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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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 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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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민국

69년

일본

쇼와 55년

히브리력

5740년 ~ 5741년


1. 개요2. 사건
2.1. 실제
2.1.1. 1월2.1.2. 2월2.1.3. 3월2.1.4. 4월2.1.5. 5월2.1.6. 6월2.1.7. 7월2.1.8. 8월2.1.9. 9월2.1.10. 10월2.1.11. 11월2.1.12. 12월
2.2. 가상
3. 탄생
3.1. 실존 인물3.2. 가상 인물
4. 사망
4.1. 실존 인물4.2. 가상 인물
5. 데뷔
5.1. 가수5.2. 배우5.3. 예능인5.4. 만화계5.5. 스포츠

1. 개요[편집]

동아일보 선정 1980년 국내외 10대 뉴스

대한민국의 민주화 암흑기

서울의 봄5.18 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좌절로 이 해는 대한민국 역사에서는 아주 비극적이었던 해로 기록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1960년 이후 최초로 1인당 GNP감소(미국 달러 기준)했던 해이기도 하다.

소련에서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이, 미국에서 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올림픽이 열렸는데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일본, 서독, 캐나다, 미국 등 서방 국가 및 민주주의 국가들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여 대거 불참하면서 반쪽짜리 대회로 전락하였다. 이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으면서 불참하였다.[1]

대한민국에서는 이때부터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전환되는 시기를 맞이했다. 이미 컬러 방송을 시작할 여건은 마련되어 있었으나, 여러 가지 규제 논란으로 방송 개시가 지연되다가, 다음해인 1981년부터 컬러로도 TV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20년 후인 2000년20세기마지막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참고로 제6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대학수학능력시험처음으로 응시한 세대이기도 하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여름에 유난히 서늘하고 흐린 날이 많아 냉해 피해가 심각했던 해였다. 이로 인하여 한국에서는 흉작 등 심각한 농업 피해를 입었으며,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2]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중부 지역에서는 기록적인 폭염가뭄이 몰아닥쳐 농업 피해가 컸으며, 이로 인하여 세계적인 옥수수, 생산 지역인 이 지역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국제 농산물 가격도 올라갔다.

유일하게 이 해에는 대한민국에 올림픽 열기가 없었던 시기이기도 하였는데 이 해 소련에서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렸지만 대한민국은 이 올림픽에 정치적 사정을 이유로 불참함에 따라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첫 출전하게 된지 32년만에 현재까지 유일하게 올림픽 열기가 없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여기에 미국은 지미 카터 행정부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의하는 표시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고 일본 역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다. 다만 소련의 맹방이었던 북한은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함에 따라 올림픽 열기는 한반도 기준으로 북한에서만 전파하게 되었다. 쇼트트랙이라도 있었으면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 열기라도 있었겠지만 그땐 아니었다.

또 1979년 11,12월생을 포함해서 이 해에 태어났던 이들은 1990년 윤보선, 2006년 최규하, 2009년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망을 통해서 생애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망하게 되었다는 부고를 들었고 국가 장례를 처음으로 경험한 세대들이다. 특히 국장급의 경우는 사실상 태어나서 첫 경험이기도 하였는데[3] 참고로 이들이 태어났던 이후에 대한민국 국장이 열렸던 사례는 1979년 10월에 사망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 그러다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망하고 국장으로 거행되었기 때문에 이들이나 이 해 이후 세대들부터는 사실상 태어나서 경험한 첫 국장이었다. 2015년 11월에 사망한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는 국가장으로 통합되었다.

2. 사건[편집]

2.1. 실제[편집]

2.1.1. 1월[편집]

  • 1월 8일: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 일대서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했다.

  • 1월 12일

    • 대미 환율이 1달러 당 484원에서 580원으로, 은행 대출 금리가 연 19%에서 25%로, 정기예금금리가 연 18.6%에서 24%로 인상되었다.

    • 북한은 남한 정부에 남북총리회담을 제의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서 북한측은 처음으로 남한을 '대한민국'이라 지칭하였다.

  • 1월 15일: '전국연합노동조합연맹 서울지부 남화전자 분회(이하 남화전자 노조)'가 결성되었다.

  • 1월 18일

    • 최규하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남북총리회담 용의, 복권 검토, 평화적 정부이양 선례 마련 등을 언급했다.

    •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 등의 내란음모 방조 혐의로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되었다.

  • 1월 24일: 신현확 국무총리는 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접촉을 제의하며 북한에 회신을 보냈다. 이 회신에서 북한을 공식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처음 지칭했다.

  • 1월 25일

    • 수경사 보통군법회의에서는 YWCA 위장결혼식 사건 관련자 17명에게 실형을 선고하였다.

    • 육군 고등군사재판에서는 김재규 등 6명에게 사형을, 유석술에게는 징역 3년을 구형하였다.

  • 1월 28일: 육군 고등군사재판에서는 김재규 등 6명에게 사형을, 유석술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하였다.

  • 1월 29일

    •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김재규 등 6명의 형량을 확인하고 김계원을 무기로 감형하였다.

    • 국내 석유류값이 평균 59.4%로, 석유화학원료 및 제품값은 20.2~66.4%로 올랐다.

2.1.2. 2월[편집]

  • 2월 중: 대한경우회가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국회에 건의함으로써 수사권 독립 문제를 둘러싼 검-경 간의 마찰이 발생하였다.

  • 2월 3일: 일본에서 전자전대 덴지맨 방영 개시.

  • 2월 5일: 남북조절위원회 서울측은 다음날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서울측 실무대표에 김영주, 정종식, 이동복을 임명하였다.

  • 2월 6일: 이날 판문점에서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대표가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이때 남북 양국은 다음날부터 직통전화 재개 및 당월 19일 재접촉에 합의하였다.

  • 2월 7일: 남북직통전화가 3년 반만에 개통되었다.

  • 2월 13일: 미국에서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그러나 한국은 대회 동안 8회 연속으로 단 한 개의 메달도 얻지 못했다.

  • 2월 18일: 최규하 대통령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 회담을 열어 복권/정치일정 등을 논의했다.

  • 2월 19일: 도매물가가 1주 새 13.4%로 뛰어올랐다.

  • 2월 22일

  • 2월 23일

  • 2월 25일: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3김이 인촌기념관에서 만나 개헌과 복권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관용과 이해를 다짐했다.

  • 2월 27일: 한국은행은 종래의 고정환율제에서 국제통화기금의 특별인출권에 기반한 '통화 바스켓제'에 의한 유동제로 바꾸었다.

  • 2월 29일: 정부는 윤보선, 김대중 등 재야인사 687명을 복권시켰다. 단, 반공법 등 경합범은 제외시켰다.

2.1.3. 3월[편집]

  • 3월 1일: 김대중은 복권 뒤 첫 기자회견에서 정치 목표는 반공 안보태세 강화, 자유민주주의 실현이라 천명했다. 같은 날 팀 스피릿 '80 작전이 개시되었다.

  • 3월 2일: 해태제과 노동자들이 9개월여 간의 투쟁으로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였다.

  • 3월 4일

    • 이날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대표의 3차 접촉이 이루어졌다.

    • 독립이 예정된 로디지아에서 로버트 무가베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 3월 5일

    • 김종필 민주공화당 총재와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만나 정국 전반을 논의했다.

    • 정승화 전 육참총장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 3월 6일: 김영삼과 김대중이 회담을 열어 입당 및 대통령 후보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 3월 8일: 소련에서 최초의 록 페스티벌이 열렸다.

  • 3월 10일: 가수 조용필첫 정규앨범을 발표해 무명 시절에서 탈출하였다.

  • 3월 13일

    • 정부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헌법개정심의위원회'를 발족했다.

    • 정승화 전 육참총장이 선고공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주영복 국방부 장관이 형량을 7년으로 감형시켰다.

  • 3월 21일: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의하여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후 상당수의 서방국가들이 이에 동조했다.

  • 3월 14일: 대한주택공사는 경기도 과천시에 신도시 건설을 시작했다.

  • 3월 15일: 민주헌정동지회 사무실이 문을 열었다.

  • 3월 18일: 이날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대표 4차 접촉에서 총리회담 장소를 판문점 자유의 집과 판문각으로 결정하였다.

  • 3월 21일: 호남전기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하였다.

  • 3월 24일: 엘살바도르의 추기경 오스카 로메로가 암살당하였다.

  • 3월 27일: 연세대 총학생회가 부활하였다.

  • 3월 28일

    • 중앙대 약대생 1백여 명이 폭력교수의 공개사과를 요구하여 농성을 벌였다.

    • 동덕여대생 4백여 명이 조용방 학장 등 3명의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서울대 총학생회가 6년만에 부활하였다.

    • 한신대 학원자율화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3월 29일: 전남 광주의 조선대생 2천여 명이 <학원의 민주화와 정상화를 위한 선언문>을 발표한 뒤 박철웅 총장의 사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2.1.4. 4월[편집]

  • 4월 1일: 월간조선이 창간되었다.

  • 4월 3일

    • 서울대는 학칙을 개정하며 학생단체 조직에 대한 문공부 장관의 사전승인 등 3개 조항을 삭제하며 학생들의 학내 제반활동을 사실상 허용하였다.

    • 이날 대학야구 춘계연맹전에서 황병일이 원광대를 상대로 한국야구사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하였다.[4]

  • 4월 4일: 김영삼과 김대중이 또다시 회담을 열었으나 범민주권 통합에 대한 의견차를 보였다.

  • 4월 7일: 민주공화당 의원총회에서는 이후락, 임호, 박찬종, 오유방 등 정풍운동 주도자 네 명을 당에서 제명하였다.

  • 4월 8일: 최초의 국산 구축함인 '울산함'의 진수식이 열렸다.

  • 4월 9일: 청계피복 노조가 임금인상 및 퇴직금제, 노동 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철야 농성을 벌였다.

  • 4월 11일

    • 이날 서울대생들은 '4월 혁명 기념제 및 김상진 열사 추모식'을 거행하였다.

    • 한국 정부는 미국 항공기의 중공 이원권을 허용하였다.

    • 해태제과 8시간 노동제 쟁취의 영향으로 롯데, 크라운, 동양 3개 제과업체가 서울시 노동위원회의 직권 조정으로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였다.

  • 4월 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임명되었다. 이날 최규하 대통령은 학생시위에 대해 유감이라 표명했다.

  • 4월 18일

    • 이날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대표의 6차 접촉이 이루어졌다.

    • 청계피복 노조의 농성이 노동청의 중재로 협상이 타결되며 종료되었다. 이에 청피노조 측은 <8백만 노동자에 보내는 메세지>를 발표하였다.

    • 짐바브웨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4월 21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동원탄좌(주) 소속 광부들이 임금 인상 및 어용노조 퇴진을 외치며 3일 동안 격렬한 파업을 벌였다. 이를 '사북 사태'라고 한다.

  • 4월 24일

    • 서울의 14개 대학교수 361명이 학원사태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학원민주화를 요구했다. 이는 1960년 4.25 대학교수 시위 이후 최대 규모였다. 같은 날 서울대 총대위원회도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 미국의 특수부대가 이란의 미국 대사관에 인질로 잡힌 자국인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으나 총 한번 못쏴 보고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서 카터 행정부의 레임덕이 가속화된다.

  • 4월 28일: 서울대 학장회의에서 현 군사교육제도의 조속개혁을 당국에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 4월 29일: 동국제강 노동자 1천여 명이 민주노조 인정과 임금 및 보상금 인상을 요구하며 농성과 시위를 했다.

  • 4월 30일

    • 이날 열린 계엄사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는 사북사태와 학원사태에 대한 논의 뒤 "앞으로 이같은 혼란사태를 막기 위해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단호한 조처를 취할 것"을 결의하였다.

    • 네덜란드의 율리아나 여왕이 베아트릭스 공주에게 양위했다.

2.1.5. 5월[편집]

  • 5월 2일

    • 서울대 총학생회는 이날부터 13일까지를 민주화투쟁 기간으로 선포하며 민주화를 위한 학생총회를 열기로 결의하였다.

    • 충남대생 3천여 명은 학원자율화를 요구하며 대학 중 처음으로 가두 시위를 전개하였다.

    •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이재문, 신향식, 안재구, 최석진 등 남민전 사건 관련자 4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 5월 3일: 세진전자 등 한국노총 금속노련 남서울지부 산하 9개 분회가 어용노조 퇴진을 외치며 지부 사무실을 점거농성하였다.

  • 5월 4일

  • 5월 5일: 이태복 등 학림 세력들은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이하 전민노련)'을 결성하였다.

  • 5월 6일: 학원자율화와 입영훈련 철폐를 요구하며 교내에서 투쟁하던 학생운동권은 시국과 사회 문제를 거론하며 가두 진출을 시도했다.

  • 5월 7일: 대한민국 GNP가 16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1/4 분기 내 전년대비 1.7% 감소).

  • 5월 8일

    • 한국외대 교수들은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세계보건기구천연두 박멸을 선언했다.

  • 5월 9일

    • 중앙대와 숙명여대 교수들은 "학원의 비민주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학생들과 같이 노력을 할 것"이란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25개 지부 조합원들은 어용노조 집행부 규탄 및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이를 계기로 '금속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5월 10일

    • 정부는 개헌공청회를 취소하였다.

    • 전국 23개 대학 총학생회장은 비폭력 교내시위 원칙 추구 및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동국대 교수 198명이 학원자율화와 민주화에 대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학원자율화를 강조하던 문교부는 학원시위에 강력 대처할 것을 천명했다.

    • 최규하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방문을 위해 중동으로 떠났다.

    • 롯데제과 노조는 민주 후보인 신태웅 노동자를 선출하였다.

  • 5월 13일: 연세대학교 등 6개 대학 학생들이 광화문, 종로, 무교동 등 시내 중심가에서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에 나섰다.

  • 5월 14일: 전국에서 6만여명의 대학생과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 5월 15일: 이날부터 서울의 봄이 절정에 이르어, 30개 대학에서 10만이 넘는 대학생과 수많은 시민들이 서울역 광장에 집결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심재철이 회군 결정을 내리면서 시위대는 해산하게 된다.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다.

  • 5월 16일: 전국총학생회장단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하여 시위 중단을 결의했다.

  • 5월 17일

    • 이날부로 신군부 세력은 비상계엄령을 전국 각지로 확대 실시하고 김종필, 이후락, 김대중, 문익환 등 주요 정치인들과 각 대학 총학생회장, 재야 인사들을 강제연행했다. 이리하여 전두환과 정치군인 세력이 전면으로 나선 것이다(5.17 내란).

    • 계엄사령부는 전/현직 국가원수 비방 금지, 정치활동 중지, 대학 휴교 등을 담은 계엄포고 10호를 발표하였다.

    • 서통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18일

  • 5월 19일

    • 전날 발생한 공수부대의 폭력을 계기로 광주 시민들이 점차 투쟁에 나서 항쟁은 광주 전역으로 퍼져갔다.

    • 경향신문 등 언론사 기자들이 5.18에 대한 왜곡보도에 반발해 제작거부 투쟁을 벌였다.

  • 5월 20일

    • 광주 민주화 운동: 계엄군이 시위대에 발포하여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는 우리 현대사에서 시위대에 대한 군의 발포는 이때가 처음이었고, 지금까지도 유일하다.[5] 같은 날 신현확 내각이 총사퇴했다.

    • 대법원은 10.26 사태 관련자인 김재규, 박선호,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 등 다섯 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반면 김계원은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 캐나다 퀘벡 지방의 분리 독립 찬반 투표에서 약 60%가 반대함으로서 퀘벡은 캐나다의 1개 주로 존속하게 되었다.

  • 5월 21일

    • 광주 민주화 운동: 계엄군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를 개시했다. 이에 격분한 시위대가 주변의 무기고를 공격하여 자체적으로 무장하고 시민군을 결성해 계엄군을 광주 외곽으로 몰아냈다.

    • 광주 학생수습위원회 및 시민수습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광주 교도소 습격사건이 발생하였다.

    •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광주 시민들에게 이성을 회복하고 질서유지를 당부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 최규하 대통령은 박충훈을 국무총리서리에, 김원기를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개각을 단행하였다.

    • 미국에서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이 개봉되었다. 그리고 관객들은 사상 초유의 대반전을 맛보게 된다.[6]

  • 5월 22일

    • 5.18 민주화운동이 목포와 나주 등 인접 시/군으로 확대되었다.

    • 이날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자대표 8차 접촉이 이루어졌다.

    • 계엄사는 김대중이 학생시위를 배후 조종했다는 내용의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 미국 국방성 대변인 토마스 로스는 주한미군 측의 국군 20사단 광주투입 승인을 발표하였다.

    • 비디오 게임 팩맨 시리즈의 첫 작품인 팩맨이 출시되었다.

  • 5월 23일: 광주 주남마을 총격사건이 발생하였다.

  • 5월 24일

    • 10.26 사건의 주범 김재규와 박선호 등 공범 4명의 교수형이 서울구치소에서 집행되었다.

    • 광주 송암동 학살 사건이 발생하였다.

  • 5월 25일: 최규하 대통령은 광주에서 특별 방송담화를 발표하였다.

  • 5월 26일

    • 내무부는 행정 마비상태인 전라남도 행정을 직접 담당하였다.

    • 간첩 조작사건인 '전남도청 독침사건'이 발생하였다.

  • 5월 27일: 광주 민주화 운동 - 계엄군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광주시내로 진입하였고, 전남도청 전투를 마지막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은 비극으로 끝났다. 당일 계엄사 측은 진압 과정에서 2명 사망, 군인 4명 부상, 2백명 체포라고 발표했다.

  • 5월 30일: 서강대생 김의기가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작성한 뒤 기독교회관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 5월 31일

    • 정부는 계엄하의 대통령 특별 자문보좌기관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세워 전두환의 정권장악을 가속화시켰다.

    • 계엄사는 5.18 당시 사망자 170명, 부상자 380명, 체포 1,740명이라고 했으며 이 중 730명을 조사중이라고 발표했다.

2.1.6. 6월[편집]

  • 6월 2일: 전두환이 중정 서리에서 사임했다. 대신 그는 보안사령관과 국보위 상임위원장만 겸임했다.

  • 6월 3일: 계엄사는 광주사태 사망자 148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

  • 6월 4일: 리처드 홀브룩 미 국무 차관보가 미국-중국-일본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이해관계를 같이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 6월 5일

    • 최규하 대통령은 국보위 상임위원 30명을 임명하였다.

    • 정부는 긴축 완화를 위한 종합경제대책을 발표하면서 대출금리를 1% 포인트로 줄이고 총 통화증가율을 20%에서 25%로 확대했다. 동시에 달러당 수출지원금도 늘렸다.

  • 6월 12일: 최규하 대통령이 국가기강 확립을 위한 담화를 발표함으로써 국보위에 의해 사회정화운동이 처음 실시되었다. 이는 정치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저변에 대규모 숙청을 암시하는 전조였다. 아울러 그는 1981년 6월까지 정권이양 계획도 밝혔다.

  • 6월 15일: 국보위는 먼저 '공직자 숙정계획'을 발표하여 그해 9월까지 장관 1명, 차관 6명, 도지사 3명을 비롯한 2급 이상 공무원 243명을 포함해 공무원, 국영기업체, 금융기관, 정부산하단체 등 각급 기관 127개 소속 임직원 8601명을 강제 사퇴시키기에 이르렀다.

  • 6월 17일: 계엄사는 부정축재, 국기문란, 시위주모, 배후조정 등의 혐의로 오치성, 이용희 등 정치인과 교수, 목사, 언론인, 학생 등 329명을 지명수배했다.

  • 6월 18일: 계엄사는 권력형 부정축재에 대한 수사를 발표하면서 축재금액이 총 853억 1,154만원이라고 주장했다.

  • 6월 24일: 이날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자대표 9차 접촉이 이루어졌다.

  • 6월 25일

2.1.7. 7월[편집]

  • 7월 3일

    • 계엄사는 광주사태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주동/배후조종자 53명, 교도소 습격자 30명, 방화/약탈자 33명, 살상 감행자 174명, 유언비어 유포자 10명, 기타 시위 적극 가담자가 75명 등이라고 밝혔다.

    • 정부는 일본 아사히신문 및 지지통신의 서울지국에 유언비어 유포 혐의를 적용해 폐쇄 조치를 내렸다.

  • 7월 4일: 계엄사는 김대중 등 37명을 내란 음모혐의로 군사재판에 송치하겠다고 밝혔다(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 7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제29회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개최되었다.

  • 7월 9일: 국보위는 사회정화작업의 일환으로 2급 이상 공무원 232명을 숙정했다고 발표하였다.

  • 7월 11일: 정부는 8월 1일부터 컬러TV 시판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 7월 12일: 계엄사는 5.18 광주항쟁 유인물과 녹음 테이프를 제작한 오태순 신부 등 가톨릭 성직자 7명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연행하였다.

  • 7월 15일

    • 국보위는 행정부의 3급 이하 공직자 4,760명을 숙정했다고 발표했다.

    • 미국 하원의원 스티븐 솔라즈는 미국 의원으로선 최초로 평양을 방문해 사흘 뒤 김일성과 면담했다.

  • 7월 18일: 최규하 대통령은 전역한 유학성 육군대장을 새 중앙정보부장에 임명하였다.

  • 7월 19일

    • 계엄사는 전직 장관 3명과 국회의원 14명을 비리/퇴폐로 국가 기강을 문란시킨 혐의로 연행/조사중이라고 발표하였다.

    • 국보위는 은행, 보험, 증권기관의 임직원 431명을 사회정화 명분으로 숙정했다.

    • 소련에서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이 개최되었으나 서방 세계의 보이콧으로 반쪽 올림픽이 되었다.

    • 일본에서 열한 마리 고양이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처음으로 개봉되었다.

  • 7월 22일: 국보위는 정부투자기관 등 산하기관(농협, 수협 제외) 127개에서 임직원 1,819명을 숙정했다고 발표하였다.

  • 7월 27일: 동명목재 해체 사태가 발생했다.

  • 7월 30일

    • 한국신문협회는 자율정화 결의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언론인 933명이 강제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 국보위는 대입 본고사제 폐지, 졸업정원제 실시, 과외 금지 등을 골자로 한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을 마련하였다.

    • 바누아투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7월 31일

    • 문화공보부는 창작과비평과 씨알의 소리, 뿌리깊은 나무, 소년생활, 월간중앙, 문학과지성, 기자협회보 등 정기간행물 172종의 등록을 취소했다.

    • 문교부는 교육공무원 숙정을 매듭지음으로써 총 611명이 교직에서 쫓겨났다.

    • 신군부는 김대중을 군사재판에 기소하였다.

2.1.8. 8월[편집]

  • 8월 1일: 국보위는 모든 국민의 신원기록을 일제 정리하고 연좌제를 폐지하기로 발표했다.

  • 8월 2일: 이날부로 삼성전자와 금성사에서 컬러 TV의 시판을 개시하였다.

  • 8월 4일

    • 국보위는 폭력, 마약, 사기, 밀수 등 사회악 일소를 위한 특별조치를 마련하였다.

    • 계엄사는 삼청계획 5호에 따라 계엄포고 제13호(불량배 일제 검거에 대한 포고령)를 발동했다. 겉은 그럴싸했지만 사실은 삼청교육대의 시작이었다.

  • 8월 6일

    • 국보위는 사회악 소탕에 대해 중간 발표하며 폭력배, 전과자 등 16,599명을 검거하고 이들을 A급(군사재판), B급(근로봉사), C급(순화교육)으로 나눈다고 발표했다.

    • 요트 '파랑새호'가 태평양 횡단에 성공하였다.

  • 8월 8일

    • 문교부는 족벌체제 사학 부조리를 조사키 위해 세종대에 특별감사를 실시하였다.

    • 존 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이 샘 제임스와 테리 앤더슨 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은 레밍(들쥐)"이라 발언해 전두환의 정권장악에 따른 국민들의 순응을 비판했다.

    • 전두환 의장은 뉴욕타임즈와의 회견에서 한국은 새 시대의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

  • 8월 9일: 동아일보는 지방 주재기자 7명을 포함한 기자 33명을 강제 해직시켰다.

  • 8월 11일

  •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는 북한 조선적십자회에 남북적십자회담을 무조건 재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 8월 13일: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정계 은퇴를 피력했다.

  • 8월 14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공판이 열렸다.

  • 8월 15일: 국보위는 사회악 사범 30,578명을 검거하고 이중 19,000여 명을 군부대에서 순화교육 중이라고 발표했다.

  • 8월 16일

    • 최규하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하야했다. 그의 빈 자리에는 박충훈 총리가 앉아 대신 대통령직을 대행했다.

    • 같은 날 연예계에도 사회정화운동이 실시되기 시작되면서 당월 29일까지 이주일, 나훈아, 심수봉, 배삼룡 등 24명의 연예인들이 출연금지 조치를 받았다.

  • 8월 17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에서는 미국 정부가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오르는 데엔 반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 8월 18일: 이날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자대표 10차 접촉이 이루어졌다.

  • 8월 19일

  • 8월 20일: 국보위가 중공업 분야에 대한 투자조정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한라그룹의 중추였던 현대양행이 대우로 넘어가 '한국중공업'이 되었다.

  • 8월 21일

    • 국방부 전군주요지휘관회의는 차기 대통령에 전두환 의장을 추대할 것을 결의하였다.

    • 노동청은 '노동계 정화지침'을 시달해 김영태 노총위원장 겸 섬유노조 위원장과 김병룡 금속노련 위원장 등 한국노총 산별노조 위원장급 12명이 해임되었다(제1차 노동계 정화조치).

  • 8월 22일: 전두환 육군 대장이 전역했다.

  • 8월 26일

    • 서울대 교수 7백여 명은 본교에서 열린 학원정상화 촉진 결의대회에 참석하였다.

    • 대법원은 YWCA 위장결혼식 사건 관련자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였다.

  •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서울 장충체육관 선거 결과 전두환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는 통대선거에 의한 마지막 대통령 선출이었다.

  • 8월 28일: 계엄사는 포고령 제14호를 발표하여 대학 휴교령을 전면 해제시켰다.

  • 8월 31일: 폴란드 인민 공화국에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상 처음으로 자유 노조가 결성되었다.

2.1.9. 9월[편집]

  • 9월 1일: 전두환대한민국의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 9월 2일: 전두환 신임 대통령은 국무총리서리에 남덕우, 감사원장에 이한기를 임명하고 기존 11개부 장관을 해임하는 개각을 단행하였다.

  • 9월 3일

    • 전국의 대학이 109일만에 정상수업을 개시했다.

    • 노동청은 '노동조합 정화 역이용 사례 방지 지침'을 전경련, 경총, 한국노총, 대한상의 등에 하달하였다.

  • 9월 5일

    • 문교부는 대학교육개혁시안을 발표하며 학과별 최소 졸업정원제를 마련키로 하였다.

    • 서울고법은 이재문 등 남민전 관련자 4명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 한국도서출판주간신문잡지윤리위원회는 '만화정화방안'을 마련했다.

  • 9월 9일: 샤트 알-아랍 수로를 탐낸 이란과 이라크 간의 영토 분쟁이 일어나 전면전으로 번질 위기에 처했다.

  • 9월 13일: 정부는 중공업 2단계 통합조정을 단행했다.

  • 9월 14일: KBS에서 <젊음의 행진>이 처음 방영되었다.

  • 9월 16일: 정부는 종합경제대책을 마련하여 예금대출금리를 월 평균 2% 포인트로 내렸다.

  • 9월 17일: 육군보통군법회의는 김대중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 9월 20일: 이날 신군부의 제2차 노동조합 정화조치에 따라 김문수, 방용석 등 민주노조 간부 191명이 강제로 사표를 쓰고 말았다.

  • 9월 22일: 이라크사담 후세인이 선전포고 없이 이란을 침공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 9월 27일: 정부는 '기업체질 강화대책'을 발표해 20개 재벌의 계열기업 정리 및 대기업의 모든 부동산 신고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 9월 29일: 정부는 제5공화국 개헌안을 공고하였다.

2.1.10. 10월[편집]

  • 10월 7일

    • 상공부는 중전기기, 디젤엔진, 동제련, 전자교환기 등에 대한 중화학 투자 직권조정을 발표하였다.

    • 북한 정부는 남북총리회담에 불응할 것을 밝혔다.

  • 10월 10일: 북한은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 새로운 통일 방안인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안'을 제의했다.

  • 10월 15일: 경주~포항 간 고속화도로가 개통되었다.

  • 10월 16일

    • 전두환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1981년 3월 전에 대통령선거, 4~5월에 국회의원선거, 6월까지 새 정부 수립 계획이라고 밝혔다.

    • 보건사회부는 의료보험공사 설립과 사회복지기금법 제정 등을 골자로 한 '보사행정 장기계획'을 발표하였다.

  • 10월 18일: 고려대학교는 학생시위로 자진 휴업 조치를 내렸다.

  • 10월 20일: 북한은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 김정일을 차기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다. 이로써 김정일의 권력장악이 더 가속화되었다.

  • 10월 21일: 농촌드라마의 전설 전원일기가 MBC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0월 22일: 제5공화국 헌법이 투표율 95.5%, 찬성 91.6%로 확정되었다.

  • 10월 27일

    • 계엄군과 경찰은 전국의 사찰에 난입해 승려 등 153명을 불법 연행하였다(10.27 법난).

    • 국가보위입법회의 측은 '국가보위입법회의법'을 의결하였다.

  • 10월 28일: 전두환 대통령은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 81명을 임명하였다.

  • 10월 29일: 이호 의장과 정래혁-채문식 부의장을 주축으로 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처음 개최되었다.

  • 10월 31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 ~ 종합운동장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2.1.11. 11월[편집]

  • 11월 1일: 종전의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회가 국무총리 직속 기구인 '사회정화위원회'로 출범했다.

  • 11월 3일

    •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었다.

    • 경희대 반정부 유인물 배포 사건이 발생하였다.

    • 신군부는 '정화된 노동조합 간부의 노조활동 금지 지침'을 발표하였다.

    • 육군 고등군법회의는 김대중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 11월 4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되어 민주당지미 카터 대통령의 연임이 저지되었다. 레이건은 '선 힘, 후 인권' 정책을 선언했다.

  • 11월 7일: 정치풍토쇄신특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11월 8일: 정부는 경제활성화대책을 발표하여 일반대출금리를 22%에서 20%로, 총 통화증가율을 25%에서 27.6%로 각각 조정했고, 특별소비세도 인하했다.

  • 11월 10일: 추곡수매가가 25%로 올랐다.

  • 11월 12일

    • 동아일보 회장 김상만과 중앙일보-동양방송 회장 홍진기, 한국일보 회장 장강재, 신아일보 회장 장기봉 등 주요 언론사 사주들은 보안사에 강제 연행되어 언론사 포기각서를 제출하였다.

    • 이날자 동아일보에 나대로 선생이 연재를 시작하였다.

    • 정치쇄신특별위원회는 정치활동 규제대상자가 811명이라고 발표했다.

  • 11월 13일: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 11월 14일

    • 계엄사는 10.27 법난을 통해 불교계 부조리수사 결과를 발표하여 승려 등 18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하였다.

    • 한국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는 '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발표하여 그 악명높은 언론통폐합을 결정했다.

  • 11월 19일: 서울 김포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015편 착륙 사고가 일어나 탑승 인원 중 14명이 사망했다.

  • 11월 21일: 신군부는 계엄포고령 15호를 내려 정치활동 피규제자의 일부에게 정치활동 재개를 허용시켰다.

  • 11월 24일: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경남일보가 종간되었다.

  • 11월 25일: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신아일보, 서울경제신문, 내외경제신문, 영남일보, 시사통신, 무역통신 등이 폐업되었다.

  • 11월 30일: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동양방송동아방송, 전일방송, 서해방송, 한국FM이 종방되었다.

2.1.12. 12월[편집]

  • 12월 1일

    • KBS 1TV에서 수출의 날 기념식 생중계를 시작으로 국내 최초의 컬러방송을 시작했다.

    • KBS 2TV가 개국하였다.

    • 민간단체인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발족되었다.

  • 12월 6일: 노동청은 제3자 개입금지, 산별노조의 기업노조 전환, 유니언숍 제도 폐지, 노조 설립요건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노동조합법과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 12월 8일: 미국에 거주하던 존 레넌이 자신의 저택 앞에서 마크 채프먼에 의해 총상을 입고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 12월 9일: 최초의 반미 테러사건인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광미방)이 발생했다. 이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압 과정에 미국이 한국군 4개 부대의 이동을 승인하고 이를 방관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 12월 11일

    • 정부는 시인 김지하 등 8명을 형 집행정지 결정으로 석방시켰다.

    • 이날 서울대생들이 교내 학생식당과 도서관 계단에서 “반파쇼 학우 투쟁” 및 “반파쇼 투쟁” 등의 구호가 적힌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무림 사건).

  • 12월 13일: 해럴드 브라운 미국 국방장관이 내한해 전두환 대통령과 주영복 국방부 장관과 요담했다.

  • 12월 15일: 국방부는 1982년부터 군 징집연령을 19세로 내리고 군 복무기간도 30개월로 줄일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 12월 18일: 삼청계획 5호의 연장선상인 사회보호법(보호감호 제도)이 제정되었다.

  • 12월 19일

    • 정부는 1981년 1월 1일부로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한다고 발표하였다.

    • 국가보위입법회의는 방송광고공시법을 의결하였다.

    •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이 통합되어 연합통신으로 창립되었다.

  • 12월 20일: 계엄사는 전직 CBS 기자 4명을 군 관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검거하고 1명을 수배 중이라고 발표하였다.

  • 12월 22일: KBS 2TV와 MBC가 컬러방송을 시작하였다.

  • 12월 23일: 대법원은 이재문 등 남민전 사건 관련자 4명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지었다.

  • 12월 26일: 국가보위입법회의는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과 언론기본법, 대통령선거법, 전투경찰대 설치법, 국가보안법 개정안 등을 의결하였다. 이 법안들은 5일 뒤 제정되었다.

  • 12월 30일

    • 경제기획원은 1980년 한해 도매물가가 44.2%, 소비자물가가 34.6%로 각각 올랐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경제성장률이 -5.7%로 기록되었다.

    •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설립되었다.

  • 12월 31일: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이 종간되었다.

2.2. 가상[편집]

3. 탄생[편집]

3.1. 실존 인물[편집]

3.2. 가상 인물[편집]

4. 사망[편집]

4.1. 실존 인물[편집]

4.2. 가상 인물[편집]

5. 데뷔[편집]

5.1. 가수[편집]

5.2. 배우[편집]

5.3. 예능인[편집]

5.4. 만화계[편집]

  • 강창욱 - <점등>, <탈출>

  • 권현수 - <청춘행진곡>

  • 김학운 - <호랑이의 사랑>

  • 박연 - <환상의 폴로네이즈>

  • 신기원 - <아름다운 여인>, <킬러>

  • 아라키 히로히코 - <무장 포커>

  • 이재복

  • 전일봉

  • 전혜경 - <제니의 노래>

  • 정형기

  • 조대현 - <제갈통 투수>

  • 조주청 - <뫼 뿌리>

  • 최홍재 - <코돌이 박사>

  • 타카하시 요이치 - 캡틴 츠바사

  • 하승남 - <목림방>

  • 황미나 - <이오니아의 푸른 별>

5.5. 스포츠[편집]

  • 김영희

  • 김정순

  • 김화순

  • 대럴 그리피스

  • 래리 드류

  • 로리 스패로우

  • 릭 마혼

  • 마이크 그민스키

  • 마이크 오코렌

  • 마이크 우드슨

  • 앤드류 토니

  • 우은경

  • 이명희

  • 이원우

  • 정금선

  • 제프 럴랜드

  • 조 배리 캐롤

  • 커트 램비스

  • 케빈 맥헤일

  • 키키 반더웨이

  • 테리 스토츠


[1] 그 당시 소련이 적대국이라는 정치적 이념이 있었지만, 올림픽에까지 불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침공 크리가 터져 동맹국인 미국이 불참을 결정하면서 한국도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2] 물론 경제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제2차 오일 쇼크로 인한 성장 지체였다.[3] 2006년 10월에 사망한 최규하 전 대통령과 2009년 5월에 사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장이었다.[4] 이전까지는 사이클링 히트라는 개념이 한국 야구계에 없었기 때문에 나왔더라도 기록되지 않았다.[5] 4.19 혁명의 발포는 경찰에 의해 이루어졌다.[6] 스타워즈 오리지널 시리즈 중 유일하게 한국 미개봉작이었다. 당시 수입가가 높은 탓에 영화 수입에 비싼 외화를 들이는 걸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이후 스타워즈 스페셜 에디션이 만들어진 1997년에 가서야 국내에 처음 개봉되었다. 그 전에 TV나 비디오 등으로 볼 사람은 다 봤겠지만...[7] 애니메이션판을 보면 토모코의 부모는 고등학교 들어간 해 이혼을 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토모코의 부모가 갈라진 것은 고베대지진이 일어나자 아버지가 일에 매달리느라 가정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투하트 RMM 참조.) 그리고 게임의 달력은 게임이 나온 1997년과 동일한 달력을 사용한다. 더군다나 투하트는 당시 규제가 없어 고등학교라는 타이틀을 그대로 쓴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고2. 1980년생이 맞다.[8] 여주인공 한소영의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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