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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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히딩크호 이후 대한민국 축구의 두 번째 최전성기
2002년 골든 멤버가 뛰었던 마지막 전성기[1]

1. 개요2. 팀 스타일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3.1. 국가대표 엔트리3.2. 결과 및 평가
4. 허정무호 이후

1. 개요[편집]

핌 베어벡 감독은 바레인 쇼크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 형식으로 대표팀 감독직을 그만두게 된다. 허정무감독이 핌 베어벡 뒤를 이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으며, 그는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활약했다. 사실 허정무차범근 감독 이후 감독직을 수행한 사람들에 비해서 특이한 점은, 이미 국가대표팀 감독을 두 번[2] 역임한 적이 있다는 것. 따라서 2007년의 감독직 취임은 그의 3번째 국가대표 감독직 취임이었다.

2. 팀 스타일[편집]

전형적인 한국축구 스타일에서 약간의 변화를 꾀했다 라고 평할 수 있다.

취임 이후부터 퇴임하기까지 플랫 포백 수비라인에 왕성한 활동량을 가진 윙어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놓아 강한 압박이 가능하게 했고, 볼란치에 좌우로 롱패스 및 전진패스를 배급해 줄 수 있는 미드필더를 기용했으며, 공미는 윙어와 스위칭, 중앙 공격수는 측면으로 빠지며 윙어가 가운데로 침투할 수 있게 해서 한국의 특징인 빠르고 강한 윙어라는 특징을 최대한 살렸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 내의 경기에선 4-4-2를 사용했는데 그럴 경우에는 활동량이 많고 돌파력이 좋은 공격수와 침투와 공간 창출이 좋은 공격수를 배치 한 후 위에 기술한대로 윙어 및 2선 침투를 노렸다.

수비라인의 경우는 스토퍼형 수비수 한명과 커맨더형 수비수를 한명씩 배치해서 수비시 수비형 미드필더와 윙어가 내려와 수비를 돕고 커맨더형 수비수는 커버링을 한다.

원하는 선수를 찾기 위해 수많은 유망주를 발굴해냈고 성장시켰다.

최종형태는 골키퍼에 정성룡, 커맨더형에는 한국 최고의 커맨더 조용형, 스토퍼는 이정수, 양 풀백은 이영표와 차두리 오범석, 활동량 많은 만능 수비형 미드필더는 김남일이 맡았다가 김정우, 배급형은 김두현에서 기성용으로, 윙어 왼쪽과 공미는 박지성과 염기훈, 오른쪽은 이청용, 공격수는 공간창출&침투형 박주영이 맡았고, 4-4-2를 쓸적에는 활동량과 돌파력을 갖춘 이근호가 파트너로 나섰다.

이러한 포워드 활용양상은 이동국과 유병수가 소집이 잘 되지 않게되는 원인이 되었다. 유병수는 국대와 인연이 아주 멀어졌고 월드컵 엔트리에 승선한 이동국도 끝까지 중용받진 못했다.

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편집]

3.1. 국가대표 엔트리[편집]

2010년 6월 1일 최종 결정된 23명의 엔트리는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각 포지션의 인원 수. 가나다순 정렬하였음. 굵은 글씨2006 FIFA 월드컵 독일 당시 출전 선수.

3.2. 결과 및 평가[편집]

2010년 3월 기준, 무엇보다 가열찬 논쟁거리는 역시 이동국 떡밥. 4-4-2 포메이션에서 양박쌍용의 자리가 분명한 반면[3] 박주영과 콤비를 이룰 나머지 한 명의 스트라이커의 기량이 불확실한 탓에, 관련 논쟁이 끊이질 않는 상황이다.

허정무호에서 고질적으로 지적되어 온 수비진의 안정성 문제도 큰 떡밥이다. '조강 라인'이라 줄여 부르는 조용형, 강민수의 기량이 팬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강민수는 대표팀 선발에서 탈락하였으나 곽태휘의 부상으로 어부지리로 대표팀에 다시 뽑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여 스페인과 맞설 정도였다.

조별예선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오염콤비가 등장했다. OME의 경기력을 보여준 오범석의 '오'와 염기훈의 '염'을 한 글자씩 따서 만들어진 것. 물론 마녀사냥에 가까운 결과론[4]이지만, 덕분에 네티즌들에게 평생 까임권을 받았다.

하지만 뒤이어 나타난 감독들이 대표팀을 이끌면서 드러낸 대표팀의 문제점과 경기력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 이후로는 차라리 이게 낫다라는 여론이 올라오고 있으며 월드컵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2010년 당시 자신들의 쓸데없이 높았던 눈높이를 반성하는 축구팬들이 양산되고 있다. 2002년 멤버가 모두 은퇴한 이후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1승도 하기 어려웠던 90년대 수준으로 회귀했다. 사실 90년대보다 더 못한다. 아무것도 없을 때야 그럴려니 하며 정신위로를 할 수나 있지만 지금은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도 못하고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사실 최강희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나듯이 국내파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란 건 매우 힘든일이다. 일반 축구팀 감독과는 다르게 상시로 있을 사람들은 코치같은 간부진이외에는 없다. 자기가 뭘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잊을만 할 때 쯤 모여서 몇 일있지도 않고 그냥 귀가해버린다. 간부진들만 데리고 백번 회의하며 연구해봤자그것을 실행할 사람과 시간이 없으면 뭘 할 게 없다. 실제 역사에서도 굳이 어디라고 말 할 것까진 없지만 간부진 일부만 있고 실병력이 거의 없어서 군대 간판만 달고 연명하는수준이던 어느 군사단체가 있었다.
그나마 전성기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세계처럼 세계 대회 시작하기 3일전에 소집해서 대회에 나가도 압살하고 다니는 수준이면 상관없겠지만 축구는 그 수준은 절대 아니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것이 A대표팀의 팀컬러라는건 소집 후 많아야 두 경기 뛰는 A대표팀에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해당 국가의 리그와 교육시스템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다. 당장 유소년 시절부터 배워왔던 기본적인 플레이 방식이 성인이 되어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한들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유럽 월드클래스급 선수들도 팀 이적 후에 소속팀의 플레이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 이러는 판국이니 억지로 클럽팀에서 하듯이 자기식대로 바꿀려고 하다가 말아먹기 싫어서라도 자기하고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끌고 나갈 수 밖에 없다.

대회가 가시화 되어서 장기 합숙 훈련을 위해 선수들이 소집이 되어도 문제는 있다. 선수단과 팀을 장악하고 조율하는데도 바쁜데 평가전이니 예선전이니 하는 경기라고 쓰고 단두대 매치라고 읽는 경기들이다. 지면 언론이든, 축협이던 압박이 장난아니게 내려온다. 국내파 감독들은 선수를 테스트하고 미래를 보고 가야 하는 평가전에서도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다. 이런데 무슨 인재발굴과 양성과 영입을, 감독의 생각이 들어간 팀을 만든다는 것인가? 한 경기 못 하면 저 감독 자르라고 하는 판국인데. 한 경기에 연연할 수 밖에 없다. 과거 독일군에서 나왔듯이 아무리 계획을 잘 짜도접적한 그 순간부터 그 계획대로 갈 수 없고, 테스트이므로 그것이 좋은 면보다는 오류가 더 많이 나오기 십상인데 그러면 언론들과 축구계 내외의 정치질 앞에서 인민재판을 받게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는 커녕 당장 자기 목을 지키기위해서 예선도 아닌 평가전에서 에이스 선수를 90분 내내 뛰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비겁해지지 않고, 언론에게 굴복하지 않고, 정치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아도 되는 건 오직 외국인 감독들이다. 소신 것 '니들은 떠들어라. 나는 내 길 간다'는 마인드로 하다가 잘리면 자기 변호사 데려와서 남은 계약 기간에 대한 임금을 받아서 떠나면 되니까.
가뜩이나 레벨이 낮은 상황에서 레벨업만 하기도 바쁜데 정치질과 거래를 본업보다 우선시하고 살아야 하는 하루살이들이 국가대표 감독들이다. 자신이 아무리 절대고수라도 실력을 내지 못하게 봉인당한 상태에서 살아남는 것부터가 문제인.

실제로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치룬 이후에도 잔존한 멤버들과 구자철, 손흥민, 곽태휘 등까지 가세한 엔트리로 아시안 컵 4강에 그쳐 박지성의 국가대표 은퇴 경기를 망치고, 부상으로 신음하던 이청용을 굳이 친선 경기에 무리하게 차출하는 삽질을 하는 등[5] 선수 컨디션 관리 면에서도 엉망인 모습을 보여줬으며, 월드컵 최종예선도 아닌 3차 예선에서 월드컵 탈락 위기를 맞이했던 조광래나 폼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네임벨류가 떨어지는 팀에서 뛰거나, 팀에서 출전을 아예 못하는 선수들을 오로지 자신의 원패턴적인 전술에 맞고 자기와 올림픽 등에서 같이 활동했다는것 때문에 무조건 기용하고 정작 자기라인이 아니면 제대로 실력을 증명받은 선수들이라도 홀대한 홍명보를 보자. 적어도 허정무는 팀 케미스트리를 박살내거나 하는 등의 짓은 하지 않았다. 대회 기간 중 음주로 물의를 빚은 이운재의 징계를 풀어달라고 한 문제는 있지만, 이건 팀 케미스트리보다는 스포츠맨십과 도덕성에 관련된 사안.

4. 허정무호 이후[편집]

허정무와 허정무 이후 국대를 맡은 감독들의 가장 큰 차이는 허정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평가가 좋아진 감독이었다는 것이다. 홍명보를 제외하고 조광래, 최강희, 울리 슈틸리케 모두 감독 취임 초반에는 평가가 긍정적이었다. 일종의 신장개업 효과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공통적으로 감독직 재임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부정적인 평가가 많아졌고 또 실제로 경기력도 점차 나빠지는 흐름을 드러냈다. 반면 허정무는 그 반대였다. 감독직 취임 초기에 북한요르단 상대로 고전하는 등 헤메다가 2008년 하반기에 플랫 4-4-2로 전환한 것이 대성공을 거두며 반등을 시작해 경기력이 점점 좋아졌고 마침내 2010 월드컵에서 정점을 찍었다.

대한축구협회에서는 허정무에게 감독직 재계약을 제의했다. 그러나 허정무는 재계약을 고사했다. 그리고 그 이후 국가대표팀은 이후 최소 7년을 이어지는 기나긴 침체로 이어지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조광래호, 최강희호, 홍명보호, 슈틸리케호, 신태용호 문서로.

[1] 2002년 멤버가 모두 은퇴한 이후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부진했지만 독일잡았다. [2] 사실 시기상으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단 한 번뿐이다. 다만 성인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모두 맡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감독직을 두 번 수행한게 되는 셈.[3] 허정무 감독은 아시아권에선 442를 썼지만, 막상 월드 클래스 팀을 상대로는 변형 451을 썼다. 월드컵 무대에선 제로톱에 가까운 형태였다. 허정무=442는 무식한 언론의 숫자놀음에 불과하다.[4] 차두리 역시 다음 경기에서 오범석 뺨치는 저질 수비를 선보였고, 염기훈은 네티즌의 비난과 달리 오히려 축구 전문가들 사이에선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염기훈이 공간을 만들지 않았으면 골도 없었을 것이고 수비가담을 활발히하지 않았다면 활동량 적은 기성용쪽이 털렸을것이다.[5] 결국 부상 중인 선수를 불러놓고 쓰지도 못 해 선수의 컨디션만 망치는 결과가 되었다. 애초에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태이긴 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