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첼시 FC/빌라스보아스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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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
코치 | |
계약 기간 | |
계약 종료 (성적 부진과 선수단과의 갈등으로 인한 경질) | |
주장 | |
연봉 | 미상 (감독 / 추정치) |
전술 스타일 | |
성적 | 49전 19승 11무 10패 (승률 47.5%) |
지난 2010-11 시즌을 끝으로 경질당한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후임으로써 당시 FC 포르투를 이끌고 프리메이라 리가 무패 더블, 그리고 여기에 UEFA 유로파 리그에서도 우승하며 제2의 무리뉴라고 칭송받는 빌라스보아스를 선임하였다.
그러나 빌라스보아스 감독은 프리시즌부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첼시는 레전드들이 존중받는 문화였는데 이를 꼰대 문화라 여긴[3] 빌라스보아스는 당시 어린 유망주들이 다 보고 있는 앞에서 비즈니스석에 타고 있는 주장인 존 테리를 비즈니스석에서 이코노미석으로 옮기라는 식으로 나무라는 일을 저질렀다. 이에 대해 존 테리가 논리적으로 받아치자[4] 머쓱하게 돌아갔는데, 나중에는 아예 일방적으로 어린 유망주들을 비즈니스석에 먼저 앉혀놓고 이코노미석에 탈 것을 통보하는 일을 저지르며 프리시즌부터 선수단과 감독 사이의 갈등이 시즌 전부터 발생하고 말았다.
그렇게 어지저찌 시즌이 시작되었고 시즌 초까지만 하더라도 보아스의 전술 철학이 녹아내렸고 특히 당시 영입한 후안 마타의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시즌 극초반 반등하였지만, 그럼과 동시에 시즌 초부터 빌라스보아스는 고참 선수들인 디디에 드록바,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 페트르 체흐, 애슐리 콜, 니콜라 아넬카 등 고참 선수를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수를 두며 라커룸 장악과 본인의 철학을 녹여낼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스노우볼로 인해 이 고참 선수들이 빌라스보아스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태업을 일삼는 일까지 벌어졌다. 심지어 이 중에는 니콜라 아넬카와[5] 알렉스를 겨울에 방출해버리는 등 더더욱 악수를 두자 선수단들은 親보아스파와 反보아스파로 나뉘어 파벌을 형성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 팀 분위기도 와해되고 결국 축구적으로도 내리막을 걷게 된다.
그렇게 첼시가 계속해서 리그에서 부진하자 신년부턴 빌라스보아스 감독의 경질설이 대두될 정도로 심각해졌지만, 로만은 그 와중에도 빌라스보아스를 경질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면서 한동안은 빌라스보아스를 밀어주는 스탠스를 보였다는 것이 아이러니.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기복이 큰 경기력으로 인해 토너먼트에도 진출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으나 어찌저찌 3승 2무 1패를 기록하며 조1위로 16강에 진출하였고, 16강에서는 당시 발테르 마차리 감독이 이끄는 SSC 나폴리를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나폴리와의 1차전에서 무력하게 3:1으로 완패하면서 다시 한 번 빌라스보아스의 입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그의 마지막 경기인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전에서 1:0으로 패배한 뒤 경질되었다.
그렇게 어지저찌 시즌이 시작되었고 시즌 초까지만 하더라도 보아스의 전술 철학이 녹아내렸고 특히 당시 영입한 후안 마타의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시즌 극초반 반등하였지만, 그럼과 동시에 시즌 초부터 빌라스보아스는 고참 선수들인 디디에 드록바,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 페트르 체흐, 애슐리 콜, 니콜라 아넬카 등 고참 선수를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수를 두며 라커룸 장악과 본인의 철학을 녹여낼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스노우볼로 인해 이 고참 선수들이 빌라스보아스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태업을 일삼는 일까지 벌어졌다. 심지어 이 중에는 니콜라 아넬카와[5] 알렉스를 겨울에 방출해버리는 등 더더욱 악수를 두자 선수단들은 親보아스파와 反보아스파로 나뉘어 파벌을 형성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 팀 분위기도 와해되고 결국 축구적으로도 내리막을 걷게 된다.
그렇게 첼시가 계속해서 리그에서 부진하자 신년부턴 빌라스보아스 감독의 경질설이 대두될 정도로 심각해졌지만, 로만은 그 와중에도 빌라스보아스를 경질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면서 한동안은 빌라스보아스를 밀어주는 스탠스를 보였다는 것이 아이러니.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기복이 큰 경기력으로 인해 토너먼트에도 진출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으나 어찌저찌 3승 2무 1패를 기록하며 조1위로 16강에 진출하였고, 16강에서는 당시 발테르 마차리 감독이 이끄는 SSC 나폴리를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나폴리와의 1차전에서 무력하게 3:1으로 완패하면서 다시 한 번 빌라스보아스의 입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그의 마지막 경기인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전에서 1:0으로 패배한 뒤 경질되었다.
빌라스보아스 감독 시절의 첼시는 굳이 비유하면 바비 밸런타인 감독이 재임했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2012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와 유사한 점이 어느 정도 있다고 꼽을 수 있는데, 바로 선수단 장악을 하기 전에 선수들과 부임 시작부터 대 놓고 싸우는 태도를 보인 것을 시작으로 선수단이 빌라스보아스 감독의 전술적인 지시까지 듣지 않는 지경까지 가면서 그게 성적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것. 빌라스보아스 감독의 문제점이 너무나도 명확했던 시기였는데, 바로 리빌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고참 선수들에게 채찍과 당근을 모두 활용했어야 했는데 그걸 간과하고 기존 주축 선수들을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위험한 시도를 한 것이다. 과거에 리빌딩 장인으로 통했던 알렉스 퍼거슨은 물론이고, 당시 아스날 FC의 아르센 벵거 등 유럽에서 내로라 하는 리빌딩 장인들은 일반적으로 기존의 고참 선수들을 무리하게 배척하는 대신 채찍과 당근을 모두 활용하는 경우가 보통인데, 이 과정에서 선수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거치면서 설득을 하고 이해를 시켜주면서 라인업 제외 조치를 해야하는 등 축구 외적으로도 상당히 손이 많이 가는 경우가 보통이다.[6] 하지만 빌라스보아스는 이와는 달리 이러한 과정에서 선수들과의 대화는 일절 가지지 않고 선수단의 전통까지 깨부수는 등 선수단들 입장에선 선을 넘은 행위까지 일삼는 짓을 저지르며 결과적으로는 구단의 척추가 흔들리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말았고, 결국 당시 첼시의 핵심 선수들이던 디디에 드록바와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와 페트르 체흐 같은 고참 선수들이 항명을 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등 상황이 악화되기만 했다. 결국 이런 식으로 기존 코어라인을 완전히 배척하고 프리시즌에 들어갔던 행위가 자신에게 경질이라는 부메랑이 된 것을 보면 빌라스보아스 체제의 첼시는 선수에게나 빌라스보아스 본인에게나 모두 얻은 것이 없었던 시기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디디에 드록바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언급한 내용에 따르면 프리시즌부터 어린 선수들을 비즈니스석에 태우고 고참 선수들을 이코노미석에 태우는 식으로 선수들을 길들이려다가 프리시즌부터 고참 선수들과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7], 드록바는 이 일로 인해 보아스와의 신뢰를 쌓기 힘들었다고 하며 이 시기에는 의도적으로 태업을 했음을 자서전을 통해 직접 인정하기도 했다. 당시 보아스가 고참 선수들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할 때도 제외만을 통보하고 사유를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것에서도 불만이 있었다고 하며,[8] 실제로 로만 아브라모비치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질을 하면서 선수단에게 "선수단 전부를 내보내는 것보다 감독 한 명을 내보내는 것이 더 싸기 때문에 감독을 경질했다. 성적이 안 나면 다음은 너희들이다." 라는 언질을 주며 선수단의 태업을 강력하게 경고했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안비보는 첼시 FC 구단 역사상 최악의 감독 중 하니이며,안비보 체제는 팬들로 하여금 잊고 싶은 시즌이었다.
디디에 드록바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언급한 내용에 따르면 프리시즌부터 어린 선수들을 비즈니스석에 태우고 고참 선수들을 이코노미석에 태우는 식으로 선수들을 길들이려다가 프리시즌부터 고참 선수들과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7], 드록바는 이 일로 인해 보아스와의 신뢰를 쌓기 힘들었다고 하며 이 시기에는 의도적으로 태업을 했음을 자서전을 통해 직접 인정하기도 했다. 당시 보아스가 고참 선수들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할 때도 제외만을 통보하고 사유를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것에서도 불만이 있었다고 하며,[8] 실제로 로만 아브라모비치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질을 하면서 선수단에게 "선수단 전부를 내보내는 것보다 감독 한 명을 내보내는 것이 더 싸기 때문에 감독을 경질했다. 성적이 안 나면 다음은 너희들이다." 라는 언질을 주며 선수단의 태업을 강력하게 경고했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안비보는 첼시 FC 구단 역사상 최악의 감독 중 하니이며,안비보 체제는 팬들로 하여금 잊고 싶은 시즌이었다.
[겨울] 1.1 1.2 이적[3] 정확히는 디디에 드록바의 자서전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드록바는 자서전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유독 이 시즌만큼은 꽤 긴 페이지의 분량을 할당했는데 드록바는 빌라스보아스에 대해 첼시에서의 행적을 토대로 사람으로는 싫지 않았지만, 축구적으로는 함께하기 쉽지 않았던 인물이라고 평가를 한 적이 있다.[4] 어린 유망주들은 비즈니스석을 타는데 베테랑들이 이코노미석을 타는 것은 서양 기준으로도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다.[5] 다만 아넬카의 경우 그 이전에도 라커룸 내부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다고는 한다. 오죽하면 전임 감독인 안첼로티조차도 첼시에서 죽이고 싶은 선수가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대상으로 지목된 것이 사실상 아넬카였다는 이야기가 많았을 정도.[6] 혹은 불가피하게 기존 선수를 타 구단으로 이적을 보내야 할 상황의 경우에도 대화를 통해 이적 관련으로 선수를 이해시켜주는 것이 필요한데, 얄궃게도 이러한 태도가 부족해서 첼시를 떠났던 케이스가 주제 무리뉴 2기 시절 케빈 더 브라위너라는 점이다.[7] 이 일화는 존 테리도 인터뷰에서 밝힌 바가 있다.[8] 실제로 후임 감독대행인 로베르토 디마테오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할 일이 있었을 경우엔 선수가 더 뛰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도, 현재의 몸 상태로는 모든 경기를 뛰게 하기는 어렵다는 등의 상세 사유를 선수에게 이야기해주는 태도를 취해서 선수들이 큰 불만없이 넘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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