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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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드래곤즈 2018 시즌 스쿼드

감독대행 김인완 · 코치 김효일 · 박남열 · 골키퍼 코치 이해준 · 피지컬 코치 이거성

1 장대희 · 2 최효진 · 3 가솔현 · 5 도나치 · 6 김선우 · 8 유고비치 · 9 하태균 · 10 마쎄도 · 11 완델손
12 신찬우 · 13 이슬찬 · 14 김영욱 · 15 이경렬 · 16 한찬희 · 17 이지남 · 18 김경민 · 19 허용준 · 20 이호승 · 21 박광일
22 최재현 · 23 양준아 · 24 김경재 · 25 박대한 · 26 한승욱 · 27 이유현 · 29 한창우 · 30 윤동민 · 31 박대한
32 최익진 · 33 신진하 · 34 백승현 · 35 전지현 · 38 허재원 · 98 이상헌

* 이 표는 간소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타 팀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 전남 드래곤즈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를 수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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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드래곤즈 No. 2

최효진(崔孝鎭 / Choi Hyo-Jin)

생년월일

1983년 8월 18일 (35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신체 조건

172cm, 71kg

포지션

우측 풀백, 윙백, 미드필더

소속팀

인천 유나이티드 (2005~2006)
포항 스틸러스 (2007~2009)
FC 서울 (2010~2014)
상주 상무 피닉스 (2011~2012, 군 복무)
전남 드래곤즈 (2015~ )

국가대표

18경기 1골

종교

불교



200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에두

MF
김형범

MF
조원희

MF
기성용

MF
이청용

DF
아디

DF
마토

DF
박동혁

DF
최효진

GK
이운재

200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닐손

MF
최태욱

MF
기성용

MF
김정우

MF
에닝요

DF
김상식

DF
김형일

DF
황재원

DF
최효진

GK
신화용

201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은중

FW
데얀

MF
몰리나

MF
윤빛가람

MF
구자철

MF
에닝요

DF
홍정호

DF
아디

DF
사샤

DF
최효진

GK
김용대


1. 개요2. 선수 경력3. 국가대표4. 플레이 스타일

1. 개요[편집]

한국의 축구선수. 연희초등학교, 중동중학교, 중동고등학교, 아주대학교를 거쳤다. 대학때까지는 공격수로 뛰었고, 프로 데뷔후 오른쪽 미드필더로서 활약하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수비수로 정착했다. 주 포지션은 측면 수비수지만 공미, 오른쪽 미드필더, 공격수도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

2. 선수 경력[편집]

2.1. 인천 유나이티드[편집]

중동고-아주대를 거친 측면 자원으로, 2005 시즌을 앞두고 신인 계약을 통해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입단 직후 곧바로 당시 마땅한 적임자가 부족했던 우측 윙백 포지션을 소화할 주전으로 낙점되어 주전으로 기용되었고,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인천은 2005 시즌에 좌 전재호 - 우 최효진이라는 막강한 윙백 라인을 가동했고, 시즌 중반에는 김치우까지 팀에 복귀하였다. 그 외 이준영도 윙백이 가능했고, 장우창도 있었으며 상황에 따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한 이정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꿋꿋이 주전 자리를 지켰고, 이듬해에는 공격적 재능이 더욱 만개하며 인천의 핵심으로 평가받았다.

2.2. 포항 스틸러스[편집]

인천에서 2년간 70경기를 소화하며 팬들의 애정을 받던 최효진이었지만, 인천 준우승의 주역들이 하나 하나 팀을 떠나는 와중에 최효진에게도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특히 그를 눈여겨 본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은 강력한 요청을 하면서 그를 노렸고, 결국 김태원 + 현금과 트레이드되어 2007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했다. 한편 인천은 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윤주일이근호와 트레이드하여 영입했지만, 결과적으로 김태원도, 윤주일도 완전히 실패하면서 트레이드로 큰 손해를 봤다.

왼쪽의 박원재와 함께 팀의 측면을 책임진 최효진은 2007시즌 팀의 K리그 우승과 FA컵 준우승, 2008 FA컵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파리아스의 팀이 완성되기 이전까지 포항의 가장 강력한 공격루트는 좌원재-우효진을 앞세운 강력한 측면 공격이었다. 2009년에는 더욱 업그레이드 된 팀에서 우측 풀백으로 자리잡으며 팀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며 K리그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08년 FA컵 우승 당시 대회 MVP를 수상했고, 한국프로축구연맹 주관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대한축구협회 주관 최우수선수 부문을 수상했다. 2008, 2009년 2년 연속으로 K리그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2.3. FC 서울[편집]

2010 시즌을 앞두고는 안태은과 유니폼을 바꿔 FC 서울로 이적하였다. 기존의 오른쪽 풀백이었던 이종민의 잦은 부상, 최원권의 입대, 안태은의 (부정적인 의미로)미칠듯한 수비때문에 애를 먹던 서울은 최효진의 합류로 현영민-김진규-아디(or 박용호)-최효진으로 이어지는 리그 최강의 포백 라인을 구축할 수 있었다.

아시아 챔피언까지 해본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이끌었으며 빙가다 감독의 지휘아래 공수에서 균형잡힌 활약으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2010시즌 성적은 컵대회 포함 34경기 3골 4도움.

팀이 K리그 챔피언에 오른 다음날 입대하여 2011시즌은 상주 상무에서 맞게 되었다. 팀 사정상 측면 공격수로 주로 출장하여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12년 9월 전역했다. 12시즌에는 고요한이 주전 라이트 백이었기에 그의 백업으로 잔여 시즌을 마쳤다. 차두리가 영입된 13시즌부터는 차두리의 백업 수비수로 뛰었다. 차두리보다 수비력은 좋지만 피지컬과 공격력은 많이 떨어져서 좀 처럼 치고올라가지 못했다. 14시즌 서울이 3백을 도입하면서 가장 자신있는 포지션인 오른쪽 윙백으로 뛰는가 싶었으나 차두리가 오른쪽 윙백으로도 최효진을 가볍게 앞지르고 주전으로 뛰었다. 좀 더 전진해서 윙으로 뛰자니 역시 차두리에 밀린 고요한이 있어 어려웠다.

2.4. 전남 드래곤즈[편집]

결국 14시즌 종료 후 주전으로 뛸 만한 팀을 찾아나섰고 전남 드래곤즈에 둥지를 틀었다. 계약기간은 2016년까지다.#

전남에서 초기에는 현영민과 함께 좌우측을 책임지며 베테랑 수비 라인을 형성했다. 그리고 클래스가 있는 선수들이라서 꽤 좋은 모습을 한동안 보여주었지만, 현영민의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좌측에서는 이슬찬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는 상황에서도 최효진은 계속 자리를 유지했지만, 최효진도 나이를 점차 속이기는 힘들었는지 노쇠화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에 전남은 이슬찬을 우측에 활용하기도 했고, 2017 시즌을 앞두고는 박대한을 영입한 데 이어 이유현까지 프로에 콜업하여 다양한 대비를 시도했다. 2017년에는 박대한도 팀에 완전히 적응을 못하고 이유현도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최효진이 계속 기용됐지만, 2018년에 유상철 감독이 부임한 이후로는 상기한 두 선수가 중용되면서 자리를 자연스레 내주었다. 8월 26일 포항과의 경기에 출전, 팀의 3-2 대역전승에 기여했다.

3. 국가대표[편집]

2008년 6월 14일,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오범석과 함께 2000년대 후반 리그 최고의 라이트 백으로 꼽혔기에 국대에서도 중요받을 수 있을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른쪽도 소화할 수 있는 이영표와 막강한 피지컬을 가진 차두리, 수비력에서 좀 더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오범석에 가려 자주 출장하지 못했다.

전성기를 구가할때 맞이한 남아공 월드컵때도 유럽, 아프리카의 막강한 피지컬에 맞설수 있는 차두리가 한 자리를 차지한 상태에서 오범석과 경합을 벌였으나 밀렸다. 이후 플랫3에 좌우 윙백에게 공수에서 엄청난 활동량을 요구하는 조광래가 대표팀 감독시절을 맡았을때 잠깐 발탁 되었으나 이후로 국대와는 인연이 없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공격수 출신으로 전성기였던 07~10년에는 K리그 측면 수비수 통틀어 독보적인 공격력을 뽑냈다. 빠른 발에 체력이 좋아 중앙과 측면을 바지런히 오가며 시원시원한 돌파력을 보여줬고 좁은 공간에서 다수의 수비수와 벌이는 경합 능력과 동료 선수를 활용하는 연계 플레이도 우수했다.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뉴캐슬 제츠전에선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단점이라면 가끔씩 공격본능을 주체 못해 상대팀에게 엄청난 뒷공간을 내주다는 점과 전성기에도 유럽이나 남미의 대표급 공격수들과 겨루기에는 피지컬이 많이 떨어졌다는 점. 공수불균형은 꾸준한 경험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지만 피지컬은 시간 지난다고 극복할 수 있는게 아니어서 허정무호와 FC 서울에서 차두리에게 밀려나는 원인이 되었다.

수비 불안이나 뒷공간 문제 등을 보면 포항에서 가장 잘나가던 시절 포지션이던 3백 시스템에서의 오른쪽 윙백이 가장 적성에 맞아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