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식 기관단총

최근 수정 시각:
2
편집
IP 우회 수단(프록시 서버, VPN, Tor 등)이나 IDC 대역 IP로 접속하셨습니다. (#30172495)
(VPN이나 iCloud의 비공개 릴레이를 사용 중인 경우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잘못된 IDC 대역 차단이라고 생각하시는 경우 게시판에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토론역사
북한 국기
북한
관련 문서
[ 펼치기 · 접기 ]
상징
역사
지리
인문
환경
사상
·
이념
정치
·
안보
사법
·
규범
경제
사회
문화
기타
Type 49
49식 기관단총
K-2023
종류
급탄
35발 바나나 탄창
71발 드럼 탄창
탄약
원산지
작동방식
블로우백
오픈 볼트
개발사
 
 
 
 
 
 
 
 
 
 
 
 
 
 
 
 
1. 개요2. 설명3. 실전4. 현황5. 기타6. 매체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북한이 소련의 PPSh-41 기관단총을 면허 생산한 북한의 기관단총이다.
 
 
 
 
 
 
 
 
 
 
 
 
 
 
 
 
 
 
 
 
 
 
 
 

2. 설명[편집]

 
 
 
 
 
 
 
 
 
 
 
 
 
 
 
 
 
 
 
 
 
 
 
 
1947~49년 동안 소련이 북한에 공여한 PPSh-41 기관단총을 소련 정부로부터 라이센스 허가권을 받고 1949년 평양의 65호 총기공장에서[1] 49식 기관단총(Type 49)이라는 이름으로 면허생산했다.

처음 라이센스로 제작해 보는 총기였기 때문에, 품질은 조악했다는 설이 있다.[2][3] 이후 소련군이 2차대전 시기 양산했던 무기들을 공산권 국가들에게 공여하는 과정에서 북한군에게도 PPSh-41가 넘어왔다. 49식 기관단총은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생산했다.
K-2023
49식 기관단총 제식채택 이전 김일성이 시험사격을 하는 사진.[4]
49식기관단총
external/2.bp.bl...
김일성이 북한군 인사들에게 49식 기관단총을 하사하며 찍은 사진.[5][6] 49식 기관단총 생산을 기념하여 김일성이 각료, 군지휘관들과 찍었다. 왼쪽부터 최용건 민족보위상, 김책 부수상, 김일 문화부상, 김일성, 박일우 내무상, 강건 총참모장, 무정 포병부상.
사진 맨 왼 쪽과 맨 오른쪽 인물이 들고 있는 총이 바로 따발총 PPSh-41이다. 오른쪽의 인물은 북한군에서 많이 사용한 드럼탄창이 아니고 바나나식 탄창을 꽂고 있다.[7] 가운데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이 들고 있는 총은 PPSh-41이 아니고, PPS-43이다.
북한은 PPSh-41을 소련군에서 원조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49식 기관단총은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자체 제작된 연발총기였다.
Forgotten Weapons의 49식 리뷰 영상
이런 이유로 남한 한정으로는 6.25 전쟁 당시의 북한군의 상징이다. 당시 국군의 자동화기기 보유수량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북한군의 PPSh-41의 막강한 근거리 화력이 상당히 공포의 대상이었던 모양. 외국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한국군들은 이 총을 따발총이라고 불렀다. 한국어로 '타타타타'라는 의성어를 일본어로는 '타바타바타바타바'라고 하는데 광복 직후의 한국인들이 이 총의 소리를 듣고 그대로 일본식 의성어를 붙인 것이다.[8][9]
 
 
 
 
 
 
 
 
 
 
 
 
 
 
 
 
 
 
 
 
 
 
 
 

3. 실전[편집]

 
 
 
 
 
 
 
 
 
 
 
 
 
 
 
 
 
 
 
 
 
 
 
 
한국전쟁 초기 자동화기가 거의 없었던 한국군 입장에서는 '인민군의 따발총'은 매우 무서운 무기였다. 이후 모신나강과 함께 6.25 남침의 상징이 되었다.
 
 
 
 
 
 
 
 
 
 
 
 
 
 
 
 
 
 
 
 
 
 
 
 

4. 현황[편집]

 
 
 
 
 
 
 
 
 
 
 
 
 
 
 
 
 
 
 
 
 
 
 
 
김일성이 시범해 본 시제탄창이 장착된 프로토타입은 따로 전시되어 있다.

전투용으론 대부분 퇴역해서 시골 같은 곳의 2단급 부대들이나 6.25 재현부대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5. 기타[편집]

 
 
 
 
 
 
 
 
 
 
 
 
 
 
 
 
 
 
 
 
 
 
 
 
북한군은 드럼 탄창보다는 바나나 탄창을 더 애용 했다고 한다.[10][11]

당시 한국은 러시아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거의 교육되지 않던 시대여서, 대부분의 군용 장비들을 일본식 영어발음을 섞어 한국말로 적당히 불러댔다. PPSh-41은 따발총, 모신나강은 따꿍총(총성이 '따꿍'거린다고 남북이 공히 부른 속칭. 북한군에서 부른 정식 명칭은 '아라사(러시아의 한자발음) '을 뜻하는 아식 보총이다), M1 개런드애무왕, M1 카빈빈, 혹은 씨-에이아르(M1 Carbine)이라고 불렀다. 적성장비들은 대충 소리나 생김새로 부르지만, 아군 측 장비들은 그래도 이름을 대충 들리는 대로 편하게 부른 것을 보면, 적성장비에 대한 정보나 교육이 거의 없었던 듯.
 
 
 
 
 
 
 
 
 
 
 
 
 
 
 
 
 
 
 
 
 
 
 
 

6. 매체[편집]

 
 
 
 
 
 
 
 
 
 
 
 
 
 
 
 
 
 
 
 
 
 
 
 
당시 사람들의 북한군에 대한 인식은 그 따발총 자체였기 때문에 AK 소총을 사용하기 이전의 북한군이 나올 법한 매체에는 거의 다 나온다고 보면 된다.

워게임: 레드 드래곤의 북한 예비군 유닛인 적위대가 운용한다.
 
 
 
 
 
 
 
 
 
 
 
 
 
 
 
 
 
 
 
 
 
 
 
 

7. 둘러보기[편집]

 
 
 
 
 
 
 
 
 
 
 
 
 
 
 
 
 
 
 
 
 
 
 
 
[ 펼치기 · 접기 ]
개인화기
지원화기
경기관총
중기관총
※ 윗첨자J/F: 일본/프랑스군으로부터 노획
※ 윗첨자L: 제한적 사용
※ ''기울임체'':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음

[ 펼치기 · 접기 ]
개인화기
63식 보총의장대
F-1, RGD-33, RG-42, RPG-43, RGD-5, RKG-3, 75식 수류탄, KGN 총류탄, 북한 신형 총류탄N?
갈색 글자: 퇴역 및 준군사조직용
?:사용여부 불명
N?:제식명칭 불명



[1] 일본군의 평양병기제조소를 북한이 접수한 후 개편한 군수공장. 한국전쟁 이후 자강도 전천군으로 이동해 전천 2.8 기계공장이 되었다.[2] 다만 북한은 당시 일본이 중공업 지대를 건설해 놓아서 그나마 조악한 품질이라도 이런 총기를 제작할 수 있었지만 남한은 아예 중공업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총기 제작은 일부 미군무기부속을 생산하는 수준에 그쳤고, 1960년대까지 가야 뭘 제대로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3] 49식을 노획해서 사용한 한국군들의 증언에 의하면 드럼 탄창 1개를 연발로 쉬지 않고 사격할 시, 마지막 몇 발은 코 앞에 떨어질 정도의 퀄리티였다고 한다. 소설 남부군에서는 한국 전투경찰에게서 노획한 99식 소총과 함께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총기로 묘사된다.[4] 탄창 모양새가 독일이 쓰던 9mm PPSh와 동일한데, 이때 시절 북한은 소련에게서 원조받은 소수의 MP40을 갖고 있었기에 참고한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이 자체 제작한 실험용 탄창이거나 생산할 때 북한의 기술력이 낮아서 저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5] 이 사진은 북한 내에서 선전화로도 그려졌다.[6] 이 사진은 한동안 아래와 같은 사진처럼 박일우, 무정 등 일부 인물들이 삭제된 상태로 알려졌으나, 최근 재공개된 사진은 위의 사진처럼 삭제된 인물들이 다시 나타났다. 49식기관단총1 [7] 북한에서는 드럼탄창만 생산하고, 바나나식 탄창은 생산하지 않았다. 북한에서 생산된 물량을 대부분 소진하자, 이후에 소련으로부터 추가로 지원받은 물건인 듯하다.[8] 1991년 NHK에서 제작한 '다큐먼트 태평양전쟁' 시리즈에서 과달카날의 반자이돌격 생존자가 미군의 기관총 사격을 "따바따바따바"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9] 다만 최근의 다수설은 좀 다르다. PPSh-41 항목 참조.[10] 소련군도 드럼 탄창의 스프링 불량등의 이유로 탄을 65발미만으로 채운 채 사용하기도 했었던 것으로 보아 급탄 문제가 제법 있었거나 북한에서도 생산해서 신뢰성이 들쭉날쭉한 드럼보다는 전량 소련에서 받아온 바나나 탄창을 더 좋게 본 것으로 보인다.[11] 정작 군 수뇌부는 군인들과 달리 드럼 탄창을 더 좋게 보고 바나나 탄창을 일절 생산하지 않았다고 한다.
CC-white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985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