로 남을 수 있게 만들어준 2002 한일 월드컵 8강 스페인전에서의 선방


특기는 페널티킥(그리고 승부차기)방어로, K리그 통산 승부차기 전적은 12전 11승 1패 승률 91%[21]. 승부차기 전적이야 말할 것도 없으며 32골 허용 26 방어로[22] K리그 역대 승부차기 방어율 역시 1위이다. 본인 스스로도 페널티킥에는 굉장히 자신이 있어서, 2002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 때 히딩크 감독이 미리 스페인 키커들의 성향을 파악해 공의 방향을 예측해 이운재에게 전달하는데 본인은 헷갈릴 수도 있으니 자신의 감대로 해보겠다고 이야기 했을 정도.[23] 특히 승부차기는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키커보다도 오히려 여러번 기회가 주어지는 골키퍼가 심리적으로 더욱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페널티킥에 특별한 비결은 없고 상대 키커가 나올때부터 볼을 찰 때까지 자세를 하나하나 끝까지 보고 움직일 방향을 결정한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번호판을 순간적으로 읽는 연습을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24] 키커들의 버릇으로 공을 놓는 순간과 뒤로 갔다가 달려오기 직전의 순간 골대의 한 쪽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그런 경우는 자신의 찰 반대쪽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서 공을 놓는 순간 방향을 알 수도 있다고. 다만 상대 선수가 달려오는 거리가 지나치게 길 경우엔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져서 그냥 감으로 막는다.

2002년 북중미 골드컵 8강전에서 멕시코와 0 : 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 들어갔는데 이 때 3번 킥커 알폰소 소사의 킥과 4번 킥커 이그나치오 이에로의 킥을 연달아 선방하며 한국의 4 : 2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5개월 후에 치른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상대 골키퍼는 그 유명한 카시야스와 승부차기에서 대결,[25]스페인의 4번째 키커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막아 5 : 3으로 승리해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기도 했으며 4강전에선 미하엘 발락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고 원통함을 잊지 않고 있었는지 월드컵 종료 후 얼마 되지 않아 가진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한국의 반칙으로 얻은 패널티 키커로 발락이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방해버리고 발락에게 복수를 이뤄내기도 했다. [26]

2007 아시안컵 때는 8강과 4강, 3,4위전이 전부 승부차기로 결정났다. 이란과의 8강에서 2번의 방어를 하며 4 : 2로 승리해 4강에 진출했으나,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는 염기훈김정우가 실축하며 4:3으로 패배했다.[27] 일본과의 3,4위전에서는 한명이 퇴장당한 불리한 상황에서 0:0으로 승부차기까지 가서, 6:5의 상황에서 방어를 성공하여 팀을 3위까지 이끌었다.[28] 2009년 K리그 FA컵 결승전에서는 2번이나 막아서 수원의 FA컵 우승에 기여했다.

2.4.2. 김병지와의 관계[편집]

숙명의 라이벌
3살 위 선배인 김병지와는 대표팀에서는 물론이고, K리그에서도 라이벌 관계였다. 더구나 이들의 전성기 때 소속된 팀은 당대 K리그의 강호였던 수원 삼성과 포항 스틸러스.

이들의 치열한 스토리가 절정에 달한 것은 2004년 12월 12일에 열린 K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 1, 2차전 두 팀은 무승부로 비겨 연장전으로 갔고, 연장전에서도 두 키퍼의 선방에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갔지만, 여기서도 승부가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4-3으로 수원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포항의 키커로 나선 이는 김병지. 역대급 키퍼의 대결은 서로의 직접 대결로 이어졌고, 여기서 이운재가 김병지의 슛을 막아내면서 승자가 되었다.#

일선에서 물러난 현재는 사이 좋은(?) 선후배 관계로 지내고 있다.
슛포러브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과 김병지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김병지가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마실(...)을 나가자 깜짝 놀랐다고. 자신의 입장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플레이였기 때문이란다.
당시 이운재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관중석에서 관전을 했고, 17년이나 지났기에 자세하게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용대가 후반전에 김병지와 교체된 것은 알고 있었다.[29]

2.5. 사건, 사고[편집]

2.5.1. 2007년 AFC 아시안컵 숙소 무단이탈 및 성매매 룸살롱 출입사건[편집]

2007년도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아시안컵 대회 도중, 동료 국가대표 선수인 이동국, 김상식, 우성용과 함께 자정즈음 국가대표팀 숙소를 무단이탈해 룸살롱에서 밤늦게 술을 마신 사실이 들통나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실제 언론사 뉴시스의 현지취재에 따르면 이운재는 룸살롱에서 접대부와 함께 폭탄주를 마시고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고, 심지어 '2차'까지 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해당 업소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성매매 유흥행위를 하는 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인데다 이운재 등을 접대한 현지 접대부들이 선수들을 직접 지목하며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사진까지 공개되며, 인도네시아 교민들은 선수들의 부적절한 성추문에 커다란 실망감과 분노감을 드러냈다. 기사 더군다나 이 사건은 이동국을 제외하면 모두 30줄에 접어든 고참 선수들이 벌인 행동이었기에 분노가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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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널리 알려진 직후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은 국민에게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정환: 운재형....왜 먹었어

2015년 1월 아시안컵이 한창일때 SBS의 풋볼매거진 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운재를 인터뷰할 때 박문성이 이운재에게 2007년 아시안컵 당시 음주 사건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이운재는 "그때 당시 사건은 내가 생각해도 참 바보같은 짓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큰 일이 될 줄 몰랐었다. 그냥 선수들끼리 서로를 독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지금도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 많이 아프다."라고 말하며 반성과 후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이운재는 관련자들 중 제일 욕을 덜 먹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술 먹고도 미친 선방을 해서 삽질하는 대표팀을 멱살잡고 4강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에...

3. 지도자 경력[편집]

3.1.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3~2016)[편집]

스페인으로 건너가 FC 바르셀로나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후, 2013년 12월 10일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U-22 국가대표팀(이광종호)의 골키퍼 코치로 임명되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듣기로는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이광종호코칭스태프(골키퍼 코치)로 합류해 금메달 획득에 이바지했다. 특히 660분간 무실점으로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은 김승규 등의 수비라인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15년 킹스컵에서 오랜만에 모습이 비춰졌는데, 살이 많이 쪘다 (...) 이 대회 온두라스전에서 골키퍼 김동준이 페널티킥 세 번을 연달아 막아내는 신기를 선보이고, 이창근이 편파판정을 등에 업은 태국의 일방적인 공격과 슈팅을 모조리 선방한 것으로 보아 코치로서도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듯 하다.

올림픽대표팀(이광종호, 신태용호) 코치와는 별개로, 2015년부터는 함께 국대에서 활동했던 안정환의 부탁을 받고 청춘 FC의 골키퍼 코치로도 활약 중이다.[30] 그리고 제작진에서도 살이 많이 찐걸 의식했는지 첫 등장 때 풍만한 뒤태라는 자막을 붙여줬다. 1분 9초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에서 코치 이운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르칠때는 엄격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장난도 많이 치고,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걸로 보인다.

훈련 도중 골키퍼의 부재로 인해 코치인 자신이 직접 슈팅 게임에서 선방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역시 국대출신인지라 나이와 뱃살에 비해 그래도 제법 날렵한 모습. 현역때의 카리스마와는 다르게 안정환에게 사사건건 구박받는 옆집 아저씨의 풍모를 보여준다. (...)

3.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6)[편집]

2016년 3월 9일, 공식적으로 슈틸리케호의 골키퍼 코치로 선임되었으나 리우 올림픽이 끝난 2016년 8월 차상광으로 교체되었다.

3.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2017~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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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친정팀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골키퍼 코치로 선임되었다.# 이는 그의 첫 프로팀 스태프 커리어이기도 하다. 새로 영입한 베테랑 골키퍼 신화용의 리그 내 클린시트 1위에 기여했다.

2018년은 진정한 지도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는 해가 될 것이다. 세컨드 키퍼로서는 준수한 활약을 펼친 양형모의 입대 공백을 메울 선수가 임대 복귀한 노동건, 김선우인데, 양형모보다는 기량이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이들을 과연 어떻게 조련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4. 트리비아[편집]

참고로 상대팀의 응원가가 "운재야 운재야 뭐하니? 골 먹는다!"이다. 근데 위의 음주사건 이후 골이 술로 바뀌었다.

우직하고 경고한번 받지 않을 것같은 이운재지만, 그도 다이렉트 퇴장 판정을 받은적이 있었다. 1998년 8월 22일 K리그 부산 대우 로얄즈와의 경기에서 후반 37분 뛰어드는 정재권을 왼손으로 가격해 심판으로부터 퇴장명령을 받았다. 당시 수원은 세장의 교체카드를 사용한 상태였고, 궁여지책으로 공격수였던 샤샤가 골키퍼를 보았다. 그런데 샤샤가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팀의 2:1 승리는 지켰다!?

승부차기에 어마어마하게 강하다. 국가대표팀에서 치른 전적만 따져봐도 무려 4승 1패의 전적을 지니고 있다. 2002년 골드컵 8강전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2개의 킥을 막아내며 4 : 2 승리를 이끌었고 한일 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호아킨 산체스의 킥을 막아내며 5 : 3 승리를 이끌었다.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도 8강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2개의 킥을 막아내며 4 : 2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4강전 이라크와의 경기에서는 단 하나도 막지 못하며 3 : 4로 패했다. 이게 유일한 패배였다. 그리고 3위 결정전인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하뉴 나오다케의 킥을 막아내 6 : 5 승리를 이끌었다.
다만 와일드카드로 나온 2002년 아시안게임 이란과의 4강전 승부차기에서 한골도 막지못하고 내리 5골을 먹었고 초롱이 이영표의 이동국 군대가라슛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별명도 다양한 편인데 잘할땐 갓운재 운재신이지만 못할때는 돼운재 반반무갑 등등으로 부른다. 그러나 2006년 독일 월드컵 전까지 2002년의 체중으로 감량하는 근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운재 체중 4년주기설 힙덕후들에게는 미국의 전설적인 힙합프로듀서인 Dr.Dre를 닮아, 운드레로 불린다. dctribe의 영향이 큰 듯. 풍채가 좋은 지금은 상상이 안 가지만, 그래도 한 때 샤프하고풋풋한 시절도 있었다.

여담으로 수원에서 잘나가는 고깃집치고 이운재 싸인이 걸려있지 않은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떠돌아 다닌다.[31] 수원 시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학생들이 싸게 먹는 곳이 아닌 근당 가격이 좀 나가는 곳에는 정말로 꽤나 많이 걸려 있다고 한다. 실제로 축구잡지 포포투에서 사실임을 시인했으며 자신의 고기철학을 유감없이 밝힌 바 있다.(...) 그리고 2007년 당시의 사건이라든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볼때 술도 상당히 잘마시는듯.아니 고기집가서 술마시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2018년 수원 삼성 팬즈데이에서는 자기한테 고깃집 추천을 받고 싶으면 전문가답게 고기 종류나 단가를 확실히 결정하고 물어보라고 했다.

그의 강력한 수비조직 조율능력에서 기인한 "펀칭후 패드립"[32] 이라는 특이한 별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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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이런 짤방도 생겼을 정도.

2002년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호아킨의 슛을 막아내고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한 것은 아내를 위해서 한 것이었으나 그의 아내는 자기에게 한 줄 몰랐다고 한다(...).

Google에서 영어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를 무슬림이라고 주장하는 블로그들을 여럿 볼 수 있다. 강제 개종. 딱봐도 술이랑 돼지갈비 좋아하게 생겼는데 무슬림일 리가

이상하게도 그가 첼시 FC에서 뛴 것으로 아는 초딩들이 가끔 있다. 이운재의 수원 삼성 시절 유니폼과 비슷했던 것 때문에 착각한 것으로보인다.다만 진짜 첼시에서 뛴 적은 없었다. 만약 진짜 갔었다면 존 테리한테 패드립쳤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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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딸 이윤아 양이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2014년 3월 15일에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출연했다. 링크

[1] 전임 주장인 곽희주가 시즌 중 성적 부진에 따른 부담감을 느껴 시즌 중 선임되었다.[2] 현 청주대성고등학교[3] 클럽 커리어만 보면 해외 리그 경험이 있는 알리 알 합시가와시마 에이지가 이운재보다 좋아보이지만,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은 이운재가 압도적이다. 알 합시는 국가대표팀이 워낙 약체라서 월드컵 진출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고 가와시마는 유럽 커리어를 이어가고는 있으나 기량이 심히 떨어진 상태. 2012년 국제축구역사통계재단이 전세계의 축구 전문가들에게 요청해 역대 골키퍼들의 순위를 매겼는데 이운재가 공동 41위를 기록했다. 이는 아시아 선수 중 최고 순위[4] 1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설적인 골리 모하메드 알 데아예아의 178경기. 2위는 잔루이지 부폰의 169경기, 3위는 이케르 카시야스의 167경기. 부폰은 계속 경신(...)중이다[5] 교회에서 만나 친해졌다고 한다.[6] 당시 이운재는 선수단에서 막내였다. 나이는 21세.[7] 이운재의 회고에 의하면 선수생활을 포기해야 하는지 기로에 설 만큼 예후가 심각했다고 한다.[8] 다만 일방적으로 이운재만 기용된 것은 아니고, 월드컵 본선 직전까지 이운재와 김병지가 주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월드컵 이후 히딩크는 월드컵 본선에서 김병지가 아닌 이운재를 주전으로 기용한 이유에 대해 이운재의 컨디션이 조금 더 좋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9] 참고로 당시 수원은 전반기 리그 꼴찌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10] 게다가 수원은 후반기에 들어서 전반기의 부진을 털어버리고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인 끝에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운재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졌다.[11] 오죽하면 이러다 결승전까지 승부차기로 가서 4무 우승(...) 해버리는 것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왔었다.[12] 특히 마지막 3,4위전은 한일전이었던 탓에, 이운재의 선방에 따른 3위 획득은 매우 각별했다.[13] 잉글랜드는 월드컵과 유로컵에서 골키퍼의 실책으로 매번 경기를 날려먹고 있다. 2012년 들어서 조 하트가 슈퍼세이브로 활약을 해주고 있기는 하지만...[14] 이건은 20대 후반의 정성룡김영광으로 세대교체에 성공한 국가 대표팀 보다는 박호진이 반짝한 2006년을 제외하곤 10년 이상 이운재 천하였던 수원 삼성에게 더 큰 문제였다. 근데 역시 수원답게... 정성룡을 그냥 사갔다.[15] 게다가 김병지가 독일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김병지와 이운재가 함께 있으면 국가대표팀에서의 이운재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이운재를 위해서 정기동 코치가 김병지를 내쳤다는 설이 지배적이어서 더욱 까였다.[16] 하지만 이후 파워 프로그램을 잘 소화해서 김병지와 더불어 훌륭한 골키퍼가 되었다고 칭찬했다. 출처 : 마이 웨이(히딩크 자서전)[17] 우루과이의 선제골은 그의 미스가 컸다.[18] 다만 그렇다고 김병지가 경기 때마다 돌출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는 적지만 가끔 벌어지는 몇몇 상황이 사람들의 인식에 크게 박힌 것.[19] 이운재와 정반대 특성의 골키퍼가 2010 월드컵 당시 지역예선 포함해서 거의 30점 다되게 실점한 바 있는 세르히오 로메로다. 로메로는 공이 하프라인만 넘어오면 바로 예측해서 공을 막는다. 때문에 코파아메리카 2011에서 우루과이 상대로 승부차기를 했을때 한번도 선방을 해내지 못했다. 안그래도 골키퍼가 이런 스타일이라 수비수의 보좌가 누구보다도 필요한 로메로였는데 그런 로메로한테 제대로 된 수비수가 마스체라노 하나뿐이었으니 독일전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20] 이 때, 실축했던 스테보는 후에 수원 삼성에 입단하게 된다. 다만, 스테보가 수원에 오기 반 년 전에 이운재가 전남으로 떠났기 때문에 같은 팀으로 뛰지는 못 했다.[21] k리그에 국가대표 경력을 넣어도 이정도 전적을 가진 골키퍼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전 역사상 승부차기에서 한번밖에 저본 경험이 없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정도?[22] 단 키커의 실축도 포함[23] 당시 대표팀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3번째 키커까지는 히딩크가 예측한 방향이 맞은 반면 이운재는 3연속으로 방향을 헛짚어서 마음이 착잡했다고 한다.[24] 야구선수 이치로도 사용한 훈련법이다.[25] 물론 그때는 후보선수가 주전 골키퍼의 부상으로 주전 자리를 꿰찬 정도였지만 직전 경기인 아일랜드전에서 승부차기를 승리로 이끌고 한국의 공격을 귀신들린 반사신경으로 막아내는 등 단순한 짬찌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실력이였다.[26] 월드컵이 끝난 직후에는 아시아 슈퍼컵 경기를 치르러 수원 2군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사우디 클럽과 맞붙었다. 딱 14명(스타팅 11명+서브 3명, 그나마도 전원 후보)만 사우디로 건너갔고 선수교체 3명을 다 쓰기 위해 골키퍼 박호진을 공격수로 투입시킬 정도로 수원 입장에선 별로 비중을 두지 않은 경기였고 그저 이운재 한명만 믿고갔다고 할 수 있는 상황. 그 경기에서 수원은 한국산 침대의 위대함을 중동의 침대꾼들 앞에 보여주었고(...) 승부차기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필드로 오른 이운재가 사우디 슈터들의 공을 죄다 막아버렸다. 참고로 이 경기가 치러진 건 월드컵이 막이 내린 지 채 일주일도 안 되었을 때였다.[27] 이는 이운재의 국가대표 승부차기에서 유일한 패배 기록이다.[28] 토너먼트 내내 0득점으로 승부차기로만 승리/패배하며, 대회 중간에 술을 마시러 간 논란에 휩싸였음에도 이운재에 대한 까방권이 생겼다.[29] 선배인 김병지를 존중하기 위해서인지 횡설수설하며 말을 흐렸다. 현영민이 김용대가 후반전에 들어간걸 알면서 왜 그걸 모르냐고 하니깐 옛날 생각 난다며 위협한건 보너스.[30]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A대표팀 코치를 겸하는 신태용의 경우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31] 이 소문을 최불암은 불암콩콩코믹스 남아공 월드컵 편에서 써먹었다. 이운재가 남아공에 도착하자마자 후배들을 데리고 톰슨가젤 고깃집이라는 남아공 맛집부터 도착해서 식당 주인에게 싸인을 해준다는 내용;;;[32] 유래가 상당히 특이한데 경기중 수비수가 정신줄 놓고 플레이해서 상대팀에 골찬스가 나서 슈팅을 하면 일단 어떻게든 급하게 펀칭해내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격양된 표정과 목소리로 수비수들을 강하게 질책하는일이 많은데 마치 그 모습이 패드립 치는거 같이 격한 모습이라 이런 별명이 붙었다. 독일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인 올리버 칸 역시 이런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