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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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군대 (지역별 가나다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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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군 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Cuban Revolutionary Armed Forc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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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
상비군 | 50,000명 |
예비군 | 40,000명 |
병역제도 | |
1961년 미국의 피그만 침공에 대한 반발로 쿠바 혁명정부가 강력한 반미친소정책으로 기울어지면서, 쿠바군도 소련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쿠바는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미국의 압도적인 국력 앞에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서, 쿠바 영토 내에 소련군 핵미사일 기지 설치를 제안하였고, 이것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시켰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쿠바군은 아무것도 못하고 들러리 신세가 되었다. 게다가 소련도 미국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아 쿠바의 핵미사일 기지 설치를 거부했다.
피그만 침공과 걸핏하면 공습하는 미국으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정부가 전 세계적인 반미, 반제국주의 혁명을 외치면서, 쿠바군은 당시 빈발하고 있던 제3세계의 내전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직접 개입을 꺼리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소련 공산당 정권은 제3세계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서 쿠바의 제3세계 혁명을 지원하였다.
이런 소련의 지원아래 1961년 가나를 시작으로 1963년에는 민족해방전선이 프랑스와의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던 알제리 전쟁[1], 1963년 콩고 위기가 벌어지던 레오폴드빌 콩고 등 1960년대에 아프리카와 아랍에 병력을 보냈다. 1973년엔 시리아, 1978년엔 에티오피아, 1975년부터 1989년까진 앙골라 내전에 개입했고 1980년대엔 니카라과 내전과 엘살바도르 내전에 파병했다. 1983년에는 미군의 그레나다 침공 때 지원군을 파견하여 그레나다 인민혁명군을 도왔지만 결국 미국에게 패하고 만다. 반대로 아프리카에선 앙골라 내전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군의 전투력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MPLA와 SWAPO를 규합해서 키토 쿠아나발레 전투에서 남아공군 공세를 저지하며 결국 장기적으론 전세역전의 기회를 만드는 등 상당한 전과를 올린 바가 있다.
1989년에는 군대와 내무성을 대상으로 숙군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오초아 사건 참조. 육군 소장이자 쿠바 혁명의 영웅이었던 아르날도 오초아(Arnaldo Ochoa, 1930-1989)가 체포된 뒤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내무성 소속의 안토니오 데 라 가르디아(Antonio de la Guardia) 대령과 같은 기관 소속의 파트리시오 데 라 가르디아(Patricio de la Guardia) 준장은 부패와 마약유통 혐의로 기소되었다. 안토니오 역시 처형되었다. 이 일로 쿠바 육군은 축소되었고 내무성의 권한은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이자 쿠바군 사령관인 라울 카스트로에게로 옮겨갔다.[2]
냉전 종식과 소련 붕괴로 외부의 지원이 사라지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쿠바 정부는 대규모 감군을 단행했다. 2019년 기준으로 현역은 50,000명, 예비역은 140,000명 수준이며 2년의 징병제를 적용한다. 이 규모는 고만고만한 카리브해 국가들 중에서는 최대 규모이지만 미군과 멕시코군이 있어서 큰 의미는 없다.[3]
쿠바는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미국의 압도적인 국력 앞에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서, 쿠바 영토 내에 소련군 핵미사일 기지 설치를 제안하였고, 이것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시켰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쿠바군은 아무것도 못하고 들러리 신세가 되었다. 게다가 소련도 미국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아 쿠바의 핵미사일 기지 설치를 거부했다.
피그만 침공과 걸핏하면 공습하는 미국으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정부가 전 세계적인 반미, 반제국주의 혁명을 외치면서, 쿠바군은 당시 빈발하고 있던 제3세계의 내전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직접 개입을 꺼리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소련 공산당 정권은 제3세계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서 쿠바의 제3세계 혁명을 지원하였다.
이런 소련의 지원아래 1961년 가나를 시작으로 1963년에는 민족해방전선이 프랑스와의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던 알제리 전쟁[1], 1963년 콩고 위기가 벌어지던 레오폴드빌 콩고 등 1960년대에 아프리카와 아랍에 병력을 보냈다. 1973년엔 시리아, 1978년엔 에티오피아, 1975년부터 1989년까진 앙골라 내전에 개입했고 1980년대엔 니카라과 내전과 엘살바도르 내전에 파병했다. 1983년에는 미군의 그레나다 침공 때 지원군을 파견하여 그레나다 인민혁명군을 도왔지만 결국 미국에게 패하고 만다. 반대로 아프리카에선 앙골라 내전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군의 전투력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MPLA와 SWAPO를 규합해서 키토 쿠아나발레 전투에서 남아공군 공세를 저지하며 결국 장기적으론 전세역전의 기회를 만드는 등 상당한 전과를 올린 바가 있다.
1989년에는 군대와 내무성을 대상으로 숙군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오초아 사건 참조. 육군 소장이자 쿠바 혁명의 영웅이었던 아르날도 오초아(Arnaldo Ochoa, 1930-1989)가 체포된 뒤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내무성 소속의 안토니오 데 라 가르디아(Antonio de la Guardia) 대령과 같은 기관 소속의 파트리시오 데 라 가르디아(Patricio de la Guardia) 준장은 부패와 마약유통 혐의로 기소되었다. 안토니오 역시 처형되었다. 이 일로 쿠바 육군은 축소되었고 내무성의 권한은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이자 쿠바군 사령관인 라울 카스트로에게로 옮겨갔다.[2]
냉전 종식과 소련 붕괴로 외부의 지원이 사라지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쿠바 정부는 대규모 감군을 단행했다. 2019년 기준으로 현역은 50,000명, 예비역은 140,000명 수준이며 2년의 징병제를 적용한다. 이 규모는 고만고만한 카리브해 국가들 중에서는 최대 규모이지만 미군과 멕시코군이 있어서 큰 의미는 없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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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군 육군의 전차, 장갑차, 자주포, 다연장로켓 | |||||
이름 | 종류 | 제조국 | 운용 수량 | 비축 | 기타 |
380 대 | - | ||||
800 대 | - | ||||
50 대 | - | - | |||
120 대 | - | - | |||
50 ~ 100 대 | - | - | |||
200 대 | - | - | |||
25 ~ 50 대 | - | - | |||
50 ~ 100 대 | - | - | |||
40 대 | - | - | |||
60 대 | - | - | |||
50 대 | - | - | |||
Ejercito Revolucionario.
육군의 규모는 쿠바군의 7할을 차지한다. 그러나 제인연감(Jane's Yearbooks)[4]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로 소련이 붕괴되고 경제지원 등이 끊기면서 군의 수준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다. 장비의 노후화가 심해서 2010년대까지 T-34가 현역으로 있었던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1998년 미국 국방정보국의 평가에 따르면 쿠바군은 전반적으로 훈련 부족으로 준비태세 수준이 낮았으며 대대급 이상의 작전 능력을 전혀 발휘할 수 없는 상태라고 평가했다. 그나마 특수작전부대는 훈련을 지속했지만 그 외의 쿠바군은 전반적으로 연료난과 정비용 부품의 부족으로 사실상 군사 작전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보았다. 심지어 소달구지로 대공포를 운영 중이다.#
북한의 화성 5호를 수입해서 운용 중이다.
그에 비해 보병장비는 상대적으로 현대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체 개발한 저격소총들과, 최근 RPG-29를 수입한 것이 확인되었다.
블랙 와스프(Avispas Negras)라는 특수부대를 운용 중이다. 공식 부대명칭은 특수 기동여단이며 앙골라 내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다. 현재에도 러시아 스페츠나츠,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중국 특수부대 교관들이 이들을 교육한다고 한다.
블랙 와스프(Avispas Negras)라는 특수부대를 운용 중이다. 공식 부대명칭은 특수 기동여단이며 앙골라 내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다. 현재에도 러시아 스페츠나츠,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중국 특수부대 교관들이 이들을 교육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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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a de Guerra Revolucionaria.

사진은 2011년 아바나 항에 입항한 리오 다무지함(BP-390)이다.
쿠바의 주력 수상함정 | ||||
이름 | 종류 | 배수량 | 제조 국가 | 보유 척수 |
3,000톤급 호위함 | 만재: 3,200 톤 | 2척 | ||
1,500톤급 초계함 | 만재: 1,900 톤 | 3척 | ||
500톤급 호위함 | 만재: 580 톤 | ?척 | ||
200톤급 고속정 | 만재: 209/235 톤 | ?척 | ||
2,000톤급 잠수함 | 수중: 2,475 톤 | 3척 | ||
500 ~ 1,000톤급 상륙함 | 만재: 834 톤 | ?척 | ||
Defensa Anti-Aérea Y Fuerza Aérea Revolucionaria.


- 전투기/전폭기
- 훈련기
- L-39C 25대
미그기를 주로 사용한다. #
냉전 시절에는 40대 이상의 전투기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다양한 대외파병을 통해 겪은 실전경험으로 중남미 최강의 공군이었다. 하지만 냉전의 종식 이후 들이닥친 경제난으로 쿠바 공군은 노후화된 전투기들을 대량으로 퇴역시켰고 21세기 이후 쿠바 공군은 사실상 붕괴된 상태이다.[10]
그럼에도 쿠바는 아예 공군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 퇴역한 전투기들의 상당수는 치장물자로 보관 중이며 비행 시간을 줄이는 대신 디지털 비행 시뮬레이터를 도입해 비행사들의 훈련에 활용하고 있으며 공군 기지 인프라와 전투기의 정비는 러시아, 중국, 북한에서 지원해 주고 있다. 쿠바 공군에서 가장 고성능 기종인 MiG-29의 조종사들 한정으로 매년 200~250시간의 비행훈련도 거친다고 한다.
방공 전력은 1950년대에 나온 고물덩어리인 S-75 지대공 미사일이 전부고, 그나마도 상당수가 경제난 때문에 퇴역된 상태라 5세대 전투기와 무인기들이 돌아다니는 현대 전장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2023년부터 이란, 러시아제 드론을 도입하였다.#
- 지방민병대(Milicias de Tropas Territoriales): 규모는 100만 명 이상으로 자원한 여성, 노인, 퇴직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임무는 전시에 쿠바 정규군을 지원하고 쿠바의 전략적 인프라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경무장하며 전시나 비상사태에만 소집되는 비상근부대이다.
대중매체에서는 카리브해의 단 둘뿐인[11] 사회주의 계열 국가 포지션이라는 점 때문에 악역으로 주로 등장한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캠페인 첫 미션에서 등장하며, 이상하게도 현실 60년대에는 소련군도 아직 전군에 못 뿌린 최신형 무기들을 너도나도 들고 나오는 걸로도 모자라 1970년대부터 FAPLA나 관타나모 만 국경수비대 등의 특수한 부대용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리자드 패턴 위장복을 1961년에 입고 나온다. 멀티에서는 'Tropas'란[13] 이름의 플레이 진영으로 등장한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
80년대 파트에서 쿠바 내무성 정보관리국 제5과 소속의 앙골라 군사고문단(FAPLA)이 소년병들을 거느린 채로 등장한다. 허드슨이 "도대체 쿠바 놈들이 왜 여깄지?"라며 의아해하는 건 덤. 여담이지만 2025년 파트에선 라울 메넨데즈의 개인 용병 부대도 쿠바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다.[14] 기존의 후줄근한 군복을 입던 쿠바군은 어디가고 2020년대에 걸맞은 광학위장 기능이 있는 근미래형 강화복에 무인기 군집을 대량으로 운용하는 막강한 군사집단으로 등장한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
아바나를 배경으로 하는 미션에서 상대해 볼 수 있다. 특수부대가 아니라 일반 쿠바 육군이다. 쿠바 육군 특유의 초록 케피와 민무늬 전투복이 구현되어 있는 등, 전작들보다 현실적으로 변했다. 미션 초중반에 들을 수 있는 스페인어 대사를 들어보면 일반 육군 그것도 후방 시설 경비부대라 갑작스런 공격에 굉장히 당황한 듯.[15]
[1] 다만 1963년이면 이미 프랑스 정치권에서도 알제리 독립이 대세가 되어가는 시점으로 전쟁은 1964년에 끝났다. 즉 끝물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미친 영향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2] 다만 카스트로 형제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라울은 단순히 동생이라서 권력을 쥔 게 아니라, 엄연히 쿠바 혁명에 참여한 개국공신으로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다. 피델의 은퇴 이후 후계자가 된 라울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 및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3] 근데 가만보면 멕시코군 역시 육군은 전차를 전혀 보유하지 않았고, 해군은 신형함은 대부분 2000톤급 미만에 2000톤급 이상의 큰 배는 대부분 매우 구형으로 심지어 2010년까지 (2차대전 당시 건조된 함선인) 기어링급 구축함을 운영했을 정도인 데다 공군 역시 주력기는 프롭기인 PC-7에 제트 전투기는 무려 F-5 4기가 전부라는 엄청 빈약한 무장상태를 자랑하는 군대이다. 그리고 이건 어차피 바로 옆에 미국이 있는 이상 큰 돈 들여 강력한 무기를 보유해 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인구 1억 3천만에서 나오는 체급이 워낙 막강하기에 고만고만한 카리브해 및 중미 소국들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 역시 멕시코가 군사력에 별로 투자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다.[4] 영국의 민간 컨설팅 기업인 제인스 인포메이션(Jane's Information)이 매년 발행하는 군사연감. 제인스 인포메이션은 군사정보 분야에선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육해공군을 통틀어서 세계 각 나라가 보유한 모든 종류의 무기체계의 종류와 현황을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국내외 언론에서 인용하는 군사력 현황은 대부분 제인연감에 따른 것이다.[5] Północny. 원어인 폴란드어로 읽으면 '푸우노츠니', 에스파냐어로는 '폴노크니'.[6] 당장 미 해군은 고사하고 미국 해안경비대나 멕시코 해군만 해도 쿠바 해군을 압도한다. [7] 치장용 전력 3대가 더 있다.[8] 2000년대에는 24대가 운용되었지만 그마저도 기령 노후화로 대부분 퇴역 및 치장물자로 전환되었다.[9] 치장용 전력 9대가 더 있다.[10] 라울 카스트로도 공군은 육군보다 세 배 이상 비용을 소모한다며 대규모로 전력을 유지할 여유가 없다고 시인한 바 있었다.[11] 나머지 하나는 니카라과.[12] 남미 게릴라 출신으로 마찬가지로 게릴라전을 펼치는 주인공들을 잘 이해해서 궁지로 몰아붙이며, 마지막엔 주인공들의 활약에 경의를 표하면서 살아남은 팀원들을 관대하게 풀어준다.[13] 스페인어로 병사들이란 의미다.[14] 싱글 한정. 멀티에서는 영국, 호주, 남아공, 미국(!) 출신들로 이루어진 다국적 부대다.[15] "미군! 양키가 왔다!". "어떻게 여길 찾아낸 거야?". "이러려고 입대한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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