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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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현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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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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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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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SK 와이번스의 단장.
어째 선수시절부터 똑같이 생겼다. 변한 게 없어..... 선수 시절부터 옷만 바꿔입은 것 같다

SK 와이번스 단장

염경엽(廉京燁)

생년월일

1968년 3월 29일[1] (50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광주광역시 동구

학력

광주서석초-충장중-광주일고-고려대 [2]

포지션

유격수[3]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1년 2차지명 1라운드 (전체 4번, 태평양) [4]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 (1991~1995)
현대 유니콘스 (1996~2000)

지도자

현대 유니콘스 1군 수비코치 (2007)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2010~2011)
넥센 히어로즈 1군 작전/주루코치 (2012)
넥센 히어로즈 감독 (2013~2016)[5]

프런트

현대 유니콘스 운영팀 과장 (2001~2006)[6]
LG 트윈스 스카우터 (2008)
LG 트윈스 운영팀장 (2009)
SK 와이번스 단장 (2017~)

종교

불교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8

2000

등번호

태평양 돌핀스 시절

17번(1991~1992)
1번(1993)
5번(1994~1995)

현대 유니콘스 시절

12번(1996~1997)
5번(1998~2000)
75번(2007)

LG 트윈스 시절

70번(2010~2011)

넥센 히어로즈 시절

85번(2012~2016)

[ 펼치기 / 접기 ]

2008년 ~ 현재

1대
이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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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김시진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감독대행
김성갑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3대
염경엽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4대
장정석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 소개2. 프로 선수 시절
2.1. 선수시절 연도별 성적
3. 프런트~지도자 시절
3.1. LG 트윈스 코치3.2. 넥센 히어로즈 코치3.3. 넥센 히어로즈 감독3.4. SK 와이번스 단장
3.4.1. 2017년3.4.2. 2018년
4. 운영 스타일
4.1. 비판
5. 기타6. 패션7. 역대 감독 성적

1. 소개[편집]

기록은 선수의 가치를 올려준다. 감독은 선수의 가치를 올려주는 사람이다.
박병호의 50·51호 홈런, 밴헤켄의 20승 달성 직후

"늘 9회까지만 생각한다. (필승조 3명 말고) 걔네가 나가서 뭘 하겠어요? 잘 던지면 이상한 거고, 못하면 당연한 거지."
ㅡ 2015 두산과의 준플 중 황규인 기자 트윗에서[7]


넥센 히어로즈 감독.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의 유격수, 현대 유니콘스LG 트윈스스카우트, 수비코치, 넥센 히어로즈 1군 주루 코치.

그리고 2017년부터는 SK 와이번스의 신임 단장.

2. 프로 선수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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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 사진. 사진 한가운데 안경쓴 선수가 염경엽이다.[8]

선수 시절은 수비와 주루를 빼면 장점이 없는 평범 이하의 유격수였다. 통산 WAR -2.05로 타자 "최하"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과 함께 스타 선수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광주 출신[9], 광주제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법학과(1987학번)를 졸업한 뒤[10] 1991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태평양 돌핀스유격수로 입단했다. 선수 시절 타격은 말 그대로 멘도사 라인이었지만[11] 수비력 하나만 놓고 보면 1990년대 최강급으로 평가될 정도로 일가견이 있었던 선수였다. 당시에는 나름 유망주였다.

깡마른 체구에도 불구하고 어깨도 좋은 선수로 1994년에는 거의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단 8개의 실책으로 유격수 중 최소 실책을 기록하였다. 그럼에도 타격은 매우 부진했는데, 이 해 타율이 0.212이었다.[12] 참고로 이 때 염경엽의 백업 선수가 이근엽이었는데 키는 188cm나 되는데 상당히 마른 체구의 유격수였다.[13] 역시 수비는 좋은 편이었지만 타격은 염경엽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그 시절 태평양의 타선이 전반적으로 그랬다. 1993년에는 롯데와 경기를 하던 도중 박정태와 충돌하기도 했다. 강팀에서 대수비 요원으로 뛸 수 있었다면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대수비 요원으로 큰 가치를 지닐 수 있었겠지만, 팀 사정상 주전이 되다 보니 빈약한 타격능력으로 인해 본래의 장점까지 약화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95년에는 이근엽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겼고[14] 급기야 1996년 초대형 유격수 재목이라는 박진만이 고졸우선 지명을 받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면서 입지가 밀리기 시작했다. 당시 박진만은 수비는 탁월하지만 타격은 별로라는 평을 받았는데, 염경엽은 그보다도 못한 진짜 수비밖에 없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1996년 시즌 개막 전날 자기 대신 박진만이 선발 출전 멤버로 표시된 전광판을 보고 화장실에 가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15] 1997년에는 박진만마저 주전 1할대 타율이란 실망스러운 타율을 기록했지만, 이미 염경엽의 주전 경쟁력은 사라져 버렸다.[16] 그 뒤로 내야 대수비, 대주자 요원으로 밀려났지만, 백업 요원으로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해줬다. 2000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에서 은퇴하고, 이듬해 2001년 수원야구장에서 팀의 레전드인 정명원과 함께 은퇴식을 치렀다. 관련기사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 필요없어진 야구 용품을 팔아 만든 돈 500만 원을 고려대학교 후배이자 당시 투병 중이던 故임수혁에게 성금으로 내놓았다.

1999 시즌에는 64kg의 체중으로 프로야구 선수 중 가장 체중이 적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1995년 9월 29일 태평양 돌핀스의 마지막 경기[17][18]에서 9회초 2사 후 아웃당한 선수이기도 하다. 즉, 태평양 돌핀스의 마지막 타자. 투수는 이대진, 아웃 종류는 삼진. 이대진은 1995년 리그 탈삼진왕이었으니 그의 기록에 일조한 셈.

2.1. 선수시절 연도별 성적[편집]

  • 한국야구위원회 기록실에 표기되는 리그 TOP 10위 이내 기록은 순위가 등재.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입상성적. 하지만 붉은 글씨도 진한 표시도 없다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1

태평양 돌핀스

99

285

.175

50

9

3

2

25

22

12

1992

102

218

.197

43

12

0

1

18

26

7

1993

86

254

.213

54

9

2

0

18

20

13

1994

119

349

.212

74

15

1

2

30

33

11

1995

80

154

.162

25

1

0

0

9

18

9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6

현대 유니콘스

72

20

.000

0

0

0

0

1

12

1

1997

56

12

.000

0

0

0

0

0

9

2

1998

103

83

.265

22

4

1

0

8

27

13

1999

95

50

.180

9

2

0

0

0

17

5

2000

84

23

.261

6

1

0

0

1

13

10

KBO 통산(10시즌)

896

1448

.195

283

53

7

5

110

197

83


참으로 처참한 수준. 커리어 내내 단 한 번도 3할을 넘긴 적이 없다. 김성갑2군 감독보다 더하다. 참고로 1994년 .212가 커리어 하이 기록이다(...).[19]

3. 프런트~지도자 시절[편집]

내가 선수 시절이 미미했던 것은 은퇴 후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스카우트로서 클리프 브룸바를 영입하는 등의 공을 세워 현대 왕조가 4번의 우승을 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

현역 은퇴 후 곧바로 코치 생활을 하지 않고, 오랫동안 선수단 매니저나 스카우트 등 팀의 프런트로 일한 관계로 현장 경력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었다. 사실 은퇴한 직후에는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단풍나무 배트 사업을 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캐나다 대사관에서 이민신청을 기각했는데, 이는 이민 대행업체의 실수였는지 아니면 본인의 실수였는지 이민 대행업체가 직업을 '야구코치'가 아닌 '사업가'로 기재했기 때문. 이민이 무산된 염경엽은 다시 야구판으로 돌아오게 된다.

현대프런트로 일했을 때에는 매니저 업무를 거쳐서 스카우트로 일했는데, 이 시점에서는 좋은 기량을 가진 외국인 선수를 잘 영입하기로 유명했다. 게다가 심정수2003년검투사 헬멧을 쓸 때 직접 만들어 준 전력도 있었고 이후 운영 팀 과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1월 1일에는 현대 유니콘스한국시리즈 우승 축하연을 위해 직접 호텔로 달려가서 준비했다고 전해진다. (비 오는 날 호텔까지 뛰어가서 준비했다고...) 회고 1 회고 2 회고 3 회고 4 2004년, 그때는 나에게 슬픈 해였어.... 진짜 역대 프런트 중에서 이렇게 고생하신 프런트는 쌍방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현대 유니콘스 No.75

염경엽(廉京燁)


이후 2007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꿈에 그리던 수비코치로 임명되어[20] 처음으로 지도자를 맡아 1시즌 동안 수비코치를 맡았다. 그러나..... 1군 수비 코치직은 맡긴 했었으나 기존에 있던 코치진들이 대거 나가버렸기 때문에 갑작스레 프런트에서 수비 코치로 승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김시진 감독도 당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고.... 갑작스레 빠져나간 코치진들이 문제였지... 1군 수비코치로 뛸 때는 내야가 안정적이지 못했다. 이유는 1루수 이숭용, 3루수 정성훈 코너 내야수는 이미 프로 초년병 시절부터 극복해내며 정상급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센터 수비인 키스톤 콤비를 메꾸지 못했다. 이 이유는 유격수 박진만이 9년동안 집권을 했으며, 2루수는 박종호가 7년동안 주전으로 자리를 잡은 이후에는 백업선수들의 기량이 발전이 하락세였다. 그나마.... 내야 멀티가 가능한 김일경, 채종국, 지석훈, 차화준, 이승주, 강정호, 황재균, 신현철, 유재신 등 여러 선수가 있었으나,, 뭐 사실 김일경이나 채종국은 이 양반들은 거의 준노장에 속해있었지... 뒤에 신예들인 이승주, 지석훈, 차화준, 강정호, 황재균, 유재신, 신현철 아예 신인이였다. 그나마 이 뒤에 있던 지석훈은 2005년에 1군에서 붙박이였으나 역시나 수비보다는 타격이 문제였고 역시 차화준 수비와 주루실력을 빼면 그나마 뒤로 보면 강정호가 이 시기에 1할 중후반대를 치면서 기회는 어느 정도 받고 1군과 2군을 계속 오가는 형태였다. 단, 2007년도에는 얼굴에 부상을 당해 얼마 출장을 못 하고 수술/재활에만 반복했다.

그리고 2007년도에 1군에서 66경기를 뛴 황재균은 가능성이 있었으나... 이듬해 수비 실책이 많아지면서 유격수가 아닌 3루수로 컨버젼이 되었고 이승주, 유재신, 신현철 등은 아예 물방망이라 이때는 아예 2군에서 붙박이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현대가 해체되면서 선수들은 기량이 발전하였다.

외야수는 노장 전준호, 송지만, 정수성을 제외하면 그나마 젊은 선수로는 이택근, 조재호, 조평호 등 이전에 뛰던 용병 클리프 브룸바를 제외하면 외야는 거의 없었다. 이것이 현대의 선수층이 얇은 것도 문제였고... 코치 첫 해부터 잘 하는 게 아니니 갑작스레 맡았기 때문에 수비율로는 최종순위 6위 이때도 팀 순위가 6위.

2007년 10월 초 현대 유니콘스가 수원 홈 구장에서 한화를 상대로 현대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나서 끝내 팀은 2008년 3월에 해체되고 신생 팀 히어로즈가 선수단을 인계하여 창단되자 신생 구단 이장석 구단주와 박노준 단장의 행보에 불만을 가지고 사퇴한 후, LG 트윈스스카우트[21]로 자리를 옮겼다. 2008년에는 대체 용병으로 로베르토 페타지니라는 거물급 외국인 좌타자를 스카우트했다. 이때 쌍둥이 마당에서는 김재박 감독이 물러나는 와중에도 염경엽 코치 같은 능력있는 분은 두고 가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 스카우트를 거쳐 2010년에 운영 팀장으로 활동하다가 2011 시즌을 앞두고 수비코치로 3년 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위의 내용을 정리한 기사에 따르면 1997년 백업으로 밀렸을 때 야구사업 이민을 생각했으나 이민공사의 실수로 심사에서 탈락, '2년만 프런트로 일하면 코치를 시켜 주겠다'는 말에 현대 구단의 프런트 직원이 됐다. 약속과 달리 6년간 프런트로 일하게 되자 3차례나 사표를 썼다. 결국 2006년 11월 3년 계약으로 코치의 꿈을 이뤘지만, 한 시즌 뒤 현대 구단이 해체됐다. 두산, SK, LG 3개 구단에서 프런트 제의가 들어왔고, '자리가 나면 코치를 시켜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한 LG로 간 것. LG 스카우트 팀 차장과 운영 팀장[22]을 거쳐 2009년 수비코치가 됐다. 이후 넥센 작전코치를 거쳐 2012년 10월 넥센 감독에 취임했다.

여기까지만 봐도 그저 안습의 역사인데, 그에게 LG 시절은............

3.1. LG 트윈스 코치[편집]

LG 트윈스 No.70

염경엽(廉京燁)


염경엽 인생 최대의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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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LG 트윈스 시절의 모습. 위의 감독 시절과 괴리가 너무 심하다.[23]

그러다가 박종훈 감독이 부임한 이후 2010년에 수비코치로 보직을 받고 현장에서 뛰었는데[24] 경기 내적 & 외적인 이유로 욕을 먹었다. 쌍마의 LG팬들에게 있어서는 좀 일방적일 수도 있겠지만 거의 분자에 원자단위로 까였다.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늘 1번타자로 까임의 대상이 되었다. 내적인 이유는 팀의 수비력이 바닥임에도 계속 신임을 받았다는 것이었고, 외적인 이유는 프런트를 등에 업고 선수단 내에서 감독을 능가하는 파벌을 형성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25]



염경엽 흑막설과 관련한 내용은 5분 20초부터.

3.2. 넥센 히어로즈 코치[편집]

파일:염경엽(코치).jpg

2012년에 넥센 히어로즈로 옮겨서 1군 작전/주루 코치로 활동하였다.[26] 태평양-현대 시절의 연고로 보이며,[27] 본인 말로는 김시진 감독을 버릴 수 없어 돌아왔다고. 돌아와서는 주루 전권을 맡았다. 정확히는 감독 선임할 때 말고 당시의 이장석은 별로 내키지 않아했는데[28] 김시진이 염경엽 영입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장석에게는 신의 한 수가... 설사 LG팬들 사이에는 평이 좋지 않았다 해도, 넥센 히어로즈의 정신적 지주인 이숭용이 닮고 싶은 코치의 롤모델로 염경엽을 꼽았다는 점을 볼 때, 현대-히어로즈 쪽에서는 제법 따르는 선수들이 많았던 듯하다.[29]

2012년 초반에는 넥센 야수들에게서 빈번히 나온 뇌주루 때문에 LG 트윈스에서 왜 욕을 먹고 까였는지 알 수 있다는 평도 나왔다. 그러나 점점 넥센 선수들의 주루능력이 향상되었고, '발야구'의 선봉장으로 2012 시즌 도루 1위를 기록한 넥센의 플레이, 특히 도루와 인연이 없을 것 같던 강정호, 박병호20-20 클럽 달성이나 서건창의 39도루, 장기영의 활약과 같은 사례가 점차 축적되면서 평가가 달라졌다. 특히 2011년 팀 도루 꼴찌였던 팀을 2012년 팀 도루 1위 팀으로 바꾸면서 주루코치로서의 능력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주루코치가 심재학으로 교체되자마자 똑같은 선수를 보유하고서도 전년도 도루 1위팀의 도루개수가 바닥으로 떨어진 점을 보면 주루코치의 능력차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거기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견제사, 뇌주루는 덤...[30]

이를 가리켜 코치도 탈쥐효과라고 일컫는 팬들도 있다. LG 시절에는 수비코치였지만 넥센에서는 주루코치를 맡았다는 점을 볼 때, 수비 코치보다는 주루 코치에 알맞는 능력을 가진 걸지도 모른다. 현대 시절에는 2007년 딱 한 해에만 수비코치를 했고, 1루수, 3루수와 센터내야진의 수준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에 코치로서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염경엽을 다시 부른 김시진 감독이 그를 주루코치로 쓴 것을 보면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3.3. 넥센 히어로즈 감독[편집]

만년 하위권이었던 히어로즈를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며 히어로즈의 전성기를 이끈 명장으로 칭송받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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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넥센 히어로즈 감독 취임식 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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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판 최태웅

그리고 2012년 10월 10일, 넥센 히어로즈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기간 3년, 계약금 2억에 연봉 2억씩 총액 8억 조건이다. 많은 넥센 팬들은 넥센의 아버지 김시진을 내치고 데려온 감독이 별다른 감독수업 없이 수비, 주루 코치 커리어만 있는 감독 초짜에다 LG 트윈스에서 파벌싸움으로 LG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다는 카더라[31]에 시달리는 염경엽이라는 소식에 멘붕이었다. 정민태심재학보다는 낫잖아? 염경엽 본인조차 KBO리그스타급 선수가 아니면 감독을 할 수 없으니까 자신의 목표는 최대 수석코치였는데 감독이 될 줄은 예상 못 했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2014년 시즌 후 밝혀진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하면 이장석이 먼저 만나자고 제의해서 4시간 동안 면접을 본 후 선임했다고. 스포츠투나잇의 인터뷰에는 좀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갑자기 이장석 대표가 염경엽 당시 코치를 부르자 염경엽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이[32] 반포동 소재 M모 호텔[33]에 가서 질문하길래 답변하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감독하십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에 이미 감독 후보들의 인터뷰가 거의 끝나가고 선임이 완료되었다는 얘기가 나오던 시점이라 자신을 감독 후보로 부른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이러니 아무 생각 없이 간 게 맞지. 근데 이 양반을 뽑은 빌리장석은.... 그전에 이 양반을 넥센으로 다시 데려오고 이장석을 설득시킨 김시진도 참 대단하다.

전임 김시진 감독의 인기가 대단했기 때문에 감독 선임 직후의 분위기는 흉흉했지만, 일단 취임 후 잇따라 가진 인터뷰에서는 자신만의 철학을 보이면서 평가를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토끼라든가, 토끼라든가 거기에 김시진 감독이 롯데 자이언츠에 부임한 이후 팀 잔류선언을 하고 넥센 마무리 훈련에 한참이던 박흥식 타격 코치를 전화 한통에 롯데 자이언츠로 빼가는 속칭 '런흥식' 사건이 일어나자 인기가 급상승했다. 흠좀무...[34]

한편 이장석 사장은 2012년 10월 18일 열린 감독 취임식에서 "염경엽 감독과 인연이 있었다"라는 드립을 직접 쳤다. 뭐, 악연이긴 했지만 인연은 맞다.

염경엽 “코치진에 내 사람 끼워넣기는 없다."
넥센의 ‘감독 베팅’ 성공할까
염경엽 감독 "해답은 가까운 데 있다"(일문일답)

3.3.1. 2013 시즌[편집]

히어로즈 창단 이래 팀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감독

정식 감독으로서의 첫 시즌. 여론의 우려와 걱정 속에 2013년을 맞이했지만, 2012년에 이어 공격적인 야구를 펼치고 팀을 상위권에 안착시키며 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초보 감독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이미 준비된 감독이라는 평. 실제로 김성근의 경우 2013년 시즌의 현직 감독 중에서 염경엽에 대해 칭찬을 많이 했고, 리틀 김성근, 리틀 야신이라는 평가의 기사도 있었다. 개중엔 초보는 커녕 김성근, 김경문 같은 잔뼈 굵은 감독들과 지략싸움을 해도 결코 밀리지 않을 듯하다고까지 칭송하는 의견도 있다.

특히 염경엽 감독의 경기 운용 특징으로 일부 경기에서 불리하더라도 선수들을 무리하게 혹사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운용 방식을 넥센 팬들은 좌우놀이에 빗대어서 체력놀이라는 은어로 불렀다. 시즌 초중반 일부경기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타 팀의 경우 시즌 후반에 타어강과 같은 부상 속출사례가 터지자 결국 염경엽의 판단이 옳았다는 평가를 받았다.[35] 당장 유리몸으로 알려진 이택근의 경우 중간중간 경기 결장은 있었으나 큰 부상 없이 시즌 후반까지 무사히 경기를 치를수 있었고, 9월 28일에 넥센 히어로즈 최초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감독이 되었다. 아쉽게도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역스윕당하며 PO 진출에 실패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는데, 전임 감독과 비슷한 좌우놀이 성향과 팬들의 지적에 대한 피드백이 약간 늦다는 점이다. 물론 좌우놀이에 자유로운 감독은 얼마 없고, 팬들의 지적을 아예 쿨하게 무시하는 감독도 부지기수이긴 하다. 그리고 비스타플레이어 출신 초보감독이라서 심판과의 기싸움이나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는 개선해야 할 상황. 투수교체에서도 생각보다 잦은 실책을 저지르는 점도 개선해야할 상황.[36]

그래도 2013년 “한 타자만 상대해” 투수교체 도사는 염경엽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원포인트 릴리프가 등판한 33번 중 27번 성공해 82%로 1위의 성공률을 보였다. 가장 성공률이 낮은 감독은 50번 중 25번만 성공한 김시진 감독.둘다 좌우놀이를 좋아하는데 결과는...

특이한 점으로 유독 이만수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몇몇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이만수는 작전시도를 감으로 하는데 염경엽은 이것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해서 오히려 경기에 지게 된다는 분석도 있다. 그리고 기우대로 결국 시즌종료 직전 SK와 한화에게 모두 발목이 잡히며 플레이오프 직행 기회를 놓치고 3위로 준PO부터 시작하게 됐다.이만수 : 2위하고 싶다고? 날 쏘고 가라.

최훈만화에서 염경엽의 성을 따 염력을 쓴다는 패러디를 했다. 초인적인 능력으로 야구 경기의 운영에 영향을 끼쳐 이를테면 1할 대타 성공이나 삼중도루 같은 팀의 승리를 이끄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잘 한다는 정말? 뜻이다.

해당 문서로.

3.3.2. 2014 시즌[편집]

히어로즈 창단 이래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킨 감독

작년에 비해 업데이트되는 주기도 느슨해졌고 양도 작아졌다. 경기중에 작전을 많이 내 작전병 도진다고 까이기도 했지만 예를들면 더블스틸 등(...)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 문서이 문서를 볼때, 감독으로서 작성 내용이 많아지는 것이 그닥 좋은 현상으로만 보이는게 아니기도 하고...

2013년도 시즌 문단에 상기한 것처럼 전년도에는 이만수 SK 감독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으나, 2014년에는 정 반대(상대전적 10승 1무 5패)가 되었다. 대신 김경문 NC 감독에게 약한 모습(5승 11패)을 보였다. 류중일 삼성 감독에게는 박빙열세를 정규시즌(7승 1무 8패)과 한국시리즈(2승 4패)에서 보여주었고, 양상문 LG 감독에게도 후반기+잔여경기에서 다소 열세(양감독 부임이후 5승 6패)를 보여줬으나, 엘넥라시코 플레이오프에서 3승 1패를 거두며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히어로즈 제2대 전임감독이었던 청출어람김시진 롯데 감독과 더불어, 선동열 KIA 감독, 송일수 두산 감독에게 모두 압승(각각 12승 4패씩)을 거두었다. 넥센 히어로즈의 2014년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 통합 준우승 달성에 힘입어, 2015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감독으로 유력 상황.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염경엽 "통산타율 1할… 그 실패가 나를 만들었다"

11월 26일 남은 계약기간 1년을 말소하고 새로 3년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 3억 5천 연봉 3억 5천으로 총 14억.

해당 문서로.

3.3.3. 2015 시즌[편집]

감독 생활 첫 위기이자, 초심과 소통을 잊으면 안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시즌.

1월 6일 시무식에서 올해는 잔소리 야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지도자로서 초보였기 때문에 지난 2년간은 잔소리 안 하고 기다렸으나, 이제는 강정호의 슬럼프가 확 줄어드는 등 성과가 쌓였으니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잔소리를 하겠다고. 염경엽 감독, "2015년엔 우승 위해 잔소리하겠다" 그러나 이미 작년에 밥 먹다가 염감이 들어오자 피해 도망치려던 김민성이라든가(결국 잡혀서 잔소리조언을 들었다), 플옵에서 타순 하나 바꾸려고 2시간 동안 이택근과 면담을 한 일화와 같은 전력이 쌓여있어, 이제 참지 않고 잔소리를 하는 염감은 얼마나 많은 말을 할 것인지 기대(?)되고 있다. 2015년 염감의 야구 철학은 시어머니 야구다!!

어째 시작부터 선수들이 멘붕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 거다.

올해도 역시 중순까지 신나게 까이다가 9월 들어서 체력놀이 덕택에 미친듯이 승수를 쌓고 있다 그러나....

해당문서로.

3.3.4. 2016 시즌[편집]

감독 임기 4년차에 맞는 첫번째 고비
주축 선수들의 대거 이탈로 최하위권의 성적을 예상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가을야구에 진출한 마지막 시즌

6월 16일 현재 62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32승 1무 29패로 시즌 중반에 다다랐는데도 3위를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재영, 박주현 등의 신예 투수를 발굴하여 선발 공백을 메우고 구원투수 자원 전체를 효율적으로 돌리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여러 투수를 실험하게 된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신재영, 이보근, 김상수의 합류가 큰 힘이 됐다.[37] 당해에는 돌쇠 이보근과 상무시절 성적으로 기대감을 모았던 김상수를 대신 굴렸다. 하지만, 김세현을 마무리로 낙점했고, 결국 김세현 마무리로 연착륙했다. 물론 장석이가 팔아 먹었지만..

그러나 빈약한 선수층으로 진출한 준 플레이오프에서 1승 3패로 탈락하며 아쉬운 마무리가 되고 말았다.

3.3.4.1. 자진사퇴[편집]

준플레이오프가 끝나자마자 나온 폭탄선언

그리고 그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로 팀을 떠나게 됐다.기사 이 한 마디에 준플레이오프가 묻혀버렸다. 그야말로 한밤중에 갑자기 나온 뜻밖의 뉴스. 네이버 실검 1위를 찍을 정도로 충격적인 발표였다. 사람들의 반응은 염경엽/2016년 항목에도 쓰여 있는 SK행이 사실이 아니냐는 것. 핸드폰에 미리 써온 글을 읽었다고 하니 가을야구 성적에 관계없이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준플레이오프 끝난 뒤 공식 인터뷰에서 준비해온 글을 읽으며 책임지고 사퇴하겠다고 선언했고 같이 인터뷰실에 들어와있던 넥센 홍보팀 직원은 너무 놀라 입을 못 다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발표 후 약 30분뒤에 넥센 구단에서는 다음날인 18일에 정식으로 발표하겠다고 일단 언론에 밝혔다. 후에 밝혀진 바로는 애초부터 염경엽 감독과 작별은 정해진 사안이었는데 설마 염경엽 감독이 포스트 시즌 탈락 직후에 그런 폭탄 선언을 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구단과의 갈등이 심했던 염경엽 감독으로서 구단에 마지막으로 날린 빅엿(...)인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구단에 빅엿을 선사하고 싶었다 해도 사퇴 발표시점이 막 경기에서 패한 선수들과 다른 코칭 스태프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경기 전부터 사임서를 써두는 등 언제라도 사퇴할 준비를 하고 왔다는 것은 염경엽이 쌓아온 많은 공로들이 바래도록 만들었다. 넥센은 가뜩이나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9월 이후에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준플레이오프를 포함해서 정말로 염경엽 감독이 경기를 대충 했는지는 본인만이 알겠지만 빨리 나가고 싶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든가 하는 흉흉한 추측이 도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 이전부터 나가겠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면 가까이에 있던 선수들이나 코치들이 몰랐을 리가 없고 이것이 이미 경기력 저하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정황상 이미 골이 깊었던 구단과 감독이 누가 더 나은 위치에서 서로를 버리는가 눈치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절대 지고 싶지 않은 염감독이 먼저 선방을 날린 것이고 구단측은 설마 그 경기 직후에 그런 발표를 할 것이라고 예측하지는 못했기에 크게 한방을 먹은 듯한 반응이었다. 얼마나 프런트가 싫었으면 자기 이미지를 중시하는 염경엽이 본인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 프런트에 선빵을 날렸겠냐는 동정적인 시선도 있다.

팬들은 준플레이오프 진 것도 우울한데 거기다 감독이 기분을 추스릴 틈도 주지 않고 사퇴를 해버리니 더 충격적이었다는 반응. 염경엽에 부정적인 팬덤에서는 이미 다른 런동님들에 이어 런경엽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정작 런동님들에 당했던 들은 그 정도는 런치고는 얌전한 거라는 평가를 내렸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이별에 익숙한 넥센 팬덤 특성상 며칠도 안돼서 충격에서 벗어날 건데 충격도 한꺼번에 받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기사가 나왔다.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사퇴 결정은 이미 오래 전에 굳힌 것으로 보인다.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면 염경엽이 사퇴하게 된 이유는

1. 프런트와의 갈등
2. SK 감독으로 부임할 것이라는 루머로 인한 스트레스
3. 둘 다

가 될 것이다. 한 팬이 염경엽 감독에 물어본 바로는 신경성 질환으로 몸이 안 좋아서 쉰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사퇴를 결심한 듯 하다. 일단 SK행 루머에 대해서는 염경엽 감독 본인과 SK 구단 모두 부정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럴때마다 긴 인터뷰를 따곤 하는 박동희 기자가 폭탄선언 다음날 역시나 인터뷰에 성공하여 이를 고스란히 기사화했다. 염경엽 "내 야구관에 밀약과 배신은 없다." 여기에서 계약보다 1년 먼저 떠나는 상황에서 넥센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SK뿐 아니라 어느 팀에도 가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고, "가족과 쉬면서 학생 야구 선수들의 기본기를 다지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또한 이장석 등 프런트과의 불화설을 의식해서인지 이장석에게도 "나를 감독으로 뽑아줬을 때 부터 지금까지 늘 죄송한 마음 뿐이며, 지금껏 프런트가 자기보다 더 고생많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편 구단에서는 18일 사표를 수리하면서 일방적 의견 표명에 유감을 표했다. 뒷통수를 맞은 것에 대해 어지간히 분했는지 4년간 구단을 이끌어준 것에 대한 표면적인 감사나 그런 것도 없고 뒤에 여러 사정들이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대승적 차원에서 안 밝히겠다는 표현을 통해 감독과 프런트 사이의 골이 엄청나게 깊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이에 대해 염경엽 감독은 죄송한 마음이 크고 신경써 주셔서 고맙다고 받아쳤다. 또 기사에서는 미국에 가서 야구 공부를 더 하고 오겠다고 밝혔다.

구단의 보도 자료가 나온 이후 선수 유출이 심한 가운데 구단과도 큰 갈등을 겪으면서 넥센이 정규시즌 3위라는 성적에 오른 거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는 기사도 나왔다. 기사

한편 염경엽이 SK행 루머는 부정했지만 그 후에도 시즌 중 코치들에게 다른 팀으로 가자고 했다는 소문은 기사로 보도되기도 했다. 10월 22일 팟캐스트 '뭐니볼'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방송 내용 요약 여전히 프런트가 언플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팬들도 있으나 이 방송을 들은 대부분의 넥센 팬들의 반응은 이장석이 잘못했지만 염경엽도 잘못이 크다이다. 계속 비슷한 내용이 기사에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염경엽도 프런트도 입을 다물기로 합의했는지 구체적인 증거가 나올 가능성은 낮다. 진실공방을 해봐야 서로 추해질 뿐 이득보는 쪽도 없고 말이다. 어디까지 믿을 것인지는 개인의 판단에 달렸다.

2016년 10월 27일 SK와이번스 신임 감독이 트레이 힐만으로 선임되었고, 염경엽의 감독 선임은 이미 떠돌던 루머로 인해, 최종 계약이 무산되었다고 한다.[38] 한편 넥센 히어로즈도 염경엽 이상으로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코치 경험이 없는 장정석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장정석 체제의 성공 여부에 따라서 염경엽 체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당분간은 이 일이 조용히 마무리 될 것으로 보였는데...

3.4. SK 와이번스 단장[편집]

"SK 밀약설? 감독 제안 받은 적도, 가겠다고 결심한 적도 없다."
"내 명예와 야구관에 '밀약'과 '배신'은 없다."
"SK뿐만 아니라 그 어떤 팀도 가지 않겠다. 그것이 넥센에 대한 예의이자 인간의 도리"
"1년 먼저 팀을 떠난 만큼 다음해는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 생각한다."

ㅡ 2016년 10월. SK 이적설에 대한 인터뷰.관련기사


2017년 1월 17일 SK 와이번스의 제4대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단장 선임 오피셜 기사 SK팬들은 감독과 프런트를 고루 경험한데다 인천에서도 선수 생활을 한 인연이 있는 만큼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염경엽이 SK감독으로 간다는 소문에 코웃음쳤던 넥센팬들은 염경엽이 다른 팀 감독으로 안 간다고 직접 부정한 인터뷰를 들먹이며 제대로 뒤통수를 쳤다고 분개하고 있는 중. 염경엽의 말마따나 감독으로 간 것은 아니기에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염경엽이 했던 말과 사실을 되짚어 보면 이렇다.

염경엽 "SK 감독으로 안 간다" → SK 단장으로 이적
염경엽 "미국식 야구를 배우겠다" → 미국인에게 야구를 배우게 됨
염경엽 "올해(2016년)에는 팀 안 옮긴다" → 2017년 1월에 이적

정치인 해도 되겠다

물론 감독·코치 계약서에 따라 1년 동안은 다른 팀의 감독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고 단장으로 가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팬들을 속인 건 사실이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말이 많은 상황.

염 단장은 지난해 '내 야구관에 밀약과 배신은 없다", "팀을 그만둔다고 바로 다른 팀에 가지 않는 게 넥센에 대한 예의이자 인간의 도리" 같은 발언을 통해 강한 어조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바 있다. 본인의 말대로라면 지금 염 단장은 인간의 도리도 저버리고 넥센을 배신한 꼴이 됐다. 만일 감독이 아니라 단장이라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고 한다면, 정치인 뺨치는 '기름장어 화법'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SK 구단 역시 아무리 염 단장이 필요했다고 해도 굳이 이런 식의 구설수를 자초하면서 영입을 강행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의 기사 '염경엽 SK 신임단장, 성공 스토리의 두 얼굴' 中 기사 전문 -


단장 선임 이후 나온 기사에서 "감독과 프런트를 모두 해 본 만큼 프런트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걸로 보아 현장에 대한 권한은 트레이 힐만 감독에게 주고 자신은 현장을 지원하는 매니저로서의 역할만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대 유니콘스 시절 단장과 사장으로 일했던 김용휘의 업무 마인드와 똑같다. 아무래도 염경엽이 구단 프런트 직원 초기 일을 배우던 과정에서 김용휘가 직속 상사였기에 그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프런트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 발언으로 이장석 및 넥센 프런트를 돌려서 디스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들도 나왔다. 인천야구와의 인연이 새로이 시작되었지만, 이로써 4년간 호평을 들으며 넥센을 4년 연속 가을야구를 시킬 정도로 키워내고도 팬들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그리고 솩 넥라시코 같은 더비 매치가 만들어지겠지. 사실 예전 현대 문제로 사이가 썩 좋지않은 것은 사실이다. 넥센 팬들 사이에서 염경엽의 별명은 런동님이 되었고 스토브리그 내내 반금지어 취급받고 있다. 게다가 2016년 준플레이오프에서의 무기력한 경기 운용과 이해할 수 없는 라인업, 선수단의 사기저하 등 고의로 태업의혹까지 생길 정도로 여론이 악화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염경엽이 잘못한 것은 없다. 본인도 타 팀에서 감독이나 코치 자리 정도의 오퍼가 올 거라 생각하고 발언했을 테지만, 단장이라는 자리가 주는 무게감은 급이 다르다. 감독직을 얻을 때도 그랬지만, 단장직은 더욱더 일생에 한 번 올까말까 한 기회이다. 1년 동안 타 팀 감독 안 한다는 말이 단장에도 적용된다며 이번 기회를 날려버리면 다음 기회는 언제 올까? 5년? 아니다. 10년에서 20년은 다시 또 야구판에서 구르다가 평가가 좋아야 기회가 한 번 올까말까 하는 것이다. 이장석과도 안 좋게 헤어진 마당에 자신의 최대 기회를 날려 버리는 건 오히려 멍청하다며 사람들에게 비웃음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일이다. 염경엽이란 부메랑이 돌아올 것에 대한 넥센 팬들의 감정이 안 좋아서 염경엽의 발언을 꼬투리 잡아 비난하는 면이 크다. 막말로 한 가정의 가장이 당연히 실업자로 몇 년 지내야 한다며 고사 지내는 게 보기 좋진 않다.

단지 염경엽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퇴시기가 마치 사전에 미리 마음먹고 온듯 너무 빨랐다는 점이다. 가장 논란이 된게 패배가 확정된 후 패장 인터뷰 자리에서 미리 준비한 사퇴선언문을 꺼내 방송에 대놓고 사퇴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염경엽이 처음부터 사퇴할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오해받을 소지가 크다. 위에서 얘기하듯 이해할 수 없는 선발기용,무기력한 경기내용 등 고의로 태업 의혹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다못해 준플레이오프 종료 후 하루나 이틀 약간 시간을 둔 뒤 사퇴를 선언했다면 이렇게까지 팬덤에서 욕을 먹진 않았을것이다. 되려 구단의 압력이나 마찰에 떠밀렸다는 동정표라도 얻었을 것이다. 구단 고위층과 불화나 마찰이 있었다지만 한팀의 수장으로 경기에 임하는 것과는 또 별개의 일이다. 염경엽의 마지막은 지난 4년간 보여준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준플레이오프 내내 끌려다니며 무기력한 모습만 보였으며 끝내 업셋 패배로 그 대미를 장식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란듯이 팬들과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사퇴라는 폭탄선언을 터트린 후 떠나버렸다. 그 진의는 당사자만 알겠지만 염경엽의 다소 무책임할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마지막 행보는 평생 그를 따라다닐 주홍글씨가 될 수 밖에 없다. 더불어 그의 사퇴 후 히어로즈 팬덤까지 염빠와 염까로 서로 분열됐으니 그가 남긴 사퇴 후유증이 꽤 크다.

3.4.1. 2017년[편집]

절반의 성공

단장 부임 이후 사실상 첫 대규모 선수 영입이었던 노수광, 이홍구, 윤정우, 이성우 <-> 이명기, 김민식, 최정민, 노관현의 4:4 트레이드가 KIA 타이거즈의 압도적인 이득으로 드러나자 비판이 많아졌다. 이와중에 "계산기 두들겨 본 적 없다."라는 발언으로 다시 한 번 호된 비판을 받았고, 대니 워스, 스캇 다이아몬드의 공백을 대신할 후속 외국인 선수의 영입이 점점 늦어지고 있는 것도 비판을 받는 중.

이를 두고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고평가되고 거품이 낀 지도자'라는 비판이 늘어나고 있다. 단장으로는 처음이라고 하지만, 이대로 가면 한국판 빌 버베이시로 전락할 지도 모르는 상황.

그나마 워스의 후임으로 영입한 외국인 타자 제이미 로맥최정, 한동민, 김동엽과 함께 중심타자 역할을 잘 수행하고, 이에 힘입어 팀도 상위권으로 도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다시금 기대를 모으는 중이였다. 전반기 부상과 기복성 투구를 보여주던 다이아몬드도 부활하며 칭찬을 받았다. 리빌딩 1년차이라 별 기대 않던 팬들에게 전반기 3위로 마무리짓는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끝없는 추락으로 다시 한 번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결국 노수광은 유리몸먹튀김강민을 대채하는데 성공했고 이홍구는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성우는 사실상 주전포수로서 2017시즌 SK의 안방을 책임져 준것을 보면 얻어걸린 느낌이 강한 이성우의 경우는 차치하고서도 이번 트레이드는 일단은 성공적인 트레이드라고 볼 수 있다. [39]

2017 시즌 외국인 선수에 대해서 켈리 재계약은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새로 영입한 두 명의 선수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편. 메릴 켈리가 전년에 비해 더 좋은 투구를 선보이고 있지만 스캇 다이아몬드는 시즌 초 부상의 공백을 딛고 일어났으나 상대전적이 명확하게 갈리며 4점대 후반의 ERA에 5점대의 FIP를 기록하며 기복이 심한 모습이며[40] 대니 워스의 대체 외국인 타자로 5월에 합류한 제이미 로맥은 좌완을 상대로는 강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 20홈런을 기록하고 있지만 반대로 우투 상대로는 2할도 치지 못할 정도의 우상바의 모습을 심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 제이미 로맥은 재계약을 생각해 볼 여지가 남아있고 가능성도 높으나 스캇 다이아몬드잠실에만 가면 강하지만 구장이나 상대 팀을 심하게 탄다는 점으로 인해 재계약 여부가 미지수이며 오프시즌 구단의 결정까지 지켜봐야하는 상황. 다만 이 팀이 최근 몇 년간 크리스 세든 정도를 제외하고는 좌완 외국인과는 연이 지지리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지간해선 다이아몬드도 재계약을 할 듯...했으나 결국 두 선수만 재계약 방침으로 가고 스캇 다이아몬드는 재계약을 포기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와일드카드전 광탈 이후 염경엽의 시각에서 시즌을 평가하자면 뭐 큰 성공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초반의 그 트레이드 직후 욕먹을 기세였던 것에 비하면 준수하게 마감하였다. 우선 용병 선발 문제를 살펴보자면 염단장과 상관없는 켈리야 와카전을 말아먹었어도 명불허전이었다. 염단장이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용병들을 살펴보면 부상당한 다이아몬드를 기다려서 성공적으로 마쳤고 반대로 워스를 로맥으로 바꿔서 역시나 준수한 성공을 거뒀다. 워스가 감독인 힐만의 인맥이었음을 감안하면 염단장은 적절하게 할 일을 다 한 셈이다.

트레이드의 경우도 이명기가 너무 아름답게 부활해버려서 초장부터 난리가 났지만 시즌을 결산해보면 생각만큼의 손해가 아닌 어느 정도의 윈윈에 가깝게 되었다. 일단 반대급부인 노수광이 타격 자체는 이명기보다 떨어지지만 공을 오래 보는 성향으로대체 누가 이렇게 생각하는지...컨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삼진 머신에 발은 빠른데 출루를 못해서 쓸 수가 없다인해 공갈 뻥야구의 SK 타선에 획일성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다줬고 이명기가 할 수 없는 중견수 수비가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져서 잘 써먹었다. 기아 선발 안정과 불펜 불질 틀어막기(...)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김민식 역시 OPS 5할의 수비형 포수라서물론 내년에 박흥식 2년차를 맞아 터질 수도 있지만 나이문제는 있지만 이성우를 데려와서 다듬는 것커리어하이 시즌으로 커버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에 어울리는 파워툴이 있는 포수, 즉 다듬기에 따라 포수를 포기시켜 타격에 전념시킬 수도 있고 어느 정도 공격형 포수로 키워볼 수도 있는 이홍구를 얻었으니 그냥저냥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준 셈.기아 가려운 곳만 속시원히 긁어줬다

그리고 SK가 5위보다 위로 올라가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불펜의 대방화와 하위선발 공백 그리고 한동민의 이탈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마무리 및 셋업급 불펜을 트레이드로 보강할 방법이 없다. 왜냐면 다른 팀들도 거의 다 불펜이 부족하니까... 대표적으로 3위 롯데의 경우도 내야유망주였던 오태곤을 주고 kt의 2015 마무리였던 장시환을 데려갔으나 신나게 파이어를 하면서 트레이드 패자가 되고 필승조는 6선발 탈락자부상복귀한 추억의 에이스가 채웠다. LG나 kt 등 투수물량이 그럭저럭 되는 팀과 트레이드를 한다고 해도 SK가 원하는 주전 마무리를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안그래도 LG투수들은 스터프가 애매해서 잠실빨, kt는 약팀이라서 개개인 과대평가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마당인데... 그나마 성과를 본 것이 기아의 김세현 트레이드인데 김광현 없는 SK가 어차피 우승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런식으로 윈나우를 해서 순위를 한두 단계 높일 가치가 있었을지는 의문.

더불어 김광현도 없었고 한동민도 이탈했으니 팀 순위로 필요 이상의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 토종 프론트라인 선발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고, 거포 한동민을 경쟁팀으로 치면 두산의 김재환 박건우, 롯데의 이대호 손아섭, NC의 스크럭스 나성범 급의 선수를 떼고 막판 순위경쟁을 했다는 뜻이다. 아무리 6 7위팀이 각각 창조적인 스몰볼야구와 4번타자 팔아먹기 등 기행을 일삼으며 니가 가라를 시전했다고 해도, 오히려 SK 전력누수가 없었다면 더 높이 올라갔을 가능성도 있었다.

즉 염단장이 앞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은 힐만 및 차기 감독과의 교감, 이 연장선에서 드래프트 능력과 코치 인사능력을 통한 투수력의 보강이다. 불펜진 안정화를 위해서는 트레이드나 FA보다는 지명 및 육성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며, 이는 드래프트와 1, 2군 투수코치 인선이 거의 결정한다.
먼저 10월 12일 손혁코치를 기존의 데이브 존 코치 대신에 영입했으며, 10월 19일 박재상 前 선수를 코치를 영입하는 등 내년 코칭스텝 인선을 완료하였으며 [41], 10월 27일 메릴 켈리, 제이미 로맥의 재계약에 성공 하였으며, 11월 22일날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는 허도환, 강지광, 김주온 을 데리고 왔으며, 11월 28일에는 스캇 다이아몬드 대신 앙헬 산체스와 계약을 했으며, 12월 7일 정의윤을 29억에 잔류를 시키고 11일~15일까지 열리는 메이저 윈터미팅에 다녀오는 등 내년 시즌의 전망을 밝히고 있다.

3.4.2. 2018년[편집]

지난해부터 그려온 큰그림이 올해는 결실을 볼 수 있을까?

일단 손혁 코치 영입, 앙헬 산체스 영입에 대한 평가가 좋다. 특히 손혁 코치가 작년 골칫거리였던 불펜진을 환골탈태 시켜놓고 팀 평균자책점을 1위로 만들어 놓아 손혁 코치와 함께 평가가 더욱 좋아지고 있다. 여기에 산체스는 '산왕'이라 불리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모습이다.

트레이드 마감일인 7월 31일, LG 트윈스문광은을 내주고 강승호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병역 의무를 마친 내야수 자원 보강을 고민하던 중 즉시전력감 불펜투수가 필요한 LG와 이해관계가 맞아 트레이드를 단행하게 됐다고 한다. 여기에 가능성이 풍부한 유망주를 영입해 미래의 주력 내야수로 성장시키고, 문광은에게 1군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는 의미에서 이번 트레이드를 진행했다고.# 일단 트레이드 직후에는 죽어도 터지지 않던 31살 노망주 투수를 주고 24살 군필 내야수를 받아왔다는 점에서[42] 트레이드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많은 편이다.

8월 12일 문학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 경기 때 1회부터 앙헬 산체스가 난타를 당한 탓에 8-21의 대패를 당했다. 그러자 구단 프런트 전원이 나서서 경기 종료 후 귀가하는 관중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돌렸는데 이것이 염경엽 단장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원래는 입장료 환불을 고려했지만 이게 시스템상 불가능하다고 해서[43] 아이스크림 선물로 생각을 바꿨고 구단 내 상급자인 류준열 사장도 이에 동의해 염 단장과 류 사장 등 구단 프런트 전원이 나서서 관중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돌렸다.

4. 운영 스타일[편집]

현장 밖의 일은 프런트가, 현장의 일은 코칭스텝이.

이것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는 감독이다. 헤드코치가 아닌 매니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44] 특히 현장 경험과 프런트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이 큰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여러모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긴 하지만 이장석과의 호흡도 겉으로는 잘 맞는 편. 이장석이 적절한 수준의 선수들을 영입하고, 기본적으로 이장석의 구단운영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있는 열린 감독이기도 하다. 때로는 서동욱의 케이스와 같이 원하는 선수가 있을 경우 프런트에 흘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프런트는 기대대로 최소한의 지출로 감독이 원하는 서동욱을 데리고 왔다.

빅 뱃이 많은 선수단 구성과 달리 운영 스타일은 코칭스텝이 경기에 깊숙히 관여하는 스몰볼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허나 김성근과 같이 3, 4번에게도 작전을 요구하는 극단적 스몰볼까지는 아니다. 최소한 박병호, 강정호는 자기 맘대로 치는 게 작전이라는 것 정도는 인정하고 들어간다. 염갈량이라는 멋진 별명이 생긴 이유도 공격 기회가 오면 워낙 신출귀몰하는 독특한 작전을 많이 구사하기 때문. 넥센 팬들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705 대첩의 삼중도루가 그 예. 김성근+로이스터식의 야구를 하겠다는 말이 그냥 꺼낸 말은 아닌 셈. 다만 런앤히트, 더블스틸 등의 작전을 내다가 경기를 상대에게 헌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변칙은 원칙을 묘수는 정석을 이길수 없는법 15년까지 염재신을 쓴다고 욕을 신나게 먹었으나 16년도에 경험치가 빛을 발했는지 나쁘지 않은 타격과 도루성공을 기록하며 염벤져스로 격상되었다

공부도 많이 하고 깨어있는 감독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나, 1회에 번트를 대는 등의 구태의연한 운영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세이버 매트릭스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구단이 정작 운동장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던것. 이 점은 대표이사 겸 사실상 단장인 이장석과 극명히 대비되는 스타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계속 이런 경기운영을 한다는것은 프런트도 적당한 선에서 감독의 스타일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명장 조 매든의 경우도 세이버매트릭스에 의한 수비 시프트를 구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외로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처럼(...)[45]

투수진 운용에 대해서는 평가하기 힘든 부분이라 섣불리 말하긴 힘들다. 철저히 결과론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해 못 할 교체로 실패한 사례도 부지기수이나 반대로 성공한 부분도 많다. 확실히 큰 틀을 잡고 운영하고 관리하는 결단력은 뛰어난 편. 투수교체도 일단은 합격점에 든다. 실제로 2013년 원 포인트 릴리프 기용 성공 확률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만 승부처에서의 투수교체는 아직까지는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들다. 그래도 없는 살림에 몇 안 되는 투수들을 요리조리 잘 굴려 시즌 운영을 한 것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2013년 후반기 오재영, 문성현 선발 투입은 신의 한 수.

2014년 전반기에 선발 투수들의 부진으로 한동안 부침을 겪었지만, 전반기를 창단 첫 2위로 마무리지었고, 결국 팀 창단 첫 정규시즌 준우승을 달성하였다. 물론 없는 살림에서 6할 승률을 짜낸 대가로 불펜 필승조 조상우, 한현희, 손승락은 거의 김성근 시절의 SK 투수진을 방불케 할 정도로 한계까지 쥐어짜였다( ..)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결국 필승조는 끝까지 퍼지지 않았고, 팀은 시즌 막판에 6연승을 달렸다. 2013/2014 2년연속 가을야구의 참맛을 선사하신 명장 염갈량 고맙습니다 염프레레 감독(넥센히어로즈): "우리 투수라인에서 9점을 먹으면 공격진이 10점을 내면 됩니다."[46] 염감님 흰머리 짙어질듯

넥센 팬들이 그의 운영 스타일 중 가장 크게 인식하는 것이자, 전임 감독의 실패사례를 보고 배운 것이 바로 체력과 부상 관리다.그럼 조상우는?[47] 시즌 초반부터 심하게 주전급 선수들의 체력과 부상을 관리해줬다. 어쩔 땐 너무나도 파격적인 선수기용(체력놀이)로 우려를 샀지만 놀랍게도 그런 날에도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시즌 초반부터 지독하게 했던 체력관리는 결국 2013년 9월 약진에 힘이 되었다. 다른 팀 선수들이 하나 둘 체력문제를 겪을 때 넥센 히어로즈 선수들은 반대로 펄펄 날았다.[48] 김시진의 유산이라면 확실한 실패사례를 남기고 갔다는 점. 이런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큰 틀에서 좋은 경기운영을 보여줬다. 어쩌면 선수의 질 하나하나는 준수하나 뎁스 자체는 얇은 히어로즈의 사정에 딱 들어맞는 관리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더구나 염경엽 감독 취임 이후 프런트에서는 이러한 염감독의 스타일에 맞춰 부족한 부분의 선수를 트레이드해줘서 선수 구성을 점점 두텁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2014 시즌에 와서는 타자쪽에서는 거의 매일 휴식 선수와 지명타자가 바뀌다시피 하는데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별 티가 안난다.

넥센이 초반에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 염경엽의 지도방식이 영향을 미치는 듯 하다.분석기사 '허구연의 소통강좌'에서의 허구연 曰, 염경엽식 야구에 대해 설명하자면, 일단 스프링캠프 때부터 현재 페이스나 작년 성적 등을 보고 선수들에게 주전이면 주전 대타면 대타 (예를 들어, 윤석민에게는 대타로서의 롤과 1,3루 대수비라는 롤을 맡겨서 거기에 맞춰서 훈련을 하고 몸을 만들게 하고, 김병현[49] 같은 경우 선발진엔 자리가 없으니 선발은 생각도 말고 불펜으로 뛸 수 있게 몸을 만들게 한다) 미리 각자의 역할(롤)을 만들어서, 거기에 맞춰 몸을 만들고 훈련시키기에, 시즌 들어와서 우왕좌왕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수들로부터도 신뢰가 두텁다. 2015년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진출한 강정호는 인터뷰 중에 염 감독을 언급하며 “어딜 가도 염경엽 감독님 같은 분은 안 계시는 것 같다. 선수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염 감독님이 최고다.” 라는 말까지 했다. 기사

4.1. 비판[편집]

2015년 까지의 행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젊은 김성근+선발투수 엄청 못 키우는 마이너 김경문+여전히 단기전만 가면 약해지는 한국인 로이스터[50][51]

2015 시즌 강정호가 팀을 떠난 이후 염경엽 감독에 대한 비판론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몇 가지를 정리해 보자면

  • 지나친 작전병과 강한 하위타선론

무리한 대주자 기용과 히트 앤 런, 스퀴즈 시도,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 등의 쓸데없는 작전으로 흐름을 끊어먹는다. 투수의 공 상태와는 상관 없이 그냥 감으로 시도하는 작전이라는 게 문제.. 이러한 작전으로 승리를 가져간 적도 있긴 하다.(705 대첩 등) 그러나 굳이 작전이 필요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경기 상황과 작전을 수행하는 선수의 능력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작전을 걸다가 말아먹은 경기가 정말 수두룩하다. 작전 한 경기 성공을 위해 버리는 경기가 강가의 자갈보다 많은 수준이다.

흔히, 작전병의 척도를 희생번트의 수라고 한다. 물론 희생번트 수치 만이 작전을 전부 나타내주는 것은 아니나 작전병에 걸린 감독들은 흔히 번트 수가 높고 실제 기록과 팩트상으로 작전의 정도를 체크할 수 있는것은 희생번트 정도 뿐이다. 그런데 넥센의 희생번트는 크보 최하 수준이다. 구체적으로는 2015년 넥센의 희생번트 수는 61개로 10개팀 중 최저이며, 2016년 9월 초 120게임 진행된 시점을 기준으로도 팀 희생번트는 33개로 역시 크보 팀 최하이다. (2013년은 76개로 6위, 2014년은 65개로 6위), 참고로 작전많이 거는 걸로 알려진 2015년 한화의 김성근 감독의 경우 희생번트가 무려 139개로 크보 최다이며, 역시 작전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2014 두산의 송일수 감독은 81개로 크보 2위였다.

물론 번트를 적게 댄다고 해서 안대는 것은 전혀 아니였고, 번트를 대는 상황에서 그 임무를 맡은 넥센 선수들의 작전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안대는 것만 못했기에 비판을 받는 것이다.

비록 타순이 점수에 주는 영향이 크게 없다지만 일반적으로 잘하는 타자들을 상위 타선에 몰아넣는 것이 마구마구 유저들도 하는 일종의 상식이다. 그러나 염경엽은 2015 시즌 중 '강한 하위타선'을 주장하며 OPS가 낮은 선수들을 2-3번에 배치하고 높은 선수들을 6-7번에 배치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하였다. 이것은 이택근을 2번에 두어 크게 성공한 2014년의 자신의 사례와도 상반된다.[52]

  • 투수 운용의 문제점

투수 교체가 결과론이긴 하지만 조상우, 한현희에 대한 지나친 의존[53], 그리고 감독 생활 초반에 비해 들어맞지 않는 투수교체 타이밍 등으로 비판이 증가하고 있다. 물론 넥센 히어로즈는 전임 김시진 감독과 정민태 코치 등 기존 현장의 유산인 싸융짱문오로 대표되는 암울한 투수진을 가진 팀이었던건 부정할 수 없다. 허나 염 감독 본인도 관련 코칭 스텝 보강이나 특별한 훈련없이 이를 제대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으며 대충 고정된 선발 없이 그때그때마다 돌려막기로 때우려 한다는 점이 문제다. 특히 하영민, 이상민, 김정훈 같은 착실하게 조련을 받아야할 젊은 투수들이 이러한 팀 사정 때문에 불펜에 끌려나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서 더욱 더 불거졌다.

2015년 투수 운용의 문제점을 분석한 글이 KBReport에 올라왔으니 일독을 권한다. 2015년 넥센 불펜엔 무슨 일이 생겼나? (1편) (2편)

다만 위 글은 초창기 파이어세일로 완전히 거덜난 넥센의 투수진의 비교대상으로, 다른 팀도 아니고 그 파이어세일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맛보고, 양과 질에서 넥센을 확실히 압도했던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진을 거론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비교적 떨어지는 기록을 남기고도 선발로 버틴 일부 삼성 투수들을 넥센에 대입하여 비교하고 있는데, 선수의 보직은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도 결정되지만, 가용 자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 가용 자원이 정해졌을 때 불펜 야구라는 전략적 패착에 대한 지적을 하려면 비슷한 자원을 가진 팀들끼리 비교하는 것이 맞고, 삼성 라이온즈가 자원적인 면에서 넥센과 가장 가까운 팀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조상우 혹사 및 도를 넘은 불펜 의존도는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처음부터 리빌딩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한 불펜 야구 자체를 피하기는 어려웠다고 봐야 한다. 10점 20점 주면서 5회 채우란 말인가. 그러나, 불펜 야구의 불가피성을 논외로 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우선, 제대로 된 선발 투수를 기용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다. 이와 관련해 선발 투수 재목을 보는 눈이 심각하게 이상한 것인지 의심이 가는 인터뷰가 발굴되었다.

염경엽 확신 “조상우 성공 지름길? 선발보단 불펜”

단순히 조상우를 불펜으로 굴리기 위한 핑계라고만 보기에는 그 동안 선발과 계투를 운용하던 행태가 모두 들어맞는다. 염경엽의 야구관에선 구속이 빠른 투수들은 모두 힘으로만 찍어 누르는 투수이니 불펜에 넣고, 구속이 느린 투수들은 경기 운영 능력이 있으니 선발로 넣는 것이다. 염경엽은 나름 본인의 야구관대로 선발을 키워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 야구관과 정반대일 뿐더러 전혀 통하지 않았을 뿐이다.

경기 운영 능력이란 것이 허상이라는 평까지 나오는 상황이지만 확실한 것은 경기 운영 능력과 구속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류현진은 KBO리그에서는 제구력도 좋은거지 제구력만 좋은 투수가 절대 아니었다. 무엇보다 FA를 언급하였는데, 길고 긴 KBO 리그의 FA 서비스 타임과 아마추어 시절 혹사가 겹쳐 투수가 FA 이전 활약을 보이는 경우가 희박하다. 파워피쳐, 피네스 피쳐를 가리지 않는다.[54] 그리고 불펜투수들은 FA까지 활약을 이어가는 경우가 선발보다 더 적을 뿐이다.[55]

다음으로 필승조 혹사 문제를 들 수 있다. 불펜 야구는 결코 계투 혹사와 동의어가 아니다. 제아무리 자원이 부족하다 해도 도를 넘은 혹사에 면죄부가 주어질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굴려진 한현희조상우가 약속이나 한듯 팔꿈치에 부상을 입으며[56] 킬경엽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2015년 시즌 하반기와 포스트시즌에 보여준 무자비한 혹사에 대해서는 타팀 팬들마저 입을 모아 걱정했을 지경. 결국 "관리된 혹사"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만 증명하고 말았다.

다만 2016년에 들어와서는 이 부분에 대해 상당 부분 개선이 이뤄졌다는 점은 생각해 봐야 한다. 연초 이후 시즌 말미까지도 계속해서 작년이 이 전략이 자신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실패였음은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느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인터뷰때마다 끊임없이 밝히고 있다. 실제로도 2016 시즌에서는 그 전 해에 비해 불펜진의 혹사가 줄어들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양한 선수를 돌아가며 기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음에도 코엘로를 퇴출하고 멕그레거를 데려왔고, 그에 비해 맥그레거는 홈런 공장으로 실점을 쌓을 때도 별 말이 없었던 것을 들수 있다. 볼넷을 남발하며 길게 끌어주지 못하고 많은 불펜을 조기 투입시켜서 결국 불펜의 혹사를 가져오게 만드는 투수보다, 점수를 좀 주더라도 빠른 승부로 이닝을 후딱 끝내고 이닝을 길게 끌어줘서 불펜진을 최소 한도로 투입할 수 있는 투수가 더 낫다는 전략적인 선택이었던 것.

선발진의 경우에도 신재영이라는 걸출한 스타의 탄생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박주현, 최원태와 같은 선수들에게 꾸준히 선발 기회를 줘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확인한 측면도 있다. 특히 이들 신진급 투수는 절대 4일 간격 등판 같은 조기 투입을 시키지 않고 선발 로테이션을 길게 잡아주고, 만약 펑크가 나면 화성에서 선발 뛰던 선수를 임시 선발로 올리는 식으로 선발을 키우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2015년부터 팀에 합류한 손혁 코치의 능력이 2016년에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면서 팀 투수진에 숨통이 트인 것이 결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시리즈에 갔던 2014년에는 5인방을 제외하면 1군급의 투수가 거의 없을 정도였고, 소사를 잃은 2015년에도 토종 투수력이 많이 강해졌다고 보기 어려웠다. 한현희와 조상우를 부상당하게 만든 것은 분명 비판받아야 하지만, 타력이 강해서 반드시 성적은 내야 하는 반면[57] 투수진의 뎁스가 얇고 성적 편차가 너무나 컸던 팀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적어도 선발 유망주를 불펜으로 갈아넣어 성적을 낸 뒤 그에 도취되어 이후 연봉 총액 1위팀에서 투수가 없다고 헛소리를 하는 어느 감독과 비교하는 것은 매우 실례이다. 염경엽 감독의 '용기있는 반성'

간혹가다 하영민김택형, 최원태가 염경엽의 혹사로 나가리되었다고 주장하는 몇몇 팬들이 있는데 등판 기록 등을 살펴보면 개소리임이 드러난다. 16시즌 하영민은 겨우 10경기 나왔고 연투는 3연투 없이 2연투만 두번(5월 11~12 롯데, 5월 17~18 NC)했다. 두 번의 2연투 사이에 4일간의 휴식이 있었고 등판 사이에 최대 5일, 최소 3일 정도의 짬이 있었다. 보직이 롱릴리프라 등판시 이닝을 많이 먹긴 했지만 부상있는 선수를 무리하게 당겨쓴게[58] 아닌 이상 이 정도를 혹사라곤 할 수 없다. 김택형은 데뷔시즌 선발등판 기회를 부여받으며 58이닝을 귀족처럼 던졌고 16시즌 부상당하기 전까지 겨우 28.1이닝을 던졌다. 투구내용이 너무 안좋아서 6월에 한 번 연장 12회까지 던지다 털린 적 한 번 빼곤 무리하게 끌고간 적도 없었다. 최원태는 16시즌 17경기에서 61이닝을 던졌는데 그 중 무려 11경기가 로테까지 꼬박꼬박 지켜준 선발등판이었다. 분명히 비판받을 점이 있었지만 이들은 아니다. 이게 혹사면 야구감독은 전부 투수백정이다. 그저 팀 내 어린 선수들이 자주 부상을 당하는 것에 물타기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조상우한현희의 부상은 빼도박도 못하게 염경엽 감독이 짊어지고 갈 원죄이긴 하지만 16시즌 염경엽 감독은 시즌 시작때부터 불펜 혹사를 반성하였고 16시즌 투수 운용에선 불펜 혹사를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성적에 눈이 멀어 조상우, 한현희를 굴린 것이 2017년 탈이 났다. 1년 재활과 휴식을 병했했다고 한들, 이미 살인적인 투구수를 기록했기에 아직도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모두의 기대를 걸고 야심차게 복귀했으나. 둘다 길게 이닝을 버틸 수 없어 불펜의 과부하가 많아지고 불펜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닝을 길게 먹으면 탈이 나버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결국 사이좋게 부상과 부침으로 이탈해버렸다. 한현희는 구위를 잃고 1이닝 막기도 벅차고, 조상우는 부상 후유증으로 검진 결과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고통을 호소하는 등 미래가 창창한 젊은 투수들이 혹사로 인해 이전만한 퍼포먼스를 못 보여주고 있다.

  • 허황된 야수 관리

위의 서술에서는 체력놀이니 이런 표현으로 염경엽이 야수 관리에 능한 감독으로 표현했지만, 김하성의 수비 이닝을 보면 관리를 제대로 하는 감독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59] 16년도의 박동원이야 백업 포수진을 생각한다면 그나마 납득은 가는데, 김하성은 김지수라는 나름대로 쓸만한 백업이 있는데도 전 경기 출장이라는 훈장 아닌 훈장을 받게 되었다.

  • 야수 운용의 문제점

2016년 시즌에 가장 크게 두드러진 부분은 2군 기록 그 자체보다는 선수의 기본 툴을 강조하고 툴이 좋은 선수를 위주로 1군에서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 호불호가 크게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군 기록 여부와는 관계없이 툴이 좋은 이유로 2016 시즌 한 해동안 1군에서 중용을 받은 선수가 바로 강지광같은 케이스인데, 2군 기록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음에도 툴을 중시하는 염경엽 감독의 성향으로 인해 많은 중용을 받았던 것. 이는 2군 기록이 좋았음에도 허정협홍성갑 등의 선수가 수비 문제, 주루 문제 등의 이유로 중용을 받지 못한 것 때문에 올 한 해 동안 큰 논란거리가 되어 왔었다. 이는 실제로 2군 기록이 상당히 준수했음에도 1군에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방출이 되었던 현 kt wiz 소속 포수 이해창 등의 케이스도 있기 때문에 길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2군 기록이 좋더라도 그것이 1군 기록으로 꼭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있는 만큼.[60]

  • 지나친 입털기

양상문급은 아니지만 기자들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자주 하는 것도 단점 중 하나이다. 특히 자기가 했던 말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거나[61] 아예 말을 뒤집어 버리는 경우도 많아 일부 팬들에게서 염네바야시 경엽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입털기 중에 가장 압권이었던 건 2015년 시즌 시작 전 투수 김정훈에 관한 것이었는데, 1군에서 전혀 검증이 안 된 선수를 한현희를 대체할 셋업투수로 쓰겠다느니 하면서 언론에 온갖 입을 다 털었다. 그러나 막상 시즌이 개막하고 보니 넥팬들 대다수가 알다시피 김정훈은 도저히 1군에서 써먹기 힘든 수준이였고, 거기서 투수진 운용은 제대로 꼬이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 김정훈은 김건태로 개명 후, 2017년 2차 드래프트로 NC 다이노스로 갔다.

2014년 8월 28일 대전 한화전에서 오주원의 부정투구를 두고 "깨끗이 하는게 맞으니 잘못된 건 바꿔야 한다. 규칙에서 하지 말라는 건 안 해야 한다. 오주원의 습관인데, 어린 선수였으면 이닝 중간에 얘기했겠지만 오주원 정도면 문제 없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따로 얘기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자팀의 부정투구 행위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얘기.

2015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애매한 사구 판정으로 이득을 본 김재호에 대해서는 선수 본인이 자진납세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더니, 정작 공에 맞았지만 맞지 않았다고 판정되어 손해를 본 오재일에 대해서는 운이 좋았다 라는 뉘앙스의 내로남불식 인터뷰를 해서 논란이 되었다.

  • 선수 보는 눈 전무.

못 키우는 걸 떠나서 그냥 선수를 못 본다. 어지간한 선수들은 전부 전임 감독들의 유산 내지는 외부에서 수혈한 자원들이였다. 물론 김시진처럼 제대로 전력이 갖춰질 때 죽을 쑤고 염경엽은 그 선수들을 잘 활용하고 성적낸 것도 대단하긴 하지만, 본인이 그만큼 덕을 본것도 사실이다. 여기다 포스트 OOO 드립은 덤. 김택형, 임병욱, 정회찬이 대표적이고, 로버트 코엘로를 웨이버 공시까지 해가면서 데려온 스캇 맥그레거는 본인이 적극 추천해서 데려온 선수지만, 결과적으로 넥센에서는 네 명 전부 실패했다. 심지어 한 명은 방출당했다. 게다가 다른 감독들처럼 염경엽도 양아들이 있었고 그들은 끝내 터지지 못했다. 타자는 강지광, 투수는 김택형.

먼저, 강지광은 포스트 박재홍이라며, 30-30 클럽을 달성할 거라고 얘기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본인이 주루코치로 있었던 해에도 20-20 클럽에 가입한 선수가 박병호, 강정호 둘 뿐이였다. 결국 강지광은 2017년 2차 드래프트 때 SK 와이번스로 투수로 전향하게 된다. 그리고, 2군을 씹은 선수를 돌연 투수 전향시켰다는 점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임병욱의 경우, 포스트 이병규라고 했으나, 절망적인 Contact%과 K%를 보면 어디서 이병규를 본건지 의문이 든다.[62] 이래서 붙여진 별명이 임군딱.[63] 그나마 다른 양아들에 비해서 좀 나은 것은, 좋은 수비와 타격에서 아름다운 한 달이라도 보여준 적은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제는 또 내구성이 문제.

김택형은 포스트 양현종이라고 했으나, 입단 후인 2015년 5월 7일 상무 상대로 선발로 0.1이닝 3피안타 4볼넷 7실점 5자책점 ERA 33.75를 찍고 화려하게 불을 지르며, 패한 적이 있었다. 2군에서도 먹히지 않는데, 1군에서 먹힐 리가.. 15, 16시즌 7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부상을 당했다. KIA 타이거즈김기태 감독이 노망주인 김주형을 동행하면서 16,17 시즌 동안 내내 비판을 받고 있었던 것처럼 염경엽의 김택형도 이런 식이였다. 극도로 부진함에도 불구하고, 1군 엔트리에 계속 등록이 되어있었다가 2017년SK 와이번스김성민과 맞바꾸는 1:1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염경엽 단장은 김택형을 셋업맨을 거쳐 차기 선발감으로 키우겠다고 했는데, 홈런 파크팩터가 중간 수준이던 목동 야구장에서도 7점대였던 김택형이, 홈런 파크팩터 1위를 다투는 문학 야구장에서 어떻게 될 지는 미지수.

정회찬의 경우는 포스트 조무근이라고 했으나, 2016년 시즌이 끝나고 방출되었다. 배힘찬의 경우처럼 기대치가 제로에 가까웠던 노망주였는데 현실은 김세현 보다 기대치가 아랫급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조무근이라는 소릴 했으니... 심지어 그 조무근도 2016년, 2017년에 망했다

스캇 맥그레거로버트 코엘로를 대신하여, 육성형 용병이라며 데려왔는데, 우완 버전 피어밴드 소리를 들으면서, 안타도 많이 맞고, 지나치게 스트라이크를 꽂아넣으려고 하니 맞기도 참 제대로 얻어맞는 타입이였다. 한 마디로 무브먼트가 낙제점이였다는 소리. 90이닝을 던지면서 안타만 108개, HR/9가 1.30. 이닝이야 코엘로 보다 많이 먹어주고 경기를 빨리 이끌어가긴 했지만, 문제는 대량실점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한 경기 4피홈런 기록도 있다. LG 트윈스 상대로 약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경엽은 포스트 시즌에 맥그레거를 두 번이나 선발등판 시켰고[64], 이 결과 넥센은 포스트시즌에서 LG에게 패해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다. 여기다 시즌에서 보듯, 차포마상이 다 떼지고 팀 공격력이 약해진 상황으로 미루어 보자면, 로버트 코엘로는 불펜 과부화를 초래했지만, 맥그레거는 확실히 역전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이 맞아나간 게 문제였다.

5. 기타[편집]

  • 어린 시절 집안이 상당히 부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무원 출신의 아버지는 광주지역의 유지였다고 한다. 후술하게 될 그만의 독특한 스트레스 해소법도 부족함 없이 자라난 어린 시절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야구계의 대표적인 달변가라고 한다. 욕도 아주 걸쭉하다 카더라 그런 장점이 있어서인지 선수시절의 미미한 성적을 뒤로 하고 프런트에서 경험을 쌓았고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스카우터로써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의 이런 면은 감독 취임후 인터뷰들에서도 나왔는데, 체육인답지 않은 깔끔한 인터뷰로 여론을 되돌렸다. 야구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염경엽은 대기업 본사 면접도 가볍게 통과할 거라고 감탄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인터뷰를 보면 대단히 언변이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공항 패션 종결자. 심지어 패션센스도 뛰어나다 사장은 말빨로 통일도 시킬거 같은 사람이고, 감독은 말빨로 사람의 마음을 잡는다. 다만 이런 장점이 오히려 LG 시절 파벌을 만들었다는 오해와 루머로 이어진 것도 사실이다. 넥센의 수장으로써 성적으로 보여주기만 한다면 말뿐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고, 결국 히어로즈를 창단 후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킴으로서 그 말을 증명해내었다. 하지만 2014년 시즌에 인터뷰 스킬이 장난 아닌 감독자신에겐 흑역사였던 팀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그 다음해에는 키가 큰 꺽다리 감독님비룡군단의 감독으로 등장했는데. 하지만 인터뷰에서 '어떤'을 너무 많이 써서 한편으론 네타거리가 되었다(...).

  • KIA 타이거즈김기태 감독과는 충장중-광주일고 동기로 절친이다.[65] LG 트윈스 시절 김기태 감독이 취임직후 수석코치를 제안했으나 인터넷에 퍼진 파벌설을 알고 있던 염경엽은 '더이상 오해를 사기 싫다'면서 거절하고 히어로즈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김기태의 발언에 의하면, 선수시절 김기태는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야타족'야타준족이라며 염경엽을 놀렸다고 한다. 기사 내용 대로, 술 안 먹고도 잘 놀려면 애주가의 몇배 노력이 필요하기에 더욱 놀라움 그 자체.

  • 고려대 선후배에 같은 팀 동료였던 김경기SK 와이번스 2군 감독과 처남-매제 관계다. 염경엽의 아내가 김경기의 사촌동생인 것.[66] 김경기가 둘을 서로 소개해 결혼까지 이르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SK 와이번스가 2016년 10월 트레이 힐만 감독을 영입하고 팀 체질을 개선시키는 과정에서 김경기 前 감독이 해임되는 바람에 두 사람이 같은 팀의 단장과 현장 지도자로서 활동하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 선수, 구단 프런트 팀장, 코치, 감독, 단장직까지 모두 경험한 몇 안되는 야구인이기도 하다.[67] 어떻게 보면 모 구단 어떤 노장보다 더 프런트 친화형 감독[68]이라고 볼 수도 있다.

  • 2014 시즌 기준으로 한국프로야구의 팀들의 감독 중 LG의 양상문 감독과 더불어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어보지 않았던 감독이라고 한다. kt나 고양까지 포함해서.[70]

  • 2015년 시즌 기준으로 한국프로야구 팀 감독 중 롯데의 이종운 감독과 더불어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과 접점이 없다. 김성근 감독이 태평양 돌핀스 감독으로 재직한 적 있었지만, 정작 염경엽은 1991년 시즌에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했다.[71][72]

  • 2014년 미디어데이에 따르면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공항패션 종결자(패셔니스타)의 비결 아내와 딸이 좋아합니다. 실제로, 골초지만[73]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어 음주를 못하는 그의 체질상, 주로 넥센의 토종투수들이 등판한 다음날스트레스가 폭발할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매장에서 옷 고르는 재미로 산다고.

  • 2014년 5월 10일 있었던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 4번 타자도 아닌 주제에 타석에 늦게 들어와서 흐름이 깨졌다"며 당시 타석에 있었던 최경철을 비난했고, 경기 당일에는 빨리 들어가라며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이 일로 최경철은 "국가대표 4번 타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 2014년 5월 21일 한화전을 앞두고 전날 경기에서 있었던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이 화제가 되자 오랜만에 혜택을 보았다는 발언을 하여 한화 팬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74]

  • 2014년 8월 6일 말단 대리시절 염경엽을 추억하는 기사가 났다. 기사

  • 2014년 10월 2,3일 베이스볼긱 인터뷰에서 "프런트가 좋은 재료를 공급하면 감독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게 역할"이라고 하여 염쉐프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기사 일본의 이분도 비슷한 컨셉을 갖고있다

  • 2014년 10월 27일 플레이오프 시작 직전의 기사에 의하면,'몽인'(夢人) 염 감독은 잠들면서 무의식 중에서도 야구 생각을 하는데, 꿈결에 경기중에 차마 못했던욕을 많이 쏟아내어 결국 기상 직후에 아내에게 '욕 좀 그만 하라'며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 201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이 확정되자 인터뷰 도중 결국 눈물을 보였다. 1994년에는 인천에서 우셨고 1996년에는 이 곳에서 울었는데...... 그는 또 다시 이 곳에서 울었다.[75]

  • 2014년 11월 23일자 한국일보 인터뷰에 의하면 아버지가 동생뻘이자, 고교 후배이기도 했던 이종범과 많이 비교했단다.[76] 김기태와 이종범은 그와 함께 자란 사이라고. 하지만 염갈량은 선수시절에는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하단의 문화일보 인터뷰에서는 아버지께서 종범이는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너는 매일 잠만 자냐고 혼내셨다고. 결국 1997년 백업 요원으로 밀려나서야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염감은 백업 밀려나고 정신차려서 감독으로 각성하셨는데 이 포수는 밀려나고도 여태 정신 못차리는듯

  • 2014년 11월 28일자 문화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딸 염아란 양이 동덕여자대학교 연극영화과에 합격했다고 한다. 이미 씨스타 등이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예비 연예인'(연습생)이라고. 만약 정식으로 연예인이 된다면 넥센-화성 감독이 전부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진풍경을 볼 수도 있다. 실제로도 연예계 진출 관련해서 유이에게 종종 조언을 듣는다고. 그럼 염 감독님의 딸이 시구를 하고 김 감독님의 딸이 시타를 하는 기회가 생길까요? 하지만 유이가 시구하러 나오는 날은 졌다고 보는게 좋다 그리고 유이아빠SK로 갔지만, 자신도 SK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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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글라스 카리스마가 굉장한데 바로 맨 위사진에 BJ우마이를 닮은 듯한 선량한 얼굴이 선글라스만 끼면 윗 사진처럼 무지 딱딱하고 카리스마 있는 외모로 변한다. 박통 생각난다.또 다른 착용 사진

  • 우주소녀의 멤버 보나와 부녀지간이라는 썰이 있었지만 성이 달라 일단락 되었다. 근데 좀 닮았는데...

6. 패션[편집]

야구 감독 중에서는 옷을 정말 잘 입는다. 마르고 날씬한 체형이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옷쇼핑으로 풀 정도로 패션에 일가견이 있다. 한 번 가면 풀릴 때까지 지르신다는 감독님의 위엄.

파일:OAeGItY.jpg
2014년 11월 18일 시즌 MVP 및 타이틀홀더 시상식에 참석했을 때의 패션 꽃셔틀이 옷을 저리 잘 입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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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일 야구인 골프대회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 그 옆의 한화 김광수 코치, 삼성 김용국 코치의 평범한 점퍼 차림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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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조아제약 시상식에 참석한 염감의 패션. 하지만 서 있는 위치는 마치 조폭 조뱀의 똘마니 참모처럼 보인다는 것이(...) 왜 거기 서있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저 사람 선수 시절 타율이 어땠더라??[79]

파일:FgSEKjA.jpg
과거 주간야구잡지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도 있었다. 이 때 이 분의 별명이 톰 크루즈라니... 맙소사.

이런 기사도 있고, 이 것으로 패션센스 종결자 확정. 그 와중에 장민재 패션은 답이 없다

7. 역대 감독 성적[편집]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2013

넥센 히어로즈

128

72

54

2

3위

4위[80]

2014

128

78

48

2

2위

준우승

2015

144

78

65

1

4위

4위

2016

144

77

66

1

3위

3위

총계

544

305

23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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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3월 1일[2] 법학과 (1987학번)[3] 프로입단 당시에는 유격수였으나 2루수, 3루수를 본 경력도 있다.[4] 신규창단한 쌍방울 레이더스를 위한 특별우선지명이 1차 지명과 2차 지명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1991년 2차 지명의 선수 네임밸류 자체가 전체적으로 기대에 미친 편은 아니었다는 평.[5] 2016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이 확정된 직후 자진사퇴.[6] 이 시점에는 2군 매니저 경력도 포함되었다.[7]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는 태평양시절 부터 열혈 팬이자 야구사이트 파울볼에서 오랜기간 글을 연재해온 논객출신이기도 하다[8] 2001년 4월에 은퇴했던 관계로 선수로서 뛴 최후의 한국 시리즈이다.[9] 광주일고 선배로 선동열, 이강철 동기가 김기태, 그 밑으로 이종범, 이호준, 김병현, 최희섭, 강정호, 서건창 등의 선수가 있다. 게다가 서재응, 이호준, 서건창은 그와 중학교 선후배 사이.[10] 대학 졸업을 앞둔 1990년 추계대학야구 최우수선수였다.[11] 같은 태평양 소속이던 김성갑 넥센 2군 감독도 멘도사 라인으로 유명했다.[12] 이 시기가 염경엽의 선수 시절에서 그나마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타율만 따지고 보면 1998년도의 0.265가 최고였지만, 주전이 아닌 대체 선수로 출장하여 기록한 것이라서 큰 의미가 없다.[13] 이근엽은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은퇴한 후 학원 야구부 코치를 하다가, 2013년 넥센 히어로즈 2군 재활코치로 근무했다.[14] 그 이근엽도 본인의 고교 후배인 박진만이 입단하면서 설 자리를 잃은 채 1997년 시즌 후 쌍방울로 트레이드되었으나 김호의 백업으로 전락하여 1999년 시즌 후 은퇴했다[15] 외국으로 이민을 가려는 시도도 했다고 한다.[16]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린 박진만보다 염경엽의 타격이 더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염경엽은 96, 97년 백업 유격수로 출장하면서 0안타에 그쳤다. 그나마 박진만은 데뷔 시즌인 전해 2할 8푼은 쳤고, 김재박의 살인적인 펑고와 특타를 받고 99년부터 타격에도 눈을 뜬다.[17] 상대는 해태 타이거즈였고 장소는 광주 무등야구장.[18] 이 시점에서는 이미 태평양 돌핀스의 매각이 최종적으로 확정된 상황이었다. 태평양 돌핀스 구단이 현대그룹으로 매각된다는 소식이 확정 발표된 것은 1995년 8월 31일이었다.[19] 중간에 98년과 00년에 2할 6푼을 기록했지만 규정타석 미달이다. 게다가 선수 시절에 규정타석을 채운 것은 1994년이 유일하다.[20] 김재박 감독이 LG로 가면서 그를 따르던 코치들도 거의 같이 LG를 간 바람에, 땜빵을 했다고 봐도 좋을 수준이다.[21] 현대에 있을 때 처음에 했던 것이 스카우트 자리였다. 염경엽의 스카우트 자질은 국내에서 가장 1순위였고 메이저리거를 많이 데려온 LG나 삼성 스카우트들보다 뛰어난 인재라고 평가를 받았다.[22] 염경엽 전 코치가 운영팀장으로 승진했음을 알리는 기사들.[23] KBS 2TV 천하무적 야구단사이판 전지훈련 당시 수비코치로도 활약한 바 있다. 영상 참조.[24] 정확히 말하면 2009년 9월에 임명되었다. 박종훈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 바로 코칭 스태프 인선이 이뤄진 것.[25] 파벌설 자체는 박종훈이 부임한 2009년 후반부터 슬슬 돌기 시작했다. 염경엽이 코치로 합류한 게 이 시점이다.[26] 친구인 LG 김기태 감독이 수석코치를 제안했으나 위에서 서술한 파벌설 논란 때문에 수코를 거절하고 넥센으로 자리를 옯겼다. 두산에서도 적극적으로 제안이 왔었다고 한다.[27]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시즌이던 2007년 당시 감독은 김시진이었고, 염경엽이 코치로 있었다. 이때의 인연이라 봐도 될 정도. 또한 김시진이 태평양 투수 코치를 했을 때부터 10년 넘게 한 지붕 아래서 지내왔던 사이라, 오히려 인연이 아예 없는 게 더 이상하다.[28] 앞에 언급된 것처럼 2008년도에 염경엽이 LG로 간 이유가 이장석의 행보에 불만을 가졌기 때문에 이장석 입장에서도 살짝 껄끄러웠을 것이다.[29] 훗날 2014년 KS 이후 넥센 특집 방송에서 이숭용이 말하길 박진만 때문에 주전에서 밀렸는데도 박진만에게 아낌없이 조언하고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며 감명받았다고.[30] 다만 심재학을 주루코치로 임명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염경엽 본인인 것을 감안하면...... 악덕 감독이다! 악덕 감독이야!! 코치를 조진다는 말이 왠지 농담이 아닌 것 같아 보인다. orz[31]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허문회 타격코치 영입 등으로 이 루머는 거의 낭설로 굳혀졌다.[32] 염경엽 감독 본인의 말대로다.[33] 실제 인터뷰 영상에서 이 호텔의 이름이 두 번 언급되었다. 넥센에서 구단 대표와 감독이 만나는 지점인 듯.[34] 그런데 코치만 빼가는 것이 아니었다. 박병호와 강정호가 효과를 봤다고 해서 넥센의 배팅볼 투수인 손재윤을 빼오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한술 더 떠서 외야수 장기영의 트레이드까지 요청했다고 한다.[35] 한국야구 최초로 3년째 통합 1위를 기록한 류중일 감독의 경우, 장점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선수들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관리야구인데, 염감독의 체력놀이와 기본적인 컨셉은 비슷하다.[36] 정확히 말하면 투수교체 타이밍이 어느날은 신의 한수였다가 어느날은 납득을 할수 없는 타이밍을 보여주는 식의 롤러코스터를 자주타는 문제를 말한다. 특히 외국인 선발투수가 출전했을 때 그 투수가 부진하더라도 믿고 이닝을 맡겨 도리어 더 안 좋은 상황을 만드는 경우가 잦다.[37] 2015년의 이해할 수 없던 기용은 빈약한 국내 투수 자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일단 신재영이 안정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면서, 불펜 가용 자원이 늘어났다. 필승조의 위력은 약화됐으나, 양적으로는 더 풍부해졌다. 가비지 이닝 소화하려고 필승조를 올릴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우승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 허무하게 패해 구단주인 이장석 성적에 압박이 컸던 이유도 있다. 실제로 이장석은 공공연하게, 우승을 노린다고 말하였다. 2015년도 강정호의 이탈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전력은 나쁘지 않았으나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예견된 상황이였고 손승락, 유한준 등 FA로 풀릴 선수들의 향후는 불투명했으며 서건창의 부상 등 악재도 있었다. 그렇기에 더 성적을 내려는 조바심에 필승조를 심각할 정도로 굴리다가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신재영은 당시 군 복무 중이었다.[38] 아니 애초에 불가능했다. 계약 기간이 2017년까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자진 사퇴했기 때문에 규정(감독 · 코치 계약서 제6조)에 따라 1년 동안은 어느 팀으로도 갈 수 없다.[39] 다만 트레이드를 하지 않았으면 노수광의 자리에 이명기가 있었을 수 있으며, 이홍구와 이성우의 자리는 김민식이 확고히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이명기가 트레이드 이후 커리어하이를 찍은 것은 변수로 작용한 것이 맞으나 김민식은 이미 확고한 1군 포수였으며, 트레이드 이후 기아에서 이를 확실히 입증해보였다. 그러나 2017시즌 김민식의 WAR은 마이너스다. 말이 좋아 주전이지 주전으로 쓰는 것 자체가 팀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이야기다.[40] 팀 단위를 기준으로 보면 LG 트윈스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는 강하거나 내지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나머지 팀들에겐 모두 4점대 후반 이상의 ERA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중 KIA 타이거즈NC 다이노스를 상대로는 두 자릿수 ERA를 기록하면서 깨졌다. 그리고 9월 3일, kt wiz를 상대로도 무너지면서 9월에도 단추가 엉키는 모습.[41] 출처: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01&aid=0009617207[42] 2018년 기준으로 SK 주전 내야진 중 한국 나이로 30세 미만의 선수가 없다는 점(제이미 로맥 34세, 김성현 32세, 최정 32세, 나주환 35세)을 감안한다면 세대교체 차원에서 어린 내야수들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SK 내야수 중 미래가 유망한 20대 선수로는 박성한, 최항, 박승욱 등이 있는데 이중 박성한은 아직 미필이다.[43] 구단의 관중수입이 전부 홈팀인 SK에 귀속된다면 전액 환불이 가능하겠지만 KBO 관중수입 배분 규정상 경기장 관중수입의 28%는 원정팀이 가져가도록 돼 있어서 원정팀의 동의가 없는 한 입장료 환불은 사실상 어렵다.[44]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2014 시즌 외국인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 앤디 밴 헤켄이나 비니 로티노나 염경엽에 대해 말할 때 꼭 매니저라고 지칭한다. 특히 로티노의 경우 경기 후 한 인터뷰에서 타격코치는 "허문회 코치님"이라고 우리말로 불렀는데, 염 감독은 매니저라고 불렀다. 다만 코치라는 단어의 사용은 한국어영어나 똑같고 감독이라는 단어가 영어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님"이라는 존칭만 외우면 되는 쉬운 일이라서 썼을지도.[45] 레이스의 단장 앤드류 프리드먼은 빌리 빈 못지 않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명단장이다. 드래프트와 트레이드는 물론이고 빅게임 선발 투수를 정할 때 감독과 상의할 정도. 이런 단장이 감독을 맘에 안들어하면 말이 안 나왔을 리 없다.이젠 다저스와 컵스로 찢어짐[46] 2014년 4월 22일7월 3일의 경기결과. 공교롭게도 두 경기 모두 롯데 자이언츠와의 목동 홈 경기에서 거둔 결과.[47] 이 체력관리 이론을 설립한 사람이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이다. 이미 전신 현대시절에 김용일 트레이너를 한국 최초로 정식 코치로 임명하는 등 선수 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되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서 배우며 시작해서 김용일이 LG로 옮긴 뒤에는 이지풍이 후임 트레이닝 코치로 승진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으므로 경험이 풍부하고 팀 사정에 밝은 코치이다. 다만 아무리 좋은 이론과 훌륭한 트레이너가 있어도 감독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말짱 꽝인데, 염경엽은 이지풍 트레이너의 말이라면 거의 무조건 따를 정도로 권위를 세워준다.[48] 공교롭게도 정반대의 사례가 다른 팀에서 나왔는데, 바로...[49] 2014년 말 현재 KIA 타이거즈 믿을맨소속, 당시 넥센 소속.[50] 공교롭게도 이 세 감독 모두 염경엽의 롤모델이였다. 야인시절 김성근에게 조언을 구했다거나, 부임 초기 로이스터의 야구를 본받겠다고 했거나, 김경문과는 팀컬러도 비슷했다. 게다가 도망간 것도 김경문과 똑같다[51] 특히 제일 비난받는 것은 단기전 운영능력이다. 현대야구가 감독의 역량을 크게 안따진다지만, 메이저리그만 봐도 포스트시즌 감독의 단기전 역량은 의외로 무시하긴 힘든 요소다. 그런데 염경엽은 포스트시즌만 되면 온갖 졸전과 대첩을 양산하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잘 지는 야구를 시전한다. 나쁘게 말하면 다른 팀이 포스트시즌때 넥센 상대로 대역전극(14코시)이니 미라클(15준플)이니 운운하며 한편의 감동의 드라마를 찍을때 그 옆에서 볼것도 없이 깨져 승자를 돋보이게 하는 들러리로 전락한다. 그나마 첫 시즌인 2013년은 감독이나 선수들 모두 포스트시즌 경험이 처음이라 변명거리가 있다손쳐도, 경력이 쌓이고 리그 최강 타선을 보유했던 2014년, 2015년은 빼도박도 못한다. 2014년은 투수 싸움에서 아예 밀렸고, 2015년은 와일드카드부터 졸전을 벌이더니 조상우를 굴린 끝에 대참사를 일으켜 최종적으로 분위기를 제대로 탄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의 일등공신이 됐다. 게다가 상대는 초보감독인 김태형. 그리고 마지막 시즌인 2016년은 2년전 이겼던 양상문의 LG였음에도 본인부터 팀 분위기를 떨어트려놓고서는 전혀 납득이 안가는 선수 운용으로 대놓고 패배를 자초했다. 게다가 사퇴까지 하면서 태업의혹까지 있을 정도다. 넥센팬들 사이에서도 가을야구는 지지리도 못한다는게 중론이다. 게다가 넥센은 반등의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52] 이택근이 작전 수행 능력이 강한 선수이기도 하지만 우선 잘 쳤다. 21홈런에 OPS .912, wOBA .391을 기록하며 1~5번이 모두 쉬어가질 않았다.[53] 한화의 살려조가 없었다면 빼도막도 못하게 젊은 선수를 혹사시켰다며 욕을 들어 먹었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2015 준플레이오프서 어처구니가 없는 역전패로 되돌아왔다.[54] 실제로 최소 2000년대 이후 KBO 리그에서 투수 FA를 영입하여 성공한 사례는 2015년 두산의 장원준 영입이 거의 유일하다. 삼성의 장원삼과 미국에서 유턴한 윤석민이 희대의 먹튀 소리를 듣는걸 생각해보면 명확한 비교가 된다.[55] 다행히 기사에 언급된 조상우의 경우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선발 전환을 시도했지만, 이하 서술할 것과 관련된 다른 문제가 생겨버리고 말았다.[56] 한현희의 부상 원인을 고교 시절 이종운 감독의 혹사에서 찾는 주장이 있는데 그런 식이면 김인식과 김성근의 혹사도 상당 부분 쉴드가 가능하다. 아마 때 혹사당했으면 그걸 감안해 아껴써야 하는게 감독이다. 그리고 초년병도 아니고 4시즌을 주전으로 뛰었다.[57] 더군다나 2014 시즌과 2015 시즌 이후 각각 한 명씩이 수출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때 우승을 하지 못하면 이후 시즌을 장담할수 없는 상황이었다.[58] 예를 들어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이 송창식을 몇 번 쓰지도 않았음에도 혹사시켰다는 지적을 받는건 당시 송창식이 토미 존 수술을 마치고 몸상태가 정상이 아닌데 당겨썼기 때문이다.[59] 사실 후임자인 장정석도 도긴개긴으로 김하성을 어지간히 굴렸다. 그 결과 유격수임에도 불구하고, 수비 이닝이 3년 연속 1000+이닝을 달성하고 수비 이닝 순위도 1-2-1을 찍고 있다.[60] 실제로 이해창 같은 경우는 2군 성적은 3할 중반으로 준수했지만 툴 문제가 발목을 잡아서 방출이 된 대표적인 케이스다. 현재 kt wiz 소속으로 출장할 때의 타격 성적을 생각하면 2군 기록과 1군 기록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61] 수비가 중요하다고 끊임없이 강조했으나 히어로즈 야수와 포수들의 수비는 리그 하위권.[62] 사실상 1군 첫 시즌이던 2016년 기록을 보면 265타석에서 Contact% 64.5%, K% 30.9%. 차라리 포스트 박병호라고 했으면 그나마 납득이 갔을 정도로, LG 시절 박병호와 유사한 컨택 수준이다.[63] '임병욱은 군대가 딱이야' 의 줄임말이다.[64] 심지어 1차전 선발로 등판시켰다.[65] 분명 나이를 보면 염경엽이 1살 더 많은데 동기인 이유는 빠른 1968년 생인 염경엽 감독은 학창 시절에 건강상의 이유로 1년 유급을 하였고(즉, 원래는 1967년 생인 두산 베어스김태형 감독과 동기다.), 김기태 감독은 1969년 5월 생인데 학교를 1년 먼저 왔다. (그래서 같은 1969년생인 양준혁은 김기태를 선배라고 칭한다. 참고로 김기태와 양준혁의 생일은 겨우 3일 차이다.)[66] 김경기와 사촌 관계인 김풍기 심판위원이 염경엽 아내의 친오빠다.[67] SK 단장이 되기 전인 넥센 감독 시절 허구연이 2013년 10월 1일 MBC 야구 읽어주는 남자에서 이것을 염경엽의 장점으로 언급했다. 게다가 2014년 넥센 히어로즈를 다룬 다큐에서도 하일성이 이를 언급한다.[68] 김응용의 경우는 삼성 감독에서 물러난 뒤 사장으로서 프런트 역할을 했고, 염경엽의 경우는 스카우터 등의 실무직 역할을 했었기 때문이다. 다만 김응용은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에도 프런트와 대단히 친화적이었다.[69] MBC 일밤 출신 그 '이코노미 한의사' 맞다. 염경엽 감독은 아이스버킷 챌린지에서 그를 자신의 다음 타자로 지명하기도 했다. 항목 참조.[70] 삼성의 류중일, SK의 이만수, 롯데의 김시진, 두산의 송일수, KT의 조범현은 선수로, 고양의 김성근, 한화의 김응용, KIA의 선동열, NC의 김경문은 코치 및 감독으로 삼성에 있던 적이 있었다. 시즌 초 LG 감독을 맡았던 김기태 역시 삼성에서 뛴 경력이 있다.[71] SK의 김용희 감독은 2000년 당시 김성근 감독과 감독 - 코치/2군 감독 관계로 삼성에서 같이 활동했다. 당시 김용희가 감독이었고 김성근이 코치 및 2군 감독이었다.[72] 다만 '김성근의 돌직구 시즌2' 에서 김성근 감독에게 염경엽 감독이 조언을 구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야기가 있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73] 2014년 10월 10일자 한겨레 기사에 의하면 염경엽 감독은 원정에서는 2갑, 홈에서는 1갑 반을 피운단다. 쇼핑에 흡연 상남자[74] 다만 바로 위 건과 이 건은 모 신문사 한 곳에만 나왔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75] 참고로 1994년에 같이 울었던 사람이 현재 넥센의 2군 감독인 김성갑이다.[76] 프로필에서 보듯 염경엽은 68년생, 이종범은 70년생이다.[77] 심정수 문서의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 나온 사진의 헬멧이 바로 염경엽 감독이 만든 것이다.[78] 정회열 2군 감독이 염경엽, 김기태 감독과 같은 중/고등학교 출신이다.[79] 현역 시절 사람의 타율은 둘다 극악의 멘도사라인을 자랑했다(...). 염경엽이 현역 통산 0.195로 최저타율 1위, 조범현이 0.201로 최저타율 2위(...)로 도찐개찐. 김경문이 좋아합니다. 그런 김경문도 최악의 타자 10위다(...) 더 자세한 것은 위의 야구친구 기사 참조. 한국의 멘도사라 불리던 유이 아빠보다 못한 타율을 자랑하는 1군 감독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저 3인에 비하면 유이 아빠는 타격이 준수한 거다.[80] 페넌트레이스 4위인 두산 베어스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기 때문에 페넌트레이스 2위인 LG 트윈스, 3위인 넥센 히어로즈는 최종순위가 하나씩 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