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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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

85년

일본

헤이세이 8년

히브리력

5756년 ~ 5757년

에티오피아

1988년 ~ 1989년

가상의 표기

UED

GD 366년

월야의 프로마쥬

AL 605년

1. 개요2. 주요 이슈
2.1. 실종된 개혁의지, 1996년 문민정부2.2. 전-노 심판2.3. 여의도 지하철 시대의 개막2.4. 정보인권 침해의 해, 1996년2.5. 서태지와 아이들 공식 해체, 그리고 서기회의 정신 계승2.6. 하루아침에 난리가 난 말레이시아
3. 사건
3.1. 실제
3.1.1. 1월3.1.2. 2월3.1.3. 3월3.1.4. 4월3.1.5. 5월3.1.6. 6월3.1.7. 7월3.1.8. 8월3.1.9. 9월3.1.10. 10월3.1.11. 11월3.1.12. 12월
3.2. 가상
4. 탄생
4.1. 실존 인물4.2. 가상 인물
5. 사망
5.1. 실존 인물
5.1.1. 1월5.1.2. 2월5.1.3. 3월5.1.4. 4월5.1.5. 5월5.1.6. 6월5.1.7. 7월5.1.8. 8월5.1.9. 9월5.1.10. 10월5.1.11. 11월5.1.12. 12월5.1.13. 일자 불명
5.2. 가상 인물
6. 데뷔
6.1. 가수6.2. 만화계6.3. 스포츠6.4. 배우6.5. 예능인
7. 은퇴
7.1. 가수7.2. 스포츠
8. 베스트셀러

1. 개요[편집]

문민정부에서 그나마 좋았던 해[1] 하지만 일본에는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그리고 1990년대 들어 비틀대던 학생 운동권이 연세대 사태로 KO펀치를 맞아 몰락 테크를 타기 시작했다. 종신 정년제, 연공 서열제가 유지되던 당초의 관행과는 달리 기업들이 능력별 진급제를 도입하고 명예 퇴직을 권유하는 일이 많아져 '명퇴 증후군', '실직 증후군'이라는 유행어가 생겨나는 등 다가올 경제 위기가 예고되기도 했다.

한국의 마지막 벨 에포크를 상징하는 해. 초대형 사고 없이 무사히 잘 넘어갔다. 하지만 무역수지 적자가 200억 달러를 돌파하여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경제에 잇달아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고 결국 이듬해에 크게 터지고 말았다.

PC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Windows 95 덕분에.[2] 오오 찬양하라! 또한 김영삼 대통령은 그해 10월 14일부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 5대 목표'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 5대 목표

1.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가 협력하는 열린사회
"정보를 가진 자"와 "정보를 못 가진 자"의 격차를 해소, 모든 국민들이 정보와 지식을 공유해 차별없이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보접근에 있어서의 기회균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2. 인간중심의 가치를 창조하고 윤택한 삶을 누리는 사회
인간이 자연을 보다 지혜롭게 이용하고 자연파괴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정보기술을 활용한다.

3. 전통문화가 발전적으로 전파되고 계승되는 문화사회
정보사회에서는 문화의 교류가 그 어느때보다도 빠르게 진행될 것이며 세계 각국의 새로운 정보시스템들은 자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므로 우리도 정보화를 통해 우리의 우수한 문화자원을 정보자원으로 적극 개발,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4. 투명하고 공정한 정보민주주의 사회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기에 제공하는 것이 정보민주주의 구현의 실체다. 정보민주주의에서는 열려 있는 전자공간을 통해 국민들의 알 권리, 의사표현의 자유, 신념의 자유 등이 보다 확실히 보장될 수 있다.

5. 인류공동번영에 기여하는 아시아의 정보중심국가
APII를 제창, 실현시킨 데 이어 앞으로도 아시아지역의 이해증진과 공동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인 국제협력을 추진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진보진영 입장에서 1996년은 '통신사상 암흑의 해'라 불릴 정도로 공권력에 의한 사이버 공간 단속이 가장 심했다. 이는 아래에 후술.

이 해 대한민국 최초의 온라인 그래픽 게임바람의 나라가 1996년 4월 5일부터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3]

국민학교의 명칭이 공식적으로 초등학교로 바뀐 첫 해이다. 정확히는 대한민국 교육 학사일정이 시작되는 3월 1일부터이다. 간혹 83년생들이 "나 초등학교 졸업했뜸."이라고 우기기도 하는데, 안타깝지만 83년생들은 이미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정 믿기지 않는다면, 졸업장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분명 국민학교라고 찍혀 있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이 사상 최초로 아시아 국가인 한국일본에서 공동개최를 하기로 확정되었다(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 당시 양국에서는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 경쟁으로 열기가 달아오르기도 했다. 또 독도 영유권 및 일본 정치인의 망언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가 어느 때보다 격랑을 맞았던 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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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18일, 북한이 일으킨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긴장과 불안을 탔다. 특히 강릉시를 비롯한 영동지방은 야간 통금제도를 시행했다. 무장공비는 11월 5일에 가서야 완전히 소탕되었는데 작전초기 매일 4만명의 인원이 동원되는 등 11월 5일, 소탕까지 무려 2백만명 정도의 (예비군 포함)병력이 투입되었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문제점 분석

공비 소탕과정에서 희생된 사망자는 무려 14명이다. 이 가운데 10명은 군인이었다. 2명의 군인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뿐만 아니라 육군에서 14명이 교전중 부상을 당하는 등 부상자도 속출했다. 민간인 희생자 4명은 공비 소탕작전 와중에 버섯을 캐러갔다가 변을 당했다. 9월 23일 새벽에는 버섯을 캐러 갔던 농부가 육군의 오인 사격으로 숨졌고 북한이 보복을 선언한 직후인 지난달 9일에는 진부령 탑동리에서 버섯을 따러 나섰던 민간인 3명이 공비들에게 살해당했다. 강릉 무장공비사건 인명피해상황

인디펜던스 데이 등의 개봉으로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에서만 역대 한 해 흥행 수입과 관객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기도 하여 94년의 기록을 경신했다. 다시 한번, 95년 영화 지못미.

이 해 태어난 사람은 교육적인 고통이 극심했던 세대가 되었다. 중학교때는 수학(산포도 등이 추가)과 영어가 개정되었고 고2까지 집중이수제를 했고 폐지되었을땐 이미 고3(...). 아이고 의미 없다 그리고 고3때는 스포츠 행사가 껴있던데다가[4] 역사상 최악의 물수능이자 막장 수능를 치른 세대가 되었다. 그리고 남자는 이 세대까지는 극심한 입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 해 초등학교 입학한 세대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경제, 교육, 취업, 그리고 남자는 국방면에서 최악이라...이 해는 태어날때부터 최악이었다
한편 국제연합은 이 해를 '빈곤퇴치의 해'로 지정했고,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이 해를 문학의 해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그 해에 박노해, 황석영, 김하기, 진관 스님 등 양심있는 작가들이 이미 구속되었거나 새로 구속되었기 때문에 재야 계열에선 '문학 탄압의 해'로 꼽히기도 했다.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1996년 올해의 한자는 '食(먹을 식)'이었다.

어째 언급이 잘 안 됐는데 이 해는 병자년이였다. 1976년 병진년보다도 더 묻힌 감이 있다.

경기도 용인군용인시로 승격된 해이기도 하다. 또한 용인에 위치한 자연농원도 이때 에버랜드로 개명되었으며 캐리비안 베이도 개장했다.

2. 주요 이슈[편집]

2.1. 실종된 개혁의지, 1996년 문민정부[편집]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보수회귀로 차기 재집권의 기회를 마련코자 했다. 그는 지방선거가 끝난 3주일 뒤 7월 20일에 민자당 당무위원과 상근 당직 초청 조찬에서 "1996년에 있을 15대 국회의원 총선에선 후보자 공천을 한 사람 한 사람씩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김영삼 대통령이 당을 직접 장악해 차기 대권 구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김영삼은 이를 실행해 당명도 12월 6일부터 '신한국당'으로 바꾸었고, 마침내 1996년 4월 11일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과반수에 미달했음에도 승리를 거머쥐었으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이처럼 '안정 위에 중단', '중단 위에 개혁'을 외치던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 의지는 국민들의 불신 속에서 이미 물 건너갔고, 대신 김영삼 정부의 행태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변질되어 그해 6월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 강제연행 사건, 11월 27일 평택 에바다농아원 농성 강제진압, 12월 안기부법 및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또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 새벽 신한국당은 기습적으로 임시국회를 소집해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날 본회의에는 신한국당 157명 중 외유중인 김윤환 고문과 야당의 감시를 받고 있던 김수한 국회의장을 뺀 155명 전원이 참석했다. 이에 야당은 반발해 국회 농성에 들어갔으며, 민주노총도 다음날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리하여 김영삼 정부 몰락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2.2. 전-노 심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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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6일, 서울지검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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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2월 16일, 전두환과 노태우는 무기징역과 징역 17년형으로 감형되는데 전두환 前 대통령은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노태우 前 대통령에게는 징역 17년이 선고한다. 그렇지만 항소심 선고에서 눈에 띄는 건 6.29 이전의 정부를 내란에 의한 정부라고 규정한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 1부는 이날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전두환 피고인에게 군 형법상 반란죄와 내란죄, 뇌물수수죄 등을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노태우 피고인에 대해서도 같은 죄목으로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또 전두환, 노태우 두 피고인이 재임 중 기업체 등으로부터 뇌물로 거둬들인 2,205억 원과 2,628억 원을 각각 추징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황영시, 허화평, 이봉 피고인에게 반란 중요임무 종사죄 등을 적용해 각각 징역 8년을, 그리고 정호용, 이희성, 주영복 피고인에게는 징역 7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허삼수, 유성 피고인에게는 징역 6년, 최세창 피고인에게는 징역 5년 그리고 차규헌, 장세동, 신윤희, 박종규 피고인에게는 각각 징역 3년6월이 선고되는 등 대부분 1심보다 낮은 형량이 선고됐다.
한편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박준병 피고인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를 받은 15명 가운데 전두환 피고인에 대해서는 사형에서 무기로, 노태우 피고인에 대해서도 징역 22년6월에서 17년으로 감형하는 등 형을 낮췄지만 주영복 피고인의 경우에만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른바 신군부 세력은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고 5.17 내란을 통해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등 힘으로 정권을 탈취한 사실이 인정되지만 6.29 선언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실현한 점 등을 참작해 형량을 낮춘다고 밝혔다.[5] 항소심 재판부는 전두환·노태우 두 피고인의 1심 판결은 물론, 검찰 공소사실의 대부분을 인정했으나 두 피고인에 대한 양형에는 관대했다. 권성 재판장은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하극상의 패역으로 군의 기강을 파괴했다고 전두환 피고인을 질타했다. 5.17과 관련해서는 내란을 일으켜 힘으로 권력을 탈취하면서 많은 사람을 살상하고 군사통치의 종식을 기대하는 국민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고 판결했다. 노태우 피고인에 대해서는 분수에 맞지 않게 시종 전두환의 뒤를 따라 영화를 누렸다고 비판했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이처럼 전·노 두 피고인의 죄를 따지는데 엄격했다. 쟁점이었던 국헌문란의 폭동 종료시점을 87년 6.29 선언으로 판단해 5공의 정통성을 사법적 판단으로 부인하는 과감함도 보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양형에는 관대함을 보였다. 권력의 상실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정치문화로부터 탈피하는 일은 쿠데타를 응징하는 것에 못지않게 필요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전두환 피고인의 형을 줄여주었다. 前 피고인을 감형한 만큼 노태우 피고에 대한 형도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선고는 실무적인 사법적 판단보다는 고도의 정치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논란을 빚었다.[6]


당시 전두환 노태우의 감형에 대해 mbc와 갤럽이 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결과를 보면
전두환.노태우 감형 판결과 사면 여부 관련 여론조사 결과
- 전두환씨 감형(551명 전화조사)
부적절했다: 47.9%, 적절했다: 44%, 모르겠다: 8.0%
- 6.29가 감형요인?
잘못한일: 50.1%, 잘한일: 32.9%, 모르겠다: 17.0%
- 노태우씨 감형

부적절했다: 57.4%, 적절했다: 32.8%, 모르겠다: 9.8%

- 6.29가 내란종료 시점

옳다: 56.4%, 옳지 못하다: 26.8%, 모르겠다: 16.7%

- 전두환.노태우씨 사면 가능성

사면될 것: 42.2%, 사면 안될것: 40.5%, 모르겠다: 17.3%

- 항소심에 대한 시각

정치적 재판: 65.5%, 그렇지 않다: 20.9%, 모르겠다: 13.6%

- 실형받은 재벌도 감형

부적절했다: 48.8%, 적절했다: 40.4%


문화방송한국갤럽이 당시 전국의 성인남녀 551명을 전화 여론 조사한 결과 전두환 씨 감형에 대해 적절했다는 대답이 44%, 부적절하다는 대답이 47.9%로 찬반이 엇갈렸다. 전 씨가 6.29 선언을 주도했다는 주장이 사실일 경우 감형이 잘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32.9%만이 잘한 일이라고 답 해 6.29가 감형요인이라고는 보지 않는 경향이 우세했다. 노태우 씨의 감형에 대해서는 32.8%만이 적절하다고 답했고, 부적절하다는 답변은 57.4%로 노 씨에 대한 국민정서가 전 씨에 비해 더 비판적이었다. 또 6.29를 내란종료 시점으로 규정한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이 56.4%로 우세했다. 전·노 두 사람이 김영삼 대통령 임기 안에 사면될 것이라 는 전망은 42.2%,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은 40.5%로 엇비슷했다. 아울러 이번 항소심 재판이 현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치적 재판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65.5%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서는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은 재벌총수들을 집행유예로 감형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국민들이 다소 많았다.[7]



결국 전두환과 노태우는 이듬해인 1997년 대선에서 전두환 노태우 사면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의 3후보의 뜻에 따라 김영삼대통령과의 협의로 1997년 12월 22일 사면되었다.[8] 반면 5공 정권 당시 간첩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함주명, 김성만 등 장기복역 시국사범(양심수)들은 거의 석방이 안 되어 희비가 엇갈렸다.[9]

2.3. 여의도 지하철 시대의 개막[편집]

그 동안 1~4호선 노선에서 제외되었던 서울 여의도 지역이 서울 지하철 5호선의 부분 개통으로 본격적인 여의도 지하철 시대가 개막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서울 강서권 지역도 지하철 시대가 개막됨으로서 기존 지하철 노선에서 제외되었던 서울 여의도와 강서권 지역이 역세권 지역에 포함되어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시대가 개막되어 여의도 직장인들의 출근길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았다.

2.4. 정보인권 침해의 해, 1996년[편집]

당시 진보/재야계열을 비롯한 일반 네티즌 입장에서 1996년은 '통신사상 암흑의 해'라 불릴 정도로 공권력에 의한 사이버 공간 단속이 가장 심했다.

그해 4월에는 15대 총선을 즈음해 검찰이 PC통신 게시판에서 특정 후보들을 비방한 20여명을 불구속 입건한 것을 비롯해 8월에는 나우누리에 있던 한총련 CUG를 경찰이 나우콤 본사를 압수수색해 강제로 폐쇄했고, 9월에는 경찰이 강릉 무장공비 사건 조작설을 PC통신 게시판에 유포한 유저들에 대해 수사를 착수하여 10월에는 <그들이 무장공비인가>를 올린 윤모씨를 구속한 바 있었다. 이 사태로 인해 PC통신 상에서 시사와 관련된 게시글 수가 감소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이듬해에 열린 15대 총선 당시 선거법의 엄중 적용 당시에도 발생했다.

이러한 공권력의 사이버공간 검열 움직임에 네티즌들은 PC통신 게시판에 같은 시기에 미국의 네티즌들이 통신품위법에 항의하기 위한 '블루리본운동'을 본따 '하얀리본(▷◁)'을 달아 끈질기게 항의했다. 어쩌면 이는 요즘 말하는 '온라인 시위'의 시초격이기도 하다.

2.5. 서태지와 아이들 공식 해체, 그리고 서기회의 정신 계승[편집]

이 해 서태지 팬들에게는 가슴 아픈 한 해이기도 하였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공식 해체를 선언하였던 해여서 서태지 팬들과 젊은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하며 기성문화를 거부하고 개성있고 파격적인 공세로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는 그 당시만 했어도 충격이자 이변적인 일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관련 기자회견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는데 90년대 신세대 문화를 이끌어왔고 가요계를 이끌어왔던 그들이었기에 해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고 해체에 슬픔을 느끼는 팬들도 많았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한 이후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H.O.T라는 신성 아이돌 그룹이 이들의 바톤을 이어받아 가요계를 주름잡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1세대 아이돌들의 전성기가 개막되었다.

세간에서는 이들 서태지와 아이들을 잠정적인 아이돌 그룹이라고도 보고 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기 이전인 80년대까지는 아이돌 그룹도 없고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파격적인 그룹도 없었던데다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90년대 후반에서 1세대 아이돌 그룹이 탄생한 것을 봐도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 아이돌 그룹의 선조가 아닌가하는 추측도 내놨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 아이돌 그룹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하는 그런 짐작이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태지보이스는 사라져도 그들이 남긴 자유와 도전정신은 죽지 않았다. 이들이 은퇴한 지 두어 달 뒤인 1996년 3월,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이하 서기회)'가 발족되었다. 전국적으로 13,000여 명을 둔 이 단체의 회장인 강민경은 서기회가 팬클럽이 아닌 서태지의 뜻을 이어받은 문화단체라 하여 "맹목적인 열광이 아닙니다. 서기회 회원들은 모두 '태지보이스 팬답게 행동하자'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들의 활동은 1996~1997년 겨울을 강타한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정국 때 PC통신상의 활동에서 드러났다.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신'이라는 믿음으로 블랙리본 내걸기를 제안했고, 사회문제란인 '시대유감'과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는가'란 토론방에서 10~20대의 젊은 회원들이 총파업 지지글을 올리는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같은 시기 나우누리의 서태지와 아이들 팬클럽도 "태지보이스가 그렇게 부르짖던 자유와 도전은 모두 민주주의 아래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에 우리는 비민주적이고 국민을 기만한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을 개탄하며 민주주의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바입니다"라고 하여 '근조 민주주의'라고 적힌 검은 리본을 내걸었다.

한편 같은 해 7월 30일에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도 당사 총재실에서 서기회가 준비한 영상 콘서트 축하 메시지를 녹화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은 좋은 의미에서 우리나라 신세대의 대표적 존재로 보며 소중히 생각한다"며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했지만 예술인이란 대중의 사람으로 대중이 원하면 하루 속히 복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표곡 <발해를 꿈꾸며>에서 "언젠가 우리 작은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란 가사를 외우며 "이런 가사는 정말 감동적"이라 평했다.

2.6. 하루아침에 난리가 난 말레이시아[편집]

한편 말레이시아에서는 국민 가수인 시티 누르할리자정규 1집을 내고 데뷔한 시기이다. 이 때 말레이시아 가요계는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지아나 제인이나 파우지아흐 라티프를 비롯한 기존의 인기 가수들에게 한방의 K.O를 날렸고, 시티는 이후 현재까지 말레이시아 가요계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쥔 독재자가 되었다. 대한민국 가요계가 가수들의 자살 및 그룹 해체 등으로 슬픔에 잠겨있던 판에 말레이시아에서는 되려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3. 사건[편집]

3.1. 실제[편집]

3.1.1. 1월[편집]

  • 1월 1일

    • 김영삼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역사바로세우기는 제2 건국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하였다.

    • 가수 서지원이 20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다. 그의 유작이 된 2집 앨범의 타이틀 곡 <내 눈물 모아>는 1996년 최고 히트곡으로 기록되었다.

    • 인간문화재 김월하 명창이 세상을 떴다.

    • 새뮤얼 헌팅턴의 저서 <문명의 충돌>이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 1월 6일: 서지원의 죽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포크송 가수 김광석마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 1월 7일: 계속되는 겨울 가뭄으로 영/호남 지역에 격일제 급수가 확산되었다.

  • 1월 8일

    •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하였다.

    • 주간 소년 선데이의 인기작 《명탐정 코난》의 애니판이 일본 요미우리TV에서 첫 방영되었다.

  • 1월 14일: 한국통신의 무궁화위성 2호가 미국 케이프 커네버럴 기지에서 발사에 성공하였다.

  • 1월 15일: 북한 온성군~왕재산 간 무궤도전차선이 완공되었다.

  • 1월 16일: 한국일보사가 인터넷신문 서비스 '코리아링크'를 개설하였다.

  • 1월 17일

    • 서울지검은 유학성, 황영시, 장세동, 이학봉, 최세창 등 신군부 관련인사 5명에 대해 12.12사건 관련 내란 및 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 종전의 북한 사로청이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 1월 18일

    • 서울지법 합의21부 김문관 판사는 12.12 쿠데타에 대한 공소시효 문제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다.

    • 문체부는 '만화산업 육성책'을 발표하였다.

  • 1월 19일: '민중운동탄압분쇄와 민주기본권쟁취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월 20일

    • 원작자 이현세 화백이 총지휘한 극장 애니 <아마게돈>이 전국 56개관에서 동시 개봉되었다.

    •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가 웨스트뱅크, 동예루살렘, 가자 지구에서 동시에 열렸다.

  • 1월 21일

    • 민주노총 산하 '전국민주금속노동조합연맹'이 결성되었다.

    • 아라파트 PLO 의장이 팔레스타인 자치총선에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1월 22일

    • 이회창 전 총리가 신한국당 입당을 선언하였다.

    • 짚풀문화연구회가 세워졌다.

  • 1월 23일

    • 검찰은 5.18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 검찰은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노태우 당시 보안사령관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 제4차 IAEA 대표단이 북한 평양에 도착하였다.

  • 1월 24일: 북한 원자력총국과 IAEA 협상대표단이 제4차 협상을 진행하였다.

  • 1월 25일: 헌법재판소는 '반국가행위자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대해 위헌 선고를 내렸다.

  • 1월 26일

    •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1차 공판을 열었다.

    • 일본 Leaf 사는 성인용 게임시즈쿠》를 MS-DOS 형태로 발매하였다.

  • 1월 27일: 한국문화복지협의회가 설립되었다.

  • 1월 28일: 프랑스가 남태평양 팡가투타 암초에서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 1월 30일

    • 한국 정부는 유엔해양법협약 비준서를 부트로스 길리 유엔 사무총장에게 기탁하였다.

    • 서울지검은 5.18과 관련하여 정호용, 허화평, 허삼수 등 현역 의원 3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였다.

    • 일산선 대화역 ~ 지축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1월 30일: '유권자운동연합'이 발족되었다.

  • 1월 31일

    • 세계화추진위는 49개 과제를 확정 발표하였다.

    • 아이돌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성균관 유림회관에서 은퇴를 선언하였다. 당시 이들이 팬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한것이나 다름이 없어 아주 난리가 났다.

    • 신세계백화점은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중국 상하이에 지점을 냈다.

3.1.2. 2월[편집]

  • 2월 1일

    • 신세기통신이 CDMA 방식 이동전화 시범서비스를 개시하였다.

    • '전기통신법 개정안(일명 통신품위법(CDA))'이 미국 상/하원을 통과하였다.

    • '구 유고 한국 경제사절단'이 결성되었다.

    • 제26차 세계경제포럼이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되었다.

  • 2월 2일

    • '골수기증운동본부'가 발족되었다.

    • 북한 외교부는 북한 지역에서 수재 구호활동 중인 유엔 기구 및 국제적십자기구 대표자들을 소집해 유엔 인도지원국의 대북 수해지원 호소계획 중지와 요원 철수를 요청했다.

  • 2월 7일: 일본 후지TV에서 드래곤볼 GT가 첫 전파를 탔다.

  • 2월 8일

    •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통신품위법 개정안에 서명하였다.

    •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이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연방지방법원에 위헌소송을 청구했다(ACLU vs. RENO(법무장관) 사건).

    • 북한의 비날론 발명가 리승기가 사망했다.

  • 2월 12일: 대한민국 중소기업청이 출범되었다.

  • 2월 13일: 국회 통일외무위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2월 15일: 전경련은 '기업윤리헌장'을 채택하였다.

  • 2월 16일: 헌재는 서울지법이 제청한 5.18 특별법 위헌심판 및 2건의 헌법소원 등 12.12 및 5.18 관련 결정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 2월 17일: 강제규 감독의 영화 은행나무 침대가 개봉되었다.

  • 2월 20일: 정부는 공노명 외무부장관 성명을 통해 EEZ 전면 설정방침을 공식 발표하였다.

  • 2월 27일

    • 닌텐도가 포켓몬스터 적/녹을 일본에 발매하였다.

    • 미국도서관협회를 비롯한 컴퓨터 및 통신 관련 30개 단체가 ACLU와 동일한 요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 2월 28일

    • 강원 평창에서 제6회 용평 국제스키대회가 개최되었다.

    • 러시아가 유럽의회의 3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되었다.

    • 이스라엘과 시리아 양국이 미국 워싱턴에서 평화협상을 재개하였다.

  • 2월 29일

    • 내무부는 기존의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을 하나로 통합한 차세대 신분증 '전자주민카드'를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주민 1천여 명에게 시범 도입했다.

    • 문명 2가 미국에 발매되었다. 하지만 시드 마이어에서는 제작에 참여하지 못했다.

3.1.3. 3월[편집]

  • 3월 1일

    • 한국과 EU 양측이 정치/경제협력협정에 서명하였다.

    • 전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봉사활동 점수제가 도입되었다.

    • 상명여대가 '상명대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 국민학교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 LG화재가 보험업계 최초로 긴급출동서비스를 실시하였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격주전대 카레인저의 방영이 개시되었다.

  • 3월 3일

    • 민속학자 석주선 여사가 세상을 떴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B 파이터 카부토가 첫 전파를 탔다.

  • 3월 5일: IAEA는 프랑스의 핵실험 실시지역을 대상으로 환경영향 조사에 착수하였다.

  • 3월 6일: 북한 남남협조회사가 건설한 파키스탄 카타이 수력발전소가 준공되었다.

  • 3월 18일

    • 한국통신 무궁화위성 1호가 상용 위성통신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 전통문예회관연합회와 한국관광연구원이 세워졌다.

  • 3월 21일: 닌텐도가 별의 커비 슈퍼 디럭스를 일본에 발매하였다.

  • 3월 22일

    • 캡콤은 바이오하자드를 일본에 발매하였다.

    • 세가 새턴의 후기형 모델이 일본에 발매되었다.

    • 미국 필라델피아 연방지방법원은 'ACLU vs. RENO(법무장관)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 3월 29일

    • 연세대 법대생 노수석이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확보를 위한 서총련 결의대회' 도중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숨졌다.

    • 남코는 철권 2의 PS1판을 일본에 발매하였다.

  • 3월 30일: 서울 지하철 5호선 마천지선이 개통하였다.

3.1.4. 4월[편집]

  • 4월 1일

  • 4월 4일

    • 북한군 당국은 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DMZ의 유지 및 임무에 관한 임무 포기를 선언하였다.

    • 나카요시 인기 연재작 수색시대의 애니판이 일본 TV도쿄에서 첫 전파를 탔다.

  • 4월 5일

  • 4월 6일: 식품의약품안전본부가 발족되었다.

  • 4월 9일: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PC통신 상에서 특정 후보를 비방한 20명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불구속 입건되었다.

  • 4월 10일: 국제방송교류재단이 발족되었다.

  • 4월 11일: 이날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어, 집권여당인 신한국당이 수도권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제3정당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50석으로 약진하고, 거기에 다음해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의 DJP연합의 정권교체까지 겹치면서 15대 국회는 보기 드문 스윙 국회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16대까지 이어졌다.

  • 4월 12일: LA다저스 선수 박찬호가 MLB에 등판 첫 승리를 거머쥐었다.

  • 4월 14일: 비영리 사회/문화단체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이하 서기회)'가 발족되었다.

  • 4월 15일: 마라톤 선수 황영조가 기자회견에서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 4월 16일

    •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시카고 불스가 미국 NBA 정규시즌 마지막 날에 워싱턴 불리츠를 87-75로 꺾어 리그 신기록인 72승을 달성하였다.

  • 4월 19일: SNK는 메탈슬러그를 일본에 처음 발매하였다.

  • 4월 23일: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에서 육군이 불량 TNT를 잘못된 방법으로 처리해 국내 최대 규모의 산불이 발생했다. 이 산불로 49세대, 140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25일까지 산림 3,834ha가 소실되었다.

  • 4월 26일: 북한측은 미국 CNN 평양지국 개설을 허가하였다.

  • 4월 27일

    • 한겨레신문이 인터넷 뉴스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 한국 영화 역사상 최악의 영화제로 평가받는 제34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애니깽 사태가 발생했다.

3.1.5. 5월[편집]

  • 5월 1일: 2인조 남성 듀오 클론이 데뷔하였다.

  • 5월 2일: 유엔은 '대인지뢰 사용 제한 협약안'에 합의하였다.

  • 5월 3일: 한국증권거래소에서 코스피200 주가지수 선물 거래가 시작되면서 국내에 파생상품 시장이 최초로 개설되었다.

  • 5월 5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OB 베어스LG 트윈스(LG홈)간의 더블헤더가 열렸다. 이는 어린이날시리즈의 시초였다.

  • 5월 8일: 정부는 북한측에 4자회담 수락을 촉구하였다.

  • 5월 9일: 미-북 양국은 뉴욕에서 열린 미군유해송환협상에서 공동합의문을 발표하였다.

  • 5월 13일: 북한측은 일본에 식량원조를 요청하였다.

  • 5월 15일: '전자주민카드 시연회'가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5월 20일: KEDO와 북한은 경수로 공급협정을 위한 특권/면제 및 영사보호에 관한 후속의정서 협상을 타결시켰다.

  • 5월 21일: 탄자니아 빅토리아호에서 여객선 부코바(Bukoba)호가 침몰해 탑승객 800명 이상이 사망했다.

  • 5월 23일: 국방부는 북한 공군 소속 이철수 대위가 MiG-16기를 몰고 귀순했다고 발표하였다.

  • 5월 29일: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이하 노개위)가 발족되었다.

  • 5월 31일: FIFA총회는 2002년 월드컵을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개최하기로 확정하였다.

3.1.6. 6월[편집]

  • 6월 중: 한국 서바이벌게임 역사상 흑역사로 손꼽히는 96대란 사건이 발생했다.

  • 6월 1일

    • 롯데쇼핑이 국내 최초의 인터넷쇼핑몰 사이트 '롯데인터넷백화점'을 개설하였다.

    • 예금보험공사가 설립되었다.

  • 6월 3일: 경기 성남에서 외노자 인권운동단체인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외국인관리소 직원들이 들이닥쳐 김해성 목사와 네팔인 노동자 부부를 강제 연행해갔다.

  • 6월 7일: 음비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63년만에 음반의 사전검열이 폐지되었다. 일등공신은 단연 헌법소원까지 내면서 사전심의에 저항했던 정태춘·박은옥.

  • 6월 12일: 미국 필라델피아 연방지방법원의 돌로레스 K. 슬로비터 판사를 재판장으로 한 3인의 재판부는 통신품위법에 대해 위헌 판정을 내렸다. 이에 재판부는 "음란물의 인터넷 게재를 불법화하는 연방정부의 조치는 위헌이며 컴퓨터 통신망은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최대한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 6월 16일

    • 러시아 대통령 선거 예선 투표가 시행되었다. 선거 결과 현직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과 러시아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가 1,2위를 차지했다. 이후 7월 3일 치러진 결선 투표에서 옐친은 주가노프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한다.

    • 시카고 불스가 미국 NBA 파이널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4승 2패로 꺾어 통산 4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 주간소년점프의 장수 만화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가 애니판으로 처음 방영되었다.

  • 6월 18일: 오슬로협약 반대파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스라엘의 새 총리가 되었다.

  • 6월 22일: 정통윤이 캐나다의 대학생 데이비드 버제스(David Burgess)가 운영하는 북한 정보 사이트를 차단하여 파문이 일었다.

  • 6월 23일: 닌텐도는 차세대 게임기 닌텐도 64와 <슈퍼 마리오 64>를 일본에 발매하였다.

  • 6월 25일

    • IAEA 협상대표단이 북한 평양에 도착하였다.

    • 북한측은 김일성에 대한 국가문상기간[10]을 1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김정일의 정식 권력승계도 1년 늦춰지게 되었다.

  • 6월 30일: 이날 몽골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연합이 여당인 몽골인민혁명당을 누름으로써 75년간의 공산독재를 종식시켰다.

3.1.7. 7월[편집]

  • 7월 1일

    • 한국방송공사가 위성방송 시험방송을 개시하였다.

    • 한국증권거래소가 코스닥 시장을 개장하였다.

    • 미국 법무부는 필라델피아 연방지방법원의 결정에 불복하고 '통신품위법' 관련 소송을 대법원에 상고했다.

  • 7월 2일: 미국 NASA는 오존층 조사와 연구작업을 위한 인공위성을 발사하였다.

  • 7월 3일

    • 오인환 공보처장관은 인천, 청주, 울산, 전주 민영 TV방송사 허가를 발표하였다.

    •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 7월 4일: 안기부는 무함마드 깐수 교수로 위장한 남파간첩 정수일을 구속하였다.

  • 7월 5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세계 최초의 복제 돌리가 태어났다.

  • 7월 6일: 한국이 OECD 가입국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 7월 7일

    • 23개 진보통신운동단체와 시민/인권단체로 구성된 '정보통신 검열철폐를 위한 시민연대'가 발족되었다.

    • 북한측은 미국에 쌀 지원 및 경제제재 해제를 요청하였다.

  • 7월 10일

    • 태국-미얀마 국경에서 야생곰 6마리를 밀렵하는 보신관광을 벌인 여행사 사장을 포함한 한국인 관광객 5명이 현지 경찰에 체포되었다.

    • KEDO와 북한은 통신의정서 등 3개 의정서에 공식 서명하였다.

  • 7월 11일: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 수상자에 선정되었다.

  • 7월 14일

    • 대법원은 쾌적한 환경 생활권이 공장설립 권리보다 우선이라고 판결하였다.

    • 일본 우익단체가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에 등대를 세우자 중국-일본 사이에 영토 갈등이 일었다.

  • 7월 16일: '암정복추진기획단'이 발족되었다.

  • 7월 18일

    •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제105차 IOC 총회에서 신임 IOC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 미국에서 TWA 800편 추락 사고가 발생해 승객과 승무원 230명 전원 사망하였다.

  • 7월 19일

    • 미국에서 1996 애틀란타 올림픽이 개막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종합 10위를 차지했다.

    • 중국 양쯔강과 유강 유역에서 30년 만에 대홍수가 일어나 71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 7월 20일

    • 교육부는 한의대 수업거부 사태와 관련된 649명에 유급 확정을 내렸다.

    • 미국 LA에서 '국제한국학대회'가 개최되었다.

    • KEDO 의정서 실무협상단이 북한 평양에 도착하였다.

  • 7월 21일: 닌텐도는 게임보이 포켓을 일본에 발매하였다.

  • 7월 22일: 레슬링 선수 심권호가 애틀랜타 올림픽 그레코로만 48kg 경기에서 벨로루시의 알렉산드로 파블로프를 꺾어 금메달을 땄다.

  • 7월 23일: 유도선수 전기영과 조민선이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86, 여자 66kg급 결승에서 각각 금메달을 땄다.

  • 7월 24일: 대한산업미술가협회가 발족되었다.

  • 7월 26일: 일본 Leaf사의 미연시 키즈아토가 발매되었다.

  • 7월 26일 ~ 7월 28일: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일대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89명이 사망/실종되었다.

  • 7월 27일: 강원도 지역에서 집중호우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 복구작업 중이던 육/공군장병 25명 순직, 10명 실종, 33명이 중상을 입었다.

  • 7월 29일: 북한 황해남/북도, 개성직할시, 강원도 일대에 호우피해가 발생하였다.

3.1.8. 8월[편집]

  • 8월 2일: 외무부는 중국 옌볜 식당에서 소설가 김하기가 실종되었다고 발표하였다.

  • 8월 4일

    • 구 안기부 남산청사 제1별관 건물이 '남산 제모습 찾기' 사업에 따라 폭파해체되었다.

    •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서기회가 주최한 '서태지와 아이들 96 여름 영상콘서트'가 개최되었다.

  • 8월 5일

    • 유명 건설업체 (주)건영이 자금난으로 부도났다.

    • 북한측은 중국 옌볜에서 김하기를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발표하였다.

  • 8월 6일: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이 출범되었다.

  • 8월 8일: 김영삼 대통령은 6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단행하였다.

  • 8월 9일: 치안관계 장관회의 및 공안부처 실무자회의는 대학가 불법/폭력행위를 이적행위로 규정해 엄단키로 결정하였다.

  • 8월 10일: 한총련 대표인 조선대생 류수영과 연세대생 도종화가 평양에 도착했다.

  • 8월 11일

    •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는 대통령 선거운동 허용 문제와 관련해 찬성한다고 언급하였다.

    • 김우석 내무부장관은 전국 지방경찰청장에 공권력 도전 범죄에 강력히 대처하도록 지시하였다.

  • 8월 13일: 내무, 법무, 교육 3개 부처 장관들은 한총련 및 관련자 엄중처리 합동담화를 발표하였다.

  • 8월 14일

    • 제7차 범민족대회 및 제6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남측행사가 연세대에서 개최되었다.

    • 각계 원로들이 공동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8월 15일: 북한측은 입북 중이던 김하기를 중국 공안당국에 인도했다.

  • 8월 16일: 경찰은 범민족대회 개최 중이던 연세대에 진입해 주동자 검거 및 해산작전을 강행하였다(연세대 사태).

  • 8월 17일: 검찰은 정명기 의장 등 한총련 핵심간부 36명을 조속히 검거키로 하고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였다.

  • 8월 18일: 경찰은 연세대 종합관을 완전 봉쇄하고 학교측에 단전/단수를 요청하였다.

  • 8월 19일

    • 박일룡 경찰청장은 현행 경찰관직무직행법을 근거로 시위진압 시 총기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김수한 국회의장의 대통령 4년 중임제 거론을 비난하였다.

    • 전국학생처장협의회 소속 교수 30여 명과 KNCC는 한총련 시위사태 중재 노력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하였다.

    • 최초 남북합작 설립 사업장인 대우 남포공장이 가동을 시작하였다.

  • 8월 20일: 경찰은 농성 중이던 연세대 종합관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한총련 소속 학생 5,500여 명을 연행하였다.

  • 8월 21일

    • 교육개혁위는 새 이념교육 개편안을 마련하였다.

    • 검-경은 한총련 사태 관련 연행자 중 350명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 전날 농성진압 도중 중상으로 뇌사상태에 빠진 김종희 일경이 숨을 거두었다.

  • 8월 22일: 이수성 총리 주재 관계장관회의는 한총련을 좌경폭력단체로 규정하고 핵심세력을 색출해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혔다.

  • 8월 23일

    • 대법원은 삼풍백화점 사고 관련 상고심에서 전 회장 이준에게 징역 7년 6개월을 확정지었다.

    • 연세대는 한총련 시위학생과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 크로아티아-유고 양국이 상호 승인문서에 서명하였다.

  • 8월 24일

  • 8월 25일

    • 온두라스 선적 원양참치잡이 어선 페스키마15호에서 중국교포 선원 6명이 선상반란을 일으켜 한국인 선원 7명 등 11명이 살해당했다.

    • 검찰은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을 재구속하였다.

    • 경찰청은 풍기문란과 성범죄 예방을 위해 신체 과다노출 특별단속을 실시하였다.

  • 8월 26일

    • 서울지법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각각 사형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 교육부는 전국대학 학생/교무처장 회의에서 불법적 학생운동을 제한키로 결정하였다.

    • 녹색교통운동 등 서울시내 55개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한 '서울 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단체연대'가 발족되었다.

  • 8월 27일

    • 대검찰청은 한총련 관련 합동수사기구를 설치하였다.

    • 서울지법은 김형욱 전 중정부장의 반공법 위반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 8월 28일

    •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한국의 OECD 가입을 위한 국회비준 거부를 결의하였다.

    • 대법원은 합리적 이유에 근거한 근로자 정리해고가 적법하다고 판결하였다.

  • 8월 29일

    • 국민회의는 김대중 총재의 '20억+알파' 설을 거론한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 사퇴 및 기소를 촉구하였다.

    • 경찰은 전국 8개 지역 23개 대학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였다.

    • 경제5단체는 폭력시위 참가 학생의 취업을 제한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 8월 30일

  • 8월 31일: 검찰은 '20억+알파' 설을 주장하다 기소된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하였다.

3.1.9. 9월[편집]

  • 9월 1일

    • 김영삼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차 출국하였다.

    • 동아건설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완료하였다.

    •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군함이 부산항에 입항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쇼킹한 사건이었다.

  • 9월 2일: 방송대학TV가 개국되었다.

  • 9월 4일: 제10차 리우그룹 정상회담에서 '불법마약거래와 빈곤추방을 위한 선언문'이 채택되었다.

  • 9월 7일

    • SM기획 소속 아이돌 그룹 H.O.T.가 데뷔했다.

    • 미국의 명가수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마지막 월드 투어인 HIStory World Tour를 시작하였다.

  • 9월 9일: 교통문화운동본부가 발족되었다.

  • 9월 10일: 유엔 총회는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을 가결했다.

  • 9월 13일: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었다.

  • 9월 15일

    •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가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거행되었다.

    • 김영삼 대통령이 '루스벨트 국제장애인상'을 수상받았다.

  • 9월 16일: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표부가 개설되었다.

  • 9월 18일

  • 9월 26일: KEDO와 북한은 미국 뉴욕에서 경수로 부지 의정서와 서비스의정서 체결을 위한 협상에 합의하였다.

  • 9월 27일: 통일원은 국회에 제출한 <북한동포귀순자 현황자료>를 통해 1949년부터 1996년 말까지 귀순한 북한 동포를 616명으로 집계하였다.

  • 9월 28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여연구가 죽었다.

  • 9월 30일

    • 부산 미국공보원이 설립 48년만에 문을 닫았다.

    • 일본 슈에이샤의 주간 소년 점프에서 <유희왕>의 연재가 개시되었다.

3.1.10. 10월[편집]

  • 10월 1일

    • 김영삼 대통령은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시혜 중심의 대북정책 전면 재정리를 천명해 강경 입장을 밝혔다.

    • 주 러시아 한국 총영사 최덕근이 블라디보스토크 아파트 계단에서 피살된 채 발견되었다.

    • MBC가 국내 최초로 전 프로그램 인터넷 생중계를 개시하였다.

    • 서울신문이 가로쓰기로 전환하였다.

    • 유엔 안보리는 신유고연방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공식적으로 해제시켰다.

  • 10월 4일: 헌법재판소는 공윤의 영화 사전심의제도를 규정한 영화법 12조 1항을 위헌이라고 판결하였다(93헌가13).

  • 10월 5일: 문체부는 영화 사전심의를 폐지하는 한편, 공윤과 영화등급 분류제는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 10월 9일: 마이클 잭슨이 내한 공연차 한국을 방문하였다.

  • 10월 11일

    • 제13차 세계중재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한미 양국은 범죄인 인도조약 교섭 체결에 타결하였다.

    • OECD는 회원국 만장일치로 한국 가입을 승인하였다.

    • 서울 지하철 7호선 장암역 ~ 건대입구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10월 13일: 현대 유니콘스쌍방울 레이더스를 플레이오프에서 3승 2패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이는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사상 첫 리버스 스윕이다.

  • 10월 14일

    • 한국통신의 통신위성 무궁화 2호가 발사되었다.

    •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의 정보화 촉진을 위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 5대 목표'를 발표했다.

  • 10월 16일: 한국농구연맹이 창립되었다.

  • 10월 19일: 영광원자력발전소 3, 4호기가 완공되고 5, 6호기가 착공되었다.

  • 10월 20일: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하여 재집권했다.

  • 10월 23일

    박기서에 의해 살해되었다

  • 10월 28일: 국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 진수식이 개최되었다

  • 10월 29일

    • 고고학자들은 합동기자회견에서 전남대 기초과학연구소가 발견한 전남 해남군 우황리 화석층이 세계적인 고고학 및 생물학적 유적지라고 발표하였다.

    • 거북선대축제보존회가 발족되었다.

  • 10월 31일

    • 유엔 총회는 한국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이사국으로 피선하였다.

    • 정통부는 1997년 7월부터 전자도서관 사업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 헌법재판소는 음반 사전심의제도를 명시한 음비법 일부 조항을 위헌으로 판정하였다.

    • 강릉 무장공비 사건 당시 <그들이 무장간첩인가>를 위시한 무장공비가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천리안 등 PC통신상에 게재했던 대학원생 윤모씨가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혐의로 구속되었다.

    • KEDO가 제공하기로 된 중유 50만 톤이 북한에 납입되었다.

3.1.11. 11월[편집]

  • 11월 3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정부의 청소년보호법 통과에 맞서 '만화 심의 철폐를 위한 범만화인 결의 대회'가 열렸다.

  • 11월 5일: 이날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당시 저조한 투표율 속에서도 공화당의 밥 돌을 투표율 49.2%, 선거인단 159명으로 꺾어 재선에 성공하였다.

  • 11월 7일: 재일 바둑기사 조치훈 9단이 일본 명인전에서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을 꺾어 대삼관을 달성하였다.

  • 11월 10일: '전교조 합법화를 위한 전국교사 결의대회 및 전국노동자대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다. 당일 이 대회를 참가하고 돌아온 전교조 경남지부 소속 교사들이 탄 버스가 전복되어 박문곤 교사와 류타원(류경렬 교사의 딸) 등 2명이 숨지고 4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11월 13일

    • 수능 사상 최고의 난이도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되었다. 난이도가 전년도보다 상승해서 수험생들이 피 많이 봤다.

    • 유엔군축안보위는 대인지뢰를 금지하는 국제협정 체결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 이날 로마에서 열린 세계식량정상회의에서 '로마선언'과 7개의 행동계획을 채택하였다.

  • 11월 15일: 북한과 카자흐스탄이 영사협약을 체결하였다.

  • 11월 16일: 라피도컵 프로축구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울산 현대 호랑이가 당시 신생팀이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 11월 20일: 김영삼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동남아 3국 순방차 출국하였다.

  • 11월 23일

  • 11월 25일: 국회 통일외무위는 OECD 협약 가입동의안을 신한국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 11월 26일

    • 한반도 실존 여부를 두고 논란을 가져온 매머드 어금니(길이 18cm, 어금니 윗부분 직경 7cm)가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다.

    • 북한의 역사학자 김석형이 사망했다.

3.1.12. 12월[편집]

  • 12월 1일: 육상선수 이봉주가 제50회 후쿠오카 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10분 74초만에 우승하였다.

  • 12월 3일: 전국 시/도 교육위 의장협의회는 '교육자치법 수호 전국교육위원 궐기대회'에서 지방교육자치법 개정 반대를 결의하였다.

  • 12월 4일: 아랍에미리트에서 1996년 AFC 아시안컵이 개막되었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가 8강에서 이란에게 2:6으로 참패를 당했던 대회로 기억에 남아있다.

  • 12월 6일: 각계 원로 103명이 <반부패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사회원로 103명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12월 7일: FIFA는 2002년 월드컵 명칭을 '한국-일본'이라 하고 개/폐막식을 서울에서 열자고 공식 발표하였다.

  • 12월 8일: 대구 중구청 소속 양궁 선수였던 주진우가 유부녀였던 유정숙에게 교살당했다(대구 양궁선수 살인사건).

  • 12월 9일: 탈북주민 김경호 일가족 17명이 서울에 도착하였다.

  • 12월 12일

    • 유엔 안보리는 보스니아 평화이행군(IFOR)을 '다국적행정협정군(SFOR)로 명칭을 바꾸어 18개월간 보스니아에 주둔시키기로 결정하였다.

    •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올해의 한자'로 (먹을 식)자를 선정하였다.

  • 12월 13일: 한국노총은 정부의 노동법 개정 저지를 위해 1,719개 산하 노조들을 대상으로 한 파업찬반투표에서 파업을 가결시켰다.

  • 12월 14일

    • 노동정보화사업단이 결성되었다.

    • 닌텐도가 <마리오 카트 64>를 일본에 발매하였다.

  • 12월 16일: 서울고법 형사1부는 12.12 및 5.18 항소심에서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무기징역과 17년형을 각각 선고하였다.

  • 12월 17일

    • 국회 법사위는 울산시의 광역시 승격을 골자로 한 법률안을 승인하였다.

    • 유엔 총회는 가나 출신의 코피 아난을 새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하였다.

  • 12월 23일

    • 앙골라지역에 파견된 UN PKO 소속 공병대대 장병 198명이 개선하였다.

    • 전, 노 두 전직 대통령이 12.12 및 5.18, 노태우 비자금 사건 선고와 관련해 상고를 포기하였다.

  • 12월 26일

    • 신한국당은 오전 6시에 단독 국회 본회의를 소집해 안기부법 및 노동관계법안을 기습 통과시켰다(1996년 노동법 날치기).

    • KBS, MBC, SBS, EBS 등 방송 4사 노조위원장단은 기습처리된 안기부법/노동법 폐지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결의하였다.

  • 12월 27일: 서울대병원노조 등 병원노련 산하 8개 노조가 노동법 개정안의 국회 기습통과에 반발하며 오전 7시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였다.

  • 12월 28일: 일본 지지통신은 1962년 김종필이 방일 당시 독도문제 해결을 위해 독도 폭파를 제안했다고 보도하였다.

  • 12월 30일

    • 유엔군은 강릉 침투 무장공비 유해 24구를 북측에 인도하였다.

    • 서강대교가 개통되었다.

    •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 왕십리역 구간이 완공되어 완전 개통되었다.

    • 과테말라 정부군과 좌익반군이 평화협정에 공식 서명하여 36년 동안의 내전을 종식시켰다.

  • 12월 31일

    •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이 제정되었다.

    • 당산철교가 부실공사 때문에 밤 11시부터 철거에 들어갔다.

    • 블리자드는 최초의 배틀넷 지원 게임 <디아블로>를 출시하였다.

3.2. 가상[편집]

4. 탄생[편집]

4.1. 실존 인물[편집]

4.2. 가상 인물[편집]

5. 사망[편집]

5.1. 실존 인물[편집]

5.1.1. 1월[편집]

5.1.2. 2월[편집]

5.1.3. 3월[편집]

5.1.4. 4월[편집]

5.1.5. 5월[편집]

5.1.6. 6월[편집]

  • 6월 9일 - 조지 번스: 미국의 원로 희극배우

  • 6월 15일 - 피츠로이 매클린: 제임스 본드의 실존 모델로 알려진 영국의 외교관, 여행가, 정치가

  • 6월 16일 - 프랭키 사카이: 일본의 희극배우

  • 6월 17일 - 에드몽 루드니츠카: 프랑스의 향수 제조자

  • 6월 18일 - 오용철: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6월 23일 -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그리스의 전 총리

  • 6월 27일 - 앨버트 R. 브로콜리: 영화 007 시리즈 제작자

  • 6월 30일 - 박시춘: <신라의 달밤>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국민적인 대중음악 작곡가

5.1.7. 7월[편집]

5.1.8. 8월[편집]

5.1.9. 9월[편집]

5.1.10. 10월[편집]

  • 10월 3일 - 김말룡: 대한민국의 원로 노동운동가, 정치인

  • 10월 10일 - 김종열: 제30대 대한체육회장

  • 10월 16일 - 르네 라코스트: 프랑스의 테니스 선수이자 라코스테의 창업주

  • 10월 19일

  • 10월 22일

    • 박정훈 이교: 강원도의 한 교도소에서 경비교도대로 복무하다 선임들의 가혹행위로 자살한 군 가혹행위 피해자. 2007년에 순직 결정이 내려짐.

    • 매튜 하딩: 첼시 FC의 전 부회장. 그를 죽음을 기리기 위해 스탬포드 브릿지에 그의 이름을 딴 관중석이 만들어졌다.

  • 10월 23일 - 안두희: 대한민국의 군인, 백범 김구암살

  • 10월 29일 - 김경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5.1.11. 11월[편집]

5.1.12. 12월[편집]

5.1.13. 일자 불명[편집]

  • 김경언: 1950~60년대에 <의사 까불이>, <칠성이> 등의 명랑만화를 다량으로 내 이름을 날린 만화가

5.2. 가상 인물[편집]

6. 데뷔[편집]

6.1. 가수[편집]

6.2. 만화계[편집]

  • 공성술 - <어느 날>

  • 권교정 - <헬무트>

  • 김나경 - <빨강머리 앤>

  • 김도하 - <엔젤하트>

  • 김수용 - <나간다 우라팡>

  • 김영희 - <해피앤딩 만들기>

  • 류기영, 문정후 - <용비불패>

  • 문희석 - <무적 10단>

  • 박시백 - <한겨레그림판>

  • 설이, 이철희 - <미인방>

  • 손은호 - <퇴마전사 아론>

  • 시마부쿠로 미츠토시 - <凄絶!!タコス駅西口>

  • 심재봉

  • 심혜진 - <왕의 바다>

  • 유상모 - <마스터즈>

  • 윤성남 - <나쁜 만화>

  • 윤인완 - <데자뷰(스토리 담당)>

  • 이원희 - <엑스트라>

  • 이장원 - <비너스의 꿈>

  • 이재용 - <춘추만평(연세춘추)>

  • 이정호

  • 이지유 - <나딘 밴드>

  • 임재원 - <영캅스>

  • 정태권 - 일요신문 시사만평

  • 천계영 - <탤런트>

  • 쿠보 타이토 - <ULTRA UNHOLY HEARTED MACHINE>

  • 한두영 - <악의 꽃>

  • 황정호 - <심판자>

6.3. 스포츠[편집]

6.4. 배우[편집]

6.5. 예능인[편집]

7. 은퇴[편집]

7.1. 가수[편집]

7.2. 스포츠[편집]

8. 베스트셀러[편집]

  • 아버지 - 김정현 저.

  •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박영규 저.

  •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 장승수 저.

  • 축제 - 이청준 저.

  • 좀머 씨 이야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

  •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저.

  • 초학습법 - 노구치 유키오 저.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 한호림 저.

  • 뇌내혁명 - 하루야마 시게오 저.

[1]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사고 퍼레이드가 있었고 이듬해에는 나라가 부도났다.[2] Windows 95 한국 정발일은 1995년 11월 28일. 물론 2000년국민PC가 대중화한 것에 비하면 느린 보급 속도이긴 했지만.. 사실 PC 자체는 1993년에 정발된 한글 윈도우 3.1 이후 보급되긴 했다.[3] 출처: 대한민국 IT사 100(김중태 著)[4] 그런데 그 스포츠 행사들이 전체적으로 망했고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면 큰 타격은 없다.[5] 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무기와 17년으로 감형,mbc 뉴스[6] 항소심 재판부, 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벌 관대,mbc뉴스[7] 전두환 노태우 사면 여론조사 mbc뉴스[8] 뒤바뀐 영욕 18년의 드라마, 동아일보[9] 상기한 양심수인 함주명과 김성만의 경우는 그 다음해인 1998년에 사면으로 풀려난다.[10] 이는 북한 유훈통치 기간 동안 있었던 특이한 제도였다.[11] 당시 소위.[12] 프로젝트 시작 년도가 2010년.[13]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정확한 생년월일이 밝혀진 인물이다![14] 작 중 연도가 정확히 밝혀진 애니메이션판 한정.[15] 설정상 봉지은과 동갑이지만 '인생 봉지은 마무리' 편에서 준희로 개명된다. 작가 설정 오류인듯[16] '인생 봉지은 4'편에서 봉지은이 초등학교 5학년일 때 방우리 나이가 12살이다.[17] 봉지은과 같은 학번인 15학번으로 봉지은과 동갑이다.[18] 신작 기준으로 1996년생이지만 원작에서는 1961년생이다.[19] 그의 사망으로 최종적으로 봄, 여름만 다룬 채 <에스키모와의 100일>이란 제목으로 결정되어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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