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도니 이라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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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Liverpool Football Clu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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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안도니 이라올라 Andoni Iraola | |
본명 | 안도니 이라올라 사가르나 Andoni Iraola Sagarna | |
출생 | ||
국적 | ||
신체 | ||
직업 | ||
주발 | 오른발 | |
소속 | 선수 | |
감독 | ||
국가대표 | ||
현역 시절 주 포지션은 라이트백으로, 커리어 대부분을 아틀레틱 클루브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보냈다. 기본적으로는 오른쪽 측면에서 수비 라인을 지키는 풀백이었지만, 단순히 수비에만 머무는 유형은 아니었다. 후방 빌드업에 관여하고, 측면 전진과 크로스,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에 가까웠다. 이에 말년 뉴욕 시티 FC 시절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뛰었다.
가장 큰 장점은 꾸준함과 전술 이해도였다. 이라올라는 라리가에서 12시즌을 보내는 동안 리그에서 한 시즌도 30경기 미만으로 출전한 적이 없을 정도로 높은 내구성과 안정성을 보여줬다. 이는 단순히 부상이 적었다는 의미를 넘어, 여러 감독 체제에서도 계속 주전으로 기용될 만큼 전술적 신뢰도가 높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베테랑이었던 2011-12 시즌에도 압박을 특히 강조하는 마르셀로 비엘사 체제에서 핵심 선수 중 하나로 활약했다.
공격적인 기여도도 준수한 편으로, 풀백임에도 리그에서 꾸준히 득점을 기록했고, 2012-13 시즌을 제외하면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매 시즌 리그 득점을 올렸다. 데뷔 시즌인 2003-04 시즌에는 리그 30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팀의 UEFA컵 진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풀백이면서도 페널티킥과 프리킥을 종종 맡았을 정도로 킥 능력이 좋았고, 측면에서의 크로스뿐 아니라 세트피스와 중거리 슈팅에서도 위협적인 장면을 종종 만들었다. 특히 빌드업 관여 능력이 장점이었으며, 이라올라는 단순히 측면을 왕복하는 풀백이라기보다, 공을 안정적으로 다루고 후방에서 전진 패스를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선수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말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곧잘 경기를 뛰었다.
수비적으로도 안정적인 선수였다. 압도적인 피지컬이나 폭발적인 속도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위치 선정과 타이밍, 경기 읽는 능력을 바탕으로 꾸준한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바스크 더비처럼 강도가 높은 경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으로 수비진을 이끌었고, 2007년 레알 소시에다드 원정에서는 풀백임에도 멀티골을 기록해 2-0 승리를 이끄는 등 큰 경기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적도 있었다. 베테랑이 된 이후로는 아틀레틱의 주장을 맡으며 뛰어난 리더십도 보여주었다. 특히 멘탈리티 측면에서는 성실함과 책임감이 돋보인 선수였다.
단점은 최상위 레벨의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기에, 폭발력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밸런스가 뛰어난 유형이긴 했지만, 순수한 스피드나 1대1 돌파력으로 상대 측면을 압도적으로 틀어막거나 파괴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결국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장기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것도 이러한 한계와 아예 무관하지는 않았다.[1]
가장 큰 장점은 꾸준함과 전술 이해도였다. 이라올라는 라리가에서 12시즌을 보내는 동안 리그에서 한 시즌도 30경기 미만으로 출전한 적이 없을 정도로 높은 내구성과 안정성을 보여줬다. 이는 단순히 부상이 적었다는 의미를 넘어, 여러 감독 체제에서도 계속 주전으로 기용될 만큼 전술적 신뢰도가 높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베테랑이었던 2011-12 시즌에도 압박을 특히 강조하는 마르셀로 비엘사 체제에서 핵심 선수 중 하나로 활약했다.
공격적인 기여도도 준수한 편으로, 풀백임에도 리그에서 꾸준히 득점을 기록했고, 2012-13 시즌을 제외하면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매 시즌 리그 득점을 올렸다. 데뷔 시즌인 2003-04 시즌에는 리그 30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팀의 UEFA컵 진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풀백이면서도 페널티킥과 프리킥을 종종 맡았을 정도로 킥 능력이 좋았고, 측면에서의 크로스뿐 아니라 세트피스와 중거리 슈팅에서도 위협적인 장면을 종종 만들었다. 특히 빌드업 관여 능력이 장점이었으며, 이라올라는 단순히 측면을 왕복하는 풀백이라기보다, 공을 안정적으로 다루고 후방에서 전진 패스를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선수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말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곧잘 경기를 뛰었다.
수비적으로도 안정적인 선수였다. 압도적인 피지컬이나 폭발적인 속도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위치 선정과 타이밍, 경기 읽는 능력을 바탕으로 꾸준한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바스크 더비처럼 강도가 높은 경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으로 수비진을 이끌었고, 2007년 레알 소시에다드 원정에서는 풀백임에도 멀티골을 기록해 2-0 승리를 이끄는 등 큰 경기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적도 있었다. 베테랑이 된 이후로는 아틀레틱의 주장을 맡으며 뛰어난 리더십도 보여주었다. 특히 멘탈리티 측면에서는 성실함과 책임감이 돋보인 선수였다.
단점은 최상위 레벨의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기에, 폭발력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밸런스가 뛰어난 유형이긴 했지만, 순수한 스피드나 1대1 돌파력으로 상대 측면을 압도적으로 틀어막거나 파괴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결국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장기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것도 이러한 한계와 아예 무관하지는 않았다.[1]
- AEK 라르나카 FC (2018~2019)
- 키프로스 슈퍼컵: 2018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 2024년 3월, 2025년 1월
이라올라의 축구는 아름답다.#- 카를로 안첼로티
안도니는 놀랍고, 매우 존경받는 감독이다. 본머스는 공격적이고 매력적인 축구를 하고 있다. 그들은 살아있는 팀이다. 그는 장래가 촉망한 젊은 스페니쉬 감독 중 하나다.#- 펩 과르디올라
나는 이라올라가 본머스에서 해낸 일들을 정말로 감탄하면서 지켜보았다. 그는 진정한 코칭을 보여줬다. 그들은 제대로 된 축구를 구사한다.#- 위르겐 클롭
그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매우 기술적이었다. 정말 영리한 선수였다. 그리고 이제 그는 특별한 일을 해내고 있다. 그가 영입한 선수들의 분위기, 신념, 플레이 방식까지, 그는 본머스의 많은 것을 바꿔냈다. 정말 인상적이다.#- 미켈 아르테타
이라올라의 축구 스타일은 놀랍다. 그들은 강하게 압박하고, 상대를 몰아붙인다. 그는 훌륭한 선수였고, 이제는 엘리트 레벨의 감독이다. 그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훌륭한 일을 해냈다.#- 제이미 레드냅
이라올라는 고강도 축구를 구사하며, 우리는 그가 그 부분에서 환상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제이미 캐러거
그는 우리에게 전진해서 플레이하고, 육체적으로 싸워내고, 높은 강도로 경기를 이겨내길 원한다. 그는 그런 문화를 우리에게 심어준 것이다.#- 밀로시 케르케즈
그는 훌륭한 사람이고, 선수 관리도 뛰어나다. 그는 최고의 감독이 될 잠재력이 있다. #- 앙투안 세메뇨
그는 우리에게 최대한의 동기를 부여해주고자 하는 감독이다.#- 당고 와타라
그는 최고의 감독이다. 리버풀 팬들은 분명히 기대해도 될 것이다. 물론 리버풀은 본머스보다 훨씬 큰 클럽이지만, 그가 그곳에 가서 최고의 감독이 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알렉스 스콧
- 자신을 현재의 위치에 있게 만들어준 가장 결정적인 인물은 아틀레틱에서 자신을 1군에 데뷔시켜준 에르네스토 발베르데라고 밝혔으며, 그로부터 선수들을 대하는 진실된 태도를 배웠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 감독으로 만난 마르셀로 비엘사, 비센테 델 보스케, 파트리크 비에이라로부터도 다양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사이클링 광팬으로, 특히 스페인 출신의 미겔 인두라인과 스위스 출신의 사이클링 선수 마우로 지아네티의 팬이다. 10세 무렵 바스크주 산세바스티안에서 열린 1992년 투르 드 프랑스의 개인 타임 트라이얼 프롤로그를 직접 관람했으며 인두라인이 해당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바 있다. 이후 부엘타 아 에스파냐도 직접 관람한 적이 있다고 하며, 투르 드 플랑드르[3]와 플랑드르의 코펜베르흐 업힐 코스를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4] 본머스 부임 이후 첫 프리시즌부터 투르 드 프랑스를 틀어 늘 시청했고, 관련 다큐멘터리는 물론 대부분의 사이클링 클래식 대회들을 전부 본다고 한다. 또한 보는 것뿐 아니라 직접 사이클 타는 것도 좋아해서, 본머스 시절에는 일부러 도싯주 내의 오르막 구간을 찾아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 유소년 시절에는 축구를 업으로 삼을 생각이 없었으며, 이에 선수 경력 초기에는 아틀레틱에서 뛰면서 대학교에 입학해 법학도 생활을 3년동안 병행했다. 그러나 구단에서 매주 주전으로 뛰느라 법학 수업에 참여하는게 점점 어려워졌고, 대학 졸업을 위해 필수로 해야 하는 법률사무소 실습 과정에 참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기에 결국 법학과를 중퇴했다.#
- 라리가에서 수위급 선수로 오랜 기간 활약한 것에 비해 비교적 미미한 국가대표 커리어를 남겼다. 특히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했던 UEFA 유로 2012에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2011-12 시즌 막판에 입은 부상으로 불운하게 명단에서 제외된 바 있다. 직접 회고하기로는, 당시 부상을 숨기고 대회에 참가할 수도 있었으나 단 1분도 뛰지 못할 지경이었기에 대표팀에 솔직하게 상태를 밝혔다고 한다, 또한, '어차피 우승 못하겠지'라며 자신을 위로했으나 오히려 스페인 대표팀이 너무도 쉽게 우승을 차지한 기억이 있다고 한다.
- 취미로 독서를 즐기는 독서광이며, 축구로 받는 스트레스를 문학을 통해 분산시킨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19세기 영국 고딕 소설을 즐겼으며, 선수 시절 버스나 비행기로 이동할 때는 물론 지도자가 되고나서부터도 항상 책을 갖고 다닌다고 한다. 오죽하면, 선수 생활 은퇴 후에 아예 서점 주인이 되는 걸 진지하게 생각했을 정도.# 보통 책을 읽을 때에는 요 네스뵈 등의 추리 소설이나 비교적 쉬운 누아르 소설 한 권을 읽으며,[5] 그다음에는 지적으로 더 어렵고, 스스로 더 많은 집중을 요구하는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자신만의 독서 방식이라고 한다.# 본머스에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본머스 시내에 있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6]의 묘를 직접 방문한 적도 있다.# 이후 인터뷰를 통해 메리 셸리가 20살에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책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감독 생활을 평생 할 생각은 없다고 하며, 가족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감독 생활을 끝낼 수 있다고도 말한 바 있다.[7]
- 2013년 선수 시절 당시, 리버풀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리버풀의 테크니컬 디렉터였던 마이클 에드워즈는 이라올라 영입을 위해 구단의 스카우트였던 줄리언 워드를 스페인으로 파견하여 그와 접촉했는데[10], 이라올라도 리버풀행에 관심을 표하며 재계약하지 않는다면 1월에 이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이라올라는 친정팀과 의리를 지키며 재계약하여 잔류하게 되었다. 이후 이라올라는 리버풀 측에게 미안함을 담아 자신의 결정에 대해 설명하는 친필 편지를 리버풀 측에 전달했는데[11], 이에 에드워즈와 워드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이후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12][13]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축구 커리어를 통틀어 패배가 없을 정도로 강하다. 선수 경력[14]과 지도자 경력[15]을 포함하여 8전 4승 4무, 심지어 올드 트래포드에서는 4전 3승 1무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이와 반대로 우나이 에메리에게는 지휘하는 구단을 불문하고 천적 수준으로 약하다. 2026년 5월 기준으로 통산 상대 전적이 8전 3무 5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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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당시 스페인 대표팀은 역대급 황금세대가 전성기를 맞던 시기였고, 오른쪽 풀백 자리에 세르히오 라모스, 알바로 아르벨로아, 후안프란 등의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었다. 이라올라는 클럽 레벨에서는 매우 안정적인 선수였지만, 대표팀에서는 이러한 선수들 대비 차별성을 보여주는 유형은 아니었기에 7경기 출전에 그쳤다.[2] 나이는 알론소가 1981년생이고, 아르테타와 이라올라가 1982년으로 동갑이다.[3] 매년 봄, 벨기에 에서 열리는 원데이 투어 대회다. 극악의 자갈길 업힐 코스인 코펜베르크 언덕으로 유명하다.[4] 심지어 코펜베르흐 언덕을 직접 자전거로 올라본 적도 있다고 한다.[5] 참고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밝혔다.[6] 런던에서 사망했으나 아들에 의해 유해가 본머스 시내 중심가 세인트 피터 교회 묘지로 옮겨져, 본머스의 유명인사가 되었다.[7] 가족들의 사생활 또한 보호하는 편이라 이치아르(Itziar)라는 이름의 아내와 슬하에 1남 1녀의 두 자녀가 있다는 사실만 알려져있을 뿐, 가족들의 프로필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8] 실제로 리버풀 부임 이후 AXA 트레이닝 센터의 선수 라커룸을 둘러보며 여기에 자주 안오길 바란다고 언급했다.[9] 이에 감독실은 회의실로 사용하거나 선수와 개별 면담에만 쓴다.[10] 당시 리버풀은 브렌던 로저스 감독 체제에서 베테랑 라이트백을 찾고 있었고, 이라올라는 6개월 뒤 계약 만료였기에 보스만 룰에 의해 사전접촉이 가능했다. 워드는 당시 이라올라가 말라가 CF 전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를 직접 보고 그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11] 이후 보도를 통해 밝혀지기로는, 자신이 어떤 이유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적은 겸손과 유머가 섞인 사과의 편지였고, 리버풀의 관심에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언젠가 리버풀에서 뛰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고 한다. 또한 동포지션이던 당시 리버풀의 수비수 글렌 존슨을 칭찬하기도 했으며, 리버풀이 말라가전을 보고 영입 제안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농담도 섞었다고 한다.[12] 실제로 에드워즈는 이후 이라올라의 감독 커리어를 눈여겨 봤으며, 2021년 10월에는 워드와 함께 라요 바예카노를 방문해 이라올라의 훈련을 참관하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그곳에서 당시 본머스의 감독이던 에디 하우와 수석코치 제이슨 틴달을 마주쳤는데, 이후 2023년 이라올라는 하우의 후임으로 본머스로 향했다. [13] 또한 에드워즈는 세프 판덴베르흐와 같은 리버풀 유망주들을 이라올라의 팀으로 임대보내기 위해 논의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에드워즈는 2025년 FSG의 풋볼 CEO가 되어 본머스로 이라올라를 데려온 리처드 휴즈를 리버풀의 스포팅 디렉터로 선임했고, 2026년 여름에는 휴즈와 함께 결국 이라올라를 리버풀의 감독으로 선임하게 되었다.[14] 2011-12 시즌 아틀레틱 클루브 소속으로 맨유를 만나 UEFA 유로파 리그 16강 1, 2차전에서 모두 승리했다.[15] 본머스 감독으로 총 6전 2승 4무를 기록했으며, OT 원정에서만 2023-24 시즌 3-0 승리, 2024-25 시즌 3-0 승리로 2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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