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쏘나타/1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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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형 정, 후측면 | |
당시 현대자동차의 FR 중형 세단인 스텔라를 기반으로 하여 1.8/2.0L 4기통 시리우스 엔진을 탑재하고[4], 4단 자동변속기, 파워 스티어링, 크루즈 컨트롤, 운전석 및 후석 전동 시트[5], 전동식 원격조정 도어 미러, 전자식 오디오 및 3Way 스피커[6], 가스식 쇼크 업소버 등 당시로서는 고급 편의 사양을 탑재하였다.
본네트와 트렁크 덮개 및 전후 휀더의 등화류 주변에 스테인리스 몰딩을 둘렀다. 전조등 및 후미등 베젤과 라디에이터 그릴을 크롬 도금하였고, 전후 범퍼, 전후 휠아치[7]와 1~2열 창틀 등을 스테인리스 커버로 덮었고, 그에 맞춰 C필러에 부착되어 있던 환기구도 디자인을 변경하고 크롬 도금 처리하였다. 전면 백색 방향지시등[8], 트렁크 키 오너먼트[9][10]가 처음 적용되었으며, 북미 규정 때문에 CXL에서 삭제됐던 전조등 세척기가 부활되었고, 2000 모델에는 앞 범퍼에 안개등과 에어댐을 추가로 장착하였다. 뒷 범퍼에는 전 모델에 범퍼 립이 더해졌다.
측면 몰딩이 두터워졌고[11], 전후 휠아치와 락커 패널에서 외부로 드러나는 차체 부분이 완전히 가려지게끔 앞뒤 흙받이와 락커 패널 몰딩을 새로이 디자인하여 적용하였다.[12] 또, 애프터마켓용으로 출시된 삼선공업[13] 제품의 알루미늄 휠[14]을 순정화하여 최초로 공식 적용하였다.
트렁크 패널도 기존 스텔라의 것과 다르게 금형을 새로 제작했는데, 테일 램프의 디자인, 구조, 크기 등이 변경돼서 프레스 가공 및 타공 형상이 달라지면서 완만하게 경사졌던 번호판 패널의 각도가 가팔라져서 아랫쪽이 더 날카로워지고 깊어졌고, 백패널 가니쉬가 더해졌다. 따라서, 당시에 유행하던 로얄 XQ의 테일램프를 로얄 살롱의 것으로 바꾸는 것처럼 기존 스텔라의 테일 램프를 소나타의 것으로 단순히 바꿔 끼우는 것이 불가능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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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한글 차명을 쏘나타로 변경[16]함과 동시에 페이스리프트도 했다.
코티나에게 물려받은 전후 현가장치인 더블 위시본 & 4링크 현가장치를 맥퍼슨 스트럿 & 5링크형으로 개량했으며, 이로 인하여 기존 엔진룸 구조가 대폭 변경되었고 리어 액슬 주변 구조도 변경되었다. 전륜 디스크브레이크는 벤틸레이티드 디스크로 변경되었다.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ETACS[17], 트립 컴퓨터가 추가되었고, 외장 쪽으로는 백테 타이어, 투톤 바디 컬러가 적용되었다. 또한 크롬 & 실버로 도색되던 라디에이터 그릴을 크롬 & 블랙으로 도색을 변경 적용하였다. 또, 트렁크 키 오너먼트 문양도 각 그랜저의 것과 비슷한 대형 'H'로 변경되었다. 더불어, 1800과 2000으로 붙이던 배기량 표시도 '선진국식'[18]인 1.8 및 2.0으로 변경하였다.
코티나에게 물려받은 전후 현가장치인 더블 위시본 & 4링크 현가장치를 맥퍼슨 스트럿 & 5링크형으로 개량했으며, 이로 인하여 기존 엔진룸 구조가 대폭 변경되었고 리어 액슬 주변 구조도 변경되었다. 전륜 디스크브레이크는 벤틸레이티드 디스크로 변경되었다.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ETACS[17], 트립 컴퓨터가 추가되었고, 외장 쪽으로는 백테 타이어, 투톤 바디 컬러가 적용되었다. 또한 크롬 & 실버로 도색되던 라디에이터 그릴을 크롬 & 블랙으로 도색을 변경 적용하였다. 또, 트렁크 키 오너먼트 문양도 각 그랜저의 것과 비슷한 대형 'H'로 변경되었다. 더불어, 1800과 2000으로 붙이던 배기량 표시도 '선진국식'[18]인 1.8 및 2.0으로 변경하였다.
SONATA/1세대 | |
생산지 | |
코드명 | Y1 |
차량형태 | |
승차인원 | 5명[21] |
전장 | 4,578mm |
전폭 | 1,756mm |
전고 | 1,362mm |
축거 | 2,579mm |
윤거(전) | 1,445mm |
윤거(후) | 1,425mm |
공차중량 | 1,255kg |
타이어 크기 | 185/70SR13 |
플랫폼 | |
구동방식 | |
전륜 현가장치 | |
후륜 현가장치 | 5링크 리지드 액슬 서스펜션 |
전륜 제동장치 |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브레이크 |
후륜 제동장치 | |
파워트레인 | ||||||
엔진 | 엔진 형식 | 과급 방식 | 배기량 | 최고출력 | 최대토크 | 변속기 |
가솔린 | ||||||
1.8L 직렬 4기통 | 자연흡기 | 1,796cc | 100ps | 15kg·m | ||
2.0L 직렬 4기통 | 자연흡기 | 1,997cc | 110ps | 16.7kg·m | ||
마르샤의 직속 선배격이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마르샤는 최소한 쏘나타와 외관 디자인은 달리했지만 Y1 쏘나타는 기반 모델인 스텔라와 외관 디자인조차 동일했다. Y1이라는 코드명 자체가 스텔라의 것이다.[23] 따라서 1세대 쏘나타는 스텔라와 같은 차로서 그 상위 트림에 가까우며, 실제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인식했다. '스텔라의 상위 트림에 쏘나타라는 다른 이름을 붙여서 판 것이다.'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당시 대우자동차의 로얄 시리즈[24]가 점령하다시피 한 중대형 고급차 시장에 도전했으며, 경쟁 모델로 겁도 없이 로얄 살롱을 지목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중형차 모델인 스텔라는 스펙상 로얄 프린스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1979년 출시 당시부터 고급차라는 인식이 분명했던 로얄 시리즈와 달리 스텔라는 프레스토, 포니에서 이어지는 대중차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25]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톱 모델인 그라나다[26]와 스텔라라는 커다란 갭 사이에서 로얄 시리즈는 여전히 건재했고, 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출시한 차량이 바로 스텔라를 고급화한 1세대 쏘나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그랜저가 출시되기 1년 전인 그 시기에는 그라나다의 판매량은 많지 않았으며 중대형 고급차하면 대우 로얄 시리즈라는 선입관이 컸고, 쏘나타는 스텔라와 똑같은 차체에 엔진과 편의 장치만 변경한 상태여서 스텔라와의 차별성을 갖추지 못했다.[27]
애초에 스텔라와 같은 차체인 만큼 준대형차인 오펠 레코드를 기반으로 한 대우 로얄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차체 크기에도 열세이다 보니 사실상 실패한 모델이었으며 또한 가격도 당시에 고가에 속해서 판매량이 높지 않았다. 특히 차체 크기가 로얄 시리즈보다 열세인 만큼 실내공간이나 뒷좌석 레그룸에서도 불리했었는데, 당시의 대한민국이라면 이 정도 급의 차량도 쇼퍼드리븐 수요가 많았던 만큼[28] 이런 면에서도 치명적이었다.
당시 로얄 살롱 2.0L 자동변속기 사양이 1,278만 원인데, 쏘나타 2.0L 자동변속기 사양이 1,298만 원[29]으로 로얄 살롱보다 차체 크기는 작으면서 가격은 더 비쌌다. 그라나다가 단종됐을 무렵(1986년 1~2월)에는 자동차 수입 자유화가 실시되기도 이전이었던 만큼 잠시나마 국내 최고가 승용차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쏘나타 출시 5개월 후인 1986년 4월 당시 판매량은 하루 평균 27대로 의외로 로얄 살롱의 하루평균 32대와 크게 차이나는 수준은 아니었다. #
사실 이렇게 보면 쏘나타의 판매량이 로얄 살롱에 크게 밀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에게 안 팔리는 차, 쉽게 보기 어려운 차로 인식된 것을 보면 실제로는 쏘나타가 많이 굴러다녔지만 대부분 스텔라로서 인식됐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쏘나타 출시 5개월 후인 1986년 4월이면 이미 대우에서는 로얄 살롱보다 상급의 고급차로 트립 컴퓨터와 전자제어식 엔진(EFI)을 장착한 로얄 살롱 슈퍼를 이미 내놓은 시점이고 기존의 로얄 살롱 구매층들이 로얄 살롱 슈퍼로 대거 옮겨가던 시점이었다.[30]
쏘나타 1세대(Y1)는 스텔라(Y1)의 고급형 버전이었다. 코드명이 동일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자동차 측에서도 스텔라와 쏘나타를 같은 차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외관도 기본적으로 똑같았고 단지 크롬 몰딩 장식이 더 붙어있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스텔라와 쏘나타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 당시 쏘나타를 샀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들 스텔라라 불러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차주들이 많았다. 특히 스텔라 APEX나 스텔라 88 같은 상위 트림이나 후기형은 쏘나타와 구별이 쉽지 않았다.[31]
결과적으로 스텔라 1세대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소나타 1세대는 실패했다. 그렇게 고급형 소나타는 사라지고 대중형 스텔라가 살아남아 2세대로 이어졌지만 2세대의 이름이 스텔라가 아닌 쏘나타로 정해진 것은 외국 바이어들이 쏘나타라는 명칭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32]
Y1 소나타는 실패한 차였기에 현대차에서도 거의 '버린 자식' 취급하다가 2003년 이후 Y1 소나타를 정식으로 족보에 1세대로 넣었고, 8세대부터 코드명을 개정하여 DN8로 명명함으로서 꼬여버린 족보가 정리됐다.
당시 대우자동차의 로얄 시리즈[24]가 점령하다시피 한 중대형 고급차 시장에 도전했으며, 경쟁 모델로 겁도 없이 로얄 살롱을 지목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중형차 모델인 스텔라는 스펙상 로얄 프린스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1979년 출시 당시부터 고급차라는 인식이 분명했던 로얄 시리즈와 달리 스텔라는 프레스토, 포니에서 이어지는 대중차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25]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톱 모델인 그라나다[26]와 스텔라라는 커다란 갭 사이에서 로얄 시리즈는 여전히 건재했고, 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출시한 차량이 바로 스텔라를 고급화한 1세대 쏘나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그랜저가 출시되기 1년 전인 그 시기에는 그라나다의 판매량은 많지 않았으며 중대형 고급차하면 대우 로얄 시리즈라는 선입관이 컸고, 쏘나타는 스텔라와 똑같은 차체에 엔진과 편의 장치만 변경한 상태여서 스텔라와의 차별성을 갖추지 못했다.[27]
애초에 스텔라와 같은 차체인 만큼 준대형차인 오펠 레코드를 기반으로 한 대우 로얄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차체 크기에도 열세이다 보니 사실상 실패한 모델이었으며 또한 가격도 당시에 고가에 속해서 판매량이 높지 않았다. 특히 차체 크기가 로얄 시리즈보다 열세인 만큼 실내공간이나 뒷좌석 레그룸에서도 불리했었는데, 당시의 대한민국이라면 이 정도 급의 차량도 쇼퍼드리븐 수요가 많았던 만큼[28] 이런 면에서도 치명적이었다.
당시 로얄 살롱 2.0L 자동변속기 사양이 1,278만 원인데, 쏘나타 2.0L 자동변속기 사양이 1,298만 원[29]으로 로얄 살롱보다 차체 크기는 작으면서 가격은 더 비쌌다. 그라나다가 단종됐을 무렵(1986년 1~2월)에는 자동차 수입 자유화가 실시되기도 이전이었던 만큼 잠시나마 국내 최고가 승용차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쏘나타 출시 5개월 후인 1986년 4월 당시 판매량은 하루 평균 27대로 의외로 로얄 살롱의 하루평균 32대와 크게 차이나는 수준은 아니었다. #
사실 이렇게 보면 쏘나타의 판매량이 로얄 살롱에 크게 밀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에게 안 팔리는 차, 쉽게 보기 어려운 차로 인식된 것을 보면 실제로는 쏘나타가 많이 굴러다녔지만 대부분 스텔라로서 인식됐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쏘나타 출시 5개월 후인 1986년 4월이면 이미 대우에서는 로얄 살롱보다 상급의 고급차로 트립 컴퓨터와 전자제어식 엔진(EFI)을 장착한 로얄 살롱 슈퍼를 이미 내놓은 시점이고 기존의 로얄 살롱 구매층들이 로얄 살롱 슈퍼로 대거 옮겨가던 시점이었다.[30]
쏘나타 1세대(Y1)는 스텔라(Y1)의 고급형 버전이었다. 코드명이 동일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자동차 측에서도 스텔라와 쏘나타를 같은 차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외관도 기본적으로 똑같았고 단지 크롬 몰딩 장식이 더 붙어있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스텔라와 쏘나타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 당시 쏘나타를 샀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들 스텔라라 불러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차주들이 많았다. 특히 스텔라 APEX나 스텔라 88 같은 상위 트림이나 후기형은 쏘나타와 구별이 쉽지 않았다.[31]
결과적으로 스텔라 1세대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소나타 1세대는 실패했다. 그렇게 고급형 소나타는 사라지고 대중형 스텔라가 살아남아 2세대로 이어졌지만 2세대의 이름이 스텔라가 아닌 쏘나타로 정해진 것은 외국 바이어들이 쏘나타라는 명칭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32]
Y1 소나타는 실패한 차였기에 현대차에서도 거의 '버린 자식' 취급하다가 2003년 이후 Y1 소나타를 정식으로 족보에 1세대로 넣었고, 8세대부터 코드명을 개정하여 DN8로 명명함으로서 꼬여버린 족보가 정리됐다.
1986년 2월 생산 모델부터 호칭을 현재와 같은 쏘나타로 바꾸었다고 한다. 나중에 Y2 쏘나타가 대박이 나면서 이때부터 현대기아는 'S 발음이 나는 자음 + 모음'으로 시작되는 차명은 한글로 표기할 때 ㅆ을 쓰는 전통이 생겨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예: 싼타모, 싼타페, 쏠라티, 넥쏘, 투싼, 쎄라토, 쏘울, 쏘렌토). 이는 해외 시장 전략 차종(예: 쏠라리스, 쌍트로)도 마찬가지다.
물론 '자음 + 모음'이 아닌 '자음 + 자음'이라 S 발음이 '스'로 되는 스쿠프, 프레스토, 스펙트라, 카렌스, 스타렉스, 스타리아, 스타게이저, 아슬란, 투스카니, 그레이스, 에쿠스, 엑스터, 벨로스터, 쿠스토, 커스틴, 유니버스, 오피러스, 스토닉, 스팅어, 제네시스, 캐스퍼, 카스타, 엑스트렉 등에는 적용하지 않으며, 슈퍼 에어로시티 같이 '슈퍼'라는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발음이 각인된 일반 명사 또한 적용하지 않는다.
셀토스 정도가 이 규칙에서 예외라면 예외. 세피아, 록스타, 슈마, 크레도스, 스포티지, 베스타, 세레스, 브리사 등 기아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되기 이전에 이름이 붙은 차량들도 해당되지 않는다.[33]
물론 '자음 + 모음'이 아닌 '자음 + 자음'이라 S 발음이 '스'로 되는 스쿠프, 프레스토, 스펙트라, 카렌스, 스타렉스, 스타리아, 스타게이저, 아슬란, 투스카니, 그레이스, 에쿠스, 엑스터, 벨로스터, 쿠스토, 커스틴, 유니버스, 오피러스, 스토닉, 스팅어, 제네시스, 캐스퍼, 카스타, 엑스트렉 등에는 적용하지 않으며, 슈퍼 에어로시티 같이 '슈퍼'라는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발음이 각인된 일반 명사 또한 적용하지 않는다.
셀토스 정도가 이 규칙에서 예외라면 예외. 세피아, 록스타, 슈마, 크레도스, 스포티지, 베스타, 세레스, 브리사 등 기아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되기 이전에 이름이 붙은 차량들도 해당되지 않는다.[33]
[ 연대별 구분 ]
[ 차급별 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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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나다 수출명[2] 대만 수출명[3] 1984년 5월에 포드에서 부품 공급 중단을 통지했으며, # 그나마 부품 공급을 조금 더 연장해서 1985년 연말까지 생산했었던 것이었다.[4] MPI는 아니었다. Y2 쏘나타부터 MPI가 탑재된다.[5] 운전석과 동반석에는 한국 차 최초로 프레임형 헤드레스트가 장착되기도 하였다.[6] 스텔라 프리마와 CXL에 골든팩 사양에만 적용되던 것을 기본으로 장착하였고, 여기에 후석용 오디오 리모컨이 추가되었다.[7] 몇몇 스텔라 오너는 이 부품을 구하여 붙이고 다녔을 정도로 신선한 디자인이었지만, 이후 무차별적으로 등장한 타 차종용 사제품들은 되레 시각 공해에 가까웠다.[8] 이것은 첩보를 입수한 대우자동차가 프린스를 페이스리프트하면서 먼저 써먹었다.[9] 트렁크 덮개의 키홀을 덮는 사각형 뚜껑으로, 대우차에서도 1987년 로얄 시리즈를 대규모로 페이스리프트하면서 로얄 & 수퍼살롱에 모양만 따라 붙였다.[10] 블랙레터로 된 'S' 자와 음표가 조합된 문양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파일럿 카의 것은 시판 모델과 다른 디자인이었다.[11] 중량 증가로 기존 양면테이프 대신 차체에 타공하여 장착하였다.[12] 당시 새차를 출고하면 휠 아치 모서리와 락커 패널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서 카센터에서 금속 몰딩을 덧대는 경우가 많았는데, Y1 소나타의 경우는 전후 휀더 몰딩과 전용 락커 패널 몰딩 및 흙받이가 부착되어 출고되었기에 굳이 이런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13] 국내 최초로 알루미늄 휠을 생산한 업체였다. 여러 차례 법정 관리와 소유주 변동을 거쳤음에도, 현재까지 살아 있다. 현재 후신은 대원알텍이다. # [14] 1800 모델에는 스틸 휠 및 플라스틱 휠커버를 적용하였다.[15] 이상의 변경 사항은 스텔라 APEX에서 먼저 적용하고, 이후 87년형으로 페이스리프트하면서 확대 적용되었다.[16] 다만, 차량가격표에는 85년 출시 때부터 '쏘나타'로 표기되어 있었다.[17] Electronic Time & Alarm Control System(전자식 시간 및 경보 제어장치)으로, 운전 중에 발생하는 문제들 - 도어가 제대로 안 닫힌 상태로 혹은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출발할 경우 경고음, 시속 20km 초과시 모든 도어가 자동으로 잠김, 도어를 닫으면 실내등과 바닥등이 바로 소등되지 않고 서서히 어두워지며 소등되는 기능 등 - 을 일괄로 관리하도록 보드 하나로 통합한 장치이다. 그랜저에 처음 적용되었고, 이후 기아 콩코드에도 유사한 기능이 있는 ETWIS(Electronic Time & Warning Indicator System)가 장착되었다.[18] 당시 대한민국은 아직 개발도상국 지위였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저 표현은 현대차가 한 것 같지는 않고 모 언론 매체에서 한 표현으로 보인다. 실제로 당시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배기량에 소숫점 표기가 유행이었기도 했다.[19] 그 동안 1.6L 엔진을 탑재했기 때문에 다소 파워가 약했지만 2.0L 엔진으로 파워를 보강했을 뿐이다. 애초에 '소나타'는 그냥 '스텔라'이다. 한국에서 상위 차종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소나타라는 다른 이름을 붙였을 뿐이며, 물론 이는 한국 시장에서(도) 먹히지 않았다.[20] 다만, 크롬 장식이 없을 뿐, 그 외의 모든 부분은 그냥 소나타 그대로였다. 애초에 소나타는 스텔라에 배기량이 큰 엔진을 얹은 것의 내수 전용 이름이었을 뿐이고, 해외에서는 새로운 이름이 붙을 이유가 없었다.[21] 성인기준 전 2명 + 후(최다) 3명[22] 전술했다시피 포드 코티나 기반이다.[23] 당시에는 Y였다. 나중에 2세대 쏘나타가 Y2가 되면서 자연스레 Y1이 된 것이다.[24] 독일 오펠에서 개발한 준대형차인 레코드 기반이다.[25] 물론 스텔라는 당시 중산층을 공략하여 이러한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두긴 했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쏘나타 출시 8개월 후에 로얄 시리즈를 제대로 겨냥한 그랜저를 출시하여 최고급 대형차 시장도 결국 장악해 나가게 된다.[26] 그랜저가 출시되는 것은 쏘나타 출시 약 8개월 후이며, 쏘나타 출시 당시의 톱 모델은 그라나다였다.[27] 그 당시만 해도 자가용차는 부의 상징이어서 소위 뽀다구가 중시되는 분위기였다. 즉, 주행성능, 편의장치 등은 별로 어필하지 못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엔진 퍼포먼스를 올리고 고급차에 준한 편의장치를 채택했어도 차를 보는 제 3자가 "그거 스텔라와 비슷하게 생겼구만"하는 평가를 내린다면 그냥 그 급의 차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소형차 엔진이라도 중형차급의 차체, 중형차 엔진이라도 대형차 급의 차체를 가진 차량이 유행했었는데, 하급 모델인 스텔라 차체에 2,000cc 엔진을 얹었던 쏘나타 1세대와 정 반대로 상급 모델인 레코드 로얄의 차체에 1,500cc 엔진을 얹은 로얄 XQ는 절름발이 세단이라는 오명이 붙었지만 날개돋친 듯 잘 팔려나갔다.[28] 광고에서도 VIP를 위한 고급 승용차라는 문구라던가, 뒷좌석 파워시트 같은 옵션만 봐도 쇼퍼드리븐 수요도 어느 정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29] 참고로 당시 로얄 살롱 수동 모델은 1,245만 원, 소나타 수동 모델은 1,267만 원이었다.[30] 당시의 이런 뽀다구 중시 상황은 그 반대로도 적용된다. 즉 사회적 지위상 '뽀다구'를 내면 안 되는 사람들은 지불 능력이 있어도 뽀다구가 나지 않는 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똑같이 쏘나타 Ⅱ의 플랫폼을 가지고 외관을 약간 바꾸고 편의장치를 그랜저 급으로 향상해서 내놓은 현대자동차에서 소위 쏘나타를 타기에는 위신이 서지 않을 것 같고 그랜저를 타기에는 상사에게 눈치가 보이는(그 당시에는 아무리 부자라도 직급이 높은 사람보다 좋은 차를 타는 것이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고, 그런 보수적인 분위기의 회사나 업종은 지금도 상당히 남아 있다.) 사람들을 위해 만든 마르샤라는 실패한 차종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31] 스텔라 APEX나 88같은 상위트림, 후기형 모델은 그릴이 크롬 몰딩으로 되어 있어서 쏘나타와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쏘나타는 그릴 이외에 범퍼까지 크롬 몰딩이 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이것까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32] 물론, 1세대에서 "소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까지 나온 이상, 명칭을 "쏘나타"로 완전히 고정한 즉, 앞을 된소리로 고정해서 부른 것은 확실하며, 이후 몇몇 차량 이름이 "싼타모", "싼타페"같은 된소리가 들어간 것도 이에 대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33] 물론 세피아가 현역인 1990년대 당시 대중들은 쎄피아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았다. 각종 문서에 그렇게 적지 않았을 뿐. 여담으로 외래어의 경우 어두의 자음을 된소리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데(예:gas를 까스라 발음) 쏘나타 역시 소나타로 출시될 시절에도 쏘나타로 발음하는 예가 많았다.[34] 이 링크의 블로그 제목과 이미지 속 제품에는 스텔라라고 돼 있지만, 실물은 Y1 소나타이며, 초기에는 소나타로 발매했고, 미니카의 앞뒤 번호판에도 'SONATA'라고 인쇄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35] 5,000만 명이 살고 2,400만대의 자동차가 존재하는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서 200~300대는 사실상 눈씻고 찾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숫자다. 게다가, 도난이나 압류 등의 이유로 차는 사라졌지만 제대로 말소가 안 된 차량들도 약간씩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잔존개체는 더 적게 계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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