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첼시 FC/호들 체제
최근 수정 시각:
[ 펼치기 · 접기 ]
| |||||||||||||||||||||||||||||||||||||||||||||||||||||||||||||||||||||||||||
감독 | |
코치 | |
계약 기간 | |
계약 종료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으로 인한 상호 계약 혜지) | |
주장 | |
연봉 | 미상 (감독 / 추정치) |
전술 스타일 | 킥 앤 러시 기반의 창의적인 공격 축구 ┗ 리베로의 공격 역할 부여 ┗ 3-5-2 포메이션 중용 ┗ 중원에서의 점유율 확보 및 전술적인 유연성 지향 ┗ 풀백의 공격 참여 강화 ┗ 후방 빌드업 중시 ┗ 점유율 위주의 실리적인 공격 축구 |
성적 | 157전 53승 54무 50패 (승률 33.76%) 1993-94 프리미어 리그 (14위) 1993-94 FA컵 (준우승) 1994-95 프리미어 리그 (11위) 1994-95 UEFA 컵위너스컵 (4강) 1995-96 프리미어 리그 (11위) 1995-96 FA컵 (4강) |
부임 이후 리빌딩을 진행한 호들 감독은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로부터 로베르토 디 마테오 이전 FA컵의 사나이라 불린 개빈 피콕을 영입했고,뤼트 반 니스텔로이 이전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경기 연속골을 기록하게된 마크 스테인을[1] 시즌 중반이긴 하나 스토크 시티 FC로부터 영입하였다,또한 유로 1992에서 엄청난 이변인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의 우승을 이끈 야코브 셀비에르를 영입하며 리빌딩에 박차를 가했다.방출 역시 앤디 타운센드를 아스톤 빌라 FC로 방출하였고,그레이엄 르 소 또한 블랙번 로버스 FC로 방출하였고,토니 카스타리노 또한 입지를 잃으며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떠난다.
이윽고 시즌이 시작되고 첼시는 기대완 다르게 시즌 초 어마어마한 부진에 빠지며 하향 곡선을 그린다.우선 당시 잉글랜드에서는 킥 앤 러시가 주를 이뤘는데,호들 감독또한 이를 구사하긴 했으나 당시 오래전 전술이라며 찬밥신세가 된 백3를 중용하며 당시로썬 신문물인 후방 빌드업을 실시하였는데,당시 당연하게도 뻥축구에 익숙한 선수들이 적응을 할리가 없었고 12경기에서 단 3승만 거두며 강등권까지 추락하게 되었다.그러나 선수들이 호들 감독의 선진축구에 적응하기 시작하였고 12월에 당시 첼시의 구원타자가 된 "마크 스테인"을 영입하며 첼시는 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스테인 합류 직후 스테인은 18경기에서 13골을 기록하며 첼시의 강등권 탈출에 기여했고,반니스텔루이 이전 PL 최다 경기 연속골인 7경기 연속골을 몰아치며 팀의 상승세를 도왔고,호들 감독의 전술까지 맞물리며 지난 시즌 부진했던 팀을 14위로 잔류시키며 시즌을 마무리한다.한편 리그컵에선 일찍이 4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FA컵에선 당시 미친 드라마가 펼쳐졌다. 먼저 3라운드서 당시 하부리그였던 바넷 FC와의 경기에서 첫 경기 0:0 무승부로 재경기에 돌입했고 재경기에서 4:0으로 박살내며 4라운드에 진출한다.이후 4라운드 셰필드 웬즈데이 FC와의 경기에서도 첫 경기 1:1 무승부를 기록했으나,재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5라운드로 향했다.당시 골을 넣은 개빈 피콕이 본격적으로 FA컵의 사나이라고 이름을 알린 시점이였다.이후 당시 약간의 돌풍을 이르키며 5라운드에 진출한 옥스포드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는 오랜만에 첫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면서 가볍게 6라운드로 향했다. 이후 8강에선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의 경기에서 다소 팽팽했던 경기 끝에 FA컵의 사나이 "개빈 피콕"이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넣으며 1:0으로 첼시는 무려 1970-71 시즌이후 24년만에 4강에 진출하게 된다.이후 해당시즌 2부리그 소속이였지만 돌풍을 이르킨 루턴 타운 FC와의 경기에선 또한번 개빈 피콕의 멀티골로 손쉽게 진출했다.결승전 상대는 디팬딩 챔피언이자 당시 에릭 칸토나를 중심으로한 공포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였다.경기가 시작되고 결승전인 만큼 전반전에는 오히려 첼시가 앞서는 상황이었고 개빈 피콕이 크로스바를 맞추는 등 오히려 첼시가 압박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후반전이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4:0으로 완패하며 오랜만에 유관엔 실패했다.그러나 당시 맨유가 리그 우승을 하며 오랜만에 UEFA 컵위너스컵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윽고 시즌이 시작되고 첼시는 기대완 다르게 시즌 초 어마어마한 부진에 빠지며 하향 곡선을 그린다.우선 당시 잉글랜드에서는 킥 앤 러시가 주를 이뤘는데,호들 감독또한 이를 구사하긴 했으나 당시 오래전 전술이라며 찬밥신세가 된 백3를 중용하며 당시로썬 신문물인 후방 빌드업을 실시하였는데,당시 당연하게도 뻥축구에 익숙한 선수들이 적응을 할리가 없었고 12경기에서 단 3승만 거두며 강등권까지 추락하게 되었다.그러나 선수들이 호들 감독의 선진축구에 적응하기 시작하였고 12월에 당시 첼시의 구원타자가 된 "마크 스테인"을 영입하며 첼시는 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스테인 합류 직후 스테인은 18경기에서 13골을 기록하며 첼시의 강등권 탈출에 기여했고,반니스텔루이 이전 PL 최다 경기 연속골인 7경기 연속골을 몰아치며 팀의 상승세를 도왔고,호들 감독의 전술까지 맞물리며 지난 시즌 부진했던 팀을 14위로 잔류시키며 시즌을 마무리한다.한편 리그컵에선 일찍이 4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FA컵에선 당시 미친 드라마가 펼쳐졌다. 먼저 3라운드서 당시 하부리그였던 바넷 FC와의 경기에서 첫 경기 0:0 무승부로 재경기에 돌입했고 재경기에서 4:0으로 박살내며 4라운드에 진출한다.이후 4라운드 셰필드 웬즈데이 FC와의 경기에서도 첫 경기 1:1 무승부를 기록했으나,재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5라운드로 향했다.당시 골을 넣은 개빈 피콕이 본격적으로 FA컵의 사나이라고 이름을 알린 시점이였다.이후 당시 약간의 돌풍을 이르키며 5라운드에 진출한 옥스포드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는 오랜만에 첫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면서 가볍게 6라운드로 향했다. 이후 8강에선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의 경기에서 다소 팽팽했던 경기 끝에 FA컵의 사나이 "개빈 피콕"이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넣으며 1:0으로 첼시는 무려 1970-71 시즌이후 24년만에 4강에 진출하게 된다.이후 해당시즌 2부리그 소속이였지만 돌풍을 이르킨 루턴 타운 FC와의 경기에선 또한번 개빈 피콕의 멀티골로 손쉽게 진출했다.결승전 상대는 디팬딩 챔피언이자 당시 에릭 칸토나를 중심으로한 공포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였다.경기가 시작되고 결승전인 만큼 전반전에는 오히려 첼시가 앞서는 상황이었고 개빈 피콕이 크로스바를 맞추는 등 오히려 첼시가 압박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후반전이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4:0으로 완패하며 오랜만에 유관엔 실패했다.그러나 당시 맨유가 리그 우승을 하며 오랜만에 UEFA 컵위너스컵에 진출하게 되었다.
두번째 시즌이 시작되고 지난 시즌엔 즉전감을 영입했다면,이번 시즌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시작한다.그는 "노장과 유망주"의 공존을 중시하며 아스날 FC의 전설적인 미드필더인 데이비드 로캐슬을 당시 맨체스터 시티 FC로부터 영입한다.당시 잉글랜드의 최고의 선수이자 유망주였던 만큼 그의 해당시즌 비전이 잘 보였던 영입이였으며,찰튼 애슬레틱 FC에서 촉망받던 에이스이자 유망주였던 스콧 민토를 영입하였고,화룡정점인 왓포드 FC로부터 스트라이커 폴 펠란을 클럽레코드인 200만 파운드에 영입하며 유망주 위주의 영입 정책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당시 팀 내의 베테랑들과의 조화를 추구했다.방출은 비교적 조용했는데 당시 팀의 유망주였던 '닐 슈퍼리'가 폴 펠런의 영입으로 시즌 중반 왓포드 FC로 떠난걸 제외하면 조용한 방출을 진행했다.
시즌이 시작되고 지난 시즌과는 다르게 시즌 초 3연승을 달리며 이번 시즌엔 다르나 싶었으나 이후 거짓말 같이 6연패를 하며 다시 하향 곡선을 그렸다.시즌 중반 연승을 하며 다시 재기를 노렸으나 다시 부진하면서 부진한 경기력이 계속 이어지며 무승부가 많아졌고 승점 드랍이 높아져 계속 추락하게 된다.설상가상으로 리그컵과 FA컵 역시 리그컵은 3라운드에서 FA컵은 4라운드에서 탈락하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던 그때 마지막 희망인 컵위너스컵에서 예상외의 선전을 하기 시작한다. 1라운드 체코의 "빅토리아 지즈코프"를 원정다득점으로 꺽으며 2라운드에 진출한다. 2라운드에서도 FK 아우스트리아 빈를 상대로 1차전 무승부 후 원정다득점으로 다시한번더 꺽으며 8강에 진출했고 8강에선 클뤼프 브뤼허 KV를 상대로 1차전 0:1로 패배하였으나,2차전에서 2:1로 승리하며 원정다득점으로 또한번 4강에 진출했다. 4강전 레알 사라고사전에선 1차전 3:0으로 대패하였으나,2차전 3:1로 승리하였으나,원정다득점에서 밀리며 4강에서 무릎을 꿇는다.결국 리그에선 11위로 마무리하고 아쉽게 컵위너스컵에선 4강에서 탈락하며 아쉬운 시즌을 마무리한다.
시즌이 시작되고 지난 시즌과는 다르게 시즌 초 3연승을 달리며 이번 시즌엔 다르나 싶었으나 이후 거짓말 같이 6연패를 하며 다시 하향 곡선을 그렸다.시즌 중반 연승을 하며 다시 재기를 노렸으나 다시 부진하면서 부진한 경기력이 계속 이어지며 무승부가 많아졌고 승점 드랍이 높아져 계속 추락하게 된다.설상가상으로 리그컵과 FA컵 역시 리그컵은 3라운드에서 FA컵은 4라운드에서 탈락하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던 그때 마지막 희망인 컵위너스컵에서 예상외의 선전을 하기 시작한다. 1라운드 체코의 "빅토리아 지즈코프"를 원정다득점으로 꺽으며 2라운드에 진출한다. 2라운드에서도 FK 아우스트리아 빈를 상대로 1차전 무승부 후 원정다득점으로 다시한번더 꺽으며 8강에 진출했고 8강에선 클뤼프 브뤼허 KV를 상대로 1차전 0:1로 패배하였으나,2차전에서 2:1로 승리하며 원정다득점으로 또한번 4강에 진출했다. 4강전 레알 사라고사전에선 1차전 3:0으로 대패하였으나,2차전 3:1로 승리하였으나,원정다득점에서 밀리며 4강에서 무릎을 꿇는다.결국 리그에선 11위로 마무리하고 아쉽게 컵위너스컵에선 4강에서 탈락하며 아쉬운 시즌을 마무리한다.
세번째 시즌이 시작되고 스타선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호들 감독은 스타 선수를 영입한다. 우선 당시 유럽의 마라도나로 통했던 루드 굴리트를 영입하는 충격적인 행보를 보인다.[2]또한 셰필드 웬즈데이 FC에서 단 페트레스쿠를 영입하고,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마크 휴즈를 영입하더니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테리 펠란을 영입하며 정점을 찍는다.그러나 영입과 달리 방출은 진행하지 않았다.
시즌이 시작되고 "굴리트 메직"이 통하며 반등한다.개막전 에버튼 FC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좋게 시작했고,팬들은 세계적인 스타 루드 굴리트를 보기 위해 스탬퍼드 브리지를 찾았다.또한 당시 영입한 마크 휴즈 역시 좋은 활약을 보이며 반등하기 시작했다.지난 2시즌관 달르게 시즌 중반까지도 마크 휴즈와 존 스펜서의 투톱이 통하며 반등을 이뤄냈다. 또한 토트넘 홋스퍼 FC를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3:2로 꺽는 등 계속해서 반등했었다.사실 무승부가 많아지곤 있었으나,경기력은 그래도 괜찮아지곤 있었고,FA컵에서도 순항했다.FA컵에선 3라운드 그림즈비 타운 FC과의 경기에서 첫경기 0:0 무승부를 거뒀으나,재경기에서 3-1로 꺽으며 4라운드에 진출했다.4라운드에선 QPR과의 경기에서 첫경기에서 2:1로 꺽으며 5라운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전에선 1차전 무승부를 거뒀으나,2차전 굴리트와 마크 휴즈의 골로 2:2 무승부를 이끌어내고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는 이변을 만들며 8강에 진출했다.8강에선 윔블던 FC를 댄 페트레스쿠의 골로 4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4강전에선 당시 도메스틱 더블을 달성한 에릭 칸토나가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였다.경기가 시작되고 루드 굴리트의 헤더골로 앞서가는듯 했으나,이후 2골을 내리 실점하며 탈락했다.한편 리그에서도 좋았던 흐름은 어디가고 시즌 후반 호들 감독의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선임이 유력해지자 동기부여를 잃은 선수들은 무너지기 시작했고,4월달에는 5경기에서 1승만 하는 등 부진한 활약으로 11위로 마무리했고,호들 감독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호들 체제는 막을 내렸다.
시즌이 시작되고 "굴리트 메직"이 통하며 반등한다.개막전 에버튼 FC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좋게 시작했고,팬들은 세계적인 스타 루드 굴리트를 보기 위해 스탬퍼드 브리지를 찾았다.또한 당시 영입한 마크 휴즈 역시 좋은 활약을 보이며 반등하기 시작했다.지난 2시즌관 달르게 시즌 중반까지도 마크 휴즈와 존 스펜서의 투톱이 통하며 반등을 이뤄냈다. 또한 토트넘 홋스퍼 FC를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3:2로 꺽는 등 계속해서 반등했었다.사실 무승부가 많아지곤 있었으나,경기력은 그래도 괜찮아지곤 있었고,FA컵에서도 순항했다.FA컵에선 3라운드 그림즈비 타운 FC과의 경기에서 첫경기 0:0 무승부를 거뒀으나,재경기에서 3-1로 꺽으며 4라운드에 진출했다.4라운드에선 QPR과의 경기에서 첫경기에서 2:1로 꺽으며 5라운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전에선 1차전 무승부를 거뒀으나,2차전 굴리트와 마크 휴즈의 골로 2:2 무승부를 이끌어내고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는 이변을 만들며 8강에 진출했다.8강에선 윔블던 FC를 댄 페트레스쿠의 골로 4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4강전에선 당시 도메스틱 더블을 달성한 에릭 칸토나가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였다.경기가 시작되고 루드 굴리트의 헤더골로 앞서가는듯 했으나,이후 2골을 내리 실점하며 탈락했다.한편 리그에서도 좋았던 흐름은 어디가고 시즌 후반 호들 감독의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선임이 유력해지자 동기부여를 잃은 선수들은 무너지기 시작했고,4월달에는 5경기에서 1승만 하는 등 부진한 활약으로 11위로 마무리했고,호들 감독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호들 체제는 막을 내렸다.
호들 체제는 비록 무관이었으나,첼시가 호들 부임 전 2부리그에 강등 되는 등 암흑기를 겪었었지만,그 암흑기를 끊고 구단의 중흥기를 만드는 발판을 마련했으며,무엇보다 굴리트를 대리고 오며 첼시의 역사를 바꾸는 등 훗날 21세기 첼시 FC의 황금기의 시발점이된 감독으로 평가 받는다.
정리하면 호들 체제는 아쉬웠고 리그에선 더더욱 아쉬웠으나,구단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감독으로 평가 받는다.
정리하면 호들 체제는 아쉬웠고 리그에선 더더욱 아쉬웠으나,구단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감독으로 평가 받는다.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