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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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wiz No.12 | |
우규민 禹奎珉 | Woo Kyu-min | |
출생 | |
국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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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
포지션 | |
투타 | |
프로 입단 | 2003년 2차 3라운드 (전체 19번, LG) |
소속팀 | |
병역 | |
계약 | 2025 - 2026 / 7억 원[계약내용] |
연봉 | 2026 / 2억 원 FA |
등장곡 | [ 이전 등장곡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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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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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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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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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터 |
최고 구속 145km/h, 평균 136km/h대의 패스트볼, 떨어지는 형태의 싱커와 체인지업을 주로 구사하면서, 가끔씩 슬라이더와 커브로 카운트를 잡는다. 별로 빠르지 않은 속구를 무브먼트와 제구로 커버하는 피네스 피처 타입으로,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130km/h대 패스트볼만 던져도 타자들을 충분히 상대한다.[12]
투구폼은 기본적으로 언더핸드지만, 상황에 맞춰 사이드암, 매우 드물게 스리쿼터로 던지기도 한다. 2013년 본격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자, 긴 이닝을 소화하기 위해 키킹을 낮게 가져가고 투구폼을 덜 역동적으로 바꿔 제구력을 더 확실히 잡았다.[13] 땅볼 유도 능력도 더욱 상승해 LG 트윈스의 에이스로 변신했다.
현재와는 달리 마무리 시절엔 제구가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았다. 언더핸드의 제구력이 타 투수보다 약한 걸 감안해도 2006, 2007년엔 BB/9이 2.38, 3.58이었고 불규민이라 불렸던 2009년엔 9이닝 당 볼넷 허용율이 3.97이었다. 하지만 경찰청 제대 후엔 2.24로 줄었고, 2015년 절정을 맞이해 152.2이닝 17볼넷, 그러니까 9이닝 당 볼넷 허용율 1.00이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했다. 심지어 이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좋아져 2024년엔 43.1이닝을 던지는 동안 2볼넷만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탈삼진 능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마무리 시절에는 여타 언더핸드 투수처럼 땅볼로 맞춰잡는 투수였지만 선발 전향 이후로 탈삼진이 늘어났다. 첫 풀타임 선발을 뛰었던 2013년에 5.63개였던 K/9이 2014년엔 6.03개, 2015년엔 6.96개로 더욱 향상되었다. 높은 탈삼진율과 적은 볼넷이 합쳐진 결과 2015년의 K/BB 비율이 6.94로, 1996년 구대성의 5.55 이후 최고 기록이다.[14]
선발로 정상적으로 뛴 13~15시즌의 우규민의 성적은 특급에 가까웠다. 해당기간 토종선발 기준으로 sWAR 3위, WHIP 2위, 이닝 5위, 평균자책점 3위, FIP 1위, ERA+ 5위 등을 기록했다. 우규민과 비슷한 수준은 양현종, 윤성환 뿐이고 김광현, 이재학, 유희관 정도가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하고는 있지만 절반 이상을 양, 윤, 우의 셋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잠실불바다의 영향으로 인식은 개판. 신뢰도가 낮아진 FIP 1위가 아니더라도 세부스탯에서 우규민보다 뛰어난 성적을 보인 선수는 양현종뿐이고 윤성환은 우규민에게 밀리는 수치가 몇 있음을 감안할 때, 그 당시 우규민은 리그 최고의 선발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옆구리 투수가 도루 허용이 많다는 통념과 다르게 도루를 많이 잡아내고 견제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편.
단점은 사이드암 투수라 이닝 소화능력은 좀 떨어지는 편이다. "우규민 완봉하는 소리"가 한때 나돈 것도 이런 이유 때문. 한 시즌 우규민이 소화하는 이닝은 150이닝 전후로 실제 우규민이 선발 등판하는 날엔 거의 5~6회까지만 소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5년에 들어서는 평균 6이닝 가량, 최대 7~8이닝으로 늘어나긴 했으나 초반 부상으로 150이닝 언저리에 머물렀다. 풀타임이었다면 약 170이닝 정도 던졌을 것이다. 또한 볼넷 허용이 낮은 것과는 별개로 몸에 맞는 볼이 좀 있어서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다. 불펜 재전향 이후엔 몸에 맞는 공의 수도 다시 눈에 띄게 줄어 한 자릿 수를 기록하다 2024년엔 단 2개의 사구만 허용했다. 볼넷까지 합쳐 단 4개의 사사구만 허용한 셈.
가장 큰 문제는 피홈런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것. 2013년에 HR/9이 0.31을 찍으며 잠실을 홈으로 쓰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리그 최고 수준의 피홈런 억제력을 보여주더니 2014년에 0.64, 2015년에 0.77, 2016년에 1.09를 찍었다. 2013년에 6경기 등판해서 1개 정도 허용하던 홈런을 2016년에는 1~2경기 당 하나씩 맞았다는 것. 지난 3시즌 동안 KBO리그가 극악의 타고투저로 접어들었고 볼넷을 내주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과감하게 스트존에 쑤셔넣다보니 피홈런이 늘어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한들 우규민처럼 삼진이 아닌 땅볼로 타자를 맞춰 잡는 유형의 투수는 피홈런이 늘어나면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들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거기다 2017년부터는 리그 최악의 탁구장 중 하나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를 홈으로 쓴다. 우규민이 피홈런을 어떻게 억제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커리어가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라이온즈 파크로 이적한 후에 성적은 크게 만족스럽진 않았으나, 유의미하게 피홈런이 늘어나진 않았고, 광활한 잠실과 좁은 대구의 구장 차이를 감안하면 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15] 불펜으로 전향한 2018년부터는 다시 피홈런이 크게 줄며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각각 6, 7, 3, 5, 3, 3개의 피홈런만 허용했다. 이닝 수도 최소 43이닝 이상 던졌으니 적게 던져서 덜 맞은 것도 딱히 아닌 셈. 라팍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타자친화 구장인 수원에서도 43.1이닝동안 피홈런은 단 한 개만 허용하며 피홈런 관리도 엄청나게 잘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단점은 크게 여름에 약하고,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 있다는 점 이 두 가지인데 일단 여름에 약하다는 점. 이는 체력이 원인인데, 체력이 약점이 된 이유는 허리 문제 영향도 있는 듯하다.[16] LG 시절 체력 테스트에서 불합격한 적도 있고 삼성 시절에는 전반기에 잘하다가 후반기에 무너진 적이 몇 번 있다. 특히나 노쇠화가 진행된 20시즌 이후로는 전반기에는 가히 철벽 불펜이다가 8월부터 대놓고 방화를 저지르는 방화범으로 변신하는데,[17] 이는 체력이 떨어지며 우규민의 최고 장점인 핀포인트 제구가 완전히 무너지고 실투 비중이 매우 커진다는 점이 원인이다.
이러한 여름 부진과 연관된 다른 단점은 심각한 기복. 좋을 때에는 엄청난 제구력과 130km/h 중반의 ,느린 패스트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무브먼트로 1이닝을 순삭하며 천혜향이라는 찬사를 받지만, 흔들릴 때는 아예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하고 99.99를 자주 기록한다. 이때는 존을 벗어나지는 않지만 실투가 많아져 스트라이크 존 중앙 혹은 중앙보다 살짝 위로 공이 들어가는 편인데, 우규민 특성상 애초에 구속도 130km/h 중반 정도이며, 안 좋은 날에는 구위도 상당히 떨어지는데 언더핸드라는 치명적 단점이 있기에 공이 가운데로 몰리면 프로 선수들에게 배팅볼로 평가받으며 얻어맞는다. 문제는 이 정도 수준이라면 아예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게 삼성 시절 이후 우규민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 이런 상황이 된다면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계속 얻어맞다가 결국 99.99를 기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18] 아무래도 필승조이며, 21시즌부터는 나름 회춘하기는 했지만 안 좋은 날에는 한창 안 좋았던 1차 FA 때의 모습이 튀어나온다는 단점이 있기에, 필승조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부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그 전체적으로도 꽤 괜찮은 성적을 올리고 있기에 처참한 삼성 불펜진을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로 말년을 보내고 있다.
kt wiz로 이적한 2024 시즌부터는 130km/h 초반대의 커터를 레퍼토리에 추가하면서 좌투수를 상대할 때 주로 구사하고 있으며, 2026 시즌 시범경기에서는 무려 포크볼을 장착해 테스트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는데, 투구 메커니즘 특성상 포크볼 계열의 구종을 구사하기 매우 불리한 조건임에도[19] 다른 구종을 투구할 때보다 팔각도를 살짝 올려 던지는 포크볼이 의외로 괜찮은 무브먼트와 회전수 억제 능력을 보이며 만 40세가 넘은 나이임에도 끊임없는 구종 연구를 통해 팔색조 투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이다.
- 투구폼이 갈매기와 비슷하다.

투수이고도 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좌타자이다. 2016년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서 1번타자 2루수 좌타자로 출전했다. 다만 훈련 중에 우타석에서 스윙한 적도 있다. 피칭과 필기를 제외하고 일상생활을 왼손으로 하는 왼손잡이다.
- 2013 시즌 FIP 리그 1위, fWAR 리그 2위임에도 저평가가 줄을 잇더니, 2014 시즌 국내 투수끼리 순위를 지어보자 QS 4위, 피출루율 최저 1위, 피장타율 최저 1위, 피OPS 최저 1위, 방어율 2위, FIP 2위임에도 아직도 저평가당한다. 2015년에도 FIP 전체 3위[24], 평균자책점 4위[25], K/BB, BB/9 비율 1위임에도 성적에 비해 저평가하는 기색이 많다. 심지어 많은 야구팬들이 우규민의 FIP에 대해 알면 '아! 우규민이 저평가되었구나'라는 반응이 아니라 '아! FIP로 측정하기 어려운 아웃라이어구나', 'FIP가 그렇게 대단한 스탯이라면, 우규민이 최고 우완이라는 건데 말이 되냐?'라는 반응을 보인다.[26]
- 과거에 올린 우규민의 인스타그램에 의하면, 한때는 레고를 조립하는 게 취미였던 것으로 보인다.
- 2017년 미디어 데이 당시 류제국의 증언에 따르면, 아직도 LG 투수조 단톡방에 있다고 한다. 아무도 나가라고 하지 않는 데다 본인도 나갈 의지가 없다고. 그래도 이제 다른 팀이기에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또한 삼성과의 시범경기 당시 조용히 라커룸에 와서 W라고 낙서를 하고 갔다고.
- '사장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집사다.[30] 하지만 현재 사장이는 다른 사람에게 분양되었다고 삼튜브에서 밝혔다.
- 2024년 기준 리그에 유일한 통산 80승-80홀드-80세이브 기록 투수이다.[31]
- 스톡킹에서 밝힌 썰들이 꽤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이후 김진성, 노경은과 같이 출연해서는 MC인 김구라가 과거 KBS 구라철 진행 시절 이대형이 먼저 거론했던[36] 다리미로 쥐포 굽기 썰을 이야기하자마자 해당 썰대로 했다며 이야기를 풀었다. 대놓고 제작진도 편집을 안 했다고 할 정도로 소상히 풀었는데, 호주 마무리 캠프[37] 당시 신윤호와 같은 방을 썼을 때 신윤호가 쥐포 300마리+한치 500마리를 가져와선 다림판을 펼친 후 다리미를 예열+물 먹인 후 쥐포를 다리는 것을 시범만 보고 따라했는데, 너무 양이 많아 옆 방의 장진용에게 다리미를 하나 더 빌려 양손으로도 다리면서 4일 만에 다 다리는 것을 성공했지만[38] 신윤호가 배우자에게 200마리씩 추가 주문을 하는 걸 보고 경악해 허리 통증을 핑계로 조기 귀국을 성공하면서 그 신세를 장진용에게 떠넘겼다고 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위즈티비와 엠스플 스프링캠프 특집에서 재현해 여전한 폼을 보여주었다.[39] 참고로 이 우규민 쥐포의 산 증인이 바로 박경수. 쥐포를 굽는 우규민을 보자마자 바로 "허리 조심해라.."였을 정도.
- 삼성에 있을 때부터 가끔 퇴근길이나 훈련을 할 때 가끔 안경을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기에서 안경을 쓴 적은 없다.
- 삼성 시절 결혼을 했고 딸도 있지만,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않은 듯하다. 딸 아린이가 예쁜 외모를 가져 삼성 팬들과 kt 팬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2025년 6월 17일에는 창작동요 앨범을 발매했다.[40] 부른 노래 제목은 '행복한 아기 씨앗'. 현재 각종 음원 사이트를 통해 들을 수 있다. 다만 가창에만 참여해서인지 수익 창출은 안 될 것이라고 한다.
- 아프리카TV에서 LG 편파중계를 하는 캐스터안과 친하다.
- 2023 시즌 스프링 캠프 중에 전 바르셀로나 선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사진을 찍었다. 이니에스타의 소속팀 빗셀 고베가 삼성 라이온즈와 같은 지역으로 전지 훈련을 와 우연히 만났다.[41]
- LG 시절 외모가 나름 괜찮은 편이어서 팬이 많았다. 이대형, 심수창, 박용택 등과 함께 비주얼을 담당했던 선수였다.
- 본인이 밝히길 성격이 긍정적이어서 승리 투수 요건을 채우고 내려간 뒤에 불펜들의 방화로 인해 승리투수가 되지 못하고 날라가도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경기 중에는 기싸움 때문인지 승부욕이 꽤나 강한 성격인지 상대 팀과의 밴치 클리어링에 주도적이었던 적도 있고,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덕아웃에서 글러브를 던진 적도 있었다.
- kt 이적 후 초창기에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이 본인과 kt 위즈 유니폼을 합성한 사진이었다.
- kt 이적 이후 홀로 수원에서 거주 중이라고 한다. 아내와 딸은 쭉 대구에서 살고 있다고. 삼성 이적 후 결혼하면서 대구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인데, 꽤 오래 전부터 스트리머 박사장 팬이다. 그냥 팬도 이니고 100명 하꼬 시절부터 별풍선을 쏴온 오랜 찐팬이자 소위 말하는 300 박파르탄 용사 중 한 명. SOOP 닉네임도 박사장에서 따온 우사장이다.
- 아이폰 유저이다. LG시절부터 계속 아이폰을 써왔다고 한다.[47]
- 등유규민: LG의 전설적인 불펜 보이그룹 방화신기 멤버일 때 불렸던 별명. 08, 09시즌 환상의 방화를 선보였다. 이제는 추억의 별명.
- 불규민: 방화신기 시절의 또 다른 별명, 나왔다 하면 불을 질러대서 생겼다.
- 우블론: 07시즌 30개의 세이브와 2.65의 평균자책점을 올리며 스탯 상으로는 무난한 활약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 시즌 최다 블론 세이브인 13개를 기록했었다.
- 우작가: 방화신기 시절의 또 다른 별명.
- 삼귤: 삼성 + 우귤. 삼성 이적 초창기에 많이 불렸던 별명. kt로 가면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별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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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규민의 수상 경력 / 이전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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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생일] 음력 1984년 12월 1일. 빠른생일이라 동기들도 1984년생이다. 동료였던 1985년생의 강민호, 김용의, 이용규 등과는 친한 형 동생 사이로 지냈다. 1985년생들과 친하게 지내온 탓에 85년생 선수들과도 친구로 지내는 걸로 착각한 팬들이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다.[2] LG 시절까지만 해도 서울 태생으로 알려졌지만, 더그아웃 인터뷰에서 대구광역시 태생이라고 밝혔다. 단양 우씨 판서공파의 집성촌이 있는 상인동 출신으로 추정되며 너무 어렸을 때 서울특별시 송파구로 이사가서 대구광역시에 살았을 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경상도 사투리 쓰는 사람과 있을 때는 가끔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혹은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는 표준어를 사용한다. 여담으로 아내와 딸은 그가 태어난 대구광역시에 살고 있다.[3] 서울잠전초에서 전학.[4] 75kg는 신인시절 몸무게이다.[5] 야구와 필기는 오른손으로 한다.[6] LG 트윈스 시절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뛰었으나 삼성 라이온즈 입단 초기 선발로 좋지 못한 폼을 보여줘 중간 계투로 보직을 변경했다.[7] 2016년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서 1번타자 2루수 좌타자로 출장. 다만 훈련 중에 우타석에서 스윙한 적도 있다. 피칭과 필기를 제외하고 일상생활을 왼손으로 하는 왼손잡이다.[계약내용] 계약금 2억 원 / 연봉 총액 4억 원 / 옵션 1억 원[9] 피파온라인4 BGM으로 유명한 곡이기도 하다.[10] 2002년 5월 25일 동아일보 기사[11] 이 기사에 따르면 어린 시절 형과 함께 두산 야구를 봤다고 언급했다. 스톡킹에 따르면 심수창과 동갑이며, 심수창이 이름도 아는 것으로 보아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12] 입대 전에는 제구는 좋다고 볼 순 없어도 구위로 승부보는 직구와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아 던지는 투 피치형 투수였으나 군 복무 중 2군 경기에서 연습삼아 1이닝에 체인지업을 40개씩 던지면서 체인지업 감을 익혀 주무기를 체인지업으로 바꾸었고 커브와 싱커도 간간히 연습했던 것으로 보인다.[13] 2022년 초중반에는 이중 키킹도 시도한 적이 있었다.[14] 다만 구대성은 전천후로 등판한 탓에 구대성이 우규민보다 피로도가 극심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 구대성은 55경기 139이닝을 투구했다.[15] 2016년 132이닝 16피홈런, 2017년 133이닝 19피홈런. 구장 차이를 감안하면 피홈런 관리는 나름 된 셈이다.[16] 우규민은 LG시절부터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 있었다.[17] 20시즌은 전설의 6연속 피안타 사건으로 말할 필요도 없고, 21시즌과 22시즌 모두 리그에서 준수한 불펜진 성적을 냈지만 사실 이것도 전반기에 완전한 철벽 불펜에서 후반기 블론을 무더기로 저지르며 성적을 왕창 까먹은 것이다. 그리고 날이 다시 시원해지는 9월 중순부터 살아나 10월에는 다시 미스터 제로로 변하는 걸 보면 여름에는 등판 간격을 매우 넓게 잡으면서도 등판 횟수를 크게 줄여야 할 듯싶다.[18] 사실 우규민이 99.99를 기록한 건 그리 잦지 않은데, 그가 필승조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필승조 중에서는 가장 잦게 99.99를 기록한다고 할 수 있다.[19] 실제로 잠수함 투수가 포크볼을 주무기로 구사한 케이스는 롯데와 두산에서 주무기 포크볼을 앞세워 활약한 사이드암 김성배와 한때 스리쿼터에 가까운 팔각도에서 나오는 포크볼을 결정구로 구사한 박현준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20] 어느 한 선수가 편지를 쓰면 답장이 오는 꼭지였다.[21] 이대형이 1살 더 많은 형이지만 유급해서 우규민과 동기가 되었다.[22] 이대형은 데드볼에 큰 반응을 하지 않는 순한 성격이고, 게다가 친한 동료였기에 밴치 클리어링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23] 참고로 특급 마무리 시절이던 2006년의 일이다. 이 해 우규민은 팀 내 WAR 1위 투수였다.[24] 국내 투수 중 1위며 유일한 3점대 FIP[25] 국내 투수 중에선 양현종에 뒤진 2위[26] 그러나 우규민이 저평가되었다는 근거가 FIP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 맞다. FIP는 그 위상이 드높을 때에도 KBO에서는 잘 안 맞는다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 그리고 2010년대 후반 FIP의 허점과 오류가 지적되고 의미와 위상을 잃으면서 더 이상 FIP를 가지고 논쟁을 펼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27] 참고로 이 경기에서 우규민은 개인 통산 두 번째 완봉승을 기록했다.[28] 정확히는 가장 자신의 공을 잘 치는 것 같은 타자.[29] 서울에서 살던 집이 잠실구장 근처였고, 친형도 OB 베어스의 팬이었다고 한다.[30] 참고로 우규민 본인의 아프리카TV 닉네임도 우사장이다.[31] 86승 91홀드 110세이브[32] 오재원과 우규민은 벤치 클리어링을 한 적이 있다. 안 그래도 캐디는 두산 팬인데 라이벌 팀 선수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와 경기장에서 다툼이 있었는데, 캐디 입장에서는 싫어할 이유는 있었다. 참고로 우규민은 오재원과의 밴치클리어링 이후로는 잘 지낸다고 한다.[33] 아이러니하게도 오재원은 어린 시절 엘린이였고, 우규민은 두린이였다.[34] 특히 이 셋은 LG 출신이어서 이 영상을 시청하는 LG 팬들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35] 우규민 입장에서는 재미를 주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삼성 팬들 입장에서는 거액을 주고 데려온 투수가 선발로 첫해 살짝 애매한 활약을 한 점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듬해 불펜으로 전향한 것으로 더 화를 돋구었으며, 게다가 불펜에서도 기복 있는 활약을 해서 불펜도 약한 삼성에서 필요한 선수인 건 확실하지만 털릴 때는 유망주 선수보다 더 털릴 때가 많았다. 이 때문에 삼성 팬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선수가 됐고, 우규민을 호의적으로 보는 팬들마저도 돈값을 했냐는 말에는 질문에는 전부 돈값 못했다는 반응이다. 그런 와중에 돈값을 못한 놈이 왜 저런 말을 했냐는 반응이 많다.[36] 이후 송진우, 최준석, 양현종 등 다른 야구인들이 허무맹랑하다는 반응을 보였다.[37]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장진용도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2003 시즌 후로 추정된다.[38] 다렸던 쥐포, 한치는 신윤호, 김민기 외에도 술 좋아하는 다른 선수나 코치들에게 뿌렸다고 한다.[39] 참고로 반건조도 가능하다고 한다. 중간에 다리미의 분무기로 물을 촥촥 뿌려서 반건조 쥐포도 손쉽게 만들어낼 정도. 본인 언급으로는 '일종의 영업 스킬'이라고 한다.[40] 솔로가 아닌 다니고 있는 어린이 성악 학원의 이름으로 발매한 컴펄레이션 앨범이다.[41] 이 두 팀의 전지훈련 장소는 오키나와였다.[42] 별무늬는 본인의 별자리에서 따왔다.[43] LG 시절부터 절친이었다. 박경수가 kt로 이적하고, 2년 뒤 우규민이 삼성으로 이적해 약 9년 정도 서로 다른 팀 선수가 됐다가 2차 드래프트에서 우규민이 kt에 지명되면서 다시 동료가 되었다.[44] 참고로 이대형까지 합치면 세 명 모두 2003년에 LG에 입단한 동기이다. 다만 이대형은 83년생이지만 1년 유급을 했고, 박경수는 84년생으로 제때 학교를 나왔고, 우규민은 빠른 85년생으로 조기입학을 하여 이런 결과가 나온 것.[45] 입단동기 박경수가 본인보다 빨리 코치가 되어도 야구장에서만큼은 코치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를 것이며, 코치 대우를 충실히 해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2026년 스프링캠프에서 쥐포를 구울 때 둘이 어느 정도 말을 놓긴 했지만, 우규민이 착실하게 '박경수 코치님'이라 대우를 해주었다.[46] 후배가 상대 팀 선수 때문에 다쳐서 생긴 밴치 클리어링에도 적극적으로 밴치 클리어링에 참여한 적도 있을 정도로 팀 내 선수들을 잘 챙기는 편이다. 밴치 클리어링 끝난 이후로는 싸운 선수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다.[47] 그의 과거 소속팀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는 모기업이 각각 LG전자와 삼성전자로 스마트폰을 만드는 전자 회사이며(다만 LG전자는 2020년 이후 스마트폰 사업에 철수하며 이젠 손을 뗀 상태이다.), 선수단에게 스마트폰을 종종 제공해 주었느나, 우규민은 제공받은 폰을 사용하지 않고 꾸준히 아이폰을 써왔다.[48] 6월 1일부터 실점을 시작해서 평균자책점 3.31로 시즌을 마무리했다.[49] 보통 고액 FA 계약을 체결할 때 5억당 WAR 1을 기대치로 둔다. 삼성은 우규민이 4년간 WAR 13을 올려주길 바랬던 셈.[50] 2차 FA로 1+1년 10억에 잔류했는데, 그래도 필승조 역할을 해주며 혜자까진 아니어도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때도 많은 돈을 받고도 불펜으로 나오면서 심지어 기복도 있기 때문에 까여도 할 말 없다는 의견과 초라한 삼성 불펜에서 그나마 잘 던지는 투수고 베테랑으로서 후배를 잘 챙기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으로 다소 호불호가 갈리긴 했다. 다만 부정적 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거액 계약에 대한 기대치의 문제지 후배들 잘 챙기고 계약 기간 동안 팀 내에서 오승환 다음으로 괜찮은 불펜이었다는 점은 대부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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