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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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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 14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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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 경신

주체

69년

민국

69년

일본

쇼와 55년

히브리력

5740년 ~ 5741년


1. 개요2. 사건
2.1. 실제
2.1.1. 1월2.1.2. 2월2.1.3. 3월2.1.4. 4월2.1.5. 5월2.1.6. 6월2.1.7. 7월2.1.8. 8월2.1.9. 9월2.1.10. 10월2.1.11. 11월2.1.12. 12월
2.2. 가상
3. 탄생
3.1. 실존 인물3.2. 가상 인물
4. 사망
4.1. 실존 인물4.2. 가상 인물
5. 데뷔
5.1. 가수5.2. 배우5.3. 예능인5.4. 만화계5.5. 스포츠
5.5.1. 농구5.5.2. 배구5.5.3. 권투
6. 히트작
6.1. 영화6.2. 가요6.3. 베스트셀러

1. 개요[편집]

동아일보 선정 1980년 국내외 10대 뉴스

대한민국의 민주화 암흑기

한국에선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안개정국'이 조성되어 정치권이 혼란에 빠졌고, 민주화세력들도 갈팡질팡했다. 그런 형국에 서울의 봄5.18 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좌절, '사회정화'를 앞세운 정권의 대숙청, 인권유린 수용소 '삼청교육대'로 대표되어 우리 현대사에서는 아주 비극적이었던 해로 기록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1960년 이후 최초로 1인당 GNP감소(미국 달러 기준)했던 해이기도 하다.

소련에서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이, 미국에서 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올림픽이 열렸는데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서는 한국, 일본, 서독, 캐나다, 미국 등 서방 국가 및 민주주의 국가들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여 대거 불참하면서 반쪽짜리 대회로 전락하였다. 이 올림픽에서 한국은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으면서 불참하였다.[1]

한국에서는 이때부터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전환되는 시기를 맞이했다. 이미 컬러 방송을 시작할 여건은 마련되어 있었으나, 여러 가지 규제 논란으로 방송 개시가 지연되다가, 다음해인 1981년부터 컬러로도 TV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20년 후인 2000년20세기마지막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참고로 제6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대학수학능력시험처음으로 응시한 세대이기도 하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여름에 유난히 서늘하고 흐린 날이 많아 냉해 피해가 심각했던 해였다. 이로 인하여 한국에서는 흉작 등 심각한 농업 피해를 입었으며,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2]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중부 지역에서는 기록적인 폭염가뭄이 몰아닥쳐 농업 피해가 컸으며, 이로 인하여 세계적인 옥수수, 생산 지역인 이 지역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국제 농산물 가격도 올라갔다.

여담으로, 이 해에는 한국에 올림픽 열기가 없었던 유일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한국 선수단은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선 노메달을 기록했고, 뒤이어 개최된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도 정치적 이유로 불참함에 따라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첫 출전하게 된지 32년만에 현재까지 유일하게 올림픽 열기가 없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여기에 미국은 지미 카터 행정부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의하는 표시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고 일본 역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다. 다만 소련의 맹방이었던 북한은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함에 따라 올림픽 열기는 한반도 기준으로 북한에서만 전파하게 되었다.

또 1979년 11,12월생을 포함해서 이 해에 태어났던 이들은 대학 시절엔 운동권에 한해 한총련 7기생으로서 2000년 노근리 양민학살 진상규명 및 매향리사격장 철수투쟁, 2001년 부시방한 반대투쟁, 2002년 효순-미선이 촛불투쟁 등 반미투쟁에 나섰다.

해당 세대들은 1990년 윤보선, 2006년 최규하, 2009년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망을 통해서 생애 처음으로 국내 대통령이 사망하게 되었다는 부고를 들었고 국가 장례를 처음으로 경험한 세대들이다. 특히 국장급의 경우는 사실상 태어나서 첫 경험이기도 하였는데[3] 참고로 이들이 태어났던 이후에 대한민국 국장이 열렸던 사례는 1979년 10월에 사망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 그러다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망하고 국장으로 거행되었기 때문에 이들이나 이 해 이후 세대들부터는 사실상 태어나서 경험한 첫 국장이었다. 2015년 11월에 사망한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는 국가장으로 통합되었다.

2. 사건[편집]

2.1. 실제[편집]

2.1.1. 1월[편집]

  • 1월 1일

    • 최규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국민의 신뢰와 화합을 당부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신년사에서 개헌시한을 앞당겨 1980년 하반기까지 정권을 이양하자고 촉구하였다.

    •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신년사에서 헌법개정을 서둘러 늦어도 1981년 초에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 1월 2일: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설문조사에서 한국을 세계 23개국 중 가장 전망있는 나라라고 밝혔다.

  • 1월 3일: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김성준이 일본 도쿄에서 나카지마 시게오에게 15회만에 패해 4차 방어에 실패했다.

  • 1월 4일

    • 정부는 1980년도에도 긴축정책을 지속키로 결정했다.

    • 고병익 서울대총장은 제적학생 복교 등 학원자율화를 위한 개선책을 밝혔다.

  • 1월 5일: 건국대 충주캠퍼스가 개교되었다.

  • 1월 8일: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 일대서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했다.

  • 1월 12일: 정부는 대미 환율을 19%, 은행 대출금리 25%, 정기예금금리 24%로 각각 인상했다.

  • 1월 14일: 남북조절위 서울측은 리종옥 북한 정무원총리가 신현확 총리 등을 만나자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 1월 15일

    • 문공부는 1977년에 폐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 서울지국 재개설을 허가하였다.

    • '전국연합노동조합 서울지부 남화전자 분회(이하 남화전자 노조)'가 결성되었다.

  • 1월 18일

    • 최규하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남북총리회담 용의를 북측에 통보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 등의 내란음모 방조 혐의로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되었다.

  • 1월 21일: 섬유노조 집행위는 김영태 섬노위원장 겸 한국노총위원장의 퇴진을 권고하였다.

  • 1월 22일: 김옥길 문교장관은 중고교 교복자율화를 학교장 재량에 맡긴다고 밝혔다.

  • 1월 24일: 신현확 국무총리는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제의하며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처음 지칭했다.

  • 1월 25일: 수경사 보통군법회의는 윤보선, 함석헌 등 YWCA 위장결혼식 사건 관련자 17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 1월 28일

    • 육군 고등군사재판은 김재규 등 6명에게 사형을, 유석술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하였다.

    • 수경사 보통군법회의는 YWCA 위장결혼식사건 관련자 윤보선과 함석헌에게 형 집행 면제를 내렸다.

  • 1월 29일

    • 육군고등군법 관할관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김계원을 무기로 감형하였다.

    • 정부는 석유화학원료 및 제품값을 최저 20.2에서 최고 66.4%로 올린다고 밝혔다.

  • 1월 31일

    • 문교부는 교육목적 외 학생동원 금지를 지시하였다.

    • 해군 측은 거북선 원형복원 진수식을 열었다.

2.1.2. 2월[편집]

  • 2월 3일: 일본 TV아사히에서 <전자전대 덴지맨>이 첫 전파를 탔다.

  • 2월 4일: 경제기획원은 '유통근대화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 2월 5일: 남북조절위 서울측은 남북총리회담 준비 실무대표를 김영주 외무부 본부대사, 정종식 통일기획실장, 이동복 한적 사무국장으로 결정하였다.

  • 2월 6일: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대표접촉이 판문점에서 진행되었다.

  • 2월 7일: 남북직통전화가 3년 반만에 개통되었다.

  • 2월 8일: 김영태 한국노총 위원장이 사퇴하였다.

  • 2월 9일

    • 공화-신민 양당은 대통령중심제-직선제-임기 4년-1차 중임 등을 골자로 한 헌법시안을 마련하였다.

    • 김종필 공화당총재와 최영희 유정회의장은 최규하 대통령과 개헌/복권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 계엄사는 무분별한 정치과열 불용 및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로 국법질서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 2월 10일: WBC 플라이급 챔피언 박찬희가 필리핀의 아르넬 아로살을 상대로 4차 방어에 성공하였다.

  • 2월 11일: 국회 개헌특위는 공화-유정-신민 3당의 확정시안을 접수하였다.

  • 2월 12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신민당의 집권은 역사적 순리"라 하여 대통령 출마를 시사하였다.

    • 정상천 서울시장은 시청, 교육위, 시경을 1983년까지 강남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보고하였다.

    • 서울대 단과대 학생회 대표들이 학원민주화를 결의하였다.

    • 노총 산하 9개 산별노조 위원장들이 '노총정상화추진위원회' 결성 후 김영태 노총위원장의 완전사퇴를 촉구하였다.

  • 2월 13일: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승마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2월 16일

    • 신민당은 대선 및 총선에 앞서 대통령 후보를 지명키로 결정하였다.

    • 전국 대학들이 학도호국단을 선거제로 개편하였다.

  • 2월 17일: 프로권투선수 김태식이 WBA 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파나마의 루이스 이바라를 2회 KO로 꺾어 챔피언벨트를 차지하였다.

  • 2월 18일

    • 최규하 대통령은 허정, 유진오, 백낙준, 김수환 추기경 등 23명을 국정자문위원으로 위촉하였다.

    • 정부는 3월 중순부터 헌법개정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5~7월부터 전국 공청회를 개최토록 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 2월 19일: 정부는 당월 5일 기준으로 전국 도매물가가 16%, 소비자물가 3.6%로 각각 폭등했다고 밝혔다.

  • 2월 22일

    • 정부는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 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준결승에서 소련을 4-3이란 간발의 차로 격파해 결승에 진출하였다.(레이크플래시드의 기적)

  • 2월 23일

    • 정문연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부 편찬계획을 확정하였다.

    • 서울대병원 의공학팀이 인공췌장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에릭 하이든이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10,000m에서 금메달 5관왕을 달성하였다.

  • 2월 24일: 서강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가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 2월 25일: DJ, YS, JP 3김이 인촌기념관에서 회동하였다.

  • 2월 26일: 서울지하철 2호선 왕십리 ~ 문래 구간이 착공되었다.

  • 2월 27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정치일정은 국민에 공약이므로 실천에 옮기자고 강조하였다.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개헌 단일화 모색키 위해 정부 개헌실무 책임자를 출석키로 결의하였다.

    • 한국은행은 환율을 종래의 고정환율제에서 '복수통화바스켓방법'에 의한 유동제로 바꾸었다.

  • 2월 28일

    • 신민당 민주제도개혁특위는 사회안전법 등 10개 법률에 대한 개정작업에 착수하였다.

    • 건설부는 백제권 개발사업을 확정하였다.

  • 2월 29일: 법무부는 윤보선, 김대중 등 재야인사 687명을 일반/특별복권시켰다.

2.1.3. 3월[편집]

  • 3월 1일

    • 최규하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사회안정과 정치난국 극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김대중은 복권 후 첫 기자회견에서 정치 목표는 반공 안보태세 강화와 자유민주주의 실현이라 천명했다.

    • 한양대는 해직교수 리영희와 정창렬에 복직조치를 내렸다.

    • 팀 스피릿 '80 한미합동군사훈련이 개시되었다.

    • 정문연 한국학대학원이 개교되었다.

    • 미국 하와이대 한국학센터가 문을 열었다.

  • 3월 2일: 해태제과 노동자들이 9개월여 만에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였다.

  • 3월 3일: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당 차원에서 사회정의 활동과 사회정화운동에 모든 활동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 3월 4일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대표 3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로버트 무가베가 이끄는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연합'이 로디지아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 3월 5일

    • 김종필 공화당 총재와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경제난국 해결을 위한 초당적 협의기구 구성 및 정치형사범 추가 복권 등에 합의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윤보선 전 대통령과 범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문제에 대해 협의하였다.

  • 3월 6일

    • 10.26 사건 관련자 박흥주 대령의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 경우회는 경찰중립 제도화를 요구하였다.

  • 3월 8일

    • 김종환 내무장관은 경찰중립화 문제가 경찰 발전과정에서 한 번쯤 거론될 수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 소련령 그루지야 트빌리시에서 사상 최초의 록 페스티벌 '트빌리시 80'이 개최되었다.

  • 3월 10일

    • 검찰은 최근 발생한 경찰중립화 움직임에 대해 수사권 독립은 시기상조라고 반대 의견을 견지했다.

    • YH 해고노동자들이 취업을 요구하며 노동절 식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 가수 조용필첫 정규앨범을 발표하였다.

  • 3월 11일

    • 신현확 총리는 유신체제가 국방충실과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했던 체제라고 밝혔다.

    • 대한변협은 경찰의 정치중립을 위한 공안위원회 설치 등에 찬성하지만 수사권 독립에 대해선 반대입장을 밝혔다.

  • 3월 12일: 국회는 헌법개정심의위원으로 유진오, 김정렬, 백남억, 김상협 등 각계인사 58명을 위촉하였다

  • 3월 13일: 국방부 계엄보통군법회의는 선고공판에서 정승화 전 육참총장에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 3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은 새 헌법상 대통령 중심제와 의원내각제를 가미한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시사했다.

    • 주공은 경기 과천신도시 건설공사를 개시하였다.

  • 3월 15일

    • 신민당은 민주화촉진궐기대회에서 결의문 6개항을 채택하였다.

    •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이원집정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 민주헌정동지회 사무실이 문을 열었다.

    • 한양대 안산캠퍼스가 개교되었다.

    • 조선일보사가 <월간조선>을 창간하였다.

  • 3월 16일

    • 북한 육상선수 고춘선이 프랑스 에손 국제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다.

    • 일본 사회당은 북한 로동당과 '동북아지역 비핵평화지역 창설에 대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 3월 18일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대표 4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성대생들이 긴급대의원대회 개최 후 비리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용인자연농원이 하루 평균 오물 10kg을 방류해 팔당댐이 오염된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어 파문이 일었다.

  • 3월 19일

    • 공화당 정풍파 의원들이 김종필 총재에게 부정부패 인사의 당직 퇴진 등을 요구하고 사퇴서를 제출했다.

    • 신민당 남원-임실-순창 지구당 개편대회가 폭력사태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 검찰은 용인자연농원이 자행한 팔당댐 오염사건 조사에 착수하였다.

  • 3월 20일

    • 국회 헌법개정심의위 기본권소위는 새 헌법에 연좌제 폐지조항 신설에 합의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지역감정 해소의 일환으로 집권 시 호남고속도로를 3차선으로 늘리는 등 지역발전을 도모하겠다고 다짐하였다.

    • 문예 무크지 <실천문학>이 창간되었다.

  • 3월 21일

    • 국회 헌법개정심의위 기본권소위는 언론기관의 경영-편집 분리조항을 두도록 합의하였다.

    • 호남전기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하였다.

    • 카터 미국 대통령이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의하여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다.

  • 3월 23일: 경기도는 용인자연농원 팔당댐 오염사건을 계기로 '수질보전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결정하였다.

  • 3월 24일

    • 신민당 긴급정무회의는 지구당 개편대회 폭력사건과 관련해 불순세력 음모배격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이후락 공화당 의원은 김종필 총재에 당내 혼란을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오스카 로메로 추기경이 엘살바도르 프로비덴시아 병원 경당 미사 도중 괴한에게 암살당했다.

  • 3월 25일: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대통령 선거를 직접비밀투표제로, 임기는 4년 1차 중임제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 3월 26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부주도 개헌 환상을 깨고 정치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하였다.

    • 공화당은 이후락, 임호 의원에게 탈당을 권유키로 하고 당직자들이 사표를 제출했다.

    • 정승화 전 육참총장이 항소 포기로 징역 7년으로 확정되었다.

    • 대간첩대책본부는 경북 포항에서 무장간첩선 1척을 격침했다고 밝혔다.

  • 3월 27일

    • 문교부는 전체 중학생 중 80~90%가 정상학력 미달이라고 밝혔다.

    • 연세대 총학생회가 부활하였다.

  • 3월 28일

    • 공화당은 박찬종, 오유방 의원에게 탈당을 권유토록 하고 박용기 등 6명에 경고처분을 내렸다.

    • 동자부는 전국적인 연탄 품귀현상으로 각 탄광에 필요물품을 확보토록 긴급 지시하였다.

    • 중앙대 약대생 1백여 명이 폭력교수의 공개사과를 요구하여 농성을 벌였다.

    • 동덕여대생 4백여 명이 조용방 학장 등 3명의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명지대생 1백여 명이 이사장실을 점거하고 철야농성을 벌였다.

    • 서울대 총학생회가 6년만에 부활하였다.

    • 한신대 학원자율화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3월 29일

    • 상공부는 11개 중소기업공단을 조성해 367개 업체를 입주시키기로 결정하였다.

    • 박동진 외무장관은 대북 무역접촉과 상업활동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 김옥길 문교장관이 학원사태 관련 담화를 발표했다.

    • 전남 광주 조선대생 2천여 명이 <학원의 민주화와 정상화를 위한 선언문>을 발표한 뒤 박철웅 총장의 사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3월 30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과도정부에서 진행 중인 남북회담 중단을 촉구하였다.

    • 북한 평양 대동강구역에 '평양산원'이 문을 열었다.

  • 3월 31일

    • 공화당은 당직 개편을 단행하여 의장서리에 전예용, 부의장에 장영순, 중앙위원에 진의종을 각각 앉혔다.

    • 정부는 수교국가와 경협을 통해 미수교 비동맹국가와도 교역시도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 서울시는 인구 3만명 이상 44개동 분동 및 1만명 이하 9개동 통합 등 동단위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2.1.4. 4월[편집]

  • 4월 1일

    • 재무부는 긴축기조와 건전재정운용 방침을 지속키로 결정하였다.

    • 평택화력발전소 1호기가 준공되었다.

    • 김수환 추기경은 부활절 메세지에서 부정과 불의의 장벽을 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설립되었다.

    • 양일동 통일당 총재가 세상을 떠났다.

    • 독립문 현저동 이전복원 공사가 완료되었다.

    • 경희대 등 전국 14개대생들이 어용교수 퇴진 및 학원자율화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고려원양 노동자 2,700여 명이 체불임금 7억여 원 청산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금융노조는 임금 20.6% 인상을 요구하며 노동청에 조정신청을 냈다.

  • 4월 2일

    • 신민당 당기위는 지구당 개편대회 폭력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남원 등 3개 지구당위원장에 제명처분을 내렸다.

    • 홍대생 4백여 명이 총학생회장 직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광산노조 지부장들이 동자부로 몰려가 임금인상을 요구하였다.

    • <울트라맨 80>이 일본 TBS에서 첫 전파를 탔다.

  • 4월 3일

    • 정부는 대통령 직속기구 '헌법개정심의위원회'를 발족하였다.

    • 서울대는 총학 구성을 승인하는 학생자치기구 개설 조항을 학칙에 신설한다고 결정하였다.

    • 세종대생들이 재단-학원 분리 및 어용교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홍대생들이 이사진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경기대생 1백여 명이 학장-어용교수-재단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한국체대와 서일공전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건대 선수 황병일이 대학야구 춘계연맹전에서 원광대를 상대로 한국 야구사상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였다.[4]

  • 4월 4일

    • YS-DJ 양측은 회담에서 범민주권 통합에 대한 의견차를 보였다.

    • 서울대교수협은 족벌학원경영자 사퇴와 군사교육 개선, 교수재임용 철폐, 교수협의회 결성 등을 결의하였다.

  • 4월 6일

    • 전남-경남 등지에서 태풍을 동반한 집중호우로 9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되었다.

    • 한국 축구대표팀이 모스크바 올림픽 1차 예선에서 말레이시아에 1-2로 패해 본선진출이 좌절되었다.

  • 4월 7일

    • 공화당 의원총회는 이후락 등 정풍운동 주도자 4명을 제명했다.

    • 검찰은 경찰의 수사권독립 주장을 반박한 <소위 경찰대화자료의 허위성>이란 유인물을 냈다.

    • 통일당은 고 양일동 총재의 사회장을 거행하였다.

    • 경희대생 5백여 명이 농성 도중 조영식 총장 사퇴요구 등을 담은 <경희인의 백서>를 배포하였다.

    • 유도대생 3백여 명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4월 8일

    • 신현확 총리는 경찰 수사권독립을 둘러싼 검-경 간 마찰에 대해 양측의 자제를 촉구하였다.

    • 국산 구축함 1호 '울산함' 진수식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개최되었다.

  • 4월 9일

    • 청피노조가 임금인상 및 퇴직금제, 노동 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한양대 측은 교직원을 사칭한 운동부원 40여 명을 동원해 농성 학생들을 폭행했다.

  • 4월 10일

    • 한양대생 1,500여 명은 '농성학생 폭행사건'에 대한 김연준 총장의 해명을 요구하며 총장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 성대생들이 병영집체훈련 거부를 결의하였다.

    • 울릉도 저동항이 준공되었다.

  • 4월 11일

    • 신현확 총리는 미국 NYT지 회견에서 대학가 소요사태 등 사회 혼란으로 계엄령 유지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 경제기획원은 '유통산업근대화 기본계획'을 마련하였다.

    • 서울대생들은 '4월 혁명 기념제 및 고 김상진 열사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 서울지역 9개대 학생대표들이 학원사태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서울노동위는 롯데, 크라운, 동양, 서울식품 등 4개 식품업체에 근로시간을 하루 12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토록 직권조정을 발동하였다.

  • 4월 12일

    • 국회는 4월 말까지 개헌안을 마련하여 5월 임시국회에 보고/접수시킨 뒤 정부에 이송키로 합의하였다.

    • 동일방직복직투위는 복직을 요구하며 거리 선전전 및 가두시위를 벌였다.

  • 4월 13일

    • 세종대생들이 주영하 학장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성대생들이 군사교육을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 경희대생들이 조영식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 4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중정부장 서리로 겸직발령을 내렸다.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심의했던 개정안 조항을 정리해 소위 활동을 종결지었다.

  • 4월 15일

    • 육군 계엄고등군법회의는 YWCA 위장결혼식사건 항소심에서 윤보선, 함석헌의 항소를 기각했다.

    • 문교부는 1986년 하계 아시안게임을 서울서 유치키로 결정하였다.

    • 진해화학노조는 임금인상 및 근로복지시설 개선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서울대생 2천여 명이 대통령 특별담화에 대한 항의집회를 열었다.

  • 4월 16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정부의 정치일정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 신민당은 '학원사태 조사단'을 구성하였다.

    • 청평양수발전소 1~2호기가 준공되었다.

    • 서강대생들이 병영집체훈련 거부를 결의하였다.

  • 4월 17일

    • 김옥길 문교장관은 학교재단은 공익법인이니 학교-학생 양자는 타협하고 상호 책임지는 선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 금융노조 8개지부 간부 68명이 임금인상 및 금융기관 자율화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4월 18일

    • 신민당은 마포당사 4.19 20주년 기념식에서 4.19 정신계승과 민주구현 결의를 다짐하였다.

    • 문교부는 최근 학원사태 관련 자료에서 휴교 19, 철야농성 24, 어용교수 퇴진요구 24, 시설확충 요구 11, 학원자율 요구 20개교로 각각 잠정 집계했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대표 6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청피노조 농성이 노동청의 중재로 협상이 타결되며 종료되었다.

    • 청피노조는 농성 해단식에서 <8백만 노동자에 보내는 메세지>를 발표하였다.

    • 반도상사 인천공장 노동자 7백여 명이 농성 8일만에 임금인상을 쟁취하였다.

    • 짐바브웨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했다.

  • 4월 19일

    • 문공부는 1975년 사이공 함락 때 억류되었던 이대용 공사 등 3명이 귀국했다고 밝혔다.

    • 중앙재해대책본부는 강풍/폭우로 2명이 숨지고 14명이 실종되었다고 밝혔다.

    • '한국지퍼(YKK)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20일

    • 정부는 6월부터 KBS-TV를 통해 <가정고교> 프로그램을 방영키로 결정하였다.

    • 광운공대 설립자 화도 조광운 박사가 세상을 떴다.

  • 4월 21일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신현확 총리의 정부주도 개헌 회견을 중시하고 신 총리가 위원회에 출석토록 요구하였다.

    • 산선 총무 서경석과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정명자가 구속되었다.

    •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소속 광부 7백여 명이 임금 인상 및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탄광촌을 점거해 경찰과 대치하였다.(사북사건)

  • 4월 22일: 강원 사북읍에서 광부-경찰 간 충돌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광부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4월 23일

    • 신현확 총리가 국회 헌법개정특위 출석을 거부했다.

    • 외무부는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방침을 대한체육회에 통보하고 불참을 권고했다.

    • 서울대 농대생들이 어용교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4월 24일

    • 사북사태대책본부-광부대표 양측은 노조 집행부 총사퇴, 상여금 연 400% 인상 등 11개항에 합의하였다.

    • 사북사태대책본부는 피해 규모가 사망자 1명, 부상자 1백여 명, 건물파괴 1백여 채라고 밝혔다.

    • 한국노총은 사북사태가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동3권 규제로 노조가 제 역할을 못해 발생한 거라며 노동질서 회복을 주장했다.

    • 서울지역 14개대 교수 361명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서울대 총대위원회는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 서강대 1학년생들이 병영집체훈련 거부를 결의하였다.

    • 성대 1학년생들이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며 농성을 벌였다.

    • 항공대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미국 특수부대가 주 이란 미대사관에 억류된 자국인 인질구출에 돌입하다 실패했다.

  • 4월 25일

    • 정부와 강원도경은 사북사태 주동자 30여 명이 외지로 도피했음을 밝혀내고 주동자 수사에 착수했다.

    • 정부는 '임대가옥 입주에 관한 특별법'을 마련하였다.

    • 인천제철 노동자 7백여 명이 현 경영진 퇴진 및 기본급 책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국제실업 해외근로자 가족 및 국내 근로자 2백여 명이 체불임금 청산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일신제강 노동자 6백여 명이 노조지부장 사퇴 및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30여 명이 복직 및 노조집행부 퇴진을 요구하며 한국노총 위원장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 4월 26일

    • 신현확 총리는 자신과 대통령의 1981년 대선출마 가능성 및 신당 관련설을 부인했다.

    • 정부는 컬러TV 시판시기를 8월로 잠정 결정하였다.

    • 조계종 6대 총회는 무기명 비밀투표에서 월주 스님을 새 총무원장으로 선출하였다.

  • 4월 28일

    • 국민대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서울대 학장회의는 현 군사교육제도의 조속개혁을 당국에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 신민당 사북사태진상조사단은 노조간부 직선 등을 통해 노조민주화와 자율화를 촉구하였다.

    • 김녹영 통일당 총재대행은 만주회복 때까지 모든 재야인사 및 정당사회단체의 연합전선 구성을 제창하였다.

    • 동국제강 부산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민주노조 인정 및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하였다.

    •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해고자 복직 및 임금인상, 노조 정상화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4월 29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유신세력 퇴진 및 대통령 중심제/국회의원 소선거구제 촉구 당론을 밝혔다.

    • 전두환 중정부장서리는 본인의 부장서리 및 보안사령관 겸직이 정치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 건대생 20여 명이 이사진 전원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경기대 행정학과생 30여 명이 전병두 학장 퇴진을 요구하며 학장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금성통신 안양공장 노동자 3천여 명이 임금인상과 어용노조 집행부 퇴진 등을 요구하며 운동장 및 강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 동양나이론 울산공장, 반도상사, 대한모방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동국제강 부산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임금인상 농성 도중 출동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 4월 30일

    • 최규하 대통령은 사북사태와 관련해 노사문제는 법절차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계엄사는 전군지휘관회의에서 학원사태 등에 우려를 표명하며 폭력행위를 엄단키로 결의했다.

    • 고려대 총학이 '제1차 민주화 공개토론회'를 개최하였다.

    • 서울 오산고생 4백여 명이 교장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율리아나 네덜란드 여왕이 베아트릭스 공주에게 양위했다.

2.1.5. 5월[편집]

  • 5월 1일

    • 정부는 대학 군사교육을 종전의 주 4시간에서 2시간으로, 대상학년도 2학년까지로 각각 축소시킨다고 밝혔다.

    • 성대생들이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며 농성을 벌였다.

    • 부산남부경찰서는 동국제강 부산공장 농성사태 관련자 6명을 포고령 1호 위반으로 구속했다.

  • 5월 2일

    • 정종택 노동청장은 한국노총 측의 국가보위법상 노동기본권 제한조항 시행유보 요구 수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 서울대생들이 '민주화 대행진'을 개최하였다.

    • 고려대생 1천여 명이 계엄철폐 및 유신잔당 척결, 정치일정 단축 등을 요구하며 연좌농성 후 철야농성을 벌였다.

    • 전북대-경북대생들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전남대-조선대생들이 학내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서울형사지법은 이재문, 신향식, 안재구, 최석진 등 남민전 사건 관련자 4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 5월 3일

    • YS-신 총리 양측이 '선 안정-선 민주화' 문제로 갈등을 보였다.

    •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이하 전민노련)'이 창립되었다.

    • 서울대생 1만여 명이 계엄해제 및 이원집정부제 구상 철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대우중공업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규탄 및 단협 준수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세진전자 등 한국노총 금속노련 남서울지부 산하 9개 분회가 어용노조 퇴진을 외치며 지부 사무실을 점거농성하였다.

  • 5월 4일

    • 정부는 연탄값을 35.2%, 석탄값을 41.9%로 각각 인상했다.

    • 국민연합은 학원민주화 및 비상계엄 해제를 주장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티토 유고연방 초대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 5월 5일: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새 대통령은 안보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행정경험자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5월 6일

    • 신민당 비당권파 24명은 동교동 모임에서 독자기구를 구성키로 결정하였다.

    • 남북총리회담 실무대표 7차 회의가 개최되었다.

    • 이대생들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이대 총학은 5월을 '이화 민주투쟁의 달'로 결정하였다.

    • 한신대생들은 계엄해제 등을 담은 시국선언문 발표 후 농성에 돌입하였다.

    • 한국외대생들이 '민주화촉진대회'를 개최되었다.

    • 숭전대생들은 계엄철폐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연대 총학은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비상학생총회를 개최하였다.

    • 전북대생 3천여 명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동국대생들이 '민주화를 위한 학원대회'를 개최하였다.

    • 각 대학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연합시위를 벌였다.

  • 5월 7일

    • 신민당은 계엄해제를 정부 당국에 촉구하였다.

    • 한국은행은 GNP가 16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고 밝혔다.(1/4 분기 내 전년대비 1.7% 감소)

    • 외대-연대 교수들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한신대 대학원생들이 <민주화운동에 즈음한 우리의 결의>를 발표하였다.

    • 홍대생 1천여 명이 '범민주화 촉진대회'를 개최하였다.

    • 외대생 8백여 명이 야간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 중대 등 각 대학생들이 계엄철폐 및 민주화 촉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5월 8일

    • 전국 각지 대학생들이 '시국성토대회'를 개최되었다.

    • 서울지역 대학신문들이 <시국에 대한 대학신문 결의>를 채택하였다.

    • 중대 총학이 <5.8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외대 교수들은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WHO천연두 박멸을 공식 선언했다.

  • 5월 9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계엄해제, 임시국회 즉각 소집, 정부주도 개헌작업 중지 등을 요구하였다.

    • 중대-숙대 교수들이 계엄철폐 요구 등을 담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건대-인하대생들이 '시국성토대회'를 개최하였다.

    • 숙대-한양대생들이 횃불시위를 벌였다.

    • 이대생들이 연좌시위를 벌였다.

    • 서울대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이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한국노총 금속노조 산하 25개 지부 조합원들은 어용노조 집행부 규탄 및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금속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미 국방부는 한국 DMZ에서 미군 경찰대가 괴한들과 총격전을 벌였으나 사상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 5월 10일

    • 김도창 법제처장은 개헌공청회 개최를 보류한다고 밝혔다.

    • 전국 23개대 총학생회장은 계엄해제 요구 등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 동국대 교수 198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최규하 대통령이 사우디 및 쿠웨이트 방문을 위해 중동으로 떠났다.

    • 단대생들이 '시국대토론회'를 개최하였다.

    • 롯데제과 노조는 민주후보 신태웅 노동자를 새 지부장으로 선출하였다.

  • 5월 11일

    • 신현확 총리는 사회가 안정되었다고 판단될 시 즉각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 동명목재 부산공장 노동자 3천여 명이 공장 정상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5월 12일: 부산 해운대 조선비치호텔 종업원 310명이 어용노조 퇴진, 임금인상, 외국인 경영자 교체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5월 13일

    • 정부는 국회측과 개헌안 이견 사전조정방침을 수립하였다.

    • 서울지역 6개대생들이 세종로 일대에서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에 나섰다.

    • 한국노총은 전국 11개 시/도에서 '노동기본권 확보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 고려대 교수 236명이 '교수협의회'를 발족하였다.

  • 5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은 자베르 3세 쿠웨이트 국왕과 원유공급 문제 및 경협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 신민당은 소속의원 66명 명의로 '비상계엄 해제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김옥길 문교장관은 학생들의 자제/자숙을 당부하며 야간시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 전국 27개대 총학생회장단이 <시국에 관한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 서울지역 21개대 및 지방 11개대생 총 15만여 명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자정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

    • 롯데제과 노조원 2,700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벌였다.

  • 5월 15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민주화작업 연내 완결을 위한 일정 공개 및 정부주도 개헌심의위 해체를 주장하였다.

    • 신현확 총리는 학생들의 자숙/자제를 호소하며 법질서 파괴행위가 지속될 시 방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김옥길 문교장관은 학생들의 가두시위에 대해 최 대통령 귀국 시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 지식인 130여 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전국 30개대생 수십만 명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서울지역 35개대생 10만여 명이 서울역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 심재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격론 끝에 시위대를 회군시켰다.(서울역 회군)

    • 서통 노동자 1천여 명이 회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 5월 16일

    • 최규하 대통령이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귀국했다.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대통령중심제 및 4년임기, 1차 중임 등을 담은 헌법 개정안 작성을 완료하였다.

    • 전국 55개대 총학생회장 95명이 이대에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장단 회의'를 개최했다.

    • 서울지역 25개대 및 지방 2개대 총학생회장들은 시위 중단 후 정상수업에 돌입토록 결의하였다.

    • 기협은 계엄당국의 보도검열 반대 결의문 및 행동지침을 채택하였다.

    • 주한 유엔사 공보과장은 북한군이 DMZ에 침투해 미군과 교전을 벌였다고 밝혔다.

  • 5월 17일

    • 민관식 국회의장대행은 의원 186명의 소집요구에 따라 20일 제104회 임시국회 소집을 공고하였다.

    • 신민당은 소속의원 66명 명의로 '민주화를 위한 정치개혁일정 완결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국무회의는 18일 0시부터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 비상계엄지역을 확대키로 의결했다.(5.17 내란)

    • '전국섬유노동조합 서통지부(이하 서통노조)'가 결성되었다.

    • 경찰은 이대 전국총학회장단 회의를 급습해 전국 55개대 학생대표 95명을 연행했다.

  • 5월 18일

    • 계엄사는 전/현직 국가원수 비방 금지, 정치활동 중지, 대학 휴교 등을 담은 '포고령 10호'를 발표했다.

    • 계엄사는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 및 시위 배후조종 혐의자 26명을 연행/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광주 전남대생 6백여 명이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정문 앞에서 투석전을 벌였다. 이는 광주항쟁의 시발점이었다.

    • 미 국무부는 한국의 계엄령 확대에 우려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국 워싱턴 주 스카미니아에서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폭발해 57명이 숨졌다.

  • 5월 19일

    • 광주항쟁이 공수부대의 폭력진압을 계기로 시내 전역에 확산되었다.

    • 경향신문 등 언론사 기자들이 5.18에 대한 왜곡보도에 반발해 제작거부 투쟁을 벌였다.

  • 5월 20일

    • 계엄사는 당월 18일부터 광주 일원에 소요사태가 발생해 아직 수습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 특전3공수 병력이 광주역에서 시위대에 난사해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했다.

    • 전남일보-전남매일이 발행을 중단했다.

    • 광주MBC 궁동사옥과 광주세무서가 시위대에 의해 방화되었다.

    • 신현확 총리 등 국무위원 전원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 진의종 보사장관은 노사분규에 전 행정력을 동원하라고 노동청에 지시했다.

    • 대법원은 10.26 사태 관련자 김재규 등 5명에 사형, 김계원에 무기징역, 유석술에 징역 3년을 각각 확정했다.

    • 캐나다 퀘벡 분리독립 찬반 투표에서 주민들 중 약 60%가 반대함으로서 독립이 무위로 돌아갔다.

  • 5월 21일

    • 특전11공수 33대대 병력이 광주 전남도청 앞 시위대에 무차별 난사해 54명이 숨지고 5백여 명이 부상당했다.

    • 광주 시위대가 광주교도소, 전남도청/도경 등을 뺀 전 관공서를 완전 장악하였다.

    • KBS광주 사옥과 광주시내 8개 파출소들이 시위대에 의해 방화되었다.

    • 광주 시위대가 무기고 탈취 후 소총 등으로 무장해 밤 사이 계엄군을 시 외곽으로 몰아냈다.

    • 광주 학생수습위원회 및 시민수습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광주 시민들에게 이성을 회복하고 질서유지를 당부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 최규하 대통령은 박충훈을 총리서리에, 김원기를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개각을 단행하였다.

    •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이 미국에 개봉되었다.

  • 5월 22일

    • 광주항쟁이 목포, 나주 등 인접 시/군으로 확대되었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자대표 8차 접촉이 이루어졌다.

    • 계엄사는 김대중이 학생시위를 배후 조종했다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 미 국무부는 광주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희망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 미 국방부는 항공모함 코럴시호를 한국 근해에 파견한다고 밝혔다.

    • 남코가 비디오 아케이드게임 <팩맨>을 일본에 출시하였다.

  • 5월 23일

    • 박충훈 총리서리는 광주가 치안부재 상태이며, DJ-JP는 포고령 위반으로 연행 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11공수 장병들이 광주 주남마을에서 운행 중이던 미니버스에 난사해 탑승자 17명을 살해했다.(주남마을 총격사건)

    • 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 정부측의 군 소요진압 동원 요청에 동의했다.

  • 5월 24일

    • 10.26 사건의 주범 김재규 등 5명이 교수형이 서울구치소에서 집행되었다.

    • 11공수 62대대 장병들이 광주 송암동에서 무반동포로 군용트럭에 오인사격하는 바람에 광주보병학교 교도대 9명이 숨졌다.

    • 위 부대 장병들이 오인사격에 대한 분풀이로 송암동 일대 주민들과 가축들을 무차별 학살했다.(광주 송암동 학살사건)

  • 5월 25일: 최규하 대통령은 광주사태 해결을 위한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 5월 26일

    • 내무부는 광주시위로 전남 행정기능이 마비되어 본부가 시/군 예산지원 및 행정지도를 직접 담당키로 결정하였다.

    • 이광표 문공장관은 '광주 소요사태에 대한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 내무부는 안병하 전남도경국장을 대기 발령시키고 송동섭 치본 작전과장을 새 국장직에 앉혔다.

    • 광주수습위는 '전남도청 독침사건' 관련 내용을 발표하였다.

  • 5월 27일

    • 계엄군이 새벽 3시 반에 광주 시내로 진입해 전 시가지를 완전 장악했다.

    • 계엄사는 안병하 전남도경국장을 지휘권 포기혐의로 연행했다.

    • 계엄사 측은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17명 사망, 군인 2명 순직, 295명 체포라고 발표했다.

    • 장형태 전남지사가 사임했다.

  • 5월 28일

    • 국무회의는 '광주사태 긴급구호 및 복구처리방안'을 승인했다.

    • 정부는 광주사태에 따른 금융 및 세제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 사북사태 관련자 25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 김종호가 새 전남도지사로 취임했다.

    • 미국 정부는 본국의 대한방위공약 준수결의를 재확인했다.

  • 5월 29일

    • 한국은행은 광주사태 관련 전남지역 피해 사업체에 시설복구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 광주지검 및 전남북계엄분소 합동검시반은 광주항쟁 희생자 검시를 종료했다.

    • 전라남도는 광주시 피해복구를 위해 취로사업비 2억 7천만 원을 방출키로 요청했다.

  • 5월 30일

    • 김종호 전남지사는 기자회견에서 민심수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 뒤 후유증 없도록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밝혔다.

    • 서강대생 김의기가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배포한 후 기독교회관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 대한체육회는 모스크바올림픽 불참 결정에 따라 태릉선수촌 대표선수 강화훈련을 중단했다.

  • 5월 31일

    • 정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 계엄사는 광주사태 당시 사망자 170명, 부상자 380명, 체포 1,740명이라고 했으며 이 중 730명을 조사중이라고 발표했다.

    • 광주시내 각 국교가 휴교 13일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2.1.6. 6월[편집]

  • 6월 1일

    • 서기원 청와대 대변인은 국보위 운영에 관해 최규하 대통령이 주재하는 대로 수시로 열릴 거라고 밝혔다.

    • 전남북계엄분소는 밤 9시로 연장된 통금시간을 원래 시간으로 환원했다.

    • 미국 TBS가 세계 최초의 케이블TV 뉴스채널 'CNN'을 개국하였다.

  • 6월 2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중정 서리에서 사임했다.

    • 정부는 중단되었던 헌법개정요강작성소위를 재개했다.

    • 문공부는 일본 교도통신 서울지국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 장기신용은행이 개점되었다.

    • 전남매일-전남일보가 12일만에 발행을 재개했다.

  • 6월 3일

    • 서울시경은 폭력배 특별단속에서 2,371명을 검거하고 2명 군사재판 회부, 251명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 경찰은 사북사태와 관련해 동원탄좌 사장 이혁배 등을 구속하였다.

  • 6월 4일

    • 정부는 공무원 기강확립을 위해 '공무원 숙정'을 시사했다.

    • 계엄사는 광주사태와 연행자 중 혐의가 가벼운 206명을 석방했다고 밝혔다.

    • 경기 강화 아차분교에 국내 최초로 태양열발전소가 설치되었다.

  • 6월 5일

    • 최규하 대통령은 국보위 상임위원 30명을 임명했다.

    • 정부는 '긴축 완화를 위한 종합경제대책'을 발표하였다.

    • 계엄사는 광주사태 사망자 수를 148명이라고 밝히고 신원이 확인된 12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 광주MBC, 광주CBS, 전일방송이 방송을 재개했다.

  • 6월 7일: 서울 서강대교가 착공되었다.

  • 6월 9일

    • 계엄사는 언론인 8명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검거하겠다고 밝혔다.

    • 삼진특수철 노동자 김종태가 서울 이대앞 4거리에서 <광주 시민/학생들의 넋을 위로하며>란 유인물을 뿌리고 분신했다. 이후 그는 닷새 만에 숨을 거두었다.

  • 6월 10일: 마산 외자기업 한국신흥화학 노동자들이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다.

  • 6월 11일

    • 치안본부는 미국에서 음주운전 측정기를 도입해 전국 경찰관서에 배포하였다.

    • 김병룡 금속노조위원장이 연내 사퇴 의사를 밝혔다.

  • 6월 12일: 최규하 대통령이 '국가기강확립, 국정방향, 정치일정에 관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 6월 14일: 광주시내 13개 여고 및 25개 남고가 휴교 26일만에 다시 열었다.

  • 6월 15일: 국보위는 '공직자 숙정계획'을 발표했다.

  • 6월 16일: KBS-TV에서 <가정고교>가 첫 전파를 탔다.

  • 6월 17일

    • 국보위는 정화자료 등을 수집키 위해 민원실을 설치했고.

    • 계엄사는 부정축재, 국기문란, 시위주동, 배후조종 등 혐의로 오치성, 이용희 등 정치인과 교수, 목사, 언론인, 학생 등 329명을 지명수배했다.

  • 6월 18일

    • 외무부는 UAE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다고 밝혔다.

    • 계엄사는 권력형 부정축재에 대한 수사를 발표하면서 축재금액이 총 853억 1,154만원이라고 주장했다.

  • 6월 19일

    • 계엄사는 당월 23일부터 대학 휴교를 '휴업'으로 변경했다.

    • 축구선수 차범근이 서독 분데스리가 베스트11로 선정되었다.

  • 6월 20일

    • 총무처 행정자문위원회가 신설되었다.

    • 판문점 자유의집 별관이 준공되었다.

  • 6월 24일

    • 계엄사는 국기문란/시위관련 수배자 324명 중 97명이 자수했다고 밝혔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자대표 9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권운상, 황인오 등 6명이 미스유니버스 폭파기도 혐의로 구속되었다.(미스유니버스 폭파미수 사건)

  • 6월 25일

  • 6월 28일

    • 상공부는 컬러TV 방식을 미국 NTSC 방식으로 확정한다고 밝혔다.

    • 마산 쌍섭정밀노조가 자진 해산되었다.

2.1.7. 7월[편집]

  • 7월 3일: 계엄사는 광주사태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주동/배후조종자 53명, 교도소 습격자 30명, 방화/약탈자 33명, 살상 감행자 174명, 유언비어 유포자 10명, 기타 시위 적극 가담자가 75명 등이라고 밝혔다.

  • 7월 4일: 계엄사는 김대중 등 37명을 내란 음모혐의로 군사재판에 송치하겠다고 밝혔다(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 7월 5일: 에너지관리공단이 설립되었다.

  • 7월 7일: 정부는 일본 아사히신문 및 지지통신 서울지국에 유언비어 유포 혐의를 적용해 폐쇄 조치를 내렸다.

  • 7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제29회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 본선이 개최되었다.

  • 7월 9일: 국보위는 사회정화작업의 일환으로 2급 이상 공무원 232명을 숙정했다고 발표하였다.

  • 7월 11일: 정부는 8월 1일부터 컬러TV 시판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 7월 12일: 계엄사는 5.18 광주항쟁 유인물과 녹음 테이프를 제작한 오태순 신부 등 가톨릭 성직자 7명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연행하였다.

  • 7월 15일

    • 국보위는 행정부의 3급 이하 공직자 4,760명을 숙정했다고 발표했다.

    • 미국 하원의원 스티븐 솔라즈는 미국 의원으로선 최초로 평양을 방문해 사흘 뒤 김일성과 면담했다.

  • 7월 18일: 최규하 대통령은 전역한 유학성 육군대장을 새 중앙정보부장에 임명하였다.

  • 7월 19일

    • 계엄사는 전직 장관 3명과 국회의원 14명을 비리/퇴폐로 국가 기강을 문란시킨 혐의로 연행/조사중이라고 발표하였다.

    • 국보위는 은행, 보험, 증권기관의 임직원 431명을 사회정화 명분으로 숙정했다.

    • 1980 모스크바 올림픽 개막식이 레닌중앙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일본에서 열한 마리 고양이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처음으로 개봉되었다.

  • 7월 22일: 국보위는 정부투자기관 등 산하기관(농협, 수협 제외) 127개에서 임직원 1,819명을 숙정했다고 발표하였다.

  • 7월 27일: 동명목재 해체 사태가 발생했다.

  • 7월 30일

    • 한국신문협회는 자율정화 결의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언론인 933명이 강제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 국보위는 대입 본고사제 폐지, 졸업정원제 실시, 과외 금지 등을 골자로 한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을 마련하였다.

    • 바누아투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7월 31일

    • 문화공보부는 창작과비평과 씨알의 소리, 뿌리깊은 나무, 소년생활, 월간중앙, 문학과지성, 기자협회보 등 정기간행물 172종의 등록을 취소했다.

    • 문교부는 교육공무원 숙정을 매듭지음으로써 총 611명이 교직에서 쫓겨났다.

    • 신군부는 김대중을 군사재판에 기소하였다.

2.1.8. 8월[편집]

  • 8월 1일

    • 국보위는 모든 국민의 신원기록을 일제 정리하고 연좌제를 폐지하기로 발표했다.

    • 서울 도심의 신호등이 컴퓨터에 의한 전자감응식으로 바뀌었다.

  • 8월 2일: 이날부로 삼성전자와 금성사에서 컬러 TV의 시판을 개시하였다.

  • 8월 4일

    • 국보위는 폭력, 마약, 사기, 밀수 등 사회악 일소를 위한 특별조치를 마련하였다.

    • 계엄사는 삼청계획 5호에 따라 계엄포고 제13호(불량배 일제 검거에 대한 포고령)를 발동했다. 겉은 그럴싸했지만 사실은 삼청교육대의 시작이었다.

  • 8월 6일

    • 국보위는 사회악 소탕에 대해 중간 발표하며 폭력배, 전과자 등 16,599명을 검거하고 이들을 A급(군사재판), B급(근로봉사), C급(순화교육)으로 나눈다고 발표했다.

    • 요트 '파랑새호'가 태평양 횡단에 성공하였다.

  • 8월 8일

    • 문교부는 족벌체제 사학 부조리를 조사키 위해 세종대에 특별감사를 실시하였다.

    • 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이 <LA타임스> 인터뷰에서 "한국인은 레밍(들쥐)"이라 발언해 전두환의 정권장악에 따른 한국 국민의 순응을 비판했다.

    • 전두환 의장은 뉴욕타임즈와의 회견에서 한국은 새 시대의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

  • 8월 9일: 동아일보는 지방 주재기자 7명을 포함한 기자 33명을 강제 해직시켰다.

  • 8월 11일

  •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는 북한 조선적십자회에 남북적십자회담을 무조건 재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 8월 13일: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정계 은퇴를 피력했다.

  • 8월 14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공판이 열렸다.

  • 8월 15일: 국보위는 사회악 사범 30,578명을 검거하고 이중 19,000여 명을 군부대에서 순화교육 중이라고 발표했다.

  • 8월 16일

    • 최규하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하야했다. 그의 빈 자리에는 박충훈 총리가 앉아 대신 대통령직을 대행했다.

    • 같은 날 연예계에도 사회정화운동이 실시되기 시작되면서 당월 29일까지 이주일, 나훈아, 심수봉, 배삼룡 등 24명의 연예인들이 출연금지 조치를 받았다.

  • 8월 17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에서는 미국 정부가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오르는 데엔 반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 8월 18일: 이날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자대표 10차 접촉이 이루어졌다.

  • 8월 19일

  • 8월 20일: 국보위가 중공업 분야에 대한 투자조정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한라그룹의 중추였던 현대양행이 대우로 넘어가 '한국중공업'이 되었다.

  • 8월 21일

    • 국방부 전군주요지휘관회의는 차기 대통령에 전두환 의장을 추대할 것을 결의하였다.

    • 노동청은 '노동계 정화지침'을 시달해 김영태 노총위원장 겸 섬유노조 위원장과 김병룡 금속노련 위원장 등 한국노총 산별노조 위원장급 12명이 해임되었다(제1차 노동계 정화조치).

  • 8월 22일: 전두환 육군 대장이 전역했다.

  • 8월 26일

    • 서울대 교수 7백여 명은 본교에서 열린 학원정상화 촉진 결의대회에 참석하였다.

    • 대법원은 YWCA 위장결혼식 사건 관련자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였다.

  •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서울 장충체육관 선거 결과 전두환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는 통대선거에 의한 마지막 대통령 선출이었다.

  • 8월 28일: 계엄사는 포고령 제14호를 발표하여 대학 휴교령을 전면 해제시켰다.

  • 8월 31일: 폴란드 인민 공화국에서 사회주의 국가 사상 처음으로 자유 노조가 결성되었다.

2.1.9. 9월[편집]

  • 9월 1일: 전두환대한민국의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 9월 2일: 전두환 신임 대통령은 국무총리서리에 남덕우, 감사원장에 이한기를 임명하고 기존 11개부 장관을 해임하는 개각을 단행하였다.

  • 9월 3일

    • 전국의 대학이 109일만에 정상수업을 개시했다.

    • 노동청은 '노동조합 정화 역이용 사례 방지 지침'을 전경련, 경총, 한국노총, 대한상의 등에 하달하였다.

  • 9월 5일

    • 문교부는 대학교육개혁시안을 발표하며 학과별 최소 졸업정원제를 마련키로 하였다.

    • 서울고법은 이재문 등 남민전 관련자 4명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 한국도서출판주간신문잡지윤리위원회는 '만화정화방안'을 마련했다.

  • 9월 9일: 샤트 알-아랍 수로를 탐낸 이란과 이라크 간의 영토 분쟁이 일어나 전면전으로 번질 위기에 처했다.

  • 9월 13일: 정부는 중공업 2단계 통합조정을 단행했다.

  • 9월 14일: <젊음의 행진>이 KBS-TV에서 처음 방영되었다.

  • 9월 16일: 정부는 종합경제대책을 마련하여 예금대출금리를 월 평균 2% 포인트로 내렸다.

  • 9월 17일: 육군보통군법회의는 김대중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 9월 20일: 이날 신군부의 제2차 노동조합 정화조치에 따라 김문수, 방용석 등 민주노조 간부 191명이 강제로 사표를 쓰고 말았다.

  • 9월 22일: 이라크사담 후세인이 선전포고 없이 이란을 침공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 9월 27일: 정부는 '기업체질 강화대책'을 발표해 20개 재벌의 계열기업 정리 및 대기업의 모든 부동산 신고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 9월 29일: 정부는 제5공화국 개헌안을 공고하였다.

2.1.10. 10월[편집]

  • 10월 7일

    • 상공부는 중전기기, 디젤엔진, 동제련, 전자교환기 등에 대한 중화학 투자 직권조정을 발표하였다.

    • 북한 정부는 남북총리회담에 불응할 것을 밝혔다.

  • 10월 10일: 북한의 김일성은 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새로운 통일 방안인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안'을 제의했다.

  • 10월 15일: 경주~포항 간 고속화도로가 개통되었다.

  • 10월 16일

    • 전두환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1981년 3월 전에 대통령선거, 4~5월에 국회의원선거, 6월까지 새 정부 수립 계획이라고 밝혔다.

    • 보건사회부는 의료보험공사 설립과 사회복지기금법 제정 등을 골자로 한 '보사행정 장기계획'을 발표하였다.

  • 10월 17일: 일본 MBS에서 <가면라이더 슈퍼-1>이 첫 전파를 탔다.

  • 10월 18일: 고려대학교는 학생시위로 자진 휴업 조치를 내렸다.

  • 10월 20일: 북한은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 김정일을 차기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다. 이로써 김정일이 북한의 권력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 10월 21일: 농촌드라마의 전설이기도 한 전원일기가 MBC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0월 22일: 제5공화국 헌법이 투표율 95.5%, 찬성 91.6%로 확정되었다.

  • 10월 27일

    • 계엄군과 경찰은 전국의 사찰에 난입해 승려 등 153명을 불법 연행하였다(10.27 법난).

    • 국가보위입법회의 측은 '국가보위입법회의법'을 의결하였다.

  • 10월 28일: 전두환 대통령은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 81명을 임명하였다.

  • 10월 29일: 이호 의장과 정래혁-채문식 부의장을 주축으로 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처음 개최되었다.

  • 10월 31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 ~ 종합운동장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2.1.11. 11월[편집]

  • 11월 1일: 종전의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회가 국무총리 직속 기구인 '사회정화위원회'로 출범했다.

  • 11월 3일

    •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었다.

    • 경희대 반정부 유인물 배포 사건이 발생하였다.

    • 신군부는 '정화된 노동조합 간부의 노조활동 금지 지침'을 발표하였다.

    • 육군 고등군법회의는 김대중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 11월 4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되어 민주당지미 카터 대통령의 연임이 저지되었다. 레이건은 '선 힘, 후 인권' 정책을 선언했다.

  • 11월 7일: 정치풍토쇄신특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11월 8일: 정부는 경제활성화대책을 발표하여 일반대출금리를 22%에서 20%로, 총 통화증가율을 25%에서 27.6%로 각각 조정했고, 특별소비세도 인하했다.

  • 11월 9일: 전국 노래자랑이 KBS-TV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1월 10일: 추곡수매가가 25%로 올랐다.

  • 11월 12일

    • 동아일보 회장 김상만과 중앙일보-동양방송 회장 홍진기, 한국일보 회장 장강재, 신아일보 사장 장기봉 등 주요 언론사주들이 보안사에 강제 연행되어 언론사 포기각서를 제출하였다.

    • 이날자 동아일보에 나대로 선생이 연재를 시작하였다.

    • 정치쇄신특별위원회는 정치활동 규제대상자가 811명이라고 발표했다.

  • 11월 13일: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 11월 14일

    • 계엄사는 10.27 법난을 통해 불교계 부조리수사 결과를 발표하여 승려 등 18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하였다.

    • 한국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는 '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발표하여 그 악명높은 언론통폐합을 결정했다.

  • 11월 17일: 작곡가 이흥렬이 세상을 떴다.

  • 11월 19일: 서울 김포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015편 착륙 사고가 일어나 탑승 인원 중 14명이 사망했다.

  • 11월 21일: 신군부는 계엄포고령 15호를 내려 정치활동 피규제자의 일부에게 정치활동 재개를 허용시켰다.

  • 11월 24일: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경남일보가 종간되었다.

  • 11월 25일: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신아일보, 서울경제신문, 일간내외경제, 영남일보, 시사통신, 무역통신 등이 폐업되었다.

  • 11월 26일: 현대경제일보가 <한국경제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다.

  • 11월 29일: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이 종간되었다.

  • 11월 30일: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동양방송동아방송, 전일방송, 서해방송, 한국FM, 국제신문 등이 종방/종간되었다.

2.1.12. 12월[편집]

  • 12월 1일

    • KBS 1TV에서 수출의 날 기념식 생중계를 시작으로 국내 최초의 컬러방송을 시작했다.

    • KBS 2TV가 개국하였다.

    • 광주일보가 창간되었다.

    • 민간단체인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발족되었다.

  • 12월 5일: 국가보위입법회의는 보호감호제도를 골자로 한 '사회보호법'을 통과시켰다.

  • 12월 6일: 노동청은 제3자 개입금지, 산별노조의 기업노조 전환, 유니언숍 제도 폐지, 노조 설립요건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노동조합법과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 12월 8일: 미국에 거주하던 존 레넌이 자신의 저택 앞에서 마크 채프먼에 의해 총상을 입고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 12월 9일: 최초의 반미투쟁인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광미방)이 발생했다. 이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압 과정에 미국이 한국군 4개 부대의 이동을 승인하고 이를 방관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 12월 11일

    • 문공부는 (주)문화방송-경향신문 주식 중 65%를 KBS가 인수하고 나머지 35%를 5.16장학회가 보유하도록 한다고 발표하였다.

    • 정부는 시인 김지하 등 8명을 형 집행정지 결정으로 석방시켰다.

    • 이날 서울대생들이 교내 학생식당과 도서관 계단에서 “반파쇼 학우 투쟁” 및 “반파쇼 투쟁” 등의 구호가 적힌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무림 사건).

  • 12월 13일: 해럴드 브라운 미국 국방장관이 내한해 전두환 대통령과 주영복 국방부 장관과 요담했다.

  • 12월 15일: 국방부는 1982년부터 군 징집연령을 19세로 내리고 군 복무기간도 30개월로 줄일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 12월 18일: 사회보호법이 제정되었다.

  • 12월 19일

    • 정부는 1981년 1월 1일부로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한다고 발표하였다.

    • 국가보위입법회의는 방송광고공사법을 의결하였다.

    •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이 통합되어 연합통신으로 창립되었다.

  • 12월 20일: 계엄사는 전직 CBS 기자 4명을 군 관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검거하고 1명을 수배 중이라고 발표하였다.

  • 12월 22일: KBS 2TV와 MBC가 컬러방송을 시작하였다.

  • 12월 23일: 대법원은 이재문 등 남민전 사건 관련자 4명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지었다.

  • 12월 24일: 교보문고가 설립되었다.

  • 12월 26일: 국가보위입법회의는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 언론기본법, 대통령선거법, 전투경찰대 설치법, 통합 국가보안법 등을 의결하였다. 이 법안들은 5일 뒤 제정되었다.

  • 12월 30일

    • 경제기획원은 1980년 한해 도매물가가 44.2%, 소비자물가가 34.6%로 각각 올랐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경제성장률이 -5.7%로 기록되었다.

  • 12월 31일: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이 종간되었다.

2.2. 가상[편집]

3. 탄생[편집]

3.1. 실존 인물[편집]

3.2. 가상 인물[편집]

4. 사망[편집]

4.1. 실존 인물[편집]

4.2. 가상 인물[편집]

5. 데뷔[편집]

5.1. 가수[편집]

5.2. 배우[편집]

5.3. 예능인[편집]

5.4. 만화계[편집]

  • 강창욱 - <점등>, <탈출>

  • 권현수 - <청춘행진곡>

  • 김학운 - <호랑이의 사랑>

  • 박연 - <환상의 폴로네이즈>

  • 신기원 - <아름다운 여인>, <킬러>

  • 아라키 히로히코 - <무장 포커>

  • 이재복

  • 전일봉

  • 전혜경 - <제니의 노래>

  • 정형기

  • 조대현 - <제갈통 투수>

  • 조주청 - <뫼 뿌리>

  • 최홍재 - <코돌이 박사>

  • 타카하시 요이치 - <캡틴 츠바사>

  • 하승남 - <목림방>

  • 황미나 - <이오니아의 푸른 별>

5.5. 스포츠[편집]

5.5.1. 농구[편집]

  • 김영희

  • 김화순

  • 대럴 그리피스

  • 래리 드류

  • 로리 스패로우

  • 릭 마혼

  • 마이크 그민스키

  • 마이크 오코렌

  • 마이크 우드슨

  • 앤드류 토니

  • 우은경

  • 이원우

  • 제프 럴랜드

  • 조 배리 캐롤

  • 커트 램비스

  • 케빈 맥헤일

  • 키키 반더웨이

  • 테리 스토츠

5.5.2. 배구[편집]

  • 김정순

  • 이명희

  • 정금선

5.5.3. 권투[편집]

6. 히트작[편집]

6.1. 영화[편집]

  • 바람불어 좋은 날

6.2. 가요[편집]

  • 창밖의 여자 - 조용필

6.3. 베스트셀러[편집]

  • 만다라 - 김성동 저.

  • 방황의 끝 - 김이연 저.

[1] 그 당시 소련이 적대국이라는 정치적 이념이 있었지만, 올림픽에까지 불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침공 크리가 터져 동맹국인 미국이 불참을 결정하면서 한국도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2] 물론 경제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제2차 오일 쇼크로 인한 성장 지체였다.[3] 2006년 10월에 사망한 최규하 전 대통령과 2009년 5월에 사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장이었다.[4] 이전까지는 사이클링 히트라는 개념이 한국 야구계에 없었기 때문에 나왔더라도 기록되지 않았다.[5] 세일러 문 코믹스 구단행본 한국판 5권에서 세라(우사기)의 생년월일이 1980년 6월 30일로 나와있다. 이는 한국판 한정으로, 공식적으로는 6월 30일이고 생년은 불명.[6] 애니메이션판을 보면 토모코의 부모는 고등학교 들어간 해 이혼을 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토모코의 부모가 갈라진 것은 고베대지진이 일어나자 아버지가 일에 매달리느라 가정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투하트 RMM 참조.) 그리고 게임의 달력은 게임이 나온 1997년과 동일한 달력을 사용한다. 더군다나 투하트는 당시 규제가 없어 고등학교라는 타이틀을 그대로 쓴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고2. 1980년생이 맞다.[7] 여주인공 한소영의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