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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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시자

석가모니

시작 시기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4세기. 고대 인도

규모

약 4억 8,000만 명 ~ 15억 명[1][2]

언어별
명칭

한국어

불교

한자

佛敎

일본어

仏教

중국어

佛教

영어

Buddhism

산스크리트어

बौद्धदर्शनम्[3]

태국어

ศาสนาพุทธ

베트남어

Phật giáo

아랍어

البوذية

에스페란토

Budaismo


1. 개요2. 초기 불교
2.1. 부처님2.2. 부처가 설한 법(다르마)
3. 불교의 핵심적 특징4. 타 종교 간의 관계
4.1. 힌두교와의 관계4.2. 도교와의 관계4.3. 유교와의 관계4.4. 한국 토속신앙과의 관계4.5. 신토와의 관계4.6. 기독교와의 관계4.7. 이슬람과의 관계4.8. 원불교와의 관계
5. 왕즉불 사상6. 대한민국에서의 불교7. 분파8. 불교의 역사9. 관련 용어
9.1. 부처님, 승려 등을 뜻하는 용어9.2. 교리 관련
10. 관련 인물
10.1. 석가모니와 불제자10.2. 고승 및 불교 사상가
11. 부처들과 보살들, 그 외의 신들
11.1. 불·여래11.2. 보살11.3. 명왕11.4. 그 외
12. 불교와 국가13. 불교의 전파14. 종단 목록
14.1. 유관 단체
15. 불교에 영향을 받은 종교와 사상(가)
15.1. 종교15.2. 사상(가)
16. 인물17. 사족1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스스로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라. 스스로를 진리의 등불로 삼아, 그 진리에 의지해 살아가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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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마챠크라[5]


/ Buddhism

불교는 석가모니가 깨달은 도를 배우고 깨우치는 수행 단체이며 교주를 모시고 믿는 종교가 아닌 수행하는 수행지침이다.[6] 또한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진리)을 따라 수행하는 공동체이다.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와 함께 세계의 대표적인 4대 종교의 하나. 세계적으로 약 4억 8천만 명에서 5억 3,500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15억명으로 높게잡기도한다. [7]의 신도가 있으며, 종교라는 한자어를 맨 처음 만들어낸 종교이기도 하다. 유교, 도교, 경교 등이 모두 부차적인 가르침이고 불교가 으뜸 가는(宗) 가르침(敎)으로 표현한 데서 시작되었다.

다른 종교들(기독교,이슬람)의 신앙을 가치로 두는 모습을 종교의 기준으로 알고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교의 철학적 가치에 중점으로 삼는 이질적인 면모속에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이 올수있으나, 둘 다 으뜸 가는(宗) 가르침(敎), 즉 종교(宗敎)이니 딱히 틀린 번역은 아니다.

현재의 불교는 크게 북방의 대승불교와 남방의 상좌부 불교(테라바다)로 구분된다. 핵심적인 교리는 차이가 없지만, 계율이나 수행법, 사상면에서 차이가 있다. 대승불교는 인도 북부 지역과 한자 문화권에 주로 전래되었고 남방의 상좌부 불교(테라바다)는 부파 불교의 분별설부를 계승한 것으로 주로 동남아시아에 전해졌다. 미국이나 유럽에 전해진 불교는 여러 지역에서 전래되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불(佛:불타)은 부처라고도 말하며 뜻은 '깨달은 자', '눈을 뜬 자'라는 뜻이며, 이는 영혼을 볼수있는 영안, 천계를 볼수있는 천안, 지혜로 볼수있는 혜안, 깨달음으로 볼수있는 불안이 있다.

2. 초기 불교[편집]

초기 불교는 원시 불교, 근본 불교라고도 불리며, 석가모니가 살아 있을 때부터 교단에 분열이 일어나기 전까지, 곧 그의 입멸 후 약 100년까지의 불교를 말한다. 분열이 일어난 후에는 부파 불교라고 부른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부파 불교 시대의 '5부 니까야'라고 하는 팔리어 경전으로 전승되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팔리어는 부처 생존 당시에 부처가 직접 사용한 언어와 매우 가까운 방언이다. 이런 붓다의 가르침은 인도의 전통에 따라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약 2세기 뒤에야 문자로 기록되었고 이것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전해진 것이 팔리어 니까야(대장경)이다.

니까야는 5부 니까야로 구성되어 있는데 5부 니까야란 디가니까야, 맛지마니까야, 쌍윳따니까야, 앙굿따라니까야, 쿳다까니까야를 말한다. 니까야는 다양한 나라의 문자로 번역되었는데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초기불전연구원 등에서 한국어로도 번역하고 있으며 다양한 번역자들의 개별 번역본도 존재한다. 인터넷 서점에 '니까야'를 쳐보면 나온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기준 5부 니까야 중 4부 니까야는 번역이 완역 되었고 쿳다까니까야는 《숫타니파타》, 《법구경-담마파다》, 《우다나》, 《이띠붓따까》가 번역이 완역 되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디가, 맛지마, 상윳따, 앙굿따라 4부 니까야가 번역이 완료되었다. 참고로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의 전재성 박사의 번역으로 예전부터 한국에 널리 알려진 《숫타니파타》와 《법구경-담마파다》는 5부 니까야 중에서도 초기의 불경에 속한다.

만약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불교를 이해하고 싶다면, 석가모니의 전기를 제일 먼저 읽고, 학자나 승려들이 쓴 《불교를 알려줄게》 식의 2차, 3차 저작을 읽어 석가모니의 일생과 불교에 대해 대략적인 개괄을 먼저 잡은 뒤, 위에서 언급한 주요 불경을 읽어 구체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곧바로 불경을 읽어보았자 뭔 소리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2.1. 부처님[편집]

부처, 혹은 '붓다(Buddha:佛)'는 "깨달은 자", "눈을 뜬 자"라는 뜻이다.

참고로 한자 佛은 이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자다. 붓다에 가까운 발음인 弗에 '사람 인' 변을 더했다. 원래의 한국 한자음은 '붇'이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불'로 음운 변화했다. 보통 부처님이라고 하면 석가모니(Gautama Buddha)를 가리킨다. 그 외에도 불교에는 많은 부처님이 존재한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든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2.2. 부처가 설한 법(다르마)[편집]

일체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착한 공덕을 힘껏 행하며
자기의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 담마빠다(법구경), 14-183


부처의 가르침을 불법(佛法)이라 한다. 석가모니는 진리(다르마)를 최상의 지혜로 통찰한 후, 우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 꼭 알아야 할 것들만을 정리해서 개념화, 언어화 해서 부처의 가르침, 불법(다르마)으로 전수하였다.

다르마의 원류는 부처 이전부터의 '바른 의무나 덕성스러운 길' 의 뜻을 갖는 인도의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용어다. 다르마는 인도철학을 통하여 우주의 진리나 최상의 실체 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불교에서 법(다르마)은 그 뜻이 매우 다양하며, 교법, 최고의 진리, 법칙, 도리, 존재, 실체, 또는 모든 존재(일체법)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르마의 넓은 의미로는 바른 행동, 도덕적 가르침, 우주적인 법칙, 교리, 상태, 도덕적 행위, 현상, 정의, 대상, 개념, 진리, 바른길, 교훈, 성질, 조건, 요소, 본성 등 다양하다. 부처는 이런 다양한 훌륭한 뜻을 지닌 용어인 다르마를 채용하여 본인의 가르침을 표현할 때 '다르마'라고 하였다. 그래서 좁은 의미로는 '부처의 가르침' 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함축적 의미는 이런 다양한 훌륭한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처가 '사람이 괴로움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만 핵심적으로 요약해서, 명확한 언어로 전달한 것'이 부처의 가르침, 불법(다르마)이다. 괴로움을 영원히 종식시키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알려주지 않았다. 이렇게 핵심만 요약해서 전달한 불법 중의 핵심이 4가지 성스러운 '진리', 사성제(四聖諦). 부처가 최초로 법을 설한 초전법륜의 내용도 사성제의 내용이다.

3. 불교의 핵심적 특징[편집]

다른 여러 종교와 비교하여 불교가 지니는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지혜의 내용은 여러 가지로 발전하는데, 일체를 종(縱)으로 절단하는 시간적 원리인 '무상(無常)'과, 일체를 횡(橫)으로 연결하는 공간적 원리인 '연기(緣起)'가 중심에 있어, 이것은 후에 '공(空)'으로 표현된다.

  • 변하고 실체가 없는 허상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모든 번뇌를 야기한다고 본다. 이를 없애기 위한 수행, 참선이 강조되며 허상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直視)하는 경향이 강하다.

  • 석가모니가 절대(絶對)·무한(無限) 및 각성과 구제의 근거가 되고 있으나 정복자나 창조자와 같은 자세는 취하지 않는다.

  • 사성제인 고, 집, 멸, 도(苦, 集, 滅, 道) 4가지 진리를 받아들인다.

  • 팔정도의 수행방법이 있다. 팔정도는 올바른 견해, 올바른 의도, 올바른 말,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 올바른 깨어있음, 올바른 집중의 8가지 수행을 뜻한다.

  • 바라밀 수행방법이 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신, 선정, 반야의 6바라밀이 있고 방편, 원, 역, 지의 4가지 바라밀을 추가한 10바라밀이 있다. 6바라밀 중 보시는 베푸는 것, 지계는 계율을 지키는 것, 인욕은 고난을 참고 이겨 나가는 것, 정진은 노력하는 것, 선정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집중으로 팔정도의 올바른 집중(정정)에 해당된다. 마지막 반야바라밀은 진실하고 올바른 지혜로 나머지 다섯 바라밀을 성립시키는 근거로서 중요하게 여긴다. 선정 바라밀은 반야 바라밀이 발현되게 하는 원인으로 여긴다. 대승 불교에서 중요한 수행방법이다.

  • ‘지혜(智慧)'와 '자비(慈悲)'로 대표되며, 특히 자비는 무한이며 증오(憎惡)나 원한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일반적으로 광신(狂信)을 배척하고 관용(寬容)인 동시에 일체의 평등을 관철하고자 한다. 자비의 구체적 실천으로 보시를 강조한다.

  • 조용하고 편안하며 흔들리지 않는 각성(覺性:解脫)을 이상의 경지(境地)로 삼아 이를 열반(涅槃)’이라 한다. 그 교의(敎義)는 석가모니의 정각(正覺)에 기초를 둔다. 그러나 8만 4,000의 법문(法門)이라 일컫듯이 오랜 역사 동안에 교의의 내용은 여러 형태로 갈라져 매우 복잡한 다양성을 띠게 되었다.

  • 힌두교의 일부 종파나 형제뻘인 자이나교와 달리, 불교는 고행을 권하지 않는다. 일단 개조인 석가모니부터가 극단적인 단식과 걸행 등의 고행을 그만둔 다음 심신의 지나친 이완과 긴장 모두를 물리친 뒤 보리수 아래 앉아 깨달음을 이뤘다. 불교는 몸을 해치는 절식(絕食)이나 각종 무모한 고행을 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행동이야말로 깨달음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 여타 종교에 비해 저승과 하늘이 다양하다. 천국지옥만 언급된 개신교나 거기에 더해 연옥의 개념이 있는 가톨릭과는 다르게 불교에서는 천국과 지옥 및 그 외의 장소들까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8]. 불교에는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까지 수많은 하늘을 정밀하게 구분하고 있다. 지옥은 불지옥 8종류와 얼음지옥 8종류에, 재판받는 길목마다 지옥들이 존재한다. 때문에 가장 지옥의 종류가 많은 종교이기도 하다. 또한 동물로 태어나는 환생을 지옥에 가긴 애매한 죄를 가진 영혼이 가는 형벌로 분류해 놓았다. 그리고 축생계보다 죄가 무겁지만, 지옥을 갈 정도는 아닌 정도의 죄를 지은 영혼은, 불교 고유의 세계인 아귀도나 아수라 등을 간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석가모니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따위를 고민치 말고, 지금 당장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에 집중하여 현실을 살라.'며 저승에 대해 비중을 두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말라고 가르쳤다. 이는 현실을 직시하는 경향이 강한 불교의 색감이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불교에서 저승을 자세히 설명해놓은 것은 불교의 중심 주제인 '인과응보'의 평등성을 묘사하기 위함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죄를 지었다면 그 죄에 걸맞은 벌을 받아야 하며, 현세에서 죄를 갚지 못했다면 환생&지옥에서 갚아나간다는 것이다.

4. 타 종교 간의 관계[편집]

삼명(三明)을 갖춘 바라문으로서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범천(梵天)을 본 자가 있는가?
만일 본 일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범천을 믿고 받든다면,
마치 어떤 사람이 한 여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의 얼굴을 본 일도 없고 이름도 거처도 모른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요.


- 잡아함 권16 삼명경


불교는 타 종교의 신에게 무척 관대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석가모니는 그의 가르침에서 당시 인도의 다양한 종교들과 철학 학파들을 모두 외도라 하며 철학적으로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또한 서구적 관념에서는 절대 신(神) 혹은 인도적 관점에서는 브라흐마 중심의 종교에 대해서 아함경을 비롯해 범망경 등에서 그런 종교의 기원이 되는 '존재와 세계가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문들'의 예를 들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불교가 타종교의 교리에 대해 관대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이 지혜와 자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 자비로 타 종교는 물론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운 것이라고 봐야한다.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교는 이미 처음부터 그리고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철학적으로 탄탄한 바탕을 자생적으로 갖추었다. 태생적으로 인도의 여러 사유들과 교류했으며, 대승불교의 경우 중국 철학과도 교류하며 발전했다.[9] 이러한 철학적 이미지 때문에 불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서양인들은 불교를 하나의 철학으로 분류하기도 한다.[10]

그런 이유로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상당히 유화적인 게 특징이다. 그러나 평신도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이들이 석가모니 중심의 다신교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되는 면이 없지는 않다. 냉정히 말해 평신도들의 기복적인 신앙 모습은,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불자가 아니면 다신교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럴 때는 이 부처님/보살에게 빌고, 저럴 때는 저런 부처/보살에게 빌고. 다만 이를 크게 탓하기도 뭐한 것이, 불교의 기본은 자력으로 스스로를 구제하는 자력 구원이 중심이긴 하지만 초기부터 이미 부처/보살의 가피력으로 구원받는 타력 구원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11] 또한 부처에게 개인적인 복을 빌다가 불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제대로 된 교리를 알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자비를 모토로 삼는 종교라고는 하나, 역사적으로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타 종교에게 무척 관대한 편이라곤 하지만 실은 본지수적. 즉,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다른 종교의 창시자나 성인으로 환생하거나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여 불교 외의 모든 종교를 불교의 열화상태, 혹은 하위호환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금의 힌두교를 보면 알겠지만 다신교라고 타 종교나 외국 선진 문물에 융화적일 줄 생각하면 경솔하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타문화와 적응은 굉장한 수준. 이런 면은 현대 문명과 실시간으로 치고 박으면서 가장 잘 적응한 모습을 보여준 그리스도교를 능가할 정도. 메이저 종교 중 폭력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적은, 몇 되지 않는 경우 중의 하나다.

물론 역사적으로 불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폭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도마우리아 왕조쿠샨 왕조 같은 경우엔,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주변국들은 정벌하고 먼 나라에서는 고승들을 파견해 전도하는 방법을 썼다. 한반도의 경우, 고려 시대 무신정권 시절 교종 계열 종파 승려들이 무신 정권에 대항해 난을 일으키기도 했고, 조선이 건국된 후 일부 고위 승려들이 하급 승려들을 모아서 조선 정부를 타도하고 불교국가의 부흥을 꾀하고자 당취(黨聚)라는 조직을 만들어, 계율을 어겨 타락한 승려를 응징함과 동시에, 주변 절들과 마을에 약탈과 방화, 살인을 벌이기도 했다(여기에서는 땡초를 참고)[12].

일본의 경우, 센코쿠 시대엔 말이 승병이지 무사들이 승려인 척했던 게 태반인 소헤이처럼 전쟁의 도구로 쓰였다. 그리고 도쿠가와 막부 시기에 불교 측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부처극락 야소지옥"을 외치며 일본 내 가톨릭 신자들을 박해한 기록도 있고(...) 한편 동남아 상좌부 불교에서는 극단주의가 만연해지고 있는 실상이다. 참고

동아시아 불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처음 불교가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도입될 당시 부처님=신이라는 관념하에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토속신앙에서 신과 부처를 혼용/동일시하거나, 삼국유사의 불교 도입 당시 신라 귀족들이나 일본 사서에서 모노노베 씨의 불보살들을 외국의 신으로 부르고, 불교 도입에 찬성한 소가 씨 역시 외국의 신이라는 주장 자체에는 반발하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이는 동아시아에서 유달리 두드려져서 그렇지, 동남아권 남방 불교나 인도 본토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난 현상인 것은 사실이다. 미얀마 같은 경우에도 토속신앙인 낫(정령)이 불교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인도 본토에서도 인도의 토속신앙의 신들을 부처/보살, 명왕, 신중, 천인 등의 표현을 붙여서 흡수하기도 했다. 지모신 숭배가 모태가 된 지장보살이나 바라문교의 천신이었던 제석천, 태양신 신앙과 관련있으며 특히 밀교에서 중시하는 대일여래 등이 대표적인 경우.

4.1. 힌두교와의 관계[편집]

힌두교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아 힌두 경전을 보면 불교를 비하하는 대목이 상당히 많다. 흔히 사람들에겐 힌두교에서 비슈누의 화신 중 하나가 붓다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 비슈누가 붓다로 변신해서 악마들을 타락시켜 그들의 힘을 빼앗으려던 것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저 표현은 불법은 정법(正法)이 아니므로 악마들이 불법을 믿게 되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서 힘을 잃게 된다는 논리에서 기인한다. 결국 엄청난 불교 모독이자 불교 신자들을 싸그리 악마로 치부해 버리는 광역도발인 셈이다. 로저 젤라즈니의 소설인 신들의 사회에서도 이러한 관계를 차용한 장면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불교는 브라만교가 힌두교로 진화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승불교의 공세로 브라만교가 대위기를 맞이한 8세기, 인도 최대의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샹카라가 나타나 브라만교에 나가르쥬나의 공 사상을 나름대로 비판적으로 흡수 발전시켜 만든 것이 힌두교 베단타 학파이며 이로 인해 브라만교는 대변혁 힌두교로 전환되었다.[13] 그리고 힌두교는 인도 내에서 최종적으로 불교에 승리하게 되었다.

인도 공화국 헌법의 아버지인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는 불합리한 카스트 제도의 근원이 힌두교에 있다고 보고 50만 명의 불가촉천민들과 합동 개종을 한 적이 있다.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참고.

4.2. 도교와의 관계[편집]


도교와의 관계는 지금이야 별다른 마찰이 없지만 한때 잘 나갔을 때는 역사상으로 엄청나게 치고 받았다.[14] 중국 당나라 시절 도교, 경교와 함께 타 종교 배척, 숙청전이 꽤 화려했다. 당송 시기의 도교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어느 정도 불교를 압도하던 시기가 있지만 그 이후엔 이렇다 할 국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으니 유일하게 비빌 언덕이 민간이라 철저하게 민간신앙으로 파고들어 민간 도교 시대로 접어든다. 지금 와서는 민간 신앙과 도교와 불교가 사이좋게 이리저리 뒤섞여서 구분하기도 힘든 상태다.

노자의 사망이 불분명한 것을 양측에서 이용했는데 이른바 노자화호설이 화두가 되었다. 불교에선 청정법행경이란 위경까지 쓰면서 노자를 가섭존자의 환생이라 주장했고, 도교측에선 불경을 서쪽으로 떠난 노자의 이론이 되돌아온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노자화호설이 불교에서 창작한 것이란 설도 있어서 미묘. 참고로 <불교의 중국 정복>(에릭 쥐르허 저)이란 연구서에서는 노자화호설의 문헌 등장이 불교에서 먼저 나왔다는 점을 들어 불교 측의 창작이라는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아무튼 이 설은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래될 당시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에 호응해 불교에 대한 반감을 낮추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고, 이후 양측에서 계속 잘 써먹다가 결국에는 원나라 당시 도교티베트 불교와의 교리논쟁에서 비판받기도 했었다. 지금도 노자화호설은 중국에서는 널리 퍼져있는 이론이다.

한국에서도 역사적으로 도교와 충돌이 있었다. 고구려연개소문이 옛 귀족세력과 연결된 불교를 억제하기 위해 도교중국에서 수입하다가, 이것이 상당히 갈등을 일으켜서 고구려 멸망의 원인의 되었다는 설도 있다. 다만 이건 도교와 불교의 충돌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정치적인 사건이다. 연개소문영류왕을 쿠데타로 시해한 것은 당시 불교의 왕즉불 사상에 위배되는 행위였기 때문에 수많은 불교도들의 반발이 있어왔다. 그래서 연개소문이 선택한 일종의 사상통제책이 바로 도교의 수입이라는 것. 더욱이 연개소문과 사이가 좋을 리 없는 기존 정치세력들의 종교는 불교와, 불교랑 결합한 상태인 토착신앙이었다. 그런데 도교와의 충돌에 대해서는 고구려 후기부터 고분벽화에서 불교적인 요소가 점차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이기에, 이에 대해서는 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아도 다소 비판적인 주장도 있다.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 명나라 때의 서유기에서는 불교와 도교가 중심적 위치를 반반씩 갖고 있다. 당장 손오공의 스승인 수보리 조사가 불교+도교적인 인물로 나온다. 손오공이 요괴에 홀렸던 왕에게 "삼교(유교까지 합쳐서)를 골고루 신봉하여 도사도 공경하고 스님도 존경하며 유능한 인재를 많이 기르시라"고 훈계하는 장면도 2번 정도 나온다. 이는 동북아시아의 전통적인 삼교론에서 나온 것으로, 당시에는 특별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삼장법사와 함께 서역으로 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도인들은 당나라 시기 도교VS불교의 극한 대립을 반영해서인지 도인이 활개치는 나라에서는 승려들은 부려먹히는 신세인데 사실 그렇게 된 게 요괴들이 도인 행세해서인 경우가 많다.

4.3. 유교와의 관계[편집]


중국 성리학의 성립이 불교 사상과 중국에서의 선(禪)을 유학적으로 정리하며 탄생한 것이었기 때문에 유교와 불교는 동양문화권에서 함께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위의 도교와의 관계 문단에서도 설명했듯, 그다지 큰 반목없이 공존하기도 한 관계다.

이는 불교나 유교, 게다가 도교까지 모두 절대자인 신(神)을 가운데 두는 종교가 아니었으며 심신의 수양을 통해 자아발전을 이루는 면에서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기독교랑 다른 종교가 서로 대립하거나 유대교가 박해받거나 한 걸 보면 확실히 차이가 보인다. 현대의 한학자들은 대게 역사 연구를 통해 불교사와 핵심 사상을 잘 알고 있거나 불교학자들이 유교 및 도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추사 김정희가 유교는 물론 불교에 대해 해박했고 말년에 승려가 되었다든지 혹은 구한말의 경허 선사가 말년에 머리를 기르고 서당을 열어 아이들에게 유학을 가르쳤다고 하는 등 사상적 교류는 늘 있어 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유교와는 역사적으로 사이가 나쁜 편이었다. 특히 고려 왕조 때 국교 격까지 갔었던 것이 유교조선왕조에 들어서 불교를 밀어내고 국교로 지정되면서, 조선왕조 시절 양반들과 호걸 및 관료들이 불교와 승려를 탄압하고 천시하는 등 이래저래 유교 때문에 수모를 겪었다. 게다가 신분제도에 있어서도 승려는 하층민 계통인 천민에 속하기 때문에 조선왕조 시절에는 유림과 양반들로부터 천대와 멸시를 당해왔고 일부 승려들은 노비, 백정, 평민들과 함께 궁궐 복원공사 등에도 동원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얼마나 숭유억불 사상이 조선을 지배했냐면, 이런 일도 있었다. 박지원열하일기청나라에 가서 건륭제로부터 불상을 선물로 받은 기록이 나온다. 박지원은 유학자였기에 청나라 저잣거리에다 그 불상을 비싼 가격에 팔아 불상을 판 돈이라고 자신이 가지지 않고는 짐꾼들에게 술이라도 사먹으라고 줬으나 짐꾼들마저 불상을 판 돈이라 받기를 거부하여 마부에게 주었는데 마부조차 받기를 거부했다.

다만 그래도 아예 불교를 뿌리 뽑거나 철폐해버리려는 정도는 아니었다. 비록 가문의 망신이라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선비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것도 가능은 했으며, 조선 말 까지도 전국의 절들은 계속 건재했다. 당장 태조인 이성계도 말년엔 불교에 심취하기도 했었다. 위의 김정희나 경허 선사의 일화도 조선 후기, 그리고 조선 이후의 일이다.

중국 후한 시대에 불교가 들어올 때만 해도 중국인들은 오랑캐의 가르침이라면서 불교 유입에 민감했다. 한대에 융성했던 유교 문화는 현실적, 윤리적인 도덕 철학을 강조했는데 그 때문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중국인들은 불교 이론을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진남북조시대, 오호십육국시대를 거치며 중국 대륙이 쑥대밭이 되는 과정에서 불교가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그 이유는 불교의 사상이 민중의 정신적인 귀의처가 되어주었고, 윤회론에 입각한 내세관, 방대한 경전체계, 인도 의술에 능통한 승려들의 의약구제, 위정자들에게 부담이 없는 구세이념[15], 전술 지식을 알려주는 신승들의 전술적 가치, 한족 중심적이었던 유교와는 달리 호(胡)족들에게 친화적이었던 이방 이념들이 당시 중국인들의 필요조건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4.4. 한국 토속신앙과의 관계[편집]

이미 화엄경에도 주성신(主城神), 주지신(主地神), 주산신(主山神), 주림신(主林神), 주하신(主河神), 주해신(主海神), 주수신(主水神), 주화신(主火神), 주풍신(主風神), 주공신(主空神) 등 자연의 요소들이 가진 특성을 신격화 하고 있으며 이들의 수행계위를 밝히고 있다. 즉 불교는 이미 그 대상이 한국이든 미국이든 자연 및 만물과 분리되지 않은 인간의 삶을 다루고 있기에 이를테면 무속에서 숭앙하는 '관운장' 같은 만들어진 인격신이 아닌 산신 등 토속 신앙의 신들을 중요시 한다. 특히 우리나라 전래의 북두칠성 사상의 주신은 인간의 수명을 주관하는 의미에서 단순한 신급이 아닌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아미타불과 동급의 지위의 칠성불이라 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석가모니도 보리수 아래에서 항마촉지인의 자세로 땅을 손으로 가르키며 대지의 여신이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한다고 했다.

한국은 불교 도입에 상당히 온건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토속신앙을 한꺼번에 묶을 필요가 있던 지배층들은 불교 수용에 긍정적이었고, 덕분에 유달리 한국에서는 불교와 토속신앙 간에 융합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토속신앙의 불교화와 불교의 기복적/주술적인 토속신앙의 의례/관념 수용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당장 현재 한국동남아 불교의 같은 의례를 놓고 비교해도 엄청나게 다르다.

그렇다고 토속신앙이 뵌교와 티베트 불교처럼 완전히 동일화되진 않았다. 현재의 무속이나 민족종교를 봐도 불교를 일부 차용했을 뿐, 불교와 완전히 동화된 것은 아니다. 물론 승려보살로 칭하는 무속인들의 경우에는 상당히 불교색이 강하지만, 무당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지역별/개인별 차이는 크며, 오히려 근래에는 민족종교로서 차별성이 두드러지는 추세다.

사실 현재 한국불교와 토속신앙의 강한 유착관계는 불교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토속신앙과 섞인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륵 신앙. 기복적인 토착 천신/용신 숭배사상과 완전히 결합하였다. 이러한 문화가 고착화된 것은 조선시대 숭유억불의 영향이 컸다. 숭유억불 정책 하에서 불교와 토착신앙이 살아남기 위해 융합하면서 남사당패, 점이나 굿을 하는 스님들도 일부 등장하게 된 것.

현재 한국 불교와 무교 양측에서는 예전처럼 꼭 결합해야만 할 일도 없기에 각자 개성을 살리는 쪽이긴 하나, 불교 종파마다 차이가 크다. 일례로 대한불교조계종 같은 경우 순수불교 정신을 내세우며 절에서 하는 천도재, 49재 등도 대폭 간소화한 데 반해, 한국불교태고종 같은 경우 예전부터 내려오던 기존의 의례 대부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도들이 조계종의 단순한 의례에 만족을 못해, 태고종 스님들을 모셔오거나 의례를 배워와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16]

한국 불교계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불교 포교를 위한 방편으로서의 측면만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학계에서는 역사적 사례나 불교하고 아예 접점이 없는 가택신 신앙(특히 조왕신)이나 북두칠성 신앙, 민간신앙에서 불교를 철저하게 무속신의 일부로 보는 점 등을 근거로 인정하지 않거나, "불교의 대중화"와 "불교화된 민속신앙"을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17]. 실제로 현재 국내에 조왕신 신앙의 흔적을 사찰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오히려 일반 민가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또 북두칠성연명경처럼 기복적인 토속신앙의 영향하에 만들어진 경전도 있다.

다만 토속신앙에 대한 대접엔 한계가 있다. 어디까지나 절의 중심은 붓다/보살이지 토속신이 아니니까. 그래도 관련된 재와 법회도 정기적으로 지내주고, 불교를 잘 믿고 선행을 하면 복을 주고 도와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징벌을 내리는 강력한 호법신으로 인식하고는 있다. 원광대학교 조용헌 교수는 저서 <조용헌의 사찰기행>에서 이러한 인식을 법(부처)은 멀고 주먹(산신)은 가깝다고 한 줄로 요약한 바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토속신은 어디까지나 호법선신으로서 절과 불법을 수호하고 신도나 승려들이 필요할 경우 도와주는 존재라고 여겨질 뿐, 일반적으로는 아미타불, 미륵불, 석가모니부처님/보살같은 존숭의 대상은 아니다.

토속신들이 대우받는 것은 불교가 토속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장 삼성각을 따로 짓지 않는 수준의 작은 절이라도 대웅전에 합사할 때 토속신을 신중과 마찬가지로 하단에라도 배치한다. 불교 교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혹자는 이런 것을 기복신앙적 불자들이나 무속인들이 시주하는 재물 수입이 쏠쏠하니 그만큼 투자를 하는 것뿐이라고 색안경 쓰고 바라 볼 수도 있다. 신중신앙이 지금보다 흔했던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절에서 신중 법회/재는 고려시대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의 비중을 차지했다. 근현대 조계종의 불교개혁운동 이전에는 신중단에도 절을 하였으나, 성철스님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승려가 부처님을 수호하는 신중에게 절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되었다.

물론 이런 주장은 이미 구한말~일제강점기부터 불교를 근대화시키자는 승려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논의되던 사안이었으나, 해방 후 성철스님을 비롯한 개혁주의 성향의 승려들이 결정타를 내리면서 한국 불교의 신중신앙과 토속신 신앙은 동시에 크게 쇠퇴하였다.

토속신들은 원래 불교의 요소였으며 한국인들에게 불교 전래 이전부터 오랫동안 친근한 존재였고, 동시에 불교 전래 이후에도 신앙관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었기에 개혁주의 성향 승려들이 대부분 입적하면서 다시 한국 불교 내부에서 신앙그리고 한국 절들의 수입원 중 작은 하나의 대상이 되었지만, 정작 원래 불교의 일원이던 신중들은 예전만큼 큰 영향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봉암사에서 결사를 이끌던 시절 비불요소 철폐를 외치며 토속신 전각은 물론 신장탱조차 없애고 여러 불공을 철폐했던 것으로도 유명한 성철스님의 생전에는 토속신앙적 기복신앙에 배타적이었던 해인사가 결국 독성각으로 복원한 것도[18], 전술했듯 근본주의 사상이 강한 조계종도 서울 조계사를 제외하면 조계종의 간략화된 불교의례보다 기존의 해오던 재래식 불교의례를 신도들이 원한다고 유지하는 데는 이런 속사정이 있다. 참고로 성철스님이 결사를 열었던 봉암사는 결사 당시에는 토속신앙 건물을 철거하였으나(참조), 지금은 대웅전을 확장하고 산신각을 복원한 지 오래다. 특정한 기간이 아니면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지 않는 사찰인데도 말이다.

일부 종파의 경우 독립된 토속신을 모시는 전각을 찾을 수 없다. 대한불교천태종, 밀교 종단인 대한불교진각종과 여기서 갈라져 나온 총지종은 밀교거나 밀교적 성향이 있음에도 이런 이유로 토속신을 모시는 전각은 물론 밀교에서 중시하는 신중이나 명왕을 위한 전각이 없다. 다만 천태종의 경우 법회/재를 주관하고 신도들을 위해 복을 빌고 기도해주는 부전승이 다른 종파와는 달리 정식으로 교단에 일원으로 소속되어 있고, 의전국이라는 전담부서도 있다.

천룡팔부 같은 원래부터 불교에 있었던 신중의 경우 해방 후 현대 한국불교에서는 대웅전 내 한 구석에 작게 신중전을 차려놓는 선에서 끝나는 게 일반적이고 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은 편. 법회가 열려도 보통은 토속신들과 같이 하단을 차지할 뿐이고, 독립적인 법회나 재는 찾기 힘들다. 당장 우리나라 절에서 산신과 산신재 혹은 산신법회가 차지하는 비중을 떠올려 보면 답이 나오는데, 과거 밀교가 나름대로 번창하던 때는 삼국유사에도 나오듯이 제석이나 사천왕 같은 경우 토속신앙의 천신/오방신 신앙과 결부되어[19] 해당 위격만을 모시는 절도 있었지만, 나머지 신중들은 그런 것도 없었다. 재를 지낸다 해도 대부분 예불 때 신중단을 바라보며 반야심경 읽는 정도가 고작. 그마저도 신중단에 반야심경을 읇는 것은 신중을 높이는 의미에서 독경하는 게 아니라, 신중에게 설법을 하는 의미로서 읽는 것이다.[20]

토속신앙의 신들이 대부분 독자적인 전각(칠성각, 삼성각 등)을 세워 따로 모신 것에 비하면 큰 차이점이다. 일본에도 사찰 안에 작은 신사를 세운 사례는 있으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그 빈도도 웬만한 절이면 거의 토속신앙의 신을 모신 제대로 된 전각이 있는 한국에 비하면 좀 안습인 경우가 많다. 적당한 데 석등만한 가미다나 차리고 끝이라든지.

4.5. 신토와의 관계[편집]

일본의 경우 아스카 시대에선 신토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앙숙으로 지내 왔다. 실제로 불교가 처음 일본으로 도입될 당시 위에서 나온 대로 귀족 정치싸움과 맞물려 친불교파인 소가씨와 반불파인 모노노베씨 간에 엄청난 충돌이 일어난 데다, 현세구복을 중요시하던 토속신앙인 신토와 보다 고급 철학에다가 수입품이라는 이점까지 지닌 불교 간에 이권 다툼(?)을 벌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모노노베씨와 신토가 소가씨/불교 세력에 밀려나 버리고 만다.

후에 헤이안 시대 진언종과 천태밀교 등 밀교가 본격적으로 수입되자 신토의 신과 불교의 신들을 동일시여기며 불보살이 일본의 신의 모습으로 불교전래 이전에 이미 와있었다는 소위 본지수적설에 입각하여 신토와 불교가 결합하고, 더 나아가 기존 신토의 신들을 모두 불교의 부처님/보살의 화신(아바타)로 격하시키고, 나중에는 아예 전원 신중으로까지 눌러댔다. 심지어 아마테라스의 경우 관음보살의 협시신중인 우보동자라는 작은 신으로 격하되는 안습의 시기를 겪을 정도. 이러한 신불습합, 본지수적을 피한 것은 자체적인 신토 철학을 만들고 경제적 기반을 가진 이세신궁 정도이며, 대부분의 신사와 절이 합쳐져 절의 승려들이 대를 이어 신사의 신관이 되는 일이 빈번했다.

이후 신토는 지속적으로 불교의 위세 앞에서 큰 힘을 내지 못했다. 에도 막부 중기에 민간의 아마테라스에게 복을 비는 관습이 등장해 사정이 나아진 적이 있었다. 당시 일본인들의 기복신앙은 대단해서, 아마테라스에게 복을 비는 순례 시 봉건질서를 무시하는 행위를 민중들이 저질러도 막부에서 어지간하면 눈감고 넘어갈 정도였다. 이런 시절에도 일본 정토진종의 승려들은 민중들의 신사 참배를 제지하는 행위를 하다 문제가 생겼을 정도.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신토가 불교를 누른 것은 에도 시대 말~메이지 유신 초기를 거치면서 일본 철학계에서 자체적으로 불교에 대한 검증과 비판이 일어나고, 그 결과물은 바로 국가신토. 물론 형식적으로는 국가신토가 몰락한 지금은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편이다.

일본메이지 유신 때는 오히려 불교를 억누르고 신토를 분리시키려 하기도 했다지만,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정책이 바로 승려에 대한 도성 개방이었다.

4.6. 기독교와의 관계[편집]

중국에서는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마테오 리치 신부가 명나라에서 선교할 때, "유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그리스도교와 모순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불교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불교에 대한 이런 비판은 당시 명나라 사대부들에게 점수를 따기 위한(…) 목적 역시도 있었을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고 있다.

교리적인 이유들도 있다. 불교와 달리, 그리스도교윤회를 믿지 않으며, 단 한 번의 창조-구원-공심판과 종말이라는 직선적인 세계관을 가진다. 단 과거부터 끈질기게 제기되는 주장 중 하나로서, 예수의 근본적인 가르침인 사해동포주의와 사랑 그리고 현실에 대한 직시는 불교의 가르침과 대동소이하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외 나머지 부분은 사도 바오로의 재해석..이라는 주장.

또한 신(神)관, 구원관이 정반대다. 그리스도교에서 구원은 유일신이며 창조주인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은총, 즉 참 하느님이며 참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21], 십자가상 수난과 죽음, 부활, 성령의 활동 등으로 얻어진다고 가르친다. 인간 개개인의 노력과 믿음 역시도 중요하지만, 이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개인의 '응답'. 반면 불교는 그러한 의미를 지닌 신(유일신, 창조주)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종교이며,[22] 개인의 수행과 노력으로 해탈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물론 불교 역시 파고들면 아미타불 같은 케이스가 있는 만큼, 이렇다 저렇다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개인의 역량이 상당히 강조된다.[23][24]

물론 그리스도교와 불교는 모두 교리상 평화와 사랑과 자비를 중시하는 등의 공통점도 많지만, 앞에서 말한 차이점으로 인해 교리적으로는 호환이 "절대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마테오 리치 신부는 저서 <천주실의>에서도 불교를 매우 디스했다.[25] 그러나 중국에서는 기독교 자체가 흥하지 못했던지라[26] 신자들끼리의 이렇다 할 분쟁은 없었다.

한국의 경우는 초기 조선 천주교나 불교나 세트로 국가로부터 탄압당하던 처지라 동병상련의 심정이 있었는지,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27] 천주교를 공부하는 수많은 신자들을 받아들여 집회를 하게 하였다. 천주교의 성지들 중 그래서 은근히 절터가 많다. 신자들끼리는 그럭저럭 우호적인 편이었다. 박해로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에게 승려가 명복을 빌어주는 사례도 있었다. 물론 교리적으로 볼 때 가톨릭과 불교는 다른 점이 많으나, 신자 개개인 단위에서는 의외로 호의적인 경우가 많다. 일반 신자들 외에도 사제와 승려들이 친밀하게 지내는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불교 승려성당에서, 가톨릭 신부에서 강연을 하는 사례가 있으며,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도 한몫 해서 성탄절석가탄신일에 서로 축하 메세지도 보내곤 한다.[28] 심지어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인 가톨릭 신학대학의 수업 과정 중에 불교 교리에 대한 과목까지 있을 정도. 즉 가톨릭 신부 정도 되면, 불교 교리에 대한 지식이 어지간한 일반인은 물론이고 불자들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다. 단 그렇다고 해서 가톨릭이 불교의 교리까지 믿는 것은 결코 아니다!![29]

다만, 불교의 계율과 교리를 믿지는 않더라도 존중하라는 것이 천주교의 공식적인 가르침이다. 때문에 천주교 신자가 불상을 파괴한다든지 하면 이는 천주교의 교리에 대놓고 반하는 것이 된다.

불교에서는 여러 종파에 따라 이 무상한 세계의 근본적 불완전성을 긍정하고, 신심과 확신으로 완전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거나 아니면 자기 노력이나 위의 도움으로 궁극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가르친다. 그 밖에 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종교들도 교리와 생활 규범과 신성한 예식 등을 제시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간 마음의 불안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그 길을 가르친다. 가톨릭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양식과 행동 방식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개신교와의 관계는 아무래도 가톨릭 쪽보다는 껄끄럽다. 다만 개신교 자체는 하나의 종파가 아니라 여러 종파들의 묶음이다 보니, 관계를 요약하기는 어렵다. 일부 극단적 개신교 종파들이 사찰이나 불상에 준테러급의 짓거리를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나라들의 종교 갈등 사례에 비한다면 대규모 폭력 사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반대로 NCCK한국기독교장로회, 향린교회, 빈들교회 등 진보성향의 개신교 교회나 단체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에 축하메세지를 발표하거나 법당을 방문하여 종교화합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함께 하기도 한다.

특별히 서울 장충동 소재의 경동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는 오래전부터 불교 정토회와 교류가 있어왔고, 담임목사가 법당을 방문하여 설교하고, 성탄절 예배 때는 정토회 법우들이 경동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성탄예배를 드리고 캐롤을 부르는 모습이 매년 보도되기도 한다.

다만 신자들 간의 감정은 다른 종교와의 관계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데면데면한 게 사실이다. 나이 지긋하신 개신교 신자가 "불교 믿으면 지옥 간다!!"고 말하는 경우는 결코 적지 않으며, 더 큰 문제는 그 개신교 신자가 교육한 어린 아이들이 불교를 믿는 친척집에 가서 "지옥 간다"는 소리를 하여 친척들 간 종교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 광역 어그로

극단적 성향의 개신교 신자 무리가 사찰 등에 단체 관광을 가서 땅밟기 같은 걸 하는 사례도 있어서, 다른 종교 신자들이나 같은 개신교도들 사이에서도 비판받기도 한다.[30]

일본의 경우 에도 막부 초기에 키리시탄 탄압 때 제일 먼저 나선 종교가 불교였고, 상당수의 승려들이 앞장서서 후미에를 실시했다. 그 이유는 오다 노부나가가 원래 무신론자에 반불교 성향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반대하는 불교 세력들이 많아, 이 불교 세력들을 억제하기 위해 가톨릭을 지원한 데에 있다. 그러니 아츠지모모야마시대 당시의 정권에 반하는 입장인 도쿠가와 막부에선 키리시탄들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으며[31], 이때 일본 불교는 더더욱 반기독교 성향이었다.

가톨릭 신앙 금지령을 내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모든 백성들이 불교도가 되길 바랄 정도로 독실한 불교도였지만, 당시 기독교 교리 자체가 일본 사회에 맞지 않았던 이유가 크다. 가톨릭 자체가 유일신 신앙이라 불교와 다신교신토를 부정할 수밖에 없으며[32], 자살을 죄악시했기 때문에 할복을 금지시켰고, 일부다처제도 부정하기까지 했으니, 가톨릭의 확산은 당시 근세 일본 사회에 있어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카쿠레키리시탄 참조.

한편 스리랑카에서는 불교인들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탄압이 일어나고 있다. 내전 당시에는 힌두계 타밀족에 대한 핍박을 주로 했으나, 내전이 끝나니까 그리스도인들도 핍박받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한테 반감이 있는 이유도 과거 유럽 식민주의 팽창 당시 가톨릭이 불교 승려를 처형하거나 핍박하였고, 개신교는 처형은 안 했다만 불교인의 사회적 지위는 매우 낮아 고위직에 오를 수 없었다.

유사한 사례로 불교가 기득권을 틀어쥐고 있는 동국대학교에서는, 거꾸로 불교가 개신교를 차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학교 당국의 부정부패와 비민주적 행태를 비판하며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웠던 전직 총학생회장은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학교 당국에 의한 악선전에 시달린 바 있고, 2018년 초에는 학교 당국과 대치하며 본관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이 일요일에 개신교 인권운동가인 정진우 목사를 초청하여 본관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이유로 불교 언론들이 나서서 "불교 대학에서 예배를 드리는 게 말이나 되냐"며 비난하기도 했다.

4.7. 이슬람과의 관계[편집]

인도 공화국에서 불교가 거의 사그라 든 것은[33] 바로 이슬람교 때문이다. 비단 인도뿐만 아니라 8세기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불교가 사그라 든 것도 이슬람교의 확산과 맞물린 일이다. 즉 8세기 이후 중앙아시아-인도의 이슬람교도 확산은 불교의 축소와 연관되어 있다.

태국에서는 태국 남부에 이슬람을 믿는 지역에 불교도를 이주시키고 승병이 조직되는 일도 있었다. 현재는 충돌이 많이 약해졌지만, 불교급진파가 늘면서 힌두교 말고도 소수 이슬람이나 기독교에 대해서도 굉장한 거부감을 보이고, 교회나 마스지드를 불교성지에 지었기에 불교도 시위대가 가서 없애버릴 것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또한 소수 이슬람과 갈등으로 이슬람 급진파 공격을 받자 승려들이 무장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다만 태국 문서나 스리랑카 문서를 참고하면 좀 복잡한 면이 있다. 스리랑카의 경우 싱할라족 불교 근본주의 단체인 부두발라세나의 영향이 크다. 스리랑카 내에 반이슬람 여론을 강력히 이끌어가고 있으며, 종교의 영역뿐만 아니라 수틀리면 정치의 영역으로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천명하고 있으며, 미얀마의 극단주의 불교세력인 969과도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를 참조할 것.

불교가 중앙아시아에서 크게 번성한 적이 있었지만 이슬람, 기독교와는 상당히 악연으로서 이들의 우상파괴 논리에 의해 수많은 미술품이 파괴되고 박해를 당하기도 하였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들이 바미안 석불을 파괴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34] 현재의 중앙아시아의 종교는 전부 이슬람으로 변해버렸다.

그래도 불교는 이슬람교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인도아라비아 반도는 매우 가깝고, 인도 불자들이 아라비아로 가서 불교를 전하기도 했으며 메카는 이슬람 이전 불교도들도 꽤 많았다. 무함마드가 불교 교리를 받아들인 것이 카르마(업)와 염불의 일종인 지크르와 아잔 그리고 염주의 사용 등이 있다. 실제로 이슬람의 아잔불경 독경과 비슷한 분위기로 들린다.

여담으로 대한민국에서 1970년대부터 중동-이슬람권 경제 진출이 활발할 때 파견간 노동자들의 경우 불교 '신자'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불교 신자들을 선발해서 일부러 파견을 갔다는 뜻은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무신론자/무종교를 대단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노동자들도 형식상으로나마 종교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의 다른 메이저 종교인 기독교(개신교, 천주교 등)는 이슬람교와의 충돌이 매우 우려되기 때문에 서류상 종교를 대부분 불교로 통일시켰다고 한다.

4.8. 원불교와의 관계[편집]

원불교는 불법의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목표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에 의해 창시된 종교다. 별도의 원불교 교전을 가지고 있고, 불교와 개별 종단으로 분리되기는 하지만 그 가르침이 불법에 바탕하고 있고 소태산 역시 스스로 석가모니에 연원을 대었으므로[35] 넓은 의미에서는 불교의 범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원불교 교도에게 원불교가 불교라고 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또 불교가 아니라고 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아니라고 한다. 뭐야 이거 종단으로는 구분되어있지만 근본 가르침을 공유하는 특수한 관계 때문이며, 그냥 천주교와 개신교의 관계 정도로 생각하면 편하다. 원불교는 창시 당시 불법에 바탕을 하면서도, 이 불법을 대중들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당시의 불교에 대해 혁신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녀 출가자 차별 철폐, 출재가 평등, 생활중심의 수행, 등 한국 불교의 다른 종파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글로벌하게 보면 세계 불교도 연맹에 가입되어있기도 하다. 격식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서양인들과 잘 맞아서 외국인 교무를 꾸준히 배출하는 등 해외 포교에서 한국불교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5. 왕즉불 사상[편집]

동아시아 지배계층에서 불교가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왕즉불 사상을 이용한 것이다. 이는 불교에 우호적이었던 지배계층의 수요를 만족시켜 주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인 프로파간다에 가까웠다.[36]

백제 성왕(이름 자체가 전륜성왕에서 따옴), 신라의 경우엔 법흥왕부터 진덕여왕까지 왕권 강화 차원에서 불교식 왕호를 사용했고, 진흥왕의 경우엔 전륜성왕을 자처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도 태조 왕건의 청동상을 불상처럼 만들거나 고려사 악지에 임금을 제불(海東天子當今帝佛)이라 칭하기도 했다.

6. 대한민국에서의 불교[편집]

7. 분파[편집]

7.1. 티베트 불교[편집]

티베트로 전파된 불교. 자세한 점은 티베트 불교 문서 참고.

티베트의 불교는 상좌부 불교, 대승 불교, 밀교를 시대별로 차례차례 받아들인 북전 불교와는 달리 인도를 통해 모든 사상을 한꺼번에 받아들였으며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실질적으로는 밀교가 강하긴 하지만…

티베트뿐 아니라 몽골청나라 등에도 전파되었다.

정작 본산지인 티베트에서는 크게 억압당하고 있지만 서양으로 전파되어 서양에서 가장 대중화된 불교 종파가 되었다. 프랑스 같은 경우는 일본식 선불교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불교 종파이기도 하다. 게다가 티베트를 탄압하는 중국조차도 화북 지역 한족들이 티베트 불교를 열렬히 신봉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상술한 것처럼 청나라가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만약 티베트가 중국으로부터 독립한다면 중국 정부에서 티베트 불교를 탄압하기보다는 티베트 불교 자체가 반중파와 친중파로 갈라질 가능성이 높다.

서양의 유명인중에 티베트 불교 신자가 의외로 많다. 브래드 피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리처드 기어, 스티븐 시걸 등. 티베트 불교 이외에는 일본 선불교가 있다. 일본 선불교 신자로 대표적인 이는 스티브 잡스.

8. 불교의 역사[편집]

9. 관련 용어[편집]


9.1. 부처님, 승려 등을 뜻하는 용어[편집]

9.2. 교리 관련[편집]

10. 관련 인물[편집]

10.1. 석가모니와 불제자[편집]

  • 석가모니

  • 데바닷타

  • 라훌라 - 십대제자에도 속하지만, 석가모니의 친아들이란 부분도 있으므로 따로 분류.

  • 십대제자

  • 앙굴리말라 - 1,000명을 채우게 되면 득도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999명을 살해하고 손가락을 전리품으로 삼았다고 한다. 막판에 석가모니를 만나 아라한이 되었다.

  • 출라판타카 - 간단한 계율도 외우지 못하던 그에게 석가모니가 성전을 빗질하라고 한다. 그리고 '쓸고 닦으라'고 외우면서 쓸라고 한다. 그러한 일종의 수행법으로 아라한이 되었다.

10.2. 고승 및 불교 사상가[편집]

11. 부처들과 보살들, 그 외의 신들[편집]

11.1. 불·여래[편집]

  • 대일여래 - 비로자나불, 치성광여래

  • 아미타불 - 서방극락세계의 부처.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 미륵 -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 해당 문서 참조.

  • 약사여래

11.2. 보살[편집]

  • 관세음보살

  • 지장보살

  • 문수보살

  • 보현보살

  • 미륵보살

  • 담무갈보살(법기보살) - 당나라 때 중국에서 편찬된 화엄경에 등장하는 보살로, 금강산에 머물며 설법한다고 한다. 실제로 금강산에는 이 보살이 현신했다거나, 만났다는 설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11.3. 명왕[편집]

11.4. 그 외[편집]

12. 불교와 국가[편집]

본토인 인도에서는 석가모니 사후 아소카 대왕의 보호와 포교로 크게 교세를 확장하여 6세기경까지 전성기를 이루다가 이후 힌두교에 점점 밀려 교세가 약해지더니 14세기 이후로는 인도를 강타한 이슬람에 밀려 점차 교권을 잠식당하고 오늘날에는 발상지인 인도 공화국에서는 크게 세력이 약화되었다. 특히 이때 수많은 인도 북동부의 불교 사원과 유적이 파괴됨으로서 거의 소생불가의 치명타를 받고 말았다. 일부 카스트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하층 계급, 일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불교 신도가 느는 현상은 있다. 가장 유명한 경우가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의 불교 개종. 마하라슈트라주에는 불교 정당이 있을 정도.

그 외에도 근래에 인도에 병합된 시킴은 원래부터 불교 왕국이었고 아루나찰프라데시미얀마, 티베트와 접경 지역인 인도 동북부 지역에도 토착 불교 신자가 꽤 있다. 티베트에서 망명해온 티베트 불교 승려들의 포교도 인도 불교 신자 수 증가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물론 그래봤자 인도 전체 인구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원나라의 사실상 국교이기도 했으며(티베트 불교), 한국의 경우에는 삼국, 고려 시대에는 국가와 협력-공생 관계였으나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유교에 밀려 차별당하고 박해받기도 했다.[40] 20세기 들어 태국타이완을 제외한 중국동남아 등지 상당수 불교권에(몽골,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등)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는 공산당에 의해 앞장서서 두들겨맞고 탄압받기도 한 역사가 있다. 현재는 공산주의 정권 시기의 가혹한 탄압이 거진 사라진 상황. 스리랑카에서는 힌두교 세력과 내전을 치르기도 했고, 미얀마 등지에서는 군부정권이 극단적 불교를 버마족의 민족적, 국가 정체성으로 밀어 21세기 들어 불교 근본주의와 로힝야족 탄압 등을 초래하기도 한 현재진행형 흑역사도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63px-Buddhism_percent_population_in_each_nation_World_Map_Buddhist_data_by_Pew_Research.svg.png
인구 대비 불자 수가 많은 나라들은 스리랑카를 제외하면 동아시아동남아시아에 있다. 절대적인 수로는 불자인구가 세계 1위인 일본을 비롯해 티베트, 몽골, 등도 전통적인 불교 다수 지역이다. 세계구급으로 골고루 퍼진 기독교, 이슬람과는 달리 불교는 중국과 불교권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소규모로 퍼져있으며 서구 일부 지역을 제외한 동유럽, 중동, 중남미 등 나머지 지역에서는 거의 교세가 없다시피 하다. 본고장 인도 공화국에서도 교세가 매우 약해서, 1% 수준으로 시크교기독교 인구보다도 적다안습 또 특이하게 이슬람권인 오만, 카타르, 쿠웨이트 등지에도 신자가 있는데, 아시아계 외국인 노동자의 영향이다.

아프리카에도 불교 신자가 별로 없다.(네이버 지식iN 베스트에도 선정된 내용이다) 아직까지는. 종교 분포에서조차 표시가 되지 않을 정도다. 그나마 불자가 제일 많은 곳이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전체 불자 수로 보나 인구대비 불자 수로 보나 Atlas of religions 아직까지는 세계에서 순위권에 들지 못하고 있다. 위키백과세계의 불교(영어) 내용에 따르면 10억여 명의 인구가 있는 아프리카에서는 불자 수도 10만여 명에 불과하고 인구에서 불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0.012%로 가장 낮다.

20세기 후반 이후로 서양에서 불교의 가치가 크게 평가되어 유럽, 미국 등지에서도 꽤 소수종교로서 교세가 있다. 예전에는 티베트 불교나 일본 불교(젠 부디즘)이 중심이었는데,[41] 근래에 들어서는 한국에서 출가한 서양인 승려들이나 불자 교민들의 불사와 노력을 통해 한국 불교도 점차 퍼져나가는 중이다. 게다가 요즘 백인들은 교회나 성당을 멀리하는 대신 절에 다니는 비율이 높아져가고 있다.(빌 클린턴도 이젠 절에 다닐 정도) 아놀드 토인비는 불교가 서양에서 주류 종교가 될 것이란 말을 했는데 과장된 점이 없진 않지만 의미심장한 발언이라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힌두교 신자(10억 정도)가 많은가 불교 신자가 많은가에 대해서는 보통은 힌두교 인구가 2배가량 많다고 보는게 통념이지만 중국의 불자 수 집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이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불자 수는 최소 1억 명에서 최대 12억 명까지 들쑥날쑥하기에 이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일단 공식적인 통계에서의 세계 불자 수는 약 4~5억 명 정도라고 본다.

중국 불교의 경우 중국 정부의 암묵적인 지원으로 현재 중국 내 불교 신자는 최소 2억 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의 증가세를 감안하면 최소 몇 년 내에 4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중국을 제외한 세계 불교 신자가 3~4억 명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향후 국제 사회에서 중국 불교의 위상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 불교는 중국불교협회를 중심으로 문화대혁명 시기에 잃어버린 옛 영광을 재현하는데 성공하면서 동남아는 물론 세계 불교계에서의 주도권 쟁취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세계불교포럼을 주최하면서 중국 불교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중국/문화 참조.

유럽에서는 칼미크 공화국(러시아의 자치 공화국)이 유일한 불교 국가다. 이유는 칼미크 공화국은 몽골계 민족 칼미크인이 중심이 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과거 약 5만명의 오이라트 인이 이 지역으로 이주한 것이 칼미크 족의 기원으로 이들이 불교를 믿고 있어 불교를 국교로 삼게 되었다. 칼미크 남쪽은 다게스탄 공화국, 체첸 공화국 등 무슬림이 많고, 칼미크 북쪽은 정교회가 지배적이라 이슬람정교회 사이에 불교가 끼어있는 오묘한 상태. 일찍이 러시아옐리자베타 여제 시절에 불교를 러시아 제국의 종교들 중 하나로 인정하였고 칼미크뿐 아니라 동시베리아의 투바부랴티아에서도 불교세가 강하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남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불자가 많은 섬이 하나 보인다. 오스트레일리아크리스마스 섬. 아마도 이 섬의 인구 중 약 70% 정도가 중국계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이유로 싱가포르 역시 불교 다수 지역이다.

13. 불교의 전파[편집]

파일:Buddhist_Expansion.svg.png[42]
불교는 석가 생전에 이미 교단(敎團)이 조직되어 포교가 시작되었으나 석가모니에 의해 교의가 전해져 내려왔다. 북인도에서 남방경로를 통해 기원 전후에 인도 · 스리랑카 등지로 전파되었고, 다시 동남아시아로, 북방경로를 통해 서역(西域)을 거쳐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왔고(한국 불교의 역사 문서 참조), 한국에서 일본으로 교권(敎圈)이 확대되어 세계적 종교로서 자리를 굳혔다.

북방경로를 통해 전파된 불교는 대승불교가 주류가 되었고, 동남아시아로 전파된 불교는 상좌부 불교이다. 단, 베트남동남아시아지만 한자문화권으로 중국을 통해 대승불교(mahayana buddhism)가 전파되어 주류가 되었다. 흔히 동남아시아상좌부 불교를 소승불교(hinayana buddhism)로 부르기도 하지만 멸칭적인 성격 때문에 현재는 널리 쓰이지는 않는다. 상좌부 불교는 원시불교의 승단이 분열되었을 때 있었던 부파 불교 시대의 한 부류였다. 부파불교의 다른 부류로는 대중부가 있다. 대승 불교가 발전되었을 시기에는 대승불경을 읽지 않는 부파불교를 소승불교라고 칭하였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소승불교는 상좌부와 대중부를 포괄하는 더 넓은 의미이다. 현재의 스리랑카의 테라바다 교단은 상좌부 불교의 일종이다.

14. 종단 목록[편집]

14.1. 유관 단체[편집]

15. 불교에 영향을 받은 종교와 사상(가)[편집]

15.1. 종교[편집]

사실상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종교들은 작건 크건 다 불교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처님 손바닥(...)

  • 자이나교

  • 힌두교 - 브라만 교 때는 영향을 주었다가, 불교가 크게 성장하자 역으로 흡수하였다.

  • 마니교

  • 무속신앙/사머니즘 - 불교 자체의 영향력도 있고, 몽골이나 부리야트 지역에는 불교와 사머니즘을 융합시켜 만든 종교도 있다.

  • 도교

  • 동학(천도교)

  • 선종

  • 증산법종교 - 현재의 증산 계열 종교 분화와 관계없이, 강일순은 저서 현무경에서 불佛을 형체(佛之形體)로 정의한 바 있다. 흔히 상제님이라고도 칭하며 증산법종교는 이를 모태로 미륵의 출세를 서원한다고 한다.

  • 원불교 -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이후 경전들을 두루 열람하면서 금강경을 읽은 뒤 석가모니가 자신의 연원이라고 결론지었으며, 교전인 <원불교전서> 내에서 《불조요경》항목에 금강경, 반야심경 등 불교에서 외는 경전 일부가 들어있기도 하다.

  • 유교 - 초기 유교는 당연히 영향이 없다. 그러나 중세시기 송나라 때 등장하는 신유학은 도교와 불교의 영향이 상당히 컸다. 특히 심학 계통은 선불교의 영향이 크다. 조선시대를 지배하고 불교를 배척한 신유학(주자학)이 이 불교의 영향력하에서 생성되었다는 건 꽤나 아이러니하다. 싫어하거나 까고 싶은 사람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 슈겐도

  • 신토

  • 선교 - 과거 이름은 선(仙)불교. 정부에 등록된 법인명칭은 "선교유지재단". "1997년 창교된 선교교단, 재단법인 선교(仙敎)와 무관하다." 선종(禪宗)과 다르다. 원불교와 비슷하게, 불교의 영향을 받은 다른 종교이다. 원불교처럼 선불교도 불교의 한 갈래가 아니다. 1994년 11월 교주이자 창시자 만월 도주가 출가하였으며, 이때를 선불교가 만들어진 날이라 해서 창교일로 잡는다. 한국 토속신앙의 하느님을 신앙하며, 단군을 불광선인이라 부르면서 성인으로 받들어 모신다. 공식 홈페이지 교리의 유사성 등을 들어 단월드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있지만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한 적이 없어서 확인되지 않았다. 공식 홈피의 주요 연혁을 따르면, 선교로 이름을 바꾼 시기는 2016년. 2016, 2017년 연속 재단법인 선교(仙敎)를 사칭하여 오인혼동유발.

15.2. 사상(가)[편집]

  • 헤르만 헤세 - 싯다르타란 저서를 쓴 적이 있다.

  • 쇼펜하우어 - 사상이 불교의 일체개고랑 비슷하며, 실제 불교를 공부해본 결과 불교가 기독교를 대신하여 유럽을 지배할 것을 기대하기도 했다. 다만 염세주의 때문에 그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미흡하다는 평가도 있다. 참고

  • 스피노자[45]

  • 이색[46]

  • 추사 김정희 -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불교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죽기 얼마 전 출가했다. 당시 국내 간화선의 대가라 불렸던 백파긍선과 선불교의 정통성을 놓고 논쟁을 벌였을 때 백파긍선이 전전긍긍했을 정도다.[47]

16. 인물[편집]

문서 참조.

17. 사족[편집]

시뮬레이션 게임 《문명》 시리즈 중 하나인 《문명 4》에선 종교 중 하나로 등장하는데, 종교 중 제일 먼저 등장한다. 이는 신비주의 → 명상을 통해 곧바로 창시되기 때문. 《문명 5》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받았던 나라들은 불교를 만든다. 문제는 시스템상 불교를 만드는 문명이 시암밖에 없다... 따라서 게임을 하다보면 불교는 주로 시암이나 기독교, 가톨릭교를 창시하지 못한 유럽 문명이 창시하게 된다.

서양에선 동양에 대한 환상편견에 영향을 받아 불교에 왜곡된 긍정적인 관점을 지닌 사례도 있다. 공격적인 독설로 유명한 이탈리아 유명 여기자인 오리아나 팔라치는《나의 분노, 나의 자긍심》이라는 책에서 불교를 가장 평화로운 종교라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기독교 신자(가톨릭)이지만,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유대교 같은 종교는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던 걸 그리도 혐오하는 그녀에게 종교 자체를 들이대며 학살이란 걸 저질러본 적이 없는 불교는 위대하다고 엄청나게 불교를 칭송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정작 역사 속 ~ 현대 불교도들의 모순과 폭력에 대한 이해가 아예 없는 무식한 발언이다. 실제로 유럽 역사학자들은 이런 팔라치의 편견에 맞서 일본 승병을 반론의 근거로 든 적이 있다. 그야말로 동양에 대한 환상과 편견으로 점철된 시각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가 불교를 공부했다는 기록도 없다(...) 사실 이와 같은 불교에 대한 서양 지성인(?)들의 편견은 니체의 '안티크리스트'같은 서적에서도 볼 수 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리차드 도킨스는 비난의 대상인 종교를 칭할 때에 불교는 예외라는 의견을 밝혔다.

불교 광신도 세력도 상당히 있는데, 대표적으로 몽골 역사 속의 운게른 슈테른베르크, 미얀마의 아신 위라투, 스리랑카의 보두발리세나 정당 등이 있다. 근래 불교에서도 근본주의적 움직임이 고개를 들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

한국 불교계가 무아마르 알 카다피에게 인권상(...)을 수여한 적이 있다. 참고 하지만 카다피의 초기 집권은 나쁘다고만을 볼 수 없다. 남녀평등을 위해 여성에게도 교육을 실시, 대규모의 문맹 추방 그리고 석유회사 국유화로 남는 이익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그러다보니 그의 부정적인 면이 잘 드러나지 않았고, 불교계에서도 이를 잘 모르고 수여했던 걸로 보인다.

영화 매트릭스(영화)의 주제도 워쇼스키 남매가 인터뷰에서 직접 밝혔듯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승려의 육식에 관해서 말이 많으나,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삼정육에 해당한다면 먹어도 상관없다. 더 자세한 내용은 스님 문서 참조.

18. 관련 문서[편집]

[1] 세계 4위, 출처[2] 중국의 불자 수 집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이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불자 수는 대략 인구 13억중 11억이상으로써있다. 일단 공식적인 통계에서의 세계 불자 수는 약 14억명 ~15억 명 정도라고 본다.[3] Bauddhadarśanam[4] 열반경에 실린 석가여래의 마지막 설법. 으레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원전에는 "자신을 바다 위에 뜬 하나의 진리의 섬으로 삼아서 누구도 아닌 그 섬에 의지해 살라"는 말을 한역하면서 '섬'이 '등불'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5] Dharmachakra, 불교의 대표적 상징인 법륜(法輪)을 형상화한 것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8가지 길을 보여준다. 조화와 화해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다르마챠크라(Dharmachakra)'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이다. 이것을 한자로 바꾸면 다르마는 '법', 챠크라는 바퀴를 의미하는 '륜'이 되어 '법륜(法輪)'이 된다. 법륜은 간단히 말하면, '진리의 수레바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진리란 인간을 궁극적인 행복, 즉 구원으로 이끌어 줄 올바른 길을 말한다. 진리의 상징으로 바퀴살이 8개 달린 수레바퀴를 쓴 것은 부처가 중생의 구제를 위해 제시한 깨달음의 방법이 '팔정도(八正道)'라고 하여 8가지이기 때문이다.[6] 붓다는 우주 만유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뜻으로도 석가모니(釋迦牟尼)로도 불리는데, 이는 '샤캬족의 성자'라는 의미인 '샤캬무니(Shakyamuni)'를 한자로 음역한 말이다.[7] 미국 Pew research center 통계.[8] 단테의 신곡에는 천국과 지옥을 계층별로 분류해놓았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후세에 지어진 예술적 창작물이다.[9] 유대교그리스도교가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사유들과 교류하며 발전하고, 또한 그리스 철학과 교류한 것과 비교하면 꽤 흥미로운 비교가 될 수 있다. 유대교는 지혜서에서 플라톤의 사추덕(현명, 정의, 절제, 용기)을 서술하는 등 그리스 철학과 상당한 교류를 하였으며, 이러한 사유들은 그리스도교 교회로 이어진다. 대승불교의 경우도 중국의 여러 사상들과 경쟁 및 교류하며 발전했는데, 심지어 노장사상의 계승자는 도교가 아니라 대승불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그리스도교를 빼놓고 서양철학사의 서술이 불가능하듯, 대승불교를 빼놓고 동아시아 철학사를 서술하는 것도 불가능한 지경이다.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원효, 지눌 등의 사상을 교육하는 것도 이런 이유.[10] 그러나 불교가 철학적인 토대를 탄탄한 배경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종교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 역시 플라톤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받아들여 나름의 논리를 갖추었지만 종교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당장 신약의 복음서들만 하더라도(특히 요한 복음서) 그리스 철학적 색채가 강한 편이고, 심지어 필리피서에서는 형상(Forma)이라는 상당히 플라톤적인 용어로 예수의 신성을 설명한다. 물론 고대에는 철학과 종교가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았기에 철학과 종교 둘 다에 해당할 수는 있지만, 종교라는 특성이 부정되기는 어렵다.[11] 초기경전인 아함경 중 증일아함경에도 염불수행에 대해 나온다.[12] 여기서 당취는 땡추중, 즉 땡중의 어원이 되는 단어다. 일설에 따르면 이 당취는 임진왜란승병의 중심이 되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발발 당시 조정에서 불교의 대우를 개선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어 거병케 했고, 전쟁이 끝나고 어느 정도 개선이 이루어져 많은 당취들이 양지로 나오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여전히 승려들을 무시했으며 큰 개선은 없었다. 금강산 당취의 잔재세력인 운부(雲浮)는 조정의 태도에 불만을 품고 장길산과 손을 잡아 1696년(숙종 22) 봉기하여 거사를 도모하려 했다. 그러나 일면에서는 국초보다 불교에 대한 실질적 상황이 좋아졌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다시 지어진 '법주사 팔상전'을 보면 새롭게 힘을 얻게 된 부농층과 상인계층이 공사에 크게 힘을 실어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사대부들 중에서도 남들 앞에서는 불교 엄청 까대면서도 정작 본인 죽고 난 뒤에는 49재를 반드시 올리도록 지시한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그런데 이건 불교의 상황이 좋아진 게 아니라 그냥 보험취급 아닌가요? 일단 왕실부터가 불교 신도들이 많았으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삼국시대 이래로 현대 한국의 기독교, 천주교인들도 49재를 지내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불교의 중요 사상과 문화는 어떤 정치적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것과는 상관 없이 민간인의 입장에서는 토착화된 종교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13] 샹카라는 나가르쥬나의 사상을 꽤 많이 받아들였는데 그래서 당시에 다른 브라만교 학자들로부터 '가면을 쓴 불교도'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 결론에서 불교의 공 사상이 아닌 범아일여 사상을 주창한다.[14] 특히 원나라 몽케 칸 시절에는 아주 크게 대판 싸워 도교의 도사들이 절을 빈번히 약탈하자 몽케 칸이 쿠빌라이 칸에게 두 종교의 분쟁을 풀도록 시켰는데, 1258년 쿠빌라이는 승려와 도사들을 불러 입배틀을 시켰다. 도사들이 승려들에게 지자 쿠빌라이는 강제로 237개 도장을 불교 사원으로 바꾸고 도교 경전을 불태웠다. 캐삭빵[15] 말그대로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치세'의 이념과는 다르다. 군주에게 엄격한 도덕을 강조하는 유교에 비해서 위정자들에겐 상대적으로는 널널한 것이었을 듯.[16] 구미래,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민속원, 2009. 참조[17] 홍윤식, <불교문화와 민속>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참조[18] 원래는 독성, 용왕, 산신을 같이 모신 삼성각이었으나, 삼성각의 토속신 중 그나마 불교 영향이 강한 독성만 다시 모셨다.[19] 사천왕사에 토속신인 오방신을 모셨다고 나오고, 통도사에는 불사에 사용하던 오방신 탱화가 지금도 보관 중이다.[20] 최준식, <조선의 도인들> 소나무, 2012. 참조[21]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심.[22] 불교 역시도 천룡팔부 등 신 개념이 존재하지만, 그리스도교의 신 개념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23] 여담으로 여신전생 시리즈에서 LAW광신자의 상징인 메시아교는 그리스도교 계열인데, 그와 대치하는 CHAOS인 가이아교는 상당히 불교색이 짙은 경향이 있는 것이 이런 점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불교의 가르침은 차라리 무신론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견해도 있을 정도.[24] 참고로 아미타불은 극락 보내 주는 것이지, 성불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극락은 성불하기 최적 장소일 뿐이다.[25] 다만 마테오 리치 신부의 불교 비판은, 오늘날 가톨릭 신자의 관점에서 보면 좀 과한 면도 있다. 이를테면 불상을 보고 못생겼다고 깐다든지(…)[26] 아래에서 설명할 일본도 기독교가 흥하지 못한 국가 중 하나이지만, 센코쿠 시대~에도 막부 초기에는 그래도 꽤 교세가 있었다.[27] 사대부들은 그 둘이 같다고 생각한 듯한데, 채제공천주교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천주교를 불교의 별파로 봤다.[28] 참고로 이 두 날이 모두 공휴일인 나라는 한국뿐이다.[29]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은 타 종교(의 교리, 구원)도 인정한다고 오해하는 듯 한데, 가톨릭예수 그리스도만이 확실하고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교리를 포기한 적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 다만 구원은 인간이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서 판단하고 주시는 것이므로 타 교파ㆍ타 종교 신자들에게 함부로 "너 지옥"이라고 판단하고 저주하지 않으며, 비신자들 역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존엄한 인간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들이므로, 사랑과 친절로 존중하며 대하는 것이다.[30] 하긴 땅밟기는 해당 문서 가서 보면 알겠지만, 한국 무속신앙과 개신교가 기묘하게 결합된 형태의 짓거리로, 명확하게 분류하면 이단이 맞긴 하다. 예리코의 전투 운운하지만, 가톨릭이나 정교회는 물론이고 미국 청교도영국 성공회 심지어 보통의 정상적인 한국의 개신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근본 없는 짓거리다. 다만 2000년대만 해도 땅밟기를 하는 부류가 개신교 주류를 차지하고 있어서 불교와의 사이가 극단으로 치든 적이 있다. 땅밟기의 폐단이 개신교 내부에 알려지고 사이비 종파로 확정난 건 2008년 이후의 이야기.[31] 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리스도인들의 횡포 때문에 바테렌 추방령을 내리는 등 가톨릭 신앙에 압박을 가했지만 이것은 치안 유지의 차원이었지, 에도 막부 시절 같은 탄압은 없었다. 이때 일본은 불교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갈등이 심했고, 심지어 다이묘들 간에도 종교 때문에 감정 상하는 일이 많았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앙숙 관계인 가토 기요마사고니시 유키나가도, 가토의 영지에서 탄압받던 가톨릭 신자들을 고니시가 두둔한 일로 서로 날을 세운 적이 있다. 물론 이 둘이 싸운 이유가 종교 때문만은 아니지만[32] 신토 부정은 덴노 부정이고 일본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기도 하였다.[33] 현재 인도 공화국의 불교 신자 수는 기독교 신자보다도 더 적다.[34] 이와는 반대로 동남아미얀마 등지에서는 불교도들이 무슬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모스크를 불태우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35] 소태산은 스님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불법과 별 인연 없이 스스로 깨침을 얻은 케이스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직후 여러 종교의 경전을 열람하고 금강경에 감명을 받아 석가모니 부처님을 스스로 연원으로 정하였다[36] 정치적 프로파간다 정도가 아니라 석가모니의 사상에 완전히 배치(背馳)되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와 정치의 결탁은 언제나 있어 왔으니.[37] 남방불교의 기록에 의거함. 북방불교의 기록인 세우의 부집이론은 대중부로 분류하고 있다. (부집이론 소승20부) [38]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리랑카 ·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가 이 분별설부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다.[39]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가 만든 맹세로 알려져 있다.[40] 다만 태조 이성계 등 몆몆 역대 군주들은 불교를 믿기도 했다.[41] 서양이 일본식 선불교를 퍼뜨린 인물로는 스즈키 순류와 데시마루 다이센이 있다. 전자는 미국에서, 후자는 유럽에서 활동했다.[42] 빨강: 대승 불교, 초록: 상좌부 불교, 파랑: 밀교 · 티베트 불교[43] 본래 한국에서 종단 순위 중 2위였으나 2015년 12월 15일부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비 미납, 폭력 사태로 인한 총무원장 구속 등으로 회원 자격이 정지된 상황이었다가 2016년 7월 12일 자격이 회복되었다.[44] 불법의 생활화 대중화를 표방하지만 한국불교의 종파로 분류되지는 않는다.[45] 그의 범신론은 불교 및 도교 사상과 유사하다는 설이 있지만, 정작 그가 불교를 공부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46] 불교 신자이긴 하나 그 신앙이 사상에 영향을 준 사실은 없으며, 억불 정책을 쓰라는 상소를 쓴 것으로 보아 불교도이기 이전에 성리학자로 보는게 옳다.[47] 과거 일각에선 이를 놓고 유학자의 관점에 입각한 불교 비판이라 폄하하기도 했으나, 동국역경원 역경의원을 역임한 박건주 능가선연구소장이 저술한 책 '선종사상 왜곡의 역사와 간화선'에서 전모를 밝히고 있다. 보면 간화선 제일주의와 선종 문헌에만 빠져있던 당시 선승들의 문제를 추사가 청나라 옹정제의 교서까지 인용하며(추사 본인은 옹정제의 교서라는 걸 숨겼다) 비판한 것이다. 참고로 이 논쟁에서 밀린 백파긍선은 논박당하자 아몰랑을 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