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 엔초 마레스카
- 1980년 출생
- 1998년 데뷔
- 살레르노 도 출신 인물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선수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2017년 은퇴
-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은퇴, 이적
- 유벤투스 FC/은퇴, 이적
- 볼로냐 FC 1909/은퇴, 이적
- 피아첸차 칼초/은퇴, 이적
- ACF 피오렌티나/은퇴, 이적
- 세비야 FC/은퇴, 이적
- 올림피아코스 FC/은퇴, 이적
- 말라가 CF/은퇴, 이적
- UC 삼프도리아/은퇴, 이적
- 팔레르모 FC/은퇴, 이적
- 엘라스 베로나 FC/은퇴, 이적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코치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감독
- 파르마 칼초 1913/역대 감독
- 레스터 시티 FC/역대 감독
- 첼시 FC/역대 감독
- 맨체스터 시티 FC/역대 감독
-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감독
- UEFA 컨퍼런스 리그 우승 감독
- 맨체스터 시티 FC/역대 스태프
Manchester City Football Clu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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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
출생 | |||||
국적 | |||||
신체 | |||||
직업 | |||||
주발 | 오른발 | ||||
소속 | 선수 | AC 밀란 (1991~1994 / 유스) 칼리아리 칼초 (1994~1998 / 유스)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1998~2000) 유벤투스 FC (2000~2004) → 볼로냐 FC 1909 (2000~2001 / 임대) → 피아첸차 칼초 (2002~2003 / 임대) ACF 피오렌티나 (2004~2005) 세비야 FC (2005~2009) 올림피아코스 FC (2009~2010) 말라가 CF (2011~2012) UC 삼프도리아 (2012~2014) US 팔레르모 (2014~2016) 엘라스 베로나 FC (2016~2017) | |||
감독 | 아스콜리 칼초 (2017 / 수석 코치) 세비야 FC (2017~2018 / 수석 코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8~2019 / 수석 코치) 맨체스터 시티 FC EDS (2020~2021)[3] 파르마 칼초 1913 (2021) 맨체스터 시티 FC (2022~2023 / 코치) 레스터 시티 FC (2023~2024) 첼시 FC (2024~2026)[4] 맨체스터 시티 FC (2026~ ) | ||||
SN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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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에 AC 밀란 유스팀에 들어가 축구를 시작한 마레스카는 3년 후 칼리아리 칼초 유스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프로 데뷔는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에서 하였는데, 1998년 9월 20일 브래드포드 시티 FC와의 홈경기에서 자신의 첫 프로 무대를 밟았다.
2000년 1월, 43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유벤투스 FC에 합류하면서 잉글랜드 무대를 떠나 다시 이탈리아로 복귀하게 되었는데 당시 기록한 430만 파운드의 이 이적료는 웨스트브롬의 클럽 레코드 판매 기록이었다. 이 시즌이 끝날 때까지 유벤투스에서 단 한 번의 리그 출전만을 기록하였다. 이어지는 유벤투스와의 세 시즌 동안 볼로냐 FC와 피아첸차 칼초로 임대를 떠났고 2002-03 시즌 피아첸자 칼치오 임대 시절에 9골을 넣는 등 괜찮은 활약을 펄쳤으나 팀은 아쉽게도 강등을 당했다.
이전 시즌에는 유벤투스 소속으로 당시 토리노 FC를 상대로 한 데르비 델라 몰레 경기에서 귀중한 동점골도 기록하였으나, 당시 득점한 이후 행한 당시 토리노의 레전드 마르코 페넌트의 셀레브레이션 황소뿔을 따라 한 것이 잠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황소는 토리노의 로고에도 있는 구단의 상징이기 때문에 논란이 된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여름, ACF 피오렌티나는 파브리치오 미콜리, 조르조 키엘리니와 함께 1300만 유로에 마레스카를 영입하였다. 9월 12일, 1:0으로 패한 AS 로마와의 경기가 그의 피오렌티나 데뷔전이었다.
시즌 종료 후, 피오렌티나는 리그 강등을 겨우 면하는 순위를 기록하였다.
2005년 7월 16일, 계약 기간 4년에 이적료 250만 유로로 마레스카는 스페인 라리가 소속의 세비야로 이적했다. 마레스카는 빠르게 팀의 주축 선수로 떠오르게 되었는데, 라리가 첫 시즌 동안 리그 29경기에 출전해 8골을 기록하였으며, 4:0으로 승리한 UEFA컵 결승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선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이 경기 MOM에 선정되기까지 하였다. MOM을 기록하며 받은 상금인 1만 유로는 산 후안 데 디오스 병원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2007년 다시 한 번 UEFA컵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며, 글래스고의 햄던 파크에서 열린 RCD 에스파뇰과의 결승전에서 45분을 뛰었고, 세비야는 성공적으로 UEFA컵 디펜딩 챔피언 자리를 지키게 되면서 2년 연속 UEFA컵 우승을 달성했다. 마레스카는 지난 3년간 세비야에서 평균 22번의 리그 경기를 출전하였다.
2009년 7월 13일, 마레스카는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 FC와 3년 계약을 맺으며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라리사 FC를 상대로 한 그리스 슈퍼 리그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하면서 2:0 승리를 거두었으며, 09-10 시즌 동안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그 2등을 기록하였다.
2010년 8월 올림피아코스와 계약을 종료한 이후, 경기 감각 유지를 위해 자신의 전 소속팀 피오렌티나에서 훈련을 한 마레스카는 12월 7일 말라가 CF와 논의 중이라는 것이 드러났으며 메디컬 테스트 이후 2012년 6월까지 말라가와 계약했다.
마레스카는 2011년 1월 8일,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홈경기에서 57분을 뛰며 자신의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5월 7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선 한 골까지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2011-12 시즌 동안 19경기에 출전(선발 9경기, 2골)하였으며, 말라가는 4위를 기록하게 되면서 팀 역사상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까지 따냈다.
말라가와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직전인 2012년 7월 2일 말라가와 1년 재계약을 맺었으나, 8월 30일 UC 삼프도리아로 자유 계약으로 이적하면서 7년 만에 이탈리아로 복귀하였다.
마레스카는 2012년 11월 4일, 1:2로 패한 아탈란타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2호골을 기록하였다. 새로운 시즌 전반기 동안 거의 출전하지 못한 그는 2014년 1월 세리에 B로 가는 것에 동의하였으며 당시 플레이메이커를 필요로 하고 있던 리그 선두 US 팔레르모에 합류하였다. 팀의 우승에 기여한 이후, 급성 맹장염으로 인해 2014년 9월 15일 수술을 받게 되었으며 이듬해 1월에는 2016년까지 팔레르모와 재계약하는 데 성공한다.
2016년 5월 15일, 팔레르모 소속으로 마지막 경기일에 마레스카는 홈구장에서 엘라스 베로나 FC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며 3:2로 승리를 거뒀다. 이번 그의 득점은 팀을 강등에서 구해내는 데 기여했다. 9월 자유 계약 선수 신분으로 당시 강등 당한 엘라스 베로나에 합류했다.
2017년 1월 13일, 베로나와의 계약을 해지한 마레스카는 자신의 37번째 생일인 2월 10일 20년에 걸친 축구 선수 인생을 마치고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퇴 소식을 전하였다.
프로 데뷔는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에서 하였는데, 1998년 9월 20일 브래드포드 시티 FC와의 홈경기에서 자신의 첫 프로 무대를 밟았다.
2000년 1월, 43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유벤투스 FC에 합류하면서 잉글랜드 무대를 떠나 다시 이탈리아로 복귀하게 되었는데 당시 기록한 430만 파운드의 이 이적료는 웨스트브롬의 클럽 레코드 판매 기록이었다. 이 시즌이 끝날 때까지 유벤투스에서 단 한 번의 리그 출전만을 기록하였다. 이어지는 유벤투스와의 세 시즌 동안 볼로냐 FC와 피아첸차 칼초로 임대를 떠났고 2002-03 시즌 피아첸자 칼치오 임대 시절에 9골을 넣는 등 괜찮은 활약을 펄쳤으나 팀은 아쉽게도 강등을 당했다.
이전 시즌에는 유벤투스 소속으로 당시 토리노 FC를 상대로 한 데르비 델라 몰레 경기에서 귀중한 동점골도 기록하였으나, 당시 득점한 이후 행한 당시 토리노의 레전드 마르코 페넌트의 셀레브레이션 황소뿔을 따라 한 것이 잠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황소는 토리노의 로고에도 있는 구단의 상징이기 때문에 논란이 된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여름, ACF 피오렌티나는 파브리치오 미콜리, 조르조 키엘리니와 함께 1300만 유로에 마레스카를 영입하였다. 9월 12일, 1:0으로 패한 AS 로마와의 경기가 그의 피오렌티나 데뷔전이었다.
시즌 종료 후, 피오렌티나는 리그 강등을 겨우 면하는 순위를 기록하였다.
2005년 7월 16일, 계약 기간 4년에 이적료 250만 유로로 마레스카는 스페인 라리가 소속의 세비야로 이적했다. 마레스카는 빠르게 팀의 주축 선수로 떠오르게 되었는데, 라리가 첫 시즌 동안 리그 29경기에 출전해 8골을 기록하였으며, 4:0으로 승리한 UEFA컵 결승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선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이 경기 MOM에 선정되기까지 하였다. MOM을 기록하며 받은 상금인 1만 유로는 산 후안 데 디오스 병원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2007년 다시 한 번 UEFA컵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며, 글래스고의 햄던 파크에서 열린 RCD 에스파뇰과의 결승전에서 45분을 뛰었고, 세비야는 성공적으로 UEFA컵 디펜딩 챔피언 자리를 지키게 되면서 2년 연속 UEFA컵 우승을 달성했다. 마레스카는 지난 3년간 세비야에서 평균 22번의 리그 경기를 출전하였다.
2009년 7월 13일, 마레스카는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 FC와 3년 계약을 맺으며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라리사 FC를 상대로 한 그리스 슈퍼 리그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하면서 2:0 승리를 거두었으며, 09-10 시즌 동안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그 2등을 기록하였다.
2010년 8월 올림피아코스와 계약을 종료한 이후, 경기 감각 유지를 위해 자신의 전 소속팀 피오렌티나에서 훈련을 한 마레스카는 12월 7일 말라가 CF와 논의 중이라는 것이 드러났으며 메디컬 테스트 이후 2012년 6월까지 말라가와 계약했다.
마레스카는 2011년 1월 8일,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홈경기에서 57분을 뛰며 자신의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5월 7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선 한 골까지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2011-12 시즌 동안 19경기에 출전(선발 9경기, 2골)하였으며, 말라가는 4위를 기록하게 되면서 팀 역사상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까지 따냈다.
말라가와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직전인 2012년 7월 2일 말라가와 1년 재계약을 맺었으나, 8월 30일 UC 삼프도리아로 자유 계약으로 이적하면서 7년 만에 이탈리아로 복귀하였다.
마레스카는 2012년 11월 4일, 1:2로 패한 아탈란타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2호골을 기록하였다. 새로운 시즌 전반기 동안 거의 출전하지 못한 그는 2014년 1월 세리에 B로 가는 것에 동의하였으며 당시 플레이메이커를 필요로 하고 있던 리그 선두 US 팔레르모에 합류하였다. 팀의 우승에 기여한 이후, 급성 맹장염으로 인해 2014년 9월 15일 수술을 받게 되었으며 이듬해 1월에는 2016년까지 팔레르모와 재계약하는 데 성공한다.
2016년 5월 15일, 팔레르모 소속으로 마지막 경기일에 마레스카는 홈구장에서 엘라스 베로나 FC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며 3:2로 승리를 거뒀다. 이번 그의 득점은 팀을 강등에서 구해내는 데 기여했다. 9월 자유 계약 선수 신분으로 당시 강등 당한 엘라스 베로나에 합류했다.
2017년 1월 13일, 베로나와의 계약을 해지한 마레스카는 자신의 37번째 생일인 2월 10일 20년에 걸친 축구 선수 인생을 마치고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퇴 소식을 전하였다.
- 유벤투스 FC (2000~2004)
- 세리에 A: 2001-02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3
- 세비야 FC (2005~2009)
- 코파 델 레이: 2006-07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07
- UEFA컵: 2005-06, 2006-07
- UEFA 슈퍼컵: 2006
- 로베르토 데 제르비와는 30년 지기일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한다.[5] 이후 주앙 페드루 영입 사가 당시, 선수에 대한 활용법이나 선수의 유형에 대해서 전화를 통해 선수에 대한 질문을 직접 건네기도 했을 정도.
- 완벽주의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본인의 철칙 중 하나가 훈련이 반드시 역동적이어야 하고 선수들이 훈련에 대해 계속 흥미와 호기심을 가져야 하며 절대 훈련이 지루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본인도 훈련 프로그램에 대해선 매일같이 공을 들이고 새로운 것을 선수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짜기도 한다고 하며, 단순히 지시적인 사항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전술의 이론적 원리까지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 레스터 팬들 중에는 우승을 시켰음에도 떠나버린 탓에 그를 싫어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떠나기 전까지도 레스터 선수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첼시 감독직으로 만난 레스터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기록, 이 덕에 레스터의 팬들이 나가길 바랐던 스티브 쿠퍼 감독이 경질되어 레스터 팬들에게 재평가 받는 중이다.[7] 또한 잘못된 행동이지만 레스터의 선수단은 첼시전 종료 후 코펜하겐의 나이트클럽으로 향했는데 이때 선수단 중 누군가가 'Enzo I Miss You'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던 것을 보아 레스터를 떠난 후에도 레스터 선수단과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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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명이 한동안 Vincenzo(빈첸초)로 알려졌으나 Enzo인 걸로 확인되었다.[2]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3] U-23팀 감독으로 PL2 참가.[4] 시즌 중 자진 사퇴[5] 공교롭게도 이 둘은 24-25 시즌 시작 전에 첼시 FC 감독으로 가장 고려되던 인물들이다.[6] 이 때문에 이탈리아의 코칭 스쿨인 코베르치아노에서 UEFA 코치 라이센스를 취득하던 당시의 졸업 논문 주제가 축구와 체스였다고 한다.[7] 게다가 경기 전, 레스터를 존중하는 인터뷰를 진행하여 레스터 팬들의 민심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8] 이 쿠트 심판은 인간적으로도 상당히 질이 좋지 않은 인물이었는데, 유로 2024 대회 당시 심판으로 일하고 있을 때, 코로 마약을 흡입하는 영상이 공개된 바 있었고, 섹스 비디오 관련 문제, 그리고 심판 해임 후에는 불법 베팅 혐의과 아동 성범죄로 조사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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