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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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건하 (朴建夏 / Park Kun-Ha)

생년월일

1971년 7월 25일 (47세)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출신지

대전광역시

182cm

유소년 클럽

대전동중학교 (1984~1987)
대전상업고등학교 (1987~1990)
경희대학교 (1990~1994)

소속 클럽

이랜드 푸마 (1994~1995)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06)
가시와 레이솔 (임대) (2000)

지도자 경력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2007~20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U-18 감독 (2009~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코치 (2010)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코치 (2011~201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3~2016)
서울 이랜드 FC 감독 (2016)

선수시절 포지션

중앙 공격수, 센터백[1]

대표팀 기록

A매치 21경기 / 5골

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신인상

1995년

1996년

1997년

노상래
(전남 드래곤즈)

박건하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신진원
(대전 시티즌)

수원 삼성 블루윙즈 역대 주장

신홍기
(1999~2000)

박건하
(2001)

서정원
(2002)

서울 이랜드 FC 역대 감독

인창수 (대행)
(2016)

박건하
(2016)

김병수
(2017)

수원 삼성 블루윙즈 10주년 베스트 XI

FW
샤샤

FW
나드손

MF
데니스

MF
김두현

MF
고종수

MF
김진우

MF
서정원

DF
최성용

DF
박건하

DF
이병근

GK
이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주년 레전드

18
박건하

13
산드로

14
서정원

22
고종수

29
곽희주

7
김진우

3
이병근

1
이운재

11
데니스

12
나드손


1. 소개2. 선수 시절3. 선수 이력4. 은퇴 이후
4.1. 서울 이랜드 FC 감독
5. 트리비아

1. 소개[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멤버이자 간지폭풍의 세리머니[2]와 팀에 대한 충성심으로 유명한 선수.

서울 이랜드 FC 감독. 2017시즌 시작 전 사임 했다.

2. 선수 시절[편집]

파일:external/www.bluewings.kr/B1036656244.jpg

대전 우송중학교 (당시 대전동중학교)를 졸업했는데 중학교 2, 3학년 때 전국 대회에 나가 학교 선배인 이태호, 김삼수가 활약하던 시절 이후 오랜만에 학교를 우승으로 이끈다.

그 후 우송고등학교(당시 대전상업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K리그 드래프트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으나 당시 K리그에 있던 드래프트 제도에 반발,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당시 실업리그 최강 팀이었던 이랜드 푸마에 입단하여 활동했다. 1996년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창단하게 되면서 프로 진출을 선언, 수원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게 되었다.

수원에서 뛰게 된 첫 시즌에는 '중고 신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꾸준히 활약, 34경기 출장 14골 6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2001 시즌까지 꾸준히 수원의 공격수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은근히 잔부상이 있었으며 수원의 공격수가 그동안 워낙 후덜덜해서[3] 박건하는 주로 No.3 공격수 정도로 취급받기도 했으나 타 K리그 팀들의 영입 제의가 있어도 꾸준히 수원에 대해 충성심을 바쳐오기도 했다. 2000년에는 수원에서 가시와 레이솔로 임대를 간 샤샤를 대신해서 3개월간 가시와로 임대를 갔다오기도 하였으나 수원으로 복귀하여 다시 활약하게 된다.

2002시즌을 앞두고 당시 수원 수비진의 부실화 및 박건하의 전체적인 공격수로의 폼 저하, 그리고 그의 수비수로서의 재능을 눈여겨 본 김호 감독에 의하여 중앙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하였는데 이것이 예상외로 대성공을 거두었다.[4] 비록 발이 느려졌긴 하지만 공격수 출신이라는 점을 이용, 공격수들의 심리적 특성을 잘 이해하는 박건하의 지능적인 플레이는 당시 수원이 운용하던 포백에서 조성환이나 조병국과 같은 젊은 수비수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2005년에는 박주영과 몸싸움을 하다가 코뼈 부상을 당해서 안면 보호용 마스크, 일명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출장하기도 하였다. [5]

3. 선수 이력[편집]

시즌

출장

득점

어시

1996년

34경기

14골

6어시

1997년

16경기

0골

4어시

1998년

22경기

0골

2어시

1999년

39경기

12골

6어시

2000년

19경기

6골

4어시

2001년

30경기

4골

4어시

2002년

29경기

2골

0어시

2003년

31경기

0골

0어시

2004년

31경기

0골

0어시

2005년

26경기

1골

0어시

2005년

26경기

1골

0어시

2006년

15경기

0골

0어시

4. 은퇴 이후[편집]

2006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였고, 첼시 FC에서 연수를 받은 후 수원 삼성에서 코치 생활을 하였다. 수원 매탄고(수원 U-18팀) 감독을 거쳐 윤성효 감독 선임 때 같이 수원 코치로 승격하였다.

2011년 1월 4일 서정원 코치가 국가대표팀 코치로 옮기게 되어 비어버린 올림픽 대표팀 코치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관련기사 참고로, 그와 같은 시기에 수원 매탄고(수원 U-18팀) 코치로 고종수 코치가 영입. 어차피 세상, 돌려먹고 나눠먹어 아름다운 세상 아닌가?

2013년 홍명보호가 출범하면서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었고, 동아시안컵, 브라질 월드컵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워낙에 결과가 안좋아 선수단이 단체로 욕먹던 와중에도 이를 피할 수 없었고, 결국 감독 교체 후 사퇴가 유력했다. 이후 슈틸리케호에서도 2015년 AFC 아시안컵까지 코치로서 남아있게 되었다. 외국인 감독으로서 국내 축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코치가 필요한 이유였다.

그리고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이루는 성과를 올리자 그런대로 까방권은 얻게 되었고 이후 김봉수 골키퍼 코치와 함께 계약 연장을 하며 국가대표팀 코치로서 잔류하게 되었다.

4.1. 서울 이랜드 FC 감독[편집]

2016년 6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마틴 레니의 후임으로 서울 이랜드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기간은 2018년까지 2년 6개월이다.

현재 서울E의 모기업인 이랜드그룹이 한때 운영했던 실업 축구단인 이랜드 푸마에 속해 있었던 것이 잠시 화제가 되었다.

7월 3일 부천 FC 1995와의 잠실 홈경기에서 첫 승을 거두었다.

2017 시즌 시작 전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이후 MBC 스포츠플러스의 K리그 해설위원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도 MBC의 해설위원으로 참여했다.

2016년에는 박건하 감독과 함께 마지막까지 플옵 도전을 했지만 2017년에는 김병수 감독의 챌린지 적응과 이랜드그룹의 부진한 지원으로 인해 시작부터 하위권에 머무르면서 박건하 감독을 그리워하는 서울이랜드 팬들은 아직도 있다.

5. 트리비아[편집]

  • 선수시절 트레이드 과정에서 꽤 개그스런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2000년 당시 팀 개편을 하던 수원이 당시 K리그 특급 용병 사샤를 가시와로 먼저 보냈다[6]. 사샤와 매우 친하게 지냈던 박건하는 매우 아쉬워 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는데, 얼마 후 박건하도 가시와로 임대 갔다.(...) 그러다 J리그에서 적응하지 못하던 사샤가 수원에서 데니스와 트러블을 일으켰던 황선홍과 맞트레이드 되면서 두 사람은 다시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박건하도 다시 수원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둘 다 상당히 멋쩍은 반응이었다고. 박건하는 사샤보고 '이제 너 얼굴 보는 것도 질림ㅋ'라는 반응을 보였다.

  • 골을 넣으면 옷깃을 세우는 에릭 칸토나 세레머니로 유명했다. 훗날 같은 팀 후배가 되는 서동현도 이 세레머니를 따라하면서 박건하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 중학교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시험을 보던 도중 감독관 선생님께서 박건하의 시험지에 적힌 이름을 보고 이런 명언을 남기셨다. '너는 참 이름이 재미있네. 이거하고 저거하고 바꿔놔.'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에 있었던 일이니 어찌 보면 아재 개그의 원조라고도 볼 수 있다.

[1] 선수말년에 포지션 변경해서 뛰었다.[2] 골을 넣은 후 에릭 칸토나가 자주 보여준 깃 올리기 세레머니를 하였다.[3] 그와 함께 뛴 공격수들로는 샤샤, 데니스, 황선홍, 비탈리, 미하이 등 그야말로 K리그를 정ㅋ벅ㅋ한 선수들이 넘쳐난다.[4] 김호 감독은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대전 시절 정성훈에게도 수비수 전향을 권했다가 거부당했고 정성훈은 대전을 떠나 부산에서 공격수로서의 재능을 만개했다.[5] 김태영이 비에리의 팔꿈치에 맞은 이후에 8강전부터 썼던 그 마스크이다.[6] 이는 1999년 시즌 부산과 챔피언 결정전에서 사샤가 핸들링 결승골을 넣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안 그래도 괴물같은 전력으로 K리그 각팀 팬들로 부터 원성을 사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 사건으로 거의 공공의 적 급으로 팬심이 격앙되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