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 FC/라니에리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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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아이콘   관련 문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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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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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대회
엄브로 심볼 화이트
첼시 FC 로고(2003-05...
첼시 FC
라니에리 체제
claudio-ranieri-...
감독
이탈리아 국기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 제25대 감독 (2000~2004)
코치
웨일스 국기
그윈 윌리엄스 / 수석 코치
이탈리아 국기
조르조 펠리차로 / GK 코치
잉글랜드 국기
아드 마페 / 컨디셔닝 코치
계약 기간
2000년 9월 18일 ~ 2004년 5월 31일
(3년 7개월 17일 / 1322일)[1]
계약 종료 (성적 부진으로 인한 경질)
주장
잉글랜드 국기
데니스 와이즈 / (2000~2001)
프랑스 국기
마르셀 드사이 / (2001~2004)
연봉
미상 (감독 / 추정치)
전술 스타일
카테나치오 기반의 빠른 역습 축구
4-4-2 포메이션&3-5-2 포메이션 혼용
로테이션 적극 활용
높은 중원 장악력을 바탕으로한 빠른 역습 축구
성적
 
 
 
 
 
 
 
 
 
 
 
 
 
 
 
 
 
 
 
 
 
 
 
 
 

1. 개요2. 부임 사가3. 활동4. 평가5. 여담

 
 
 
 
 
 
 
 
 
 
 
 
 
 
 
 
 
 
 
 
 
 
 
 
 
 
 
 
 
 
 
 
 
 
 
 
 
 
 
 

1. 개요[편집]

 
 
 
 
 
 
 
 
 
 
 
 
 
 
 
 
 
 
 
 
 
 
 
 
 
 
 
 
 
 
 
 
 
 
 
 
 
 
 
 
첼시 FC의 제 24대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체제를 설명하는 문서
 
 
 
 
 
 
 
 
 
 
 
 
 
 
 
 
 
 
 
 
 
 
 
 
 
 
 
 
 
 
 
 
 
 
 
 
 
 
 
 

2. 부임 사가[편집]

 
 
 
 
 
 
 
 
 
 
 
 
 
 
 
 
 
 
 
 
 
 
 
 
 
 
 
 
 
 
 
 
 
 
 
 
 
 
 
 
지난 2000년 잔루카 비알리 감독이 성적 부진과 보드진의 마찰로 인해 경질되자 켄 베이츠 회장은 당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경질 된 이후 휴식기를 가지고 있던 라니에리를 선임하였다.[2]
 
 
 
 
 
 
 
 
 
 
 
 
 
 
 
 
 
 
 
 
 
 
 
 
 
 
 
 
 
 
 
 
 
 
 
 
 
 
 
 

3. 활동[편집]

 
 
 
 
 
 
 
 
 
 
 
 
 
 
 
 
 
 
 
 
 
 
 
 
 
 
 
 
 
 
 
 
 
 
 
 
 
 
 
 
 
 
 
 
 
 
 
 
 
 
 
 
 
 
 
 
 
 
 
 
 
 
 
 
 
 
 
 
 
 
 
 
전임자인 잔루카 비알리의 유산을 물려 받은 라니에리는 혼란스러웠던 첼시를 안정화시키고 전임자가 콜업시킨 존 테리를 본격적으로 기용하는 등 첫 시즌 리그 6위를 기록하며 직전 시즌 4위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이나 어찌저찌하여 시즌을 잘 마무리 하였다. 당시 라니에리 감독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선수단과 언어 장벽에 부딪히기도 했다.[3]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의 미친 활약으로 겨우 버텼던 시즌으로 하셀바잉크는 리그 23득점으로 득점왕을 수상하였다.

2000-01 시즌
경기 수
득점
실점
승률
38
18
7
13
64
49
47.37%
 
 
 
 
 
 
 
 
 
 
 
 
 
 
 
 
 
 
 
 
 
 
 
 
 
 
 
 
 
 
 
 
 
 
 
 
 
 
 
 
 
 
 
 
 
 
 
 
 
 
 
 
 
 
 
 
 
 
 
 
 
 
 
 
 
 
 
 
 
 
 
 
지난 시즌 적응기를 거쳐 본격적인 리빌딩의 서막을 알렸다. 당시 유망주 천지인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에서 프랭크 램파드를 영입하였고 FC 바르셀로나에서 적응을 실패한 노장 엠마누엘 프티를 그리고 당시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윌리엄 갈라스를 영입하고 당시 주장이었던 데니스 와이즈를 방출하는 등 주요 선수 IN&OUT이 활발했던 시즌이었다. 이후 시즌이 시작되고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시즌 말미에 미끌어지며 지난 시즌과 같이 또다시 6위를 기록한다. 그러나 FA컵에선 선전하여 결승전까지 진출하였으나 결승전 상대가 하필 그 당시 더블을 달성한 아르센 벵거아스날 FC였고 결국 2:0으로 완패하며 아쉽게 2번째 시즌을 마무리 했다.[4]그러나 해당시즌 긍정적인 지표는 부임 첫 시즌관 다르게 실점이 눈에 띄게 감소했는데 이는 존 테리-윌리엄 갈라스 수비진이 미친 활약을 하는 등 긍정적인 지표는 계속 나오고 있었다. 또한 하셀바잉크구드욘센 그리고 말년을 불태우는 지안프랑코 졸라까지 공격진 역시 화려하게 작용한덕에 무려 100득점을 뛰어넘는 미친 기록을 경신하는 등 순위만 아쉬웠지 공수 양면으로 건질게 많았던 시즌이었다.

UEFA컵에서는 2라운드에서 이스라엘하포엘 텔아비브에게 발목잡혀 일찍 탈락했는데 사연이 있었다. 이때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9.11 테러의 여파로 인해 중동 지역의 긴장이 최고조였다. 심지어 경기 전날 이스라엘의 관광부 장관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선수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첼시 구단은 선수들에게 자율적인 선택을 하도록 했고 그 결과 주전급 선수 6명이 안전상 이유로 이스라엘행 비행기에 몸을 싣지 않았다. 주전들이 대거 빠지면서 첼시는 17세의 조엘 키타미리케가 데뷔하는 등 억지로 라인업을 짜야 했고 1차전 원정경기에서 0-2로 패배했다. 2차전 홈에서 주전들이 복귀했지만 1-1 무승부에 그치며 탈락했다.

2001-02 시즌
경기 수
득점
실점
승률
59
30
15
14
102
54
50.85%
 
 
 
 
 
 
 
 
 
 
 
 
 
 
 
 
 
 
 
 
 
 
 
 
 
 
 
 
 
 
 
 
 
 
 
 
 
 
 
 
 
 
 
 
 
 
 
 
 
 
 
 
 
 
 
 
 
 
 
 
 
 
 
 
 
 
 
 
 
 
 
 
켄 베이츠 회장의 부동산 투자 실패와 더불어 잦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 실패로 결국 터질게 터진 시즌이었다. 당시 파산 직전인 첼시 FC는 여름이적시장에서 당시 RCD 에스파뇰에서 자유 계약으로 중앙 미드필더 키케 데 루카스를 영입한 게 전부였고 이로 인해 라니에리는 리빌딩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선수단의 주급을 겨우겨우 지급하는 마당이었지만 의외의 성적을 내게 되는데 바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4위를 기록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면 중계권료 등 팀에 끼치는 이익이 어마어마 했기에 첼시는 이 시즌 챔스 티켓을 따내며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영입생인 키케 데 루카스는 부진하였으나 당시 지난시즌 미친 쌍두마차를 이룬 하셀바잉크구드욘센의 엄청난 활약으로 첼시를 안정화시켰고 그외에 엠마누엘 프티와 합을 맞추며 적응을 끝낸 프랭크 램파드와 마지막 시즌인 만큼 젓 먹던 힘까지 다 짜넨 지안프랑코 졸라와 미친 수비력을 자랑한 존 테리-마르셀 드사이 듀오 등 다양한 선수들의 밥값 덕에 겨우 살아남았던 시즌이었다. 특히 이들은 챔스티켓이 걸린 아주 중요한 경기인 38R 리버풀 FC전에서 모든 장점들이 다 드러났는데 당시 2002-03 시즌 37R 종료 시점으로 리버풀과 첼시는 승점은 같으나 첼시 골득실로 우위라 첼시 입장에선 비기기만 하더라도 챔스 진출이었고 리버풀 입장에선 반드시 이겨야 했던 경기였다. 그렇게 서로가 사력을 다한 경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경기 초 리버풀의 사미 히피아의 선제골로 리버풀은 환호를 첼시는 절규를 외쳤으나 이후 드사이의 동점골과 예스퍼 그랑샤르의 역전골로 2:1로 챔스에 진출하는 이변을 만든 시즌이었다. 여담으로 이 시즌 후에 첼시의 남자 로만 아브라모비치켄 베이츠 회장으로부터 첼시를 인수하기도 하였다.

2002-03 시즌
경기 수
득점
실점
승률
52
26
11
15
89
53
50%
 
 
 
 
 
 
 
 
 
 
 
 
 
 
 
 
 
 
 
 
 
 
 
 
 
 
 
 
 
 
 
 
 
 
 
 
 
 
 
 
 
 
 
 
 
 
 
 
 
 
 
 
 
 
 
 
 
 
 
 
 
 
 
 
 
 
 
 
 
 
 
 
이후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팀을 인수한 이후 빚을 청산하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첼시는 레알 마드리드갈락티코 정책에 버금갈 정도의 스쿼드를 여름 이적시장에서만 보강하게 된다. 명단들을 흝어보면 먼저 레알 마드리드에서 영입한 클로드 마케렐레를 시작으로 에르난 크레스포,아드리안 무투,스콧 파커,데미안 더프,조 콜,웨인 브릿지,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등 어마어마한 영입을 강행했다. 방출 역시 지안프랑코 졸라가 떠나는 등 IN&OUT 매우 활발한 시즌이었다. 이후 라니에리는 첼시에서 그 전에완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성적을 내기 시작한다 일단 해당시즌 프리미어 리그 준우승을 시작으로 무려 UEFA 챔피언스 리그를 1999-00 시즌 이후 팀을 4강으로 올리며 하며 첼시 역사상 최고 성적을 냈다. 그러나 당시 명확한 플랜 A 없이 계속 실험을 강행하는 등 무분별한 전술적 변화로 무승무나 패배를 하였고 그러는 사이 당시 무패 우승시즌 이었던 아스날 FC에게 추월당하여 우승트로피를 내주는 등 전술적인 한계가 들어났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시즌이 종료된 뒤 라니에리는 경질 되었고 그의 후임은 바로 '스페셜 원' 주제 무리뉴 감독이 부임하며 라니에리의 휘향찬란한 4년이 마무리 된다.

2003-04 시즌
경기 수
득점
실점
승률
59
35
13
11
105
44
59.32%
 
 
 
 
 
 
 
 
 
 
 
 
 
 
 
 
 
 
 
 
 
 
 
 
 
 
 
 
 
 
 
 
 
 
 
 
 
 
 
 

4. 평가[편집]

 
 
 
 
 
 
 
 
 
 
 
 
 
 
 
 
 
 
 
 
 
 
 
 
 
 
 
 
 
 
 
 
 
 
 
 
 
 
 
 
라니에리는 첼시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칭송 받는다 먼저 그의 리빌딩 덕에 콜업되고 영입된 존 테리프랭크 램파드는 이후 쭈욱 잔류하여 첼시의 핵심OF핵심으로 거듭났고 결국 첼램덩크라는 대형사고를 치는 등 첼시엔 없어선 안 될 선수들이 바로 라니에리의 유산이었다. 그리고 물론 로만 주도의 영입이었지만 2003-04 시즌 영입된 선수들은 실패한 크레스포와 스콧 파커, 베론 정도를 제외하면 후임자 무리뉴 1기때의 주축 선수들이며 그 덕에 첼시의 50년 만의 리그 우승을 달성할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라니에리는 첼시 FC에 있어서 없어선 안 될 존재였고 명실상부한 최고의 감독중 한 명이다.
 
 
 
 
 
 
 
 
 
 
 
 
 
 
 
 
 
 
 
 
 
 
 
 
 
 
 
 
 
 
 
 
 
 
 
 
 
 
 
 

5. 여담[편집]

 
 
 
 
 
 
 
 
 
 
 
 
 
 
 
 
 
 
 
 
 
 
 
 
 
 
 
 
 
 
 
 
 
 
 
 
 
 
 
 
먼 훗날 2016년 라니에리는 레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첼시에서 이루지 못한 우승을 일궈내는데, 공교롭게도 라니에리의 우승은 첼시가 2위 토트넘과 무승부를 거두면서 확정되었다. 이날 스탬포드 브리지의 첼시 홈 관중들은 경기 종료 직전 오랫동안 불리지 않았던 라니에리의 응원가를 부르면서 라니에리의 쾌거를 축하해 주었다. 또 재미있는 점이라면 레스터 시티 우승의 숨은 주역 중 하나인 센터백 로베르트 후트가 라니에리가 첼시 감독을 할 때 1군으로 승격시켰던 유망주라는 것이다. 어린 유망주였던 제자를 어느덧 30이 넘은 노장으로 다시 만나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룬 것.
 
 
 
 
 
 
 
 
 
 
 
 
 
 
 
 
 
 
 
 
 
 
 
 
 
 
 
 
 
 
 
 
 
 
 
 
 
 
 
 
[1] 21세기 첼시 FC 감독 중 최장기간 부임[2] 여담으로 라니애리는 켄 베이츠 체제 마지막 감독이자 로만 아브라모비치 체제의 첫 감독이다. 그리고 로만 체제에서 처음으로 경질된 감독이다.[3] 물론 지안프랑코 졸라나 디마테오 같은 이탈리아 출신 선수들이 있긴 있었다.[4] 하지만 지속된 부채와 챔스 진출 실패는 첼시에게 점점 암흑의 그림자가 드리웠고 결국 다음시즌 터지게 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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