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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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근대 화기의 발전과 용병 쇠퇴2.2. 세계대전2.3. 현대
3. 징병제가 가지는 장점
3.1. 많은 병력동원이 가능하다.3.2. 미군의 병력감축과 한국의 현실3.3. 국가 안보는 개인의 이익과 분리되지 않는다3.4. 군대가 대규모 사회화를 책임진다
4. 징병제의 단점
4.1. 전문성 문제4.2. 인권 문제4.3. 재정 부담4.4. 천차만별인 징집기준
4.4.1. 그렇다고 모병제는 인력에 문제가 없는가?
4.5. 평등한 병역?4.6.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5. 한국에서의 징병제6. 한국 외 경우7. 참고 문서

1. 개요[편집]

한자: 徵兵制
영어: conscription

군대를 유지할 목적으로 국민에게 병역을 강제적으로 수행하게하는 제도. 비슷한 말로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가 있다.[1]

모병제 국가에서는 징병제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하다. 사회일원들이 대규모 집단적으로 군대 가는 게 아니고 선택한 소수만 가다보니 군대가 사회에 주는 영향도 미미하기 때문이고 직업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2. 역사[편집]

정확하게 기록되지 않았으나 전쟁사는 인류사와 맥을 같이 하므로 씨족이나 부족이 전쟁하는데 있어서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부터 인적자원을 총동원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중동에서는 Ilkum이라고 해서 함무라비가 다스리던 때도 있었고 동아시아에는 중국의 전국시대 이전부터 있던 유서깊은 제도이다. 하지만 전 근대의 징병제는 대부분 '전쟁 때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한 긴급 소집'의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최소 수만단위의 병력을 운용하던 동아시아 쪽은 징병이 없으면 전쟁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고대에는 동양이든 서양이든 간에 징병되는 병사가 직접 무장을 챙기거나 해야 하였기에 상비군을 징병제로 유지하는 지금과는 의미가 좀 다르다. 고대 서양의 경우, 전쟁 시 군대가 소집되어 의무를 마치면 땅 등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런 건 고대 로마에서나 가능했던 것이고, 중세 이후부터는 둔전제나 농민을 전시에 군인으로 부리는 부병제로 전이되었다. 고대 동양의 경우 최소 기원전 770년 전인 춘추전국시대와 같이 정권이 설립된 각 국가들간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 상호 간에 숫자로 밀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위해 징병제를 실시하였다.

한국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의 대부분이 징병제(=양인개병제, 농병일치제)였다. 한국의 역사에서는 대부분 전선의 이중화 또는 삼중화가 다수였기에 국경을 방어하고, 전선에서 싸울 군 병력이 많이 필요했다. 여기서 전선의 이중화(양각)란 북방에 한족, 여진족 등이 있고 남방에는 왜(일본)가 있었다. 지킬 국경이 두개로 쪼개졌기에 병력도 둘로 나뉜다. 영토의 70% 이상이 산지로 대규모 기병을 이끌 경제적 능력이 없으니 보병들이 거의 대다수였다.

특히 조선시대 전시에는 의병이 많이 활동했기에 그 전통을 이어 의병이 현재의 예비군, 조선군이 현재의 현역군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에서는 상비군으로 국경을 막는 것 외에 국방을 위한 정기적인 소집[2]의 형태로 군역을 가졌는데 민간인을 징집해서 병사로 써먹는단 면에서 징병제와 유사하며 수군의 경우는 아예 군역을 지워서 충원했다.

전 근대 시절에는 식량문제 때문에 농업이 국가 최대의 업무였는데, 농부들을 징집해 전쟁터로 보낼 경우 농사 지을 인력이 모자라게 되고 농부들이 파산에 이르는 까닭에 농사철은 전쟁기간에서 기피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한 이유 중 하나로도 거론된다. 또 전쟁이 길어지면 흉작이 나거나 국가 재정과 치안이 거덜나게 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징집되는 병력의 질적하향과 전투력감소가 일어났기에 징병은 최소한으로 자제하거나 자원병 제도로 변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3] 삼국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전쟁이 없는 시기에 병사들이 농사를 짓고 군량미를 확보하다가 군량미가 충분히 쌓이고, 농사가 마무리되면 슬슬 전투 준비를 하는 것. 그러나 대규모 병력동원이 가능한 시기가 농번기 직후나 겨울로 제한되어 버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는 로마 때부터 군제개혁을 통한 자원병 제도로 상비군을 운용하거나 농사와 관련없는 직업군인인 용병들이 각광 받기도 했다.

2.1. 근대 화기의 발전과 용병 쇠퇴[편집]

용병이 필요했던 이유 중 하나는 칼, 창, 활과 같은 무기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친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무장과 훈련이 부실한 농민 징집병과 비교하여 용병이 가진 방어구의 유무와 이러한 훈련의 차이가 냉병기 시대 때는 심각한 전투력 차이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의 개발로 이야기가 달라졌다. 얼마나 훈련을 받았는가와 아무리 두터운 갑옷을 입었는가와 상관없이 총 앞에서는 생존을 확신할 수 없게 되었고 총의 관리와 사격을 훈련시키는 데에는 두세 달 정도면 충분했기에 징집병의 문제점이었던 전투력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거기에 봉건 시대와 다르게 중앙집권화된 국가 입장에선 국가의 총기 숫자와 제조 능력만 충분하면 유사시 징집한 병사들을 훈련시키면 용병집단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숫자의 전투력 확보가 가능해졌다. 그 덕에 상비군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용병의 몰락 이후 국가에서 자원병을 모집해 군대를 굴렸으며, 프랑스 혁명전쟁 당시 프랑스 혁명정부가 대규모 징병을 통해 수십만 명의 병사들을 굴려 전 유럽을 상대로[4] 홀로 싸워서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는, 당시의 상식을 초월하는 무시무시한 전과를 이뤄내자 주변 국가들도 전부 징병제를 시도하게 된다.

영국 같은 경우, 이런 군인들의 체력과 건강상태를 개선하려 하던 것이 효과가 좋자 국민 복지와 의료제도에도 적용하게 되었고, 프랑스의 경우도 군인에게 최소한의 자질(의사소통[5]+훈련 과정 이해)을 갖춰주기 위해서 나폴레옹 시절부터 공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일본제국 역시도 사회화 수준이 낮은 일반인들에게는 군대가 공교육의 기능을 수행했으며, 역시 교육 수준이 낮았던 산업화 시절 대한민국에서도 그러했다. 특히 이런 식으로 사회화를 받을 경우 국가와 군대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도 불어넣을 수 있어서, 애국심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즉, 근대 국가의 정치 사상은 시민혁명에서 나왔지만, 근대 국가를 뒷받침해 준 역량은 징병제였던 셈이다.

2.2. 세계대전[편집]

20세기에 접어 들면서, 세계 대전급 전쟁이 터지면서 총력전이라는 개념이 생겨 났다. 전시 체제에 돌입할 경우 모든 국력을 전쟁 수행에 맞추어 전력함을 의미한다. 전 근대와 달리 이 시점부터는 전문 군인층에만 의존하지 않고 가용 가능한 성인 남성들을 최대한 전투에 동원하는 국민개병제라는 방식이 확산되었으며, 각국에서는 국방을 하나의 의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국조차도 국민개병제를 시행한 시절이 있다. 국민개병제는 전시나 국가적 급변사태 시 엄청난 병력을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또한 각계각층의 남자들을 강제적으로 복무시킨다는 점에서 병사의 질이 제각각인 데다,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다들 다를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었다. [6]

2.3. 현대[편집]

이후에 벌어지는 베트남전 때의 미군의 경우, 사회 전반에 반 전쟁분위기가 만연하고, 문화적 격변이 벌어지던 시기에 장정들을 징집해다 전쟁터로 몰아넣다 보니, 군의 사기나 인적자원의 질이 급격히 떨어져 역효과가 났다. 반면에, 90년대 이후의 한국의 경우 교육열 덕택에 성인남성 대부분이 최소 고졸이나 대학생인 경우가 많았는데, 징병제를 통해 성인남성들을 징집하다 보니 장병들의 학력수준이 그야말로 세계 최고레벨인 희한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육군훈련소 기준으로 대학에서 2학년 1학기 이상(그것도 경영, 경제, 사회, 정치외교, 행정, 법학, 전산 관련 전공자 한정) 다니다 온 자원이 아니면, 본인이 따로 자격증이 없는 이상 행정병 특기분류시험을 응시조차 못한다! 무릎팍도사에서 성시경의 증언에 따르면 세계 군악대회에 다른 나라 군악대에서는 그냥 노래 잘하는 군인을 내보내는데 한국군은 군입대한 서울음대 바리톤 전공자를 내보내서 모두 닥버로우시켰다는 얘기도 있다.성시경 증언실제 공연

그러나 이는 국가적 입장에서도 개인의 입장에서도 엄청난 인력 낭비다. 사회에 계속 남아있었으면, 아니면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보충역이었으면, 계속해서 틈틈이 실력을 갈고 닦으며 새로운 성과를 낼 수 있었을 쓸 만한 인재들을 공연히 군대에 입대시켜 총질이나 시키며 실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당장 일반 대학생들도 군대 다녀오고 나서 머리 굳었다고 한탄하는 마당에 전문직들은... 대체복무제(전문연구요원 등)에 지원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인력에 비해 자리가 너무 한정되어 있고, 그마저도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3. 징병제가 가지는 장점[편집]

3.1. 많은 병력동원이 가능하다.[편집]

예로부터 병력수와 사기는 그 국가가 전쟁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나를 가늠할 수 있는, 소위 '맷집'과도 같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 현대전이라 하더라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특히 전면전에서는 병력수 차이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독소전쟁만 봐도 그렇다.) 징병제는 유사시 국가의 젊은이들을 그대로 군인으로 전환시킬 수 있기에 군대의 수적 팽창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또한 우수한 인적자원들을 대거 병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7] 1810년 예나 회전에서 프랑스군이 그 사례를 증명한 바가 있으며 그 영향으로 독일의 경우 샤른호르스트에 의해 의무병역제의 역사를 열기도 했다.

제 아무리 현대전이 병사 개인의 전문성을 요구한다고 한들, 그리고 모병제가 소위 말하는 '정예'를 뽑아낼 수 있다고 한들, 순수하게 전투 병력에 대한 보급이라는 측면에서는 징병제가 모병제보다 명백하게 우월하다. 모병제의 장점은 소위 말하는 가성비의 차원이며, 순수한 병력보급에서는 징병제의 우월성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인구 자체를 병력으로 전환이 가능하기에 징병제를 주로 사용한 동양측은 고대로부터 징병제가 아니었으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규모의 전면전이 많았다. 과장이 어느 정도 있다지만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병력동원력은 전투 한 번에 기본이 한쪽만 수만 단위였고 격변기에는 10만 단위가 심심치 않게 나왔으며 100만 대군의 동원도 불가능이 아니었다. 비교적 가까운 시대인 임진왜란 때만 해도 쳐들어온 왜군 병력수만 수십만[8]이었고 수비측 조선은 10만여 명을 동원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제도와 기술의 발달로 병력 동원이 더 쉬워졌기에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에선 한 전장에서 수십만 명의 병력이 증발하기도 하였고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소련은 독일의 침공에 맞서 거의 3천만 명에 달하는 인적 소모를 겪으면서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고, 종전 시점까지 유지하고 있는 병력이 천만 명에 달했다. 독일 역시 전쟁 후반에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소련군을 막기 위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징집해서 전장에 내몰았으며, 미국의 경우 1차 세계 대전을 통해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징병제를 실시하였고 그 징병제는 1973년 베트남전 휴전을 맺은 후 완전 철수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런 방대한 병력수는 징병제가 아니라 모병제 국가들이었다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지상전의 경우 병력의 질만큼이나 숫자도 중요한 까닭에, 숫자가 많으면 전투력에서 우위를 갖게 된다. 특히 시가전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정예병이라 할지라도 은밀한 구석에 숨어있던 신병이 쏘는 총탄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9] 병사의 질이 무위로 돌아가고 오로지 양으로만 승부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며,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현대에서는 시가전이 벌어질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병력수를 결코 등한시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충분한 화력과 장비를 갖고 있지 않은 중소규모 국가들은 병력의 숫자로 화력과 장비의 부재에서 나오는 전투력을 때우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 어차피 군대를 가야만 된다면 자기가 선택권을 갖고 가고 싶은 군으로 가려는 병사들이 지원을 더 하기 때문에, 육군뿐만이 아닌 해군, 공군, 해병대까지 덩달아 지원률이 오르는 현상도 실제로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대한민국 국군이 그렇다.

일부 반대 의견에서는, 기업에서 직원을 인턴으로 물갈이하면 제대로 돌아가겠냐고 비유하는데, 이는 제대로 된 비유가 아니다. 징병은 단순히 인턴으로 교체하는 게 아니라, '몇 배로' 인원을 뻥튀기 시킨다는데 장점이 있는 거다. 까놓고 말해서 비정규직을 몇 배로 뻥튀기 시키고 월급도 후려칠 수 있게 하면, 기업 입장에서 매력적인 건 분명하다. 설령 '평균적인 20대 성인' 수준에서 비정규직을 모집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징병제 국가에서도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건 원론적으로 간부에게 시킨다. 구체적으로 어디까지를 '고난이도'로 해석하느냐의 문제는 남아있지만, 이는 간부 TO를 늘리는 등 징병제라는 틀 내에서도 해결 가능한 문제이다.

3.2. 미군의 병력감축과 한국의 현실[편집]

미국의 경우 기본적인 전략과 연구 그리고 냉전 해체로 인하여 주적이 사라졌고 군비 축소를 상호로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자, 주요 강대국들이 의무병역제를 유지하기보다는 비대칭 전략(비정규전 및 대테러전등)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신속전개를 목적으로 하는 형태의 군대를 원하게 되어 군의 경량화와 함께 군 인력을 차츰 감소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이라크전을 승리로 장식한 시점에서 특히 이 문제에 대한 가속화가 된 바 있으며 현재는 조금 다르지만 충분히 징병제를 통한 과도한 병력운용만으로의 소모전략만이 우선시되는 전략입장의 징병제가 과연 효용성이 있는가는 여전히 논쟁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사실상 주적이 소멸한 미국과는 달리 한국은 110만이 넘는 병력을 지닌 북한을 마주하고 있다. 북한이 아무리 낙후된 국가라 하더라도 숫자의 우세함을 무시할 수만은 없으며, 110만이 전부 내려오는 것은 물론 말도 안 되지만[10] 국군도 북한군에 대응할만한 어느정도의 병력수를 확보해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각국이 시행하는 워게임에선 정예병력이니 뭐니 그딴거 없이 병력 교전비를 1:1 혹은 그보다 더 불리하게 처리해버리는 게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11] 언제나 전쟁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미리 준비해뒀던 작전은 교전개시 5분 만에 틀어지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변수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충분한 병력수가 필요한 것이다.

두 번째로 장애물이 별로 없는 평야, 사막전은 원래 기갑전력과 공군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지만, 숨을 곳이 많은 산악지형에서는 중요성이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 국토의 80%가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막이 대부분인 이라크와 동일시 하는 것은 위험하다.[12] 그렇다고 한국전쟁 초기마냥 한국에서 기갑전력을 운용할 수 없다고 믿는 것도 곤란하긴 하지만, 요컨데 기갑전력과 항공전력의 유용함이 떨어진다기보다는 지형을 방패삼아 보병들의 생존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산악지형에서 효과적으로 적군들을 맞상대할 아군 전투병력이 다수 필요하다.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미군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수의 부족을 절실히 느낀 바 있다.

세 번째로 어쩌면 가장 큰 문제인데, 한국은 국토가 너무 작아 제대로 된 종심방어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만약 한국의 국토가 넓다면 평시에는 최전방에 비교적 소수의 병력만 유지하고 전쟁발발 시 예비군을 동원해 반격하는 것도 가능하다.[13] 그런데, 한국의 경우 서울시청에서 휴전선인 임진강까지의 거리는 40km도 채 안 되는 등 수도권 자체가 전방에 있는 입지이다. 이는 보병이라면 하루, 기갑부대라면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로 전방이 뚫리면 예비군이고 뭐고 동원할 여유가 없다.[14] 게다가 서울 북부에도 수백만의 인구가 거주하는지라 이 지역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면 대규모의 병력을 유지하여 전방을 무조건 틀어막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15]

첨단 전쟁으로 알려진 이라크 전쟁 때조차 미군 15만,기타 다국적군 11만을 합쳐 26만으로 37만의 이라크군과 싸운 것이다. 이라크전에서 미군은 1개 기계화보병사단(제3보병사단)과 101공중강습사단, 1개 영국군 기갑여단 그리고 1개 해병여단이 주로 싸웠다고 알려졌으나, 이는 주전장에서 순수하게 총들고 싸우거나 탱크타고 적과 마주친 부대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원부대는 모두 제외한 것이다. 특히, 상당히 활약을 한 포병대(18공수군단 포병여단 및 다수의 야전포병여단들)와 항공여단(11,18항공여단)을 제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는 없다. 당연히 이들 지원부대의 도움 없이 전쟁이 될 수 있을리 없다.[16] 게다가 세세하게 따지면 82공수사단(일부), 173공수여단 등 비록 주전장은 아니었지만 이라크군과 교전한 병력들도 많다.

미군의 FORCE21이라 불린 개편안을 통해서 변화하는 것처럼 한국의 징병제의 필요성도 재고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미래전장환경에 적응이 가능한 NCW 즉 네트워크전을 통해서 대규모 병력이 상존하지 않더라도 1/2병력만으로도 충분히 그 효율을 증명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바가 있다. 그러나 애초에 미군이 주창한 FORCE21은 미군이 파견될 전장 환경은 소규모 국지전이 중심이 될 것이므로 기존의 사단 편제 중심의 군대를 여단 중심의 편제로 세분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즉, FORCE21이란 소규모 국지분쟁을 위해 기동성 있는 여단 중심으로 미군을 편성하는 게 목적이다. 한국군의 경우에는 국토가 좁아서 기동성은 각 사단들이 제대로 전개할 정도면 충분하고, 그보다는 전통적인 화력과 머릿수가 중시되는 전면전 상황이기 때문에 사람을 드론으로 대체하지 않는 이상 모병제는 힘들다고 봐야 한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초 한국국방연구원(KIDA) 이 시행한 외부 용역 연구 결과, 현 남북 분단 지속 시 복무 기간이 최소 1년 3개월 이상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있었다. 물론 상근예비역의무경찰, 의무소방대 등 전환복무와 사회복무요원보충역 대체복무를 최대한 줄여 현역으로 복무케하고 군을 기계화하는 조건.

사실 국방개혁 2020의 근간은 전두환 정부 때부터 있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포함하여 육군의 1군과 3군을 통합하는 지상작전사령부 창설, ,,공군을 통합한 통합군 창설, 각 군 사관학교 통합도 그러하였다.

미국의 경우,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 국방부 연구 결과, 민간인을 징집하여 현대전에 투입하기까지 최소 1년 이상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당시 1973년 1월 1일 이후 폐지하였던 징병제를 부활시켜야 하느냐가 이슈였기 때문이다. 미군징병제 폐지 전 베트남 전쟁 당시 복무기간은 1년 6개월이었다. 다만 이건 평균을 낸 것이고 어느 나라 군대건 저강도 장기전은 정예부대 위주로 수행하므로 징병제 반대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17]

3.3. 국가 안보는 개인의 이익과 분리되지 않는다[편집]

아무리 고전적인 논리라고 하더라도, 국가 안보는 개인의 이익과 분리되는 요소가 아니다. 강력한 군사력은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며, 전쟁이 발생한다면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지켜줄 수 있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인해 국민들이 혜택을 본 사례는 역사상 무수히 많다. 당장 한국만 하더라도 휴전 이후 반세기 넘는 평화가 국가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악덕 기업에서 박봉으로 2년 착취 당하는 것과는,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는다. 비록 이게 수지타산이 맞는 혜택이라고 하기엔 어렵더라도, 혜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박봉 자체를 정당화한다면 애국페이겠으니, 당연히 징병제라는 틀 내에서도 병의 대우를 개선해야겠지만 말이다.[18]

물론 보험의 특성상,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그 혜택을 체감하기가 힘들다는 문제점은 분명 있다. 게다가 그 보험이라는 게 '강제'이기도 하고. 그러나 이런 이유를 가지고 징병제를 반대하는 것은 부당하다. 징병제에 대한 비판은 기본권의 과도한 제약과 효율성 등에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지, 개인이 국가의 간섭을 배제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반대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국가의 간섭을 긍정하는 것 자체는 전체주의가 아니며, 공화주의민주주의에도 있는 개념이다.[19]

3.4. 군대가 대규모 사회화를 책임진다[편집]

한국이야 워낙 선진국이고 교육제도가 잘 짜여있어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후진국이나 막 근대화를 시작하려는 국가에게 있어선 큰 장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는 최신 장비를 지향하며 그 장비를 사용하고 전략 전술을 익히게 하려면 그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진국에선 그런 학력자를 구하기 어려우므로 결국 군대는 지식을 전수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 한국군에게야 지겨운 용접질에 삽질에 사회에 나가서 쓸 일도 없을 깡통 무전기질이지만 후진국의 국민들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신기술이다. 대규모 군대를 꾸리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국가에서는 군대에서 배워온 기술 하나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 그리고 군대에 강제로 끌려와 접하게 되는 신식문물을 익히고 나간 퇴역병사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흔히 있는 저항감을 많이 줄이는 역할도 한다.

사실 1950년대, 60년대 초 한국도 이 예시에 해당한다. 당시에는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 청년들이 많은 시대였는데 이들이 유일하게 초보적 지식과 기술훈련을 받을 기회가 있던 곳이 군대뿐이었다. 일단 군에 입대하면 글을 배울 수 있었고 운이 좋다면 기계정비나 운전 같은 기술까지 배울 수 있었다. 설령 위에서 말한 용접질에 삽질밖에 못 배웠다고 해도 대부분의 청년들이 전역 후 부모님 농사짓는거 도와드리거나 노동자가 되는 게 대부분이였으니 지금저럼 사회나가서 쓸 일도 없는게 아니였다. '군대가야 사람된다' 는 말은 '군대가야 철이 든다 = 사회화가 된다.' 는 말과 같다. 물론 이는 한편으로는 병영사회화에 따른 것으로 한국 사회에 맞추려면 군대를 겪어야 한다는 씁쓸한 의미이기도 하다.

4. 징병제의 단점[편집]

승상! 적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적이 어중이떠중이를 모은 100만이라면 우리는 가려뽑은 10만입니다. 우리 병사 한 명이 적병 10명을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순욱, 관도대전조조에게 조언하며.

이미 지휘관들은 2000년 전부터 징병제의 단점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가장 극적인 사례를 살피면 폴란드 윙드 후사르 100기와 판체르니 300기로 40,000의 크림 칸국주력을 갈아버린 적이 있다. 당시 타타르 칸국은 문화적 뿌리를 몽골에 두었기에 군역이 있었고, 그에 따라 동원된 4만의 침공군이었던 반면, 폴란드 윙드 후사르는 발칸계 자원병을 중심으로 구성된 고도로 훈련된 병력이었다. 이 훈련의 차이가 말 그대로 일당백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근대전에서는 서남전쟁 당시 사츠마군은 낡은 전장식 화기와 냉병기로 무장한 사무라이들로 이루어졌는데 근대식 화기로 무장한 징집병들을 압도하였으며, 결국 사무라이들을 모아서 경찰 발도대를 창설하여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현대전, 그것도 장기전으로 보자면 로디지아군은 게릴라에게 밀리고 있던걸 징집까지 하며 버틸려했지만 무리였고, 결국 용병을 고용하는 데 1/8의 교환비를 내며 게릴라를 완전히 압도하였고,게릴라를 괴멸 직전까지 몰아붙일 수 있었다. 결국 남아공의 지원이 끊기면서 이기진 못했지만.

이는 물론 지휘관 역시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는다. 과거의 사례를 살피면 완안진화상은 20배 정도의 몽골 기병을 격파한 적 있다. 당시 몽골이 점점 강력하게 되던 시기인 점을 고려하면 병력의 질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는데 이 점을 고려하면 병사들만이 아니라 지휘관 역시 질적 우수성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20]

4.1. 전문성 문제[편집]

당연한 얘기지만, 군인도 직업이다. 간부를 선발할 때 필기, 면접 치르고 뽑듯이 병을 뽑을 때에도 시험을 치르고 뽑아야한다.

현대전은 갈수록 말단 병까지 직분에 맞는 고도의 숙련도를 요하고 있다.
현대전의 기술과 전술은 복잡화되고 있는데 겨우 2년 남짓 군대생활하는 병, 더군다나 억지로 군복무하는 징집병이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은 잘해봐야 미군에 입대한 뒤 이라크, 아프간에서 소모품처럼 굴려지는 기동부대 수준이며, 그 이상의 중요한 업무를 요구할 경우 이제 좀 업무 능력을 발휘하는구나 싶은 인재가 곧 전역해 대체 인원을 뽑아야하는 뻘쭘한 상황도 매번 벌어진다.

이 때문에 한국군은 군경력 5년 미만의 신병이나 단기 복무하는 간부들에 대다수의 절대 분야를 의존하여 이루어지고, 그 결과 중장거리 투사수단과 화력으로 적을 미리 제압해놓지 않으면 전투를 어렵게 끌어가야 하는 군대가 되고 말았다.

동시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 군이 추진하고 있는 첨단화라는 입장에서의 군대의 기술 숙련도를 요구하는 현실상 징병제의 짧은 복무기간으로는 숙련도를 지속 유지 가능하게 할 수 없다. 당연히 그렇다고 군이 마음대로 복무기간을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함이 바람직하다.

4.2. 인권 문제[편집]

사회적으로 개인주의 및 자유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해짐에 따른 공공성의 저하 문제도 징병제의 지속유지를 의문화한 내부적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애국심이라는 명분하에 국가가 주도해서 사람의 자유를 일정기간 빼앗고 더 나아가 강제 징병한 청년들을 목숨이 위협받는 전쟁터로 끌고간다는 점이 인권, 자유권 논리에서 크게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옛날에는 애국심 논리가 어느 정도 먹혔지만 요즘에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21]

또한 표면적인 문제보다 폐쇄적인 군 특성상 그 내부 문제로 들어가면 인권침해 여지는 훨씬 많으며, 전투력만 생각하고 인권문제는 관심이 없었던 소련군, 일본군이 어떤 꼴이 났는지는 역사속에 처참하게 기록되있고 이는 한국의 군대라고 저절로 피해지는게 아니다.

최저시급보다도 한참 적은 돈을 주며 전투 외의 부분에 부려먹는 것은 냉정하게 생각하면 정부의 노동력 착취라고 볼 수 밖에 없을뿐이다.
이에 반발해 현재 안보 실정을 들이대기엔[22] 골프병, 테니스병, 공관병, 심지어 간부 집 애들 과외시키기 같은 간부에 의한 군 인력의 사적 이용도 비일비재하고 정작 그렇게 안보가 소중하면 더욱 더 소중히 여겨야 할 병사들의 처우는 전시 상태도 아닌 1인당 GDP 3만 달러 국가의 군대 내부가 위생이나 시설, 식사 등에서 열악하기 짝이 없다는 점에서 결코 좋다고 볼 수 없다는 것과 같이 논리적으로 상당히 모순된 요소들이 징병제를 말그대로 국가가 인구를 징집해 착취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 밖에 없게 만든다.

4.3. 재정 부담[편집]

하는 일에 비해 머리 숫자가 많기에 개인당 들어가는 돈이 적어 순수 모병제보다 국방비 지출이 적을 것 같지만 이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재정착각이다.

징병제는 한창 경제 활동을 할 나이의 사람에게 몇 년간 총 들고 서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적 규모에서는 결국 경제적 손해다. 군 장병들을 계속 전역시키고 징집하는 과정에서 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도 무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경제의 성격상, 비합리적인 강제성은 절대적으로 손해만 부를 뿐이다.

또한,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징집된 군인들의 군생활에 대한 가치관과 생각도 가지가지다. 장교와 부사관 같은 간부층은 징병제로 뽑는 경우가 극히 드문데, 당연하게도 복무 의지와 전문성에 문제가 생길 테니 모병제가 완전히 배제된 국민개병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장교를 징집할 경우 사병으로 징집된 사람과의 차별 논란도 심하다.

4.4. 천차만별인 징집기준[편집]

징병제는 근본적으로 국가의 청년들을 나이만 차면 마구잡이로 징집해 군 병력으로 쓰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국가가 저출산이나 기타 문제들로 인해 징병제를 유지하기 무리가 가해질 정도로 청년들의 수가 줄어듬에도 불구 모병제로 전환하여 군대를 정예화 시키는 것도 아닌 경우, 인원을 맞추기 위해 징집 기준이 점점 느슨해지게 된다. 이때는 신체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는 군대에 징집이 불가능한 소년이 징병 검사에서 대충 우기기만하면 통과가 되서 전선으로 투입되는 일이 벌어지거나[23] 아예 대놓고 끌고가기도 하는 등 어떻게든 병력 공급을 위해 윤리적으로 반발되는 행위들이 벌어지게 된다.
이러한 징병제의 폐해들은 세계 역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 문서에서는 한국군의 징집 기준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 서술하겠다.

우선 한국은 출산율 저하로 점점 징집 가능한 성인남성층의 비율과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인해 입영 기준을 매년 완화하느라 점차 병력의 질도 떨어지고 있는 판국인데 가령 70년대에는 평발과 3대 독자가 군 면제 사유였으나, 2018년 현재 평발은 심한 경우에만 4급 보충역(기초군사훈련 4주 포함)이며 독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사람이 본인밖에 없는 게 아니라면 타 결격사유(아버지가 상이군경, 신체등위 4급 등)가 없는 이상 무조건 현역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디스크 환자 정도는 물론이고 웬만한 희귀병 환자도 그냥 입영이다. 과체중, 저체중 기준도 극도로 완화되어 종합격투기 선수였던 최홍만도 입영통지서가 나오는 단계까지 갔었다.[24] 아니, 희귀병을 넘어 지적장애 2~3급도 공중보건의의 기분에 따라 현역처리가 된다. 정신과조차 입원치료 받은 기록이 있더라도 보충역(훈련은 안받음)이다.

다만, 아직 징병 자원의 부족은 바로 닥칠 일이 아니었음에도, 병무청이 설레발을 떨어 쓸데없이 병역 자원을 많이 뽑는답시고 부적격 자원을 대량으로 현역 입영 대상자로 만들어, 2015년에는 입대하고 싶어도 2~3년을 기다려야 겨우 입대하는 이들이 대거 늘어나는 이른바 입영대란이 터져버렸다.
보통 나이가 많은 인원부터 입영시키다 보니 입영장정들의 평균 연령이 상승하고, 현역에 부적합한 인원들[25]이 잔뜩 입대하면서 병들의 질이 떨어진 것은 물론, 징집 대상인 남성들이 병역 문제를 장기간 해결하지 못해 사회 진출이 늦어지고 학업에 지장을 받는 등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 결국 병무청은 욕만 바가지로 먹고 상당수의 인원을 재검해 도로 보충역으로 환원해야 했다[26].

이에 따라 현역부적합심사에 넘어가는 인원도 대폭 늘었으며 입대한지 얼마 안되어 부적합 전역을 하는 장병도 많이 늘었다.

4.4.1. 그렇다고 모병제는 인력에 문제가 없는가?[편집]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그러나 위에 언급된 문제들은 일부 해결할 수 있다.

국방은 군대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징집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징병제는 아무나 나이만 차면 다 군대로 끌고 오는 만큼 오히려 신병의 평균적인 자질만 따지면 그 사회의 평균과 같거나 다소 높다. 도리어 모병제일 때보다 병력 모집이 쉬워지는 만큼, 일정 형량 이상의 범죄자 및 징집기준 미달자원 등을 가려내기 쉬워진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사실 모병제인가 징병제인가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병력자원의 문제와 군의 사회적 위상에 달린 문제다. 실제 사례를 보면 모병제라도 인구가 많고 군의 위상이 높은 중국 같은 경우는 신병의 대부분을 운동선수나 고학력자로 뽑아도 될 만큼 지원율이 높고, 징병제를 채택한 러시아의 경우 병영은 말 그대로 지옥이다. 그래서 모병제 전환 중이다[27]

자질이 우수한,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자원들은 징집을 피할 수 없을테고, 한국군 역시 1980년대의 저출산 경향과 잇단 고위층의 병역비리 때문에 징병기준이 빡빡해진 거지, 현재는 얄짤없이 3급 현역인 인원들도 옛날엔 면제를 펑펑 받았다.# 심지어 입대자가 너무 많아서 커트라인 뒤로 면제를 시키는 과밀면제도 있었다. 요즘 20대가 공익을 가려고 용을 쓰는 동안, 우리 아버지 세대에는 면제자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28] 한국만 해도 상당수의 징병 대상자는 쓸데없이 높은 대학교 진학률 덕분에 대학교 재학 중에 군대에 온다. 그러므로 사병 주제에 대학 재학 수준의 학력을 보유하는 셈.

총기를 들고 근무할 사람이 반드시 대학 재학 수준의 학력을 보유할 필요가 있냐는 반박도 있을 수 있는데, 보병 전투병이라면 몰라도 군대는 각종 행정부서와 지원부서도 만만치 않게 큰 비율을 차지하기에 군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고학력자가 많을수록 더 좋다. 병력 수가 60만이나 되는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시스템인 만큼, 대기업 중에도 군대보다 인력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곳도 많다.[29] 또한 현대전에 사용되는 첨단 화기는 그 사용법을 숙지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수학과 영어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대학 재학 수준의 학력 소지자라면 이 정도는 이미 이 갈리게 배워온다는 점도 매리트가 있다.

반면에 모병제를 실시할 경우 군대란 곳이 사회적으로 기피되는 영역이므로 여간 좋은 대우를 해주지 않는 이상 사회 기준으로 우수한 인원은 군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현시점의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군대에서 일반병으로 복무하는 것은 3D 업종 취급을 받는 것을 감안하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결국 다른 사회영역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자원이 군대로 흘러들어가는 문제는 모병제에서 오히려 더 큰 문제이다.[30] 미군의 경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지원자가 줄자 입영기준을 극단적으로 완화시킨 덕분에 병력자원의 질적 저하 문제를 겪고 있다. 다만 이것은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미군의 병력자원이 고갈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9.11 이전에는 미군 병력자원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우수한 인원이라 할지라도 2년가량만 복무하면 제대하고 나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없고 매년마다 들어오는 신병 훈련비용도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징병제와는 달리 모병제는 학력이 떨어지는 병력자원이라 할지라도 다년간의 훈련과 학습으로 인해 고학력 징병제 군인보다 훨씬 우수한 전문성을 갖추게 할 수 있다는 반박이 쉽게 가능하므로 어느 체제 병력자원이 우수한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문제이다.

징병제는 모병제에 비해 인사적체가 덜하다는 장점도 있다. 정해진 기간만 복무하면 전역하고 전역할 때는 또 미련없이 나가기 때문에 진급 문제에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병력의 노령화도 모병제보다 훨씬 덜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초급 장교및 부사관도 현역병 복무를 대체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장점이 두드러지지만, 외환위기 이후엔 그러한 장점도 빛이 바래며 대다수의 초급간부들이 의무복무를 마친 뒤에도 장기복무를 지망하여 헬게이트가 된 상황이다. 그 이유를 찾는다면....

  • 기업들이 취업시장에서 병역을 필한 졸업예정자를 선호하면서 대학졸업 후 군복무를 하게 되는 학군, 학사장교들은 재학 중에 병역을 필하는 병 출신 복학생들에 비해 취업에 핸디캡이 있음. 외환위기 전에는 임관 전 채용 전형으로 4학년 2학기 때 취직이 되어 초군반 입소 전까지 다니다가 휴직하고 군대를 갔다 오면 복직이 보장되었지만, 이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경제상황에서 그런 전형들이 거의 사라졌다.

  • 그래도 장교는 입대 시점의 자질이 있다는 점을 참작할 수 있어 전역한 뒤 취업이 병보다는 유리하다. 일부 기업에서 전역장교 특별전형을 둔다든지 아니면 장교 출신을 우대하는 식으로 대우해주기 때문. 문제는 부사관인데 단기부사관의 경우 복무기간이 4년(부사교 교육기간 별도)으로 21~24개월 후 전역하는 병에 비해 상당히 길어, 전역 후 취업 시 연령면에서 핸디캡이 상당히 심하고, 입대 시점의 자질은 오히려 상당수 병보다 낮은 상황이다.[31]


4.5. 평등한 병역?[편집]

모병제의 제도적 계급착취 논란과 징병제의 병역비리(범죄)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징병제의 '평등한 병역'을 무색케 하는 일이 빈번하다. 우선 여자는 병역을 지지 않는다. 고대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병역기피가 있었고, 금수저들은 병역을 가도 큰 특혜를 보았다. 특히나 한국에서 높으신 분들 집안의 금수저 자제분들의 병역 면제율이 높다는 이유로,# 병역 제도는 보다 공정하게 열외없이 적용되는 방식으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군대에 가 본 사람들은 알다시피, 부대마다 인프라가 확 갈리는 데다, 이미 학력과 다양한 배경에 따라 각기 다른 부대나 보직이 배정되고 있고, 군대 내부의 연줄에 따라 부당한 대우를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하며[32], 상급부대[33][34]의 징집병과 말단부대[35]의 징집병이 느끼는 군생활 질의 차이나 복무수준의 차이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서울, 대전권 육직, 국직부대 소속 징집병이 영내 스낵바에서 치킨, 피자나 사제 빵을 사먹는 동안에 강원도 최전방 오지에 있는 말단 보병부대의 징집병은 PX도 없어서 황금마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이런 점을 따져 볼 때 공평한 병역 부여는 사실 허구에 가까운 이야기다. 괜히 육군본부가 자대배치의 공정성을 말로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점을 지적하는 이야기가[36] 자주 나오고 있다. #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의 병역의무/문제점/병영시설 문제 및 천차만별인 복무 환경 문서 참조.

4.6.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편집]

군 가산점 논란에서 보듯이, 징병된 병사들이 실질적으로 보상 받을 방법이 난해하다. 그나마 확실한 방법은 빵빵한 봉급이지만, 징병제의 목적 자체가 '대규모 병력을 굴리는 것'인 만큼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한국의 사례가 극단적이긴 하더라도, 징병제라는 제도 자체가 '빵빵한 병사 봉급'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이것이 '참정권교육이라는 당근으로 해결이 되었다. 근대 국가의 경우 징병제는 '국가를 지킨다'라는 명분을 성인 남성들이 취득하게 되어 참정권의 확대로 이어졌다. 즉 시민 한명한명이 기사로 대우 받게 되는 것이다. 괜히 공화주의에서 시민군을 부르짖은 게 아니다. 또한 교육수준이 낮았던 시대인 만큼, "군대에 보냈더니 글도 배워오고 기술도 배워오더라"는 식으로 보상이 가능했다. 그러나 징병제를 통한 참정권 논의는 필연적으로 여성 참정권의 제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자들은 나라를 지키지도 않으면서 참정권은 무슨..."이라는 식의 논의들이 그것이다. 지금에서야 꼰대 같은 소리이지만, 당대 사람들에게 분명히 설득력을 지녔던 논리이다. 물론 시대가 지나면서 여성 참정권이 이루어졌지만, 이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징병제는 명분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더군다나 교육 수준이 올라가면서, 군대가 교육을 해준다는 당근도 없어졌다.[37]아니, 없어지는 것을 넘어 이공계의 경우 오히려 징집 기간동안 지식이 뒤처진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군대가 지식을 앗아간다는 말도 가능할 정도이다.

즉, 고대, 중세, 근대 국가에서는 "여러분. 참정권은 무장한 시민들이 가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군대에서 기술도 배워와요"라고 당근을 줄 수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적 자유주의 의식이 퍼진 현대 국가에서는 그 방법이 통하지가 않는다. 정리하자면 한국에서는 사실상 실질적인 보상이 어렵다. 취업에 가산점을 주면 그건 그것대로 차별이라고 반발하고, 급여 인상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도의적으로 "국방의 의무니까 어쩔 수 없다. 다녀와라." 수준의 설득 외에는 방법이 없다.[38] 현역 복무를 하는 대다수의 남성들이 불합리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부당한지의 여부는 그렇다쳐도 최소한 개인 입장에서 '불합리'하다는 의견에는 딱히 반박이 없다.

5. 한국에서의 징병제[편집]

대한민국의 병역의무 참고.

1993년 김영삼 정부 초 한국국방연구원(KIDA) 이 시행한 외부 용역 연구 결과, 현 남북 분단 지속 시 복무 기간이 최소 1년 3개월 이상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있었다. 물론 상근예비역의무경찰, 의무소방대 등 전환복무와 사회복무요원보충역 대체복무를 최대한 줄여 현역으로 복무케하고 군을 기계화하는 조건.

사실 국방개혁 2020의 근간은 전두환 정부 때부터 있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포함하여 육군의 1군과 3군을 통합하는 지상작전사령부 창설, , , 공군을 통합한 통합군 창설, 각 군 사관학교 통합도 그러하였다.

6. 한국 외 경우[편집]

전 세계에는 아직 징병제를 하는 나라가 몇몇 존재한다. 가장 골룸한 것은 태국의 징병제. 일정한 날짜가 되면 병역대상자에게 제비를 뽑게 한다. 우선 지원자를 받은 다음에 이후 인원이 모자라는 경우 상자 안에는 검은 제비와 붉은 제비를 마구 뒤섞어 놓는데 그 제비를 뽑은 결과에 따라 병역이 결정된다. 비율은 그때그때 충원에 필요한 정도만 붉은 제비를 넣어놓지만 보통 검은 제비9 : 붉은 제비1의 비율이 대부분이다. 물론 자신의 명예나 돈 혹은 꿈을 목표로 자원하는 경우도 있다. 검은색 제비를 뽑으면 병역의 의무가 죽을 때까지 면제되는 반면 붉은색 제비를 뽑으면 그날로 군대에 입대해야 한다. 다만 이 제비뽑기도 그때 자원한 인원이 충원할 인원보다 많은 경우엔 제비뽑기를 하지 않으며 자원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순간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병역이 면제된다. 제비뽑기는 오직 자원 인원이 충원할 인원보다 적은 경우에 자원한 인원들을 다 받아들이고 결원을 채울 때에만 한다. 그러니 그나마도 위에서 말한 9:1 비율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다만 면제라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닌 게 태국은 군벌이 지배하는 국가라 군인에 대한 대우가 상당히 좋기 때문.

한편 스위스는 2016년부터 징병제예비군 제도를 폐지했다. [39]

영국 왕족의 경우 남자들은 전통적으로 장교에 지원하여 복무 경력을 쌓는 경우가 많다. 다만, 강제로 왕족을 징병하는 징병제가 있거나 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선대의 관례 및 왕실 내부 규칙에 따라[40] 입대한다. 여성 왕족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군대에 입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국 육군 산하 보조지방의용군(Auxiliary Territorial Service)에 입대해 운전 및 정비 등의 임무를 수행한 바 있다.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증손녀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 공주도 성인이 되면 여군 장교로 입대하도록 권유 받았을 정도. 그런데 어떤 기사는 왕실과 고위 귀족들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한다는 기사가 있다.

북한의 경우에는 징병이라는 말이 아니고 초모라는 용어로 사용하는데 전민 군사복무화에 따라 남성 보병 10년 특수부대 13년 여성 보병 5년 특수부대 7년으로 타국에 비해 복무 기간이 너무 길다. 거기에다가 외출, 외박, 면회도 금지되어 있으며, 규정상 연간 15일 의무적으로 휴가가 주어진다고 하나 "통일이 될 때까지 휴가를 가지말자"라는 구호로 인해 사라졌으며 10년 군생활 중 한 번만 군관 감시하에 15일 휴가가 주어진다.

미국은 1973년부터 모병제지만 유사 시 병력충원을 위한 선택징집대상제도(Selective Service System)가 있다. 이것은 성인연령에 도달한 미국 남성들은 모병소에 자신의 인적을 등록하여야한다.[41] 자신의 인적을 등록하지 않을 경우 운전면허증 취득, 연방정부의 학자금 혜택 등의 제도에서 불이익을 받게된다.

중국은 2009년부터 모병제지만 사실 징병제 시절에도 중국의 인구가 굉장히 많아서 모병제처럼 운영되었다. 단 중국은 1주일간 중국 공산당에서 운영하는 당영 병영체험을 21세가 되는 남녀 모두 보내서 일주일간 수료 하게 한다고 한다. 이게 중국 내 대학교 학점으로도 인정이 된다고 한다.

대만은 항목 참조.

터키, 몽골, 노르웨이 등은 국방세 제도를 도입하여 세금을 납부하면 병역이 면제되지만 그 액수가 해당 국가 기준으로는 매우 큰 돈이다. 노동력을 돈으로 대신하는 제도이다.

7. 참고 문서[편집]


[1] 뜻은 조금 다른데, 징병제의 부분집합에 국민개병제가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 전기의 군사제도에서는 징병제를 실시했으나, 그 대상은 양인으로 천민은 제외했다. 따라서 당시 조선은 징병제 국가일지언정, 국민개병제 국가는 아니고 양인개병제 국가였던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국민개병제와는 차이가 있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대의 징병제 국가들은 국민개병제라기보단 남성개병제에 가깝지만(...)(일부 유럽국가들이나 이스라엘, 중국은 아니다) 남성개병제라는 용어의 문제는 단순하게 웃어넘길 문제가 아닌데, 국민을 자연스럽게 남성으로 한정하고 투표권도 남성에게만 주었던 구시대적 발상을 전제하였기 때문이다.[2] 상비군보다는 민방위나 예비군 같은 개념이다. 한 번 소집되면 몇 달씩 가는 게 문제여서 그렇지.[3] 물론 나라가 망할위기라던가 전국시대 같이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경우 농업인력을 최소한으로 남기고 끌어썼다.[4] 그 상대는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사르데냐 왕국, 오스만 제국 등으로, 당시 유럽의 힘 좀 쓴다는 나라는 죄다 대 프랑스 동맹에 가담하였다.[5] 프랑스는 19세기 초까지도 지방에서는 프랑스어가 아니라 지방 고유어(사투리수준이 아니라 진짜 별개의 언어)나 인접 국가 언어(독일어, 스페인어 등)를 썼기 때문에 타지방과의 의사소통이 수월하지 않았다. 이 점은 공교육이 정립되면서 전 국민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면서 해결된다.[6] 다만 '전쟁에 임하는 자세'는 징병제냐 모병제냐의 차이보다는 병사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징병제 병사는 비록 강제로 끌려나왔다지만 자기 고향과 가족을 지켜야만 할 이유가 있다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며, 반면 모병제 병사라 하더라도 자기 조국에 대해 애착이 없이 그저 돈벌이를 위해 입대했던 사람이라면 '그냥 내 한몸이나 건사하고 말자' 정도의 마인드로 전쟁에 임할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7] 근대적 징병제의 시초인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활약한 나폴레옹의 26인 원수가 대표적인 케이스. 혁명이 아니었으면 이들 중 상당수는 군사적 재능을 모른 채 그저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갔을 것이다.[8] 임진왜란 16만, 정유재란 13만.[9] 실제로 미군 교범에서는 인질이 없는 상황에서 적대 인원 1명 이상이 숨어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실내에 진입하기 위해 최소 1개 팀, 즉 4명이 필요하다고 가정한다. A가 문을 부수고 가시범위 확보 및 엄호, B가 진입하여 문이 열리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진입, C가 정면으로 진입 후 적당한 엄폐 상황에서 문이 열리는 방향 관측, D가 문이 열리는 방향으로 진입, 이후 방이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A 진입 후 상황 종료[10] 방어문제 이전에 북한의 국력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 정도로 많은 병력을 동원해서 쳐들어올 수 있는 수단 자체가 거의 없다.(...) 차량굴릴 기름조차도 없어서 목탄차나 겨우 굴리는 상황이라 상당수가 도보로 걸어서 쳐들어와야할 지경. 이 때문에 북한은 대부분의 병력을 휴전선 부근에 전진배치하고 있지만, 사람 발로 걸어오기에는 휴전선 부근조차 너무 먼 거리이다.[11] 국방예산 더 타내려고 수작부리는 거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는 워게임이지만 원래 이런 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입안-훈련해야 실전에서 피를 덜 흘리기 때문에 그 미군조차도 엄살로 보일정도로 아군 전력을 짜게 평가하며 워게임을 시행한다. 이러지 않은 나라로는 일본 제국이 있는데, 이놈들은 이걸 아군을 최대한 유리하게 보고 적군을 최대한 낮추어잡고 시행했으며, 때로는 아군병력을 부활(...)시키는 등 완전히 접대게임처럼 하다가 실전에서 망했다. 하지만 이놈들은 필요하면 식민지에서 강제로 끌어갔으니 어떤 의미 사실에 기반한 씁쓸한 역사이다. 일본군이 2차 대전 참패한 가장 큰 원인은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던 쓰래기 같은 발상으로 날뛰어준 정치인들과 장교들 덕분이 아닐까. 자국민 조차 필요하면 자국민 손으로 학살(관동 대지진)하게 만든 놈들이니 이런 것들 본받아 정치하던 독재자들이나 생각 없이 타국의 법을 문제점 하나 안 살펴보고 적용시킨 국회에는 한숨만...[12] 구태여 따지자면 국토의 75%가 산악인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13] 만일 이 가정대로였다면, 한국의 징병제도는 지금보단 널널했을 가능성이 있다. 2년 이상 현역으로 복무할 사람은 전원 모병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1년 미만의 단기 복무를 하는 식으로.[14] 보통 동원령 선포이후로 향토사단들이 완편되기까지는 적어도 이틀은 넘게 걸릴 것이다.[15] 후방에 위치한 사단들도 점차 줄여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전략예비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16] 아무래도 최일선에서 싸운 부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포병 등 지원부대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각이다.[17] 당장 미군 스스로도 단기병들에게는 크게 요구하는 것이 없고, 이들이 복무 연장을 해서 상병 이상으로 진급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고강도 임무를 부과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라크-아프간에서는 그것도 부족해서 특수부대를 일반 보병처럼 전장에 내몰거나 심지어 고참 병장이나 하사 이상 간부들의 전역을 중단시키는(Stop-Loss)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18] 징병제 국가 중에 최저시급 안 주는 국가는 남한 밖에 없다.(북한은 논외다)[19] 반면에 자유주의나 자유지상주의는 이러한 간섭에 대해 회의적이나 부정적이다.[20] 프로이센이나 독일 제국 역시 질적 우수성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총력으로 싸워야 할 때를 제외하면 군대 규모를 잘 늘리지 않았다.[21] 다만 옛날에도 군대가기 싫어서 꼼수를 쓰는 사람은 많았다. 지금보다 안보가 훨씬 중요시되는 시절이었음에도 이랬다는 건 징병제 자체가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심하다는 의미이다.[22] 가령 징병제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하는 "우리나라는 아직 휴전국가잖아", "3개 강대국에 끼여 사는데 당연한거 아니니?" 같은 말들.[23] 실제 1차대전기 유럽이나 2차대전기 미국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었다.[24] 이전 군 복무기간 축소방침하에서는 일반 징집병을 줄이고 유급 지원병 확대, 부사관 정원 확대, 복지와 장비의 첨단화로 숙련병을 양성하려 하였다. 모병제 요소를 좀 더 넣은 셈. 축소와 연장 간에 방법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군에 숙련병을 두려는 목적만은 명확하다. 이제 점점 유급 지원병의 정원은 증가하고 징집병의 정원은 감소한다.[25] 속된 말로 폐급 병사.[26] 물론 이제는 당연히 보충역의 입영대란이 또 다른 문제가 됬지만 병무청이 그딴 거 신경쓸 리가 없다.[27] 러시아가 다른 징병제 국가들보다 병영 악습이 훨씬 심한 이유는 소련 붕괴 이후 병 복지 체계의 붕괴와 병사들의 고충을 상담하는 역할을 했던 정치장교 제도가 사라지게 되면서 나타나게 된 현상이다. 덤으로 러시아에서 대학생들은 사실상의 병역면제를 받기 때문에 러시아군에는 학력이 낮은 자들만 입대하는 것도 병역 악습의 이유 중 하나라고 보기도 한다. 현재 러시아 국방부는 병 복지를 향상시키는 한편, 정치장교 역할을 대신하여 병사들의 고충을 상담할 수 있는 군종장교 제도를 채택하였고 이를 통해서 악습을 계속해서 줄이고 있다.[28] 학력으로도 면제되고, 몇 대 독자라고 해서 면제되기도 했으며 5~60년대에도 군대에 안 가려고 손에 못을 박기도 하고 별별 짓을 하며 발버둥쳤다...물론 국민개병제 초기에는 전과자 등을 걸러내는 일이 없어서, 징병제 시행 초기의 프랑스군에서는 초급 장교들이 '깡패나 양아치들이 순박한 시골 청년들에게 나쁜 물을 들인다' 고 걱정하며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29] 당장 행정병 문서만 봐도 군복무에 있어 학력 수준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30] 아이러니하게도, 미군 등에서는 이런 이유로 군대에 오래 남는 병사들도 적지 않다. 사회에 나가봐야 할 게 없다는 이유. 한국군의 경우에도 장교는 질이 유지되고 있지만 부사관급은 이야기가 달라서 사회로 나가봐야 할 거 없다고 남는 사람들이 많다.[31] 부사관의 경우 기본적으로 고졸과 초대졸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지잡대출신이라도 대학 재학생이 다수인 병보다 학력이 낮다. 실제 모병제 군대의 경우 부사관과 병을 사실상 하나의 덩어리로 취급하고 장교의 권위로 찍어누르는 식인데, 그나마 장교는 학력이나 실력이 군 기준으로는 병사보다 높으니 병사들이 납득하고 복종을 하지만 부사관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32] 예를 들면, 운과 빽이 없으면 사소한 잘못도 영창 갈 수 있는 반면에, 운과 빽이 있으면 아주 큰 잘못이 아니면 징계위원회 회부조차도 무마되는 식.[33] 특히 서울, 대전권 육직, 국직부대[34] 국방부 근지단, 계룡대, 국군재정관리단, 수방사, 정보사, 연합사, 군수사, 교육사 등[35] 예를 들어 전방 보병사단 예하 말단 전투부대[36] 심지어 병역비리 척결로 상류층 자제들의 병역 수행을 촉구하는 쪽에서조차도[37] 재밌는 점은, 모병제미군에는 대학 학자금 지원을 노리고 입대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몇몇은 ‘돈이 없어서 입대하게 되는 모병제나, 돈을 내고 면제받는 징병제나 사실상 똑같은 것 아니냐’라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38] 그마저도, 이예다와 같이 병역 문제를 이유로 외국에서 한국 출신 난민으로 인정해주는 경우가 생기며, 한국의 병역의무가 난민의 인정의 판단 기준인 '본국에서 심각한 박해를 받고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에 부합하는 것으로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이 현실이다.[39]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50616140220901[40] There is a long tradition of embarking on a military career in the royal family. 출처:BBC[41] 유사 시에 모병인원만으로는 인력 충당이 부족할 때, 해당 시스템에 등록된 사람들 중에서 무작위로 징병하는 것이다.[42] 모든 게 다 버그인 이 게임에서 특정 길드에 강제가입당하는 버그가 존재하는데 유저들이 이 버그를 징병제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