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쏘나타/2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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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모델별 설명
2.1. 초기형 (1988~1991)2.2. 페이스리프트: 뉴 쏘나타 (1991~1993)
3. 특징
3.1. 비대칭 로고 휠3.2. 차가 좋다3.3. 수출시장에서의 고전
4. 라인업
4.1. 초기형4.2. 페이스리프트: 뉴 쏘나타
5. 제원
5.1. 초기형5.2. 페이스리프트: 뉴 쏘나타
6. 기타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1988년에 출시된 현대 쏘나타의 2세대 모델로, 프로젝트명은 Y2다.
 
 
 
 

2. 모델별 설명[편집]

 
 
 
 

2.1. 초기형 (1988~1991)[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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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2
전면부[1]
후면부[2]
내수형 광고[3][4][5]
21세기 하이테크 세단
그랜저의 메카니즘 그대로―
그랜저의 명성 그대로―

현대 스텔라(Y1)의 후속 모델로 개발됐다. 프로젝트명은 Y2. 2세대 쏘나타(Y2)가 스텔라를 계승한 차량일 뿐만 아니라 1세대 쏘나타가 대한민국에서 이미 실패한 차명임에도 불구하고, Y2가 스텔라가 아닌 쏘나타라는 차명으로 출시된 것은 당시 대중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현대차 측의 설명으로는 여러 최종 차명 후보[6] 중에서 제일 부르기 쉽다는 미국 딜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쏘나타로 결정됐다고 알려져 있다.[7][8]
미국 수출형 광고

1988년 7월에 출시됐으며 각 그랜저전륜구동 플랫폼을 공유한다.[9] 덕분에 이전의 Y1 쏘나타와 달리 차체 크기가 대우 로얄 프린스나 로얄 살롱의 전기형과 맞먹을 정도로 커지게 됐다. 출시 이후 기아산업콩코드대우자동차로얄 프린스를 단숨에 제압하며 판매 돌풍을 일으켜 1세대 쏘나타의 실패를 만회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형 세단으로서 그 위치를 잡게 된다.

1993년 4월 쏘나타Ⅱ에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총 57만 4,973대가 생산됐다.

출시 당시에는 그냥 '쏘나타'로 불렸으나 이후 후속 모델들이 쏘나타 2, 3로 나오면서부터는 거의 '쏘나타 1'으로 통칭되는 경우가 많았다.[10] 하지만 실질적인 1세대인 스텔라나 1세대 쏘나타를 건너뛰는 네이밍이기 때문에 족보에 혼선이 발생했다. 그래서 한동안 Y2를 1세대로 보는 경우와 Y1을 1세대로 보는 경우가 공존하며 혼선을 빚었다. 3세대(Y3)가 쏘나타Ⅱ로 출시된 후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쏘나타Ⅲ이 되면서 어거지로 모델명이 세대에 맞춰지게 됐고 이후 4세대부터는 EF 등 별도의 코드명을 넣었다. 그리고 2003년 이후 현대차에서 1세대 쏘나타를 정식으로 족보에 1세대라고 넣었고, 8세대부터 코드명이 또 개정되면서 DN8이라고 명명해 꼬여버린 족보가 정리됐다.

구동 계통이 전륜구동으로 변경됐으며, 1988년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MPI가 탑재된 1.8L와 2.0L 뉴-시리우스 엔진이 장착된 두 가지 트림으로 출시됐고, 수출용으로는 2.4, 3.0L[11]의 두 가지 트림으로 구성됐다. 1989년 1월에는 89년형이 출시되며 그릴의 HYUNDAI 로고가 삭제되고 1989년 7월에는 90년형 모델로 바뀌면서, 부식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커팅 재질의 알로이 휠이 실버 페인팅으로 제조 방식이 바뀌었고, 라디에이터 그릴이 크롬 두 줄 형태로 바뀌었다. 프론트 범퍼 우측에 숨겨져 있던(?) 음각된 HYUNDAI 로고[12]가 드러나도록 전후 범퍼를 올 바디컬러로 적용하였다.[13] 뒤이어, 1990년 7월부터는 스티어링 휠과 시트 형상이 바뀐 91년형 모델과 2.4L 모델이 출시됐으며 해당 모델은 LCD 계기판, 가죽 시트 등으로 고급스럽게 꾸민 쏘나타의 최상위 트림이었다.[14]

알루미늄 휠은 바람개비형인데[15], 좌측과 우측이 반대 방향으로 되어 있었다.[16] 종종 이것저것 방향의 구분 없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차들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쏘나타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고급차였기 때문에 별도의 택시 모델은 존재하지 않았다. 택시 모델은 후륜구동 차량인 스텔라가 대신했다.[17] 후술할 페이스리프트 버전인 뉴 쏘나타에 쏘나타 최초로 택시 모델을 선보이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 모델인 쏘나타Ⅱ와 쏘나타Ⅲ에 비해 쥐도 새도 모르게 일찍 사라진 게 허다했다.

한국 광고에서 넓은 실내 공간이 강조되는데[18] 사실 LF 쏘나타 세대 이후의 쏘나타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19]

각 그랜저의 플랫폼을 그대로 이용했기 때문에, 최초 출고한 Y2 차량들 중 일부는 배기구가 왼쪽에 있었다. 머플러는 오른쪽에 있지만, 배기구를 왼쪽으로 길게 구부려서 설계한 각 그랜저의 것을 그대로 쓴 탓이다. 이후 오른쪽에 있는 머플러에 바로 짧은 배기구를 달고 범퍼 립도 수정하는 설계변경이라고 쓰고 원가절감이라고 읽는다[20]을 하여 배기구는 오른쪽에 있게 된다.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현대자동차가 공식 자동차 공급업체로 지정되면서, Y2 쏘나타 2대가 그리스까지 보내져서 성화 체화식에 참석 및 봉송길에 동행하기도 했다. 이 차량들을 포함한 1.8i 모델 152대와 2.0i 모델 100대가 올림픽조직위원회에 지원되었다. 올림픽까지만 쓰인 차량은 15% 할인, 이어서 열린 패럴림픽까지 쓰인 차량은 20% 할인하여 사전 계약한 고객들에게 판매되었다. 올림픽 지원차들은 마감 전에 이미 계약이 끝났을 정도로 높은 인기에 팔려나갔다.[21] #
미주 한인시장 광고

미주 한인시장 광고가 하나 남아 있다. 해당 광고는 미국 내 한인 광고 전담 대행사였던 '팬콤'에서 제작했던 광고이다. 해당 광고 외에도 엑셀, 엘란트라스쿠프의 광고를 제작한 적이 있었다. 이후 해당 회사는 2000년대~2010년대에는 포드의 미주 한인시장 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자동차 등록원부 상 표기명은 2가지[22]였다.

국내 내수형은 앞뒤문에 전부 파워윈도우가 적용되었지만 미국수출형은 기본형 한정으로 앞뒤문에 수동윈도우가 적용되었다.

쏘나타 스틸휠에 장착되는 휠커버들은 범용성이 높은 휠커버들로 베르나 2세대, 엑센트 2세대, 아반떼 1 ~ 2세대, 티뷰론, 쏘나타 3 ~ 4세대 초기형, 싼타모, 라비타, 포터 2 ~ 3세대, 그레이스, 스타렉스 1세대 전기형 ~ 중기형 등의 스틸휠에 장착되는 사례가 많다.
 
 
 
 

2.2. 페이스리프트: 뉴 쏘나타 (1991~1993)[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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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차의 감동을 더해주는 쏘나타 골드

1991년 2월에는 기존 모델에 비해서 더욱 날카로워진 디자인으로 페이스리프트가 된 뉴 쏘나타가 출시됐다. 헤드라이트와 미등은 오히려 둥글둥글해졌는데? 전후면 디자인을 변경하면서 본네트, 프론트 펜더, 리어 펜더 디자인을 대폭 변경했으며[23], 테일램프는 리어 펜더쪽 아랫부분을 조금 길게 연장하고 각 그랜저와 비슷하게 위아래를 거꾸로 뒤집으면서 후진등의 크기를 작게 축소시키고, 번호판 주위에 있던 흑색 가니시 부분을 적색 및 오렌지색으로 채워놓은 형태로 바뀌었다.

아날로그 계기판도 초기형은 180km/h까지만 표기된 반면 뉴 쏘나타는 200km/h까지 표기되었다.

헤드램프와 연결된 라디에이터 그릴은 바디컬러 베젤을 적용하여 분리형으로 변경되었고, 내부는 격자형으로 디자인되면서 타원형 현대 엠블럼이 적용되었다. 초기에는 SOHC만 존재했으나, 같은 해 7월에 137마력 2.0L DOHC 엔진이 추가되면서 DOHC 트림이 신설됐고,[24][25][26] ABS도 장착됐다. 수출형으로는 그랜저에 장착된 164마력 3.0L V6 SOHC 사이클론 엔진이 장착됐다.

1991년형의 스틸휠 휠커버는 1995년형 그레이스에 고대로 차용되었다.

수출용 모델 알루미늄 휠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내수용 알루미늄휠과 동일하고, 다른하나는 내수용 알루미늄 휠을 거울대칭한 형상이다.

5개월 뒤인 동년 12월에 "DOHC" 트림이 "GOLD" 트림으로 재편성됐으며, "'GOLD"' 트림에는 ABS와 4륜 디스크 브레이크, 8+9인치 탠덤 브레이크 부스터, 스티어링 휠 오디오 리모콘 스위치를 적용하면서, 그랜저에 버금가는 사양들로 무장하여 경쟁 차종을 압도했다.

이듬해인 1992년 7월에는 라디에이터 그릴이 바뀌고[27], 도어 세이프티 빔 등이 추가된 93년형 모델이 등장했으며, 이때 1.8L의 휠 커버 디자인도 2.0L과 비슷한 9 스포크 타입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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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쏘나타 모범 택시 트림 광고 (1992년)
Heritage Sona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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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전면부
택시 후면부

뉴 쏘나타의 경우 택시 트림이 정식으로 도입된 최초의 쏘나타로 1991년 4월에 일반 택시용 트림의 판매가 시작됐으며, 1992년에는 모범택시 제도의 시행으로 모범택시 트림이 추가되면서 상당히 많이 팔려나가게 된다. 덕분에 뉴 쏘나타의 경우 일반 택시보다 모범택시로서 훨씬 많이 눈에 띄었다고[28][29] 볼 수 있는데, 후속작인 쏘나타Ⅱ의 경우 모범택시가 드물어 일반 택시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과는 정반대인 셈이다.[30] 물론 일반택시로 아주 보기 드문 수준은 아니었다. 중형 택시 보급이 빠르고 보급률이 높은 서울이나 광역시급의 대도시에서는 일반택시로 다니는 쏘나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여담으로 페이스리프트 모델에만 정식으로 택시 사양을 내놓은 적은 앞서 말한 사례 외에도 2024년에 쏘나타 DN8의 사례가 있다. 차이점으로는 쏘나타 DN8의 경우 베이징현대에서 역수입한다는 점.

5단 수동변속기의 감속비 세팅이 힘을 제대로 발휘한다기보다는 최대한 차를 정숙하게 만들고자 한 듯하다는 평이 있다. 저단을 숏기어로 세팅하여 중저속에서의 엔진음을 억제하도록 하고 고단을 항속 주행용 기어비로 맞춘 듯하다.

판매 당시 차량 가격은 1.8 GLi 895만 원, 2.0 GLSi 1,096만 원, 2.0 골드가 1,365만 원, 택시는 중형 790만 원, 모범 870만 원이었다.

자동차 등록원부 상 표기가 3가지[31]이다.

뉴 쏘나타 스틸휠에 장착되는 휠커버들도 역시 범용성이 높은 휠커버들이어서 베르나 2세대, 엑센트 2세대, 아반떼 1 ~ 2세대, 티뷰론, 싼타모, 라비타, 포터 2 ~ 3세대, 그레이스, 스타렉스 1세대 전기형 ~ 중기형 등의 스틸휠에 장착되는 사례가 많다.
미주 한인시장 광고

페이스리프트 사양도 미주 한인 시장 광고가 남아 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시리즈 MVP 부상으로 이 차량을 제공하였다. 이후 쏘나타는 1998년까지 현대자동차가 지원을 할 때마다 한국시리즈 MVP에게 쏘나타 차량을 부상으로 제공한 바 있었다. 특히 93년 MVP인 이종범은 97년에 쏘나타 III를 부상으로 받은 바 있었다.

여담으로, 이글 브랜드로 배지 엔지니어링될 뻔했다. 91년부터 96년까지 연 3만대를 현대자동차 브로몽 공장에서 생산해 지프-이글 딜러점을 통해 판매할 계획이었는데, 1989년 나왔던 이 계획은 급변하는 시장 상황으로 인해 사장되었다고 한다.#
 
 
 
 

3. 특징[편집]

 
 
 
 

3.1. 비대칭 로고 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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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형의 휠(치우쳐진 형태)
뉴 쏘나타 택시의 휠 커버
사람들이 Y2 쏘나타 하면 기억하는 것 중 하나가 로고(현대 레터링)가 오른쪽으로 쳐져 있는 휠이다. 이런 점 덕에 삐딱로고 휠이라는 별명이 있기도 했다. 페이스리프트 전의 쏘나타 Y2 알루미늄 휠(고급 사양)은 휠 허브의 음각 로고(현대의 로마자 스펠링)가 오른쪽에 있었다.[32] 게다가 뉴 쏘나타로 넘어가면서 가운데로 갔다가 뉴 쏘나타 택시 모델[33]에 쓰이는 휠 커버는 또 오른쪽으로 치우친 형태로 나왔으며, H로고가 아니었다. 이런 삐딱한 로고 형태의 휠은 쏘나타 2에 가서 로고가 정중앙에 박힌 형태로 대거 바뀐다.

오른쪽 로고 휠은 구형 Y2 쏘나타의 트레이드 마크(?)인 듯한데, 당시 쏘나타뿐만 아니라 각 그랜저 V6 3.0L에도 적용됐다. 물론 중형 이상의 세단 모델들에만 오른쪽 휠이 적용됐으며 준중형인 엘란트라나 소형인 엑셀, 그리고 RV 모델인 그레이스 등은 저런 휠을 가지지 않았다. 의외의 사실은 쏘나타가 대박을 치자, 콩코드, 에스페로, 프린스 등 여러 중형급 자동차들의 휠과 휠캡의 로고도 비대칭 형태가 생겼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해외에서도 1980~1990년대에는 무슨 대유행이었던 것인지 폭스바겐이나 아우디, 홀덴, 닛산 등의 잘 나가는 브랜드들도 오른쪽 휠을 가진 차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일례로 닛산 세드릭 Y31 모델 역시 저런 휠이었으며, 아우디 100 세단[34] 역시 비슷한 휠을 단 사양이 적지 않았다.

이런 휠은 보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는데, 균형도 맞지 않고 고급성에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었고, 비대칭이라 신선하다거나 빨라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점 덕인지 골프 1세대 GTI 모델[35]의 휠에도 적용된 적이 있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현재의 롤스로이스인데, 롤스로이스는 휠 허브의 마크가 달리는 상황이라도 정자세를 유지하도록 안에 베어링과 무게추를 달았다고 한다.

이런 삐딱로고 휠은 어색하다는 평으로 인해 현대 타원형 로고가 등장한 이후 계속 자취를 감추었다가 현대의 형제 브랜드인 기아의 EV9에 적용되며 또 다른 트렌드로 부활했다.[36] 기아 사측에서는 새로 개편된 기아 로고가 이전 로고와 다르게 가운데 넣을 경우 어색하다는 시각으로 인해 휠 허브 한쪽으로 치우치게 놓았다고 한다.[37]
attachment/현대 쏘나...
attachment/현대 쏘나...
초기형(1.8)의 로고 휠 커버
뉴 쏘나타의 로고 휠
오히려 초기형의 휠 커버와 뉴 쏘나타의 알루미늄 휠은 로고가 가운데로 제대로 박혀 있었다.
 
 
 
 

3.2. 차가 좋다[편집]

 
 
 
 
현재 쏘나타의 "모두가 좋아하는 중형차", "진정한 국민차" 이미지는 바로 이 시기부터 시작됐다. 출시된 1988년은 아직 3저 현상의 끝물이 남아있었던 시기에다가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면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며, 정치적으로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상당히 개방적인 분위기와 문화가 급격하게 사회를 뒤덮기 시작한 시기였다.

게다가 1987년 노동계의 강력한 투쟁 이후 실질 임금 역시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고 서울을 중심으로 집이라도 한 칸 있는 이들은 치솟는 주택 및 토지가 때문에 입이 귀에 걸리던 시기였다. 원래 경제적 여유가 좀 생기면 생존에 필요한 것 외로 관심을 돌리는 법. 자가용에 대한 관심은 당시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과 함께 시대적 변화에 따라 생겨난 대표적인 관심사였다.

때문에 당시 차량의 상태가 어찌됐건 이전 시기에 자가용을 구입했던 가정들은 자가용을 교체하려는 이들이 늘어났는데 이 시기의 자가용 소비자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 사실 이 시기 이전까지 자가용을 교체한다는 개념 자체가 잘 없었다. 국산차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포니1~2가 출시된 것이 1975년이고, 그 이전 시기에는 일부 상류층 중심의 수입 중대형차만 있던 상황으로 사실 포니 시리즈를 보유한 중산층 가정들은 차의 상태가 슬슬 맛이 갈 것 같지만, 차를 바꿔본 경험은 사실 전무한 상황에다가 새로 나오는 모델들은 대부분 포니와 같은 급의 소형차인 엑셀, 프레스토 등으로 그다지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가운데 가계 형편도 좀 나아지고 한 상황에서 나타난 쏘나타라는 중형 모델은 그야말로 중산층 가정들의 가려운 곳을 확실하게 긁어주는 모델이었다.

사실 쏘나타 이전에 나온 포니엑셀이나 프레스토 등의 모델은 사실상 포니와 동급인 데다가 해당 모델이 나온 시점은 지금과 같이 차량 교체가 빈번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동사의 그랜저나 대우자동차의 로얄 살롱, 슈퍼 살롱 같은 "로얄 시리즈"는 가격이 넘사벽으로 중산층이 타기에는 부담스럽고,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에스페로는 디자인이 좀 날려서 보수적인 이들에게는 역시 부담[38]스러웠다.

그렇다고 프린스는 쏘나타 대비 적재공간이나 실내 거주성이 떨어지고 중형차로썬 튀는 디자인이라 이래저래 쏘나타에 수요가 집중될만한 상황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대우자동차의 "로얄 프린스"와 "로얄 듀크" 등이 경쟁자가 될 수 있었으나 당시 대우자동차 승용차에 대한 다소 좋지 못한 인식에다가 로얄 시리즈의 부담스러운 이미지까지 겹쳤고 중산층들을 타겟으로 내놓은 로얄 듀크는 큰 차체에 비하면 빈약한 엔진 성능으로 인하여 그다지 라이벌이라고 하기에는 뭐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그랜저의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 책정을 매우 공격적으로 하면서 기존의 Y1 쏘나타는 물론이고 로얄 프린스나 콩코드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한 것도 신의 한 수가 됐다. 3년 뒤인 1991년에야 대우자동차에서 로얄을 떼어내고 프린스를 출시하지만[39] 이미 시장은 쏘나타가 대세가 된 지 오래였다.

요약하자면 쏘나타(특히 Y2)의 성공은 대내외적 경기 호황 +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40]의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처한 현대자동차의 성공적인 상품기획과 마케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41][42]
 
 
 
 

3.3. 수출시장에서의 고전[편집]

 
 
 
 
현대자동차에서 Y2가 두각을 드러내고 수출도 많이 하게 되자, 북미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근처에 있는 브로몽에 연간 10만 대 규모의 현지공장을 1986년 9월에 착공하여 1989년 7월에 완공했고, 이 곳을 북미 수출 기지로 활용하고자 했다. 따라서 Y2는 대한민국 외의 지역에서 생산된 최초의 한국산 승용차이다. 당시 3억 2,000만 캐나다 달러(당시 환율로 약 2억 9,000만 달러)가 투입됐다. 퀘벡 주 정부에서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부지를 단돈 1달러에 제공하는 특혜를 줬다.

그러나 오히려 현대자동차의 이 전략은 실패하고 말았다. 1989년 1만 5천대, 1990년 2만 7천대, 1991년 2만 8천대, 1992년 1만 5천대, 1993년 1~9월 1만 4천대 등으로 실적이 저조했다. 당시 북미 시장에서 일본 회사들의 미국 현지생산이 늘어나 공급 과잉 상태였던 북미 시장에서 현대자동차는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외면받았다.[43]
북미형 1989년식 2.4 GLS 트림 리뷰[44][45]
영어 자막이 있는 동일 연식의 자동변속기 모델의 캐나다 지역 리뷰[46][47]

브로몽 공장은 결국 1993년 10월에 가동이 중단됐다. 이후 엘란트라의 생산 기지로 개조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 1996년 2월 현지 법인인 현대모터캐나다가 청산에 들어가게 되어 현대자동차의 흑역사로 남은 채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이를 현대자동차에서는 "브로몽의 악몽"으로 부르고 있다. 후에 정세영 회장은 자서전에서 “충분한 북미 시장의 조사 없이 브로몽에 공장을 건설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성급한 결정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브로몽을 입지로 선정한 것도 잘못된 요인이었는데, 브로몽은 인구가 적어 노동자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에 자동차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없어서 대한민국에서 부품의 60%를 조달해야 했다.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현대자동차의 고질적인 문제인 파업이 있으면 부품 공급은 아예 되지 않았을 뿐더러, 캐나다에 공급할 때에도 관세를 물어야 했다.

여담으로 해당 공장에서 만들어진 쏘나타를 지역 경찰들이 경찰차로 활용한 바 있었다.
 
 
 
 

4. 라인업[편집]

 
 
 
 

4.1. 초기형[편집]

 
 
 
 
-북미형-
  • GL (2,4 SOHC)
  • GLS (2.4 SOHC, 3.0 V6)
 
 
 
 

4.2. 페이스리프트: 뉴 쏘나타[편집]

 
 
 
 
 
 
 
 

5. 제원[편집]

 
 
 
 

5.1. 초기형[편집]

 
 
 
 
SONATA/2세대
생산지
코드네임
Y2
차량형태
4도어 중형 세단
승차인원
5명
전장
4,680mm
전폭
1,750mm
전고
1,410mm
축거
2,650mm
윤거(전)
1,455mm
윤거(후)
1,440mm
공차중량
1,240 ~ 1,348kg
연료탱크 용량
65L
타이어 크기
185/70SR14
195/70SR14
플랫폼
구동방식
전륜 현가장치
후륜 현가장치
세미 트레일링 암 기반 토션빔 서스펜션[70]
전륜 제동장치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브레이크
후륜 제동장치
파워트레인
모델
엔진
엔진 형식
흡기 방식
배기량
최고 출력
최대 토크
변속기
1.8i
1.8L 직렬 4기통
자연흡기
1,796cc
105ps
15.4kgf·m
2.0i
2.0L 직렬 4기통
자연흡기
1,997cc
120 → 111ps
16.2 → 17.3kgf·m
2.4i
2.4L 직렬 4기통
자연흡기
2,351cc
123ps
19.9kgf·m
3.0L V형 6기통
자연흡기
2,972cc
146ps
23.7kgf·m
 
 
 
 

5.2. 페이스리프트: 뉴 쏘나타[편집]

 
 
 
 
SONATA/2세대(F/L)
생산지
코드네임
Y2
차량형태
4도어 중형 세단
승차인원
5명
전장
4,680mm
전폭
1,750mm
전고
1,410mm
축거
2,650mm
윤거(전)
1,480mm
윤거(후)
1,460mm
공차중량
1,240 ~ 1,299kg
연료탱크 용량
60L
타이어 크기
185/70SR14
플랫폼
구동방식
전륜 현가장치
후륜 현가장치
세미 트레일링 암 기반 토션빔 서스펜션
전륜 제동장치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브레이크
후륜 제동장치
파워트레인
모델
엔진
엔진 형식
흡기 방식
배기량
최고 출력
최대 토크
변속기
GLi
1.8L 직렬 4기통
자연흡기
1,796cc
105ps
15.4kgf·m
GLSi
2.0L 직렬 4기통
자연흡기
1,997cc
111ps
17.3kgf·m
2.0 골드
137ps
17.7kgf·m
3.0L V형 6기통
자연흡기
2,972cc
146ps
23.7kgf·m
 
 
 
 

6. 기타[편집]

 
 
 
 
  • Y1 소나타에 이어서 세창기업에서 다이캐스트 모형으로 출시된 적이 있었다. Y1과 달리 Y2 쏘나타는 본네트도 열렸으며, 엔진룸 내부에는 MPI 엔진의 윗부분[73]이 도금된 플라스틱 성형품으로 올려져 있었다.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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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9년 8월에 나온 1990년형부터 라디에이터 그릴이 가로 두줄 형태로 변경됐다. 여기에 알로이 휠은 처음에는 커팅 타입이었으나, 1990년형부터는 아예 일반 알로이 재질로 변경됐다.[2] 1989년 8월에 나온 1990년형부터 테일램프에 그어진 가로 검은색 경계선이 사라졌다.[3] 광고에 나온 차량은 파일럿카라서 시판 차량과 몇몇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트렁크 덮개의 배기량 표시가 2.0 과 i 가 분리돼 있는데, 시판 차량은 모두가 이어져 있고, i가 기울임체(i\textit{i})로 돼 있다. 또, 트렁크 키홀에 굵은 오링이 둘러져 있는데, 초기 출고분 일부에만 돼 있고, 이후 것은 오링이 없다.[4] 이 광고에 쓰인 BGM은 쇼팽즉흥 환상곡. 그런데 그 곡은 소나타가 아닌데...[5] 기존에 알고 있던 광고와 다르게 30초 버전 광고이다.[6] 당시 후보로는 엘란트라(ELANTRA) / 퀘스트라(QUESTRA) 등이 있었는데, 그 중 엘란트라는 1990년 스텔라 후속 준중형 세단의 이름으로 선정되어 현재까지 수출시장에서 쓰이는 중이다. 내수용은 2세대부터 "아반떼"로 변경.[7] Y2 차량에 실패한 차명을 붙인 이유에 대해 당시 현대자동차 관계자가 모 자동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배구 경기에서 실패한 스파이커에게 서브를 한 번 더 주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8] 아무래도 미국인 입장에서 스페인어인 스텔라는 히스패닉과 연관된 느낌이 들 수 있다.[9]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기술 제휴로 받은 전륜구동 플랫폼으로 한 체급 차이 나는 준대형과 중형이 같은 플랫폼을 사용했다. 이때부터 그랜저와 쏘나타의 플랫폼 공유 전통이 시작된다. 이 전륜구동 플랫폼은 5세대 갤랑Σ에서 먼저 쓰이던 플랫폼이었는데, 당시의 갤랑Σ는 하드탑 사양까지도 갖추면서 후기에는 디아망떼가 등장할 때까지의 갭을 메우기 위해 V6 2.0L는 물론이고 V6 3.0L 엔진까지도 탑재할 수 있게 되는 등 고급 중형차의 영역까지도 커버하게 됐고, 그 이전에도 1986년에 2세대 데보네어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모델이 심히 노후화되어 경쟁력을 상실한 초대 데보네어를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미쓰비시 자동차의 기함 노릇을 하기도 했었다. 오히려 5세대 갤랑Σ의 고성능 터보 인터쿨러 사양이 초대 데보네어의 성능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였다. 마케팅 전략 역시 Y1 쏘나타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그랜저의 후광효과를 활용했다.[10] 인터넷에서 뿐만 아니라 당장 쏘나타 2가 출시된 90년대 중반부터 이 차를 쏘나타 1으로 부르는 경우는 흔했다.[11] 한국에서는 그랜저에 장착된 미쓰비시 엔진들이다.[12] 위의 쏘나타 초기형 전면부 사진을 잘 보면 프론트 범퍼의 운전석쪽 검은 몰딩에 음각된 로고가 숨겨져(?) 있다.[13] Y2보다 2년 앞서 출시된 머큐리 세이블 1세대 모델도 이 위치에 'MERCURY' 로고가 있었다.[14] 이듬해 페이스리프트 전까지만 생산되었기 때문에 판매량은 매우 적어 판매 당시에도 아주 레어한 차종이었다. 그래서 쏘나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환상종에 가깝게 여겨지며, 이를 방증히듯 보배드림의 어느 유명 회원 중 1명이 이 차량을 거의 새차 수준으로 복원하기도 했다.[15] 쉐보레 콜벳 4세대(C4)의 휠과 유사한 디자인이다.[16] 스페어 타이어는 그냥 무작위로 한 방향의 것이 들어 있었다.[17] 물론 대도시 등지에서 쏘나타를 일반 택시로 운행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18] 세계적으로도 제원상 캠리파사트, 시에라, 벡트라 등 당대 중형 세단들이 4,500~4,600mm 전장과 1,600~1,700mm의 전폭을 가진 반면 쏘나타는 전장이 4,680mm, 전폭이 1,750mm였으니 상대적으로 큰 사이즈였던 게 사실이다. 이보다 더 컸던 차들은 미국 회사의 중형 세단밖에 없었고, 유럽도 작은 크기를 고집하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차체 전장과 전폭을 확장했다. 어떻게 보면 쏘나타 사이즈의 중형차 크기가 표준화되면서 피해를 본 건 일본이나 유럽 중형차 표준 사이즈로 개발한 경쟁사의 콩코드에스페로.[19] 물론 LF 쏘나타가 탈 중형급으로 실내 공간이 무지막지하게 넓어서 그런 것이지, 당대 동급 차량들에 비해서는 실내 공간이 꽤나 넓은 편이었다. 결정적으로 한국인의 체형도 그 당시의 한국인의 체형보다 많이 커진 것도 있고,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대부분의 자동차 라인업들은 세대가 거듭하면서 점점 커지는 경향이 매우 크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아반떼 CN7쏘나타 EF와 길이가 같아지고 폭은 아반떼가 더 커져버렸다. [20] 사실 기존의 방식이 효율적으로 좋은 게 없기 때문에 이걸 원가절감이라 하기는 어렵다.[21]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당시에는 1세대 쏘나타 29대와 스텔라 74대가 행사차로 지원되었는데, 이때는 할인율이 25%나 달했음에도 사전 홍보가 제대로 안 되어서 주로 직원들이 구입했다. 그랜저의 경우 1986년 이미 출시되었기 때문에 86 아시안 게임에도 15대가 행사차로 지원되었다.[22] 수동변속 모델은 "쏘나타", 자동변속 모델은 "쏘나타오토매틱"[23] 리어 범퍼와 수평으로 연결된 리어 휠 아치에 약간의 굴곡을 넣는 개악(...)을 단행했다.[24]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초기형에 탑재된 2,400cc SOHC 엔진은 대형차급으로 분류됐는데, 이는 배기량이 2.0L 이상이었기 때문이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 탓에 자동차세가 그 당시 기준으로는 비싼 편이었고, 대한민국에서는 판매량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페이스리프트 후기형에는 기존에 탑재하던 123마력의 2,400cc SOHC 엔진을 없앤 대신 137마력의 2,000cc DOHC 엔진으로 대체했으며, 이는 후속 모델들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25] 대표적으로 2.4L 엔진이 존재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2.0T로 엔진을 교체했던 YF 쏘나타와 LF 쏘나타의 사례가 있다. NF 쏘나타의 경우 특이하게도 단종 때까지 2.4L를 유지했는데, 잠깐 동안이지만 3.3L V6도 판매했으며 이는 역대 쏘나타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V6 엔진을 달고 판매한 내수용 모델로 기록되어 있다.[26] 그리고 2,400cc SOHC 엔진을 탑재했던 Y2 쏘나타와는 달리 2,000cc DOHC 엔진을 탑재한 쏘나타 골드는 판매량이 높았다.[27] 격자형에서 가로 두줄형으로 변경되었다.제네시스의 두줄 캐릭터라인의 기원(?)[28] 당시 모범택시는 고급화된 서비스를 주 무기로 내세워 차량 또한 그랜저, 포텐샤 등의 기함급을 중심으로 기획됐으나 한국 자동차 메이커 3사에서는 해당 모델들의 품위 하락을 들어 반대하기도 했고, 정부에서는 배기량이 큰 승용차를 택시로 허용할 경우 과소비를 조장하고 특정 메이커에 혜택을 준다는 특혜 시비에 말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배기량의 상한선을 2,000cc로 정했는데, 당시 모범 택시 트림이 제공되는 2,000cc급 모델 중에 쏘나타, 프린스, 콩코드 등이 있었지만 쏘나타가 중형차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니, 답은 뻔했다.[29] 모범택시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는 일부 택시 기사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랜저 2.0L 모델을 구매했고 1995년에 정부가 모범택시의 배기량 제한을 철폐하면서 그랜저나 포텐샤 등 준대형급 모델이 모범택시의 주류를 이루게 됐다. 그랜저의 택시 트림도 이때 추가됐다.[30] 뉴 쏘나타 출시 당시에 일반 택시로는 여전히 쏘나타보다 스텔라로의 출고가 많았으며(몇몇 지방에서는 엑셀 택시를 출고하기도 했다.), 일반 택시로 스텔라보다 쏘나타로의 출고가 많아지게 된 시기는 쏘나타Ⅱ 출시 이후부터다.[31] 수동은 쏘나타, 자동은 쏘나타오토매틱, 택시는 쏘나타LPG로 표기했다.[32] 각 그랜저 3.0L 전용 휠 역시 오른쪽으로 치우쳐있었으나 역시 이후에 H마크로 나올 때는 가운데로 이동했다. 참고로 당시 쏘나타 1.8L의 휠 커버 로고는 가운데에 있었다.[33] 쏘나타 모델 중 최초의 택시 모델이다.[34] 아우디 A6의 전신이다.[35] 1976식 모델의 휠이며, 휠은 피렐리에서 제공한 것이다.[36] kia ev9 wheel[37] 덧붙여 기아 측에선 앞으로 등장할 다른 기아 차량들의 경우도 이런 비대칭 로고 휠을 확대 적용한다고 밝혔다. # 기아 로고는 길다란 현대 레터링과 달리 짧기에 삐딱하게 놓아도 어색함이 덜하다는 평이 많다.[38] 중형도 아니고 준중형급인 주제에 가격도 싼 편은 아니었다.[39] 이때 프린스의 플랫폼은 15년이 넘은 상태였고 프린스는 연비가 좋지 않고 잔고장이 많으며 무거운 자동차라는 이미지가 있었다.[40] 절약, 저축 문화에서 가족 중심의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로의 변화가 일어났다. 2020년대에 와서는 그걸 넘어 너무나도 펑펑 쓰고 있어 생태계 문제까지 대두되는 상황.[41] 90년대 초반에 사회 전반적인 과소비 풍조를 비판한다고 하면서 상투적으로 나오는 대상 중 하나가 소형차로도 충분한데 꼭 중형차를 사야겠다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당시 중형차로의 교체 분위기를 방증하는 예이다. 물론 지금은 중형차를 넘어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의 고급 수입차로의 교체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42] 어쨌건 한국에서라면 누구보다도 빨리 시의를 읽는 선구안 덕분에 현대자동차는 내수 1위, 세계를 기준으로도 3위에 육박하는 거대 기업체의 핵심이 됐다. 80년대까지만 하더래도 완성차 업체들끼리 덮어놓고 어디가 무조건 더 낫다고 할 만큼의 격차가 없었는데 바로 이 2세대 쏘나타가 포문을 열면서 시작된 남들보다 조금 빠른 대응들이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동안 IMF같은 거대한 풍파를 못 이겨낸 대가로 한국 완성차 업체들이 사라진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자주권을 모두 잃고서 타사의 부속으로 팔려나가는 동안 현대만은 예외로 당시 사건을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43] 사실 울산 생산분보다 브로몽 생산분 자체는 품질이 더 좋았다고 하지만 1990년대에 미국에서 생산된 '캠리'나 '어코드' 등이 일부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팔리기도 했다. 당시는 수입선 다변화 정책이 걸렸던 기간이다.[44] 당시 조립품질이 좋지 않았는지 실내 내장재에서 위험한 독성 화학물질을 흡입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역한 냄새가 난나고 리뷰했었다. 그리고 현기 중형차의 가벼운 주행감은 사실 이때부터....[45] 당시 현대는 출시 첫해 8만 대가량의 쏘나타를 미국시장에 판매하려 계획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중형차 시장의 무려 14%의 비율이었다.[46] 위 영상의 방송채널인 모터위크 보다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내렸다.[47] 이쪽은 앞서 모터위크에서 비판했던 주행감과 가속력에서는 좋은 점수를 줬고 오히려 모터위크에서 칭찬했던 정숙도를 지적했다.[48] 초기형은 1.8i[수동변속기] 49.1 49.2 49.3 49.4 49.5 49.6 49.7 49.8 [자동변속기] 50.1 50.2 50.3 50.4 50.5 50.6 [51] 초기형은 2.0i[1991년형] [LPG] 57.1 57.2 [MPI] 61.1 61.2 [DOHC] [70] 트레일링 암과 액슬 빔, 레터드 로드가 합쳐진 형태로 CTBA 토션빔과는 다른 형태이다.[북미형] 71.1 71.2 [73] 헤드 커버와 분사펌프 본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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