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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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차두리.jpg

차두리 (Cha Du-Ri)

생년월일

1980년 7월 25일 (38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독일 헤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본관

연안 차씨

가족

아버지 차범근, 어머니 오은미,
누나 차하나, 남동생 차세찌[1], 제수 한채아

십이지

원숭이띠

별자리

사자자리

종교

개신교

포지션

라이트백[2], 윙어,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181cm, 79kg,[3] O형

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16번, 11번, 22번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 7번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11번
1.FSV 마인츠05 - 2번
TuS 코블렌츠 - 22번
SC 프라이부르크 - 6번
셀틱 FC - 11번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 22번
FC 서울 - 5번

학력

울산양정초등학교 (졸업)
울산현대중학교 (전학)
배재중학교 (졸업)
배재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중퇴

프로입단

2002년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

소속팀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2~2004)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2002~2003)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03~2006)
1.FSV 마인츠05 (2006~2007)
TuS 코블렌츠 (2007~2009)
SC 프라이부르크 (2009~2010)
셀틱 FC (2010~2012)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2012~2013)
FC 서울 (2013~2015)

지도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전력분석관 (2016~2017)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7~2018 )

국가대표

76경기 4골[4] (2001~2015)

별명

차미네이터



1. 개요[편집]

차미네이터

미스터 아우토반, 라디오 실사판 강백호, 차이콘등의 별명을 가진 축구선수. 아시아 역대 최고의 공격수 차범근의 2남 1녀 중 장남이며, 최고의 축구 집안에서 자라 아버지인 차범근의 뒤를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에도 진출,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다가 2013년 K리그 클래식 FC 서울로 이적하였고 2015년 10월 31일 FA컵 우승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은퇴식은 11월 7일 홈 수원 전).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2.1.1.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편집]

고려대학교 소속으로 2002년 월드컵을 맞은 차두리는 월드컵이 끝난 직후 아버지가 뛰었던 구단인 레버쿠젠의 러브콜을 받게 되어 레버쿠젠에 프로 축구 데뷔를 하게 된다. 이적 직후에 아르미니아 빌레펠트로 임대되어 독일 분데스리가 생활과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하였다.

2.1.1.1.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임대)[편집]

하지만,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002-03 시즌 팀은 16위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2.1.1.2.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임대)[편집]

독일에서는 차붐(차범근의 선수시절 별명)의 아들이란 것과 팀의 운이 잘 안 따르는 선수로 유명했다. 차두리는 독일 리그 내 모든 공격수를 대상으로 한 집계 랭크 17위에 기록되고도 팀의 성적부진으로 주목을 못 받거나 팀의 1부 리그 승격에 주춧돌이 되었으나 팀의 경영 문제로 트레이드 대상이 되어버리는 등의 일이 많았다.[5]

결국 2003-04 시즌 결과 팀은 16위로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2.1.2.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편집]

2004년 6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완전 이적하였고 2004-05 시즌에는 8골을 터뜨리는 등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1부 리그로의 승격에 공헌하였다.
그러나 2005-06 시즌 초반에 저조한 활약을 보여 잠시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하기도 하였고, 팀의 DFB-포칼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1.3. 1.FSV 마인츠05[편집]

2006년 5월 주전 확보를 위해 새로 승격된 1. FSV 마인츠 05로 이적하였고 포지션을 오른쪽 풀백으로 변경하였다. 이때 마인츠 감독은 위르겐 클롭.

시즌 초반에는 주전 풀백이었던 크리스티안 데미르타스가 부상당하여 주전 풀백으로 발돋움하였지만, 이후 팀이 리그 최하위를 면치 못하며 기존 선수들로 안정된 경기운영을 펼칠 수밖에 없었으며 부상이 겹치는 등의 불운으로 출장기회를 많이 확보하지 못하였고 2006-07 시즌 결과 팀은 16위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2.1.4. TuS 코블렌츠[편집]

독일 리그 초기엔 뛰어난 피지컬에 비해 떨어지는 개인기와 좁은 시야를 지적 받으며 여러 팀을 떠돌았으나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2007년부터 2부 리그 코블렌츠에서 풀백으로 완전히 포지션 체인지에 성공.[6] 공수전반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주축 선수로 성장했다. 2008년엔 소속 팀의 팬들이 뽑은 베스트 플레이어에서 2위에 랭크되었다.

2.1.5. SC 프라이부르크[편집]

2009년 6월 SC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하여, 2년 만에 다시 독일 분데스리가 1부에 복귀했다.

2.1.6. 셀틱 FC[편집]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분데스리가에서 스코틀랜드의 셀틱 FC로 이적했다. 그의 커리어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을 떠난 것. 2년 계약을 맺었으며 기성용과 같이 팀에서 뛰게 되었다. 때문에 셀틱 이적 후, 팀 적응 문제로 힘들어하던 기성용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차두리 본인은 첫 시즌에는 16경기, 두 번째 시즌에는 15경기를 뛰며 확실한 주전이라 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출전 수를 기록했다. 그래도 분데스리가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리그 우승을 경험해 본 것은 차두리 본인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듯.[7]

2.1.7. 포르투나 뒤셀도르프[편집]

2012년 뒤셀도르프로 이적해 분데스리가에 복귀했으나 가족문제로 인해서 소속팀에서 활동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특별휴가를 받다가 결국은 상호 협의 하에 계약해지를 하였다. 아내가 계속되는 해외생활에 힘들어 했다는 게 해외 언론들의 보도.

2.1.8. FC 서울[편집]

2013년 3월 말 갑작스럽게 FC 서울 영입설이 떴다. 많은 축구팬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이면서도 동시에 신빙성을 의심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에서 입단을 기정사실화했고 3월 25일 서울 유니폼을 입은 공식 사진이 배포되면서 입단 확정되었다. 정식 입단 발표는 3월 27일이며 등번호는 5번을 배정받았다.

2.1.8.1. 2013 시즌[편집]

4월 14일 슈퍼매치에 선발 출장하여 K리그 클래식 데뷔전을 치렀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체력이나 실전감각 문제는 없었지만, 역시나 전술한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노출한 모습을 보였다. 고요한과 짝을 이룬 오른쪽 라인의 파괴력은 뛰어났고, 수원의 스테보와 피지컬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면서 지난 2년간 세제믿윤이 서울을 농락한 수단이었던 스테보-라돈치치 트윈 타워를 앞세운 롱볼 전술에 유효한 대비책이 되었다. 그러나 후반 막판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에서 수비 위치 선정에 미스를 범하면서 라돈치치를 무방비 상태로 놓치며 동점골을 허용하는 우를 범했다. 2013 시즌 최종 기록은 30경기 3어시스트. 경쟁자 고요한, 최효진을 가볍게 제압하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2.1.8.2. 2014 시즌[편집]

그리고 14시즌에는 명실상부 K리그 최고의 오른쪽 수비수로 자리 잡았다.

전성기보다는 피지컬이 좀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떨어졌다는 피지컬로 내로라하는 K리그 공격수들을 압도했다. 수비력만 따지면 최효진보다 떨어졌지만 14시즌 서울이 3백을 주포지션으로 쓰면서 윙백으로 많이 출전했기에 단점을 상쇄할 수 있었고 최효진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피지컬과 스피드, 공격가담으로 압도적으로 꾸준히 최효진을 앞지르고 주전 출장했다. 물론 스리백에서만 우수 했던건 아니고 가끔 사용한 4백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비력이 약한 건 사실이지만 그간의 경험을 허투로 먹진 않아서 옛날 뉴캐슬 3B 같은 폼은 절대 아니고 파트리스 에브라조제 보싱와같은 유형의 선수가 되었다.[8] 이 활약을 인정받아 14시즌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에 당당히 선정되었다.

2.1.8.3. 2015 시즌[편집]

2014 시즌이 끝난 후 은퇴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보다 한 살 어린 박지성[9]도 은퇴한 마당이라 은퇴를 생각할 나이기는 하지만 만 33에 은퇴한 박지성은 대표 팀에서의 지나친 혹사로 인한 고질적인 무릎부상 때문에 요즘 선수치고 은퇴를 꽤 빨리한 편이고 30대 후반까지 현역으로 활약하는 선수가 많다는 걸 생각하면 아직 이르다며 더 뛰어주길 바라는 의견이 많다.

시즌이 끝난 뒤, 시상식에 참여해 2015년 AFC 아시안컵이 끝난 뒤,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할 것을 선언했다. 단, 현역 은퇴는 아니라고 한다. FC 서울과 1년 재계약을 맺으며 2015시즌을 함께하게 됐다. 하지만,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국가대표팀 은퇴를 만류하는 목소리도 높다.나이만 놓고 보면 은퇴하는 게 맞는데 아직도 그 피지컬을 대체할 선수가 없다[10]

그리고 2015 시즌이 끝난 뒤, 현역으로도 은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시즌 중, 부상을 당한 고명진을 대신하여 팀의 주장이 되었다. 말년에 주장 해보는 차미네이터

15시즌 22라운드 포항전에서 드디어 K리그 데뷔골을 넣었다! 정조국이 찬 슈팅을 신화용이 제대로 잡지 못하고 흘린 공을 동점골로 연결시켜 1 : 1로 만들었으나, FC서울은 후반전에 내리 두 골을 실점하며 1 : 3으로 패배.

그리고 9월 19일 슈퍼매치에서 자신의 시즌 2호골을 집어넣었다.

2.1.9. 현역 은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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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마지막 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다

10월 31일 FA컵 결승전 FC 서울인천 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하였고 경기 직후 차두리는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남은 K리그 클래식 경기는 더이상 뛰지 않고 현역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시즌 막판 발바닥 부상을 당했지만 참고 뛰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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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 우승을 확정 지은 후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015년 11월 7일 FC 서울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슈퍼매치 더비에서 클럽 소속으로도 공식적인 커리어 마침표를 찍는 은퇴식이 진행 되었다. 본인의 의지와 K리그 클래식 경고 누적으로 인한 출장정지로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FC 서울과 서로 앙숙인 수원 삼성의 서포터즈 그랑블루조차 차두리의 은퇴를 기립박수로 축하해주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 이루어졌다.

2.2. 대표 팀 경력[편집]

2.2.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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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이영표와 함께 역대 한국 선수 중 가장 화려한 국가대표 커리어를 가진 선수.[11]

2.2.1.1. 히딩크호 시절[편집]

2.2.1.1.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편집]

아버지 차범근의 모교인 고려대학교 재학 중에 2002년 월드컵의 최종 엔트리에 선발되었으나 주전으로 사용되지 않고 팀의 활력을 불어넣는 산소탱크 역할로 일부 경기에 출전했다.

예를 들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설기현이 골을 넣은 직후에 공을 받아 정석과도 같은 오버헤드킥을 찼는데...들어가지 않았다.당시 평소처럼 빗맞았으면 들어갔을 텐데 그날따라 정타로 맞았다 카더라[12]

여담이지만 저 때 차범근 감독은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 들어가서 영웅 대접을 받아 연습을 소홀히 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인데, 그래도 골로 연결되지 못한 건 아쉬웠다고.

3.4위전인 터키전에서는 송종국의 마지막 만회골에 기여했다. 송종국이 찬 슈팅이 차두리의 엉덩이에 맞고 스치며 굴절된 상태로 들어가 골이 된 것. 굴절되지 않았다면 골키퍼가 선방을 할 수도 있었기에 사실 차두리가 일부러 세리머니했으면 차두리의 골로도 인정될 수 있었다고... 어쨌든 송종국의 골로 인정.

2.2.1.2. 본프레레호 시절[편집]

본프레레호에서 3:1 독일 전 승리 때 MOM급 활약을 했다. 특유의 피지컬과 스피드로 독일 측면을 문자 그대로 박살내 버렸는데 독일 현지 캐스터가 '독일 2부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1부 리그 출신 독일 선수들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저 선수가 어째서 2부에서 뛰는 거죠?'라고 했다고 한다. 특히 이 경기에서 차두리 발업질럿이라고 불리는 폭풍 질주를 했다. 수비 시 튕겨 나온 공을 받아서 우리 편 진영에서 상대 엔드라인까지 쭉 공을 몰고 달려가는데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다!! 결국 마지막에 크로스는 못 올렸지만(...) 참고로 이때 계속 옆에서 따라오던 선수가 그 유명한 필립 람... 부심도 차두리 따라 헉헉대며 쫓아갔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독일이 PK를 얻어 발락이 차는데 차두리가 방향을 가리켜서 이운재가 막았다. 그 방향을 가리키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었다. 여러모로 공격수로는 국대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던 인생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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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3단 부스터 두리유

2.2.1.3. 아드보카트호 시절[편집]

하지만 이후로도 간간히 시험 삼아 기용될 뿐 주전으로 기용되지 못했고 차출횟수조차 줄어들더니 2006년 독일 월드컵때는 차범근과 같이 해설을 했다. 참고로 당시 23인 국가대표팀 최종 명단에는 들어가지는 못했으나, 5명의 예비명단에 포함되었고 일부 팬들은 당시 마찬가지로 23인 명단에 포함되지 못하고 예비명단으로 내려간 김병지와 함께 비운의 선수 중 한명으로 꼽기도 했다. 이에 당시 감독이었던 딕 아드보카트는 당시 차두리가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애매한 상황이었던지라 선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2.1.4. 허정무호 시절[편집]

그 뒤로도 계속 대표 팀과는 연이 없다가 2009년 허정무 감독에게 다시금 기회를 부여받았다. 국내파와 해외파 통틀어 대표 팀에서 가장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유럽, 아프리카의 파워형 공격수들과 맞서야 하는 대표 팀의 새로운 옵션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2010년 5월 25일 한일전에서 일본 선수 세명을 피지컬로 모조리 튕겨 내버린 두리블[13]은 폭풍간지.# 본격 차두라리스크!

다만 개인기와 경기 읽는 능력은 여전히 모자라서 팬들은 하드웨어는 i7 5960X인데 소프트웨어는 윈도우 XP...하며 탄식하고 있다. 그래도 아시아에선 통하는 소프트웨어

2.2.1.4.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편집]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등번호 22번을 받았다. 차두리 스스로 22번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유는 자신이 이름(두리 = 둘 2)과 연관되며 프로포즈한 날짜, 결혼기념일, 부친 차범근의 생일이 22일이어서 라고 한다.콩드립이 하고 싶어진다. 콩콩![14][15]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본선 B조 1차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미친듯한 활동량과 막강한 피지컬로 공수 양면에서 두루 활약하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리스의 주포인 장신 공격수 요르기오스 사마라스는 차두리에 막혀 경기장에서 완벽하게 지워졌다. 덧붙여 차두리가 볼을 잡고 쇄도하기 시작하자 당시 캐스터가 "폭풍질주가 시작됐습니다!"라는 멘트를 날려서 폭풍질주라는 새로운 별명이 추가되었다.
폭풍질주!! 22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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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전쟁

그리스의 공격수 사마라스가 예수를 닮아서 위와 같은 짤도 나왔다. 여기서 차두리는 스님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론 개신교 신자이다. 예수로 묘사된 사마라스는 정교회 신자. 여담이지만 이 대회 이후 차두리와 사마라스는 같은 팀 동료가 되었다.

2차전 아르헨티나 전에서 오범석이 대신 나와 출전하지 못했다. 기술 축구인 남미를 상대하기엔 테크닉이 모자라서였다고 하는데, 아르헨티나 전을 치른 장소가 고산지대라서 그랬는지 한국 팀이 힘에서 밀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지라 그의 강력한 플레이가 아쉽다는 주장도 있다. 허정무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리스 전에서 이기긴 했지만 차두리의 플레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오범석을 출전시켰다고 밝혔는데,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3차전 나이지리아 전에서는 선발 출장했으나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구멍이 되었다. 첫 실점 시 나이지리아의 우체를 놓치며 실점의 원인이 되었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오른쪽을 비우고 중앙에 위치해 가장 큰 구멍중 하나가 되었다. 만약 16강진출에 실패했다면 오범석에 버금가게 욕을 먹었을지도 모르지만 잊혀졌다. 될놈은 운빨도 잘받는다

다행히 16강전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른쪽에서 활발한 오버래핑을 통해 공격 찬스를 계속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수비적인 면에선 계속해서 돌파를 허용하며 좋지 않았다.

2.2.1.5. 조광래호 시절[편집]

2.2.1.5.1. 2011년 AFC 아시안컵[편집]

2011년 AFC 아시안컵 바레인과의 경기에서는 그야말로 차이콘이었다. 수비도 수비지만 오버래핑을 통한 공격가담에, 그동안 셀틱 경기 안 보던 팬들에게는 '차두리 크로스가 언제 저렇게 좋아졌음?'이라는 평가까지 들을 정도로 멋진 활약을 펼쳤다. 결국 후반 51분 강력한 슛을 날려 골키퍼가 막아낸 골을 구자철이 집어넣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달리는 긔여운 세리모니를 선보였다. 배성재 캐스터는 차범근에게 언제 저렇게 개조했냐는 드립을 날렸지만 차범근의 대답은 없었다.세리머니 단축키 누르고 계셨던 듯 그러나 그 이후 경기에서 자주 발 빠른 선수나 패싱 게임을 하는 팀의 선수들에게 자주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앞의 공로가 무색하게 엄청나게 까였다.

2.2.1.6. 홍명보호 시절[편집]

한동안 대표 팀에서 보이질 않다가[16] 2014년 2월 19일, 홍명보 A대표 팀 감독은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발표한 3월 5일 그리스와의 평가전 소집 명단에 차두리를 포함시켰다. 이는 약 2년 3개월만의 국가대표 선발이다. 축구팬들은 차두리가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의 활약을 재현할지 관심을 받고 있으나, 고질적인 수비불안에 대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부상으로 결국 하차.

2014 브라질 월드컵의 마지막 히든카드로 유력해 보였으나 월드컵을 앞둔 최종 명단에서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17] 이후 SBS의 월드컵 해설위원으로 발탁이 되어 브라질에 가게 되었다. 주로 아버지와 같이 해설하지만, 간혹 혼자 해설하기도 했다. 그리고 선수들 소개할 때 너무 긴장해서 독일어를 내뱉는데... 알제리전의 충격 패 이후 후배인 손흥민이 대성통곡하며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눈물을 쏟아내어 축구팬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선배들이 더 잘해서 발탁되어 후배들을 이끌어줬어야 되는데 혼자 뛰게 하여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2.2.1.7. 슈틸리케호 시절[편집]

2.2.1.7.1. 슈틸리케호/2014년[편집]

2014년 8월 26일 이동국과 함께 대표 팀에 재 승선했다. 베네수엘라 전, 우루과이 전 모두 특유의 피지컬로 활약하며 자신을 기용하지 않은 홍명보 감독의 선택이 실수였음을 증명했다. 11월 14일 요르단 전에서는 정확한 크로스로 한교원의 헤딩 골에 기여하여 팀의 유일한 어시스트이자, 개인적으로는 슈틸리케호 승선 후 첫 공격 포인트를 챙기는데 성공했다. 나이 때문에 대표 팀 은퇴의사를 밝혔고 2015년 아시안컵이 마지막 국제대회가 된다.

2.2.1.7.2. 슈틸리케호/2015년[편집]
2.2.1.7.2.1. 2015년 AFC 아시안컵[편집]

2015년 AFC 아시안컵 쿠웨이트 전에서 남태희에게 크로스를 올려 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기성용과 함께 조별 리그 베스트11에 들어갔다. 전 경기를 풀타임으로 뛴 기성용과 달리 차두리는 쿠웨이트 전에서만 선발로 뛰었는데도 들어갔다.

우즈베키스탄 전에서는 다시 벤치에 있었으나 김창수와 교체되어 투입 후, 상대방의 측면을 말 그대로 초토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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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한국의 축구 해설 위원입니까?? 나는 그를 보고 싶었습니다. 공 와쪄염 뿌우 많이 느려졌네 밸런스 패치가 드디어 완성된거라 카더라

배성재 : "저런 선수가 왜 월드컵 때 해설을 하고 있었을까요?"
박문성 : "아, 그러게요. 허허허..."

그리고 연장 후반 14분 무렵 약 70m를 폭주하여 손흥민에게 추가골 버스를 태워줬다. 돌진거는 라인하르트도 아니고 아시안컵에서만 돌아온다는 차이콘 골이 들어가자 배성재 캐스터가 그 분을 디스(?)했고 박문성 해설도 깨알같이 맞장구(?)를 쳤다 홍명보호박주호곽태휘는 벤치에 처박고 차두리는 해설이나 시켰으니 분명 수비가 쩌는 팀이었을 듯 더불어 이영표 해설은 이골의 지분 중 99%를 차두리에게 줘야 한다고 극찬했다. 사실 누가 봐도 차두리의 0.99골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긴 하다.

4강 이라크 전에는 선발로 출전해 초반은 좀 안 좋았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좋은 육탄방어와 몸싸움으로 결정적인 수비를 해내고 사이드를 위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팀은 2:0으로 승리하면서 국가대표로서의 마지막 경기가 아시안컵 결승이라는 큰 영광을 얻게 되었다. 과연 그 마지막 경기에서 대한민국의 55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화려하게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것인가. 경기를 중계하던 이영표 해설도 차두리의 마지막 경기가 멋지게 장식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예전 차두리가 자신이 2011년에 대표팀 은퇴할 때 포옹해주며 고마웠다고 격려해준 사실을 밝히며 이제는 차두리에게 자신이 정말 고마웠다고, 수고했다고, 마지막 결승전에서 차두리 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쏟아낸 아시안컵 결승인 호주 전에서 120분의 혈투 끝에 값진 준우승으로 국가대표를 마무리했다. 울고 있는 손흥민을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괜찮다고 달래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호주의 시상식을 지켜보는 차두리의 눈에도 눈물은 고여 있었다...비록 우승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축하받을 수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승보다 더한 감동을 받았다. 경기 직후 네이버에는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차두리 고마워'가 내내 올라있었다. 여러모로 결승 경기가 감동을 안겨다 주었지만, 차두리의 은퇴는 마지막 2002년 세대의 종언을 고하는 것이었고, 당시의 투혼을 2015년에 불어넣은 차두리의 모습은 아름다운 축구선수 그 자체였다.

2.2.1.8. 국가대표 은퇴[편집]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결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은퇴를 할 것인가 논의하던 중,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는 마지막 경기를 뛰고 승리하면서 은퇴해야 한다는 배려로 2015년 3월 31일 열린 A매치 뉴질랜드 전을 선발 출장하여 전반 40분 정도만 뛰고 교체되어 나가면서 차두리는 태극마크를 반납하게 되었다. 하프타임때 헌정 영상 상영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감사패 수여식, 붉은 악마 팬들과의 사진 촬영, 그의 영원한 보스이자 아버지 차범근과의 눈물겨운 포옹을 하는 이벤트가 팬들의 마음을 적셨다.

파일:external/www.ekn.kr/art_1427845148.jpg

마지막 경기 후, 인터뷰에서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실망을 준 팀이 똑같은 선수들이 이번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을 하며 브라질 월드컵의 아쉬움과 아시안컵의 좋은 결과를 언급했다. 은퇴 다음날엔 먼저 은퇴한 박지성과 점심식사를 하였고 저녁엔 손석희JTBC 뉴스룸에 초대 되어 은퇴 인터뷰를 하였다.

아무튼 그의 은퇴로 대표팀 오른쪽 풀백은 다시 고민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피지컬은 타고나야 하는데[18] 이 정도 피지컬을 가진 선수가 몇 년안에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어쩌면 차두리 아들이 다 커서 선수가 되기 전까지 안 나올지도 모른다 이번 대회에서 차두리와 함께 오른쪽 풀백으로 나선 김창수는 어느덧 30줄로 차두리만한 피지컬이 없어서 다음 월드컵까지 폼을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고[19] 월드클래스 공격수들에게 맞서기도 힘들다. 조광래와 최강희 시절 선발되었던 최효진, 오범석, 고요한, 신광훈은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아예 부진의 원흉이 되었다.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에서는 아예 장현수를 풀백으로 깜짝 기용하기도 했을 정도로 슈틸리케호의 오른쪽 풀백은 고민거리. 무명의 이정협을 발굴해 중앙공격수 자리를 보다 탄탄히 한 슈틸리케 감독인 만큼 앞으로 새로운 자원을 찾아내길 기대해보자.

이런 차두리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건 최강희의 탓이 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폼도 괜찮았고 조광래 시절 중용되던 차두리를 부임 이후 한 번도 소집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 이는 최강희와 차범근의 안 좋은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그들 주장의 근거다.

하지만, 최강희호가 경기력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지만 이 사안에서만큼은 최강희 탓을 하기도 뭐한 것이 최강희호가 부임하던 2012년 6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차두리의 커리어가 어떠하냐면 위에도 써있지만 뒤셀도르프로 이적 후 아내와의 이혼 문제 때문에 클럽에서 거의 뛰지 못 하고, 2013년에 FC 서울에 이적해 겨우 팀에 자리 잡아가는 시점이었다. 폼이 좋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차두리는 서울 이적 전에 K리그에서 뛴 적도 없었기 때문에 리그 적응에도 꽤 긴 시간이 필요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폼이 죽어 있던 차두리를 그저 이름값만으로 뽑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또한 브라질 월드컵 주전 풀백이던 이용은 아예 최강희호 때 뽑힌 적이 없고[20] 홍명보가 감독이 되고나서부터 국가대표팀에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올림픽 멤버였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올림픽 주전 멤버는 브라질 월드컵 당시 이용의 백업이던 김창수다. 즉, 이용과 김창수의 기용 상태로 보아 최강희가 기용하건 말건 홍명보는 얼마든지 차두리를 뽑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FC 서울에서 다시 부활할 때에도 홍명보는 차두리를 기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리스와의 친선 경기 때 차출했었으나 그때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여 뽑히지 못했는데 회복된 뒤에도 계속 이용과 김창수만을 고집했던 것이다.

사실 홍명보호 관련 항목을 살펴보면 이것이 꼭 차두리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남태희, 이명주 등 전술에 다양성을 부여할 수 있는 선수들도 엔트리에서 배제되었고 박주호도 마지못해 뽑아놓고 벤치에 짱박아 두었다. 그 결과 만회골이 필요했던 알제리전이나 대승이 필요했던 벨기에 전 모두 2선 아래에 폼 떨어진 올대 출신들 빼고는 제대로 된 교체카드 한 장 없었다.[21]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제일 문제는 홍명보 감독의 부족한 준비와 전술적 역량이었다.

2.3. 기록[편집]

2.3.1.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편집]

  • DFB-포칼 준우승 : 2005-06

2.3.2. 셀틱 FC[편집]

  •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 : 2011-12, 준우승 : 2010-11

  • 스코틀랜드 컵 우승 : 2010-11

  • 스코틀랜드 리그 컵 준우승 : 2011-12

2.3.3. FC 서울[편집]

  • FA컵 우승 : 2015, 준우승 : 2014

  •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 2013

2.3.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 AFC 아시안컵 준우승 : 2015

  • AFC 아시안컵 3위 : 2011

  • FIFA 월드컵 4위 : 2002

  • FIFA 월드컵 16강 : 2010

2.3.5. 통산 성적[편집]

2.3.5.1. 국가대표[편집]

차두리 국가 대표팀 득점기록[22]

일시

장소

상대팀

경기결과

대회명

2002년 4월 20일

대구 월드컵 경기장

파일:코스타리카 국기.png 코스타리카

2-0

친선경기

2004년 2월 18일

수원 월드컵 경기장

파일:레바논 국기.png 레바논

2-0

FIFA 2006 월드컵 예선

2004년 7월 14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

파일: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기.png 트리니다드 토바고

1-1

친선경기

2004년 7월 27일

산둥 경기장

파일:쿠웨이트 국기.png 쿠웨이트

4-0

2004 AFC 2004 아시안컵

연령

출전

U - 17

0

0

U - 20

0

0

U - 23

0

0

A 대표

76

4

종합기록

76

4

2.3.6. 주요 개인 수상[편집]

  • 체육훈장 맹호장 : 2002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 2002

  • K리그 클래식 베스트 XI : 2014, 2015

  • K리그 클래식 베스트 포토상 : 2015

  • AFC 아시안컵 베스트 XI : 2011, 2015

2.3.6.1. 표로 보기[편집]

2014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산토스

MF
임상협

MF
고명진

MF
이승기

MF
한교원

DF
홍철

DF
윌킨슨

DF
김주영

DF
차두리

GK
권순태

2015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아드리아노

MF
염기훈

MF
이재성

MF
권창훈

MF
송진형

DF
홍철

DF
요니치

DF
김기희

DF
차두리

GK
권순태

2.4. 플레이 스타일[편집]


뭐? 1초에 36km?????!!!!
신의 몸인데 인간의 능력[23]
뒤늦게 아시아의 마이콘으로 각성한 대기만성형 선수

한국 축구가 아시아권에서는 피지컬 깡패급이긴 해도 세계무대에서 수준급이라고 보긴 어려운 편인데, 차두리만큼은 유럽, 아프리카 선수들과 피지컬로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24] 이 막강한 피지컬 덕분에 차이콘, 폭주기관차, 차미네이터, 두리케라톱스, 차이언맨, 인간흉기, 인간수류탄, 차두라리스크, 발업질럿, 차드로이드 등의 별명이 있다. 현재는 역시 차미네이터란 별명이 가장 대표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죽하면 2002 월드컵 기간에 상대 선수와의 충돌대비 훈련하던 도중 이영표차두리에게 부딪혀 부상을 입고 조별예선 2경기 결장한 일화가 유명하다.자동'차'였나[25][26] 이 무지막지한 몸은 아버지 차범근이 어릴 적 잘 먹지 못했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자식들만큼은 잘 먹이고 싶어 어릴 때부터 고기를 잔뜩 먹여가며 만든 몸이라고 한다.[27][28]

세계 최고급의 피지컬[29] 무시무시한 스피드, 가공할 순간 돌파력[30]을 갖춘 선수였다. 비록 은퇴 직전이긴 했지만 독일 최강의 하드웨어로 손꼽히던 슈테판 에펜베르크[31]도 리그 경기에서 차두리를 상대하다가 벌렁 나자빠질 정도. 하지만, 기본기가 떨어져서[32] 어느 순간 공과 따로 놀거나[33] 경기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는 문제가 있다.

파일:attachment/차두리/000.jpg
처음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으나, 둔탁한 볼터치에 결정력이 좋지 않아서 윙포워드로 내려가다 윙어까지 내려가 뛰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기와 경기조율능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라 써먹기가 참 애매한 선수였다. 아버지 차범근 감독이 자신이 바빠서 어렸을 때 제대로 봐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하드웨어가 매우 좋다보니 감독들을 유혹했는데, 2002년 당시 히딩크 감독이 수비수 전향을 권유하기도 했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1.FSV 마인츠05에서 뛰면서 위르겐 클롭 감독의 가르침에 의해 수비수로 전향한 후 그의 진가가 드디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34][35] 수비수 전향한 뒤에는 타고난 철벽같은 몸으로 센터백이 잠깐 비었을 때 빈자리도 훌륭히 메꿀 수 있고 엄청난 순간 가속으로 인해 공격도 가담할 수 있는 라이트백으로서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포지션 변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공격수 시절보다 상대편의 견제를 덜 받게 되고, 본인이 수비수로써의 경험이 쌓이자 되레 공격수 시절보다 안정적인 크로스와 드리블을 더욱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짐으로써 오히려 수비수가 되면서 공격력이 상승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최고의 공격은 수비

만약 이걸 미리 발견했다면 안정적인 수비와 적극적인 공격가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월드클래스 선수 마이콘 수준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늦은 나이가 문제. 하지만 분데스리가를 그만두고 FC 서울로 이적해 K리그 무대를 밟으며 계속 좋은 활약을 보여줬고 입지를 다지다가 은퇴 직전 올라탄 슈틸리케호에서 제대로 포텐이 터지게 되어 측면파괴자로써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하여 박수 칠 때 떠난다는 말을 제대로 증명하고 떠나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좀 늦게서야 자신의 진가가 드러난 대기만성형 선수. 처음부터 수비수로 뛰었다면 대표 팀의 고질병이었던 오른쪽 풀백 문제는 진작 해결되었을 것이다.[36]

그렇기에 차두리 선수한테 자신도 포지션 전환을 한 1.FSV 마인츠05를 이끌던 위르겐 클롭 감독은 어쩌면 이 때부터 명장으로서 기질을 드러낸 셈이다. 다만 이건 클롭만이 아니라 차두리를 지도했던 많은 감독들이 시도했던 것이다. 히딩크 시절에도 포지션 변경을 권유 받았지만 거절했던 것으로 보아 공격수로써 잇따른 실패로 인한 본인의 심경 변화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3. 지도자 경력[편집]

2016년 10월 27일 국가대표 전력분석관으로 선임되었다. 원래 슈틸리케 감독도 차두리를 코치로 쓰고 싶어했고, 여론도 상당히 우호적이나 차두리가 아직 대표팀 코치에 필요한 A급자격증을 따지 못했다고 한다. 계약기간은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까지이며, 재계약은 추후에 논의한다고 한다. 독일어에 능통하고 불과 1년 전까지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었던 차두리의 선임으로 이란 전 이후 침체에 빠진 국가대표팀에 활력을 넣을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듯 하였으나...

돌연 2017년 4월에 자진사퇴를 선언했다. 관련뉴스

3.1. 코치 경력[편집]

3.1.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편집]

하지만, 울리 슈틸리케의 경질 이후 새롭게 부임한 신태용 감독의 강력한 추천으로, 2017년 7월 12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다시 선임되었다.

4. 이야깃거리[편집]

  • 독일 소속팀과 재계약하는 것을 포기하고 K리그 진출 의사를 밝혔다. 아버지의 팀인 수원에서 함께 뛰고 싶어 했다는데 차범근이 2010년 수원 삼성 감독에서 사실상 불명예 퇴진으로 물러나면서 이미 무산되었고 차범근의 대표팀 감독 시절 애제자였던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FC 서울로 이적하였다.

  • 2001년 월드컵 대표팀이 고려대와 연습 경기를 끝마친 후, 히딩크 감독은 고려대 선수 하나가 계속 개인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다 끝났다'고 일러주었는데, 선수는 '난 지금 고려대 선수니까 우리 감독의 말을 듣겠다'며 훈련을 계속했다. 이 당돌한 선수가 누군가 싶어 물어보니, "차두리라고 그 유명한 차붐의 아들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히딩크는 차두리를 월드컵 대표 선수로 발탁했다.

  • 2003년 말에 굿데이 기자를 폭행했다고 모함을 당한 김병현을 옹호하는 글을 싸이월드에 올리기도 했다. 이 글에선 "(…) 저는 야구를 잘 보지도 않고 김병현 선수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기자들이 워낙 엉뚱하게 기삿거리를 만들다 보니 억울하게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힘내십시오. (…)" 이때 유달리 욕으로 악플을 달던 이가 있었는데, 이걸 본 오마이뉴스 기자가 IP를 추적했더니 그 신문사가 나왔다고 한다. 이 보도에 당시 굿데이는 물론 부정했지만, 당연히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6개월 만에 망해버렸다. 사실 며느리 사정은 동서가 안다고, 차두리 역시 스포츠 신문 기레기기자에게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인터뷰를 거절하자 다음날 '어린 놈이 좀 잘나간다고 오만방자하게 군다'는 훈계 조 기사가 났다고 한다.역시 기레기들이 문제

  • 2010년 6월 29일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스코틀랜드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따로 탔다. 이유는 경기 종료 후 이틀 뒤 스코틀랜드 팀으로 러브콜이 들어왔다고 바로 비행편을 잡고 대표 팀과 인사를 나눈 뒤 탑승 게이트로 들어가 스코틀랜드 행 비행기에 탑승했다.(김남일도 요하네스버그에서 바로 러시아 팀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명문 클럽 셀틱과 2년 계약을 맺었다.

  • 여담으로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에서 뛰려면 영국 노동법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바로 2년 간 A매치의 75% 이상을 뛰거나 혹은 누군가의 보증이 필요했다. 우선 A매치 출전 기록이 기준에 못 미치다보니 남는건 보증인밖에 없었고, 다행히 아버지와 절친하다는 어느 아저씨가 보증을 서줬는데 그 사람은 바로.....[37]

  • 여담이지만, 한때는 축구 선수가 아니라 스포츠 기자를 꿈꿨다고 한다. 아버지의 기자 친구들처럼 축구를 잘 아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그래서 그의 고려대 시절 전공은 신문방송학과였으나,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때 아버지가 겪은 일을 본 후로 정나미가 떨어져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이런 이력 덕에 운동 선수답지 않게 각종 시사 상식과 지식이 풍부한 편이며 언변도 수려해서 아버지와 함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해설을 맡아 호평을 들었다.

  •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어려서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덕에 독일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한다. 대표 팀 초년에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독일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둘은 통역 없이 직접 독어로 대화했다고 한다. 일상 언어로도 독일어가 조금 더 편해서 해설 할 때 메모를 할 일이 있으면 독일어로 한다고 한다. 2014 월드컵에 해설로 나섰을 때는 파트너 배성재가 커닝이 안 된다며 장난스럽게 불만을 제기했다고. 또한 독일 국가대표 팀 경기를 해설 할 때는 장난스럽게 독일을 응원하기도 하고 독일 선수 라인업을 본토 발음으로 소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대표 팀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와도 독일어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38]소프트웨어 기본 언어가 독일어라 독일 감독 또는 독일어를 할 줄 아는 감독 외에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 못한다 카더라차두리의 독일어 인터뷰 재밌게도 아버지 차범근은 꽤 오랫동안 독일에서 생활했음에도 독일어를 잘 못한다고 한다. 부자가 함께 참여한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가 나와 차두리가 오랫동안 살았는데 그렇게 못 할 수가 없다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차범근나는 축구로 잘했잖아라고 일축해 웃음을 주었다.답답한 놈이 한국어 배우겠지 차범근의 장녀이자 차두리의 누나인 차하나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전공하고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에서 일했다고 한다.차붐 딸인게 밝혀지면 슈퍼스타 확정

  •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 국적설정이 독일과 한국 이중국적으로 되어있다. 물론 이 경우는 차두리의 출신지인 프랑크푸르트 때문에 자동적으로 독일 국적도 추가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 FM에서는 우리나라의 이중 국적 금지를 반영하지 못 한 게 크다.

  • 고교 시절의 축구부 동기 중에 연예인이 있었는데. 바로 개그맨 노우진. 축구부의 분위기 메이커였단다.

  • 차두리 어머니가 노우진을 싫어한다고 한다. 이유는 노우진이 차두리에게 같이 개그맨을 하자고 해서 그렇다고(...)

  • 2009년 한 살 연상의 회사원[39]과 결혼식을 올렸다. 일에 쫓겨 어린 아들을 제대로 코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밝혔던 차 감독은 손자가 태어나면 축구 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그 후 1남 1녀를 둔 아버지가 되었는데, 2013년 4월 3일, 이혼 기사가 떴다. 아내가 오랜 해외 생활을 견디지 못해 부부 사이가 소원해졌고 이에 차두리가 먼저 이혼 조정 신청을 했다고 한다.[40]

  • 성격이 좋아서 훈훈한 일화들이 여럿 있다. 2011년 AFC 아시안컵 예선 첫 경기인 바레인전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자기 얼굴에 침을 뱉은 상대 선수와 유니폼을 교환했다. 국가대표 초년병 시절 잉글랜드 대표 팀과의 경기에서 교환 요청을 하다 거절 당한 경험이 떠올라 그의 사과를 받아주고 유니폼을 건네줬다고 한다. 이란 전에서도 연장전에 터진 윤빛가람의 골로 1:0으로 패배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란 선수를 위로하는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트위터 유저다. 아이디는 robotdr22.(...)

  • 국가대표 축구 팀 주치의 송준섭 유나이티드 병원장은 차두리가 타고난 신체라는 것을 설명하며 "로봇 심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심장 근육 벽이 일반인보다 두꺼워지는 심장 비대(肥大)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극심한 운동에 몸이 적응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차두리의 심장은 기능이 원래 뛰어나서 심장 벽의 두께가 두꺼워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반인과 별 차이 없다고 한다.#

  •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호처참한 경기력으로 광탈하고 왔음에도 홍명보가 유임되자 98년에는 왜...??? 혼자서...라는 의미심장한 트윗을 올렸다.여기 이후에 쿨함 브라질 마지막 칼럼에서 밝히길 "그 입 다물라!"차붐의 엄명이 떨어졌다고 한다.[41]

  •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방영된 차범근, 차두리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신이 박지성이나 손흥민만큼 축구를 잘하지 못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언제나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차범근은 반대로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부담 때문에 아들이 힘들어했던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후 2014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후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드디어 인정받은 것 같다고 소회를 밝힌걸 보면 워낙 성격이 좋아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살아오며 마음고생이 굉장히 심했음을 알 수 있다.

  • 그런데 사실 차두리가 이만큼 해온 것도 대단한 것이다. 이름 없는 선수의 아들이 유명선수가 되거나 유명 선수의 아들이 별 볼 일 없는 선수가 된 사례는 정말 수도 없이 많지만[42] 유명한 축구 선수의 자식이 아버지 따라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에서도 꽤 드문 케이스다. 기껏해야 파올로 말디니 정도? 치차리토도 3대가 멕시코 국대 출신 그나마 말디니 가도 그의 아버지인 체자레 말디니부터 자신까지 겨우 2대로 그쳤다. 비록 차범근이 이룬 커리어에 비해 많이 부족해 보이는 차두리이나 차범근이 워낙 대단한 것이지 한국에서 차두리만한 커리어도 드물다. 충분히 차범근의 아들로서 자랑스러워 할 만하다. 차범근도 인터뷰나 기고문에서 독일에 가면 현역시절 동료들에게 아들이 국가대표라고 자랑하면 다들 부러워한다는 얘기를 몇번씩 했다. 前 키커 편집장이던 라이너 홀츠슈는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분데스리가를 통틀어도 차붐 부자처럼 대를 이어 왕성한 활약을 보인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고, 트란스퍼마르크트는 차붐 부자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역대 부자 랭킹 3위로 올렸다.[43]

  • 팬들은 차두리가 활약을 보일 때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기량이 많아졌다라는 표현을 쓴다. 일종의 관용구인데 위에서 서술한 독일전 전설적인 3-1 승리 때 필립 람과 스피드경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송재익 캐스터가 친 멘트에서 유래. 왜 기량이 '많아졌'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어색하면서도 묘한 어감 때문에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 인테르와의 평가전 태클항의

  • 아이돌 가수 선미가 차두리의 팬이다. 이상형으로 차두리를 뽑은 데다 '24시간이 모자라' 활동 시절에는 같이 안무 추고 싶은 남자로 엠블랙이준과 함께 그를 뽑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유행할 적에는 다음 상대로 차범근, 차두리, 그리고 차두리의 동생 차세찌 씨를 지목했다!!!!스타의 가족까지 챙기는 팬의 센스 그런데 차하나 씨는???? 어쩔 수 없잖아 셋만 지목해야 하는데 차두리 역시 자신을 지목해준[44] 선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리며 아이스 버킷에 가담했다.

  • 안티가 없는 대표적인 축구선수 중 한 명이다. 대개 유명 선수들은 그 선수가 소속된 팀의 안티 팬들이 엮이거나 축구 외적인 면으로 구설수에 올라 까이거나 아니면 명성에 비해 형편없는 기량으로 비난을 받거나 그것도 아니면 단지 잘나간다는 이유만으로도 욕을 먹거나 하는데 차두리는 그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는 드문 케이스.[45] 어떻게 보면 자연스런데, 누가 봐도 "언제나 많이 뛰고 잘 뛴다." 그리고 표정둥글고 사고 안 치니 그 다음은 기용한 감독의 영역..

  • 고려대학교 동기인 이택근과 친구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기가 없는 날엔 이택근의 초대로 목동 야구장찾는다던지 경기가 없는 날엔 서로 만난다던지 하는 친분을 과시했고, 이택근의 동료인 박병호가 50홈런을 쳤을땐 축하한다는 인스타를 남기기도.

  • 세스크 파브레가스,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 같이 왼손잡이-오른발잡이로 주로 쓰는 손과 발이 다르다. 하지만 차두리는 글을 쓸때는 오른손으로 쓴다.

  • 201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자신의 칼럼 '차두리의 유로話'를 연재하게 되어 스포츠 기자의 꿈에도 한발 가까워지게 됐다. 차두리 본인이 해외축구계에 정통하고 해설 경력까지 갖춘 만큼 필력도 좋고 분석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선한 사람됨이 잘 드러나는 글을 쓰고 있는데 따뜻한 칼럼들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던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이유들로 칼럼니스트로서도 큰 호평을 받고 있다.

  •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 영국에서 기성용 응원차 방문해서 새우를 먹었는데 눈이 퉁퉁 부었다고 한다.

4.1. 차두리 로봇설[편집]

파일:attachment/차두리/003.jpg

본격_두리언맨.jpg 차미네이터 동명이인은 진짜 로봇 탄다 카더라
마눌유심은 상성이 영 좋지 않아 폐기되었다.
그와중에 비번이 00700

파일:/image/213/2010/07/04/20100704_1278240492_75923300_1.jpg

24종의 표정을 지닌 최첨단 로봇 차미네이터 거의 다 비슷한 것 같은데..

인터넷 몇몇 사이트들에서 신빙성(…)을 얻고 있는 가설. 차두리는 사실 차범근의 아들이 아니라 차범근이 제작한 무선조종로봇이라는 음모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차두리의 사기 급 육체 포텐셜과 차두리가 볼을 잡았을 때 반드시 일어나는 상황, 차두리의 표정 등 여러 가지에서 추론되고 있는 가설로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고 있다.

1. 아무도 그의 어린 시절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46]
2. 고되고 힘든 훈련 사진에서도 혼자 웃고 있는 사진이 대부분이다.
3. 차두리가 볼을 잡으면 차범근이 조용해진다.(차범근은 이 때 조종 중)
4. 차두리 유니폼 뒤에 새겨진 이니셜 D R CHA가 Dr. CHA의 변형이다.(차 박사가 만들었다는 의미!)
5. 차두리의 등번호는 11번인데, 콘센트 모습과 같다.(백넘버로 위장함. 현재는 등번호 22번으로 110V에서 220V로 업그레이드 됐다고.)
6. 차두리는 머리가 자라지 않는다.(태양열 발전 판이라는 추측이 있다.)
7. 차두리는 전진, 후진 밖에 못 한다.
8. 차두리의 경기를 보면, 사람 대 사람으로 부딪힌다고 볼 수 없다.
9. 아르헨티나 전에서 그토록 한국이 열세였음에도 그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르헨전이 치러진 경기장의 해발 1700미터의 기압과 온도에 의해 기계 오작동이 생겨서다


사실 2002년 한일월드컵 무렵에 나온 개그다[47].

결국 이런 만화까지 나왔다. 심지어 이 만화는 2010년 6월 15일 YTN에서 매스컴도 탔다. 그 후 6월 24일 KBS 9시 뉴스에는 이 로봇 설을 총 정리한 뉴스가 떴다. 이걸 알게 된 차두리는 장난스럽게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고(...), 2~3일 뒤 네이버에선 차범근에게 질문을 하는 코너 에서 차두리 로봇의 설계도를 언제 공개 하냐고 묻자 이런 답변이 나왔다.(...)

로보트…
이건 일급비밀이야.
많이 알면 다친다고!!!
로보트 아빠는 상관없지만 로보트 엄마가 비밀로 부치고 싶어 해.
이해해줘.
로보트 가족 중에서는 엄마 힘이 젤 쎄다고!!!

출처. 6월 15일 17시 37분 33초의 질문에 대한 답변.

그리고 23일에 있는 나이지리아전을 앞두고 차두리가 USB 꽂고 충전하고 오겠다고 하기도 했다. 부자가 이 가설을 즐기는 듯하다.

2015년 1월 22일 아시안컵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차두리 로봇설이 다시 제기되었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해설을 하느라 조이스틱 조정이 힘들었는데, 해설을 그만둔 후 Windows 10으로 OS를 업그레이드하고 홀로렌즈로 원격조종했다 카더라.[48] 그리고 실은 여태 OS가 독일어 버전이었기 때문에 본프레레, 슈틸리케등 독일어를 아는 사람이어야 제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본격 최용수 독일인 설[49]

파일:external/file2.instiz.net/2333f1ae2758cbec70fab1041f7e3654.gif
통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조작작전을 전달하는 슈틸리케 감독.쫓아왔다 뻘쭘해진 통역자 이 경기에서 위의 손흥민 골 어시스트 장면이 나왔다.

파일:external/www.etobang.com/e9dfa14334c77e8298190d1f183ac3e7_TlgGIqfMkqTgeEO8cyHn2RwzMOqn7kX.png

출력저하설이 제기되었는데, 차두리를 까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출력을 줄임으로써 인해 되려 폭주가 줄고 밸런스가 좋아져서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조종하는 모습이 유출되었다 차붐게리온

슬로바키아에 2호기가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도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출연하던 KDB 대우증권의 광고를 찍었는데, 본인이 로봇이라는 설을 부정했다. 직전에 티저광고를 찍어서 무슨 신개념 피트니스가 나올 것처럼 광고하더니 이거였나 그 티저를 올린 유튜브 채널 이름도 차미네이터였다

은퇴해서 이젠 로봇설도 과거로 묻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들이 선수로 떠오르면??

4.2. 딸과 관련된 문신[편집]

파일:attachment/chaduri_tatoo.jpg
2010년 월드컵 때 윗도리를 벗어 젖혀서, 문신을 한 모습이 공개 되었다. 왼쪽 옆구리와 오른쪽 팔에 각각 문신을 하였다.

  • 왼쪽 옆구리
    차두리 로봇 설을 증명하는 시리얼번호
    왼쪽 옆구리의 문신은 로마 숫자 표기법으로 된 숫자이며 2개의 날짜를 의미한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구분을 위한 점이 찍혀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V I I . I I . M M X → 7.2.2010 → 2010년 2월 7일

X I I I . I X . L X X V III → 13.9.78 → (19)78년 9월 13일

첫 번째 날짜는 딸 차아인양의 생일이며, 두 번째 날짜는 전부인인 신혜성씨의 생일이다.

  • 오른쪽 팔
    파일:attachment/hebrew_ayin.jpg
    오른쪽 팔의 문신은 히브리어아인(Ayin)이라는 글자이다. 위의 4개의 글꼴 모두 모두 아인에 해당하는데, 이중 4번째 글꼴과 동일한 문신을 했다. 문신의 의미는 당연히 딸의 이름을 의미한다. 딸내미바보 확정.
    참고로 2011년 아들을 얻었는데, 아들의 생일에 맞추어 문신을 추가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파일:/image/109/2013/04/14/201304141603772626_516a5564ad9b9_59_20130414160702.jpg
2013년 경에는 양팔 가득히 문신을 추가해서 약간 흠좀무한 비주얼을 보이고 있다. 조선의 크세르크세스 나는 관대하다 사실 연성진이다

차범근의 칼럼에 이 문신에 관한 비화가 나왔다. 이혼의 충격 때문인지 양팔에 잔뜩 문신을 하고 서울과 계약을 한 뒤 서울 집에 돌아갔을 때 차씨 집안의 실권을 쥐고 있는 차범근의 부인(일명 두리엄마)이 화가 폭발하여 무려 한 달 가까이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집안에서는 사시사철 긴팔만 입게 한다고..차두리 말에 따르면 이혼당시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뭐라도 했었어야 했다고 해명. 베컴덕후인 차두리가 베컴의 양팔 가득한 문신을 따라한 것이라고 차범근은 추측했다고 밝혔다. 아마 다시 솔로가 된 해방감에 그런 것일지도.. 참고로 차두리는 실제로 베컴 덕후이다. 생제르망에 입단한 베컴의 유니폼을 사기 위해 독일에서 파리까지 직접 가서 줄을 서서 유니폼을 샀던 전력이 있다. 게다가 베컴 집에 가보고 싶어서, LA 갤럭시로 이전을 고민한 적도 있다고 한다. 관련기사

4.3. 부전자전 외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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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차범근과 여러모로 판박이 외모. '부전자전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파일:C6LQilx.jpg
차씨네 가문 3세. 일단 우는 표정은 아빠를 닮은 듯.

참고로 5살 아래 동생 차세찌도 차두리와 매우 닮았다. 오죽하면 쌍둥이 아니냐는 평이 있을 정도.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은 쪽이 차두리.[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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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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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의 장녀이자 차두리의 2살 위 누나 차하나. 차범근의 딸마저 차범근을 닮았다. 아예 차두리한테 여장을 시켜놓았다고 해도 믿을 얼굴이다. 아버지와 아들 둘이 닮은 건 그렇다 쳐도 딸마저 아버지를 쏙빼닮았다.

4.4. 피곤한 간 때문이야[편집]

간때문이야 문서 참조.

5. 둘러보기[편집]

[1] 셋째라는 뜻이다. 같은 의미로 3남매의 첫째인 누나 이름은 하나, 둘째인 형 이름은 두리이다.[2] 4백의 라이트백과 3백의 라이트 윙백 모두 가능.[3] 대한축구협회 프로필[4] 모두 공격수 시절에 넣었다.[5] 단 집계 랭크 17위는 2003년 분데스리가 데뷔 당시 초반 잠깐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의 점수이다. 사실 피지컬은 당시 독일에서도 뛰어난 수준이었고, 풀백으로 전환하기 이전에도 간혹 좋은 크로스를 올리며 공격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풀백 전환 이후라면 몰라도 공격수 시절 국대에서의 모습만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수준. 하지만 그것만으로 성공하기에는 개인기와 시야 문제가 너무 컸다.[6] 마인츠 시절에 풀백 포지션 변경을 제안 받았으나, 바로 완전 자리 잡지는 못하고 윙과 풀백을 번갈아가면서 봤다.[7] 참고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시절 DFB-포칼 결승까지 진출했던 전적이 있다. 다만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에게 패해 우승하지는 못했으나 다음 시즌 UEFA 컵 진출권을 따내는 데는 성공했다...만 정작 차두리는 그 다음 시즌 마인츠로 이적해 UEFA 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8] 에브라와 보싱와 둘 다 수비력으로 정상급인 선수는 아니었으나 발이 빠르고 공격력이 우수해 맨유와 첼시라는 리그 정상급 팀에서 주전으로 뛰었다. 특히 보싱와는 첼전드가 되었다[9] 사실 빠른 81이라 사실상 동갑이긴 하다.[10] 사실 다른 선수들이 무조건 차두리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윙어 출신이기에 수비력이 떨어지는 편인 차두리에 비하면, 사실 현재 K리그 국대급 라이트백 중에 차두리보다 수비력이 떨어진 풀백은 드물다. 문제는 그 만한 공격력, 그리고 그만한 피지컬을 가진 선수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지만.[11]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4강에 올랐던 2002년과 16강에 올랐던 2010년, 준우승을 차지한 2015년 아시안컵에 모두 출전한 선수는 차두리가 유일하다. 특히 2010년 월드컵과 2015년 아시안컵에선 핵심 멤버였다. 이는 아버지 차범근도 못 해낸 업적이다. 물론 차범근 세대는 월드컵 나가는 것조차 대단한 위엄일 시절이었고 86년 월드컵을 제외하곤 본선에 나가지도 못했었다. 여하튼 월드컵 3회(2002, 2006, 2010) 출전과 센추리 클럽가입, 한국 최초 월드컵 원정승리란 타이틀이 있는(박지성은 안정환, 손흥민과 함께 한국인 월드컵 최다 골(3골) 기록도 가지고 있다.) 박지성, 이영표 아니면 견줄 사람이 없다. 좀 더 빨리 수비수로 전향하거나 처음부터 수비수였다면 월드컵 최초 원정 승리를 거둔 독일 월드컵에도 참가하고 센추리 클럽에도 가입할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12] 실제 해설 당시 빗맞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13] 드리블이란 공을 굴리면서 상대방 선수를 피해 상대 진영으로 공을 몰고 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두리블은 공을 굴리면서 상대방 선수를 튕겨내는 것. 만화 캡틴 츠바사에 꽤 나오고, 실로 한국 캐릭터이고 아버지인 차범근이 베이스인 차인천이란 캐릭터가 중전차 드리블이란 똑같은 기술을 구사한다![14] 여담이지만 그 전 독일 월드컵에서 대표 팀의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한 송종국이 달았던 등번호도 22번이었다.[15] 이때의 등번호 를 가지고 그 전의 11번 이던 차두리 와 비교해서 차미네이터 버전 2.2 라는 우스개 도 있었다..[16] 경기 외적인 이유로 슬럼프에 빠지면서 폼이 확 떨어졌고 소속팀에서 출전도 제대로 못하던 시기였다.[17] 바로 윗문단에 언급된대로, 차두리의 컨디션을 점검하기위해 최종엔트리 결정하기 전인 마지막 평가전인 그리스전에서 테스트를 해볼생각으로 선발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하차했다. 감독입장에서도 써보지 못한 선수를 월드컵에 데리고 간다는건 사실 말이 안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물론, 홍명보감독의 박주영, 윤석영 등등 이해할 수 없는 선수 선발때문에, 차두리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라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기도 한 상황이지만, 일단, 차두리를 선택하지 않은건 원칙적으로는 감독의 올바른 선택이다. 하지만 홍명보호의 결말과 최종 엔트리의 논란, 스스로 원칙을 저버렸다는 홍명보의 발언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더라도 차두리급 되는 고참의 영향력과 리더쉽이 필요했던 경기들에서 너무 어렸던 홍명보호는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18] 물론 훈련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다만 차두리 정도로 사이즈, 파워, 스트렝스, 스테미너가 잘 어우러지려면 잘 타고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극단적인 예를 들어 메시가 철지한 관리 하에 장점을 죽이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여러 피지컬적인 요소들을 향상시키긴 했지만, 그렇다고 차두리처럼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19] 일본 진출이후 국대에서 폼이 좀 들쭉날쭉하다.[20] 당시 최강희는 라이트백 자리에 여러 선수를 실험했었다. 오범석, 최효진, 고요한, 신광훈 등이 이 시기에 국가대표팀에 뛰었다. 그리고 전부 다 아시아권에서도 휙휙 제쳐져 연착륙에 실패했다.[21] 그때 교체된 선수중 2명이 폼 떨어졌다고 우려했었고 출전하니 역시나 라며 안타까움만 준 지동원김보경 이었다.[22] 4골 모두 공격수 시절에 넣은 골들이다.[23] 호나우두는 잦은 부상 때문에 신의 능력을 인간의 몸이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평가받았다.[24] 이 덕분에 아시아권에서는 피지컬로는 언터처블이었다. 일본전에서 보여줬던 두리블은 드리블을 하던 선수에게 차징한 선수들이 튕겨나가는 기묘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25] 차 씨는 수레 차(車)자를 쓴다.[26] 수비 연습을 같이 해주던 정해성 코치는 차두리에게 받히고 갈비뼈가 부러졌다. 이에 대해 히딩크는 차두리에게 잘했다며 윙크를 날렸다고 한다.(...) 이정도의 힘과 투지라면 외국의 거구들도 나가 떨어질 것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출처 : 히딩크 자서전 '마이 웨이' 229p)[27] 사실 아버지인 차범근부터 피지컬은 아들인 차두리 그 이상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뛰어났다. 키(183cm)부터도 차두리(181cm)보다 큰데다, 현역 시절 허벅지 근육이 27인치로 왠만한 사람 허리 사이즈 수준. 독일의 레전드 선수인 로타어 마테우스 선수도 차범근을 처음 봤을 때 허벅지밖에 안보였다고 했을 정도다. 심지어 차두리의 말에 따르면 본인이 국가대표에 처음 승선한 22살까지 어떤 신체능력으로도 아버지를 이길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차범근의 나이는 49살...[28] 차두리만 몸이 좋은 게 아니다. 차범근 감독의 세 자녀 중 맏이인 하나는 딸인데, 목격자에 의하면 차두리는 크지만 근육으로 압축해(?) 놓았는데 차하나는 그것을 다 풀어 놓은 상태의 거구이다. 차하나 씨는 어머니 오은미 씨와 거의 똑같다 싶이 닮은 미인인데, 키는 아버지(183cm)와 거의 똑같다(...). 결혼식 사진을 보자. 차하나 씨 결혼식 때 아버지와 찍은 사진 해병대 출신 막내 세찌 또한 강력한 피지컬(?)을 자랑한다.[29] 디디에 드록바와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정도니 말 다 했다. 링크된 움짤은 전설의 한일전 두리블.[30] 2002 월드컵 히딩크호 선수들 중 30m와 100m 모두 가장 빠른 속도로 주파했다고 한다. 100m 기록은 11.2초로 육상 100m 달리기 한국기록이 2017년 6월 김국영이 기록한 10초 07이니 육상선수급 기록이다.[31] 94 미국 월드컵 독일전에서 법규를 시전하신 한성깔하는 분이시다.[32] 차두리가 본격적으로 축구선수가 된 것은 중학생 때였다고 한다. 차두리가 늦게 선수생활을 시작해서 그런지 차범근도 차두리의 기본기를 봐주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한다.[33] 국가 대표 경기 도중에는 공보다 더 빨라서 차두리가 먼저 골라인 밖으로 나간 다음에 공이 골라인 밖으로 나간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피지컬이 전성기보다 떨어져서 공이랑 같이 달려 전성기가 온 것이라고 카더라[34] 어려서부터 축구 교육을 단단히 받았다면 정말 한국 축구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천재가 태어났을 거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피지컬 하나는 뛰어나다. 다만 문제는 역시 기술(...) 그래서 팬들은 차두리의 2세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재이니 태어나면 무조건 영재교육 시켜야 한다라며 김칫국을 마시는 중. 결국 2011년에 정말 사람들이 기대하던 차두리의 아들이자 차범근의 손자가 태어났는데, 이를 두고 요르단과의 2차전 때 배성재 캐스터는 "차범근 해설위원, 얼마 전에 2030년 월드컵 주축이 될 유망주를 얻으셨죠?"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차범근은 매우 당황해했다.[35] 또한 차두리가 클롭의 권유를 받아들이고 마인츠로 이적했던 것이 2006 독일 월드컵 이후였기 때문에 좀 더 빨리 수비수 전향에 대해 고려했더라면 2006 독일 월드컵에도 참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36] 레프트백은 이영표가 은퇴한 2011년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고, 그마저도 조광래가 수비 포지션 파괴하고 홍명보가 폼이 떨어진 윤석영만 기용해서 문제를 심화시킨 면이 더 컸다. 하지만 라이트백은 송종국의 전성기가 3년도 채 못가면서 2006년 독일 월드컵 이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온 문제였다. 폼 떨어진 송종국을 대체할 멤버가 필요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오범석이 대체자로 가장 가능성이 높았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점점 불안해져서 결국 라이트백 포지션에 완전히 적응한 차두리가 다시 뽑혔다. 그리고 오범석은 아르헨전에서 거하게 사고 쳐서 대표팀에서 보기 힘들게 되었다 최철순, 최효진 같은 선수들도 있긴 했지만 이들은 오범석보다 국대 경험이 더욱 없었고 피지컬이 약해서 유럽,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정면으로 맞서기는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다.[37] 그는 전세계 축구계에서 레전드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EPL도 아니고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뛰기 위한 보증인치고는 격이 높아도 한참 높은 셈. 그리고 아버지의 인맥이 ㅎㄷㄷ하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38] 독일 본토 사람들도 말하길 얼굴만 가리면 그냥 독일 원어민이 말하는 것 같다고 한다. 많은 기간 공부를 해서 독일어를 능숙하게 해도 외국인 특유의 억양이나 사소한 부분에서 어색한 면이 느껴지는데, 차두리는 그냥 독일의 어느 축구선수처럼 위화감 없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평가.[39] 말이 회사원이지, 사실 서울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 신철호 회장의 맏딸이다. 그래서 장인 덕보려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 차두리가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 적도 있다.[40] 그런데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나 관련 기사에서 차두리가 가족 때문에 휴가 쓰면서 뒤셀도르프에서 얼마 못 뛰고 방출 당했던 것을 들어, 축구 선수와 가정을 이루면 해외 생활도 각오하여야 되는데 차두리를 배려하지 않았다며 차두리의 전 아내가 비판 받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결혼생활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낯선 해외에 나가서 생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므로 당사자의 입장이 아닌 이상은 그래도 참고 살아야 한다고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니다. 이혼이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하는 문제도 아니고 당사자들만의 의사인 만큼 제3자가 함부로 끼어들 일은 더더욱 아니고.[41] 차범근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조광래와 정반대 성격으로 설사 자기가 불합리한 일을 당했어도 다른 사람 험담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또 자신의 과거사가 생각나서인지 그냥 대인배인건지는 모르겠지만 홍명보에 대해 변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차두리의 트윗도 홍명보보다는 축협을 저격했다는 느낌이 강하다.위의 링크의 댓글에 의하면 차범근이 독재자 기질이 있다 카더라[42] 전자의 대표가 펠레고 후자의 대표가 마라도나 주니어다. 이쪽은 사생아지만[43] 1위는 귄터 쿤츠 - 슈테판 쿤츠, 2위는 프란츠 베켄바워 - 슈테판 베켄바워를 꼽았다.[44] 물론 선미만 그를 지목한 것은 아니고 모태범, 임상협, 신아영 등등이 그를 지목했다.[45] 다만 인기 때문에 풀백으로서는 수비력이 좋지 않은데 지나치게 과대평가되는 거 아니냐는 말은 있었다. 그러나 다른 면, 특히 피지컬에서 경쟁자들에 비해 확실히 우위에 서 있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경력이 쌓이면서 이를 장점으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인 덕에 크게 논란이 되지는 못했다.[46] 차범근이 찍은 유제품 CF에 등장한 적이 있다. 이때부터 몸싸움의 귀재였다. 흠좀무[47] 하지만 뒤집어 보면 저런 개그가 계속 나오는 것도 차두리의 피지컬이 그만큼 높고, 또 차두리의 활동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저런 개그가 계속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48] 공교롭게도 이날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10 추가정보 및 홀로렌즈의 공개 이벤트가 있던 날이었다.[49] 독일인인 슈틸리케야 말 할 것도 없고 본프레레는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절 차두리는 꼭 한 번씩은 놀랄 만한 명장면을 뽑아낸다. 게다가 한일 월드컵 당시의 감독이었던 히딩크도 네덜란드인이지만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사실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와 비슷한 점이 많고 언어학적으로도 가까워서 서로 배우기 수월한 편이다. 네덜란드의 상인 기질도 있고 그래서).[50] 차세찌에서 턱살을 빼고 눈썹을 가늘게하고 머리를 빡빡이로 해보자. 그야말로 붕어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