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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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력

1400년 ~ 14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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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 경신

주체

69년

민국

69년

일본

쇼와 55년

히브리력

5740년 ~ 5741년


1. 개요2. 사건
2.1. 실제
2.1.1. 1월2.1.2. 2월2.1.3. 3월2.1.4. 4월2.1.5. 5월2.1.6. 6월2.1.7. 7월2.1.8. 8월2.1.9. 9월2.1.10. 10월2.1.11. 11월2.1.12. 12월
2.2. 가상
3. 탄생
3.1. 실존 인물3.2. 가상 인물
4. 사망
4.1. 실존 인물4.2. 가상 인물
5. 데뷔
5.1. 가수5.2. 배우5.3. 예능인5.4. 만화계5.5. 스포츠
5.5.1. 농구5.5.2. 배구5.5.3. 권투
6. 히트작
6.1. 영화6.2. 가요6.3. 베스트셀러
7. 유행어8. 달력

1. 개요[편집]

동아일보 선정 1980년 국내외 10대 뉴스

대한민국 역사상 정치, 경제, 사회 모두 총체적 암흑기

당시 한국에선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살 후 계엄하에 '안개정국'이 조성되어 정치권이 혼란에 빠졌고, 민주화세력들도 갈팡질팡했다. 그런 형국에 서울의 봄5.18 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좌절, '사회정화'를 앞세운 정권의 대숙청, 인권유린 수용소 '삼청교육대'로 대표되어 우리 현대사에서는 아주 비극적이었던 해로 기록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1960년 이후 최초로 1인당 국민소득감소(미국 달러 기준)했던 해이기도 하다.

소련에서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이, 미국에서 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올림픽이 열렸는데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서는 한국, 일본, 서독, 캐나다, 미국 등 서방 국가 및 민주주의 국가들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여 대거 불참하면서 반쪽짜리 대회로 전락하였다. 이 올림픽에서 한국은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으면서 불참하였다.[1]

한국에서는 이때부터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전환되는 시기를 맞이했다. 이미 컬러 방송을 시작할 여건은 마련되어 있었으나, 여러 가지 규제 논란으로 방송 개시가 지연되다가, 다음해인 1981년부터 컬러로도 TV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20년 후인 2000년20세기마지막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참고로 제6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대학수학능력시험처음으로 응시한 세대이기도 하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여름에 유난히 서늘하고 흐린 날이 많아 냉해 피해가 심각했던 해였다. 이로 인하여 한국에서는 흉작 등 심각한 농업 피해를 입었으며,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2]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중부 지역에서는 기록적인 폭염가뭄이 몰아닥쳐 농업 피해가 컸으며, 이로 인하여 세계적인 옥수수, 생산 지역인 이 지역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국제 농산물 가격도 올라갔다.

여담으로, 이 해에는 한국에 올림픽 열기가 없었던 유일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한국 선수단은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선 노메달을 기록했고, 뒤이어 개최된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도 정치적 이유로 불참함에 따라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첫 출전하게 된지 32년만에 현재까지 유일하게 올림픽 열기가 없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여기에 미국은 지미 카터 행정부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의하는 표시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고 일본 역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다. 다만 소련의 맹방이었던 북한은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함에 따라 올림픽 열기는 한반도 기준으로 북한에서만 전파하게 되었다.물론 평양시민만

학계에선 미국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저서 <제3의 물결>을 발표하여 농경 시대-산업화 시대에 이어 '정보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일찌기 예언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 1979년 11,12월생을 포함해서 이 해에 태어났던 이들은 대학 시절엔 운동권에 한해 한총련 7기생으로서 2000년 노근리 양민학살 진상규명 및 매향리사격장 철수투쟁, 2001년 부시방한 반대투쟁, 2002년 효순-미선이 촛불투쟁 등 반미투쟁에 나섰다.

해당 세대들은 1990년 윤보선, 2006년 최규하, 2009년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망을 통해서 생애 처음으로 국내 대통령이 사망하게 되었다는 부고를 들었고 국가 장례를 처음으로 경험한 세대들이다. 특히 국장급의 경우는 사실상 태어나서 첫 경험이기도 하였는데[3] 참고로 이들이 태어났던 이후에 대한민국 국장이 열렸던 사례는 1979년 10월에 사망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 그러다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망하고 국장으로 거행되었기 때문에 이들이나 이 해 이후 세대들부터는 사실상 태어나서 경험한 첫 국장이었다. 2015년 11월에 사망한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는 국가장으로 통합되었다. 국무총리 역시 허정(1988년 사망)부터 김종필(2018년 사망)까지 17명의 부고를 들었다.

2. 사건[편집]

2.1. 실제[편집]

2.1.1. 1월[편집]

  • 1월 1일

    • 최규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국민의 신뢰와 화합을 당부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신년사에서 개헌시한을 앞당겨 1980년 하반기까지 정권을 이양하자고 촉구하였다.

    •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신년사에서 헌법개정을 서둘러 늦어도 1981년 초에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 1월 2일: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설문조사에서 한국을 세계 23개국 중 가장 전망있는 나라라고 밝혔다.

  • 1월 3일: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김성준이 일본 도쿄에서 나카지마 시게오에게 15회만에 패해 4차 방어에 실패했다.

  • 1월 4일

    • 정부는 1980년도에도 긴축정책을 지속키로 결정했다.

    • 고병익 서울대총장은 제적학생 복교 등 학원자율화를 위한 개선책을 밝혔다.

  • 1월 5일: 건국대 충주캠퍼스가 개교되었다.

  • 1월 6일

    • 사우디는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의하며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였다.

    •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가 이끄는 국민회의파가 다시 압승을 거두었다.

  • 1월 8일: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 일대서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했다.

  • 1월 11일: 네덜란드 정부가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였다.

  • 1월 12일: 정부는 대미 환율을 19%, 은행 대출금리 25%, 정기예금금리 24%로 각각 인상했다.

  • 1월 14일

    • 남북조절위 서울측은 리종옥 북한 정무원총리가 신현확 총리 등을 만나자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 영국 정부가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였다.

  • 1월 15일

    • 문공부는 1977년에 폐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 서울지국 재개설을 허가하였다.

    • '전국연합노동조합 서울지부 남화전자 분회(이하 남화전자 노조)'가 결성되었다.

  • 1월 18일

    • 최규하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남북총리회담 용의를 북측에 통보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 등의 내란음모 방조 혐의로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되었다.

  • 1월 21일

    • 섬유노조 집행위는 김영태 섬노위원장 겸 한국노총위원장의 퇴진을 권고하였다.

    • 소련 KGB는 반체제운동가 사하로프 부부를 연행 후 고르키 시로 유배보냈다.

  • 1월 22일: 김옥길 문교장관은 중고교 교복자율화를 학교장 재량에 맡긴다고 밝혔다.

  • 1월 24일: 신현확 국무총리는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제의하며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처음 지칭했다.

  • 1월 25일: 수경사 보통군법회의는 윤보선, 함석헌 등 YWCA 위장결혼식 사건 관련자 17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 1월 26일: 캐나다 정부가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였다.

  • 1월 28일

    • 육군 고등군사재판은 김재규 등 6명에게 사형을, 유석술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하였다.

    • 수경사 보통군법회의는 YWCA 위장결혼식사건 관련자 윤보선과 함석헌에게 형 집행 면제를 내렸다.

  • 1월 29일

    • 육군고등군법 관할관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김계원을 무기로 감형하였다.

    • 정부는 석유화학원료 및 제품값을 최저 20.2에서 최고 66.4%로 올린다고 밝혔다.

  • 1월 31일

    • 문교부는 교육목적 외 학생동원 금지를 지시하였다.

    • 해군 측은 거북선 원형복원 진수식을 열었다.

2.1.2. 2월[편집]

  • 2월 3일: 일본 TV아사히에서 <전자전대 덴지맨>이 첫 전파를 탔다.

  • 2월 4일: 경제기획원은 '유통근대화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 2월 5일

    • 남북조절위 서울측은 남북총리회담 준비 실무대표를 김영주 외무부 본부대사, 정종식 통일기획실장, 이동복 한적 사무국장으로 결정하였다.

    • 프랑스 정부가 리비아와 단교했다.

  • 2월 6일: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대표접촉이 판문점에서 진행되었다.

  • 2월 7일: 남북직통전화가 3년 반만에 개통되었다.

  • 2월 8일: 김영태 한국노총 위원장이 사퇴하였다.

  • 2월 9일

    • 공화-신민 양당은 대통령중심제-직선제-임기 4년-1차 중임 등을 골자로 한 헌법시안을 마련하였다.

    • 김종필 공화당총재와 최영희 유정회의장은 최규하 대통령과 개헌/복권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 계엄사는 무분별한 정치과열 불용 및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로 국법질서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 2월 10일: WBC 플라이급 챔피언 박찬희가 필리핀의 아르넬 아로살을 상대로 4차 방어에 성공하였다.

  • 2월 11일: 국회 개헌특위는 공화-유정-신민 3당의 확정시안을 접수하였다.

  • 2월 12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신민당의 집권은 역사적 순리"라 하여 대통령 출마를 시사하였다.

    • 정상천 서울시장은 시청, 교육위, 시경을 1983년까지 강남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보고하였다.

    • 서울대 단과대 학생회 대표들이 학원민주화를 결의하였다.

    • 노총 산하 9개 산별노조 위원장들이 '노총정상화추진위원회' 결성 후 김영태 노총위원장의 완전사퇴를 촉구하였다.

  • 2월 13일: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승마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2월 16일

    • 신민당은 대선 및 총선에 앞서 대통령 후보를 지명키로 결정하였다.

    • 전국 대학들이 학도호국단을 선거제로 개편하였다.

  • 2월 17일: 프로권투선수 김태식이 WBA 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파나마의 루이스 이바라를 2회 KO로 꺾어 챔피언벨트를 차지하였다.

  • 2월 18일

    • 최규하 대통령은 허정, 유진오, 백낙준, 김수환 추기경 등 23명을 국정자문위원으로 위촉하였다.

    • 정부는 3월 중순부터 헌법개정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5~7월부터 전국 공청회를 개최토록 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 피에르 트뤼도 총재가 이끄는 캐나다 자유당이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 2월 19일: 정부는 당월 5일 기준으로 전국 도매물가가 16%, 소비자물가 3.6%로 각각 폭등했다고 밝혔다.

  • 2월 22일

    • 정부는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 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준결승에서 소련을 4-3이란 간발의 차로 격파해 결승에 진출하였다.(레이크플래시드의 기적)

  • 2월 23일

    • 정문연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부 편찬계획을 확정하였다.

    • 서울대병원 의공학팀이 인공췌장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에릭 하이든이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10,000m에서 금메달 5관왕을 달성하였다.

  • 2월 24일: 서강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가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 2월 25일

    • DJ, YS, JP 3김이 인촌기념관에서 회동하였다.

    • 수리남군 원사(Sergeant Major) 데시 바우르테서가 쿠데타를 일으켜 헨크 아론 내각을 붕괴시키고 군부 독재체제를 시작한다.

  • 2월 26일: 서울지하철 2호선 왕십리 ~ 문래 구간이 착공되었다.

  • 2월 27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정치일정은 국민에 공약이므로 실천에 옮기자고 강조하였다.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개헌 단일화 모색키 위해 정부 개헌실무 책임자를 출석키로 결의하였다.

    • 한국은행은 환율을 종래의 고정환율제에서 '복수통화바스켓방법'에 의한 유동제로 바꾸었다.

  • 2월 28일

    • 신민당 민주제도개혁특위는 사회안전법 등 10개 법률에 대한 개정작업에 착수하였다.

    • 건설부는 백제권 개발사업을 확정하였다.

  • 2월 29일: 법무부는 윤보선, 김대중 등 재야인사 687명을 일반/특별복권시켰다.

2.1.3. 3월[편집]

  • 3월 1일

    • 최규하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사회안정과 정치난국 극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김대중은 복권 후 첫 기자회견에서 정치 목표는 반공 안보태세 강화와 자유민주주의 실현이라 천명했다.

    • 전두환 육군소장이 육군중장으로 승진하다.

    • 한양대는 해직교수 리영희와 정창렬에 복직조치를 내렸다.

    • 팀 스피릿 '80 한미합동군사훈련이 개시되었다.

    • 정문연 한국학대학원이 개교되었다.

    • 미국 하와이대 한국학센터가 문을 열었다.

  • 3월 2일: 해태제과 노동자들이 9개월여 만에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였다.

  • 3월 3일: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당 차원에서 사회정의 활동과 사회정화운동에 모든 활동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 3월 4일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대표 3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로버트 무가베가 이끄는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연합'이 로디지아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 3월 5일

    • 김종필 공화당 총재와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경제난국 해결을 위한 초당적 협의기구 구성 및 정치형사범 추가 복권 등에 합의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윤보선 전 대통령과 범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문제에 대해 협의하였다.

  • 3월 6일

    • 10.26 사건 관련자 박흥주 대령의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 경우회는 경찰중립 제도화를 요구하였다.

  • 3월 8일

    • 김종환 내무장관은 경찰중립화 문제가 경찰 발전과정에서 한 번쯤 거론될 수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 소련령 그루지야 트빌리시에서 사상 최초의 록 페스티벌 '트빌리시 80'이 개최되었다.

  • 3월 10일

    • 검찰은 최근 발생한 경찰중립화 움직임에 대해 수사권 독립은 시기상조라고 반대 의견을 견지했다.

    • YH 해고노동자들이 취업을 요구하며 노동절 식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 가수 조용필첫 정규앨범을 발표하였다.

  • 3월 11일

    • 신현확 총리는 유신체제가 국방충실과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했던 체제라고 밝혔다.

    • 대한변협은 경찰의 정치중립을 위한 공안위원회 설치 등에 찬성하지만 수사권 독립에 대해선 반대입장을 밝혔다.

  • 3월 12일: 국회는 헌법개정심의위원으로 유진오, 김정렬, 백남억, 김상협 등 각계인사 58명을 위촉하였다

  • 3월 13일: 국방부 계엄보통군법회의는 선고공판에서 정승화 전 육참총장에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 3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은 새 헌법상 대통령 중심제와 의원내각제를 가미한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시사했다.

    • 주공은 경기 과천신도시 건설공사를 개시하였다.

  • 3월 15일

    • 신민당은 민주화촉진궐기대회에서 결의문 6개항을 채택하였다.

    •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이원집정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 민주헌정동지회 사무실이 문을 열었다.

    • 한양대 안산캠퍼스가 개교되었다.

    • 조선일보사가 <월간조선>을 창간하였다.

  • 3월 16일

    • 북한 육상선수 고춘선이 프랑스 에손 국제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다.

    • 일본 사회당이 북한 로동당과 '동북아지역 비핵평화지역 창설에 대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 3월 18일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대표 4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성대생들이 긴급대의원대회 개최 후 비리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용인자연농원이 하루 평균 오물 10kg을 방류해 팔당댐이 오염된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어 파문이 일었다.

  • 3월 19일

    • 공화당 정풍파 의원들이 김종필 총재에게 부정부패 인사의 당직 퇴진 등을 요구하고 사퇴서를 제출했다.

    • 신민당 남원-임실-순창 지구당 개편대회가 폭력사태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 검찰은 용인자연농원이 자행한 팔당댐 오염사건 조사에 착수하였다.

  • 3월 20일

    • 국회 헌법개정심의위 기본권소위는 새 헌법에 연좌제 폐지조항 신설에 합의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지역감정 해소의 일환으로 집권 시 호남고속도로를 3차선으로 늘리는 등 지역발전을 도모하겠다고 다짐하였다.

    • 문예 무크지 <실천문학>이 창간되었다.

  • 3월 21일

    • 국회 헌법개정심의위 기본권소위는 언론기관의 경영-편집 분리조항을 두도록 합의하였다.

    • 호남전기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하였다.

    • 카터 미국 대통령이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의하여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다.

  • 3월 23일: 경기도는 용인자연농원 팔당댐 오염사건을 계기로 '수질보전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결정하였다.

  • 3월 24일

    • 신민당 긴급정무회의는 지구당 개편대회 폭력사건과 관련해 불순세력 음모배격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이후락 공화당 의원은 김종필 총재에 당내 혼란을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오스카 로메로 추기경이 엘살바도르 프로비덴시아 병원 경당 미사 도중 괴한에게 암살당했다.

  • 3월 25일: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대통령 선거를 직접비밀투표제로, 임기는 4년 1차 중임제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 3월 26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부주도 개헌 환상을 깨고 정치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하였다.

    • 공화당은 이후락, 임호 의원에게 탈당을 권유키로 하고 당직자들이 사표를 제출했다.

    • 정승화 전 육참총장이 항소 포기로 징역 7년으로 확정되었다.

    • 대간첩대책본부는 경북 포항에서 무장간첩선 1척을 격침했다고 밝혔다.

  • 3월 27일

    • 문교부는 전체 중학생 중 80~90%가 정상학력 미달이라고 밝혔다.

    • 연세대 총학생회가 부활하였다.

  • 3월 28일

    • 공화당은 박찬종, 오유방 의원에게 탈당을 권유토록 하고 박용기 등 6명에 경고처분을 내렸다.

    • 동자부는 전국적인 연탄 품귀현상으로 각 탄광에 필요물품을 확보토록 긴급 지시하였다.

    • 중앙대 약대생 1백여 명이 폭력교수의 공개사과를 요구하여 농성을 벌였다.

    • 동덕여대생 4백여 명이 조용방 학장 등 3명의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명지대생 1백여 명이 이사장실을 점거하고 철야농성을 벌였다.

    • 서울대 총학생회가 6년만에 부활하였다.

    • 한신대 학원자율화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3월 29일

    • 상공부는 11개 중소기업공단을 조성해 367개 업체를 입주시키기로 결정하였다.

    • 박동진 외무장관은 대북 무역접촉과 상업활동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 김옥길 문교장관이 학원사태 관련 담화를 발표했다.

    • 전남 광주 조선대생 2천여 명이 <학원의 민주화와 정상화를 위한 선언문>을 발표한 뒤 박철웅 총장의 사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3월 30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과도정부에서 진행 중인 남북회담 중단을 촉구하였다.

    • 북한 평양 대동강구역에 '평양산원'이 문을 열었다.

  • 3월 31일

    • 공화당은 당직 개편을 단행하여 의장서리에 전예용, 부의장에 장영순, 중앙위원에 진의종을 각각 앉혔다.

    • 정부는 수교국가와 경협을 통해 미수교 비동맹국가와도 교역시도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 서울시는 인구 3만명 이상 44개동 분동 및 1만명 이하 9개동 통합 등 동단위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2.1.4. 4월[편집]

  • 4월 1일

    • 재무부는 긴축기조와 건전재정운용 방침을 지속키로 결정하였다.

    • 평택화력발전소 1호기가 준공되었다.

    • 김수환 추기경은 부활절 메세지에서 부정과 불의의 장벽을 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설립되었다.

    • 양일동 통일당 총재가 세상을 떠났다.

    • 독립문 현저동 이전복원 공사가 완료되었다.

    • 경희대 등 전국 14개대생들이 어용교수 퇴진 및 학원자율화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고려원양 노동자 2,700여 명이 체불임금 7억여 원 청산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금융노조는 임금 20.6% 인상을 요구하며 노동청에 조정신청을 냈다.

  • 4월 2일

    • 신민당 당기위는 지구당 개편대회 폭력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남원 등 3개 지구당위원장에 제명처분을 내렸다.

    • 홍대생 4백여 명이 총학생회장 직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광산노조 지부장들이 동자부로 몰려가 임금인상을 요구하였다.

    • 일본 TBS 테레비를 통해 <울트라맨 80>이 전파를 탔다.

  • 4월 3일

    • 정부는 대통령 직속기구 '헌법개정심의위원회'를 발족하였다.

    • 서울대는 총학 구성을 승인하는 학생자치기구 개설 조항을 학칙에 신설한다고 결정하였다.

    • 세종대생들이 재단-학원 분리 및 어용교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홍대생들이 이사진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경기대생 1백여 명이 학장-어용교수-재단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한국체대와 서일공전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건대 선수 황병일이 대학야구 춘계연맹전에서 원광대를 상대로 한국 야구사상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였다.[4]

  • 4월 4일

    • YS-DJ 양측은 회담에서 범민주권 통합에 대한 의견차를 보였다.

    • 서울대교수협은 족벌학원경영자 사퇴와 군사교육 개선, 교수재임용 철폐, 교수협의회 결성 등을 결의하였다.

  • 4월 6일

    • 전남-경남 등지에서 태풍을 동반한 집중호우로 9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되었다.

    • 한국 축구대표팀이 모스크바 올림픽 1차 예선에서 말레이시아에 1-2로 패해 본선진출이 좌절되었다.

  • 4월 7일

    • 공화당 의원총회는 이후락 등 정풍운동 주도자 4명을 제명했다.

    • 검찰은 경찰의 수사권독립 주장을 반박한 <소위 경찰대화자료의 허위성>이란 유인물을 냈다.

    • 통일당은 고 양일동 총재의 사회장을 거행하였다.

    • 경희대생 5백여 명이 농성 도중 조영식 총장 사퇴요구 등을 담은 <경희인의 백서>를 배포하였다.

    • 유도대생 3백여 명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미국 정부가 이란과 단교했다.

  • 4월 8일

    • 신현확 총리는 경찰 수사권독립을 둘러싼 검-경 간 마찰에 대해 양측의 자제를 촉구하였다.

    • 국산 구축함 1호 '울산함' 진수식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개최되었다.

  • 4월 9일

    • 청피노조가 임금인상 및 퇴직금제, 노동 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한양대 측은 교직원을 사칭한 운동부원 40여 명을 동원해 농성 학생들을 폭행했다.

  • 4월 10일

    • 한양대생 1,500여 명은 '농성학생 폭행사건'에 대한 김연준 총장의 해명을 요구하며 총장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 성대생들이 병영집체훈련 거부를 결의하였다.

    • 울릉도 저동항이 준공되었다.

  • 4월 11일

    • 신현확 총리는 미국 NYT지 회견에서 대학가 소요사태 등 사회 혼란으로 계엄령 유지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 경제기획원은 '유통산업근대화 기본계획'을 마련하였다.

    • 서울대생들은 '4월 혁명 기념제 및 고 김상진 열사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 서울지역 9개대 학생대표들이 학원사태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서울노동위는 롯데, 크라운, 동양, 서울식품 등 4개 식품업체에 근로시간을 하루 12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토록 직권조정을 발동하였다.

  • 4월 12일

    • 국회는 4월 말까지 개헌안을 마련하여 5월 임시국회에 보고/접수시킨 뒤 정부에 이송키로 합의하였다.

    • 동일방직복직투위는 복직을 요구하며 거리 선전전 및 가두시위를 벌였다.

    • 라이베리아에서 육군 상사 새뮤얼 케니언 도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을 점거하고 대통령 윌리엄 톨버트를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 4월 13일

    • 세종대생들이 주영하 학장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성대생들이 군사교육을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 경희대생들이 조영식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 4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중정부장 서리로 겸직발령을 내렸다.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심의했던 개정안 조항을 정리해 소위 활동을 종결지었다.

  • 4월 15일

    • 육군 계엄고등군법회의는 YWCA 위장결혼식사건 항소심에서 윤보선, 함석헌의 항소를 기각했다.

    • 문교부는 1986년 하계 아시안게임을 서울서 유치키로 결정하였다.

    • 진해화학노조는 임금인상 및 근로복지시설 개선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서울대생 2천여 명이 대통령 특별담화에 대한 항의집회를 열었다.

  • 4월 16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정부의 정치일정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 신민당은 '학원사태 조사단'을 구성하였다.

    • 청평양수발전소 1~2호기가 준공되었다.

    • 서강대생들이 병영집체훈련 거부를 결의하였다.

  • 4월 17일

    • 김옥길 문교장관은 학교재단은 공익법인이니 학교-학생 양자는 타협하고 상호 책임지는 선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 금융노조 8개지부 간부 68명이 임금인상 및 금융기관 자율화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IMF는 중공의 가입신청을 승인하였다.

  • 4월 18일

    • 신민당은 마포당사 4.19 20주년 기념식에서 4.19 정신계승과 민주구현 결의를 다짐하였다.

    • 문교부는 최근 학원사태 관련 자료에서 휴교 19, 철야농성 24, 어용교수 퇴진요구 24, 시설확충 요구 11, 학원자율 요구 20개교로 각각 잠정 집계했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대표 6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청피노조 농성이 노동청의 중재로 협상이 타결되며 종료되었다.

    • 청피노조는 농성 해단식에서 <8백만 노동자에 보내는 메세지>를 발표하였다.

    • 반도상사 인천공장 노동자 7백여 명이 농성 8일만에 임금인상을 쟁취하였다.

    • 짐바브웨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했다.

  • 4월 19일

    • 문공부는 1975년 사이공 함락 때 억류되었던 이대용 공사 등 3명이 귀국했다고 밝혔다.

    • 중앙재해대책본부는 강풍/폭우로 2명이 숨지고 14명이 실종되었다고 밝혔다.

    • '한국지퍼(YKK)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20일

    • 정부는 6월부터 KBS-TV를 통해 <가정고교> 프로그램을 방영키로 결정하였다.

    • 광운공대 설립자 화도 조광운 박사가 세상을 떴다.

  • 4월 21일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신현확 총리의 정부주도 개헌 회견을 중시하고 신 총리가 위원회에 출석토록 요구하였다.

    • 산선 총무 서경석과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정명자가 구속되었다.

    •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소속 광부 7백여 명이 임금 인상 및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탄광촌을 점거해 경찰과 대치하였다.(사북사건)

  • 4월 22일: 강원 사북읍에서 광부-경찰 간 충돌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광부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4월 23일

    • 신현확 총리가 국회 헌법개정특위 출석을 거부했다.

    • 외무부는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방침을 대한체육회에 통보하고 불참을 권고했다.

    • 서울대 농대생들이 어용교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4월 24일

    • 사북사태대책본부-광부대표 양측은 노조 집행부 총사퇴, 상여금 연 400% 인상 등 11개항에 합의하였다.

    • 사북사태대책본부는 피해 규모가 사망자 1명, 부상자 1백여 명, 건물파괴 1백여 채라고 밝혔다.

    • 한국노총은 사북사태가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동3권 규제로 노조가 제 역할을 못해 발생한 거라며 노동질서 회복을 주장했다.

    • 서울지역 14개대 교수 361명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서울대 총대위원회는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 서강대 1학년생들이 병영집체훈련 거부를 결의하였다.

    • 성대 1학년생들이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며 농성을 벌였다.

    • 항공대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미국 특수부대가 주 이란 미대사관에 억류된 자국인 인질구출에 돌입하다 실패했다.

  • 4월 25일

    • 정부와 강원도경은 사북사태 주동자 30여 명이 외지로 도피했음을 밝혀내고 주동자 수사에 착수했다.

    • 정부는 '임대가옥 입주에 관한 특별법'을 마련하였다.

    • 인천제철 노동자 7백여 명이 현 경영진 퇴진 및 기본급 책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국제실업 해외근로자 가족 및 국내 근로자 2백여 명이 체불임금 청산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일신제강 노동자 6백여 명이 노조지부장 사퇴 및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30여 명이 복직 및 노조집행부 퇴진을 요구하며 한국노총 위원장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 4월 26일

    • 신현확 총리는 자신과 대통령의 1981년 대선출마 가능성 및 신당 관련설을 부인했다.

    • 정부는 컬러TV 시판시기를 8월로 잠정 결정하였다.

    • 조계종 6대 총회는 무기명 비밀투표에서 월주 스님을 새 총무원장으로 선출하였다.

  • 4월 28일

    • 국민대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서울대 학장회의는 현 군사교육제도의 조속개혁을 당국에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 신민당 사북사태진상조사단은 노조간부 직선 등을 통해 노조민주화와 자율화를 촉구하였다.

    • 김녹영 통일당 총재대행은 만주회복 때까지 모든 재야인사 및 정당사회단체의 연합전선 구성을 제창하였다.

    • 동국제강 부산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민주노조 인정 및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하였다.

    •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해고자 복직 및 임금인상, 노조 정상화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4월 29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유신세력 퇴진 및 대통령 중심제/국회의원 소선거구제 촉구 당론을 밝혔다.

    • 전두환 중정부장서리는 본인의 부장서리 및 보안사령관 겸직이 정치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 건대생 20여 명이 이사진 전원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경기대 행정학과생 30여 명이 전병두 학장 퇴진을 요구하며 학장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금성통신 안양공장 노동자 3천여 명이 임금인상과 어용노조 집행부 퇴진 등을 요구하며 운동장 및 강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 동양나이론 울산공장, 반도상사, 대한모방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동국제강 부산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임금인상 농성 도중 출동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 4월 30일

    • 최규하 대통령은 사북사태와 관련해 노사문제는 법절차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계엄사는 전군지휘관회의에서 학원사태 등에 우려를 표명하며 폭력행위를 엄단키로 결의했다.

    • 고려대 총학이 '제1차 민주화 공개토론회'를 개최하였다.

    • 서울 오산고생 4백여 명이 교장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율리아나 네덜란드 여왕이 베아트릭스 공주에게 양위했다.

2.1.5. 5월[편집]

  • 5월 1일

    • 정부는 대학 군사교육을 종전의 주 4시간에서 2시간으로, 대상학년도 2학년까지로 각각 축소시킨다고 밝혔다.

    • 성대생들이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며 농성을 벌였다.

    • 부산남부경찰서는 동국제강 부산공장 농성사태 관련자 6명을 포고령 1호 위반으로 구속했다.

  • 5월 2일

    • 정종택 노동청장은 한국노총 측의 국가보위법상 노동기본권 제한조항 시행유보 요구 수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 서울대생들이 '민주화 대행진'을 개최하였다.

    • 고려대생 1천여 명이 계엄철폐 및 유신잔당 척결, 정치일정 단축 등을 요구하며 연좌농성 후 철야농성을 벌였다.

    • 전북대-경북대생들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전남대-조선대생들이 학내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서울형사지법은 이재문, 신향식, 안재구, 최석진 등 남민전 사건 관련자 4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 5월 3일

    • YS-신 총리 양측이 '선 안정-선 민주화' 문제로 갈등을 보였다.

    •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이하 전민노련)'이 창립되었다.

    • 서울대생 1만여 명이 계엄해제 및 이원집정부제 구상 철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대우중공업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규탄 및 단협 준수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세진전자 등 한국노총 금속노련 남서울지부 산하 9개 분회가 어용노조 퇴진을 외치며 지부 사무실을 점거농성하였다.

  • 5월 4일

    • 정부는 연탄값을 35.2%, 석탄값을 41.9%로 각각 인상했다.

    • 국민연합은 학원민주화 및 비상계엄 해제를 주장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티토 유고연방 초대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 5월 5일: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새 대통령은 안보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행정경험자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5월 6일

    • 신민당 비당권파 24명은 동교동 모임에서 독자기구를 구성키로 결정하였다.

    • 남북총리회담 실무대표 7차 회의가 개최되었다.

    • 이대생들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이대 총학은 5월을 '이화 민주투쟁의 달'로 결정하였다.

    • 한신대생들은 계엄해제 등을 담은 시국선언문 발표 후 농성에 돌입하였다.

    • 한국외대생들이 '민주화촉진대회'를 개최되었다.

    • 숭전대생들은 계엄철폐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연대 총학은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비상학생총회를 개최하였다.

    • 전북대생 3천여 명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동국대생들이 '민주화를 위한 학원대회'를 개최하였다.

    • 각 대학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연합시위를 벌였다.

  • 5월 7일

    • 신민당은 계엄해제를 정부 당국에 촉구하였다.

    • 한국은행은 GNP가 16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고 밝혔다.(1/4 분기 내 전년대비 1.7% 감소)

    • 외대-연대 교수들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한신대 대학원생들이 <민주화운동에 즈음한 우리의 결의>를 발표하였다.

    • 홍대생 1천여 명이 '범민주화 촉진대회'를 개최하였다.

    • 외대생 8백여 명이 야간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 중대 등 각 대학생들이 계엄철폐 및 민주화 촉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 티토 장례식 참석차 유고로 출국했다.

  • 5월 8일

    • 전국 각지 대학생들이 '시국성토대회'를 개최되었다.

    • 서울지역 대학신문들이 <시국에 대한 대학신문 결의>를 채택하였다.

    • 중대 총학이 <5.8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외대 교수들은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WHO천연두 박멸을 공식 선언했다.

  • 5월 9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계엄해제, 임시국회 즉각 소집, 정부주도 개헌작업 중지 등을 요구하였다.

    • 중대-숙대 교수들이 계엄철폐 요구 등을 담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건대-인하대생들이 '시국성토대회'를 개최하였다.

    • 숙대-한양대생들이 횃불시위를 벌였다.

    • 이대생들이 연좌시위를 벌였다.

    • 서울대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이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한국노총 금속노조 산하 25개 지부 조합원들은 어용노조 집행부 규탄 및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금속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미 국방부는 한국 DMZ에서 미군 경찰대가 괴한들과 총격전을 벌였으나 사상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 5월 10일

    • 김도창 법제처장은 개헌공청회 개최를 보류한다고 밝혔다.

    • 전국 23개대 총학생회장은 계엄해제 요구 등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 동국대 교수 198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최규하 대통령이 사우디 및 쿠웨이트 방문을 위해 중동으로 떠났다.

    • 단대생들이 '시국대토론회'를 개최하였다.

    • 롯데제과 노조는 민주후보 신태웅 노동자를 새 지부장으로 선출하였다.

  • 5월 11일

    • 신현확 총리는 사회가 안정되었다고 판단될 시 즉각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 동명목재 부산공장 노동자 3천여 명이 공장 정상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5월 12일: 부산 해운대 조선비치호텔 종업원 310명이 어용노조 퇴진, 임금인상, 외국인 경영자 교체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5월 13일

    • 정부는 국회측과 개헌안 이견 사전조정방침을 수립하였다.

    • 서울지역 6개대생들이 세종로 일대에서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에 나섰다.

    • 한국노총은 전국 11개 시/도에서 '노동기본권 확보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 고려대 교수 236명이 '교수협의회'를 발족하였다.

  • 5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은 자베르 3세 쿠웨이트 국왕과 원유공급 문제 및 경협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 신민당은 소속의원 66명 명의로 '비상계엄 해제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김옥길 문교장관은 학생들의 자제/자숙을 당부하며 야간시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 전국 27개대 총학생회장단이 <시국에 관한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 서울지역 21개대 및 지방 11개대생 총 15만여 명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자정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

    • 롯데제과 노조원 2,700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벌였다.

  • 5월 15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민주화작업 연내 완결을 위한 일정 공개 및 정부주도 개헌심의위 해체를 주장하였다.

    • 신현확 총리는 학생들의 자숙/자제를 호소하며 법질서 파괴행위가 지속될 시 방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김옥길 문교장관은 학생들의 가두시위에 대해 최 대통령 귀국 시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 지식인 130여 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전국 30개대생 수십만 명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서울지역 35개대생 10만여 명이 서울역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 심재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격론 끝에 시위대를 회군시켰다.(서울역 회군)

    • 서통 노동자 1천여 명이 회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 5월 16일

    • 최규하 대통령이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귀국했다.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대통령중심제 및 4년임기, 1차 중임 등을 담은 헌법 개정안 작성을 완료하였다.

    • 전국 55개대 총학생회장 95명이 이대에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장단 회의'를 개최했다.

    • 서울지역 25개대 및 지방 2개대 총학생회장들은 시위 중단 후 정상수업에 돌입토록 결의하였다.

    • 기협은 계엄당국의 보도검열 반대 결의문 및 행동지침을 채택하였다.

    • 주한 유엔사 공보과장은 북한군이 DMZ에 침투해 미군과 교전을 벌였다고 밝혔다.

  • 5월 17일

    • 민관식 국회의장대행은 의원 186명의 소집요구에 따라 20일 제104회 임시국회 소집을 공고하였다.

    • 신민당은 소속의원 66명 명의로 '민주화를 위한 정치개혁일정 완결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국무회의는 18일 0시부터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 비상계엄지역을 확대키로 의결했다.(5.17 내란)

    • '전국섬유노동조합 서통지부(이하 서통노조)'가 결성되었다.

    • 경찰은 이대 전국총학회장단 회의를 급습해 전국 55개대 학생대표 95명을 연행했다.

  • 5월 18일

    • 계엄사는 전/현직 국가원수 비방 금지, 정치활동 중지, 대학 휴교 등을 담은 '포고령 10호'를 발표했다.

    • 계엄사는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 및 시위 배후조종 혐의자 26명을 연행/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광주 전남대생 6백여 명이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정문 앞에서 투석전을 벌였다. 이는 광주항쟁의 시발점이었다.

    • 미 국무부는 한국의 계엄령 확대에 우려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국 워싱턴 주 스카미니아에서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폭발해 57명이 숨졌다.

  • 5월 19일

    • 광주항쟁이 공수부대의 폭력진압을 계기로 시내 전역에 확산되었다.

    • 경향신문 등 언론사 기자들이 5.18에 대한 왜곡보도에 반발해 제작거부 투쟁을 벌였다.

  • 5월 20일

    • 계엄사는 당월 18일부터 광주 일원에 소요사태가 발생해 아직 수습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 특전3공수 병력이 광주역에서 시위대에 난사해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했다.

    • 전남일보-전남매일이 발행을 중단했다.

    • 광주MBC 궁동사옥과 광주세무서가 시위대에 의해 방화되었다.

    • 신현확 총리 등 국무위원 전원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 진의종 보사장관은 노사분규에 전 행정력을 동원하라고 노동청에 지시했다.

    • 대법원은 10.26 사태 관련자 김재규 등 5명에 사형, 김계원에 무기징역, 유석술에 징역 3년을 각각 확정했다.

    • 캐나다 퀘벡 분리독립 찬반 투표에서 주민들 중 약 60%가 반대함으로서 독립이 무위로 돌아갔다.

  • 5월 21일

    • 특전11공수 33대대 병력이 광주 전남도청 앞 시위대에 무차별 난사해 54명이 숨지고 5백여 명이 부상당했다.

    • 광주 시위대가 광주교도소, 전남도청/도경 등을 뺀 전 관공서를 완전 장악하였다.

    • KBS광주 사옥과 광주시내 8개 파출소들이 시위대에 의해 방화되었다.

    • 광주 시위대가 무기고 탈취 후 소총 등으로 무장해 밤 사이 계엄군을 시 외곽으로 몰아냈다.

    • 광주 학생수습위원회 및 시민수습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광주 시민들에게 이성을 회복하고 질서유지를 당부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 최규하 대통령은 박충훈을 총리서리에, 김원기를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개각을 단행하였다.

    •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이 미국에 개봉되었다.

  • 5월 22일

    • 광주항쟁이 목포, 나주 등 인접 시/군으로 확대되었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자대표 8차 접촉이 이루어졌다.

    • 계엄사는 김대중이 학생시위를 배후 조종했다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 미 국무부는 광주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희망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 미 국방부는 항공모함 코럴시호를 한국 근해에 파견한다고 밝혔다.

    • 남코가 비디오 아케이드게임 <팩맨>을 일본에 출시하였다.

  • 5월 23일

    • 박충훈 총리서리는 광주가 치안부재 상태이며, DJ-JP는 포고령 위반으로 연행 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11공수 장병들이 광주 주남마을에서 운행 중이던 미니버스에 난사해 탑승자 17명을 살해했다.(주남마을 총격사건)

    • 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 정부측의 군 소요진압 동원 요청에 동의했다.

  • 5월 24일

    • 10.26 사건의 주범 김재규 등 5명이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당했다.

    • 11공수 62대대 장병들이 광주 송암동에서 무반동포로 군용트럭에 오인사격하는 바람에 광주보병학교 교도대 9명이 숨졌다.

    • 동 부대 장병들이 오인사격에 대한 분풀이로 송암동 일대 주민들과 가축들을 무차별 학살했다.(광주 송암동 학살사건)

  • 5월 25일: 최규하 대통령은 광주사태 해결을 위한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 5월 26일

    • 내무부는 광주시위로 전남 행정기능이 마비되어 본부가 시/군 예산지원 및 행정지도를 직접 담당키로 결정하였다.

    • 이광표 문공장관은 '광주 소요사태에 대한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 내무부는 안병하 전남도경국장을 대기 발령시키고 송동섭 치본 작전과장을 새 국장직에 앉혔다.

    • 광주수습위는 '전남도청 독침사건' 관련 내용을 발표하였다.

  • 5월 27일

    • 계엄군이 새벽 3시 반에 광주 시내로 진입해 전 시가지를 완전 장악했다.

    • 계엄사는 안병하 전남도경국장을 지휘권 포기혐의로 연행했다.

    • 계엄사 측은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17명 사망, 군인 2명 순직, 295명 체포라고 발표했다.

    • 장형태 전남지사가 사임했다.

  • 5월 28일

    • 국무회의는 '광주사태 긴급구호 및 복구처리방안'을 승인했다.

    • 정부는 광주사태에 따른 금융 및 세제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 사북사태 관련자 25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 군인 출신 김종호가 새 전남도지사로 취임했다.

    • 미국 정부는 본국의 대한방위공약 준수결의를 재확인했다.

  • 5월 29일

    • 한국은행은 광주사태 관련 전남지역 피해 사업체에 시설복구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 광주지검 및 전남북계엄분소 합동검시반은 광주항쟁 희생자 검시를 종료했다.

    • 전라남도는 광주시 피해복구를 위해 취로사업비 2억 7천만 원을 방출키로 요청했다.

  • 5월 30일

    • 김종호 전남지사는 기자회견에서 민심수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 뒤 후유증 없도록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밝혔다.

    • 서강대생 김의기가 유인물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배포한 후 기독교회관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 대한체육회는 모스크바올림픽 불참 결정에 따라 태릉선수촌 대표선수 강화훈련을 중단했다.

    • 국제공항관리공단이 설립되었다.

  • 5월 31일

    • 정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 계엄사는 광주사태 당시 사망자 170명, 부상자 380명, 체포 1,740명이라고 했으며 이 중 730명을 조사중이라고 발표했다.

    • 광주시내 각 국교가 휴교 13일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2.1.6. 6월[편집]

  • 6월 1일

    • 서기원 청와대 대변인은 국보위 운영에 관해 최규하 대통령이 주재하는 대로 수시로 열릴 거라고 밝혔다.

    • 전남북계엄분소는 밤 9시로 연장된 통금시간을 원래 시간으로 환원했다.

    • 미국 TBS가 세계 최초의 케이블TV 뉴스채널 'CNN'을 개국하였다.

  • 6월 2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중정 서리에서 사임했다.

    • 정부는 중단되었던 헌법개정요강작성소위를 재개했다.

    • 문공부는 일본 교도통신 서울지국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 장기신용은행이 개점되었다.

    • 전매-전일 양 신문사가 12일만에 발행을 재개했다.

  • 6월 3일

    • 서울시경은 폭력배 특별단속에서 2,371명을 검거하고 2명 군사재판 회부, 251명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 경찰은 사북사태와 관련해 동원탄좌 사장 이혁배 등을 구속하였다.

  • 6월 4일

    • 정부는 공무원 기강확립을 위해 '공무원 숙정'을 시사했다.

    • 계엄사는 광주사태와 연행자 중 혐의가 가벼운 206명을 석방했다고 밝혔다.

    • 경기 강화군 아차분교에 국내 최초로 태양열발전소가 설치되었다.

  • 6월 5일

    • 최규하 대통령은 국보위 상임위원 30명을 임명했다.

    • 정부는 '긴축 완화를 위한 종합경제대책'을 발표하였다.

    • 계엄사는 광주사태 사망자 수를 148명이라고 밝히고 신원이 확인된 12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 광주MBC, 광주CBS, 전일방송이 방송을 재개했다.

  • 6월 7일: 서울 서강대교가 착공되었다.

  • 6월 9일

    • 계엄사는 언론인 8명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검거하겠다고 밝혔다.

    • 삼진특수철 노동자 김종태가 서울 이대앞 4거리에서 <광주 시민/학생들의 넋을 위로하며>란 유인물을 뿌리고 분신했다. 이후 그는 닷새 만에 숨을 거두었다.

  • 6월 10일: 마산 외자기업 한국신흥화학 노동자들이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다.

  • 6월 11일

    • 치안본부는 미국에서 음주운전 측정기를 도입해 전국 경찰관서에 배포하였다.

    • 김병룡 금속노조위원장이 연내 사퇴 의사를 밝혔다.

  • 6월 12일

    • 최규하 대통령은 개헌투표를 10월, 정권이양을 1981년 6월부터 실시키로 하는 등 정치일정을 확정지었다.

    • 오히라 마사요시 전 일본 총리가 세상을 떴다.

  • 6월 13일: EC수뇌회담은 <아프가니스탄 특별선언> 및 <중동평화선언>을 발표하였다.

  • 6월 14일: 광주시내 13개 여고 및 25개 남고가 휴교 26일만에 다시 열었다.

  • 6월 15일: 국보위는 '공직자 숙정계획'을 발표했다.

  • 6월 16일: KBS-TV에서 <가정고교>가 첫 전파를 탔다.

  • 6월 17일

    • 국보위는 정화자료 등을 수집키 위해 민원실을 설치했고.

    • 계엄사는 부정축재, 국기문란, 시위주동, 배후조종 등 혐의로 오치성, 이용희 등 정치인과 교수, 목사, 언론인, 학생 등 329명을 지명수배했다.

  • 6월 18일

    • 외무부는 UAE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다고 밝혔다.

    • 계엄사는 권력형 부정축재에 대한 수사를 발표하면서 축재금액이 총 853억 1,154만원이라고 주장했다.

  • 6월 19일

    • 계엄사는 당월 23일부터 대학 휴교를 '휴업'으로 변경했다.

    • 축구선수 차범근이 서독 분데스리가 베스트11로 선정되었다.

  • 6월 20일

    • 총무처 행정자문위원회가 신설되었다.

    • 판문점 자유의집 별관이 준공되었다.

  • 6월 21일

    • 대간첩대책본부는 충남 서산 앞바다에서 무장간첩선을 격침시켜 9명을 살해하고 1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 대검은 자체 숙정작업을 벌여 검사 8명 및 직원 21명을 부조리와 관련해 인사조치했다고 밝혔다.

  • 6월 22일

    • 세계은행은 한국이 초등학교 진학률 100%로 조사대상 75개 개도국 중 1위라고 밝혔다.

    • 제76차 베네치아 선진국수뇌회담은 소련군 철수를 요구하는 <아프가니스탄 문제선언>을 채택하였다.

  • 6월 23일: 서울시경은 택시 등 영업차량 운전사들이 승객의 유언비어를 신고할 시 모범운전자 자격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 6월 24일

    • 계엄사는 국기문란/시위관련 수배자 324명 중 97명이 자수했다고 밝혔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자대표 9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권운상, 황인오 등 6명이 미스유니버스 폭파기도 혐의로 구속되었다.(미스유니버스 폭파미수 사건)

  • 6월 25일

    • 김종필 등 권력형 부정축재자 6명이 공직을 사퇴했다.

    • 정부는 취업 및 여권 발급 시 신원보증제를 폐지키로 결정하였다.

    • 시리아 무장단체 '무슬림 형제단'이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암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 6월 26일

    • 공진청은 국내 최초로 '국민표준체위'를 조사한다고 밝혔다.

    • 제일은행은 동명목재를 부도처리시켰다.

    • 북한 <로동신문>은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무의미하다고 보도했다.

  • 6월 27일

    • 문교부는 전국 96개대 학생처장회의를 열어 향후 대책을 논의하였다.

    • 마산수출지역 4개 외국인기업 노조 중 3개가 해산되었다.

    • 전라남도는 광주 시민돕기 성금 26억 원으로 어린이회관을 건립키로 결정하였다.

  • 6월 28일

    • 상공부는 컬러TV 방식을 미국 NTSC 방식으로 확정한다고 밝혔다.

    • 치안본부는 즉결심판자를 경찰서 보호실에 장기보호할 수 없도록 하는 '경찰민원업무 쇄신방안'을 전국 경찰관서에 시달했다.

  • 6월 29일

    • 국방부는 북한 주민 1명이 판문점을 통해 귀순했다고 밝혔다.

    • 한국 여자탁구 대표팀이 제50회 전미오픈 탁구대회 단체전에서 우승하였다.

  • 6월 30일

    • 정부는 중동 산유국 오일달러 유입을 위해 '외화표시채권' 발행을 중동지역에 확대키로 결정하였다.

    • 서울 성산대교가 개통되었다.

    • 한전이 평택화력 1호기를 준공하였다.

2.1.7. 7월[편집]

  • 7월 1일

    • 예춘호 등 야당의원 4명이 국회의원 사퇴서를 제출했다.

    • 서울지방항공관리국은 김포공항 운영권을 국제공항관리공단에 이관하였다.

    • 중앙매스컴은 <월간중앙> 6월호 기사 관련자 3명을 해직/파면시켰다.

  • 7월 2일

    • 최순영 축협회장은 국내 최초 프로축구팀 '할렐루야'를 창단한다고 밝혔다.

    • 북한 대동강 미림갑문이 준공되었다.

  • 7월 3일

    • 민관식 국회의장대리는 5.17 뒤 제출된 김종필 등 국회의원 9명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 노동청은 당년도 실업자 수가 82만 9천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 계엄사는 광주사태 관련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부산시는 일본 TV 불법송출을 방지키 위해 불법유선방송 사업자 단속을 지시했다.

  • 7월 4일

    • 계엄사는 김대중 등 37명을 내란 음모혐의로 군사재판에 송치하겠다고 밝혔다.(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 남제주화력발전소가 준공되었다.

    • 부산시는 '일본 텔레비전 안보기 운동'을 개시했다.

  • 7월 5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정재석 대신 신병현을 새 상공장관에 임명하였다.

    • 에너지관리공단이 설립되었다.

    • 동명목재는 종업원 3,088명을 해고한다고 결정했다.

  • 7월 7일

    • 정부는 일본 아사히신문 및 지지통신 서울지국 특파원에 출국 명령을 내렸다.

    • 영국 우정성이 세계 최초로 국제전송 서비스(인텔포스트)를 개시하였다.

  • 7월 8일: 제29회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 본선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되었다.

  • 7월 9일

    • 국보위 상임위는 2급 이상 공무원 232명을 숙정하며 이중 15명은 당국에서 조사 중이라고 발표하였다.

    • 임진왜란 당시 이운룡이 썼던 <거영일기> 및 <계본등록>이 경북 청도에서 발견되었다.

  • 7월 11일

    • 이규호 문교장관은 사학의 재단-학교운영 분리를 강조했다.

    • 상공부는 8월 1일부터 컬러TV 시판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 7월 12일

    • 계엄사는 김대중 등 9명을 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 계엄사는 5.18 광주항쟁 유인물과 녹음 테이프를 제작한 오태순 신부 등 가톨릭 성직자 7명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연행했다.

  • 7월 14일: 충남 서산 앞바다에서 생포된 남파간첩 김광현이 기자회견에서 유혈폭동을 선동키 위해 남파했다고 폭로했다.

  • 7월 15일

    • 국보위는 전국 3급 이하 행정공무원 4,760명을 숙정했다고 밝혔다.

    • 보사부는 전국에 일본뇌염 비상방역령을 내렸다.

    • 스티븐 솔라즈 미국 하원의원이 미국 의원으로서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였다.

  • 7월 16일

    • 전매청은 '태양', '거북선' 등 고급 담배값을 평균 40%나 인상했다.

    • 차상록 성북경찰서장이 5.5 집회 해산 때 신계륜 고대 총학생회장과 화해 악수했다는 이유로 강제 해직되었다.

    • 계엄사 합수부는 방용석 원풍모방지부장에게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관련해 수배 및 출두 요구를 내렸다.

  • 7월 17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제헌절 기념사에서 '지속적인 민주발전'을 기초로 한 새 헌법을 만들자고 밝혔다.

    • 미국 MIT가 세계 최초로 인공피부 생산 및 이식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 7월 18일

    • 최규하 대통령은 새 중정부장직에 유학성 육군대장을 전역과 동시에 임명하였다.

    • 솔라즈 미 하원의원이 김일성 북한 지도자와 면담했다.

  • 7월 19일

    • 계엄사는 김현옥 등 전직 장관 3명과 국회의원 14명을 국가 기강 문란혐의로 연행/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서울대생 조남일 등 4명이 광주항쟁 지하신문 발행혐의로 구속되었다.

    • 국보위는 은행, 보험, 증권기관 임직원 431명을 사회정화 명분으로 숙정했다.

    • 1980 모스크바 올림픽 개막식이 레닌중앙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열한 마리 고양이> 극장애니판이 일본 전역에 개봉되었다.

  • 7월 20일: 국세청은 고액 개인소득자에 대한 탈세조사를 강화키로 결정했다.

  • 7월 21일: 치안본부는 사소한 경범죄처벌 위반자에게 벌금 즉석납부 등 '즉심제도 간소화'를 결정하였다.

  • 7월 22일: 국보위는 정부투자기관 등 산하기관 127개소에서 임직원 1,819명을 숙정했다고 발표하였다.

  • 7월 23일

    • 국보위는 대학생의 방학중 해외연수 규제를 해제시켰다.

    • 김태성 등 6명이 이념서적 출판으로 구속되었다.

  • 7월 24일

    • 국보위는 '민원업무 쇄신지침'을 마련 후 반영토록 시달했다.

    • 한국 주재 외신기자들이 관계당국에 다수 연행되었다.

  • 7월 25일

    •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당국에 연행된 김대중이 부상을 당하거나 앓고 있다는 소문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 주덴마크 한국대사관은 유엔여성회담에 참석한 한국대표를 북한 공작원이 납치하려 했다고 밝혔다.

    • 스노베 주한일본대사는 스즈키 내각 출범 후 양국관계엔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 '한국해양소년단'이 창단되었다.

  • 7월 26일

    • 법무부는 일제시기 독립운동가 수형기록을 공적사실에 포함한다고 결정하였다.

    • 고려대는 김용준 교수 등 6명을 해직시켰다.

    • 주한미군 부사령관은 북한측이 대다수 무기를 자체 생산한다고 밝혔다.

  • 7월 28일: 정부는 1981년 주택 34만채 건설계획을 수립하였다.

  • 7월 30일

    • 신문협은 언론인 자율정화를 결의했다. 이에 따라 9월까지 언론인 933명이 해직당하게 되었다.

    • 국보위는 대입 본고사제 폐지, 졸업정원제 실시, 과외 금지 등을 골자로 한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을 마련하였다.

    • 연세대는 시위학생 24명을 제적시키고 63명에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 바누아투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했다.

  • 7월 31일

    • 문공부는 <창작과비평> 등 정기간행물 172종의 등록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대학생의 가정교사 업무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교육공무원 611명을 숙정했다고 밝혔다.

    • 계엄사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자 24명을 군법회의에 기소했다.

2.1.8. 8월[편집]

  • 8월 1일

    • 국보위는 신원기록 일제정리 및 연좌제 폐지를 결정하였다.

    • 서울고법은 남민전 사건 항소심 1차 공판을 열었다.

    • 서울시는 종로, 광화문 등 45개 교차로 신호등을 컴퓨터 전자감응식으로 바꾸었다.

    • 상공부 물가안정위는 컬러TV 시판가격을 결정/고시하였다.

    • 전남북계엄분소는 광주사태 연행자 중 168명을 훈방시켰다고 밝혔다.

  • 8월 2일: 삼성전자 등 가전 3사가 컬러TV 시판을 개시하였다.

  • 8월 4일

    • 국보위는 폭력, 마약, 사기, 밀수 등 '사회악 일소를 위한 특별조치'를 마련하였다.

    • 계엄사는 삼청계획 5호에 따라 포고령 제13호(불량배 일제 검거에 대한 포고령)를 발동했다. 겉은 그럴싸했지만 삼청교육대의 뿌리이기도 하다.

    • 문교부는 각급 학교에 정화위원회 구성 지시 후 과외/폭력 등 비리를 일소키로 결정했다.

    • 고려대는 반정부 시위학생 27명에 제적처분을 내렸다.

    • 한신대 교수 3명이 반정부 발언과 관련해 사임했다.

  • 8월 5일: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육군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 발령했다.

  • 8월 6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국운 개척의 사명을 기필코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 국보위는 폭력배, 전과자 등 16,599명을 검거하고 이들을 A급(군사재판), B급(근로봉사), C급(순화교육) 등으로 나눈다고 밝혔다.

    • 보사부는 불량식품 단속을 벌여 4개 업체에 영업정지, 3개 업체에 품목허가취소 등을 내렸다.

    • 제1군 보통군법은 사북사태 1심 선고공판에서 관련자 8명에서 최고 5년 ~ 1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 요트선수 노영문과 이재웅이 '파랑새호'를 타고 경북 울산 ~ 미국 LA 간 태평양 횡단에 성공하였다.

  • 8월 7일

    • 보사부는 불량의약품 적발 후 11개 품목에 제조허가 취소를 내렸다.

    • CBS는 박인석 기자 등 12명을 해직시켰다.

  • 8월 8일

    • 외무부는 국제앰네스티의 입국거부 항의에 대해 '부당한 내정간섭'이라 논평했다.

    • 문교부는 세종대 재단운영 및 학사행정 전반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하였다.

    • (현지시각 기준)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이 <LA 타임스> 인터뷰에서 "한국인은 레밍(들쥐)"이라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미국 <뉴욕 타임즈> 회견에서 한국은 새 시대의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

    • 미 국무부가 한국 지도자 선택은 한국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언급했다.

  • 8월 9일

    • 국보위는 도시계획에 따른 건물 및 토지 보상기준의 현실화 조치를 내렸다.

    • 동아일보는 지방 주재기자 7명을 포함한 기자 33명을 강제 해직시켰다.

    • 민문기, 양병호 등 대법원 판사 5명이 사임했다.

    • 성균관대는 시국관련 교수 4명을 해임시키고 학생 11명을 제적시켰다.

  • 8월 10일

    • 동자부, 공진청, 서울시는 시내 주유소 및 석유판매업소 합동 불시단속을 실시하였다.

    • 소비자보호협의회는 불량품 중 가전 3사 제품이 전체의 60%에 달한다고 집계하였다.

    • 이우재 등 서울대생들이 반정부 유인물 배포로 구속되었다.

  • 8월 11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사회안정과 발전을 위해 대통령중심제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 수영선수 조오련대한해협을 헤엄쳐 횡단에 성공했다.

    • 김포공항 신청사가 착공 2년 10개월만에 완공되었다.

    • 동아일보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이 김성환 작가 해직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 8월 12일

    • 문교-내무-국세 합동 37개 과외단속반이 활동을 개시하였다.

    • 대한적십자사는 북적 측에 남북적십자회담을 무조건 재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 '1980년 세계복음화대성회'가 서울 여의도 5.16광장에서 개최되었다.

    • 박용길 장로가 유언비어 유포혐의로 연행되었다.

  • 8월 13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정계 은퇴 의사를 밝혔다.

    • 유공은 미국 걸프 사에 주식 6,800만 불 송금 후 거래를 완전 청산했다.

  • 8월 14일: 육군보통군법회의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공판을 열었다.

  • 8월 15일

    • 국보위는 사회악 사범 30,578명을 검거하고 이중 19,000여 명을 군부대에서 순화교육 중이라고 발표했다.

    • 전매청이 '솔' 담배를 시판하였다.

  • 8월 16일

    • 최규하 대통령은 오전 10시 특별성명에서 대통령직에서 하야한다고 밝혔다.

    • 박충훈 대통령 권한대행은 통대선거에서 후임자를 곧 선출한다고 밝혔다.

    • 미 국무부는 최규하 대통령 하야 관련 논평에서 넓은 지지기반을 지닌 민주정부 수립의 중요성을 촉구하였다.

  • 8월 17일

    • 한국지퍼노조가 고정열 분회장 등의 조건부 퇴직으로 사실상 와해되었다.

    • 미국 <워싱턴 포스트> 지는 미국 정부가 전두환의 대통령 추대에 반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 8월 18일

    • 육군보통군법회의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2차 공판을 열었다.

    • 계엄사 수사당국은 여야 정치인 17명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법제처는 10월 중 확정될 새 헌법에 따라 수립되는 정부가 '제5공화국'에 해당된다고 유권해석했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자대표 10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국제경제연구원은 한국 주요 75개 기업 중 66%가 장남 위주로 기업을 승계한다고 지적했다.

    • 폴란드 반소 노조파업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 8월 19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전국총/학장회의에서 학원 내/외 소요사태를 용납치 않겠다고 밝혔다.

    • 국보위는 여권발급기간 단축 등 간소화방안을 마련하였다.

    • 문공부는 전국 2,597개 출판사 중 617개의 등록을 취소했다.

    • 방송협은 SF만화영화 편성금지 등을 담은 '방송자율정화방안'을 마련했다.

    • 권중동 노동청장은 사용자가 근로자의 불만을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우디항공 163편 L-1011-200기가 리야드공항 이륙 도중 큰불이 나 탑승인원 301명이 전원 사망했다.

  • 8월 20일

    • 북한측 대표는 남한측 정세변화를 이유로 '남북총리회의 10차 실무자회담' 연기를 주장했다.

    • 내무부는 '지문채취규정' 개정에 따라 모든 입건피의자의 지문체취를 폐지하였다.

    • 국보위 상공분과위는 중공업분야 투자조정을 단행해 현대양행의 발전설비/중장비부문을 대우로 넘기도록 했다.

    • 한신대는 학내 시위학생 7명을 제적시켰다.

    • 중정은 석달윤을 간첩 혐의로 불법 연행했다.

  • 8월 21일

    • 최규하 전 대통령은 새 지도자가 국민과 군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방부 전군주요지휘관회의는 차기 대통령에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추대할 것을 결의하였다.

    • 노동청은 '노동계 정화지침'을 전국 각 사업장 등지에 시달했다.

    • 김영태 노총위원장 등 한국노총 산별노조 위원장급 12명이 해임되었다.(제1차 노동계 정화조치)

  • 8월 22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육군 대장으로 전역했다.

    • 박충훈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 보궐선거를 위해 통대 대의원 소집을 공고했다.

  • 8월 23일

    • 계엄사 합수부는 비리/사생활 문란혐의로 연행된 전직 장관 등 17명을 석방시켰다.

    • 보사부는 전국에 일본뇌염 발생경보를 하달하였다.

    • 동자부는 온수보일러 등 에너지소비효율 표시대상 품목 광고에 소비효율 표시를 의무화하도록 하였다.

  • 8월 24일: 동자부는 유류가격 평균 12.6% 인상 및 향후 환율 원유가 등에 유류가를 연동키로 결정했다.

  • 8월 25일

    • 이춘기 통대운영위원장 등 대의원 737명이 전두환을 차기 대통령후보로 추대했다.

    • 신민당은 김영삼 대신 이민우 부총재를 총재권한대행으로 지명했다.

  • 8월 26일

    • 서울대 교수 7백여 명이 '학원정상화 촉진 결의대회'를 열었다.

    • 대법원 형사1부는 'YWCA 위장결혼식 사건' 관련자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 8월 27일

    •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 전두환 신임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장에 김경원, 경호실장에 정동호, 의전수석에 김병훈, 공보수석에 이웅희를 각각 임명하였다.

    • 민관식 국회의장대행은 최태호 유정회 의원 대신 김유복에게 의원직을 승계하였다.

  • 8월 28일

    • 계엄사는 대학 휴교령을 9월 1일부로 전면 해제시킨다고 밝혔다.

    • 이규호 문교장관은 각 대학 소요사태 발생으로 법정일수 180일 충당 못할 시 유급시키겠다고 경고했다.

    • 5개 TV/R 방송사 심의실장회의는 9월 1일부터 심수봉, 이주일 등 연예인 24명에 출연금지를 결정토록 했다.

    • 미 하원 외무위는 한국관계청문회에서 홀부르크 차관보 증언 시 김대중에 피난처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 8월 29일

    • 정부는 골프비용이나 개인 향응비, 자가용 유지비를 회사경비로 지출하지 못하도록 요강을 마련하였다.

    • 문교부는 한국외대 등 4개대를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다.

    •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대우실업 등 관계사 주식 2백억 원을 사재에 환원한다고 밝혔다.

  • 8월 30일

    • 국보위 민원실이 폐쇄되었다.(8.27까지 민원 30,953건 집계)

    • 전남-부산지방에 집중호우가 발생해 11명이 사망/실종되고 가옥 79채가 파괴되었다.

    • 8.4 포고령 이후 수용된 불량배 2만 명 중 9,600만 명이 순화교육 이수 후 사회로 복귀했다.

  • 8월 31일

    • 국보위는 '수출입절차 간소화대책'을 발표하였다.

    • 레흐 바웬사 등 노동자들이 폴란드 레닌조선소에서 '솔리다르노시치'를 결성하였다.

2.1.9. 9월[편집]

  • 9월 1일

    •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제11대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 전두환 대통령은 일본 <제군> 지 회견에서 강력한 영도력으로 국민총화 방향으로 전진하겠다고 밝혔다.

    • 정부는 1981년부터 국내 최초로 에너지 센서스를 실시한다고 결정하였다.

  • 9월 2일

    • 전두환 대통령은 남덕우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조각을 단행하였다.

    • 남덕우 신임 국무총리는 1980년대부터 안정적 경제성장 위에 민주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 신일고 야구부가 제1회 서울시장기 쟁탈 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선린상고를 3-2로 꺾어 우승하였다.

  • 9월 3일

    • 전국 대학들이 109일만에 정상수업을 개시했다.

    • 노동청은 '노동조합 정화 역이용 사례 방지 지침'을 전경련, 경총, 한국노총, 대한상의 등에 하달했다.

  • 9월 4일: 육군보통군법회의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15회 공판을 열었다.

  • 9월 5일

    • 문교부는 학과별 최소 졸업정원제 등을 담은 '대학교육개혁시안'을 마련하였다.

    • 서정화 내무장관은 순화교육 이수자에게 취업알선 등 생계대책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 전남북계엄분소는 광주사태 관련자 174명에 기소유예, 정동년 등 나머지 175명에 포고령 위반 및 내란혐의로 각각 기소했다.

    • 서울고법은 이재문 등 '남민전 사건' 관련자 4명에 사형을 선고했다.

    • 도서윤리위는 '만화정화방안'을 마련했다.

  • 9월 6일: 이현주, 박형규 목사가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 9월 8일: 북한 고원 ~ 봉산 간 전기철도가 개통되었다.

  • 9월 9일: 이란-이라크 양군이 샤트 알아랍 수로를 두고 분쟁을 일으켰다.

  • 9월 11일

    • 육군보통군법회의는 내란음모 혐의자 김대중에 사형을 구형했다.

    • 경주 안압지 및 임해전 복원공사가 완료되었다.

    • 새마을지도자중앙협의회가 설립되었다.

    • 연합노조 서울수산시장지부 전 지부장 및 조합원 120명이 노조간부의 운영비 착복을 비판하고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9월 12일

    • 전두환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물가안정세 유지를 지시하였다.

    •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대북한 교류 확대 움직임에 대해 다각적 대응책을 마련했다.

    • 내무부는 사회정화 차원에서 교통 및 거리질서 확립운동을 전개키로 결정하였다.

    • 대한적십자사는 북적에 남북적십자 본회담 조속개최 및 납북선원 조기송환을 제의하였다.

    • 케난 에브렌 터키 육참총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데미렐 정부를 전복시켰다.

  • 9월 13일

    • 정부는 중전기 등 4개 부문 중공업 2단계 통합조정을 단행했다.

    • 육군보통군법회의는 18회 공판에서 김대중의 최후진술을 청취했다.

  • 9월 14일

    • 경제기획원은 인구/주택 센서스 조사기준일을 10월 1일에서 11월 1일로 바꾼다고 밝혔다.

    • <젊음의 행진>이 KBS-TV에서 첫 전파를 탔다.

  • 9월 15일

    • 전두환 대통령은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을 새 정치에 참여시켜선 안 된다고 언급했다.

    • 이규호 문교장관은 교육개혁 저해요소를 배제키 위해 희생을무릅쓸 각오가 됐다고 언급했다.

  • 9월 16일

    • 정부는 금리인하 및 양도소득세율 완화 등을 담은 '종합경제대책'을 마련하였다.

    • 국방부는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군이 민주복지국가와 정의사회 구현의 선봉이 될 건을 다짐했다.

    • 미국 보스턴미술관에서 '한국미술 5천년전'이 개최되었다.

  • 9월 17일

    •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이 박정희 정권기보다 더 민주적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육군보통군법회의는 내란음모 혐의자 김대중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 9월 18일

    • 한국은행은 1979년 기준 실질경제성장률이 6.4%, 국민소득이 1,597 불이라고 각각 밝혔다.

    • 미 국방부는 한국에 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한다고 밝혔다.

    • 북한 조국전선-조평통 연합회의는 김대중 사형선고 규탄성명을 냈다.

  • 9월 19일

    • 한-불 어업협정이 정식 체결되었다.

    • 경제기획원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을 연내에 제정키로 결정하였다.

  • 9월 20일

    • 제105회 정기국회가 개최되었다.

    • 김문수, 방용석 등 민주노조 간부 191명이 강제로 사표를 냈다.(제2차 노동계 정화조치)

  • 9월 21일: 한국 여자농구대표팀이 제8회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였다.

  • 9월 22일

    • 국회 본회의는 남덕우 총리 및 이한기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가결 후 폐회했다.

    • 보사부는 서울, 전북에서 진성콜레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 이라크군 병력이 선전포고 없이 이란 영토를 기습해 전쟁이 발발했다.

  • 9월 23일: 상공부는 185개 산하단체 중 유사/운영중복 단체 28개를 해산키로 결정했다.

  • 9월 24일

    • 문교부는 대학교수들의 학생지도 상담활동을 책임제로 강화하라고 각 대학에 지시했다.

    • 북한 실무대표는 남북총리회담 실무대표 접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 9월 25일: 적십자간호전문대 학생들이 반정부 유인물을 배포했다.

  • 9월 26일

    • 국무회의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국가보위대책회의'로 개칭키로 의결했다.

    • 남북총리회담 서울 실무대표단은 11월 둘째주에 총리회담을 열자고 북측에 공개 제의하였다.

  • 9월 27일

    • 정부는 20개 재벌 계열사 정리 등을 담은 '기업체질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 서울지하철건설본부는 2호선 잠실 ~ 신설동 구간 시범운행을 개시하였다.

  • 9월 28일

    • 내무부-자연보존협회는 경기 포천군 내촌면 임야 15만평을 가꾸기로 결정하였다.

    • 한양대 마취/정형외과팀이 뼈와 살 동시이식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 9월 29일: 전두환 대통령은 임시국무회의에서 '제5공화국 개헌안'을 발의한다고 공고했다.

  • 9월 30일: 정부는 전국 지방장관/경찰국장회의 및 전국검사장회의에 국민투표 저해사범을 철저히 단속토록 시달했다.

2.1.10. 10월[편집]

  • 10월 1일

    • 상공부는 중공업 통폐합작업에 직권조정을 내렸다.

    • 건설부는 주택 5백만 채 건설계획을 발표하였다.

  • 10월 2일

    • 이승윤 재무장관이 국제신용보험기구 설치를 제의하였다.

    • 전주우석여자대가 교명을 '전주우석대학'으로 개칭하였다.

  • 10월 7일

    • 남북총리회담 11차 실무접촉이 북측 불참으로 실패했다.

    • 내무부는 인구 2만 이상 35개 면을 읍으로 승격키 위한 규정을 마련하였다.

    • 계엄사는 수배자 김태홍 전 기협 회장을 수경사 보통군법 검찰부로 구속/송치했다.

    • 부산도시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 10월 8일

    • 정부는 대기업 및 기업인 소유 미신고 부동산을 색출키 위해 '합동조사반' 편성과 정밀조사를 결정하였다.

    • 이규호 문교장관은 전국총학장협의회에서 교수 재임용제를 강력 시행한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고교 우열반 편성을 허용했다.

    • 아메드 세쿠 투레 기니 대통령이 방북했다.

    • 산티아고 카리요 스페인 공산당 총비서가 방북했다.

  • 10월 9일

    • 정부는 '한강유역 환경보전계획'을 마련키로 결정하였다.

    •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 평양에서 리센녠 중공 부주석과 회담을 열었다.

  • 10월 10일

    • 전두환 대통령은 사정협의회에서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제를 마련토록 지시했다.

    • 북한 지도자 김일성은 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 연설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안'을 제의했다.

    • 북한 로동당은 제6차 대회에서 김정일을 당집행위원 29명 중 서열 5위로 선출해 세습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 알제리 북부 엘 아스남 지역에 리히터 규모 7.3짜리 강진이 발생해 2만 명이 숨지고 25만 명이 부상당했다.

  • 10월 11일

    • 남덕우 총리는 학원이 예전처럼 질서 파괴의 근원지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전태일 모친 이소선이 청피노조 임금인상농성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되었다.

  • 10월 13일: 국가보위대책회의는 순화교육자 19,000여 명 중 214명(1.1%)가 재범으로 검거되었다고 밝혔다.

  • 10월 14일

    • 문교부는 각급 학교 운동장을 적극 개방해 활용하도록 전국 국/중/고에 지시하였다.

    • 내무부는 경범죄 처벌자에 즉심 대신 벌금통고서로 대체키로 결정하였다.

  • 10월 15일

    • 이동복 남북조절위 서울측 대변인은 북측의 '고려연방공화국' 제의에 대해 비난성명을 냈다.

    • 경주~포항 간 고속화도로가 개통되었다.

  • 10월 16일

    • 전두환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1981년 3월 전에 대통령선거, 4~5월에 국회의원선거, 6월까지 새 정부 수립 계획이라고 밝혔다.

    • 보건사회부는 의료보험공사 설립과 사회복지기금법 제정 등을 골자로 한 '보사행정 장기계획'을 발표하였다.

  • 10월 17일

    • 고대생들이 선언문 <반파쇼 민주화의 횃불을 들라>를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

    • 서울대 농대생들이 유인물 <민주화 학우선언> 배포 및 시위를 벌였다.

    • 일본 MBS에서 <가면라이더 슈퍼-1>이 첫 전파를 탔다.

  • 10월 18일

    • 고려대는 교내 학생시위로 자진휴업 조치를 내렸다.

    • (현지시간 기준)송요찬 전 내각수반이 미국 시카고에서 세상을 떠났다.

    • 윈드서퍼 박희봉이 8시간 23분만에 대한해협 횡단에 성공하였다.

  • 10월 20일

    • 부산지하철 1호선 공사가 개시되었다.

    • 그리스 정부가 NATO로 복귀하였다.

  • 10월 21일

    • 국무회의는 '의료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키로 결정하였다.

    • 주간 농촌드라마 <전원일기>가 MBC에서 첫 전파를 탔다.

    • 경기공전생들이 반정부 유인물을 배포했다.

  • 10월 22일: 제8차 개헌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 10월 23일

    • 정부는 개헌 국민투표에서 투표율 95.5% 및 찬성율 91.6%로 개헌이 확정되었다고 밝혔다.

    • 건설부는 해외 건설 수출이 당년도 목표치인 60억 불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 서울시립대생들이 반정부 교내시위를 벌였다.

  • 10월 24일

    • 국가보위입법회의 구성이 완료되었다.

    • 육군보통군법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항소심 1차 공판을 열었다.

  • 10월 25일: 전남북계엄분소 보통군법은 광주사태 관련 선고공판에서 정동년 등 5명에 사형, 홍남순 변호사 등 7명에 무기징역을 각각 선고했다.

  • 10월 26일: 한국 남녀 배구 대표팀이 제1화 아시아주니어 배구선수권대회에서 각각 동반우승하였다.

  • 10월 27일

    • 정부는 제5공화국 헌법 제정과 동시에 국회 및 각 정당들을 자동 해산시켰다.

    • 계엄사 합수부는 불교계 정화 명분으로 전국 사찰에 난입해 조계종 승려와 관계자 등 153명을 불법 연행했다(10.27 법난).

  • 10월 28일

    • 전두환 대통령은 국회를 대신할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 81명을 임명하였다.

    • 김동호 동아대 박물관장은 제4회 한국고고학전문대회에서 경남 욕지군도에서 중석기 유적을 발굴했다고 보고했다.

    • 조화순 목사 등 3명이 유언비어 유포혐의로 구속되었다.

    • 시오타 일본 방위청 방위국장이 홋카이도 북방영토 및 독도가 불법 점거되었다고 망언했다.

  • 10월 29일

    • 입법회의는 제2차 본회의에서 이호 의장 등 임원진을 선출했다.

    • 정부는 국무총리 직속으로 사회정화위원회 설치할 계획을 발표했다.

    • 육군 계엄고등군법은 내란음모사건 결심에서 김대중에게 사형, 문익환 등 4명에 징역 20년, 한승헌 등 11명에게 징역 3~4년 6개월 등을 구형했다.

  • 10월 30일

    • 보사부는 1982년부터 모든 의약품에 정찰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 새싹회는 1979년에 자살한 재일동포 학생 임현일 군의 추모식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었다.

  • 10월 31일

    • 문교부는 1981년부터 해외동포교육 강화 방안으로 재외 한국학교 3개교 및 한국교육원 5개교를 증설한다고 밝혔다.

    • 노동청은 원풍모방노조 간부 정화조치를 지시했다.

    • 섬유노조는 원풍모방노조 부지부장 박순희에 조합원 제명조치를 내렸다.

    •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 ~ 종합운동장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중공 정부는 사회주의 경제와 자유경제를 혼합한 새 경제체제를 도입키로 한다고 밝혔다.

2.1.11. 11월[편집]

  • 11월 1일

    • 입법회의 예산결산위는 '1980년도 추경예산안' 종합심사에 착수해냈다.

    • 정부는 '대도시권 정비법안'을 마련하였다.

    • 문교부는 1983년부터 면 이하 지역에서부터 중학교 의무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 보사부는 권삼출 등 10명이 일본 히로시마 원폭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고 밝혔다.

  • 11월 2일

    • 정부는 불황 장기화로 기업의 도태는 불가피하며 구제금융은 없다고 밝혔다.

    • 국무총리 직속기구 '사회정화위원회'가 구 통일주체국민회의 건물에서 업무를 개시하였다.

  • 11월 3일

    • 입법회의는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의결했다.

    • 육군 고등군법은 김대중에 사형, 이문영 징역 20년, 문익환 15년, 예춘호 12년형을 각각 선고했다.

  • 11월 4일

    • 조계종은 임시중앙총회에서 종회를 해산하고 정화중흥회의를 발족한다고 의결했다.

    • 노동청은 '정화된 노동조합 간부의 노조활동 금지 지침'을 발표했다.

    • 경희대생들이 교내에 반정부 유인물을 배포했다.

    • (현지시간 기준)미국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이 대선에서 카터 대통령(민주당)의 연임시도를 저지해 당선되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한국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 11월 5일: 계엄사는 KNCC 인권위 사무실을 수색하고 간사를 연행했다.

  • 11월 6일

    • 경제기획원은 통화공급 규제방식을 간접규제방식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 상공부는 인천 남동구 폐염전을 공업단지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 광주 지하 음악감상실에서 폭발물이 터져 1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당했다.

  • 11월 7일

    • 전두환 대통령은 정치활동 규제대상자 심사위원 9명을 임명하였다.

    • 동자부는 경북 울진원전 5~6호기를 프랑스 프라마톰 사에 발주키로 확정하였다.

  • 11월 8일

    • 정부는 예금금리 2.5% 인하 등을 담은 경제활성화대책을 발표했다.

    • 정치쇄신위는 비공개회의에서 정치활동 규제대상자를 가려내기 위한 특별심사에 착수했다.

    •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대통령은 소련군의 아프간 철수 촉구 및 대 폴란드 외세개입 반대를 선언했다.

  • 11월 9일: <전국 노래자랑>이 KBS-TV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1월 10일

    • 정부는 추곡수매가를 전년도보더 25% 더 올렸다.

    • 문공부는 12월 1일부터 컬러TV 시험방송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 11월 11일: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 관련자 12명이 2심 판결에 불복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 11월 12일

    • 이홍우 시사만화 <나대로 선생>이 동아일보에서 연재를 개시하였다.

    • 정치쇄신위는 정치활동 규제대상자 811명의 이름을 담은 1차 명단을 공고했다.

    • 납북어선 제6~7해왕호 및 선원들이 억류 291일만에 귀향했다.

  • 11월 13일

    • 건설부는 '동서고속도로 건설계획'을 확정하였다.

    • 서울 경서중 1학년생 이윤상이 실종되었다.(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 11월 14일

    • 계엄사는 불교계 부조리수사 결과 승려 등 18명을 구속/형사입건하고 각종 부정치부재산이 2백억 6천만 원이라고 밝혔다.

    • 이규호 문교장관은 기업체와 정부산하기관 채용시험에 <국민윤리>를 넣도록 권장했다.

    • 신문협-방송협 양측은 임시총회에서 '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발표했다.

  • 11월 15일

    • 정치쇄신위는 피규제자 24명을 추가 공고해 피규제자 수는 총 835명으로 늘어났다.

    • 정치활동 피규제자 남재한, 김유복이 정치쇄신위에 '적격심판 청구서'를 냈다.

  • 11월 17일: 원로 작곡가 이흥렬이 세상을 떴다.

  • 11월 18일: 입법회의 법사위는 정당법 및 선관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 11월 19일: KAL 707편 B747기가 서울 김포공항 착륙 도중 큰불로 탑승자 중 14명이 사망했다.(대한항공 015편 착륙 사고)

  • 11월 20일: 사회정화위는 불량만화 출판사 대표 및 만화가 14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 11월 21일

    • 계엄사는 정치활동 피규제자 일부의 정치활동 복귀허용 등을 담은 '포고령 15호'를 발표했다.

    • 정치쇄신위는 적격심판을 청구한 피규제자 569명에 대한 개별심사를 착수했다.

    • 문교부는 학원 소요사태와 관련해 연세대 총장을 소환하고 재단에 계고장을 내렸다.

  • 11월 22일: 이탈리아 남부 이르피니아 지역에 매그니튜드 6.9짜리 강진이 발생해 1만여 명이 숨졌다.

  • 11월 23일: 공주사대 발굴팀이 충남 공주군 공산성 터에서 백제 군창지를 발굴해냈다.

  • 11월 24일: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경남일보가 종간되었다.

  • 11월 25일

    • 정치쇄신위는 정치활동 피규제자 835명 중 268명에 적격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신아일보, 서울경제신문, 일간내외경제, 영남일보, 시사통신, 무역통신 등이 각각 폐업되었다.

  • 11월 26일

    • 김동휘 외무차관은 주한 일본공사에게 김대중 공판에 관해 정부의 강력한 입장을 전했다.

    • 현대경제일보가 <한국경제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다.

  • 11월 27일

    • 입법회의 경제1위원회는 소득세법 등 4개 법안을 심의/통과시켰다.

    • 유치송 등 구 신민당 의원 14명이 '(가칭)민주한국당 창당발기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 11월 28일

    • '민주정의당 창당발기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한-일 간 해저케이블이 개통되었다.

  • 11월 29일

    • 민주사회당 발기준비위원회가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 입법회의 본회의는 '집시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전일-전매 2개 신문이 종간되었다.

  • 11월 30일

    •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TBC, DBS, VOJ, SBC, 한국FM, 국제신문 등이 각각 종방/종간되었다.

    • 한국 여자탁구 대표팀이 제23회 스칸디나비아 오픈탁구선수권대회에서 1~3위를 차지하였다.

2.1.12. 12월[편집]

  • 12월 1일

    • KBS는 신규 TV채널 1개 및 라디오 3개 채널을 개국했다.

    • KBS 1TV가 컬러 시험방송을 처음으로 개시하였다.

    • 전남지역 통합일간지 <광주일보>가 창간되었다.

    • 한국화학분석시험검사소가 설립되었다.

    • 민간단체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발족되었다.

    • 부여사적지발굴조사단이 충남 부여 정림사지에서 백제시기 인공연못을 발굴해냈다.

  • 12월 2일

    • 민정당 창당발기인총회는 이재형을 위원장직에 선출했다.

    • 대청다목적댐이 완공되었다.

    • 반도상사노조가 전/현직 지부장의 회사 출입금지 조처에 항의하며 집회를 열었다.

  • 12월 3일

    • 구 유정회-공화당 의원 18명이 '제1차 창당발기준비위원회'를 열었다.

    • 선관위는 신규 정당 측이 이미 해산된 당명을 쓸 수 없다고 유권해석했다.

    • 부산대 발굴팀이 동래에서 가야시대 금동관을 발굴해냈다.

  • 12월 4일

    • 민정당은 68개 지구당 조직책 명단을 발표하였다.

    • 남덕우 총리는 임금조정은 기업 단위로 노사협의를 통해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 정부는 정책금융 단계적 폐지 등을 담은 '금융산업 자율화방안'을 발표하였다.

    • 국방부는 징집연령을 만 19세로 낮추고 복무기간을 30개월로 단축한다고 밝혔다.

    • 상공부는 염색공업 육성지원을 강화키로 결정하였다.

  • 12월 5일

    • 입법회의는 구속적부심 절차 규정 등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입법회의는 보호감호제도를 도입한 '사회보호법'을 통과시켰다.

    • 정부는 모든 공무원시험에 <국민윤리>를 채택키로 결정했다.

    • 재무부는 1개 시중은행 민영화 및 외국합작은행 신설 등 '금융자율화시책'을 확정지었다.

  • 12월 6일

    • 반공정당 '한국자유민주당'이 창당유보 성명을 냈다.

    • 노동청은 기업별노조 도입, 제3자 개입금지 등을 담은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 노동청은 제3자 개입금지, 산별노조의 기업노조 전환, 유니언숍 제도 폐지, 노조 설립요건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노동조합법과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 12월 7일

    • 전두환 대통령이 사회혼란은 미리 정보를 입수해 막으라고 지시했다.

    • 계엄사 합수부는 임현재 청피노조 지부장 등 간부 6명을 연행했다.

  • 12월 8일

    • 경제기획원은 1981년 중 서울에 농수산물 종합도매시장 8개를 신/증설한다고 밝혔다.

    • 계엄사 합수부는 원풍모방 이문희 지부장대리 등 노조 간부 및 대의원들을 강제 연행했다.

    • 계엄사 합수부는 배옥병 등 서통노조 간부 6명을 연행했다.

    • 전 비틀즈 멤버 존 레넌이 미국 뉴욕 저택 앞에서 마크 채프먼에게 총상을 입고 숨졌다.

  • 12월 9일

    • '민정당 창당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문교부는 국어순화운동을 범국민운동 등으로 강력히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 가농 광주분회원 정순철 등 5명이 5.18 당시 미국의 책임을 규탄하고자 광주 미국문화원에 불을 질렀다.(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 12월 10일

    • 전두환 대통령은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새마을운동이 민간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 권정달 민정당준비위 사무총장은 구 공화당 지방조직을 민정당이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 12월 11일

    • 문공부는 KBS가 MBC-경향 주식 중 65%를 KBS가 인수하고 나머지 35%를 5.16장학회가 보유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김지하 시인 등 8명이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 서울대생들이 교내 학생식당과 도서관 계단에서 <반파쇼 학우 투쟁> 등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무림 사건).

  • 12월 13일

    •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브라운 미 국방장관과 회담을 열었다.

    • 브라운 미 국방장관이 이한 성명에서 한국의 민주성장을 낙관한다고 밝혔다.

  • 12월 14일

    • 경제기획원은 11월 기준 349개 소비자물가 평균가격이 전년도 12월보다 100% 상승했다고 밝혔다.

    • 부산시경은 '효주양 유괴사건' 범인 매석환을 검거했다.

  • 12월 15일: 사회정화위는 전자오락실 393개소, 구슬당구장 114개소, 독서실 139개소에 각각 폐쇄조치를 내렸다.

  • 12월 16일

    • 입법회의는 정치자금의 범위를 확대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 환경청은 전국 교회 차임벨/종소리, 사찰 스피커 등을 자진철거하도록 유도했다.

    • 대한상의는 광공업근로자 의식구조 조사에서 52.5%가 대우받는 직장을 원한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 12월 18일

    • 권정달 민정당준비위 사무총장은 공화당 재산을 무상 양도받았다고 밝혔다.

    • '(가칭)신정당 창당발기인대회'는 위원장에 김갑수를 선출하였다.

  • 12월 19일

    • 국무회의는 대입예비고사제를 학력고사제로 바꾼 '교육법 개정안'을 의결하였다.

    • 정부는 1981년 1월 1일부로 중정을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한다고 발표하였다.

    • 입법회의 본회의는 '한국방송광고공사법' 등 4개 법안을 의결하였다.

    • 국내 최초 통합통신사 '연합통신'이 설립되었다.

  • 12월 20일

    • 계엄사 합수부는 전직 CBS 기자 4명을 군 관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검거하고 1명을 수배 중이라고 밝혔다.

    • 한국기독교선교원이 국내 최초 프로축구팀 '할렐루야'를 창단하였다.

  • 12월 22일: KBS 2TV와 MBC가 컬러방송을 시작하였다.

  • 12월 23일

    • 입법회의 문공위는 '언론기본법안'을 수정/통과시켰다.

    • 대법원 형사4부는 이재문 등 남민전 사건 관련자 57명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지었다.

    • 부산대 발굴팀이 동래구 복천동 고분군 22호 고분석실에서 마구 등을 출토해냈다.

  • 12월 24일: 교보문고가 설립되었다.

  • 12월 26일

    • 입법회의 본회의는 언론기본법 등 19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 입법회의 경제2위원회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 노동관계법안 5개를 통과시켰다.

  • 12월 27일

    •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솔라즈 미 하원의원을 면담했다.

    • 김영균 입법회의 법사위 간사위원은 반공법과 국보법에 유사규정이 많아 법체계 정리 후 본회의에 통과하겠다고 밝혔다.

  • 12월 28일

    • 농수산부는 청정벼 등 38개 신품종을 장려/준장려품으로 선정 후 농가에 공급키로 결정하였다.

    • 자연보존협회는 자연생태계의 심각한 파괴로 보호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하였다.

  • 12월 29일

    • 정부는 '공무원 윤리헌장 5개항'을 선포하였다.

    • 한국-리비아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12월 30일

    • 입법회의 본회의는 노동관계 5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 입법회의가 118개 법안/동의안 처리를 끝으로 당년도 일정을 마쳤다.

    • 상공부는 9.27 기업체질강화대책에 따라 26개 그룹 631개 계열사 중 166개사를 정리토록 지시했다.

    •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이 네덜란드 국제배구대회에서 우승하였다.

  • 12월 31일

    • 경제기획원은 당년도 도매물가가 44.2%, 소비자물가가 34.6%, 경제성장률이 -5.7%로 기록되었다고 밝혔다.

    • 정부는 언기법 등 26개 법안을 제정했다.

    • 합동-동양통신이 종간되었다.

2.2. 가상[편집]

3. 탄생[편집]

3.1. 실존 인물[편집]

3.2. 가상 인물[편집]

4. 사망[편집]

4.1. 실존 인물[편집]

4.2. 가상 인물[편집]

5. 데뷔[편집]

5.1. 가수[편집]

5.2. 배우[편집]

5.3. 예능인[편집]

5.4. 만화계[편집]

  • 강창욱 - <점등>, <탈출>

  • 권현수 - <청춘행진곡>

  • 김학운 - <호랑이의 사랑>

  • 박연 - <환상의 폴로네이즈>

  • 신기원 - <아름다운 여인>, <킬러>

  • 아라키 히로히코 - <무장 포커>

  • 이재복

  • 전일봉

  • 전혜경 - <제니의 노래>

  • 정형기

  • 조대현 - <제갈통 투수>

  • 조주청 - <뫼 뿌리>

  • 최홍재 - <코돌이 박사>

  • 타카하시 요이치 - <캡틴 츠바사>

  • 하승남 - <목림방>

  • 황미나 - <이오니아의 푸른 별>

5.5. 스포츠[편집]

5.5.1. 농구[편집]

  • 김영희

  • 김화순

  • 대럴 그리피스

  • 래리 드류

  • 로리 스패로우

  • 릭 마혼

  • 마이크 그민스키

  • 마이크 오코렌

  • 마이크 우드슨

  • 앤드류 토니

  • 우은경

  • 이원우

  • 제프 럴랜드

  • 조 배리 캐롤

  • 커트 램비스

  • 케빈 맥헤일

  • 키키 반더웨이

  • 테리 스토츠

5.5.2. 배구[편집]

  • 김정순

  • 이명희

  • 정금선

5.5.3. 권투[편집]

6. 히트작[편집]

6.1. 영화[편집]

  • 바람불어 좋은 날

  • 이주일의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6.2. 가요[편집]

  • 나미 - 영원한 친구

  • 박경애 - 곡예사의 첫사랑

  • 백영규 - 슬픈 계절에 만나요

  • 송창식 - 가나다라

  • 윤수일 - 유랑자

  • 윤시내 - 열애, 천년

  • 장은숙 - 춤을 추어요

  • 조용필 - 단발머리, 창밖의 여자

  • 현숙 - 정말로

6.3. 베스트셀러[편집]

  • 만다라 - 김성동 저.

  • 방황의 끝 - 김이연 저.

7. 유행어[편집]

  •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못생겨서 죄송합니다 - 이주일

8. 달력[편집]


[1] 그 당시 소련이 적대국이라는 정치적 이념이 있었지만, 올림픽에까지 불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침공 크리가 터져 동맹국인 미국이 불참을 결정하면서 한국도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2] 물론 경제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제2차 오일 쇼크로 인한 성장 지체였다.[3] 2006년 10월에 사망한 최규하 전 대통령과 2009년 5월에 사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장이었다.[4] 이전까지는 사이클링 히트라는 개념이 한국 야구계에 없었기 때문에 나왔더라도 기록되지 않았다.[5] 세일러 문 코믹스 구단행본 한국판 5권에서 세라(우사기)의 생년월일이 1980년 6월 30일로 나와있다. 이는 한국판 한정으로, 공식적으로는 6월 30일이고 생년은 불명.[6] 애니메이션판을 보면 토모코의 부모는 고등학교 들어간 해 이혼을 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토모코의 부모가 갈라진 것은 고베대지진이 일어나자 아버지가 일에 매달리느라 가정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투하트 RMM 참조.) 그리고 게임의 달력은 게임이 나온 1997년과 동일한 달력을 사용한다. 더군다나 투하트는 당시 규제가 없어 고등학교라는 타이틀을 그대로 쓴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고2. 1980년생이 맞다.[7] 여주인공 한소영의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