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첼시 FC/히딩크 임시 체제(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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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
코치 | |
계약 기간 | |
계약 종료 (자진 사임) | |
주장 | |
연봉 | 미상 (감독 / 추정치) |
전술 스타일 | |
성적 | |
유로 2008에서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1988년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 시절 준우승 이후 최고의 성적인 4강 진출을 이끌며 계속해서 명장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대표팀 시절 로만 아브라모비치와의 인연으로 인해 스콜라리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하였다.
히딩크는 부임 당시 선수단을 장악하여 안정적인 팀 분위기를 구성했고 전임자처럼 재미있고 공격적인 축구보단 재미는 떨어질 지언정 성적은 곧잘내는 실리 축구를 보였다. 특히 당시 부진하던 디디에 드록바의 원톱체제와 절때 공존할수 없을것 같았던 문제아 니콜라 아넬카를 윙포워드에 가까운 위치에 적용시키며 살려 내었고 전에있었던감독들관 달리 미하엘 발락을 아주 잘 활용하며 발락을 살려냄에 따라 중원 확보에 성공하였고 화려함보단 단조로움을 추구하는 실리 축구로 곧장 성적을 냈다. 스콜라리 시절 위태했던 팀을 프리미어 리그 3위로 이끌었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순항하며 무려 3년만에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그러나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그 유명한 오브레보 주심의 오심사건이 일어났고 결국 아쉽게 4강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FA컵에선 선전하며 결승전 에버튼 FC를 2:1로 꺾으며 우승하였고 이후 로만은 재계약을 원했으나 히딩크가 거절하며[2] 첼시 FC와 히딩크는 아름다운 이별을 하였다.
2008-09 시즌
2008-09 시즌
경기 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률 |
22 | 16 | 5 | 1 | 41 | 19 | 72.7% |
우선 당시 혼란스러웠던 시즌을 매우 잘 수습하였고 여러 첼시의 문제점을 다 해결하며 무려 챔스 4강과 FA컵 우승이라는 역대급 성적을 내었고 로만 이후 첼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진 사임한 감독이며 히딩크의 첼시 1기는 매우 아름다웠던 시즌이라고 평가할만 하다. 그리고 이후 6년후 첼시가 또 위기에 빠지자 히딩크는 다시 부임하였다.
정리하자면, 임시체제였던 만큼 히딩크 체제를 첼시의 레전드 시즌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위기의 순간때마다 임시감독을 맡으며 팀의 안정화에 기여했고, 위 1기는 안정화를 넘어 정식감독급의 뛰어난 호성적을 냈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팬들 사이에서도 히딩크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인 편.
정리하자면, 임시체제였던 만큼 히딩크 체제를 첼시의 레전드 시즌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위기의 순간때마다 임시감독을 맡으며 팀의 안정화에 기여했고, 위 1기는 안정화를 넘어 정식감독급의 뛰어난 호성적을 냈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팬들 사이에서도 히딩크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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